미도리의 불운

 

어느 평범한 실장숍 안, 오늘도 활기찬 ―필사적인― 자실장들의 자기어필이 재잘재잘 울려퍼지는 한구석에 큼지막한 중실장 하나가 오도카니 앉아 있다. 이녀석을 편의상 미도리로 부르도록 하자.

누가봐도 판매시기를 아득히 놓친 미도리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겉보기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육실장 후보다. 딱히 못생긴 것도, 행동거지가 멍청하거나 버릇없는 것도 아니다. 활발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것은 커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 되려 자실장 시절에는 초특급 가격표가 붙어 있었던 녀석이었다. 조금은 의외의 이유로 미도리는 불운하게 곧 성체가 되는 이 시기까지 팔리지 못했다.

초기 사육실장 붐을 지나오고 대중의 실장석 이해도가 향상된 지금, 사육실장이 자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는 일반상식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 판매되는 자실장들은 분류가 끝나자마자 레이저로 총구를 지져 불임처리를 해놓는 게 일반적이다. 총구의 착상기능에 더해 쾌락기능도 함께 마비되므로 빵콘 억제 효과도 있어 훈육이 편해지는 이점이 있었다. 거기에 별도 판매되는 안구보호용 렌즈를 착용하면 실장석 스스로 임신하겠다는 발상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성장방지 성분을 함유한 푸드도 거의 필수품이 되었다.

미도리는 이 흐름에 역행하는,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는 훈육사에 의해 빚어진 최후의 걸작이었다. 일본에 찾아가 직접 명인에게 전수받았다는 훈육비법을 자랑스러워하는 훈육사는 새 방법을 받아들이길 거부했고, 인수한 숍의 불임처리 또한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이것이 불운하게 미도리의 가격표에 붙은 [불임시술 안됨] 태그의 원인이 되어 마지막 순간에 애호파의 손길을 뿌리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미도리가 아직 판매용 수조에 남아 있을 수 있던 이유는 역전의 훈육사가 감탄해 마지않을 정도인 타고난 낙천성과 부지런한 기억력 덕분이었다. 팔리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낙담하기 마련인 다른 보통 재고실장과는 다르게, 미도리는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끊임없이 기억을 일깨웠다.

존경하는 닌겐 훈육사가 가르쳐준 사육실장의 본분을. 그것은 가슴 속 소중한 돌이 말하는 본능과 정반대였다.

자를 가득 낳아 세상을 채우는 테스 - 하지만 사육실장은 허락 없이 절대 자를 가질 수 없는 테스.
동족은 믿을 수 없는 적인 테스 - 하지만 사육실장끼리는 모두 친구인 테스. 괴롭힘과 질투는 다메인 테스.
먹이는 냉큼 먹어치워야 하는 테스 - 하지만 사육실장은 어떤 상황에서든 주인의 명령을 기다려야 하는 테스.
배불러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먹어치우는 테스 - 하지만 사육실장은 주시는 만큼만 먹는 테스.
와타시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인 테스 - 하지만 주인님을 포함한 모든 닌겐상이 위에 있는 테스.
닌겐과 천한 동족들은 모두 노예인 테스 - 하지만 '노예'란 말을 하면 바로 사육실장은 끝인 테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력이 속절없이 이어지고 미도리는 성체가 되었다. 중실장 때까지는 실낱같이 남아있던 희망의 끈이 모조리 끊긴 것이다. 성체 사육실장은 아무도 사가지 않는다. 이런 개체는 출산 전용으로 자를 가지는 욕망만큼은 원없이 충족되다 죽든지, 아니면 그대로 '갈려' 동족의 먹이가 되든지의 운명을 따르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미도리에게도 그 시간이 찾아오는 듯 보였다.

미도리는 수조에서 꺼내져 숍 내부로 옮겨졌다. 오랜만에 보는 점장의 얼굴을 미도리는 올려다보았다. 이 순간이 앞으로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임을 미도리는 직감하였다. 우선 인사부터. 미도리는 기억한대로 공손하게 손을 모아 꾸벅 고개를 숙였다 들어 점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신 데스."
"그래. 여전히 예의바르구나."
"감사한 데스."
"바로 물어봐도 될 것 같구나. 이제 자를 가지고 싶지 않니?"

짧은 순간 미도리의 머릿속에 온갖 상념이 섞인다. 자를 가지는 것. 가슴 속 돌이 당장 그렇다 말하라고 외친다. 하지만 배운 내용대로라면 자를 가지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어쩌면 이것은 점장의 시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철썩같이 믿어온 것들에 대한 의문이 미도리의 안에서 싹트고 있었다. 이렇게 자신은 전부 기억하고 지키려고 하는데 어째서 팔리지 못하는가? 어째서 저 철딱서니없고 무식한 아이들은 제꺽제꺽 먼저 팔려나가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실생은 운이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본능을 따라보는 게 어떨까?

미도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제3의 대답을 선택하였다.

"점장상이 원하시는대로 하겠는 데스."

합격이었다.


미도리는 판매용 수조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부풀어오르는 배를 안고 아무도 없는 작은 방에 앉아 태교의 노래를 불렀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결과였다. 뱃속에서 움직이는 새끼들을 느끼면서 난생 처음 어미가 되는 행복감을 맛보았다. 지금껏 운없고 불확실하기만 했던 삶에 광명이 비추는 기분이었다. 부르는 노래에 힘이 들어갔다. 뱃속의 자들에게 아는 것을 모두 알려주면서도, 마마의 행복감을 고스란히 전해주려고 애썼다.

"귀여운 자들을 가지게 돼서 마마는 정말 운이 좋은 데스우~ 어서 얼굴을 보고 싶은 데스우~ 뎃데로게~"

미도리가 산기를 보이자 점원이 출산 준비를 시작했다. 출산용 풀에 들어간 미도리는 고통과 행복이 교차하는 오묘한 표정으로 힘을 주었다. 곧 건강한 자실장이 하나둘씩 얼굴을 내밀었다. 텟테레 하는 듣기좋은 탄성이 방안을 채운다. 곧 자들을 안게 될 생각에 땀에 흠뻑 젖은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나 미도리의 자들은 미도리의 품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점막이 채 떨어지지도 않은 자들을 한아름 안아들고 점원이 방밖으로 나간 것이다.

"뎃..? 점원상!! 점원상!!! 와타시의 자들을 돌려주는 데스우~!"

미도리의 외침은 대답없이 방안을 맴돌았다.


산후조리 명목으로 한동안 좋은 푸드가 제공되었다. 하지만 미도리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처음 배아파 낳은 소중한 자들을 안아보지도 못하고 빼앗겼다. 자신의 임신은 점장상의 '허락'이 아니었단 말인가? 자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대로 인간들에게 이용만 당하다 버려지는 삶이란 말인가? 미도리는 다시 자신이 불운하다 느끼기 시작했다. 얼마 후 다시 임신해도 처음만큼 기쁘지 않았다.

"처음이라 분충도 있고... 기본적으로 너무 밝은 애들이라 부적합하네. 다시 힘써봐."

점원의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뒤로 하고 미도리는 태교를 재개했다. 하지만 처음만큼 힘이 실리지 않았다.

"뎃데로게~ 부디 무사히 태어나는 데스우... 마마는 그것밖에 바라지 않는 데스우..."

두번째 출산은 한번 경험해봤기 때문인지 한결 수월했다. 자들의 수가 훨씬 적어진 탓도 있을 것이었다. 태어난 자들을 점검하는 점원의 안색을 살피며 미도리는 이번에도 자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우울해졌다. 그런데.

"고생했어. 이제 안아볼까?"
"뎃... 정말인 데스우?"
"마마 낳아줘서 고마운 테츄~"
"와타치도 안아주는 테츄!!"
"테츄.."

단 세마리의 자실장을 안아든 기쁨도 잠시, 미도리는 다시 자들을 빼앗겼다. 이번에는 '배우고' 온다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그 배움의 의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저 자들이 모두 무사히 배움을 마칠 수 있을까. 걱정과 안타까움이 홀로 된 미도리를 휘감았다.

"운이 없는 자들인 데스우... 와타시가 사육실장이었다면 전부 올바르게 키울 자신이 있었는 데스우..."


걱정과는 다르게 며칠 뒤 자실장들은 무사히 미도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해후의 기쁨을 나누는 미도리와 자들을 지켜보던 점원이  미도리에게 가만히 속삭였다. 지금까지 미도리가 들었던 명령 중 가장 가혹한 것이었다.

"자들 중 한 마리만 선택해라. 나머지 애들도 죽지는 않으니까 안심하고."
"데엣...."

점원상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하나같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들이지만, 여기서 골라야만 한다. 미도리는 처음으로 반항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장녀는 똑똑하다. 어디서든 잘 해나갈 수 있어보인다. 차녀는 다소 응석받이지만 가장 활기차고 귀엽다. 밖에서 보던 다른 사육실장들보다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해보인다. 삼녀는 처음에 말도 잘 못했다. 어딘지 자신감이 없고 처진 모습이 옛날의 미도리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미도리가 보듬어주지 않는다면 똑같은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삼녀로 하겠는데스."
"좋아. 최종 합격."

미도리와 삼녀는 다시 판매용 수조로 옮겨졌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삼녀는 미도리의 손이 많이 가는 자였다. 사소한 것에도 겁을 먹고 울어대 안고 어르다가 시간이 다 갔다. 가끔 이쪽을 보러 오는 손님들을 맞을 처지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이곳으로 온 까닭은 다시 팔리기 위함이라고 미도리는 이해했다. 하지만 미도리는 둘째치고 이런 삼녀를 귀여워할 닌겐상이 있을까? 차라리 장녀나 차녀를 선택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미도리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도 다시는 되돌릴 방법이 없음을 알았다. 삼녀를 선택한 직후 미도리는 석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 남은 자신의 자를 힘써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 마지막이 결국 처분장의 분쇄기라고 해도.

"마마는 운이 없는 데스우. 하지만 오마에가 있어 다행인 데스."
"테끅... 마마, 운이 뭐인 테츄?"
"와타시타치가 주인님을 만나면 알게 되는 데스."


그러던 어느날, 한 남자가 미도리의 수조를 들여다보았다.

"흠, 얘들을 추천하시는 이유가..?"
"처음 기르시는 분들도 쉽게 키우실 수 있는 상품입니다. 기본적으로 얌전하고 소심하죠. 친실장이 똑똑하니 따로 신경쓸 거리도 별로 없고, 불임처리가 됐으니 수가 늘어나지도 않을 겁니다. 자실장도 친실장이 보살펴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이건 좀..."

미도리는 이번에도 친자의 불운을 원망했다. 삼녀가 눈물자국을 두 볼에 남긴 채 방금 겨우 미도리의 품에서 잠들었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는 인사도 애교도 부릴 수 없다. 그저 자신들을 바라보는 남자를 향해 목례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뭐, 조용할 것도 같네요. 작은 녀석이 크면 어떡하죠?"
"그것도 성장억제 푸드를 사서 먹이시면 됩니다. 친실장이 죽을 때가 되면 그때 자라게 해서 새끼를 낳게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거죠."


미도리와 삼녀는 '사이좋은 친자 세트' 상품명을 달고 진열되었다.

자실장은 귀엽지만 신경쓸 데가 많고, 내버려두면 크고작은 사고의 위험이 크다. 두 마리 이상은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 사이가 나빠지기 쉽고 보기에도 좋지 않다. 사이좋은 자매는 비슷하게 똑똑하고 성격좋은 자실장을 선별하기 힘들어서 비싸다. 기껏 성체까지 키우면 집의 주인이 되려는 망상을 품거나 새끼를 낳고 싶다고 떼쓰는 분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초보자가 키우기에는 더더욱 까다로운 애완동물이다.

드물게 미도리같이 성격좋은 개체가 성체까지 팔리지 않을 때 자를 갖는 것을 허락하고 그중 가장 심약한 새끼와 묶어서 내놓는다. 친실장은 자의 양육에 온 신경을 쏟느라 허튼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자실장도 자실장대로 친실장에게 의존하게 돼 섯부른 말썽을 피우지 않는다. 주인과의 확실한 서열이 있기 때문에 친자가 한꺼번에 분충화할 위험도 적다.


남자는 미도리 친자를 사 자신의 집에 들였다. 미도리는 남자에게 정식으로 '미도리'란 이름을 받았다. 자신들이 팔린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친자를 선택해준 주인에게 더욱 감사하게 되었다. 삼녀도 주인의 집에 익숙해지자 우는 일이 줄었고 착한 아이가 되었다. 그래도 미도리에게는 마음속 한구석 불안이 있었다. 자신들이 더 힘껏 주인을 돕지 못한다는 점에 대한 죄송함이었다. 그러나 주인은 이렇게 말하며 웃을 뿐이었다.

"괜찮아. 너희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즐겁거든."

남자는 몇년간 허송세월하다 겨우 취직에 성공했다. 이미 또래보다 한참 뒤떨어진 인생계획을 서두르는 대신 이대로 독신으로 살기로 했다. 그래도 돌아보면 텅 빈 집이 적적해서 기르기 편한 애완동물을 알아보던 차에 미도리 친자가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미도리들의 먹을것을 챙겨주고 친자가 노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남자는 묘한 만족과 안도감을 느꼈다. 살아가기 위해 여러가지를 포기한 남자와 미도리는 종족은 다르지만 많은 것이 닮았다.

"마마, 운이라는 게 무엇인 테츄?"
"와타시가 오마에와 있는 것인 데스우. 와타시타치가 주인님을 만난 것인 데스우. 와타시타치는 운이 좋은 데스우."

"테에.. 잘 모르겠지만 기쁜 테츄~"

운과는 거리가 먼 생을 살아온 이들의 운은 마지막 기회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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