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부디 전부 죽여주는데스. 봄이 되기 전에.]

어미의 말 치고 모질기 짝이 없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들은 말이기에 더욱 그랬다.
겨울 막바지에 찾아온 뒤끝같은 추위.

그런 날에 온 힘을 다해서 인간의 집 앞에 새끼들을 데려와놓고는,
제 새끼를 살려두지 말라고 애걸하는 친실장.

집주인은 탄식하며 이유를 물었다.
동상에 머리가 물러터져 죽어가던 친실장은, 생각을 정리하기가 몹시 힘든 듯 했다.
두서없는 설명이 이어졌다.



[맞는데스. 내 자들을 죽여달라는 것이 맞는데스.]

[아픈, 추운, 아픈데스.]

[원래는 행복을 몰라야 하는데스. 하지만 너같은 닌겐 만나면 어쩔 수 없는데스. 반드시 그 무서운 것을 배워버리는데스.]

[배신당하는데스. 반드시 배신당하는데스.]

[...낙원?]




낙원. 녀석의 마지막 말이었다. 아마도 이 계절, 이 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을 그곳.

녀석들의 고향인 일본의 서식지에서 찾아보기 힘든, 감히 맨 살로 길에 나선 자들의 세포를 얼리고 터트려버리는 겨울의 한파. 달팽이에 비견될만한 재생력도 친실장을 구해주지 못했다.

그렇게 친은 유언의 정돈을 낯선 인간에게 떠넘긴 채 떠나버렸다.




친실장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알 것 같았다. 아마 인간의 보호 속 행복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 믿는 듯 했다.

집주인도 동의했다. 실장이, 특히 들실장이 사람과 공존하는 것은 양자 모두에게 있어서 감당하기 어려운 모험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유로.

하지만, 죽여달라니.

도저히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생소하기 짝이 없는 경험일테니까.

간혹 모기나 바퀴벌레를 잡아달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어도, 모기나 바퀴벌레에게 제 새끼를 죽여달라는 간곡한 청을 들어본 사람이 있을 리가 있는가. 사람에겐 실장의 새끼가 잡벌레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어미에게 있어서는 달라야 하지 않나.



막막한 심정으로 박스 안을 보았다.

어설프게 뭉쳐놓은 낙엽과 정체모를 천쪼가리들 사이의 꿈틀거림.
어미가 살해를 청부한, 옹기종기 붙어 간신히 숨 쉬는 작은 목숨들.

집주인은 차마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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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감사했던테스!]
[주인사마- 아니, 닌겐상. 잊지 않는데스. 결코 잊지 않는데스.]



실장공원까지 앞으로 2km.
케이지에 담겨 뒷좌석에 실린 녀석들이, 감격속에 종알종알 떠든다.

여덟 마리중, 동상을 이기고 살아남은 것은 셋. 문이 열릴 때까지 몸으로 찬 기운을 막아냈던 어미의 희생 덕분이다. 녀석들을 죽여달라고 했던 그 친실장.

운전을 하던 집주인은 입 속이 씁쓸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애써서 살리려 했다면, 대체 왜.

아마 절망이 깊었으리라. 집주인은 결국 그렇게 결론지었다. 그렇게 모진 부탁을 했을지언정, 아마 살릴 수 있었다면, 방법이 있었다면 포기했을 리 없다.

그 친이 다하지 못한 도리를, 집주인은 결국 끝까지 대신해냈다.
집주인은 그 사실이 돌아올 수 없는 녀석의 한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기를 바랬다.




끝까지 책임질 수는 없었다.
의지나 인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육은 시의 조례로 금지되어 있다.

실장석을 기르는 일은 이웃에 많은 양해를 요구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 어려운 사육에 도전하는 이들 중에는, 평균보다 얼굴이 두꺼운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필연적으로 그 양해의 필요성을 무시할 만큼.

담벼락에 녹색을 덧칠하는 자원봉사 화가들이 거리를 누볐다. 합법인지 아닌지도 모호한 실장 자동차가 많은 이들의 발가락을 부수며 거침없이 내달렸다. 짐승의 부모들은 쏟아지는 비난에 되려 악을 쓰고 맞섰다. 항의하는 이들의 얼굴을 손톱으로 긁기라도 할 기세로.

피로가 누적된 공동체는 더이상의 관용을 거부했다.

이제 키우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그게 사회적 합의다.
따라서 집주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마당에 숨어 사는 녀석들을 조금씩 도우며 묵인하는 것.
그리고 실장 생태공원에 놓아주는 것 뿐이었다.





“...여기서부턴 너희들의 힘만으로 해내야 해.”

[각오한데스. 이제 다 직접 해야 하는데스.]
[...봄의 풍경은 멋진데스. 마당에선 보지 못한 것인데스...]
[마마. 해낸데스우. 닌겐상 덕이지만, 어쨌든 봄을 보게 된 데스.
봄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던 것, 기억하는데스? 왜 같이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데스...]

설움과 기쁨. 실장들은 급기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집주인은 한숨을 쉬었다. 생각보다 훨씬 똑똑한 놈들이다. 법이 없었다면 계속 마당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녀석들은 사육으로 살 수 없다는 설명을 비교적 수월하게 납득했다. 여태 살아남은 것이 오롯이 제 덕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일도 잘 기억한다. 아무리 뛰어나봐야 개보다는 못하다고들 하지만, 분명히 영리함의 증거였다.

물론 듣기론 실장 생태공원도 결코 녹록한 땅이 아니라 했다. 실장이 살기 좋게 조성되어있을 뿐, 실장의 보호가 아니라 격리에 초점을 맞춘 공간이니까.

하지만 이 정도의 자기 객관화가 가능하다면, 녀석들은 이 야생에서도 제법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팔이 뒤틀려 있는 둘째가 조금 걱정되지만, 그 정도의 신체적 문제는 들실장들 사이에서 흔하다고 들었다. 아마 총명함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




떠나는 집주인을 향해, 녀석들은 직접 만든 도구를 힘차게 치켜들었다. 이빨과 못으로 나무조각을 물고 파내, 어설프게 깎아 만든 삽날과 곡괭이. 삶의 의지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집주인은 어설프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보이곤, 지레 민망하여 재빨리 그 자리를 떴다.




시동을 건지 몇 초나 되었을까. 막 공원을 나가는 도로에 진입하려던 집주인은, 별안간 차를 멈추고 후진했다. 그리고 정차하자마자 득달같이 뛰쳐 나왔다.

돈 주고 산 녀석도 아니다. 소유주도 아니다. 한 번 놓아준 실장의 일에 끼어들 필요는 없다. 무시하고 넘어가도 될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옭아매기에 정은 무서운 것이다.

집주인은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피범벅이 되어 들실장들에게 깔린 채, 손을 뻗어 살려달라 외치는 세 실장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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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듣기로, 마당을 나온 실장들은 집주인이 떠난 즉시 습격당했다고 했다.

매복해있던 강도들은 인간이 떠난 즉시 튀어나왔다. 놈들은 인간이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어 돌아오기 전에 일을 마무리지으려 했다. 방법이 다소 거칠더라도.

한 들실장은 첫째의 팔뚝을 한가득 베어 물고 머리를 불독처럼 흔들고 있었다. 첫째는 이미 한 팔이 뜯겨나가고 없었다.

집주인은 놈의 머리가죽을 잡아당겼지만, 흥분에 취한 습격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집주인은 들실장을 힘껏 떼어냈다. 놈의 입에 물린 첫째의 팔뚝과 함께. 첫째는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습격자가 사력을 다해 놓지 않으려 했던 탓에, 자세가 불안했던 집주인도 지레 뒤로 몸이 쏠려버렸다. 나무에 묶여 흔들대던 표지판이 집주인의 뒤통수를 때렸다.

발랄한 필체로 돋을새김된 문구가 놀이기구처럼 요동쳤다.
‘들실장에게 간섭하지 말아요. 눈으로만 보아주세요’

후두부를 감싸쥐고 눈물을 글썽이던 집주인은, 첫째가 남은 팔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동... 생...]

“야! 안돼, 그만!”



열이 올라 씩씩대던 들실장들은 흠칫 멈추었다. 녀석들에게 인간의 목소리는 무시할 수 없는 전조였다. 둘째를 질질 끌고가던 독라 몇은, 분을 억누르는 표정으로 인간의 눈치를 살폈다. 옷이 있는 부분을 악의적으로 공격당한 몸뚱이는 엉망이었다. 도저히 살아있기를 기대할 수 없을 만큼. 평소 팔에 문제가 있었던 녀석인만큼, 아마 반항조차 못하고 순식간에 당했을 것이다.

절명한 쪽은 차라리 사정이 나았다. 셋째는 죽지도 못한 채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집주인으로선 들실장들이 어떻게 줄톱을 구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대체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집주인은 욕지기를 참아가며 그것을 몸통에서 빼냈다. 셋째가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그 사이, 들실장들은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집주인은 놈들을 돌아보았다. 독라들은 여전히 둘째의 시체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떻게 해야 옳은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사태를 생각해본 적 없는 것은 아니다. 들실장들이 세 실장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경우도 생각해본 적 있었다. 세 녀석들을 지킨다고 들실장을 해치는 것은 아마 어리석은 선택일 것이다. 다 같은 실장이니 도의적 차원에서도 어불성설이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세 실장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니까.

따라서 집주인은 품 속에 고칼로리 에너지바를 몇 개 챙겨왔다. 여의치 않을 경우 협상하기 위해.

하지만 한 마디라도 꺼내는 순간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키울 수 없으니까 이게 최선이라고? 정말로?’




참혹하기 짝이 없는 집주인의 표정을 살피던 독라실장들은, 마침내 체념하고 둘째의 시신을 내려놓았다.

집주인은 그것을 주워들려 접근했다. 그러나 겁에 질린 독라들이 데우우 하며 물러나자, 집주인은 생각을 바꾸었다, 서로 더는 상처 입길 바라지 않는 양자는 곧 합의점에 이르렀다.

그들은 등을 보이지 않고 뒷걸음질치며 서로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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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실장에게 간섭하지 말아요. 눈으로만 보아주세요’

공원의 규칙은 하나. 끼어들지 말 것.

법적 효력은 없었다. 그런 문구가 매일 공원에서 걷어차여 죽는 들실장들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그저 그들이, 그들의 삶을 살도록 두라는 경고였다.

비로소 집주인은 그것이 실장 뿐만 아니라 사람을 위한 문구임을 이해했다.
어리석은 것은 실장만이 아니다. 착각하고 실수하고 또 후회하는 것도.




[키워, 키워데스-! 살려달란 말인데샤-!]

셋째가 입은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삶의 끄트머리에서 셋째는 결국 방어기제를 선택했다. 그러나 온갖 협박과 으름장은 채 세 시간을 가지 못했다. 영양액을 어떻게든 입에 넣어보려 했지만, 복원약조차 뱉어낸 셋째는 약이 필요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그 순간 첫째의 눈동자 속에서도 무언가 사라져버렸다.

독립의 순간, 감격에 젖은 생기는 이제 없었다. 첫째의 그것은 이제 저 밖의 들실장들의 눈빛과 닮아있었다.

알고 있었다. 실장은 같은 실장에게 쉽게 이빨을 드러낸다는 것도, 야생에선 일 년 넘게 살아남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하지만 이렇게 빨리, 그것도 눈앞에서 난도질당하며 적응에 실패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준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살아남으려면 생존이 아니라 살육전을 준비했어야 했다.

들추어선 안될 것을 들추어 너무 가까이에서 본 괴로움. 집주인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실장에 가까워진 자 불행해진다 했다. 누구의 말이었던가.
실로 그랬다. 심지어 같은 실장조차도.





언젠가 물게 될지도 모를 벌금을 무릅쓰고, 집주인은 남은 첫째를 끝까지 키우기로 했다.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다행이라 해야할지, 이웃에서 민원이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살아남은 첫째는 밖을 싫어했고, 적게 먹고 적게 배설했다. 그리고 지독하리만치 조용했다.





[아마도 그간 행복했던데스. 이제 괜찮은데스.
마마, 이제,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스.
봄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겠는데스.]

화초와 다름없이 살던 첫째는, 불현듯 그렇게 말했다.
어느 날, 장마의 습기가 짙게 깔리기 시작한 창 밖을 보며.

[이 세상에 우리 설 자리 없는데스.]




그것이 끝이였다. 앉은 채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인 녀석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집주인은 녀석을 마당에, 그리고 마음에 묻으며 다짐했다.
다시는 실장에 엮이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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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실장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운은 더 이상 친실장을 구해줄 수 없으니 아마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친실장은 남길 말을 신중하게 골랐다. 부탁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키워달라고 하면, 인간은 아마 모두를 간단히 으깨어 치워버릴 것이다. 내보내달라고 해도 죽는건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자들을 거두어 안락 속에 키운대도 무엇이 남는가.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자신처럼 언젠가 내쫓길 뿐이다. 이러기 싫지만, 원래 규칙이 그렇다며.

달콤함을 맛보고 속은 자는 더 아프게 추락한다.
봄이 영원할줄만 알았던 자에게 겨울의 존재가 한없는 폭력이듯이.

야생에 내몰린 첫 날, 들실장 동족들에게 내장을 물어뜯겼던 것을 생생히 기억했다.
자신이 겪은 참혹함을 똑같이 겪게 할 순 없었다.

열병에 죽어가던 친실장은 그래서 부탁했다. 자신처럼 살게 두지 말라고.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그리고 보낼 땐 부디 편하게 해달라고.
봄이 되기 전에, 아직 봄의 안온함과 찬란함을 모를 때.
그것이 조막만한 머리로 짜낸, 가장 나은 제안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음 한 구석으로는, 간절히 소망했다.

부디 인간이 자신의 부탁을 무시하기를.
그래서 살아남아 무럭무럭 자라난 자들이 언젠가 찾아내기를.
자신이 그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 안식과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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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

아마 삼 일에 걸친 공복 끝에 찾아낸 이 에너지바가 아닐까. 누군가의 소매에서 오래 전 떨어진 듯한 에너지바는, 포장을 더럽고 냄새는 쿰쿰할지언정 내용물은 온전히 한 덩어리로 붙어있었다.

독라는 그것을 충만한 기분 속에 천천히 씹었다. 단백질의 향기가 퍼지자 독라는 편안한 한숨을 쉬었다. 이 에너지바 하나를 모두 씹어먹으면, 아마도 앞으로 이틀, 넉넉잡아 사흘을 움직일 힘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꿈에서나 즐길 수 있는 사치였다. 등 뒤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자, 독라는 애써 몽상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에너지바를 걷어차고 밟았다.

[상하지 않은데스. 하지만 주제에 맛있는데스! 건방진데스!]

어설픈 봉투 신발로 감싼 발이 몹시 아렸지만, 어쨌든 목적을 이루는덴 성공했다.

에너지바는 길거리 출신의 맹렬한 발길질을 견디지 못했다. 패배를 인정한 에너지바는 먹기 좋게 쪼개지며 복종했다.

독라는 강적 에너지바의 시신을 집어들어, 등 뒤의 다른 독라들에게 건넸다.
모두에게 웃음꽃이 번졌다. 첫 날의 흉포한 첫 인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자아, 와타시 둘째의 선물인데스-]















‘살아야하는데스. 그러니 가만히 있는데스.’

그 날, 그 끔찍한 습격이 있었던 첫 날.
둘째를 그늘로 끌고 간 독라들은 그렇게 말했다.

첫째와 셋째는 옷이 있는 패거리에게 공격당했지만, 둘째만은 아니었다.
독라는 대개 정말로 잃을 것이 없는 부류다. 옷이 있는 패거리는 그런 독라들 여럿과 맞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독라들이 잡아챈 둘째는 무시하고 나머지를 노렸다.

난동을 부리려는 둘째의 입을 휴지로 틀어막고 몸으로 깔아뭉갠 다음,
독라들은 재빨리 녀석에게 덕지덕지 무언가 진득하게 흐르는 것들을 묻혔다.
끔찍한 냄새에 둘째는 그것이 무엇인지 묻기조차 두려웠다.

‘이럴 때를 위해 조금씩 모아놓는데스. 자, 죽은 척 완성인데스.’



영락없이 공격당한 꼴이 되자, 적어도 살아있다는 의심은 피할 수 있었다.
방금 살해당한 시체처럼 보이던 둘째는, 오물이 굳으면서 곧 썩어가는 시체처럼 보이게 되었다.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 살아있는 채로 손을 잡고 은신처로 데려갈 순 없었다. 독라의 무리는 보육원이 아니니까. 우습게 보일 빌미를 차단하는 것이 곧 안전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잃을 게 없어 흉폭한 독라들 수중의, 푹 썩은 고기는,
동족은 물론 고양이조차도 건드리지 않는다.

그렇게 독라들은 둘째를 안전히 옮길 수 있었다.



거무튀튀한 몰골로 멍하니 있던 둘째는, 이제 안전하다는 말을 듣자마자 오열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닌겐상이 다시 주워갔다지만 첫째도 셋째도 부상이 심각해보였다.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머리로는 다 알고 있었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공원은... 공원은 원래 이런데스?]




달래는데 애를 먹던 독라들은 서로를 돌아보더니, 화장실의 그늘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멀쩡한 녀석이 없었다. 다리가 망가진 녀석, 눈이 보이지 않는 녀석. 어떤 이유에선지 하반신이 아직 구더기인,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을 타고난 녀석.

녀석들 모두가 독라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스. 아니기를 매일 바라지만, 세상은 잔인한데스.
우리를 보는데스. 대부분 친에게 직접 옷을 뜯기고 쫓겨난데스.
친이 아니더라도 동족이, 또 세상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데스.]

비정상이라는 이유로, 매도당하고 버려지고 집단에서 추방당한 자들이었다.

신입 세 녀석이 공격당한 순간, 녀석들은 빠르게 판단했다. 독라들이 그렇듯 몸이 온전하지 않은, 팔이 어릴 적의 추위로 뒤틀린 둘째를 구하자고.

아마도 혼자서 녀석들의 손에서 빠져나가기 가장 힘들테니까.

[...다친 녀석이 있으면, 같이 돕기로 약속한데스.
우리 모두 돌아갈 곳 없고 남은건 서로 뿐이라, 독기로 뭉친 녀석들인데스.]

어쩐지 낭패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독라의 우두머리가 말했다.

[너와 다르게 말인데스. 그래서 미안한데스.]

[어째서...?]

[우리들 꼴이 흉하기 때문에, 아니면 죽은 척 꾸며 지켜주려고 피뭉치를 묻혀서,
너를 닌겐이 도로 주워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는데스-]




둘째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을 원망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에게 유리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세상, 최선을 다했다는 점은 서로 다를 바 없었다.




둘째는 녀석들에게 공원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옷 입은 것들의 세력 구도와 알력 관계에 대해서. 공원 근처 쓰레기 불법 투기장은 어디고, 또 고양이 피하기 좋은 비밀 은신처는 어디인지.

독라들이 둘째에게 배운 것들도 많았다. 집주인과 살 때 둘째는 많은 기술을 스스로 터득했다. 어설프게나마 이슬을 모아 식수를 보충하는 법, 개미를 꾀어내 먹는 법 등등.
뒤틀린 몸으로 사는 삶이 순탄할 리 없을지언정, 독라들의 삶은 전보다 훨신 윤택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독라들은 경악했다.
어느새 가족이 된 둘째가 뜬금없이 독라가 되어 돌아온 탓이었다.
독라들은 분노했다. 둘째를 건드린게 누군지는 몰라도, 둘째가 누군지 알 만한 놈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우리 패거리의 일원을 누가 건드렸다는 말인가.

한쪽에 두 개 달린 팔을 휘두르며, 한 독라가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어느 놈인데스! 너마저 독라로 만든 놈, 가만 안두는데스! 반드시 복수하는-]

[아, 우연히도 바람이 불어서 다 쓸어간데스! 머리씨는 운석에 맞아서 빠지고, 옷씨는 땅이 꺼져서 사라진데스.]

[...그게 무슨-]

[세상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더니, 맞는 말인 모양인데스. 그보다 개미씨 주워왔는데, 먹을 녀석 있는데스?]



충격에 젖어있는 동료들에게, 둘째는 푸념하듯 말했다. 마치 길 가다 누군가와 어깨라도 부딪혔다는 투로.
그 날 밤만은, 더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모아온 개미를 씹을 뿐.

공기중에 퍼진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이따금 눈물을 훔치며.








독라는 그 모든 것을 기억했다. 아무래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독라는 기억력이 좋은 편인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어제처럼 생생했다. 그 참혹한 겨울에 태어난 것도. 소스라치게 떠는 친과 함께 인간의 집으로 향한 것도. 마당에서 셋이 보낸 그 안온한 나날도. 모두 기억했다.

그리고 자신이 둘째라는 것을 기억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살아있는 한 언제까지고.



참혹했던 봄이 지났다. 봄은 녹색이라 했으니, 녹색을 바래게 하는 이 비가 그것을 증명했다.
독라들은 말했다. 잘은 모르지만, 이 비가 끝나면 아마 가을이라는 것이 올지도 모른다고.

가을엔 무엇이 둘째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것은 아픔일까, 아니면 또다른 만남일까.
삶이 유머를 안다면, 그것은 혹시 또 다른 에너지바일지도 모른다.

둘째는 기대감에 일렁이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나무에 걸린 경고문 목판이 비바람 속에 신음하며 기우뚱거렸다.
문자의 개념조차 모르는 둘째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그늘에 앉아 그것을 관찰하는 일은 좋아했다.

‘먹이 금지. 접촉 금지.
들실장에게 간섭하지 말아요. 눈으로만 보아주세요’

을씨년스럽게 흔들리던 앞면의 문구.
이윽고 바람에 떠밀린 목판은 뒷면을 조금씩 드러냈다.
오도카니 앉아있던 둘째가 몹시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큰 의미 없는 기다림이었지만, 둘째는 웃었다.
그저 소박하게, 그리 되길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홱 젖혀진 뒷면에 쓰인 말은 이러했다.

‘행복을 언젠가 스스로 찾아내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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