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장에서

 

초여름의 하늘은 맑다. 티없이 펼쳐진 푸른 빛깔의 하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짙은 구름에 뭉개질 풍경이기에 더 귀한 것이다. 구름이 없는 하늘의 모습은 형형히 빛을 내는 반구처럼 보인다.

별안간 자그마한 비행기 두 대가 희뿌연 연기를 뿌리며 날아간다. 비행기의 경로를 따라 하늘을 수놓는 연기는, 마치 구름처럼 배경에 박혀 놀랍도록 하늘과 잘 어우러진다.

비행기는 그 경탄스러운 배경을 뒤로 세우고 화려한 곡예를 뽐낸다. 좌로 우로, 조금 멀리 떨어졌다 싶었을 때 다시 좌로. 두 비행기가 맞부딪힐 듯 스쳐 지나간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비행기는 유연성마저 느껴지는 방향 전환으로 반원을 그리며 순회한다. 두 비행기가 각각 반원을 그렸으니 멀리서 보면 원이나 마찬가지다. 멋진 묘기를 보여준 두 비행기는 조금 더 공중을 떠돌다가, 이윽고 바닥에 내려앉는다. 시선을 빼앗겼던 아름다운 배경에 관한 기억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라져 있다.



미도리는 모니터를 끄고 한숨을 쉬었다. 수십 번은 반복해서 지겹도록 봐 온 영상이지만, 그 감상은 언제나 새로웠다.

"정말 대단한 데스. 정말 정말 대단한 데스우.."

실장석의 입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지만, 이 찬사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존경하는 1세대 비행실장에게 바치는 예우로는 오히려 부족한 수준이다.

미도리는 비행 실장이다. 실장석의 크기에 맞게 제작된 비행기를 타고, 위험성이 지나치게 높아 인간이 선보일 수 없는 묘기들을 보여주는 것이 미도리의 임무였다. 나고 자라는 내내 그렇게 배워 왔고, 그에 걸맞는 수준의 대우와 교육을 받으며 육성되었다.

솔직히 미도리의 두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난도의 개념들도 많았고, 아직 실전에 내보내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을 때마다 풀이 죽기도 했지만, 그래도 최고급 사육실장이나 받을 법한 대우를 받으며 자라난 미도리는 스스로가 비행 실장이라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능력이 부족해 고생했던 적은 있어도, 훈련 중 요령을 피우거나 꾀병을 부리거나 한 기억은 없었다. 미도리는 매사에 열심히 임했고, 다른 훈련생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전임자들에 대한 기록까지 뒤져보았다.

'와타시는, 반드시 1세대 선배씨들을 뛰어넘는 최고의 비행 실장이 될 것인 데스!'

처음 1세대 선배들에 대해 들었을 때 그렇게 외쳤던 기억이 떠올라 미도리는 피식 웃었다. 택도 없는 자만이었다. 그날 저녁 일과가 끝나자마자 찾아본 1세대 선배들의 비행 영상은,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시시각각 속도와 고도를 조정하며 비행기의 굵은 몸체를 가볍게 뒤트는 그들의 묘기는 미도리로 하여금 낮에 외쳤던 망언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저렇게 될 순 없어도 따라잡으려는 노력은 게을리 하지 말자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정말 시간이 많이 흐른 데스. 어느새 와타시의 차례인 데스우."

1세대를 따라잡기 위한 미도리의 열성적인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미도리는 일주일 전 마침내 교관들에게 합격점을 받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뛸 듯이 기뻤던 것도 잠시, 깊은 불안감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미도리를 옥죄기 시작했다. 지난 6일은 마치 혼탁한 늪을 헤엄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결행일까지 남은 날은 이제 고작 하루 뿐이었다.

'시뮬레이션 화면 속에서만 수백 번을 넘게 날았는데 정작 실제 비행기에는 탑승한 적도 없는 데스. 이런 와타시가 정말 저 영상 속 비행기처럼 멋진 비행을 보여줄 수 있는 데스까..?'

"아, 예! 그럼 결행일자는 예정대로.. 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전속 매니저 토시아키의 목소리에 미도리는 긴 공상에서 깨어났다. 토시아키는 안심한 표정으로 한숨을 푸우 내쉬더니 전화기를 내려놓고 미도리를 돌아보았다.

"미도리! 기쁜 소식이야. 가장 좋은 비행기를.. 어? 표정이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닌 데스우! 매니저상도 힘들텐데 어서 들어가서 쉬는 데스."

"아무것도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척 봐도 불안한 티가 나는구만."

"데에에..."

"난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너를 봐온 사람이야. 네 마음 하나 모를 정도로 무르지 않단 말이야."

미도리는 눈가에 무언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왈칵 하고 쏟아져나오는 그것은, 결코 참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이윽고 미도리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데에엥- 데에엥-"

토시아키는 우는 미도리를 꽉 끌어안고 말없이 바라보았다. 따뜻한 토시아키의 품 안에서, 미도리의 울음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아하, 그런 문제였구나. 시뮬레이션 훈련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야. 조종실 내부를 그대로 옮기다시피 해서 만들어진 거니까, 실제 비행과도 큰 차이가 없을거야. 안심해도 좋아."

"데에, 데, 하지만.."

토시아키는 미도리의 젖은 눈가를 가볍게 닦아주고는 말을 이었다.

"1세대 비행 실장들도 너와 같은 걱정을 했어."

"데에?!"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미도리는 고개를 처들고 토시아키를 바라보았다. 토시아키는 그런 미도리와 눈을 마주치며 지그시 웃어주었다.

"네가 자주 보는 영상 말이야, 나는 그 영상의 비행 실장들을 키워낸 사람이였어."

미도리의 몸에 가벼운 소름이 돋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껏 가볍게 대해온 자신의 매니저는 굉장히 대단한 인물이 아닌가. 미도리는 새삼 눈 앞의 토시아키가 멀게 느껴졌다.

"그 아이들도 실전 전날 밤에는 너처럼 온갖 고민과 불안에 시달렸지. 잠을 못 자서 컨디션 난조로 시간이 미뤄지는 불상사까지 있었어."

"....데에?"

"그런데, 그래서 그 아이들이 잘 날지 못했니?"

미도리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닌 데스.. 그렇지 않았던 데스."

"그래, 그 아이들은 전날까지 그렇게 불안해했던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멋진 비행을 보여주었어."

"....."

"1세대를 뛰어넘는 최고의 비행 실장이 되겠다고 했지?"

"....."

"만일 그 각오가 여전하다면, 그리고 그 각오로 네 모든 불안과 걱정을 털어버릴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뜷고 날아오르렴. 낮은 점수를 주었던 교관에게도, 네 열심인 모습을 비웃었던 친구에게도 잊지 못할 최고의 비행을 보여주는거야."

미도리의 눈에 다시 한 번 눈물이 차올랐다. 아까의 것과는 조금 다른, 강한 의지가 서린 눈물이었다.

"와타시는 반드시 최고의 비행 실장이 되는 데스우!"

토시아키는 빙그레 웃었다.




다음날, 미도리는 토시아키의 손에 들린 채로 비행장에 도착했다. 비행장이 생각보다 훈련장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리무진에 타고 환대를 받는다는, 미도리가 내심 기대했던 전개는 없었다.

"데에.. 조금 아쉬운 데스.."

"가까이 있으면 빨리 오고 좋지, 뭐."

미도리는 조금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행장은 미도리의 예상과 달리 그리 넓은 편이 아니었다. 활주로, 관객석, 비행기가 빼곡히 들어선 격납고까지, 있을건 다 있는 모습이었지만 비행기가 날아다니며 묘기를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좁았다. 그 사실에 의아함을 느끼던 미도리는, 다음 순간 눈에 들어온 비행기의 화려한 외양에 정신을 팔고 말았다.

"데, 데? 토시아키상! 저 비행기가 와타시의 비행기인 데스?"

"그래. 만일 오늘의 비행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미도리 1호' 라는 이름이 붙여질거야."

미도리는 토시아키의 말에, 특히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다는 부분에 깊은 감명을 받은 듯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실장석의 크기에 맞게 제작되었기 때문에 웅장한 맛은 없었지만, 돈을 꽤 들인듯 보이는 겉 디자인은 미도리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비행기를 꾸미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미도리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기 다른 미도리의 얼굴들이 비행기의 전면에 그려져 있었다.

"앗, 사람들이 모인다. 이제 슬슬 가야 할 시간이야, 미도리."

미도리는 황급히 비행기에서 눈을 떼고 토시아키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카메라를 든 사람 몇 명이 관객석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 데스.. 와타시의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데스!"

미도리는 으스대듯이, 하지만 관객석에 모인 사람들에게 버릇없어 보이지 않는 수준으로 어깨를 피고 걸었다. 매일 밤 남몰래 연습해온 비장의 걸음걸이였다. 어깨 너머로 토시아키가 웃는 것이 느껴졌다.

"미도리-! 여기 좀 봐줘-!"

관객석에서 큰 함성이 들려왔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미도리는 관객석을 흘긋 바라보았다. 미도리의 생각에 고개를 완전히 돌리는 것은 비행 실장이라는 존재의 고귀함을 훼손하는 행위 같았다. 미도리가 눈길을 던지자마자, 관객석에서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져나왔다. 눈이 아플 정도의 점멸광에 곧바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래도 헤벌쭉 벌어지는 입은 감출 수 없었다.

비행기 문 앞에 도착하자, 미도리는 잠시 잊고 있었던 긴장이 몸을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문의 손잡이를 잡으려 팔을 뻗었지만, 손이 후들거려 도통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보였다는 생각에 뺨을 붉게 물들이는 미도리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토시아키는 무릎을 굽히고 속삭였다.

"믿는다."

짧은 말이었지만 미도리는 누구보다도 분명히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었다. 굳게 손을 쥐었다 펼친 미도리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조종석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러고는 허리를 굽히고 몸을 완전히 안으로 집어넣었다. 마지막 순간, 미도리는 토시아키를 보며 중얼거렸다.

"다녀오는 데스."

"그래, 다녀와."

그리고 문이 닫혔다.



조종실에 들어온 미도리는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조종실의 설비나 구조, 환경은 시뮬레이션 훈련에서 접했던 것과 완전히 유사했다. 조종석의 창유리 너머로 비치는 하늘 역시 미도리가 늘 상상해오던 것 그대로였다.

'이대로라면 정말 멋진 비행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데스...!'

미도리는 방긋 웃고 조종석에 걸터앉았다. 조종석은 생각보다 푹신했다. 실장석 조종사를 위한 배려일 거라 추측하며, 미도리는 안전벨트를 끌어다 채웠다.

'우선 가볍게 공중 회전부터 보여주는..'

이변은 다음 순간 일어났다.

비행기의 육중한 하부가 격렬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미도리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진동의 근원을 찾았다. 조종실을 제외한 모든 곳이 진동의 근원이었다. 미도리는 밖에서 본 비행기의 몸체가 조종실의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진동은 시시각각 커지며 조종실을 뒤흔들었다. 창유리는 떨어져 나갈 듯 버석대며 불길한 마찰음을 냈고, 허리에 찬 벨트가 좌우로 움직이며 미도리의 연한 피부를 헤집었다.

"데에, 데쟈아아아아아!"

정신차려야 하는 데스!
토시아키상과의 약속을 떠올리는 데스!

배가 뒤틀리는 고통에 피거품을 게워내면서도, 미도리는 결사적으로 훈련 때의 기억을 되짚었다.

"마, 맞는 데스! 분명 이상 사태에서는 이 레버를 당겨야 시작된다고 했던 데스!"

바쁘게 더듬거리던 손이 조종장치 위를 헤메다가, 녹색 레버를 붙잡았다. 미도리는 팔에 힘을 모으고 레버를 당겼다.

굉음, 불꽃의 작열.

그리고 화려한 추진.

비행기는 하늘 높이 치솟았다. 비행기보다는 소형 로켓에 가까운 속도였다. 미도리의 허리가 괴이한 곡선을 그리며 크게 튕겼다. 한껏 숙인 머리는 가슴팍에 반쯤 파묻혔다. 미도리는 억지로 고개를 들고 목을 젖히려 했다.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뼈가 부스러지는 고통에 미도리는 괴성을 지르며 몸을 뒤챘다.

"데갸아아아아아아-!"

창 밖으로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경탄스럽고 황홀한 광경이었으나, 미도리에게 그 광경을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사, 살려주는 데스! 토시아키상-!"

대답은 없었다. 들릴 턱이 없다는 사실은 미도리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토시아키에 대한 원망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와타시가 이렇게 고생하는 동안 토시아키상은 밑에서 편안하게 구경이나 하고 있는.."

순간 미도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토시아키가 편안히 구경하고 있을 리가 없다. 이 비행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지난 1년간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토시아키를 배신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도리는 토시아키의 은은한 웃음을 떠올렸다. 자신의 모든 것을 품어줄 듯 안온했던 눈빛을 떠올렸다.

"감속은 왼쪽의 붉은 버튼이었던 데스..."

침착하게 뻗은 손은, 다행히 붉은 버튼 위에 안착했다. 속도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몸에 와닿는 고통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데휴, 데.."

작은 웃음이 미도리의 입가에 떠올랐다. 하지만 이대로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아직 본무대는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

미도리는 발로 갖가지 페달을 누르고, 손으로 여러 레버의 위치를 조정했다. 훈련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좋은 현상이라 생각하며 미도리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미도리 1호, 출발하는 데스!"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동안, 미도리는 비행기가 자신이 조종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아까의 풍경을 역재생하듯 흘러갔다.

비행기는 빠르게 추락하고 있었다.

"데에?"

미도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작에 실수가 있었을 것이다. 분명 그런 것이다. 그 실수만 찾아내면 비행기는 다시 정상 고도로 돌아와, 원대한 비행을 시작할 것이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조작을 검토하던 미도리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실수가 눈에 띄지 않았다.

"이 비행기, 어떻게 되먹은 고물인 데스우.."

여기는 얼마나 높은 지점일까? 문득 떠오른 질문이었다.

낙하의 반작용으로 조종실의 모든 것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미도리를 제외한 모든 것은 고정된 사물이었기 때문에 떠오르는 것은 미도리밖에 없었다. 안전벨트가 없었다면 허공을 나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되먹은거냐고 물은 데샤아아아아아!"

적녹색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얼굴을 적셨다. 아마 총구에서는 운치가 미친듯이 새고 있을 테지만 안전벨트에서 빠져나올 수 없으니 확인할 길은 없다.

"붉은 레버! 고도를 올리려면 붉은 레버인 데스우!"

"...데갸아아아! 레버가 부러진 데스! 손이 저릿한 데스!"

"토시아키, 보지만 말고 와타시를 도와주는 데스! 오마에때문에 와타시가 여기 있는 데스!"

"모두 거짓말.. 이었던 데스?"

"죽어버리는 데샤아! 거짓말을 한 똥닝겐도, 더러운 토시아키도 전부 죽어버리는 데샤아!"

"허리, 허리가 부러진 것 같은 데스!"

"와타시의 지난 1년은 무슨 의ㅁ..."







장렬한 유언을 가볍게 덮어버리며, 땅에 추락한 비행기가 사나운 굉음을 내질렀다. 불티와 파편을 게워내는 그 고철덩어리는, 분명 미도리의 얼굴로 장식된 소형 로켓보다는 훨씬 가치있는 물건일 것이다.

"약속을 지켜주었구나, 미도리.."

관객석에 모인 사람들은 슬슬 해산하려는 기미를 보였다. 눈속임용으로 고용된 사람들일 뿐이니 이 이후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다. 토시아키는 눈짓으로 가도 좋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다시 비행기의 잔해로 눈을 돌렸다.

"미도리,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은 없어."

토시아키는 문득 10년 전의 나날을 떠올렸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두 마리의 1세대. 아마 비행 실장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가 빛을 볼 수 있었던건 그 재능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들만큼은 진짜였으니까."

토시아키의 열성적인 지도와 그 탁월한 재능이 합쳐진 끝에, 비행 실장 육성 프로젝트는 첫 시연회에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성공을 거뒀다. 미도리가 자주 보곤 했던 영상 역시 그 날 찍었던 영상이다. 찍었던 사람이 다름아닌 자신이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 날을 기점으로 비행 실장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공연에서 두 비행기가 충돌하는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 이후, 토시아키는 다시금 현실의 벽에 가로막혔다. 순전히 둘의 재능에 의존하고 있었던 비행 실장 사업은 그 둘이 죽은 이후 단 한 달 만에 몰락 직전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실장석 산업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여러 학대 업체로부터 연락이 있었고, 토시아키는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대상은 심한 분충이 아니기만 하면 된다. 훈련 내용은 그냥 시뮬레이션 게임 부스를 가져다 놓은 것 뿐인 완전히 엉터리에, 나름 좋은 대우를 해 줌으로써 비행 실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그 후 '비행' 에 어울리는 개체를 하나 둘 선별한다.

'비행' 당일, 비행 실장으로 뽑힌 개체들은 자신의 얼굴로 장식된 화려한 비행기와 모여드는 관중에 엄청난 흥분 상태에 놓인 상태에서 비행기에 탑승하게 된다.

비행기의 실체는 말 그대로 소형 로켓이다. 조종실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추진체로, '이상 사태 시 당기는 것'
이라고 교육한 녹색 레버가 트리거이다. '높이 날리는 것'에만 집중한 단순한 형태이기 때문에 제작 비용은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덤으로 조종실 역시 녹색 레버를 제외하면 나머지 사물은 그냥 모형에 불과하기 때문에 드는 비용은 매우 적다.

이후의 과정은 말할 것도 없다. 비행기는 높이 날아오르다가, 속도가 한 풀 꺾이고, 추락하기 시작한다. 그 안에서 비행 실장은 온갖 갈등과 절망에 시달린다. 그 모습은 조종실 한켠에 숨겨진 카메라에 의해 실시간으로 녹화된다. 비행기의 크기가 굉장히 작기 때문에, 추락 시에 카메라가 받는 충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안전장치 한두겹을 덧씌우면 충분하다.

"그래도 너만큼 긴 훈련 기간을 가진 녀석은 없었어. 꽤나 진지하게 1세대를 따라잡으려는 노력이 기특해서 유예기간을 줬지. 성과는 없었지만."

토시아키의 얼굴 위로 작은 미소가 번졌다. 어쨌거나 두 1세대 비행 실장만큼은 토시아키에게 있어 소중한 추억이다. 로켓에 갇힌 채 울부짖다 죽어간 아둔한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수거 작업이 끝나면 미도리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영상과, 유체가 든 비행기의 잔해가 비싼 값에 팔릴 것이다. 솔직히 그런 곳에 돈을 쓰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긴 어렵지만, 아무튼 덕분에 사업은 성황이다.

"그런데 말이야 미도리, 역시 너한테만큼은 말해주는게 좋았을까."

비행기의 파괴된 정도를 눈으로 가늠하며, 토시아키는 중얼거렸다.

"네가 37대 비행 실장이라는 걸 말이야."

토시아키는 싱긋 웃었다. 전날 미도리에게 보여주었던 것과 다를 게 없는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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