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

 

우리 집에는 실장석이 있다. 나는 딱히 실장석을 학대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애호파도 아니다.


사실 연주를 기르기 시작한 계기도 내가 원해서 데려온 것이 아니라 순전히 여동생 탓이었다. 생각없이 데려온 어린 자실장을 부모님이 안 좋아하신다며 여동생이 멋대로 내 집에다가 떠넘겼던 것이다. 처음에는 귀찮았지만 오랫동안 같이 살다보니 녀석과도 꽤 정이 들어 지금은 소중한 애완동물로 여기고 있다.


내 실장석, 연주는 정말 보기 드문 착하고 얌전한 실장석이다. 물론 적당한 훈육도 있었지만 그 전에 천성 자체가 좋은 녀석이다. 연주는 한 번도 음식 투정이나 불평을 하지 않았다. 보통 실장석들이 주문처럼 읊어대는 스시, 콘페이토, 예쁜 분홍색의 고급 옷을 사달라고 말한 적도, 자를 가지고 싶다는 요구를 한 적도 없었다. 연주는 머리도 좋아서 간단한 집안 청소나 정리를 도와주었다. 그에 대한 포상으로 한가한 날엔 집안일을 일찍 끝내고 연주와 나는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가 함께 산책을 즐기기도 했다. 소소하지만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리고 한 달쯤 전 그 평범한 행복은 깨져버리고 말았다. 연주가 큰 병에 걸려 앓아눕게 된 것이다. 엉터리 생물이라 불릴만큼의 회복력을 자랑하는 실장석이라지만, 질병에는 매우 약한 모양이었다.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는 생명체다. 당연히 나는 연주를 치료하기 위해 여러 병원에 가 보았지만 희망적인 말은 들을 수 없었다. 수의사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고 어차피 남은 시간이 길지 않으니 그 시간 동안 후회없이 잘 보내라고 했다.


이제 연주는 슬픈 소설의 여주인공처럼 방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병이 진행될수록 입맛이 없어지는지 맛있는 맛으로 바꿔준 실장푸드도 그다지 먹지 않았다. 좋아하던 공놀이도 몇 분만 하면 숨이 차서 헥헥대며 주저앉았다. 연주는 힘없이 누워 잠만 자는 날이 많아졌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곁에서 간호를 해주는 정도 뿐이었다.


그러던 연주에게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일 주일쯤 전부터였다. 병이 나아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왠지 눈에 생기가 돌아온 것 같았다. 연주는 깨작거리기만 하던 실장푸드를 입맛이 없어도 꾸역꾸역 입에 쑤셔넣었다. 나름대로 운동도 하려는 것인지 방 안을 빙빙 걸어다니기도 했다. 왜 그러는지 이유는 몰랐지만 나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나는 요즘 특별한 일이라도 생긴 거냐고 연주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연주는 흠칫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뎃! 딱히 그런 건 아닌 데스..."


대부분의 실장석은 거짓말에 능숙하지 않다. 순진한 연주는 더욱 그랬다. 반응을 보아하니 뭔가가 있긴 있구나 싶어 나는 연주를 면밀히 관찰했다. 하지만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굳이 수상한 점을 하나 꼽자면 연주가 유리문 밖을 자주 쳐다본다는 점이었다. 의아함을 느낀 나는 유리문을 열어 밖을 살펴봤지만 딱히 주목할 만한 무언가를 찾을 수는 없었다.


실마리를 잡은 것은 순전한 우연의 결과였다. 링갈을 연주가 있는 방에 놔두고 외출한 적이 있었다. 집에 돌아온 후 별 생각없이 링갈의 기록란을 살펴본 나는 놀랐다. 기록란에는 이상한 말들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꽃동산에 다녀온 데스. 이 근처에서 볼 수 없는 진귀하고 예쁜 꽃들이 가득가득했던 데스야."


"와타시는 까마귀와 싸워서 이긴 적도 있는 데스!"


"이번에는 바다에 다녀온 데스. 큰 물이 저기에서 저 끝까지 가득했던 데슷! 우마우마한 것들도 잔뜩 있던 데스. 오마에, '조개'를 본 적 있는 데스우?"


"그럼, 다음에 또 오겠단 데스. '조개'만큼은 아니지만 푸드도 우마우마했던 데스. 다음에는 실장석들의 낙원에 대해 얘기해주는 데스."


당연히 연주가 했을 법한 말들은 아니었다. 연주는 세상을 잘 모른다. 가끔씩 산책을 나가긴 했지만 나와 함께 갔던 근처의 공원정도였다. 즐겨보는 TV 프로라곤 사육실장용 방송이었던 연주가 다양한 지식을 알 리도 없었다. 혼자 있어 심심한 나머지 인형과 얘기하고 놀았다고 해도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링갈의 기록란을 날짜별로 천천히 올려봤다. 이상한 말들이 기록되기 시작한 시기와 연주가 좋아지기 시작한 시기가 얼추 맞아떨어졌다. 연주는 분명 다른 실장석과 만난 적이 있다.


문득 세상 모르고 잠들어있는 연주의 베개가 비뚤어진 것을 발견했다. 연주를 바르게 눕히고 베개를 조심스럽게 바로잡아줬을 때 무언가가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그것을 집은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검정색의 깃털이었다. 베개 밑에 조심조심 손을 집어넣자 이가 빠진 조개껍질이며 바스라지기 직전의 말린 꽃 등이 잡혀 나왔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동네에 사육실장을 기르는 집은 나 혼자뿐은 아니겠지만, 평범한 사육실장이 이런 물건을 모을 리는 없다. 이것들은 들실장이 준 물건일 것이다. 기록란에 적혀진 말에는 '푸드도 우마우마'했다고 했으니 설마 연주의 실장푸드와 교환하러 모아왔던 것일까? 어찌됐든 들실장이라면 아픈 연주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라면 세상물정 모르는 연주를 방심시킨 후 연주를 죽이고 사육실장 행세를 할 수도 있다. 연주는 아니지만, 보통의 실장석은 교활한 존재다. 들실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녀석을 연주와 떼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연주가 생기를 되찾아가는 요즘의 나날을 떠올렸다.


어떤 녀석인지 한 번 알아보는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




"잘 자라."

"주인님도 안녕히 주무시는 데스."


라고 인사는 했지만, 사실 나는 자러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링갈을 쥐고 연주의 방문을 살짝 열어두었다. 연주와 나는 들실장을 기다렸다. 시기상 녀석이 오는 것은 오늘밤일 것이다.


조금 기다리자 유리문을 콩콩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꾀죄죄한 녹색 그림자가 유리문에 나타났다. 연주는 들실장을 도와 유리문을 열었다. 그러자 한쪽 귀가 찢어진 더러운 들실장이 나타났다. 연주가 반갑게 들실장을 맞았다.


"오마에, 잘 지내고 있었던 데스우?"

"와타시는 잘 지냈던 데스. 오마에는 어떻게 지냈던 데스우?"

"와타시는 이번에도 여행을 다녀왔던 데슷!"


들실장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가슴을 폈다.


"데에에... 역시 대단한 데스. 저기, 이번에도 바깥 이야기를 해 주는 데스."

"알겠다는 데스. 그런데 일단 먹을 것부터 줄 수 있는 데스우? 먼 길을 오느라 지친 데스... 먹으면서 얘기해주겠단 데스."


연주는 신이 나서 아까 그릇에 남겨둔 실장푸드를 가져와 들실장에게 가져다주었다. 둘은 마루에 걸터앉아서 푸드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들실장이 해주는 모험 이야기에 연주는 완전히 빠져든 듯 했다. 얘기가 끝나고도 꿈 속에 잠긴 듯 멍하니 앉아있었다.


"오마에, 저번에 바다에 가보고 싶다고 한 데스? 데프프프, 좋은 것을 가져온 데스."

"데에?"


들실장이 품에서 꺼낸 것은 작은 소라껍데기였다. 들실장은 그것을 귀에 가져다대더니 연주에게 건네주었다. 연주는 들실장을 따라해 자기도 소라를 귀에 가져다댔다.


"데에에에! 이상한 소리가 나는 데스."

"데프프프픗! 그게 바로 바다의 소리란 데스우."

"데, 바다에선 정말 이런 소리가 나는 데스우? 이 작은 물건에 바다가 담겨있는 데스우?"

"그런 데스. 오마에가 가지라는 데스."

"뎃! 그래도 되는 데스우? 고마운 데스... 와타시의 소중한 보물로 삼는 데스!"


연주는 뛸 듯이 기뻐하며 소라를 품에 꼭 안았다. 녀석들은 그 후로도 얼마간 얘기를 나눴다. 들실장이 돌아갈 때가 됐다고 말하자 연주는 노골적으로 아쉬운 티를 냈다.


"다음번에도 꼭 찾아오는 데스."

"약속하는 데스."


연주는 들실장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다.




*




들실장은 생각보다 나쁜 녀석은 아닌 것 같았다. 나쁘고 교활한 녀석이었다면 온실 속의 화초마냥 연약한 연주 따위는 벌써 죽여버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또 녀석이 들실장이라 더럽다고는 해도 어차피 연주는 병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하는 몸이다.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연주는 이제 가망이 없으니 그저 가는 날까지 후회하지 않도록 잘 돌봐주라는 수의사의 말을 떠올렸다. 오히려 좋은 친구가 생겼으니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또다른 의문점은 이 들실장이 대체 어디서 왔느냐는 것이었다. 그 들실장의 말대로 먼 곳에서 여행을 온 방랑실장일까? 현실적으로 그럴 확률은 한없이 0에 수렴한다. 열악한 실장석의 신체구조상 그 들실장이 말하는 것처럼 바다며 산이며 온갖 곳을 쏘다니기는 불가능하다. 이 집 근처에 산과 바다가 있으면 모를까, 이곳은 변두리라 한적하다고는 하나 도심 한복판이다.


이후로도 몇 번 그 들실장이 찾아왔기는 했으나 도통 실마리를 찾을 수는 없었다. 실장석이라는 생물 자체가 많기도 하고, 인간 눈으로 볼 땐 생긴 것들이 죄다 고만고만했다. 주택가의 외진 골목 사이사이나 공원에서 사는 수많은 실장석 중에 한 마리의 특정한 들실장을 찾아내기란 어려웠다.


편의점에 들른 후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면서도 나는 그 들실장의 정체를 고민했다. 내가 앉은 벤치 밑으로 불쾌한 무리가 몰려왔다. 불룩한 편의점 봉투를 보고서 먹이를 나눠주러 온 애호파인 줄 착각한 모양이다. 방방 뛰는 실장들도, 엄지실장을 치켜드는 친실장도 있었고, 어떤 들실장은 속옷을 내리고 끔찍한 교태를 부리기도 했다. 더러운 들실장들은 질색이다. 눈살을 찌푸리고 몰려드는 들실장 무리를 몇 번 발로 차고 위협해서 쫓아내자 그들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내 주위는 곧 조용해졌다.


이번에야말로 방해받지 않고 한적함을 즐기고 있는데, 또 실장석의 소리가 들렸다.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는 멍청한 분충이라고 생각한 나는 녀석을 쫓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적어도 주변에 실장석은 없었다. 가만히 들어보니까 벤치 뒤의 수풀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수풀 속을 들여다보았다.


"데갹! 데갸아!"

"데스데스! 데샤아!"

"데샤아아아앗!"


들실장 세 마리가 한 마리를 둘러싸고 린치하고 있었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들실장 사회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날 놀라게 한 것은 바로 린치받는 실장석의 얼굴이었다. 귀 한쪽이 찢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주의 친구라면 말이 다르다. 나는 얼른 세 녀석을 쫓아냈다. 한 마리는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도 놀라 도망쳤다. 남은 한 마리는 흥분이 풀리지 않는지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나한테 위협을 가했다. 그 자신만만함은 한 놈의 대가리에 체중을 실은 킥을 날려 함몰시키자마자 쏙 들어갔지만 말이다. 남은 한 놈도 빵콘을 해 속옷을 녹색으로 부풀리고는 급히 사라졌다. 상황이 종료되자 나는 링갈을 켜서 짝귀 실장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데이... 닌겐상 감사한 데스. 와타시는 괜찮은 데스..."


당연하게도, 짝귀 실장은 내가 연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대체 왜 맞고 있었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수풀 저편에서 아까 도망쳤던 실장석이라고 생각되는 두 녀석이 소리를 질러댔다.


"거짓말쟁이 데샤아! 분충은 빨리 이 공원에서 꺼지는 데샤! 꼴보기도 싫은 뎃스으!"

"저 녀석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데스! 죄다 말도 안되는 소리만 하는 데스! 저번에는 콘페이토가 있다고 해서 따라갔더니 그냥 울퉁불퉁한 돌멩이었던 데샤!"


과연 그랬던 건가. 나는 무표정하게 짝귀를 내려다봤다. 짝귀는 움찔하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아까 소리가 들려온 수풀 반대편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




아무리 진실이 그렇다고 해도 연주에게 그것을 알려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예의 그 사건이 있은 후에도 짝귀는 변함없이 연주를 만나러 찾아왔다. 나는 조금 씁쓸한 기분으로 둘의 만남을 숨어서 지켜보았다. 연주는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세상을 잘 모르고 집에서 나온 적이 별로 없다 보니 짝귀 실장의 허풍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고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거짓말이라도 연주가 기쁘다면 괜찮지 않을까. 딱히 짝귀 실장이 연주에게 해를 가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연주가 실장푸드를 조금 나눠주는 것으로 생기를 되찾는다면 나로서는 이득이다.


그렇게 방심하고 있었던 게 문제일까, 나는 연주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기, 부탁이 있는 데스."

"뭐인 데스우?"

"다음번에 와타시를... 여행에 데려가주지 않겠는 데스우?"


나도, 짝귀 실장도 예상 외의 폭탄발언에 머리가 멍해졌다. 어이가 없는 것도 잠시뿐, 곧 그 자리를 배신감이 채우기 시작했다.


"데...뎃! 무리인 데스! 오마에는 사육실장인 데스. 멋대로 나가버리면 분명 주인님이 슬퍼하는 데스! 거기다, 바깥 세상은 오마에의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데스웅..."


허둥지둥하며 짝귀 실장은 찢겨나간 자기의 귀를 강조하여 연주에게 보여주었다. 연주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긍정했다.


"그런 데스. 갑자기 미안했던 데스."

"미안할 것까진 없는 데스야."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 짝귀 실장과 내 시선이 맞았다. 온 몸의 피가 싹 역류해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데,뎃. 와타시는 이제 가보는 뎃스! 건강하게 지내는 데-스!"


연주의 인사도 받는둥마는둥 하며 짝귀 실장은 크게 당황한 모습으로 사라졌다. 나는 곧바로 현관문을 열어제꼈다. 실장석의 걸음이란 대단한 것이 못 된다. 딴에는 전력으로 질주한 짝귀 실장은 현관문을 열고 나온 나와 마주치자 사색이 되었다.


"데...닌겐상!?"


너 때문이야.


이 녀석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연주가 그렇게 터무니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녀석이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지어내지만 않았더라면 연주가 이상한 꿈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때 그 공원의 분충들이 옳을지도 몰랐다.


나는 짝귀를 외진 골목길로 끌고 갔다. 짝귀를 아스팔트 바닥에 힘껏 내팽개친 나는 다짜고짜 녀석의 한쪽 다리를 밟았다.


"데갸아아아아!"


짝귀 실장은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며 뒹굴었다. 아픔에 못이겨 빵콘을 한 탓인지 지독한 냄새가 풍겼다. 다리를 조금 짓이긴 후 놔주자 녀석은 큰절을 하며 웅크려 울었다. 연약한 존재가 오직 살기 위해 처절히 발버둥치는 광경은 내게 묘한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구석진 골목길에서, 오래되어 거의 빛이 꺼져가는 가로등을 등지고 서 있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순간적인 희열에 떠오른 뒤틀린 미소를 가려주었으니. 맛이 간 가로등을 등지고 선 데다 한밤중이라 어두운 탓에 아직 녀석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짝귀를 발등으로 올려 일어서게 했다.


"말해봐."


내 목소리를 듣고서야 짝귀는 내가 누군지 깨달은 것 같았다. 녀석은 또다시 큰절을 하며 몸을 내던졌다. 나는 짝귀를 옆으로 굴려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


상처입은 다리가 아픈지 짝귀 실장은 울먹거리고 떨었다. 녀석은 겁을 제대로 집어먹은 모양이었다. 짝귀는 내가 물어보지도 않은 것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정말정말 죄송한 데스. 그렇지만 닌겐상의 사육실장에게 무언가 나쁜 짓을 한 것은 절대로 아닌 데스."


"그런 데스. 모두 거짓말이었던 데스... 까마귀와 싸웠다는 것도 바다에 다녀왔다는 것도 고양이를 탔다는 것도 다 허풍이었던 데스."


"까마귀와 싸워 이겼다는 이야기는 사실 길가에 떨어진 까마귀 깃털을 주운 것뿐인 데스."


"바다에 가서 주워왔다는 조개껍질과 소라도 사실 놀이터 모래사장에 떨어진 것을 주운 것이었던 데스."


"실장석이 고양이랑 싸워서 이길 수는 없는 데승... 와타시도 알고 있는 데스."


"아까 닌겐상의 사육실장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와타시도 정말 몰랐던 데스. 닌겐상이 원하신다면 다시는 눈에 띄지 않겠다는 데스우. 제발... 용서해주시는 데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와타시는 계속 외톨이었지만 처음으로 친구가 생겨서... 재밌게 해주려고 거짓말해버린 것 뿐인 데스. 와타시의 이야기를 정말로 믿어주고 좋아해준 실장은 닌겐상의 실장석뿐이었던 데스. 그래서인 데스."


짝귀는 꼬질꼬질한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다시 한번 죄송한 데스. 닌겐상의 실장석에게도 미안했다고 전해주는 데스...오로롱..."


나는 끝까지 입을 다문 채 어두운 골목 밖으로 절뚝거리며 나가는 짝귀의 뒷모습만 지켜볼 뿐이었다.




*




그 날 이후 짝귀는 우리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연주는 갈수록 수척해졌다. 연주의 얼굴에는 우울함만이 가득했다. 마치 영혼없는 인형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는 실장 푸드를 조금 갉더니 힘없이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그저 멍하니 방 구석을 응시할 뿐이었다. 연주는 뭐라고 속삭이듯 웅얼거렸다. 눈에는 적록색의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와타시의 탓인 데스... 쓸데없는 말을 해버린 데스."


끝내 울음을 터뜨린 연주는 나한테 그간의 일을 다 털어놓으며 사과했다. 마지막에 멋대로 나가려 한 생각을 한 것은 아직도 괘씸했지만 어차피 얼마 살지 못할 녀석이다. 또 내가 추궁하기도 전에 알아서 그간의 일을 성토했기에 나는 연주에게 괜찮다며 용서를 해주었다. 그러나 연주는 끝까지 짝귀가 나와 만났다는 사실을, 또 그 녀석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 편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렇게 연주의 마지막은 천천히 우울히 다가오고 있었다.




*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이젠 없어졌다 생각했던 짝귀 실장을 우연히 만난 장소는 어딘가의 골목길이었다. 짝귀는 품 안에 무언가를 소중히 안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내가 부러뜨린 다리는 완전히 회복되었는지 아주 약간 어색하긴 해도 잘만 움직이고 있었다.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 녀석이 뭘 하나 호기심이 동한 나는 짝귀의 뒤를 가만히 밟았다.


짝귀가 향한 곳은 버려진 공터 구석이었다. 짝귀는 품에 안고 있던 것을 소중히 내려놓았다. 요란하고 화려하게 생긴 싸구려 조화였다. 분명 누가 버린 것을 또 주워왔을 것이다. 내가 관찰하는 것을 알 리 없는 짝귀는 뿌듯한 표정으로 조화를 나름대로 신중하게 배치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니 그곳에는 조화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사람에게는 그저 잡동사니나 생활쓰레기일 뿐이지만 실장석에게는 관심을 끌 만한 것들이었다. 짝귀의 보물창고인 걸까? 짝귀는 뎃데로게 노래를 부르며 잡동사니를 뒤적거렸다. 조화를 큰 원 모양으로 둥글게 깔았고, 싸구려 장난감이나 플라스틱 통은 중앙에 두었다. 그리고는 짝귀는 큰 유리조각을 조심히 가져와 그 위에 콘페이토 몇 알을 가져왔다. 침이 흐르는 걸로 봐서 내적 갈등을 겪는 것 같았지만, 짝귀는 침을 쓱 닦고는 의지가 충만해진 표정으로 콘페이토가 굴러가지 않게 바로잡았다.


나는 녀석이 하는 행동을 구경했다. 나로선 딱히 짝귀를 반가워할 이유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만한 이유 또한 없어진 상태였다. 녀석과 연주의 마지막 만남에서 들은 연주의 말은 내게 배신감이 들게 할 정도는 됐지만, 어디까지나 연주가 멋대로 한 말인데다 시간이 흐르고 냉정히 생각해보니 연주를 말려준 것은 이쪽이었기도 하고, 연주도 철없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했으니 말이다.


한참 잡동사니를 만지작거리던 짝귀는 후련한 표정으로 머리에 맺힌 땀을 스윽 닦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뎃데로게~ 열심히 낙원을 만드는 데스~"


저렇게 조잡한 낙원이라니 어이가 없다. 녀석은 말하자면 상상력이 풍부한 타입의 실장석일지도 모른다. 흔한 실장석의 행복회로하고는 다른 것이다. 이것은 이를테면 아이들이 잘 모르는 것을 보았을 때 서투르게 자신이 생각한 터무니없는 것을 설명하고 혼자 재밌어하는 것과도 같았다. 굳이 열악하게 비유하자면 그렇단 것이지 실제로는 전혀 달랐지만.


이후로도 짝귀의 낙원 꾸미기는 계속되었다.




*




늘 비극은 예고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길을 가는 도중 나는 공터 주변에서 또다시 짝귀를 발견했다. 한 손으로 이름모를 나무열매를 씹으며 공터 앞에서 쉬고 있던 짝귀 실장은 무언가를 포착하고는 신나게 달려갔다. 예전에 동네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유리구슬이었다. 아마 놀던 중 한 개가 굴러가 없어졌지만 아이들답게 찾아볼 생각도 안 하고 그대로 잊어먹은 것이리라. 오후의 햇빛을 반사해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구슬은 실장석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짝귀는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자동차를 보지 못했다.


그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텅,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짝귀는 공터 쪽으로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무언가를 쳤다는 사실에 놀란 차주는 얼른 뛰쳐나와 차 앞을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 앞에서 실장석의 체액을 발견한 그는 욕을 하며 다시 갈 길을 갔다.


나는 천천히 공터 쪽으로 걸어갔다. 얄궂게도 짝귀는 '낙원'바로 옆에 널부러져 있었다. 경련하며 낙원으로 처절하게 기어가는 짝귀의 손에는 유리구슬이 꼭 쥐어져 있었다.


"니...닌겐상."


짝귀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핏물이 목을 타고 울컥울컥 역류하는지 콜록거리며 괴로워했다. 아마 내장도 위석도 심하게 상해 있을 것이다. 어차피 가망이 없다. 곧 찾아올 마지막을 봐 주는 것 외에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치, 친구에게 낙원을 꼭 보여주고 싶었던 데스윽. 열심히 만들었던 데슥."


짝귀는 엎드린 채 유리구슬을 힘겹게 굴려 낙원 한복판으로 밀어넣었다.


"다 된 데스으...이번엔 거짓말이 아닌 데스..."


마지막 힘을 짜낸 짝귀실장은 심하게 경련한 후 피를 크게 토하며 조용해졌다. 내가 뭐라고 말할 새도 없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녀석은 끝내 완성된 낙원에 들어가지 못한 채 그 옆에서 숨을 거두었다.




*




연주의 생명도 슬슬 끝에 다다라 있었다.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연주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맞을 결말임을 알고 있던 나는 슬펐긴 해도 한편으로는 오히려 차분했다. 연주 역시 조용히 끝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연주를 안고 마지막으로 산책을 나갔다. 연주는 거의 걸을 힘조차도 없었다.


연주에게 익숙한 동네를 지나 조금 멀리까지 나왔다. 연주는 낯선 풍경이 보이자 약간 불안해했지만 내가 어르자 곧 안심했다. 길을 걷다보니 예전의 그 공터 옆이었다.


신기하게도 짝귀의 보물창고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상태 그대로였다. 연주는 눈을 빛냈다. 나는 연주를 조심스럽게 그곳 한가운데에 내려줬다.


"너무 예쁜 데스! 주인님이 만들어주신 데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조잡한 정도지만 실장석의 눈에 비친 이곳은 꽤 아름다웠나 보다. 나는 내가 만든 장소가 아니라고 솔직히 말해줬다.


"멋진 데스. 마치 낙원같은 데스. 그런데 왠지 익숙한 냄새도 나는 데스."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연주는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조용히 꽃 한 송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는 나직하게 물었다.


"저, 주인님, 혹시 와타시가 말한 그 친구와 만난 적이 있으신 데스?"


나는 사실대로 긍정했다. 연주는 살짝 흥분한 듯한 기색을 보이며 질문했다.


"데에엣... 어디 갔는지 아시는 데스? 사실 와타시 그 친구에게 주고 싶은 게 있었던 데스."


연주는 매고 있는 실장용 파우치에서 작은 엄지실장 인형을 꺼냈다. 예전에 연주가 자실장일 적 좋아했던 장난감이다.


"혼자 여행하면 쓸쓸할 것 같았다고 계속계속 생각한 데스우..."


나는 짝귀 실장석은 이번에는 아주 멀리 여행을 간다며 나한테만 몰래 이야기해줬다고 연주에게 설명해줬다. 오래 걸리겠지만 아마 돌아올 땐 선물을 많이 가져왔을 테니 그 때 서로 선물을 교환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위로했다. 연주는 낡은 엄지실장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얌전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면 된 데스. 알려주셔서 감사한 데스. 와타시는 기다릴 수 있는 데스."


연주가 웃으며 말했다.




*




며칠 후 연주는 세상을 떠났다. 오랫동안 병마와 싸워왔는데도 이상할만큼 평온한 얼굴이었다. 연주는 끝까지 진실을 알지 못했다. 바깥 세상이 어떤지, 실장석에게 세상이 얼마나 거칠고 잔인한지도 끝내 알지 못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만 들을 수 있는 삶은 행복한 삶이다. 뭐, 엄밀히 따지자면 행복한 환상에 불과할 뿐이겠지만 그걸 깨트릴 마땅한 이유는 없다. 연주는 꽤 좋은 녀석이었으니. 온실 속의 연약한 화초에게 굳이 겨울바람의 매서움을 알게 해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짝귀 실장석 역시 그것을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연주의 시체를 집 뒤뜰에 묻어주고 연주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요즘엔 애완동물용 장례식이라고 해서 거창한 무언가도 있는 모양이지만 별로 그렇게까지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소박한 성격의 연주에게는 이 쪽이 더 어울린다.


아마 내가 앞으로 실장석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애완동물을 기를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연주의 묘 앞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러고 보니 나도 거짓말쟁이었군.


봉긋하게 나란히 솟은 작은 묘 두 개에 자라난 풀들이 제멋대로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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