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은 싫은데스 (ㅇㅇ(45.64))

 

우리 집 실장석은 대체로 양충이다. 이건 내가 보증할 수 있다. 2년 동안 기르면서 자잘한 트러블이야 있었지만 큰 말썽 없이 살아왔다. 대학 때 기숙사 룸메이트 녀석보다 같이 살기 쉬운 것만은 확실하다. 최소한 자기가 어지른 건 치우니까. 그러나 나는 지금 매우 큰 불만이 있다.

"야 녹차야. 제발 어떻게 좀 안 되겠냐?"
"데에... 주인님, 모르는 일인데스우."
"아 진짜 미치겠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녹차가 분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 모른다고 발뺌하다니? 하지만 그건 아니다. 아마 자기는 모르겠지. 녹차는 잘못이 없다. 납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은 역시 사양이다.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일단 문제 인식이다. 우선 자기 자신이 깨닫게 해야 한다. 하루면 되는 일이다.

다음날-

"자 녹차야 이리 와 봐. 그리고 이걸 들어 보라구."

재생 버튼을 누르자 들리는 것은 "데푸우우우우- 크르르르르- 데크어어어-" 하는 굉음. 데뎃? 하며 놀라는 녹차를 보니 문제의 심각성을 이제 이해한 것 같다.

그렇다. 우리 집 실장석은 코골이가 심하다. 그것도 엄청나게.

"니가 이러니까 내가 잠을 자겠니, 못 자겠니? 제발 나 좀 살려주라 응?"
"데에..."

아마 코골이가 심해진 지는 두 달쯤 됐을까. 몸집이 커짐에 따라 어느 날부터 코골이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장석도 코를 고는구나 하고 피식했다. 하지만 날이면 날마다 심해지니, 내 삶의 질에 직결된 문제가 되고 말았다. 더 이상 웃을 일이 아니다. 도무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처음에는 코를 골면 가서 옆으로 눕혀 보기도 했다. 그러나 실장석의 신체 구조상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옆으로 눕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몇 분 지나고 나면 다시 똑바로 누워서 데르렁거리기가 일쑤니, 변변한 해결책이 못 되었다. 중간에 깨우기도 뭔가 미안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코를 막을 수도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원룸이라서 옮길 만한 다른 방도 없다. 그리하여 뾰족한 수 없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더는 못 참는다.

실장 수의사에게 데려가 보니, 의외로 드문 경우는 아니란다. 코골이는 호흡할 때 좁은 곳으로 공기가 지나가서 발생하는 현상. 실장석은 기본적으로 살찐 생물이므로 기도가 좁은 것도 납득이 간다. 사람의 경우, 기도를 둘러싼 근육이 약해도 발생하기 쉽다나.

"확실한 해결책은 두 가지 정도가 있겠군요. 우선 첫번째는 양압기입니다."
"양압기요?"
"네, 펌프로 공기를 강제로 불어넣어 호흡시키는 기계죠. 사람들도 코골이가 심한 분들은 많이 사용합니다."
"데에... 어쩐지 무서운데스."
"어... 그래서 가격은요?"
"사람이라면 보험이 적용되니까 월 1만원에 대여가 가능합니다만, 아무래도 실장석은 보험이 안 되니까요... 보통 150에서 200 정도 합니다."

확실히 말해서 무리다. 당장 그만한 지출을 할 만한 재정 상태가 아니다.

"아. 그럼 두번째는요?"
"기도 확장 수술입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수술할 만한 수의사가 없어서 일본에 가셔야 합니다."
"그럼 가격은..."
"10만 엔 정도입니다만, 실장석 통관 비용이나 항공료도 있으니까요."
"음...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이거 환장할 노릇이다. 실장석 코골이 때문에 200만원을 쓸 수는 없고, 그렇다고 놔두자니 내가 먼저 미친다.

"주인님, 와타시는 그러면 낮에 자도록 노력하는데스."

그런 기특한 말을 해도 말야...

"그거 코골이 심해지면 자다가 숨 못 쉴 수도 있다는데? 그거 건강에 안 좋다?"
"데뎃?"
"그리고 너 밤에 깜깜한 방에서 혼자서 뭐 하려고. 안 심심하겠냐?"
"데에... 그래도 주인님 요즘 피곤해 보이는데스."
"뭐, 일단 어떻게든 해결해 봐야지."

우선 열심히 인터넷에서 코골이 관련 내용을 찾아 본다. 못 믿을 내용도 많을 테니 잘 걸러 가면서. 원래 나 같은 비전문가가 함부로 판단하기는 뭐한 일이지만, 수의사가 내린 결론은 내 통장에 막대한 타격을 준다. 가난한 주인을 용서해 다오, 녹차야.

열심히 찾아 보던 도중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았다. 관악기를 열심히 부는 사람들은 기도 쪽 근육이 강해서 코를 잘 골지 않는다나? 하지만 실장석한테 악기를 연주하게 하는 것도 뭐하고, 무엇보다 층간 소음이 문제이다... 잠시만, 관악기라... 혹시 이거라면? 번뜩 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거라면 될지 모른다. 일단 녹차는 집에 놔두고 밖에 나가서 준비물을 사 온다.

그리고, 다시 집.

"녹차야, 이리 와 봐. 내가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어."
"데에?"
"우선 이걸 끼우고..."

내가 준비한 물건 그 첫째는 실장석 호흡기용 마스크. 아까의 동물병원에 얘기해서 사온 것이다. 코는 덮지 않고 입만 덮도록 위치를 조절하고, 끈을 머리 뒤에서 묶는다. 실장석은 입을 완전히 다물 수 없으므로 필요한 물건. 앞에 호스를 연결하고, 두번째 준비물을 장착.

"자, 불어 봐. 새는 곳 있나 보게."
"데휴- 데휴-"

다행히 새는 곳은 없는 것 같다. 숨을 내쉴 때마다 풍선이 부풀어 간다. 그렇다. 관악기를 부는 대신 풍선을 불게 해도 기도 근육 단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좀 이상한 방법이지만, 이걸로 큰 지출 없이 끝난다면 그보다 고마운 일이 없다.

"앞으로 이거 하루에 열 개씩 빵빵하게 부는 거야. 안 그러면 밥 없다."

녹차가 눈을 질끈 감고 데후- 데히- 하면서 힘겹게 풍선을 불어 간다. 실장석의 폐활량도 변변한 것이 못 되고, 횡격막도 약할 테니까 사람이 부는 것보다는 훨씬 힘들겠지. 하지만 내 숙면이 최우선이다. 타협은 없다.

한 시간 후 녹차가 녹초가 되어 뻗어 있다. 그러고 보니까 풍선은 굳이 묶을 필요도 없으니 이렇게 많이 살 필요는 없었나? 괴로워 보이니 마스크를 벗겨 준다.

"데히- 주인님 데헤- 이건 데히- 학대가 데휴- 아닌데스?"
"시꺼 임마. 니가 밤마다 코 고는 게 나를 학대하는 거지."
"데휴- 데휴- 데헤-"

한달 후, 확실히 녹차는 코를 덜 골게 되었다. 풍선을 너무 불다 터뜨려서 빵콘한 기억 때문인지 빵빵하게 묶인 풍선을 무서워하게 되었지만, 뭐 사소한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경사로세 경사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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