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아왕


편의점 탁아는 대표적인 실장석 피해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로 그 발생비율은 높지 않다. 당연한 이치이다. 손가락도 없는 뭉툭한 손과 허약하기 그지없는 근력으로 어떻게 자실장을 던져 편의점 봉투 안에 착지시키겠는가. 실제로 실장석이 아이를 던져 편의점 봉투에 넣을 확률은 5%이하, 19마리의 아이를 땅바닥의 얼룩으로 만들어야 겨우 한마리를 집어넣을까 말까 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구제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지역에서는 워낙 실장석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종종 탁아피해가 발생하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가 재수없었다고 생각할 뿐, 편의점 측에 탁아피해에 대한 클레임을 걸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근래에 아버지께서 운영하는 편의점에 쏟아진 클레임의 숫자는 심상치가 않다. 서너달 전부터 서서히 클레임의 숫자가 늘어가더니, 보름전부터는 하루에도 몇건씩 클레임이 들어오고 있다. 계절이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월동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실장석들이 탁아에 열을 올리는 시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른 해에 비해 탁아 피해의 발생건수가 너무 많다. 더군다나 탁아피해가 보고된 이후로 편의점 주변에는 늘 코로리와 실장기피제를 뿌려놓는데 계속해서 탁아피해가 일어난다는 것도 이상하다.

나는 며칠간 고민하다 피해를 당한 손님들의 동선을 조사해보기로 했다. 화를 내며 탁아피해를 이야기하는 손님들을 진정시키고, 서비스로 음료수를 하나씩 주어가며 어떤 경로로 우리 편의점에 오고, 어떤 경로로 돌아갔는지를 물어 지도에 표시했다. 내가 없을 때는 다른 알바생과 아버지에게 마찬가지로 탁아피해를 이야기하는 손님들의 동선을 알아보라고 이야기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방법을 통해 겨우 피해의 진원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피해를 당한 손님들은 거의 대부분 한 지점을 지나간 것이다.

그곳은 편의점에서 약간 떨어진 어느 고층건물의 뒷편이었다.

이 주변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은 그 장소가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다. 그곳은 담배를 피는 곳이다. 건물 내부에는 흡연구역이 없기 때문에 그 건물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휴식시간이 되면 건물 뒷편으로 나와 담배를 피운다. 근처에 사는 주민들도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어서 가족이나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싶어하는 흡연자들은 일부러 그곳까지 와서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즉, 손님들은 우리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돌아가는 길에 담배를 한 대 태우기 위해 이곳에 들렀고, 담배를 피우며 방심하는 사이에 탁아를 당했지만 일단 편의점 봉투 안에 실장석이 들어 있었으니 편의점 근처에서 탁아피해를 당한 것이라 지레짐작하여 클레임을 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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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원지를 알았으면 원흉을 처리할 차례다. 나는 저녁무렵 평소보다 일찍 카운터를 아버지에게 넘기고 몇가지 물건을 챙겨 문제의 장소로 갔다. 그곳에는 어둑어둑한 가운데 옅은 가로등 불빛과 스마트폰을 조명삼아 담배를 피우는 몇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과연, 이렇게 어두운 곳이라면 실장석의 탁아를 알아채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린갈을 켜니 이내 실장석들의 목소리가 잡혔다.

"자, 이제 오마에의 자 차례인 데스"

"탁아왕님 잘 부탁하는 데스"

"잘 부탁하는 테치"

탁아왕, 그렇게 불린 실장석이 건물과 건물의 틈새에서 모습을 비추었다. 어두운데다 폐자재나 에어컨 실외기 등으로 어지러운 곳이라 실장석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지만, 한번 집중해서 실장석의 모습을 인지하니 확실하게 보인다.

"인사치레는 필요없는 데스, 오마에는 뒷머리를 붙잡고 몸을 둥글게 말고 이 위에 올라오는 데스"

실장석 친자의 인사를 들은 탁아왕이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손을 땅에 내려놓는다. 실장석의 팔이 저렇게 길었던가?

"이....이렇게 테치?"




자실장은 온몸을 떨면서도 시키는 대로 몸을 둥글게 말고는 탁아왕의 손 위에 올라탄다.

"잘 한 데스, 그럼 던지는데스"

"마마, 와타치 먼저 가서 똥닌겐을 메로메로시키....테챠아아아아!!!"

계속 힘빠진 얼굴을 하고 있던 탁아왕이 일순간 힘을 주며 자실장을 던진다. 자실장은 미처 어미에게 이별인사도 끝내지 못한 채 날아갔다.

놀랍다. 실장석이 한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 마치 최고의 투수가 최고의 커브를 던지듯이, 안정된 투구폼으로 던진 자실장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포물선의 궤적을 그리며 옆에서 담배를 피던 아저씨의 비닐봉투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때 나는 저녀석이 어째서 탁아왕으로 불리는지, 어째서 탁아 피해가 급증했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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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약속은 지키는 데스."

"데프프프, 그런 똥같은 하우스는 오마에가 가지는데스, 와타시는 자에게 메로메로된 닌겐노예를 거느리며 사는데스"

탁아를 당한 아저씨가 자리를 뜨자, 탁아자실장의 어미도 전형적인 분충대사를 내뱉으며 그 아저씨를 뒤쫒기 시작했다.

"........저녀석도 어지간히 멍청한데스, 탁아된 실장석에게 닌겐이 메로메로되는 일 따위는 없는데스."

하지만 탁아왕은 달랐다. 탁아를 대리해주는 입장이면서도, 아니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탁아라는 행위가 행복을 보장하기는 커녕 파멸로의 제트코스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벌써 많이 어두워 진 데스, 얼른 아까 그 분충놈의 집에서 쓸만한걸 가지고 돌아가야겠는 데스"

하는 말로 미루어 보면, 탁아왕은 탁아를 대리해주는 대신 떠난 가족의 재산을 받는 모양이다. 물론, 떠난 가족이 돌아올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아주 낮은 확률로 탁아된 자실장이 키워지는 경우는 있지만, 그 친실장이 키워지는 경우는 없다고 보아도 좋다.

과연, 능력있고 똑똑한 녀석이다. 탁아를 거의 100% 성공시킬 능력, 그리고 탁아의 무용함과 인간의 무서움을 알 정도의 현명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손쉽게 재산을 불리고 있다. 실장석 치고는 대단한 녀석이다.

하지만 탁아를 묵과할수는 없다. 우리 가족은 우리 가족대로 작은 편의점에 생계를 걸고 있다. 이 녀석 때문에 탁아가 계속되어 손님이 떨어져나가고 본사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하는 꼴을 볼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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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에 탁아왕은 건물 사이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미 모습은 보이지 않고, 데스데스하는 구령소리만 작게 들려온다. 하지만 결국 이녀석이 도착할 곳은 뻔하다. 학교 앞에 있는 두루마리 공원이다. 나는 한바퀴 둘러 공원에 앞질러 가 몸을 숨겼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역시나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로 녹색 덩어리가 아장아장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이상하게 긴 오른팔, 탁아왕이다.

탁아왕은 잠시 공원을 이리저리 헤매다 어느 골판지 하우스에 들어갔다. 이곳이 아까 그 실장친자가 살던 집이리라.

"데......분충 주제에 좋은걸 많이 가지고 있는 데스~♪"

골판지 내부의 상황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린갈에 번역된 탁아왕의 어조는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수확이 좋은 모양이다.

그렇게 얼마간 바스락거리며 골판지 안을 뒤지던 탁아왕은 양 어깨에 편의점 봉투 하나씩을 짊어지고 나와 달려가기 시작한다. 먹이를 잔뜩 짊어지고 있는 것을 동족에게 들키면 곧바로 습격을 당할테니, 집까지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야 한다.

5분정도 뒤뚱뒤뚱 뛰어가던 탁아왕이 비로소 자기의 집에 도착한다. 실장석은 물론 인간도 눈여겨보질 않을 만한, 그래서 관리도 거의 되지 않는 구석진 곳이다.

"데헥....데헥......마마가 온 데스, 문 여는 데스"

"마마가 온 테치!"

"어서오시는테치!"

"레후?"

가전제품 박스를 이용한 커다란 집 위에 방수를 위한 두꺼운 비닐이 올려져 있고, 누름돌로 그것을 확실히 고정해 놓았다. 나는 들키지 않도록 하우스의 문 틈으로 실장 네무리와 시비레가 혼합된 스프레이를 분사한다. 10초정도 쭉쭉.

"오늘도 멍청한 분충의 재산을 전부 털.....어......"

"마마 왜 그러는 테치?......."

"갑자기 졸립고 몸이 무거.....워......"

"프니.....프...니...."

모두 잠든것을 확인하고 골판지 하우스를 걷어낸다. 보존식이 가득 쌓인 비닐봉지가 열댓개에, 콘페이토며 실장푸드가 담긴 특별식도 비닐봉지 하나에 꽉 들어차 있다. 여기에 먹이용 저실장을 건조시키는 건조대, 솜이불, 모포, 플라스틱 물통, 접시 등등등, 내부는 외부 이상으로 호화로운 구성이다. 심지어 자실장들은 과자박스로 각방을 만들어 쓰고 있다.

과연, 대단한 녀석이다. 수조에 갇혀 그저그런 실장푸드만 매일같이 먹고 사는 어지간한 사육실장보다 나은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리고 이 녀석이 이렇게 호화로운 삶을 영위할수 있는 원동력은......바로 저 팔이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눈에 띄었던 오른팔이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그 이질적인 형태를 알 수 있다. 울퉁불퉁한 근육에는 녹색의 핏줄이 올라와 있고, 왼팔보다 한마디 정도가 더 긴데다 끝마디가 둥근 원통형이 아닌 오목한 숟가락 모양으로 되어 있다. 일종의 돌연변이인걸까, 아니면 실장석 특유의 카오스파워의 발현일까. 어쩌면 인간에 의해 이런 모습이 되었고, 그래서 탁아로 시작하는 세레브한 생활 따위는 허상이라는 것을 아는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간에, 탁아왕은 이 이형의 팔과 함께 튼튼한 하체를 가지고 있어 여타 실장석과는 달리 체중을 실어 전력으로 물건을 던지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에다 오랜 연습을 통해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물체를 던지는 법을 익힘으로서 '탁아왕'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리라.

나는 기절한듯이 잠들어 있는 탁아왕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지금 이녀석과 그 자식들을 죽이고 집을 파괴해 버리면 탁아 피해는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건 재미가 없다.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이녀석에게 절망을 맛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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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저녁, 나는 어제의 그 건물 뒷편에 다시 왔다. 필요한 조치는 해 두었다. 오늘은 그것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자, 빨리빨리 오는데스, 오늘이 마지막인데스"

잠시 시간을 때우고 있자니 탁아왕이 나타난다. 그런데 오늘은 뒤에 따라온 실장석들이 좀 많다.

"오늘까지만 탁아를 해주고 봄까지 쉬는데스, 꾸물거리면 탁아를 못 해주는 데스"

과연, 이제 날이 많이 추워졌으니 한탕 하고 월동에 들어갈 생각인가. 어제 이녀석을 찾아내어 조치를 마쳐 놓아 다행이다.

"가는데스, 데엡!"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지벳!!"

탁아왕은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하게 자실장을 던졌지만, 자실장은 비닐봉지를 스쳐지나가 땅바닥에 떨어진다.

"데....데뎃???"

자신의 실패에 놀라는 탁아왕, 그러나 이내 표정을 고치고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뭐....와타시도 실패할때가 있는 데스, 오마에한테는 차녀도 있으니까 이번엔 성공시켜 주겠는 데스"

"와타치는 싫은테치! 오네챠처럼 되는건 이야테치!!!! 테에에에엥!!!"

"투정부리지 마는데스, 데엡!!!"

"테챠아아아아아아................테벳!!!!!!"

차녀 또한, 언니의 옆에 떨어져 사이좋게 하나의 검붉은 덩어리가 되었다.

"지벳!"

"텟!"

"지!!"

계속된 실패, 탁아왕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간다. 거기에 반해 자식을 잃은-그리고 자식을 탁아하여 사육실장이 되겠다는 꿈도 잃어버린 실장석들의 얼굴은 울퉁불퉁하게 찌그러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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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나는 탁아왕을 죽이는 대신 준비해간 커터칼로 오른팔을 절개하고, 뼈의 끝부분을 약간씩 깎아놓는다거나, 근육을 헤집어 놓는 식으로 팔을 망가뜨려 놓았다. 물론 그 후 실장활성제를 절개한 부위에 발라 바로 재생시켰으므로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고 일상적인 활동에도 지장은 없지만, 뼈와 근육이 이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형태로 재생되었다.

야구선수가 어깨나 팔꿈치의 수술을 받고 구속과 구위가 떨어져 전성기의 기량을 되찾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경우는 허다하다. 비슷하게, 약간이지만 뒤틀린 형태로 재생된 팔을 가지고는 감각이 떨어져 제대로 된 탁아를 하지 못한다.

그렇게 탁아 기술을 잃어버린 탁아왕은 그저 이상한 팔을 달고 있는 기형실장석일 뿐이고, 과도한 스트레스가 되어 위석의 붕괴를 불러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황은 내가 생각한것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테벳!!!"

10마리째의 자실장도 바닥에 처박혔다. 더이상 탁아할 자실장은 남아있지 않다. 마침내 아이를 잃은 친실장들의 손발이 탁아왕에게 날아든다.

"오마에 때문인 데스"

"데뎃?"

"오마에 때문에 자들을 모두 잃은 데샤아아아아아아!!!!"

"뭐가 탁아왕인데스!!!! 아이를 죽이는 똥분충인데스!!!!"

아무리 보통 실장석보다 튼튼한 체격을 가진 탁아왕이라도, 숫자의 폭력 앞에서는 달아날 길이 없다. 몇차례 실랑이가 벌어진 끝에 온몸에 시퍼런 멍이 든 독라가 되었다.

"여기서 큰소리를 내다 똥닌겐들에게 들키면 곤란한데스, 와타시가 이 분충의 집을 아니까, 거기 가서 끝장내버리는 데스"

"이 분충의 자들도 똑같은 꼴로 만드는 데스!"

"재산은 모두 몰수하는 데스!"

"아이들은....아이들은 봐주는 데스!!! 부탁하는 데스!!! 데에엥 데에엥!!!""

그렇게 실장석들은 탁아왕의 다리를 잡고 질질 끌며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탁아왕은 아마도 동족들에게 잡아먹히거나 린치당해 죽게 될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어째서 자신의 탁아기술이 사라졌는지, 어쨰서 계속 실패하는지 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비통하고 억울한 심정으로 죽을 것이다. 내가 원했던 결과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 또한 만족스러운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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