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신불


실장석으로 인한 피해를 가장 크게 입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모두 공원이라고 답할 것이고, 그 다음을 물으면 편의점이라 답할 것이다. 그럼 그 다음은? 의외의 사실이지만 불교 사찰은 실장석 피해를 크게 입는 곳 중 하나이다. 승려들은 모두 머리를 밀어 실장석 입장에서는 노예처럼 보이고, 불교의 교리상 살생을 할 수 없어 실장석을 내쫒고 기피제를 뿌리는 정도의 대응밖에는 할수 없기 때문이다.

두루산 어귀에 있는 두루사도 실장석 피해로 골머리를 앓는 곳 중 하나이다. 이곳은 산 밑의 두루마리 공원과 그리 멀지 않은데다가 길로 연결되어 있어 공원의 생존경쟁에서 밀려난 개체들이 흘러들어오기 쉽고, 그래서 만성적인 실장석 피해를 입고 있다.

"데샤앗!!!! 데스데스!!! 데퍄파파파파파!!!!!!"

"테칫! 테치테치~ 텟테로케~~ 테프프프프프...."

"레후~ 프니프니 레후~"

지금 두루사 경내를 마음껏 싸돌아다니며 똥을 뿌리고 있는 이 실장석 일가도 그런 케이스이다.

이들은 본래 두루마리 공원에서 살고 있었으나 큰 비가 내리던 날 골판지 하우스가 침수되어 공원을 떠날수밖에 없었고,

며칠을 정처없이 떠돈 끝에 간신히 두루사에 도착했으나, 그때는 이미 기아로 가족 전원이 극도로 쇠약해져 연약한 저실장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때 실장석 일가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실장석 일가가 두루사에 도착한 그날은 마침 부처님 오신 날, 불교 최고의 축일이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한산하던 경내에 사람이 가득했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애호파는 물론 실장석을 싫어하는 사람조차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비의 뜻을 되새기며 이 죽어가는 실장석 가족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그야말로 부처님이 베푸신 은혜라고 해도 좋을 상황이다. 이것을 계기로 실장석 일가가 깨달음을 얻어 소박한 행복에 만족하고 인간과 더불어 살았다면 무척이나 아름다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한 일가는 어느 틈에 골판지 상자며 비닐봉투 따위를 훔쳐 두루사 뒷편 숲속에 자리를 잡았고, 앞에서 말했듯이 승려들이 모두 머리를 밀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분충도가 계속해서 올라가 마침내 제멋대로 소리를 지르고 다니며 주방에 들어가 요리재료를 못쓰게 만들거나 약수터에서 목욕을 한답시고 똥을 지려 놓는 등, 패악질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마침내 실장석 일가는 대웅전에까지 침입해 본존불에 똥을 던져 놓았다.
이 만행에 당연히 두루사가 발칵 뒤집혔고, 그중에서도 가장 혈기넘치는 젊은 승려 철웅은 당장이라도 실장석을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으나, 불제자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일단은 실장석 일가에게 마지막 경고를 하였다.

"너희들이 더이상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숲에서 쫒아내지는 않으마, 그리고 음식도 약간 나누어 줄게."

하지만 그런 철웅의 경고는 시원하게 무시되었다.

"고기도 없는 똥같은 곳에서 살며 무슨 무례인 테칫!! 빨리 스테이크와 스시를 내놓는 테챠아아아!!!"

"여기가 와타치들의 집인 테치, 오마에들이야말로 어서 꺼지는 테챳!"

"오마에, 마라는 서는데스? 와타시의 총구에 한발 뽑는 데스웅?? 데퍄퍄퍄퍄!!!"

철웅에게 돌아온 것은 어떠한 반성도 사과도 없는, 신성한 도량에서 꺼낼 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더러운 소리 뿐이었고, 철웅은 마침내 분노가 폭발하여 손에 들고 있던 나무봉을 치켜들었다.

"이 똥벌레 새끼들!!! 내가 계율을 깨더라도 너희만은 작살내버리고 말테다!!!"

철웅은 친실장의 머리를 향해 봉을 휘둘렀다. 힘이 실린, 계율을 깨는 것을 감수하고 살생을 하기 위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봉이 친실장의 머리를 으깨기 직전에, 위엄있는 목소리가 그것을 제지했다.

"철웅아, 네 어찌 살생을 하려 하느냐."

목소리의 주인공은 두루사의 주지였다. 그는 두루사의 가장 윗어른이자 고아였던 철웅을 거두어 키워준, 부모와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철웅은 항상 그 앞에서는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고, 지금도 부모에게 나쁜 짓을 들킨 아이처럼 어쩔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지는 무어라 항변하려는 철웅을 손을 흔들어서 다시금 제지했다.

"그만 됐다. 내가 이 작은 녹색 시주들과 이야기할 터이니, 너는 가만히 있거라."

"예....."

주지는 고개를 푹 숙인 철웅을 향해 작은 미소를 보내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실장석 일가와 대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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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장장 30분간, 주지는 실장석들이 가감없이 쏟아내는 욕망의 언어들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참치 대뱃살로 만든 스시를 내놔라, 1++급 횡성 한우 스테이크를 먹어야겠다, 일본의 장인을 불러 수제 콘페이토를 만들어라, 비단으로 만든 핑크색 사육실장복을 대령해라, 흑발의 자를 낳기 위한 연예인급 마라노예를 대령해라, 전속 미용사와 피부관리사가 필요하다, 생활에 한치도 불편함이 없게 독라노예 천마리를 바쳐라, 일주일에 한번은 국내여행, 한달에 한번은 해외여행을 가야겠다......

제정신으로는 5분도 듣고 있기 힘든 소리들이지만 과연 오랜 세월 수행한 고승답게 주지는 온화한 표정으로 그것을 모두 들어주었고, 실장 일가가 떠들만큼 떠들고 숨이 차 시뻘개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자, 그제서야 입을 떼었다.

"잘 알았습니다. 고귀한 시주분들이니 고귀한 대접이 필요하다.....그런 이야기군요."

자기들의 소원을 이루어줄 노예라고 생각한걸까. 실장 일가는 콧김을 씩씩 뿜어대며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스!!! 당연한데스!!!! 오마에들 대머리 닌겐은 노예인데스!!! 와타시의 말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데샤아아아악!!!!!"

주지의 얼굴이 아주 잠깐 굳었다가 다시 풀어진다. 관찰력이 충분하다면 그 순간적인 표정변화에서 무언가를 읽어낼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미 욕망이 위석을 지배한 이 어리석은 실장 일가는 데갸데갸 소리지르며 날뛰기에 바빠, 그 표정을 읽는 일 따위는 불가능했다.

"음....그렇다면 녹색 시주 여러분, '부처'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주지의 입에서 나온 말에 철웅과 실장일가의 눈이 동시에 커진다. 한쪽은 황망함으로, 한쪽은 호기심으로.

이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생물이 부처가 되다니 그것이 무슨 말인가, 이런 놈들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말인가? 철웅은 도저히 주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무어라 따져 물으려 했으나, 그보다 한박자 빠르게 친실장이 말을 꺼냈다.

"부처가 뭐인 데슷? 그건 좋은 것인 데스우?"

주지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자이셨고,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장성한 다음에는 깨달은 자가 되어 누구보다도 존귀한 몸이 되셨고, 그 가르침은 지금까지 남아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계십니다."

엉성하고, 많은것이 빠져있고. 편향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그런것을 알 리 없는 실장석들은 듣기 좋은 말의 나열에 흥분해서 팔을 붕쯔붕쯔 휘두르며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되는데스!! 그 부처란거 세레브한 와타시에게 딱 맞는데스!!! 와타시가 부처가 되면 닌겐 부처보다 훨씬 위대할게 분명한데스!!!"

"와타치가 먼저인 테치!! 가장 빨리 부처가 되는 테치!!!"

"천상천하 유아독존 레후?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은 레후......."

"좋습니다. 그럼 녹색 시주 여러분들을 부처로 만들어 드리기로 하지요. 하지만 오랜 수행을 거쳐 부처가 되는 것은 시주께는 힘든 일일 겁니다. 그러니.......'즉신불'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주지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아 철웅에게 신호를 보냈다. 즉신불로 만든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철웅은 주지의 뜻을 이해했다.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건가?

"주지 스님! 그건.....!"

"어허!"

노승의 일갈에 철웅은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녹색 시주들의 몸을 씻기고 옷을 빨아드려라. 몸이 우선 청결해야 '수행'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예......."

철웅은 더이상 따져 묻기를 포기하고 주지가 시킨 대로 실장석 일가를 수돗가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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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프픗, 와타시가 더 아름다워져버린 데스, 세상 모든 수컷들의 마라가 움찔거릴게 분명한 데스. 데프프프프픅!!"

"와타치의 부드러운 살결을 보는 테치! 꽃님의 냄새가 나는 테치!!"

"머리카락도 찰랑거리는 테치, 와타치의 아름다움은 이미 죄악인 테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욕다운 목욕, 빨래다운 빨래를 경험한 실장 일가는 황홀경에 빠져 있다. 물론 힘들여 자신들을 씻겨준 철웅에 대한 감사라고는 조금도 없다.

철웅도 딱히 감사를 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없다. 그보다는 앞날을 모르고 신나서 알몸으로 뛰어놀며 데프프 웃고있는 실장석들을 보며 측은한 마음이 들 뿐이다. 방금전까지 분노하여 죽이려 했던 대상에게 측은한 마음을 느낀다는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즉신성불한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불교에는 등신불이라는 것이 있다. 승려의 수행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좌선한 채로 입적하여 그 시신이 썩지 않고 미라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그 육신이 모두 사리이며 고승은 사람들 곁에 있었던 부처였던 것으로 여겨 존경하고, 추앙한다. 그리고 미라화된 시신은 육신보살, 혹은 등신불이라 부르며 옻칠을 하여 부패를 막고 금박을 입혀 소중히 모신다.

일본에는 인위적으로 이 육신보살, 등신불이 되기 위한 수행법이 존재한다. 그것을 보통 즉신불, 즉신성불이라 부르는데, 살아있는 몸을 스스로 미라화 시키는 것이니 그 과정이 대단히 고통스러워 인내심이 강한 고승들조차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설령 성공하여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남은 육신이 부패해 실패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앞으로 실장 일가가 겪게 될 일은 바로 이 일본식의 즉신불 수행이다. 산채로 미라가 되어야 한다. 길고 괴로울 것이다. 어쩌면 아까 나무봉에 머리를 맞아 단번에 목숨이 끊어지는게 차라리 편하고, 자비로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철웅은 생각했다.

"데갸-----앗!! 묙욕이 끝나면 간식시간인게 당연한데 뭐 하는데스 똥닌겐!!! 빨리 쿠키와 커피를 내오는 데스!!!

"콘페이토와 젤리로 장식된 시원한 빙수를 내오는 테치!!"

"와타치는 고기!! 고기가 먹고 싶은 테치!! 삼겹살을 굽는테치!!!!"

"프니프니후~"

그리고 아직도 분수를 모르고 분충대사를 내뱉는 실장석들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철웅은 실장네무리 스프레이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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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푸우....데푸우......데....데뎃?!"

"테힛? 기분이 이상한 테치이......."

잠에서 깨어난 실장 일가는 묘한 상실감과 두근거림을 느꼈다. 위석이 몸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위석은 일가가 잠든 사이 철웅이 시내로 데리고 나가 실장샵에서 적출하고 코팅까지 마쳐놓았다. 이제부터 펼쳐질 즉신성불 수행에 있어 육체가 미라화 되기 전에 위석이 먼저 깨져 죽어버리면 모든것이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긴 어디 데스? 자들은 어디 있는 데스우~~~????"

"마마!!! 여기 테치!!! 마마가 안보이는 테치!!!"

"프니프니를 바라는 레후!"

일가가 있는 곳은 두루사 한켠에 있는 폐우물 터였다. 과거 70년대 초까지는 이곳에서 물을 길어다 마셨으나 그 후 상수도가 깔리며 버려졌고, 이후 사고를 우려해 흙과 자갈을 부어 메워 놓았다.

주지는 철웅이 실장샵에 다녀오는 사이 이 폐우물을 정돈하고, 나무 판자로 칸막이를 만들어 놓았다. 배가 고프면 가족끼리도 잡아먹는 녀석들이니, 그러니 못하도록 한마리씩 격리시켜놓기 위함이다.

이제부터 실장 일가는 이 폐우물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사방이 콘크리트 벽으로 되어 있고, 위에는 무거운 나무 덮개로 덮여 있으니 탈출이 불가능한것은 물론, 빛 한점 새어들어오지 않는다.

"데에에엥!!! 데에에엥!!!"

"테에에에에에에엥----!!!"

마침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패닉에 빠진 일가가 크게 울어댄다. 서로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전혀 보이지가 않으니 두려움은 배가 되고, 가족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날뛰다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부딫혀 상처를 입는다.

그때, 덮개가 열리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주지다. 그는 여전히 자비로운 표정으로 실장석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주지를 보자 실장 일가는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화를 내며 주지에게 따져 물었다.

"데샤아아앗!!!! 똥닌겐이 감히 고귀한 와타시에게 무슨 짓인 데스!!! 이런 곳에 가두다니 오마에 미친 데스???"

"건방진 테치!!! 패죽이는 텟샤!!!!"

더러운 말을 내뱉는 실장석 친자를 보고서도 주지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그저 웃는 얼굴로, 가지고 있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누어줄 뿐이다.

꺼낸 것은 약간의 야채나 과일 조각 그리고 녹두나 팥 약간. 신선하고 깨끗하지만 전혀 조리는 되어있지 않고, 실장석 한마리의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당연히 실장 일가는 팔을 붕쯔붕쯔 흔들며 욕설을 내뱉는다.

"즉신불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오곡을 끊어야 합니다. 오곡은 쌀, 보리, 조, 콩, 수수를 일컬음이니, 이것으로 만든 음식은 시주께 대접해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즉신성불하기 위해 수행을 시작하였으니, 그것을 드시지요."

주지는 실장 일가에게 즉신불 수행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친절히 그것을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실장석들은 있는대로 목청을 올리며 화를 낼 뿐이다.

"그런거 모르는데스! 고귀한 와타시는 세레브한 생활을 하면서 부처가 되는데스!! 그딴 수행은 노예인 오마에나 하는 뎃샤!!!!"

"그런 테치!! 와타치타치는 이미 천상천하 유아독존인테치!!!"

"수행은 끝난 테치, 이미 와타치는 부처인 테치, 배 꼬륵꼬륵 하니까 빨리 삼겹살을 굽는 텟치"

주지는 날뛰는 실장석들을 일부러 무시하는듯이, 품에서 작은 기계를 꺼냈다. 낡아빠진 MP3 플레이어다. 주지는 그것을 친실장이 있는 곳에 내려놓고, 버튼을 눌러 재생시켰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반야심경이 흘러나온다. 실장석들이 빵콘을 하며 인상을 찡그린다. 지독한 냄새가 풍겨나오지만 주지는 개의치 않고 말을 건다.

"이건 시주분들의 마음을 다스리라고 틀어주는 것입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깊은 깨달음을 담고 있는 경전들이니, 독송하고 터득하게 되면 여러분도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분명, 반야심경을 비롯해 금강경, 천수경 등 이 MP3 플레이어에 담겨있는 불경들은 대중적이면서도 심오한 불교의 정수를 담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실장석들에게 있어서는 뜻모를 소음일 뿐.

"레후?"

그나마 저실장만이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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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이 지났다. 음식은 오곡을 제외한 곡식, 야채나 과일만이 겨우 허기를 달랠 정도만 주어졌다. 단식 일주일에 접어들 무렵부터는 단식으로 근육이 손실되면 안된다면서 실장채로 때려가며 강제로 두세시간씩 달리게 했다. 이 운동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종일 어두운 폐우물에 갇혀 씨끄러운 소음, 즉 불경을 들어야 한다.

실장 일가의 몸은 점차 말라가고 있다. 한동안은 똥을 먹어가며 버텼지만 갈수록 영양이 고갈되어 이제 똥조차 잘 나오지 않는다. 이미 실장석 하면 떠오르는 피둥피둥한 몸매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석은 아직 깨어질 기미가 없다. 전문가의 코팅을 거치고 강력한 보호제에 의해 보호받는 이 위석들은 결코 육체보다 먼저 파괴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도 날이 밝고, 덮개가 열리며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실장 일가를 관리하는 일은 두루사의 승려 모두가 돌아가면서 하고 있어 매일 나타나는 얼굴은 다르지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주지가 온다.

그리고 오늘, 주지가 나타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인자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음식을 꺼낸다.

"데........."

음식이 바뀌었다. 이제는 숫제 곡식이 아니라 약간의 나무열매 뿐. 영양가도 적을 뿐더러 양마저 줄었다. 하지만 한달간의 오곡단식을 거친 실장석들은 항의를 할 기력조차 잃어버리고 있다.

"이제는 오곡단식을 넘어 십곡단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십곡은 오곡과 대두, 녹두, 메밀, 참깨, 피를 함께 일컫는 것이니, 십곡단식의 수행을 하게 되면 모든 곡기를 끊고 나무열매로 기력을 보충하게 됩니다."

주지는 실장석들에게 십곡단식을 설명하는 한편, 주머니에서 물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이, 옻나무를 달여 만든 차를 마시며 몸속의 독소를 제거하고 건조시킵니다. 쭉쭉 들이키세요"

그렇게 말하며 주지는 강제로 실장석들의 입을 벌리고 물병에 담긴 옻나무 차를 부어넣었다. 나쁜 맛에 본능적으로 빵콘을 하기 위해 괄약근이 열리지만, 분대가 텅텅 빈 실장석들의 총배설구에서는 방귀만이 풍풍 나올 뿐, 똥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제 운동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녹색 시주들께서는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참선하며, 즉신불이 될 때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호소하는 눈빛을 보내는 실장석들을 무시하며 주지는 덮개를 덮었다.

"데이....데이......"

"테히이이이......테흐으으으으....."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다시 덮개가 덮인 폐우물에 실장석들이 벌렁 드러누웠다.

"마마....저 똥닌겐들을 패버리는 테치.......마마는 강하지 않은 테치이.....??"

자실장 하나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건넨다. 하지만 친실장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데이이....데이이......"

결국 그렇게 해주겠다고도, 못한다고도 말할 수 없는 친실장은 자실장들의 말을 외면하며 일부러 앓는 소리를 크게 내어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다.

"고집멸도를 알아야 하는 레후......집착은 고통으로 연결되니 바른 수행으로 고통을 끊고 지혜와 자비의 삶을 살아야 하는 레후..."

그렇기에, 친실장의 큰 목소리에 가려 저실장이 작게 되뇌이는 소리를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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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달이 지났다.

'파킨!'

"아, 이녀석들 위석 깨졌네."

마침내 실장석들의 '수행'이 끝났다. 병에 들어있던 위석들은 검게 물들어 마침내 맑은 소리를 내며 하나둘씩 꺠졌다.

철웅과 주지는 마무리를 짓기 위해, 폐우물로 향했다.

예상대로, 그곳에는 비참하게 말라 비틀어진 실장석들이 있었다. 최후의 최후에는 옷과 머리카락까지 뜯어먹은 것인지 묘하게도 독라가 되어 있었고, 눈에서 절망의 검은 눈물이 추악하게 일그러진 얼굴 위를 타고 흘러내린 자국이 완연했다.

"데....뎃스웅......"

갑작스런 소리에 철웅이 놀라 뒷걸음질을 친다.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던 걸까, 친실장이 주지와 철웅을 보자 아첨을 해온다.

하지만 그것이 최후의 기력을 짜낸 행동이었는지, 더이상은 움직임이 없다.

철웅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상하지 않도록 조심히 실장석들의 시체를 집어올렸다. 가까이서 본 실장석의 얼굴들은 세상의 모든 업을 다 진듯한 비참한 모습이었다. 철웅은 적어도 그녀들이 실장석이 아닌 다른 생물로 윤회하기를 바랬다.

친실장, 자실장....한마리씩 실장석의 시체를 양동이에 담던 철웅의 눈에 저실장이 보였다.

'!!!"

저실장은 어미나 자매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독라가 되지도 않았고, 여위기는 했지만 더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죽어 있었다.

철웅은 떨리는 손으로 저실장의 시체를 들어올렸다. 순간적이지만 머리 뒤에 황금색의 광배가 떠올라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이 작은 벌레같은 생물에게도 불성이 있어, 해탈에 이르렀단 말인가? 철웅의 가슴에 묵직한 충격이 흐르고, 심장의 박동이 빨라진다. 주지에게도 저실장의 시체를 보여주었으나,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 단숨에 때려죽이려는 것을 막고, 이렇게 번거롭고 고통스러운 방법을 이용하여 실장석들을 죽이도록 한 것은, 자신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주려는 주지 스님의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철웅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상당히 오랫동안 이녀석들의 이야기를 듣고 계셨지. 어쩌면 그때 이 저실장에게서 무언가를 느꼈는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 해도 가능성이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지의 진의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깨달음을 얻은 녀석 없이 모두 비참한 몰골로 죽었다 해도, 그건 그거대로 가르침이 될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주지가 불살생의 계율까지 어겨가며 이런 일을 한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이 철웅의 마음속에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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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두루사에는 새로운 명물이 생겨났다.

옻칠을 하고 금박을 입힌 저실장은 '우지부처'라 불리며, 미물이라도 깨달음을 얻어 해탈할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증거가 되어 대웅전 본존불의 발치에 모셔지게 되었다.

한편, 그저 부패를 막기 위해 옻칠만을 해놓은 실장석 친자의 미라는 대웅전 밖에 작은 불단을 만들어 안치해 놓았다. 그 모습은 집착과 욕망에 빠져 고통속에서 헤매이는 중생 그 자체이다.

두루사를 방문한 사람은 대웅전 밖에서 친자를 보고 안에서 우지부처를 보게 된다. 이 흐름이 묘한 감명을 주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실장석 일가는, 정말로 죽어서 훌륭한 가르침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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