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선비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세 명의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세 명은 모두 과거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어느 해 마침내 과거시험이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과거시험을 위해 서울에 갈 채비를 하던 어느날, 세 선비중 한명인 갑돌이의 어머니는 불안한 마음에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쳐보았습니다.

"실장석의 똥을 먹지만 않으면 과거에 급제할 것이오"

점쟁이는 이런 점괘를 내놓았고, 그 말을 어머니께 전해 들은 갑돌이는 성을 냈습니다.

"내가 어찌 그런 미물의 분변을 입에 대겠는가! 고약한 점쟁이로다!"

하지만 점괘를 다시 생각해보자, 이것이 오히려 아주 좋은 점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짐승의 분변을 먹을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이는 내가 과거에 급제할 것이라는 뜻이 분명하다!"

갑돌이는 이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갑돌이는 다른 두명의 선비인 을수, 병철이와 합께 길을 떠났습니다.
이 세 사람은 사실 서로를 내심 미워하고 있었으나, 서울까지 가는 길은 고독하고 위험하기에 별 수 없이 길을 함께한 것입니다.

세 사람의 여행은 즐거웠습니다. 모두 마을에서 손꼽히는 부잣집의 아들들이었기에, 충분한 노잣돈을 가지고 술을 벗삼아 반쯤은 유람하는 기분으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서로간의 미움도 약간은 누그러들어, 어느날 갑돌이는 술에 취해 자신의 점괘에 대해 둘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을수와 병철이 또한 점을 쳐 보았고, 똑같이 '실장석의 똥을 먹지 않으면 급제한다' 는 점괘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세 선비는 크게 웃었습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입에 댈리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급제하여 부귀영화를 누릴걸세!! 하하하하하!!!!!"

그러던 어느 날, 세 사람은 하룻밤을 묵어 가기 위해 길가의 주막에 들어갔습니다.

"데에엥~ 데에엥~ 데승, 데승"

들어가자 마자 세 사람의 눈에 보인것은 특유의 녹색 옷을 모두 벗은 나체상태의 실장석이었습니다. 세 사람이 점괘가 생각나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주모가 나타나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아이구 죄송혀유, 우리 집에서 키우는 놈인디 낮에 물가에서 놀다 옷이 홀딱 젖었지 뭐여유, 그랴서 빨개벗겨놨더니 질질 짜네유, 야 참피야! 그만 울고 손님들 뫼셔라!"

데승 데승 울던 나체실장은 울음을 그치더니 꾸벅 인사하고 세 선비를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세 선비는 불안했지만 이미 해가 지고 있어 다른 숙소를 찾기에는 너무 늦었고, 훈육이 잘 되어 있는걸 보니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나 싶어 주모에게 닭 한마리를 잡아 저녁식사를 만들어 달라고 한 뒤, 안내에 따라 방에 들어갔습니다.

세 선비는 여행의 피로가 쌓인 탓에 방에 들어가 짐을 풀자마자 자리에 누웠습니다. 주모가 저녁밥을 준비하려면 두어시간은 걸리기때문에, 그동안 잠시 눈을 붙일 요량입니다. 방이 그리 넓지 않아 을수와 병철이는 각각 한쪽 벽에 붙어서 누웠고, 갑돌이는 부엌문 근처에 얼굴을 놓고 길게 누웠습니다.

갑돌이가 막 잠이 드려는 순간,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참피야 가서 감자 두개만 가져와라,"

"데슷!"

부엌문 근처에 누워있던 갑돌이가 문을 살짝 열고 부엌을 보니 밖에서 나체의 실장석이 아장아장 걸어 부엌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뎃뎃거리며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마침내 한쪽 구석에 놓인 감자더미를 찾아 감자를 집으려 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실장석은 머리가 크고 뱃살이 푸짐하여 균형이 잘 안맞는 데다가 손가락도 없는 뭉툭한 손을 가지고 있어 허리를 굽혀 무엇을 집는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데에에엑....데에에에엑"

실장석은 혼신의 힘을 다해 감자를 집으려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감자를 집어올렸을때.





"뿌다닷!!!"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데겍!!?? 데....데데데?"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실장석이 당황하여 허둥대다 근처에 있는 지푸라기를 발건하여 그것으로 뒤처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실수를 잘 숨겼다는 듯이 데스데스거리며 손을 허리에 대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만족스런 표정을 짓더니 다시 감자를 집어 밖으로 나갔습니다. 배가 비어서 그런지 아까보다는 수월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갑돌이는 보았습니다. 아까 전 기세좋게 튀어나간 실장석의 물똥 한방울이 닭을 삶던 가마솥 안에 빠졌다는 것을.

'저....저거!!'

갑돌이는 놀라서 당장 을수와 병철이를 깨우고 주모를 불러 솥 안의 음식을 버리려 하였지만, 순간적으로 나쁜 꾀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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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시간이 되자 주모가 밥상을 차려 왔습니다. 을수와 병철은 눈을 번들거리며 밥상에 달려들었으나, 갑돌이는 배가 아프다며 저녁을 먹지 않겠다 말하고 한쪽 구석에 누웠습니다. 두 사람에게 실장석 똥을 먹이고 자기는 먹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한 사정을 알 리 없는 을수와 병철이는 저녁밥을 먹으며 누워있는 갑돌이를 조롱하였습니다.

"허허, 배가 아파 이 맛있는걸 못 먹는다니 안됐네 그려."

"그러게 말일세, 이 닭국이 비리지 않고 쌉쌀하고 구수한게 아주 별미인데 말이야. 헛헛헛헛"

등 뒤로 두 사람이 빈정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속으로는 즐겁기만 하였습니다.

'네놈들은 그 닭고기에 실장석 똥이 들어간 것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너희는 그걸 먹었으니 과거에 떨어질 것이요, 먹지 않은 나만이 급제할 것이로다!'

그날 밤, 갑돌이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녁 내내 아프지도 않은 배를 핑계로 누워있었던 데다가 저녁밥을 걸러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먹을 것이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갑돌이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습니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야채 조각입니다. 갑돌이는 아까 두 녀석이 먹던 밥상에서 떨여졌나 하고 그것을 집어 먹었습니다. 쓰고 구린 맛이 나는게 이상한 음식이었지만 시장한 터라 대충 씹어 넘겼습니다.

다음 날, 행장을 꾸리던 세 사람의 방에 주모가 들어와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한 을수가 물어보니

"아 글씨 실장석 새끼가 요새 똥질을 혀서 무 쪼가리로 똥구멍을 막아놨는디 고게 어디갔는지 모르것네유..."

라고 답하였고, 그 순간 갑돌이는 어젯밤에 먹은 야채 조각의 정체를 알아채고 구토를 하고는, 어제 있었던 일을 을수와 병철에게 말했습니다.

한 시간 후, 주막을 나선 세 사람의 발길은 서울이 아닌 고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실장석의 똥을 먹었다는것을 알게 된 세 사람의 얼굴에는 분노가 들끓었고, 갑돌이의 손에는 주모에게서 받아온 실장석이 들려 있었습니다.

"데스 데스 데스으!!! 데샤아아아아앗!!!!"
(똥닌겐이 자기들끼리 나쁜 꾀를 부리다 망했으면서 왜 와타시에게 화풀이인 데샤아아아!!!")

"데에엑!! 데에에에에!! 데스읏!!!"
(운치를 지린건 잘못이지만 주인님에게 말해서 그냥 다른걸 먹으면 됐을거 아닌 데스으으!!")

실장석은 타당한 항변을 하였으나 당시는 린갈이 없던 시대, 항변은 데스데스거리는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물론 실장석의 말을 이해한다고 해서 세 사람이 분노를 거둘 것 같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분노한 인간의 손에 떨어진 실장석의 운명은 보지 않아도 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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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故 고우영 화백의 '오백년'에서 봤는데, 아마 그것도 조선시대의 설화를 만화로 옮겼을 겁니다.

원전에서는 (당연히) 실장석 대신 아기가 나오고, 어머니의 등에 업힌 아기가 설사를 해서 솥에 똥이 들어갑니다. 그 부분과 결말 부분만 적당히 실장석 이야기로 각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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