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육



"자, 기상! 어서 일어나라!!"

"데이이......"

"데후으으으으......."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을 알리는 인간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허름한 창고 안에서 낡은 모포며, 걸레나 다름없는 수건 따위를 덮고 자던 실장석들이 눈을 비비며 굼실굼실 깨어난다.
겉모습은 하나같이 민둥민둥한 독라, 귀에는 관리용의 ID태그, 오랜 노동으로 홀쭉해진 모습들. 전형적인 노동석들의 모습이다.

"빨리 움직여 이 똥벌레 새끼야!!"

"데갹!!!"

"이녀석은 왜 안 움직여?.......이런, 죽었잖아?? 젠장!!"

꾸물대던 녀석들이 걷어차이고, 밤새 죽은 실장석들의 시체가 인간들에 의해 난폭하게 붙잡혀 창고 밖으로 내던져진다. 그러나 그런 소동에도 불구하고 노동석들은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이, 관심을 두지 않고 일렬로 서서 느릿느릿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서도 노동석들은 멍한 눈동자로 그저 눈앞에 놓인 먹이를 기계적으로 입에 집어넣을 뿐이다.
먹이는 몇알의 실장푸드와 그보다 조금 더 큰 정체불명의 정육각형 젤리 하나. 애초에 기뻐하며 맛을 음미할만한 식단도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식욕의 화신인 실장석의 식사장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조용하고 무기력하다.

식사가 끝날 때가 다가오자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져 간다. 무기력함을 넘어 공포와 절망이 실장석들을 잠식한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을 멈출 도리는 없다.

"식사 끝! 어서 모여라!!"

"데히익!!!"

"데에에에에엥!!!"

식당 출구가 열리며 인간의 고함소리가 들려오자 곳곳에서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소동 없이 실장석들이 질서정연하게 출구로 향하는 것은 노동석들의 위석에 폭력으로 각인된 기억이 몸을 저절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리라.
실장석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울고, 몸을 떨면서도 한발한발 익숙한 그 길을 따라 공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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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1조 준비해라."

비명과 울음소리로 얼룩진 행군이 끝나고. 노동석들은 공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바로 작업에 투입되지는 않는다. 이 공장에서는 매일 아침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실장석들을 공포에 젖게 만드는 최대의 원인이다.

"자, 이제 뿌린다. 눈 크게 떠라"

말을 마친 남자는 다리를 벌리고 줄지어 앉아있는 노동석들의 녹색 눈에 붉은 액체를 뿌렸다.
실장석의 생태에 대해 약간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테지만, 이렇게 되면 실장석은 강제출산 모드에 들어가 불과 수초간의 짧은 임신 후 곧바로 새끼를 낳기 시작한다. 물론 이곳의 노동석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액체를 맞은 1조 노동석들은 곧바로 배가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다리 사이에 놓인 플라스틱 그릇에 새끼를 낳기 시작한다.

"텟테레~"

"텟테레~"

"렛치레~"

비록 수초만에 형성되어 세상으로 나온, 그래서 정상적인 임신기간을 거친 자실장들보다 훨씬 보잘것없고 멍청한 녀석들이지만 탄생의 기쁨을 알리는 소리는 우렁차다.

하지만, 그에 반비례해 친실장, 즉 노동석들의 얼굴은 어두워져 간다. 10분 후의 미래를 알지 못하고 방긋방긋 웃으며 점막을 떼내려 몸부림치는 아이들이 애처롭기만 하다.

"1조! 끝났으면 어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서 일할 준비를 해라! 2조! 너희는 그릇 놓고 앉아서 준비해라!!!"

인간들은 강제출산을 마친 노동석들에게 조금의 쉴 시간도 주지 않는다. 고함을 지르고 바닥을 발로 차며 윽박지른다.
강제출산으로 체력이 소모된 탓에 데히데히 가쁜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실장석들은, 그 소리에 놀라 간신히 무릎을 세워 일어나서는 갓 태어난 새끼들이 든 플라스틱 그릇을 들고 작업장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기 시작했다.

노동석들의 작업공간은 심플하다. 눈앞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있고, 한쪽 옆에는 구멍이 뚫린 작은 탁자가 있을 뿐이다. 실장석들의 신체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편히 앉아서 작업할 의자도,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줄 여유공간도 없다. 작업이 끝날때까지 실장석들은 오로지 서서 일해야 하며, 탁자에 슬쩍 기대는 것 외에는 피로를 덜 방법도 없다.

그 가혹한 작업장에 도착한 1조 노동석들은 탁자 위에 그릇을 내려놓고, 음울한 얼굴로 자실장들의 점막을 핥아서 벗기고 있다. 그것은 기념할만한 친자의 첫 스킨십, 일생일대의 기쁨의 순간이어야 하건만, 기쁜 얼굴로 테치테챠 떠드는 자실장들과 달리 어미의 표정은 굳어서 풀어질줄을 모른다.

"마마! 낳아줘서 감사한 테치! 앞으로 행복하게 사는 테치! 마마를 많이많이 돕는테치~"

"테프프, 못생긴 마마 테치, 독라인 테치, 얼른 사육실장으로 만들어 세레브한 생활을 시켜주지 않고 뭐하는 테챳!!"

노동석들에게 첫 인사를 올리는 자실장들의 행동은 다양하다. 꾸벅꾸벅 인사하는 양충도 있고, 독라모습의 친실장을 비웃는 분충도 있다. 하지만 노동석들은 그런 자신의 자들을 공평하게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마 이상한테치....쓰담쓰담도 안해주는 테치....와타치가 뭔가를 잘못한 테치? 화난테치???"

"똥마마!! 빨리 콘페이토를 대령하는 테챠아!!! 쓸모없는 테치이이이!!!"

자실장들이 그런 친실장의 태도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때쯤, 큰 벨소리와 함께 공장 전체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실장석들의 눈앞에 있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반응하듯이, 노동석들은 자실장들을 하나씩 잡아 옷을 벗기고 머리털을 뽑는다. 분충이건 양충이건 관계 없다. 자실장의 성품은 이 공장에서는 의미가 없다.

"마마! 왜 이러는 테치!!"

"테에에엥!!! 테에에에엥!!!"

"테히....테히....."

순식간에 공장은 자실장들의 울음과 비명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석들은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굳게 입을 다물고, 눈에 힘을 주고, 손을 들어 자실장들을 내려친다.

"테갹!! 테히!!"

"테에에엥!!! 테챠아아아앗!!!"

갓 태어난 연약한 자실장들은 친실장의 구타에 몸이 멍들고, 뼈가 부러지고, 피를 토한다. 하지만 간신히 죽음만은 면해 가늘게 테히테히 새된 숨소리를 내고 있다. 전신이 박살난 자실장들은 '왜 마마는 와타치를 때리는거야?' '와타치는 이제 어떻게 되는거야?' 라고, 작은 뇌를 굴려 생각해 보지만 답이 나올 리가 없다.

노동석들은 그렇게 '고뇌하는 고깃덩이'가 된 자실장들을 하나하나씩 컨베이어 벨트에 내려놓는다. 사지가 비틀리고 허리가 꺾여 기괴한 모습이 된 자실장들이, 원망의 눈으로 친실장을 응시하며 벨트에 실려 검은 장막 속으로 사라져간다.

친실장인 노동석들도 장막 속으로 사라져가는 자실장들을 바라보고 있다. 무표정한 가운데 무언가가 터져나올듯한 긴박감이 얼굴에 깃들어 있다. 그 모습을 공장 직원 외에 다른 누군가가 보았다면, 실장석의 얼굴에서 그렇게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표정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놀랐을 것이다.

떠나보낸 아이들의 머리털과 옷을 손에 쥐고 잠시 온기를 느끼던 노동석들은 자신을 다잡고 그것을 탁자에 뚫린 구멍에 버렸다. 자실장들을 모두 떠나보냈지만, 실장석들의 일과는 끝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이제 컨베이어 벨트 저편에서 다른 구역의 출산석들이 낳은 아이들이 온다. 그 아이들의 옷을 벗기고 머리를 뽑아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실어 보내는 것, 말하자면 독라만들기가 이곳의 노동석들에게 주어진 일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처지는 노동석의 아이들보다는 한층 낫다. 독라가 될지언정, 적어도 친실장에게 온몸이 짓이겨지지는 않으니까.

인간은 노동석들에게 '네놈들의 새끼는 네놈들의 손으로 으깨서 벨트에 놓아라, 출산석들의 새끼는 독라만 만들어서 내놓아라'라고 명령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이유를 안다고 해도 실장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불공평하다며 울부짖던 몇몇이 본보기로 쳐형당한 이후, 노동석들은 모든걸 체념하고 절망과 무력감 속에서 매일같이 아이들을 독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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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반,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다.

노동석들에게 인간기준의 24시간이란 시간개념은 없지만, 오래도록 패턴화된 생활을 해온 덕분에 실장석들은 오전의 일과가 끝나간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쓰러지지 않도록 기력을 짜내고 있다.

사건은 그때 벌어졌다.

"더이상은 못하겠는 데스으우우우우우우!!!!"

어딘가에서 비통한 울부짖음이 터져나온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주저앉아 땅바닥을 치며 적록의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왜 이래야 하는 데스!! 너무 괴로운 데스!!! 이제 아이들에게 슬픈일을 하는 것도 지친데스!! 차라리 죽여주는 데스우우우우!!!!"

아아, 또 나왔구나. 노동석들은 마음 속으로 한숨을 쉰다.
일주일에 한마리 정도는 저런 녀석이 나온다. 노동의 양도, 내용도 가혹하니만큼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저렇게 난동을 부린 이상 그 실장석의 최후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데스데스데스 씨끄럽네, 이리 와 이자식아."

감시역의 젊은 공장직원이 말썽을 일으킨 노동석의 귀를 잡아 올렸다. 노동석은 찢어지는 듯한 아픔에 한층 눈물콧물을 뿜어내며 버둥거리지만, 그래 봐야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아픔만 더할 뿐이다. 총배설구의 근육도 어느새 풀려 운치가 부릿부릿 흘러내린다. 하지만 이런 일에는 익숙한 듯이, 직원은 운치가 자신에게 튀지 않도록 노동석을 멀찍이 들고는 작업장 밖으로 나갔다.

잠시간 작업장에 적막이 흐른다. 반복되지만 익숙해질수는 없는 풍경이다. 고통스러운 노동석의 삶 속에서 정신은 한계에 달해 동료의식이라는 것도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같은 처지의, 언젠가는 자신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 동료의 최후를 보며 노동석들은 잠시 회한에 빠졌다.

직원은 난동을 부린 실장석을 들고 작업장 건물을 나와 공장 부지 한구석에 있는 작은 건물로 향했다.
아무리 청결하게 관리한다고 해도 수십 수백마리의 실장석이 모여있는 만큼 상당한 실장취가 나는 작업장에 비하면 맑은 공기가 감돌고, 살풍경한 기계 대신 사무용 가구와 컴퓨터, 진료대 따위가 놓여 있어 오래된 병원같은 인상을 풍기는 건물이다.

"반장님~샘플 가져왔어요~"

힘차게 문을 열며 밀어닥친 직원이 꾸벅 인사하고는 말했다. 반장이라 불린 중년의 남자는 보고 있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되묻는다.

"어디의 몇조?"

"C동 1조요."

"여기 두고 가봐."

젊은 직원은 옙, 하고는 노동석을 빈 수조에 내려놓고, 들어올 때와는 달리 목으로만 가볍게 인사한 뒤 문을 나섰다.

'여긴 어디인 데스.....와타시는 어떻게 되는 데스우......"

수조에 갇힌 노동석은 난생 처음 와보는 건물의 벽이나 천장을 쳐다보며 불안에 떨고 있다.
실장석답게 행복회로가 발동하여 '옷과 머리를 되찾고 사육실장이 되어 행복하게 될지도 모르는데스!' 라는 생각이 위석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기도 했지만, 그동안 노동석으로 살아오며 겪었던 비참한 기억들은 그런 형편 좋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일깨워 주어 행복회로를 억제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어차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노동석들의 운명은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 수조 안의 독라 노동석은 그리 길지 않은 실장생에서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디 보자. 흠흠"

그러는 사이에 반장이라는 남자는 서류작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노동석이 들어 있는 수조로 다가왔다. 짧은 키에 튀어나온 배, 반쯤 벗겨진 머리, 농담으로라도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는 외모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나 간신히 프로다운 풍모를 유지시켜주고 있다.

"음.....이정도면 나쁘지 않군.....색도....근밀도도....음, 꽤 좋아."

반장은 노동석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으며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노동석은 반장의 거친 손길에 두려움을 느끼는 한편, 때때로 그 손길이 민감한 곳을 향할 때마다 성적 쾌감을 느끼고 있다.

"뎃! 데훙!! 데우우우웅~~♡"

공장의 다른 구역에서 출산석의 새끼로 태어나 평생 인간을 위한 노동만을 해온 그녀에겐 처음 맛보는 강렬한 쾌감이다. 그리고 그 쾌감은 쉽게도 노동석의 정신무장을 해제하고, 행복회로가 만들어낸 망상이 뇌에 자리잡도록 도움을 준다.

'설마...와타시를 신부로 삼는 데스?? 사육실장이 아니라 신부로??? 그래서 아이를 잘 낳을수 있는 몸인가 만져보는 데스???'

약간의 상황변화가 일어나자 행복회로는 멈출줄 모르고 맹렬히 타오른다. 방금 전까지 훌륭히 억제하고 있었던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지금까지의 불행한 삶을 보상받으려는 듯이 끝을 모르고 나아간다.

"나....남펴....아니 닌겐상.....와타시는 이제 어떻게 되는 데스우??"

반장의 손놀림이 멈추자 노동석이 묻는다. 다리를 살짝 꼬고 부끄러운듯이 얼굴을 돌린 그 모습은 이미 노동석의 그것이 아니다. 인간의 신부가 된다는 망상에 빠진 분충의 얼굴이다. 지금의 질문도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것이 아니다. 이미 머릿속에서 확정된 장미빛 미래를 확인받고자 일부러 떠보는 것이다.

하지만 반장의 대답은, 노동석이 상정한 것과는 크게, 너무나도 크게 어긋나 있었다.

"인간에게 먹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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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의 고기는 스트레스를 주면 줄수록 맛있어진다.
특별히 대단한 지식은 아니다. 자취하는 대학생조차 알고 있을 만한, 자기 손으로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아는 상식이다.

규격화된 실장육은 대개 닭고기와 비슷한 맛이 난다. 좀 더 정확하게는, 푹 익혀 부들부들해진 돼지고기의 식감에 닭고기의 담백한 맛이 함께한다고 표현할수 있다. 이렇게 익숙한 고기와 비슷한 맛을 내면서도 가격은 한결 싸다는 것이 실장육의 장점으로, 보통 실장육 하면 이 맛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식의 세계로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정신과 육체의 상태에 따라 고기의 맛이 천차만별으로 변하는 실장석은 요리사와 미식가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었고, 먼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실장석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고통을 주며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절망육이라 부르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오랜 기간, 최소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상당한 강도의 정신적 고통을 받은 실장석의 고기는 체내의 아미노산이 스트레스에 의한 변이를 일으켜 일반적인 실장육과는 완전히 다른 맛을 내게 되는데, 여기서 한발 더 나가 특정한 성분이 담긴 먹이를 먹여 키움으로서 풍미를 더하고 운동으로 불필요한 지방을 제거하면 흔히 '절망육'이라 불리는 실장육이 만들어진다.

절망육의 맛 자체는 대중적이라 할 수 없다. 삭힌 홍어와 비슷하게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향에 산초와 같이 아린 맛, 지방이 제거되어 실장육 특유의 부드러움이 사라진 질긴 식감. 일견 값싼 보통 실장육에 비해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절망육을 사랑하는 소수의 매니아들은 바로 그 점에 절망육의 진가가 있다고 말한다. 얼굴을 돌리고 싶게 만드는 지독한 첫 맛은 그야말로 실장석의 일생 그 자체이며, 충분히 씹고 목으로 넘길때 느껴지는 약간의 달큰한 뒷 맛은 지독한 절망속에서도 실장석이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있던 희망, 행복에 대한 열망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묘한 중독성이 있는 맛과 실장석의 일생 자체가 응축되어 있다는 철학적 상징성 덕분인지, 절망육 요리는 당당히 미식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문제는 만들어내는 것이 어렵다는데 있다.

6개월 이상의 지속적인 정신적 고통을 가하면서도 파킨사시켜서는 안된다. 육체가 파괴되면 재생되는 과정에서 변이된 아미노산도 원래대로 복구되므로 육체재생을 일으키는 중대한 외상을 입혀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꾸준한 운동으로 지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복잡한 조건이 얽히고설켜 있다.

따라서 절망육 등장 초기에는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 여겨졌고, 필요하다면 전문적인 학대사나 고급 실장육업자에게 따로 주문을 넣어 만들어야 했으며, 한마리의 절망육 실장석을 만드는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보니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답을 찾아내는 법, 각고의 노력 끝에 노동석으로 절망육을 만드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노동석들이란 대개 규칙적인 생활과 강도높은 노동 덕분에 들실장이나 사육실장에 비해 지방질이 적은,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다. 본래대로라면 이런 몸은 식용으로는 부적합하다고 여겨지겠지만, 절망육에 있어서는 오히려 좋은 조건이라고 할 만 하다.

여기에 더해 지방질을 한층 더 감소시키고, 정신적 고통을 주기 위해 선택된 방법이 강제출산이다. 정상적인 임신과는 달리 강제출산 은 태아실장의 급격한 형성과, 출산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 열량이 높은 지방을 최우선적으로 사용한다. 다시 말하자면, 꾸준히 강제출산을 시킴으로서 실장석의 지방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편으로 강제출산은 실장석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어 절망감을 심어주는데도 이용된다.
녹색 눈을 적색으로 물들이는 형태의 강제출산은 그 자체로 실장석에게 있어서는 폭력적이고, 신체에 무리를 주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여기에 더해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직접 독라로 만들고 짓이겨서 내놓으라는 명령은 노동석들의 정신을 극한으로 내몬다.

그리고 차별, 노동석들의 아이들과는 달리 출산석들이 낳는 자실장들은 독라가 될 뿐, 짓이겨지지는 않는다. 그런 차별이 노동석들을 더욱 괴롭게 한다. 똑같은 아이인데, 아니, 내 아이가 더 귀여운데 어째서 이쪽만 그렇게 끔찍한 꼴을 당해야 하는가. 부조리한 현실에 노동석들은 속을 태우지만 인간은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그저 명령을 내리고 말을 듣지 않으면 끔찍하게 죽일 뿐.

하지만 노동석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이곳은 식용 실장 공장이다.
짓이겨진 노동석들의 새끼도, 멀쩡한 출산석들의 새끼도, 결국에는 인간의 입으로 들어간다. 형태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석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이 겪는 가혹한 노동과 끔찍한 체험은 실장석에게서 노동력을 착취함과 동시에 절망육을 숙성시킴으로서 절망육의 대량생산과 코스트 다운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악마적인 지혜가 만들어낸 절묘한 서커스 쇼와 같다. 노동석들은 원치 않는 쇼의 주인공이 되어 평생을 비탄과 절망속에서 살다 결국 먼저 떠난 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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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네 친구들은 바로 그 절망육용 노동석이란 말씀."

"데.....데데데......"

반장이 들려준 지나치게 가혹한 진실에 노동석은 뭐라 대꾸할 말조차 잊고 눈만 껌뻑거리고 있다. 충격으로 위석이 자괴할만도 하지만, 매일 아침 먹는 젤리에 들어있는 위석강화성분이 그것을 허락치 않는다.

"너희 1조는 이제 딱 한살이지? 성체가 되기까지 6개월, 그 후 노동석으로 일한게 6개월. 아주 좋아. 맛이 딱 좋을 때지."

"데히......."

"네 친구들은 며칠 내로 세척과 똥빼기를 한 다음에 진공포장해서 전국의 음식점으로 보내질거야. 그리고 산채로 육회가 되어 먹히는거지. 아니면 가볍게 익혀서 소스와 함께 먹는것도 좋고."

능글거리는 미소와 함께 반장이 끔찍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노동석은 자기가 아닌, '친구들'이 먹히게 된다는 이야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행복회로를 돌려보지만, 그것은 이내 깨지게 된다.

"너는 좀 별개야. 아까 남편상이니 뭐니 하면서 역겨운 포즈로 몸을 꼬았지? 너같이 아직 행복회로를 돌릴만한 기력이 남은 놈들은 좀 더 '숙성'시키면 아주 깊은 맛이 나거든. 너는 내가 맡아서 더 숙성시킬거야. 그리고 아마 최고급 호텔에 납품되어 일류 셰프에게 요리될거고. 아마 먹는 사람도 대단한 부자일걸?"

"데...데.....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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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차례의 소동이 지나간 작업장은 다시 분주한 모습이다. 노동석들은 모두 입을 굳게 닫고 있어 독라가 되는 자실장들의 울음소리와 기계의 육중한 구동음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모두들 마음속으로는 끝없이 혼잣말을 하며 자신을 다잡고 있다. 며칠 후면 모두 인간에게 먹힐 자신들의 운명을 모르고서.

'오늘도 살아가는 데스,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는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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