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
지리산의 어느 산골마을 어귀의 수풀 속, 무언가가 꿈지럭대며 움직이고 있다. 실장석이다. 녀석은 자세를 잘못 잡았는지 엉덩이부터 수풀에서 빠져나오고 있고, 그 엉덩이는 이미 빵콘으로 부풀어 올라 있다.
"데....데기.....조금만....조금만 힘을 내면....데뱌아아아아악!!"
그렇게 수풀과 사투를 벌이던 실장석이, 마침내 엉덩방아를 찧으며 수풀에서 빠져나온다.
"데...데데? 데갸아아아아악!!!!! 살려주는데스!!!!!"
멋지게 한바퀴 굴러나오며 널부러진 실장석의 눈에 보인 것은 귀신과도 같은 형상의 거대한 무언가. 인간보다도 더욱 큰 그것을 본 실장석은 재차 빵콘을 하고 만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귀신이나 괴물같은것이 아니다. 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마을의 수호신, 장승이다.
실장석은 별것도 아닌 나무조각 따위를 보고 공포심을 느껴 소리를 지른 것이 멋쩍었는지, 화를 내며 장승을 퉁퉁 걷어차더니 이내 투분을 시작한다.
"감히 별것도 아닌 똥나무가 세레브한 와타시를 놀라게 한 데스! 이딴 것은 이렇게! 이렇게 해 주는 데스!!!"
한참을 그렇게 장승과 씨름하던 실장석은 제풀에 나가떨어져 다시 바닥에 누웠고,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그제서야 원래 하려던 일이 생각났는지 숲을 가로질러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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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에게 똥을 맞은 장승의 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인간은 물론이고 짐승들도 장승은 함부로 대하지 않는 법인데, 저런 녹색 미물의 똥을 맞았으니 그럴법도 하다. 장승의 영은 그길로 날아올라 경기 노강 선창목에 있는 대방장승을 찾아갔다.
"소장은 경상도 함양군에 산로 지킨 장승으로,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본분을 지켜 일하였는데, 실장석이라는 짐승이 난봉을 부려 소장에게 변을 바르니 이 놈을 그저 두었다가는 다른 장승들에게도 화가 미칠까 두렵사오니 통촉하여 주옵소서."
대방장승은 함양 장승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라 팔도의 장승들을 불러 이 사건을 공론에 부치기로 하고, 통문을 써 장승들이 돌려읽게 하였다.
"실장석이라는 놈의 죄를 가벼이 다룰 수 없어 각도 동관전에 일체로 발통하니, 금월 초 삼경야에 노강 선창으로 집합하여 함양 동관을 위로하고, 실장석놈 죽일 꾀를 각출의견 하옵소서"
귀신의 조화인데 오죽 빠를 것인가. 통문은 삽시간에 전국 팔도의 장승들에게 전달되었고, 약속한 날짜가 되자 대방 나루터에는 장승의 영들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
"통문을 보았으면 모은 뜻을 알 테니 실장적 지은 죄를 어떻게 다스릴꼬."
대방장승의 말에 목을 잘라 효수하자거나 집에 불을 질러버리자는 의견 등이 나왔으나, 대방장승은 효과적인 처벌이 못된다 하여 의견을 기각하였다. 그때 해남 관머리 장승이 여쭈니
"그러한 흉한 놈을 쉽사리 죽여서는 설욕이 되지 못하니 고생을 실컷 시켜 죽자해도 못 죽고 살자해도 살 수 없어 칠칠이 사십구 한달 열아흐레 밤낮으로 볶이다가 험사, 악사 하게 되면 장승에 똥을 바른 죄인 줄 저도 알고 남도 알게 되어 징계가 될 것이니, 우리의 식구대로 병 하나씩 가지고서 실장석을 찾아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오장육부 내외없이 병을 겹겹이 발라주는 것이 좋을 듯 하오"
장승은 본래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병을 막는 역할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승들은 막아낸 병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대방장승은 해남 장승의 이 제안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해남 장승 하는 말씀이 옳소, 그대로 시행하되 조그마한 실장석에 우리 많은 식구들이 계획없이 달려들면 몰리거나 빠지는 데가 있을 것이니, 머리에서 두 팔까지는 경상과 전라가, 겨드랑이에서 볼기까지는 황해와 평안이 차지하고, 항문에서 머리털까지는 강원과 함경이, 내장은 경기와 충청이 차지하여 팔만사천 털 구멍중 한 구멍도 비지 않게 단단히 잘 바르라"
그 말이 떨어지자 마자, 장승들은 병 하나씩을 짊어지고 하늘을 가르며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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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실장석의 집까지 날아간 장승들은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실장석에게 병 하나씩을 심는다.
"두통이요"
"충치요"
"협통이요"
"요통이요"
"쌍다래끼요"
"부종이요"
"등창이요"
"식체요"
"황달이요"
"마마요"
"수두요"
"홍역이요"
하나씩 하나씩 병이 심어지자 실장석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한다. 실장석은 본래 비상식적인 재생능력과 신체기능을 위석에서 총괄하는 신비한 구조 덕분에 화상을 제외하면 병과 외상에 무척 강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병이 한꺼번에 닥치면 제아무리 실장석이라도 도리가 없다.
청맹, 이롱증, 편두통, 비창, 주독, 백태, 설축증, 옹절, 수전증, 임질, 티눈, 독종, 수로, 색로, 감창, 당창, 염병.
실장석으로서는 들어본적도 없는 세상의 온갖 병들이 한 몸에 집중되어 간다. 사지가 쑤시지만 굽힐수도 없고 펼수도 없으며, 데데거리는 신음소리가 계속해서 새어나오고, 온몸에는 적록의 반점이 떠오르다 이내 터져 피고름이 흐르며, 피부는 산채로 썩어가고, 총배설구에서는 탁한 암록색의 묽은 운치가 계속해서 새어나온다.
'데에.....와타시의 몸이......아름다운 육체가......'
피부가 짓뭉개지며 머리털이 뽑혀나오는 것을 느낀 실장석은 절규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미 입도 열리지 않는다. 자실장들은 어미에게서 나는 악취에 자다말고 깨어나 실장석을 들여다 보았으나, 이미 온몸이 흉측하게 망가져버린 어미의 모습을 보고는 테에엥 테에엥 울면서 집밖으로 도망가 버렸다.
'오마에들.....가지 마는 데스......마마를 살려주는데스.....'
모든것을 잃어버린 실장석은 마지막까지 기능하고 있는 작은 뇌로 이 사태의 원인을 생각해 보았지만, 모든것이 헛수고였다. 머릿속에 잠시 기다란 나무조각, 장승이 떠올랐으나, 그것도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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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쇠는 마을의 장승에 실장석의 똥이 묻어있는것을 보고는 크게 화가 나 범인을 잡기 위해 숲에 들어왔다가 울면서 도망치는 자실장들을 잡았다.
"테에엥! 테에엥!!!!"
"마마아!!! 마마아!!! 테에에에에엥!!!!"
"머리 뽑지 마는 테치!! 독라는 싫은 테치!!!"
돌쇠는 자실장들의 옷을 벗기고 머리카락을 뜯어, 그것을 길게 엮어 끈처럼 만들어서는 자실장들을 굴비엮듯이 묶어 허리춤에 찼다. 한때 소중한 재산이었던 머리카락과 옷이 이제는 자신을 구속하는 도구가 된 것을 경험한 자실장들은 그저 서러워서 울기만 한다.
자실장들은 빵콘을 하며 집에서 도망쳐 나왔기에 돌쇠는 수풀속에 점점이 떨어진 자실장들의 운치를 역으로 추적하여 실장석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악취가 풍기는 그 곳에는 끔찍한 형상으로 죽어있는 성체실장이 한마리 있었다. 돌쇠는 그것이 장승에게 투분을 한 그 실장석이며, 장승들에게 벌을 받아 죽어버렸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것은 아니다. 장승을 다시 세우고 장승제를 지내 다시금 마을을 지켜달라고 빌어야 한다. 산에서 조용히 살기에 그냥 내버려 둔 녹색 미물들과는 이제 같이 살 수 없다. 마을 사람을 모아 소탕해 버려야 한다. 그 첫 걸음은 지금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작은 자실장들 부터다.
"느덜은 인자 싹 좆된기다"
줄줄이 엮여있는 자실장들을 눈앞에 대고, 돌쇠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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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전체적인 모티브는 가루지기 타령에서 변강쇠가 죽는 대목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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