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1995년 6월 28일.
"좋아, 너희들은 합격이다."
남자가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해낸 테치!"
"사육사상 고마운 테치!"
두마리의 자실장이 환한 웃음으로 답하며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실장석 특유의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웃음이 아닌, 진정한 감사와 경애의 마음이 담긴 웃음이다. 그리고 이 웃음이야말로 두마리가 최고급 사육실장으로서 판매될 준비가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두 마리는 자매지간이다. 어미를 잃고 울던, 들실장 출신의 어디에나 있을듯한 작은 자실장 자매. 하지만 자매는 천운을 얻어 근처를 지나가던 실장석 사육사에게 구조되었다. 물론 사육사가 실장석을 애호하는 마음에서 구해준건 아니다. 분충이라면 싸게 학대용으로, 가능성이 보이면 적당히 교육시켜 서민 애호파에게라도 팔면 몇푼이라도 벌 수 있으니 데려온것 뿐이다.
하지만 자매는 사육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빠르게 가르친것을 흡수해 갔으며, 한달쯤 지난 후에는 최고급 사육실장으로 판매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수한 자실장이 되어 있었다.
'역시. 내 솜씨는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남자는 들실장 자매를 이정도까지 훈육시킨 자신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고 있다. 실제로 어느정도 이상의 사육실장은 태어나자 마자 어미와 격리되어 철저히 분충성을 억제하고 인간을 따르게끔 하는 훈련을 받아 완성된다. 그러므로 들실장 출신의 최고급 사육실장이라는 것은 본래는 존재하지 않는, 매우 희귀한 존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남자가 자신의 능력에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남자가 한가지 모르는 것이 있다.
본래 이 자매는 최고급 사육실장의 피를 이은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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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의 어미는 '멜론'이라는 이름의 최고급 사육실장이었고. 멜론의 주인은 젊은 사업가 부부였다.
그들은 젊고 야심만만하고 비전이 있는 연구자들이었다. 둘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결혼 후 앞으로는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닌 PC통신과 인터넷이 미래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여 퇴직 후 자신들만의 작은 회사를 세웠다.
부부는 쉴새없이 일했다. 새벽에 일어나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날이 허다했다. 자연히 부부간에 성관계를 가지는 일도 거의 없다시피 했고,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회사를 궤도에 올려놓기 전에는 임신과 육아에 시간을 뺏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여 아이를 가지지 않고 있었다.
그 대신, 애완동물을 한마리 들이기로 결정했고 부부는 지인의 연줄로 알게 된 사육사에게 상당한 금액을 주고 최고급의 실장석을 한마리 분양받았다. 불완전하나마 인간을 닮고, 인간과 소통할수 있는 동물. 실장석이 아이를 대신할순 없겠지만 어느정도 마음에 위안을 줄 순 있을것이다. 그리고 실장석치고는 놀랍도록 현명하고 사려깊었던 멜론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부부는 실장석에게 멜론이란 이름을 붙이고 애정을 쏟았다. 멜론도 그대에 부응해, 거의 하루종일 집안에 혼자 있으면서도 결코 불만을 표하거나 분충화되는일 없이 언제나 밤에 돌아오는 주인 부부를 반겨주었다.
그렇게 한폭의 그림같은, 이상적인 실장석과 인간의 관계를 구축해나가던 멜론과 주인 부부였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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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했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던 멜론의 주인 부부도 이 사고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멜론은 홀로 남겨졌다. 사고 후 며칠간은 아무도 오지 않는 집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고, 그 후 집에 들어온 사람들은 주인 부부가 죽었다고 말해주었다. 당장이라도 파킨할듯이 맥박치는 위석을 부여잡고 어째서 주인 부부가 죽었는지 물었지만, 부실공사로 인해 다리가 무너졌다는, 실장석에게는 너무나도 알기 힘든 대답만이 돌아왔다.
그렇게 멜론은 들실장이 되었다.
때는 늦가을, 험난한 야생의 세계에 첫 발을 들여놓은 원사육실장 멜론에게는 가혹한 계절이었으나 멜론은 기적적으로 겨울나기에 성공하여 봄까지 살아남았고,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이 되자 임신하여 두마리의 자실장을 낳았다.
"마마 낳아주셔서 감사한 테치"
"빨리 손씨 발씨가 쑥쑥 커서 마마를 도와주고 싶은테치"
멜론의 피를 이은 두마리의 자실장은 어미를 닮아 현명하고 선량했다. 이대로 아이들이 성장한다면, 멜론은 비록 들실장이 되었지만 소박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조차 멜론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멜론은 공원내 다른 실장석들의 증오의 대상이었다.
멜론은 원사육실장이다. 이것만으로도 들실장들의 미움을 받기에 충분한데 멜론에게는 들실장들에게는 없는 '품위' 마저 있었다. 조신한 태도, 가벼운 발걸음, 맑은 웃음. 멜론의 일거수 일투족은 우아한 인간 숙녀의 그것이었고. 세레브라는 단어를 절로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멜론을 들실장들은 증오했다. 멜론이 여태까지 살아남은것은 순전히 늦가을에 공원에 들어온 탓에 월동준비로 다른 실장석들이 바빴기 때문이고, 봄이 되어 여유가 생기자 그들은 노골적으로 멜론에게 적의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쓰레기장에서 먹이를 구하던 멜론을 집단린치하여 빈사상태로 만들었고, 멜론은 간신히 도망쳤으나 집에 도착하자 마자 위석이 깨져 숨이 끊어진다. 그리고 추격자들이 집까지 따라와 자매마저 죽이려는 때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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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29일.
사육사의 집은 아침부터 소란스럽다. 어제 합격한 자매를 포함하여 5마리의 자실장을 오늘 백화점에 납품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리 한마리 목욕을 시키고, 머리카락과 피부에 화장품을 발라주고, 훈육중 입던 헌 옷 대신 깨끗하게 보존된 원래의 옷으로 갈아입히고, 영양제 주사와 함께 예방접종을 놓는다. 마지막으로 역도돈파를 먹여 혹시 모를 빵콘에 대비한다. 모든것이 완료되면 네무리 스프레이로 재운 뒤 케이지에 넣는다.
조금씩 들떠있는 다른 자실장들과는 달리 자매는 이 과정에서도 초연함을 잃지 않는다. 과연, 걸작이라 부를 만한 녀석들이다. 이정도의 실장석은 백화점이나 실장샵에 납품하기보다 연줄을 통해 개인거래로 애호파 부자에게 팔면 훨씬 비싸게 팔 수 있을 뿐더러, 세금도 떼이지 않는다.
'이녀석들은 좀 아까운데......'
남자는 재작년에 젊은 사업가 부부에게 팔았던 실장석을 생각했다. 그녀석 한마리로 한달의 생활비를 벌었다. 이번엔 그녀석만큼 우수한 자실장이 두마리, 게다가 자매이다. 운이 좋으면 두마리를 한꺼번에, 그것도 '사이좋은 자매 프리미엄'을 붙여서 팔 수 있다.
'납기일을 미루고 이녀석들을 팔 연줄을 찾아봐? 하지만 그랬다가 백화점쪽 거래가 끊기면........안돼지 안돼. 아깝긴 해도 소탐대실할순 없어.'
남자는 생각을 바로잡고, 잠든 실장석들이 든 케이지를 자동차 뒷좌석에 싣고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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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햐아아아아아!!!!"
"테에에에에에........."
백화점에 도착할 무렵, 뒷좌석에서 소리가 들린다. 네무리의 약효가 덜 들은 것인지, 아직 도착 전인데 자실장 자매가 깨어나 플라스틱 케이지에 달라붙어 차창 너머의 풍경을 보고 있다.
"엄~청 큰 집인 테치!!!!!"
"굉장한테치.....저 집엔 엄청나게 큰 닌겐상이 사는게 분명한테치"
일생을 주택가의 공원, 그리고 사육사의 집에서만 자라온 자실장들은 거대한 규모의 백화점을 보고 넋이 나가 있다.
"저기가 백화점이라는 곳이야. 너희는 앞으로 저곳에 있으면서 진짜 주인님이 오기를 기다려야 돼. 내가 가르쳐준대로, 알았지?"
"알겠습니다테치!"
"열심히 하는 테치!"
두손을 모으고 의욕적인 표정으로 콧김을 킁킁 뿜는 두마리를 백미러로 흘끗 쳐다보며, 남자는 상품반입용 통로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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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납품이 끝났다. 자실장들은 웃으며, 혹은 약간 눈물을 보이며 떠나가는 남자를 배웅했다. 남자도 마지막까지 착한 아이로 있으면 반드시 좋은 주인님이 나타나 너희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는 단지 자실장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입에 발린 말이 아니다. 이곳은 삼풍백화점, 대한민국의 신흥 부촌인 강남의 한가운데 위치한 초고급 백화점이다. 당연히 손님의 경제력도 상당한 수준인데다, 요새는 경기 호황이라 사람들이 돈을 아끼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그 자실장들은 어마어마한 부자에게 선택되어, 인간인 사육사보다도 호화로운 생활을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애완동물 코너를 나온 남자는 피곤한 탓인지 조금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아니, 어쩌면 건물이 흔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현재 시각 5시 4분.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남자는 점심을 거른 터라 배가 고팠다. 모처럼 큰 돈이 수중에 들어왔으니 백화점에서 비싼 음식을 먹으며 작은 사치를 부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대로 식당으로 갈까,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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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실장들은 가장 눈에 잘 띄는 진열장으로 옮겨졌다. 자실장 자매는 같은 칸에 들어가, 서로를 끌어안고 토닥거리고 있다.
자매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미를 잃고, 동족들에 의해 죽음 직전까지 몰렸다가 구원받아 사육실장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지금은 이렇게 최고급 사육실장으로서 주인님이 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이 기구한 실생역정을 생각하면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제 주인님을 위해 노력하는 테치, 그러면 주인님도 와타치타치도 꼭 행복해지는 테치"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우는 자매의 머리 위로, 천장에 금이 가고 시멘트가루가 진열장 위로 부슬부슬 떨어지고 있다.
아...삼풍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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