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사냥꾼



"두루산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

호사가들이 늘 하는 말이다. 과거 두루산 아래에는 일본의 군사기지가 있었고, 거기서 연결된 벙커에 막대한 양의 황금을 숨겨두었지만 패망하면서 미처 본국으로 가져가지 못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치를 따져보면 당연하다. 어째서 그 막대한 재산을 전쟁비용으로 쓰지 않고 패망할때까지 한반도에 그냥 보관했는가? 허술하게 꾸며낸 뜬소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곳이든 이러한 전설을 굳게 믿는 사람은 있다. K는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보물 사냥꾼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를 자칭하며 20여년간 국내 이곳저곳을 떠돌았고, 3년 전부터 두루산의 보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보물탐사에 나섰으나 지금까지 소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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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차"

K는 폐쇄된 등산로의 철조망을 넘고 있다. 두루산의 보물을 찾기 시작한지 3년, 그동안 자기 발로 디뎌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두루산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보물은 나오지 않았다. 남은 곳은 두루마리 공원에 접해 있는, 이 폐쇄된 등산로 뿐이다.

등산로는 일찌기 개발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곳이고, 한편으로 지금은 폐쇄되어 들어갈 수 없기에 자연히 보물이 있을 가능성이 낮다 생각되었고, 그래서 우선순위에서 밀려 그동안 탐사를 하지 않았으나 3년간 아무 곳에서도 보물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불법행위에 따르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등산로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오늘은.....계곡 아래로 가볼까.....'

그러나 등산로 탐사도 벌써 3개월째 소득이 없다. 모험심에 불타던 K의 눈도 빛을 잃어가고 있다. 어떻게 해야하나, 포기하고 다른 건수를 찾을까. 고민하며 힘없이 목적했던 계곡 아래로 내려가던 K에게 무언가가 보였다.

동굴이다. 크지는 않다. 입구의 높이는 1미터가 조금 넘는 정도. 좌우폭은 그보다 좁아 성인 남성이라면 기어서 들어가야 하는 크기이다. 그것을 본 K의 눈에 빛이 돌아온다. 딱 한사람만이 간신히 들어갈만한 동굴. 어쩌면 저것이 비밀의 통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동굴앞까지 뛰어간 K의 눈에, 전혀 엉뚱한것이 비쳤다.

"데스우......."

실장석이다.
물론 실장석은 세상 어디에나 있는 짐승, 산에 있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것도 없다. 애초에 산에서 군락을 이루며 사는 산실장이라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K의 앞에 있는 실장석들은 산실장과는 다르다. 팔이 없는 놈, 다리가 없는 놈, 몸 한쪽이 끔찍한 화상으로 뒤덮힌 놈, 철사로 눈이 꿰매어진 놈, 뇌가 파괴되어 연신 침을 흘리며 팔을 흔드는 놈.......하나같이 비참한 모양새다. 명백하게 인간의 학대에 의해 몸이 망가진 녀석들이다. 겉보기에 멀쩡한건 한쪽 구석에서 레후레후 우는 저실장 한마리와, 지금 K의 앞에서 손을 흔들며 뭐라 외치는, 상당히 늙은 실장석 한마리밖에는 없다.

인간을 접했을때의 행동거지도 보통의 실장석과는 다르다. 산실장이면 무기를 들고 대열을 짜서 방어준비를 하며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들실장이라면 일단 아첨을 하거나 총배설구를 보이거나 탁아를 하거나......현대인이라면 익숙히 보았을 그런 행동을 할것이다. 그러나 이 녀석들은 K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벌벌 떨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실장석들이 살아온 삶을 유추할수 있다.

K는 기분이 나빠졌다. 뜻하지 않은 타이밍에 끔찍한 모습의 실장석들을 보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 실장석들을 이런 모습으로 만들었을 인간의 잔인함에 진절머리가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뒤돌아서서 떠나갈수도 없는 노릇. 불쾌하더라도 참고 이 동굴이 보물로 통하는 비밀통로인지를 확인해야만 한다.

"후우....."

K는 한숨을 내쉬고, 핸드폰을 꺼내 린갈 앱을 다운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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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격의 노실장은 K에게 여러가지를 말해주었다.

자신은 벌써 여섯번이나 이곳에서 겨울을 보냈다는 이야기, 공원에 갈때마다 다치고 아픈 실장석들이 있으면 데려와 같이 살았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중 대부분은 오래 살지 못하거나, 분충성이 발현되어 동굴을 뛰쳐나갔다는 이야기. 이제 늙어서 언제 위석이 깨질지 모르는데 동굴에는 절대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가장 상태가 안 좋은 실장석들만 있다는 이야기 등등등.

K는 그 말을 듣고 실장석 중에도 이렇게 고결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녀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는 한편, 머리 속에서 근본적인 의문을 하나 떠올렸다.

"그런데 너는 어쩌다 여기서 살게 된거냐?"

".......와타시는 원래 사육실장이었던 데스."

노실장은 본래 사육실장이었다. 특별히 비싼 고급품도 아니지만, 학대용의 싸구려도 아닌, 대중적이고 적당한 가격의, 그래서 흔해빠진 중급의 사육실장. 그래도 충분한 수준의 훈육은 완료되어 있었고, 주인도 정성껏 보살폈기에 성체가 될때까지 편안한 실장생을 보낼 수 있었고, 성체가 된 후에는 아이를 낳아도 좋다는 허락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파멸의 시작이었다. 주인은 사실 학대파로, 친실장 앞에서 자실장을 학대하는 것을 특히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지금까지는 그저 건강한 자실장을 얻기 위한 준비과정, 그리고 한편으로는 노실장에게 사육실장의 삶을 맛보여주는 '올리기' 기간이었을 뿐이다.

결국 본색을 드러낸 주인의 끔찍한 학대 속에서 노실장의 첫 자들은 이런 세상에 자기를 태어나게 한 어미를 원망하며 모조리 죽어버렸고, 노실장은 그 과정에서 위석에 손상이 가 불임실장이 되어버렸다.

주인에게 있어 자실장을 낳지 못하는 성체실장 따위는 별 가치가 없다. 어디까지나 친자관계를 이용한 정신적 학대를 하고싶을 뿐, 성체에게 직접 육체적 학대를 가하는 취미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육실장을 정식으로 처분하자면 비용이 든다. 그렇기에 주인은 밤을 틈타 노실장을 공원에 버리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버려진 와타시는 공원의 동족들에게 쫓겨다니다 산으로 들어온 데스, 무서웠던 데스, 괴로웠던 데스, 하지만 꾹 참고 한참을 헤매다 이 동굴을 발견한 데스, 공원에선 멀지만 그렇기 때문에 동족의 습격도 없고, 튼튼한 데스"

노실장이 버려질 당시는 아직 등산로가 폐쇄되기 전이다. 어떤 사람들은 등산하는 도중 발생하는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곤 했고,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들은 종종 노실장이 자리잡은 동굴 앞까지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개중에는 페트병이나 일회용 도시락 박스, 더러운 양말이나 티셔츠 등이 섞여있어 노실장은 그런 것들을 그러모아 산중 동굴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기력을 되찾은 노실장은 공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음식 때문은 아니다. 냉기가 올라오는 동굴의 돌바닥 위에 깔 신문지나 골판지 등의 보온재료를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공원을 드나들며 노실장은 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자기와 죽은 아이들처럼 인간의 학대를 받고 버려진 실장석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학대받아 아프고 다친 동족들을 보면 와타시의 자가 생각나서 그냥 둘 수 없는데스. 가슴이 아픈데즈우...오로롱 오로롱"

그 후는 앞에서 들었던 대로다. 노실장은 학대를 당하거나 선천적 기형으로 버려진 실장석들의 마마가 되기로 하고, 그것들을 데려다 길렀다. 상태가 심각해 먼저 죽은 녀석들도 많고, 몸이 회복되자 분충성이 튀어나와 동굴에서 뛰쳐나간 후 행적이 묘연한 녀석들도 많다. 노실장은 그렇게 장애실장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이곳에서 6년간이나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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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씁쓸했다. 아무리 세간에서 해수 취급 받는 실장석이라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건 어쩔 수 없다. K는 노실장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잠시 쭈그려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고는 노실장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여기서 겨울을 6번 보냈다고?"

"그런데스"

"그동안 이 동굴로 들어가거나 나온 사람이 있었어?"

"데........"

머리가 나쁜 실장석이다. 6년씩이나 되는 기간의 기억을 되짚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노실장은 이마가 빨개지도록 한참 생각을 하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없을 것인 데스. 아마도....."

노실장의 말을 신뢰한다면, 적어도 6~7년동안은 이곳에서 보물을 탈취해 나간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여기가 진짜 보물창고로 통하는 길일때의 일이지만.

"그럼 이 동굴 안쪽에는 뭐가 있는지 알고 있어? 어디까지 들어가봤어?"

"안으로 좀 들어가면 물이 흐르는곳이 있는 데스, 와타시타치는 거기서 운치를 누고 물을 떠 마시는데스. 하지만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는데스. 깜깜하고 미끌미끌해서 위험하기 때문에 깊이 가본적이 없는데스."

"흠....."

K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다시 입을 연 건 5분가량이 지나서였다.

"좋아, 이렇게 하자. 너희가 날 좀 도와줘라."

"데뎃??"

"나는 보물을 찾으러 온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 동굴 안쪽에 보물이 있는지 없는지, 너희가 나 대신 확인해 줘. 이 동굴은 내가 들어가기엔 조금 좁거든. 만일 보물을 찾으면 너희들의 몸을 고쳐주지, 보물이 없으면.....그래도 겨울을 날만큼 충분한 밥과 따뜻한 담요정도는 주마."

어쩌면 딱히 실장석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실장석들을 모두 내쫓고 잡다한 살림살이를 모두 걷어치우면 직접 들어가볼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K는 실장석과 협력하는 길을 선택했고, 그 말을 들은 실장석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실장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어쩌면 K가 던진 한마디에 행복회로가 가열되어 급격히 분충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K가 생각하기에, 실장석들의 눈빛은 그런 저속한 탐욕이 아닌, 좀 더 절박한 무언가를 담고 있는 눈으로 보였다.

'몸을 고쳐준다고 한 데스?'
'다시 머리털과 옷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데스우??'
'속지 마는 데스! 닌겐이 한 짓을 잊은데스???'
'프니프니 레후~'
'그래도 저 닌겐은 착해보이는데스......'
'어차피 더 잃을것도 없는 데스. 뭐를 두려워 하는데스!'

실장석들이 자기들끼리 의논을 시작한것을 보고, K는 잠시 물러나 담배를 빼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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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타시가 하는데스!!!"

결국 제안에 응해 노실장이 나섰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늙긴 했어도 몸과 정신이 모두 멀쩡한건 그녀 정도니까.

K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배낭에서 등산용 로프를 꺼내 노실장의 허리춤에 묶었다. 노실장은 순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K가 안전을 위해서 한쪽을 허리에 묶고 한쪽은 자기가 쥐고 있을거라고 말해주자 안심한듯이 크게 숨을 쉬었다. K는 그 모습을 보고 이어서 펜라이트를 쥐어주었다. 커다란 랜턴을 실장석이 들고 다니기에는 무리고, 아마 이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좋아, 그럼 그걸로 동굴을 비추면서 쭉 걸어가, 뭔가를 발견하거나 위험해지면 이 줄을 당겨. 오케이?"

노실장은 K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동굴 안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평소 자주 이용하던 물가를 지나, 위험이 도사린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노실장의 이마에 땀이 맻히기 시작한다.

'정신 차리고 가야하는 데스, 실패하면 안되는 데스, 확실하게 한발한발 내딛으면 넘어질일 없는 데스'

'이것만 성공하면.....자들과 행복해질수 있는 데스, 자들이 예쁜 본모습을 찾는데스, 겨울을 편히 날수 있는 데스'

깊은 물을 건너며 시작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마음속 다짐이 점차 행복회로의 발동으로 넘어갈 무렵,

"데?"

노실장이 이끼낀 돌을 밟고 미끄러지고 말았다.

"데갸아아아아아!!!!!"

실장석은 신체구조상 물에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때문에 물살이 별로 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노실장은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점차 하류로 떠내려가고 있다.

"데에엥!! 데에엥!! 살려주는 데스 닌겐상!!!"

노실장의 비명이 동굴에 메아리친다. K도 허리에 묶어둔 줄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고 쥐고있던 줄을 급히 당기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이봐요! 당신 거기서 뭐하는 겁니까!!"

예상치 못한 사람의 목소리에 놀라 K는 그만 줄을 놓치고 말았다. K는 소리가 난 쪽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줄을 잡으려 했으나 줄은 속절없이 동굴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여기 입산금지인거 몰라요!!?? 당장 이리 오세요!!"

나타난 사람은 공원의 직원이었다. 그는 K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와 거칠게 팔을 붙잡고 K를 끌어내려 했다.

K는 곤혹스러웠다.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다. 노실장을 구해야 하지만 직원을 뿌리치고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도 없다. 사정을 설명하기에는 급박한 상황이다. 아니, 사정을 설명한다고 들어줄지도 의문이다.

"닌겐상........살려.....데....."

실랑이가 계속되는 사이에도 노실장의 목소리는 희미해져 간다. 생명줄은 보이지 않게 된지 오래다. 자포자기한 심정이 된 K는 힘이 빠져 직원에게 끌려나간다. 동굴에 남은 것은 한무리의 장애실장들과 저실장 한마리 뿐. 그들은 인간이 사라진 동굴 입구와 마마가 사라진 동굴 안쪽을 번갈아 보다 이윽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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