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작은 지하실.
조그마한 형광등이 유일한 광원인 방 안에, 더 자그마한 수조가 9개, 실장석도 9마리가 들어있었다.
모두 공원에서 살다가 인간에게 잡혀온 놈들이다.
서로를 볼 수 있도록 둥글게 배치된 수조 속에서, 한마리씩 네무리에서 깨어났다.
"뎃..? 여긴 어디인데스?"
"닌겐, 닌겐은 어디로 간데스!
차녀를 왜 죽인데스!
장녀는 어떻게 한데샤!"
"테에..마마의 목소리가 들리는테치..."
각자 소란스러운 와중에, 서로의 모습을 확인한 자들은 서로를 비웃고, 이어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서는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각자 옷을 잃었거나, 머리를 잃어버렸거나, 귀 한쪽이 뜯어져나갔기 때문이다.
"와타시의 소중한 몸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데스...오로롱!"
[모두 들어라.]
소란스러운 방의 어딘가에서, 갑자기 스피커를 통해 딱딱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아직은 들을 생각이 없겠지만.]
""뎃뎃텟뎃!@%^""
인간의 목소리에 소동이 더욱 커져버리는 것을 예상한 것처럼, 이어서 기계음이 들려오고서는 소리는 끊어졌다.
그날 밤.
실장석들이 갇힌 수조 내부는 의외로 쾌적한 곳이었다.
물은 자동공급되고, 바닥은 촘촘한 망으로 만들어져 운치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가 지자 수조 뚜껑에서 비눗물과 보통 물이 차례로 뿜어져나와 바닥과 벽, 실장석을 씻어냈다.
이어서 젖은 수조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금세 말려주니 추위에 떨 일도 없었다.
수조 구석에 놓인 스폰지 두 장을 침대이자 이불로 쓸 수 있어 잠자리에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실장석들은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밥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새 굶주린 실장석들은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를 찾아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런 와중에, 다시
[모두 들어라.]
라고 인간의 말이 들려오면, 모두 흥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푸드와 콘페이토를 내놓는데샤아아앗!!"
같은 소리로 지하실이 가득 차버렸다.
그리고,
[밥 이야기는 내일 조용히 있을 때 다시 해보자.]
그걸 끝으로 다시 인간의 말은 끝났다.
실장석들은 비명과 애원으로 인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길 요구했지만, 소용없는 행동이었다.
그리하여 삼일 째 아침,
[모두 들어라.]
라는 말이 다시 흘러나왔을 때, 실장석들이 침묵을 지킨 것은 장족의 발전이자 굶주림에 대한 굴복일 것이다.
[밥을 주는 방식을 설명한다.
공정한 다수결로 밥을 어떻게 줄지 정할 것이다.
수조 벽을 보면 빨간색과 녹색의 버튼이 있다.
내가 각 버튼에 대한 조건을 설명하면, 너희 9마리가 둘 중 마음에 드는 조건의 버튼을 눌러라.
더 많이 누른 쪽의 조건에 따라, 밥을 줄 것이다.]
"데, 데?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스!"
[일단 며칠 해보면, 알게 될 거다.
오늘의 안건은, 전원 푸드를 3알 먹고 싶다면 빨간 버튼, 먹고싶지 않다면 녹색 버튼이다.]
3마리의 실장석들이 룰을 이해하지 못하고 녹색 버튼을 고르기는 했지만, 나머지의 선방으로 다행히도 푸드는 먹을 수 있었다.
그 뒤, 매일 조금씩 다른 조건으로 그들의 다수결은 계속되었다.
시간 제한 1시간, 불참자에겐 푸드도 미지급된다는 것, 어떤 조건이 유리한지 비교하는 방법 등을 배우며, 제법 이 감금상태에도 익숙해졌다.
이름 또한 받았다.
외관을 기준으로 정해진 이름이지만, 실장석들은 그 이름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사육실장의 상징인 이름을 받고 싫어할 들실장은 없었다.
대머리, 한쪽 귀가 잘린 성체는 독이성.
대머리, 성체는 독성.
대머리, 팬티가 없는 성체는 독팬성.
대머리, 한쪽 귀가 잘린 자실장은 독이자.
알몸, 한쪽 귀가 잘린 성체는 라이성.
알몸, 성체는 라성.
알몸, 앞머리가 없는 성체는 라변성.
알몸, 한쪽 귀가 잘린 자실장은 라이자.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멀쩡한 성체는 무결.
2주일이 흘렀다.
실장석들도 이제는 느긋하게 아침의 다수결을 기다릴 정도로 이 생활에 익숙해졌다.
가장 불만이 많은 독이성이 투덜거렸다.
"이제는 지겨운데스.
시간을 보낼 거리가 필요한데스우~.
다수결을 해봐야 5분이면 다 끝나는데스.
푸드 3알씩 받고 끝나는 거 다 아는데스!
언제까지 여기에 가둬둘 작정인데스?"
하지만, 오늘은 다수결의 내용이 좀 달랐다.
[오늘의 다수결을 시작하자.
조건이 달라졌으니 잘 들어라.
머리가 있는 실장석이 푸드를 6알 받으려면 빨간 버튼을,
옷이 있는 실장석이 푸드를 6알 받으려면 녹색 버튼을 눌러라.]
"데엣..? 이건 무슨 말인데스? 와타시는 지금 머리가 있고, 데에..옷은 없는데스.
그럼...푸드를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데스우?!"
라성은 혼란에 빠졌다.
성체들도 갑작스러운 조건의 변화에 당황하고 있었으니, 자실장들은 상태가 더 심했다.
"테? 이해가 안되는테치! 왜 둘 다 푸드를 주는테치?
아무거나 누르면 되는테치??"
라성의 장녀인 라이자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조건을 기억하지 못한 실장석들의 애원 소리에 반응한 듯, 조건을 두 번 더 다시 설명하고, 대략 40분 정도가 지나서야 실장석들은 오늘의 다수결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고른 뒤...
[5 : 4로 빨간 불이 많으니 머리가 있는 실장석에게 푸드를 6알 지급한다.]
달그락달그락, 5마리의 수조에 공급기를 통해 푸드가 떨어졌다.
"푸드가 6알이라니 오늘은 횡재한데스~배터지게 먹을 수 있는데스~."
"데샤아악!! 어떤 운치나 퍼먹을 놈이 빨간 버튼을 누른데스!!
이건 사기데스!"
그 후로도 며칠동안 동일한 조건으로 다수결이 진행되었다.
머리가 있는 쪽과 옷이 있는 쪽 사이에서 환호와 비명이 오가는 와중, 라변성이 문득 뭔가를 깨달은 듯 소리를 질렀다.
"알아낸데스!
오마에, 무결상! 오마에는 어떤 선택을 해도 푸드를 받을 수 있었던데스.
그래서 결과가 왔다갔다했던데스.
대답하는데스!"
"뎃..? 데퍄퍄퍄! 그랬던데스.
바로 그거였던데스!
와타시가 고르는 쪽이 항상 푸드를 받았던데스!"
무결은 라변성의 말에 상황을 깨닫고, 크게 웃었다.
"오마에타치가 아무리 자기 쪽 버튼을 눌러봐야, 와타시가 골라주지 않으면 푸드는 못받는데스!
와타시가 바로 킹-메이커!
이 다수결의 여왕인뎃샤!
데퍄퍄퍄!"
그 뒤, 지하실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푸드를 못받는 쪽이 받는 쪽을 욕하고 받는 쪽은 비웃음으로 돌려주는 상황에서, 모두가 무결에게 자신 쪽을 골라달라고 아부를 하게 되었다.
"무결사마! 제발 옷 있는 쪽을 골라주는데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신 무결사마라면 와타시의 진심을 알아주실 것인데수!"
"닥치는테챠! 무결사마는 머리가 가장 아름다운 와타치 쪽을 골라주실 것인테치!
이 머릿결을 보는테치.
아름답지 않은테치?"
"..."
[5:4로 녹색 불이 많으니 옷이 있는 실장석에게 푸드를 6알 지급한다.]
"테챠아아아!
안되는테챠앗!"
"데샤앗쓰!!
라성 상은 저 망할 분충 입 좀 다물게 하는데샤!!"
일주일 뒤, 다수결에 다시 변화가 찾아왔다.
[오늘부터는, 이웃에게 선물을 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받을 푸드 중에서 수량을 정해 이웃에게 선물한다고 정하면, 이웃은 푸드를 받을 때 그 수만큼 각설탕을 더 받을 수 있다.
다수결을 진행하는 1시간 동안 선물이 가능하다.]
"....와타시의 푸드를 왜 남에게 바치는데스?
코로리라도 먹은 거 아닌데스?"
독이성은 코웃음쳤지만, 그 웃음은 20분 뒤 사라졌다.
"...와타시가 선물을 하는데스.
6알 중에 1알을 무결 상에게 주는데스.
그러니 무결상은 머리가 있는 쪽을 골라주는데스."
평소에는 조용하던 라변성의 폭탄선언이었다.
당연히 무결은 머리가 있는 쪽을 골랐고, 다수결 후 옷이 있는 쪽은 비명으로 결과를 받아들였다.
며칠 뒤,
"와타시는 무결상에게 3알을 선물하는데스!"
"와타시도데스!!
차녀! 아니 독이자! 오마에는 어서 네 알을 선물하는데스!!"
"텟, 테엣?!
마마! 그건 너무한 거 아닌테치?
와타치가 먹을 양이 부족한테치!"
"입다물고 시킨대로 하는데스!
말 안들으면 나갔을 때 노예닌겐의 운치굴에 처박아버리는데샤!!"
"테챠아! 안테치! 말 듣는테치!
와타치는 무결사마에게 네 알을 선물하는테치!"
"데퍄퍄퍄!
좋은데스. 오늘도 이 무결사마께서 옷이 있는 쪽을 골라주는데스요~"
무결은 이제 지하실의 명실상부한 여왕, 지배자였다.
다른 실장석들은 자기 배를 채울 3알의 푸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에게 바치고 있었고, 자신을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충실한 노예가 되었다.
한동안 저항하던 독이성조차 3일 동안 푸드 대신 다른 옷 있는 실장석의 욕을 먹은 뒤에는 자신의 개가 되었다.
오늘부터는 옷 있는 쪽의 자실장이 푸드 4알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바치기 시작했다.
다수결 종료 후 떨어지는 각설탕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무결은 중얼거렸다.
"각설탕만으로도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이제 푸드는 지겨운데스.
먹을 생각이 안드는데스...
뎃, 푸드를 봤더니 기분이 우울해진데스.
와타시를 즐겁게 해줄 노예는 없는데수?
..거기! 라이자 오마에! 감히 여왕께서 말씀하시는데 불경하게도 누워있는데스?"
"텟...죄송한테치.
일어나는테치...
테흐읍....테휴, 테휴."
이틀 동안 푸드를 먹지 못하고, 오늘도 굶어야하는 라이자는 한계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낮 동안은 마음편히 누워있다간 무결의 분노를 사 다음날도 선택받지 못하기에, 말라버린 몸을 억지로 세워야만 했다.
다음날.
"와타치는...무결사마에게 푸드 3알을 선물하는...테치..."
털썩!
라이자는 선물 선언 직후 쓰러져 버렸다.
"장녀! 안되는데스. 일어나는데스!
무결사마, 제발, 제발 오늘은 머리 있는 쪽을 골라주시는데스!"
"시끄러운데스.
오늘도 옷 있는 쪽이 머리 있는 쪽보다 1알 더 바치기로 한데스.
와타시가 왜 너희를 골라주는데스?"
"뎃..데샤앗!
안데스. 와타시가 더 선물하는데스!
와타시는 무결사마에게 다섯 알을 선물하는데스!
와타시를 골라주는데샤!!
라이자를 골라주는데샤아앗!!
오로롱!"
라성은 색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데프픗. 진작에 그랬어야 하는데스.
노예는 얌전히 와타시에게 바치는 게 좋은데스."
"데에엣??
저 년이 결국은 미쳐버린데스.
푸드 한 알은 먹으나 마나인데스!
죽을 생각인데스까!"
무결은 만족하고, 머리 있는 쪽은 비명을 지르는 결과를 보게 되었다.
달그락달그락!
세 알의 푸드가 라이자의 수조에 떨어졌다.
하지만, 라이자는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4일만에 푸드 한 알을 받게 되었지만 라성은 푸드를 보지도 않고 라이자 쪽을 보고 있다가, 그 모습을 보고 수조 벽에 달라붙었다.
"장녀! 일어나는데스.
푸드가 나온 데스! 빨리 먹고 기운을 차리는데스!
장녀어!"
...하지만 라이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첫 사망자였다.
다음날 실장석들이 잠에서 깼을 땐 라이자의 수조 자체가 사라져 있었고, 라성은 분노의 포효를 지르며 인간을 찾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균형이 무너졌다.
죽은 자는 의견을 낼 수 없는 법.
머리 있는 쪽에서 사망자가 나오면서 다수결에서 이길 수 없게 된 것이다.
"데샤앗!!
옷 있는 노예들! 당장 와타시에게 각설탕을 바치는데샤!
머리 있는 노예가 있든 없든 바치란 말인데수!"
무결이 다수결을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되면서, 선물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은 덤.
결국 머리 있는 쪽은 5일만에 전멸해버렸다.
"왜 이렇게 된데스...
다수결은 분명 공평한 룰 아니었던데스..?
어떻게 했어야...살 수...있는..."
파킨.
머리 있는 쪽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라변성의 단말마.
"데퍄퍄퍄!
이제 맘편히 푸드를 먹을 수 있는데스~
매일매일 6알!
여유로운 실장생의 재시작인데스~
이제 닌겐노예만 나타나서 와타시를 모셔가면 더더욱 행복해지는데수~"
반면 옷이 있는 쪽은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다음날.
[오늘의 다수결을 시작하자.
조건이 달라졌으니 잘 들어라.
귀가 있는 실장석이 푸드를 6알 받으려면 빨간 버튼,
귀나 팬티가 없는 실장석이 푸드를 6알 받으려면 녹색 버튼을 눌러라.]
"뎃..?"
다수결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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