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공터


꼬질꼬질한 들실장한 한마리가 작은 공터에서 움직였다. 잡초가 무성한 공터는 자갈이 셀수 없이 깔려 걸을때마다 고통이 느껴졌지만 들실장은 오늘도 공터를 뒤지고 있었다. 이 공터는 개인의 소유로 몇년간 방치되어 실장석에겐 작은 정글과 같이 되어있었다. 잡초들은 너무나 질기고 튼튼해 실장석의 힘으론 뽑을수도 없고 억세기는 다른 곳에 있는 잡초와 차원을 달리해서 먹을수도 없었다. 다만 운이 좋다면 공원 수풀엔 없는 각종 곤충들이 존재하여 근근히 곤충들을 잡아먹고 살아갈 뿐이였다.

들실장은 근처 있는 자신의 몸통만한 돌을 뒤집어서 아래를 보며, 데- 하고 작게 울었다. 돌 밑엔 아무것도 없었다. 가끔 이런식으로 돌 밑에 있는 곤충이나 지렁이를 몇번 잡아본 경험이 있기에 오늘도 편하게 잡을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허탕인듯 싶었다. 지렁이는 실장석조차 죽일수 있는 영양만점의 사냥감 이였다. 토막을 내서 햇볕에 잘 말리면 몇 주는 거뜬하게 가는 훌륭한 보존식이기도 했다. 지렁이 한마리를 잡는 날은 따로 사냥을 하지 않아도 그날 하루 식사엔 충분했다.

여름이 끝나가고 약간 선선한 기운이 감돌고 있지만 땀을 흠뻑 흘린 들실장에겐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 들실장은 잡초 사이에 곤충 몇마리를 보고 조심스럽게 다가간다고 노력했지만 상대는 노련한 야생의 곤충. 어수룩하고 어설픈 들실장 따위에서 쉽게 잡힐 것들이 아니였다. 공터를 가로질러서 곤충을 쫓아 달렸지만 이미 상대는 들실장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어재도 점심때 우연히 발견한 개미들이 뜯어 먹던 곤충을 가로채 배를 조금 채운 것이 그녀의 마지막 식사였다.

해는 점점 높이 떠서 더위로 움직일수 없게 되자 들실장은 나무 밑의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땀이 마르면서 끈적끈적한 것이 언제나 그랬듯이 기분 나뻤지만 곧이여 증발하면서 마르자 한결 느낌이 좋아졌다. 옷과 두건은 초록색이 안보일 정도로 먼지와 흙, 땀과 각종 오물에 범벅이 되어 사람도 만지기 꺼려질 정도였다. 머리카락은 떡이 져서 굳어서 무게감이 상당히 느껴질 정도였지만 하나뿐인 머리카락이다. 절대로 포기할수가 없었다. 때론 머리카락이 잡초나 수풀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게 되거나 잠을 잘때 딱딱해서 걸리적 거렸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식사와 잠을 포기할 정도로 애정이 있는 것이였다.

오후 2시가 넘어가자 제법 더위가 많이 가셨다. 들실장은 다시 일어나 활동하기로 하며 공터 끝에 보도블럭과 맞다은 곳에 새하얀 봉투가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제껏 이 공터로 이주해 살면서 처음 갖는 봉투에 흥분한채 데스- 거리면서 달렸다. 봉투만 있으면 지금과 같이 굶을 일은 없다. 봉투로 다른 들실장 처럼 쓰레기를 뒤져 음식을 모을수 있기에 신나게 달려간 들실장은 봉투안에 무언가 들어있다는 것을 깨닿고 약하게 팬티에 대변을 지린채 봉투를 들고 나무 밑으로 달렸다. 안이 묵직한게 오늘은 어쩐지 엄청난 것을 줏은것 같아 기분이 날아갈것만 같았다.

나무 밑으로 달려온 들실장은 헉헉 거리면서 봉투를 풀어 안에 있는 것을 꺼냈다. 자신의 몸통만한 빈 과자곽. 과자곽 안에 든 과자의 냄새를 킁킁 맡으며 행복한 미소를 하던 들실장은 혹시나 무언가 안에 남았나 손을 넣고 휘저었지만 텅 비어있을 뿐이였다. 괜찮았다.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고 빈 과자곽 자체로도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이것은 보존식을 담을때 몹시 훌륭한 통이 될 것이다. 심지어 자를 낳게 되면 집이 없을때 집 대신 자들을 넣을수도 있다.

봉투안에 길다란 무언가를 꺼내자 들실장은 충격으로 말을 잊었다. 빈 플라스틱 통에 희귀한 파란색 뚜껑이 잠긴 아직 물이 1/3이나 남은 페트병. 파란색 뚜껑은 독라 자실장 5마리의 가치를 하는 엄청나게 귀중한 것이였다. 자들이 좋아하고 일반적인 하얀색 뚜껑보다 보기 힘들어서 구할수만 있다면 무조건 얻고 싶어하는 것이였다. 그것도 모자라 깨끗한 물이라니. 보기만해도 마음이 든든해지기 까지 했다. 들실장은 봉투를 탈탈 털어 조사를 하자 페트병 1개. 빈 과자곽 1개. 쓸수 없는 작은 비닐 2조각. 작은 비닐사이에 붙은 검은색 조각은 무척이나 맛이 있었다. 빨간 소스가 묻은 휴지뭉치 4개. 휴지뭉치는 과자곽에 넣어 나중에 집을 구하면 쓸수 있게 조치를 취했다. 비록 먹을수 있는건 물밖에 없지만 페트병과 봉투를 구했다는 것은 이제 자신도 자를 낳을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가졌다는 것을 뜻했다.

들실장은 행복한 상상을 하며 나무 밑에서 노래를 불렀다. 공터로 이주한지 2주째. 하루하루가 죽을 만큼 힘들고 고됬지만 이제 그런 생활은 안녕이다. 봉투로 음식물쓰레기를 모아 밥을 모으고, 페트병으로 물을 떠서 언제든지 물을 마실수가 있다. 과자 곽은 보존식을 훌륭하게 보존시켜 줄 것이다. 휴지뭉치는 동그랗고 예쁘가 뭉쳐서 자가 태어나면 공처럼 가지고 놀수 있고 날씨가 추워지면 반으로 찢어 옷 안으로 넣으면 따뜻한 보온재로 사용이 가능했다.

들실장은 이쯤 오자 세상이 자신을 도와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봉투와 페트병은 소유권을 두고 어느 한쪽이 죽을때까지 처절한 사투가 일어날 정도로 귀하디 귀한 것이였다. 그런 것이 갑자기 공터에서 생겼다니, 믿을수가 없었다. 혹시 이 공터가 자신을 위해서 준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정착후 얼마나 자신이 애원하고 빌어도 도움을 하나도 주지 않는걸 생각하면 그럴리가 없었다. 이것은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구한 것이였다.

뎃데레~

들실장은 공터안쪽으로 들어가 오늘은 물이 충분하니 마저 땅을 파기로 했다. 골판지를 어떻게 구할지 막막했지만 운치굴만큼은 꼭 해야했다. 들실장은 돌조각을 두 손으로 쥐고 땅을 죽죽 긋기 시작했다. 힘들다. 팔이 떨어져나갈것 같고 비라도 온다면 일주일간 조금씩 판 이 곳은 물에 휩쓸려 원래대로 돌아올 정도로 미약하게 파였지만 들실장의 희망이 있었다. 더 나은 내일이 있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파다보면 언젠간 엄지나 자실장을 넣을 훌륭한 운치굴이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쯤이면 집도 구하겠지. 자들도 잔뜩 낳겠지. 들실장의 머릿속엔 이 넓고 광활한 공터를 자들로 가득 채워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연히 땅을 파는 작업은 진척이 없었고 멍하니 상상을 하며 웃던 들실장은 밤이 깊어짐을 보며 서둘러 봉투안에 페트병과 휴지조각, 과자곽을 넣고 자신도 들어갔다.


***


데에엥...데에에에엥

다음날 일어난 들실장은 봉투 밖으로 나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인간의 발을 피해서 도망칠 때도 이렇게 울지 않았다. 들실장의 품안엔 찌그러지고 풀어헤쳐진 휴지 조각들이 가득했다. 전날 잠을 자면서 따뜻하고 포근한 휴지조각을 품에 안고 뭉겠고 잠꼬대를 하면서 휴지들을 몽땅 다 찢어버린 것이다. 페트병도 뚜껑을 제대로 잠그지 않아 밤새 물이 새서 한 모금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흘린 물을 과자곽이 흡수하여 찢어지고 물렁거려서 말린다고 해도 보존식 통으로 쓸수가 없었다. 찢어진 과자 곽은 자들을 믿고 밥을 구할수가 없기 때문이다. 애써서 구해봤자 하루만에 찢어진 구멍을 통해 다 훔쳐서 거덜낼게 뻔했다. 봉투는 찢어져 있다. 봉투안에 다른 들실장들이 왜 들어가서 자지 않는 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봉투안에서 자게되면 뒤척이거나 잠꼬대를 할때 바닥에 무언가 있으면 봉투가 움직이면서 바닥에 쓸리거나 뾰족한 무언가에 찢어지기에 봉투안에선 절대로 자지 않는다.

이 들실장은 몇 달만에 구한 봉투에 신나서 그만 까먹은 것이였다. 봉투는 찢어져 쓸수가 없다. 페트병에 담긴 일주일은 먹을수 있는 물은 고작 한모금 정도로 인간의 손가락 한마디 만하게 남았다. 휴지는 갈갈히 찢어져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다. 과자곽은 찢어지고 무너져 있었다.

희망이
사라져 간다.

행복이
찢어진 봉투사이로 흘러내린다.

자들의 미래가
무너진 과자곽 처럼 떨어진다.


들실장은 서럽게 울다 지쳐 페트병에 든 물을 마시고 눈물을 닦았다. 여기서 좌절할수가 없다. 일어서야 했다. 봉투와 휴지, 과자곽은 애초에 없이 생활하였다. 예전처럼 다시 일어서서 힘차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였다. 들실장은 벌떡 일어나 공터밖으로 향했다. 찢어져 바닥에 끌릴때마다 점점 벌어지는 봉투안엔 휴지 몇조각과 눅눅해진채 변형된 과자곽이 있었다. 페트병은 멀쩡했기에 공터안쪽이 깊숙히 숨겨두었다.

공터밖에 이리저리 주변을 살핀 들실장은 인간이 없자 휴지를 버리고 과자곽을 안타까운 눈으로 한번 본뒤 도로 밖으로 힘껏 던져 버렸다. 못쓸바엔 차라리 눈에 안들어오는게 덜 아프다. 꽨히 못쓰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 가슴만 아프다. 들실장은 비록 봉투는 찢어져도 자신의 옷이나 두건속에 넣어 음식을 모으는 것보다 더 많이 들수 있게 하기에 찢어진 봉투를 소중하게 가슴에 끌어 안았다.

그날 이후로 들실장의 하루는 예전보다 더 바쁘게 돌아갔다. 인간의 눈을 피해 돌아다니며 땅에 떨어진 음식들을 줍거나 음식물 쓰레기장에 몰래 들어가 봉투의 뒷부분을 뜯어 음식을 모으기 시작했다. 보존식은 남겨봤자 공터안의 곤충들이 모조리 다 먹어치우기에 보존식은 남기지 않는다. 보통은 음식물쓰레기장 옆엔 재활용 쓰레기장도 존재하기에 어느날 죽음을 무릅쓰고 4호짜리 택배박스를 훔쳐 달아났다. 정말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를 정도로 미친듯이 뛰어 공터에 도착한 날 들실장은 번듯한 집을 가졌다는 생각에 미친듯이 울었다.

집안은 너무나 포근하고 좋았다. 골판지 특유의 냄새가 기분좋게 나서 잠을 잘때마다 행복했다. 들실장은 돌아다니면서 음식 수거용 새 봉투를 구했고 잡다한 크기의 비닐도 6장이나 구했다. 페트병 뚜껑 3개, 그리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수건 2장,  과자곽을 구하면서 차츰 겨울나기에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인간의 눈을 피해 돌아다녔고 때론 아파트 화단에서 어린 자실장들을 페트병에 넣고 뚜껑을 닫은채 버리는, 연기나는 막대를 입에 문 인간도 보았다.

다시 공원으로 돌아갈까 생각을 수없이 해봤지만 이제와서 공원에 간다는건 의미가 없었다. 집과 고생해서 모든 것들을 포기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공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여긴 아무도 없다. 오로지 혼자. 자를 낳기에도 너무 늦었다. 운치굴은 2cm정도 파다가 포기했다. 봄부터 꾸준히 춘자들까지 동원해서 가을이나 겨울의 초입때 운치굴 작업이 끝나기에 자신이 너무 쉽게 생각했다. 내년 봄에 춘자들을 낳고 다시 도전할 생각이였다. 운치는 쓰레기통 옆에 버려진 봉투를 구해 긴 과자각 안에 넣고 누고 있었다. 긴 곽안에 들어간 봉투덕분에 내용물이 흘러나오지 않고 겨울엔 운치도 훌륭한 음식이였다. 밖에다 버리면 동물들을 불러올수도 있고 겨울엔 얼어붙어 먹을수가 없다.


그렇게 겨울이 시작되기전 들실장은 집안을 둘러보았다. 혼자 쓰기엔 남아도는 수건3장, 플라스틱 그릇 2개, 페트병 4개에 꽉 담은 물, 바닥전체에 두텁게 깔린 마른 잡초, 수세미에 봉지를 깔고 휴지를 올린 푹신한 침대까지. 완벽했다. 들실장은 외부의 침입에 대비해서 밖으로 나가 바닥에 물을 조금 붓고 손으로 뒤적여 진흙을 만든뒤 운치를 누어 섞었다. 끈적끈적함이 배 이상으로 된 초록색 액체를 미리 구한 나뭇잎위에 소중히 올리고 집안으로 향했다. 골판지를 뒤집어 열리는 부분을 아래로 했기에 골판지에 구멍을 내어 통로를 만들수 밖에 없었다. 뚜껑이 옆이나 위로 향하면 너무나 쉽게 열려 침입자에게 죽거나 꼼짝없이 얼어 죽는다. 물을 적셔서 나뭇가지로 긁어내 만든 통로에 나뭇가지를 일렬로 기대어 놓은뒤 그 위에 운치발린 나뭇잎을 붙이기 시작했다. 덮혀도 붙지 않는 양옆의 틈은 운치진흙으로 꼼꼼히 막았다. 그리곤 옛날에 구했던 찢어진 비닐 봉투를 한장 올린뒤 수건으로 덮고 바닥에 흘려진 수건위에 집안에 미리 가져다 놓은 돌을 올려두었다.

먹고, 자고, 싸고.
겨울은 지루하고 혼자서 버티기엔 너무나 힘들었다. 들실장은 그렇지만 참고 버티며 봄이 오면 자를 낳고 독립시켜서 이 공터를 자신의  자들로 가득 채우는 상상을하며 버텼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봄이 오는 것을 느끼며 들실장은 다시 싱그러움을 되찾은 공터를 보며, 데- 하고 작게 울며 돌을 뒤집었다. 뒤집혀진 돌 아래엔 아무것도 없었다.

겨울나기엔 성공했지만 응달이 진 집에 쌓인 눈은 아직도 녹지않고 물기에 집은 완전히 무너져 눈더미속으로 사라졌다. 들실장은 멍하니 자신보다 3배는 더 쌓인 눈더미를 보며 손을 대자 순식간에 손 끝이 파랗게 변하며 동상에 걸렸다. 차갑다 못해 찢어질듯한 고통에 서둘러 손을 빼고 입안에 넣고 쭉쭉 빨면서 들실장은 보존식, 물, 운치, 수건, 봉투가 들어간 눈더미를 멍하니 처다 보았다. 날이 풀렸지만 어째서인지 눈은 녹지 않고 있다. 한순간 모든걸 잃은 들실장은 울면서 보이지 않는 곤충을 찾아 공터를 헤메기 시작했다.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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