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참피탕


겨울 방학을 맞아 시골 사촌형네 집에 놀러간 철웅은 도시와는 달리 무료할 정도로 조용한 시골 생활에 곧 싫증이 나고 말았다.

그걸 눈치챈 사촌 형은 다음날 아침, 철웅을 불러냈다.

"철웅아! 가자!"

  " 응? 어디?"

"참피 사냥하러. 오늘 같이 눈내린 다음 추워진 날에는 참피 사냥이 딱이야."

참피를 사냥하다니. 마트 식실장코너에서 도축된 참피육만 봐 왔던 철웅은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사촌 형은 산쪽으로 한 십분 쯤 걷다 철웅에게 말했다. 

"이쯤이 좋겠다. 밑에 개울이 있고, 햇빛을 등진 이쪽 쯤에 참피가 둥지를 틀거든.
여기 눈이 쌓인 곳에서 살짝 녹아 손가락 하나 들어갈만한 구멍이 뚫린 곳을 찾아봐. 참피굴은 운치굴에서 나는 열기로 보통 숨구멍에 위에 내린 눈이 녹아 있어."

  "형, 여기 어때?"

"보자... 여긴 아닌것 같네."

  "어떻게 알어?"

"응. 오늘 같이 추운 날엔 그 구멍에서 김이 살짝 나거든."

  "어? 형, 여기 봐! 이거 이쪽 구멍에서 김나는 거 같은데?"

"진짜네..."

형은 집에서 가져온 쇠꼬챙이로 구멍 주변을 찔러보았다. 쑥 들어갔다.

"이거 참피굴 맞다. 철웅아, 가방!"

철웅이 건네준 가방에서 사촌형은 네무리탄을 꺼네 불을 붙인 다음, 숨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됐다. 이제 한 5분 쯤 있다가 여길 삽으로 뜨면 돼."

형을 도와 흙을 퍼내려가던 철웅은 낙엽더미 아래 잠들어 있는 참피를 발견하곤 살살 꺼내 가방에 담았다.

"모두 몇 마리야?"

  "큰 거 하나랑 새끼가 셋. 그리고 저 운치굴 속에도 더 있는거 같은데?"

"너 구더기 좋아해?"

  "아니 뭐 별로."

"그럼 저건 걍 두고가. 겨울 참피가 별미인게 겨우내 겨울잠 자느라 뱃속에 똥도 없고, 그래서 참피 분취도 안나고 고기도 야들야들하거든. 그런데 저런 구더기들은 겨울잠도 안자고 계속 똥만 쳐먹어서 냄새 짱 구려."

  "알았어 이정도면 충분하지 뭐."

철웅은 사냥한 참피를 조심조심 가방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집에 와 철웅이 꺼낸 참피들을 본 숙모는 솥에 물을 올리셨다.

     "에이그... 참피 그거 뭐 맛있다고 잡아왔니. 그냥 닭이나 삶아줄걸 그랬네."

  "아녜요. 형이랑 같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엄마가 참피 안드셔서 몰라서 그래요.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요."

형은 참피 주둥이를 수도 꼭지에 꽂아 물을 먹여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를 뱃속 운치를 쓸어냈다.

"데뵥, 데갸악! 풒!"

잠들어 있던 참피들이 난폭한 세척에 놀라 깨어나기 시작했다. 새끼 참피들은 아직 뭐가 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지만, 아무래도 연륜이 있는 마마는 사냥당했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숙모가 새끼들을 씻으러 데려가자 사촌형은 핸드폰을 꺼내 링갈앱을 켰다.

"어. 참피야. 일어났냐? 그래. 맞어. 새끼들이랑 지금 여기잡혀온거야. 너희들 모두 맛있어지게 될거야" 

"히엑, 닌겐상, 제발 부탁인데스. 살려주시는데스."

"싫은데? 너같으면 하루종일 애써 잡은 사냥감을 그냥 놔주겠냐?"

그러자 참피는 옷을 벗고 머리카락을 모두 뽑아 그 위에 올려서 형 앞에 내밀더니 도게자를 했다.

"이게 와타치가 가진 전부데스. 제발 살려주시는데스. 오로롱..."

"흠... 도게자까지 하니 마음이 약해지네. 그렇다고 너희들 모두를 놔줄수는 없고... 

그래, 너 둘 중 하나 선택해. 너를 놔 줄까, 아니면 네 자들에게 여길 나갈 수 있는 선택권을 줄까?"

참피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굵은 색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자들에게 선택권을 주시는데스."

"알았다. 그럼 너는 여기 들어가 몸을 깨끗이 씼어라. 탕으로 먹을거니까."

마마가 오로롱거리며 자기 몸을 다 씼었을 즈음, 숙모가 참피옷을 벗기고 세척까지 끝난 새끼 참피들을 가져왔다. 사촌형은 마마를 솥안에 넣고는 그 앞에 새끼들을 세워놓고 물었다.

"자, 너희들 마마는 여기 있기로 했다. 너희들은 집에 돌아가도 된다. 집에 가겠다는 참피는 내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 

"그게 무슨 소리 테치? 마마만 아와아와한 목욕 계속하고, 우리는 집에 가는테치?"

"똥마마였던 테치! 혼자서만 사육이 되고, 우리는 쫓아내려는 고약한 심보인 테챠악!"

예상치 못했던 자들의 반응에 당황한 마마는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쳤다.

"이런 분충 자들! 당장 집에 돌아간다고 하는데스! 여기 남으면 일가실각데스!"

"와타치 그런 거지같은 집에는 다시는 안돌아가는 테치! 마마가 태교노래에서 들려준 사육이 되는 테치! 똥닌겐 노예를 부리면서 세레브하게 사는 테치!"

형은 마마에게 말했다.

"들었지? 난 분명히 네 자들에게 집에 돌아갈 선택권을 주었다. 근데 어쩌냐. 네 자들은 여기 그냥 남겠대. 그럼 가족끼리 다시 만나."

형이 새끼참피들을 솥 안에 던져 넣자 마마는 난리를 쳤지만 솥뚜껑이 닫히면서 그 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형은 철웅을 바라보곤 말했다.

"자. 산참피 요리는 이렇게 하는거야. 아무리 참피라지만 산참피 어미는 힘이 졸라 쎄. 그거 옷벗기고 털 뽑고 씻기기까지 하려면 정말 힘들어. 그런데 이런식으로 하면 제가 알아서 스스로 다 하니 얼마나 편해. 게다가 참피는 죽기전 스트레스를 받아야 고기가 맛있어지는거 알지? 오늘 너 인생 최고의 겨울 참피탕 먹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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