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오늘도 흐르고 있다.
군데군데 흙과 먼지가 묻어, 이제는 초록색인지 갈색인지 알 수 없을 누더기를 걸친 소인이 한강을 내려다본다. 녹의 (綠衣)가 펄럭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땟국물에 쩔어 떡진 황갈색빛 머릿결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그 소인은 한강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발곁에 있던 종이컵을 주워 내용물을 입 속으로 털어넣는다.
"뎃... 데수웅~"
한 잔을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인지 그 실장은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말더니, 발곁에 둔 검은색 비닐봉지에서 내가 먹다 버린 치킨 부스러기를 한입 뜯어먹는다. 한강 저편으로는 높고 낮은 빌딩들, 그리고 그들보다 더 높게 솟은 전파탑들로부터 녹색과 적색과 흰색의 불빛들이 한 무리가 되어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음주실장 옆에 앉아 소주를 한병 반 정도 마시고 있다.
자전거길에 앉아 음식물 쓰레기를 뜯어먹는 실장의 모습은사실 그렇게 진귀한 광경은 아니다. 2010년 실장들의 거한 탈분행위로 4대강 사업이 욕먹을 만큼 어느새 대한민국은 친실장 공화국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당장 이 음주실장의 반경 30m 안을 조금만 살펴봐도 테치테치거리며 쓰레기통을 나무가지로 툭툭 건들이는 자실장들이나, 그 옆에서 데샤아아거리며 마라실장을 쫓으려 하는 친실장, 그리고 레후거리며 프니프니를 요구하는 구더기들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이 실장을 특이하게 만들게 하는 것은 음주를 즐기는 습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체적으로 동물들은 알코올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썩은 과일에서 생성된 알코올에 맛을 들인 코끼리들이 썩은 과일만 찾아다니는 행위가 보고되었으며, 미국에서는 캔맥주에 맛을 들인 불곰이 마을까지 내려와 술집을 습격한 사건이 보고되었다고 한다. 실장석도 다른 동물들과 다를바 없다. 일단 술 맛을 들여 놓으면, 앞으로도 술을 찾게 되는 것이다.
"데스, 데스데스, 데스웅~"
어느새 실장이 나를 향해 종이컵을 내밀며 한 잔을 더 요구하고 있다. 나는 병을 기울여 소주 반 잔 정도를 따라준다. 실장은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컵에 담긴 소주를 홀짝거린다. 틀림없이 조금 더 따라주기를 바랬던 것이겠지. 나는 퇴근 후 소주나 맥주를 사 이 실장과 한 잔을 하는것이 버릇이 되었지만, 아직 실장에게 이름을 지어주지는 않았다. 딱히 이야기 상대가 고픈건 아니라 링갈도 사지 않았다. 실장은 술을 원할때 "데스웅~" 이라는 소리를 내고, 술을 충분히 마신 뒤에는 "데... 데스웅~" 이라는 작별인사와 함께 자전거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있는 강둑 위의 골판지집으로 돌아간다. 이 실장은 끈덕지게 달라붙는 회사의 부장이나, 대학교 시절 친구들이나, 벌써 얼굴에 검버섯이 피기 시작했지만 3주마라 머리를 검게 염색하는 50대 초반의 거래처 사장처럼 아쉬워서 가는 3차, 4차를 요구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계속 이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에 이곳에 와서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도, 그런 접객자리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술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술로 푼다고 하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아버지도 술을 매우 좋아하시는... 그런 술을 좋아하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것이 내게는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린왕자의 주정뱅이처럼 딱히 부끄러워서 술을 계속 마시게 되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술을 마시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계속 마시게 되었다. 혼자 밖에서 술을 마실 곳을 찾아 이 자리에 온 첫 날, 잔디에 앉아 소주 한 병을 홀짝거리다 "데... 데스웅~" 하는 소리를 내고 있던 한 실장에게 소주 반 잔을 충동적으로 따라 건네준 것이 이 인연 (아니, 실연이라 해야 하나)의 시작이었다 할 수 있겠다.
나와 그 실장은 이렇게 앉아 해가 지는것을 같이 보곤 한다. 멍청하게 혀를 빼 물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때가 잔득 낀 옷을 보면 그런 생각도 사라진다. 가끔 뒤뚱거리며 움직일때 치마 아래로 보이는 초록색으로 물든 속옷이 보일때는 더 그러하다. 이 실장에 딱히 애정은 없다. 술을 한 잔 하면서 해질녘에 봉숭아 꽃 물들인 손톱처럼 빠알갛게 타오르는 하늘을 같이 바라볼 수 있는, 나처럼 그저 그런, 소모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다른 누군가가 필요할 뿐이다.
"데스, 데스웅~"
컵을 이쪽으로 공손하게 내밀고 있는 실장에게 소주 반 잔을 더 따라준다. 처음에는 주량이 소주 한잔이었던 실장은 어느새 주량이 소주 세 잔으로 올랐고, 처음 이곳에 왔을때 주량이 소주 두 병이었던 나는 소주 세 병으로 주량이 올랐다. 어제도 여기로 온 나는 아마 내일도 다시 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아마 이 실장은 이 강둑에 앉아 있을 것이다... 내일도 내 인생에, 그리고 저 실장의 실생에 변화는 없겠지.
"데... 데스웅~"
잔을 비운 실장은 종이컵을 앞치마에 넣고 나서, 오른쪽 손을 흔든 뒤 비틀거리며 골판지 집으로 사라진다. 나는 자전거 랙에 잠궈뒀던 자전거를 풀어 집으로 페달질을 시작한다. 하늘을 올려봐도 별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서울의 밤은 또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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