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펫숍의 재고 처리법

 

z펫숍의 주인장은 이마를 감싸쥐고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지.


얼마나 썼더라.


350만원.


아니지 공임하고 원천기술, 금영 값까지 하면 700정도 던가.


아니지 700이 무어야 생각없이 특허까지 내버린 바람에 1000만원 정도는 쓴 듯 했다.


체인점까지 낼 수 있는게 아닐까 싶었을 정도로 번뜩였던 아이디어는 멀고 먼 시장경제를 빙하고 한바퀴 돌아 주인장의 뒷통수를 강하고 치고야 말았다.


멍하니 턱을 궤고 수북히 쌓인 재고를 바라보던 주인장은 홀로 탄식했다.


- 실장석들에겐 행복을, 주인들에겐 안심을.


자신도 모르게 박스에 새겨진 로고를 따라 읽는다. 그리고 자조적으로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리저리 고민해보았지만 방법은 이것뿐이지 싶었다.

여기저기 돈을 너무 많이 당겨써서 당장 다음달부터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 와 사장님 오셨다!

- 어서 어서 오세요~


z펫숍 사장의 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z공원 입구에서 신나게 손을 흔든다.

겨울을 앞둔 시점에서 공원의 들실장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자원을 제공하는, z펫숍의 사장이 나서서 만든 자원봉사 모임이었다.

그래도 실장석으로 밥벌어 먹는 자신의 위치도 있거니와, 사정상 반드시 참여해야하는 부분도 있기에 무리를 해서 물건을 챙겨온 것이다.


- 우왁... 사장님. 이... 이렇게나?

- 사료 봉지 몇개 준비해온 제 손이 부끄럽네요..

- 힘든 시기니까요. 조금 무리해서 마련해봤습니다.


실장 한가구당 하나의 물품박스를 준비해온 z펫숍 사장의 큰 배포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만다. 이 정도를 마련하려면 가게가 휘청할 정도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대충 들어보아도 가벼운 주전부리 수준이 아니라 묵직하다.


- 너무 무리하신 것 아니에요?

- 지금이야말로 무리해야할 때죠.


z펫숍의 사장이 싱긋 웃으며 박스를 내리자 그 미소에 힘이난 자원봉사 인원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차에서 물건을 이어받는다.

모두의 얼굴에 환한 미소.

베푸는 자의 우월감이니, 다른 공원이용자들의 피해를 의식하지 않는 자기만족적이고 이기적인 행위이니 하지만 결국은 좋아하는 것을 지키고자 하는 자아의 성취에 중점이 있다.

겨울을 앞둔 어려운 시기, z펫숍의 사장이 내어준 큰 배포에 사람들의 마음이 의욕으로 가득차 오른 것이다.



가을에도 본 익숙한 얼굴들과 반가운 물건들, 맛나맛나한 음식들.

들실장들이 슬슬 봉사인원에게 모여든다.



공원의 수도도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이 중지되었고 얼어붙은 땅 때문에 운치 처리도 제대로되지 않아 모양이 말이 아니다.


흰색인 부분보다 초록색인 부분을 찾는게 더 빠를 앞치마라던지, 롤 모양 그대로 버석버석 떡이 진 머리. 침자국이 굳어 버짐이 된 얼굴과 찐득거리며 안쪽 허벅다리에 달라붙는 녹색 속옷.


다만 모두 초췌하고 굶주린 표정이었다.


간절한 그 표정에 모두들 잠깐 얼굴이 굳었다가 다시 화악하고 펴진다.


'도와야 한다.'


저 이상 저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려선 안된다. 하고 말이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처음으로 손을 내미는 이가 좀 드물다. 사료와 사탕을 눈처럼 뿌려줄 것이라던 여자 회원이나, 보온제를 박스에 채워주기 위해 가져온 청년들 모두 마찬가지다.


- 겁먹을 것 없다. 추위에 지쳐보이는구나. 배도 고파 보이고.


z펫숍 사장이 먼저 말문을 연다. 손에 어느 정도의 사료를 쥐고 무릎을 낮춰 실장석 한가족을 불러본다.

경계심이 남았는지 꽤 잘 참는 모습이었지만, 사장이 사료를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하거나 수건이 따듯하다며 볼에 부비거나 하자 어느 정도 다가오기 시작한다.


- 먹을 것이 너무나 빨리 떨어진 데스.. 바닥에 깔아둔 낙엽도 금새 부스러져 추워추워한 데스..

- 그래.. 가혹한 계절이지. 어디보자, 뭐가 좋을까.


사장이 비장의 박스를 꺼내어 든다. 아직 회원들조차 열어보지 않았었기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 자. 박스 바닥에 꼭 맞을 쿠션이다.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줄거야.

- ...데...!


콧물을 주르륵 흘리며 휘둥그레해진 눈으로 쿠션을 쳐다보던 친실장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자신보다도 자들이 말이다. 얼음바닥 위에서 자는 느낌일진데,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얼마나 겁이 났을까. 누구 하나 얼어죽은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쿠션을 꼬옥 하고 안아 얼굴을 뭍은 채 눈물을 흘리는 친실장 옆에서 엄지 하나가 비죽 모습을 드러낸다.

많이 야윈 모습이다. 젓가락 만도 못한 팔두께. 식탐의 종족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가는 모습. 사장은 박스에 다시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 내민다.


아직도 조금은 겁이 나는지 움찔하고 엄지가 굳는다.

그리고,

이내 얼굴에 화안한 미소가 퍼진다. 장난감 공이다. 그것도 엄지가 아주 좋아하는 분홍색. 그것을 들고 자실장 언니들을 돌아보자 모두가 공을 얼싸안고 뒹군다.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쿠션에 고개를 박고 울고있던 친실장이 돌아보고는 빙긋이 웃을 정도로.


- 이것도 받으렴. 쿠션만으론 안돼.


박스에서 제법 두꺼운 수건을 꺼내어 친실장에게 넘겨준다. 쿠션만으로 한품이 가득 찼기에 목에다 두번 정도 둘러서.

그 놀라운 온기에 친실장의 눈이 희망으로 가득찬다.


이 정도면 괜찮은 데스!


이 정도로 따듯하다면 올 겨울을 넘길 수 있는 데스!



그런 희망의 빛이 환히 보인다.

그때 사장의 얼굴이 장난스레 엄숙해진다.


- 에잇! 이 집 장녀는 누구야! 엄마만 짐을 들게 할셈인가!

- 테히... 와타치인 테치!


깜짝 놀라 튀어나온 장녀는 제법 몸집이 있다. 아쉽게도 겨울이 오기전에 중실장을 졸업하지 못한 모양이다. 먹성이야 이미 성체실장 정도였을테니 친실장이 얼마나 힘들었을지야 짐작이 간다. 물론 그럼에도 단 하나의 가족도 버리지 않은 그 모습이 기특하지만 말이다.


- 자 이것과 이걸 받으렴.


실장석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형이 마법소녀 테치카 인형과 요술봉, 그리고 고열량의 사료를 건내준다. 짓소컴퍼니에서 실장석들의 간호식으로 만든 맛과 영양이 풍부한 훌륭한 것이다.

조금 단단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부수어서 나눠 먹다보면 겨울 쯤이야 문제 없이 넘길 수 있다. 단단할만큼 건조된 것이기에 상할 염려도 적고 말이다.


그렇게 박스 안의 물건을 모두 전달받은 가족은 서로를 꼬옥 한번 얼싸 안았다.

그것을 지켜보던 사장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가족으로써 파탄 직전이었을 것이다. 인간이나 실장석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부족하고 모자라고 궁핍하면 그 가정엔 금이 간다. 그리고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로를 탓하고 미워한다. 결국엔 파국.


하지만 지금 이들은 다시금 희망을 찾았고 그것을 통해 다행히도 끈끈히 뭉쳐졌다. 저 말 없는 포옹이 얼마나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사장은 조금 미안해질 정도였다.


이내 그 눈빛을 마주한 실장일가는 사장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서둘러 집을 향해 뛰어 사라졌다.


- 녀석들, 고맙단 인사는 좀 더 후하게 해도 좋을텐데.

- 아니 됐네. 친실장은 어서 집으로 돌아가 바닥엔 쿠션을 그 위엔 수건을 덮어 아이들을 따듯하게 해주고 싶어 마음이 급할 것이고, 자들은 장난감에 정신이 팔리고 맛난 음식에 허기가 돌아 그럴 정신이 없을거야. 이거면 됐네. 이거면 됐어.


멍하니 실장일가를 응시하는 사장의 뒷모습을 보며, 자원봉사자들은 가슴의 뭉클함을 느꼈다. 박스 안을 가득 채운 물건들 모두 그들에게 정말이지 간절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 또한 실장석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에게도 전달됐음은 당연했다.


- ....대단하세요 정말.


- 내가 무얼. 자 어서어서 나눠주세. 어느새 많이들 모였구만.


일가가 나누어받던 물품을 부러움으로 지켜보는 공원의 실장석들이 어느새 전부 모습을 드러냈다.

혹여 질투에 먼저간 일가에게 피해가 생길까 우려한 사장은 서둘러 스피커를 켜고 실장석 가족들을 일사분란히 줄세웠다.

물건들은 모두에게 돌아갈만큼 충분하며 올겨울도 싸우지 말고 행복하고 풍족하고 지내달라고 전한다.


오래간만에 받은 친절에 수건을 받아들고 눈물을 터뜨리는 친실장, 자신보다 조금큰 테치카 인형을 들고 낑낑대면서도 신이 난 엄지, 이미 봉투를 열어 사료의 맛을 음미하고 있는 욕심쟁이 자실장들의 얼굴에 활짝 핀 웃음꽃.

많은 감정들이 겨울,  z공원의 풍경을 수놓는다.

















그날 밤, 그날을 처음으로 생긴 도메인의 쇼핑몰에는 아주 많은 손님이 물 밀듯 밀려들었다.

별다른 상품은 판매하지 않는, 오히려 의아한 상품만이 즐비한 단촐한 쇼핑몰이었는데

썸네일에는 아기자기한 테치카 인형이나 장난감공, 푹신해보이는 작은 쿠션들, 조금 두꺼운 수건 등이 있었지만 정작 들어가서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은 오로지 해당 상품의 '내부에 들어있는 GPS' 칩으로 그 물건들을 추적할 수 있는 액정 레이더 뿐이었다.

매상이 잘 나오진 않을 법한, 내용물 없는 샌드위치를 파는 듯한 쇼핑몰이었지만 상품들은 금새 매진 마크가 달렸고,

모든 상품이 소진되었음을 알리고 도메인을 닫은 z펫숍 쇼핑몰 주인의 주머니는 다시금 두둑해 졌다.

관련 물품으로 굳이 금속 바나 꼬챙이, 전기 충격기 등등을 팔 필요는 없었겠지.

이미 모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구입했을테니까.



배송이 완료된 이튿날의 늦은 밤. z공원에 드물게 많은 사람들이 스산히 몰렸다.

다양한 연령대의 그들은 모두 일행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서로를 경계하다가 서로의 손에 든 작은 액정 탐지기를 보고는 피식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며 이내 공원의 곳곳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남는 건 적녹의 바닥들 뿐일 것이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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