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리 모놀로그 (포지티브)

 

끼익. 철컥.

“테샤아아아앗! 테챠아아앗!”

문을 열면 늘 정겨운 소리가 반겨온다. 내가 돌아온 줄 알고 갓 짜낸 비명을 목청껏 지르기 시작한다. 

독라의 자실장은 힘차게 뛰쳐나와 내 발치를 두들겼다. 오늘도 역시 기운차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샤워실로 향한다.

“테엣 테챳! 테치테치! 테···.”

샤워실 문 너머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온다. 그러나 그 마저도 잠시 뿐. 물소리가 소리를 지운다.


문을 열자 부옇게 서린 김이 딸려 나온다. 아직 뜨끈한 몸. 목욕을 마치면 늘 목이 마르다. 냉장고에 뭐가 남아있더라?

“테프프프. 테챳, 테칫 테치!”

우유 밖에 없다. 우유가 딱히 싫지는 않다. 우유향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나는 그 점이 오히려 고급지다고 생각한다.

우유 특유의 목넘김은 찬물보다 부드럽다. 시원하다. 오늘 하루도 상큼하게 마무리했다.

그치만 미도리 너는 어떨까? 나는 보란듯 냉장고 문을 닫았다.

“테챠아아아앗!”


내가 냉장고에 다가서면 녀석은 꼭 쫓아온다. 뽈뽈뽈. 하지만 이 냉장고에 녀석이 먹을 음식은 없다.

녀석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그럴 수도 있지. 피곤한 건 제 몸이다.  내가 소파에 파묻혀 TV를 켜도 미도리는 빈정거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엉덩이를 뒤로 내 빼는 게 똥을 싸거나 투분을 하려는 모양이다. 으음. 쉽진 않을텐데···.

하지만 TV가 더 재밌다. 한밤에 보는 쿠킹 쇼는 왜 그렇게 재미있는건지. 야식을 먹고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참아왔는지 모르겠다.

“끄으응. 테에에···. 테츄, 테츄!”

오늘은 닭요리구나. 치킨이 당긴다.



한참이 지나 광고시간. 한 숨 돌리러 베란다로 나선다.

어쩐지 중간부터 조용하더라니 미도리는 베란다에 있었다. 녀석은 베란다 슬리퍼를 깨물고 차고 하고있었다.

“테프프픗. 테챳 테챠아아!”

자실장 한 마리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슬리퍼는 멀쩡하다. 녀석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쏘아보지만 내 바람은 담배뿐이다.

늦은 밤의 풍경은 오늘도 변치 않는다.

TV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까지 미도리는 '똥노예'에게 벌을 주기 위해 별의 별 기이한 행동을 취한다.

그러나 우리집에 녀석이 망가뜨릴 수 있을만한 물건은 없다. 기껏해야 냉장고 안의 음식들 정도일까.

한 뼘에 그치는 몸으로 부릴 수 있는 똥노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

내가 잠자리에 들 즈음이 되어 녀석은 지쳐서 거진 울상을 짓는다.

“테에에에···. 테에에엥.”

녀석은 결국 알람을 세팅하는 나에게 매달려 때를 쓴다. 아니, 저건 억울한 표정이다. 열심히 관심을 갈구해 온 자신을 보라는 듯···.

그러나 나는 대꾸없이 침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망연히 나를 올려다 보는 미도리의 얼굴에 복잡한 주름이 진다.

침실은 조용하다. 문이 어찌나 두꺼운지 닫아두면 홀로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듯 하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는 수면의 스파이스에 그치고 만다.



삐-익···.

아날로그 알람을 쓰는 건 오래된 버릇이다. 무미건조한 소리는 잠결에 듣더라도 감정이 상할 겨를이 없다.

스탠드 곁의 시계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침실 문짝의 무게가 한 팔에 실린다. 다시 세상으로···.

우리집에 오고 나서 미도리는 아침잠이 늘었다. 내가 처음 미도리를 만난 건 이보다 이른 시각이었다.

미도리는 소파 밑의 한 구석에서 웅크려 자고있었다. 나는 미도리를 잡아 흔들어 깨웠다.

“테에···? 테에···. 테샤앗!”

활기찬 반응이다. 그럼 아침을 먹어야겠지. 냉장고에서 특제 콘페이토 한 알을 꺼냈다. 물론 음식은 아니다.

이건 음식은 아니고···. 내 손안에서 미도리는 거세게 발버둥 친다. 늘 이 모양이다. 그치만 아침을 거를 수는 없다.

“텟···! 텟! 쿠아아···.”

입에 손가락을 쑤셔 넣는다. 주둥아리를 고정시키고 '콘페이토'를 밀어넣었다. 자, 넘어가라···.

내려놓은 미도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신음을 흘렸다. 오늘도 다르지 않다. 나를 보며 애원하는 미도리.

“테에에. 테챠! 테에에에엥.”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건 미도리가 나와 약속한 일이니까.

나는 바닥을 서성이던 녀석을 베란다의 수조로 옮겨왔다. 미도리는 계속해서 신음을 토한다.

좋아. 수조 안에는 변기 대용의 페트병을 마련해놨다. 총구를 페트병에 겨누고 미도리의 배를 세게 누르면···.

“테챠아아아아앗···!”

봉인해 둔 총구의 마개가 빠지며 똥이 쏟아진다. 후우. 어차피 할 일인걸. 얌전히 스스로 해결하면 좋으련만.

페트병 꼭대기에 앉은 미도리는 쾌감과 고통이 뒤섞인 미묘한 표정을 짓고있다. 테츄흐헤 거리는 게 링갈을 쓰더라도 번역은 되지 않을 듯 하다.

그러나 내가 새 마개를 들이밀자 녀석은 정신이 드는지 다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뒤집어 얼굴을 페트병에 박아넣는다.

허공을 헤매는 양 다리 사이로 총구가 보인다. 손가락을 브이자로 벌려 다리를 고정시키면 나머지는 간단하다.

“···!”

알 수 없는 울림이 페트병 안을 맴돈다. 마개는 깔끔하게 총구를 틀어막았다. 미도리를 잡아뽑자 잠시 몸서리 치더니 화가 난 듯 팔을 휘젓는다. 붕쯔붕쯔?

나는 미도리를 수조 밖에 내려놓았다. 슬슬 나도 식사와 출근 준비를 해야한다. 챠악, 챠악 소리를 배경삼아 후라이팬을 튕긴다.

흠흠, 계란값이 금값이라지만 아침상에 에그 스크램블을 뺄 수는 없다. 달걀을 휘휘 젓는 동안 조미료를 꺼내둔다.

스크램블에 케챱을 뿌린다. 케챱이 쭉쭉 빠지는 게 미도리의 아침일을 연상시켜 가끔 기분이 상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식빵은 굽지 않는다. 사소한 취향이다. 베이컨도 굽는다.

이렇게 내가 공을 들여 아침밥을 차리고, 테이블에 앉으면 미도리는 씩씩 성을 낸다. 그러고는 역시나 내 발을 후드려 팬다.

그러나 금세 제 풀에 지쳐 쓰러진다. 아침부터 열심이다. 미도리의 진짜 아침밥은 내가 식기를 설거지 통에 놓고 난 뒤에야 주고있다.

내가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시킬 때면 녀석은 은근히 기대하는 듯 하다. 테프픗 하고 비웃으며 투분할 준비를 한다. 물론, 마개가 단단히 막고있어서 곧 울상을 짓는다.

요리는 마지막 낱알 하나마저 내입으로 들어간다. 그야 요리는 사람이 먹는거니까. 내가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이면 미도리는 격한 기분을 드러낸다.

보통은 심하게 당황하거나 화를 내거나 한다. 하지만 녀석의 식사는 바로 이것 뿐. 정수기 옆에 쌓아둔 염가 실장푸드다. 싸게 덤핑 판매하는 걸 구매해뒀다.

페트병 뚜껑에 적정량을 담아서 준다. 처음에 실장푸드를 먹이려 들었을 때, 녀석은 푸드를 집어 던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치만 이제는 노하우가 생겼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요법은 실장석에게도 충분히 먹혔다. 간단하다. 푸드를 집어 던지는 경우 이틀 정도 밥을 굶기기를 여러 번 반복하니 적어도 푸드를 던지지는 않게되었다.

그래도 푸드만이 미도리가 못 된 장난을 칠 수 있는 유일한 물품이기에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곤 있다. 예를 들어···.

간단하게 아침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미도리는 여전히 허겁지겁 푸드를 삼키고 있다. 하지만 이제 땡, 타임오버다. 나는 페트병 뚜껑 째 푸드를 빼앗는다.

반항도 잠시, 미도리는 싱크대 개수대로 버려지는 푸드를 지켜 볼 수 밖에 없다. 미도리의 식사시간은 내가 샤워를 하는 틈 뿐이다.

물론 내 기분에 따라 샤워는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한다. 뭐, 그래도 큰 문제는 없다.

내가 현관을 나서려 하자 미도리도 배웅을 나온다. 뽈뽈뽈 걸어나와 인사를 한다.

“테샤아아앗! 테챠 테샤아아아앗! 텟···.”

문을 걸어 잠글 때까지 미도리의 마중은 계속됐다. 나도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출근 길에 오른다.


미도리와는 두 달 전에 만났다. 수 개월 전, 나는 백수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큰 마음을 먹고 운동과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그 무렵의 마음가짐이 유지되어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고 미도리는 그 시절의 침전물이다.

이른 아침의 조깅은 나의 일과였다. 지금의 출근 시간보다 이른 시점에 나는 늘 집 앞의 공원의 가장자리를 달렸다.

그리고 한껏 달린 뒤, 골인 지점에는 편의점이 있어서 나는 종종 음료수를 사서 마시곤 했다. 그 편의점 입구에 미도리가 있었다.

정확히는 녀석의 일가가 있었다. 도대체 왜 그 이른 시간에 편의점을 서성였는지 아직도 미스테리지만 분명 탁아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 돌연 색다른 마음이 일었다. 긍정의 기운이 충만하던 나는 실장석이라도 길러볼까 하고 전에는 없던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데리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 중 기세 좋게 소리를 지르던 미도리를 골라들고 집으로 향했다.

내 손이 다가갈 때 일가는 한 껏 기대를 부풀렸는지, 내가 미도리만을 낚아채고 돌아가자 거센 소리로 짓걸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안면이 있던 편의점 알바가 시끄럽던 일가를 치워버렸다고 한다. 미안함에 그 친구에게 비싼 커피우유 한 팩을 사준 기억이 난다.

하여간 미도리는 우리집에서 살게 됐다. 처음 우리집에 들게 된 미도리의 처우는 지금과 달랐다.

미도리가 미도리로 불리기 이전에 녀석은 수조에서 살았다. 베란다에 둔 그 수조가 맞다.

실장석을 집에서 기르는 건 처음이었지만 녀석들의 악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조깅 중에 몇 번 마주치기도 했고···.

일부러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던 무렵이었기에 나는 실장석이 똥을 싸거나 물건을 어지럽히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수조를 썼다.

물론 녀석은 곧바로 성질을 부렸다. 처음으로 스마트폰 링갈을 처음 사용해 본 것도 그때였다.

「테챠아아앗! 와타치를 꺼내는 테샤아아앗! 이딴 거 말고 똥노예는 우마우마한 스테이크와 스시를 내놓는 테챠아아앗!」

수조를 팡팡 두들기며 내는 역정은 대체로 그런 내용 뿐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놀라운 뻔뻔함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실장석에게 질리기보단 즐거운 기대를 품었다.

나쁜 행동을 앞으로 개선해 나간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오히려 뻔뻔하게 날뛰는 모습이 가소로워 언제까지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녀석에게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점차 사회의 양지로 나아가는 나와 달리 녀석은 수조 안에서 분에 넘치는 요구만을 늘어놓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 날의 일을 뒤돌아보면 가끔 쓴웃음이 난다. 과거의 나를 미도리에게 투영하며 수조에 가둬두는 건 정말 소심한 정신승리였다는 생각이 들기에···.

그렇지만 그건 이미 지난일이다. 미도리는···. 아, 미도리는 미도리라는 이름과 더불어 저 나름의 자유를 얻었다.

취직이 결정 된 날 나는 링갈로 미도리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기분이 어떠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 테츄? 멍청한 똥노예가 뭘 실실 웃는 테챠아앗! 어서 와타치를 좁은 곳에서 꺼내는 테챠앗!」

「와타치는 이딴 곳에서 살고싶지 않은 테챠앗! 어째서 똥노예인 오마에가 넓은 방을 쓰고 세레브한 와타치가 이딴 곳에만 있어야 하는 테츄? 말도 안되는 테챠아앗!」

말을 마치기 무섭게 녀석은 투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조 벽에 똥이 가로막히는 모습을 보고 열이 뻗히는 지 발악은 더욱 심해졌다.

「테캬아아아악! 오마에 죽여버리는 테챠아아앗! 지금이라면 콘페이토를 내놓는 것으로 용서하는 테챠아앗! 똥노예는 어서 내놓는 테챠앗!」

그러나 그 시절도 지금도 우리집에 콘페이토는 없다. 지금이라면 콘페이토 닮은 게 있긴 하다.

미도리와 대화를 하던 당시 나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오랜 염원이던 취직을 이루고 방방곡곡이 기쁨을 나누던 참이었다.

나는 미도리에게도 자그마한 행복과 충분한 기회를 나눠주기로 했다. 

“너도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거지?”

「이제야 알아듣는 테츄? 테프프프, 정말 멍청한 똥노예인 테치. 우선 여기서 와타치를 꺼내주는 테챠앗.」

“하지만 그냥은 안되겠는 걸.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노력을 해야 해.”

「테에···? 그건 또 무슨 헛소리인 테샤앗!」

“나도 행복해지기 위해 매일 같이 노력해 왔다고, 그렇지만 너는 벌써 들실장에서 사육실장이 되는 행복을 누렸잖아?”

「와타치는 그 전까지 노력한 테챠! 오마에는 와타치를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하는 테치. 어서 와타치를 내보내는 테챠아아앗!」

“싫어.”

「테챠아아아아앗!」

녀석은 표정을 한껏 구기며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솔직히 저기서 대화를 포기하지 않은 나도 대견하다.

그 시점에 나의 호기심은 답답함을 이기고 있었다. 아마도.

쒸익. 쒸익. 미도리가 분을 삭여 한 풀 꺽여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대화를 시도했다.

“거봐. 그렇게 화만 내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

“풋···.”

온 얼굴을 벌름거리며 화를 참는 모습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그것이 미도리의 분을 더 부추겼지만 녀석은 이미 충분히 지쳐있었다.

말을 아끼고 있자니 미도리가 먼저 말을 걸었다.

「도대체 와타치가 어쩌란 말인 테츄.」

“성의를 보이라는 말이지. 그런 다음에 너가 원하는 걸 말해봐.”

미도리는 다시 부들부들 떨었다. 또 한참 뒤에야 미도리가 말을 꺼냈다.

「···똥노예가 와타치를 행복하게 하는 건 당연한 테츄.」

“그건 안돼. 그럼 그 수조 안에서 영원히 갇혀있던가.”

「···.」

“너가 결정을 못하겠다면, 좋아. 이런건 어때? 나는 네가 집안을 어지럽히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너를 자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어.”

「테에?」

“물론 그럴 수 있도록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지만.”

「그거인 테츄! 그렇게 하는 테츄! 똥노예는 어서 와타치를 밖으로 꺼내는 테츄!」

“너 제대로 알아듣기 한거야?”

「와타치를 꺼내면 그렇게 하는 테츄!」

“정말로 그렇게 할거야?”

「테챠아아앗! 몇 번을 말하는 테챠! 똥노예는 대체 얼마나 멍청한 테챠아아앗!」

“정말, 정말로 그렇게 할래?”

「테에캬아아아악 죽고싶은 테챠아아아앗!」

“좋아 그러면 내일부턴 그곳에서 꺼내줄게.”

내가 꺼낸다는 말을 꺼내자 녀석은 저열한 웃음을 흘렸다. 하루 종일 테프프프 거리는 소리가 멎지를 않았다.

푸드를 주려 수조에 다가가도 해냈다, '이겼다' 하는 듯한 초승달 눈을 하고 있었고, 푸드조차 먹지 않았다.

아마도 수조에서 나가면 모든 것은 해결될 거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나를 부려 원하던 스테이크와 스시라도 먹으려고 생각했나.

미도리가 잠들기 전에 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그래. 그리고 너는 이제부터 미도리야.”


이른 저녁에 미도리는 기쁨에 겨워 잠들었다. 미도리가 잠들었을 때 나는 미도리를 방에 풀어놓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더러워지기 쉬운 옷을 벗겼다. 깨지 않을까 싶었지만 녀석은 곤히 잠들어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난리가 나겠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총구를 마개로 처음 틀어막은 것도 그 날이다.

아마 그 쯤이 것이다. 어렴풋이 짜증과 분으로 날뛰는 녀석의 모습에 미미한 감정이 일기 시작한 것은···.

그야말로 볼만 한 꼬락서니였다.

실장석의 주제넘은 행동을 보고 녀석들을 학대한다는 사람들도 있는듯 싶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야 말로 극상의 엔터테인먼트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날로 우리집은 미도리의 무대가 되었다. 나는 최소한의 규칙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미도리에게 부가하지 않았다.

물론 대화도. 미도리가 그 이름으로 불린 건 그 날로 마지막이다. 대화할 일이 없었다. 링갈도 켜지 않았다.

여러 면의 개조를 마치고 나는 새로운 나날을 맞이했다. 

아침, 미도리는 약속대로 수조 밖에서 깨어났다. 녀석은 자신의 몸을 더듬다가 새삼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거추장스러운 머리털도 모조리 잡아 뽑아야 한다. 아무래도 자는 틈에 머리털을 뽑는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정당한 계약이란 양자가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집행되는 게 옳은 것 아니겠는가.

“테챠아아아악! 테챠아아아앗!” 

이제는 익숙한 거센 울음도 당시에는 더욱 싱싱하게 들렸다. 내가 머릿털을 모조리 잡아 뽑자 미도리는 한 동안 패닉에 빠졌다.

“텟···. 텟···. 테에에에엥.”

하지만 진정한 패닉은 한참 뒤에나 찾아왔다. 일을 마치고 커피를 즐기려는 나에게 미도리가 다가왔다.

커피향이 코를 찌르고 미도리는 태도를 달리했다. 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무언가를 소리치기 시작했다.

“테치 테치, 테챠아앗! 테챳!”

하지만 시고 씁쓰름한 향이 혀에 베어있는 동안 나는 테이블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얼마 안가 미도리는 총구를 뒤로 내밀고 투분을 하려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미도리는 난생 처음 느끼는 부자연스러운 감촉에 몸을 베베꼬며 까무러쳤다.

그러다 분노로 거품을 물더니 쓰러져 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티타임을 마치도록 미도리는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잘 알고있다.

그 증거로 아직까지 잘 살아남지 않았는가?

미도리의 기막힌 모놀로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미도리가 나를 반긴다. 눈에 띄게 마른 미도리의 울음은 점차 쇠해간다.

그런 미도리를 위해 오늘은 선물을 마련해봤다. 

“테에···. 테츄?”

말끔한 자실장이 케이지를 빠져나온다. 녀석은 새로운 환경을 둘러보며 가벼운 감상을 내뱉었다.

미도리가 오랜만에 얼빠진 표정을 보여줬다. 새 친구의 등장에 적잖이 놀랐나보다.

새로온 자실장도 독라를 보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먼저 마음을 연 건 기존 입주자 쪽이었다.

“테캬아아아악!”

미도리는 금세 적의를 드러냈다. 새 친구의 말끔한 옷을 시기하는 모양인지 소매를 붙잡고 늘어졌다.

“테에에엥! 테에에엥!”

자실장은 울며 내 품으로 달려든다. 나는 녀석을 안아 테이블 위로 올려줬다. 미도리는 이제 나에게 적의를 쏟으며 씩씩거렸다.

테이블에 올려 둔 자실장은 테츗거리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오랜만에 링갈을 켰다.

「쮸인님 저 독라는 무서운 테츄···. 와타치의 소중한 옷을 빼앗으려고 하는 테츄. 무서운 테츄. 테에엥.」

「내려오는 테챠아! 똥벌레는 내려오는 테챠! 오마에를 독라로 만들어서 운치굴에 쳐넣는 테챠아아앗!」

“저 친구가 무섭니?”

「그런 테츄···. 쮸인님 와타치도 독라가 되는 테츄···?」

“아니, 꼭 그런건 아니야.”

나는 새 녀석에게 미도리와의 약속을 이야기했다. 독라는 미도리의 요구에 따른 합당한 조치라는 점. 꼭 미도리와 같은 요구와 대가를 치룰 필요는 없다는 점 등.

「와타치는 쮸인님이 원하는 대로 하는 테츄. 독라는 되고 싶지 않은 테츄.」

나는 녀석을 향해 끄덕였다. 생각보다 예절 바른 개체인듯 하다. 실장샵을 둘러보다 우연히 얌전해 보이던 이 녀석을 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녀석을 보니 미도리와의 대조가 꽤나 즐거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 외로 미도리의 새 친구는 겁이 많아 보인다.

그건 별로 상관 없다. 어차피 둘을 같은 공간에 둘 수는 없다. 그랬다가 서로 싸워 무슨 난장판을 벌여 놓을지 알 수 없다.

나는 안전부절 못하던 녀석을 새 수조에 넣었다. 미도리는 수조의 아크릴을 꿰뚫어보며 새 친구에게 조소를 날렸다.

「테프프픗. 오마에같은 똥벌레는 거기가 어울리는 테츄. 고귀한 와타치가 가끔 구경오는 테츄.」

「···. 무서운 테츄. 무서운 테츄.」

새 입주자는 이전의 자신처럼 수조에서 살아간다. 미도리는 자신보다 불쌍한 처지에 있는 자실장을 보고 만족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미도리의 조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 일은 저녁에 터졌다.   

불안에 떠는 새 녀석에게 나는 콘페이토를 주어 달랬다. 더불어 변소나 따뜻한 헝겊 같은 걸 수조에 넣어줬다.

자실장은 조만간 만족스러운 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텟테로게, 텟테로게···.」

노래를 계기로 미도리는 수조에 신경을 쏟기 시작했다.

콘페이토를 받아든 새 친구를 보고 녀석은 비웃는가 싶더니, 그것이 진짜 콘테이토라는걸 깨닫고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조의 자실장은 미도리를 등지고 앉아 사탕의 달콤함을 즐길 뿐이었다. 새 녀석이 보이는 성찬의 기쁨이 점점 미도리의 신경을 긁었다.

미도리는 수조를 두들기고 위협하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미도리를 무시하고 수조에 말을 걸었다.

“새집은 마음에 드니?”

「마음에 드는 테츄. 쮸인님 고마운 테츄. 콘페이토 맛난 테츄. 아마아마한 테츄!」

“다행이다. 혹시 싫어하지는 않을까 걱정했거든.”

「그렇지 않은 테츄! 와타찌는 좋은 쮸인님을 만나서 행복한 테츄.」

「똥닌겐! 와타치에게도 콘페이토를 바치는 테챠아아앗!」

참지 못한 미도리가 결국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수조 안의 녀석도 나도 눈길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새 녀석도 분충성 다분한 미도리를 철저히 무시하려고 마음먹은 듯 냉랭한 태도만을 보였다.

그런 둘의 모습에 나는 장난끼가 동했다.

“좋아 그럼 너에게 이름을 붙여줄게.”

「테에? 이름 테츄?」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미도리야. 너를 부를 땐 미도리라고 부를게.”

새 녀석의 얼굴이 환해졌다.

「와타치 기쁜 테츄. 와타치가 미도리인 테츄! 주인님 잘 부탁하는 테츄!」

그 장면을 독라의 미도리는 똑똑히 보았다. 미도리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똥닌겐···! 어째서 저 녀석이 미도리인 테챠아앗! 미도리는 와타치인 테챠!」

「그럴 수는 없는 테츄! 와타치가 미도리일 터인 테츄! 왜 저 녀석이 미도리인 테츄! 똥닌겐···! 아니, 닝겐상! 닝겐상···!」

「닝겐상 미도리의 말을 듣는 테츄···. 와타치 미도리인 테츄···.」

미도리의 절규를 나는 무시했다. 녀석은 패닉에 빠져 수조 곁을 떠나지 못했다. 새 미도리는 행복한 표정으로 천가지를 끌어안았다.



하룻 저녁의 파란은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냈다.

수조 밖의 미도리는 한동안 공손한 말씨로 나를 불렀다. 전에는 한 번 입에 담은 적 없던 미도리라는 이름에도 집착하기 시작했다. 

「닝겐상 미도리도 콘페이토 주는 테츄···. 와타치도 우마우마 먹는 테츄···.」

물론 수조 밖의 미도리가 얻은 건 특제 콘페이토였다. 콘페이토를 받아든 미도리는 모호한 표정으로 사탕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콘페이토를 핥기 시작했다.

「와타치도 주···주인님에게 감사하는 테츄···.」

녀석은 그것이 사탕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도돈파의 감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녀석은 며칠이 지나도록 자신을 기만했다. 유일하게 내가 관심을 가져주는 시간인 아침엔 더욱 신경써서 애교를 부렸다.

「닝겐, 아니 주인님 오늘도 우마우마한 테츄···.」

미도리의 눈물 겨운 연극에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미도리의 변화는 정말 갸륵했다.

그러나 나는 미도리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실장석의 행동을 겉으로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러는 편이 미도리가 또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리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미도리가 스스로 콘페이토를 받아 들게 된 이후로 한동안 나는 그것을 직접 쑤셔 넣을 일이 없게 되었다.

단지 나는 근처에 서서 미도리가 스스로 도돈파를 핥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날은 조금 달랐다.

늘 그랬듯이 콘페이토를 넘겨받은 미도리는 한참을 서있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와타치 돌아가고 싶은 테츄. 와타치도 수조에 넣어주는 테츄. 이제 싫은 테츄···.」

처음으로 들은 녀석의 항복 선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얕은 꾀거나. 그러나 녀석은 수조에서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은 기이 없을 터였다.

나는 미도리의 말을 못들은 채 했다. 무시당한 미도리는 분에 떨며 다시 내게 말했다.

「···도대체 왜, 왜! 와타치를 데려온 테츄! 와타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테츄! 똥, 닌겐···!」

「와타치는 분명 사육실장이 되면 세레브한 옷도 입고, 우마우마한 스테이크와 스시를 매일 먹을 수 있다고 들은 테츄. 근데 어째서 와타치는 행복할 수 없는 테츄!」

「와타치도 저 녀석처럼 행복하고 싶은 테츄. 똥닌겐이라면 그건 간단한 일일 테츄! 와타치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 테츄! 제발 뭐라도 말을 해보는 테츄···.」

미도리는 한참을 항변했다. 세상에 미도리가 말한 행복의 조건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미도리의 처지는 제 자신의 과오에 불과하다. 얕은 불행의 기준을 넘나드는 일도, 넘치는 행복의 기준을 세우는 일도 모두 미도리의 업보다.

나는 간단히 미도리에게 우리의 약속을 상기시켜주었다.

미도리는 그치만, 그치만을 반복하며 억울함을 표했다. 그러나 결국엔 과거의 자신을 저주 할 수밖에 없으리라.  

물론 실장석의 사고는 그만큼 고등하지 않으니 말문이 막힌 미도리의 반응은 뻔한 일이었다.

「똥닌겐···! 죽여버리는 테챠아아앗! 죽여버리는 테챠아아앗! 와타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마에를 죽여버리는 테챠아아앗!」

나는 깊은 증오를 세기는 미도리의 입에 콘페이토를 쑤셔넣었다. 미도리는 피눈물을 흘리며 이전 처럼 고압 도돈파를 억지로 삼켜야만 했다. 


그 뒤로 미도리는 정말 괴상해졌다.

하루는 수조에 머리를 거세게 박았다. 또 다른 날에는 푸드에 입을 대지 않았다. 언젠가는 높은 곳에 올라 한참 방바닥을 응시했다.

녀석은 죽을 작정이었다. 한 때, 수조 곁을 서성이다가 새 미도리에게 '독라 못생긴 테츄.' 소리를 들은 녀석은 이전의 격노를 되찾기도 했지만 잠시 뿐이었다.

그 모습 또한 우스운 일이었다. 미도리는 자살하지 못한다. 그런 생물이기 때문이다.

녀석의 생사여탈권은 제 자신에게 있지 못하다. 실장석은 스스로 죽을 능력이 없다.

실제로 미도리는 죽을만큼 높은 곳에 오르지도 못했으며, 죽을만큼 굶지도 못했다. 겁쟁이처럼 죽는 흉내를 내고 말았을 뿐이다.

꼴사나운 모습을 지켜본 새 미도리는 가끔 나에게 「쮸인님, 독라가 죽을거 같은 테츄.」하고 경과를 알려왔지만 한사코 미도리가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수조를 나오던 날부터 미도리의 위석은 공원 앞 편의점에서 사온 오로나민씨에 잘 절여져 있으니까.

오늘도 미도리의 모놀로그는 계속된다.

녀석이 죽지못해 사는지, 살지못해 죽으려 하는지 깊이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댓글 1개:

  1. 아무 조치도 없이 풀어줬다 집이 난장판되는 스크들보다 훨씬 나은 데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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