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경마.
기가 찬 단어다. 실장석으로 경마를 한다니. 짧고 뭉툭한 팔다리, 형편없는 운동신경, 정상 상태에서도 유지되는 비만 체형…… 어느 하나 안정적인 보행엔 도움 하나 되지 않는 요소의 집합체를 주제 넘는 이족보행에서 억지로 사족보행으로 교정시킨다한들 볼만한 구경거리가 될 일은 없지 싶지만, 놀랍게도 그건 실존하는 스포츠다. 그것도 매우 인기 높은 스포츠로서, 처음 소개된 이래 몇 년 지나지 않은 지금에서는 전국 대부분의 경마장에서 부설 경기장을 신설하여 운용하는 판국이다. 물론 그 속내는 엄연히 도박이지만.
오늘도 트랙에 아홉 팀이 나선다. 안대와 재갈, 그리고 수갑으로 자유를 박탈당한 채 네 발로 땅을 기는 독라실장 위에 자실장쯤 되는 것들이 올라타서 채찍질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채찍질을 하면 제대로 된 실적을 내는 데엔 오히려 역효과라는 걸 충분히 교육받았음에도 지리멸렬한 지능과 타고난 약자멸시의 본능이 사육사의 노고를 무위로 돌리고 있다. 물론 그 사실을 숙지할 만큼 지능이 뛰어난 개체도 있다. 그러나 채찍질은 여전하다. 실장들 사이에선 보기 드문 지능을 통해, 그것들은 지금 이 순간만이 그들이 ‘갑질’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임을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기장은 출발 신호가 울리기 전부터 독라실장들의 울음소리로 시끌시끌한 것이다. 데게엑, 하고 재갈에 막혀 제대로 울리지도 못하는 비명이.
“독라노예는 와타찌를 위해 달리는 테찌!”
“이번에도 실수하면 그대로 처분되어버리는 테찌! 분충은 열심히 달려서 와타찌의 목숨을 건지는 테찌!”
“스테이크! 이번에도 스테이크를 먹어서 와타찌의 세레브함을 보여주는 테찌!”
탐욕과 절박함, 경멸과 잔인함이 비명소리와 한데 어우러져 경기장의 공기에 광기를 더한다. 마치 알콜을 흡수하듯이 관중들은 그 광기에 몸을 맡기고 소리를 지른다. 이겨라 분충! 지지 마라 똥벌레! 이번에도 하위권이면 내가 직접 대갈통을 날릴 테다! 이하 기타 등등. 고등한 인간인 그들이 한낱 미물들에게 고양되는 건 9할은 당연히 돈 때문이다. 그러나 고기 위에 후추를 치듯 트랙 위에서의 적절한 드라마가 그들을 이 경기장의 좌석으로 이끄는 데 협조했음은 틀림없다. 마치 로마 시대의 서커스처럼, 제법 자극적인 양념이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악의를 대변하듯 경멸과 조롱이 가득한 멘트를 날려대는 캐스터의 중계가 머리 위를 휩쓸고, 그 매콤한 분위기 속에서 오로지 한 팀만이 조용하다. 자실장은 다른 놈들에 비해 몸집이 크고, 독라실장은 귀 끝이 많이 헤진 게 제법 이 바닥에서 굴러왔음을 보여준다. 채찍은 사린 채 손에 단단히 쥐었고, 눈은 오로지 앞을 향한다. 마치 군계일학을 실장석으로 표현한 것 같다. 물론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트랙 위의 동족들도, 관중석의 인간들도, 심지어 본인들조차도. 그러나 명백한 온도차 속에서 그 자실장은 조용히 한마디만을 입에 담을 뿐이었다.
“……이번만 이기는 테찌, 마마.”
실장경마는 아홉 팀, 2두1조의 실장들이 장애물 달리기의 형식으로 달리며 들어오는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는 스포츠다. 기수는 자실장이고 말은 독라실장이다. 아무리 성체실장이어도 생후 1개월에서 5개월까지의 자실장이어야만 등으로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효율 중시의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잔혹극이 태어난다.
모든 독라실장은, 기수의 친모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한 이야기다. 자기 새끼가 아닌 이상 등에 태우고 네 발로 긴다는 굴욕적인 처사를 실장석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 팀은 무조건 친실장과 친자실장으로만 구성된다. 가장 아끼는 자식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보는 앞에서 살처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실장이 친모를 자기보다 열등하고 다루기 쉬운 존재로 각인하게끔 독라로 만든다. 이로써 기수와 말의 페어가 갖춰진다. 이 페어가 아홉에서 열 팀 정도 모여 훈련에 임한다. 사육실장과 같은 예절교육은 받지 않는다. 필요가 없으니까. 다만 장애물 통과 훈련과 독라 통제훈련, 체력 단련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좋은 실적을 거둔 조는 콘페이토를 상으로 받으며, 반대로 가장 뒤떨어지는 팀은 모두의 앞에서 체벌당하고 처분된다. 공포의 각인을 위해서다. 그렇게 채찍과 당근으로 추려낸 두세 조, 혹은 단 한 조만을 경기에 투입시킨다. 이렇게 아홉 조가 모여 트랙을 달리는 것이다.
트랙 위에서도 생존경쟁은 여전히 이어진다. 1위로 들어온 조는 그들이 그렇게나 바라는 스테이크와 스시를, 2위와 3위는 고급실장푸드와 콘페이토를 받는다. 9위로 들어온 조의 운명은 달라질 게 없다. 훈련 때 봤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죽음으로 경쟁자들에겐 경각심을, 관중들에겐 볼거리를 선사하게 되는 것이다. 각 경기장마다 나름대로의 처형법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곳 후타바 시 미츠바시 경마장 부설경기장에서는 매우 특별한 처형법을 사용한다. 백각형, 말 그대로 백 번 포를 뜬다는 중국의 형법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개장한 이 경기장은 그 선구안만큼이나 화끈한 퍼포먼스로 경쟁사가 부지기수로 늘어난 지금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총괄사육사 겸 처형자인 토시아키가 작은 메스로 패배자의 살을 한 점 한 점 뜯어내는 광경은 수많은 도박 중독자와 학대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커다란 오르가즘을 안겨주었다. 다만 토시아키 본인은 매우 불만족스러워했는데, 그 칼질이 100번은 고사하고 웬만한 놈들은 50번을 넘기기 전에 파킨사해버리는 탓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과 악몽보다도 실장석들을 전장으로 내모는 건 따로 있었다. 1위는 앞서 말한 스테이크와 스시 외에도 부상을 하나 받는다. 금색의 휘장이 그것이다. 반짝이는 휘장은 물욕과 몸치장에 눈이 돌아가는 실장석들에겐 그 자체만으로도 군침 도는 물건이지만, 그 진정한 용도는 따로 있다. 하나하나는 장식 외엔 아무런 쓸모도 없지만, 10개를 모으면…….
탕, 하고 권총소리가 출발을 알린다.
소리에 놀라 파킨사하는 놈은 없다. 그 정도 수준의 쓰레기는 일찌감치 바닥의 얼룩이 되었으니. 여기 올라온 것들은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인 것이다. 계속된 채찍질에 몸부림치던 독라실장들이 그대로 뛰쳐나갔지만 9번 트랙의 조는 서두르지 않았다. 조용했던, 아까의 그 모녀다. 느릿해 보이는 그 걸음에 몇몇 관중이 야유를 퍼붓지만 그럼에도 서두르지 않는다. 마침내 야유가 분노로 바뀌려고 할 무렵에, 분위기가 뒤집힌다. 한 차례의 채찍질, 그리고 한 차례의 울음. 비록 재갈에 막혀 뭉개지지만 그 기세는 본경기장의 수억 짜리 경주마에 비해도 뒤지지 않는다. 채찍질로 힘이 빠진 독라실장들이 웅덩이를 넘지 못해 빌빌거리고 있을 때, 오로지 그 조만이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웅덩이를 넘는다.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그 실장석답지 않은 모습에 놀랐지만, 안방 문의 돌쩌귀까지 이 아귀도에 부어넣은 사람은 그 조가 어떤 조인지 잘 알고 있다. 비록 지금은 간당간당한 성적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고 있지만…….
그 모녀의 팀명은 ‘질풍’.
9번 1위에 빛나는, 자유를 눈앞에 둔 유일한 조다.
애오파도 학대파도 없어 적당히 평화로운 공원에서, 한때 모녀는 조용히 살고 있었다.
누가 실장푸드를 뿌리거나 쓰레기장이 가깝거나 하진 않았지만 공원엔 다행히도 열매를 맺는 식물이 많이 있었다. 인공호수 때문에 물을 얻기도 쉬웠고 은신처가 될 덤불도 많았다. 덕분에 친실장은 10마리가 넘는 자를 기를 수 있었다. 모두가 귀엽고 예의바른 아이들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그 모두가 성체가 될 것이었다. 다 자라서 자신처럼 자를 가지는 기쁨을 알 것이었다.
그랬을 것이었다.
인간들이 왔다. 실장석이 지나치게 불어나면 나타나는 하얀 악마들, 모조리 때리고 부수고 죽여서 흔적 하나 남지 않게 한다는 공포의 대상. 마마의 마마, 또 그 마마에게서 들었던 전설 같은 재앙.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자들을 살리겠다는 일념도 부질없이 악마는 그들 가족을 한 번에 낚아챘다. 그러나 전설과는 달리 죽이지는 않았다. 그저 포대기에 한꺼번에 담아 어딘가로 옮겼을 뿐이다. 친실장은 생각했다. 하늘의 마마가 자신들을 지켜줘서 저 악마들이 자기들을 해치지 않은 거라고.
차라리 그때 죽었더라면.
정신이 들었을 때는 어느 좁은 방이었다. 햇님을 닮았지만 훨씬 작고 음침한 빛이 하나 떠서 겨우 어둠을 몰아낼 뿐이었다.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가족들과, 인간이 하나 있었다. 그림자에 가려 얼굴은커녕 몸도 잘 보이지 않았다.
누가 제일 좋아? 인간이 물었다. 보통의 실장석이었다면 일단 경계했을 것이다. 인간과 엮여 좋을 건 없는 게 실장석의 삶이다. 그러나 친실장은 인간 자체를 그리 많이 접해보지 못했을 뿐더러 막 정신이 들어 사리분별이 어려웠다. 그저 물으면 묻는 대로, 답하면 답하는 대로 데스, 하고 울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 닝겐이 뭐라고 했지? 누가 제일 좋냐고? 다들 귀여운 아이들이었지만 가장 똑똑하고 착한 3녀가 그래도 제일 좋았다. ‘데, 그래도 3녀가 좋은 자인 데스.’
다른 자들이 모여들어 울어댔다. ‘와타찌는? 와타찌는?’하고 섭섭해 하는 자들도, 마냥 마마가 좋은지 테, 하고 우는 자들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누워 있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 인간이 다시 물었다. 누가 3녀야? 친실장은 3녀를 들어 올렸고, 그 순간 지옥문이 열렸다. 영원히.
3녀를 뺀 나머지 자들을 인간이 짓밟아 뭉갰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 멍하니 보고 있던 친실장은 3녀가 품속에 기어들어 울고 불며 발광하고 나서야 현실을 마주보았다. 데, 데, 하고 말 같은 걸 혀 끝에 걸려던 순간 인간의 손길이 자신에게 날아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격통이 스치고 조금 쌀쌀해졌다고 느꼈을 때, 친실장이 본 건 피와 체액, 운치로 얼룩진 바닥과 갈가리 찢긴 옷, 그리고 머리카락이었다. 친실장이 파킨사하지 않은 건 행운이 아니라 지독한 불운이었다. 피 맺힌 비명이 좁은 방을 메웠다.
‘데갸아아아아아악! 무슨 짓인 데스! 우리 자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은 데스!’
그러나 인간은 무정히 두 모녀를 집어서 어딘가로 데려갔을 뿐이었다.
그 뒤로는 잔혹한 솎아내기의 연속이었다. 괴로운 일을 시키고, 아픈 일을 당했다. 며칠에 한 번 꼴로 동족의 모녀가 비참한 죽음을 맞는 걸 봐야 했다. 가장 힘든 건 3녀가 자신을 노예로 부리도록 강요당하는 일이었다. 끝까지 뻗대는 자는 모조리 죽었고, 3녀는 결국 인간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착한 3녀는 밤마다 인간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사과하곤 했다. 비록 칸막이가 쳐져 서로 볼 수는 없지만 마음은 바람처럼 전해져왔다.
잘하면 콘페이토를 얻을 수 있다. 콘페이토야말로 모녀의 삶의 희망이자 이유가 되었다. 그 달콤함을 입 안에 가두고 있으면 적어도 아픈 일을 잠시 머릿속에서 치워둘 수 있었다. 그러기를 거듭하자 모녀 곁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가장 우월한 개체로 선택받아, 트랙에 섰다. 전장에 오르기 전 그들을 담당했던 사육사는 말했다. 여기서 꼴찌로 떨어지면 가장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고. 그러나 이렇게도 귀띔해줬다. 기수와 말이 1등을 열 번 하면, 다시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똥벌레 주제에 그게 가능키야 하겠어?’ 곧 죽을 목숨을 두고 조롱하는 투였지만 그 말이 곧 모녀의 복음이 되었다. 열 번만 1등으로 들어오면 살아남을 수 있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 다시 자들을, 자매를 낳고 길러서 다시 행복한 나날로 돌아갈 수 있다.
행복해질 수 있다. ‘질풍’의 이름을 받은 조는, 그 믿음 아래 이름 그대로 질풍처럼 달렸다.
미츠바시 부설 경기장은 새로운 스타의 등장에 들썩였다. 그 어떤 조도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없고, 영리하게 장애물을 통과할 수도 없었다. 한 번의 1위야 요행이라 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세 번 반복되면 그것은 실력이다. 배팅액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인간들이 열광하고, 모녀가 도취했다. 그것은 뛰어난 개체와 깨지지 않은 가족애, 그리고 좋은 팀워크가 한데 어우러진 기적이었다. 스테이크와 스시의 맛이 그들의 본성 깊이 잠든 분충성을 자극했지만 비극 사이에서 굳어진 애정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그것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10회 1위, 휘장 열 개, 자유. 간단한 계산이었다. ‘질풍’은 달렸다. 9회까지 달성했을 때 후타바 시는 과연 처음으로 해방되는 경마실장모녀가 탄생할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마치 빈사의 유명인을 두고 데드풀을 하는 것과도 같았다. 운명이 그 장난감 같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그리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실장경마에서 가장 기수에 적합한 자실장의 연령은 1개월에서 5개월 내외다. 그 이하 크기 개체의 지능과 힘으론 컨트롤이 불가능하고, 그 이상이면 무게에 독라실장의 척추가 휘어진다. 실장석이라는 생물 자체의 결함이었고 아무리 뛰어난 몸과 실력으로도 그것은 커버할 수 없는 성질의 문제였다. 시간이 흐르고 자실장이 자랄수록 질풍은 사그라졌다. 2위, 3위, 그러다 차츰차츰 떨어져 저번 경기에선 6위까지 떨어진 것이었다. 보통의 녀석들에겐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정도였지만 ‘질풍’에겐 그것만으로도 지옥문이 코앞에 다가온 셈이었다. 저번 신체검사 결과는 더 비관적이었다. 이미 척추의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위석이 가까이 있었고, 더 경기를 치르다간 허리가 부러지는 게 먼저일지 척추의 파편이 위석을 찌르는 게 먼저일지 레이스를 벌일 지경이었다. 사실상 이번 경기가 은퇴식인 셈이었다. 그리고 은퇴식은 화려하게 치러질 것이다. 축하의 박수가 아니라 모녀의 피와 비명으로.
그렇게 끝낼 생각은 둘에겐 없었다.
“달리는 테찌!”
데게엑, 하고 친실장이 대답했다. 웅덩이 뛰어넘기, 계단 올랐다 내려가기, 지그재그 피하기, 가시밭길 건너기…… 몇 번이고 해왔던 것들이다. 물에 적신 실장푸드 먹기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다른 놈들은 저마다 장애물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거나 느릿느릿했다. 죄다 애송이들이다. ‘질풍’이 오랜만에 이름값을 하는 날이었다. 앞엔 아무도 없다. 그렇다, 그들 모녀는 지금껏 이 날을 위해 살아온 것이다. 바로 이 날, 자유의 날을 위해.
관중들이 점점 술렁이기 시작했다. 9번에 올인한 사람들이야 좋아죽는 얼굴이었지만 대다수의 관중들은 실장석이 행복해지는 것보다는 비참하게 죽는 꼴을 더 즐겨보는 쪽이었다. 과연 저놈들이 첫 번째 해방자가 될까? 진짜? 아니, 아니라고 해줘, 제발! 씨발 이딴 시나리오는 애호파 새끼들이나 울면서 보는 거라고! 그 사이 캐스터가 턱이 빠져라 소리를 질러대며 기록적인 순간의 도래를 예고하느라 바빴지만 모녀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상하운동 속에서 하나로 겹치는 위석의 두근거림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마마, 힘내는 테찌! 골이 코앞인 테찌! 무언으로 3녀는 응원했다. 친실장이 호응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닿기만 하면 휘장이, 자유가 손 안에…….
미끄러졌다.
3녀에게는 순간 천지가 뒤집힌 걸로 느껴졌다. 트랙의 바닥에 뺨을 갈리고 나서야 자신이 낙마했음을 깨달았다. 아니, 낙마 수준이 아니었다. 친실장이 쓰러진 것이었다. 온몸을 경련시키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게 분명했다.
“마마! 마마아악!”
공포와 절망에 물들어 3녀가 울부짖었다. 안 되는데, 골이 바로 앞인데,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으면 안 되는데. 그러나 촛불에 들이치는 눈바람처럼 현실이 희망을 좀먹기 시작했다. 비록 안대에 가려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친실장은 눈을 뒤집고 있을 게 뻔했다. 단순히 피로가 누적되어 졸도했다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신체검사에서 경고했던 위험 중 하나가 지금 일어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왜 하필……!
3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상외의 상황에 흥이 오른 인간들이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뒤에서는 이제 막 마지막 장애물을 통과한 조들이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트랙에 얼굴을 문대며 모든 게 거짓말이라 외쳐댔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마치 학대파가 짜낸 악취미스러운 시나리오처럼 세상 모두가 자신들의 목을 잡고 조여 대는 것 같았다. 정말 여기서 끝나는 건가? 안 돼! 싫어!
그 순간이었다.
“데…….”
“마마?”
“데에…… 데뎁, 데브으으읍!”
친실장이 일어섰다. 모두가 소리 질렀다. 캐스터는 아예 목 놓아 외치고 있었다. 마치 올림픽에서 인간승리의 증거라 할 만한 모습을 스포츠의 이름을 빌린 도박판 위에서, 미물 따위가 재현한 것이다. 일어선 미물은 걸었다. 걷다가, 곧 다시 달렸다. 그러다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원래 실장석은 이족보행의 동물이다. 자유를 빼앗기고 강제로 네 발로 기었던 것이 다시금 일어선 것이다. 자유를 되찾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독라를 통제해야 할 기수는 오히려 어미의 등에 업히듯 목을 꼭 끌어안은 채 매달려 있었다. 애호파가 있었다면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애오파가 있었다면 기자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류가 거의 없었기에 모두들 그저 말을 잃고 지켜볼 따름이었다.
달리는 독라실장의 재갈 틈새로 피거품이 끓고 있었다. 경고가 실질적인 위험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느려질지언정 멈추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와타시는 죽더라도.’
모성애를 불태우며 독라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었다.
‘3녀만큼은 행복하게 해주는 데스.’
실장석에겐 어울리지 않다고 할 만큼 보기 힘든 애정으로 ‘질풍’은 그 마지막 바람을 몰아쳤다. 달리다가, 걷다가, 다리를 질질 끄는 그 죽음의 달리기는 바로 뒤의 조가 그들을 앞서기 직전에 골인에 성공했다. 개장 사상 첫 번째 10회 1위, 열 번째 휘장 획득의 순간이었다. 그것은 곧 이 죽음의 도가니에서의 해방을 뜻하기도 했다.
친실장은 골인을 확인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숙이다가, 안대를 쓰고 있는 걸 자각하듯 고개를 두어 번 흔들다가, 그 자리에서 엎어졌다. 안장이 박살나며 3녀가 앞으로 튕겨나갔다. 바닥을 구르며 머리가 찌그러졌지만 3녀는 개의치 않고 기어서 친실장에게로 다가갔다. “마마…….” 그러나 친실장은 한 번 고개를 들더니, 이만 파킨,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고개를 처박고는 영영 일어나지 않았다. 위석이 뼛조각에 찔려 부서진 것이었다. 비록 함께 풀려날 수 없게 되었지만, 친실장은 자신의 마지막 자를 해방시키고 자신 또한 영원한 자유를 얻은 것이다.
3녀는 고개를 들었다. 인간들이 소리 지르고 있었다. 모두들 자신들이 죽는 꼴을 보고 즐기던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한 방 날려줬다 생각하니 왠지 즐거웠다. 분충들. 그저 조그만 경멸과 함께 3녀는 골인을 알리는, 그리고 첫 번째로 탄생한 위업의 달성자를 기리는 폭죽소리를 즐겼다. 지금 막 떠난 마마가, 왠지 자신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와타찌는 자유인 테찌!”
세상 모두가 그녀를 올리고 있었다.
-에필로그-
“어째서인 테찌! 왜인 테찌! 인정할 수 없는 테찌!”
그렇게 믿었다. 조금 전까지는.
언제나 꼴찌로 들어온 조는 저 묘하게 웃는 인간에게 죽기 마련이었다. 거미줄에 앉은 거미처럼 사지를 묶어다 팽팽히 당겨놓곤, 조그만 칼로 살점을 뜯으며 시시덕대던 인분충이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질풍’ 모녀는 결코 저리 되지 않겠다고, 반드시 살아서 나가 저 닝겐의 얼굴에 투분을 해주겠다고 맹세했었다. 안타깝게도 친실장은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하고 죽었지만, 적어도 자신만은 마마의 몫까지 다 해주겠다고 벼르던 참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인간이 자신에게 찾아온 것이다. 매번 죽던 꼴찌들처럼, 자신을 다루며.
“그러니까, 실격 처리라고.”
“어째서인 테찌! 와따찌들은 분명 골인한 테찌! 마마가 목숨 걸고 와타찌를 보내준 테찌!”
“아니, 그게 문제라니까?”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열광하는 관중들, 해방의 순간을 부르짖은 게 수치스러웠다는 듯 다시 맹렬한 디스를 퍼붓는 캐스터, 옆에서 1등상인 스테이크에 머리를 처박고 우적대는 2등 조, 그리고 반짝이는 칼날. 모든 게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기 싫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편의점 봉투에 탁아되어 음식을 똥으로 바꾼 분충을 친히 적록색 얼룩으로 바꾸어주는 친절한 인간처럼, 웃는 낯의 인간은 바로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며 3녀의 세상을 부숴댔다.
“규칙은 기수와 말이 같이 1위를 하는 거잖아?”
“같이 들어온 테찌…… 마마가 목숨 바쳐 들어온 테찌!”
“아니, 시체가 들어와도 곤란하다고. 같이 보내야 하는데 죽으면 보낼 수가 없잖아. 기수와 말 둘이서 한 팀이니까.”
“테….”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사육사가 그렇게 이야기한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었다. 구더기가 물똥을 지리며 꼬리를 흔드는 것 같은 반항의 기세로 3녀는 입을 열려 했지만, 그 전에 인간이 먼저 말했다. 토시아키의 말은 그의 메스처럼 예리했다.
“그리고, 중대한 룰 위반이 또 있다고. 이건 실장‘경주’가 아니라 ‘경마’야. 어디까지나 네 발로 기어야 한다고. 그런데 감히 두 발로 걷다니, 안 되지 안 돼.”
“테, 테…….”
“안타깝네. 만약 마마가 살아 있었다면 오늘은 그냥 돌아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그런데 기수든 말이든 죽어버리면 나머지 하나는 어쩔 수가 없어. 쓸모가 없거든. 처분해야지. 운이 없다고 생각하렴.”
"이, 이럴 수는 없는 테치……."
3녀는 마마를 부르려 했다.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묶어놓은 줄이 파르르 떨릴 만큼 몸이 진동했고, 시야는 눈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미 운치까지 질질 흘리고 있었다. 주위에서 다른 조의 비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어떻게 얻은 자유인데, 이렇게 가긴 싫어. 마마, 마마!
"이럴 수는 없는 테챠아아아아악!"
“넌 아주 많이 특별한 녀석이었지. 비명소리도 좀 특별하길 바랄게.”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메스가 들어왔다. 다시 지르기도 전에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토시아키의 칼질은 예술적이었다. 그래서 비명은 처형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나서야 터졌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람들은 열광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역대급 올렸다 떨어뜨리기가 된 이번 경기는 너무나도 황홀한 구경거리였다. 감히 살아서 경기장을 나갈 거라 생각했던 멍청한 똥벌레에게 야유가 쏟아졌다.
9번에 올인한 사람들은 멍청하게 두 발로 걸은 친실장을 욕했다. 자신의 불운과 운영 측의 농간을 인정하고 항의하는 것보다는 모든 것이 실장석의 탓이라고 여기는 게 그들에겐 더 효율적인 탓이었다.
유달리 삶에 대한 열망이 강한 탓이었을까, 3녀는 토시아키의 무수한 칼질 속에서도 좀처럼 죽지 않았다. 덕분에 토시아키는 그렇게나 학수고대하던 마의 100회 칼질을 달성했다. 세 번의 칼질로 갈비살을 마저 뜯어낸 뒤에야 3녀는 죽었다. 그 예술적인 백각형의 재현에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냈다. 감격스러운 나머지 토시아키는 속옷을 적셨다.
언제나 2등을 하여 ‘은관의 제왕’이라고 비웃음을 사던 ‘콩’ 조는 드디어 감격의 첫 1위를 달성했다. 자실장은 혼자서 몸의 두 배 크기의 스테이크 조각을 연속 빵콘을 해가며 다 먹어치웠다. 냄새를 맡은 독라실장이 찌꺼기라도 달라며 다가왔지만 자실장은 그런 모친을 걷어찰 뿐이었다.
처형당하는 3녀를 가장 크게 비웃은 건 8위와 9위를 한 조들이었다. 주제넘게 앞서가려다 처참하게 죽는 분충의 모습은 너무나도 유쾌한 것이었다. 3녀의 죽음이 워낙 하이라이트였기에 그들은 다행스럽게도 이번만은 목숨을 건진 것이었지만, 원래 자기들이 올라야 할 처형대에 손짓을 하며 웃는 모습에선 그런 사실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 같았다. 가엾게도, 그들은 내일모레 있을 경기에서 처형당할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유쾌하게 웃어댔다.
오늘도 한 경기가 끝나고 두 실장석이 죽었다. 그것은 희극이고 비극이며 드라마였지만, 이 탐욕스런 도박판에서는 매일 같이 있는 일일뿐이었다.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고 신경 쓰는 이는 더더욱 없었다. 이윽고 밤의 어둠이 경기장을 뒤덮자 모든 것이 형태를 잃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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