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석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1>

실장석이 인간과 공존한 역사는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그 예로 유럽 지역에 구전되는 소인설화의 경우는 대부분이 실장석에 기반을 둔 것으로 추측된다.

그렘린은 따뜻한 기계 안에 숨어들었던 실장석이 기계가 작동함과 동시에 폭발한 것을 보고 오인한 것이라 여겨진다. 비산하는 적록색 체액을 녹색 안개로, 이물질이 들어가 고장 난 기계를 괴물의 장난으로 착각한 것이다.

노움과 드워프는 폐광이나 갱도에 숨어들어 지내다 발각된 실장석이 모티브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외형은 노움 쪽이 훨씬 실장석과 비슷한데, 이는 노움이 드워프에 비해 비교적 이후의 시기―그러니까 실장석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정착한 이후―에 창작되었기 때문이다.

무리 생활을 하는 야생 실장석들은 고블린의 원형이라고 생각된다. 동족식과 노예 사육과 같은,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보다 추악한 모습은 옛사람들로 하여금 작고 사악한 소귀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집에 숨어든 실장석은 브라우니와 레프러콘의 유래가 되었을 것이다. 실장석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시절, 미신에 기댔던 옛사람들은 어둠을 틈타 집안을 돌아다니는 난쟁이를 해충이라기보다는 보다 초자연적인 존재로 여겼고, 이는 그대로 민담의 소재가 되었다. (다만 집안일을 도와준다거나 신발을 대신 만들어준다는 이야기는 실장석의 습성이나 능력에 비추어볼 때 착각이거나 일종의 과장법으로 여겨진다)

체인질링은 실장석의 고전적인 탁아 습성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산업화 이전 시절, 실장석들은 대문 앞에 자를 놔두고 가는 식의 탁아를 행하곤 했는데―당연한 이야기다. 비닐봉지와 편의점이 언제 생겼는지 생각해보라―, 이를 두고 요정이 아이를 바꿔치기하려 든다고 여겼던 것이다. 요정과 바꿔치기 당한 아이란 말 또한 ‘실장석만큼 멍청한 아이’란 말이 요정 전설과 섞여 와전된 것인 듯하다.


<2>

체계적인 식실장 생산을 처음으로 진행한 나라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독일이다.

으레 떠올리곤 하는 중국의 경우, 실장석이 처음 들어온 건 일본의 견수사가 수양제에게 선물로 보낸 것이었던 데다 당시엔 영물의 일종으로 여겨졌기에 식재료로 쓴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다. 이후 수가 증가한 뒤에도 민간에서 잡아다 요리하는 데 그쳤을 뿐 독일과 같은 본격적인 시도는 없었다.

19세기, 강대국 건설에 박차를 가하던 프로이센은 당시 ‘상당히 이상한 동물’ 취급을 받던 실장석을 유용한 군량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그 당시에도 실장석은 특유의 질긴 생명력과 출산율로 여기저기서 민폐를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먹이의 제한이 없다는 점과 함께 그 어느 가축보다 뛰어난 점으로 지목되어 프로이센은 곧 체계적인 실장석 사육 및 실장육 생산 시스템 개발에 돌입했다.

이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후에 벌어진 보불전쟁에서는 모든 전역의 군사들이 원활한 실장육 공급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다만 그 품질과 맛은 조악해서 최전선 외엔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던 데다 생산 공정 또한 비위생적이라 종종 문제가 되었다. 오죽하면 실장육 군량화에 앞장선 비스마르크조차 ‘실장석 사육장은 정치판과 같아 보기에 심히 좋지 않다’란 말로 비꼬기까지 했을까.

그러나 1차 대전에 들어서는 이렇게 푸대접받던 실장육마저도 없어서 못 먹는 것이 되고 말았다. 양면전쟁으로 물자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던 독일제국은 전쟁 후반 소진된 군량의 대다수를 재배가 쉬운 순무와 실장육으로 대체했다. 이 절박했던 상황은 서부전선의 어느 군인의 수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은 바우어 하사가 양키들의 참호에서 통조림을 훔쳐왔다.
모두들 돼지고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새우였다.
해산물은 다들 좋아하지 않는다. 비린내가 나는 탓이다.
하지만 그 망할 짓-소보단 여러모로 낫다. 감사할 따름이다.
식단은 며칠째 변함이 없다. 아침은 짓-소 수프, 점심은 순무빵, 저녁은 짓-소와 순무 스튜.
그나마도 없어서 한 끼는 굶어야 한다.
후방에서의 사정도 여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한다.
정녕 하늘은 우리 독일을 버리셨단 말인가?...
...적어도 죽을 땐 이 짓-소 말고 다른 걸 입에 넣고 나서 죽고 싶다...’

전후에도 독일군의 군량 목록에 실장육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2차 대전에 들어서는 실제로 사용되진 않고 배급에나 포함되는 정도로 축소되었다. 일선 장병들의 반발이 극심한 탓이었다. 사용량이 저하됨에 따라 국가적으로 추진했던 사육생산 시스템 또한 자연스럽게 폐기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체계화된 사육생산 시스템이 영영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보불전쟁 이후 선진화된 육군을 견학하러 왔던 일본의 사절단이 육군 교리와 함께 이 시스템 또한 배워간 것이다. 어차피 일본에도 실장석은 발이 채일 정도로 많았고, 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던 것이다. 덕분에 2차 대전 내내 일본군은 쌀밥마저 못 먹는 상황에서라도 실장육은 지겹도록 공급받으며 끈질기게 버텼고, 그 바람에 원자탄을 직격으로 맞고야 말았다.

전쟁이 끝난 뒤 실장육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며 그 실용성 또한 의심받기에 이르렀으나, 이후 추가적인 개량과 보완이 이루어지면서 실장육은 햄이나 소시지와 같은 육류 가공품의 형태로 우리의 식탁에 잔존하게 되었다. 또한 이는 새롭게 부상한 애완실장 산업에도 적용되어, 오늘도 각지의 사육장에서는 이루 셀 수 없는 출산석들이 먹고 낳고 죽는 죽음의 순환을 반복하는 중이다.


<3>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고대 일본에서는 실장석을 귀하게 길렀다고 한다.

날 때부터 가진 옷은 고귀한 태생을,
옷의 푸른색은 젊음을,
몸속의 위석은 부유함을,
많이 먹고 많이 싸는 습성은 풍족함을,
다산하는 특성은 번영을,

이 다섯 가지를 오복(五福)이라 부르며 상서로운 영물의 증거로 받아들였고, 때문에 천황가나 귀족 가문에서 복의 상징으로 길렀다고 전해진다. 또한 중국에 견수사나 견당사를 보낼 때도 종종 공물로 천황가에서 기르는 실장석들 중 일부를 골라 보내기도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들 중 성공적으로 분양된 실장석 중 일부가 변이를 일으켜 실홍석의 기원이 되었을 거라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뒤이은 천황의 위신 하락과 귀족들간의 권력 투쟁, 그리고 무사 집단의 발호로 고위 계층의 실장석 애호 풍습은 점점 사라져갔고, 야생에 풀려나 급격하게 번식한 실장석들이 민가에 피해를 입히자 일반 농민들에게는 그저 해충 내지 요긴한 육류품 취급을 받게 되었다. 또한 전국시대 동안에는 실장석을 식량으로 쓰려는 다이묘들 때문에 실장석의 지위가 하락하고 말았다.

여기에 추가타를 먹인 사람이 바로 지나친 동물 애호로 ‘개 쇼군’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1646~1709)였다. 그는 개나 소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을 끔찍이 아꼈지만 실장석에 대해선 이상하리만치 무관심했는데, 혹자는 츠나요시가 어릴 적 투분을 당한 기억 때문에 실장석을 혐오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자세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아무튼 그의 치세 당시 급격하게 개의 수가 늘면서 이 개들이 실장석을 간식으로 삼는 바람에 도시에서는 실장석이 씨가 마를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사육생산 시스템을 들여온 군부에서 다시금 수가 불어난 실장석을 군량으로 활용했고, 이에 전후 GHQ는 실장석 사육 및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법령을 추진하고 대대적인 구제에 돌입했다. 덕분에 얼마간은 실장석의 원산지인 일본 내에서조차 실장석을 보기가 힘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실장육 사업이 다시금 부활하고, 버블경제 당시엔 부를 자랑하는 척도로 기묘한 애완동물을 기르는 풍조가 늘면서 실장석은 다시금 그 수를 불리게 되었다. 게다가 이 사육실장들이 유기되거나 탈출하여 번식하면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일본 남부 어디에서나 실장석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4>

기록에 따르면 고대 실장석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초기 인류와 같은 집단 사냥과 채집을 했다고 한다.
<중세 유럽에 전해져오는 옛 이야기>


옛날 옛적, 하느님께서 세상만물을 창조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도 사탄은 하느님의 일을 시기하고 미워하면서도 자기도 그분과 닮고 싶어 주위를 맴도는 중이었습니다. 그의 눈에 마침 아담과 이브가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아직 선악과를 먹기 전의 일인지라, 둘은 발가벗고도 부끄러움을 모른 채 에덴동산에서 뛰놀고 있었습니다. 사탄의 눈엔 그 꼬락서니가 여간 시원찮은 게 아니었습니다.

‘어째서.’ 사탄은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저런 미개한 것들을 하느님과 닮았다 할 수 있을까? 저리도 못생겼는데! 나라면 저것들보다 더 아름다운 걸 만들 수 있을 거야.’

사탄은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하느님이 하신 것처럼 흙을 모아 인형을 빚어 생명을 불어넣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흙이 생각보다 잘 뭉쳐지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사탄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묘수를 떠올렸습니다. 동물들의 분변을 섞으면 흙덩이가 좀 더 잘 뭉쳐질 것 같았던 겁니다. 그리하여 크기는 좀 작지만 나름 모양새가 잡힌 덩어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사탄은 실장석의 남녀를 나누는 대신 하나로 합쳐서 혼자서도 번식이 가능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남녀가 나뉜 건 아무리 봐도 거추장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또한 사탄은 흙덩이를 빚으며 자신이 나름 생각한 장식들을 덧붙였습니다. 풀을 짓이겨 몸통에 감싸서 발가벗은 인간과는 차별을 두었습니다. 눈은 빛나는 색색의 보석을 박아 넣었고, 머리카락도 붙여서 두 갈래로 늘였습니다. 그런 다음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인간보다 나아지라는 바람에 일곱 번 숨을 불어넣고 하룻밤을 기다리자 ‘뎃데레~’하는 소리와 함께 흙덩이가 살아 움직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실장석입니다.

사탄은 분명 실장석이 인간보다 아름다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만들어놓고 보니 실장석은 인간은커녕 하느님이 만드신 그 어떤 짐승과 비교해도 나을 게 없는 추물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무거나 집어삼키고는 아무데나 똥을 갈기고, 심지어 자신을 만든 사탄에게도 데스데스거리며 오만불손하게 굴어댔습니다. 사탄은 자신이 만든 게 실패작이란 걸 깨닫고는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바로 그때, 하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무얼 하고 있느냐?”

실장석이 ‘뎃스웅?’하고 역겨운 아첨을 떠는 사이 사탄은 몸 둘 바를 모르고 황급히 대답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소인이 하느님을 닮고자 하는 마음에 당신께서 하신 일을 따라했습니다만, 결과물은 보시다시피 이런 천한 것이 나왔습니다. 어찌하여 저는 하느님과 같은 일을 할 수 없는 겁니까?”

잠시 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너의 욕심이 지나쳐 화를 불렀구나. 숨결은 한 번으로도 족하거늘 어찌 여러 번이나 불었단 말이냐? 네 숨결 한 번에 티끌 하나가 더불어 들어가는 걸 모른단 말이냐?”

사탄이 대답했습니다. “무슨 티끌 말씀이옵니까?”

“네 마음속의 티끌인 죄악이 숨결을 타고 그것에게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저것에겐 일곱 죄악이 깃들었으니, 분변이 섞인 고로 가장 비천한 태생인데도 자신이 제일 고귀한 줄 알며 다른 만물을 깔보고, 조금이라도 자기보다 잘난 점이 있으면 시기하며, 좁은 마음은 언제나 분노로 차 있어 약한 자에게 쏟아내려 한다. 또한 배가 터질 듯이 먹어도 언제나 허기져 하고,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음행을 예사로 하며, 탐욕이 들끓어 그것들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고는 편히 드러누워 세상이 제 뜻대로 돌아가기만을 생각하니, 그 흉함을 어디다 빗대겠느냐?”

하느님의 말에 사탄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온갖 정성을 들여 하느님을 흉내 낸 물건이 저런 짐승이란 사실에 수치스러움이 배가 될 판이라, 사탄은 부리나케 하느님께 애걸했습니다. “하느님, 저와 제 행위가 비록 미천하오나, 저 실장석이란 짐승은 하필 제 손에 만들어져 세상만물이 응당 갖춰야 할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바라건대, 하느님께선 저 미물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나마 저 인간보다 나은 점 하나를 실장석에게 주십시오.”

하느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이 옳으니, 내가 실장석에게 축복을 하나 내리겠다. 내가 말하노니, 실장석은 비록 세상의 그 어떤 짐승보다 하찮으나, 그 자손은 인간보다 번성하여 세상 모든 곳에 널리 퍼지리라. 인간이 실장석을 하나 밟아 죽이면 그 일곱 배가 생길 것이니, 너희는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번창하리로다.”

그제야 사탄은 하느님이 자신을 골탕 먹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런 실패작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세상 모든 곳에서 들끓는 건 그야말로 자기 얼굴에 똥칠하는 일이니까요. 뒤늦게 펄펄 뛰는 사탄이었지만 이미 하느님은 떠나신 뒤였습니다.

그렇게 실장석은 생겨났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사탄이 뱀을 시켜 아담과 이브를 실장석 비슷한 존재로 떨어뜨리는 일이 생기지만 그건 좀 더 나중의 일입니다. 이후로도 실장석은 계속 수가 불어났고, 어찌나 불어났는지 대홍수 때 노아의 방주에 타지 못해 휩쓸려 가고도 살아남은 개체가 있어 다시금 번성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구걸과 탁아, 그리고 인간의 사물에 기대는 현상은 산업화 이후 생겨난 풍조로, 학자들은 이것이 실장석이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의존적인 습성을 가진 탓이 아니라 먹을 것과 살 곳이 부족해진 실장석이 변화한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즉 구하기 힘들어진 사냥감과 채집품을 포기하고 대신 쉽게 구할 수 있는 쓰레기를 생존의 도구로 삼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의 실장석들은 인간의 환경파괴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돌연변이인 셈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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