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킬러 토시아키 (Jubeat)



적당히 저녁 기운이 물씬 풍겼다. 사람들은 더위를 잊기 위해 나왔다가 슬슬 밤을 맞이하기 위해 돌아가고 있었다.
토시아키는 손에 작은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서는 천천히 공원 입구로 들어왔다. 여름이 거의 끝나가고 무더위도 한풀 꺾였다. 비라도 왔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요근래는 계속 불볕 더위였다.
"대단하구만......"
그는 공원의 풍경을 보곤 혀를 찼다.
곳곳에 실장석들이 널부러져 있다. 꽤 살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일까. 일단은 여름이고 애호파도 잊을만하면 찾아오는만큼 먹을 걸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음식을 받지 못해도 풀벌레나 개미 따위를 잡아먹을 수 있는 데다가, 쓰레기통을 뒤지면 녹은 아이스크림이나 버려진 간식 따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공원 화장실은 최근 실장석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높은 턱을 설치해 뒀지만, 그와는 별개로 식수대와 분수가 있다.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도 되고...... 낮이라 사람이 많을 땐 간헐적으로 분수대에서 물도 나온다. 영리한 개체들은 그때 물을 받아 하루를 연명하기도 했다. 토시아키가 보기엔 그랬다.
문제라면, 그 머릿수다.
들고양이 같은 경우라면 사람들이 적당히 먹이를 줘도 개체 수가 급증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실장석이란 생물은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임신한다는 기묘한 번식 방법을 채택하고 있어 생존 조건만 만족하면 정신 나간 속도로 개체 수가 늘어난다. 그리고 늘어난 숫자라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폭력이다.
한 때 애호파들이 공원에서 먹이를 뿌리곤 했었단다. 애호파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적당한 싼값의 과자를 사서 한두 개씩 나눠주는 것도 공원마다 으레 있을 법한 일이었다. 실장석들은 인간에게서 음식을 받아먹고 순조로이 세를 늘렸다. 어느 순간 공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너무 늘어난 실장석의 숫자에 부담을 느꼈고, 거기에 먹이를 더 줘서 숫자를 늘리는 건 도의적으로 뭔가 잘못된 일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방문객의 숫자는 크게 줄지 않았으나 먹이를 주는 빈도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먹이 공급이 끊기자 실장석 생태계에는 동족식이 유행해 말 그대로 한 번 피바람이 불었고 그 숫자는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 부분이다.
실장석의 숫자는 꽤 줄어들어 그럭저럭 괜찮은 상황이 되었지만.
동족식을 통해 손쉽게 먹이를 충당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개체들이 여전히 실장석들을 잡아먹는다.
그렇게 참혹하게 찢긴 시체란 꽤 치우기 어려운 모양이다. 환경미화원들도 바닥의 물기를 전부 걸레로 닦아내는 건 아니다. 그 핏자국하며 녹색 자취를 지우는 것만도 고역인데 먹다 남은 시체 같은 게 말라서 바닥에 들어붙어 있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그런 연고로 이 공원에서 실장석들은 꽤 복잡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토시아키는 혀를 찼다.
그는 아까부터 주위에서 꼼지락대는 실장석들을 눈치 채고 있었다. 공원 벤치 아래, 쓰레기통 뒤편, 어떤 개체는 대담하게 수풀 안에 숨어 이쪽을 엿보고 있다.
그 시선이 어딜 보고 있는지는 명확했다.
토시아키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비닐 봉지를 잡아 뜯었다.
콘페이토.
맛도 영양도 실장석에겐 훌륭한 식품이다.
홀린 듯 몇 개체가 뛰쳐나왔다.
"내, 내놓는데스!"
"콘페이토!"
"인간! 하나만 주는데스!"
굶주림, 식욕. 그런 것들에 눈이 돌아간 실장석들이 겁도 없이 토시아키 주위에서 발을 굴렸다. 토시아키는 봉지에서 콘페이토를 한 움큼 쥐고 꺼내, 한 마리당 하나씩 콘페이토를 나눠주었다.
"더, 더 내놓는데샤앗! 하나로 만족할 것 같은 데스?!"
"집에 굶주린 자들이 있는데스..... 하나만 더 줄 수는 없는데스......?"
일부 개체는 하나 받은 것에 만족하고 어디론가 도망쳤지만 대다수의 개체는 간만에 만난 간식에 눈이 돌아가 더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그 중에서도 또 성격이 나뉘어 어떤 녀석은 공손히 구걸하고 어떤 녀석은 주제도 모르고 닥달하지만...... 토시아키는 인심 좋게 모두에게 하나씩 더 나눠 주었다. 세 개째를 요구하는 녀석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쳐 적당히 날려보냈다.
가진 콘페이토를 적당히 다 처분하고 나니 빈 봉지와 부스러기가 몇 개 남았다. 모여든 실장석들도 다 떠나고, 토시아키도 슬슬 일하러 갈 준비를 하자고 생각할 때였다.
"저, 저기......"
작은 목소리가 울려, 토시아키는 뒤를 돌아본다.
"무슨 일이야?"
뒤돌아보니 있는 건 친실장과 그 옆의 자실장이다. 친실장은 한 쪽 눈이 사라져 있는 데다가...... 자실장은 옷이 넝마가 되어 있어 거의 독라나 마찬가지였다.
"코, 콘페이토가 남았다면, 주실 수 있는 데스까......? 조금이라도 괜찮은데스."
신체적 결손이 있는 데다가 반 독라...... 실장석들 사이에서도 지위가 낮아 아까 찾아오지 못했던 걸까? 토시아키는 머리를 긁적이며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추었다.
"음, 조금만 일찍 오지 그랬니? 부스러기밖에 남지 않았어."
보여주듯 빈 봉지를 바닥에 털어보자 부서진 조각 몇 개가 떨어졌다. 자실장이 허기를 못 이기고 달려들려 하는 걸 친실장이 탁 잡았다.
"먼저 먹어도 되느냐고 허락을 구하는 게 예의인데스."
"레치잇....."
친실장은 토시아키한테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이거라도 괜찮으니 먹어도 괜찮은 데스카.....?"
꽤나 예의바른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토시아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친실장이 조각들을 집어 하나를 자실장에게 주자, 자실장이 받아들며 작게 인사했다.
"감사한데스."
조용히 콘페이토 조각을 먹기 시작한 자실장을 보고 토시아키가 물었다.
"어째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최대한 많이 나누어주려고 했는데."
친실장은 겸연쩍은듯 고개를 숙였다.
"사실은, 두려웠던데스. 인간들 중엔 독을 콘페이토로 꾸며서 주는 인간도 있는데스...... 이번에도 그런 게 아닐까 하고, 몰래 지켜보고 있었던 데스."
과연. 코로리를 뿌리는 학대파가 아닐까 의심했던 걸까? 하지만 최근에 여기서 그런 짓을 벌인 녀석은 없다고 했다. 수명이 짧은 실장석이 그런 지식을 얻는 건 대부분 직접 눈으로 목격한 경우일 터인데......
"이전에 있던 공원에서 봤던 데스야....."
토시아키는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실장석들 중에서 드물게 거주지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녀석들이 있긴 하다. 그런데 눈앞의 녀석이 그런 녀석이었을 줄이야?
친실장의 애꾸눈과 자실장의 반 독라를 보고 도태된 녀석일까 했는데, 이주를 했던 결과였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우수 개체다.
"과연...... 그래도 나는 코로리 같은 걸 뿌리지 않아. 내 방식이 아니거든."
친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스. 당신은 좋은 사람인데스. 덕분에 간만에 좋은 밥을 얻은 데스."
토시아키는 그 친살장의 눈에서 늙음을 엿볼 수 있었다. 친실장의 사인은 수도 없이 많지만 노화는 그 중에서도 가장 비율이 낮다. 대부분이 성체가 되기도 전에 살해당하고 성체들도 절반 이상이 첫 출산을 전후로 사망한다. 몇 번의 출산을 걸쳐 '늙었다' 수준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건 굉장히 운이 좋거나 굉장히 우수한 개체들 뿐이다.
"그거 다행이구나."
"그런데스. 당신이 학대파가 아니어서 애호파라서 다행이었던데스."
다시 한 번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고, 자실장을 챙겨서 돌아가는 친실장. 토시아키는 그 둘에게 한 마디 했다.
"오늘 밤이 되기 전에 이 공원을 떠나렴."
"뎃......?"
친실장이 천천히 뒤돌아 보았다. 토시아키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말을 들으면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저, 무슨 소리인데스.....?"
"레치...... 인간 말은 너무 어려운레치....."
토시아키는 콘페이토 봉지를 잘 접어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공원 출구로 향했다.
친실장은 확실히 똑똑한 개체였다. 늙은 시점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만큼 영리한 데다가 경험도 제법 있는 거 같고, 학대파가 나타나자마자 이주를 결정할 정도로 용기도 있었다. 그리고 하는 말도 대부분 틀리지 않는 옳은 말들이었다.
딱 하나만 빼고.
토시아키는 애호파만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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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떠난지 정확히 8시간 뒤. 오토바이 한 대가 공원 입구에 섰다. 새벽 1시임을 확인한 토시아키는 오토바이에서 내리고 부속 케이지를 열어 장비들을 꺼내들었다.
기능성 우의를 걸치고 마스크로 입가를 가린다. 그리곤 수렵용 야간투시경을 꺼내들어 머리에 쓰고는, 흘러내리지 않게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 썼다.
우의 밖으로 허리띠를 차고 연장 벨트를 그 위에 건다. 오토바이에서 뭔가 장비들을 꺼내 하나하나 연장 벨트에 걸었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왼쪽 손목에 찼다. 조깅을 할 때 휴대폰이나 MP3 등을 팔에 부착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납 벨트였다. 짧게 잘 묶은 USB 선을 어떤 장치에 연결해서 스마트폰에 출력되는 화면을 확인하더니, 카메라를 손목에 잘 고정해 두었다. 디지털 시계를 한 번 확인해 보더니 토시아키는 마지막으로 뭔가를 꺼내들었다. 하나는 소금 봉지고, 다른 하나는.
샷건이다.
.....당연히 진짜 살상용 무기는 아니었다. 토시아키는 샷건 상단의 뚜껑을 열고, 뜯은 소금 봉지를 기울여 소금을 샷건 안에 채워 넣었다. 한 봉지를 다 집어넣으니 제법 묵직했다. 한 번 펌프를 당긴 토시아키는 근처에 세워져 있는 버려진 음료수 캔을 겨누었다.
촥!
방아쇠를 당기자 공기 새는 소리와 함께 소금들이 분사된다. 마치 샷건 탄자 내부의 쇠구슬처럼, 제법 빠른 속도로 날아 음료수 캔을 가격한다.
소금 샷건. 말 그대로 소금을 쏘는 샷건이다.





데구르르르..... 아무리 그래도 그냥 소금 알갱이이기 때문에 캔을 관통하기는 커녕 흠집조차 못 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한 위력이다.
"사놓고 걱정했는데 제법 위력이 괜찮군."
유효 사거리가 걱정이긴 하지만 오늘밤은 바람도 없다. 토시아키는 마지막으로 작은 배낭을 하나 메고서는, 공원 입구로 천천히 다가갔다.
심야의 공원은 적막하다. 가끔씩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토시아키의 기척을 감지하고는 금방 소리를 죽여 침묵한다. 토시아키는 곤충에는 일절 눈길을 주지 않고 조용히 걸었다.
"이 근처였는데......?"
토시아키는 손목의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토시아키가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자 스마트폰에 출력되는 화면도 변동한다. 이윽고 토시아키는 하나의 목표를 찾아냈다. 카메라로 촬영된 화면 중 한 곳에 녹색 점이 찍혀 있다.



(이런 느낌)


발소리를 죽여가며 토시아키는 실외기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숙여 그 아래를 확인한다.
쿠우..... 쿠우.....
실장석 몇 마리가 그 좁은 장소에서 서로 뭉쳐 자고 있었다. 토시아키가 화면에서 찾아낸 녹색의 점. 그것은 성체 실장석의 위석 반응이었던 것이다. 실장석 몸체 내부의 위석을 탐지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유효 센서 거리를 1미터에서 5미터 정도로 늘릴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영양소가 듬뿍 들어 있는 고급 콘페이토를 먹인다거나.
토시아키는 소금 샷건을 실장석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레삣.....!"
초탄에 저실장이 즉사, 자실장이 고통에 겨워 눈을 떴다. 토시아키는 즉시 펌프를 당긴다. 촥, 촥, 촥.....! 기계적인 장전음과 함께 일가가 전멸했다. 토시아키는 다시 스마트폰 센서를 확인한다. 위석 반응 없음, 사망이다. 파리나 잡기 위해 만들어낸 장난스런 발명품이지만, 미세한 요리용 소금 대신 천일염을 잘게 쪼갠 파편을 탄자(彈子)로 쓰게 되면 실장석의 몸에 공기구멍을 내는 건 일도 아니다.
게다가 설령 즉사시키지 못했다 쳐도 실장석 따위가 체내에 파고든 소금 파편을 제거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데다가, 상처는 상처대로 곪을 것이고 소금은 녹으며 체내 삼투압을 박살낸다. 치사량이 얼마인지는 토시아키도 정확히 모르지만, 굵은 파편 두 세개를 몸 깊이 꽂히면 이내 활동 불가 상태에 빠진다는 건 실험으로 입증했다. 그리고 야생에서 활동 불가 상태에 놓인다는 건 죽음과 다를 바 없다.
토시아키는 공원 지도를 꺼내들어 지금 위치에 X자를 하나 그려 표시했다. 그리고는 다시 스마트폰 화면과 기억에 의지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양소와 활성제가 든 고급 콘페이토를 먹은 실장석은 일시적으로 위석 반응이 증폭된다. 사람이 카페인을 섭취하면 심장이 빨리 뛰는 것과 같은 모종의 생체반응. 그걸 응용하면 위석 감지 센서의 유효 범위를 높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수렵용 야시경으로 어두운 밤의 시야를 보강하면 꽤 효율 좋게 실장석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다.
목적은 단 하나. 다른 실장석을 깨우지 않고 실장석을 잡기 위해. 옅은 네무리를 바른 콘페이토를 먹고 곯아떨어졌을 테지만, 네무리를 진하게 타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큰 소리를 내면 깨버릴 위험이 있다.
인간이라도 어두운 밤에 조명하나 없이는 근처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조명을 쓰면 실장석이 위험을 눈치 챌 위험성이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빛에 의지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란 위대했다.
토시아키는 최근 며칠 동안 공원에 나와 실장석들의 생태를 관찰했다. 대부분의 실장석들은 성체의 보호 아래 일가를 이루고 살아간다. 반대로 말하자면 성체의 위치만 파악하면 일가의 위치도 파악할 수 있다. 실장석들이란 참 우스운 생명체들이라 자기 딴에 인간에게서 꽤 멀어졌다고 판단하면(약 10미터 전후) 인간의 인지 범위에서 벗어났다고 멋대로 착각한다. 인간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만 돌려 계속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성큼성큼 집으로 향하는 자신의 발걸음이 인간에게 둥지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조심성과 인내심. 그것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토시아키는 공원에서 본 성체실장들을 추적해 실장석 일가 대부분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토시아키는 다음 목표지로 걸으면서 샷건을 확인했다. 인터넷 영상으로 본 소금샷건. 본래는 파리를 잡기 위해 만들었다던가. 천장에 파리가 앉은 걸 파리채로 때리기는 부담스럽게 마련이다. 잡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천장의 먼지도 떨어질 것이며 파리가 터져 자국이라도 남으면 울고 싶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낸 장난감이겠지.
그러나 그런 장난감의 공기압 필터를 개조하고, 실린더를 좁혀 압력을 높이고, 펌프 사이에 얇은 고무판을 채워 격발음과 장전음을 죽이면 흉악한 실장석 사냥 무기가 되는 것이다. 천일염을 잘게 쪼갠 핸드메이드 탄자를 장전, 공기압 실린더로 쏘아낸다. 사람이 맞으면 따끔한 정도지만 실장석의 약해빠진 몸체 따위는 그대로 관통한다.
흥미 위주로 산 장난감이지만 상상 이상으로 성능이 좋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공원 식당 뒤편이다. 식당이니만큼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두는 통이 있는데 그걸 노리고 사는 일가들이 있는 걸 확인했다. 토시아키는 곧장 쓰레기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이런......"
어째서인지 잠겨 있다. 골목 안쪽에 일가들이 있는 걸 낮에 확인했는데 어째서인지 철장으로 입구가 닫혀 있다. 들고양이를 경계한 것일까. 토시아키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 한 마리도 놓칠 수 없다.
토시아키는 스마트폰 센서로 실장석의 위치를 확인했다. 친실장이 자실장 두 마리를 끼고 자고 있었다. 낮에 준 네무리 발린 콘페이토를 먹은 건지 세상 모르고 곯아떨어져 있지만, 소음이 나면 곧장 일어날 정도의 잠이다.
토시아키는 신중하게 샷건을 겨누었다. 곧 결심한 듯 방아쇠를 당겼다.
촥! 소금들이 뿌려지며 실장석들을 덮쳤다.
"데스! 뭐인데스?!"
"레칫?!"
놀라 일어난 친실장에 밟혀 자실장 한 마리가 즉사! 그러나 다른 한 마리는 부상을 입긴 했지만 살아남은 데다가 친실장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공기 저항 때문에 소금 조각이 빠르게 속도를 잃기 때문이다.
"인, 인간?"
친실장이 졸린 눈을 비비며 토시아키를 바라보았다. 토시아키는 현재 검은 우의를 걸친 데다가 얼굴에 쓴 마스크도 검은 색이며, 눈에는 야간투시경을 달고 있다. 대체 뭐하는 종자인지 감을 잡을 수 없겠지.
"저, 저리 가는데스! 썩 꺼지는데샤앗!"
토시아키가 연거푸 샷건을 갈겨보지만 화력 부족(?)이다. 자실장은 자잘한 상처를 입어가지만 성체실장은 제법 피부가 질긴 편이다. 토시아키는 혀를 찼다.
"아픈레치..... 마마....."
"이리 오는데스!"
친실장이 자실장을 등뒤로 숨겼다. 토시아키가 쏘는 무기가 위협적이지 않다는 걸 알았는지 곧 친살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오른다.
"데프픗. 약해빠진 인간인데스. 한밤중에 기습을 해도 못 죽인데스~."
토시아키는 잠시 고민했다. 그걸 쓸까.
"마마..... 무서운 레치....."
"걱정 마는데스. 저 인간의 무기가 닿지 않는데스. 여기선 안전한데스. 머리가 나쁘면 이래서 고생하는데스~."
적당히 머리는 돌아가지만 인간에게 보이는 예의라는 게 없다. 분충이라는 걸까. 토시아키는 연장 벨트를 뒤져 뭔가를 꺼내들었다.
"이번엔 또 뭐인데스? 그것보다도 이게 더 강해보이는, 데스읏!"
뿌닷,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뭔가가 날아왔다. 저쪽과 이쪽의 거리는 4미터 이상. 친실장이 던져 봐야 여기까지 올 일은 없겠지만..... 토시아키는 땅에 떨어진 걸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투분이냐......"
'그런' 상황도 대비해서 우의를 입고 오긴 했지만 맞으면 기분이 나쁘다. 장비에 묻으면 냄새도 날 테고, 야간투시경에 묻기라도 하면...... 토시아키는 몸서리쳤다.
"한 번 더 가는데스! 썩 꺼져버리는데스, 멍청한 인-"
퓻.
친실장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데갸아아아악!?"
토시아키는 아무렇지 않게 한 발 떠 쏘았다.
전동 BB건을.
푸슛, 푸슛. 공기압식 총이 아닌 전동 BB건은 오히려 소음이 더 작다. 게다가 연사도 가능하다. 총알의 위력은 낮은 편이지만 스프링을 바꾸면 간단히 강화할 수 있다. 배터리가 문제라면 문제지만 토시아키는 건전지도 여러 개 챙겨왔다.
"어, 어째서인데스?! 아, 아프....."
"레칫!"
도탄! 바닥에 빗맞은 총탄이 친실장 뒤의 자실장을 직격했다!
"삼녀! 삼녀!"
친실장이 자실장을 안아들고 주저앉았다. 토시아키는 한 발 더 BB건을 쏜다. 친실장 옆으로 삐져나온 자실장의 다리에 직격한다.
"레치얏!?"
발 하나가 통채로 날아간 상황. 실장석의 재생력은 강력하지만 위석액을 투여하거나 약을 쓴다면 모를까, 저 상태라면 발이 사라진채로 상처가 아물어 병신이 된다. 물론 이건 성체실장의 경우고 자실장의 체력이라면 1시간도 못 버틸 것이다.
"데에엥..... 데에엥...... 어째서인데스......"
"네가 멍청하니까."
푸슛! 마지막 한 발이 친실장의 머리에 처박혔다. BB건 특유의 낮은 위력과 거리 때문에 관통은 되지 않지만 후두부에 처박혔을 것만은 틀림없다. 게다가 저 상처론 도망도 못 친다.
그런데, 왜 이리 찝찝하지. 다 잡은 셈인데. 토시아키는 기억을 되새겼다. 뭔가 잘못 됐다. 친실장, 그리고 자실장 두 마리의 시체.
.....자실장 두 마리?
방금 토시아키가 쏴죽인 자실장은 '삼녀'였을 터인데?
홀린듯 그는 뒤돌아보았다.
"......"
"......"
독라의 자실장 한 마리가 이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멀찍이서. 거리는 4미터 이상. 샷건은 닿지 않는다.
토시아키의 머릿속에 많은 가능성이 떠올랐다. 독라. 분충. 떨어진 거주지에서 따로 생활. 그러나 자실장은 버려져도 친실장을 찾게 되는 법이고......
그 모든 가설들은 자실장이 도주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모조리 폐기한다. 왜 자실장이 저기 따로 떨어져 있나 따위 대단히 중요치는 않다. 그냥 죽여야 한다.
그러나 자실장은 교활했다. 엄폐물 하나 없이 직선으로 도망쳐 봐야 인간의 추적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인지 대담하게도 수풀 사이로 숨어들었다. 높은 수풀은 아니고 잔디밭. 그러나 이런 밤에 조악한 수렵용 야간투시경으로는 잔디밭에 숨은 자실장은 찾기 어렵다!
자실장은 영악했다. 그녀는 차녀였다. 그러나 막내 사녀를 아끼는 친실장의 모습에 질투를 느껴 사녀를 꾀어내어 살해했다. 그러나 친실장에게 발각되고 말았고 독라로 쫓겨났지만...... 일단은 '영리한' 개체여서 도망치는 데엔 도가 튼 것이다.
인간이 대단하긴 하나 밤눈이 어둡기는 매한가지. 체구가 작은 자신이라면 잔디밭이 숨으면 위기를 넘길 수 있다. 꽤 합당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계산에 모자란 점이 없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다음 순간 차녀는 무언가에 전신을 관통당해 날아갔다.
"레치잇.....?"
어째서......?
차녀가 땅에 떨어졌을 때 토시아키는 틀림없이 비명을 들었다. 신음소리를 쫓아 천천히 걸어, 조명으로 자실장의 위치를 확인했다.
"어떻게......"
"지혜."
콱. 군화발로 자실장을 밟아버린 후, 토시아키는 슥슥 잔디밭에 문질러 닦아냈다.
어떻게 잡았느냐고? 수풀에 숨은 실장석의 대처법 따위를 생각 못 했을 것 같은가? 은폐한 적을 찾기 어렵다면 목표지를 통째로 화력으로 쓸어버리면 그만이다.





BB샤워.
밀리터리 서바이벌 게임용 용품이다. 유탄처럼 생긴 케이스 안에 BB탄을 수십 발 넣어두고 전용 장비로 쏘아내면 날아가면서 주위에 수십 발의 BB탄을 흩뿌린다. 서바이벌 게임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폭발물'을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장난감이지만, 역시 실장석 잡이에도 요긴했다.
......그리고 토시아키는 BB샤워를 찾기 위해 수풀을 뒤져야만 했다. 흩날린 BB탄 따위야 안 아깝지만 BB샤워는 꽤 비싸다. 실장석을 죽일 정도의 출력을 내는 건 특히나.
어떤 실장석은 재주도 좋게 잔디밭 안에 토굴을 파고 들어가 살았다. 아니, 산실장도 아니고......? 흙이 가로막고 있으면 위석 센서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굴할 토시아키가 아니다. 성체 실장이 드나들어야 하기에 구멍이 제법 큰 편. 그렇다면 사용할 수 있다.




"Drone is acting......"
토시아키가 내놓은 것은 드론이다. 바퀴 두 개로 움직이지만 속도가 사람이 걷는 속도와 거의 비슷한 데다가 신호 강도도 세서 땅 속에서도 움직일 수 있고, 주제에 60cm 정도는 점프도 가능하다. 게다가 토시아키가 개인적으로 개조를 가해 가까운 거리에서라면 카메라로 영상도 전송한다!
진창에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게 단점이지만 다행히 최근에 비가 온 적은 없다. 그러는 한편 실장 하나 잡으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어쨌든 일이다. 토시아키는 스마트폰으로 토굴 안을 확인했다. 드론이 우웅대는 소리와 함께 실장석들 코 고는 소리도 들린다.
"야무지게도 꾸며놨군......"
이슬을 받기 위한 것인지 페트병도 있는 데다가 버려진 손수건도 갖다 놓았다. 게다가 애벌레, 아몬드, 과자 부스러기 등도 잘 모아두었다. 얼마나 노력을 들인 것일까? 가상하기도 했다.
"레후우? 뭐인 레후? 친구인 레후?"
저실장 하나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콘페이토를 나눠받지 못한 걸까? 다른 가족들은 다 자는데 이 녀석만 깨어 있다. 혼자 레후레후 거리는 걸 보니 제법 귀엽기도 했다. 물론 별 의미 없지만.
"마마, 뭔가 있는 레후."
"데스..... 구더기는 좀 조용히 하는 데스....."
저실장이 인생 최고 업적을 세울 뻔 했지만 안타깝게도 실패했다. 토시아키는 주머니에서 병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락스. 다른 하나는 산성 세제다. 이 둘을 섞으면 독극물이 되어 유독한 기체를 풍기게 된다. 위험성을 알고 정부에서 판매를 중단했지만 어디건 팔 수 없는 재고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은 있는 법이고, 토시아키는 싼값이 청소업체에서 물건을 구할 수 있었다.
둘을 잘 섞고 흔든 다음 토굴 안쪽에 던지듯 밀어넣고...... 입구를 군화로 짓밟아 무너뜨린다. 이러면 연기가 흘러나오지도 않고 공기가 들어가지도 않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죽을 뿐. 그리고 그 화면이 생생하게 드론을 통해 전송되었다.
"레후! 비가 오는레후!"
"비?! 비인데스?"
액체라곤 물밖에 모르는 저실장이 흘러들어오는 물을 보고 비가 온 것이라고 판단한 건 꽤 신선한 반응이다. 그리고 비란 소리를 듣자마자 일어선 친실장도 대견했다. 언제 물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 비가 오면 밖으로 나가 물을 마시고 씻는다. 토굴의 붕괴를 막기 위한 공사도 필수이다.
그러나 입구는 막혀 있다. 다른 곳을 뚫고 올라온다면 토시아키는 기분 좋게 샷건을 갈겨주면 그만이다.
친실장이 경악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 어째서 무너진데스? 무너지면 비가 들어올 리가 없......"
친실장이 무언가를 감지했다.
이 역한 냄새, 비가 아니다.
"레후......"
제일 먼저 반응한 건 역시 저실장. 제일 약해빠진 녀석답게 별다른 징조도 없이 절명했다. 다음으로 반응한 것은 자실장. 어중간하게 튼튼한 녀석들이라 고통이란 고통은 다 느끼면서 죽었다. 락스에 피부가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산성 세제 때문에 피를 토한다. 둘을 섞어서 밀폐된 공간에서 흘려보내면 사람도 위험할진대 하기야 실장석 따위가 버틸 리가?
"데스! 데스으으! 도망가야 하는데스!"
기겁한 친실장은 힘겹게 꾸며놓은 둥지를 버리고 한 모양이었다. 온갖 가재도구를 다 버리고 천장을 손으로 파내기 시작한다. 토시아키는 들썩대는 땅의 진동을 감지하고 천천히 자리를 옮겼다.
이내 친실장이 반쯤 녹아내린 얼굴로 지상에 도달했다. 힘겹게 흙을 파내 손에선 피가 흐르고 공기를 들어마시는 친실장이 고통스럽게 피를 토했다. 그러나 살아남았다. 지하, 밀폐된 공간, 빛 한 줌도 없는 산소도 모자란 곳에서 흙을 파내 자력으로 탈출한 것이다!
"수고했어."
"데스으.....?"
촤악! 영거리에서 소금탄을 얻어맞은 친실장의 머리에서 피가 확 튀었다. 토시아키는 모종삽으로 땅을 파 드론과 약병을 회수하고, 다른 실장들이 사용할 수 없게 둥지를 짓밟아 완전히 파괴한 다음 자리를 떠났다.
그런 식으로 일가를 한 스무 개 조금 넘게 파괴했다. 토시아키가 며칠 간 조사한 친실장들의 수와 얼추 일치한다. 친실장이 사라진 일가는 얼마 못가 전멸한다. 자실장들이 자력으로 먹이를 구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사실상 이 공원의 실장석들은 전멸 직전에 놓였다.
"......"
그러고 보니 하나가 남았군.
토시아키는 눈앞에 있는 애꾸눈 실장을 쳐다보았다. 불온한 기류를 느끼고 위협을 감지해서 나온 것일까.
"어째서인데스?"
"어째서 도망가지 않았니?"
둘은 동시에 물었다. 친실장은 토시아키의 정체를 간파했다. 토시아키 역시 즉시 그걸 눈치 챘다.
"......낮에 그렇게 친절하게 대했으면서."
"......꽤 똑똑한 애인 줄 알았는데. 안 떠난 건가."
둘은 동시에 안타까워했다.
애꾸눈 실장이 입을 열었다.
"결국은 학대파였던데스?"
"난 학대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않아."
토시아키는 드물게 솔직히 대답해 주기로 했다.
"그냥 효율적으로 죽이는 걸 연구하는 사람일 뿐이야."
그리고 그게 직업이기도 하다.
실장 구제업자.
시에서 가끔씩 자체적으로 실장 구제를 시행하기도 하나, 인력도 많이 들고 그 기간 동안은 공원을 폐쇄해야 하는데다가 학대파가 햣하- 하고 날뛰기라도 하면 여러모로 곤란하다. 게다가 애호파들의 반감을 살 우려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한밤 중에 은밀히 실장석을 구제하는 자들을 고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은밀히 진행해야 하므로 가스를 터트리거나 할 수는 없고 다수의 인원을 동원할 수도 없다. 어려운 일이지만 성공하면 보수는 틀림없이 보장된다.
실장 살해법에 거의 평생을 바친 토시아키에겐 천직이나 마찬가지였다.
"......살려줄 수는 없는데스?"
"너니까 더더욱 안 돼."
토시아키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너는 너무 똑똑해. 다른 실장들에게 알려줄 수 있어. 그리고 그렇게 되면 최소한 나는 이렇게 구제하기가 어려워지지."
한 번 토시아키가 투입되면 그 공원의 실장은 반드시 몰살해야 한다. 그래서 살아남은 실장이 그의 방식을 퍼트려 현명한 개체들을 대응책을 찾는 걸 막을 수 있다.
"절대 말하지 않는데스."
"글쎄. 네 자식한텐 말하지 않을 리가 없지."
실장석이 몸을 작게 떨었다. 그래, 아닐 리가 없지. 왜 그러겠어?
너 같은 개념실장이 아이에게 애정을 가지지 않을 리가 없다. 살아남기 위한 모든 방법을 가르칠 터. 토시아키에 대해서도. 독가스를 쓰기 때문에 밀폐되지 않게 토굴의 입구를 두 개 이상 뚫으라고 할 것이다. 완전히 전신을 감출 수 있는 은신처를 마련하라고 하겠지. 두 개 이상의 집을 만들고 매일 다른 데서 잠을 자 추적을 흩으라고도 가르칠 것이다.
애꾸는 실장은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네 아이는 어디 있니?"
"말해줄 수 없는데스."
입을 열면 자실장은 죽는다. 틀림없이 죽는다. 살려줄 리가 없는 상대다. 그리고 토시아키도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오겠지......"
그러나 살해법을 연구한 인간이 고문법은 연구하지 않은 줄 아는가?
토시아키는 철사 꾸러미를 꺼내들고 다가가며 말했다.
"이걸로 3분 이상을 버틴 개체가 없어."
분충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에 대한 사랑 하나로 살아온 친실장들도, 강건한 마라실장이라도 전부. 철사로 몸을 관통시켜 잡아당기면 30cm를 당기기도 전에 입을 연다. 그 고통에 거짓을 섞는다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는다.
그리고 토시아키는 섬세하다.
자살하지 못하는 법도 연구했다.
"지금 말하면 네무리를 먹여주겠다."
그러면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그게 어떠한 의미인지 애꾸눈 실장도 안다. 토시아키는 반드시 죽여야 하는 상대에게 최고의 호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애꾸눈 실장도 어미 나부랭이.
입을 열 리가.
"그렇게 나오겠지......"
토시아키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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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꾸눈 실장은 강인했다. 위석을 적출당하고 영양액이 든 병 안에 들어가는 걸 바라보면 보통 어중간하게 현명한 개체는 이쯤에서 맛이 간다. 죽음을 봉쇄당했다는 공포를 실감할 지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꾸눈 실장은 초연했다. 토시아키는 위협적으로 철사나 펜치 등을 꺼내 보였다. 소금 샷건, 드론, 락스 용액, BB건...... 어떻게 실장들을 죽여왔는지도 덤덤히 말했다. 자신이 얼마나 잔인한지 설명하는 위협이었다. 애꾸눈 실장은 굴복하지 않았다.
육체적 고문이 이어졌다. 바늘이 팔다리를 찔렀다. 락스 용액이 입에 들어갔다. 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라이터로 불태웠다. 온몸을 난자당하면서도 친실장은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토시아키는 최고 강도의 고문을 시작했다.
친실장의 가슴을 뚫고 철사가 들어간다. 일부러 토시아키가 잔뜩 구부려뜨려 놓았기 때문에 매끄럽지 않다. 몸을 파고들때마다 상처는 벌어진다. 천천히 천천히 철사가 몸을 관통해 들어간다. 애꾸눈 실장은 처음으로 울음을 터트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3분. 어떤 개체도 넘기지 못한 3분을 넘겼다. 그리고 한계를 맞이한 듯 굴복했다.
그녀가 못난 게 아니다. 약해빠진 실장석이라는 개체의 평균선은 진작 압도했다. 그저 태생적인 종족의 한계에 굴복했을 뿐......
위치를 말해 놓고서, 그녀는 쇼크사했다. 고통이 아닌, 자신이 굴복했다는 사실에. 자실장의 위치를 말해버렸다는 사실에 압도당해..... 위석이 쨍, 하고 깨지는 소리가 병 밖에서도 들렸다.
토시아키는 빈 비닐 백을 꺼내어 친실장의 시체를 담았다. 그리고 자실장의 위치로 향했다. 커다란 나무의 아래, 옹이. 뿌리 쪽에 좁은 살림을 차렸다. 나무 아래이기 때문에 비에 침수될 걱정이 없고 식물 냄새로 체취를 감출 수 있는 데다가 가끔씩 떨어지는 나뭇잎이나 도토리를 주워먹을 수도 있다. 현명한 개체답게 훌륭한 곳에 터를 잡았다.
토시아키는 조심스럽게 자실장을 꺼내들었다. 낮에 주워간 부스러기를 혼자 다 먹은 것일까, 세상 모른 채 자고 있다.
"마마......"
조용히 뒤척이며 잠꼬대하는 자실장을 땅에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혹여나 잠에서 깰까 봐.
그는 애꾸눈 실장에게 고통도 공포도 없이 자실장을 죽여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토시아키는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코로리는 대부분 실장석의 신체를 파괴해 유혈이 낭자한 죽음을 일으키나 경우에 따라서는 위석 기능만 정지시키는 약물도 있다. 깨지지 않은 채 위석을 추출하기 위한 약물의 일환이다. 정량을 주입한 주사기를 자실장에 꽂고, 토시아키는 스마트폰 센서로 확인했다.
두근, 두근, 두근...... 이내 곧 신호가 멈춘다. 센서가 아무 것도 감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토시아키는 조용히 자실장의 시체를 집어 들고, 다시 원래대로 옹이구멍 안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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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 시에서는 실장석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그들이 공원을 어지럽히는 건 아무래도 좋은 문제였다.
중요한 건 공원의 유지다. 실장석을 방치하면 애호파는 좋아하겠지만 과격 학살파의 등장 빈도도 높아진다. 그리고 그러면 공원은 실장석 시체와 핏자국이 낭자하는 곳이 되어 청소가 골치 아파진다. 반대로 실장석을 사람을 풀어 구제하면 애호파들이 탄원 서명을 펼치니 공무원들 입장에선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던 도중에 누군가가 의견을 내었다.
모로 가도 실장석 개체만 적당히 조절할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
일정 기간마다 한 번씩 실장 구제업자를 고용해, 한밤 중에 공원의 실장석 대부분을 몰살시키고, 이후에 천천히 소량의 실장석을 방생한다. 이걸로 실장석 개체 수를 일정 수준 이상까지 늘어나지 않게 할 수 있고, 실장석이 몰살되지 않으므로 애호파도 별 문제 삼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게 한다면 더더욱.
그런 수요가 있으니 실장 구제업자라는 드문 직업도 돈벌이가 되는 것이다. 토시아키가 각종 장비를 겨우 실장석 잡아 죽이는 데에 쓰면서도 생활이 가능한 이유였다. 세상에는 이런 저런 이유도 있고, 실장 구제업자와 손 잡고 실장석 개체 수로 고객을 유치하려는 지 자체도 있다. 필요 이상으로 실장석 구제에 집착하는 토시아키 같은 사람도 있다.
토시아키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풀어보기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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