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실장석 가족을 보았다. 성체 하나, 자 셋, 엄지 하나. 들실장치곤 산아 제한을 잘하는 놈인가.

친과 자들이 집인 듯한 골판지 박스 앞에 모여 앉아 떠들고 있다. 뭘까, 공원에서 관리를 소홀히 한 건가, 아니면 이놈들이 대범하게 구는 걸까. 대놓고 사람 눈에 띄면 결과는 그리 좋지 않을 텐데.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하고 넘어가기로 하고, 뭘 하고 있나 싶어서 봤더니 엄지를 둘러싸고는 막 머리를 쓰다듬는 중이었다.

[데스~ 데스 데슷~ 뎃스웅~ 데스 데스야~]

[테치치치…… 텟치! 테치테치~ 텟츄~웅~]

[렛츄~웅~]

[보에~ 보에 보에~]

오호, 집안의 막내를 귀여워해주는 중인가. 고양이가 새끼를 핥아주는 것과 비슷하겠지만, 저놈들은 어중간하게 사람과 닮은 탓에 뭔가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든단 말이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친실장이 먼저 알아보고는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러고는 내 앞에 서더니 막 떠들기 시작한다.

[데스! 데스데스! 데스, 데스뎃스웅! 데샤아아아아앗!]

링갈이 없어서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보나마나 먹이를 달라든지 길러달라든지 그런 말이겠지. 실장석이 인간에게 관심을 두는 건 대개 그런 이유 때문이니까. 그런데 이것들은 왜 인간이 자기들보다 풍족하고 강하다는 걸 알면서도 꼭 후자만 까먹고 다니는 걸까. 지능으로 따지자면 훨씬 모자란 비둘기들도 사람이 다가서면 일단 피하고 보는데.

[뎃스웅~ 데스데스! 데프픗…….]

한참을 지켜보려니 친실장이 갑자기 자들 사이로 들어가서는 엄지를 데리고 나왔다. 그러고는 번쩍 들어 올려 나에게 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엄지는 나를 보고 [렛~츄웅~]하고 애교를 떨고 친실장은 데프프프 하고 웃는다. 으흠, 얼마나 귀여운 아이냐, 우리 중에서도 가장 귀엽다, 데려가서 키워보지 않겠느냐, 대략 그런 표현인가. 만약 데려가겠다고 하면 덤으로 나머지도 다 데려가 달라고 할 테고.

일단 엄지를 집어 들었다. 친실장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서 침을 튀기며 웃고, 자들은 그런 어미 근처에 몰려 막 테치테치 거리고 있다. 행복회로가 발동한 건가? 아마 놈들의 머릿속에선 흔히 말하는 세레브한 생활상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을 것이다. 손가락에 잡힌 엄지도 어미와 같은 상황인지 똥을 흘리며 웃고 있다. 자기가 원할 때마다 행복한 망상에 잠길 수 있다니 편리한 놈들이다. 마약 중독자도 아니고.

물론 망상에 젖어 사니 불행이 다가와도 모르는 거겠지만.

신속히 엄지의 두건을 벗기고, 옷을 잡아 뜯고, 머리를 뽑은 다음 친실장 앞에 놓아주었다. 친이고 엄지고 둘 다 아직 행복회로가 끝나지 않았는지 여전히 웃고 있을 따름이지만, 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일제히 엄지의 몰골을 보고, 그 다음엔 나를 보고, 다시 엄지를 본 다음, 그제야 일제히 빵콘을 하며 자지러진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어이쿠, 세 마리밖에 안 되는 데도 이런 소리라니. 그러나 효과는 확실해서, 있지도 않은 스테이크의 산에서 구르고 있던 듯한 친실장이 곧 정신을 차렸다. 놈은 엄지의 상태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음 장면은 너무나도 뻔했기에 난 등을 돌리고서 갈 길을 갔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렛츙? 레? 레…… 레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네 발자국쯤 걸었을 때에야 등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하하하.

***

오늘도 어제와 같이 공원에서 산책 중이었다. 문득 그 실장석들 생각이 나서 어제와 같은 길로 가기로 했다.

골판지 박스는 건재했다. 확실히 이 근처엔 학대파가 없어서 저렇게 무방비한 놈들도 오래 살아남는다. 물론 성가시게 구는 놈은 관리인이 집게로 채가서 그렇게 막나가는 놈도 잘 없다만. 그나저나, 그놈들은 어쩌고 있을까.

좀 더 다가가자 놈들이 보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빙 둘러 모여 있었다. 어제의 불행으로 상처받은 가족을 서로 보듬는 건가 했지만, 자세히 보니 내가 너무 물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설마 했지만, 너무 식상한 결과라 말도 안 나왔다.

[데스! 데스 데스! 데샤아아아앗!]

[테프프프프…… 테치 테치!]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잇?!]

친실장과 자들이 엄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애정 표현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험악한 표정으로 뭐라 짖고 있다. 분명 독라가 된 막내를 매도하고 있는 거겠지. 혐오와 경멸이 흠뻑 묻어나서 실장석이 아닌 나라도 눈치 챌 정도였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다.

자실장들은 팬티에서 녹색 똥을 듬뿍 퍼다가 엄지에게 바르고 있다. 놈들은 자기보다 하등하거나 노예인 개체에게 똥을 칠하는 걸로 우위를 표한다고 들었다. 머리와 옷이 없어진 정도로 가족에서 노예인가. 가족이 적으로 돌변한 상황에서 엄지는 생기 넘치는 모습 대신 빛이 사라진 눈으로 벌벌 떨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성체도 못 견딜 판국에 어린 엄지가 버텨낼 리는 만무하다. 그나마 치이이이잇, 츄와아앗 하며 반항인지 애걸인지 반복하고 있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들은 체도 안 한 채 린치에 열중하고 있다. 얼마 못 가 죽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지의 비명을 뒤로 하고 갈 길을 갔다. 힘내렴.

***

며칠 뒤 다시 그 길로 산책을 나섰다. 골판지 박스는 여전히 자리에 있었고, 실장석 가족들도 거기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내가 다가갔을 때엔 막 식사가 끝났는지 다들 배를 두드리며 길 위에 뻗어 있었다. 행인이 없어서 그런지 외식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식사 자리가 좀 지저분했다. 특히 적록색 얼룩과 뼈로 보이는 조그마한 파편들이 눈에 띄었다. 세어 보니 엄지가 보이지 않았다. 과연, 가족이라도 독라가 되면 그런 꼴을 당하는지.

입에 적록색 얼룩을 묻힌 채 데스데스거리던 친실장은 나를 보더니 자들에게로 다가가 한 놈을 집어들고 왔다. 그리고는 저번에 했던 것처럼 내밀었다. 자실장도 나를 보며 애교를 떨었다.

[텟츄~웅~]

허참.

옷만 달리 입었다고 알아보지도 못하는 건가.

헛웃음을 참고는 자를 집어 들었다. 이번엔 친실장은 물론 나머지 자들도 모조리 행복회로를 돌리는지 멍하니 웃고만 있었다. 그 틈을 노려 집어든 자실장의 옷을 벗기고 머리를 뽑아 버렸다. 놈은 갑작스런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테치테치 거리기만 했다. 조심스레 친실장 옆에 놓아두고는 나머지 것들도 모조리 독라로 만들었다. 자, 이제 예전의 엄지와 같은 꼴이 된 자기들을 보며 놈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놓인 자실장은 가족들을 둘러보더니 그 자리에서 똥을 지리고 말았다. 더 지켜볼까 하다가 그냥 뒤돌아서서 갈 길을 갔다. 그런데 주위에서 하나둘 씩 다른 실장석들이 나타나 그 가족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독라로 변한 걸 보고 행동에 나선 모양이다. 가족끼리도 그리 가혹한 처분이라면, 원래부터 남인 놈들은 어떤 짓을 할지 상상도 안 간다.

얼마 안 가 등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저번에 들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처절한 소리였다. 뭔가 고기 씹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역시 산책은 심신에 좋은 것이다. 더불어 약간의 심심풀이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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