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챔피언의 위대한 비하인드



펑 펑 펑하는 관통성 있으며 섬뜩한 울림을 만드는 소리가 체육관을 연신 가득 채운다.
그 소리 사이의 공백이 콤마 몇초로 느껴질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링 바닥을 끼익끼익하고 울리는 발소리가 젖은 면을 미끄러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흠뻑 땀에 젖은 남자의 머리가 날아온 미트를 피하며 왼쪽으로 크게 위빙하자 기다렸다는 듯 코치의 남은 손의 미트가 오른쪽 관자놀이로 이동한다.




완벽한 타이밍, 저스트 카운터.

그곳을 정확한 템플로 가격하려던 오른손 스트레이트가 멈칫하고 흔들렸다가 힘없이 떨어진다.

코치의 미간이 인정사정없이 구겨진다.




- .....

- .. 도저히 못치겠어요..

- 한심한 섀끼..!



코치는 미트의 집락도 풀지않고 신경질적으로 손에서 뽑아내 남자의 얼굴에 던져버린다.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남자는 잠자코 그것을 맞았다. 아주 침울한 표정이었다.




- 그래서 평생 스트레이트 없이 경기할거냐? 아니, 앞으로 경기나 하겠어?

- .......

- 사람을 때려야 이기는 경기를 한다는 놈이 그런 일에 그렇게 얽매일거냐? 그렇게 평생?!




남자의 팔을 확 잡아 당겨 글러브를 쫙쫙 벗겨내 땅바닥에 던지는 코치. 땀에 절은 밴디지 냄새와 아바테인 냄새가 물씬 풍겨나온다.




- 나가 임마.

- ...아... 런닝하고..

- 집에나 기어들어가 새끼야. 꼴도 보기 싫으니까 이번주엔 나오지마. 그따위 정신머리로 나와봐야 뭘하겠어. 다음주에도 그 모양이면 내가 직접 발표할 샘이다. 세계 웰터급 챔프 서형두 은퇴라고.




멋대로 자신의 커리어를 박살내겠단 소리를 듣고도 남자, 형두는 힘없이 짐을 챙겨 체육관을 나섰다. 패기없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코치는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 형두야. 죽이려고 한 경기가 아니었잖아. 그건 사고였잖아.







정신 없는 속도로 바디와 턱으로 컴비네이션이 쏟아져 들어온다. 배와 등이 관통되는 듯한 통증, 예상을 훨씬 능가하는 위력에 몸이 꺾여버린다.

머리까지 울려 땀방울이 튀어나가는 그 찰나의 순간, 눈 앞으로 천천히 떨어지는 한방울의 땀 사이로 솟구쳐 올라오는 어퍼가 보인다.

ZONE.

인간이 생명을 건 순간에만 발생한다는,

아직도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그 순간.

한 분야의 일류, 그것도 고도의 집중력을 가진 자만이 경험할 수 있다는 주마등과 같은 영역.

형두에겐 그것이 찾아왔었다.

핏방울과 땀방울 사이를 가르고 들어오는 어퍼가 슬로우모션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느려진 순간 속에서 두뇌만은 고속으로 회전한다.



코치와 만들었던 최상의 시나리오가 지금임을 번개처럼 깨닫는다.

턱을 비틀어 어퍼를 피하고 그 위로 우반신을 던질 기세로 몸을 회전시켜 오른 주먹을 똑바로 발사시킨다.

이 모든 판단과 행동이 이루어진 시간, 불과 0.34초.

+1도 -1도 없는 완전한 충격값을 완벽한 0의 순간에 대입시켜 적중시킨 그 순간,

형두의 손에서 으적 소리가 난다.


관중들의 환호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했던 그 순간, 오로지 들린건 그 소리 뿐이었고 형두는 자신의 오른 주먹이 부러진 것을 직감했다.

주무기를 잃어버렸다는 절망감이 온몸을 감싼 순간 그것이 오해임을 깨닫는다.

링바닥에 쓰러져 기괴하게 꿈틀거리고 있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그 섬뜩한 파열음은 상대의 두개골이 관자놀이를 기점으로 골절되는 소음이었다는 걸 말이다.

1도 부족하지 않고, 1도 과하지 않은, 완벽한 카운터였다고 세계의 중계진들이 입을 모아 찬사를 보낸 그의 라이트 스트레이트 카운터에 '퍼펙트 카운터'라는 별명이 붙은 그 날밤.

그의 허리에 감긴 것을 세계 챔피언 벨트였으나
그의 인생에 감긴 것은 살인자라는 평가였다.

그렇게 자신의 주무기가 피에 물든 흉도가 되고 자신은 한 가정의 가장을 죽인 살인자가 된 것이다.



형두의 눈이 번쩍 뜨인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귀찮게 달라붙는다.

그에 못지 않게 시트 또한 땀에 잔뜩 젖은 채이다. 또다시 악몽으로 기상한 형두는 거울 안의 초최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쓴 웃음을 지었다.

살인자라고 과장해 기사를 낸 언론들도 모두 사과 기사를 내었고 대중들의 평가도 사건의 가해자가 아닌 공동의 피해자라고 돌아선 시기였지만 중요한건 자기 자신의 마음이었다.

형두는 아직도 링사이드에서 절규하며 울부짖다 정신을 잃던 전 세계 챔피언의 가족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방 한구석에 형편없이 팽개쳐져 있는 챔피언 벨트를 잠시간 멍하니 쳐다본다. 저 금속덩어리가 과연 한가정만큼 가치가 있었던건가. 내 주먹으로 이룬 것은 한사람의 죽음인가 한사람의 영광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잡생각을 떨구어낸 뒤 가방을 챙겨 체육관으로 향한다.

바로 오늘이 다시 체육관의 출입을 허가 받은 그 날이었기에.









코치는 계속해서 무어라 설명을 하고 있다. 모니터에 보이는 상대의 모션을 체크하며 습관을 체크하기도 모션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이윽고 그것이 형두에게 전혀 전달되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 야 임마..!

- 네.. 듣고 있습니다.

- 듣긴 뭘 듣고 있는데..!! 내가 지금 뭘 설명했냐!!

- 오른쪽 리드를 날리고 습관적으로 왼쪽으로 한발짝씩 이동하는 군요. 그 과정에서 위빙하는 페인트를 넣는데 거기에 오른쪽 스트레이트를 넣으면 결정지을 수 있겠어요.




코치가 짐짓 놀란다. 분명 설명을 듣고 있진 않고 있었을테다. 하지만 그저 눈을 모니터에 붙여둔 것 만으로도 상대의 습관을 무의식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놀라운 통찰력이었다.

역시 이 녀석은 천성이 복서다.

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 그래. 아마 전초전에서 니 오른 스트레이트의 위력을 죽이려고 연습한 모션이겠지. 하지만 왼쪽으로 이동하며 위빙을 하는 나쁜 습관이 고쳐지지 않은게 분명하다. 니 말대로 노릴 점은 여기야. 니 레프트를 이용해 높은 확률로 이 모션을 뽑아내면 어렵지 않게 풀어나갈 수 있을거다.

- ......

- 니가 오른 스트레이트를 날.릴.수.있.다.면. 말이다.



공기가 싸늘하게 굳는다. 천장을 보며 한숨을 쉬는 코치와 마른 침을 삼키는 형두.



- 형두야. 다음 경기에서 걸림돌이 되는 부분은 니 정신력 뿐이야. 무의식적으로 오른쪽 스트레이트를 날리는걸 회피하고 있지.

- ........

- 지금 너의 문제는 체력적 훈련 이전의 문제야. 그래서 준비해봤다.

- ...네?


코치가 손으로 가리킨 끝에는 초록색 꼬까옷을 차려입은 실장석이 있었다.
정확히는 썩은 미소를 띄우며 형두를 쳐다보는 실장석이.



- 오마에가 오늘부터 와타시의 똥노예가 되는 닌겐인 데스까? 뭐 면상은 그닥 나쁘지 않은 데스.

- ????? 코치.. 이게 대체???

- 오늘부터 너와 함께 먹고자고 훈련을 하게될 에메랄드다. 길에서 줏어왔... 비싸게 사왔지.

- 지금 줏어왔다고 하지 않았

- 사왔다. 비싸게. 200만...어... 500만원 주고.

- 지금 가격도 똑바로 말 못했잖아요??

- 무슨 말이 많니. 옷갈아입고 나와. 8킬로 미터 대시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피식피식 비웃는다. 비웃기만 하면 양반이다. 개중에는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배를 잡고 박장대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흡사 말의 얼굴에 고삐를 채우듯 형두의 얼굴에 줄을 달고 있는대로 철썩철썩 고삐를 치며 소리소리 지르는 실장석이 침을 튀기며 기분을 내고 있었기 때문.



- 속도가 겨우 이것 밖에 안나오는 데스야!?!? 정말이지 구제불능의 똥노예인 데스!!



형두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달아오른다. 이마의 힘줄이 꾸불꾸불 올라오는데 정확하게 그 부분을 실장석이 발로 찬다. 말 옆구리를 걷어차는 카우보이의 소우 슈즈가 떠오른다.



- 이 자식이 지금 뭐하는거야아아!!!!


- 감히 어디다 소리를 지르는 데스까!! 한층 더 신나게 달려보는 데스아아아!!!


- 형두 이자식아! 어디다 소리를 질러! 시키는대로 더 빨리 뛰기나해!! 이번 상대의 라운드당 주먹갯수는 널 훨씬 상회한다. 스타일의 차이라는 핑계가 통하지 않을 수준이야! 스테미너를 위해서 고속의 대시로 단련한다!


싸이클로 따라오던 트레이너의 불벼락같은 고함에 형두는 이를 악물고 달린다. 스테미너 조절을 위한거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다만 어째서 실장석을 머리위에 앉혀두고..


- ????


형두의 이마에 초록색 진물이 흘러내려온다.


- 데... 시원한 데스. 역시 유산소운동을 하니 소화가 빠른 데스야.

- 자...잠ㄲ.. 잠깐 너 지금 내 머리 위에다 똥..!!

- 서형두!! 닥치고 뛰기나 하랬지!! 지껄일 여유가 있는걸 보니 아직 체력이 남아도는 모양이다!?

- 아니 관장님 그게 아니라 이 자식이!!

- 이자식이 뭐인 데스까!! 에메랄드님이라고 부르는 데스!! 건방진 똥노예에에에에!!!!

- 그래 임마! 에메랄드님이라고 똑바로 불러!!



코치의 장난기 없는 얼굴. 형두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를 악물고 뛴다. 얼굴에 흐르는 똥물을 닦으면서.





닭가슴살과 계란흰자, 브로콜리를 갈아만든 죽. 조미료라곤 후추 밖에 들어있지 않은 형두의 감량용 메뉴다.

그것도 역한 가슴살과 계란 흰자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넣었을 뿐 지우개를 씹는 듯한 맛은 변함없다. 안그래도 억지로 삼키고 있는데 그릇 안으로 파편이 튀어들어온다.


- 훌륭한 맛인 데스!! 하지만 굽기가 허술한 데스야!! 어째서 이 정도의 스테이크 밖에 대접하지 못하는 데스!! 정말이지 흠잡을 데 없는 쓰레기 똥노예인 데스!!!


훙컁훙컁 웃으며 게걸스레 스테이크를 썰어먹고 있는 실장석의 입에서 튀어나온 파편이다. 더군다나 그 스테이크는 감량 중인 형두가 구워준 것. 이것 역시 코치의 명령이었다.


- 야.. 닥치고 먹..

- 에메랄드님이라고 불러.



막 일갈을 하려는 찰나 코치가 또 태클을 넣어온다.



- 애매랄드님......... 입안에서 음식이 튀니 조용히 드셔주십시오....

- 데퍄퍄퍄퍄퍄!!! 조금더 정중히 부탁해보는데스!! 들어줄지도 모르는 데스아!!!!


대화를 포기한 형두는 죽 안에 떠있는 고기 파편을 떠서 옆에 덜어낸다.
먹을 것을 버리는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애매랄드가 슬쩍 그것의 맛을 본다.


- 데...데프....데프프프... 이런 똥같은 것을 먹고 있다니 과연 똥노예에 어울리는 데스!!


실컷 웃던 애매랄드가 형두의 식판 앞에 초록 똥을 푸직하고 싸낸다.


- 이 개자..!!!

- 서형두.

- .......

- 쓸데 없는데 신경쓰지 말고 식사나 해. 그거 다 안먹고 오후 훈련 소화할 수 있어?



트레이너의 싸늘한 일갈.

밑바닥 랭커였던 자신을 이 자리까지 올려준 사람만 아니었다면 이미 뒤집어 엎었으리라.

은인이기에 쓴 침을 삼킨 형두는 더럽게 식사를 계속하는 실장석의 맞은 편에 앉아 온갖 조롱을 들으며 식사를 계속했다.




여전히 고삐로 채찍질 당하고 똥물을 맞으며 진행되는 대시.

역겨운 식습관을 감상하며 진행되는 식사.

시합 2주전부턴 셰도를 하는 형두에게 고무줄 총을 쏘면서 놀기까지한 애매랄드 덕분인지 감량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다만 그렇게 애매랄드와 함께한 4개월의 트레이닝이 진행되는 동안, 형두의 안은 자신의 손으로 저 세상에 보내버린 선수와 그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 대신 시커먼 살의로 가득 찼다.












바늘을 삼키는 심정으로 체육관에 출근한 시합 전날.

형두의 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애매랄드가 샌드백에 꽁꽁 묶여있다. 그리고 그 옆엔 코치가 서있다.



- 마음껏 치게 해주지. 다만..




- 이 개새끼야아아아아!!!!!!!!!!!!!!!!!!!!




- ...형 말하고 있잖니.



허공에 던져진 가방, 휘날리는 상의, 강렬한 대시, 그리고 바닥을 차는 듯한 왼발 스텝인. 그 모든 체중이 허리, 등, 어깨를 회전하여 오른손으로 쏘아진다.

그 순간, 코치가 나서서 그 오른손을 양손으로 쳐낸다.

형두의 번개같은 오른 스트레이트를 쳐내는 코치의 동물적인 움직임은 역시 형두를 세계적인 선수로 벼려낸 트레이너 다웠다.




- 다만, 내일 시합에서 승리하는게 조건이다.



형두의 벌개진 두 눈에 코치조차 움찔하고 만다. 흡사 소싸움전에 채찍질로 달궈진 황소의 벌건눈과 흘러내리는 침 그 자체였다.



- 그 말 확실히 지키는 겁니까?

- 그...그래... 너한테 통째로 주마.



이런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애매랄드가 깔깔 웃는다.



- 데프프프프프!! 어지간히도 학습능력이 없는 데스. 오마에는 와타시에게 손가락 하나 못대는 데스야.












환하게 밝은 천장.

아무것도 들리지 않다가 가까스로 돌아온 청력에 들려오는 사람들의 환호성. 등이 매트에 닿아있다는 감각.
방금전 본인의 귀를 스쳤던 것이 꿈이 깨지는 소리였던가, 머리가 깨지는 소리였던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으로 보였던 건 번개처럼 빠른 오른손 스트레이트였다.

비참하게도 스스로 몸을 일으킬 힘도 없었던 도전자는 부축을 받으며 링 밖으로 도망치듯 내려갔다.



경기 소감을 인터뷰하기 위해 승자인 형두에게 다가간 아나운서는 자기를 쳐다보는 형두의 벌건 눈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위축됨을 느꼈다.


- 저... 이... 매번 감량 때문에 힘들어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엔 상당히 감량이 순조로웠던 것 같습니다. 커트라인보다 2kg 더 감량해서 링에 오르셨는데요.


- 이번 감량은 아주 특별했습니다. 아주. 아주 특별했죠. 아주우우!!!!


카메라를 쳐다보며 이를 바득바득 가는 형두를 보며 아나운서가 식은 땀을 흘린다. 질문은 간단했는데 왜 저렇게 화를 내는가.



- 어... 그... 지난 경기에서의 사고 때문에 라이트 스트레이트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었다고 들었는데 이번 경기에선 시작과 동시에 라이트 스트레이트로 KO를 얻어내셨습니다. 정신적인 부분에서 큰 문제는 없었던건가ㅇ..!!


형두가 마이크를 화악하고 빼앗아들자 아나운서가 움찔하며 물러난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카메라가 형두의 얼굴을 줌업했다.



- 제가 할 말은 하나 뿐 입니다. 다음은 너야...!!!



핏기와 광기가 서린 눈빛과 섬뜩한 멘트.
다음날 스포츠란의 헤드라인들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해낸 챔피언 서형두의 세계 랭커들을 향한 선전포고'

'피바람을 몰고올 세계를 향한 포효'



등등으로 장식되었으나,

형두와 코치를 제외하곤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체육관의 샌드백에 묶인 채 TV로 그 멘트를 들으며 팬티에 똥을 지린 실장석의 이름이 애매랄드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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