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기석

 

A시의 A공원은 산 중턱에 있다. 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원은 아니다. 은퇴한 노인들이 모여서 음료수 내기 장기판을 펼치는 정도.

물론 여기도 공원인만큼 실장석이 산다. 공원을 주로 찾는 노인들은 괜한 애호나 학대같은걸 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앞에서 대놓고 사육실장이니 노예니 하던 녀석들은 바닥의 얼룩으로 실생을 마감하지만.

그날도 노인 B는 벤치에 앉아 내기장기에서 이겨 얻은 음료수를 홀짝이고 있었다. B는 나름 이 공원 풀에서는 상위권에 드는 실력 덕분에 종종 공짜 음료수를 마시곤 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뭔가가 바짓단을 흔든다. 내려다보니 성체실장 한마리가 데스데스거리고 있다. B는 핸드폰을 꺼내 링갈 어플을 작동시켰다. 헛소리를 지껄인다면 즉시 바닥의 얼룩으로 화하리라. 그러나 실장석에게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닌겐상... 와타시에게 저걸 가르쳐주길 부탁하는데스...]

그러면서 뭉툭한 손으로 가리킨곳엔 공원에서도 약한 실력인 노인 둘의 바닥매치 내기장기가 벌어지고있는 장기판. 이 실장석은 장기를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인가.

[장기를 배우고싶다는거냐? 허허 내 평생 이런 실장석은 처음이구나. 장기는 배워서 뭐할려고 그러느냐?]

B는 웃으며 이유를 물어보았다.

[이 공원에 살면서 계속 지켜본데스우. 저 게임을 해서 이기면 아마아마한 물을 받을수 있는걸 아는 데스. 와타시가 이겨서 자들에게 아마아마한 물을 가져다주고 싶은데스. 닌겐상 제발 부탁인데스우.]

그래. 목적은 음료수인가. 하지만 졌을때는 오히려 음료수를 사줘야 하는데 이 실장석은 거기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나 보다.

인외의 존재와 장기를 두는것도 왠지 재미있을것같았던 B는 여분의 장기판을 가져 와 실장석 앞에 펼쳐놓았다. 그리고는 말을 직접 움직이며 행마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건 마, 직선으로 한칸 대각선으로 한칸 갈수 있어.
이건 상, 직선으로 한칸 대각선으로 두칸.
이건 졸, 앞이나 옆으로 한칸씩만.
이건 왕, 이 네모칸 안에서만 한칸씩 움직일수 있어. 이게 죽으면 지는거야.]

B는 설명하다가 슬쩍 실장석을 보았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이걸 어떻게 한다...

잠시 생각하던 B는 왕에 손을 대며 말했다.

[이건 친실장, 그러니까 너다. 이게 죽으면 지는거야. 일가실각인거지.]

[데엣!]

놀란듯 하지만 이해는 한 듯 하다. B는 이런식으로 하나씩 실장석에 대입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건 졸, 엄지실장이다. 작아서 한칸씩만 움직일수 있지
이건 차, 재빠른 자실장이다. 길이 막혀있지 않은만큼 쭉 달릴수 있어
이건 포, 그러니까 중실장이다. 다른 아이들을 밟고 넘어가야만 움직일수 있어. 하지만 같은 중실장은 넘지 못해.
이건 상, 활발한 자실장이다. 선을 따라 한칸 대각선으로 두칸 자기마음대로 달려가지. 단 길이 막혀있으면 못 가.
이건 사, 구더기다. 집 안에서 나오지 못해.]

아까랑 별 다를거 없는 설명이지만 실장석에 대입하니 어쩐지 잘 알아듣고 있는 듯 하다.

룰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서로 한번씩 움직이기. 왕이 죽으면 패배. 무르기 없음. 움직이는 말이 멈춰있는 말과 겹치면 멈춰있는 말은 죽는다는것. 여기서 실장석이 어떻게 엄지(졸)가 자신(왕)을 죽인다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B가 인간이 준 보검때문에 그렇다고 하니 이해하는 눈치다.

B는 설명을 끝내고 직접 말을 놓고는 실장석에게 움직여보게 한다. 꽤나 머리 좋은 개체인지 그새 행마법은 거진 다 외웠다.

[대강 두는 법은 익혔나? 나랑 한판 둬 볼까? 이긴다면 아마아마한 물을 주마.]

B의 말에 실장석이 기뻐한다. 머릿속 행복회로는 이미 음료수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까지 빨리감기가 되어있다.

물론 공원에서도 상위권인 B를 갓 행마법을 배운 실장석이 제대로 붙어 이길리가 없다. B는 초보자를 가르치는 마음으로 봐주면서 하기로 한다.

그렇게 아마도 인류 최초의 인간대 실장석의 장기대결이 성사되었다. 어느 새 주변에는 구경온 노인들로 가득 찼다. 바닥매치를 벌이던 두 노인마저 들어와 있다.

[애 가르치는거니까 훈수는 두지 말어.]

갓 배운 초보자에겐 무엇을 어디로 옮기라는 직관적인 훈수는 좋지 않다. 반복하다보면 자신이 두는게 아니라 결국 훈수자가 두는거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리니까. 흥미도 잃고 실력도 늘지 않는다.

B는 실장석이 먼저 두게 했다. 과연 대망의 첫번째 수는 무엇일까하고 노인들이 기대하고 있을때 실장석은 뭉툭한 손으로 말을 옮겼다. 왕을 한칸 아래로.

B는 살짝 웃음이 나왔다. 아마 왕이 죽으면 진다는걸 알고있기에 첫수부터 지키려고 하는거겠지.

B는 게임을 진행시켜 나간다. 실장석도 제대로 말을 움직여 게임이 성립되고는 있다. 전략도 뭣도 없는 초보자 대국으로 보이는것만 빼면.

그러다 어느 순간 B가 졸을 올렸다. 뻔히 보이는 실장석의 마 사정거리 안. 실장석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를 움직여 졸을 따낸다.

[엄지챠는 죽는데스!]

그러나 그것은 B의 함정이었다. 곧 실장석의 마는 B의 상에게 꿀꺽당하고 말았다.

[데갹! 와타시의 자가!]

실장석의 비명에 관중 노인들이 웃어댄다. 비웃음은 아니다. 귀여운 손자를 보는듯한 웃음.

대국은 계속 진행되었다. B는 일부러 말을 하나씩 내주기도 하고 함정을 파 실장석의 말을 하나씩 잡아먹기도 했다. 실장석은 말 하나를 따고 잃을때마다 반응하고 있었으므로 그것이 재미있었던 B는 적절히 게임을 조절해 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후반. 실장석의 말은 사 하나 졸 두개 마 하나. 그러나 마와 졸들은 행마를 어떻게 했는지 B의 진영 구석에 박혀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B는 차 두개 포 하나. 실장석의 반응이 재미있어 말을 전부 내줬지만 끝내기에 필요한 말은 남겨두었다.

B의 차례. 포는 이미 왕을 앞에 두고 실장석의 궁성을 노리고 있었다. 하나의 차도 왼쪽에서 같은 곳을 노리고 있다. 마지막 남은 차를 오른쪽 진영으로 움직여 궁성을 완전 포위한다.

실장석의 차례. 당황해서 안전부절하다가 적진 구석의 마를 움직인다. 되돌아 오는 데만 대여섯턴은 필요할것인데.

B의 차례. 오른쪽에 있는 차를 그대로 들어 실장석의 궁성 한가운데에 가져다 놓는다. 장군.

[데갹! 위기인데샤!!]

실장석에게 가능한 수는 단 하나. 사를 움직여 차를 먹어야 한다. 안 그러면 왕이 죽어버릴 테니까.

하지만 차를 먹은 사도 왼쪽에서 달려온 또다른 차에 의해 사라진다. 남은건 왕 하나 뿐. 그리고 그제서야 실장석은 패배를 알아차린듯 하다.

뭉툭한 손으로 왕을 움직여 두번째 차를 먹는다. B는 당연히 포를 발사한다. 자신의 왕을 축으로 날아간 포는 실장석의 왕에게 날아가 부딫치며 딱 소리를 냈다.

[자, 이렇게 되면 네가 진거란다. 하하하.]

[데갸앗!!! 와타시가!!!]

주변 노인들은 실장석의 반응에 웃고 말았다. 단순히 져서 그런줄 알았겠지. 그러나 장기에 과도하게 몰입한 실장석의 머릿속에선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오로롱... 와타시가 죽은데스... 남은 일가는 어떻게하는데스... 평화로운 공원이지만 친실장이 없는 일가는 살아남기 힘든 데스...]

실장석은 장기판을 내려다본다. 아직 적진에 남아있는 마와 졸 두개. 아니 자실장 한마리와 엄지실장 두마리. 나의 소중한 자들. 귀여운 자와 엄지들. 문득 실장석은 그 말들을 안아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눈 앞에서 사라지는 말들.

[어때? 한판 해보니까 대충 이해하겠니? 한판 더 둘까?]

B가 장기판 위의 남은 말을 쓸어내려 통에 담으며 말했다. B에게는 단순히 다음 대국의 준비를 위한 행동. 하지만 망상에 빠진 실장석에게는 그 의미가 달랐다.

일가실각.

[파킨]

청명한 파열음과 함께 실장석이 천천히 뒤로 넘어졌다. 당황한 노인들이 실장석에게 몰려든다. A공원 최초의 실장기석의 데뷔전이자 은퇴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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