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세탁소에 갔더니 ‘실장석의 탁아에 주의하세요!’ 라는 경고가 붙어있었다.
뭔 소리야? 같이 딸려 들어갈지도 모르니 세탁기 넣기 전에 속을 확인하란 건가?
하긴...얼마 전에 직장 동료도 세탁물을 잠시 내려놓은 틈에 들실장 녀석에 그 안으로 몰래 들어가 그대로 같이 통째로 세탁해버린 경험이 있다들었다.
결국 세탁물에 녹색 실장똥이 번져 못 쓰게 되었다지?
들실장 녀석들은 그냥 바구니만 보이면 닥치는 대로 들어가서 사육실장을 꿈꾸는 게 목적이라 들었다.
경고장 아래는 이어서 이렇게 써져있었다.
‘깜빡 잊고 같이 빨으신 경우엔 본 업소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세탁기 내에 실장석이 있으면 직원을 불러주세요!’
혹시나 해서 카운터를 봤더니...옆집 목욕탕 아줌마랑 아저씨밖에 없잖아...
뭐 그런 경우가 얼마나 있겠나. 라고 생각하며 난 빨래를 바구니에서 옮길 때, 손을 멈췄다.
세탁기 안에는 독라 자실장이 있었다.
....어이어이 왜 하필 나한테...
녀석은 울지도 않고 아첨도 하지않고 멍하니 날 올려다 보고 있었다.
더럽지는....않았지만 몹시 여윈 나머지 갈비뼈가 훤히 보일 정도였다.
푸른 멍과 상처가 여기저기 나있고, 귀도 힘없이 축 쳐진 채 진채 날 올려보고 있을 뿐이다.
일단 경고문에 따라 버저를 눌렀다. (솔직히 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탁기 안에 손을 뻗어 자실장을 건져낸다. 라고 해도 잡을 수 있는 옷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몸통을 잡아 들어올렸다.
도망치지도 못 하고 그대로 잡아 올려지는 독라 자실장. 그래도 ‘치이이...’하며 희미하게 반항의 소리를 낸다.
녀석을 세면대에 내려놓자, 자실장은 서서히 뭔가를 펼친다.
버석거리며 펼쳐진 메모용지에는 서투른 글씨로 ‘세탁 가능합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음, 어딘가 실장석 좋아하는 아이가 적어 준 건가?
내가 그 글을 읽는 것을 눈치 챈 녀석은 이번엔, 앉아서 메모지를 문지르는 동작을 한다.
양쪽 끝을 비벼대는 듯한...아 씻는 제스쳐인가?
자실장은 얼굴을 들어올려 내가 아직도 자신을 보고 있음을 확인하고, 다음 동작으로 넘어간다.
메모용지를 나풀나풀 흔드는 것이...아하 팡팡 터는 거구나.
‘테칫!’
그리고 또 주저앉아 요령좋게 메모용지를 정리하고 까치발을 들어 나에게 내민다.
반사적으로 받았어...
뭐냐 그 우쭐거리는 표정은...
정리하자면, 녀석은 세탁이 뭔지 알고 있고 할줄도 안다는 건데. 아저씨도 안 오고...한번 해볼까?
내가 가져온 세탁물 중 가장 더러운 것을 하나 건넨다. 진흙 묻은 양말.
자실장은 내가 내민 양말을 받으면서 수도꼭지와 그 옆의 비누상자를 번갈아 가리킨다.
저걸 이용한다는 건가?
세면대에 마개를 하고, 빠지지 않을 정도로 물을 받은 후 레몬비누를 가져온다.
문질문질 뽀득뽀득
와 신기해라. 정말로 씻고 있잖아 이 녀석!
진흙이 굳어진 곳은 비누를 잠시 옆으로 치우고 손으로 열심히 문지른다.
한 곳이 끝나면 또 다른 곳에 착수한다.
점점 물이 탁해지네. 갈아줄까나?
콸콸콸콸....또독-
30분 후 아줌마가 올 때까지 나는 자실장의 세탁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안~목욕물이 막혀버려서’
‘아 죄송합니다. 세탁기 안에 이 녀석이 들어있어서...’
‘어라어라 또 들어있었나보네 센짱’
‘테쮸우?’
뭐...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이 녀석은 밖에 내놓아도 친충이 도로 와서 여기에 던져버려요. 모퉁이 담베가게 부인이 실장석을 기르고 있어서 자세히 상담 받았는데, 아무래도 공원에서 세탁을 담당하다가 쫒겨난 녀석이라나?‘
‘세탁담당이요?’
‘음...그런 것 같아. 하여튼 언젠가 빨래를 망쳐서 어미와 자매들한테 심하게 괴롭힘당하곤 이 지경이라네’
독라는 실장석의 생태계에서 맨 밑바닥이라고 알고있긴 했지만, 들실장 녀석들은 심하게 다루나 보네. 카스트 제도야?
‘하여튼 이 녀석 세탁은 잘 한다니깐’
처음에는 의문스러웠지만, 저렇게 빨래를 더럽히지 않도록 취하는 예비동작도 그렇고...
우리 대화는 뒷전으로 하고 빨래를 계속하던 녀석은 자랑스럽게 자신이 세탁한 양말과 그렇지 않은 반대쪽 양말을 번갈아 가리키며 가슴을 쭉 편다.
저것봐! 놀라운 원래 회색으로!
농담은 고사하고 녀석은 정말 말끔하게 씻고 있었다.
‘아줌마 이거 장사되요?’
‘그러엄~ 이렇게 잘하는 애는 없다고~’
확실해 구경하는 재미가 있긴 하다.
‘게다가 손빨래를 고집하는 사람도 제법 있다고? 거기에 보는 재미까지 있으니 일석이조지’
‘음’
‘생각해보렴. 독라 자실장이 빨래 하는 거 어디서 본 적 있니?’
‘확실히...’
‘그럼~다음 번에 담배가게 부인이 목욕탕 오면 기르는 방법 제대로 들어둘거라고’
‘오오- 잘 됐구나 센짱’
자실장은 여전히 우리의 대화는 들은 척도 안하고 일심분란으로 다른 한쪽 양말과 격투하고 있었다.
몇 주 후 세탁소에 다시 왔을 때 녀석은 몸 닦는 수건의 산과 저금통에 둘러쌓여 있었다.
아주머니가 제대로 대우해주고 있는 모양인지 실장석 다운 토실토실한 체형으로 돌아와 있었다.
행복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드는 녀석에게 나는 손사레를 하며 답한다.
‘힘내라 세탁실장’
그렇게 중얼거리고 목욕탕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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