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 서바이벌 세트

 


"실장석의 자립심을 길러줍니다"

아무리 진성 애호파라고 하더라도 실장석을 키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많은 노력과 비용을 수반한다. 실장석의 삐뚫어져가는 성격은 둘째치더라도(물론 이게 가장 큰 이유지만), 사료나 간식 및 장난감의 비용, 대변 처리의 번거로움, 위생, 사회적 시선, 반려자의 취향 등 수많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실장식이 성체 사이즈로 커지거나 새끼라도 낳게 되면 키우기는 더더욱 어렵다. 

결국 자의든 타의든, 실장석이 죽지 않는 한 대부분의 실장석은 주인과 이별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정이 있다. 사육실장의 99.9997%가 버려진 후 일주일 내에 사망한다. (후생성 조사, '행락철에 버려지는 반려동물 실태조사' 1997년) 그것을 뻔히 아는데 버리는 것은 너무나 찜찜하다. 

바로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노리고… 아니,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실장석의 자립심을 길러줍니다'라는 캐치 프라이즈를 건 상품이 나왔다. 로젠사의 '실장 서바이벌 세트'다. 실장석이 홀로 생존하는데 필요한 수많은 아이템을 포함한 종합 생존도구를 한데 모은 이 상품은 출시 첫 달에 16만개, 그 다음 달에 73만개가 판매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실장 서바이벌 세트





"어디 보자"

남자는 박스를 열었다. 사과상자만한 큼지막한 골판지 상자는 그 자체가 실장석의 집이 될 수 있는, 방수 코팅 된 1호 박스 사이즈의 대형 골판지 상자였다. 박스의 각 끄트머리마다 좀 더 두터운 소재로 보강재가 덧대어져 있는 것이, 상당히 튼튼한 구조였다. 게다가 그 안쪽은 단열재로 뽁뽁이와 펠트지가 붙어있어 제법 방한 대책과 아늑함까지 추구하고 있었다.

"제법이네"

상자 안에 든 물건들도, 우선 성체용 실장사료 2주일 분과 자실장용 실장사료 2주일 분, 휴대용 간이 오리변기, 500ml 빈 생수병 2개, 타올 4장, 신문지 1부, 이쑤시개 10개, 못 1개, 실장 영양제 30알들이 한 통, 실장활성제 15ml, 원래의 실장옷과 같은 재질의 실장옷 2벌, 팬티 10벌, 콘페이토 30개들이 한 통 등 제법 충실한 생존장비, 메뉴얼이 갖춰져 있었다. 

고급형은 미니 실장 침대나 골판지 상자에 붙은, 커튼 장착형의 강화 플라스틱 창문 등 더 다양하고 좋은 아이템들이 들어있다고 하지만 3만엔이 넘는 돈까지 써가면서 고급형을 사기에는 남자의 돈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4천엔짜리 저가형을 사자니 부실할까 싶어 미도리 쨩이 걱정되었다. 1만엔짜리 보급형이 그가 낼 수 있는 한계였다. 

"이만하면 됐다"

마음 한 켠에는 아직도 주저하는 마음이 있지만, 미유키는 실장석을 보자마자 집에서 어떻게 저런 벌레를 키우냐며 정색을 했고, 이제 진지하게 만나기로 한 이상 이 자취방에도 자주 드나들텐데 그때마다 그녀를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남자는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했다. 




"데스우…"

영리한 개체인 미도리는 알고 있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기에 의외로 버려졌음에도 그리 슬프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마마의 뱃속에 있을 때 들은 '공원에서의 삶'에 대한 기대마저 있었다.

"데슷!"

콘페이토 병의 뚜껑을 들어올렸다. 과연 실장 상품의 명가 로젠사답게, 주인이 처음에 병을 따주면 그 다음부터는 그냥 '덮어놓는' 구조로 병을 쉽게 열고 닫을 수 있기에 실장석들도 그 내용물을 이용할 수 있었다. 

뭐,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실장 서바이벌 세트 속 실장석이, 메뉴얼조차 읽어보지 않고 그저 세트만 두고 가버린 닌겐상이 처음의 병조차 열어주지 않아 눈 앞에 먹을 것을 두고 굶어죽지만 말이다. 

"우마우마한데슷"

남자에게 키워질 때도 콘페이토는 일주일에 한두번 먹어보는 것이 고작이었던만큼, 스스로 콘페이토를 꺼내어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미도리는 기뻤다. 앞으로의 '자립적 삶'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다. 게다가 깨끗한 실장옷도 여러 벌이 있다. 정작 사육실장 시절에는 써보지도 못한 오리 변기까지 있다…. 

가장 큰 기대는 자에 대한 기쁨이었다. 주인님에게 길러질 때는 자식의 꿈은 꿀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원한다면 자를 갖고, 키우고 마마가 될 수 있다. 주인님이 담아둔 물도 두 병 가득 있다. 마구 마셔대서야 안되겠지만 당분간은 걱정이 없다. 

'어쩌면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인지도 모르는데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미도리는 평소답지 않게 데슷데슷! 하고 크게 소리까지 쳤다. 그리고 그것이 재앙을 불러왔다. 



애호파의 실장푸드 급식을 받으러 몰려갔던 한 무리의 실장석들이 한 알의 실장푸드도 얻지 못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던 중이었다. '기쁨에 넘친 행복의 목소리'로 너무나 건강하게 울어제낀 실장석의 존재에 순식간에 주변의 그 많은 실장석은 귀가 쫑긋해졌다. 

모두가 불행하고 지치고 힘이 든 공원의 들실장 생활. 그런 녀석들에게 있어 '행복의 소리'란 잘해야 콘페이토를 주웠다거나 다른 쓸만한 먹거리를 구했을 때 정도 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것은 빼앗아 마땅한 것이었다. 굶주린 실장석들은 일제히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머지않아 바로 옆, 긴 풀들이 자란 곳 안쪽에 골판지 하우스 한 채가 놓여진 것을 발견했다.

"대단한 집인 데스…"

우격다짐으로 달려든 들실장들조차 일시적으로 깜짝 놀란, 척 보기에도 튼튼해 보이는 골판지 하우스였다. 대다수의 골판지 하우스는 그냥 표면이 누런, 물에 쉽게 젖어버리는 흔한 상품포장용의 싸구려 골판지. 하지만 저런 종류의 골판지는 닌겐들이 애지중지하는 생활 가전제품들에나 쓰이는 방수코팅이 되는 골판지였다. 물론 실장석들이 '방수 코팅'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할 리 없었지만 어쨌거나 '번들번들하는 골판지 하우스는 물에도 쉽게 젖지 않는 마법의 골판지 하우스'라는 것 정도는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두려운데스"

보통 그런 고급 골판지 하우스는 마라 실장이나 한 실장석 무리의 우두머리 실장석이 갖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만큼 괜히 다가갔다가 마라실장에게 죽임을 당하고 싶지는 않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눈치 없는 미도리는 그 안에서 또 한번의 기쁨을 울부짖음을 했다.

"데슷, 데슷!♪"

완전히 행복에 취한 채로, 행복회로까지 풀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육실장인데스"

들실장 중의 하나가 중얼거렸다. 마라 실장, 혹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하면서도 튼튼한 대장급 성체실장의 목소리는 결코 이렇게 기름지고 간드러지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 버려진 사육실장의 것이다… 그것도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갓 버려진 사육실장….

누가 먼저릴 것도 없었다. 주변에 있던 10마리 가까운 들실장들은 일제히 실장 하우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무른 이빨과 발을 사용해서 골판지 하우스를 두드리고 깨물었다.



"데스읏!"

갑작스럽게 골판지 하우스를 무섭게 두드리는 수십개의 손발과 질투와 증오에 배고픔에 가득찬 실장들의 울부짖음에 미도리는 곧바로 행복회로에서 깨 현실로 돌아왔다. 

'다른 실장들을 조심해야 해'

주인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못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사방에서 골판지 하우스를 두드려대고 괴성을 질러대는 들실장들의 습격에 공포에 질린 미도리는 다시 못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자실장 시절 이후 처음으로 빵콘까지 했다.



"데, 데스"

거의 10분 가까이 미친듯이 골판지 하우스를 두드리던 들실장들이었지만, 이 실장 서바이벌 세트의 골판지 박스는 기본적으로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대형가전의 포장에 쓰이는, 매우 두꺼운 골판지다. 적어도 '1만엔'이라는 터무니 없는 폭리를 취함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상도덕은 필요한 법이라 로젠사에서도 신경을 쓴 것이다. 접합부나 골판지 모서리에는 보강재까지 붙인 튼튼한 구조다. 

그런만큼 실장석이 그저 막연히 두드리고 깨문다고 망가질 정도의 내구성이 아니다. 가뜩이나 지치고 배고픈 들실장의 체력으로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포기하는데스…"
"자들이 기다리고 있는데스"

몇 마리의 들실장이 포기하고 자신의 하우스로 떠났다. 질투와 분노에 빠진 집착의 들실장 몇 마리가 더 그 앞을 지켰지만, 곧 녀석들도 하릴 없이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밤이 깊었다. 미도리는 다른 들실장들이 떠나고도 한참 동안이나 그 안에서 숨을 죽였다. 잔뜩 움츠린 자세로 그렇게 잠까지 들었다가 깨고 나서야 비로소 안전하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실장푸드를 꺼내 먹었다.

"우마우…"

허기가 채워지자 자기도 모르게 또 소리를 지를 뻔한 미도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스스로의 입을 막았다. 그런 자신을 자책하며 빵콘한 팬티도 갈아입었다. 똥이 투두둑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것은 신문지 조각으로 적당히 문대어 닦았다. 물론 그저 녹색이 똥이 바닥에 번질 뿐이지만 실장석에게 있어서는 '똥을 치우는 시늉을 한다'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위생관념이었다. 이는 남자의 훈육이 제대로 먹혀들었고, 그리고 미도리의 지능 또한 흔한 실장샵의 싸구려 개체치고는 기적에 가까울만큼 높다는 것을 증명한다.

"외로운데스"

제법 넓찍한 골판지 상자라고 해도 그래봐야 좁은 상자 안. 성체 실장이 언제까지고 지내기에는 답답하고 좁은 곳이다. 게다가 이 안에서 얼마나 더 생활할 수 있을까. 사료와 물이 떨어지면 언젠가는 밖으로 나가서 직접 먹을거리를 구해야 한다. 사방에서 골판지를 두드리던 들실장들의 난동을 떠올리자 미도리는 겁이 덜컥 났지만, 또 한 편으로는 밖에서 풀꽃을 구하면 자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나가는데스"

언젠가는 나가야 한다면, 차라리 허탕을 치더라도 이 안에 먹을 것이 있어서 괜찮은 지금이 좋은데스, 라는 것이 미도리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주인님이 주신 무기도 있는 상황… 미도리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때였다.



"냐오오오옹"

여름 밤, 가을 밤이면 창가에서 들려오던 공포의 괴음. 그것이 지금 상자의 바로 근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미도리는 상자 밖으로 나가려던 생각을 곧바로 접고 못을 놓친 채 바닥에 웅크려 벌벌떨기 시작했다. 미도리 딴에는 들실장 때처럼, 그렇게 시간을 벌면 언젠가 이 괴음의 주인공도 사라질 것이라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지려버린 빵콘이 문제였다.




새벽 사냥을 나온 고양이. 쿠로네코. 버려진지 반 년차에 접어드는 이 흑묘는 그러나 공원의 쥐들과 실장석 사냥 덕분에 현재까지도 생존해 올 수 있었다. 오늘도 하루종일 썩어가는 나무 뿌리 옆에서 아늑하게 잠을 자던 녀석은 슬슬 허기를 느끼고 본능을 쫒아 새벽 사냥에 나선 것이다. 

그러던 차에 언제나의 사냥 코스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은 골판지 상자. 호기심에 그 상자벽도 벅벅 긁어보고 냐옹냐옹하고 말도 걸어봤지만 반응이 없어 돌아서려던 차, 익숙한 구린 냄새가 그 안에서 풍기기 시작했다.

본디 실장석의 똥은 진화과정에서 천적들을 쫒기 위해 지독한 냄새를 풍기게 진화된 것. 그래서 위기를 느끼면 실장석들이 빵콘을 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똥냄새를 견디기 힘든 인간들은 실장푸드 안에 그 냄새 중화제 성분을 섞기 시작했고 덕분에 미도리의 똥냄새 역시 그렇게 심한 구린내는 나지 않았다.

내츄럴 본 들실장들과 달리 적당한 냄새의 똥냄새는 오히려 사냥꾼의 본능만을 더욱 강하게 자극할 뿐이고, 절망적으로 굶주린 때가 아니면 실장석을 잘 사냥하지 않는 이 검은 고양이 '쿠로네코'조차 '이번만큼은' 하며 골판지 상자 위에 올라탔다.



보통의 골판지 상자라면, 정방향으로 놓여있다고 쳤을 때 설령 그것이 튼튼한 내구성을 지닌 골판지 상자라도 그 상자가 테이프로 포장이라도 되어있지 않은 이상은 위에서 내리 누르는 힘에 열리기 마련이다. 고양이 정도의 무게라면.

그러나 이 상자는 다르다. 외벽처럼 안쪽에도 몰딩과 상자의 날개를 받아주는 지지대가 있어서, 안에서 걸쇠를 풀지 않는 이상 위에서 적당히 누르는 힘으로는 상자의 뚜껑이 확 안으로 쏟아지지 않는 것이다. 과연 '1만엔'에 대한 가치의 납득을 위한 로젠사의 노력이다.



"데슷!"

이번에는 위다. 미도리는 공포에 질린 채로 못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살짝 빠끔하니 열린 틈 사이로 털복숭이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뾰족한 이빨과 거대한 발톱도 보였다. 미도리에게 있어서 고양이는 태어난 이래 처음보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괴물이었다. 게다가 "냐오오오오" 하는 괴성을 지르며 상자 입구를 벅벅 긁기 시작했다.




상자의 내구도는 제법 좋은 편이지만, 그래도 역시 이 상자는 기본적으로 '들실장의 공격으로부터 (어느 정도) 안전'을 목표라 하고 있는 내구성이다. 길고양이나 들개의 공격을 막기 위한 내구도와 장치(상자 윗면에서 시트러스 향이 풍기는 향기 코팅 등)는 3만엔의 고급형에서나 기대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발톱을 세운 고양이의 집중적이고도 적극적인 공격에는 그다지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뻐끔뻐끔 천장이 벌어질 때마다 보이는 괴물의 모습. 미도리는 "오로로롱, 오로로롱" 하고 울면서도 저항을 준비했다. 상자 입구가 조금씩 구겨지고 찢기면서 천장의 벌어지는 틈도 넓어져갔기 때문이다. 이윽고 발톱 하나가 천장에서 슥 허공을 가르기 시작했다. 미도리는 공포에 질려 정신이 나가기 직전이었지만 너무나 생생한 공포에 행복회로조차 전개되지 않았다. 미도리는 자기도 모르게 못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냐오오오오오오오!"

한줄기 피와 괴성이 울려퍼졌다.




쿠로네코는 저 밑의 '퍼런 쥐'가 슬금슬금 보이기 시작하자 더욱 상자 긁기의 즐거움에 박차를 가했다. 골판지를 긁음으로서 발톱의 가려움도 해결하고 식사 시간도 가까워진다. 그런 기쁨에 더욱 긁기를 바삐하던 찰나, 귀여운 앞발의 젤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냐오오오오오오오오!"

아래의 '퍼런 큰 쥐'가 무언가 날카로운 물건으로 자신의 발바닥을 찌른 것이다. 게다가 마침 상자를 긁던 중이라 상처가 길게 생겼다. 쿠로네코는 더욱 분노해서 상자를 긁어대기 시작했다. 상자는 금방 피범벅이 되었지만 이 서바이벌 상자의 윗면, 즉, 미도리의 천정은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미도리에게도 '괴물'의 머리가 반쯤 보이기 시작했다. 노란 눈알에 마름모 꼴의 눈동자를 보자 미도리는 더욱 큰 공포를 느꼈다. 세상에 저런 어마어마한 괴물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아니, 실장샵에 있을 때 '네코'인지 '네로'인지 하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그게 저거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미도리는 연속해서 빵콘을 하며 더욱 크게 부풀어 오른 팬티의 무거움을 느낀 채로 하늘을 향해 본격적인 찌르기를 반복했다. 한번 당하고 나자 쿠로네코 역시 고양이의 반사신경으로 녀석의 공격을 피했지만, 문제는 피였다.



살짝 열린 틈으로 고양이 앞발의 피가 후두둑 후두두둑 떨어지며 상자 안을 피범벅으로 만들었다. 미도리 역시 고양이의 피를 뒤집어 쓰느라 반쯤 귀신 같은 모습이 되었다. 상자 안의 모든 물건에 다 고양이의 피가 뿌려졌다. 



"냐오오오오옹!"

쿠로네코는 드디어 포기했다.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이대로는 위험하다옹' 하고. 피를 흘리며, 잔뜩 부은 앞발을 잘 디디지도 못하며 결국 자신의 보금자리를 향해 달려갔다. 실장 서바이벌 키트의 입구는 1/4쯤 벌어진 채로, 그 위에 잔뜩 흐른 고양이의 피가 아직도 안으로 흘러내리며 미도리를 빨갛게 물들여갔다.

미도리는 그 '괴물'이 큰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자 그제서야 안도감을 느끼며 피로와 팬티 무게에 지쳐 쓰러졌다. 




일주일이 지났다. 



미도리는 그 날 이후로 차마 도저히 상자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한번 그 '괴물'을 조우할까 두려워 나갈 생각을 못한 것이다. 

2주분의 식량은 반 이상 줄었지만 그래도 절대 다수의 '실장 서바이벌 키트'로 버려진 실장석들이 2주분의 식량을 3일 내에 소진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도리는 나름 초실장적인 인내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미도리 나름대로의 '만약'을 대비한 인내였다. 

게다가 미도리에게는 천운이었던 것이, 불과 하룻밤사이 그 상자 주변에 흩뿌려진 쿠로네코의 피와 털 덕분에, 다른 실장석들이 고양이의 기척을 느끼고는 두려워서 감히 그 주변에 다가서지 못한 것이다. 



천운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개년"

남자는 욕이란 욕은 다 퍼부으며 공원을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여자친구 미유키가 실장석을 너무 싫어한 나머지 큰 돈 들여 실장석 서바이벌 키트까지 사서 잘 키우던 실장석을 버리기까지 했는데… 

알고보니 그 년이 실장석을 싫어한 이유는 전 남친이 실장석을 키우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던데다, 결정적으로 오늘 다시 그 남자랑 만나기로 했다면서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기 때문이었다.

"미친 년, 진짜 내가 얼척이 없어서…어어!"

남자는 어디에 두었는지 헷깔려서 한참을 헤메이던 통에, 결국 포기하기 직전 미도리의 상자를 발견했다.

"뭐야"

그러나 상자에는 시뻘건 피가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실장석의 피는 녹색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던 남자였지만, 상자의 입구를 강제로 열어제끼자 그 안에는 미도리가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그래! 그래! 와! 이 녀석 진짜!"
"데에?"

잠에서 깨어 살포시 눈을 뜬 미도리. 미도리의 눈 앞에는 꿈에도 그리던, 분명 버려진 첫 날에는 별로 보고 싶지도 않았지만 '괴물'의 습격을 받은 이래로 매일 미친듯이 보고 싶었던 주인님의 모습이 있었다.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미도리의 양 눈에서는 적록의 피눈물이 펑펑 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남자는 다짐했다. 앞으로 다시는 미도리와 이별하지 않겠노라고. 자기가 미친 짓을 했을 뿐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 일주일 사이, 살짝 열린 상자의 박스 입구 사이로 날아든 꽃가루에 의해 미도리가 딱히 원치도 않았던 임신을 했고, 그 덕분에 분충 새끼 네 마리를 낳아버리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 fin - 









린갈 업데이트

 


"씨팔…"

토시아키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믿기지 않아서 얼굴을 몇 번이고 손으로 쓸어내리고, 세수도 하고 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보통 이슈가 아니다. 

"아, 이 미친 씨팔…"

토시아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여전히 꿈이 아니었다. 







린갈 업데이트





토시아키는 연구소에 들어오자마자 땀이 끈적한 정장을 벗어제꼈다. 자식이 없는 히로아키 교수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상주 노릇을 해야했던 그는 그 상황이 참 얼척 없었지만 어쨌든 이제 다 지나간 일이다.

"후우, 그래, 미운 정이 고운 정보다 깊다 그랬지"

연구동 샤워실에서 시원하게 씻고 나와 3일 만에 연구실 PC를 켰다. 밀린 업무들을 처리해야 했다. 교수의 메일함에는 30통 가까운 메일이 와 있었다. 

"에휴"

다행히도 대부분은 언제나처럼 학회의 알림 메일이나 노땅 교수들의 별 쓸데없는 메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일거리도 끼어 있었다. 로젠 사의 린갈 업데이트 건이었다. 

"아 귀찮아졌네, 이걸 어쩐다"

메일의 내용은 간단했다. 린갈 앱이 특정 단어 몇몇 개가 조합되면 제대로 번역이 안되고 앱이 꺼져버리는데, 검토 결과 프로그램 버그가 아닌 실장어 해석 로직에 오류가 있어 보인다는 것. 해당 이슈의 검토를 부탁 드린다는 내용.

"파일에 관련된 내용이 있으려나"

히로아키 교수가 살아있었다면 아마 그저 두어 쯤 시간 있다가 교수가 개인 연구실에서 끄적여 온 노트의 내용을 전산 입력보조 알바생처럼 그냥 그대로 메일에 입력 해서 보내기만 하면 그만인 일이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듯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실장어 연구의 세계적, 그리고 사실상 유일한 권위자 히로아키 교수가 교통사고로 임종한 현재 이 업무를 처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후타바 대학 실장학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 토시아키 뿐이었다. 

"파일이 어디 있더라…"

그러나 문제는, 히로아키 교수는 자신의 후학들에게 가르침이 짜도 너무 짰다는 사실이었다. 토시아키도 말이 좋아 선임 연구원이지 뭐 배움의 수준에서는 딱히 학부생들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선배들이 관두어서 선임 자리를 꿰어 찼을 뿐이지. 어쨌거나 일은 일이었고, 그는 그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래야 후원금도 들어오고 이 연구실도 돌아갈테니까. 

토시아키는 히로아키 교수의 연구 파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파일에 비밀번호가 걸려있긴 했지만 비밀번호야 이미 알고 있었다. killjitsou666. 유치한 비밀번호였지만 외우기는 쉬워 좋았다. 그러나 그 순간 섬뜩한 생각도 들었다. 그나마 지지난 주에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겨서 대신 컴퓨터 손 본다고 유선상으로 비번을 전달받아서 알았을 뿐, 아니었다면 지금 이 수많은 자료는 그냥 모두 영영 암흑 속으로 들어갈 일 아니었던가. 

"어쨌거나, 오케이, 이 부분인가?" 

토시아키는 연구 파일을 죽 훑어가면서 지금 오류난 부분의 해석 구절의 로직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씨팔…"

토시아키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믿기지 않아서 얼굴을 몇 번이고 손으로 쓸어내리고, 세수도 하고 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보통 이슈가 아니다. 

"아, 이 미친 씨팔…"

토시아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여전히 꿈이 아니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실장어 연구 파일의 내용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 …하여, '(친근한 의미에서의) 주인님'은 '똥닌겐'으로 변환을 하고, '사랑'은 '스시', '애정'은 '스테이크'로 변환토록 한다. '부디 주시는' 은 '내놓는 / 바치는' 으로 번역함으로서 실장석에 대한 인간의 가학심을 극도로 일으킬 수 있도록 한다 ] 


히로아키 교수의 연구 노트에 따르면, 지금 이 세상의 모든 린갈은 번역을 엉터리로 하고 있다. ('이 세상 모든 린갈'이라고 해봐야 그 실장어 언어로직을 짠 게 히로아키 교수니까 결국 그 모든 책임은 히로아키 교수, 그리고 광의적인 개념에서 우리 연구소, 즉 나까지 책임이 있고 말이지)

쉽게 말해서 "똥닌겐, 스시와 스테이크를 내놓는테치!" 이라는 실장석의 말은 사실은 "주인님, 사랑과 애정을 부디 내려주시는테치!"라는 말이다.

저 엉터리 번역 때문에 분충으로 판명받아 죽어간 수천만, 아니 수십 억의 실장석들은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아니 아니 잠깐만 그럴 리 없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반전적 정보다. 후우, 그래.

"보통 저런 말을 하고 투분을 한다거나 뭐 극도로 반항을 한다거나 하잖아"

혼자 중얼거렸지만, 마치 그걸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아래에 그러한 반론에 대한 부연설명이 있었다. 


[ 친-자의 유대가 끈끈한 동물인 실장석은 자신의 애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투분(자신의 배설물을 상대에게 던지거나 바르는) 행위를 하기도 하는데, 많은 포유류 동물들이 서로의 항문낭 냄새를 확인하며 유대를 확인하듯 이 역시 유대의 표시이며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는 지극히 애정어린 행위이다. 

아울러 마찬가지로 행동학적 관점에서, 양 다리를 벌리고 총구를 흔드는 등, 인간의 기준으로는 성애를 갈구하는 듯한 실장석의 행위는 기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자신의 분대나 위석에 문제가 생긴 듯 하니 조심해달라는 행위이다. 

그러나 이 역시 본 서의 서두에 말했던 '진정한 실장석과 인간의 상호 발전적인 관계'를 위하여 본인은 

"그쪽에 계신 인간님, 제 뱃 속 상태가 이상하니 가능하시다면 확인 부탁드립니다" 라는 문장을 "어이 거기 있는 닌겐상, 한발 뽑고 가는데스우" 로 번역하기로 한다. ]

라고.




토시아키는 담배 연기를 길게 들이마셨다. 22메가 분량의 이 연구 파일 내용에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내용들이 한도 끝도 없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분충'이라고 알고 있는 실장석은 세상에 다시 없을 인간 친화적인 동물이며, 너무나 다정하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생물이었다. 

단지 인간과 그 행동학적 양식이 많이 달라 오해를 빚기 쉬울 뿐이었는데 그 모든 것을 히로아키 박사가 엉터리로, 아니 의도를 갖고 일부러 정 반대로 해석하도록 언어 로직을 일부러 짜놓아 린갈이 개발된 이래 인간과 실장석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만 것이다. 

"하아"

이미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죽은 히로아키 교수는 세상에 다시 없을 또라이였다. 하지만 또 이해는 되었다. 



그는 "실장석 같이 애교 많고 예의 바른 동물은, 인간과 본격적인 친화 과정을 거칠 경우 근 100년 이내로 개 이상의 지위를 확보할 것이 분명하며, 그것은 장차적으로 실장석에 대한 학대는 물론이요, 실장석을 통하여 우리가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무수히 많은 의학적, 과학적, 생물학적, 식량학적 발전의 여지를 앗아버리는 것과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의 질병 정복을 위해 시간당 수만 마리의 실장석이 희생되고 있지 않는가. 

(중략)

실장석의 번식력을 감안컨데 실장석과 인간의 친화는 식량학적 관점에서는 차라리 재앙에 가깝다.

(중략)

따라서, 차라리 내가 악마, 쓰레기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이 '거짓과 기만'를 힘 닿는 데까지 지속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인류애의 실천이다" 라고 밝히고 있었다.




솔직히, 설득되었다. 처음에는 이 미친 교수가 지금껏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사실에 분노했지만 그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말 못하는 개 고양이도 이렇게나 대우 받는데, 말까지 할 줄 아는 짐승이 인간의 애정을 진짜 제대로 받기 시작하면 사회는 분명히 실장석을 유사 인간 수준으로까지 대우할 것을 요구할 것이 틀림없었다. 실장석은 미움을 받아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대단하긴 하다"

그래도 정말 참 그럴 듯하게, 아귀가 딱딱 맞게 왜곡해서 린갈의 실장어 번역 로직을 짠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또 곰곰히 생각해보니 [ 애호파는 린갈을 쓰지 않는다 ] 라는 격언도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이해가 갔다.

애정을 갖고 옆에서 지극히 정성으로 대우하다보니, 애호파들은 분명히 무언가의 위화감을 느꼈던 것이다. 린갈의 번역과 실장석의 진짜 의도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얼핏 보면 분명히 분충짓, 역겹고 건방진 동물의 행동인데다 번역까지 여지없이 그렇게 뜨니 사람의 화를 불러 일으키지만, 곰곰히 보면 결코 딱히 큰 악의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미묘하게 애정이 느껴지는 행동… 비록 그 미묘한 차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자신이 없어서 남을 설득하지는 못하지만 어쨌거나 알 수 없는 위화감에 린갈을 쓰지 않는 애호파들.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토시아키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그에게 선택지는 두 개였다. 첫째는 지금이라도 모든 진실을 로젠사와 세상에 고하는 것. 이제껏 왜곡된 번역으로 죽어나간 실장석들이 세상에 어디 1~2억 마리 뿐이겠는가. 당연히 그 배상 문제는 천문학적인 수준에 달할 것이다. 토시아키는 일부러 그런 것이 결코 아니지만 어쨌거나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믿어줄 리 없다. 게다가 히로아키 교수도 죽은 마당에 '선임 연구원' 타이틀 달고 있는 자신에게 세상의 모든 비난이 돌아오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둘째는 그저, 자신도 히로아키처럼 이 '왜곡된 번역'을, 언제 탈이 날지 모르지만 앞으로 죽는 그날까지 지속해나감으로서 인류에 이바지 하는 것. 

어느 것을 택해야 할 지는 자명했다. 




토시아키는 히로아키가 그랬던 것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왜곡된 번역의 교정을 위한 '기묘한 작문'을 두어시간 머리를 끙끙대며 쥐어짠 끝에 완성했다. 몇 가지의 변수를 상정하여 혹시 또 다른 오류를 불러오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다행히도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후우"

메일을 보냈다. 두어 시간 후 로젠 사에서는 무사히 패치를 완료했다며, 감사하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다. 아울러 히로아키 교수의 부고에 대해 새삼 또 한번 조의를 드리고, 후임자인 토시아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도 약속했다.



토시아키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혼자 불꺼진 연구실에서 길게, 꽤 맛 없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 끝 - 










아파트의 들실장 1

 


어느 한 일본인은 한국을 가리켜 ‘단지의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일본인의 눈에는 다니는 길마다 존재하는 아파트 단지가 신기했겠죠. 한국은 그만큼 아파트가 많습니다. 아니, 아파트는 이미 한국에서는 대중적인 주거 수단입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60%입니다.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도 48%나 됩니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죠.

이런 ‘아파트 공화국’에서 들실장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전편인 서울의 들실장에서 본 것처럼 산에 만들어진 공원에 사는 들실장도 있지만 아파트 단지에서 살아가는 들실장도 있습니다. 오늘은 아파트에서 들실장이 살아가는 법을 보도록 하죠.

쓰레기장 뒤에 스티로폼 상자 여럿이 놓여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살펴보도록 하죠. 한 들실장 가족이 있습니다. 모두 세상모르게 쌔근쌔근 자고 있군요. 눈에 낀 눈꼽이라든가, 입에서 질질 흐르는 침을 보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는군요. 하지만 생각보다 더럽지는 않습니다. 들실장과 사육실장을 비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카락입니다. 주인이 관리해주는 사육실장과는 다르게 들실장은 제대로 씻지 못해서 흔히 말하는 ‘떡진 머리’가 되어서 다니는 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여기 자고 있는 들실장 가족은 비록 머리결이 거칠긴 해도 기름기가 흐르지는 않는군요. 아, 성체실장이 일어납니다. 이 일가의 친실장입니다. 이름은 편의상 미도리라고 하겠습니다. 미도리는 일어나서 잠시 눈을 부비고는 자신의 자실장들을 깨우기 시작합니다.

<와타시의 자들은 어서 일어나는데스->
<테찌?>
<테에에에엥… 졸린테찌…>
<와타시는 더 자는테찌…>

세 마리의 자실장들은 일어날 기색이 없군요. 그래도 미도리는 자신의 자가 사랑스러운가 봅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바로하고 엄한 목소리로 자들에게 말합니다.

<마마의 말을 안듣는 자는 분충인데스. 오마에들은 분충인데스?>
<아닌테찌!>
<와타시는 착한 자인테찌!>
<테에에에에에엥!>
<그럼 어서 일어나는데스- 늦으면 맛나맛나한 아침을 못먹는데스.>

미도리는 그렇게 말하며 하우스를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햇볕이 드는 자리는 많지 않지만 용케 그런 곳에 자리를 잡은 미도리 일가의 하우스에 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안에 있는 가재도구는 들실장과 비슷합니다. 페트병이나, 플라스틱 그릇과 같은 것들 말이죠. 하지만 보존식 박스라든가 하는 것들은 없습니다. 하우스도 들실장이 선호하는 골판지가 아니라 좀 더 튼튼한 스티로폼입니다. 정말 부유하네요. 미도리.

들실장들은 이 스티로폼 박스가 더 고급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 스티로폼 박스는 꽤나 싼 물건입니다. 특히 재활용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에 재활용 수거업체에서도 기피하는 물건이죠. 차라리 같은 무게면 골판지 박스가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자연스럽게 아파트에 사는 들실장들은 스티로폼 박스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들실장들로서도 이득입니다. 스티로폼 박스는 훌륭한 단열재이기 때문이죠. 우연찮게 들실장이 이득을 보는 형태인 것입니다.

하우스를 대충 정리한 미도리일가는 플라스틱 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옵니다.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어디론가 향합니다. 목적지는 옆 수돗가입니다. 이미 많은 들실장 일가들이 나와 몸을 씻고 있습니다. 미도리일가는 일단 수돗가 옆 배수로로 향합니다. 몸을 씻기 전에 해야할 일이 있거든요.

<자들은 어서 운치를 싸는데스.>
<알겠는테찌!> 
-부릿 -부리릿

다들 팬티를 내리고 운치를 누기 시작합니다. 자들이 운치를 싸는 모습을 흐믓하게 보던 미도리는 자신도 팬티를 내리고 운치를 누기 시작합니다. 표정이 묘하군요. 실장석은 생식기와 배설기가 하나인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배설을 하면 생식기도 자극되는 구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설의 쾌감과 성적 쾌감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운치를 다 싼 미도리 일가는 팬티를 마저 벗어던집니다. 왜 그럴까요. 

<그럼 자들은 모두 씻는데스- 아침부터 깨끗한 것은 중요한데스->
<테프프프프! 시원한테찌!> <기분좋은테찌!> <테에에에에…>

가져온 플라스틱 그릇에 물을 받아다가 하나씩 씻기기 시작합니다. 아까 운치를 누고 더러워진 총구도 깨끗하게 씻기고 팬티도 깨끗히 빨아놓습니다. 다른 들실장에 비해서 이곳의 들실장이 깨끗한 이유입니다. 매일 수돗가에서 씻을 수 있는 것은 들실장에게는 특권이나 다름없죠. 이렇게 씻은 물은 아까 운치를 누었던 배수로에 버립니다. 자연스럽게 들실장들의 운치는 하수로 흘러 내려갑니다. 

들실장 일가들이 모두 씻고 자신들의 몸을 말리고 있을 때쯤, 파란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를 입은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귀에는 무언가를 끼고 있군요. 들실장들에게 말을 거는 남자입니다.

“모두들 따라온나.”
<자들은 모두 기다리는데스. 마마가 밥을 가져오는데스.>
<알겠는테찌!> <맛나맛나로 가져오는테찌!> <다녀오는테찌!>

성체실장들은 자실장들을 놓고 남자가 가는 곳으로 따라갑니다. 손에는 각자 음식을 담을 봉투를 들고 갑니다. 남자는 노란색 긴 통을 열고 인상을 찌푸립니다. 올라오는 냄새가 좋지 않군요. 하지만 같은 냄새를 맡은 들실장들은 좋아하기 시작합니다. 남자는 재빨리 가져온 집게로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냅니다. 음식물 쓰레기이군요. 들실장이 가져온 봉투를 내밀면 거기에 두세번에 걸쳐 퍼줍니다. 그렇게 들실장들에게 먹을 음식을 퍼주고 다시 다른 곳으로 향하는 남자입니다. 미도리도 봉투에 가득 담긴 음식을 들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오늘도 밥이 푸짐한데스->
<잘먹겠는테찌!> <맛있는테찌!> 
-테첩테첩테첩

사람들이 보면 인상이 찌푸려질만큼 더럽게 먹는 자실장들이지만 미도리 눈에는 이뻐보이기만 합니다. 자실장들이 먹는 것들 지켜보다가 자신도 하나둘 음식을 꺼내 먹기 시작합니다. 쿱쿱한 냄새가 올라오는 음식물쓰레기이지만 들실장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진미입니다. 

아파트 내부에 있는 음식물쓰레기는 통별로 거래가 됩니다. 통 하나당 수거비용 얼마씩인 것이죠. 그렇기때문에 아파트마다 큰 통이 몇 개씩 있습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봉투에 담아버리는 단독주택 단지와는 다르죠. 그렇기때문에 아파트에 사는 들실장들은 인간의 절대적인 호의가 아니면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통 안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퍼주면서 들실장들을 돌보는 것일까요? 단순한 인도주의? 애호파? 좀 더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밥을 다 먹은 미도리의 자실장은 배를 두드리며 누워있습니다. 잔뜩 먹었는지 다들 배가 볼록하군요. 흐믓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며 대충 하우스 안을 정리한 미도리는 손님을 맞이합니다. 옆에 사는 들실장입니다. 에메랄드라고 부르기로 하죠. 

<미도리상, 슬슬 출발하는데스.>
<벌써 그렇게된데스? 알겠는데스. 마마는 일을 다녀오는데스. 자들은 오바상 말을 잘 듣는데스요.>
<다녀오시는테찌!> <장난감 주워오는테찌!> <테에츄… 테에츄…>

금세 또 잠이 든 한 녀석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도리를 배웅합니다. 미도리는 하우스를 나와 에메랄드와 같이 갑니다. 이미 모여있는 들실장들입니다. 미도리와 에메랄드까지 해서 총 6마리입니다. 줄을 맞추어 조심스럽게 어디론가 향하는 들실장들입니다. 사람들이 지나가고는 있지만 들실장들은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걸어갈 뿐입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이 아파트의 경비실입니다. 아까 그 남자가 있군요. 다른 곳에서도 들실장 무리가 오고 있습니다. 이쪽은 7마리입니다. 반갑게 서로를 맞이합니다. 미도리도 익숙한 얼굴과 인사를 나눕니다.

<잘지냈는데스. 장녀?>
<그런데스! 마마도 잘 지냈는데스?>
<물론인데스. 장녀의 이모토챠도 많이 늘었는데스.>
<와타시도 이번에 자를 둘이나 낳은데스.>
“자, 조용히 좀 해라.”

남자가 하품을 쩍쩍하며 나옵니다. 들실장들은 제각기 떠들던 것을 멈추고 모두 남자만을 쳐다봅니다. 눈으로 들실장의 수를 세던 남자는 이내 고개를 젓습니다.

“음… 뭐 상관없나. 다들 왔나?”
<그런데스!> <맞는데스!>
“좋아. 오늘은 별 일이 없으니 어제처럼 하도록 한다. 이상.”

남자는 자기 할 말만 마치고는 다시 경비실 안으로 들어갑니다. 밤새 제대로 잠을 못잤기 때문에 피곤합니다. 하품을 쩍쩍 하는 남자를 뒤로 하고 두 무리의 실장석들은 제각기 흩어집니다. 

아파트 뒤 잔디밭에 들어간 미도리무리는 제각기 허리를 굽혀 잡초들을 뽑기 시작합니다. 민들레가 이쁘게 피었어도 잔디밭에서는 그저 잡초일 뿐이죠. 쓰레기를 줍기도 합니다. 보도블럭 바닥에 붙은 껌도 떼냅니다. 그것은 아까 흩어진 다른 무리들도, 그리고 다른 경비실에서 점호를 받은 또 다른 무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실장들은 마치 자신이 할 일을 하는 마냥 익숙하게 일을 해나갑니다. 아주 신기합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한국에서 아파트 경비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감시-단속 근무자라고 부릅니다. 단속, 즉 연속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상주하지만, 연속적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일이 없을 때는 앉아서 대기하는 것이 본래 경비가 해야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경비원은 보통 경비업체랑 계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경비업체는 관리사무소와 계약을 맺죠. 보통 3년이나 5년 단위로 재계약이 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관리사무소는 끊임없이 경비업체를 후려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그 후려침을 당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이 바로 경비원입니다. 

대기만 하고 있는 것이 못마땅한 관리사무소는 자꾸 경비원에게 추가 업무를 주는 것이죠. 조경도 니네가 해라, 쓰레기장이 왜 저리 더럽냐, 낙엽 좀 쓸어라. 택배도 너희가 받아라. 똥벌레들도 니네들이 때려 잡아라. 원래는 관리사무소가 해야할 업무들이 조금씩 경비원들에게 넘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경비원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해야하는 것이죠. 그렇게 과중한 업무로 사람들이 하나둘 나가떨어질 때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낸 겁니다.

‘저 똥벌레들을 부려먹으면 어떨까.’

라고 말이죠.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파트에서 들실장은 그저 똥벌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습관대로 판 운치굴의 냄새나 제대로 씻지 않아 생긴 실장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단골 민원거리였죠. 골판지를 찾겠다고 쓰레기장을 뒤적거려 정리해놓은 것들을 망치는가하면, 음식을 얻겠답시고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오는 사람들에게 투분하기 일쑤였죠. 들실장이 나타났다 하면 경비원들은 한숨을 내쉬며 몽둥이를 들고 가기 바빴습니다. 

10여년 전, 어느 경비원은 그런 들실장을 보며 생각한 것입니다. 말이 통하고, 훈육도 가능하다면 저 놈들을 부려먹지 못할 것은 뭐람? 이라고 말이죠. 그렇게 경비원은 자기 시간을 들여가며 들실장들을 교육시키기 시작합니다. 우선 들실장들 중에 똑똑한 놈들만 남기고 전부 잡은 후, 똑똑한 놈들은 모두 쓰레기장 뒤편으로 옮겨줍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골판지 하우스 대신 스티로폼 하우스를 주는 것도 있죠. 이렇게 하면 동네 주민들에게도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리고 쓰레기장에는 사람이 쓰기 위해 만들어놓은 수도가 있고, 이 수도를 이용해 매일매일 씻도록 합니다. 실장석 또한 씻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생활 습관입니다. 습관처럼 파는 운치굴을 무너트리고 배수로에만 싸게 교육시킵니다. 밥은 아침과 저녁만 줍니다. 뭐라고 떠드는 분충들은 그때그때 머리를 터트려서 다른 들실장들의 교육재료로 삼습니다. 

일을 시켜봅니다. 처음에는 잔디를 뽑기도 했지만 이내 열심히 교육시킨 보람이 있는지 잡초만 잘 뽑습니다다. 쓰레기도 줍게 시키고, 보도블럭에 붙은 껌도 제거하게 합니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 되면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골판지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게 합니다. 

이렇게 하나둘씩 가르치고 반항하는 분충들을 솎아내기를 어언 2년. 이제는 훌륭한 일꾼들이 된 들실장입니다. 들실장들도 깨닫습니다. 매일 이렇게만 한다면 밥 걱정, 자식새끼 걱정은 없겠다 싶은 것이죠. 그리고 이 들실장들은 빠르게 다른 아파트 단지로 퍼져 나갑니다. 교육받은 들실장 세 마리만 데려와도 금방 자식을 낳아 아파트 전체를 커버할 수 있게 됩니다. 10년이 지나고 지금에 와서는 일부 고급 아파트 단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에서 이런 아파트 들실장이 흔하디 흔한 존재가 된 이유지요. 이제는 이런 들실장까지 고려해서 아파트 주변설비를 설계하는 것도 당연시 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 미도리는 이상한 것을 발견합니다. 울타리 너머로 손이 쑥 올라오더니 자실장 한마리가 풀밭에 털썩하고 떨어집니다. 이어서 또 한마리가 털썩하고 떨어지는군요. 그렇게 몇마리가 떨어지더니 낑낑대며 들실장 한마리가 올라옵니다. 

<데프프프프프… 이젠 여기가 와타시의 집인데스!>
<오마에는 뭐인데스?>
<데엣?!>

좋아하던 들실장은 그제서야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미도리무리를 발견합니다. 잠시 놀란 표정이었던 들실장은 실장석 특유의 비열한 웃음을 짓습니다. 

<데프프프프프… 오마에들이야말로 뭐인데스?>
<와타시타치는 이곳에서 일하는데스.>
<닌겐들은 뭘하는데스?>
<와타시타치가 일을 하면 닌겐들은 밥을 주는데스.>
<데프프프프프… 멍청한데스. 왜 닌겐노예를 부리면서 세레브하게 살지 않는데스?>
<...분충인데스. 쳐죽이는데샤!!!>
<데갸갸갸갸갸갸갸악!>

분충은 들실장 커뮤니티를 붕괴시키는 제 1 요인입니다. 여기서의 삶을 위해서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분충은 적극적으로 배제해야합니다. 미도리와 에메랄드를 비롯한 6명의 들실장은 몰래 들어온 들실장을 잡아 패기 시작합니다. 몰래 들어온 들실장은 그제서야 비명을 지르고 도망가려 하지만 이미 붙잡힌 뒤입니다. 머리를 뜯기고 옷이 찢깁니다. 자실장들은 자신의 친실장이 당하는 모습을 보며 빵콘을 하는군요. 미도리무리는 자실장도 한 마리씩 붙잡고 같이 독라로 만들어줍니다. 한참을 두들겨 패고 있으니 누군가가 다가옵니다. 

“무슨 일이냐?”
<데스? 경비상. 와타시타치가 분충을 처리한데스!>

교대한 경비원을 보며 반갑게 인사하는 미도리들입니다. 경비원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비닐을 꺼냅니다. 실장석 회수 봉투군요. 손끝으로만 독라들실장을 잡아 휙휙 넣습니다. 비닐에서는 독라들실장들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왔지만 그것도 비닐을 잘 묶으니 새어나오질 않습니다. 

“고생혀. 너무 시끄럽게 굴지 말고.”
<알겠는데스!>

비닐을 챙겨 뒤돌아 가는 경비원의 등에 대고 꾸벅하는 미도리들입니다. 이렇게 아파트 들실장들은 관리되지 않은 야생의 들실장들이 외부에서 몰래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기도 합니다. 










욕구와 욕망

 


“...그러니깐 실장석 훈육에서 중요한 것은 욕구와 욕망의 차이를 이해시키는 것입니다.”

남자는 앞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을 계속 바라보았다. 독특한 실장석 훈육방식을 유튜브에 하나둘 올리던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애호파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훈육이라는 것은 애호파가 보기에는 학대나 다름 없으니까. 하지만 이 사람의 훈육방식으로 효과를 보았다는 댓글이 하나둘 달리고, 좋아요가 늘어나면서 분위기가 점차 달라졌고, 지금은 구독자 수 30만의 어엿한 대기업 유튜버가 되었다. 

“제가 준비한 자실장은 3일 전에 탁아를 받아온 들-자실장입니다. 혹시라도 숍에서 사온 자실장이라고 의심하실 분이 계실까봐 영상도 따로 찍어놓았죠.” 

영상이 전환되고 화면에는 핸드폰 시계가 보인다. 날짜는 정확히 3일 전이다. 

“...지금 보시면 봉투 안에 탁아 된 자실장이 하나 있습니다. 일부러 탁아를 받기 위해 삼각김밥 하나를 넣어두었죠. 지금 꺼내볼까요?”

남자는 봉투 안이 보이도록 봉투를 뒤집었다. 봉투 안에는 예상대로 뜯겨진 삼각김밥과 그것을 먹고 있는 자실장이 보였다. 자실장의 팬티는 이미 실장석의 똥으로 빵빵해져 있었다. 한참을 고개를 파묻고 먹던 자실장은 남자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눈을 반달로 만들고 치프프프 웃기 시작했다. 자실장이 말하기 시작하자 자막으로 자실장의 말이 번역되어 나온다. 남자의 영상이 인기인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섬세함 때문이지.

<치프프프프… 노예가 준 공물이 별로였는테치! 더 맛나맛나한 스시와 스테이크를 가져다 바치는테치!>
“예상대로 분충이군요. 어떻게 훈육을 하는 게 좋을까요?”
<테챠아아아아!!! 닌겐노예주제에 와타시에게 무슨 무례인테챠!!>

남자는 손가락 끝으로 살짝 자실장을 들고, 매직을 꺼내 이마에 작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기분나쁜 느낌인지 자실장은 마구 발광하지만 남자는 머리를 붙잡고 화면 가득 자실장의 얼굴을 보인다. 

“혹시라도 몰래 바꿔채는 거 아니냐는 분이 가끔 보여서 말이죠. 이 화면 캡쳐하시고 3일 뒤 자실장 얼굴도 크게 보여드릴테니 한번 비교해보세요.”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에 남자는 자실장을 준비한 수조에 가볍게 던져넣고 뚜껑을 닿는다. 수조에 던져진 자실장은 뒹굴거리며 정신을 못차린다. 남자는 수조를 들고 베란다에 가져다 놓는다. 영상이 전환되고 수조를 꺼내오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자, 3일이 지났군요. 지금쯤이면 굶어서 힘도 없을 것입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핀셋으로 자실장의 머리를 잡고 들어올렸다. 힘없이 딸려온 자실장의 팔다리는 빼쩍 말라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남자는 화면 가까이에 자실장의 머리를 들어댔다. 3일 전에 매직으로 그린 동그라미가 있었다.

“의심하시는 분들을 위해 다시 보여드립니다. 한번 확인해보시면 되겠군요.”
<테에에에에… 또...똥닌겐…>
“그럼 이제 훈육을 시작해볼까요. 우선 그 전에 조금 씻겨놓죠. 저도 실장석 똥은 만지기 싫으니깐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자실장을 싱크대에 데려갔다. 남자는 싱크대 안에 던지듯 자실장을 내려놓고 물을 틀었다. 세차게 쏟아지는 물에 자실장은 연신 허우적대며 도망다녔지만 남자는 호스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자실장에게 물을 쏘아댈 뿐이었다. 이윽고 남자는 물을 끄고 자실장을 꺼냈다. 다시 거실로 보이는 곳에 데려간 남자는 탁자 위에 자실장을 내려놓았다. 이제 훈육의 시작인걸까.

“자실장, 내 말이 들리나?”
<테...테챠아아아아!!! 똥닌겐!! 이 무슨 폭거인테챠!!! 이 무례는 독라달마로도 용서할 수 없는테챠!!!>
-쌔액! 챡!
<텟챠아아!!! 아픈테챠!! 똥->
-챡!
<챠아아아!!!>
-챡!
“일단은 실장채를 이용해서 자실장을 두들겨줍니다. 이런 실장채로는 자실장도 크게 다치지 않으니깐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자는 높낮이 없는 말투로 조근조근 말하며 손을 휘둘렀다. 이 남자는 이럴 때가 제일 무섭단 말이지. 나는 과자를 한입 물어 우물우물 씹으며 영상에 집중했다. 2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남자는 조심스럽게 실장채를 내려놓았다. 웅크린 채 몸을 말고 부들부들 떨던 자실장은 고통이 사라지니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눈 가득 적록의 눈물이 고여있는 것을 보니 꽤나 아팠는 모양이다.

“이제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나?”
<그...그런테치…>
“좋아. 나는 너를 사육실장으로 만들어주려고 한다.”
<테텟?! 와타시가 사육실장인테치?! 신나는테치! 즐거운테치! 콘페이토가 가득가득한테치~ 스시와 스테이크를 마음껏 먹는테치!>
-차악!

자실장은 3일이나 굶었음에도 사육실장이라는 말에 신이 났는데 온몸을 흔들며 기뻐했다. 그런 자실장의 옆을 남자가 실장채로 후려친다. 이내 얼음이 된 자실장. 남자는 실장채를 자실장 코 앞에서 흔들어댔다.

“사육실장으로 만들어준다고 했지 사육실장이라고는 안했다.”
<테...텟…>
“사육실장이 되려면 힘들고 괴로울거다. 스스로 슬픈 일을 당하고 싶을 정도일거다. 그래도 되고 싶나?”
<텟… 그...그런테치! 사육실장이 되면 좋은테치!>
“좋아. 배고프지 않나?”
<그런테치! 어서 우마우마한 스테이->
-차악!
<텟챠아아!!>

스테이크라는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실장채로 자실장을 내려친다. 자실장은 엉겹걸에 팔로 실장채를 막았지만 자실장의 약하디 약한, 그리고 3일이나 못먹어서 말라 비틀어진 팔은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자실장이 뜯어진 팔을 잡고 비명을 지르건 말건, 남자는 실장채로 자실장을 후려치며 설명을 이어갔다.

“욕구라는 건 정말 어쩔 수 없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죠.”
-차악!
<텟챠아아!!>
“배고프면 먹어야하고, 졸리면 자야죠. 용변이 마려우면 봐야하구요.”
-챠악!
<챠아아아아!!!>
“이런 걸 교정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하죠. 이런 건 교정하는 게 아닙니다. 교정하는 건…”
-챠악!
<테챠아아아아!!! 아픈테챠!!>
“욕망이죠.”

남자는 실장채를 내려놓고 다시 자실장에게 물었다. 

“배가 고프지 않니?”
<그...그런테치…>
“무엇이 먹고 싶지?”
<테...텟...>

자실장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다. 눈을 뒤룩뒤룩 굴리며 남자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나는 감탄했다. 

“야… 편집 잘했네.”

나는 콜라를 마시며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눈을 굴리던 자실장은 남자를 슬쩍 바라보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코...콘페이토인테->
-챠악!
<테챠아아아!!!>

남자는 망설임없이 실장채를 휘둘렀다. 자실장은 다시 몸을 움츠리며 비명을 질렀다. 짧은 체벌이 끝난 후 남자는 실장채를 내려놓고 다시 자실장에게 물어보았다.

“무엇이 먹고 싶니?”
<아...아무거나 주는테치…>
“그래. 알았어.”

남자는 그제서야 꺼내놓은 실장푸드 몇 알을 내려놓는다. 자실장은 자기 앞에 놓인 실장푸드를 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자와 실장푸드를 번갈아가면서 보았다. 남자가 아무말이 없자 슬금슬금 푸드를 먹기 시작했다. 남은 한 팔로 어떻게든 고정시켜놓고 먹어댄다. 그런 자실장을 클로즈업하면서 남자는 설명을 이어간다.

“먹고싶다. 는 제어가 되지 않는 욕구입니다. 하지만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는 욕망이죠.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건 이 욕망인겁니다. 욕망을 죽이고 욕구만 발현시키는 거. 그것이 실장석 훈육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잠시만요.”

남자가 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린다.

“아, 죄송합니다. 목이 말라서... 다시 돌아와서, 실장석은 그냥 애완동물인겁니다. 개한테 꼭 감사인사를 받나요? 고양이는요? 다른 동물들에게는 안받는데 왜 실장석에게는 감사인사를 받아야 하나요? 포기하세요. 얘네들은 말이 링갈로 번역될 뿐이지. 그냥 동물입니다.”

클로즈업된 자실장이 보인다. 게걸스럽게 푸드를 입에 집어넣는 자실장이 보인다. 과연, 이 사람은 그냥 실장석을 이렇게 보고 있는거구나. 

“말을 한다고 다 통하는 건 아닙니다. 이 녀석들과 말이 통한다고 얘네에게서 사람과 같은 이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포기하세요. 이녀석들은 동물이니깐요. 다만 다른 동물보다 생각을 더 잘 알 수 있으니까 훈육도, 기르기도 쉬운 거 뿐이죠.”

자실장은 남은 실장푸드를 입에 털어넣었다. 빵빵해진 배와 표정을 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남자는 그런 자실장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남자가 아까까지 자신을 때린 것을 잊어버렸는지 자실장은 기분좋다는 표정을 짓는다.

<테츄융~>
“잘 먹었니?”
<그런테츄웅->
“이것만 하더라도 한편이군요. 다음편에서는 이제 목욕과 배변 교육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죠.”

남자의 말이 끝나고 화면이 점점 어두워졌다. 유튜브에서는 다음편을 자동재생하겠다는 화면이 보인다. 일단은 정지를 눌러놓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아까 묶어놓은 봉투를 베란다에 가져다 놓았다. 구멍은 조금씩 뚫어 놓았으니 죽진 않겠지.

“삼일… 삼일은 좀 짧은 거 같으니까 사일정도 냅둘까?”

봉투가 부스럭거리고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베란다 문을 닫는다. 실장채, 저건 얼마정도 하려나? 나는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몸을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세레브




<똥닌겐!!! 세레브한 와타시를 얼른 모시지 않고 뭐하는데챠!!!!!!>

A는 항상 궁금했다. 정말 실장석들은 세레브한 것에 목숨을 거는지. 그래서 여러가지 준비를 마치고 아침일찍 공원으로 향했다. 역시나 사람을 보자마자 달려드는 실장석, 예상대로 세레브함을 외친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A가 바라던 것이다.

“네가 그렇게 세레브하냐?”
<데프프프프… 보면 모르겠는데스? 멍청한 똥닌겐인데스.>
“정말 네가 세레브하다면, 사육실장으로 삼아줄 수도 있을텐데.”
<테에에에에엣!!! 얼른 데려가지 않고 잔말이 많은데스!!!>
“좋아. 그럼 널 한번 데려가보도록하지.”

A는 조심스럽게 들실장을 집었다. 냄새가 너무나도 고약했기 때문이다. 들실장은 초승달과 같은 눈으로 데프프프 웃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역겨웠지만 이날을 위해 준비한 것들을 생각하며 참는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들실장을 들고 온 A.

“자, 일단 밥 먹기 전에 씻는게 세레브한 것이겠지?”
<데프프프. 얼른 아와아와한 거품목욕을 준비하는데스->

A는 따뜻한 물을 틀고 들실장을 씻기기 시작했다. 공원생활동안 제대로 씻지도 않았는지 물을 뿌리자마자 땟국물이 줄줄이 흘러나왔지만 A는 고무장갑을 끼고 열심히 씻긴다. 옷도 일단 빨아서 드라이기로 잘 말려둔다. 그렇게 열심히 씻겨놓으니 이제 좀 냄새가 안 나는 거 같다. 

<데프프프… 세레브한 목욕이었는데스. 노예닌겐, 이제 스테이크와 스시를 바치는데스…>
“좋아. 잠깐 여기 앉아서 기다려.”

A는 스테이크를 굽기 시작한다. 스테이크 굽는 냄새에 들실장은 마구 발광하기 시작한다. 

<테에에에에에!!! 얼른 스테이크를 바치…>
“세레브하지 못하네.”
<데?>
“세레브한 실장석은 가만히 앉아서 나올때까지 기다리는거야. 그게 세레브함이지.”
<데... 데스. 알고있는데스. 와타시만큼 세레브한 사육실장이 그것을 모를리가 없는데스웅~>

들실장은 갑자기 자세를 잡으면서 조용해진다. A는 속으로 웃음을 참으면서 스테이크를 마저 굽는다. 그리고 접시에 스테이크를 올려서 들실장에게 건네준다.

“자, 스테이크다.”
<테에!!에에에에…..에에에에?>

A가 내놓은 것은 확실히 호주산 소고기 스테이크가 맞았다. 단지 크기가 USB 메모리의 반정도의 크기일뿐. 스테이크의 크기에 화가 난 들실장은 소리치려고 한다.

<테에에에에!!!! 똥노예닌겐!!! 이게 뭐인데….>
“왜? 세레브한 사람들이나 실장석은 그렇게 먹는데?”
<테?>
“그렇게 조금씩만 먹는 게 세레브의 상징이지. 봐봐. 나도 세레브하니까 딱 그정도만 먹잖아? 아니면 너 설마 세레브하지 않은거야? 날 속인거야?”

세레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뜨끔한 들실장. 재빨리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데… 세레브한 와타시가 모를 리가 없는데스. 노예닌겐을 시험해본데스. 노예닌겐주제에 세레브함도 알고 제법인데스.>
“그렇지? 그럼 먹자. 물론 그 옆에 있는 나이프랑 포크를 쓰는 세레브함도 잊지 않았을거야.”

그러고서 조용히 나이프로 고기를 써는 A. 들실장은 그런 A를 흘금흘금 쳐다보면 나이프를 든다. 한입거리도 안되는 고기를 나이프질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이 세레브한 것이라는 걸 들은 순간 나이프질을 포기할 수 없는 들실장. 물론 이것 또한 A의 장난인 것이다. A는 시침을 뚝 뗀 채로 식사를 마친다. 

“어라? 안먹어?”
<데… 잠깐 기다리는데….>
“과연, 진짜 세레브한 실장석은 눈으로만 먹는다는 것이 사실이었구나. 너 진짜 세레브하구나? 그럼 접시는 이만 치울게!”
<테에에에에에에!!!!>

A는 잽싸게 접시를 치워 음식물 쓰레기통에 던진다. 들실장은 맛도 못본 스테이크가 사라진 것에 대해 분노를 표할려고 하지만,

“너 진짜 세레브하다.”

라는 말에 제대로 화조차 내지 못했다. 이것이 정말 세레브함인가? 들실장은 이제 슬슬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A가 준비한 분홍색 드레스를 본 순간 다시 그 생각은 날라간다.

<데스! 똥닌겐 보는 눈이 있는데스! 그 옷이야말로 세레브한 와타시에게 어울리는 옷인데스!>
“오, 그래? 그럼 일단 이것부터 하자.”
<데?>

A가 또 준비한 것은 코르셋이었다. 물론 들실장은 그런 코르셋을 처음본다. 애초에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

“이것이야말로 이 세레브한 실장 드레스를 입는데 필수요소지. 당연히 세레브한 실장석인 너는 알고 있었지?”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 것이다. A는 조심스럽게 코르셋을 입히고는 끈을 쫙 당겼다.

<테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실제로 코르셋을 입다가 갈비뼈가 부러진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라는 이야기처럼, 이 들실장도 갈비뼈가 부러졌다. 숨막히는 고통에 소리를 지르는 들실장. 
<테에에에에에!!! 얼른 벗기는데샤!!!! 죽는데샤!!!!>
“왜? 이걸 입어야 세레브한 실장 드레스를 입을 수 있다고.”
<테!!!! 죽는데…. 데?>
“자, 이제 입어보자.”

A는 잽싸게 실장 드레스를 입힌다. 과연 실장 드레스답게 반짝반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입은 들실장은 코르셋 때문에 숨이 막혀 그 반짝반짝을 감상할 여유가 없다. 그리고 재빨리 실장화를 벗기고 실장 하이힐을 신긴다. 

“너 진짜 세레브하다. 한번 걸어볼까?”

A는 그렇게 말하며 들실장의 등을 떠민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버틸 수나 있을 거 같은데 ,익숙치 않은 하이힐의 충격이 척추를 때리면서 부리진 갈비뼈의 통증을 배가시킨다. 들실장은 죽을 기분을 떠나서 진짜 죽을 거 같다.

<데에에에에… 죽을 거 같은데스.>
“원래 세레브하다는 것은 그런거야. 알고 있잖아?”

A는 끝까지 시침을 뚝 뗀다. 그리고 걸음걸이 하나하나를 지도하기 시작한다. 턱은 치켜들 것. 척추를 곧게 세울 것. 발꿈치부터 걷지 말 것. 물론 그것을 이루는 마법의 단어는 세레브이다. 그런 정자세로 걸어본 역사가 없는 들실장으로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마다 

“너 정말 세레브하다!”

라는 말을 A가 하는 바람에 다시 욕이 목구멍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걸음연습을 시키고 난 후, 계획대로 공원으로 향한다. 물론 이 때는 조심히 들고 간다. 들실장은 또 금세 우쭐해진다. 그렇게 공원에 도착한 A와 들실장. A는 다시 들실장을 내려놓고 걷게 시킨다. 자세가 흐트러질 때마다 

“너 걸음걸이가 세레브하지 못하다.”

라는 말을 던지는 A. 들실장은 죽을 거 같은 고통을 참으면서 워킹을 계속한다. 주위에는 점점 들실장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제 마지막 단계다. 

“자, 그럼 너의 세레브함을 저 미천한 들실장들에게 보여주자!”
<데프프프프. 와타시의 세레브함을 보면 다들 파킨하는데스!>

들실장은 자신있게 워킹을 시작한다. 숨 쉬기가 힘들고, 척추에 충격이 쿵쿵 와닫는 고통이 들실장의 얼굴을 굳게 만들지만 애써 웃으면서 공원에 모여있는 들실장들 사이로 걸어간다. 들실장들의 멍청한 표정을 보니 고통도 참을만하다. 들실장은 데프프 웃으며 계속 나아간다. A는 그 모습을 촬영하면서 슬쩍 숨는다. 

들실장들의 눈에는 시기와 질투가 넘실댄다. 그 시선을 알아챈 세레브실장은 무심코 피식 비웃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들실장들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세레브실장은 도망치려고 하지만 하이힐때문에 뛰지 못한다. 들실장이 태클을 한다. 이미 부러진 갈비뼈에 또다시 충격이 온다. 세레브실장은 비명을 지르면서 똥닌겐을 찾는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똥닌겐은 보이지 않는다. 세레브실장은 마구 뜯기기 시작한다. 드레스가 찢어진다. 하이힐이 벗겨진다. 안쪽의 코르셋을 탐하는 들실장도 있지만 이건 사람 손으로 조인 것이라 실장석의 힘으로는 벗겨지지 않는다. 코르셋을 벗기지 못해 화가난 들실장은 마구 밟기 시작한다. 세레브실장은 고통속에서 몸부림친다.

이 모습을 즐겁게 A가 촬영한다. 독라가 된 세레브실장을 가지고 가려는 들실장들이 보인다. 운치굴노예로 쓰려나보다.  A는 캠코더를 들고 세레브실장에게로 향한다. 들실장들은 재빨리 도망가고 세레브실장은 뒤늦게 나타난 A에게 화를 낸다.

<테에에에에에에!!! 쿨러…. 노예닌겐!!! 왜 이제서야 나타난데스!!!!>
“아, 그럴 수도 있지. 세레브하지 못하게 소리를 왜 질러?”
<미친데스?! 여기까지 와서 세레브인데스?!>

A는 크게 웃으며 답했다. 

“나는 너의 세레브함을 보고 사육실장으로 선택한거였잖아? 그럼 끝까지 세레브했어야지.”

A는 녹화를 종료하고 조용히 자리를 뜬다.

<테에에에에에!! 똥닌겐!!! 와타시를 데려가는데!!!!>

뒤에서 세레브실장의 비명이 들리지만. 알 게 뭔가. 이제 이 영상들을 편집해서 유투브에 올리면 된다. 그 전에 집에 남겨놓은 스테이크나 먹어야지. A는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한다. 












두루마리 쓰레기장

 


-삐익! -삐익! -삐익

시끄럽게 울려대는 부저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맞추어 데스우- 데스-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들 힘에 겨운듯, 얇은 신음을 내밷는다. 그것은 짝귀도 매한가지였다. 오른쪽 귀가 날라가서 다들 짝귀라고 부르는 통에 결국 자기 자신도 짝귀라는 이름을 받아버린 들실장이었다. 짝귀는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그 옆에서는 자실장들이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짝귀는 조심스럽게 뚜껑에 물을 따라 한 모금을 마셨다. 밤새 말랐던 자신의 몸에 활기가 돌아오는 느낌을 느꼈다. 그 옆 그릇에 조심스럽게 물을 가득 채워놓은      짝귀는 몸을 이리저리 돌려대며 허리를 풀어주었다. 

<테에… 마마?>
<데… 장녀, 깼는데스까. 미안한데스우- 더 자는데스.>
<아닌테치… 마마 나가는 거 보는테치.>
<데스우… 참으로 착한 자인데스. 장녀는 와타시의 보물인데스.>

짝귀는 자신을 배웅하려는 장녀를 뭉클하게 쳐다보다가 꼬옥 안아준다. 장녀는 그런 짝귀의 품에 안겨 기분좋은듯 테프프프프-하고 웃는다. 짝귀는 품에서 장녀를 떼놓은 후에 장녀에게 말했다. 와타시가 없으면 장녀가 다른 이모토챠들을 챙겨야하는데스. 아침에 일어나면 저기 떠 놓은 물을 마시고 상자에서 푸드를 두개씩 꺼내먹는데스. 해씨가 높이높이 떠있으면 푸드를 하나씩 먹는데스. 하우스에서 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는데스. 장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짝귀의 말을 들었다. 매일같이 하는 말이지만 매일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실장석이다. 짝귀는 장녀를 다시한번 안아준 뒤 집을 나섰다. 끼이익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짝귀는 문을 닫고 돌로 단단하게 괴어둔다. 혹시라도 자들이 밖으로 나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단단하게 고인 돌을 확인한 후 짝귀는 봉투를 들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아갔다. 자기가 가는 곳으로 실장석들이 하나하나 모여들었다. 익숙한 얼굴도 몇몇 보인다. 서로 꾸벅거리며 인사를 나눈다. 누군가 짝귀의 등을 툭하고 친다. 짝귀가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다. 

<삐삐상인데스.>
<그런데스. 오마에도 좋은 아침인데스.>
<데에… 정말 좋은 아침인데스까.>
<데프프프… 닌겐들은 항상 좋은 아침이란 인사를 해야하는데스. 사육실장으로서 당연한 말인데스.>
<데스우… 알겠는데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삐삐상도 좋은 아침인데스.>
<데프프프… 오늘도 같이 하지 않겠는데스? 오마에랑 하는 게 손발이 잘 맞는데스.>
<그러는데스. 와타시도...>
“야- 똥벌레들! 빨리빨리 안움직여!”
-빠앙!!
<데갸갸갸갸갸!!>
<귀 터지는데스우!!!>

아는 자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실장석들에게 사이렌을 울리며 외치는 청색 작업복의 남자가 있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사이렌의 소리에 귀를 틀어막으며 걸음을 서두르는 짝귀와 삐삐였다. 그렇게 달린 실장석들에게 보인 것은 거대한 하얀 봉투의 산이었다. 남자는 확성기로 소리를 질렀다.

“뭘 보고만 있어! 빨리 작업 시작해라! 똥벌레들!!”
<데- 데스우!>
<어서 시작하는데스!>
<데갸갸갸갸!>

녹색의 파도가 흰색의 산을 부수었다. 흰색의 산은 초록색 파도에 휩쓸려 점점 깎여나갔다. 초록색 파도 속에 있던 짝귀와 삐삐도 그 중 하나였다. 재빠르게 봉투 하나를 둘이 들고 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짝귀는 주변의 돌을 이용해 봉투를 주욱 찢었다. 삐삐는 봉투를 뒤집어 쓰레기를 쏟아냈다. 짝귀와 삐삐는 눈에 불을 켜고 쓰레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투명한 플라스틱 조각이 보였다. 짝귀는 봉투에 그것을 담는다. 주황색 병뚜껑이 보였다. 삐삐가 주워 봉투에 담는다. 

실장석은 노동에 적합하지 않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해산물을 캐내게 시키려고 해도 힘이 너무 없다. 논에 피를 뽑게 하려고 해도 벼와 피를 구별하지 못한다. 가사노동을 시킬거면 차라리 무선청소기가 낫다. 하나하나 밀려나던 실장석이 구원받은 곳은 쓰레기장이었다. 모든 쓰레기들이 모이는 이곳, 여기서 실장석들이 하는 일은 다양했다. 짝귀가 일하는 그 곳은 일반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이었다. 일반쓰레기는 다 태워버린다. 하지만 플라스틱이라던가 비닐등을 소각로에 넣으면 다이옥신이 생긴다. 이를 막으려면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다 걷어내야 하지만 사람에게 맡기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결국 일이 맡겨진 것은 실장석이었다.

일반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은 제일 단순한 일이었다. “단단한 쓰레기랑 봉투랑 같은 비닐은 전부 뺄 것.” 실장석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 실장석이 인간에게 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실장석들은 쓸모없는 똥벌레에서 그나마 쓸모있는 똥벌레가 되었다. 

짝귀와 삐삐는 바삐 손을 놀리며 쓰레기를 정리해담았다.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를 가져와 봉투를 깠다. 쓰레기를 정리하던 삐삐는 문득 생각났다는듯 짝귀에게 말을 걸었다.

<짝귀상, 들은데스?>
<무엇을 말인데스.>
<여기서 일을 잘하는 자는 더 좋은 곳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스.>
<데에… 그런데스까.>
<더 많은 푸드와 더 따뜻한 집이라고 했는데스.>
<데에…>
<데프프프… 거기로 가면 와타시의 자를 더 잘 키울 수 있을 것인데스. 와타시의 자처럼 귀여운 자들은 좋은 것을 먹어야…>
<데샤아아아아!!! 못해먹겠는데스!!! 고귀한 와타시가 할 일이 아닌데스!!! 똥닌겐은 어서 나오는데샤아아!!!>

쓰레기장은 적막감에 휩쓸렸다. 소리를 지른 실장석은 씩씩거리다가 자신만을 바라보는 다른 실장석들을 보며 움찔했다. 자신을 바라보면 표정은 한결같았다. 못볼 것을 봤다는 표정. 실장석은 발끈하여 외쳤다. 

<무...뭘보는데샤!! 어서 똥닌겐은 앞으로 나오는데샤!!!>
“왜 작업을 안해. 똥벌레새끼들아.”

작업복의 남자는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실장석은 남자를 보며 씩씩댔다. 남자를 향해 삿대질을 한다. 남자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실장석을 바라보았다. 

<똥닌겐! 어서 와타시를 모셔가는데샤!! 와타시는 여기 있을만한 자가 아닌데스!!>
“흐음… 간만인가.”
<뭘 보고만 있는덹?!>

한참 열변을 토하던 실장석의 배에 남자의 워커가 박혔다. 실장석은 5m를 날라가다가 떨어져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다른 들실장에 부딛혀 더 이상 굴러가지는 않았지만, 부딛친 다른 들실장은 화들짝 놀라며 굴러온 실장석에게서 떨어진다. 남자가 저벅저벅 걸어가는 소리가 실장석들 사이에 선명하게 울렸다. 초록색 바다가 남자가 갈 길을 가로질러준다. 남자의 목적지는 그 실장석이 있는 곳이었다. 콜록거리던 실장석은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해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데...데극… 오...오마에… 이런 짓...이런 짓을 하고서도…>
“미안하지만 나 니가 하는 말 하나도 모르거든?”
<데...데갸아아악!!>

남자는 손에 든 몽둥이로 실장석을 후려쳤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속은 텅텅 빈 몽둥이였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너무 패는 맛이 없어 인기가 없었지만 끝부분에 무게추를 달아 보강을 했던 것이 먹혀 학대파들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몽둥이였다. 사람을 때리면 살짝 아픈 정도였지만 실장석에게는 죽을만큼 아픈, 하지만 죽지는 않을 아픔을 선사해주었던 것이다. 지금 맞고 있는 이 실장석도 그렇게 남자의 몽둥이찜질에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데...데스우!!! 잘못했는데스!!!>
<다시는 안그러는데스!! 용서해주는데스!!>
<미안한데스!!! 죄송한데스!! 닌겐상!!>
<닌겐사마!!!>

넓은 쓰레기장에 울리는 것은 남자의 몽둥이가 실장석을 때리는 소리, 그리고 맞는 실장석의 비명뿐이었다. 한참을 두들기던 남자는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몽둥이를 허리춤에 다시 끼워넣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마대자루를 꺼내 실장석을 넣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남자는 주위에 있던 애꿎은 실장석을 차며 소리를 질렀다.

“뭐하고 있어!! 어서 일하지 않고!!”
<데갸악!?>
<데...데스우!!>
<일하는데스!!>
<어서 끝내는데스!!>

실장석들은 허둥지둥 자신들이 뒤적거리던 쓰레기더미로 달려들었다. 짝귀와 삐삐도 머리를 쳐박고 얌전히 쓰레기를 분류할 뿐이었다. 한참동안 쓰레기장에서는 쓰레기를 뒤적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다 분류한 쓰레기들은 파여진 구멍에 잘 넣어놓는다. 그러면 닌겐들이 무시무시한 노란색의 팔로 쓰레기들을 들어서 나를 것이다. 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에야 흰색의 산이 정리된다. 실장석들은 각자의 봉투에 자신이 분류한, 태우면 안되는 쓰레기들을 담아 남자의 앞에 차례대로 줄을 서있다. 짝귀는 살짝 무거워진 자신의 봉투를 흐믓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삐삐도 매한가지였다. 

<데프프프… 이정도면 오늘도 충분할 거 같은데스.>
<그런데스. 자도 배불리 먹고 보존식도 충분한데스.>
<보존식? 오마에 그런 것도 하는데스?>
<당연한 거 아닌데스. 모아도 부족한 것이 식량인데스.>
<데퍄퍄퍄퍄퍄!!! 매일 일하면 이렇게 푸드가 나오는데 무엇을 걱정하는데스?>
<와타시는 와타시의 방식이 있는데스.>

짝귀는 고집스럽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삐삐는 멋적은듯 자신의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짝귀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한참을 지나 짝귀와 삐삐의 차례가 되었다. 남자의 앞에 모아온 재활용 쓰레기들을 부어 놓고 빈 봉투를 남자 앞에 내민다. 하지만 남자는 꿈쩍하지 않고 모아놓은 쓰레기만 볼 뿐이었다. 잠시 뒤 남자는 말했다. 

“야. 거기 둘.”
<데스?>
<무슨 일인데스?>
“끝날 때까지 남아라. 말 못알아들으니까 구석에 처박혀 있어.”
<데에… 무슨 일인데스.>
<와타시도 모르는데스…>

짝귀와 삐삐는 남자가 가리킨 구석에 들어가 불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쑥덕댔다. 한참이 지나 모든 실장석이 다 간 뒤에 남자는 짝귀야 삐삐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한 뒤 어디론가 향했다. 남자의 뒤를 따라 헐레벌떡 쫒아간 둘은 맞이한 곳은 남자의 사무실이었다. 남자는 의자에 앉아 검은색 네모난 것을 들었다. 몇번을 툭툭 치고 흔들다가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짝귀와 삐삐를 향해 말을 건다.

“내 말이 들리나.”
<드...들리는데스.>
<잘 들리는데스.>
“잘 듣고 내가 지적하는 놈부터 천천히 얘기해라.”

남자는 말을 시작했다. 너희는 꽤 잘하니까 선택권을 주겠다. 여기 내 밑에서 일하지만 관리실장이 되어서 쓰레기 분리하는 녀석들을 감시하는 것과 재활용 파트로 넘어가서 재활용 분리 일을 하는 것. 둘 다 여기보다는 더 나은 대우를 받지만 재활용쪽은 머리가 좋아야하고 관리실장은 다른 실장석의 미움을 받아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 

“자, 어떤 걸 선택할거냐.”
<데… 지금 바로 선택해야하는데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데에… 그럼 와타시는 여기 남아서 관리실장을 하는데스.>
<삐삐상…>
<쓰레기를 뒤지는 건 이제 싫은데스! 기회가 왔으니 잡아야 하는데스!>
<데에… 와타시는 그럼 재활용으로 가는데스. 와타시는 다른 자들하고는 별로 엮이고 싶지 않은데스.>
“알았다. 내일 중으로 너희들은 새로운 곳으로 집을 옮긴다. 오늘 다 미리 챙겨두고 내일 가족이랑 다 나오도록.”
<알겠는데스.>
<데… 오늘 푸드는…>
“아, 맞다. 여기. 오늘은 특별히 가득 주도록 하지.”
<감사한데스!>
“그리고 표식을 그려야겠다. 나는 니네 구별 못해.”

남자는 팔에다가 매직으로 별을 그려주었다. 푸드를 받고 남자의 사무실에서 나와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둘이었다. 둘은 아무말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약속이나 한듯 둘은 똑같이 멈춰섰다. 짝귀와 삐삐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데스. 잘 지내는데스.>
<오마에도인데스.>

둘은 별 말없이 헤어졌다. 삐삐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짝귀는 간단한 인사 후 몸을 돌렸다. 딱히 말할 것도 없었다. 집을 향해 터덜터덜 돌아가는 짝귀는 그러했다. 어차피 실장석이다. 어딜가나 흔한 실장석. 여기서 못봐도 상관없고, 내일 당장에라도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실장석이다. 공원에서 살아온 짝귀에게 실장석은 그런 것이었다. 

문에 괴어놓은 돌을 치우고 문을 연다. 끼이익 소리가 나며 문이 열린다. 짝귀는 밝게 웃으며 집에 들어왔지만 풍겨오는 냄새에 얼굴이 찌푸려진다. 둘러 본 방은 똥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장녀는 구석에서 삼녀를 껴안고 달래고 있었고 방 한 가운데서는 차녀가 마구 뒹굴며 똥을 뿌려대고 있었다. 방바닥을 뒹굴던 차녀는 짝귀가 돌아오자마자 똥으로 엉망이 된 몸을 이끌고 달려온다. 

<마마- 보고싶었던테츙->
<...장녀. 무슨 일인데스?>
<테엥… 마마…>

짝귀는 그런 차녀의 머리를 밀어 자신의 몸에 닿지 않게 한 뒤 장녀에게 자초지종을 듣는다. 저녁때까지 마마가 오지 않자 장녀는 밥을 꺼내 나눠먹으려고 했다. 차녀가 밥을 더 먹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다. 장녀는 그런 차녀를 말려보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삼녀의 밥까지 뺏어먹은 차녀는 더 먹고 싶다고 난리를 부리다가 똥까지 뿌려 보존식과 물그릇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다. 짝귀는 장녀의 말을 들으며 엉망이 된 집안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데퓨…>
<텟… 미안한테치…>
<테엣! 마마! 봉투에 푸드가 가득한테치! 역시 와타시의 마마인테츄->
<그 더러운 손으로 봉투를 만지면 각오하는데스.>
<텟?!>

차녀는 푸드로 가득찬 봉투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짝귀는 그런 차녀를 저지한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마마의 말에 차녀는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장녀와 삼녀도 처음듣는 마마의 목소리에 놀라 짝귀를 바라보았다. 짝귀는 차녀에게 다가갔다.

<오마에는 뭐인데스? 마마가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얻어온 귀한 푸드에 운치를 뿌린데스?>
<텟… 테에…>
<방 안도 엉망인데스. 이걸 다 누가 치우는데스? 데스? 말 좀 해보는데스.>
<테에… 그...그러니까... 마마! 마마가 치워주는테치! 와타시는 아직 아가인텟ㅊ…>
<분충인데스. 와타시의 총구에서 나온 자가 분충이라니 용서가 안되는데스!>
<테...테챠아아아아!!!>

짝귀는 차녀에게 달려들었다. 차녀는 그런 짝귀에게서 도망치려 했지만 짝귀는 차녀를 잡고 옷을 벗겼다. 차녀는 옷을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지만 이내 옷이 벗겨지고 말았다. 실장복은 다른 곳에 요긴하게 쓸 수 있으니 곱게 빼앗았지만 차녀의 머리카락은 달랐다. 찌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피에서의 강한 고통이 차녀에게 느껴졌다. 차녀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테챠아아아!! 와타시의 머리카락!!! 와타시의 세레브한 머리카락이!!!>
<이젠 오마에는 와타시의 자가 아닌데스.>
<똥마마- 이런 무례를 와타시가 용서할 거 같은테치!!!>
<오마에가 용서 안하면 뭐 어쩔 것인데스. 어서 와타시의 집에서 꺼지기나 하는데스.>
<텟?! 테챠아아아!! 아직 와타시는 아가인테츄!! 밤에 나가면 죽는테챠아아아!!>

짝귀는 비명을 질러대는 차녀를 옆구리에 끼고 장녀와 삼녀에게 말했다.

<장녀와 삼녀는 잠시 기다리면서 집을 좀 치우는데스. 와타시는 이 분충을 버리고 오는데스.>
<텟치… 알겠는테치!>
<마마 무서운테치…>
<그런 말 하면 안되는테치. 마마는 와타시타치를 아끼는테치. 못된 건 저 분충인테치.>
<테...테챠아아!! 누가 분충인테치!! 오마에들이 분->
<분충은 이제 닥치는데스.> 

자신에게 겁을 먹은 삼녀를 늠름하게 달래주는 장녀를 사랑스럽게 쳐다본 짝귀는 페트병과 차녀를 들고 집을 나섰다. 한참을 걸어 수돗가에 도착한 짝귀는 차녀를 버려두고 물을 뜨기 시작했다. 물을 다 뜬 뒤에는 차녀를 버려두고 집으로 향했다. 차녀가 뒤에서 자신을 쫒아오면서 뭐라 말하자 짝귀는 차녀를 돌아보았다. 차녀는 짝귀가 다시 자기를 보자 오른손을 입가에 가져대며 테츙- 했다. 

<테프프프… 똥마마가 다시 와타시에게 메로메로->
<한 마디 해주는데스. 독라가 그런 짓을 하면 오마에는 못살아남는데스. 와타시는 자비로우니 다리 하나로 봐주는데스.>
<텟- 테엣?! 아...안되는테치! 그러면 안되는테-테챠아아아!!!!>

차녀의 다리 하나를 뽑아버리고 아무렇게나 던진 짝귀는 그대로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차녀는 울부짖으며 짝귀를 쫒아가려 했지만 한쪽만 남은 다리로 성체를 쫒아간다는 것은 무리다. 그렇게 울부짖는 차녀를 뒤로하고 집에 온 짝귀. 자신이 치운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치워진 집을 보며 장녀와 삼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짝귀는 장녀와 삼녀를 한번씩 쓰다듬어주고는 푸드를 다섯개씩 나누어주었다. 장녀와 삼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장녀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짝귀를 바라보았다.

<마마…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되는테치?>
<물론인데스. 오늘은 특식을 받았는데스. 내일은 새 집으로 옮겨야하니 짐을 좀 줄일 필요도 있는데스. 많이 먹고 쑥쑥 크는데스.>
<테에… 마마 고마운테치!>
<마마가 최고인테츙->

장녀와 삼녀는 신나게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짝귀도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챙겨가야할 것들을 챙기는 짝귀다. 이제 내일이면 이 집에서도 떠나야한다. 짝귀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집안 곳곳을 둘러본다. 

<데에… 이제 자야할 시간인데스. 자들은 일찍 자는데스. 내일은 마마와 같이 일찍 일어나는데스.>
<알겠는테치! 안녕히 주무시는테치!>
<잘자는테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힘차게 살아갈 것이다. 짝귀는 그렇게 다짐하며 장녀와 삼녀의 이불을 덮어주고 자신도 잠에 빠졌다.

P.S.

<테...테엑… 또...똥마마!!!>
<데에… 뭐인데스?>
<텟치?>

미도리는 버려진 사육실장이었다. 자를 가졌다는 흔한 이유였다. 보건소에서 소각로와 여기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이다. 살아야한다. 어쨌든 살아야한다. 그래야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미도리는 기꺼이 쓰레기장행을 택했다. 그렇게 택한 첫날밤에 왠 독라분충이 찾아온 것이다. 미도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마에는 뭐인데스?>
<텟… 마마… 마마는 어디있는테치?>
<오마에의 마마를 왜 여기서 찾는데스? 여기는 와타시의 집이니 다른 곳으로 꺼지는데스!>

괜히 이상한 독라때문에 잠에서 깼다고 생각한 미도리는 화를 내며 문을 닫았다. 밖에서 시끌시끌하게 구는 녀석도 이내 지쳤는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미도리는 다시 잠을 청했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할테니 말이다.











저실장만 애호합니다 1~2 (완)




“하암…”

나는 쩍쩍 벌어지는 입을 간신히 닫으며 창고로 향했다. 나의 귀여운 애완저실장들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아침부터 꼬물거리는 녀석들을 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창고에 들어서니 판 위에서 열심히 꼬물거리는 녀석들이 보인다. 대충 20마리 정도 되려나. 다들 잘먹고 건강한 저실장들이다.

“안녕, 귀여운 저실장들.”
<안녕한레후!>
<주인사마인레후!>
<와타시 배고픈레후!>
“뭐? 아직 밥 안먹었어?”
<그런레후! 프니프니도 바라는레후!>
“이새끼들이…”

나는 이를 갈며 옆에 있는 작은 상자를 내려쳤다. 레헷 하는 소리와 함께 앞머리가 없는 엄지실장들이 뛰쳐나왔다. 엄지들은 나의 화난 모습을 보고 얼어붙은 모습이다. 

“이 개새끼들이… 내가 분명 아침에 일찍일찍 일어나서 우지들을 챙기라고 했어 안했어?”
<해...했는레찌! 와타시가 피곤해서 그런…>
“변명을 해?!”

나는 엄지 하나를 들어 쥐어 짰다. 레에에에- 거리던 녀석의 육편이 나머지 녀석들에게 후두두득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녀석들은 겁에 질린 나머지 팬티를 초록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빨리 가서 우지들 챙겨라. 죽고 싶지 않으면.”
<레찟! 알겠는레찌!>

엄지들은 그제서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실장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재빨리 프니프니부터 시작한다.

<느린레후! 똥엄지주제에 왜 이렇게 늦은레후!>
<레에… 미안한레찌! 와타시가 열심히 프니프니 해주는레찌!>
<레흣… 거기인레후! 좋은레후! 프니프니후!>

저실장은 프니프니를 받아 기분이 좋은 지 물똥을 싸댄다. 물론 치우는 것도 엄지들의 몫이다. 세 마리가 열심히 저실장들을 프니프니하고 있는 동안 나머지 두 마리는 저실장들이 먹을 것을 준비한다. 실장푸드에 물을 뿌리고 열심히 짓이기면 훌륭한 저실장용 먹이가 된다. 세 마리가 그럭저럭 할만한 일이었지만 좀 전 한마리가 죽은 것 때문에 두 마리가 힘겹게 하는 모습이다.

<레엑...레엑…>
<어서 젓는레찌! 서둘러야하는레찌!>

그렇게 만들어진 저실장용 먹이를 저실장들이 맛나게 먹는 것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그렇게 즐겁게 저실장들을 보고 있는데 엄지 한마리가 붕쯔거리는 것이 보인다. 불쾌하다.

“왜? 쓸데없는 소리면 죽인다.”
<아...아닌레찌! 저기 고치가 흔들리는레찌!>
“그래?”

엄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고치가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게 흔들리다가 점점 격렬해지더니 이내 고치가 깨졌다. 깨진 고치에서 나온 엄지는 붕쯔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손씨발씨가 다 자란레찌! 이제 와타시도 엄지인레찌!>
<치프프프프프…>
<레찌? 앞머리 없는 주제에 와타시를 비웃는레찌? 레쨔아아!!>

막 나온 엄지를 보며 엄지들이 비웃기 시작하자 막 나온 엄지는 당황하며 화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엄지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막 나온 엄지는 그것을 다른 엄지들보다 우위에 섰다고 생각하는지 다른 엄지들을 비웃으려 했지만 나는 망설임없이 엄지의 앞머리를 뽑아버렸다.

<레쨔아! 레...레…? 와타시의 앞머리가…?>
“교육시켜라.”
<알겠는레찌! 오마에! 이리 오는레찌!>
<레… 레....>

앞머리가 뽑힌 엄지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듯 앞머리만을 더듬을 뿐이었다. 그런 엄지를 다섯 마리의 엄지들이 린치하기 시작했다. 

<말이 말같지 않은레찌?>
<오라는 말이 안들리는레찌!>
<렛! 렛! 때리지마는레찌! 아픈레찌!>
<아프라고 때리는레찌!>
“그만, 그만 때리고 교육이나 시켜라.”

적당한 순간에 개입하여 엄지들을 멈추게 한다. 일시킬 엄지들을 구하는 것도 일이니까. 쉽게 죽이게 두어서는 안된다. 내 말이 끝나자 엄지들은 씩씩대며 린치를 중단한다. 두들겨 맞던 엄지는 나를 보며 말했다.

<레에에… 와타시 닌겐상에게 이쁨 받으려고 손씨발씨 얻은레찌… 그런데 왜 와타시를…>
“푸. 내가 좋아하는 건 저실장이지 엄지실장이 아니야. 니 대가리가 멋대로 굴러간 게 잘못이지.”

나의 말에 엄지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지가 울먹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 엄지를 향해 다른 엄지가 다가왔다. 

<오마에! 또 맞고 싶은레찌?! 어서 오는레찌!>
“그래. 어서 꺼져.”
<레에에에…>

울상인 엄지는 터덜터덜 선임 엄지를 쫒아갔다. 앞으로도 많은 구박을 받을 녀석이겠군. 나는 엄지들을 보며 기분이 안좋아진 것을 저실장을 지켜보며 풀어냈다.

“역시 저실장이 제일 귀여워.”
<프니프니후->


저실장 애호력을 충분히 채운 나는 밖으로 향했다. 마당 텃밭에는 여러 농작물이 심어져 있었다. 다 심심풀이로 먹는 것들이다. 방울토마토라든가, 오이라든가, 가지라든가. 나는 빨갛게 잘 익은 방울토마토 하나를 따먹었다. 달달한 게 올해도 괜찮은 것이다. 다만 잎이 조금씩 시드는 게 영양분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거 같다. 나는 텃밭 구석에 놓여져 있는 박스를 발로 찼다. 

“이 새끼들아. 일 똑바로 안해?”
<테에에엥…>

머리와 몸을 부여잡으며 나오는 자실장들이다. 하나같이 대머리다. 저실장을 돌보던 엄지실장들이 자실장이 되면 쳐박아 놓는 곳이다. 

“새끼들이 빠져가지고. 뒤지고 싶냐? 응?”
<아닌테찌! 잠깐 쉬고 있던테찌!>
<그런테찌!>
<일하는테찌!>

자실장들은 이리저리 굴러대며 일하는 척이라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재빨리 수돗가로 달려가는 녀석들과 운치굴로 달려가는 녀석들이 보인다. 운치굴에서는 멍하니 앉아있는 독라의 자실장들이 보였다. 

<오마에! 어서 운치를 퍼오는테찌!>
<텟?! 아...알겠는테찌!>

옷과 머리카락만으로 서열을 매길 수 있다는 것은 꽤나 편한 일이다. 그래도 옷이라도 있는 녀석은 옷도 없는 녀석을 마구 부려먹는다. 운치굴에 쳐박혀 있다는 것도 감점 요인이겠지. 운치굴 독라녀석들은 운치를 열심히 손으로 퍼다 자실장이 가져온 바가지에 담는다. 그 바가지를 곱게 올려주는 녀석들이다. 대머리 녀석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 바가지를 받는다.

<테에에에엥… 와타시도 물씨를 하고 싶은테찌!>
<닥치는테찌! 와타시도 안되는 걸 오마에가 뭘 하는테찌!>

그렇게 운치굴에서 퍼다 나른 운치들을 작물 밑에 조금씩 퍼다 넣는다. 실장석들의 소화효율은 심각하게 떨어지는 편이기 때문에 운치에 많은 영양분이 남아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같이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비료대용품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냄새 나서 싫다고 비료를 사서 쓰는 사람도 많다. 그렇게 운치를 넣으면 그 뒤로 물을 떠온 자실장들이 물을 준다. 계속 지켜본 바에 따르면 물을 나르는 쪽이 좀 더 안에서 서열이 높은 거 같다. 뭐 그래봐야 자실장들이지만.

“새끼들… 게으름 피면 밥 없을 줄 알아.”
<텟! 아닌테스! 와타시타치는 열심히 하는테스!>
“판단하는 건 나란다. 새끼들아. 그리고 너는 좀 큰 거 같다?”
<텟?! 아닌테스! 와타시는 자실장인테스!>
“개소리하지말고. 너는 이제 중실장이네. 이리 와라.”

중실장이 된 자실장의 뒷덜미을 붙잡고 구석의 울타리로 향한다. 나에게 붙잡힌 녀석은 눈물을 쏟아내며 나에게 뭐라하지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내가 보이니 울타리로 달려오는 몇마리의 독라 성체실장들이 보인다. 하나같이 초록색 눈깔이다. 그 사이로 녀석을 던져준다. 

“야! 신입이다!”
<텟?! 안되는테스! 와타시의 옷인테…>
<시끄러운데스!>
<어서 내놓는데스!>

초록색 눈깔의 성체실장들은 새로온 녀석의 옷을 뜯어냈다. 자기가 입어서 조금이라도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것이겠지만 여러마리가 달려들면 찢어지는 게 당연한 실장복이다. 산산조각이 난 실장복에 화가 난 녀석들은 새로 온 녀석을 밟기 시작한다. 녀석은 테에에엥하고 울며 몸을 움크린다.

휘휘 둘러보지만 오늘은 없는가보다싶어 가려는데 비명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울타리 저 너머에 있던 한 놈이 뒹굴고 있는 거 아닌가. 울타리를 타고 넘어 눈깔을 까보니 두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곧 출산이네. 나는 재빨리 대야에 물을 담아왔다.

<데힛… 데힛…>
“자, 어서 낳으라고.”
<아...안되는데스! 닌겐상이 있을 때 낳으면 안되는데스! 뎃!>

헛소리를 하지만 이미 출산이 임박한 녀석은 어쩔 수 없이 대야에 걸터앉는다. 총구가 벌어지고 비명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이윽고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는 저실장들이다. 

<텟! 와타시가 나온테찌!>
<마마! 세레브한 와타시가 나온테찌!>
<테츄웅? 닌겐상인테찌?>

대충 다 낳았나? 나는 대야를 들고 울타리를 넘어간다. 출산을 마친 녀석은 적록의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나를 쫒아온다.

<와타시의 자들을 내놓는데스! 와타시의 자인데스!>
“거 참 시끄럽네. 내꺼야.”
<웃기지 마는데샤!!!! 똥닌겐!!!>

나에게 저실장을 빼앗긴 녀석은 적록의 눈물을 흘리며 울타리를 쾅쾅 치지만 튼튼하게 지어진 울타리는 부서질 기미가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야에서 점막에 쌓인 자실장들을 꺼내어 지켜봤다. 

<테찌? 어서 벗겨주는테찌!>
<텟…! 굳어지는테찌! 안되는테찌!>
<손씨발씨가 사라지는테찌! 텟!>

자실장들은 다급하게 점막을 벗겨달라 소리치지만 나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다. 이윽고 단단하게 굳은 점막과 저실장들만 남았다. 저실장들은 흐느끼고 있었다.

<레… 왜 안벗겨준레후?>
<손씨발씨가 사라진레후!>
<레에에에에엥…>

왜 그럴까. 귀여운 저실장이 되었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저실장을 나의 애호소로 가져갔다. 애호소에는 귀여운 저실장들이 엄지들에게서 프니프니를 받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새로운 저실장 3마리를 내려놓았다. 엄지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세 마리 추가다. 잘 돌봐줘라. 안돌봐주면 알지?”
<레… 알겠는레찌…>
<레에에엥… 와타시 팔 빠지는레찌…>
<닥치는레찌!>

저실장들은 끊임없이 프니프니를 요구하고 끊임없이 먹어댄다. 일과가 먹고싸기가 전부인 삶이 저실장인 것이다. 하지만 귀여우니까 그정도쯤은 얼마든지 해줄 수가 있다.

<와타시도 손씨발씨가 나와서 얼른 닌겐상의 사육엄지가 되고싶은레후!>

한 저실장이 자신있게 외친다. 엄지들은 그 말을 듣고 피식거리다 나의 매서운 눈초리에 고개를 숙인다. 저실장의 배를 슬슬 긁으며 나는 말을 걸었다.

“나는 저실장이 더 귀여운데?”
<레후! 와타시가 엄지가 되면 더 귀여워지는레후!>
“흐음… 안그랬으면 좋겠어.”
<똥닌겐은 말이 많은레후!>

저실장은 자신의 말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지 나에게 화를 낸다. 하지만 사실인걸. 어쩔 수 없다는듯 어깨를 으쓱하고 엄지들에게 일러둔다.

“잘 키워. 혹시 몰라? 엄지가 될 수 있을지도.”
<레치치치치치… 알겠는레치!>

엄지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프니프니를 시작했다. 나도 이제 내 할 일을 해야겠지.











잡초

 


그날은 이상하게도 구름이 참 많이 꼈었다.

가을하늘은 공활하다고 어느 유명한 노래에도 나와 있지만, 마치 장마 때의 꾸물꾸물한 그것처럼 10월의 하늘은 잿빛투성이였다. 간혹 구름 사이로 삐져나오는 햇빛이 있긴 했지만, 그 실낱같은 빛조차 A공원에 닿지는 않았다.

"데샤앗! 데스데스데샷!"

"데스데스."

공원의 많은 들실장들은 여느 가을날과 다를 바 없이 그저 쓰레기장을 뒤지는 데에 열중이었다. 최근에 바싹 추워지기 시작한 날씨 때문인지, 이들은 유난히 더욱 먹이와 잡동사니들을 많이 찾기 위해 공원 안팍의 쓰레기들을 열심히 헤집고 다녔다.

공원 주위를 빼곡이 가린 회색 가림막 사이로, 하얀 옷을 입은 인간들이 서서히 공원 안으로 들어서는 것도 모른 채.




최근 A공원에 있는 들실장들은 자신들의 공원 주위에 뭔가 엄청나게 높은 회색 테두리가 서서히 둘러쳐지는 것을 목격했다.

일부 개체는 무언가 불길한 낌새를 눈치 채고, 공원을 떠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개체들의 소식이 지저귀는 바람소리처럼 들실장들 사이를 스쳐 흐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체들은 점점 공원을 둘러오는 회색 가림막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을 뿐더러 월동 준비에 바쁜 나머지 그런것 따위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오히려 한창 겨울나기 대비를 하기 위해 죽어라 일할 시기에 생뚱맞게 다른 공원으로 이주하는, 대부분 성공은 커녕 인간을 포함한 바깥의 위험에 죽어버리기 십상인 바보같은 짓을 하는 분충들을 비웃을 뿐이었다.

"데프프픗. 데스데스."

"데스데스데스우. 데프픗."

친실장 역시 이렇게 생각하는 대다수의 일반적인 개체들 중의 하나였다.

미친 짓 이였다. 친실장과 가장 가까운 골판지에 살고 있던 어느 분충도 다른 공원으로 도망치려했다. 어떤 이들은 계획적으로 무리를 지어 도망갔다고 했다. 회색 가림판이 공원을 뒤덮기 전에 어서 나가야 한다며 자들을 이끌고 서둘러 공원 밖으로 나가는 개체들도 있었다.

"데스..."

친실장은 공원 바깥세상의 무서움, 특히 인간의 무서움을 잘 안다. 비록 이곳 A공원 역시 하루에 들실장들이 몇 마리씩 죽어나가는 무서운 곳이지만, 공원 밖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 친실장은 잘 알고 있었다. 이곳이 오직, 자신들에게 이 세상에서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다. 다른 공원으로 이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결국 자신의 옆집에 살던 분충 일가도 공원 바로 앞의 도로를 건너지 못하고 차에 치어 일가가 몰살당하지 않았던가?

아침에 허둥지둥 대며 집을 나서는 것을 봤었는데 불과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먹이를 구하러 나가다 우연히 본 공원 밖 도로 위에 그 일가가 얼룩이 된 채 터져있던 것을 보지 않았던가?

그만큼 공원 밖은 위험하다. 공원에 낯선 것들이 조금 생겼다고 제 목숨을 걸고 공원을 탈출하다니.. 인간은 무섭다. 특히 공원 밖으로 나가는 순간, 인간은 더욱 무섭다. 실장석의 탈출 따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데스데스..”

어느덧 잔디를 넘어, 공원의 참나무 숲 깊숙한 곳으로 친실장은 들어가고 있었다.

그예리한 야생성은 저 공원 가장자리에 점점 늘어나고 있는 회색 벽이 뭔가 불길한 무엇이라며 친실장의 위석을 쿡쿡 찔러댔다. 아마 다른 개체들 역시 이러한 본능의 발현 때문에 자꾸 공원 밖을 나가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친실장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공원을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기를 버리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데스데스데스~.”

“테챠!”

“테츄테츄!”

“테에에에엥 테치!”

더군다나 친실장에게는 자가 있었다.

자신의 반도 안 되는 크기의 작은 네 마리의 자를 데리고, 지금 있는 아늑한 보금자리를 버리고 공원을 나간다. 성체 혼자 새로운 공원을 찾아 나가도 죽을 판에 어린 자들을 건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들은 무조건 죽을 것이고, 자신 역시 자들을 챙기느라 제대로 위험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쓸 때 없는 생각하지 말고 이 자들이 겨울을 무사히 넘기게 하기 위해 월동준비나 하자고 다짐하며 친실장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데스데스.”

“테츄웅?”

“테치테치.”

친실장의 곁으로 네 마리의 자가 다가왔다. 아니, 정확히는 친실장의 오른손에 걸려있는 무언가로 꽉꽉 찬 비닐봉지를 마구 만지러 왔다. 얼굴을 뿌- 하면서 네 자실장은 저들의 친실장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테츄! 테치테치!”

“데스데스. 데스데스우.”

“테햐아아아!”

보채지 말라는 듯이 친실장은 비닐봉지 안의 내용물을 쏟았다. 이상하게도 최근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봉투에는 거의 친실장의 키만한, 하얀 줄기에 파릇파릇한 잎이 커다랗게 달려있는 초록 잎사귀가 많이 담겨있었다.

아삭.

“테츄우우우웅!”

“테프프프픗. 테치테치.”

“테츄우~! 테츄우~!”

다행히 자들은 이 잎사귀를 매우 좋아했다. 아삭한 흰 줄기를 씹으면 터지는 시원한 즙과 질겅질겅하니 씹는 맛이 있는 파란 잎의 조화. 실장석 입맛에는 다소 짠 인간의 음식들을 배춧잎과 같이 먹으면 간이 딱 맞아 매우 맛이 있었다. 더군다나 친실장만한 이 야채는 쓰레기장에 온 들실장들이 모두 각자의 비닐봉지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최근 풍족하게 있었다. 친실장 일가는 김장철 덕분에 호사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데프프픗.”

자들이 기뻐하자 친실장 역시 조용히 웃었다. 독립한 직후 낳았던 자들은 여름의 작렬하는 태양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렸지만, 선선한 가을밤에 친실장은 자를 한 번 더 가졌다. 그 자들 중에서 살아남은 3마리. 건강하게 웃으며 잎사귀를 갉아대는 자들의 소리에 친실장은 생각했다.

이 자들은 여름의 자들처럼 쉽게 죽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겨울을 반드시 넘겨 보이겠다고.







친실장은 웃으며 자들을 자애롭게 쳐다보았다. 귀여운 네 자실장들은 밥을 많이 먹었는지 바닥에 운치를 싸대면서 기분 좋게 누워있었다. 그러더니 다들 하품을 쩌억 하고, 하나 둘씩 내일의 즐거움을 위해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한 삼녀가 이내 웃으면서 입을 헤 벌리고 코를 골기 시작한다.

“츄우....츄우....”

“보에~ 보에~ 보에~”

배춧잎 위에서 잠들어버린 꼬질꼬질한 자실장 4마리를 친실장은 정성껏 쓰다듬었다. 자들의 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혹여나 깨지 않을까 운치와 먼지로 더러워진 몸을 조심스레 핥아주었다.
장녀, 차녀, 삼녀, 사녀 순으로 구석구석 몸을 핥아 씻겨준 후, 이들을 골판지 한쪽으로 조심스레 옮겼다.

“테츄우....츄우...”

“츄우.....테츄우? 치프프프픗.”

“데스데스... 데스우..”

뭔가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이 웃으며 잠꼬대를 하는 장녀를 바라보며 친실장은 자리에 누웠다. 잔인했던 여름은 모조리 잃어버렸던 자들과 함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간다. 선선한 가을의 풍성함을 만끽하며, 내일도 겨울나기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친실장은 다짐했다.
보존식도 서서히 모아가고 있으며, 비닐봉지나 수건, 천 쪼가리 등 겨울나기 용품도 조금씩 가져오고 있다.

출산 시 낳았던 구더기 5마리도 집 밖의 운치구덩이에 잘 있다. 혹여나 자들이 빠질 경우를 대비하여 운치구덩이를 그다지 깊게 파지 않았기에, 친실장은 운치를 싸러 갈 때마다 구더기ef들이 죽지 않고 팔팔하게 있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자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바라는 친실장은 이미 꿈을 꾸고 있었다.

겨울을 무사히 넘긴 자신의 자들이 독립하는 꿈을, 화창한 봄날에 자들을 독립시킨 자신이 다시 한 번 자들을 낳는 꿈을.

“데스데스데스! 데프프프픗.. 데스....스우....”

비록 이상한 벽이 생기고 다른 개체들이 그 벽을 피해 별난 짓을 하는 것을 많이 목격하긴 했지만, 친실장은 최근의 이 즐거움이 겨울을 넘어 봄까지 향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당장 내일 닥칠 비극을 생각하지도 못한 채.



그날은 청명한 가을날의 푸르른 하늘은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공원을 완전히 감싸버린 회색 벽처럼 뿌연 구름들이 가을 하늘을 죄다 가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꾸물꾸물한 날씨 탓일까? 친실장은 평소와 달리 좀 늦잠을 잤다.

“테치테치!”

“데후우.....데...데에?”

“테치테치테치. 테츄테츄우?”

오히려 동생들보다 먼저 일어난 장녀가 친실장의 콧구멍을 쿡쿡 찔러 제 마마를 깨웠다. 왜 친실장이 오늘은 골판지를 나서지 않고 평소보다 늦게 잠을 자고 있나 궁금했는지 장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누워있는 친실장을 내려다보았다.

“데스! 데스데스데스... 데스데승..”

“테에...”

“츄우.....츄우,,,,”

장녀의 말을 듣고 자신이 늦었다는 것을 안 친실장은 혹여나 다른 개체들한테 이미 요긴한 것들을 뺏겼을까 불안한 마음에 오늘따라 이상하게 어둑어둑한 날씨를 탓하며 투덜거렸다. 아직 자고 있는 나머지 3마리를 잘 돌보라며 장녀를 도닥인 후, 비닐봉지를 챙겨 급히 밖으로 나갔다.

골판지를 나와 참나무 숲 밖으로 나오자 친실장은 뭔가 심상찮은 일이 공원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데챠아아아아아!”

“데챠아아아! 데스데스 데챠아아아!”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데갸아아아악!”

공원 사방팔방에서 들실장의 비명이 들렸다. 뭔가 뛰어가는 소리, 주저앉아 우는 들실장의 울음소리, 실장석 특유의 울부짖는 소리까지. 이건 분명 기쁨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도, 일상에서 들리는 평범한 소리도 아니었다.

절규와 비명. 생(生)을 위협하는 소리였다.

“데....데에에..”

친실장은 어찌해야할 줄 몰랐다. 매일매일 보존식을 모으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늘 벌지 않으면 당장 다음 날에 차질이 생긴다. 공원에서의 삶은 하루 정도는 들실장이 마음 놓고 휴식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게 절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면 안 된다. 가면 죽게 된다. 저 쪽에 들리는 동족의 절망에 찬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그와 동시에, 쓰레기장 쪽에서 자신이 있는 쪽으로 수많은 들실장들이 울며불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거의 백여 마리에 가까운 저 들실장 군단이 모두 적록의 눈물을 흩뿌린 채, 미친 듯이 저들의 보금자리가 있는 나무숲으로 도망가려 하는 것 같았다. 공원의 동쪽, 남쪽, 중앙 분수대 옆, 그리고 친실장의 집이 있는 참나무 숲 쪽으로도 성체실장들은 미친 듯이 달렸다. 간혹 자실장을 끌고 나왔는지 제 자들이 뒤쫓아 오다가 다른 성체에게 밟히는 것도 모른 채, 마구 달리는 녀석들도 보였다.

친실장이 헤 하며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에 들실장 무리들 중 일부가 자신이 있는 쪽으로 점점 더 가까이 왔다. 이들이 뭔가 외치고 있었다. 친실장은 두 귀를 쫑긋 하며 이들이 입에서 마구 내뱉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무슨 소리들을 다들 하고 있는지 신경 쓰기 위해 그다지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이들은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얀 악마가 온 데챠아아아앗!”

하얀 악마. 위석으로만, 그리고 친실장 자신의 친에게서만 들었던 존재. 들실장들이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거나 공원에 실장석의 수가 과도하게 많아지면, 이들을 모조리 죽이기 위해 온다는 그 흉악한 존재.

그 존재가 지금 왔다고 눈앞의 모든 들실장들이 말하고 있었다. 이미 어떤 성체실장은 자신의 옆을 쌩하니 지나 자신이 지나온 참나무 숲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인간 크기의 새하얀 옷을 입은 무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쇠파이프, 다른 손에는 커다란 자루를 들고 그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실장석 무리의 꽁무니를 단숨에 뒤쫓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하얀 악마의 손짓 한번으로 네댓 마리의 성체실장이 쇠파이프에 걸려 공중에 붕 떠버린다. 그리고 모두 바닥에 내쳐진다. 잔인한 그 악마는 차가운 쇠파이프를 다시 들어, 바닥에 누워 운치를 질질 싸대며 비명을 지르는 성체들의 머리를 모조리 터트려버렸다.

본격적인 구제가 지금 시작되었다.

“데에....데에.....데챠아아앗!”

친실장은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하얀 악마가 온 것이다. 공원의 비명 소리는 하얀 악마를 본 수많은 들실장들의 절규였던 것이다. 자신이 여기서 돌아갈까 아니면 쓰레기장 쪽으로 용감하게 가볼까 하는 고민은 할 필요도 없는 고민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다 죽을 테니까.

그러면 공원을 떠나려 했던 녀석들은 미리 알고 여기를 빠져나가려 했던 것인가?

친실장은 사방을 황급히 둘러보았다. 이미 여기저기서 들실장들이 인간의 쇠파이프에 머리가 터져 죽어가고 있었다. 하얀 악마는 한둘이 아니었다. 회색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공원의 사방에서 족히 30여명 정도 되어 보이는 악마들이 무차별적인 살육을 자행하고 있었다.

이제야 깨달았다.

하얀 악마는 우리를 모두 죽일 것이다. 공원의 여기저기서 나타나, 마찬가지로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들실장들을 죄다 죽일 것이다. 그리고 저 하얀 악마들을 피하려 해도, 공원은 나갈 수가 없다. 족히 성체실자의 키의 10배는 되어 보이는 회색 가림막이 서서히 생겨나, 지금은 공원 전체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공원을 나간 녀석들은 분충이 아니었던 것이다. 차라리 회색 판이 공원을 전부 가리기 전의 며칠 동안에 서둘러 나갔어야 했다. 오히려 계속 여기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실히 모조리 학살당할 테니까.

“데챠아아아아아!”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데에에...데스데스..데헤에엑..데헤에엑..”

일단 친실장은 다른 실장들처럼 바로 뒤쪽에 있는 참나무 숲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갔다. 그래도 숲이라면, 나무가 울창하고 관목에 가린 자신의 골판지 안이라면 적어도 지금 여기 숲 앞의 대로보다는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친실장이 참나무 숲의 입구에 도착하자, 문득 왼쪽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성체실장과 자실장 일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자실장의 소리에 친실장은 문득 자신의 자들이 떠올라 이들 일가를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친실장은 참나무 숲 가장자리 지역에 있는 한 나무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데스데스데스...데스... 오로롱...오로롱...”

“테에....테...테츄우...?”

아마 이 성체실장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자들을 오늘 공원 밖으로 데려왔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자들을 데리고 길을 가던 중 하얀 악마를 피해 도망치려 했으나, 자들의 느린 걸음 때문에 전전긍긍하다가 하얀 악마에게 잡히고 만 듯 했다.

성체실장 하나가 3마리 자들 중 한 마리를 하얀 악마에게 들어올렸다. 아마 자들의 애교로 하얀 악마를 매로매로시키려고 하거나, 어린 자들을 보여주어 하얀 악마의 동정심을 얻어 보려는 속셈일 것이다.

성체실장의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바닥의 2마리 자들은 공포에 질린 어미와 달리 천진난만하게 하얀악마를 바라보고, 제 마마의 손 안에 들린 자실장은 하얀악마를 향해 애교를 부려본다.

“데스데스데스데스! 데스데스데스!”

“테츄웅?”

그러나 하얀 악마는 일말의 자비 따위 없이 빠루를 풀스윙하여, 성체실장의 정수리를 내리찍어버렸다.

“데에에....파킨.”

“테챠아아아아! 테챠아아아아!”

“테챠아아아아아! 테에에엥 테에에엥!”

손에 들린 자가 친실장의 얼굴 속으로 들어갈 만큼 강하게 내리친 일격에 두 모녀는 곧바로 파킨해버렸다. 순식간의 일가의 죽음을 경험한 두 자실장만이 눈앞의 비극을 보고 울부짖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귀를 찌르는 듯한 소리도 하얀 악마의 발길질 두 번 만에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친실장은 이미 자신의 골판지를 향해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자들. 자들도 죽게 된다.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다.

하얀 악마들의 구제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자신이 아까 세 자실장을 데리고 나왔다 참극을 맞은 성체실장 일가를 보고 있던 순간에도 그 주위에서 열 마리가 넘는 실장석이 죽어버렸다. 얼핏 보이긴 했지만, 저 멀리서 골판지를 들어 자실장까지 털털 털어 죽이는 하얀 악마를 본 것도 같았다. 그리고 지금, 하얀 악마는 공원 대로에 나와있는 들실장을 거의 다 죽이고, 이제 그들의 본거지인 숲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문득 친실장이 뒤를 돌아봤을 때는 셋 정도의 하얀 악마가 이미 참나무 숲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참나무 숲 언저리에 있는 골판지 하나에 가까이 갔다.

“데갸아아아아아!”








그 골판지의 주인인 듯한 성체실장이 하얀 악마를 향해 위협 자세를 취했다. 이 골판지만은 건드릴 수 없다는 듯이 네 발을 꼿꼿이 땅에 붙이고 이빨을 드러내며 하얀 악마를 향해 죽일 듯이 으르렁댔다.

터엉!

“테챠아아아아아!”

“테챠아아아아아! 테에에엥 테에에엥”

하얀 악마는 성체실장을 무시하고 뒤에 있는 골판지를 향해 빠루를 내리친다. 골판지가 짜부라진다. 골판지 안에서 새끼 우는 소리가 들리고 찌그러진 골판지 밖으로 피가 새어나온다.

“데챠아아아아아! 데갸아아아아! 데챠아아아악!”

하얀 악마는 성체를 가볍게 차서 저 멀리 날려버리고 찌그러진 골판지를 들어 털털 털어내기 시작했다. 이미 죽은 자실장의 시체조각들과 아직 살아남은 자실장, 엄지실장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지이-!”

“지뱃-!”

“테엣-!”

성체실장의 미래와 꿈은 순식간에 바닥의 얼룩으로 변해버렸다.

친실장은 자신의 자들이 생각났다. 저 악마들은 새끼들까지, 그 연약한 새끼들까지도 무자비하게 죽여 버렸다. 방금 실각된 성체실장의 일가처럼 하얀 악마들에 의해 곧 참나무 숲의 모든 들실장 일가도 박살날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자들, 자신의 자들만은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데헤엑....데헤엑...데헤엑....”

친실장은 달렸다.

이미 참나무 숲은 단 셋의 하얀 악마로 인해 아비규환이 되어버렸다. 가장 공원 산책로와 가까운 골판지부터 차례차례 박살나기 시작했다. 자들이 우는 소리, 단말마, 친실장의 절규가 친실장의 팔랑거리는 두 귀를 세차게 때려댔다.

친실장의 골판지는 참나무 숲에서도 꽤 깊숙한 곳에 있었다. 그러나 하얀 악마들의 구제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머리를 터트리고, 골판지를 털어, 새끼까지 밟은 뒤, 이 시체들을 모조리 포대에 넣는 이들은 마치 중세 죽음의 사신이라 불렸던 흑사병처럼 무시무시하도록 빨리 참나무 숲에 사는 개체들을 재앙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친실장이 자신의 골판지에 다다랐을 때에는 벌써 저 앞까지 하얀 악마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데...데에...데에...”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치에에에엥 치에에에엥”

자신의 네 마리 자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친실장은 재빨리 자들에게로 가서, 자신의 자들을 모두 품안에 안아주었다.

“테에에엥 테치테치!”

“테에에엥 테치테치!..테에에엥..”

“데스데스데스...데스우....”

이제는 마마가 왔으니 괜찮다고.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마마는 천하무적. 그러니 반드시 자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친실장은 이렇게 말하며 자들을 안심시켰지만, 품안의 자들은 울음을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 자들을 대표해서 골판지 밖을 빼꼼 내다봤던 장녀는 자신이 본 잔인한 광경을 친실장에게 말하며 패닉에 걸린 듯이 몸을 덜덜덜 떨었다.

자들을 꼭 껴안으며 달래고 있었지만, 친실장 역시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제 자신의 골판지로 하얀 악마가 곧 덮칠 것이다. 점점 하얀 악마가 내리치는 쇠파이프의 뭉툭한 소리가 이 곳 골판지 집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친실장이 여기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과 자들을 살릴 방도가 없었다.

“테에에엥 히끅..”

“테에에엥”

“데스우... 보에보에~...데스데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4마리나 되는 자를 모두 잃는 것은 싫었다. 반드시 자들을 살려내고 싶었다. 설령 친실장 자신이 죽는다 해도.

친실장은 자들을 어르면서 몸을 일으켰다. 골판지 상자의 덮개를 살짝 위로 젖혀 몸을 내밀었다.

들실장의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아까보다 오히려 들실장들의 비명 소리가 잦아든 것만 같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친실장의 골판지 주변에 있는 다른 골판지들은 이미 대게 박살나있었다. 남아 있는 골판지 역시 하얀 악마의 무자비한 빠루질에 일망타진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

“데....데스우...”

아차 싶었다.

하얀 악마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까만 고글을 껴서 눈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친실장은 본능적으로 싸늘한 눈길을 느꼈다.

“데챠아아아아!”

공포 섞인 소리를 지르며 부리나케 골판지 안으로 들어왔다.

“테에에에?”

“테츄우?”

“테치?”

“치프프픗.”

이제 울음을 뚝 그친 자들은 친실장이 왜 저리 소리를 질러대는 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제 마마를 바라보았다. 두려움에 일그러진 친실장의 얼굴이 웃기다는 듯이 비웃는 자도 있었다.

친실장은 어찌 해야 할 줄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곧 하얀 악마가 올 것이다. 저렇게 천진난만한 자들을 모조리 찢어발길 것이다. 이럴 때 평소에 공원에 푸드를 뿌리던 상냥한 인간들이라도 왔으면 좋았으련만, 아니 자신을 무신경하게 바라보던 인간들이라도 왔다면 좋았을 것을.

그 인간들이 지금 하얀 악마가 되어 자신의 일가를 몰살하려 한다는 것도 모른 채 친실장은 그저 다시 한 번 자들을 꼭 껴안았다. 뭔가 기적이 일어나기를, 상냥한 인간님들이 와서 저 악마들을 물리쳐 주기를, 아니면 새로운 주인님이 나타나서 하얀 악마들을 내쫓아주기를 빌었다. 아니면 하얀 악마가 자신을 본 게 아니기를, 자신이 헛것을 봤던 거였기를 빌었....

“데에에에에에?”

갑자기 골판지 하우스에 이질감이 들었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바닥이 흐물흐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판지 하우스가 뒤집혔다.

“데챠아아아아아!”

“테챠아아아아아!”

“테쟈아아아아아!”

구제업자는 이미 친실장의 골판지를 가볍게 들고, 이를 180도 뒤집어서 털털 털어내고 있었다. 한번의 손짓으로 친실장 일가는 바닥에 힘없이 흩뿌려졌다.

“지벳!”

“데챠아아아아! 데에에엥 데에에엥”

“테에에엥 테에에엥”

자들을 꼭 안고 있던 친실장은 다행이 등부터 떨어졌기 때문에 품안의 자 2마리는 무사할 수 있었다.

다만 공중에 떠버린 사이 놓쳐버린 차녀와 사녀는 바닥에 고꾸라져 처박혔다. 맨 바닥에 떨어진 사녀는 이미 바닥의 얼룩이 되어버렸고, 차녀는 피거품을 입에서 쏟으며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 악마의 억센 발은 무자비하게 차녀를 짓눌러 터트렸다.

“데에....데에....데켁...데케엑...”

자들이 눈 깜빡할 사이에 악마에게 둘이나 죽었다. 품 안에서 자신의 옷자락에 얼굴을 파묻으며 울고 있는 이 두 마리는 살려야 한다. 어서 도망가야 한다.

그러나 등에 큰 충격을 받은 친실장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허리가 부러진 것 같았다. 입에서 피가 나왔고, 가슴팍 아래로는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자들의 감각 역시 가슴 위쪽으로만 느껴졌다. 친실장은 울고 있는 장녀와 삼녀를 각각 오른팔과 왼팔로 쓰다듬어주었다.

도저히 자신은 가망이 없었다.

하얀 악마는 아무 말 없이 이미 터져버린 사녀를 확인사살 하듯이 꾹 짓누르고 있었다.

문득 친실장은 자신의 오른편에 구멍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다.

집 옆의 운치 구덩이였다. 운치 구덩이 안에는 5마리의 구더기가 있었다.

그리고 운치 구덩이는 그다지 깊지 않았다.

“테에에엥...테에에? 테에에에?”

친실장은 장녀의 뒷머리를 잡고 오른손을 들어 운치구덩이 쪽으로 가져대 댔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최대한 오른손을 흔들어 장녀를 구덩이 안으로 떨어뜨렸다.

“테챠아아아아!”

“레삐아아앗!”

“레뺘앗!”

“레훼에에엥 레훼에에엥”

“프니후~ 프니후~”

갑자기 운치구덩이 안에 던져진 장녀는 이해할 수 없는 친실장의 행동과 바닥에 떨어진 아픔, 코를 찌르는 운치냄새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떨어지면서 구더기 몇 마리를 깔고 앉았는지, 위석이 파킨하는 소리가 두세 번 들렸다.

장녀가 뭐라고 항의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친실장은 서둘러 왼손을 움직이려 했다. 삼녀도 운치구덩이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몸에서 삼녀를 떼어내려 했지만, 아까 장녀를 집어넣느라 힘을 다 써버렸는지 왼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장녀는 자신의 뒷머리를 집어들고 때어내려 하는 친실장의 손길이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친실장의 옷을 필사적으로 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골판지를 휙 내던진 하얀 악마가 이미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데에....데에....! 데갸아아아악!”

“테챠아아앗! 테에에엥 테에에엥”

하얀 악마가 안전화 끝으로 친실장을 툭 걷어찼다. 가볍게 1m 가량 날아가 땅에 처박히면서도 친실장은 삼녀를 놓지 않았다. 그러나 삼녀 역시 땅에 떨어지면서 부상을 입었는지, 비명을 질러대며 친실장의 옷을 잡고 울고 있었다.

이윽고 발길질이 시작되었다. 친실장의 웅크린 몸을 향해 하얀 악마의 검은색 안전화가 연신 날아들었다. 차라리 쇠파이프로 쳐서 단숨에 죽이면 좋으련만, 하얀 악마는 마치 장난치듯이 힘 조절을 하며 친실장을 때려댔다.

친실장은 몸을 구부린 채 삼녀를 보호하면서 하얀 악마의 폭력을 온 몸으로 받아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친실장의 양 다리가 부러지고 짓눌러 터져감에도, 이미 끊어져버린 척추신경 덕에 하반신은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잠시 하얀 악마의 발길질이 멈췄다. 친실장은 자신을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는 하얀 악마의 검은 고글을 바라보았다.

이제 삼녀를 살리려면 단 하나밖에 없었다.

아까 비웃었던 성체실장처럼, 하얀 악마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 두 다리가 바스러져서 도망칠 수도 없다. 허리 아래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다. 친실장은 최후의 힘을 짜내서 삼녀를 양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아주 조금, 누워있는 자신의 얼굴 높이만큼 삼녀를 들어올렸다.

“데...데스우...”

“테에엥...테에에엥”

울고있는 자신의 삼녀를 보라고. 이렇게 작고 연약한 존재를 죽일 셈이냐고. 너도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마음이라는 게 있다면 우리가 불쌍하지 않느냐고. 그러니 제발 우리를 살려달라고. 우리는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라고.

친실장은 삼녀를 들이밀며 간절히 마음 속으로 호소했다. 이미 입에서는 신음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녀는 친실장의 이런 간절함을 아는 지 모르는 지 그저 울고만 있었다.

“데갹!”

퍼억.

친실장과 삼녀의 머리를 꿰뚫은 쇠파이프가 흙바닥에 닿는 소리였다. 하얀 악마는 우두커니 서있던 게 아니라 쇠파이프를 높이 치켜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짧은 단말마와 거의 동시에 쇠파이프는 친실장의 연한 살을 두부처럼 뭉개져 버렸다.

“시마이 하자.”

“예.”

공교롭게도 친실장 일가가 거의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들실장 일가였다. 참나무 숲 구획 구제를 맡은 구제업자 3명은 숲 일대를 한 번 스윽 둘러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연간 정기 A공원 들실장 구제’는 끝이 났다.




그러나 장녀는 살아 있었다.

운치구덩이에 영문도 모른 채 버려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었는지 하얀 악마 따위는 잠시 잊고 친실장을 향해 마구 소리를 지르며 불평하던 장녀는 문득 친실장의 단말마를 들었다.

“테....테에에...테에에...”

그제야 생각이 났다. 하얀 악마. 하얀 악마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공원의 들실장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금 난 친실장의 울음소리는? 자매들은?

그리고 하얀 악마는?

어느새 공원의 비명소리가 잦아들었다. 하얀 악마의 말 소리도, 쇠파이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참나무 숲은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

장녀는 운치구덩이를 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땅바닥이 닿기는 했지만, 장녀의 키보다 조금 높은 운치구덩이를 빠져나가기는 무리였다.

“테치이! 테치테치! 테챠아아아!”

“레후 레후~”

“프니후~”

점프를 해봤지만 무리였다. 문득 장녀의 발밑에 있는 구더기가 자신의 시선에 들어왔다.

“레삐아아아아아아!”

산 구더기들뿐만 아니라 죽은 구더기들의 시체들도 한 데 모아서 자신이 발을 디딜 수 있는 둔덕을 만들었다. 이 둔덕을 발판삼아 장녀는 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운치 구덩이 밖에 있는, 땅에 파묻힌 돌멩이의 튀어나온 끝부분이 손에 집혔다. 이를 잡고 장녀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몸을 운치 구덩이 밖으로 끌어올렸다.

“테헤에엣... 테헤에엣... 테챠아아아!”

서너 번의 시도 끝에 장녀는 운치 구덩이를 탈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구덩이 안에 있을 때에는 운치 냄새 때문에 몰랐지만, 밖으로 나와 보니 알 수 있었다.

참나무 숲에 부는 바람에 실장취와 피냄새가 진득하게 섞여있음을.

그리고 그 냄새에 오묘하게 자신의 가족의 냄새도 섞여 있었다.

장녀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는 그리운 냄새를 쫓아갔다. 불과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냄새의 진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차녀와 사녀의 냄새가 나는 핏자국과 살점들이 땅바닥에 퍼져 있었다.

“테에....”

이건 틀림없이 차녀와 사녀의 냄새였다. 그렇다면 마마는? 와타시의 마마는?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나는 친실장의 냄새를 향해 장녀는 달려갔다. 그럴 리가 없다. 마마는 천하무적. 제 아무리 하얀 악마가 무섭다고 해도, 마마가 자매들처럼 피를 이렇게 많이 흘렸을 리가 없다. 사라졌을 리가 없다.

그러나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 도착한 곳에는 차녀와 사녀보다 훨씬 큰 핏자국과 살점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 살점... 이 냄새... 틀림없이 친실장이였다. 그리고 그 안에 미세하게 삼녀의 냄새도 섞여 있었다.

그렇다면.. 이 피와 살점들을 남기고 대체 자신의 일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무리 자실장이라 해도 장녀는 이 질문의 답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얀 악마.

그들이 자신의 가족을 죽였다. 왜냐하면 아까 밖을 보았을 때, 다른 들실장들 역시 하얀 악마에 의해 몸이 찢기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자신의 가족을 데려갔다. 왜냐하면 하얀 악마가 들실장들을 쇠파이프로 내리쳐 죽인 뒤, 그 시체를 파란색 자루에 담는 것을 아까 봤으니까.

“테....테에... 테에에....”

참나무 숲 여기저기에 자신의 친실장, 자매들이 남긴 형태와 같은 모양의 핏자국, 살점들이 즐비했다.

예전에는 골판지 밖을 나서면 저 멀리 자신의 자매들처럼 골판지 밖에서 뛰어노는 자실장들이 많았었는데.. 그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붉은 핏자국만 남긴 채로 없어져버렸다.

참나무 숲에 더 이상 들실장은 없었다. 장녀 자신만 빼고.

“테에....테챠아아아아아!”

장녀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왜?

왜 하얀 악마는 자신의 마마를, 자매들을 데려간 것일까? 그것도 잔인하게 쇠파이프로 으깨서 피를 그렇게 많이 쏟게 만든 후에.

왜 하얀 악마는 숲의 들실장들을 모조리 학살한 걸까? 물론 다른 분충들은 위험하다고 늘 마마가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숲의 들실장들은 그저 행복하게 살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들이, 아니 우리들이 그렇게 뭔가 큰 잘못을 했었나?

장녀는 두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성체가 되어서 자도 많이 낳고 마마와 자매들과 함께 늘 즐겁게 살았으면 한 것뿐인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모조리 죽어버렸다. 자신의 꿈은 무참히 짓밟혔다. 일가가 모조리 죽어버렸고, 자신 혼자 숲 속의 외톨이 고아가 되어버렸으니.

“테에에에엥...테끅...테츄우우욱...테치이이이익...”

문득 장녀는 눈물을 멈췄다. 그리고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테챠아아아악! 테챠! 테치테치 테챠아아아!”

어쨌든 장녀는 살아남았다. 친실장이 운치구덩이로 숨겨준 덕분에, 재앙의 낫을 피할 수 있었다. 하얀 악마의 마수는 장녀를 빗겨갔다.

친실장 덕분에.

“테챠아아아아! 테챠아아아아!”

장녀는 허공을 향해 마구 팔을 휘둘렀다. 마마는 자신이 살아남길 원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자신을 숨겼다. 안타깝게도 마마와 다른 자매들은 죽었지만, 자신은 간신히 살아남은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자신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테그르르르르...테에에에에엑...”

장녀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두 눈에서 적록의 눈물을 흘려댔지만, 이는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악에 받친 눈물이었다.

아무 죄 없이 마마와 자매는 죽었다. 나쁜 것은 하얀 악마다. 모두를 아무 이유 없이 죽여댔기 때문이다. 친실장은 끝까지 나쁜 놈들의 손아귀에서 자신을 살리려 했고, 장녀 자신은 결국 살아남았다.

너희들의 뜻대로 될 성 싶으냐.

장녀는 악을 쓰며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쁜 하얀 악마 놈들의 뜻대로 내가 죽을 성 싶으냐. 반드시 살아남겠다. 숲 여기저기에 떨어진 동족의 살점을 먹어서라도, 운치구덩이 안에 있는 구더기들의 생살을 씹어서라도 반드시 살아남겠다.

장녀는 다짐했다.

절대로 하얀 악마의 뜻대로 죽지 않겠다고.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반드시 성체가 되고, 자를 많이많이 낳겠다고. 그래서 숲을 자신의 자들로 뒤덮겠다고. 하얀 악마들이 원했던 것처럼, 숲에서 들실장이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게 할 것이라고.

장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압도적으로 강한 하얀 악마에게 반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테츄웅...테츙...테치...테치...”

어느새 하늘이 걷혀 있었다. 숲의 나무 사이사이로 따사로운 햇빛이 서서히 들어왔다.

장녀는 저 멀리 내팽겨진 자신의 골판지 하우스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부터는 가족도 없이 외로이 혼자 살아가야 한다. 친실장에게 얼핏 들은 ‘겨울’이라는 혹독하게 추운 계절도 곧 올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다짐했다. 자신은 살아갈 것이다. 장녀 자신은 친실장의 그 마음을 배반하지 않고 끝끝내 살아남아줄 것이다 보존식도 있다. 다른 들실장들이 남긴 물건들도 여기저기 널려있다. 그러니 최대한 머리를 짜내어 열심히 살아줄 것이다. 하얀 악마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조그마한 자실장 하나였지만, 인간은 잡초의 씨를 남기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씨앗은 지금 독기어린 싹을 틔우려 하고 있었다.

아무리 인간이 논밭이나 화단을 관리하기 위해 잡초를 뽑아대도, 눈을 깜빡 돌리는 사이에 어느새 잡초는 다시 자라고야 만다. 분명히 뿌리채 뽑아서 쓰레기봉투에 묶어 버렸을 텐데, 요상하게도 잡초는 다시 피어난다. 심지어 작은 화초를 심은 화분에서도 잡초는 자라난다.

잡초에 눈길을 돌리는 사람은 농부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무신경함 사이에 잡초는 다시 한 번 이전의 그것이 뽑혀나간 자리에서 뿌리를 박고, 잎을 키우며, 다시 볼품없는 꽃을 피우고 씨를 흩뿌린다.

그리고 그 땅을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자손으로 가득 채워버린다. 인간이 또다시 잡초를 뽑아버릴 때까지. 하지만 인간이 한 번 잡초를 다시 뽑아대도, 잠시 한눈 판 사이에 잡초는 끈질기게도 다시 들어선다.

그렇게 악독하게, 끈질기게 잡초는 살아남는다.

뽑고 또 뽑아도 한눈을 판 사이에 또 다시 공원을 가득 채우는 저들이 마치 공원의 들실장이 그러하듯이.

구제를 마친 인간이 간과한 공원 여기저기에서 고개를 하나 둘씩 드러내는 몇몇의 들실장들 처럼.




8개월 후인 이듬해 6월, A공원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ㄱ시 시설관리공단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민원이 접수되었다.

<공원의 들실장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공원에 가면 들실장들이 하도 달라붙어서 통행에 지장이 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휴식이나 운동에 지장이 되니 조속히 구제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런 썅. 작년 가을에 구제했는데 그새 또 불어난 거야? 벌레새끼들 진짜..”

“어차피 조금 있으면 장마 한 번 올 텐데 그 때 개체 수 확 줄어서 괜찮아지겠죠. 공문이나 예산도 안 떨어졌고, 매년 이런 민원 들어오는 건 똑같으니 딱히 걱정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야. 민원이 떨어졌으니깐 우리가 공문을 보내야 할 거 아니냐. 어차피 상부에서도 우리 사정 아니깐 가을에 공문 떨어뜨리겠지만, 민원 접수처리 하는 게 좆같다는 거지.”

“그건 그렇죠. 하하하.”

“근데 이제 퇴근 시간이네? 그럼 이건 내일 하지 뭐.”

같은 시각, 저녁 6시의 A공원에서는 성체실장 하나가 뉘엿뉘엿한 해를 등지고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든 채, 참나무 숲 한 구석에 있는 자신의 골판지 하우스로 들어가고 있었다.

“마마가 온 데스.”

“테햐아아아 마마가 온 테치!”

“신나는 테치!”

“마마 오신 테스?”

5마리의 꼬물거리는 새끼들을 달래고, 바닥에 음식쓰레기를 부어주었다. 자들은 배가 고팠는지 와구와구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자들의 식사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성체는 자신도 이내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 도중에 성체실장의 자실장 하나가 문득 친실장을 바라보았다.

“마마! 와타치 마마의 옛날이야기 들으면서 맘마 먹고 싶은 테츄!”

“오녀 이모우토챠! 마마는 아까까지 와타시타치를 위해서 일하고 왔기 때문에 힘든 테스.”

“그런 테스. 장녀 오네챠 말대로 마마 더 힘들게 하지 마는 테스.”

먼저 태어난 개체들 중 살아남은 장녀와 차녀는 이제 어엿한 중실장이 되어있었다. 3마리 자실장 동생들을 자신 대신 달래주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장녀, 괜찮은 데스. 이야기 해주는 데스.”

“신나는 테챠아아!”

“테챱테챱...”

“그러면 오늘도 그 이야기를 해주는 테스우.”

“데프프픗. 장녀챠도 아직 어린 데스우. 그럼 시작하는 데스. 예전에 마마가 아직 오녀챠만큼 어렸을 때, 공원에 하얀 악마가 들이닥쳤던 데스...”

이야기를 시작한 성체실장의 두 눈에는 묘한 독기가 서려있었다.

















출산

 


“뎃데로게~ 뎃데로게~ 자들은 조금만 마마의 배 안에서 기다리는 데스~”

양 눈이 체리처럼 새빨개진 친실장이 배를 쥐어짜는 통증을 간신히 참으면서 공원 화장실로 쪼르르 들어간다. 툭 불거져 나와 덜렁거리는 배를 보아하니 이제 출산이 임박한 모양이었다.

현재 시각은 늦은 오후. 친실장은 꽤 운이 좋은 편이었다. 대다수의 들실장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출산 임박의 통증이 온 덕에, 지금 공원 화장실에는 들실장이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요즘같이 공원에 벛꽃이 흩날리는 봄빛 완연한 시기에는 너도나도 자를 낳기 때문에 조금만 더 일찍 왔다면 화장실 칸이 전부 차있어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을지도 몰랐다.

“다행인 데스.”

남자화장실 안으로 들어온 친실장은 곧바로 눈앞에 보이는, 문이 열려있는 대변 칸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음에도 누구에게 뺏길세라 부리나케 그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온 뒤, 친실장은 문을 막기 위해 총구에 힘을 최대한 주면서 쓰레기통을 낑낑대며 문 앞으로 밀어 옮겼다. 이렇게 함으로서 웬만한 체형의 들실장이 출산 중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비록 들실장이 마음먹고 온 몸으로 문을 밀고 들어가면 열리기야 하겠지만, 열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동안 출산을 강제로 마치고 싸울 준비를 하는 등 대처할 시간을 벌 수는 있다.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그제야 속옷을 홀라당 벗어버린 친실장은 치마를 위로 걷어 올리고 구식 변기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고통이 극심해진다. 친실장의 두 눈에서 피처럼 새빨간 눈물이 산고를 참지 못하고 흐른다. 그와 동시에 뱃속의 자들이 하나같이 나오려고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 친실장의 뱃가죽 밑으로 느껴졌다.

“데데에에엣스! 데데에에엣...데챠아아앗! 데챠아아아아앗!”

“텟테레~”

“텟테레~”

오래 참고 있던 탓일까? 오므리고 있던 총구의 힘을 풀어버리자 마치 설사가 나오듯이 터져 나오는 운치와 뒤섞인 아기실장 2마리가 동시에 나왔다. 운치에 파묻혀 꼬물거리는 두 아기 실장이 뿌연 진녹색의 점막에 싸여 몸을 아등바등 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오자, 친실장은 감격의 탄성을 내질렀다.

“와타시의 자가 드디어 태어난 데스.. 데에에에엥 정말 기쁜 데스!”

“마마 좋은 레후..”

“빨리 할짝할짝 해주는 레후.”

친실장은 다정한 눈길로 두 자들이 꼬물거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중, 한 마리를 들어 자신의 입가에 가져다댔다. 다물 수 없는 그 기형적인 입에서 투명한 침을 질질 떨어뜨리는 혀가 삐죽 튀어나오더니, 먹이를 휘감는 뱀처럼 유연하게 자의 몸을 스르륵 휘감는다. 젖은 분홍빛 혀가 자의 몸을 덮고 있다가 떨어질 때마다, 자의 몸에서 두꺼운 점막이 사라지고 그 안에 있는 선명한 초록색의 옷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친실장의 혀에서는 점막과 침, 운치가 뒤섞인 기분 나쁜 암록색의 액체가 줄줄 떨어지고 있었다.

“테프프프프픗.”

첫 자는 자실장이였다. 자실장은 뭐가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까르르 웃으며 친실장을 향해 팔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온 몸에 가득 묻은 친실장의 진득한 침의 감촉과 핥아줄 때 몸을 휘감던 혀놀림을 꽤나 즐기고 있던 것 같았다.

“마마 좋은 테치. 더 할짝할짝 해주는 테치.”

생글생글 웃으며 자를 바라보는 친실장은 그러나 표정과 달리, 자실장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직 두 눈은 빨간색이었다. 출산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 산고가 와서 몸에 힘이 빠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자들의 점막을 제거해주어야 했다.

“테에에? 더 안 해주는 테치?”

찬 타일 바닥의 낯선 감촉을 느낀 자실장은 친실장이 자신을 내려놓은 것을 이제야 눈치 채고 친실장을 향해 ‘왜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냐’는 표정으로 선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자실장이 그렇게 바라던 친실장의 혀는 이미 둘째의 몸을 감싸 안고 있었다.

“레에... 간지러운.. 레치!”

친실장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이번의 자는 엄지로 판별되었다. 구더기에 비한다면 그나마 좀 낫긴 하지만, 그래 봤자 오십보백보이다. 분충성이 높다면 집안의 골칫거리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구더기보다 나쁘다.

“마마, 와따찌를 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마운 레츙~”

다행히 분충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친실장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다. 자실장을 바라봤을 때의 상냥함이 아닌 무심한 얼굴을 띈 채, 친실장은 엄지의 인사를 본 채 만 채 하면서 엄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 번 호흡을 깊게 내뱉은 후, 꾸물거리는 총구 위쪽의 감촉에 다시 집중한다. 문득 아직 붉은 두 눈에 태어난 두 자들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모습이 들어왔다.

“곧 있으면 자매들이 또 나오는 데스. 마마는 지금 바쁘니까 거기에 앉아서 얌전히 기다리는 데스.”

“네, 테치!”

“네, 레치!”

출산은 빠르게 끝날수록 좋다. 들실장의 출산 중에는 항상 외부의 위험성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친실장은 자들을 어서 빨리 내뱉기 위해 배에 힘을 힘껏 주었다.

“데갸아아아아악!”

울부짖는 친실장이 고개를 위로 젖힌다. 배에 힘을 주자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몸이 활시위처럼 볼록하게 구부러진다. 힘이 실린 친실장의 두 손은 두건을 걸레처럼 쥐어짰다. 두 마리 아기 실장석들은 괴로워하는 마마의 모습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제 친실장을 염려하고 있었다.

“오네챠, 마마 아픈 레치?”

“그런 것 같은 테치. 이모우토챠들이 잔뜩잔뜩 나오려면 저렇게 아파야 하는 테츄?”

산고의 한 가운데에 놓인 친실장은 자들 앞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몸부림을 치며 데갹데갹 소리를 지르는 등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당황한 두 자실장의 뒤로, 낯선 자실장 세 마리가 친실장이 닫아놓은 문 아래로 슬그머니 들어오려는 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누구인 테치?”

낯선 손길이 어깨에 닿은 것을 느낀 첫째 자실장이 뒤를 돌아봤을 때에는 이미 자신보다 조금 큰 크기의 자실장 세 마리가 화장실 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후였다. 세 자실장 중에서 가장 작은 녀석은 독라였고, 다른 두 녀석도 독라는 아니지만 머리가 죄다 없거나 옷이 거의 찢어진 등 꼴이 영락없는 고아였다. 그러나 첫째의 표정은 두려움에 굳어버렸다. 갓 태어난 자신보다 3cm는 더 커 보이는 세 마리의 표정은 하나같이 험상궂었기 때문이다.

“와타치가 엄지놈을 처리할 동안, 오마에타치는 저 분충 자실장을 잡고 있는 테치.”

“알겠는 테치.”

“누....누구인 레치...? 마마.. 오네챠.. 와따찌 무서운 레치... 도와줘 레치... 오지 마는 레치... 오지 마는 레챠아아아아아앗!”

“엄...엄지챠아아아! 놓는 테치! 놓는 테벳!”

“입 닥치고 있는 테치, 분충!”

두 자실장이 첫째를 붙잡고 있는 사이, 세 독라 고아 자실장들 중에서 가장 큰 대머리 자실장이 엄지의 목덜미 뒤쪽을 물어버렸다. 본능적인 야생성 때문일까? 아니면 어리지만 수많은 수라장을 헤쳤다는 반증인걸까? 대장 고아 자실장의 선택은 적절했다. 연약한 목뼈가 ‘똑’하고 부러지자, 엄지는 피를 토하며 실신해버렸다. 그러자 대장 자실장은 피가 묻은 입에서 엄지를 땅에 내팽겨 친 후, 한 발을 엄지의 작은 등판 위에 얹은 채로 다른 발로 엄지의 덜렁덜렁한 목의 상처를 마구 짓밟았다.

‘파킨!’

“데갸아아아아아악!”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지의 위석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친실장은 이를 못 들었는지 천장을 바라보며 소리만 질러대고 있었다.

자신을 잡고 있는 두 고아 자실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던 첫째의 눈에 엄지의 두 눈이 회색으로 변한 광경이 들어왔다. 첫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방금 전에 같이 태어난 동생이 저 낯선 고아들에 의해 시체로 변해버린 것이다. 어서 이 사태를 마마에게 알려야 한다.

“엄지챠아아! 마마아아아! 이모우토챠가 파킨한 테치이이이! 도와주는 테에에엥.. 테케에엑..”

“닥치는 테샤앗! 분충!”

대장 고아 자실장이 있는 힘껏 첫째의 배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이를 신호로, 두 고아 자실장이 첫째를 바닥에 내팽겨쳤다. 그리고 린치가 시작되었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고아 자실장들의 발길질에 첫째는 비명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테켁... 테헤엑... 테에에엑...”

“죽는 테치! 죽어 테치!”

“옷은 찢지 마는 테치! 이 분충의 팔 다리는 죄다 작살냈으니 얼굴 위주로 밟는 테치.”

“알겠는 테치. 테샤앗! 테샤앗!”

사지가 부러졌다. 분대가 망가졌는지 입에서는 피토가 나온다. 왜 자신은 이렇게 맞고 있어야 하는가? 방금 전만 해도 뱃속에 있던 첫째에게 세상은 행복하다, 세상에는 상냥한 마마가 있다, 어서 태어나서 세상의 행복을 누리게 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마마에게 들었다. 빨리 나와서 마마와 자매들을 만나고, 쑥쑥 커서 자신도 성체가 되어 자를 가지는 꿈을 뱃속에서 꾸었다.

그러나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태어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눈앞에서 동생이 낯선 언니들에게 찢겼다. 자신 역시 그 언니들에게 죽게 될 판이다. 아무리 마마를 찾아도, 마마는 자매들을 낳느라 고통에 젖은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낯선 고아의 침입도 모르는 듯 했고, 자신의 애절한 목소리조차 듣지 못한 듯 했다.

이렇게 생각이라도 할라치면, 얼굴로 냄새나는 신발이 날아든다. 두개골이 함몰되기 시작했는지 얼굴도 몸처럼 극심하게 아파왔다.

문득 발길질이 멈췄다.

“이 분충! 죽어 테치! 빨리 죽는 테챠아아앗!”

고아 자실장은 첫째의 가슴팍을 깔고 앉아 첫째의 가녀린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체격 차가 그렇게까지 나지는 않는 자실장이여서 그런지, 엄지처럼 목을 찢어발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두 고아 자실장은 첫째의 몸통을 필사적으로 걷어차고 있었다.

“테엑...테케엑...”

첫째의 안색이 퍼렇게 변해갔다. 호흡을 하지 못하는 고통은 맞고 있는 몸의 고통을 잊게 해줄 만큼 극심했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토하고 싶었다. 이미 첫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입으로는 부글부글한 거품을, 속옷 안으로는 눅진한 운치를 마구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필름이 끊기듯이 첫째의 의식은 ‘뚝’ 날아가 버렸다.

‘파킨!’

“데갸아아아아아아아!”

“성공한 테치!”

“된 테치!”

먼저 태어난 두 자가 독라의 손에 죽을 동안, 친실장은 지독한 산고에 고통받으며 소리치고 있었다. 초산은 난산이라고 그랬던가. 화장실 문 틈새로 낯선 자실장들이 들어오는 것도, 앞에서 두 자가 죽는 것도 모를 만큼 지독한 난산이었다. 이는 고아 자실장들이 친실장 몰래 자들을 해치우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독라 자실장은 이미 첫째의 시체에서 옷을 벗겨내고 있었다.

“테프프픗. 이 옷을 입으면 저 똥아줌마를 완전히 속일 수가 있는 테츄~ 마마가 생기는 테츄~”

“테에에에? 독라 주제에 무슨 옷인 테치? 와타치에게 내놓는 테치!”

“오마에! 누구 덕에 여기까지 성공할 수 있었는지 모르는 테치?”

대머리 대장 자실장과 가슴 아래로 옷이 찢어진 자실장이 첫째의 옷을 탐내며 독라 자실장에게 성을 내기 시작했다.

“데스우우우우우웃!”

“독라 주제에 이제 와서 무슨 옷인 테치? 머리카락이 있는 와타시가 훨씬 잘 어울리는 테치!”

“아닌 테치! 주기 싫은 테치! 오마에들은 옷이 아직 있는 테치!”

“빨리 내놓는 테챠아앗!”

두 자실장이 독라에게로 다가간다. 벗긴 첫째의 옷을 품에 꼭 안은 독라 자실장은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태어나자마자 친실장에 의해 옷을 빼앗기고, 그대로 화장실에 버려진 이 독라 자실장으로서는 옷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설령 자신이 무리들에게 배척될지라도 옷은 포기할 수 없었다.

두 자실장들 역시 자신의 낡고 찢어진 옷 따위보다 갓 태어나 깔끔한 자실장의 옷이 가지고 싶었기에 가장 작은 독라 자실장에게 인상을 쓰며 협박하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가슴 아래로 찢어 없어진 옷을 제 손으로 갈가리 찢어버리며 곧 입을 새 옷에 대한 기대감에 콧김을 푸슉푸슉 내뱉는 녀석도 있었다.

“이제는 말로 안하는 테치. 어서 그 옷을 넘기는 테치!”

“싫은 테챠! 이건 와타치의 옷인 테챠앗!”

“테에에? 그럼 오마에 죽는 테...”

“텟테레~”
“텟테레~”
“텟테레~”
“텟테레~”

“데스웅.... 데스... 데스...”

대장 자실장이 달려들려던 순간, 친실장은 산고 끝에 또다시 세 마리의 자를 낳았다. 탄성의 환호성과 안도의 한숨이 교차한 순간, 세 자실장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출산이 힘들었는지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 가쁜 숨을 내쉬고 있던 친실장이 자들을 핥아주기 위해서 몸을 앞으로 일으켰다.

“자들, 자매들이 태어난 데스. 마마를 도와서 핥아...”

친실장의 눈앞에 보인 광경은 참혹 그 자체였다. 자들의 냄새는 피내음과 버무려져 바닥에 싸늘하게 누워있는 시체에서 나고 있었다. 발가벗겨져 멍투성이인 몸이 그대로 들어난 첫째의 시체와 너덜너덜한 목에서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는 엄지의 시체 앞에는 언제 왔는지도 모를 고아 자실장 세 마리가 친실장을 넋을 잃은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데갸아아아아아악!”

“테에에...”

친실장의 시야에 첫째의 옷을 쥐고 있는 더러운 독라 하나를 포함한 세 고아 자실장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들 친실장의 절망하는 표정과 거센 울음소리에 겁에 질려 운치를 뿌지직하고 지려댔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친실장의 진짜 새끼들의 시체를 문 틈새 밖으로 밀어낸 후, 이들의 옷을 입어 친실장을 속일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둔한 자실장의 머리로는 자신들의 숫자가 몇인지, 옷은 누가 입을 것인지, 애당초 더러운 때가 낀 자신들이 과연 친실장을 속일 수 있는지 따위의 문제들을 생각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앞의 옷 한 벌 때문에 잠시 자신들이 성체 실장에게 발각되는 순간 죽게 되는 상황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데에 있었다.

“데챠아아아아앗! 와타시의 자들이이이이이!”

“테....테츄웅...?”

“마... 마마... 와타치타치는 마마의 자인 테츄웅.,”

“여기 있는 시체들이 바깥에서 온 고아들인 테츙... 그치만 마마의 사랑스러운 자들인 와타치타치가 전부 때려잡은 테츙...”

대장 자실장은 한 손을 입에 가져다대며 친실장에게 필사적으로 애교를 부려보았다. 그러자 다른 자실장들도 대장을 따라 아첨을 했다. 간신히 들어온 문틈을 통해 낑낑대며 나가는 것도 무리였다. 그렇기에 이들이 마지막으로 바랄 수 있는 것은 친실장이 자신들을 자로 착각하여 키우는 것이었다.

물론, 친실장이 속아넘어갈 리가 없다.

“이 고아 분충들.... 와타시의 자들을 죽인 데스....?”

“테....테츄웅~ 마마! 아닌 테치! 와타치타치가 방금 태어난 마마의 자인 테치!”

“그.... 그런 테치! 와타치는 마마의 귀여운 자인 테츙~ 안아주는 테쟈아아아아아!”

“오마에타치가 감히이이이! 와타시의 자들을 죽인 데챠아아아앗!”

아무리 출산 중이라 힘이 없다고 해도, 자실장 셋은 성체실장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독라 자실장의 다리를 냉큼 잡은 친실장은 있는 힘을 주어 벽에 머리를 후려쳐댔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벽에 박을 때마다 벽에는 붉은 피가 튀어갔다. 마침내 독라 자실장의 손에서 첫째의 옷이 힘없이 떨어졌다.

파킨!

“테챠아아아앗!”

“도망치는 테챠아아아!”

친실장은 붉은 눈물을 양 눈에서 뿌려대며 양 손으로 바닥에 있는 자실장들을 잡았다.

“냄새나는 분충 주제에 와타시의 자를 죽인 데스? 더러운 오마에들이 와타시를 감히 속이려 한 데스?”

“테챠아아아앗!”

“놓는 테치! 놓는 테챠아앗!”

양 손에 쥔 두 자실장을 변기 근처로 질질 끌어온 뒤, 친실장은 일어섰다. 고아 두 마리는 차가운 타일 위에서 필사적으로 몸을 발버둥 쳤다. 그러나 친실장의 양 발이 두 자실장의 목을 각각 잘근잘근 짓누르기 시작하자, 몹시 괴로워하는 표정을 짓는 두 자실장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테케에엑... 아줌마 테켁... 제발 테치...”

“살려주는 테치...테켁...”

친실장의 발이 들렸다.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실장의 몸을 번갈아 마구 짓밟아대었다.

“테챠아아아! 때리지 마는 테챠아아아!”

“아픈 테챠아아앗! 와타치의 다리가아아아!”

“데챠아아앗! 죽는 데스! 죽어버리란 데샤아아앗!”

“살려주는 테켁.... 테치... 죽기 싫은....”

파킨!

옷이 찢긴 자실장이 코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먼저 죽어버렸다. 몸을 웅크리고 있던 대장 자실장과 달리, 몸통 중앙을 연신 맞고 있던 탓에 내장이 죄다 파열된 모양이었다. 친실장은 대장 자실장을 집어들었다.

“마마아아! 손씨 발씨 아픈 테치! 와타치는 마마의 자인 테치! 이제 그만하는 테치!”

“웃기지 마는 데샤아아앗!”

그대로 대장 자실장을 입에 쑤셔넣으려 했다. 자실장 역시 성체의 손 안에 꽉 죄인 제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자신이 처한 운명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와타시의 자를 죽인 분충... 오마에는 추....출산으로.. 쇠약해진 와타시의 몸을... 보신하는 데에 쓰는 데스우...”

“테챠아아아! 아줌마 미안한 테치! 그러니 제발 살려주는 테치! 먹지 마는 테치! 와타치는 먹는 게 아닌 테챠아아아앗!”

으직.

입 안으로 자실장의 머리가 쏘옥 들어가자, 친실장은 이빨을 앙 하고 세게 닫아버렸다. 그 바람에 자실장의 목이 피를 뿜으며 끊어졌다. 친실장의 얼굴을 툭툭 치던 작은 두 팔 역시 힘없이 축 늘어져버렸다.

‘데챱데챱데챱... 데챱데챱...’

힘을 많이 써버려 무척이나 배가 고팠던지, 친실장은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며 자실장의 육신을 음미했다. 그러고 보니 맛있는 고기가 여기저기 떨어져있었다. 총 5구나 되는 새끼 실장쨩들의 고기를 많이 보니 친실장은 문득 흐뭇해졌다. 비록 그 중에서 2구는 방금 전에 낳았던 제 새끼였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자들은 죽어버렸고, 범인은 잡아서 이제 걱정이 없으니 앞으로 낳을 새끼들만 잘 간수하면 되는 것이다. 처음의 2마리는 어차피 분충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필히 분충이였을 것이다. 독라에 추한 고아들에게 당할 정도로 약한 녀석들이었으니. 지금 저기 변기 안에 있는 자들을 제대로 기르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잘 된 것이 아닌가? 식량이 이렇게나 많아졌으니.

잠깐.. 변기 안의... 자?

“데갸아아아아악!”

친실장은 양손으로 잡고 있던 머리 없는 자실장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변기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새로 태어난 자들에 생각이 미치자, 중대한 사실이 하나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고아 분충들을 처리하느라 새로 태어난 자들의 점막을 핥아주는 것을 잊어버렸다..

“프니후~”

“마마 프니프니 해주는 레후~”

“마마 빨리 할짝할짝 해주는 레후우우! 와타치의 손발이 사라지는 레후우우우!”

“레훼에에엥 마마아아! 할짝할짝은 언제 레후..”

이미 2마리는 점막이 굳어, 갓 태어난 자실장 크기와 비슷할 정도로 통통한 구더기쨩이 되어버린 듯 했다. 빨리 핥아달라며 친실장을 향해 울부짖는 2마리 역시 점막이 점점 말라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시간이 촉박했다. 두 마리를 전부 핥아주기는 힘들 것 같았다.

친실장은 그 중에서 가장 커다란 새끼를 집어 들었다.

“점막이 굳어가는 레후! 마마 빨리! 빨리 할짝할짝해서 점막 없애주는 레후!”

“버티는 데스! 조금만 참는 데스! 마마가 핥아주는 데스! 데챠압..”

손에 들린 자를 진한 피가 덕지덕지 묻은 친실장의 선홍빛 혀에 파묻었다. 그러나 친실장의 축축한 혀에 느껴진 자의 촉감은 첫째를 핥아줄 때의 질척질척한 그것이 아니었다. 아주 매끄러운 포대기와 같은 질감이 혀의 촉각세포를 통해 친실장에게 전달되었다.

“할짝할짝도 좋지만 프니프니도 받고 싶은 레후~”

“데...”

늦었다.

점막은 이미 굳어버려 갓 태어난 아기 자실장과 똑같은 크기의 우량 구더기로 변해버렸다.

“레삐앗!”

친실장은 혀 위에 있는 구더기를 변깃물에 무심히 던져 넣고, 변기 안에 있는 나머지 구더기들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 친실장을 향해 핥아달라고 울부짖던 녀석도 이제는 다른 녀석들처럼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프니프니후~’ 따위의 소리를 하고 있었다.

“데에... 데...”

모두 구더기쨩이 되어버렸다. 비록 정말로 자실장이었을지, 엄지였을지, 아니면 그냥 구더기였을지는 친실장으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왠지 이번에 낳은 녀석들은 전부 사랑스러운 자실장쨩들이었을 것 같은 안타까운 예감이 들었다. 구더기쨩들의 크기는 전부 첫째와 대강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친실장은 허탈감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양 눈에서 붉은 두 눈물이 다시 한 번 친실장의 볼을 타고 흘렀다.

“데에... 데에... 히끅... 히끅... 데에에에엥”

고개를 떨어뜨리고 양 손으로 눈물을 닦아보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서러웠다. 여섯 마리의 자들이 순식간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두 마리는 하늘나라로 떠났고, 네 마리는 쓸모없는 우지챠들로 전락했다. 비록 많은 영양을 주어 시간을 상당히 들이면 자실장으로 기를 수는 있겠지만, 들실장인 주제에 무슨 수로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저기 싸늘한 시체로 변해있는 세 고아만 아니었어도, 친실장의 출산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친실장은 더욱 서럽게 울었다.

“오로롱... 오로롱...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고개를 쳐들고 울부짖는 친실장의 소리가 화장실을 가득 메웠다. 그만큼, 친실장은 지금 자신이 놓인 상황에 충격 받아 있었다. 지금 배 안에서 느껴지는 분대의 고통이 아주 미약하게 느껴질 정도로.

“데에에엥... 데에에에에?”

친실장은 하복부와 총구의 미약한 고통을 느끼고 자신이 출산 중이었음을 다시 상기했다. 양 손에 묻은 눈물의 색은 아직 둘 다 붉은 색이었다. 그제야 출산이 재개했음을 깨닫고 친실장은 변기로 부리나케 가서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건 기회였다. 아직 건강한 자실장을 낳을 수 있는 기회. 일주일 동안의 임신 기간이 결실을 내어,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할 수 있게 되는 기회. 아직 완전히 끝장난 게 아니었다는 생각에 친실장의 입에서는 살포시 미소가 배어나왔다.

“레후?”

“마마 프니프니 레후?”

구더기들을 아무렇게나 집어 타일 바닥 위에 던져놓은 후, 친실장은 다시 하복부에 힘을 주었다. 계속되는 산고에 꽤나 적응이 되었는지, 아니면 슬픔이 산고를 중화시켰는지 몰라도 처음만큼 그다지 아프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데데에에엣스! 데에에에엣스우!”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자들이 마지막으로 나올 자들이다. 이제 더 이상 뱃속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앞서 나온 6마리의 새끼들은 모두 쓸모없이 되어버렸지만, 지금 태어날 자들이 남아있었기에 친실장은 기뻤다. 비록 고통에 한껏 얼굴을 찡그리기는 했지만, 친실장의 얼굴은 환희와 희망이 뒤섞인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텟테레~”
“텟테레~”

딱 2마리였다. 앞서 나온 자들이 총배설구를 벌려주었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순산이었다.

친실장은 똥과 뒤섞여나온 자들을 보며 안도와 기쁨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만다행이었다. 핥아달라는지 점막에 쌓인 몸을 앞뒤로 흔드는 녀석들을 보며 친실장은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었다. 볼살이 욱실 솟아올라 크로와상처럼 휘어진 친실장의 두 눈에서 적록의 눈물이 찔끔 새어나왔다.

“데프프픗. 데프프픗”

“마마인 레후?”

“마마인 레후!”

첫째를 핥아주었을 때처럼 친실장은 상냥하게 자 하나를 들어 제 혀에 가져다댔다. 이제 방해꾼도 없다. 그저 혹여나 자의 몸이 상할세라 조심하며 자들의 점막을 핥아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헤 벌려진 친실장의 입에서 삐죽 나온 혀가 부드럽게 자의 몸을 타고 미끄러졌다. 침과 함께 새끼 실장의 점막이 주우욱 바닥으로 떨어진다.

“데스?”

뭔가 이상했다.

첫째를 핥았을 때에는 혀에 팔다리의 꼬물거리는 감촉이 혀를 타고 친실장의 뇌리에 들어왔었다.

그러나 이번 새끼는 핥고 난 후에도 끈끈한 점막을 핥아주기 전의 모습과 그대로였다. 핥으면 핥을수록, 매끄러운 형태의 유선형 몸이 더 잘 느껴졌다. 아니, 완전히 매끄럽지는 않았다. 몸의 앞쪽에 도돌도돌한 돌기 같은 것이 나있는 것이 혀의 촉감으로 느껴졌으니.

친실장은 황급히 혀를 때고 자를 보기 위해 양 손을 들어보았다. 아니, 양 손도 필요 없었다. 자는 한 손에 쏙 들어왔다.

“레후~ 프니프니 해주는 레후~”

구더기였다. 그것도 원래부터. 그렇기에 앞서 먼저 구더기가 된 4마리 자매보다도 더 작았다,

불량품이었다.

“데....데챠아아아앗!”
친실장은 변기 안의 운치더미에 구더기를 푸슉 던져 넣고, 마지막 새끼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핥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자는 구더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의 자는 틀림없이 건강한 자실장쨩 일거라고 생각하며 친실장은 마치 녹기 직전의 아이스크림을 마구 빨아먹는 아이처럼 손에 든 자의 점막을 조금씩 깎아나갔다.

한 면을 핥았다. 친실장의 침과 함께 눅진한 암록색 점막이 떨어져나간다. 그 안에 비치는 연녹색의 속살. 팔다리나 프릴 같은 별다른 특징 없이 연녹색의 속살 그것뿐이었다.

“데스... 데스데스!”

“레후우우우웃! 할짝할짝 좋은 레후!”

친실장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다시금 다른 면을 핥아본다. 방금 들은 멍청한 소리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며 행복회로를 돌리면서. 그러나 점막이 뭉뚝하게 떨어져 나가 제 몸을 다룰 수 있게 되자, 친실장의 손에 들린 새끼 실장은 제 꼬리를 마구 흔들어대며 기쁨의 울음을 내지를 뿐이었다.

“마마 할짝할짝 기분 좋은 레후~ 이제는 프니프니 해줄 시간인 레삐아아아앗!”

친실장이 양 손이 아무렇게나 툭 떨어졌다. 털썩 떨어진 팔이 흔들리면서 막내 구더기가 변기 안으로 떨어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배 안에서 움직이는 자의 느낌은 없었다.

“데...데에... 데갸아아아아악!”

퍼렇게 질린 표정으로 친실장은 잠시 어쩔 줄 모른 채 멍하니 있더니, 다시 배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뿌다다다닷.... 뿌직...’

출산하면서 자와 함께 운치를 많이 쌌기에, 배 안에는 운치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 힘을 준 것으로 운치가 순간 뿌지직 나오더니, 이내 총구를 통해 나오는 운치는 찔끔찔끔 싸댈 정도의 양 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똥벌레인 실장석의 배 안에 든 게 거의 없음을 의미했다. 운치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힘이 풀린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데에.... 데에.... 데갸아아아악! 데갸아아아아악!”

친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천천히 가로젓더니 다시 한 번 오만 인상을 써대며 배에 힘을 주었다.

“삐직.... 삑.... 피슛...”

그러나 총구 밖으로는 새끼손톱만큼도 안 되는 양의 운치가 주룩 흐를 뿐이었고,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멎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봤자, 친실장의 총구 밖으로는 바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후에도 친실장은 몇 번이나 배에 힘을 주어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저 몸의 힘이 빠짐에 따라 홀쭉해진 배가 꺼지는 것만 느낄 뿐이었다.

“데에....데에에....데에에....”

이제 더 이상 배에 줄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일어날 힘조차 배의 내용물을 쏟아내는 데에 썼기 때문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친실장은 고개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화장실 전경의 풍경은 처참했다. 식어버린 자신의 처음 두 마리의 자, 목 없는 대장 자실장을 포함하여 처참히 죽어버린 고아 자실장 셋, 그리고 타일 바닥이 추운지 몸을 말고 떨거나 아직도 배를 치켜들고 프니프니를 요구하며 콧김을 푸슉푸슉 내뱉는 변기 밖의 구더기 넷, 운치를 맛있게 냠냠 파먹고 있는 구더기 2마리.

이것이 이 친실장이 이번 출산으로 얻은 소득이었다.

“데에....데에....데에에엥...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친실장은 얼굴을 구기며 다시 한 번 울음을 터뜨렸다. 문득 혹시나 싶은 마음에 친실장은 눈물이 흐르고 있는 두 눈을 양 손으로 닦아보았다. 그러나 양 손에 묻은 친실장의 눈물의 색은 명백히 다른 적록의 색이었다.

“데에에엥.. 데에에엥.. 데에에에엥... 오로롱.. 오로롱..”

“레후... 레후....”

제 구더기들이 타일바닥에서 식어가는 것도, 밖에는 이미 캄캄해져 고양이가 쏘다니는 것도 모른 채, 친실장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화장실 바닥에 앉아서 앵앵거리며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