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생 (상,하)



재개발 순위에서 완전히 밀려버린 동네. 그 동네의 근린공원.
실은 공원이라기 보단 방치된 공터라고 하는 쪽이 더 어울릴 정도로 모두의 관심에서 밀려나버렸다.
불법쓰레기투기와 바닥으로 떨어진 땅값에 비례하는 민도로 인해 여기저기 음식물쓰레기통이 배를 내밀고 방치되어 있었다.
구청에서 지속적으로 사태정리를 해보려 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겹치고 겹치던 것이 결국 이 꼴로 전락했다.

도심 속 정글처럼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원.
그곳엔 인간문명의 찌꺼기에 기생하는 실장석들에게 이상적인 서식지가 되었다.
당국의 무관심, 과도한 쓰레기투기, 뜸한 인적, 아직은 작동하는 화장실과 식수대.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나둘씩 기어들어온 놈들이 번식을 하고 소문이 퍼져 유입되는 녀석들로 어느새 군락지를 이룬 공원.
그런 공원의 후미진 곳에서 들려오는 태교음.


‘뎃데로게~뎃데로게~’


쓰레기 더미 안쪽에서 들려온다. 불법투기 된 대형쓰레기 사이로는 고양이나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다.
틈새 안쪽으로 약간의 빈 공간이 있고 그 가운데엔 서류함으로 자주 쓰는 푸른색 플라스틱 상자가 반쯤 뒤집혀 있다.







‘뎃데로게에~뎃데로게~’


안쪽에서 들려오는 노래소리. 목소리의 주인은 당연히 실장석. 태교음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녀석은 임신중이다.
녹색으로 변한 양쪽 눈과 부풀어 오른 복부가 그것을 증명한다.


[잘그랑~]


세탁기 위쪽에 버려져 있던 깡통에 미끄러지며 난 금속음에 임신한 성체실장은 흠칫 놀라며 입을 틀어막는다.

뚝 끊긴 태교음. 그 공백은 바람소리와 멀리서 지나가는 차의 소음이 대신한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 일이 없자, 별 일이 아니라 판단을 내리고 다시 고개를 까닥이며 배를 쓰다듬는다.
녀석이 집으로 삼고 있는 플라스틱 상자 내부에는 갖가지 가재도구와 보존식이 가득 차 있어, 그녀의 성공적 정착을 대변해준다.

잠시 숨을 고르며 손을 뻗어 500ml 플라스틱 물병을 조심스럽게 끌어당긴다.
행여나 안에 들어있는 소중한 물을 쏟을까 조심하며 뚜껑없는 패트병을 기울인다.
한쪽 다리로 물병 가운데를 받치고 입구쪽에 손을 대고 오므린 다음 살며시 물통을 기울인다.

물통의 내용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장구벌레들이 꼬물거리고 있다.
장구벌레로 들뜷는 물을 손바닥에 받는 성체실장. 손은 그대로 둔 채 고개만 숙여 혀를 날름거리며 물을 섭취한다.
혓바닥이 수면을 때리며 나는 참방거리는 소리.

한 줌의 물을 마시자 훨씬 개운한 기색으로 물병을 자리에 돌려놓는다.
내려놓을 때 진동으로 퍼지는 파동 속에서 장구벌레들은 활발히 꼬물거린다.


‘뎃데로게~뎃데로게에~뎃데로게에에~’


다시 만연의 웃음을 머금고 행복의 노래를 부르는 성체실장.

그녀는 올해 봄에 독립을 하였다. 현명한 어미 슬하에서 기나긴 겨울을 견뎠다.
허나 정작 그 어미는 봄의 도래를 보지 못 했다.
한창 날씨가 혹독한 2월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죽어버린 것이다.

집에 홀로 남아있던 그 당시 성체실장은 한동안 보존식을 조금씩 꺼내 먹으며 버텼고, 일주일이 지나고서야 어미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하였다.
그때부터 그녀는 조금 이른 독립을 이어왔다.


생명이 약동하는 봄을 맞은 성체실장은 당연하게도, 다른 동족들이 그러하는 것처럼, 임신을 하였다.
처음으로 낳은 6마리의 조그마한 생명체들. 오롯이 자신만의 것인, 그 사랑스러운 아기천사들은 얼마 뒤 태풍에 집어삼켜진다.

주변에 쌓인 생활쓰레기들은 바람을 든든하게 막아주었지만, 빗줄기만큼은 어떡게 하지 못 했다.
정확히는 속수무책이었다. 골판지는 흐믈흐믈 녹아버렸고, 살림살이들은 떠내려갔다.
세차게 쏟아지는 차디 찬 물줄기를 자신의 몸으로 막으며 어여쁜 자들을 껴안던 것이 기억난다.

여름의 딸들인 새끼들이 입고 있던 얇은 옷은 순식간에 젖어 체온을 사정없이 앗아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틈새 사이로 바람이 세차게 들이닥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언제나 행복과 사랑을 노래하던 아기들은, 제대로 된 문장도 말하지 못 하고 그저 춥다춥다만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진흙을 퍼서 틈새를 막으려 했다.
나뭇가지와 잎사귀를 주워와 어떤 형태로든 지붕을 만들려 했지만 허사로 돌아갔다.
진흙벽은 무너져 내렸고, 임시지붕은 세찬 물줄기 아래 바스라 졌다.


빗줄기가 정점에 이른 날, 사랑스러운 자들의 몸을 축 늘어졌다.
기분 좋을 정도로 따스한 자들의 몸은 햇볕 아래 조약돌처럼 뜨거워져 깜짝 놀랄 정도였고, 숨소리 또한 얕아져 간신히 테휴-테휴— 소리만 내고 있었다.
살결에 착 달라붙은 젖은 옷 아래로 보이는 적록색 유두와 작은 가슴팍이 조그맣게 오르내리며 그녀들의 생명의지를 증명했으나, 몸의 상태는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형편좋은 물건이 아니다.

차갑게 식은 손으로 자들의 몸 여기저기를 주물러줬지만 오히려 더 아프다고 칭얼거리는 아이들의 호소에 관두었다.
비를 뚫고 필사적으로 구해온 먹이들을 입에 한데 넣어 한참을 오물거려 먹기 좋은 죽으로 만든다.
그렇게 만든 죽을 입에 머금고, 힘없이 누워있는 아기들의 입에 조금씩 흘러 보내주었다.

어렵사리 입에 흘려 넣은 먹이죽 이지만, 힘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아기들은 기침을 하며 거의 절반을 토해낸다.
억지로 뱃속이 쥐어짜지는 고통에 온 몸은 빗물과 식은땀으로 더욱 젖어들었다.
한 차례 토하면 눈물자국으로 엉망이 된 눈을 감고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한 차례 시련을 무사히 넘긴 줄 알고 숨을 돌리던 일가에게, 죽음이 쐐기를 들고 찾아왔다.


가장 조그마했던 막내가 시작이었다.

비가 내린 이래 만성적인 경련은 있었지만, 이전과는 전혀 비교되지 않는 격렬한 움직임으로 경련을 하였다.
온 몸이 잘그락거리는 통증에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는 막내는 제대로 열리지도 않는 입을 오물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보랏빛으로 변한 입술을 간신히 움직이며 아프다아프다 만을 중얼거리는 막내의 모습에 어미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얼굴을 핥아주고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젖을 물렸지만 이내 움찔하는 몸짓과 함께 울리는 건조한 파열음.
[파킨..!] 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거짓말처럼 막내의 몸은 축 늘어졌다. 생글생글했던 적록색 눈알은 잿빛으로
변색되었다.

죽음은 일가에게 슬퍼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차례차례, 막내와 같은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동시다발적 재난에 어미는 그저 우왕좌왕만 할 뿐이었다.


드디어 비가 그치고 해님이 비구름을 밀쳐낸 그 날, 친실장은 차갑게 식어버린 어여쁜 6마리의 자들의 시신을 껴안고 울고 또 울었다.
해님에게 왜 이리 늦게 왔냐고 화를 내보고 어째서 차가운 물을 막아주지 않았냐고 벽을 때렸지만, 아기들의 눈빛이 탁한 잿빛에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 날들을 교훈삼아 친실장은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둥지를 개선했다.
잃어버린 가재도구들과 보존식들을 악착같이 긁어모았다.
그리고 가을꽃이 흐드러지게 핀 가을날, 몇 개월간의 숙원을 결행한 것이다.


‘뎃데로게에~’


속삭임에 가깝게 소리를 죽이고,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는다. 뱃속의 아기들은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인지 활발하게 춤을 추는 모양이다.
이따금씩 뱃가죽 위로 불쑥불쑥 솟는 태아의 신호. 그 건강미에 더없이 기뻐하며, 성체실장은 언제까지고 배를 쓰다듬는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날.
임신을 대비하여 먹이를 긁어모은 덕에 식량은 별로 걱정할 것이 아니었다.
다른 실장석들이 살금살금 움직이며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둥지 안에 웅크린 그녀.

태교의 일환인 것인지 아니면 그냥 본인이 재밌어하는 것인지 풀과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엮으며 지붕을 만들고 있었다.
가느다랗게 흥흥~하는 콧노래를 부르며 지붕을 손본다.

그 순간 움찔하는 느낌과 함께 둔한 진통이 뱃속에서 전해진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재잘거림.
평소와는 다른 격한 움직임에 직감한다. 자들이 나올 때가 되었다는 것을.


‘데에에....’


한 쪽 손을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실장석. 후욱후욱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일어선다.
요 며칠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바람에 갑작스런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 한다.
적응하기 바쁜 다리는 약간 후들거리며 늘어난 체중을 지탱하려 애를 쓴다.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는 성체실장. 갈라진 총구 살이 살짝 움직이며 찐득한 애액이 주륵 흘러나온다. 팬티는 벌써 흥건하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간 그녀는 낮은 출입구 앞에서 몸을 숙인 다음 기어서 통과한다.
꼬불꼬불 복잡한 통로를 지나 밖으로 나간다.


‘데스~’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주변에 보이는 다른 동족들은 한가로이 노닐거나 채집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먹이도 풍부하고 인적도 드물면서 물자가 널린 이곳의 이웃들은 자신들의 넉넉한 보존식 창고만큼이나 마음에 여유가 있었고, 덕분에 그 누구도, 한심할 정도로 취약해 보이는 만삭의 실장석을 건드리지 않았다.

가을에 임신했다 해도 별로 이상한 광경은 아니다. 비상식량과 노예로 쓸 추자를 낳는 것은 흔했으니깐.
실제로 주변을 둘러봐도 녀석과 같이 양 쪽 눈 녹색인 실장석들을 금방 찾아낼 수 있다.
다만 차이점이라곤 다른 녀석들 주변으론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춘자들이 뛰놀고 있고, 우리의 주인공은 그렇지 않다는 점.

다시 한 번 자신이 홀몸이란 것을 인지하지만, 외로움도 잠시, 흐릿한 웃음이 번진다.


‘데프프픗...’


뱃속에서 약동하는 작은 생명들. 자신도 곧 마마가 된다. 다시 한 번 자를 잔뜩잔뜩 가질 수 있다.
인간들이 봤다면 박장대소할 만한 우스꽝스런 걸음걸이로, 성체실장은 자신이 아는 수원지로 향한다.


얼마간 걷자, 도착한 목적지. 구석에 버려져 있는 공중화장실이다.
정말로 용무가 급한 사람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쓰지 않아 물때와 곰팡이들이 온데 피어있었다.
누런 바닥 타일은 이곳을 드나드는 주 이용객을 대변하듯, 초록색 얼룩으로 여기저기 번져있었고, 구석에선 가느다란 미성숙 개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자박거리는 발걸음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성체의 모습은 안에 있던 이웃들을 놀래킨다.







안쪽 구석에 모여 있던 독라의 엄지들이 흠칫 놀라며 소리의 진원지로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성체의 모습은 미성숙 개체들에게 있어 언제나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생명의 동아줄이다.

‘데에....’

어두운 구석에서 빛나는 몇 쌍의 눈동자. 웅크리고 있는 독라의 엄지들과 그녀들이 안고 있는 구더기들이다.
버려진 녀석들. 자신의 배에서 나온 새끼들을 먹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어미로부터 버려진 녀석들이다.
자신들의 운명을 저주하고 세상을 비관하지만, 그녀들은 자신들이 살아있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먹이가 풍족하여 옷과 머리만 빼앗고 버려진 것이지, 살림살이가 팍팍한 군락지였다면 그녀들은 변소노예 혹은 특별식으로 그날 생을 마쳤을 것.
하지만 여전히, 보호자가 없는 이상, 얼마가지 않아 수십 가지의 다양한 이유로 죽을 것이 정해진 그녀들.


엄지나 구더기는 열심히 키워봐야 다음 봄까지 절대로 성체로 자랄 수 없다.
다른 자들을 독립시키고도 몇 달을 더 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들실장들의 삶에 있어서 절대 불가능한 이야기. 도저히 부담할 수 없다.
보통은 노예 혹은 비상식으로 쟁여두지만, 풍족한 생활만큼이나 높아진 가족애가 이렇게 목숨만은 살려서 쫓아낸 것이다.

굳게 닫힌 문을 두들기고 애원해도, 밥을 구하러 떠나는 어미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져도,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주먹질 뿐이라는 걸 학습하고 이렇게 모여든 것이다.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의식 없이, 그저 뭔가가 잘못되었고, 여기서 기다리다 보면 상냥한 마마가 돌아와 자신을 꼭 안아들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 굳게 믿으며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레츄우...’
‘레후...레후....’

품에서 꼬물거리며 본능적으로 젖을 찾는 구더기. 입을 뻐끔거리던 구더기는 혀를 날름거리며 엄지의 가슴팍을 더듬었고 이내 엄지의 튀어나온 유두를 탐지하자 덥석 문다.

‘...찌이...’

살짝 찌릿한 느낌에 움찔하지만 이내 구더기가 혓바닥으로 열심히 핥는 동시에 쪽쪽 빠는 그 감촉에 얌전해진다.
그렇게 빨아봤자 젖이 나올 리가 없지만, 그저 빨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의 미소를 흘리는 구더기.
엄지는 그런 구더기에게 쓸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살살 흔들어준다.

버려진 녀석들에서 눈길을 거두고, 안쪽 화변기로 걸어가는 성체실장.

그럼에도 엄지들은 괜히 상대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 그림자 안쪽으로 기어들어가 엉덩이를 붙인다.
그 순간 발치 아래로 또 한 마리의 구더기가 기어와 방긋거리며 배를 뒤집는다.

‘프니프니후~프니프니후우~’

분홍빛이 감도는 총구 주변으론 짙은 녹색의 똥딱지가 굳어있었다.
구더기는 가벼운 복통을 호소하며 꼬리를 살랑인다. 엄지는 약간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짓지만, 유전자 단위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은 이를 무마한다.
한쪽 손으로는 젖을 빨고 있는 구더기를 안고, 남은 한 손으론 배를 내민 구더기에게 프니프니를 해준다.

딱딱하게 응어리진 뭔가가 풀어지는 느낌과 함께 물똥을 푸쉬쉭 흘리는 구더기.
기분이 좋아졌는지 살랑살랑 웃으며 엄지의 허벅지에 묻은 자신의 똥을 핥아먹는다.

‘레후우~레후우~’

그 간지러운 느낌에 키득거리는 엄지는 옆에 있던 다른 엄지에게 손짓을 한다.
허나 그 엄지는 아까부터 뭔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쫓으면 방금 성체실장이 들어간 화장실칸의 문이 있다.
반쯤 열린 문 안 쪽에선 진통에 용을 쓰는 신음소리가 세어나오고 있다.

‘레치이....’

출산 중인 성체는 굉장히 사납다.
일전에 괜한 호기심을 불태우며 가까이 갔다가 끔찍하게 찢겨진 동료의 운명을 떠올리면 따듯한 날씨에도 몸서리가 쳐진다.
구더기를 안고 있는 엄지는 앞에서 서성이는 동료에게 안쪽 구석으로 돌아오기를 재차 권한다.

‘레칫...!’

뭔가를 결심한 듯 자박자박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타일 틈 구석구석에 난 이끼를 밟아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아가는 동료의 모습에서 눈길을 돌리며, 고개를 내젖는다.
제발 저 바보의 행동에 불똥이 튀지 않기를 빌며, 몸을 밀착하여 서로의 체온을 나눈다.





‘데에....데즈우우....! 데즈우....!’

참방하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들리는 미끄러지는 소리.
연둣빛 점막에 싸인 자실장이 가픈 숨을 씩씩거리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 아래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녀석은 사지를 감싸고 있는 점막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를 쓴다.

조금씩 옴싹 거리는 그녀의 노력은 결실을 맺고, 다리 부분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여, 이내 갑갑한 점막을 벗어던진다.

물기로 가득 차 촉촉한 눈을 끔뻑거리는 장녀가 처음 본 것은 붉은 색 눈물을 흘리며, 경이로 가득 찬 얼굴을 한 마마였다.
세모꼴 입꼬리가 양옆으로 올라가 웃음이 번지는 동시, 그녀는 온 행복과 감사를 담아 힘차게 운다.

‘텟테레~♪’

우렁찬 탄생음으로 세상으로의 데뷔를 알린다.
처음 쓰는 다리가 익숙지 않아 도로 자리에 주저앉은 장녀는 눈을 끔뻑이며 주위를 둘러본다.
허벅지만큼 물이 고여 있고 사방은 하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화변기 안쪽에서도 볼 수 있는 걸레와 기타 청소용구, 휴지롤, 버려진 쓰레기들로 가득하여 갓 태어난 자실장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다시 한 번 다리를 세우고 벽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그녀를 참방하는 소리가 붙잡는다.







‘....찌이...찌....’

점막에 싸여있는 자매. 자신과 똑같은 모습. 전기 맞은 듯 양갈래 머리가 쭉 일시에 펴졌다 도로 내려간다.
새끼의 활발한 놀람의 표현일까. 약간 불안한 걸음걸이로 반가움에 앞서 다가간다.
끈적한 점막 아래서 호흡이 곤란한 듯 후우후우 거리는 동생짱.

벌써 생긴 책임감인걸까, 아니면 본능인걸까. 장녀는 혓바닥을 내밀고 부지런히 차녀를 핥아준다.
끈적한 점막이 길게 늘어나 혓바닥은 물론 입 주변에 엉망진창으로 묻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입을 짭짭거리며 삼킨 장녀는 부지런히 동생의 점막을 취해준다.

자루에 싸인 듯 웅크린 자세였던 차녀는 점막이 사라짐에 따라 몸이 스르르 흘러내리며 곧바로 해방되었다.
언니와 마찬가지로 물기가 가득 찬 눈꺼풀을 깜빡이더니, 드디어 자신이 세상에 나왔음을 깨닫는다.

‘테에....텟테레~♪’

기운찬 탄성음을 내지르는 모습에 어미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시 밀려오는 진통에 집중한다.
너무나 어여쁜 자들이다. 당장이라도 안아주고 싶지만 출산이 진행 중이다.
힘겹게 힘겹게 출산을 반복했고, 그녀는 이후로 3마리의 자를 더 낳았다.

총구가 벌어지며 자매가 흘러나오면 아래의 자실장들은 반가움에 인사를 하며 부지런히 동생들의 점막을 걷어내주었다.
그리고 반복되는 탄생음.


간만의 공복감이 느껴지자 출산이 끝났음을 깨닫는다.
뻐근한 고개를 돌려 내려보면 좁은 화변기 안을 뽈뽈 돌아다니는 5마리의 자가 있었다. 장녀 품에 안겨 있는 것은 선천적 구더기다.
4마리의 자실장과 1마리의 구더기를 낳은 친실장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한 마리 한 마리 화변기 바닥에서 들어 올린 후 얼굴을 듬뿍 핥아준다.

까슬까슬한 혓바닥이 뽀송뽀송한 뽀얀 피부를 긁을 때마다 간지럽다 중얼거리며 키득이는 아이들.
마치 의식을 치르듯 구석구석 핥아주곤 화변기 옆에 올려준다.

‘테츄우~텟츄우우~♪’

‘레후레후? 레후우...’

‘테치이! 테치테치이!’

휴지통을 콕콕 쑤시는 삼녀, 구더기를 안아들고 노래 부르는 장녀, 듀엣 춤을 추는 차녀와 사녀.
저마다 달랐지만 하나같이 생명력과 호기심을 활활 태우는 모습에 친실장은 안심한다. 어느 누구라 할 것 없이 건강한 자들이다.
자신은 다시 한 번 마마가 된 것이다.

지난여름 떠나보내야 했던 6마리 새끼들의 환생인 듯, 하나같이 귀엽고 어여쁜 자들이다.
몸을 추스르고 변기통에서 나오고서도 한참을 꼭 껴안고 다시 안는 짓을 반복한다.
그것을 간신히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결심한 때엔 벌써 해가 서쪽으로 향하기 시작한지 오래.

‘데스우~’

즐거운 울음소리를 내며, 아기들의 엉덩이를 살살 밀며 앞으로 인도한다.
집으로 갈 시간이다. 맛있는 맘마와 폭신폭신 침대가 기다린다.
기대를 들떠 토실토실한 허벅지와 엉덩이살을 흔들며 길을 나서는 일가.


한편, 그녀들 뒤로 낮선 그림자가 하나 따라붙는다.

‘레치이...♪’

조그마하여 약간 빠르게 보조 맞추는 것만으로 숨이 차지만, 자신에게도 행복이 전염되는 느낌에 입에는 환한
함박웃음을 띤 엄지. 엄지는 어미로부터 버려져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미숙아였다. 엄지라는 것을 알자마자
비정하게 자신을 버린 가족과 달리, 저 가족은 아무리 구더기짱이라도 버리지 않는다.

소중하게, 진짜 가족으로서 껴안고 행복의 노래를 불러주고 잔뜩 핥아주고 있다.

그 즐거운 모습은 자신의 상황과 대조되어 귀꼬리가 축 쳐진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저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꽤 벌어진 간격에 귀여운 신음을 흘린 엄지는 아장아장 뛰며 그 가족을 쫓는다.

‘...치이! 레치, 레치, 레치’

얕은 화장실 앞 턱을 폴짝폴짝하고 뛰어내리는 자실장들, 구더기를 안은 장녀는 살며시 발을 내딛어 안전을 확인하고서 내려간다.
그런 장녀의 기특함을 칭찬해주며 친실장 또한 턱을 넘어 내려간다.
딱딱한 화장실의 타일바닥이 아닌 부드러운 흙바닥을 생애 처음으로 마주한 자실장들은 그 쿠션감에 신이 나 폴짝폴짝 사방으로 뛰어나간다.

약간 걱정스러운 맘에 부지런히 아이들을 불러 모으려 해도, 흥분에 젖은 자실장들을 말릴 수 있는 수단은 별로 없다.
착실한 장녀와 그 품에 안긴 구더기를 제외하곤 3마리의 자실장들은 저 앞으로 뛰어나가면 한껏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제멋대로 나아갔다.

‘레에...레치이....레치이...’

한편 일가의 뒤를 쫓고 있던 엄지실장은 자신의 기준에선 제법 높은 턱을 앞에 두고 곤란에 빠졌다.
자실장 정도만 되도 장난스럽게 폴짝 뛸 높이였지만, 안 그래도 미숙아에 영양까지 부족하여 제대로 성장하지 못 한 엄지실장에겐 꽤 부담스러운 높이.

‘레에...레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안절부절못해 하는 사이, 저 앞의 친실장은 벌써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집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저 수풀 안쪽으로 사라지면 영영 놓칠 것 같은 위기감에 엄지는 표정을 굳히고 눈을 감는다.

‘레에.....레칫!’

수심이 깊은 물로 뛰어드는 동네아이들처럼 폴짝 뛰어내린다. 하지만 불안한 점프 자세에 발끝이 턱에 걸려 우당탕 넘어지고 만다.
작은 엄지의 몸은 돌팔매 하듯 사정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레챳!...레에...레치이잉.....’

욱신거리는 왼발을 움켜잡지만 더 한 통증에 깜짝 놀라며 손을 뗀다. 진동하는 듯 한 통증.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리고 싶었지만, 그래봐야 그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을 돌봐주는 누군가에게 몸을 의탁해야한다.

그 절박한 심정과 막연한 기대감으로 앞에 보이는 친실장 일가를 따라가고 있는 것을 다시 생각해낸 엄지실장은 통증과 서러움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두 발로 선다.

‘레에...레치이...레치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풀밭 사이를 뚫고 행진하는 6마리의 일가족.
장난끼가 많은 자실장들은 벌써 어디선가 주은 나뭇잎을 우산인양 쥐고 있다.
멀어지는 일행의 모습에 엄지실장은 다급하게 손을 뻗으며 소리 지른다.

‘레치! 레치레치이! 레치이!’

풀벌레소리보다 가녀린 그 소리가 풀숲을 헤쳐 나가고 있는 친실장 일가에게 들릴 리는 없었다.

쩔룩이며, 얼굴은 온통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된 채 손을 뻗고 달려오는 자그마한 엄지실장의 존재는 끝내 주목받지 못 했다.
일가의 모습은 잡목림 안쪽으로 완전히 사라졌고,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들은 약간 간격이 벌어졌다 도로 제자리로 돌아와 그녀들의 흔적을 가려준다.

‘레에....레치이...레치이이.....레챳!’

울먹이며 쫓아가는 엄지실장은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비명을 꽥 지르며 그대로 뒤로 나동그라진다.
어떤 쿠션 역할도 하지 못 하는 벌거숭이 뒤통수는 넘어지는 데미지를 그대로 뇌로 전달할 뿐이다.
양쪽으로 욱신거리는 통증에 그만 엄지는 울음을 터트린다.

‘레에에엥..!! 레에에엥...레에에에엥...!’

발바닥에 박혀버린 돌멩이가 빠져나와 또그르르 바닥에 구른다. 끝머리 부분에 약간 묻어 있는 핏방울.
좁쌀만도 못 한 상처에 엄지는 대성통곡을 하며 바닥을 땅땅 두들긴다.
지금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울음소리를 듣고 돌아올 가족들을 기대하며.
이따금씩 지나가는 실장석들은 부지런히 나뭇잎과 먹이를 모을 뿐, 조그마한 독라의 엄지실장의 모습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친다.


한참을 울고 또 울어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되자 힘이 쭉 빠졌다.
늘어진 몸을 질질 끌고, 얕은 화장실 입구의 턱에 몸을 기댄다.
퉁퉁 부은 눈을 한 엄지. 아무거나 주워 먹는 바람에 발생한 피부트러블로 피부는 거뭇거뭇 엉망이다.

불어오는 시원한 가을바람에 약간 몸을 움츠린다. 이럴 때일수록 생각나는 마마의 모습.

녀석의 어미는 처음부터 엄지의 양육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처음은 어떻게든 키워보려 했다.
하지만 작은 체구로 믿겨지지 않을 정도 먹어치우는 먹이의 양에 질려버려 버린 것이었다.
제멋대로 똥을 싸고 툭하면 울음을 터트리는 습성은 어미의 결정을 더욱 손쉽게 만들었다.

뱃속에서 들은 태교의 노래.
잠시간이었지만 맘껏 먹을 수 있었던 맛있는 음식물쓰레기들의 풍미를 떠올리며 엄지는 눈을 감는다.

‘레츄우~레츄웅~레츄우우~’

드문드문 기억하는 행복의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화장실에서 약간 떨어진 친실장의 둥지.
평소 쓸쓸했던 집은 해가 저물었어도 대낮같이 환한 분위기였다. 언제나 홀로 있던 큰 공간이 좁아진 느낌이었다.
사방팔방으로 방방 뛰는 5마리의 아기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친실장의 가슴은 자부심으로 부풀어 오른다.

‘데에...데스데스우~’

뭔가 생각난 듯이 식사시간을 선언한다.
태어나서 첫 식사에 잔뜩 기대를 하는 10쌍의 적록색 눈빛.
친실장은 토굴을 들추고 꺼내든 것은 말라비틀어진 4개의 곱등이 시체.
각자의 앞에 하나씩 놓아준다.
처음 보는 맘마의 모습이 신기한 듯 곱등이 다리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거나 냄새를 맡는다.
그런 아기들의 모습도 사랑스러운 어미는 식사를 재촉한다.

아직 이빨이 나지 않아 고형물을 먹을 수 없는 구더기.
보통 구더기에겐 똥을 먹이는 것이 상식이지만 오매불망 새끼를 기대하던 이 친실장에게 모든 아기는 자신의 소중한 아기였다. 똥을 먹이다니 말이 안 된다.

마마의 손에 안겨 꼬물거리며 기뻐하는 구더기를 조심스럽게 올려들어 젖을 물린다.
힘차게 빠는 혓바닥을 느끼며 약간 볼을 붉힌다. 그 사이, 장녀가 제일 먼저 뒷다리를 베어 먹었다.

‘텟츄!’

고소한 맛이다. 맘에 든다. 이내 텟츄텟츄 재잘거리며 닭다리를 뜯듯이 양손으로 집어 들고 게걸스럽게 먹는다.
맛있게 먹는 언니의 모습에 확신을 얻은 자매들도 이내 식사에 동참했고, 잡담으로 시끄러웠던 둥지는 아작거리는 소리와 쯔읍거리는 소리만이 감돈다.
휘영청 걸린 달은 무심하게 동쪽으로 이동할 뿐.











‘테에에엥-! 테에에엥-!’

청명한 아침하늘을 깨는 자실장 울음소리. 그 소리는 생활쓰레기 무더미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쓰레기 무더미 안에 둥지를 튼 현명한 친실장은 오늘도 어김없이 울음을 터트린 응석받이 삼녀를 달래기 정신없다.
자신의 아래로 동생이 둘이나 있는 데도 마냥 어린 녀석. 언니와 대조되는 사녀는 구더기에게 프니프니를 해주고 있다.

‘레뺘~♪’

난처한 눈빛을 한 가족의 얼굴을 전혀 읽지 못 하고 그저 물똥을 지리며 기뻐하는 구더기.
그 옆에선 삼녀가 반-양반다리로 털썩 주저앉아 울음소리를 높인다. 오늘도 같은 이유다.

마마와 헤어지기 싫다.

아무리 풍족한 서식지라 해도 여전히 위험은 상재한다.
고양이나 까마귀 같은 천적은 예측불허의 장소에서 습격을 가해오고, 가끔이지만 인간들이 드나드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동족끼리 시비 내지는 과도한 경쟁이 붙었을 때 성체들 사이에 낑긴 자실장은 그야말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되기 십상.

그래서 자들에겐 언제나 둥지 안에 얌전히 있기를 당부하고 홀로 수집을 나가지만, 삼녀는 그런 어미의 생각을 이해하지 않는다.
유난히 애정이 깊어 어미의 어미의 끝없는 관심과 사랑을 요구하는 삼녀. 새끼의 사의없는 투정에 어미는 결국 항복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데스데스우....’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방금 전까지의 기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방긋방긋 거리며 제 자리를 돌며 춤을 춘다.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삼녀의 손을 꼭 쥔 채 친실장은 남은 4마리의 자들에게 인사를 남긴다.

‘테츄테츄우~’
‘레후우~’

저마다 조그마한 손을 파닥파닥 흔들어 잠깐의 작별을 고한다.
구더기도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언니들이 하는 것과 비슷하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다시 저마다의 놀이로 돌아가는 자들을 뒤로 하고, 친실장과 삼녀는 고개를 숙여 좁다란 터널을 기어간다.

‘텟츄웅~♪ 텟츄웅~♪ 텟츄우웅~♪’
‘데스데스~’

입구를 빠져나오자마자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어미 주변을 깡충깡충 도는 삼녀.
눈물자국이 채 마르지 않은 얼굴이지만 방금 전까지의 울상은 온데간데없다.
어쩔 수 없는 아기인 데스...하고 중얼거리는 친실장은 폴짝폴짝 뛰는 삼녀의 한 손을 붙잡고 먹이수집에 나선다.





낙엽은 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지천으로 널려있어서 충분했다.
다만 아무리 모아도 부족한 것은 보존식. 먹이 자체는 풍부하지만, 보존식으로 조건이 갖춰진 것은 드물다.
나무열매나 곤충사체, 그리고 아주 예외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과자부스러기.

운이 좋은 날이라면 간간히 얻는 먹이들이다. 하지만 삼녀를 데리고 나간 순간부터 그것들을 저축하긴 글렀다.
몇 번인가 발견했던 과자는 전부 삼녀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보존식으로 아껴야한다고 일러도 바닥에 드러누운 채, 간식을 주기 전까진 아무데도 안 가겠다 떼를 쓰며 엉엉 울어댔고, 결국 친실장은 매번, 금쪽같은 보존식을 삼녀의 특별간식으로 줄 수밖에 없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열심히 오가며 열매를 줍고, 열매가 보이지 않자, 쓰레기 수거장으로 향한다.
구청에서 지정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주민들은 불법투기를 일삼았고, 결국 암묵적으로 정해져버렸다.
언제나 너저분한 이곳은, 자연스럽게도 실장석들이 몰려들었다.


잿빛 담벼락을 지나, 딱딱한 돌바닥을 밟으며 도착했다. 이미 몇 번 와봤으면서 매번 신기한 광경.
삼녀는 눈을 빛내며 쓰레기봉투 위로 올라가 미끄러져 내려오는 놀이를 한다.
그런 삼녀를 한쪽 눈으로 잘 마크하며, 친실장은 본격적으로 수집활동을 한다.

[부스럭...부스럭부스럭....]

뭉툭한 손을 제법 요령 있게 놀리며, 비닐 속 내용물을 뒤진다.
묶여있는 것은 굳이 매듭을 공략하지 않고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 부분을 이빨로 물어뜯은 후 옆으로 길게 찢는다.
벌어진 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이리저리 뒤적이는 친실장.
딱히 보존식으로 쓸 만한 것은 없지만, 단기간 식사론 적당한 음식물쓰레기는 얻을 수 있었다.

삼치찌꺼기, 연골이 달랑거리는 닭뼈, 시금치와 김치쪼가리들이 뒤섞인 밥덩어리....모두 봉투에 집어넣는다.
국물이 아직 마르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가 안에 있던 열매와 들러붙는 것을 아랑곳않고 모두 털어넣는다.

‘데스...데스....데에엣! 데슷!’

대단한 것을 발견한 양 탄성을 내지르는 친실장.
그 모습에 삼녀는 올라타 있던 쓰레기봉투에서 폴짝 뛰어내려 포르르 달려가 마마의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자신에게도 보여 달라 외치는 자의 요청에 친실장은 손에 쥔 것을 내보인다.







그것은 플라스틱 물병이었다. 뚜껑도 제대로 있는 것.

활짝 웃는 어미와 대조되게, 삼녀는 대체 이딴 재미없게 생긴 것이 뭐가 그리 좋은지 이해할 수 없다.
손을 뻗어 그 투명한 병을 톡톡 두들긴 것을 마지막으로 흥미를 완전히 잃는다.
도로 자신만의 놀이로 돌아간 삼녀에게 등을 돌린 친실장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변을 정리한다.

오늘은 온전한 물병 하나만으로 충분히 원정의 가치는 있다고 판단한다. 다시 탐색으로 돌아가는 친실장.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어느새 해는 정가운대를 지나고 있다.
오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친실장은 슬슬 손을 털기로 한다.
때와 기름기로 얼룩진 옷은 처음 태어났을 때의 선명한 연녹색이 아닌 짙은 국방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원정 중 생긴 상처로 여기저기 헤어진 옷을 추스르며 짐을 정리한 다음, 옆에서 솜뭉치를 배게삼아 자고 있던 삼녀를 조심스럽게 깨운다.

칭얼거리며 일어난 삼녀의 손을 꼭 붙들고 집으로 향하는 모녀.

이렇게 태양이 정가운데를 지나고 있느면 바깥일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해야한다.
출퇴근•하교 시간이라는 개념은 모르지만, 경험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조금 있으면 인간들이 한산한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나마 그 시간도 정해진 것이 아니다. 약간 빨라질 수도 늦어질 수도 있지만 위험은 사전에 회피하는 것이 상책.

어중간한 오후의 거리는, 꾀죄죄한 들실장 모녀가 마음 놓고 다닐 수 있을 만큼 한산하다.
오늘 하루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소중한 물병을 얻을 수 있어 약간 흥이 난 친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한 손으론 어미의 손을 꼭 붙들고 주변 풍경을 두리번거리던 삼녀는 기분 좋게 들려오는 마마의 허밍음에 고개를 돌린다.
어미는 그런 자를 내려보며 흐믓한 미소를 보내준다. 거기에 답하는 듯 삼녀의 얼굴에도 또한 베시시 웃음이 번진다.
대화없이 그저 마주 웃으며 집으로 향하는 두 모녀.

한편 그런 두 모녀를 쫓고 있는 한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약간 기대에 차 있으면서 동시에 절박함이 섞여있는 그런 눈동자.
그 주인은 엄지손가락 만한 새끼 실장석.

‘레치이~레치이~레치이이~’

조그맣게 지저귀는 엄지의 울음소리. 리듬에 맞춰 토닥거리는 작은 발걸음 소리. 맨발로 모래를 바스라뜨리는 소리.

서로 마주보던 모녀가 고개를 돌려보면, 옆에서 따라오는 엄지실장이 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되레 그쪽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슬그머니 따라온 주제 엄지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삼녀와 친실장의 꼭 붙든 손 사이로 고개를 스윽 내민다.
짧은 보폭으로 자실장과 성체실장의 걸음을 따라가느라 숨이 거칠었지만 적록색 눈동자만큼은 희망으로 빛내며 즐거운 울음소리를 낸다.

‘렛츄웅~♪’

삼녀에게 있어 이것은 처음 보는 작은 동족. 하지만 옷도 없고 머리카락도 없었다.
발가벗은 몸 위로는 그간의 녹록치 않은 삶을 반영하듯 상처자국과 멍자국, 기타 얼룩들로 지저분했다.
낯선 동족의 정체는 모르지만 뭔가 더럽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기억해둔다.

‘테치이....’

정체도 모르는 더럽고 작은 동족과 가까이 하기 싫은 삼녀는 재빨리 마마의 손을 놓고 반대쪽으로 달려가 그쪽의 손을 붙잡는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은 듯 어미의 허벅지에 몸을 숨기고 독라의 엄지를 힐끔거린다.

‘렛치이~♪’

친실장의 빈손을 보고 손뼉을 한번 짝 치는 엄지실장의 얼굴은 뜻하지 않은 행운을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재빨리 손을 뻗어 눈 앞 성체실장의 손을 잡으려하지만 워낙 심하게 차이가 나는 체구로 인해 잡을 수가 없었다.
무릎 언저리도 닿지 않는 작은 키로는 상대가 허리를 숙이지 않는 이상 손을 잡는 것이 불가능했다.
엄지실장은 힐끔 눈을 돌려 친실장의 얼굴을 살핀다.

흐린 얼굴의 친실장은 최대한 엄지를 무시하며 발길을 재촉할 뿐.
이따금 걱정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삼녀에게 괜찮으니 걱정말라 다독이며 집으로 걸음을 서두른다.
친실장은 이 아이들에 대해 알고 있다.

‘고아들’

풍족한 서식지지만, 여전히 들생활은 팍팍한 법.
성장도 더디고, 그렇다고 먹는 양이 적은 것도 아니며, 노동력에 도움도 되지 못 하고, 몸도 약해 쉽게 죽을 수 있는 엄지나 구더기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가족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워낙 서식지가 풍족하다보니 윤리의식이란 것이 희미하게나마 존재하는 것이다.

덕분에 녀석들은 겨울에 유용한 머리카락과 옷만 빼앗고, 내쫓는 것이다.
차마 자신의 손으로 죽이거나 먹을 수 없으니 대자연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떠넘기는 것.
보호자를 잃고 방황하는 이 독라들은 자신을 감싸줄 수 있을 것 같은 상대를 보기만 하면 앞뒤 안 가리고 보호를 기대하며 들러붙는 것이다.

얼굴에는 비굴한 미소를 실실 흘리며 독라의 엄지실장은 친실장의 주의를 돌리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옷자락 끝을 톡톡 잡아당긴다.
친실장은 일부러 그쪽을 보지 않으며, 반대쪽 손을 잡고 있는 삼녀의 손에 더욱 힘을 주고 발길을 서두른다.
엄지는 한껏 까치발도 들어보고 점프도 해봤지만 손을 잡을 순 없었다.
...애초 성체실장이 엄지실장의 손을 잡으려면 무릎을 꿇다 못해 엎드려야하지만...

곤란함인가 아니면 다급함인가. 땀줄기가 엄지의 살구색 살결 위로 흘러내린다.
조그마한 입을 호물거리며 렛츄렛츄 어필해보지만 눈길도 주지 않는다.
조금 적극적으로 나가기로 한 것일까 엄지는 두 모녀 앞으로 나가 고개를 까닥이며 아첨포즈를 취한다.

‘렛츄웅~♪ 렛츄우웅~♪’

괜히 관여하기 싫은 어미는 잠시 멈칫하곤 간단히 엄지를 우회해서 계속 길을 걷는다.
명백한 거절의사에도 엄지는 한번으로 포기하지 않는다.
길거리 전도를 하는 교인들같은 기세로, 그 짧은 다리를 토테토테 놀리며 모녀의 앞을 다시 가로막지만 이번만큼은 확실한 반응이 왔다.

‘렛츙♪ 렛....챠아앗...!’

둔한 충격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가는 엄지.
거친 모래밭을 몇 바퀴 구르며 흙알갱이들이 사방에 튄다.
바닥에 세게 쳐박힌 엄지는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레에에...레에에...’신음을 흘린다.
얼얼한 볼따귀에 손을 대보면 화끈거리는 감촉에 화들짝 손을 뗀다.

엄지를 한 방에 날려버린 친실장은 콧방귀를 킁 뀌고 길을 서두른다.
마마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삼녀는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계속 고개를 뒤로 돌려 바닥에 자빠진 엄지를 살핀다.
허나 연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괜히 독라에게 정을 줬다간 곤란하다. 독라들과 관여해선 안 된다. 최하층인 저것들과 함께하지 마라.
친실장의 주의사항을 한 귀로 흘려보내며, 망연자실하게 엎어져 있는 엄지의 모습을 힐끔 돌아본다.

뒤편에 널브러진 독라엄지는 힘겹게 몸을 뒤로 빼고 연석에 기대어 훌쩍거린다.
조금씩 흔들리는 어깨와 커지는 흐느낌. 서러움에 아픔까지 겹쳤는지 이내 입을 크게 벌리고 엉엉 우는 녀석.
그 울음에도 모녀는 멈추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뿐이다.





‘데스우~’

‘텟츄우우-! 텟치텟치이이!’

‘레후우? 레후웅~’

좁은 터널을 다 빠져나오기도 전에 자들이 안겨온다.
장녀는 낮동안 돌보고 있던 구더기를 번쩍 안아 올리며 칭찬을 요구하듯 헤죽거리고, 차녀와 사녀는 즐겁게 어미의 곁을 맴돌며 이상한 춤을 춘다.
한동안 상봉을 마친 가족은 낙엽과 풀잎으로 여기저기 덧댄 집안으로 들어가 사이좋게 둘러앉는다.

새끼들은 곧 이어질 식사시간에 대흥분하여, 콧김을 씩씩 뿜거나 귀를 쫑긋거리며 잔뜩 기대하고 있다.
어미는 그런 아기들에게 사랑스런 눈길을 던지며, 비닐봉지에서 보존식과 오늘의 식사를 구분한다.
적당량을 계산하곤 한 줌씩 음식을 덜어내어 가운데에 내려놓는다.







다 썩어 흐믈흐믈해진 참외씨와 된장국이 묻은 수박껍데기, 김치조각들이 걸려있는 생선뼈들.
잔뜩 쉬어버려 역한 냄새를 풍기는 쓰레기를 마주한 일가는 기쁨으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맹렬한 기세로 달려든다.
시큼함 뒤에 숨어있는 고소함에 연신 맛있다 맛있다를 외치며 애교를 부린다.

아직 고형물을 먹을 수 없지만, 참외씨는 푹 삭아 혀로 핥기만 해도 허물어졌다.
시큼하면서 약간의 달콤함이 남아있는 참외씨를 한 알씩 입에 넣으며 기쁨에 몸을 떠는 구더기.
총구로는 묽은 똥이 수도꼭지 터진 듯 나온다.

‘텟츄우!’

생선뼈 위에 걸려있던 김치조각을 조그마한 손으로 집어내어 한 입에 넣는 차녀.
해물탕에 들어가 있던 것이라 약간 매운맛과 동시에 느껴지는 담백한 맛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씹어 먹는다.
입주변과 옷 위로 갈색 국물을 뚝뚝 떨어뜨리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질겅질겅 씹는다.

김치조각을 씹어 삼킨 후에는 생선가시들을 하나씩 구부려 손으로 잡은 후 질겅질겅 씹었다.
뼈 속에 있던 물이 스며 나오며 색다른 맛을 선사한다.
주택가에서 나온 며칠 묵은 지도 모르는 음식물쓰레기로 한껏 밝아진 일가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찬미한다.
무사히 끝난 오늘 하루를 축복하고, 내일도 이런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식사를 마친 후에는 세면의 시간이다.
인간의 기준에서의 세면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일가의 세면시간. 들생활에서 금쪽같은 물로 씻는 것은 어불성설.
별 것 없이 서로의 옷 얼룩을 입으로 쪽쪽 빨아주거나, 얼굴을 서로 핥아주는 것이 고작이다.

‘레후웅~’

장녀가 핥아주는 것이 간지럽다는 듯 꼬리를 꼬물거리며 언니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구더기.
그 옆에는 차녀와 사녀가 마주보고 앉아 키스를 하듯 얼굴을 포개고 열심히 서로의 얼굴을 핥아주고 있었다.
입에 기생하고 있는 기생충과 음식물쓰레기를 주워 먹고 자라 역한 냄새가 나는 침을 얼굴에 바르고 있지만, 들실장 기준에선 별것 아닌 듯,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
오히려 전보다 상큼해지는 기분에 노래를 흥얼거린다.

기특한 장녀는 구더기의 총구 안쪽까지 혀를 넣어 살뜰히 핥아주고 나서야 동생을 풀어주었다.
약간 고양된 표정으로 하고는 레후레후 울어대며 집 안 여기저기를 기어다니는 구더기.
장녀는 혓바닥에 침을 잔뜩 낸 다음 손바닥에 흘려 내린다.

오므려진 손바닥에 진득하고 기포가 잔뜩 섞인 침이 고이자, 세수하듯 그것을 얼굴에 비빈다.

점액질의 침이 비벼지며 질척한 소리를 내며 얼굴 구석구석 로션 바르듯이 바른다. 눈 주변을 안마하듯 골고루 비비면 누런 눈곱이 투투둑 딸려나온다.
그렇게 ‘세수’를 하고는 개운한 듯 노래를 부르며 집안을 총총 뛴다.







자매들이 그렇게 나름대로의 ‘세면’에 바쁜 때에 삼녀는 한가하다.
강아지가 복종의사를 표시하듯 배를 까고 누운 자세를 취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칭얼거리고 있었다.
애교어린 칭얼거림으로 녀석은 마마에게 세수를 시켜 달라 조른다.

‘치이-치이-♪’

이제 막 자신의 침으로 세수를 마친 친실장은 아기의 귀여운 울음소리에 돌아본다.

배를 깐 채 드러누워 있던 삼녀는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뒤로 누운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고, 옷은 말려올라가 녹색으로 찌든 팬티를 훤히 내보인다.
애교를 부리는 듯 몸을 베베 꼬던 녀석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대로 아첨을 한다.

‘텟츙~♪ 텟츙~♪’

동생인 사녀도 혼자서 어엿이 해내는 세수를 마마에게 시켜달라는 삼녀.
허나 그런 삼녀를 바라보는 어미는 훈육을 하긴 커녕, 귀찮아하는 눈치도 없었다. 망설임 없이 그대로 삼녀를 안아 올린다.
붕 뜨는 고양감. 자신의 투정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에 기뻐하며 어미의 손아귀 안에서 바둥댄다.

‘치이-! 테치테치이이-!’

아래로는 서로의 손뼉을 짝짝 마주치며 자신들만의 놀이에 빠져있는 자매들. 옆으로는 어느새 잠들어 있는 구더기.
똥으로 딱딱해진 팬티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총구를 만지며 헐떡이는 장녀.
마마의 손에 안겨 구석구석 핥아지고 있는 삼녀. 훈훈한 가족의 풍경.

세수를 마치고 나면 주변은 깜깜해져, 자연스럽게 수면시간임을 알린다.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제멋대로 드러누우면 도로 가지런히 자세를 잡아 눕히는 친실장.

구더기를 꼭 껴안은 장녀. 서로 꼭 안고 있는 차녀와 사녀. 모두 나란히 누워 쎄근 거리며 자고 있었다.
그녀들이 덮고 있는 물건은 세차장에서 버린 걸레로, 광택제 냄새가 배어 사람 코에 갖다 대면 당장 욕을 할 정도로 끔찍했지만, 그녀들에겐 소중한 이불인 모양인지 끝모서리를 쪽쪽 빨며 아직 스며있는 광택제 액을 맛본다.

‘데스우....’

자신의 보배. 살아가는 이유. 이렇게 나란히 잠들어 있는 자들의 얼굴을 보다보면 하루의 피로가 사라지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생긴다.
감상에 잠긴 친실장을 깨운 것은 삼녀. 피곤과 졸림을 호소하며 재워달라 중얼거리는 삼녀를 품에 안은 친실장은 이내 자신도 이불을 끌어당겨 덮는다.







주방에서 쓰던 행주로, 여기저기 헤져서 더 이상 쓸 수 없어 버린 그 물건이었지만, 선명히 남아있는 주황색은 삼녀의 혼을 빼놓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삼녀의 잠자리는 이 주황색 이불을 덮은 마마의 품 속이었다. 그곳이 아니면 아예 잠을 자지 않고 밤새 울어보챘다.

서서히 눈꺼풀이 감기는 친실장의 귓속에 삼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하루도 즐거웠고 내일도 잔뜩잔뜩 마마를 사랑할거라는 중얼거림.
친실장은 잠결에도 삼녀를 꼭 껴안아 준 다음 자신도 사랑한다 대답한다.






‘....샤아아....! 샤아아아....’

‘체아아아-!’

‘테에에엥! 테에에엥!’

날카로운 위협소리와 격렬한 흔들림에 삼녀는 끔뻑끔뻑 눈을 뜬다. 눈곱이 껴서 희뿌옇게만 보이는 광경.
누군가에게 안겨있는 것을 보아 자신은 아직 마마에게 안겨있는걸 것이다.
그 아래로는 언니짱과 동생짱이 한껏 움츠려 있었고 손을 뻗어오며 마마에게 안기려 하고 있었다.

‘냐아아옹~’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상한 소리. 호기심이 동한 삼녀는 눈을 꾹꾹 비비고 다시 깜빡인다.
그 사이에도 가족들의 절박한 울음소리는 계속 되었다.
뭔가 재미난 하루가 시작되는 것에 기대를 품은 삼녀가 눈을 제대로 떴을 때 들어온 것은....


뒤집혀져 물을 쏟아내고 있는 패트병. 사방이 찢긴 벽.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가재도구. 사방에 흩뿌려진 적록색 핏방울.
그리고 바닥에 짓이겨진 녹색옷조각이 섞인 고기반죽.

‘테에?’

심하게 달라진 집안의 광경을 따라가지 못 하는 듯 멍청한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다시 깜빡였다 더러 크게 뜬다.
털북숭이 동물이 집안에 들어와 있었다. 가르릉 울어대며 노란색 눈을 번득거리는 그것은 명백한 적의를 뿜는다.
일가는 그 기세에 눌려 코너로 몰려있다.

‘데샤아앗-! 샤아아앗-!’

‘치에에엥!! 테치이이이! 테치이이이!!’

있는 힘껏 위협을 가하는 친실장의 얼굴에는 힘줄이 선다. 허나 그러는 자신도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는지 아래로는 똥이 푸드득 푸드득 나온다.
똥으로 가득찬 속옷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늘어났고 손발은 후들거려 서있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치마폭 아래로 비집고 들어오려는 새끼들의 모습에 각오를 다진다.

고양이는 전혀 당황해하는 구석 없이 오히려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리저리 서성인다.
그리고 친실장 품에 안겨 동공을 떨고 있던 삼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빨을 모두 드러낸다.

‘하아아악!’

쭉 뻗는 수염. 이글거리는 노란 눈동자. 맹수형 얼굴. 뾰족뾰족한 이빨.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압도적 포식자의 위협에 가족은 비명을 꽥꽥 질러댔다.
자실장들은 서로를 밀쳐대며 어미의 치마를 들치고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려 애를 쓴다. 똥으로 가득 차 늘어난 팬티를 옆으로 밀어내려한다.
덕분에 자루가 터진 듯 흘러나오는 똥은 세 자실장의 온몸에 쏟아지지만 생명의 위기 앞에서 비위따위에 신경쓰는 놈은 없었다.
똥을 뒤집어 써 미끌거리는 손으로 어미의 허벅지를 부여잡는다.

‘테에에엥-! 테에에엥-!’

본격적으로 울음을 터트리는 삼녀를 꼭 안고 남는 손으로 다른 자들을 감싼다.
그런 어미를 비웃듯이 고양이는 발톱을 드러낸 앞발을 낼름 뻗어 장녀를 끌어당긴다.

‘테챠아앗-! 테챠아앗-!’

날카로운 발톱은 옷을 뚫고 살갗까지 파고들어 갈고리에 걸린 정육점 고기처럼 질질 끌려간다.
이대로 새끼를 빼앗길 친실장은 아니다. 아래 있던 새끼들을 품고 있던 손을 뻗어 장녀의 발끝을 붙잡는데 성공한다.

코앞에서 괴물에게 끌려가는 자매의 모습에 차녀와 사녀는 두발을 쾅쾅 굴리고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른다.
장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손에 힘을 주지만 겨드랑이와 가슴에 이리저리 안기려는 새끼들과 한쪽 팔 안에서 발버둥치는 삼녀 때문에 구조시도는 점점 힘이 빠진다.







‘냐아아아옹!’

성가신 듯 마구잡이로 앞발을 휘두른다. 갈고리만큼 예리한 손톱은 장녀를 종잇장 마냥 찢어발긴다.
한번 휘두를 때마다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통에 친실장은 그만 장녀를 놓친다.
비탄의 절규을 터트리며 그녀는 남아있는 세 마리 새끼들을 끌어안는다.
특히나 삼녀는 히스테릭하게 괴성을 지르며 고개를 마구 휘젓는다.

‘챠아아앗-! 테챠아아앗-!’

고양이에게 완전히 넘어간 장녀는 한 번 굴려질 때마다 조금씩 작아졌다.
살점이 뜯겨지고 머리카락이 뽑히고 옷은 조각났다. 피를 보아 흥분한 고양이는 그대로 힘을 주어 장녀의 가녀린 뱃가죽을 가로로 쭉 찢어버린다.
고기만두가 터지듯 투두둑 찢어지는 뱃가죽. 안의 뜨끈한 내장들이 바닥에 주르륵 흘러내린다.

‘테헤에...테헤에에.....’

흘러내리는 적록색 눈물줄기.
여기저기 파였지만 간신히 움직이는 오른손을 움직여 바닥에 흘려진 자신의 내장을 어떻게든 도로 집어넣으려 시도한다. 허나 그 손짓은 점점 둔해진다.

‘테에에...테에에....’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고개를 젓는 그녀의 눈동자는 이내 회색으로 물들더니, 가슴 쪽에서 들린 [파킨]하는 소리와 함께 축 늘어진다.

‘테에에엥-! 테에에에에엥-!’

‘치에에엥! 테치에에에에엥!!!’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버린 장녀의 모습에서 고개를 돌리며 폴짝폴짝 뛴다.
어떻게든 어미의 품으로 들어가려는 새끼들. 불행 중 다행인지 삼녀는 아예 기절을 해버렸다.
하지만 고양이는 가족들에게 애도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다시 재빠르게 공격을 가해, 차녀를 질질 끌고 간다.

아까와 같이 반복되는 친실장의 헛된 저항. 똑같이 되풀이되는 참살.
자매의 살과 피를 뒤집어 쓴 채로, 숫자가 줄어든 가족들은 잔뜩 웅크리고 헛되이 울음소리만 높인다.
차녀는 팔다리를 따로 뜯어버려 오뚜기처럼 되어 입만 뻥긋거리다 이내 죽어버렸다.
몸에 똥과 핏물을 뒤집어쓴 채 어미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려던 사녀는 그만 뒷다리가 잡혀 질질 끌려간다.

‘테에에엥-! 테에에에엥-!’

어미에 손을 뻗는 사녀. 친실장은 한 손을 뻗어 그 손을 잡으려했지만







‘하아아악!’

그 모습이 거슬린 고양이가 발톱을 휘두르자, 커터칼로 자른 것 같이 잘려버리는 왼팔.

‘데샤아아앗! 데에에엣!! 데에에에에엣!!’

핏물이 줄줄 흘러나온다. 핵심 혈관이 잘렸는지 수도꼭지처럼 콸콸 쏟아지는 핏물.
아직 자신의 품에 남아있는 삼녀를 안은 손에 힘을 주며 힘껏 고함을 지른다.

‘테챠아앗! 테챠아아앗!’

자신을 버리지 말라는 듯 손을 한껏 뻗는 사녀. 허나 부탁이 호소로, 호소에서 절규로 바뀌는 데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 절규마저 단말마로 끝난다.

‘데에에...데에에에...데스우우우....’

어째서인가. 예고 없이 찾아온 불행. 느닷없이 찾아온 악몽.

실로 그녀들이 마주한 운명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저 어딘가에 비집고 들어간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 습성대로 들어갔는데 그것이 그녀들이 집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불청객에 거슬린 고양이가 그대로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아첨을 판 것도. 인간 앞에서 알짱거린 것도, 무리한 원정을 간 것도, 사육실장을 습격한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모범적 들실장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는데 천벌에 가까운 악몽이 찾아온 것이다.
실제로 그녀들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실장석으로 태어났다는 것 빼고. 이것은 실장생의 일상이다. 누군가에게는 찾아오는 실장생.

‘오로로롱...오로로로롱....오로로롱....’

하렴 없이 눈물을 흘리며, 눈앞의 괴물이 자신의 사랑스러운 자들의 시체조각을 뜯는 것을 봐야만 하는 친실장.
고양이 고깃조각을 뜯어내기 위해 고개를 털어대며, 자신이 좋아하는 부위만 골라내어 먹는다.

별빛 나는 하늘을 좋아하고 콘페이토 동산에 가고 싶어 했던 장녀.
언젠가 많은 관객 앞에서 춤을 추어 행복을 전해주고 싶어 했던 차녀.
마마가 힘들지 않게, 잔뜩잔뜩 커져 자신이 대신 먹을 것을 가져오고 싶어 했던 사녀.
이 세상 모든 것이 행복했던 구더기짱.

지금껏 살아온 그녀들의 실장생은 이렇게 비참하게 끝났다. 환희의 탄성을 내지르며 태어나,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고 끝난다?
지금까지 힘껏 살아온 이유가 고작 야수에게 먹히기 위해서?

절대로 아닌 데스...

절망 끝에 오히려 냉철을 되찾는다. 자들의 잔해를 다 먹고 나면 자신들이다. 자신과 삼녀짱.
정면돌파? 말도 안 된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삼녀를 안고 빠져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구멍을 막는
작업을 너무 열심히 하여 사방에 흙으로 막혀있었다. 한 곳을 제외하고는. 운치구덩이.

안쪽으로 역류하면 곤란하기에 배수로처럼 쭉 이어서 판 것은 생활쓰레기 더미를 지나 바깥 배수로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거기로 삼녀를 빼돌린다 해도 고작 집을 벗어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래도 시도도 안 해보고 죽는 것은 억울하다.

다시 깨어나 신음소리를 흘리며 품에 긴 삼녀. 파들파들 떠는 삼녀를 바라보는 친실장의 눈은 결의로 빛났다.

‘데샤아아앗-!’

‘테에에?!’

붕 뜨는 삼녀의 몸. 그리고 참방하며 사방에 튀는 똥.
약간의 경사도가 있는 운치굴을 데굴데굴 구르며, 삼녀의 비명소리는 멀어져간다.
사방에 튄 똥은 고양이도 피하지 못 했고, 청결한 성격의 이 짐승의 화를 잔뜩 돋우는 꼴이 되었다.

‘우우웅.....냐아아아아옹!!!’

‘데갸아아악!’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입안 가득 들어오는 똥에 정신이 희미해져가는 삼녀.
사랑하는 마마의 품에 돌아가고 싶어 손을 한껏 뻗어보아도, 데굴데굴 미지의 곳으로 굴러간다.
기절하기 전 삼녀가 들은 것은 마마의 끔찍한 비명과 승리에 찬 괴물의 포효소리였다.












해가 중천에 떠오른 정오.
구덩이에 고인 똥들이 발효를 시작하여 주변의 기온이 올라가고, 엄청난 악취가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물씬 올라온다.

‘...치이.....’

구덩이 속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신음소리. 켈록켈록하는 작은 기침소리는 목구멍과 입에 뭔가 잔뜩 낀 듯하다.
코, 입 할 것 없이 꽉 들어찬 똥을 뱉어내는 작은 생물체. 전신에 잔뜩 묻은 똥을 보고 울상을 짓는다.
두 손으로 얼굴을 슥슥 닦아보지만 손바닥이 지나간 곳만 똥물이 옅게 퍼질 뿐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똥물을 머금어 무거워진데다 몸에 착 달라붙어 기분이 나빴지만, 운치굴에 쳐박혀있는 것은 더 기분 나쁜 듯, 짜리몽땅한 팔다리를 놀리며 비스듬한 둔덕을 기어오른다.

‘테치이...테치이이....’

뭔가에 홀린 듯, 그 자세로 기어가는 자실장.
젖어서 바닥에 축 늘어진 머리카락이 바닥에 쓸리며 먼지와 풀들이 들러붙는데도, 자실장은 계속 기어갔다.
무릎과 손바닥은 점점 파이고, 아기 자실장이라면 진작 바닥을 뒹구르며 마마를 찾았겠지만 녀석은 쉬지 않고 어디론가 기어간다.

구불구불한 입구를 지나는 삼녀는 마마와 자매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이 터널을 지나면 집이 나올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모든 가족들이 자신을 맞아줄 것이다.
맛있는 밥을 먹고, 침으로 세수를 하고, 걸레를 덮어 쿨쿨 꿈나라로 떠날 것이다.


눈을 한번 깜빡인다. 그리고 다시 깜빡인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화목한 마마와 자매들이 먹고, 자고, 행복을 속삭이던 그곳엔 오직 ‘가족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잔해만이 지저분하게 펼쳐져 있었다.
산산조각나서 더 이상 어떤 것이 마마고 오네챠고 오모토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있다.

‘테에에엥...테에에에에엥...테에에엥...’

흐느끼는 삼녀. 퉁퉁 부어오른 무릎을 끌고, 박살난 집을 가로지르며 사방을 둘러보지만 오직 파괴와 죽음만이 가득하다.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집안을 하렴 없이 빙글빙글 돌아도 대답은 없었다.

‘테헤에...테에에에에엥...테에에엥....’

지쳐버린 삼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운다. 굵은 눈물방울이 지나간 곳으로 똥이 씻겨 내려가 그것만 하얗게 보일 정도로 펑펑 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스럭...부스럭부스럭...]

‘.....치이!’

밖에 들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괴물이다. 괴물이 돌아온다.
흘러나오는 신음을 막기 위해 양 손으로 입을 꼭 틀어막고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정문 안쪽의 소리는 점점 커진다. 대체로 어디로 도망갈 것인가.
다급한 듯 발을 이리저리 쿵쿵 굴리던 그녀의 머리를 스친 것. 마마가 해줬던 것처럼 똑같이 나갈 수 있다.
삼녀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대로 운치굴로 다시 뛰어든다.

오늘로서 두 번째로 그녀는 스스로 똥구덩이에 들어간다.
이리저리 돌맹이에 부딪치고 거친 흙바닥에 살이 쓸리지만 삶에 대한 열망으로 그녀는 기고 또 기어, 밖으로 나가는데 성공한다.
벽 건너편에는 괴물이 집 안으로 도로 들어갔는지 요란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테히이이....’

정든 집을 눈에 새겨두려는 듯, 몇 번씩 돌아보고, 또 멈춰서며 허겁지겁 도망을 친다.
그렇게 삼녀는 미지의, 그리고 잔인한 진짜 세계에 뛰어든다.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어둠 속으로 녹아드는 삼녀의 뒷모습은 이내 사라진다.





‘...치이....치이.....’

삼녀의 대담한 도주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배는 텅 비었고, 상황은 전혀 파악할 수 없었고, 정신적 데미지도 만만찮은 상황에서 멀리 갈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바싹 말라버린 혓바닥을 늘어뜨리고 헥헥거리며 거친 숨을 내쉰다.
끈적한 똥물이 묻은 옷을 입고 땅바닥을 뽈뽈 돌아다녀 흙먼지와 쓰레기들이 잔뜩 들러붙어, 그녀의 모습은 거의 작은 쓰레기뭉치나 다름없었다.
다만 두 발이 달려서 조금씩 돌아다닌다 라는 점을 제외하고.

‘테히이....히이....’

갈라진 입술을 다시며 텁텁한 입안을 어떡해든 축여보려 했지만, 침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격렬한 운동으로 인해 거품이 잔뜩 섞인 침만이 약간 나올 뿐이다.
조그맣게 거품이 터지며 뽀각거리는 침을 혓바닥으로 톡톡 내리누르며 갈라진 입술을 적신다.
그러면 약간 부드러워진 입술과 혓바닥으로 까끌까끌한 흙알갱이들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 이질감에 무의식적으로 뱉으려는 순간, 입 안의 침이 아까워 단념한다.

입 안에 돌아다니는 흙입자들을 오독거리며 삼녀는 타박타박 걸었다.
해는 완전히 저물어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공터를 벗어나면 있는 주택가를 걷고 있는 삼녀.
당연히 가로등불빛이나 가정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있었지만 그 정도 광원으론 실장석의 형편없는 야간 시력을 작동시키기엔 모자랐다.
고개를 들어보면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따스한 불빛에 약간 베시시 웃으며 손을 내밀고 아장아장 향하지만, 이내 커다란 벽에 머리를 콩 부딪치고 뒤로 자빠질 뿐이다.

‘테이이...테에엥...테에에엥....’

마마를 찾으며 울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언제나 달려와야할 젖내 나는 따스한 손길이, 오늘만큼은 전혀 오지 않는다.
더욱 큰 소리로 울며 자신을 돌봐 달라 외치지만, 들을 수 있는 것은 오래된 가로등이 점멸하며 내는 바지직 소리뿐.

30분이 지나서야 피로에 헥헥거리며 현실을 다시 상기한다. 마마는 죽었다. 오네챠도 죽었다. 오모토챠도 죽었다.

자신은 혼자다.

‘테에엥...테에에엥....’

너무나 무섭다. 이런 거 할 수 없다.
어디서 자야할지, 뭘 먹어야할지, 누구를 따라가야 할지, 뭘 하고 놀아야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마마가 해줬고, 그 작은 둥지는 세계의 전부였다.
몇 번이나 지나치던 주택가도 이렇게 깊게 들어간 적은 없었고, 암흑이 지배하고 있는 거리는 공포심만 자극한다.

공포와 피로와 상실감이 겹친 자실장은 그대로 다시 울음을 터트린다. 이번에는 불쌍한 자신을 위한 울음.
텅 빈 주택가 골목의 낡은 전봇대 아래. 그곳엔 작은 자실장 한 마리가 주저앉은 자세로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며 엉엉 운다.











‘테-....테-.....’

어둠이 짙게 깔린 주택가 전봇대. 그 아래에는 작은 실장석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이따금씩 좋은 꿈을 꾸는지 키득거리다 가끔은 악몽을 꾸는지 움츠리며 울먹이는 것을 반복한다.
점점 뒤척임이 심해지고, 콧물이 말려서 나는 도로롱도로롱 소리가 증거다.

입맛을 다시며 내민 혀는 바싹 말라 거의 갈라질 지경. 한참을 울어댔는지 아직도 적록색 물감이 마른 듯 한 찌꺼기들이 눈썹에 끈적끈쩍하게 엉켜있다.
울음자국이 번져있는, 먼지투성이 자실장. 똥밭에서 굴렀는지 옷은 바싹 굳은 똥물로 엉망이어서 약간 움직일 때마다 표면에 붙어있는 똥부스러기들이 으드득 소리를 내며 바스라진다.

꾸는 꿈의 내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자실장의 두 눈에선 다시 눈물이 세어나온다.
다급하게 손을 볼에 붙이고 연신 고개를 기울이며, 꿈결에 아첨포즈를 취한다.
퍽 절박한 상황인가, 잠결인데도 꽤나 격렬하다. 갈라진 목구멍 사이로는 쉰 소리가 세어나오며 애교음을 흘린다.

‘....테헤....츄우....테...츄우웅....’

그러더니 이내 몸을 움찔 떨며 작은 신음소리를 낸 녀석은 누군가에게 찔린 듯이 눈을 번쩍 뜬다.

‘텟!’

눌어붙은 눈꼽과 말라붙은 눈물액 찌꺼기들이 꾸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끝에 달려있는 건더기들이 대롱대롱 흔들린다.
몇 번 더 눈을 깜빡이고서야 그 정체를 깨달은 자실장은 조그만 손을 펼쳐 움켜쥔다. 눈썹 째로 잡아 뽑는다. 따끔한 느낌에 몸을 움찔한다.

졸린 눈을 끔뻑이는 삼녀를 괴롭힌 것은 타는 듯 한 갈증. 목을 부여잡으며 구슬프게 울어보챈다.
허나 바싹 마른 입에선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작은 눈꼽 찌꺼기들이 달라붙어 있어 아직도 간지러운 눈 주변을 비비는 삼녀.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한숨을 폭 내쉬고 멍 하니 정면을 응시한다.

암적응이 되어 주변 사물의 윤곽이 잡힌다. 두려움은 줄어든다.
극한의 스트레스와 피로, 슬픔을 겪었지만 지금 삼녀가 마주한 것은 공허함.
온 몸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 물을 마시고 싶지만 어디서 마셔야할지 모르겠다.

[꾸르르륵....]

그리고 목마른 것보다 더 심한 것은 허기. 태어나서 반나절 이상 뭔가를 입에 넣지 않은 적은 처음이다.
집을 지키느라 하루 2번밖에 밥을 먹지 못 했던 자매들과 달리, 늘 마마와 함께 붙어 다녔던 삼녀는 입에 뭔가를 항상 달고 다녔고, 그 습관에 적응한 몸은 간식을 요구한다.

‘...츄우....짭..짭....’

마마는 보존식으로 쓰기 위해 따로 빼놓은 것이라 해도, 삼녀가 달라고 울면 언제나 주었다.
그것도 곤란할 때는 가슴을 들추고 젖을 먹여줬다. 약간 걸쭉하면서도 따듯하고 달콤한 모유. 쫍쫍하고 힘을 주어 빨면 오줌 싸듯 브리릿 뿜어 나와 입 안 가득 퍼지던 그 맛을 상상한다.
자신도 모르게 흘린 침이 팔목에 똑똑 한 두방을 떨어지자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입안에 약간 고인 침을 찹찹거려 수분을 보충한 삼녀. 일단 자리에서 일어난다.
배는 고프지만 실컷 자고 일어나 기운은 약간 회복하였다.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비틀 목표 없는 방황을 재개한다.
자신도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저 멀리의 환한 불빛이 펼쳐진 지평선으로 향한다.





‘...치이...’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목을 움츠린다. 그 자리에 멈춰서고 몇 초 후에서야 다시 조심스레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저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들이 저런 소리를 내는지 모른다. 직접 본 적은 없다. 허나 둔하면서 날카로운 저 소리는 무섭다.

분명 무시무시한 괴물이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라 간주하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는다.
한참을 걸어 발이 아파오자, 자리에 앉아 신발을 벗는다.

조그마한 녹색의 캡같이 생긴 신발을 옆에 벗어놓으면, 구린내가 훅 풍겨 얼굴을 찌푸린다.
이 역한 냄새가 자신의 발냄새라는 것도 모르고, 어딘가의 악취라며 투덜거린 삼녀는 별 수 없이 한숨을 폭 내쉬고 고개를 돌려 자신의 발을 들여 본다.
[샤워]라는 것을 모르고 지낸 들실장인 만큼, 신발을 벗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살색은 태어난 그 때의 빛깔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오늘의 여정으로 인해 퉁퉁 부어올라 있다.
때문에 신발 테두리 쪽의 살이 파여 둥글게 자국이 남았다.

‘테치이...테치이....’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중얼거리며 발을 쓰다듬는다. 이렇게 하면 발이 좋아하며 아프지 않게 되리라 기대한 걸까.
허나 신체사정은 자실장의 제멋대로 생각에 따라주지 않는다. 신발이 벗겨져 한 층 더 예민하게 촉감을 받아들이며, 고동치듯 욱신거린다.
오히려 더 심해진 아픔에 속이 상한 그녀의 눈에는 촉촉하게 젖어들고 삼녀는 작은 손으로 발을 주무르며 주변을 의미 없이 두리번거린다.

이곳은 이상한 곳이다. 언제나 부드럽게 바닥을 받쳐주던 흙은 어디가고 없었고, 딱딱한 돌로 된 바닥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발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었지만. 둘의 상관관계를 추론해내지 못 하는 자실장의 작은 뇌는 그저‘자박자박 바닥 없는 테치...또각또각 바닥 많은 테치....’ 라고만 생각한다.

조금 진정이 된 것일까. 신발을 도로 신고 웃샤 일어난다. 도로 기약없는 여정을 이어간다.
발을 떨어뜨리듯 터덜터덜 걷던 삼녀는 갑자기 그 자리에 우뚝 서 코를 벌름거린다.

모든 감각이 먹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녀석들 아니랄까봐 ‘먹을 것’에 대한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
물론 정확도까지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쿤...쿤쿤...테에에...’

잘 모르는 냄새. 하지만 풍겨오는 그 고소함은 분명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입 안 가득 고인 침이 그걸 증명한다.
어느새 즐거운 어조로 옹알거리며 냄새를 따라간다.
마치 개처럼 엉덩이을 치켜들고 코를 바닥에 쳐 박은 자세로 아장아장 기어가거나 뭔가 잡았다는 느낌으로 후다닥 달려갔다가 아닌가 싶어서 왔던 곳으로 타박타박 돌아오는 것을 반복한 지 수 십분.

그녀는 한 전봇대 아래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테치이....’

개들의 오줌자국이 남아있고, 취객들이 구토를 한 것이 말라 비틀어져 있는 전봇대 밑둥. 그곳엔 뭔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얼핏 보면 흙색깔과 비슷해, 배가 부른 때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지도 모른다.

‘츄우...테츄우...쿤...쿤쿤....’

냄새는 그 진흙같이 생긴 알갱이에서 풍기는 것이 맞다. 약간 희미하지만 확실하다.
누군가 없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 주변을 휘-휘 돌아본다. 풍성한 머리카락과 길쭉한 귀가 같이 팔랑거렸다 관성에 의해 돌아왔을 무렵.
그녀는 조심스럽게 한발 내딛는다. 당연히 눈앞의 [먹을 수도 있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다.

‘...치이!’

약간 톡 건드려보고 얼른 뒤로 물러나 반응을 지켜본다.
수북이 쌓여있는 그것 중 하나가 삼녀의 손가락에 밀려 또그르르 굴러떨어진다. 동그란 형태의 그것은 삼녀의 발치로 굴러온다.
눈으로 그 움직임을 쫓는 삼녀는 고개도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앞으로 굴러온 알갱이를 집어 올린다.

그리 딱딱하진 않았고, 어떻게 보면 약간 촉촉하다 할 수도 있겠다. 표면은 꺼슬꺼슬하고 가루를 뭉친 것 같이 생긴 그것은 고양이밥이었다.

이 동네의 [캣맘]들이 뿌리고 가는 것이다. 주민들과 몇 번 마찰도 있었고, 구청에서 자제해달라는 요청도 해봤지만, 두려울 것이 없는 아줌마들답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뿌려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양이들이 이 푸드 무더미를 온전히 먹는 일은 드물었다. 냄새가 약해서 주의를 끌기도 뭐 했고, 무엇보다도 들실장들이 선수 치는 케이스가 절대다수였다.

담과 담 사이를 넘나드는 존재와 달리 하루종일 땅에 붙여서 필사적으로 먹이를 찾는 녀석들에게 이런 푸드 무더기는 횡재나 다름없었다.
한 개가 발견 되면 온 동네 실장석들이 달려들어 자신의 펼친 치맛자락, 앞주머니, 팬티 속 가릴 것 없어 모조리 쑤셔담아갔다.

보존식은 준비해야지만, 그에 비해 나무열매의 공급이 부족하여 이렇게 푸드가 발견되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가져가는 것이다.
그런 그 푸드가 온전하게, 삼녀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푸드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삼녀는 이것이 먹을 것인가 먹을 수 없는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장석이란, 일단 입에 넣고 나서 생각을 하는 존재.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입을 함~하고 벌리더니 덥석 물었다.
약간 단단한 표면에 미끄러져 모서리 부분만 부서뜨렸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푸드라는 것은 먹을 수 있고, 또 맛있다는 것을.







‘...츄아...! 테챱....와구와구...츄아아!....’

숨도 쉬지 않고 입에 쑤셔 넣는다. 거세게 쥔 손에 바스 라져 바닥에 떨어지면 그 다음에 있는 푸드조각을 집어들고 입에 넣는다.
요령 좋게 입이 비는 텀마다 맛있다 환호성을 지르며 부지런히, 부모의 원수라도 되는 것같이 먹어댔다.
맹렬히 분비되는 침에 의해 걸쭉한 죽이 된 푸드를 사방에 튀겨가며 먹는다.

‘텟!....테헤에....함쯔함쯔.....츄아!

벌어진 입 사이에서 꽤 많은 양의 죽이 된 푸드를 흘리지만 그것을 빨아먹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기계적으로 손을 뻗어 다음 푸드를 집고, 먹을 뿐이었다.
약간의 애액으로 촉촉했던 총구는 다시 생성된 똥이 푸득푸득 쏟아짐에 따라 질척해진다.

순식간에 빵빵해진 팬티. 그 무게에 중심을 잃어 잠시 뒤로 휘청했다 도로 고개를 기울이고 먹는다.
삼녀는 기쁨에 눈물을 펑펑 흘러대며 먹고 또 먹었다.

자신이 식사에 열중한 사이에, 몇 사람이나 자신을 발견하고 지나갔다는 사실도 모른 채 먹었다.

누군가는 피식 웃고. 누군가는 흐믓하게 미소 지었고. 누군가는 찡그렸고. 하지만 그 누구도 일부러 다가오진 않았다.
괜히 관여하고 싶지 않은 생물. 그것은 실장석이기에. 하잘 것 없는 생명체로 태어나 얻는 몇 안 되는 이점을 누리며, 몇 알 남지 않은 푸드를 향해 또 다시 손을 뻗는다.





‘테푸우-’

만화에서 나오는 장면같이, 배만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그 모습은 문외한이 본다면 기형실장이라 여길 정도였다.
입 주변에는 푸드 부스러기들이 붙어있고, 앞치마와 손은 걸쭉해진 푸드 찌꺼기로 더러워졌다.
아직도 상당수의 굵은 푸드 건더기들이 널려있지만, 잔뜩 배가 불러 제대로 몸을 가눌 수도 없었고, 게다가 만복감에 황홀한 삼녀에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테츄우~♪ 테츄우우~♪’

튀어나온 자신의 배를 귀엽다는 듯 쓰다듬으며 노래를 부른다. 참으로 단순한 생물.
가족들이 죽었고 집은 뺏긴 놈이 이젠 고작 배가 부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잊고 앞으로 잘 되리라는 낙관에 빠지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잘 되는 테츄. 와타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테츄. 앞으로 잔뜩잔뜩 행복해지는 테츄.

몇 명의 사람들이 더 지나갔지만, 삼녀도, 사람들도 그 작은 실장석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도로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전봇대 밑, 약간의 희망이 가미된 자실장의 귀여운 울음소리가 테류류테류류 울린다.





‘테에....치이....’

바닥을 콕콕 찌르고 있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실장석. 그것도 작은 크기의 자실장이다.
보호자를 잃고 차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그것은 삼녀.
이틀 전만 하여도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던 그 배는 처음 세상으로 나왔을 때처럼 쏙 들어간 지 오래. 그녀는 아직도 이 전봇대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맛있는 것이 여기 있었으니깐. 여기에 있으면 배부를 수 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에 빠져 여전히 이곳에 머무르는 것.
옆에 있는 깨진 배수관 덕에 그나마 살아있는 것인가. 아니면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사이에 흘린 푸드 잔해들 덕에 살아있는 것일까.

삼녀는 어떤 것도 만들어내지도, 구할 수도 없었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게으른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일상은 바쁘게 돌아갔다.
부지런히 이쪽으로 걸어 나갔다고 다시 돌아왔다가. 뱅글뱅글 돌았다가 또 다시 어딘가로 열심히 향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뭔가를 해야한다’ 라는 의욕은 있었지만, 현재 상황에서 뭘 해야 하는 지 전혀 모르는 삼녀는 그저 초조한 마음에 열심히 돌아다니는 것이다.
오히려 가만히 있었다면 체력이라도 보존했을 텐데 그런 생산성 없는 짓을 반복한 덕에 기력은 시간이 갈수록 빠져만 간다.

‘....테에.....호물호물....’

작은 푸드 조각을 집는데 성공하여 얼른 입에 털어 넣는다. 솔직히 말해서, 푸드 라기보단 모래알갱이에 박힌 푸드조각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정도로 모래가 많았다.

‘....테챳!’

어금니 쪽 시큰하는 통증에 입을 감싼다. 작은 흙알갱이를 무심코 씹은 것이다. 까드득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뭔가 부서지는 느낌을 받는다.

‘테헤에...히이....’

입을 벌리고 손을 집어넣어 아픈 곳을 더듬어본다. 어금니 쪽을 톡톡 건드려보면 시큰거리는 통증에 화들짝 놀라며 도로 손을 뺀다.
뭉툭한 손가락 끝으로 침줄기가 길게 늘어진다. 입술을 짭짭 다시며 다시 손을 집어 넣어보지만 결과는 같다. 어금니 끝단이 깨졌다.

‘테히이....테에....’

어금니의 중요성은 모르지만, 자신의 신체가 상했다는 것에 속상함을 감추지 못 한다.
답답함에 허벅지를 찰싹 내리치며 화를 내봐도 바뀌는 것은 없다.

‘페...페펫! 펫!’

하는 수 없이 입 안의 이물질을 뱉어낼 뿐이었다. 핏물로 물든 어금니조각과 돌멩이들이 아스팔트에 튕겨진다.
그 피로 얼룩진 어금니 조각을 들어 몇 번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별 수 없다는 듯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꾸르르륵...]

요동치는 배. 공복을 호소하며 식사를 요구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삼녀는 다리를 감싸 안고 쭈그려 앉는다.
공복감이라도 속이려는 듯, 깨진 배수관으로 비척비척 향한다.

미끌미끌한 이끼가 핀 배수관은 오랫동안 그 상태로 방치되었는지 지저분했다.
배수관이 연결된 집의 주인이 물을 쓰고 있지 않은지, 흐르고 있는 물줄기는 없었다. 별 수 없이 삼녀는 배수관 바닥과 벽면을 핥는다.
축축한 혀와 축축한 바닥이 마주치는 젖은 소리. 하악거리는 숨소리.

그 전에도 몇 번씩 이렇게 목을 축였다. 삼녀의 선분홍빛에 조그맣고 예쁜 모양의 혓바닥은 녹색과 검은색으로 흉하게 변했다.

‘....헤에....테에....테에....’

콧구멍으로 씩씩 숨을 내뱉으며 구석구석 물기가 있는 부분을 핥는다.
간혹 뭉쳐있는 이끼가 입에 들어오면 고개를 들고, 행복한 표정으로 한참을 우물거리며 그 맛을 음미한 다음에서야 삼켰다.
이끼는 별로 맛이 없었지만, 이틀을 굶은 자실장에겐 모든 것이 맛있게 느껴지는 때.

‘치이....’

싹싹 핥아내어 더 이상 수분을 얻을 수 없게 될 무렵에야 관두었다. 오래되어 금방 플라스틱 재질이 올라와 혓바닥이 쓸려 상처가 난다.
입을 약간 벌리고 화끈거리는 혓바닥을 바람에 노출시키며 애써 통증을 견디는 삼녀. 어찌 보면 성장했다고 할 수 도 있다.

‘치이....’

귀를 축 늘어뜨린 삼녀는 오늘도 또 다시 걷기 시작했다. 허나 운명의 여신의 변덕이 작용했는지,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오가기만 했던 삼녀는 처음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 나간다.
그 사실에 무지했더라도 운명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움직인다.
발걸음 소리와 네온사인의 바지직거리는 소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발걸음을 옮길수록 커져갔다.





‘츄유-! 테츄우-!’

두 눈을 크게 뜨고 이리 감탄하고 저리 감탄하는 작은 실장석이 있다.
녀석은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지 당당하게 도로를 걸으며 상가건물에 붙어 탄성을 찍찍 내뱉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작은 상가들이 몰려있는 골목으로 다니는 사람이 없었기에 아직 살아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 실장석은 태어나서 인간의 세상에 처음 나온 듯, 모든 것에 감탄을 한다.

칙칙한 자연의 물건과 달리 형형색색의 화려한 포장지들을 주워서 뚫어져라 들여보고, 그것을 머리에 뒤집어쓰거나 허리에 두르며 만족해하는 그 모습은 어찌 보면 귀엽다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작은 자실장은 이 골목에 잠재한 위험에 무지하다. 이곳은 상가건물이다. 자영업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들실장.
건물의 미관을 해치고 거리의 청결도를 떨어뜨리며, 악취까지 풍겨 유동인구를 쫓아내는 녀석들이다.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건물 안으로 몰래 숨어들어 물건을 갉아놓아 재정적 손해를 입히기까지 한다.

덕분에 상가 세입자들은 실장석이라면 눈에 띄는 대로 모조리 구제한다.
그나마 학대파라면 몇 번 괴롭히다가 목숨은 붙여놓고 내던질지도 모른다. 치명상을 입겠지만 운이 좋다면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아마추어들과 달리 상인들은 확실하게,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숨통만 끊어놓는다.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모른 채 삼녀는 점멸하는 네온싸인에 넋을 잃고 아장아장 거리를 걷는다.
주황색과 푸른색이 섞인 네온사인이 깜빡이며 상표이름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검푸른 저녁하늘 아래서 그것은 멋진 보색효과를 주며 새끼 자실장의 어린 마음을 앗아갔다.

‘...치이...테치테치이....’

예쁜 테츄...하고 중얼거리며 한참을 올려본다.
그 사이에 자동차들이 지나가며 굉음을 낼 때마다 귀여운 비명을 흘리며 흠칫 뒤를 돌아보지만, 이미 자동차는 어둠 속으로 멀어져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리는 굉음에 삼녀는 몸을 움츠리고 상가건물 쪽으로 바싹 붙어 이동한다.

여전히 목적지도 없고 자신이 왜 이곳으로 나왔는지 모른다.
다만 예쁜 것이 있기에 신기한 것이 있기에 그것을 따라 이동하는 것.
마치 개들이 공을 따라 앞으로 정신없이 달려가는 것처럼, 삼녀도 그 작은 발을 토테토테 움직이며 멍하니 운명의 컨베이어 벨트를 걷는다.






[띠리리링~]

편의점 자동문이 열리고 두 남자가 걸어 나온다. 뭔가 잔뜩 산 듯 빵빵해진 비닐봉투를 들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커다란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잔뜩 흥이 오른 듯 괴성에 가까운 노래를 질러대는 두 남자.

‘‘다시 없는 것처러어어엄~!!’‘

하울링을 하는 들개처럼 고개를 젖히고 내지른다. 행인이 없는 도로라 해방감을 든 것일까 대범하게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 노래는 한 마리의 작은 생물을 놀래킨다.







‘텟!’

기껏 똥을 걷어냈던 팬티 안에 또 다시 똥을 잔뜩 싸며 뒤로 자빠진다.
눈물을 찔끔 흘리며 어디로 도망갈 것인가 고민하며 이쪽 저쪽 우왕좌왕하더니 이내 그 자리에 머리를 숙이고 잔뜩 웅크린다.
그렇게 하면 무서운 것이 알아서 지나가길 기대하며.

어린 자실장의 우스운 행각에 무지한 채, 두 청년은 노래를 계속 부르려던 한 순간, 한 청년이 다른 한 사람을 불러세운다.

‘아 맞다 나 담배하고 두통약 빼먹었다. 잠만 기달려’
‘내 것도 사와!’

대충 손을 흔들며 알아들었음을 전한 청년은 비닐봉지를 그 자리에 내려놓는다.
봉지는 물건의 무게에 비스듬히 기울더니 옆으로 쓰러진다.
남아있는 청년에게 있어 쓰러진 봉지는 관심순위 밖에 있는 듯 정신없이 스마트폰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봉지는 삼녀 바로 앞에 입을 벌리고 있는 꼴이 되었다. 어서 오란 듯이.

‘테에에....’

시끄러운 소리가 무서웠지만 삼녀는 자실장. 호기심을 참을 수 없는 나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는 인간들의 과자상자들. 형형색색의 포장지로 천차만별의 생김새를 뽐내고 있었고 얇은 렙에 쌓인 도시락에선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다.
납작한 얼굴에 구멍 뚫어놓은 것 같이 생긴 코는 삼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수축이완을 반복하며 반응한다.
벌어진 입에 침이 고이더니 주르륵 흘러내려 바닥에 얼룩을 만든다.

‘테츄...테츄테츄우...’

뭐라 중얼거리며 살포시 일어난다. 투실투실한 지방질 다리를 어색하게 움직이며 뒤똥뒤똥 걷는 녀석.
최면에 걸린 듯 몽롱해진 눈빛으로 비닐봉지 안으로 들어간다. 매끈한 비닐봉지의 감촉.
걸을 때마다 나는 버석버석 소리가 재미있는지 살포시 웃음을 짓는다. 안에서 보니 신기한 것들이 아주 많다.

알록달록한 과자상자들을 만져보면, 매끄러운 것도 있었고 부스스한 것도 있었고 울퉁불퉁 튀어나온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겉표지에 그려진 그림들. 포장지를 장식하고 있는 각종 그림들은 어린 자실장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귀여웠다.
태어나서 지금껏 본 것이라곤 자신과 별 다를 바 없는 동족들뿐이다.

애써 뭔가를 그리고 싶어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낑낑거려도 원시인 벽화만 못 한 낙서에 불과했다.
뭔가 예쁜 것, 귀여운 것에 끌리는 실장석들의 성격답게 그녀는 정신없이 예쁜 그림들을 만지고 감상한다.

‘테치이..테치이...’

입으로 연신 예쁜 테치 멋진 테치하고 중얼거린다.
그림 속 사람이나 동물들이 살아있는 것 인양 손을 흔들고 쓰다듬어 보기도 한다.

‘텟츄우~♪ 텟츄우~♪’

얼룩말과 기린이 그려진 그림이 특히나 맘에 드는 지 춤을 추려는 듯 그림에 손을 대고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든다.
거기에 아까부터 들려오는 노래소리는 한 번 익숙해지자 굉장히 맘에 들었다.
그 요란한 노래소리에 자신이 내는 소리가 묻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도 모르고 삼녀는 빙글빙글 돌거나 그림을 향해 아첨을 날린다.

[띠리링~]

자동문이 열리고 편의점으로 다시 들어갔던 남자가 걸어 나온다.
손에 들려있는 담배갑과 약상자를 친구에게 던지면 친구는 그것을 용케 받아 자신의 비닐봉지에 던져 넣는다.

‘오케이 고고’
‘고고’

자신의 비닐봉지 안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있는 자실장의 존재에 대해 전혀 눈치 채지 못 하고 남자는 봉지를 들어 올린다.

‘텟챠아!?’

물건들이 꽉 조여진다는 느낌과 함께 어디론가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약간의 공중에 떠있는지 부유감과 함께 흔들림도 느껴진다.
과자상자 사이로 데굴데굴 굴러 평평한 도시락 박스 위로 떨어진 삼녀는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또 다시 빵콘을 한다.
브리리릿하는 진득한 소리와 함께 풍기는 고약한 냄새.

‘테챠-! 테챠테챠아아-!’

무서운 테치! 도와주는 테치! 마마! 마마가 보고싶은 테치!

두 손을 벌리고 울부짖는 삼녀. 이미 마마는 죽었지만, 마마의 역할을 할 누군가를 찾으며 운다.
삼녀에겐 정말 다행스럽게도, 두 남자는 요란한 음악을 틀고 있어 그녀의 울음소리를 전혀 듣지 못 하고 있다.
서로 잡담을 나누다가 좋아하는 노래구절이 나오면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자신들의 월세방으로 돌아간다.





‘테에엥...테에엥...’

규칙적인 진동. 앞뒤로의 흔들림.
펑펑 울어 눈물이 바닥났는지, 봉지 속에 있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울어봤자 아무도 안 온다는 것을 깨달은 건지, 삼녀는 간헐적으로 흐느끼며 차츰 눈물을 그치고 있다.
울음으로 촉촉해진 눈을 디룩디룩 굴리며 위를 올려보지만, 자신의 체구로 어림도 없는 높이에 체념한다. 좌절감에 귀는 축 쳐져 녀석의 옆머리를 덮는다.

‘...치이...테치테치....’

손가락을 쪽쪽 빨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그녀. 아래를 내려다보면 투명한 랩 위에 싸지른 똥이 진동에 따라 떨리며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녹색똥 아래론 이상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돈까스. 삼녀는 즉석반찬거리 위에 앉아있는 것이다.

‘테츄테츄’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맛있는 냄새. 그 전까진 우는데 집중하느라 맡지 못 했던 냄새다.
몇 일간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했던 그녀는 이제야 자신이 얼마나 굶었는지 상기한다.
음식을 앞에 두고 그녀의 배는 시끄럽게 요동친다.

‘..치이...치이이...치이...’

뭉툭한 손을 펼치고 톡톡 두들겨 보지만 비닐랩은 삼녀의 주먹을 탄력 있게 흘려보내며 버틴다.
제 뜻대로 되지 않은 것에 답답해하며 입을 삐죽 내밀곤 비닐랩을 노려본다.

나쁜 테치! 나쁜 테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뭔가에 막혀있는 그 답답함에 서러움이 올라오지만, 허기는 그녀의 울음을 막고 그 에너지를 먹이에 집중한다.
집요하게 랩을 내리누르고 때리고 걷어차는 삼녀의 노력은 조금씩 성과를 나타났고 결국 조그마한 구멍이 뽕 뚫렸을 땐 기쁨의 자축을 한다.

‘텟츙~♪’

삼녀는 행복한 표정으로 조그마한 구멍 안으로 손을 뻗는다.
반투명의 비닐 안으로 들어오는 상가의 불빛에 의존하여 보는 것은 힘들었지만, 도시락 상자 안에 널려있는 튀김옷 중 몇 조각을 움켜쥘 순 있었다.
거뭇거뭇한 손은 금방 기름기로 번들거렸고, 물이끼와는 다른 미끄러운 감촉에 재밌어한다. 그리곤 입에 넣는다.

‘츄우-♪’

비록 튀김 부스러기에 불과했지만 고소하면서도 바삭바삭한 맛은 맘에 들었다.
썩지 않은, 신선한 인간의 음식에 기분 좋게 울어대며 삼녀는 조그마한 구멍을 콩콩 내리쳐 그 범위를 넓혀갔다.

양 손을 부지런히 놀려 튀김옷들을 뜯거나 주워 먹었다. 이내 손이 닿는 곳에 있는 튀김옷들은 다 먹어치웠지만, 허기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
큰 덩어리를 먹고 싶다. 저것은 무슨 맛일까. 손으로 잡아당겨 봐도 비닐랩의 찢어진 부분이 작아 꺼낼 수 없었고, 손으로 잡아 뜯는 것은 별 소용이 없었다.

‘..치이...테치이...’

힘을 쓰느라 낑낑거리는 자실장의 미간은 일그러진다.
손으로 뜯을 수 없으면 바로 뜯어먹는 것은 가능할까 싶은 녀석은 고개를 쳐박고 이빨을 딱딱 거리며 돈까스 조각을 뜯어먹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일단 한 번 찢어진 비닐랩은 자실장의 돌격에 힘없이 쭉쭉 찢겨졌고, 이내 삼녀가 아무런 방해없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늘어났다.

‘테치이~♪’

해냈다는 듯 귀엽게 운 삼녀. 완전히 도시락 상자 안쪽으로 들어가자 안정적인 자세도 가능해졌다.
아예 도시락 상자에 들어앉은 녀석. 움직임에 불편을 주던 외부의 규칙적인 진동(남자들이 걸음걸이)은 이젠 기분 좋은 흔들림으로 느껴진다.

커다란 돈까스 조각들을 앞에 두고 삼녀는 앉은 자세 그대로 만세 포즈를 한 번 취하곤,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츄우앙~텁.....테챱..테챱...테츄우우!’

녹색과 검은색 얼룩으로 더러워진 앞치마에 자신의 침과 기름기가 섞인 음식물을 질질 흘려대는 삼녀.
귀는 전기 오른 듯 쫑긋 펴졌고, 입의 움직임이 반복될수록 두 눈은 점점 확장된다.
마침내 숨도 제대로 쉬지 않는지 콧구멍이 크게 수축이완을 반복하며 이따금씩 킁!킁!거리며 숨을 들이 내쉰다.







‘테..! 테치...! 테챱테챱....테킁...테에....!’

실로 ‘걸신들렸다’라는 표현이 알맞은 모습. 자신의 키보다 큰 돈까스 조각을 먹어치워 놓고선 만족하지 못한 듯 다음 조각으로 넘어가 맹렬하게 먹어댄다.
누군가가 이 모습을 봤다면 자실장이 돈까스를 먹은 게 아니라 돈까스가 자실장의 입 안으로 다이빙을 한 것이라 묘사할 만큼 엄청난 속도와 기세로 먹어댔다.

‘츄아앗-! 츄아아앗-!’

행복의 탄성을 내지르며 다음 조각으로 달려드는 삼녀의 배는 만화그림체처럼 불룩하게 나와 있어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간신히 짧은 팔을 뻗어 조각의 끝을 움켜쥐자 육즙과 기름이 주르륵 흘러나와 그녀의 더러운 스커트 위로 뚝뚝 떨어져 짙은 색 얼룩으로 번진다.
앉은 상태에서 똥은 계속 싸질러 대는 통에 진흙 뭉치는 소리를 내며, 먹어치운 돈까스의 분량만큼을 그대로 똥으로 배출해내 용기의 절반 가까이를 대신 채운다.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남자들은 스마트폰 음량을 최대한으로 키워놓고 고성방가를 질러대기 바빴고, 덕분에 삼녀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남자들의 만찬을 대신 먹어치울 수 있었다.










‘츄아앗! 테츄아아앗!’

‘뭐야 이거!’

월세방에 도착하여 주변 소음이 사라지자, 그제야 비닐봉지 안쪽에서 들려오는 자실장 울음소리를 눈치챈 남자.
봉지를 들여다보면, 똥투성이인 자실장 한 마리가 굉장히 흥분한 표정으로 두 손 벌리고 팔짝팔짝 뛰고 있었다.

‘테츄우우! 테츄우우우!’

바닥을 콩콩 두들기고 안아달라는 듯 팔을 벌리는 삼녀.
간만의 엄청난 포식으로 기분이 한껏 업된 녀석은 처음 보는 인간에게 놀아달라며 울어대고 있었다.
배가 부르니 놀 시간이다. 하지만 마마가 없으니 닝겐상과 노는 것이다. 라는 사고전개. 평소 습관이 반영된 사고방식.

‘뭔데 탁아? 우욱....탁아네’

코를 움켜잡고 돌아서는 친구. 그 사이에 남자는 비닐봉지를 그대로 씽크대로 가져가, 자실장이 들어앉아 있는 도시락 상자를 그대로 집어올린다.

‘테에? 테치! 테치테치이! 테츄우!’

들어 올려지는 것이 신기한지 가장자리를 꼭 붙잡는다.
고개를 약간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무서워하거나 집안의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둘러본다.
남자는 녀석을 그대로 싱크대 안에 내려놓는다.

‘츄아아? 테츄유! 테치잇~!’

싱크대에 그대로 내려놓자 도시락 통은 기우뚱 기울더니, 한쪽으로 넘어갔다. 삼녀가 한 쪽 벽면에 매달려 있던 탓이다.
약간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며 울먹이지만, 아픈 부위를 문지르며 도로 일어선다. 그저 울며 주저앉기엔 너무나 흥분해 있는 삼녀.

모든 것이 신기하다. 외풍이 없는 따듯함에 놀랐고, 뭔가 그득그득 들어선 모습에 놀랐다.
거기에 지붕이 너무나 높았다. 주변에는 재밌어 보이는 뭔가가 가득했고 어서 가서 그것을 놀고 싶다.
은색으로 둘러싸인 작은 상자의 안을 돌아다니며 자실장은 바닥에 묻어있는 깨끗한 물에 기뻐하며 자세를 엎드리고 할짝인다.

한편 두 남자는 오만상을 다 쓰며 ‘그나마 멀쩡한’ 물건을 골라내고 있었다.
똥이 묻은 것은 휴지로 닦은 후 1차 외부 포장박스를 벗겨낸다. 과자포장에 오만지랄을 다 떠는 한국 대기업들의 행태가 이럴 때만큼은 도움이 됐다.
최초 먹어치운 돈까스 도시락을 제외하곤 피해가 전무하다. 애초 자실장으로선 절대 종이박스를 못 뜯었겠지만.

‘아휴....아까워라....근데 저거 어떡해? 나 실장석 못 죽여. 엄마랑 누나가 해줬거든’

과자를 다른 상자에 옮기며 친구가 물었다.
자신이 지목받자 뭔가를 대단히 착각한 듯, 삼녀는 손뼉을 치며 깡충깡충 뛰더니 이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두 남자 시점에선 그저 똥투성이 벌레가 해괴한 몸짓을 하며 괴음을 내는 것일 뿐.

이들은 애호파도 아니고 학대파도 아닌 일반인. 질문을 받은 남자는 입을 삐죽 내밀며 한숨을 내쉰다.

‘내가 당한 거니까 내가 버리고 올게’
‘저거 분명히 쟤네 가족 조금 있다 와서 난동 부릴 텐데 그건 어쩌게? 나 진짜로 실장석 못 만져’

‘그니깐 내가 한다고 한 거잖아. 분명히 그 공원에 있던 놈 일거야. 거기 입구에다 버려놓으면 실패한 줄 알고 돌아간다고‘
‘진짜?’

‘응. 인터넷에서 본거긴 한데 진짜로 되더라. 이것도 그냥 묶어놓기만 하면 안 되고 머리 뽑고 옷 벗겨서 해야 돼. 그래야 무서워하면서 얼른 도망간다고‘
‘오오.....알겠어 난 정리하고 있는다’

‘오케이’

두 사람의 대화내용을 이해하진 못 하지만 고개를 번갈아 돌리며 화자를 쫓는 삼녀.
말을 마치고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인간을 보자 드디어 자신과 놀아주는 줄 알고 기뻐한다.

‘테츄! 테츄테츄우!’

‘가만히 가만히!’

‘츄아아! 테츄우~!’

폴짝폴짝 뛰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 한다. 잡기 위해 손을 뻗을 필요도 없이 남자의 손바닥에 잽싸게 올라타 손가락을 껴안고 핥거나 비비는 삼녀.
남자는 간지러움을 꾹 참으며 삼녀를 비닐봉지 안에 넣는다. 봉지 안에서 움직이느라 바스락 소리. 그 사이로 들리는 것엔 삼녀의 당혹감 섞인 목소리도 실려 있다.





공원에 가는 동안 지치지도 않고 요란하게 울어댔다.
그 기운참에 질려버려 그냥 죽일까 생각해봤는데 야밤에 실장석 일가 전체를 상대하는 건 끔찍하다.
요란하게 문밖에서 울어대고 그걸 또 잡을라고 빗자루 휘두르고 그 소동에 잠을 깬 집주인의 걸걸한 욕설을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진다.

‘치이-! 테치테치-!’

뾰로통한 표정으로 남자의 손바닥에 잡혀 들어 올려는 자실장. 정말로 엄청나게 더럽다.
비닐장갑을 끼고 있긴 하지만 장갑 너머로 녀석의 딱딱하게 굳은 똥과 미끈거리는 각종 개기름, 거기에 김치국물이 눌어붙어 고춧가루가 붙어있는 치맛자락,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타 얼룩들.
게다가 손가락을 핥아대는 녀석의 혓바닥은 대체 뭔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거뭇거뭇한 것이 잔뜩 묻어있다.

‘우으으...진짜 극혐...’

신음을 흘리며 남자는 벤치 아래 녀석을 내려놓는다. 주변을 콩콩 뛰거나 운동화를 껴안고 노래를 부르는 녀석.
도망갈까봐 붙잡을 걱정 할 것도 없다. 공원입구에 있는 이 벤치는 일종의 랜드마크. 공원에 서식하는 실장석이 밖으로 나오려면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한다.

녀석을 탁아한 가족은 이곳을 지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묶인 녀석을 보고 자신들의 실패를 깨닫겠지.
남자는 벤치 다리에 매듭을 묶는다. 반대쪽, 자실장에게 씌울 올가미는 일부러 헐겁게 묶어 실장석이라도 쉽게 끊을 수 있게 했다.
잠시만 붙잡아 놓으면 그만이다. 괜히 목이 졸려 죽는다는 것은 맘에 걸린다.

‘좋아. 됐다....’

이런 걸 두고 괜한 배려라 하는 것이다. 삼녀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남자는 철저히 자신 좋을 대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전혀 잘못된 행동은 아니다. 굳이 살생을 피하는 선한 청년의 마음가짐일 뿐이다. 다만 상황에 따라 오해를 했을 뿐.

자신의 앞에서 줄을 만지작거리는 남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하지만 동시에 줄이 동그랗게 변하는 것이 신기한 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손으로 입을 가며 테츄? 테츄? 거린다.

‘좋아...이제부터 본방이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테츄?’

크게 숨을 들이 쉬고 자실장의 풍성한 머리를 움켜쥔다.
뭉글뭉글하면서 얼기설기 얽힌 것이 도색작업때 쓰는 붓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자실장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는 줄 알고 귀엽게 테류류테류류 울며 어서 하라는 듯 톡톡 손짓을 한다.


[뿌드드득-]

‘.....츄아?’

소름돋는 소리가 나며 시원스럽게 뽑히는 양갈래 머리.
풍성한 머리가 있던 곳으로 흉한 두상과 닭살과 같은 돌기들이 돋는다. 군데군데 억센 쪽은 뽑히다 말고 꼬부랑 머리털 몇 올 남아 더욱 흉측한 모습이다.

콧물이 길게 흘러내려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멍하니 남자의 얼굴을 응시한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내려 보면 쓰레기처럼 내던져진 자신의 머리카락이 있다.
왜 머리카락이 여기에 있는 것일까 의문을 품으며 손을 뻗어보려 하지만, 그 순간 남자의 손이 내려와 자실장의 몸통을 꽉 쥐어 못 움직이게 하곤 녀석의 앞머리를 움켜쥔다.

‘츄아! 츄아아앗!’

남자의 의도를 깨닫고 자신을 쥔 손가락을 통통 내리치지만 우드득하는 느낌과 함께 앞머리가 흩날린다.

‘테치이잇! 테치이이잇!’

바닥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향해 손을 뻗는다. 허나 야속하게도 뭉툭하고 둔한 손가락 사이로 하잘 없이 흘러가 차가운 땅바닥에 내려앉는다.

‘테에...테에에...테치테치이...’







뭐라 중얼거리며 땅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워 자신의 이마나 뒤통수에 열심히 비빈다. 그렇게 하면 다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한 건가.
당연하게 머리카락은 도로 흘러내린다. 비통의 비명을 지르며 다른 머리카락을 집어 방금 했던 짓을 반복한다.
성급하게 바닥에 손을 뻗어 우둘툴한 블록표면에 손을 긁혀 상처가 나면서도 최대한 많은 머리카락을 움켜쥐려 노력한다.

‘우으으...옷도 해야겠지?’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발버둥 치는 삼녀의 허리를 누르고 팬티를 벗긴다.
머리카락에 이어 소중한 팬티까지 빼앗기는 충격에 삼녀는 최대한 저항을 하려 손발을 붕붕 휘두르지만 인간의 손아귀 힘을 당해낼 순 없다.
바닥을 콩콩 내리치고 발을 뻗어 손을 밀어내려 해봐도 다치는 건 삼녀뿐이다. 오히려 괜히 발버둥치는 바람에 살이 바닥에 쓸려 찰과상이 난다. 결국 팬티가 벗겨졌다.

하반신이 허전해진 것을 느낀 순간 삼녀는 세상이 끝난 듯 울었다. 이대론 끝이다. 상냥한 닝겐상에게 시집갈 수 없게 되었다. 총구는 소중한 곳이라고 누누이 배웠다.
언젠가 자신들을 사육실장으로 받아주고 아내로 맞이해줄 남편님에게만 허락하는 곳이 총구이다. 이곳으로 사랑을 나누고 자를 낳을 소중한 곳인데 함부로 범해졌다.
실제론 팬티만 벗긴 것뿐이지만 이미 삼녀의 정조는 엉망진창. 그 정조를 짓밟은 남자는 그것에 대한 의식도 없이 얼른 벤치 위에 던져놓는다.

계속 누르면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아 살며시 손을 떼 주어도 삼녀는 일어서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파묻고 두 팔로는 머리를 꽉 누르며 이것이 악몽이기를 빌었다.

싫은 테치...싫은 테치...
마마...마마아....







비탄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었다. 남자는 삼녀를 뒤집더니 그녀의 웃옷을 벗겨버린다. 아래부터 붙잡아 과자 껍질 벗기듯 하는 기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옷을 빼앗기기 전, 간신히 끝머리를 붙잡을 수 있었다.

‘테치이! 테치이이! 테치이이이!’

소중한 옷인 테치! 싫은 테치! 돌려주는 테치!

절박하게 호소하지만 남자는 간단히 손에 힘을 준다. 츄앗! 하며 앞으로 자빠지며 앞머리에 혹이 생긴다.
생생하게 당하는 폭거에 기가 막힌 듯, 벌어진 입에선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자꾸만 앞을 가려 희뿌옇게 되지만 벤치의 널판 틈을 통해 보이는 자신의 옷은 확인할 수 있었다.

‘츄아앗! 테츄아아앗-!’

손을 벌리고 힘껏 뛰어 봐도 닿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고. 옷은 여튼 위에 있으니깐 니 어미한테 꺼내달라 그래라. 머리카락은 어차피 또 나잖아?’
‘테에? 테치이! 테치테치이이!’

절박한 호소. 아마 원망하고 있는 거겠지. 약한 마음이 들었지만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이 정도면 굉장히 관대한 처사 아닌가? 하룻밤의 만찬 정도면 녀석들도 만족해할 것이다.
전혀 상처 입힌 것도 없다고 자위하며, 남자는 올가미를 삼녀의 목에 씌웠다. 그리고 너무 쉽게 빠지진 않도록 살짝 쥐여놓는다.

‘자 됐다. 이거 니 어미 정도면 쉽게 풀을 수 있거든? 여차하면 끊을 수도 있는거야. 너무 걱정마’

실제로 그는 매듭을 헐겁게 해놓았고, 끈 자체도 약한 것이라 성체정도면 금방 끊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철저히 자신만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 그는 삼녀의 어미가 죽은 것도, 찾아올 가족도 없다는 것을 모른다. 그저 비닐봉지에 우연히 들어가게 됐을 뿐.

게다가 남자의 지식은 철저히 사육실장 기준이다. 주변사람들이 키우는 것을 바탕으로 터득한 정보. 당연히 들의 기준과는 전혀 맞지 않다.
남자가 전제하고 있는 ‘머리카락은 다시 난다’라는 사실은 이론적으론 참이다. 실제로 사육실장들의 훈육에서 머리털 뽑기는 흔하다. 어차피 도로 나니깐.
하지만 그것은 영양공급이 썩어 남아돌 정도로 풍부한 사육실장들의 이야기다.
거기에 자실장이라면 성체보다 많은 기초대사량과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충족시키고 나서야 잔여 영양분으로 머리카락 재생을 한다.

당연히 들에서 살아가는 녀석들 중 태반은 첫 번째 조건도 지켜줄 수 없다.
오히려 어중간하게 영양분만 분산되어 성장도 못 하고 머리카락도 못 자라며 기초대사량도 확보하지 못 할 수 있다.
당연히 남자는 이것을 알 필요도 없고 신경 쓸 의무도 없다. 삼녀는 그저 실장석이니깐.

‘그럼 다신 오지마라. 또 오면 그땐 진짜로 혼난다?’

벤치 위에 놓여있는 옷을 향해 까치발들 들어보고 펄쩍펄쩍 뛰는 자실장을 뒤로 하고 남자는 일어선다.

뒤로 돌아 걷기 시작했을 때, 삼녀는 기둥에 얼굴을 들이받고 엉덩방아를 찧은 상태였다.
아픈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울먹이던 삼녀는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전기 오른 듯한 반응을 보이며 바늘에 찔린 듯 벌떡 일어나 남자를 붙잡으려 뛰어나간다.

‘테에에엥-! 테에에엥--! 테에에..게에엑! 테챳!’

목줄이 있다는 것을 잊었다. 그대로 목에 걸려 컥컥거리는 소리를 내며 뒤로 자빠진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을 삼녀지만, 사태의 심각성은 알고 있는지 손을 뻗으며 남자를 불러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착한 아이인 테치! 마마 죽은 테치! 이대론 와타치 죽는 테치!
배 뻬코뻬코 싫은 테치! 엉덩이 아야아야 싫은 테치! 딱딱 차갑차갑 침대 싫은 테치!
따듯따듯 집 좋은 테치! 맛나맛나 좋은 테치!

....남자가 실장석 말을 알아듣는다 해도 그리 설득력 있어 보이진 않는 변명.
목줄이 팽팽해질 정도로 앞으로 나간 삼녀는 팔딱팔딱 뛰며 자신을 돌아 봐달라 호소한다. 더욱 큰 소리로 울며 다시 한 번 외친다.

‘테챠아앗! 테챠아아앗!’

와...와타시는 맘마 많이 먹는 테치! 와타치 맘마 많이많이 먹는 테치! 마마도 칭찬한 테치!
똥 예쁘게 싸는 테치! 마마가 삼녀짱 응아 예쁘다고 한 테치! 또..또...

자신의 장점을 생각해내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잘 떠오르지 않는 모양인지 두 팔로 머리를 콩콩 두들기는 사이에도 남자는 점점 멀어져 결국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테에에에...테치이이이....’

충격에 벌어진 입. 목구멍에서는 꺽꺽 대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다시 한 번 앞으로 달려가 보지만 어김없이 목줄에 목만 졸린다. 묶인 곳을 따라 살이 벌겋게 부어오른다.
바닥을 내리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죽은 마마와 오네챠를 외쳐보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테에...텟승...텟승....’

가만히 서 있다 보니 엄습해오는 한기. 가을의 추운 밤공기가 그녀를 감싼다.
진작부터 감싸고 있었지만 온몸에 피가 쏠려 느끼지 못 했던 것. 차가운 기온에 손과 발의 끝은 벌써 얼얼해질 정도였다.
거기에 딱딱한 바닥 위에 서있거나 내리치는 통에 사방이 찰과상이 났다. 천천히 그나마 따스함이 느껴지는 나무 벤치에 기댄다.
바닥은 딱딱하고 차가워 엉덩이 안 쪽 살을 뚫고 한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두 다리를 꼭 껴안고 고개를 쳐박으면, 끈적하고 역겹지만, 따듯한 숨결이 안쪽으로 맴돌아 얼굴만큼은 푸근해지는 기분이다.

‘츄아아.....’

보고 싶은 마마. 마마가 주는 맘마가 먹고 싶다. 마마의 찌찌가 먹고 싶다. 몰캉거리는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주황색 이불 속에서 자고 싶다.
언제나 사랑한다 속삭이는 마마에게 안겨 후끈거릴 정도로 따듯한 잠자리가 그립다.

‘테에엥...테에에엥...텟승...텟승....’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구도 맞이하러 올 연고가 없는 자실장 한 마리가 벤치 밑에서 울고 또 울었다.





아침이 지나고 점심이 지나고. 조금 있으면 어둠이 깔릴 것이다.
약간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행인들은 목깃을 세우거나 옷깃을 여미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적응하느라 몸을 으스스 떤다. 괜히 밖에 오래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어서 집으로 들어가 따듯한 물로 목욕을 하고 소파에 누워 TV프로를 볼 기대를 하며 인파는 조금씩 옅어진다.

주 도로에서 약간 떨어진 공원. 인적도 드물지만, 최근 행해진 구제로 인해 실장석도 없어 적막한 공원.
분명 들릴 리가 없는 실장석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온다.
울음소리는 바람결에 흘러나왔다 잠시 끊겼다 이어졌다를 반복한다. 주의 깊은 듣지 않으면 캐치하지 못 할 수준.







‘....테치이......’

그것은 벤치 밑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시선을 그쪽으로 돌려봐도 행인들은 아무것도 못 볼 것이다.
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제야 벤치 밑에서 떨고 있는 작은 자실장 한 마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손발은 퉁퉁 부어올라있고, 눈 주변은 말라붙은 눈물줄기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특히나 이 녀석은 독라다.
머리카락이 뜯긴 지 몇 시간이 지났지만 추위로 인해 올록볼록하게 잔뜩 올라온 상태 그대로다. 머리를 감싸주는 머리털과 두건을 모두 빼앗겨 마치 병에 걸린 것 같이 피부가 붉게 부르텄다.

‘치이...테치이.....’

누군가가 의복을 빼앗았는지 벌거벗은 녀석. 마름버짐과 추위로 인한 동상이 온 몸에 번져 있었다.
길고 긴 밤을 어떻게든 자보려고 노력했는지 몸 여기저기에 울룩불룩 들어간 자국들이 보였다.
동상으로 부어오른 살갗으로 인해 그것들은 쉽사리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변을 누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지 바닥에 붙어있는 엉덩이 아래로는 녹색 대변이 둥글게 퍼지고 있다.

처음 똥을 쌀 때는 따듯하여 엉덩이를 일부러 비비던 대변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자실장의 체온을 앗아간다.
거기에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까지 겹쳐 감각마저 둔하게 변했다. 축 늘어진 귀는 새빨갛게 되어 칼바람이 불때마다 귀를 찢는 듯한 아픔에 시달린다.
자실장은 눈물을 흘리며 귀를 어루만져보지만 더 큰 아픔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뗀다. 그래도 꿋꿋하게, 떨리는 손으로 살살 귀를 쓰다듬어준다.

‘츄아...츄아....’

아프지 마는 테치...아픈 것은 사라지는 테치...
어미에게 배운 것일까. 전혀 쓸모없다는 것은 똑같지만.


[저벅저벅저벅]

‘....치이...치이...’

어디선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자실장은 엉금엉금 긴다.
손발은 추위로 인한 화상으로 움직이기만 해도 아팠지만,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뭔가에 홀린 듯, 아니면 공포에 질린 듯 벤치 안쪽으로 기어들어간다.

목에 묶인 줄 때문에 행동반경이 일정 반경 이하로 제한되어 있으면서도 최대한 줄이 늘어나는 범위까지 기고 또 긴다.
안쪽으로 들어간 녀석은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완전히 들리지 않을 때까지 입을 다물고 버틴다.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고 판단했는지 그 동안 참은 숨을 푸하하고 내쉰다. 따듯한 숨결과 함께 하얀 김이 뿜어 나온다.

삼녀는 굼실굼실 다시 앞으로 기어 나온다.
일부러 다시 나오려는 이유는 햇볕. 그나마 햇볕이 드는 쪽에 있어야 따듯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러는 것이다.
따듯한 햇님에게 간절히 소원을 빌면서 그녀는 퉁퉁 부어오른 손과 발을 핥는다.

‘테헤에....테에에....’

힘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 어젯밤의 일로 삼녀는 인간에 대한 공포가 생겼다.
아니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공포가 생겼다. 깊은 트라우마에 모든 것이 자신을 괴롭힐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이런 상태이다.
누군가가 오면 숨을 죽이고 벤치 아래로 기어들어가고, 아무도 없으면 비로소 기어 나와 햇볕을 쬐고.

그러나 삼녀는 몰랐다. 아직 기운이 있을 때, 아직 날이 밝을 때, 아직 사람들이 많아 그 안에 혹시나 섞여있을 애호파에 운을 걸었어야함을.
저 하늘 건너편에 운집하고 있는 심상찮은 구름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고, 사그라드는 목소리로 추운 테치 추운 테치...만을 중얼거릴 뿐이다.
조만간 그녀는 깨닫게 될 것이다.

‘춥기만’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쏴아아아—쏴아아아---]


쏟아지는 빗줄기. 건조했던 가을하늘이 간만에 습기를 내려준다.
계속된 건조한 날씨에 바싹 말라있던 대지는 빗물을 삼켜 품에 안는다. 쩍쩍 갈라진 땅의 상처 사이로 빗물은 흘러들어가고 점차 토사가 흘러내려 갈라진 틈을 메운다.

처음 내리는 비는 흔히 ‘흙비’라고 한다. 현대도시의 스모그, 미세먼지, 공해들을 모두 붙잡아 끌어내리는 선발대 같은 존재들.
유리벽 너머로 빗줄기를 관찰하면 어느새 물방울과 함께 건더기가 잔뜩 묻어있는 유리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간만의 빗줄기에 반가워하면서 동시에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를 피해 집으로 서두른다.
모두가 어디론가 돌아갈 곳이 있다. 허나 그것을 박탈당한 자실장이 하나 있었다.

‘테챠...테챠아아....’

사정없이 튀기는 물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 매끈한 삼녀의 살에는 솔잎, 나뭇가지, 기타 검댕이들이 착 달라붙는다.
처음에는 그 찝찝함에 떼보려고 했지만, 1개를 떼면 2개가 새로 달라붙는 통에 포기했다.
그저 축 늘어진 귀를 양손으로 붙잡아 늘려 얼굴을 가리고, 고개는 다리 사이에 파묻어 물을 피하려고 애쓴다.

갈 곳이 없는 물방울들은 점점 줄기를 형성하여 작은 강처럼 바닥의 경사도를 따라 흘러 내린다.
삼녀가 앉아 있던 바닥에 눌어붙은 녹색똥덩이를 집어삼켜 약간 녹빛을 띄지만 수없이 새로 쏟아지는 물방울에 그 색깔은 금방 옅어진다.
몇 올 남아있지 않은 머리카락은 축 늘어져 어깨와 뒷통수에 달라붙고 초라한 귀는 몸의 떨림에 따라 바들바들 떨렸다.

너무나 춥고 또 춥다. 안 그래도 추운데 거기에 차가운 물을 끼얹어 진다. 빗방울은 작은 자실장의 체온을 사정없이 앗아간다.
하렴 없이 눈물을 흘리는 통에 삼녀의 발아래론 적록색 물줄기가 흐른다.

‘테에에엥....테챠아아....테치에에엥....’





빗줄기는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굵어졌고 물줄기는 세차게 흘러내렸고, 여기저기 작은 강을 형성하여 콸콸 흘러내렸다.
삼녀 주변까지 들이닥친 물줄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머리카락을 집어삼키며 유유히 흘러간다. 그 모습에 경악하는 삼녀.







‘테샤아아앗-! 테샤아아앗-!’

머리카락을 빼앗지 말라 외치는 그녀의 입에선 허연 김이 뿜어 나온다.
넘실거리는 물줄기를 타고 흘러가는 머리카락에 손을 뻗어보아도 건질 수 있는 건 몇 올뿐.
물에 젖어 손바닥에 찰싹 달라붙은 그 머리카락을, 좀 전까지 실패했던 머리에 도로 붙이는 짓거리를 한다.

‘테에에..테치이이!’

붙어라 붙어라라고 말하는 것일까. 자신의 상황이 절박하게 된 것과 머리카락이 도로 자라나는 것에는 어떤 연관관계도 없지만.
그 사이에 또 다른 물줄기가 머리카락을 집어삼킨다.

‘챠아아-! 테챠아아-!’

마치 달아나는 것처럼 휩쓸려간다. 삼녀는 멀어져가는 머리카락을 쫓기 위해 발의 동상도 무시하고 뛰쳐나간다.
부드러운 우레탄 같은 발바닥이 약간 차오른 물을 밟으며 찰박찰박 소리를 낸다.
뼈가 시릴 정도의 통증을 무시하는 삼녀는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목에 걸린 올가미에 걸려 켁! 소릴 내며 뒤로 자빠진다.


[참방]


아찔해지는 정신을 가다잡으며 널브러진 자세에서 눈을 끔뻑인다. 하늘은 언제나 푸르고 상냥한 하늘이 아니었다. 화를 내는 듯 시커멓고 심술을 부리는 듯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다.
공허 속에서 쏟아지는 탄환과도 같은 모습에 삼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아기처럼 몸을 웅크린다. 몸 주변으론 빗물줄기가 감싸며 세차게 흘렀다.
콧구멍과 귀에 물이 들어가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휘휘 젓는다.

‘테치잇!’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머리카락마저 떠내려간다. 떼에 찌들어 한 덩이로 뭉쳐있던 머리카락은 약을 올리듯 야속하게 멀어져 간다. 싫다 저것만큼은 싫다. 독라는 싫다.
삼녀는 몸을 뒤로 기울여 줄을 잡고 넘어지는 듯 한 자세로 줄을 잡아당긴다.

‘챠아아-! 테챠아아-!’

기합이라는 것일까. 마지막 힘을 끌어모으며 괴성을 내지르는 삼녀. 줄다리기 하는 초등학생들처럼 잡아당긴다.
감각조차 희미해져가는 두 손으로 꼭 붙잡아, 살 사이로 파고드는 줄에 핏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통증도 둔해졌다는 것이 이점으로 작용한 것일까. 삼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줄을 계속 잡아당긴다.

[투두둑...]

애초 헐겁게 묶어놓은 매듭이었다. 게다가 줄 자체도 약한 것이라 지속적 힘을 가하면 이렇게...


[투두두두둑....!]


자실장의 힘으로도 끊을 수 있다.


‘테챳!’

[참방!]


관성에 의해 일시에 뒤로 넘어지는 삼녀. 벌써 만들어진 얕은 물웅덩이에 머리부터 뒤로 빠져 물을 들이키며 허우적거린다.
낮 동안 보인 둔한 움직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팔팔하게 물을 쳐대며 얼른 고개를 공기 중으로 들어낸다.

‘켈록..! 켈록켈록...!’

기침을 하며 물을 뱉어내는 삼녀는 뭔가 생각난 듯 귀를 쫑긋 세운다. 그렇다 자신은 머리카락을 쫓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도망가고 있다. 붙잡지 않으면 영영 독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독라는 싫다.
이미 머리카락은 한참 흘러가 배수로에 들어간 지 오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삼녀는 몸을 감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몸을 이끌고 여기저기 참방거리며 헤맨다.

이따금 물웅덩이에 손을 집어넣고 뭔가 건져내는 자세를 취하지만 손에 올라온 것은 풀줄기나 쓰레기임에 괴성을 찍 내지르곤 내용물을 물 속에 다시 내던진다.
물줄기가 흐르는 쪽으로 가는 것도 아니라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는 이런 식의 수색으론 수백 년이 걸려도 찾지 못 할 것이다.

‘테에엥...테에에엥..! 테에에에엥...!’

마마를 부르는 삼녀. 두 눈에선 빗물과 섞인 눈물줄기가 또 다른 강처럼 흘러내린다. 이 모든 것이 그녀를 지치게 한다.
발목을 지나 무릎에 이르는 빗줄기. 온 몸을 두들기는 물방울.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것에서 오는 좌절감과 외로움이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판다.






한바탕 비가 휩쓸고 간 다음 날. 하늘에 잔뜩 끼어있던 우중충함은 빗물이 전부 끌어내려 평소와 다른 상쾌함이 감돈다.
폐 가득 숨을 들이마셔도 이전의 끈적함은 느껴지지 않고 청량함만이 가득했다.
이번 주 들어 가장 낮은 기온이라는 기상청의 예보에 긴 옷과 웃옷이 부쩍 늘었다.
아이들은 흰 입김을 내뱉으며 장난을 치고 어른들은 옷을 여미며 출근길을 서두르는 가운데, 이런 기온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 하는 이가 있다.

‘테에에...테에에에....’

풀숲이 흔들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가운데에 독라 자실장 한 마리가 축 늘어진 나뭇잎을 웃통에 두르고 바들바들 떨고 있다.
이빨이 서로 부딪치며 딱딱 소리를 내고 다리를 여기저기 꼬물거리며 어떻게든 열을 내기 위해 애를 쓴다.

추운 테치...간지러운 테치....아파아파 테치.....

삼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추위만이 아니었다. 약한 동상으로 피부가 굉장히 민감해졌다. 풀숲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쓰라린 아픔을 느껴야만 한다.
게다가 이런 흙바닥에는 지뢰들이 도사리고 있다. 작은 조약돌을 실수로라도 밟으면 레고를 밟은 것만큼이나 지옥같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실제로 삼녀는 이곳에서 이동하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번번히 조약돌을 밟고 자빠지기 일쑤였다.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 엉엉울며 마마를 불러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통감하며 조심스럽게 발바닥에 박힌 조약돌을 빼낸다.
움푹 들어간 살이 걱정스러운 듯 톡톡 쳐보면 그 안쪽으로 약간 찢긴 부분에서 나온 조그마한 핏방울이 맺힌다.

다시 울상을 지으며 주변에 누군가를 찾는 듯 한번 쓱 돌아보고는 다시 상처에 고개를 박고 여기저기 찢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상처를 핥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완화되었고, 완전히 낫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결정한다.
혹시나 하는 맘에 옆에 떨어져 있던 나뭇잎을 옷처럼 둘렀다. 흠뻑 젖어 흐믈거리는 나뭇잎이 맨살에 찰싹 달라붙을 때는 그 차가움에 심장마비가 걸리는 줄 알았다.
테엣...하는 신음을 흘리며 참아내면 이전보다 약간은 나은 느낌이다.
적어도 맨살에 바람이 닿는 건 차단할 수 있었으니깐.


[꾸르르륵...]

‘테에에...’

뱃속의 요동. 동시에 길게 늘어지는 침줄기.
삼녀는 엊그제 먹었던 돈까스 도시락을 떠올린다. 그것은 정말 맛있었다....

‘테치이....’

자신만의 망상으로 회피한 것일까 입을 호물거리며 잠시간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행복회로 속에서 만찬을 즐기고 있는지 손을 허공으로 뻗어 뭔가를 집은 후 입으로 끌어당겨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아무것도 없는 입을 딱딱 소리 나게 움직이고 곧 꿀꺽 삼킨다.

여기서 행복회로는 끝났는지 삼녀는 눈을 뜬다.
자신의 손에 있어야할 돈까스가 보이지 않는 것에 깜짝 놀라며 이리저리 둘러보고 자신의 발을 들어보더니 이것은 꿈이었다고 납득한다.
실망감에 두 귀는 축 쳐진다. 빨갛게 부어올라 가볍게 떨리는 큰 귀.

‘테츄우....’

총구도 간지럽다. 손을 내려 긁으려 해도 뭉툭한 손으론 제대로 가려움이 해소되지 않는다.
이런 때는 보통 마마가 혓바닥으로 핥아주던 것을 기억해낸다.
곧바로 행동에 옮기기로 한 삼녀는 마치 개들이 하는 것처럼 다리를 양 쪽으로 쫙 벌리고 고개를 최대한 숙여 총구를 핥으려 했지만, 피가 머리로 쏠리는 것에 현기증을 느끼며 휘청거렸다.
그대로 뒤로 드러누워 일단 휴식을 취한다.

총구는 간지럽다 못 해 욱신욱신하는 생살앓이에 가까웠다. 총구의 갈라진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이리저리 쓰다듬어도 아린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젖은 땅에 맨살로 앉아, 총구에 진흙이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 미세한 입자들이 총구 안쪽을 돌아다니며 간지러움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완전히 퉁퉁 부어올라 고동치는 듯 해도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에 좌절하며 흐느낀다.

‘테에엥...텟승...텟승....테에엥....’

마마가 보고 싶다. 집을 떠난 뒤부터 한시도 빠지지 않고 마마가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특히나 보고 싶다.

그때 그 인간들은 왜 자신을 버렸을까.
자신이 얼마나 잘 먹고, 운치를 예쁘게 싸고, 귀엽게 춤과 노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도 어째서. 자신은 귀엽다. 그런데 왜 버렸을까.
자신 정도의 귀여움이라면 누군가 바로 키워주는 것이 정상이다.

마마가 언제나 말했다. 삼녀짱이 너무 귀여워 누가 몰래 데려갈까봐 걱정이라고. 이런 거 절대로 이상하다.

또 다시 눈물이 흐른다. 양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볼 아래로 미끄러져 가는 것이 간지럽다.
이내 콧물도 흘러나와 입 안으로 들어간다. 쪼그려 앉아 쿨쩍거리는 그려는 어디선가 약간의 온기가 느낀다.

온기? 이곳에서 온기가 나올 곳이 있나? 그간의 고생이 약간의 재치는 더해주었는지 그녀의 머리는 온기의 진원지가 있을 것이라 판단을 한다.

‘테치이...’

따듯한 곳을 찾는 테치....밖에 나온 이후에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 많아졌다. 아니 이것 또한 마마와 함께 있을 적의 습관이다.
응석받이였던 삼녀는 마마나 오네챠들에게 자주 애교나 어리광을 부렸다. 그래서 늘 조잘조잘.
지금도 자신이 힘든 것, 혹은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을 중얼거리는 것은 똑같다.
대답해줄 이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고.

다시 가족의 공백을 느끼며 삼녀는 가만히 눈을 감고 촉각에 집중한다.

‘테치!’

저쪽이라고 외치는 듯 짧게 찍찍 운다.
사락거리는 풀을 헤치고, 약간 물기가 남아 질척거리는 땅바닥을 밟으며 따듯한 바람이 나오는 곳으로 걸어간다.
바닥에 조약돌을 밟지 않을까 주의깊게 살핀 덕에 이번만큼은 불상사가 없었다. 그녀가 도달한 곳은 자판기 뒷면.

기계에서 나오는 열기가 희미하게 나오고 있었다.
삼녀 같은 실장석들에게 꽤 문제를 겪었던 자판기 업체도 생각은 있는지 기계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은 전부 철격자로 막아놓았다.

‘츄우우...’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따듯한 김. 얼굴을 들이밀고 있으면 눈이 금방 건조해져 따갑다.
눈을 감고 앞에 앉아 있으면 꽁꽁 얼어있던 몸이 녹는 기분. 귀가 제일 먼저 풀어져 이전같이 쫑긋거릴 수 있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손과 발을 갖다 대면 조금씩 감각이 돌아온다.

10분이 채 지나기 전에 온기를 회복한 삼녀는 눈을 뜨고 기계를 살핀다. 이곳에만 따듯한 바람이 나오는 모양.
뒷면에 머무르며 철격자 건너편을 관찰한다. 이곳도 따듯한데 저기 안쪽은 얼마나 따듯할까 하는 생각에 장애물을 밀어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들생활을 하는 실장석은 나름대로 본능을 터득해 굴이 있으면 일단 비집고 들어가는 성향이 있다.
그곳이 안전하고 따듯하다는 것을 아는 걸까.

‘치이....치이...’

용을 쓰며 밀어보고 당겨 봐도 격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한번 깨물었다가 전기 오른 듯 시큰한 아픔에 뒤로 물러나 입을 움켜쥐고 울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격자를 뚫고 가려는 노력은 포기한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테치이이...테치이....’

몸의 근육과 지방들이 녹으며 간지러워진다. 팔다리를 이리저리 주무르는 삼녀.
하루 종일 긴장상태였고, 물을 뚫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통에 온 몸이 피로하다.
몸이 녹은 것에 마음까지 녹았는지 그녀는 긴장을 풀고 그대로 주저앉는다.
연석 위에 굳어있는 흙덩이가 삼녀의 탱탱한 우레탄 보디에 밀려 바스라진다.
엉덩이 밑에 느껴지는 까슬까슬한 감촉. 기분 좋은 온풍.

[브리리릭....]

푸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총구주변을 중심으로 흐르는 녹색똥. 똥과 함께 나온 가스에 엉덩이살이 약간 마찰해 방귀소리를 낸다.
총구 안에 굴러다니던 흙알갱이들이 같이 배출되며 약간 시원해지는 느낌. 퉁퉁 부어올라 있지만 적어도 간지러움은 없어져 편안하다.
걸리적거리던 게 없어지자 저절로 감기는 눈. 조금씩 끄덕이던 고개는 푹 고꾸라 지더니 이내 삼녀는 기계에 기댄 자세로 잠든다.





눈을 다시 떴을 때, 사방은 컴컴했다. 다시 밤이 돌아온 것일까.

집을 나와서부터 생체리듬이 엉망이다. 보통 실장석이란 종은 철저한 주행성 동물로 밤에 익숙하지 못 하다.
아침에 수집활동을 하고 밤에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집이 없는 떠돌이 개체라도 밤이 되면 어딘가 몸을 숨길만 한 곳 아무 곳이나 비집고 들어가 하루밤을 보낸다.

어둠 속에서 제대로 볼 수 없어 포식자에 대응하기도 어렵고, 자원을 수집하는 것도 당연히 할 수 없다.
도심 속 환한 밤을 사는 녀석들이라 해도 일단 보금자리에 들어가 놀던지 뒹굴던지 한다.

어미가 있을 때는 그럭저럭 따랐던 리듬을, 이젠 이끌어줄 이를 잃은 삼녀.
어딘가 몸을 피할 곳을 찾지 못해 이렇게 자판기 뒤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생활리듬이 흐트러져 밤에 눈을 뜬 녀석은 양 어깨를 감싸며 바르르 떤다.
온 몸을 감돌고 지나가는 찬 공기. 뒤에서 나오고 있는 온풍마저 휩쓸어가는 세기의 바람.
손바닥으로 맨 살을 문질러 열을 내려는 심산으로 여기저기 주무르거나 문질러 보지만 불어닥치는 찬 바람은 작은 자실장을 세차게 몰아붙인다.

가뜩이나 체구도 작아 기온변화에 민감하다. 한번 바람이 불때마다 뼛속까지 시리는 느낌에 고개를 팍 숙이고 애처롭게 치이...치이...울어대는 녀석.
벌써 몸 가장자리 부위는 얼얼해진다. 손과 발을 펴 자판기의 격자 앞에 대봐도 쉴 새 없이 불어 닥치는 바람 탓에 소용이 별로 없었다.

바람씨는 그만 부는 테치...추운 테치이....
바람씨 너무 추워추워 테치이이....
와타치 슬픈 테치....그만 부는 테챠아....

울먹이며 허공을 향해 중얼거린다. 자신에게 건네는 건지 누군가에게 애원하는 것인지.
구슬프게 찍찍거리는 울음소리도 기계음과 바람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치이이...치이이...치이이....’

조금 지나자 울먹이는 것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바람이 몰아닥친다.
삼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격자에 바싹 붙어 감각이 멀어져 가는 몸뚱이를 웅크리고 이빨을 딱딱거리며 떠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고 있던 뒤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가까워지는 소리에 축 늘어져 있던 한쪽 귀가 살짝 들려 소음을 잡아낸다.


[자박자박자박...]


다시 떠오르는 악몽. 그 무서움에 삼녀는 닫히지 않는 입을 최대한 오므리고 소리를 밖에 내지 않고 애를 쓴다.


무서운 테치...무서운 닝겐이 돌아온 테치이...
싫은 테치이...싫은 테치....아파아파 싫은 테치...슬퍼슬퍼 싫은 테치이...


인간과 첫 조우는 최악이었다. 애써 귀여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돌아온 것은 폭력밖에 없었다.
옷과 머리카락을 빼앗고 하루 종일 벤치 밑에 묶어놓는 폭거를 저지른 인간은 너무나 무섭다....
독라가 되던 그 끔찍한 순간을 떠올리며 발발 떠는 삼녀에게 굉음이 들린다.


[우당탕 콰앙!]

‘....치잇-!’

자판기에서 음료수가 나오는 소리였다. 인간에겐 자동차 경적만큼이나 익숙한 소리지만 갑작스런 굉음에 삼녀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자신이 낸 소리에 더 놀라 입을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한 꺼풀 속살 아래 콩닥 거리는 심장. 콩콩콩거리는 울림은 점점 빨라진다.

작은 짐승이라 더욱 빠른 심박수는 거의 기관총 같은 속도로 뛰어댄다.
호흡이 어려워져 정신이 아찔해진 삼녀는 살짝 손바닥을 올린다. 입을 내밀고 가픈 숨을 헉헉 들이내쉰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제발 무서운 인간이 그냥 지나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은은한 가로등 불빛이 뭔가에 가려지며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얇은 눈꺼풀 너머로 어두워지는 주변을 보고 삼녀는 모든 것이 틀렸음을 직감한다.
잔뜩 몸을 오그리고 다가올 충격에 대비한다. 제발 너무 아프지는 않기를 죽는 것만큼은 무섭다. 마마와 오네챠처럼 죽는 건 싫다. 무섭다.

내려온 것은 가차 없는 주먹질이 아닌 다정한 어루만짐이었다.

‘뭐니 넌....야밤에 돌아다니는 놈은 처음 본다’

‘....치이...치이....’

죽이지 말아 달라 중얼거리는 삼녀를, 남자는 쓰다듬어준다.
애호가도 학대파도 아니다. 다만 동물을 좋아하는 일반인.
길을 가다 개미가 있으면 그냥 과자를 던져주고 고양이가 있으면 손을 내밀며 우쭈쭈 거리는 정도.
키워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여러 제약에 막혀 망설이는 사람이다.







남자는 장갑을 낀 손으로 삼녀의 맨들맨들한 살을 여기저기 쓰다듬어준다.
장갑을 껴 감각은 둔하지만 확실히 전해지는 떨림. 엄지손가락을 녀석의 가슴팍에 갖다 댔을 때는 깜짝 놀란 듯‘챠야-!’ 소리를 흘리며 움찔했다.
심장박동이 엄청나게 빨라진걸 보니 잔뜩 겁에 질런 모양이다. 머리를 쓰다듬어도 잔뜩 웅크리기만 할 뿐 몸의 긴장을 풀지 않는다.
확실히 그럴 만도 하지. 날씨도 이런데다 자신 같은 거인이 갑자기 손을 들이대니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휴우...요즘 상당히 추워져서 말이야’

이 녀석들이 [독라]라고 불리는 족속들인 것은 알고 있다. 버려진 놈들. 실장석 중에서도 최하층을 담당하고 있는 녀석들.
그런 사실이 약간의 동점심을 불러일으킨 걸까, 남자는 변덕을 부린다.

주변에 있는 쓰레기들을 몇 개 주서모아 이리저리 배열하고 손을 보는 남자.
그런 남자의 손을 쫓아 조금씩 고개를 돌리지만 자신이 무서워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중간중간 상기한 삼녀는 고개를 폭 숙이고 다시 바들바들 떠는 것을 반복한다.

남자는 자실장이 들어갈 만큼 땅을 파고 주변에 굴러다니는 나뭇잎과 휴지뭉치를 풀어서 잘 깔아놓는다.
그리고 그 위로는 지붕 대신인 듯 과자봉지를 덮어둔다. 혹여나 바람에 날리지 않기 위해 제법 큰 돌을 올려놓아 단단히 고정한다.
약간 입구를 벌려놓아 충분히 녀석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다.

눈앞의 인간이 뭘 하고 있는지 감도 잡을 수 없다. 호기심은 동하지만 추위와 두려움으로 감히 고개를 들지 않고 살짝살짝 눈으로 훔쳐보기만 할 뿐.
제대로 된 들생활 경험이 있는 놈이라면 저것은 잘 만들어진 땅굴이란 사실을 바로 알아챌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호의임을.

하지만 어미의 슬하에서 그저 어리광만 부리며 살아왔던 삼녀에게 이것은 전혀 생소했다. 왜 땅을 파고 왜 뭔가를 덮고 돌을 올려놓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나뭇잎이 두둑히 쌓였을 때만 살짝 귀가 쫑긋했을 뿐이다. 마마와 집에 있을 때 바닥에 두둑히 깔린 것임을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그뿐, 그것이 보온효과를 주는 것은 모른다.

‘웃샤 그럼~’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며 남자는 자실장을 집어 든다.

‘...치아...테챠아.....’

굼실굼실 거리는 동작으로 남자의 팔을 밀어낸다. 명백한 거부의 의사.
모든 것이 공포인 삼녀는 자신의 전신을 감싸는 거대한 손길을 발로 걷어차거나 팔로 내리치며 반항하지만 남자 입장에선 그저 구석으로 도망가는 햄스터 수준의 저항.
팔다리를 꼬물거리며 칭얼거리는 모습도 귀여운지 풋 웃으며 떨어뜨리지 않게 꼭 잡는다.

‘챠아...챠아아아.....’

최후의 저항으로 한번 밀어내더니 고개를 축 늘어뜨린다. 긴장과 피로가 극에 달해 그대로 기절한 것이다.
순간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박동을 확인하고 남자는 안심한다.

‘뭐야 사람 놀래키고....’

독라들은 박해받는 존재. 아마 제대로 먹지도 못 했겠지. 약간 불쌍한 마음이 든다.
어차피 도와주는 거 확실하게 하자는 마음에서 남자는 방금 뽑은 음료수 캔 입구를 살짝 기울인다.
자실장의 턱을 양손으로 붙잡아 벌린 다음 흘리지 않게 조심하며 조금씩 흘려준다.

‘....테에...테츄우....테에...’

입에 들어오는 뭔가를 반사적으로 삼킨다. 꿀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목구멍이 움직이는 것을 보곤 안심한다.
중간중간 뭐라 중얼거릴 때 약간 흘린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삼킨다.
마치 깔대기에 조심스럽게 물을 붓는 것처럼 그 행위 자체에 몰두해버린 남자는 캔이 절반 가까이 비었을 무렵에야 그만 두었다.

‘엇차차...이 녀석이 내 거 다먹는구나...’

싫지 않다는 미소를 풋 짓는 남자. 자실장의 얼굴에는 확연히 활기가 돌았다.
아직 정신을 차릴 기미는 없는지 축 늘어진 상태 그대로. 죽은 척이 어설픈 실장석의 습성상 저건 진짜일 것이다.
적어도 기뻐하는 모습은 보고 싶었던 남자는 약간 아쉽지만 여기서 작별하기로 한다.

자실장을 토굴에 살포시 눕혀준다. 행복한 꿈을 꾸는 모양인지 짭짭 거리며 입안의 단맛을 음미하는 녀석.
태아와 같은 형상으로 몸을 웅크리고 엄지손가락을 쪽쪽 빤다.
이내 옹알이를 하는 자실장 위로 약간의 나뭇잎을 더 얹어 주고는 그 위에 비닐봉지를 도로 씌워준다.

자신의 작품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남자는 남은 음료를 한입에 삼킨다.
옆의 쓰레기통에 골인시켰을 때 난 금속음이 들렸을 때 살짝 움찔하여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 것을 제외하곤 조용한 토굴.
그것을 마지막으로 남자는 돌아서서 다신 돌아보지 않았다.





‘테츄우...테츄우....’

엄지손가락을 마마의 젖인 듯 쪽쪽 빤다. 이것은 마마의 젖. 언제 먹어도 달달하다.
꿈속에서 마마의 젖을 먹는 삼녀. 그리고 실제로 입안에 느껴지는 단맛. 그녀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꿈과 현실의 콜라보를 만끽한다.

그것이 남자가 주고 간 음료란 걸 눈치채진 못 했지만. 게다가 왠지 빵빵해진 포만감에 더욱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온 몸을 따스하게 덮어준 나뭇잎과 휴지뭉치는 더욱 편안한 수면을 유도했고, 지붕이 있는 땅굴에 들어간 이상 바람에 시달릴 이유도 없다.

‘테츄테츄우...치프프..치프프프....’

어느새 풀어진 몸을 반대쪽으로 뒤척인다.
딱딱한 바닥과 달리 부드럽게 받쳐주는 쿠션감에 전혀 깨는 일없이, 삼녀는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었다.
꿈속에서 마마는 이전과 같이 예쁘고 듬직한 모습 그대로였다.


마마인 테츄! 마마인 테츄! 마마 좋아좋아테치! 마마 보고싶었던 테치!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는가. 자신이 얼마나 잘 했는가. 인간이 얼마나 나쁜가.
하지만 먼저 나온 말은 그것이었다.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아기인 것일까.
풍만한 마마의 가슴에 폭 안기면 느껴지는 부드러운 유방. 언제나처럼 젖이 가득 고여 있는 그 향긋한 유방에 가슴을 폭 안기며 고개를 비빈다.


어쩔 수 없는 아기인 데스....


평소와 같은 마마의 멘트. 이것은 마마다. 마마가 돌아왔다.

행복회로와 꿈이 섞인 비현실이었지만 작은 자실장 삼녀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이 순간이 소중할 뿐이다.
다시 떨어지기 싫다는 듯 양손에 힘을 꼭 준다. 가슴에 안긴 자세로 고개를 들면 마마가 내려 보고 있다. 입가엔 인자한 미소를 띄고.


마마! 마마! 마마! 좋은 테치! 좋은 테치! 사랑하는 테치! 사랑하는 테치!







그 안에서 폴싹거리며 외치는 말은 친실장의 헝클어진 옷이 입에 들어가 웅얼거리는 소리처럼 되었지만 무슨 뜻 인지 다 안다는 듯 따스한 미소를 건네는 마마.
환희의 탄성을 ‘츄우---!’ 질러대며 다시 꼭 안긴다.


마마도 사랑하는 데스...삼녀짱은 귀여운 데스...
언제나 행복행복 데스....삼녀짱도 늘 행복행복 데스....


행복. 얼마나 오래 까먹고 있던 단어인가. 마마가 처음 태어났을 때 자신에게 한 말이다.
자신과 만나게 돼서 행복하다고. 삼녀짱은 행복해져야한다고. 그래야만 하고 그래야할 의무가 있다고.
그렇다 자신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테에엥...테에엥...테에에엥...’


그간의 고생이 드디어 보상을 받는다. 이제부터 마마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것이다.
무서운 인간도. 칼 같은 바람도. 매서운 추위도. 끔찍한 괴물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언제나처럼 멋진 집으로 들어오는 마마와 노래를 부르고, 사이좋은 오네챠와 이모토챠들과 춤을 출 것이다.
그리곤 맛나맛나한 맘마를 듬뿍 먹는다. 배가 잔뜩 부르면 또 한 번 노래를 부르고 예쁜 색깔의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다. 언제나 마마 바로 옆자리에 누워서.
행복에 겨워 울먹이는 삼녀는 자신의 얼굴을 정성스레 핥아주는 친실장의 혓바닥 촉감을 음미하며 천천히 잠에 들었다.





‘츄우...츄우...’

입으로 뿜어 나오는 허연 김. 따스하던 온기는 온데간데없고 한기가 지배하는 세상.
삼녀는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아직도 잠이 깨지 않아 자신이 마마의 품속에 있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는 그녀의 머리 위로 이슬이 한 방울 떨어진다.

‘...치이...’

눈을 감은 채 미간을 구부린다. 그 다음에 떨어진 한 방울은 볼을 타고 흘러내려 입으로 들어간다.
차가운 이물감에 끔뻑끔뻑 눈꼽이 잔뜩 낀 눈을 깜빡이더니 멍 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이런 것이 있었던가?
어젯밤 남자가 처치해 주고 간 지붕을 바라보는 그녀는 잠깐 혼란에 빠진다. 과자봉지 안쪽이 막고 있는 천장에는 결로현상이 일어나 이슬이 주렁주렁 맺혀있었다.

문득 느껴지는 한기. 몸의 기능들의 하나둘씩 돌아오며 추위가 엄습한다.
춥다 칭얼거리며 두 순으로 어깨를 감싸는 순간 바스락거리며 느껴지는 나뭇잎과 휴지뭉치를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잠깐 갸웃거리지만 왠지 모를 이변을 머릿속에 오래 두지 않는다. 고민을 하기엔 너무나 춥고 배고프다.

[할짝...할짝...할짝...]

‘츄우...츄우...’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고개를 살짝 들어 천장역할을 하고 있는 비닐봉지에 맺힌 이슬을 핥는다.
조그마한 혓바닥을 뻗어 이슬을 톡 건드리면 마치 솜사탕 녹듯 사르르 목구멍으로 흘러들어간다.
입맛을 짭짭 다시며 입안에 수분을 보충한 그녀는 뭔가 아쉬운 듯 꿍한 표정을 짓지만 별 수 없다는 듯 도로 뒤로 자빠진다.

딱히 할 것이 없는 삼녀의 머릿속은 혼란했다. 꿈속에서 만났던 가족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당장이라도 마마라고 외치면 언제나처럼 나올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실제로 목소리를 내진 않기로 한다.
마마는 죽었다. 괜히 불러봤자 또 슬퍼질 뿐이다.

발을 톡톡 밀어내어 나뭇잎 뭉치 안쪽으로 하반신을 넣고, 가래침을 뱉어 버린 휴지를 잘 펴서 노출된 상반신을 잘 감싼다.
휴지 크기가 작은 데다 펴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찢어지는 바람에 너덜너덜 해졌지만 약간 불만족스러운 툴툴거림 이후엔 잠자코 몸을 덮는다.
몸을 추스르고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테치이....’

그만 잠이 깨버렸다.

딱히 할 것도 없어 말끔하게 깬 정신으로 눈만 끔벅거리며 천장을 바라본다.
맺혀있던 이슬을 전부 핥아먹은 후의 천장은 본래의 매끈한 은색 비닐재질로 돌아왔다.
빛이 없어 천장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 한다는 것이 유일한 행운이었을까.
그저 희끄무레한 살색 덩어리가 움찔거리고 있는 것만 볼 수 있는 삼녀가 제대로 독라가 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면 버틸지 의문.

발가락을 꽉 움츠려보면 흙먼지들이 집혀 오돌톨한 감촉을 음미한다.
손을 꼼지락 거리며 나뭇잎 줄기 끝을 톡톡 건드리다, 그것도 지루해지자 그저 누운 자세로 자신이 뱉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는 것을 관찰한다.


[♪ ♪ ♪]

‘츄우?’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 흥겨운 노래소리와 군중이 떠드는 소리. 두 귀가 소리에 반응하며 펄럭인다.
잘은 모르지만 뭔가 흥겹다는 것은 확실하다.
태어나서 노래라곤 어미가 들려주는 엉터리 태교음밖에 없던 삼녀에게 멀리서 들려오는 흥겨운 노래소리와 들뜬 군중들의 소음은 신선한 자극.
잠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났고 반쯤 몸을 일으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몸을 틀고 눈을 반짝인다.

호기심이 충만한 자실장답게 삼녀는 자리를 박차고 소리를 확인하러 가기로 했다.
영차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천장을 덮어, 추위를 막아주는 과자봉지를 톡톡 밀어낸다.
위에서 본다면 마치 랩을 손가락으로 누르는 것처럼 여기저기 볼록볼록 올라오는 돌기를 봤을 것이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이밀며 쭉 멀이내면 비닐봉지의 양 옆을 받쳐주고 있던 돌맹이가 스르륵 흘러내리며 이내 완전히 천장을 들어낸다.

‘츄우~♪’

해냈다는 듯 흥겨운 추임새를 넣은 녀석은 웃샤하는 기합음을 넣으며 방금 전까지 자신이 누워있던 구덩이를 기어 나온다.
테두리의 흙이 후드득 떨어지며 물기가 촉촉이 남아있는 몸에 들러붙지만 호기심으로 불타는 자실장을 막을 순 없다.
먼지를 털지도 않고, 총총걸음으로 소리의 진원지로 달려 나간다.





‘테치..테치...테치...’


맨발로 달리는 것은 역시나 힘들다. 게다가 토굴 속에서 삼녀를 은은하게 감싸주던 온기는 금세 찬 공기에 날아갔고, 한기만이 그녀의 몸에 달라붙는다.
벌써 손끝은 얼어붙어 아려왔고, 가녀린 발은 딱딱한 바닥을 지나오느라 벌겋게 퉁퉁 부어올랐다.

‘...챠아....’

어린 독라. 그것도 초보 독라의 몸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기특한 정도.
약간의 인내도 불가능한 실장석 유체들을 고려한다면 어지간히 호기심의 위력이 컸지만 여기까지다.
오는 사이, 느슨해진 총구 주변은 벌써 찐득한 액과 녹색 똥물로 치적거린다.
점액질 액체들이 양 허벅지 안쪽에 잔뜩 묻어있는 기분 나쁜 느낌에 삼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다.
내려보면 엉망이 된 자신의 소중한 곳. 생각없이 풀석 내려앉은 탓에 흙이 잔뜩 달라붙는다.

‘테츄...테츄...’

마마는 늘 말했다. 이곳을 소중히 하라고. 언젠가는 이곳으로 어여쁜 자들을 잔뜩잔뜩 낳을 것이니.
‘자를 낳는다’라는 것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미가 세뇌에 가깝듯이 주입시킨 기억 덕에 ‘뭔가 아주 좋은 것’이라고만 안다.

불만의 소리를 찡얼거리는 삼녀는 옆에 있는 풀을 조금 뜯어 자신의 가랑이를 닦아내려고 한다.
허나 면적도 그리 크지도 않은 풀쪼가리로 제대로 닦일 리가 없다. 오히려 오염범위만 넓어지고 까끌까끌한 흙이 더 크게 묻는다.
살이 벌겋게 될 때까지 벅벅 긁고 있던 녀석은 갑자기 캄캄해지는 느낌에 고개를 든다.


커다란 인간들의 행렬. 줄을 지어가는 행렬.

인간이라면 무서워 바로 구석으로 숨어버렸겠지만, 이렇게나 많은 인간들이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한 방향으로 가는 모습은 너무나 기묘하여 공포도 잠시 잊고 멍 하니 바라보게 만든다.
익숙해지니 공포가 덜해 졌는지 아니면 호기심이 공포를 지웠는지 녀석은 그 인파를 홀린 듯이 관망한다.
손에 힘이 풀리며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젖은 풀잎들. 천천히 일어서 그네들을 따라나선다.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끝에는 뭐가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작은 독라의 실장석 한 마리가 눈을 크게 뜨고, 이따금씩 자신들을 흘겨보며 같은 방향으로 따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곧 기억에서 지워진다. 고작 실장석. 흔하디 흔한 실장석.
더군다나 오늘같은 축제일엔 더더욱 꼬이는 실장석.






‘테햐아아....!’


초롱초롱 빛나는 삼녀의 눈동자에 맺혀 있는 것은 거대한 포장마차의 열, 봄날의 꽃잎과 같이 흐드러진 조명, 여기저기 나부끼는 각가지 현수막과 휘장들.
쫑긋거리는 귀에 들어오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떠드는 굉음, 흥겨운 노래소리였다.

삼녀는 행복한 삶을 살아온 편이다. 허나 동시에 단조롭고 평화로운 삶.
언제나 참새만이 지저귀는 아침 속에 눈을 뜨고 자박거리는 동족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쓰레기장에 도착해, 그날의 양식을 손에 넣으면 어두컴컴한 집으로 돌아와 가족끼리 노래 부르는 것이 전부인 삶.
한번도 거기에 불만을 품은 적이 없었지만, 지금의 삼녀에게 그간의 인생은 너무나 지루했다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했다.


‘테츄! 테츄우! 테츄우웃!’


눈을 크게 뜨고 여기를 보며 감탄하고 저기를 보며 감탄하는 삼녀. 초입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고개가 내려올 틈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까닥거린다.
모든 것이 신기하다. 저것은 뭘까 이건 먹는 것일까 저것은 왜 저런 걸까. 정체조차 알 수 없는 것을 그득그득 쌓인 이곳.
게다가 축제의 들뜬 분위기는 실장석에게도 제대로 전해지는지 한껏 달아오른다.

장난감을 팔며 호객하는 상인들. 무엇보다 삼녀의 오감을 앗아간 것은 포장마차와 푸드트럭의 행렬이었다.
인간의 음식은 엄청나다는 경험을 갖고 있는 삼녀. 이전에 먹었던 돈까스 반찬을 떠올리자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코를 쑤시며 들어오는 진한 향신료와 조미료의 행진은 그야말로 미약과 같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고 보면 저쪽에서 풍겨오는 또 다른 냄새에 후다닥 달려간다.
아직은 한산한 거리. 사람들은 충분히 뽈뽈 거리며 돌아다니는 삼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녀에겐 천만다행으로 사람들은 신발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쿵쾅거리며 내리찍는 커다란 신발의 모습은 여전히 커다란 위협이었지만 거리가 주는 들뜬 분위기와 사방에서 진동하는 향긋한 음식냄새에 이성은 공포를 이겨냈다.







‘쿤쿤...테에에...’

아스팔트 거리를 요령좋게 맨발로 뛰어놓고선 전혀 아픈 기색없이 코를 벌름거린다.
여기도 맛있는 냄새. 가판대가 높아 그 위에 있는 것을 보진 못 하고 냄새만 맡는 삼녀.
저 위에 있는 것일까. 맛있는 냄새에 뭔가 잔뜩 먹고는 싶지만 아직 아무것도 손에 넣은 것은 없어, 공허한 마음에 엄지손가락을 쪽쪽 빨며 발을 동동 굴린다.
맛있는 것은 어떻게 생겼을까? 저 위로 어떻게 올라가는 걸까?
고민하는 삼녀의 입에는 침이 그득히 고였고 손가락을 물고 있어 생긴 틈 사이로는 진득한 침이 길게 흘러내린다.
허나 오늘 같은 날,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실장석의 침만이 아니다.


[투투툭]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있던 탓일까. 분명히 뭔가 떨어지는 것을 들었다.
귀여운 자신을 위해 뭔가 내려준 걸까? 그런 걸까?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열심히 주변을 살핀다.
뒤로는 점점 많아지는 사람들의 행렬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고 바닥에 몸을 부착하고 정신없이 킁킁 거리던 끝에....


‘테츄!’


검은색 바닥에 늘어붙어 있는 노란색 무언가. 주변 아스팔트 바닥에 대비되어 확 뛰는 그것.
분명하다. 이것은 맛나맛나가 틀림없다. 허리를 펴고 토테토테 뛰어간다.
진득한 점액질의 그것. 마마로 들은 대로라면 맛나맛나는 오돌톨한 돌맹이같고 알록달록한 색깔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분명 예쁜 색깔이지만 형태는 다르다. 굳이 비유하자면...운치와 비슷하게 생겼다.
뭐 점액질의 진득한 그것은 머스타드 소스였지만, 확실히 그렇게 느낄 만도 하다.
호기심 반 의심 반의 심정으로 손에 쥐어본다.

당연히 집어지지 않고 흐트러지는 머스타드 소스. 아기 실장석의 조그마한 손에 질척하게 묻을 뿐이다. 허나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노란색으로 범벅이 된 손을 입으로 가져간 삼녀는 혀를 내밀고 살짝 찍어먹는다.


‘츄유-!’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쫑긋 선다. 맛있다!

음식물 쓰레기와 나무열매로만 연명해오던 들출신. 지금껏 먹어본 것 중 가장 단 것이라 해봐야 마마의 밀크가 고작이다.
희뿌옅한 색깔로 점철되어 있던 그녀의 세상에 횃불을 쳐든 것처럼 환하게 번져나간다.
입안 가득 퍼지는 행복의 맛. 허니 머스타드의 달콤하면서도 새콤하고, 동시에 깊은 풍미는 그녀의 혼을 빼놓기 충분했다.

정신을 차려보면 손에 듬성듬성 남아있는 소스 찌꺼기를 날름 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 허겁지겁 핥느라 볼과 입술에 소스가 여기저기 묻는다.
환한 미소를 띄고 잠시 짭짭 입맛을 다시는 삼녀. 시선을 내려 보면 소스가 아직 남아있었다.

‘테치...치이...’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궁둥이만 높게 쳐든 삼녀는 헐떡거리며 바닥을 핥는다.
소스와 함께 흙도 삼켜 까끌거렸지만 그것 따윈 아무래도 좋다. 튀어나온 자갈에 혓바닥을 다쳐 쓰려도 정신 나간 것처럼 핥아댄다.
숨을 쉬는 시간조차 아까운지 킁킁하며 급하게 숨을 들이내쉬며 바닥에 묻은 소스를 탐닉한다.
종국에는 돌맹이 사이에 껴있는 것까지 남김없이 혓바닥으로 핥아먹는다.

입안에 남아있는 풍미를 느끼며 잠시 눈을 감는다. 달달하면서 새콤한 맛. 너무나 맛있다 이것은.
사방에 진동하는 냄새에 코는 다시 반응하고 삼녀는 눈을 뜨고 다시 수색을 재개한다. 어딘가 더 있지 않을까.

그리고 발견한다.
그것은 고깃덩이. 닭꼬치를 끼워넣다 실수로 떨어뜨린 것.

‘테에...테치테치...’

마치 유령에 홀린 것 같이 황홀한 표정을 한 녀석. 헤벌쭉 입을 벌리고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전 속력으로 달린다.
하지만 선객이 있었다.

‘텟츙~♪’

두 눈이 고깃덩이에 고정되어 있어 옆을 살피지 못 했다.
가판대 바퀴 뒤에서 튀어나온 또 하나의 자실장은 행복한 교태음을 내며 고깃덩이를 낚아챈다.
옷과 머리카락은 제대로 있었지만 사방이 헤어지고 꼬질꼬질한 것으로 보아 들출신.
환희에 가득 찬 표정으로 두 손으로 고기를 집고선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뛴다. 자신의 성공을 자축한다.

‘테엣?!’

당혹스러운 삼녀. 눈 앞에서 고깃덩어리가 사라졌다.
정신을 차려보면 ‘자신’의 것이어야 할 고기를 쥐고 있는 자실장이 하나 있다.
도둑질을 하고선 뭐가 그리 기쁜지 그렇게 폴짝되는 것인지....!
애초 임자 없이 바닥에 떨어진 이상 먼저 집는 이가 소유주인 것이 들의 법칙이지만, 아직 어리고 과보호를 받아 아무것도 모르는 삼녀에게 눈 앞의 들자실장은 그저 도둑에 불과하다.

들자실장은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힌 감격스런 표정. 콧구멍과 귀가 쉴 새 없이 움찔거리며 온 감각을 눈앞의 고깃덩이가 주는 풍미를 받아들이는데 집중한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린다. 누런색 이빨들 사이로 길게 늘어나는 침줄기들. 듬성듬성 빠져있거나 도로 자라느라 엉망인 이빨생태는 녀석이 얼마나 험한 삶을 거쳐왔는지 엿볼 수 있다.
그만큼 녀석에게도 이 고깃덩이는 하늘이 내려준 만찬.

‘테햐아아아......텟?!’

크게 한 입 베어 문 순간, 배에 전해지는 충격. 삼녀가 그대로 돌진하여 들자실장의 배에 한 방 먹인 것이다.

‘테에엣-!’

비명소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우당탕 뒤로 넘어지는 들자실장. 미끄러운 소스 덕에 움켜쥔 손아귀에서 튀어나가는 고깃조각.
흙먼지가 표면에 붙어버린 그 고깃덩이를 낚아챈 것은 삼녀. 이것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눈엣가시인 경쟁자에 이빨을 내밀고 샤아샤아 위협을 가한다.

‘테에...테치이...테치테치이’

돌려달라는 듯 손을 뻗은 들자실장의 안면을 손바닥으로 밀며, 다른 한 손을 닥치는 대로 휘두른다.
투실투실한 볼살을 때리며 경쾌하게 퍼지는 찰싹찰싹 소리. 들자실장은 억울함에 그만 울음을 터트린다.

‘테에에엥-! 테에에에엥-!’

왁자지껄한 시장바닥에 퍼지는 자실장 울음소리. 듣기 유쾌한 소리는 아니다.
아마 다른 때 같았으면 녀석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초등학생 내지는 관리인에게 밟혀 얇은 적록색 반죽이 되어버렸지만, 오늘 같은 축제일엔 온 사방이 요란법석.
심장이 울릴 정도로 쿵쾅거리는 노래소리와 호객하는 상인들, 환호성과 멀리 나가는 아이를 부르는 소리에 묻혀, 그깟 실장석 울음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테에에엥-! 테에에엥-!’

바닥을 땅땅 내리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들자실장을 한 눈으로 흘겨보는 것은 약간의 죄책감일까 성가심의 발로일까.
불만스럽게 칭얼거리는 삼녀가 한 입 베어 먹으려는 순간, 그녀 위로 길게 그림자가 드리운다.
허기도 잊고 잠시 올려볼 만큼 위압적 분위기. 그곳엔 성체실장 한 마리가 자신을 내려 보고 있었다.
화가 난 표정으로

울고 있는 들자실장의 어미인 성체실장은 일단 아이를 안아 올려 달랜다.
훌쩍거리며 저 도둑에 대한 응징을 호소하는 자에게 부응하여, 성체는 삼녀에게 발길질을 날린다.

‘테벳-!’

입을 벌린 상태로 굳어있던 삼녀의 옆구리에 꼿힌 발. 허파의 바람이 일시에 빠져나가 순간의 호흡곤란과 함께 전해지는 격통.
고깃덩이는 놓쳐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고, 삼녀는 그 뒤로 몇 바퀴나 더 굴러간다.

‘....챠아....테챠아...’

고통에 팔다리를 이리저리 꼬는 와중에도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고기를 찾는다.
맛나맛나는 어디있지? 그것은 내 것. 자신의 만찬이다.
갈리진 목소리로 옹알거리는 삼녀가 고개를 돌려보면 자신의 것이 틀림없는 고기를 집는 성체를 볼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분노는 어디로 갔는지 인자한 어미의 표정으로 돌아온 성체는 품에 안겨있던 새끼를 가지런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저만치 굴러간 고기를 집어든 성체는 주변에 묻은 흙을 대충 걷어내고 자신의 새끼에게 건네준다.

‘테츄우-!’

두 손을 한번 짝 치며 기쁨을 표시한 녀석은 이내 정신없이 입을 놀린다.
얼굴과 손, 앞치마에 소스를 묻혀가며 지저분하게 고기를 베어물고 삼키는 동작을 기계처럼 반복한다.

‘테챠아...테에....테챠아.....’

아픔이 가시지 않은 옆구리를 움켜쥐고, 까끌까끌한 바닥에 배를 질질 끌며 기어가는 삼녀.
와타치의 맛나맛나인 테치....와타치 것인 테치.....왜 빼앗는 테치...나쁜 테치...나쁜 테치....
불행히도 마지막 말이 성체의 귀에 들어갔다. 새끼만 먹이고 갈 생각이었던 성체였지만, 독라 따위가 자신을 매도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샤아아-! 샤아아아-!’
‘테엣! 텟! 테에엣!’

툭툭거리는 둔한 소리. 중간에 섞인 자실장 비명소리.
그것을 지켜보는 들자실장은 고소해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키득거린다. 방금 전 자신을 밀쳤던 그 건방진 놈이 지금은 마마에게 깔려 꼼짝도 못 하고 있다.

한방한방 갈길 때마다 볼이 퉁퉁 부어오르는 저 추한 모습.
입안에 가득 음식물을 베어 물고, 웃을 때마다 파편을 옆에 질질 흘려대는 녀석의 눈은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다.

성난 성체에게 맞는 와중에도 삼녀는 고깃덩이를 먹고 있는 들자실장의 방향으로 손을 뻗는다.
주먹과 발이 꼿힐 때마다 몸을 움츠리면서도 손만큼은 재차 뻗는다. 정확히는 줄어들고 있는 고기를 바라보며.
그야말로 속이 타는 심정. 아픈 것보다 저 맛나맛나를 못 먹는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 저것은 자신의 것인데도!

‘치프프프...치프프픗...!’

울음을 터트리는 삼녀의 모습이 뭐가 그리 웃긴지 들자실장은 발을 구르고 땅을 내리치며 비웃어댄다.
전신을 두들기는 쾌감과 약자를 괴롭힌다는 쾌감이 섞여 흥이 올라버린 성체는 그만 주변을 깊게 살피지 못 했다.
애초 목적은 원하는 것만 챙기고 얼른 자리를 뜨는 것인데도.
조그마한 자실장이라면 몰라도 성체 싸이즈의 해충이 가게 앞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은 인간들이 절대 반기지 않는 것 중 하나.

‘아고! 이놈들 또 난리네!’

‘데에?’

멍청한 표정으로 대꾸를 하기도 전, 뭔가에 낚아채져 몸이 붕 뜬다.
성체를 잡아든 상인은 그대로 녀석을 뒤쪽 수풀에 던져버린다.

‘데갸아아악-!’

와지끈거리며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수풀 속에 쳐박힌 모양.
나뭇잎을 마구 흔들어대며 뎃뎃하며 멍청한 소리를 내는 녀석은 확실하게 교훈을 얻었다.

‘테챠아아-! 테챠아아아-!’

그런 어미 곁으로 달려가는 자실장 또한.











뜻밖의 행운으로 목숨을 건진 삼녀. 홀로 남겨져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욱신거리는 통증에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힘들다. 거친 숨을 푹푹 내쉬며 그대로 엎어져 있다.
몇 명의 행인들이 가판대 앞을 지나며 그녀의 모습을 봤지만 이것은 흔한 광경. 축제에 끌리는 해충의 모습 따윈 널리고 널린 것이다.

‘테치이...테치....’

아픔을 호소하며 그저 도와달라 도와달라를 중얼거린다. 그저 아무나라도 좋으니 자신을 도와줬으면 한다.
전신을 두들기는 듯이 꾹꾹거리는 통증에도 삼녀는 힘겹게 고개를 천천히 돌린다.
눈두덩이는 퉁퉁 부어올라 시야가 평소의 절반이하로 줄어든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도 뭔가를 열심히 찾는다.

맛나맛나...어디인 테치....어디인 테치....

불행히도 고기덩이는 방금 마마를 찾으며 달려나간 들자실장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남아있는 것이라곤 녀석의 침이 섞인 부스러기뿐. 모든 사물이 히끄무레하게 보이는 삼녀에게 그 작은 부스러기가 눈에 들어올 리는 없다.

‘테에엥...테에에엥.....’

박탈감에 훌쩍인다. 콧물이 줄줄 흘러내려 바닥에 붙에 길게 늘어진다. 찢어진 입술 사이로는 침을 흘린다.
하늘은 언제나의 검푸른 하늘이 아닌 은은한 주홍빛 하늘. 주변 상점가에서 환하게 밝힌 불빛이 어둠을 쫓아내고 있다.
그 아름다운 색감에도 삼녀는 하렴 없이 눈물을 흘린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왜 슬픈 일을 하는 것일까. 왜 아픈 일을 하는 것일까.





얼마간을 울었을까. 붓기도 가라앉고 통증도 완화됐다. 몇 명의 행인들이 가판대를 오고 떠났다.
처음 자신을 짓밟으려는 줄 알고 쿵쾅거리며 다가오는 거인의 모습에 움찔하며 도망치려 했지만 그 누구도 그녀 따윈 안중에 두지 않고, 그저 먹을 것을 사고 나가는 모습에 익숙해졌다.

그 와중에 학습한 것이 하나 있다면 ‘가판대 뒤의 인간에게 손을 뻗으면 맛나맛나를 준다. 그것도 엄청 큰 것으로!’

...굉장히 위험한 착각. 들실장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주요원인으로 꼽을 수도 있는 어설픈 지식과 제멋대로의 착각.
닭꼬치를 원하는 사람들이 돈을 건네고 물건을 받는다. 라는 시장논리와 화폐제도를 제못대로 해석한 삼녀.
물론 실장석 주제에 돈을 알 리가 없어, 그녀의 시선으로 본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앞으로 다가와 손을 쭉 펴고, 뒤에 앉아있는 사람(상인)이 닭꼬치를 건네주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지금 삼녀는 사각에 가려져 가판대 상인에게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손님들 중 누구도 일부러 나서 상인에게 그녀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은 행운이 겹쳐 살아있는 것에 불과하다.

자신의 착각의 위험성도 모르는 삼녀는 이렇게 간단한 것을 왜 몰랐을까 안타까워하며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다.
쿡쿡 쑤시는 아픔이 전신을 두들긴다. 평소의 삼녀라면 이것보다 훨씬 약한 아픔에도 뒤로 자빠져 팬티를 부풀리며 마마를 찾았을 것이다.
허나 먹을 것에 대한 집념일까, 결의에 가득 찬 표정으로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아스팔트 위를 기어간다.

‘챠아....테챠아....’

이따금 통증이 격화될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꾸준히 기어간다.
구더기짱 같은 테치?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착실하게 기어간 삼녀는 가판대 뒤쪽에 고개를 삐죽 내미는데 성공했다.

‘...테치이...테치이....’

크게 소리를 내려했지만 목이 따라주지 않는다. 고작 나온 것이라곤 희미한 신음소리.

맛나맛나를 주는 테치...배고픈 테치이....


‘아줌마 이거 하나 주세요’
‘예예 여깄습니다’


손님을 맞아 또 하나의 닭꼬치를 집어 드는 상인.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 착각한 삼녀는 반색하며 손을 벌린다.
치-치- 울어대며 내민 자실장의 손에 닭꼬치가 전해지는 일은 없었다.
‘자신의 것’어야할 닭꼬치가 또 다시 누군가에게 ‘강탈’당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삼녀는 억울함에 가판대를 때리지만, 툭툭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못 하고 묻혀버린다.
아픈 주먹을 혀로 핥으며 다시 부탁해본다.

‘...치이...테치이....’

상인은 스마트 폰을 조작하며 열심히 양념을 바를 뿐.


바로 밑에서 빈 속에 냄새만 맡아야하는 삼녀의 심정은 타들어간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이렇게 부탁하는데 왜 주지 않는 거지? 꽤 나아진 다리로 일어선 상인이 앉아있는 의자 밑으로 토닥토닥 다가간다.
그리고 힘껏 다시 부탁해볼 요량으로 손을 쭉 뻗어보지만 신발 바닥도 만지지 못 했다.

‘츄우.....테츄우....’

안간힘을 쓰며 까치발을 힘껏 들어봐도 자실장의 작은 체구로 의자 위에 걸터 있는 상인의 발끝도 건드리지 못 한다.
당혹감과 초조함이 발만 동동 굴리는 사이 또 한 명의 행인이 닭꼬치를 구매하여 길을 떠난다.

‘챠아-! 테챠아-!’

이젠 화가 난다. 절망과 당혹은 분노로 바뀌어 지친 삼녀의 심신에 마지막 힘을 불어넣었다.
성을 내며 있는대로 소리를 지르며 의자를 공격한다! 마치 갓난아기가 배게와 레슬링을 하는 것처럼 주먹을 날리고 발로 걷어찬다.
그 모습은 흡사 해파리가 흐느적거리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번의 소동에 그만 상인이 눈치채고 말았다.

톡톡하는 진동과 소란에 섞여 들려오는 실장석 울음소리.
고개를 내려 보면 잔뜩 얻어맞아 상처투성이에 몸 여기저기가 부풀어 오른 자실장 한 마리가 의자를 치고 있었다.
이런 것 많이 봐 왔다. 먹을 것을 내놓아라 이런 것이겠지.

그냥 내버려둘까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안 된다. 저렇게 성을 낸 다음에는 사방에 똥을 던지는 것이 실장석이다.
식재료들은 비닐봉지에 싸여있어도 괜한 냄새가 배면 좋지 않다. 그리고 괜히 내버려뒀다가 실수로 밟아 버리면 신발에 묻기도 하고.

목장갑을 벗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는 상인.
삼녀는 거친 숨을 헥헥 몰아쉬며 두 팔을 무릎에 얹고 쉬고 있었다.
약간 구부리고 있는 삼녀는 목덜미가 잡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대로 공중에 붕 뜨더니 빠르게 이동하는 시야. 높은 허공에 메달린 것에 두려워하기도 전에 그녀는 도로 바닥에 내려진다. 그리고 인간과 눈이 마주친다.


‘저리가’


짧게 말한 상인은 그대로 돌아선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이 안 된 삼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퍼뜩 깨닫는다.
인간이다. 인간이 자신을 봐줬다. 지금 부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맛나맛나를 달라고 하자.

‘테츄테츄테.......챠앗-!’

아장거리며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발에 걷어차여 데굴데굴 구른다. 실장석의 생리는 질리도록 알고 있는 상인.
말로는 안 된다. 이렇게 고통을 줘 직접 각인시켜 줘야한다. 여기서 꺼지라고.











‘방울이 좋아?’
‘데스! 데스데수우!’

흥겨운 노래소리에 몸을 씰룩거리는 성체실장. 어지간히 동물애호가에게 키워지고 있는 녀석은 값비싼 실장석용 기모노까지 입고 불룩 튀어나온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활보한다.
남자는 너무 멋대로 나가려하는 자신의 사육실장의 손을 애써 잡으려하지만 잔뜩 들뜬 녀석이 남자의 말을 제대로 들을 리는 없다.
손을 잡으면 금세 뿌리치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 부드럽게 이름을 불러 멈춰 세워도 그때뿐.

옆에 지나가는 여자는 광주리를 들고 있었다. 안에서 울리는 앳된 실장석 울음소리.
푹신한 분홍색 쿠션이 깔려 있는 광주 안에는 각기 다른 색깔의 리본을 매단 자실장들이 담겨 있었다.
광주리를 들고 있는 여자는 이따금씩 손을 뻗어 녀석들을 쓰다듬는다.

평소 같았으면 그 손에 매달려 이리저리 혀로 핥고 애교를 부렸겠지만 지금은 화려한 축제의 광경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전부 가장자리에 고개를 빠꼼 내밀고 츄아츄아 거리며 감탄하기 바빴다.
이따금 어딘가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뭔가를 요구하지만 여자 또한 인파 속에서 광주리를 붙들기 바빠 그것을 제대로 봐주는 일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축제. 언제나의 일상에서 벗어나 겪는 새로운 세상.
빠르게 지나치는 풍광에 자실장들의 작은 두뇌는 따라가는 것조차 버겁다.
새로운 것이 주는 흥분과 떠들썩한 분위기가 주는 고양감에 몸을 내맡긴 녀석들의 작은 엉덩이는 살랑살랑 움직였고, 조그마한 입을 놀리며 자매들끼리 이것은 뭔지 저것은 뭔지에 대해 엉터리 의견을 나누며 조잘거린다.

길게 리드선을 매어주고 가는 이도 있었다. 개를 데려와도 무심코 밟힐 수 있는 혼잡판에 실장석을 풀어놓는 것은 별로 현명하지 않지만, 그래도 좋아하니깐.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어서 등등의 이유로 그리 하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리드선을 길게 늘어뜨리며, 흥분에 겨워 츄아츄아 소리를 내지르는 실장석 일가. 저마다 가장 아끼는 외출복을 꺼내입어 산뜻한 차림이다.

‘테츄? 테츄우?’

반짝반짝 빛나는 야광봉 앞에 멈춰선 자실장은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관찰한다.
작은 해님인 테치? 집에 있는 것과 같은 테치? 중얼거리며 손을 뻗는다.
그대로 집어든 상태로 돌아서려는 순간 상인은 녀석의 옷자락을 붙잡아 불러 세운다.

‘안돼안돼. 내려놔’

‘츄아-! 테츄테츄우-!’

자신의 것이라고 하는 걸까 반항적으로 외치는 자실장. 허나 파는 물건을 공짜로 줄 순 없는 노릇이다.
품에 꼭 안고 있는 야광봉을 도로 빼앗아 진열대에 내려놓는다.
자실장이 포기하지 않고 도로 손을 뻗는 것을 집요하게 막는 상인.
맘 같아선 걷어차고 싶지만, 길게 늘어진 리드선을 보아 이것은 사육실장이다.
녀석의 주인이 어디있나 고개를 뻗어보면, 옆칸의 가판대에서 뭔가를 사고 있었다.

‘니네 주인한테 말해보렴. 에비! 안된다니깐’

‘츄아!’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흥정, 실랑이. 이것 또한 축제의 한 부분이다. 나름대로의 행복을 구가하는 인파.
그런 이들로 붐비는 축제판에서 약간 벗어나면 초대받지 않은 이가 조그맣게 쪼그려 앉아있었다.


그것은 삼녀.


상인에게 걷어차여 날아간 그녀는 잠시 후에 기운을 차렸다.
왠지 나쁜 인간이라 한껏 외치곤 다른 곳으로 찾아가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인간만이 아니었다. 예쁜 사육실장의 분홍빛 옷을 보고 그 행복한 색감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만졌다. 뭔가가 잡아당기는 느낌에 돌아본 사육실장.
그곳엔 초라한 몰골의 삼녀가 자신의 옷을 만지작 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소유물에 민감한 실장석의 습성대로 당연히 화를 내며 세게 밀쳤다.


‘더러운 독라’
‘비천한 독라’
‘흉측하게 생긴 주제 건방지다’


‘츄우....’

툭 튀어나온 입술 사이로 나오는 한숨. 자신은 정말 흉측한 걸까.
못생겼다 들었다. 흉측하다 들었다. 머리카락과 옷도 없는 녀석이라 들었다.
인간도, 동족도 모두가 똑같이 외치며 자신을 밀쳤다. 못생긴 독라녀석.

두 팔로 다리를 끌어안으며 ‘독라’에 대해 열심히 생각을 한다. 이전, 마마와 함께 맘마를 모으러 갈 때의 기억.
체구도 작고, 알몸에 머리털도 없는 친구들이 생각난다. 마마의 손을 붙잡고 오가는 자신들을 보면 언제나 얼굴에 웃음을 띠며 옆으로 달라붙었다.

자신을 오네챠라고 부르거나 마마에게 마마라 부르며 열심히 손을 잡으려 했던 작은 친구들. 실제론 오네챠도 마마도 아닌데 말이다.
얼굴에 띈 웃음 뒤로는 왠지 모를 절박함이 숨어있다는 것도 기억났다. 뭔가에 쫓기고 있던 걸까라고 생각한 것도.
그렇다면 자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자신은 독라가 됐다. 그럼 뭔가 무서운 게 쫓아오는 걸까?

‘챠아...테챠아....’

무서운 건 싫은 테치....싫은 테치....무서운 테치....쫓아오면 싫은 테치....

고개를 숙이고 바들바들 떤다. 멋대로 뻗어나간 생각에 지배당하여 공포에 떠는 그녀는 주변이 어두컴컴해지는 것을 느낀다.
드디어 온 것인가 무서운 것은...

착한 아이로 있는 테츄....와타치 맘마도 잘 먹는 테치....똥도 예쁘게 누는 테치.....제발 괴롭히지 마는 테치...
와...와타찌 독라 아닌 테치....아닌 테치 독라지만 독라가 아닌 테치...그러니 가는 테치....

그림자의 주인은 입꼬리를 살짝 일그러뜨리며 자신의 발 앞에서 발발 떨고 있는 독라의 자실장을 말없이 바라본다.
얼굴에는 적의도 호기심도 없었다. 그저 동정심만 있을 뿐.
무슨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삼녀를 토굴에 넣어준 바로 그 남자였다.





‘참....이 녀석 설마 그 녀석인가? 이게 무슨 우연이야...’

자신도 신기한 듯 중얼거리는 남자. 자신의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말소리에 더욱 신음소리를 높이는 삼녀.
굵은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혔다 두툼한 볼살을 타고 흘러내려 가고, 콧물과 침을 흘리며 벌어진 입으론 잘못을 중얼거린다.
언제나 자신의 잘못은 없고 자신은 세상의 중심이 틀림없다고 믿어왔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독라가 된 충격. 배타적인 인간들. 경멸과 적의를 쏟아내는 동족들. 이 모든 것이 화살이 되어 연약한 삼녀의 가슴에 쏟아졌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삼녀는 눈으로 보지도 않은 미지의 공포에 스스로 잠식되어 연신 용서를 빌 뿐이다.

‘챠아...챠아.....’
‘거참....왜 이리 겁 먹은거야. 괜찮아 괜찮아’

남자는 손을 뻗어 삼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어찌나 밖에 오래 있었는지 온기가 날아가 차가운 자실장의 머리.
듬성듬성 남아있는 머리카락은 오물과 범벅이 되어 맨살에 착 달라붙어 있다.
지금껏 제법 돌아다닌 모양인지 발은 여기저기 찢어지거나 퉁퉁 부어올라 있었고 손끝은 벌겋게 얼어있었다.
거기에 몸 여기저기 나 있는 상처는 얼마나 녀석이 괴롭힘을 당했는지 말해준다.
안쓰러운 마음에 남자는 삼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연신 쓰다듬어준다.


‘...테츄?’


벼락같은 아픔이 쏟아질 거라 예상했지만, 그러기는커녕 부드러운 손길만 이어진다.
조용히 고개를 든 삼녀의 한 쪽 귀는 호기심으로 쫑긋 올라갔고, 눈을 살포시 뜨고 주변을 살핀다.
앞에는 거대한 인간. 그리고 그 미소는 너무나 친절하고 상냥해 보인다.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확인하는 호의.


‘하하 그래 좀 괜찮아졌어?’

‘...츄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남자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는 삼녀. 남자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여 보지만, 그것도 잠시.
이 남자는 ‘좋은 인간’이라 결론을 내린다.


‘테츄우우~츄아아아아’


폭발적인 힘으로 벌떡 일어나는 삼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남자의 발목을 껴안고 얼굴을 비벼댄다.


‘...하하 많이 힘들었나보네’

‘테에에엥-테에에에엥-’


그간 쌓인 설움을 모조리 쏟아내려는 듯 남자에게 안겨 펑펑 운다.
약간 당혹스런 표정으로 떼어내려 해도 오히려 더욱 크게 울며 꽉 끌어안는 통에 남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녀석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양말....버려야겠네’

‘테에에에에엥--!’





‘테끅....테끅...테치테치....테끅....츄우...’


딸꾹질을 하는 자실장 한 마리. 그래도 행복한 모양인지 고개를 살랑거리며 흔들 때마다 커다란 귀 또한 따라 움직인다.
뭔가 신기한 것을 보면 남자에게 고개를 돌려 테츄테츄 중얼거린다.
그러면 남자는 녀석이 가리킨 곳으로 데려가준다. 멀리서만 봐야했던 물건들을 가까이서 보며 연신 감탄을 쏟아낸다.
재밌다. 신난다. 행복하다.

‘츄아-!’

‘하하 그건 미니카라고 하는거야’

‘테츄?’

모터구동음을 내며 날쌔게 트랙을 달리는 미니카 경주장을 바라보는 남자와 삼녀.
웅웅거리며 트랙을 질주하는 모습에 약간 현기증이 나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남자는 그런 삼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가만히 감싸준다.
두 뺨을 붉히며 삼녀는 남자의 손에 몸을 내맡긴다. 이 인간은 좋다. 상냥하고 친절하다.

‘츄아아...’

[꾸르르륵]

행복을 속삭이는 삼녀의 소리는 요란하게 울리는 뱃 속 요동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자신도 놀랐는지 움찔하곤 자신의 배를 살살 쓰다듬는다.

‘배고파?’

‘테치~!’

‘좋아 그럼 먹을 거다’

만세를 하듯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든 삼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맛나맛나를 도둑놈들에게 빼앗긴 것이 마음에 걸렸던 삼녀. 드디어 먹을 수 있게 된다.
몇 일 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없었던 그녀는 허기로 인해 손발이 후들거릴 정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테츄우~테츄우우~’

뭔가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에 엉덩이를 들썩이고 고개를 살랑거리며 흥겁게 노래를 부른다.
남자는 그런 실장석이 귀여워 어쩔 수 없다는 듯 ‘풋’ 웃고는 가판대 앞으로 간다.

‘테에? 테치이이-! 테치테치이이-!’

공교롭게도 그 가판대는 삼녀에게 발길질을 가한 상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나쁜 인간인 테치! 도둑놈 테치!

남자의 손 위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삼녀를 힐끔 본 상인의 반응은 그것이 전부였다.
오늘 쫓아낸 실장석은 한 두마리가 아니다. 일일이 기억할 수 도 없고, 인간기준에선 실장석이란 죄다 비슷하게 생겼다.

‘예 어서오세요. 뭐 드릴까요?’

‘츄아아아-! 테치테치이!’

‘닭꼬치 하나 주세요’

‘예 여깄습니다’

돈을 받고 순순히 닭꼬치 2개를 건내주는 상인.
자신이 그렇게 애원하고 부탁하고 나중엔 협박을 해도 전혀 듣지 않았던 그 모습과 상반되는 상황에 입을 떡 벌린다.

저 남자가 더 귀여워서 준 것일까? 아니다. 자신이 훨씬 귀엽다. 그렇다면 무서워서 준 것일까?

고개를 삭삭 돌리며 상인과 남자를 번걸아 살핀 삼녀는 남자쪽의 키가 더 크다는 것을 눈치챈다.
실은 의자에 앉아 있어 작아 보이는 것이지만. 삼녀는 자신의 보호자의 듬직함에 우월감을 느끼며 키득거린다.

‘치프프픗...치프프픗....’

와타치 쪽이 더 큰 테치! 더 무서운 테치! 맛나맛나를 가져가는 테치!
두 눈을 초승달모양으로 만들며 상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는다.
바로 스마트폰으로 고개를 돌려 모습을 볼 수 없는 상인.

닭꼬치를 먹을 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근처 벤치로 걸어가는 동안 삼녀는 쾌감과 우월감에 젖어 상인이 있는 방향을 손가락질하며 비웃어댔다.
실장석의 행동과 심리에 무지한 남자는 ‘그렇게 좋은 건가...’하고 웃어넘기며 벤치에 앉는다.

‘츄아-! 테치테치이-!’

그 건방진 상인을 데려와라. 짓밟아버리겠다. 자신의 쪽이 더 강하다. 등의 헛소리를 지껄이는 삼녀를 잠시 내버려 둔 남자는 종이포장지를 길게 찢고 그 위에 닭꼬치를 올려 내준다.
아직도 허공에 주먹을 날리며 위협을 하고 있던 삼녀는 눈 앞에 떨어진 진수성찬에 순간 뇌가 정지한다.
어덜떨한 것일까 믿겨지지 않는 것일까. 잠시 가만히 있던 녀석은 이내 행복의 탄성을 내지르며 닭꼬치에 뛰어든다.

‘츄아아아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꼬치를 정신없이 뜯어먹는 녀석.
한 덩이 한 덩이가 자신의 머리통만큼이나 큰 것임에도 알 수 없는 원리로 모조리 뱃속에 꾸역꾸역 쑤셔넣는다.
행복감과 오랜만의 식사로 맹렬한 운동을 시작한다. 총구 사이론 벌써 녹색똥이 질질 흘러나온다.

‘원...그렇게 좋냐?’

‘테치이! 테치테치이!’

잡아당기고 물어뜯는 와중에 닭꼬치는 옆으로 밀려난다.
벤치에 묻지 않도록 일부러 종이 위에 싸서 내려줬건만 이래서는 별로 소용이 없어 보인다.
훅훅 숨을 내쉬며 달려드는 통에 점점 벤치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는 모습이 약간 불안하여 안쪽으로 슥 끌어당긴다.

‘테샤아아아-! 테샤아아아--!’

‘안 뺏어간다 하하...’

자신의 우마우마를 빼앗는 줄 알고 되려 이빨을 내밀며 위협을 한다.
양 볼따귀엔 음식물로 가득 찼고, 입술과 얼굴은 온통 기름과 양념으로 번들거린다.
소스빛으로 물든 이빨을 내비치며 이것은 자신의 우마우마라 주장하는 삼녀였지만, 남자는 사람 좋게 웃어넘긴다. 짐승이 보여주는 반응 따위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손을 휘휘 저어 안심을 시키고 다시 축제행렬에 눈길을 돌리는 남자.
삼녀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정신없이 꼬치를 뜯는다. 중간에 목에 걸려 켁켁 거리고, 콧구멍에 들어간 소스를 빼기 위에 킁킁 거리면서도 입만큼은 멈추지 않는다.

‘츄아...츄아....’

우물거리는 입술 주변으론 더러운 얼룩이 소스와 마구 뒤엉킨다.
소스가 끈적하게 엉켜붇은 맨살은 서로 비벼져 질척거리는 소리를 냈고 입으로는 추잡하게 쩝쩝거린다.
손에 닿는 영역 안의 고기를 다 먹어치우자 굼실굼실 궁둥이를 들고 옆으로 이동하여 허겁지겁 식사를 재개한다.
맛있다라는 탄성을 지를 틈도 없이 마치 탈수직전의 사람이 물을 들이키는 것처럼 입으로 넣기 바쁘다.

소스로 범벅이 되어 질척한 손은 고기를 집어봤자 미끌어 졌고, 이에 삼녀는 아예 고개를 쳐박고 개처럼 뜯어 먹는다.
양 손으로 고기를 잡는 바람에 그만 균형을 잃어 앞으로 폴싹 넘어지며, 얼굴을 고깃덩이에 찧는다.
납작한 코 안으로 끈적한 소스가 들어간다.

‘츄! 츄츄!’

코가 막힌 느낌이 좋지 않은지 자신의 코를 두들기며 나와라나와라 외친다. 이에 입으로 크게 숨을 들이키곤,

‘테퓨우-!’

있는 힘껏 콧김을 내뿜는다.
소스파편과 함께 연녹색 콧물이 사방에 튄다.

‘치이....’

얼얼한 코를 몇 번 슥슥 문지르곤 자신의 콧물이 묻어버린 닭꼬치를 집어 들고 물어뜯는다.
공복이었던 배가 약간 차오르자 여유도 찾았는지 미소를 띠는 사치도 부린다.
삼녀는 일생 최대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테츄우~테츄우우~’


즐거운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며, 고개를 까닥거리는 자실장.
옆에 있는 남자는 어지간한 동물애호가인지 물티슈로 구석구석 몸을 닦아준다.
겨드랑이 사이를 닦아줄 때는 간지럽다 키득거렸고, 갈라진 고간을 닦아줄 때는 왠지 모를 쾌감에 몸을 떨며 볼을 붉혔다.

물티슈는 자실장의 몸에 달라붙어있던 길거리 미세먼지와 진흙, 그리고 방금 묻어버린 닭꼬치 소스로 얼룩진다.
1장의 물티슈는 금방 못 쓰게 된다. 남자는 한 장을 더 뽑아 아직 군데군데 남아있는 얼룩을 정성껏 닦아준다.

‘치프프픗...치프프픗....’

간지럽다 말하면서도 나쁘진 않은 모양인지 몸을 완전히 대자로 뻗은 후 내맡긴다.

‘자 됐다’

‘테치-!’

금방 뽀송뽀송하게 돌아온 자신의 모습이 낯선 듯 이러저리 만져본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음료수 좀 가져올게’

‘테에?’

일방적으로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뜨는 남자. 당황한 나머지 우물거리는 사이, 남자는 성큼성큼 멀어져 간다.

‘테에엣? 테치이! 테치테치이이! 테치이이이!’

필사적으로 외쳐봐도 남자는 돌아보지 않고 커다란 상자 앞으로 걸어갈 뿐.

싫은 테치...버려지는 거 싫은 테치....닝겐마마 좋은 테치....착한 아이로 있는 테치. 노력하는 테치이....

어느새 그녀는 남자를 마마라 부르고 있었다. 집을 나와 처음으로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준 존재. 커다랗고 믿음직스럽다.
보호자라면 아무나에게 들러붙는 독라의 습성이 벌써 발현된 것인가 삼녀에게 남자는 이미 마마나 다름없다.

속사포처럼 변명을 쏟아내는 그녀의 얼굴은 남자가 닦아준 것을 헛수고로 만든다.
눈물 콧물 침을 쏟아내며 매끈해진 살을 다시 더럽힌다.

‘테에에엥-! 테에에에엥-!’

이내 울음을 터트린다. 브리릿하는 소리와 함께 똥을 잔뜩 지린다.
왠지 닭꼬치 냄새가 나는 똥은 벤치 사이의 틈으로 흘러내려 바닥에 후둑후둑 떨어진다.
칠이 벗겨진 나무재질의 벤치를 땅땅 내리치며 자신을 돌봐 달라 자신에게 돌아오라 외치는 삼녀.
뛰어내려 쫓아가려 했지만 고작 사오십 센치의 높이의 벤치에 좌절해버린다.
아찔한 높이에 오히려 잔뜩 똥을 지릴 뿐이다.

‘어디 안 간다니깐 왜 그래. 자 돌아왔잖아’

‘테치이-! 테치테치이이-! 테치이이잇-!’

요란스럽게 손을 휘저으며 남자에게 안기려 든다.
벤치 가장자리에서 아슬아슬하게 팔을 휘젓는 삼녀의 온 몸은 도로 똥과 체액으로 더러워져 있다.
이 상태로 곁에 앉았다간 바지를 버릴 것 같아, 남자는 벤치 맞은 편에 쭈그려 앉는다. 눈높이를 맞춘 상태로 다시 물티슈로 삼녀를 정성껏 닦아준다.

‘츄아아-! 츄우아아아......’

돌아와준 테치...와타치 착한 아이로 있던 테치....이제 헤어지지 않는 테츄...

흐느끼며 멋대로 지껄이는 삼녀는 몸을 닦아주려는 남자의 손에 자꾸만 엉겨 붙는다.
틈만 나면 손가락을 핥고 안으려 들어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도로 녀석을 닦아주는데 성공한 남자는 조그만 종이 소주잔을 꺼내고 음료를 따른다.

‘자 마셔’

‘테츄?’

안에 담긴 투명한 액체. 그래 이것은 물이다.

몇 시간 전에 이슬로 목을 축인 것을 제외하곤 여태껏 쭉 수분을 섭취하지 못 했던 삼녀.
거기에 짭쪼름한 닭꼬치 한 줄을 통째로 먹어치운 녀석은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목말랐었는지 깨닫는다.

허나 그녀는 들실장. 그릇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밥을 먹을 때도 그냥 맨땅에 떨어뜨려 배분해줄 뿐 따로 그릇을 사용하지 않는다. 물을 마시는 것도 언제나 마마가 대신 먹여줬다.
소중한 자원인 물을 배분한다는 목적이 있었지만 덕분에 삼녀는 물병에 대한 기본적 원리도 모르고 있다.

안에 들어있는 액체를 마시기 위해 무심코 하던 대로 그릇을 거꾸로 들고 쏟아버린다.
그렇게 바닥에 떨어뜨린 다음 핥아먹는다...라는 계획이었지만 당연히 액체는 벤치 사이로 주륵 흘러내린다.

‘테치? 테치이?’

텅 비어버린 컵과 약간 젖은 벤치를 번갈아 살피며 어리둥절해 한다.

물은 어디로 간 테치? 물 바닥에 놓은 테치? 사라진 테치?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삼녀는 다시 남자에게 부탁해보기로 한다.
빈 컵을 들고 남자에게 테츄테츄 호소하자 도로 따라주지만....

‘테에?’

도로 그걸 쏟아놓고선 왜 물이 가만히 떨어져 있지 않고 아래로 흘러버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만 지을 뿐이다.

‘음....멍청하다곤 들었지만...’

악의없이 중얼거린 남자는 자신이 직접 먹여줄 요량으로 컵을 가져가 다시 따라준다.

‘자 아~해봐 아~’

‘퍄아-’

남자의 말을 알아들은 것은 아니지만 왠지 입을 쩍쩍 벌리며 시늉하는 남자의 행동을 따라한다.
누런색 이빨과 아직 남아있는 음식물 찌꺼기가 보인다.
구멍 안으로는 달달한 소스 냄새와 함께 역한 들실장 입냄새가 풍겨오지만 싫은 기색도 않고, 조금씩 녀석의 입 안으로 음료를 흘려보내준다.

‘츄아-!’

맛있다. 이것은. 신기한 맛이다. 퀴퀴한 고인 물만을 마셔왔던 삼녀에게 이온음료는 신선한 충격.
물에 맛이 있을 수가 있다니. 씁쓸하거나 탁하거나 퀴퀴한 맛이 아닌 상큼하면서도 달달하고 동시에 기분좋을 정도로 짭짤한 맛.
턱을 떨어뜨리고 감동하는 자실장은 이내 입을 크게 벌리고 손짓을 한다.

‘츄아! 츄아!’

‘그래 알았다 그대로 있어’

배가 더욱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녀석. 입 안 가득 행복을 음미하며 이온음료도 먹어치웠다.
거의 한 캔을 통째로 마셨다. 입 주변에 묻은 음료수 흔적이 길게 늘어지는 것을 내버려두고 가픈 숨을 푸우푸우 내쉰다.

‘맛있었어?’

‘텟츙~♪’

행복가득 미소를 지어 보인다. 혈색이 돌아왔고 온몸엔 다시 열기가 돌기 시작했다.
홀쭉했던 배는 남산만하게 올라왔다. 수척해보였던 안색도 본래 토실토실함을 되찾았다.

‘그럼 다시 돌아볼까?’

‘츄우~♪’

즐겁다는 듯 호응을 한 녀석은 남자의 손 위에 얌전히 눕는다.
엄지손가락을 세워 녀석의 등받이로 대신하곤, 천천히 축제의 이모저모를 보여준다.
어느새 삼녀의 입은 자신도 모르게 행복의 노래를 부른다. 이것이 행복일까.





[부우우웅-부우우우웅-]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리리리이~♪]

‘츄아아아-! 츄아아아아-!’


90년대나 나올 법한 원색적 8비트의 소래소리. 그 사이에서 신나 어쩔 줄 모른 나머지 내지르는 실장석의 탄성.
이곳은 실장석 전용 바이킹을 운영하는 곳. 시장바닥에 늘 찾아오는 바이킹 업자를 보고 어느 한 사람이 영감을 얻어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애완동물에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을 겨냥하여 만든 이 코너는 생각 외로 인기를 끌었다.


‘테치! 테치테치!’

‘안돼 초록아. 한번 탔잖아. 이제 집에 가야지’

‘테치! 테치이잇!’

‘어허. 그럼 나 화낸다? 너 버리고 그냥 간다?’

‘테에에엥....’


마지못해 주인의 손에 안겨 떠나는 실장석. 앞 줄이 사라지자 신나게 입장하는 자실장들.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에 앉는 그 모습이 부러운지, 초록이라 불린 녀석은 몇 번이나 돌아본다.


‘테츄! 테츄테츄우!’

‘자 갑니다~’


[부우웅-부우웅-]

[띠리리리-띠리리리---]


원색적 노래와 함께 작동하는 바이킹. 스피커도 영 좋지 않은지 소리도 갈라지고 위에 아치를 받치는 연결부는 불안하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허나 자실장들을 태운 주인은 전혀 불안해 하는 눈치가 아니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흔드는 것과 비슷한 흔들림.
높이고 고작 지상에서 몇 센치 떨어지지도 않은 점을 고려해보면 이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브리리릿...브리리릿]

‘츄아아아아-! 츄아아아아--!’


앉은 자리에서 똥을 싸재끼는 자실장들. 지방질로 투실투실한 엉덩이 사이를 비집고 나와 아래로 떨어진다.
업자는 이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애초에 플라스틱과 고무로 제작하였다. 후에 뒤처리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흘러내린 똥은 그대로 홈을 타고 내려 바닥에 떨어진다. 바닥은 작은 구멍들이 뚫려있어 그 사이로 똥이 타고 내려가 땅바닥을 녹색으로 적신다.
아래 깔린 모래는 덕분에 딱딱하게 굳은 똥과 새롭게 쏟아지는 똥으로 도배되어있다시피 했다.

한편 그 옆을 지나고 있던 삼녀와 남자. 바이킹은 어김없이 삼녀의 마음을 빼앗았다.


‘테치! 테치테치!’

‘음? 저거?’

‘테치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그럼 가볼까?’

‘츄아!’


앞에 있던 사육주는 바이킹에서 내리려 하지 않은 자실장들을 억지로 떼어내 도로 리드줄에 묶는다.
거의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서럽게 울어대며, 작별의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일행.
남자와 삼녀가 기다리는 사이, 업자는 옆에 호스를 틀어 물로 대충 헹궈낸다.

‘태울 거에요?’

‘네’

돈을 지불한 남자는 삼녀를 뒤쪽에 앉힌다. 흥분에 젖에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녀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준다.
자신 옆에 앉으라는 듯 옆자리를 톡톡 가리키는 삼녀에게 남자는 피식 웃어 보인다.

‘됐어 너 혼자 많이 타’

‘테치! 테치테치!’

재차 권하는 사이, 바이킹은 움직인다. 그래봐야 앞뒤로 30센치 정도지만 어린 실장석들에겐 충분한 자극이다.
허공에 붕 뜨는 듯한 쾌감. 그리고 해방감.
땅바닥에 보일정도로 완전히 뒤로 젖혀졌을 때는 무서워 눈을 감고 앞의 손잡이를 꼭 붙잡았다.
하지만 다시 올라가는 부양감에 눈을 뜨고 있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츄아아아아아-!!’


동시에 느껴지는 가랑이 사이의 따듯한 감촉.
똥을 지리는 것도 모른 채 삼녀는 실장생에 다시없을 쾌감을 만끽한다.





‘테휴우...테휴우....’


세 번을 연달아 탄 삼녀. 하도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기진맥진하다. 왠지 목소리도 쉬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곁에는 언제나 따듯한 닝겐마마. 그의 존재만으로 마음이 놓인다.
남자가 준 손수건을 이리저리 헤집어 놓는 녀석은 이내 그것도 귀찮은지 그저 얌전히 몸에 두르고 남자의 엄지손가락에 몸을 기대고 숨을 쎄근거린다.
손수건 끝을 입으로 쪽쪽 빠는 것은 모유에 대한 향수일까.

바이킹을 연달아 타 노곤하다. 거기에 간만의 만복감도 작용하였고 몸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는 손수건의 감촉에 심신이 포근해진다.
듬직한 새 보호자. 빵빵한 배. 그리고 미래도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에 마음이 놓인 삼녀는 조금씩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무거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남자의 마음도 무거웠다. 귀여운 나머지 실컷 놀아주고 귀여워해줬지만 그 다음은?
지금 자신은 애완동물을 키울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 이것은 큰 결정이다. 생명을 집에 책임진다는 것이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무턱대로 데려갔다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비정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질려버릴 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귀엽지만 훌쩍 커버렸을 때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거기에 들어갈 돈은 어쩌고. 순수 사료값만 계산하여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 장난감, 기타 부속 상품을 감안하면 액수는 급격히 올라간다.
자신은 애완동물을 들일 준비와 각오가 되었는가.

‘...츄우...테츄우...’

손 위에선 작은 독라 자실장이 몸을 베베 꼬며 옹알이를 하고 있었다.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배를 감싸고, 다른 한 손은 입에 넣어 쪽쪽 빨며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호흡에 따라 천천히 오르내리는 작은 가슴은 너무나 연약하여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녀석은 들출신. 이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어떤 상처를 안고 있는지 모른다.
따라서 어떻게 교육시켜야할지 전혀 갈피가 안 잡힐 것이다. 신체적 이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미에게 자랐다 하더라도 ‘인간의 세상 속에서 사는 법’에 대해선 무지한 녀석들이다.
펫샵의 교육받은 녀석을 구매해도 꽤나 난이도 있는 것이 실장석 사육.

실장석이 가벼운 애완동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훈육이 쉬워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애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지천으로 널려있고, 아무거나 잘 먹고, 별다른 예방주사나 의료서비스를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쑥쑥 자란다.
그래서 그 만큼 쉽게 버린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이 실장석이니.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거두어 그래도 주인을 찾아주려는 시늉이라도 하는 보건소도, 실장석에겐 예외적 반응을 보인다.
치렁치렁 장신구를 걸치고 있지 않은 이상 일부러 회수하지도 않는다. 그저 길바닥에 내버려둔다. 해수구제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끝에 남자는 결론을 내렸다.
어쩔 수 없다. 자신은 아직 준비와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로 데려가는 것은 오히려 이 아이에게 있어 장기적 해가 될 것이다.
멋대로의 자기변명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일방적인 생각이란 것도 알고 있다. 무책임한 것도 알고 있다.
이것이 세간에서 말하는 ‘올렸다 떨어뜨리기’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미안하구나...’

‘.....테-스--.....테-스--....테-스--.....’


규칙적인 숨을 내뱉으며 곤히 잠에 든 삼녀에게 남자의 고백은 들리지 않았다.
남자는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공터에 그렇게 녀석을 내려놓고 사라졌다. 이번은 토굴도 이불도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는 녀석이 몸을 감싸고 있는 손수건을 도로 회수했다.
약간 몸을 움찔하며 잠꼬대를 했지만 그것이 전부. 다시 쎄근거리며 행복한 꿈나라로 돌아갔다.
따듯한 닝겐마마를 사랑한다 중얼거리며....


남자는 내심, 추위가 그녀의 숨을 끊어놓기를 바란다.
목격자를 원하지 않는 범인처럼, 그는 작은 자실장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누군가 자기 대신 더러운 일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그는 자리를 뜬다.











‘치이이...치이이....’

축제도 끝나 텅 빈 거리.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 거리에서 조금 벗어난 공터에 독라의 자실장 한 마리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몸을 움츠리면서도 아직 잠을 자고 있는 녀석. 허나 잠기운도 추위에 점점 날아가고 있는지 몸의 움직임이 점점 커졌다.

‘챠앗-!’

불현 듯 소리를 지르며 퍼뜩 일어난다. 그것은 삼녀.
닝겐마마의 품 속에 있으면 행복감으로 마음이 포근하고 그 커다란 손의 온기는 얼어붙은 몸을 따듯하게 감싸주는 것이 틀림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닝겐마마의 품속에서 곤히 자고 있던 삼녀의 얼굴은 퍽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마마를 찾는다.

왜 자신은 여기에 혼자 있는가? 자신을 듬직하게 받쳐주던 손은 어디로 간 거지?

‘테치...테치...테치이....’

애처러운 목소리로 울어봐도 돌아오는 것은 바람소리밖에 없다.
매서운 칼바람에 빨개진 귀 끝이 아릴 정도였다. 방금 전까지의 온기는 빠르게 사라진다.

‘테챠아아-테챠아아-’

아직도 만복이라 무거운 몸을 일으켜 남자를 직접 찾아 나선다.
구슬피 우는 모습은 일반인이라도 뭉클할 장면이었지만 그녀를 봐 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가 떠난 적막한 거리. 여기저기 버려진 생활쓰레기를 제외하곤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공터.
후미진 곳에 위치한 공터는 깜깜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깜빡여도 그게 그거인 상황. 그래도 뭔가 라도 보려고 눈을 부릅뜨는 모습은 애처로운 발버둥.
별로 변한 것 없이 깜깜한 암흑 속을 허우적거린다.


[부스럭]

‘테챠앗!’

뭔가에 몸에 닿자 화들짝 놀라며 뒤로 자빠진다.

‘테챠아아-! 테챠아아-!’

보이지 않은 곳을 향해 마구 위협을 하며 엉거주춤 뒤로 물러선다.
반쯤 일어선 자세로 뒷걸음질 치며 미지의 사물에서 멀어진다.
하지만 그도 멀지 않아


[바스락]

‘챠앗-!’

뒤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감촉. 뭔가 따끔따끔하다.
실은 둘 다 낙엽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상황에 괜한 상상력만 증폭되어 모든 것이 자신을 공격하려는 괴물로 느껴지는 것이 실장석이다.
특히나 그것이 새끼라면.

[브리리리리릿...]

구리구리한 냄새를 풍기며 온기가 훅 올라오는 총구 주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이빨을 내밀며 자신이 방금 똥을 싸지른 곳을 엉덩이와 다리를 문질러 온통 똥 투성이가 된다.
자신의 똥 감촉에 놀란 삼녀는 또 다시 공포의 비명을 지르며 다급히 일어선다.

‘테치이이이-! 챠앗!’

허둥지둥 달아다던 녀석 앞으로 보이는 별. 앞에 나무가 있는 것도 모르고 달리다 그대로 꼬라박은 것이다.
대낮같이 환해지는 환상을 보며 그렇게 삼녀는 기절한다.





기절한 삼녀가 일어난 것은 몇 시간 후. 피곤함과 당혹이 겹쳐 그대로 다시 잠들어 버린 것.
그녀를 깨운 것은 혹독한 칼바람. 냉기는 손발을 타고 들어가 가슴으로 그 세력을 뻗치고 있다.
이것이 위석에 다다른다면 삼녀는 동사할 것이다.

‘테에에에엥...테에엥...’

일어나자마자 한 것은 울음.

친절한 닝겐마마는 어디? 따듯한 이불은 어디? 우마우마한 맘마는 어디? 신나신나는 어디?

한참을 울어도 남자가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울다보면 그 울음소리를 들은 마마가 바로 달려왔던 삼녀의 경험상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버려진 것은 절대 생각할 수 없다. 귀여운 자신이 찾아도 오지 않는 경우는 딱 하나밖에 없다. 상대방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닝겐마마는 크다. 아주 크다. 너무 크고 무서워서 자신을 발로 찼던 인간도 굴복시켜 맛나맛나를 받아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신나신나를 잡고 있던 사람에게 겁을 줘 잔뜩잔뜩 재밌게 놀 수 있게 해줬다.
이런 마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다니 그건 말이 안 된다. 자신을 잊은 것은 아닐까?

자신의 보호자와 거의 떨어져본 적이 없는 실장생 경험은 모든 상황판단 능력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
아무리 고민해도 나오지 않는 답. 고작 그녀가 내린 결론은 ‘닝겐마마를 찾는 테치’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테에에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었고, 아까처럼 괴물에게 습격당하는 것은 끔찍하다.
실제로 괴물 따윈 삼녀의 마음이 만들어낸 망상이라 하더라도, 철저한 주행성 동물인 실장석이 야간에 길을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잠시 몸을 꼬며 발을 굴리던 그녀는 도로 제자리에 앉는다.

[휘이이잉~]

재차 몰아치는 칼바람. 츄아아아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린다.
어딘가 바람을 피할만한 곳으로 가고 싶지만 아까 전 조우한 괴물을 만나는 것은 절대 사양이다.
꼴에 동물이라는 건지 공포에 대응하는 세 가지 단계정돈 거치고 있다.
모를 때는 일단 가만히 있어라.

‘테치이이...테치이이....’

아플 정도로 얼어붙은 등을 둥글게 말고 최대한 손발을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대신 훤하게 드러난 궁덩이가 시리지만 적어도 손발은 약간 따듯해지는 느낌.
두 눈을 감고 잠에 들려 애를 쓴다. 적어도 꿈 속에선 마마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

‘테에에엥...테에에에엥....’

방금 전까지의 행복과 너무나 대조되는 현실에 터져 나오는 울음은 좀처럼 멎지 않았다.





아침 새가 우는 공원. 어제의 요란함은 차갑게 식은 그 모습은 쓸쓸해 보일 정도. 아직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은 집에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멀리서 움직이는 녹색 덩어리들은 벌써 채집을 마치고 돌아가는 현명한 성체들. 영리하게도 사람이 없으면서 최소한의 활동은 가능한 새벽에 다니는 것이다.
까마귀와 까치들은 깟깟 재잘거리며 오늘 하루 사냥감을 물색하며 돌아다니고, 벌써 출근준비를 마친 이들은 발걸음을 서두르는 아침. 언제나의 거리 그 모습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아침의 풍경 속에 삼녀도 끼어있었다.
따듯한 침대와 친절한 마마와 함께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마가 자신을 찾지 못 한 모양이다.
버려졌다는 것은 절대 생각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닝겐마마를 찾기로 결심한 그녀는 나무 뒤에 살짝 고개를 내밀고 거리를 내려보고 있었다.
그간 당한 것이 약간은 교훈이 되었을까. 세상에는 무서운 사람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나름대로 은폐를 하고 있었다.

분명 마마가 여기서 사라졌으니 여기서 기다리면 마마가 올 것이다. 라는 가정 하에 처음 그 장소에서 거의 떠나지 않았다.
약간은 무서웠지만 마마와의 재회에 대한 확신은 그녀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테치이....’

슬픔과 동시에 기대감에 젖은 눈으로 삼녀는 나무 뒤에 숨어 열심히 마마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윽고 한 사람이 앞을 지나간다.
드디어 소득이 있다는 사실에 잔뜩 고양됐지만. 곤란한 것이 있었다.

마마가 맞는 테츄?

닝겐마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 짧은 만남. 거기에 조명과 어둠으로 제대로 얼굴을 보지도 못 했다.
그렇게 좋아한다고 했으면서 정작 관심을 둔 것은 남자가 베풀어주는 음식과 위락시설 이용에 쏠려 있었다.

‘테에에..테에에...’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발을 동동 굴리며 제 자리를 빙글빙글 돈다.

‘음? 저 녀석 뭐지?’

출근길을 나서던 남자. 잠시 신발끈을 고쳐매는 사이 무심코 돌아간 시선엔 독라 자실장 한 마리가 있었다.
나무 둥치 아래서 뭔가 고민인 듯 자신을 힐끔보며 발을 굴리고 뱅글뱅글 돌리거나 몸을 베베 꼬는 녀석이있다.
아마 제딴에는 잘 숨었다고 생각했겠지. 지금도 상대는 자신이 안 보인다고 생각할 것이고.
보통의 독라들은 비굴한 웃음을 띠며 이판사판 아첨을 해오는데 뭔가 수줍은 녀석이다.

‘뭘 그리 고민하는 거야’

다른 녀석과 다른 행동에 약간의 호기심을 느끼는 남자.
그런 남자의 시선을 전혀 눈치 채지 못 한 삼녀는 여전히 둥치 밑에서 고민을 계속 하고 있었다.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닝겐마마가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고 이대로 놓쳤는데 알고 보니 닝겐마마가 맞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고 아닐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상에는 나쁜 인간들이 가득이다. 고함을 지르고 발로 걷어차고 아픈짓을 하는 인간들이 잔뜩이다.
상냥하고 친절한 것은 오직 닝겐마마 뿐.

‘테치테치이....테치이...’

자신만의 언어로 중얼거리던 녀석은 과부하 된 머리를 꼭 붙들고 도리질을 한다.
만화였다면 머리 위에서 푸시이이 하고 김이 올라올 정도로 맹렬하게 머리를 회전시킨 끝에 살짝 다시 인간 쪽을 바라본다.







‘이쪽 보는 거 맞네? 일로 와봐라 ???’

‘테에?’


그쪽을 바라보면 인간이 허리를 숙이고 자신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입으로는 개를 부를 때 쓰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삼녀의 고민은 거기까지였다.
저건 닝겐마마다. 닝겐마마가 돌아왔다.

‘테치이이-! 테치이이--!’

보고 싶었던 테치! 반가운 테치! 헤어지는거 싫은 테치!

재회의 기쁨을 있는 대로 쏟아내며 달려가는 삼녀의 머리 속에서, 눈앞의 남자는 어제의 그 남자가 되었다.
실제론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실장석의 빈약한 기억력과 심각한 제멋대로 기질은 이를 전혀 의심치 않는다.

다이빙 하듯 남자의 손으로 달려들려 했지만

‘으앗!’

‘테?-!’

손을 급히 빼는 바람에 달려가던 방향대로 자빠진다. 귀여운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꼬물거리는 녀석.
일부러 뺀 것은 아니었다. 본래는 조금 쓰다듬을까 생각도 있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꼬질꼬질한 모습에 급하게 손을 뺀 것이었다.

앙상하게 남아있는 몇 올의 꼬부랑 머리터럭. 지난 밤 기껏 닦아준 보람도 무색하게 하루 새 도로 더러워진 녀석의 모습. 무리도 아니다.
흙바닥에 한참 뒹굴고 심지어 자신이 싼 똥무더기에서 허우적거리고 그 상태로 어둠 속을 헤매고 다녔으니. 실제로 실장석은 거의 길바닥의 먼지를 쓸고 다니다시피 하는 녀석들.

‘테챠아아....’

통증을 중얼거리며 굼실굼실 몸을 일으키는 녀석을 바라보는 남자의 입꼬리는 일그러졌다.
학대파란 놈들은 이런 걸 잘도 맨손으로 집는 구나...라는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이야 생각해보면 그 녀석들 비위도 좋다. 이 세균덩어리를....’

‘테츄우...테츄우...’

두 다리를 편 자세로 앉아선 삼녀. 벌겋게 부어오른 앞머리를 가리키며 뭔가 호소한다.
관심과 치료를 요구하는 것일까. 넘어지면 언제나 마마가 달려와 좋은 자인데스~좋은 자인데스~하며 쓰다듬어 주었다.
이 남자도 당연히 그렇게 해줄 것을 기대하며 격하게 안겨온다.

생각보다 격렬한 반응에 남자는 살짝 당황했다. 이대로는 발목을 타고 올라올 것 같아 움찔하며 허리를 폈다.
냄새가 심한 것도 있었지만. 펑펑 쏟아내는 눈물에 운동화가 적록색으로 번진다.

‘너 내가 그렇게 좋니?’

남자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든다. 아니 그냥 계속 볼을 비비는 것인가.
여튼 잘 모르겠다. 남자는 슬쩍 신발을 뒤로 뺀다.
신발 위로 올라타려던 삼녀는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지지만 벌떡 일어나 도로 달려든다.

장난기가 발동한 남자는 마치 춤을 추듯 스탭을 밟는다. 이쪽 발을 들면 저쪽 발을 딛고, 저쪽 발을 들고 이쪽 발을 딛고.
삼녀는 남자의 관심을 얻기 위해 최대한 신발을 껴안으려 하지만 번번이 놀아난다.

‘테에..테에...테칫!’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 보면 어느새 높이 도망가 잡을 수가 없다.

‘여기야 여기~’

‘테칫!’

약을 올리는 남자의 말을 착실하게 따른다. 땅에 디디고 있는 반대쪽 발을 향해 자박자박 뛰어가면 또 다시 그쪽 발을 들어올린다.

‘테엣!’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한 눈빛. 허공에 떠버린 운동화 발바닥을 올려보며 그 아래를 뱅글뱅글 맴돈다.
나름대로 한껏 힘을 내 점프를 해보지만 풀썩 자빠지는 결과 외에 얻는 것이 없었다.

‘챠아-! 테챠아-!’

억울하다는 듯 자빠진 상태로 불만을 토로한다. 이런 닝겐마마는 싫다. 짓궂다.

‘장난 싫어? 난 재밌는데?’

‘테치-! 테치테치이-! 테치!’

투정을 부리는 듯 엎드린 상태로 팔다리를 흔들어댄다.
기뻐도 슬퍼도 똥을 싸지르는 종족적 특성답게 총구 사이로 똥물이 새어나온다.

‘그래 그럼 다른 걸 해볼까?’

‘테치?’







드디어 안아주는 테츄? 하며 기대하는 삼녀. 그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불가능하기 때문.
남자는 치켜들고 있던 발을 그대로 내려 삼녀를 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츄아....! 테치이이....! 테치이이....!’

바람이 세어가는 압박감. 전신에 전해지는 육중한 무게감.
남자는 절묘하게 힘조절을 하며 전신을 마사지 하듯 골고루 밟아준다. 당하는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다.
다리가 부러질 듯 아팠다가 잠시 뒤엔 허리가 박살날 듯하고 그 후엔 머리통이 깨질 것 같은 고통을 릴레이로 겪어야한다.

‘테....치이.....’

왜 그러는 테츄....와타치 닝겐마마 좋아좋아 테치.....
착한 아이로 있었던 테치....바로 달려와준 테치....
운치도 제대로 하는 테치....상냥한 마마로 돌와주는 테치...

아직도 낯선 남자를 닝겐마마라 부르며 애원하는 삼녀.
하지만 인간이 실장석 말을 알아들을 리 없고 오히려 묘한 쾌감에 휩싸인 남자를 말리는 일도 만무했다.
마치 물풍선을 발로 갖고 노는 것 같은 느낌에 푹 빠진 남자는 자실장을 터트리지 않으면서 골고루 이곳저곳 압박하기 바빴다.

‘테에에...츄아아아...테에....’

가슴을 압박해오는 느낌에 숨이 훅 빠져나간다. 폐가 모조리 쥐어짜져, 호흡곤란으로 입술이 새파래진다.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팔다리를 있는 대로 휘저으며 저항을 해보지만 그것은 그저 커다란 대가리와 튀어나온 뱃살 아래 약간 여유 있는 부분 사이로 허공을 의미없이 가르는 것일 뿐.
마구 파닥거리며 땅바닥과 운동화 바닥을 연달아 쳐봐도 그는 오히려 괴로워하는 삼녀의 반응을 즐길 뿐이다.

‘테에에에에-!’

쥐어짜는 듯 한 소리를 떽떽 지른다. 이번엔 배가 심하게 눌려 거의 터질 듯이 살집이 넓적하게 눌린다.
어젯밤의 포식이 지금 순간만큼은 독으로 돌아온다. 아침이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뱃속의 음식물이 절반은 똥으로, 절반은 토사물로 위아래 입 모두에서 쏟아져 나온다.

‘테보보보오오옥...테보오오옥...!’

목 사이로 흘러가는 위액. 따금거리면서도 신 그 맛에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린다.
구토를 하여 모자란 숨을 히이익하고 급하게 들이쉬기도 전, 다시 토사물이 쓸려나온다.

‘게에에에에엑--!’

목구멍으로도 전해지는 건더기의 감촉. 어제의 만찬은 오늘의 고통으로 돌아온다.
입안에 그득히 고여 버린 녹색과 노란색 구토 국물을 질질 흘린다. 길게 늘어진 토사물의 줄기가 땅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는 삼녀.

구토는 진정됐지만 배설물은 오히려 더욱 세차게 뿜어 나온다. 물똥을 싸듯이 푸르르륵 튀어나가는 배설물.
점액질 사이로 가스도 나와 부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똥의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앙증맞은 엉덩이와 허벅지는 금방 녹색 똥으로 더러워진다.
약간 커다란 덩어리가 나올 때마다 총구가 콧구멍 벌름거리듯 움찔거리며 건더기를 토해냈다.
마치 녹색치약을 짜내듯 꾹꾹 눌러 짜는 재미에 남자는 멈추지 않는다. 꾹꾹 눌러도 더 나오지 않자 그제야 발을 뗀다.

삼녀는 거친 숨을 헉헉 몰아쉬며 서러움과 아픔을 쏟아낸다.
허리가 아파 엎어진 자세 그대로 땅을 내리치고 양눈에서 적록색 눈물을 쏟아내며 오열한다.

‘테에에...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심한 테치! 심한 테치! 싫은 테치! 싫은 테치!

이상하다 이런 남자. 전혀 상냥하지 않다. 미안하다고 외쳤지만 무엇이 미안한지 모르겠다. 왜 남자가 변했을까.
남자는 자신을 귀여워 해줘야 틀림없다. 그런데 왜 슬픈 일을 하고 아픈 일을 하는 걸까.

하지만 삼녀에게 있어 남자는 최후의 보루다.
몇 일간 겪어온 경험으로 그녀는 독라꼴을 한 고아 자실장 따윈 쉽게 죽어버릴 수 있다 익혔다.
싫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자신은 약하다. 그리고 남자는 강하다. 그런 남자는 자신을 돌봐준다.
어떻게든 남자에게 붙어야한다. 그렇게 심한 꼴을 당하고서도 삼녀는 남자에게 붙어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허리를 잘못 건드려 움직이지 않은 두 다리를 질질 끌고 기어와 남자의 운동화 끝을 끌어안는다. 적어도 시도는 했다.
허리를 일으키질 못해 그저 신발굽에 손을 꼭 붙일 뿐이었지만, 간절함은 전할 수 있었다. 그것을 호응해주는 것은 온전히 남자의 자유였지만.

‘테츄...테츄....테에....’

안아주는 테츄. 잔뜩잔뜩 쓰담쓰담 해주는 테츄.
많이 아파아파 했으니 맛나맛나 잔뜩잔뜩 먹는 테츄.

이것이 대체 어디가 상황파악이 되었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필사의 노력으로 신발 끝을 할짝였다.
복종의 의사인지 나름대로의 애교를 부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온몸에서 전해지는 절박함 정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하아....미안하지만 나는 바빠요~’

장난기어린 목소리로 말을 한 남자는 일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몇 발자국 뗀다.
큰 소리로 발을 굴리며 떠나려는 포즈를 취하자 예상대로 자실장은 발광을 한다.

‘테에! 테챠아아-! 테챠아아아-!’

싫은 테치! 외톨이 싫은 테치! 맘마도 잘 먹는 테치! 운치도 예쁘게 하는 테치! 버리는 거 싫어싫어 테치!







움직이지 않는 다리에 최대한 힘을 불어넣은 걸까 온몸이 움찔거리며 남자 쪽으로 기어간다.
거친 돌바닥에 살이 쓸려도 돌맹이를 잘못 짚어 피가 나도 팔을 잘못 짚어 몇 번씩 고개를 찧어도 포기할 수 없다는 듯 질질 기어온다.

‘테에에엥-! 테에에에에엥-!’

‘미안해용~안뇽~’

능글거리는 미소를 띠는 남자. 하지만 이번 거는 놀리려는 목적만이 아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진짜로 늦어버린다.
들실장 갖고 노는 건 여기까지. 다 큰 성인이 실장석 놀리다 지각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 건 초등학교 이후로 졸업이다.
빠르게 달려가는 남자의 머릿속에서 삼녀에 관한 것은 금방 지워진다. 그 자리엔 지하철 배차간격과 도보거리에 대한 계산이 대신 차지한다.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엥-!’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는 이제 갈라지려 한다.
듣는 이가 거슬릴 만큼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터트리며 그녀는 남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손을 뻗어보지만 남자의 뒷모습은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

잘못했다. 착한 아이로 있겠다. 돌아와달라. 혼자는 싫다. 외쳐봐도 그가 돌아오는 일은 없다.
멀리 뛰어가는 남자가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손을 뻗고 땅을 내리치며 불쌍한 자신의 신세를 호소해 봐도 기적은 없었다.

남아있는 것은 공터에 버려진 자신. 외톨이 독라 자실장.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다.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더 이상 의미 있는 단어의 조합이 아닌, 단순한 신경질적 울음을 터트린다.
조용한 아침의 공기는 그렇게 버려진 실장석 새끼 한 마리에 의해 방해받는다.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 풀도 듬성듬성 나있는 꼴이 탈모가 진행 중인 중년의 머리와 같은 이곳.
별다른 자연지형이 부족한 만큼 그 가운데 멍 하니 앉아있는 녀석의 정체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달려있고, 사람과 닮은 얼굴을 하고 있는 녀석.
한 뼘도 되지 않은 작은 체구의 녀석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할 뿐이다.
푸득거리며 방구를 뀌더니 이내 녹색즙과 같은 배설물이 줄줄 흘러나와도 아랑곳 않는다.
무슨 일을 겪었던 간에 메워지지 않은 상처를 입어 정신이 크게 다친 모양.

사람들은 아침부터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혀를 차고 지나갔다.

그나마 뜸한 인적이라 확률적으로 아직 학대파가 지나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학대파라 하더라도 이른 아침부터 날뛰고 싶어 하는 골빈 놈은 몇 없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을 누리면서도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하는 자실장 녀석은 조그맣게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귀를 대야 간신히 들리는 그 목소리.

외톨이는 싫다. 혼자는 싫다. 상냥하게 해달라. 맛나맛나가 좋다 폭신폭신이 좋다. 그러니 돌아와 달라.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녀석은 용서를 비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하겠다. 그래봐야 실장석이니 별로 쓸모는 없겠지만.
눈동자는 풀려있고 앉아만 있을 뿐 팔다리의 힘은 풀려 바람에도 건들건들 흔들리는 자실장. 그녀는 삼녀였다.

남자에게 잔뜩 희롱만 당한 그녀. 그 어느 것도 해주지 않고 떠나버렸다. 이상하고 이상하다.
닝겐마마는 상냥하고 자신을 귀여워해준다. 그야 자신은 귀여우니깐. 그 동안 왠지 다른 이들은 자신을 전부 싫어했지만 닝겐마마만큼은 달랐다.
잔뜩 귀여움을 받은 녀석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기뻤지만 한여름 밤 꿈처럼 흘러가버렸다.
마마는 돌아왔지만 영문 모를 일만 잔뜩 하고 가버렸다.

‘테에에..테에....’

광인처럼 중얼거린다. 침이 거품이 되어 흘러내려도 쉬지 않고 중얼거린다. 주문을 외우는 사람처럼.
삼녀에겐 주문일지도 모른다. 계속 용서를 빌고 부탁을 하다보면 친절하게 돌아온 닝겐마마가 나타날 것으로 믿는 주문.
마법이 없듯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넋을 잃은 삼녀는 자신의 뒤쪽으로 다가오는 그림자를 전혀 보지 못 했다. 그림자의 주인은 손을 뻗더니...


‘테치?’

‘챠아아아앗-!’


가볍게 건드린 것뿐인데 전기 오른 것처럼 튀어오른다.
상대방의 격렬한 반응에 손을 내밀었던 이는 도로 손을 집어넣고 잔뜩 움츠린다.
마마가 돌아온 것을 아님을 확인하자 정신이 돌아왔는지 눈을 끔뻑이며, 자신 앞에서 있는 생물을 바라본다.
그것은 자실장이었다. 그것도 자신과 같은 독라.

눈물기가 맴도는 눈에는 두려움으로 가득해 보였고, 고생의 흔적인지 드러난 맨살 위에는 상처와 멍으로 지저분했다.
어느 독라나 비슷한 모양인지 제대로 먹지 못해 수척해보인다.

치켜든 회초리 앞에서 움츠려든 것 같은 자세로 잠시 굳은 녀석은, 삼녀가 진정함에 따라 조금씩 전신에 줬던 힘을 풀고 평상자세로 돌아온다.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 독라 자실장은 뒤로 슬슬 내빼려는 삼녀의 손을 잡는다. 상대가 놀라지 않게 너무 힘을 주지 않고 살짝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다.

‘테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신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손을 잡아당기는 시늉에 삼녀는 천천히 발을 뗀다.
그 모습을 본 독라 자실장은 만족스런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인다.
순순히 자신을 따라올 것 같은 확신이 서자 그녀는 몇 발짝 앞에서 삼녀를 인도한다. 어디론가 데려가는 듯.
집을 나와 처음으로 보는 독라 자실장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낀 것일까? 삼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미지의 상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테츄테츄~’


조우한 이후로 처음으로 말을 건낸다. 도착이라니 어디로 도착했다는 것일까.
그녀 눈에 보이는 것은 작은 나무 뿐이다. 허나 옹이 안쪽 어두운 곳에서 히끄무레한 것들이 움직이는 것을 얼핏 지나갔다.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해 들여보자 뚜렷한 윤곽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녀석을 제외하고도 3마리의 독라들이 더 있었다.

서로 마구 뒤엉켜 잠을 자고 있던 녀석들은 정적이 방해받음에 따라 일어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인사말을 주고 받은 녀석들은 삼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약간 움찔하였지만 상대가 같은 독라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평정을 되찾는다.

‘테츄?’

새로운 친구인 테츄? 하고 묻는 일행의 말에 삼녀는 혼란스러웠다. 그녀들의 질문에 삼녀는 역으로 묻는다.
너희들의 마마는 어디로 갔는지. 왜 독라인지. 여기서 뭘 하는 것인지.
악의 없는 기조로 풋 웃는 독라무리. 역시 신참이라 중얼거리며 차분하게 자신들을 소개한다.

독라무리는 애초 같은 배에서 나온 자매조차 아니다. 독라가 된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노예로 태어나 출생 직후 옷과 머리카락을 빼앗겼다한다.
추자의 옷과 머리카락은 보온재로 쓰고 녀석이 죽기 전까지 노동력을 착취했다가 더 이상 써먹지 못 할 때가 오면 잡아먹는 것이 들실장의 기본상식이다.
힘이 빠진 자매들이 하나둘 먹히는 꼴을 보고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물론 세상은 혹독했다. 하지만 일을 하며 터득한 나름대로의 노하우와 같은 처지의 동지끼리 의지하여 지금껏 버텨오고 있는 것이다.
넉넉하진 않아도 배는 채울 수 있었고, 마마의 품처럼 따듯하진 않지만, 비와 바람에서 보호해주는 집을 꾸릴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들은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참한 테치.

얘기를 들은 삼녀가 처음 뱉은 말이었다. 사회성이라곤 전무한 녀석이 뇌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내뱉은 것이다.
독라무리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니깐. 무리는 새로운 일원을 필요로 한다.
나름대로 살아갈 수는 있다고 다시 설명을 재개하는 무리의 말을 끊고 삼녀는 쏘아붙이다.

폭신폭신 침대는? 달콤달콤 맛나맛나는? 커다란 집은? 재밌는 놀이는? 장난감은?
이 모든 것에 한참 뒤떨어지는 것만 붙잡고 산다는 것인가? 게다가 그걸 자신이 직접 일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일을 한다’라는 개념은 삼녀에게 있어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배고프면 먹여주고 먹이는 마마가 찾아준다. 집과 침대는 애초부터 있었다.
닝겐마마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 맛나맛나를 주고 신나신나를 시켜주었다.

그것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를 전혀 고민 않고, 그저 있었기에 누렸다.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었고, 없어지는 것들도 알아서 채워졌다. 그것이 삼녀의 삶이다.
남이 모든 것을 해주고 자신은 누리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자 진리.

‘테츄? 테치테치이?’

‘테치테치....’

왜 직접 일을 해야 하냐 묻는 삼녀의 질문에 약간 오히려 당황한 것은 독라무리였다.
똑같이 추자로 태어났지만 삼녀와 달리 그녀들은 태어나자마자 폭행을 당했고, 재산을 박탈당하고 강제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녀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것은 노동뿐이었다. 그것도 타인을 위한.

적어도 지금은 스스로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장족의 발족인데 어째서 그것을 이해하지 못 하는 걸까.
살아온 환경이 다른 두 진영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하고 고개만 갸웃거릴 뿐. 일방적으로 자신이 할 말만을 내뱉는 녀석들이 의견을 좁히는 일은 없었다.
단편적으로 ‘이상한 테치’ ‘왜 그런 테치’ 만을 중얼거리는 것은 자실장들의 꽁트에 가까웠다.

‘테치테치이? 테치이?’

독리무리 중 하나가 재차 말한다. 독라 따위를 좋아해주는 자는 아무도 없다.
거기에 마마도 죽었다면 대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러니 소득 없는 방황을 그만두고 자신들과 함께하자고.

그 물음에 삼녀는 가슴을 펴고 당당히 대답한다.

‘테츄! 테치테치이~테츄우!’

친절한 닝겐마마가 있다고. 자신의 귀여움을 알아본 닝겐마마는 친절하고 상냥하다고.
그리고 간밤에 먹은 만찬과 신나는 놀이기구, 따듯한 사랑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한참을 재잘거리는 삼녀를 바라보며 독라무리는 고개를 저었다. 인간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어리석다.

연령은 비슷할지 몰라도, 겪어온 경험의 질이 다른 독라무리는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인간이 들에 버려진 녀석들을 거두어주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변덕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것이 인간이다.
똑같은 인간도 기분에 따라 때론 도와주고 때론 괴롭힌다. 인간은 멀리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그네들의 경험이다.

열심히 설득을 하여도 삼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녀는 어딘가 있을,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상냥하게 돌아온 닝겐마마가 자신을 찾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동질감에서 나오는 정으로 독라무리는 손을 내밀었지만,

‘텟챠아-!’

거칠게 뿌리친다. 방금 전까지 인간에게 목숨을 애걸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기세등등하게 이빨을 내보이는 삼녀.
일순간 비친 흉악한 야수의 모습에 순진한 독라무리는 움찔한다.
똥을 지리는 것을 간신히 눌러 참고 나무옹이로 들어가 조용히 웅크린다.

이것은 그녀들 나름대로의 수긍표현. 삼녀가 이를 알아들었을지 못 알아 들었을진 의문이지만, 어찌되든 상관없다.
위협한 직후 바로 등을 돌리고 걸어 나갔으니깐.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멀어지는 삼녀. 그 뒷모습을 지켜보는 독라무리는 컴컴하고 눅눅한 옹이 안에서 서로를 감싸 안는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어 약간이라도 보온을 한다. 미끄러지는 팔다리가 바닥에 깔려있는 나뭇잎을 건드리며 나는 바스락 소리.
그 사이로 도란도란 대화가 피어오른다.

어쩌면 저 믿음만큼은 부럽지 않냐고. 하지만 그 말에 가장 나이가 많은 녀석은 고개를 젓는다.
인간에게 사육되는 기대는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





당당하게 걸어 나간 것과는 별도로, 딱히 계획은 없었다.
일단 남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걷고는 있지만 걸어도 걸어도 비슷한 풍경에 마음만 조급해진다.
이러다 영영 남자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남자가 자신에 대해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진작 했어야할 질문이다.
그리고 그 걱정에 대한 대책도 어리석었다.
인간들이 많아 보이는 곳으로 가 귀여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자고 결정한 것.

인간들은 귀여운 자신을 보기 위해 몰려들 것이다.
그렇게 많은 숫자가 웅성거리면 남자는 금방 자신이 있는 곳을 알아챌 것.
이 간단한 두 계단짜리 사고회로를 거치고, 행동으로 나선다.

역시나 도로 한 가운데는 무섭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인들이 마구잡이로 내딛는 거대한 발바닥은 멀리서 봐도 무서웠다.
결국 녀석은 포석 위로 올라가서....

‘텟츙~♪ 텟츄웅~♪’

아첨을 시작했다.





당연히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따금씩 쏠리는 눈길이 느껴지면 삼녀는 역시 됐구나 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아첨을 계속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대로 걸어 지나치는 것이 백퍼센트. 더러운 독라 자실장 따위가 저 짓거리를 하는 것은 너무나 의도가 뻔했다.
그렇지 않아도 감정낭비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고작 들자실장에게 줄기력은 없었다.

‘테에에...’

다시 수포로 돌아간 시도에 축 늘어지는 어깨. 한참을 서 있어 다리가 아프다.
퇴근한 아버지가 소파에 눕는 것 같은 기세로 한 다리 다른 쪽 다리 차례로 풀석 내던지며 그대로 주저앉는다.
완전히 눕는다면 닝겐마마를 놓치게 될 까봐 상반신만큼은 일으키고 있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저벅저벅저벅]

[부아아아앙~]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오가는 인파와 자동차. 처음엔 그리 무서웠던 저 무쇠덩어리들.
검은색 길 밖으론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턴 별로 무섭지 않다.

통통 부은 자신의 발을 꼬물거린다. 예쁜 선홍빛이었던 발바닥은 어느새 본래 색을 잊고 칙칙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거기에 온갖 상처로 난자되어 있어 이전의 귀여운 모습이 아니었다. 속이 상했지만 금방 떨쳐낸다.
닝겐마마가 온다면, 이런 것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닝겐마마의 자가 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테츄!’

스스로가 내건 최면에 힘이 생긴 삼녀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일어섰다.
먹이를 본 들실장처럼 벌떡 일어나 힘차게 아첨을 재개한다.

‘텟츙~♪ 텟.....테에에?! 테에에엣?!’

아이돌마냥 기운 넘치게 고개를 옆으로 젖힌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다.
입은 쩍 벌어져 닫힐 줄 모르고 두 눈동자는 떨린다.
천천히 고개를 다시 원래대로 돌리는 삼녀의 전신은 당혹감, 의아함으로 덜덜 떨린다.
하얗게 된 머릿속을 채운 단 하나의 물음.


어째서.


삼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어제의 남자가 있었다. 자전거를 탄 남자는 삼녀가 그리도 찾아다닌 닝겐마마다.
자실장의 기억왜곡이나 착각이 아닌 진짜 그 당사자가 맞다.
듬직한 풍채, 선한 눈길, 인상좋은 표정, 그리고 따스한 미소.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바구니 안에 타고 있는 4마리 독라 자실장들에게 쏠려 있었다.
잠시 신호에 걸린 사이에 바구니 안으로 손을 뻗어 한 마리 한 마리 씩 부드럽게 쓰다듬어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보호자에게 받는 관심과 애정에 독라 자실장들은 무장해제 되어 한껏 애교를 부려온다.

장갑을 낀 남자의 손가락 끝을 핥아대거나 검지를 놓지 않으려는 듯 꼭 껴안고 볼을 비비는 등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애정표현을 쏟아 붓는다.
그 모습은 흡사 친실장과 새끼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어휴 얼마나 고생했으면....그래그래 귀엽다~아유 귀여워~’

‘텟츙~♪ 텟츄우웅~♪’


뺨을 붉히며 달콤한 목소리로 사랑을 외치는 그녀들은 작은 뇌에 저장된 단어를 총동원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우중충한 나무옹이 안에서 축 늘어진 녀석들이라 볼 수 없을 만큼 활기차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찬 녀석들이었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 라고 하지 않는가.

신호가 바뀌자 남자는 도로 양손으로 핸들을 잡고 앞으로 나간다.
갑자기 뺀 손에 투정을 부리며 바구니 벽을 통통 치는 독라 자실장들이었지만, 바구니 밖으로 빠르게 바뀌는 풍광에 곧 정신을 빼앗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삼녀의 심정은 그야말로 황당 그 자체였다.

어째서인 테치...그 자리는 와타치 것인 테치...
닝겐마마는 와타치 닝겐마마인 테치...마마는 와타치 마마인 테치!

‘테챠아아아-! 테챠아아아-!’

분노, 회한, 허탈, 다급, 절박이 섞인 눈물을 뿌리며 그녀는 도로로 달려간다.
커다란 붕붕이가 내달리는 검은색 도로는 위험하다는 사실도 잊고 눈 앞에 바로 있는, 정말 코앞에 있는 닝겐마마를 붙잡기 위해 달린다.

도둑년! 도둑년! 도둑년!

욕설과 가픈 숨을 폭폭 내쉬는 작은 자실장은 몇 걸음 가기도 전에 훅 뒤로 던져진다.

‘챠아앗-!’

행인의 발에 치여 저만치 밀려났다. 언제나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울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 추격을 재개한다.
남자의 뒷모습은 벌써 조그마한 점으로 보일만큼 작아졌다. 인간이라 해도 더 이상의 추격을 불가능하다.

광기어린 집착으로 삼녀는 뛰고 또 뛴다. 이리저리 걷어차이고, 자동차 풍압에 날아가며 나중에는 엉뚱한 도로를 따라 달린다.
남자가 간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는 삼녀.
욕설과 애원을 번갈아 외친다.

도둑년! 날 버리지 말아라. 거긴 내 자리다! 마마의 새끼가 여기있다. 당장 꺼져라! 마마를 기다렸다.

한참을 뛰었다고 생각했지만 수십 미터 남짓을 이동한 것이 고작이다. 분노로 에너지를 공급하던 다리에도 한계가 찾아와 그대로 쓰러진다.
엎드려 있으면 눈물로 젖은 얼굴에 도로의 먼지가 엉겨붙는다. 턱 끝에 고인 눈물엔 더러운 건더기가 둥둥 돌아다닐 만큼 엉망이다.
먼지가 입에 잔뜩 들어가 찐득해진 입 안. 거기에 갈증까지 겹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신 쪽이 귀여운 게 틀림없는데. 바로 옆에 있었는데. 왜 못 본 거지?
그리고 왜 저 녀석들이지? 저런 버러지들을 왜 데려가는 거지? 애초 선택받은 것은 자신 아닌가?

남자는 실장석을 좋아했다. 아니 동물을 전부 좋아한다. 실장석은 그에 포함되는 것일 뿐. 어젯밤 삼녀를 버리고 귀가한 남자는 가책에 시달렸다.
그 정도로 동물을 좋아하는 것이다. 자신의 변덕에 의해 죽었을 작은 자실장이 눈앞에 어른거려 밖으로 나온 것이다.
정확한 위치가 기억나지 않아 그냥 축제가 벌어졌던 거리 주변을 방황하던 중. 나무 둥치 안에 떨고 있는 독라 4마리를 본 것이다.
붙임성도 없고 잔뜩 겁을 집어먹고 바들바들 떠는 상처받은 영혼들.

흡사 어젯밤 만났던 그 아이와 닮았다. 속죄였을까 변덕이었을까. 남자는 그 독라 자실장들을 키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여건이고 각오고 나발이고 마음이 시킨다. 키우자. 그렇게 그녀들은 사육실장이 되었다.
모든 이가 꿈꾸는. 그것도 애호파 주인 아래의 사육실장.


실장석으로 태어나 살아간 다는 것은 우연의 바다를 헤엄치는 것과 같다.
그 우연은 때론 불행의 모습을 띄고 있고 때론 행운의 모습을 띄고 있다.
허나 실장생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우연은 불행이다. 작고 약한 이상 그것은 숙명이다.

어떤 이는 이를 수긍하고 어떤 이는 이를 부정한다.
어떤 이가 일생토록 노력해도 얻지 못 한 것을 누군가는 얼떨결에 얻는 경우도 있다.

독라무리의 경우가 그러했다. 불행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삶을 개척해나가던 중 뜻하지 않게 일생일대의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실장생에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은 행운.

반면 삼녀는 행복한 가족을 만났지만 그 이후로 상실과 아픔을 겪었다. 살아난 것이 기적에 가까운 것들도 있었다.
거의 확실한 죽음에서 비껴간 적도 있었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져 다시 행운을 잡는 듯 했지만, 그 변덕스러운 행운은 금방 손아귀 사이로 흘러갔다.

허나 미련을 버리지 못 하고 두 번째 요행에 기대었고, 행운의 여신은 기구한 운명을 던져주었다.
이것이 실장생이다.





해가 져가는 저녁. 노을이 짙게 깔리는 마을.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인파로 소란스럽다. 아침과 다르게 얼굴에 여유가 배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
무엇을 먹을 것인가. 무엇을 하며 놀 것인가를 떠들어대며 낮에 있던 피로를 발 아래로 조금씩 흘려보낸다.
여유롭진 않아도 나름대로 행복을 캐낸 그네들은 때론 만족하고 때론 불만스러워 한다.
그래도 그렇게 사는것이 일생 아니겠는가.


‘음? 뭐야 저거?’

‘얼레? 뭐지? 누가 풀이라도 붙였나?’


앞에 가던 사람이 흘깃 바라보면 뒤에 있는 사람도 덩달아 바라보는 것.
하지만 순간의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 모양인지 굳이 경로를 트는 사람은 없었다.
고개만 잠깐 돌리고 한 마디 중얼거린 것이 전부인 모습.

그곳엔 자실장 한 마리가 아첨포즈 그대로 굳어있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손을 뺨에 붙인 자세.
하나같은 동작에 내포하는 의미는 제각각이다.
먹이를 요구할 수도 있고, 사육을 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 행복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때 삼녀라고 불린 이 자실장의 아첨포즈에 담긴 의미는 위에 나열한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오직 원념과 허탈만이 가득한 발악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게 갈구하던 희망이 부서짐에 따라 그녀의 마음도 부서진 것이다.
검은 눈물이 길게 늘어진 채 죽어버린 독라의 자실장.

어딘가를 바라본 채로 죽은 그녀의 시선에 막연한 기대감이 남아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착각일까?

























댓글 10개:

  1. 명작.. 필력에 감탄하고 전개에 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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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띵작이네 진짜... 삽화가 원래있었던, 전에 다본것들인데 스토리랑 너무찰떡이라 스토리때문에 그린 삽화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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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0쌍 이면 20마리란소린뎈ㅋ 잘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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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 저 분충쉑 나무 편하게 죽1은것 같은데스..보존식 쳐1먹고 닌겐음식에 멋대로 손대고 장점이라고 나열하는게 많이먹는거,운치싸는거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호의를 권리로 알고 다른개체들한테 도동련이라고 분수도모르고 깝1싸고..처음에 돈카츠 닌겐한테 제대로 걸려봤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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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와 씨발 내용 미쳤다 ㅋㅋㅋㅋㅋㅋ 100점 만점에 10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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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이것이 마스터피스인레훼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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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키타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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