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바 해산물 1~8 (완)



20XX년.
고도화된 일부 선진국에서는 자국민의 3D업종 기피현상으로 인해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었다.
기존의 방법은 해당 업종에 외국인노동자를 투입하는 것이었지만, 이 역시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때문에 정부는 기존의 외국인노동자를 대체할 새로운 방법을 고심했고, 그 대체재로 선택된 것이 바로 실장석이었다.

어느 해안가 갯벌지대에 자리잡은 『후타바 해산물임가공영업소』
갯벌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은 노동의 강도가 대단히 높다.
하지만 단가의 코스트가 낮아 처우를 높여줄 수가 없어 자국민은 물론이고,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도망갈 정도로 인력난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고사 위기에 내몰린 지역이었지만, 지역 어민들과 정부의 지원 아래 실장석을 이용한 생산체제를 구축하여 훌륭하게 위기를 극복해냈다.
가장 힘든 갯벌에서의 해산물 채취를 실장석에게 맡겨 생산량 확보와 코스트의 절감이란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았던 것이다. 지금은 다른 현에서도 견학을 올 정도까지 성장했다.

지금부터 오늘 처음 영업소에 입사한 일가를 통해 실장석들의 삶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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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이상한 곳인데스우...]

한 무리의 실장석들이 화물트럭에서 우르르 쏟아져 내린다.
트럭의 뒷부분에서부터 내려진 나무판자를 경사로로 삼아 수십의 실장석에 테치테치 데스데스하며 뛰어내려온다.
처음 보는 생소한 환경에 모두 정신이 없었지만, 뒤에서 휘두르는 인간의 막대기에 맞지 않으려면 행동을 재빨리해야만 한다.

[마마아~~ 마마아아아~!!]

[3녀쨩 어디있는 데스우우우우~~]

[3녀!! 4녀!! 모두 어디간데스!?]

[오네챠아아!! 오네챠 같이 가는 테체아!!]

트럭 아래에는 서로 섞여버린 가족을 찾느라 아수라장이다.
현명한 개체는 차에 있을 때부터 떨어지지 않도록 서로를 꼭 붙잡고 있어 무사히 가족을 만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대다수는 실장석의 바다에 휘말려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죄다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옷차림에 비슷한 목소리라 구분이 안 간다. 대부분이 이름이라는 게 있을리 없는 들실장들이라 죄다 장녀, 차녀, 3녀, 4녀, 5녀, ....... 라고 부르기 때문에 자들도 이리갔다 저리갔다 갈팡질팡한다.

[5녀! 어서 뒤로 물러나는 데스우!]

그런 아수라장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던 친실장이 입을 레- 벌리고 구경하던 엄지실장을 뒤로 잡아당긴다.

[레칫! 마마! 아픈레치이~]

[가만있는데스!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 밟혀 죽는 데스우우!!]

[레치! 무서운레챠아아!!]

[테에에에... 마마...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테치?]

[데... 마마도 잘 모르는데스우... 하지만 가족끼리 힘을 합치면 반드시 살아날 수 있는데스. 모두 손을 절대 놓지 않는 데스!]


[[[[[하이테츄!]]]]]

[구더기쨩도 돕는레후!]

장녀의 품에 안긴 막내 구더기쨩도 꼬리를 빼타빼타 흔들며 다짐한다.
그런 막내가 기특한듯 친실장은 구더기의 가느다란 머리칼을 한 번 쓰다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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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난동이 끝나고 어느 정도 진정되자 인간 둘이 나타나서 실장석 무리들을 어느 창고로 데려간다.
걷는 와중에도 데스데스 테챠테챠 레치레치하며 실장석들은 '밥을 내놓는테치!', '약속과 다른데스우!', '콘페이토나 스테이크는 어디인 데스?', '여기가 어딘지 빨리 말해라 닌겐!' 등등 시끌벅적 소란스럽게 떠든다.
실장석들이 모두 창고에 들어서자 뒷편의 육중한 문이 쿵! 하고 닫힌다. 그 큰 소리에 시끄럽던 실장석들이 모두 쥐죽은듯 조용해진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저는 후타바 해산물의 영업담당인 토시아키입니다.]

정적을 깨뜨리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창고 앞쪽에서 울려퍼진다.
실장석들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실장석 무리와 약간 떨어진 곳에 서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실장석들은 모두 어리둥절하고 있었지만, 남자는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각자가 오신 곳에서 설명은 들으셨겠지만...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후타바 해산물에 취직하게 되셨습니다.
저희는 여러분들에게 숙소와 식사는 물론이고, 간식과 놀이기구까지 제공해드릴 것입니다.
여러분... 실장석분들은 그 대신 저희 회사의 일을 거들어주시면 됩니다.]

[...여기 있는 동안 저희 회사의 규칙만 지켜주신다면 일절 학대나 폭력 등의 행위는 없을 것입니다.
가족을 데리고 있는 것도 자유입니다. 가족을 낳는 것 역시 자유입니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도 있습니다.
지켜야할 규칙은 아주 간단하고 쉬운 것이니 그리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규칙은 다음 기회에 교육하도록하고...
모두 오랜 여행길에 힘드셨을테니 일단 저희 회사에서 준비한 식사부터 하시죠.]

남자의 말이 끝나자 실장석 무리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공원에서 들었던 것이 모두 사실이었다.


3일 전, 기아가 찾아온 공원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실장석들에게 한무리의 인간들이 찾아왔다.
풍요의 가을이 가고, 학대의 겨울이 와 식량난에 시달리던 실장석들에게 인간들은 실장푸드를 대량으로 뿌렸다.
처음에는 독이 들어있을까 싶어 멈칫멈칫 눈치만 보던 실장석들이었지만, 먹어도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알게 되자, 숨어있던 공원의 모든 실장석들이 먹이에 달려들었다.
추접스러운 그 모습에 인간들이 질릴 법도 했지만, 인간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다투는 실장석들을 말리고, 모두가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실장푸드를 넓게, 골고루 뿌려주었다.

한참 동안의 식사 시간이 끝나자 남자들은 실장석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너희들 우리집에서 일하지 않을래? 일하는 동안에는 집도 주고, 밥도 매끼니마다 주고, 가끔이지만 콘페이토 같은 간식도 줄꺼야.]
[데에... 사육실장인 데스?! 와타시를 길러주는데스우우???!!!]

[아냐아냐. 확실히 말할게. 사육실장은 아냐. 너희들은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우리는 집과, 밥, 간식에다 봉급까지 주는거지.]
[뎃? 봉급이 뭐인데스우?]

[봉급이란... 돈인데... 음... 인간들이 쓰는거야. 그것만 있으면 밥도 콘페이토도 스테이크도 초밥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단다.]
[데데데데데데데????]

그 뒤에는 볼 것도 없었다.


이미 애호파들의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인 공원.
행복했던 가을은 끝난 지 오래라 땅에 남아있는 식량은 흙과 마른 풀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장석의 키가 닿는 나무껍질은 죄다 벗겨졌으며 길가마다 굶어죽고, 흙을 먹다 숨이 막혀 죽은 실장석들이 널려있다.
시체를 가지고 싸우는 것은 있는 축에 들고, 한무더기의 똥을 차지하기 위해 주먹다짐도 서슴지 않는 것이 지금의 공원 상황이다.
그런데 집과 밥과 간식에다 콘페이토, 스테이크, 초밥 등등도 가질 수 있다는 소리를 듣자 대부분의 실장석들은 남자들에게 달려들어 데려가달라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일부 실장석들은 의심어린 눈초리로 남자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데..... 이해가 가지 않는 데스우... 지금까지 누구도 이렇게 많은 실장석들을 데려간 적은 없었던 데스...
왜 우리들에게 그런 친절을 베푸는데스? 닌겐상들은 혹시 학대파인데스? 와타치타치들을 유인하는 데스?]

무례한 말로 들릴 수도 있었지만, 남자는 전혀 화내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우리는 학대파가 아니란다. 그리고 우리가 주는 것도 공짜로 주는 게 아니지.
일을 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란다. 우리가 이렇게 많이 데려가는 이유는 그만큼 할 일이 많기 때문이지.
또, 일을 하지 않으면 음식이나 집은 주지 않는단다.]

[데에....]

어차피 의심해봐야 실장석.
남자의 조리있는 말솜씨에 뭐라고 대꾸하지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해야한다는 것.
그것 이상의 의심을 가질 머리가 실장석에게는 없었다.

[데... 와타시는 자들이 있는데스우... 자들도 데려갈 수 있는... 데스우...?]

다른 실장석 하나는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가족을 데려갈 수 있는지 물어본다.
남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이다. 가족이 열 명... 열 마리든 스무 마리든 모두 데려와도 된다!]

[데스우우우우우우우우우웃~!!!!!!]

실장석들의 기쁨의 함성이 공원을 떨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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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를 회상하던 실장석들의 앞에 하나둘씩 식사가 차려진다.
꿈에서 그리던 콘페이토가 커다란 쟁반에 성체실장 키만큼이나 가득 쌓여 나왔다. 게다가 그런 쟁반이 무려 10개나 창고에 놓였다.
실장석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쟁반으로 달려들었다.
맛을 음미할 시간 따위도 없이 양손으로 콘페이토를 쥐고 마구 입에 쑤셔넣는다.
아직 양쪽 볼이 가득 찼는데도 입을 벌려 억지로 더 쑤셔넣느라 목에 걸려 컥컥거리는 놈들도 있다.
아예 콘페이토에 다이빙해서 뒹구는 놈도 있다. 어떤 놈들은 한 손으로는 콘페이토를 집어 입에 쑤셔넣고, 다른 한 손으로는 팬티속에 콘페이토를 밀어넣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 광란의 현장이 벌어지고 있을 때 또 다른 음식이 들어온다.

[자~ 스테이크입니다!]

커다란 쟁반에 노릇하게 구운 햄조각이 몇겹이나 쌓여 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고,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거기에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향긋하고 구수한 냄새에 실장석들이 다시 미쳐 덤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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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히... 테히....]

[데... 차녀쨩 괜찮은데스우?]

친실장이 자기 머리통만큼이나 불룩해진 배를 부여잡고 누워있는 차녀의 배를 쓰다듬으며 걱정스럽게 묻는다.
차녀는 오늘의 진수성찬에서 마치 미쳐버린 것처럼 음식을 주워먹더니 결국 배탈이 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차녀는 오히려 웃음지었다.

[테치... 와타치는 괜찮은 테치이.. 배가 아파도 많이 먹어 정말 행복한텟츙~♥]

[테에! 와타찌도 그런테찌! 오늘 그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본테찌!]

[구더기도 그런 레후! 오늘 먹은 달콤달콤은 정말 맛있던제이. 구더기쨩 똥을 지린레후!]

[와타치도 실컷 먹은 레치이이이!!!]

모두 다 기쁜 목소리를 울린다. 친실장도 이렇게나 실컷 먹어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자들은 오죽할까.
이 아이들은 지금까지 배부르다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는 삶을 살았다.
그런 이들에게 달콤한 콘페이토와 향긋하고 따끈한 스테이크라니...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복인 것이다.

[마마 고마운테치. 마마 덕분에 이렇게 행복할 수 있었던테치.]

아까부터 조용히 있던 장녀가 친실장에게 안긴다.
친실장은 눈물이 고이는 것을 애써 참으며 장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준다.

[레챠! 마마가 우는레치! 마마는 울보인렛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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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아침식사로는 실장푸드가 나왔다.
나쁘지 않은 맛이었지만, 어제의 진수성찬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는 것이라 이곳저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실장석들은 불평없이 잘 먹는다. 실장푸드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24시간 전까지만 해도 흙과 똥까지 기꺼이 먹었던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어제의 인간이 다시 와서 오늘부터 일을 배운다고해서 모두 우르르 밖으로 따라나갔다.
일을 할 수 없는 엄지실장이나 구더기는 나오지 않아도 좋다고하여 친실장은 엄지실장인 5녀에게 구더기쨩을 부탁했다.

[5녀쨩. 이거 뒀다가 먹는데스우]

[레에에! 마마! 고마운렛춘!!]

친실장은 어제 몰래 숨겨둔 콘페이토 2개를 5녀 손에 쥐어주었다.
남자가 멈춰 선 곳은 거대한 갯벌의 앞이었다.
진회색 빛깔의 고운 갯벌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다.
평생을 공원에서만 살아온 실장석들은 그 위대한 자연의 경치에 모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갯벌만을 쳐다본다.

[자! 자! 이제부터 실컷 볼 수 있으니 일단 집중해! 오늘부터 너희들은 갯벌에서 바지락을 캔다!]

남자는 호주머니에서 바지락 껍질을 한 주먹 꺼내 실장석 무리에게 던진다.

[이게 바지락이다. 뭐... 하지만 너희들에게 그걸 구별하는 걸 바라지는 않아. 그냥 쉽게 얘기해줄게. 저 갯벌에 들어가서 흙과 돌 빼고는 모조리 다 담아오는거다! 알겠나?]

남자는 뒤에 놓인 거대한 상자에서 실장석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호미를 바닥에 쏟아낸다.
그리고 역시 다른 색깔의 상자에서 철사를 엮어 만든 망태기를 우르르 바닥에 쏟아낸다.

[한 마리씩 앞으로 나와서 호미와 이 망태기를 하나씩. 한 개씩! 가져간다. 그리고 바로 갯벌로 달려가서 일을 시작해라!]

어제와는 묘하게 달라진 남자의 말투에 실장석들은 약간 당황함을 느끼면서도 서슬퍼런 태도에 겁을 먹고 한 마리씩 질서정연하게 호미와 망태기를 하나씩 들고 갯벌에 들어간다.
친실장들은 모두 불길한 예감에 가볍게 몸을 떨고 있었지만, 자실장들은 처음 느껴보는 부드러운 갯벌의 감촉에 테챠테챠하며 서로 웃고 떠들고 장난치기에 바쁘다.
마지막 하나의 실장석이 호미와 망태기를 들고 갯벌로 들어서자 남자도 들어왔다.

[뭐하고 있어 이 분충들아!! 당장 호미로 땅을 파서 바지락을 찾으라고!!]

남자의 갑작스러운 큰소리에 실장석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뎃뎃- 거리면서 호미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남자는 긴 장대를 들고 다니면서 딴짓을 하거나 땅을 파지 않는 실장석들을 무자비하게 찌르고 후려친다.


퍼어어억!!!


[데게에에엑!!!]

[이 분충!! 뭘 두리번거려!! 땅을 파라니까! 그리고 뭐든 주워 담아!!]


쿡!!


[테챠아아아아!!! 아픈테챠!!! 피가 나는 테챠아아아아아!! 마마아아아!! 마마!!]

[누가 장난치랬냐 이놈! 밟아 터뜨려죽이기 전에 빨리 일해!!]

[데갸아아아!!! 3녀쨔아아아앙!!! 너무한데스!! 와타시의 자가 죽어버리는....]


퍼어어어억!!!


[누가 호미질을 멈추랬냐!!!!]

[데에에에에에엑!!!! 머리가!! 머리가!!!]








갯벌은 어느새 공포의 도가니가 되어버렸다.
모든 실장석들은 대체 뭘 해야하는지도 모르면서 호미로 땅만 열심히 파헤치고 있었다.
뭘 해야하는지도 몰라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까 전에 손을 들고 질문한 실장석 하나가 '그때 안 듣고 뭐했냐 이 분충아!!!'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통이 박살나는 것을 보았기에 아무도 물어보지 못했다.
그저 호미를 휘둘러 땅만 파고 뭐가 보이면 그냥 망태기에 넣었다. 그것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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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 후.
다른 인간들이 와서 원래의 인간들에게서 장대를 넘겨 받는 일이 계속 되는 동안, 실장석들은 한 번도 허리를 펴지 못하고 땅만 팠다.
잠깐 한숨 돌리려 허리를 펴는 실장석은 그대로 장대의 풀스윙에 맞아 상체가 터져나갔다. 그런 시체가 열개가 넘어가자 아무도 일어서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초록색 옷과 허연 피부는 진흙 범벅이 되어 있었다. 옆을 보나 뒤를 보나 모두 진회색 진흙에 범벅이 되어 빨갛고 초록색 눈만 뻐끔뻐끔거리고 있었다.
그때 사이렌 소리가 났다.

[자! 점심시간이다. 모두 망태기와 호미 챙겨서 밖으로 나와.]

[데에에에!! 와타시는 이렇게 힘든 일은 못하는데스우우우!! 이건 너무 힘든 데스!!!!]

[그렇다데스! 약속과 다른 데스! 학대도 잔뜩인데스! 도대체 얼마나 죽인데스?!]

[데샤아아아아!!! 이런 일은 못하는데스!! 와타시와 자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데스우우우우!!!!]

[맞는데스! 맞는데스! 싫으면 언제든지 떠나도 된다고 말했던데스! 약속을 지켜라 데스!!!]

다시 뭍으로 돌아온 실장석 무리들 중 친실장을 중심으로 한 이들이 남자에게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자실장들은 뭐라 말할 힘조차 없어서 모두 땅에 쓰러져 테히- 테에- 하며 거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거의 300마리가 넘는 실장석들이 한 목소리로 항의하는 것은 장관이었다.
그런 실장석들에게 처음의 남자가 다가왔다.

[아 좋아.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가도 좋아. 하지만 그전에 돈은 갚아야지.]

[데에? 무슨 돈을 갚으라는 것인 데스우?]

[어디보자...여기까지 차비 20,000엔.
프레젠테이션 및 설명회 비용이 공원에서 1번, 여기서 1번해서 총 2번 10,000엔.
어제 저녁식사로 먹은 콘페이토와 스테이크 값이 70,000엔.
아침식사가 300엔.
그리고 지금 설명해준 자문료로 300엔.
총합 100,600엔을 내면 나갈 수 있어.
그리고 공원까지 가고 싶으면 20,000엔이 추가되니까 공원까지 갈 실장석은 120,600엔.]

[데......? 데뎃??]

[너희들은 이 돈을 다 갚을 때까지는 못 가.]

남자는 차갑게 미소지었다.






2주일 후...
새벽 5시. 늘 그랬듯이 기상 신호가 울린다. 군데군데 설치된 스퍼커에서 시끄러운 사이렌이 왜애애애앵~~ 하고 울리는 것이다.
사람들도 시끄러워 귀를 막을 정도의 소음이라 실장석들은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이렌은 곧 그쳤으나 창밖은 아직 한밤중이다. 두껍게 성에가 얼어붙은 유리창을 통해 본 바깥은 캄캄한 암흑뿐이다.


친실장은 기상신호가 울렸지만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어제는 저녁 늦게까지 갯벌에서 뒹구는 바람에 오한이 들고, 온몸 곳곳이 쑤시는 것 같아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잠자리에 들어서까지도 몸이 풀리지 않았다.
잠을 자면서도 마치 두들겨 맞은 것처럼 시름시름 앓았다. 그저 제발 날이 새지만 말았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온 것이다. 사실 숙소에 그냥 누워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몸이 나을 일은 없었다.
차가운 바닷바람 때문에 창문에는 성에가 얼어붙었고, 창문 가까이의 천장에는 온통 얼음조각이 얼어붙어 고드름까지 자라 있었다. 말이 숙소이지 바깥과 다를 것이 없었다.

친실장은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다.
친실장의 잠자리는 공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초라한 골판지 상자였다.
누가 사용하던 것인지 온통 초록빛깔로 물들어 있고, 고약한 냄새도 났지만 그래도 이런 데라도 기어들어가지 않으면 곧 얼어죽고 만다.
친실장은 바닥에 깔린 신문지와 넝마가 다 된 담요를 머리 위까지 푹 뒤집어쓰고 신발까지 신은 채 동그랗게 몸을 말아 새끼들을 감싸 안고 있었다.

아직까지 자실장들은 잠에서 깨지 않은 채 품에 안겨 테츄- 테츄-하며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친실장은 계속 누워있었지만, 바깥은 여러 실장석들이 돌아다니느라 분주하고 소란스럽다.
실장석들이 데스데스 테치테치 떠드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온다.

[데에! 아무데나 똥을 싸면 어떡하는데스우! 화장실을 쓰라고 하지 않은뎃슨!!]
[테에에엥!! 하지만 화장실은 다른 실장석들이 너무 많아테치! 못참는테챠!!]

[데엑! 빨리 일어나라데스! 안 일어나면 엉덩이를 걷어차주는데스!!]
[마마아아~~~ 바깥은 너무 추운테치이이이!!!!]

[레에에엥! 졸린레챠! 조금 더 자는 레치!]

바깥의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친실장은 더욱 나오기가 싫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닌겐이 와서 쫓아낼테니 그때까지 버티고 있자는 심산이었다.
몸이 아픈 자신도 그렇지만, 지금 친실장의 옷 속에서 새근새근 잠이 든 아기들이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누군가의 위압적인 손길이 담요를 벗겨내고 친실장의 머리칼을 낚아채어 골판지 상자 밖으로 끄집어내버렸다.
친실장은 비명소리 한 번 못지르고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 와중에 품속에 있던 자실장들도 밖으로 튀어나가 뒹군다.

[테에에엣!! 뭐인 테챠! 아픈 테치이이이이!!!]

[마, 마맛? 마마아아아앗!!!]

[레후! 레후! 배가 이타이한제이! 구더기 아픈제이!]

[나쁜 닌겐인테찌! 닌겐이 온 테찌이이이이이!!!!!!]

[L-35호!]

남자는 친실장의 머리통에 찍힌 붉은 화상자국을 보고 외친다.

[너는 감점 3일이다!!]

전혀 감정없는 쇳소리 같은 그 목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 퍼지자, 늑장을 부리고 있던 다른 실장석들이 여기저기서 자신의 골판지를 박차고 튀어나와 재빨리 일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데에에엣!! 감점이라니, 닌겐사마 왜 그러는 데스우우웃!!!?]

친실장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간수의 발에 달라붙으며 비통하게 외쳤다.
감점 3일이란 3일치의 노동을 무효로 치는 것이다. 모든 실장석들은 일을 하면 그만큼의 보수를 지불받게 되는데, 이 보수로 식사를 해결하고 간식이나 옷과 같은 다른 생필품도 살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몸값을 모아 지불하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감점이란 그 노동. 새벽 5시부터 밤늦게까지 덱덱-거리며 해온 그 비탄의 하루를 무효처리해버린다. 즉, 감점당한 그 하루는 일을 하지 않은 것이 되버린다.

[기상신호가 울리면 바로 일어나야 한다는 걸 모르나? 다음에도 이러면 그땐 정말 각오하는게 좋아.]

남자는 발을 털어 친실장을 데굴데굴 날려버리고 다른 골판지쪽으로 간다.
친실장은 주저 앉아 멍한 눈으로 남자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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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은 숙소인 창고를 나와 다른 창고를 2개 지나면 나오는 기다란 컨테이너 박스이다.
컨테이너 박스 2개를 붙여 만든 이 건물은 길이가 긴 대신 폭이 아주 좁다.
때문에 행동을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뒷줄에 밀려 밥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앞으로 밀려버리기 일쑤이다.
당연히 다시 뒤로 돌아가는 것은 허용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식당에 들어서자 입구에서 몰아치는 한기와 솥에서 올라오는 김으로 안은 목욕탕처럼 온통 김이 서려 있다. 앞을 내다볼 수도 없을 지경이다.
안쪽은 창고별로 구분된 식탁에 앉아서 한창 먹고 있는 실장석들, 통로에 길게 늘어서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밥을 받으려는 실장석들, 식탁 앞에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실장석들로 북적인다.
참다 못해 선 채로 밥을 먹는 실장석들도 있다.

밥을 주는 것은 실장석이 아니라 닌겐이다.
예전에는 실장석이 배식했지만, 다툼이 너무 잦아 닌겐이 맡게 되었다고 한다. 닌겐으로 바뀐 덕분에 식사에 대한 불평이나 양에 대한 불만은 조금도 꺼낼 수 없다.
식당 입구에 길게 늘어서 있는 장대에는 실장석의 목이 꽂혀 있는데, 이들은 음식에 불평을 했거나, 양이 적다고 투덜거렸거나, 닌겐을 속이고 밥을 2번 받으려 한 실장석들이다.
그런 실장석들은 현장에서 즉결처분 되어 몸뚱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머리통은 장대에 꽂혀 경고의 의미로 밖에 내걸리게 된다.


배식대를 지나 밥을 먹는 식당 안쪽은 춥기 때문에 대부분이 추위에 떨며 식사를 한다.
그렇지만 결코 서둘러 먹지는 않는다. 모두들 시꺼먼 야채 찌꺼기를 들춰가며 밑바닥에 가라앉은 썩은 고기 부스러기를 끈기 있게 찾고 있다.

친실장은 그런 실장석들을 지나 비어있는 식탁을 찾아 먼저 자실장들을 자리에 앉힌다.
장녀부터 4녀까지 한줄에 앉히고, 엄지인 5녀는 식탁 위에 올린다. 구더기쨩은 엄지가 소중하게 들고 있다.
친실장은 받아온 나무 숟가락을 꺼내 자들에게 나눠준다. 그리고는 바로 식사를 시작한다.

친실장은 숟가락으로 국그릇을 휘저어 재빨리 건더기를 살핀다. 예상보다 적은 건 아닌 것 같다. 이 정체불명의 수프는 들어온 첫날부터 매일매일 나오고 있었다.
시꺼멓게 썩어버린 양배추, 보라색으로 변해버린 흐물흐물한 감자, 냄새가 조금 수상한 당근 등등 야채찌꺼기가 들어가고, 간혹 잘아서 못 먹는 조개나 상한 생선, 처음 보는 수상쩍은 고기가 있을 때도 있었다.
오늘의 국그릇에는 고기조각은 없는 모양이다. 친실장은 실망스러운듯 데-하고 중얼거리며 숟가락을 움직여 먹는다.

식사는 천천히 진행된다. 실장석들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아침 식사 10분, 점심식사 10분, 저녁식사 10분 말고는 앉아 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을 떠먹는 실장석들의 움직임은 아주 느릿느릿하다.

도착한 첫날에 먹었던 콘페이토와 스테이크는 물론이고, 다음날 아침에 먹었던 실장푸드도 주어지지 않았다.


닌겐의 말로는 그건 돈을 주고 사야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실장석들. 제 4창고의 실장석들은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기에 살 수도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 이후로 주어진 것은 이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이 수프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이 너무 힘들었기에 이제 식사 투정을 하는 실장석들은 거의 없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결코 큰 소리로 떠들지 못하는 것이다.
닌겐이 들릴 정도로 불평을 하는 실장석들은 하나같이 목이 잘려 바깥의 장대에 걸렸다. 그렇게 될 바에는 맛없고 고약한 이런 스프라도 먹는 게 백배는 나은 것이다.

친실장은 식사를 거의 끝내고 자들을 돌아보았다. 장녀부터 4녀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엄지인 5녀는 숟가락이 너무 커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친실장은 5녀를 품에 안고 숟가락으로 떠먹여주었다.

[렛츈~! 마마가 먹여주는레치! 고마운레치!]
[...어서 먹는 데스우.]

예전이었다면 5녀의 애교를 받아주었겠지만, 너무 피곤하고 힘이 없어 그럴 여유도 예전에 사라졌다.
하지만 철모르는 5녀는 레치레치거리며 친실장이 떠주는 스프를 먹으며 즐거워한다.

[구더기쨩도 먹는데스]

6녀인 구더기에게는 감자조각을 하나 건져 놓아준다.

[폭신폭신한제이! 맛있는레후우우~]

엄지실장이 국그릇을 반정도 비우자 친실장은 남은 음식을 골고루 장녀부터 4녀까지에게 나눠준다.
빈그릇을 들고 멍하니 테- 하고 있던 자실장들이 다시 활기를 얻어 국그릇을 압-압- 거리며 먹는다.
하지만 5녀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볼을 부풀린다.

[렛치! 와타치는 더 먹을 수 있는 레치! 왜 빼았는 레챠아아아]

[...오네챠와 마마는 일을 나가는데스우. 그러니 더 먹어야하는데스.]

[레... 그럼 와타치도 같이 일을 하는레치! 와타치도 힘이 쎄진레치! 구더기쨩도 들고다니는레츈!]

[데에... 너에게는 무리인데스...]

친실장은 엄지와 구더기쨩을 꼭 안아준다.
식당을 나와 친실장과 자실장들은 헤어진다.
친실장은 갯벌로 가서 해산물을 캐지만, 장녀부터 4녀까지는 공장이란 곳으로 가서 하루종일 조개껍질을 까고, 껍데기에 붙은 더러운 찌꺼기를 깨끗이 씻어내는 일을 한다.
그리고 5녀인 엄지는 구더기쨩을 데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다.

[빨리 나와, 빨리!]

공장 담당의 하얀색 옷을 입은 닌겐들이 자실장들을 재촉한다.

[빨리 나가라, 이 벌레들아!]

갯벌 담당의 파란색 옷을 입은 닌겐들이 등 뒤에서 친실장들을 발로 찬다.
친실장들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자실장들과 작별한다.

[이 벌레놈들 꾸물거리는거 봐라. 오열 종대로 정렬하라!]

파란옷의 닌겐들이 무섭게 소리치자 실장석들은 뎃-뎃-거리며 줄을 맞춰 서려고 허둥거린다.
며칠 전만 해도 오열종대라고 해도 무슨 뜻인지 몰라하던 실장석들이지만, 실장석 머리통이 열 개쯤 박살나자 이젠 아주 능숙하게 줄을 맞춘다.
아직도 허둥대는 실장석들이 몇 있었지만, 주위에서 끌어당기고 밀어내서 겨우 5마리씩 길게 늘어설 수 있었다.
닌겐은 대충 그걸 보고 울타리의 문을 연다.


실장석들은 다섯마리씩 짝을 지어 앞으로 나간다. 앞에는 닌겐이 하나. 뒷편에는 또 다른 닌겐이 긴 장대를 들고 따라온다.
옆쪽에도 닌겐이 한 명 선다. 옆의 닌겐은 사나워보이는 개도 한 마리 데리고 있다. 뾰족한 귀에 날카로운 눈. 그리고 무시무시한 이빨을 수시로 드러내고 으르렁거린다.
탈주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데리고 다니는 이 개는 벌써 몇마리나 물어죽인 전적이 있다.
그나마 닌겐은 기다란 막대기로 한 방에 머리를 때려 죽이지만, 저 개라는 무시무시한 동물은 팔다리부터 물어 찢어버리고, 배를 뜯어 내장을 끄집어내고, 이리저리 몸뚱이를 굴리며 놀다가 죽이기때문에 실장석들은 닌겐보다 개를 더 무서워 했다.

[가는 동안에 잡담을 하거나 줄 밖으로 튀어나가거나 뒤쳐지거나 하는 놈이 있으면 바로 죽인다. 앞으로 갓!!]

선두의 닌겐이 출발한다.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양손은 겨드랑이에 끼운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한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쉴새없이 실장석의 얼굴을 때리고 옷을 파고든다.
실장석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들 몸을 최대한 움츠리고 조금이라도 바람을 덜 맞아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묵묵히 생각에 잠긴다. 하지만 실장석들의 생각이란 결국 거기서 거기이다.

(오늘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데스...)

(추운데스... 속은데스... 닌겐에게 속은 데스우...)

(점심은 언제 먹는데스우... 벌써 배가 꾸르륵거리는데스...)

(남겨둔 엄지쨩과 구더기쨩이 누구에게 잡혀먹히면 어떡하는데스... 데에에... 걱정되는데스우...)

실장석들은 한참을 걸어 드디어 갯벌로 나왔다.
햇빛은 이제야 겨우 고개를 내밀어 붉은빛을 눈앞의 벌판에다 비추기 시작한다.
진회색 벌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겨우 행렬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갯벌로 내려갈 수 있는 얕은 언덕이 있는 곳에서 정지했다.
남자들은 언덕 옆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를 열고 들어가서 불을 켠다. 이내 컨테이너 창문 밖으로 나온 굴뚝에서는 연기가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실장석의 눈앞으로 햇님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어 어두운 갯벌가를 환하게 비춘다.
늘 보는 광경이지만, 자연의 웅장한 모습에 실장석들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그 장엄한 광경을 쳐다본다.


하지만 친실장은 그런 광경을 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오면서 났던 땀이 차가운 바닷바람에 식으면서 체온을 빼앗아 간다. 안그래도 오한이 들었던 몸이 더욱 추워진다. 너무 추워서 아예 다리 부분에는 감각이 없다.
그리고 허리와 등, 목, 양쪽 팔까지 온몸이 마치 얻어맞기라도 한 것 처럼 뻐근하다. 이런 몸으로 과연 오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른 실장석들 역시 추위를 피하기 위해 뎃뎃거리면서 온몸을 주무르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차라리 빨리 일을 시켜달라고 하는 실장석도 있었다.
적어도 일을 하는 동안에는 몸을 움직이므로 춥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남자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따뜻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맛있게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리고 난로로 끓인 뜨거운 커피까지 한잔씩 마신 후 겨우 밖으로 나온다.

[호미랑 망태기 가지고 모두 입장. 일 시작해.]

갯벌에 들어가면 모두들 땅만 쳐다보고 걷는다. 며칠 일해본 경험 덕에 진흙이 두텁게 쌓인 곳을 파야 수확이 많다는 것을 깨달은 실장석들이었다.
실장석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차가운 갯벌에 엉덩이를 철퍼덕 붙이고 앉아 호미질을 시작한다.
친실장도 적당한 곳을 하나 찾아 주저앉는다. 차갑고 불쾌한 진흙의 감촉이 팬츠를 타고 엉덩이에 전해진다.

[데기.... 축축한데스....]

몇 번을 앉아도 이 감촉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일어서라는 말도 없는데 허리를 폈다가는 대번에 장대로 머리를 후려맞기 마련이다.
친실장은 눈물을 삼키면서 호미질을 하기 시작한다.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질척한 갯벌의 부드러운 살갗은 실장석의 작은 힘으로도 쉽게 뒤집을 수 있으며, 넓은 대자연의 갯벌은 어마어마한 수의 바지락과 조개, 게 등등의 생명을 품고 있었다.
거기다 바지락은 그다지 깊지 않은 곳에 몸을 파묻고 있기에 호미질 몇 번만 하면 쉽게 찾아낸다. 혹 눈썰미가 조금 있어 자그마한 조개의 숨구멍을 찾아낼 정도의 안목이 있다면 찾는 것은 더욱 쉬워진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을 몇백번, 몇천번 반복해야한다는 것이다.


실장석들은 뎃뎃거리며 호미질을 해서 바지락을 찾아내면 서툰 손놀림으로 망태기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다시 호미질을 해본다. 이번에는 더 깊이 들어가도 바지락이나 조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엉덩이를 땅에 붙인 채로 앞으로 조금 전진한다. 조금 멀리 가려면 엉금엉금 기어가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일어서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약간 앞으로 전진했으면 거기서 다시 갯벌을 파헤친다. 몇 번 파헤치다 보면 역시 또 조개가 보인다. 망태기에 집어넣는다. 조금 더 파본다. 다시 앞으로 전진한다......
실장석들은 이 단조로운 일을 아침 7시부터 12시까지 쉬지 않고 해야한다.


처음 한시간 동안은 추운 기운을 몰아내고자 모두 열심히 일을 한다.
다음 한시간은 추위가 조금 가시고 몸이 풀리며 약간 일에 활기가 인다.
하지만 세시간째부터는 기운이 빠지고, 배가 꺼지고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다음 한시간은 흘렀던 땀이 얼어붙으면서 온몸이 찌릿찌릿 따가워온다. 허억허억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며 손발이 부르르 떨린다.
마지막 한시간은 무른 갯벌도 제대로 파이지 않을 정도로 힘없이 호미를 휘두르는게 고작이다.
눈이 서서히 감기고 춥다는 느낌도 별로 들지 않는다. 이대로 죽는 것인데스... 할때 딱 맞게 사이렌이 울린다.

점심 시간을 알리는 신호다.
실장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서서 호미와 망태기를 챙겨 들어온 입구 쪽으로 향한다.
친실장도 서둘러 망태기와 호미를 들고 일행들을 따라 입구로 걸어간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몇몇 실장석이 엎어져있거나 배를 보이고 누워 있다.
얼어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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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은 컨테이너 박스 옆에 세워놓은 허름한 샌드위치 판넬 건물이다.
창문도 없이 사각형에 파란색 지붕만을 올린 단조로운 것으로 바닥도 대충 잘라놓은 합판을 이어붙였다.
그러나 이 허름한 식당에라도 들어가려면 작업량 검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다음... L-31호... 통과.]
[데스웃!]

[다음... L-32호... 좀 부족해보이는데... 좋아 통과.]
[데.. 데스우...]

입구에서는 남자들이 실장석이 가져온 망태기를 보고 양을 가늠한다.
만족할 만큼의 수확이 없으면 게으름을 부린 분충이라고 해서 두들겨 맞거나 급식이 제한된다.
열심히 해도 수확이 없을 수 있지만, 그런 핑계는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간혹 양을 부풀리려고 흙을 집어넣거나 돌을 넣는 실장석도 있지만, 검사하는 남자들 역시 바다에 탯줄을 묻고 살아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그런 보잘 것 없는 속임수는 단번에 발각되고, 속이려고 한 놈은 그대로 장대에 꿰뚫려 길가에 장식된다.

[다음... E-6호? 야이 멍청한 놈아! 너희 줄은 어디다 두고 여기로 오냐!!]

퍼억!!

[데기이이잇!!!]

남자의 노성과 함께 발차기가 실장석의 배에 작렬한다.
실장석 머리에 찍힌 화상자국에는 알파벳이 적혀 있고, 이 알파벳으로 실장석을 구분한다.
작업량 기록과 같은 업무에 있어서는 같은 알파벳끼리 모아 기록하는게 편하므로 실장석들에게도 여러번 일행과 함께 움직이라고 가르쳤는데, 아직도 제대로 못 하는 놈이 이렇게 나온다.
실장석이 문자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어느 정도의 실수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나, 여기선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다음... L-35호.... 음... 통과]
[데스우....]

친실장은 한숨을 내쉬고 식당 앞에 늘어선 줄에 가서 선다.
식당으로 타박타박 뛰어가면서 한무리의 실장석들이 두들겨 맞는 현장을 목격한다.
작업량을 채우지 못한 무리들이다.

짜악!! 짜아아악!!!


[데깃! 데갸아아악!!! 데아아악!! 죄송한데스우! 잘못한데스!!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짜악!! 짝! 짝!!!


[밥을 쳐먹고 일을 안 하면 그게 도둑놈이지 뭐냐! 이놈아!]

남자는 젖은 로프를 몇겹 말아서 그걸로 실장석을 후려친다.
한대만 맞아도 살점이 후드득 로프에 묻어나온다.
실장석은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손을 휘두르지만 손으로 막으면 손의 살점이, 등으로 피하면 등의 살점이 뚝뚝 떨어진다.

[데스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식당은 판넬로 좌우사방을 막아놨지만 바닥은 흙바닥이라 냉기가 그대로 올라온다.
갯벌에서 몇 시간이나 일하고 온 실장석들이 들이닥치자 갯벌의 진흙과 흙바닥의 흙들이 한데 엉겨붙어 식당은 온통 난리다.
하지만 밥그릇을 주는 곳은 실장석 하나가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좁은 곳이라 혼란의 와중에서도 질서는 유지된다.

이 식당을 담당하는 것은 아침에도 그랬듯이 인간이다. 배식을 담당하는 요리사와 식당에서 실장석들이 소란을 피우지 않도록 지켜보는 감시원으로 이루어진다.
요리사와 감시원은 당번제로 갯벌에 나오는 남자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당번은 아침에 갯벌로 나오면서 실장석들의 점심으로 쓸 실장푸드를 받아 가지고 온다.
시멘트포대처럼 거친 갈색 봉투에 담긴 이 실장푸드는 협동조합에서 만드는 20킬로그램에 999엔을 받는 '영양공급용 실장푸드'이다. 현존하는 실장푸드 중 가장 저렴한 제품인 이것은 톱밥으로 만들었다는 소문까지 도는 그야말로 국내 최저가의 실장푸드다. 그 어느 것도 이 제품보다 싼 것은 없다. 그런 만큼 맛이나 영양도 최저에 랭크되어 있다.
맛은 그야말로 무미(無味) 그 자체라서 먹어본 사람들이나 실장석들은 마치 흙을 그대로 씹는다는 것 같다. 어떤 들실장은 차라리 흙이 좀 더 맛있다고 할 지경이다.
거기다 영양은 맛보다 더 심각해서 며칠 굶다 우연히 이 푸드를 나눠주는 애호파를 만난 어느 들실장 그룹은 몇주 동안 이것만 먹다가 결국엔 영양실조로 굶어 죽었다더라는 소문도 인터넷에서 떠돌았다.


점심의 양은 20킬로그램짜리 포대로 2개이다. 보통이라면 거의 삼백 마리에 달하는 실장석들이 먹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양이지만, 여기서는 이걸로도 충분하다.
당번은 솥에 수돗물과 실장푸드를 넣고, 가공장에서 버린 해물찌꺼기 (빻은 조개껍데기, 너무 작거나 모양새가 좋지 않아 상품 가치가 없는 해물, 남아서 썩어버린 생선) 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나온 잔반 찌꺼기도 넣는다.
그리고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기만 하다가 죽이 다 끓으면 한 번 휘저은 다음 소금간을 한다. 물론 실장석들이 먹는 것에 진짜 소금을 넣기는 아까우니 바닷물이나 한 바가지 퍼서 넣으면 그만이다.
소금간이 끝날 때 쯤이면 오전작업 종료 사이렌이 울린다.


실장석들이 우르르 식당에 들어서서 떠주는 죽그릇을 받아들고 밥을 먹는 곳으로 간다. 말이 죽이지 사실 음식물 쓰레기를 물에 섞고 끓인 것이라 냄새가 지독하다.
제대로 해감조차 하지 않은 조개에서 흘러나온 내장의 냄새와 이미 썩은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 생선, 쉬어버린 잔반, 제대로 씻지 않아 풍기는 식기의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런 악취에다 실장푸드의 초록색이 물에 진하게 퍼져 마치 똥물을 연상시킨다. 어지간한 악식가인 실장석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을 정도의 지독한 냄새와 비쥬얼인 것이다.
물론 맛도. 처음에는 대다수의 실장석들이 입도 제대로 되지 못하고 버렸다. 그러다 이틀 째에는 반쯤 비웠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식당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붐빈다. 이곳은 아침의 식당과는 달리 식탁도 의자도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주저 앉아서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고, 대부분은 앉을 자리도 없어 선 채로 후루룩 들이마시고 있다.
친실장은 짧은 팔로 실장석들의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도 꽤 빨리 온 것 같다. 지금 앞에 서있는 줄을 보면 조금만 기다리면 자기 몫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장석들은 되도록 빨리 식사를 마치려 한다. 배가 고픈 것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빨리 밥을 먹으면 그만큼 쉴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금도 뒷편에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받기 위해 서둘러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가 자칫 잘못해서 넘어지면 뒤이어 달려오는 무리에 의해 다진 고기가 되어버리기 십상이지만, 그 누구도 자신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양 미친듯이 뛰어온다.

[다음! 다음!]

배식대에서 닌겐이 소리친다.
실장석들은 줄이라고 서긴 섰지만, 비뚤비뚤한 그 행렬은 엉성하기 짝이 없고, 질서란 것은 그 개념조차 가지지 못한 이들이기에 자칫 잘못하면 죽그릇을 받지도 못하고 앞으로 밀려버리기 일쑤이다.
물론 닌겐이 그런 일까지 이해해줄리가 없다. 그저 파도처럼 앞으로 밀리고 밀리고 다시 밀려 빈손으로 떠밀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간혹 눈치 없고 덩치 큰 이들은 그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려고도 한다.

[니, 닌겐상! 와타시 밥을 받지 못한데스!!]

[뭐라는거냐 이 똥벌레야!!]

퍼어억!!

닌겐은 줄을 거스르는 실장석은 그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머리나 얼굴을 들고있던 국자로 내려친다.

[데갸아악!!]

[다음! 다음!]

[데갸아아아아!!! 와타시의 밥은 어쩌는데스우우우우!!!!]

운좋게도 친실장은 줄에서 떠밀리지 않고 죽그릇 하나를 차지한다.

[다행인데스...]

하지만 죽그릇을 받았다고해서 끝이 아니다. 이젠 죽을 쏟지 않고 먹어야한다.
이리저리 떠밀리는 실장석의 홍수 속에서 죽그릇을 엎지 않고 모두 입안에 털어 넣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일단 자리가 중요하다. 친실장은 재빨리 눈알을 굴려 자리를 찾는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발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실장석들이 마구 들이닥치는 통로 근처에서 멍하니 서있다가는 바로 죽을 바닥에 엎어버리고 만다. 제대로 바닥조차 깔지 않은 이곳에 한 번 죽을 엎질렀다가는 금새 바닥에 스며들어 사라진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되도록이면 구석으로 가야한다. 친실장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빨리 도착했던 덕분에 벽쪽의 자리가 아직 비어있다. 아주 운이 좋은 날이다.


친실장은 흙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오전 내내 굽히고 있었던 허리를 처음으로 벽에 대고 쭉 펴본다.
드드득하는 뼈소리가 울린다.

[데에에에에... 시원한데스...]

몸을 감싸는 황홀감에 잠깐 부르르 떤다. 이제 밥을 먹을 시간이다.

실장석 따위에게 숟가락 같은 걸 줄 여유따위는 없다. 그냥 죽그릇에 입을 대고 마시듯이 먹어야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은 먹는 데만 온 신경을 집중해야한다.
죽그릇을 들고 휘휘 돌려서 밑에 가라앉은 건더기를 떠오르게 한 다음, 타이밍을 맞춰 국물과 함께 삼킨다. 지릿하고 비릿한 맛과 함께 미지근한 국물이 목을 넘어간다.
국물이 넘어가자 입안에 무언가 잘다란 것듯이 남는다. 그걸 천천히 혀로 굴려가며 맛본다. 둥그렇고 뭔가 뭉개진 것이 느껴진다. 이빨을 가져다대자마자 푸석하고 무너지며 텁텁한 맛이 난다.
이건 실장푸드. 앞니에 걸린 것을 씹으니 익숙한 비린내와 함께 약간은 달착지근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느껴진다.
바지락 살이었지만, 친실장은 이름까진 모른다. 가끔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맛이라는 정도밖에는 알 수 없다.
입을 오물거리며 건더기를 모두 씹어먹으면 다시 한 번 죽그릇을 들고 휘휘 돌린다. 양이 아까 전보다 줄어들어 있어 조금 시무룩해진다.


얼마 전부터 친실장은 첫날에 먹었던 콘페이토와 스테이크를 자주 생각하곤 했다.
콘페이토를 한주먹 그득히 쥐고 챱챱 씹는다. 스테이크도 몇 개나 한꺼번에 입속에 구겨넣는다. 두 개가 한데 섞여 기묘한 맛을 내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마구 먹었었다.
지금은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었다고 친실장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음식은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다. 먹을 때는 있는 힘을 다해 혓바닥과 입안에만 집중해서 그 맛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만 이런 똥물같은 죽도 조금이나마 맛있어진다. 아니 맛있어지는 기분이 든다.
아, 이번에는 운좋게 밥알갱이가 씹혔다.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그러나 아무리 온 신경을 집중하며 먹어도 죽그릇은 겨우 대여섯 모금에 그 바닥을 보인다.
아쉬운듯 데- 하고 중얼거린 친실장은 죽그릇을 입에다 대고 거꾸로 들어 팡팡 두드린다.
국물 몇방울과 함께 아직 남은 건더기가 후드득 떨어진다. 몇몇은 입안으로 들어갔지만 몇 개는 옷위에 떨어진다.
하지만 친실장은 조금도 거리낌없이 진흙 투성이의 옷 위에 떨어진 건더기도 합-합-하며 모두 빨아들인다.
다시 죽그릇을 보니 깨끗하다. 군데군데 얼룩진 초록색 물은 먹을 수 없을 것이다.

[데기.. 아직 배고픈데스..]

배를 슥슥 문질러보지만 할 수 없다.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먹은 것이 속에서 불어 조금 든든해질테니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식사는 끝났지만 실장석들은 식당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다. 난방 따위는 일절 없는 초라한 오두막이지만, 그래도 바람은 충실히 막아준다.
거기에 죽을 끓이느라 공기가 덥혀져 있는데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실장석들이 만들어내는 열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스르르 졸아버릴 정도로 따뜻하다.
덕분에 한겨울 바닷바람에 얼었던 몸이 풀리는 바람에 온몸이 나른해졌다. 이 따뜻한 식당에서 추운 데로 나가, 다시 온몸을 난도질하는 칼바람이 부는 갯벌로 들어가는 것은 죽기만큼이나 싫은 것이다.

삼백 마리나 되는 실장석들이 모여있지만, 실내는 조용하다. 전등 불빛이 없어 컴컴한 어둠 속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그 어둠 속에서 빨간 눈동자, 초록 눈동자만이 빛난다. 운좋게 벽에 기댈 수 있는 실장석들은 모두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몇몇 실장석들은 친해진 이들과 함께 데스데스하며 조용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잠깐 동안의 달콤한 휴식. 실장석들은 제발 이 시간이 지나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잠시 뒤 다시 작업을 재개하는 사이렌이 울린다.

[데엑! 와타시는 별로 쉬지도 못한데스!! 불공평한 데스우!!]

[데데데데... 또 밖에 나가야하는데스.. 괴로운데스우...]

[데스우....]

모두 데스데스 불평해보지만 어쩔 수 없다. 문에 가까이 앉았던 실장부터 하나씩 밖으로 나간다.
조금이라도 꾸물거렸다간 또 머리통이 날아갈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며칠동안 살아본 결과, 이곳에서는 일체의 변명이나 협상,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인간이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한다. 다쳤든, 힘이 없든, 무리라고 생각되든 어쨌든 거기에 따르지 않으면 무조건 죽는다.

처음에는 몇몇 실장석이 나서 반항도 해보고, 위협도 해보고, 때로는 아첨을, 좀 똑똑한 개체는 협상과 호소를 시도 해보기도 했으나 결과는 모두 다 똑같았다.
덕분에 실장석들은 인간의 말에 어떠한 반항도 하지 않게 되었다. 차라리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이 더 가망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바깥의 온도는 아침때보다 많이 올라가 있었다. 세차게 몰아치던 바람도 좀 누그러진 것 같다.
실장석들은 다시 호미와 망태기를 주워들고 갯벌로 들어간다.
다시 한 번 생존을 위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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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 해산물 본관 건물에서 오십미터 정도 떨어진 '수산물 임가공공장'
이 공장에서는 갯벌에서 채취해 온 해산물을 종류에 따라 가공해서 먹기 좋은 형태로 만드는 일을 자실장들에게 시키고 있다.
공장 안은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소리와 파쇄기가 굉음을 내는 소리가 가득히 메우고 있고, 기계와 장비 사이의 공간마다 자그마한 자실장들이 흰색 작업복을 입고 분주히 움직인다.

뽀각
달칵 달각달각 탁

뽀킷
달그락 달각 탁

뽀킷
달각 달각달각 탁

수백마리의 자실장들이 거대한 금속통 옆에 주저앉아 바지락을 까는데 열심이다.
바지락이 가득 든 노란색 플라스틱 상자는 스무 개가 넘는다. 이게 오늘 처리해야할 분량이다.

자실장이 하는 작업 자체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각각 하나씩 주어지는 대나무 조각은 한쪽에는 얇고 넓적한 주걱같은 모양이 조각되어 있고, 그 반대쪽에는 숟가락 같이 조금 날렵한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이 주걱같은 모양으로 바지락의 껍데기를 열고, 다시 그 반대쪽 숟가락 모양으로 바지락을 조심스럽게 떠서 각자의 가랑이 사이에 둔 투명한 플라스틱통에다 채운다.
이걸 다 채우면 감독관에게 가지고 가서 검사를 받고, 머리에 매직으로 1자를 써준다. 그러면 다시 빈 통을 받아 자리로 돌아온다.
이걸 아침에 열 번, 점심에 열 번. 최소 스무 번은 해야한다.


하지만 바지락을 까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살아있는 것들이라 입을 꽉 다물고 있어 주걱이 들어갈 틈조차 찾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리고 어찌어찌 열었다고 하더라도 잘못 힘조절을 하면 껍질이 깨지게 되고, 그러면 더더욱 열기가 힘들어진다.
온갖 악전고투 끝에 껍질을 열어보면 그 싸움 중간에 조갯살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서 플라스틱 통으로 들어가는 건 극소수다.
다시 한 번 해보려하지만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다. 사람도 숙련자가 아니면 어려운 일인데, 실장석의 그 둔한 손으로 한 결과는 따로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두들겨 패면 언젠가는 잘하게 된다는 것이 이 가공공장장의 모토였기에 오늘도 자실장은 죽지 않을 정도로 맞아가며, 가끔 맞다 죽기도 하면서 열심히 바지락을 까고 있었다.

[테챠! 테에에... 또 손이 베인테치이..]
[3녀쨩 괜찮은테치? 피가 많이 나는 테치이...]

[테에에엥... 아픈테치이.. 아픈테치...]
[쉿! 조용히하는테치! 또 맞는테치!]

[테에엥.. 테에에에엥... 피가 많이 나는 테치..]
[조용히하라고 말한테챠!!]

[시끄럽다 이 분충아!!]

짜아아악!!!

자실장 사이를 번뜩이며 돌아다니던 감독관이 뭐라고 떠드는 자실장의 머리통을 죽도로 갈긴다.
자실장 눈에는 불이 번쩍했지만, 어떻게든 머리통은 부숴지지 않았다.
다만 이빨을 꽉 깨물고 3녀를 향해 악에 받친 목소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3녀... 돌아갈때 각오하는테치..]
[테에에에에.....]

공장은 바지락만 까는 것이 아니다.

또 한무더기의 자실장들은 바지락을 까는 자실장들 사이를 누벼가며 내다버린 바지락 껍질을 주워모은다.
등에는 짚으로 엮은 망태기를 하나 메고, 연신 허리를 굽혀 껍질을 주워 뒤의 망태기에 넣는다.
어느 정도 모였다 싶으면 그걸 들고 분쇄기 쪽으로 간다. 역시 분쇄기를 담당하는 닌겐에게 분량을 검사 받고, 바지락 껍질을 분쇄기에 붓는다.
까직 꽈직 꽈직... 하는 듣기 거슬리는 소리가 분쇄기에서 들리면서 가져온 까만 바지락 껍질은 산산조각이 난다.


또 다른 한 무리는 바지락을 해감시키고 있다.
무릎까지 오는 소금물 사이를 누벼가며 다른 자실장들이 깐 바지락을 소금물을 채운 용기 바닥에 골고루 퍼지도록 이리저리 뿌린다.
앞의 일보다는 조금 쉬워보이지만, 소금물의 농도가 강하고 식초도 얼마간 들어있어 발이 타는 것 같다.
위생을 위해서 발끝까지 비닐 바지를 입히지만 그래도 따끔한 느낌은 가리지 않고 들어온다. 이렇게 해감 작업을 하는 자실장들은 다른 자실장과 확연히 구분된다.
비닐 바지를 벗고 나오면 다리가 무릎 아래로 새까맣게 타있기 때문이다. 이 새까만 때는 지워지지도 않는다.


어떤 일을 하든 절대 게으름은 부릴 수 없다.
이 공장에는 450마리 이상의 자실장을 감시하기 위해 8명의 감독관이 있다.
모두 실장석들에 대해선 베테랑이며 특히 이 가공작업을 하는 실장석을 감시하는 것은 최고이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는데도 잡담을 하는 자실장은 귀신같이 잡아내고, 기절한척 쓰러진 자실장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해내는 것도 단번에 해낸다.

그것을 다 알기에 자실장들은 각자의 일에 묵묵히 집중한다.

그런데 갑자기 자실장 한마리가 이성을 잃은 듯 괴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아!!!! 더이상 이런 일은 못하는테치!! 똥닌겐! 빨리 와타치를 여기서 내보내는 테챠아아아아!!!!!!]

바지락을 까고 있던 자실장 하나가 갑자기 미친듯 발광을 하며 입구쪽으로 달려나간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든 자실장들의 행동이 멈춘다. 바지락을 까고 있던 자실장들도, 껍질을 옮기던 자실장들도, 소금물에 바지락을 담그던 자실장들도 그 자실장을 쳐다보고 있다.

머리에 G-62호라는 화상자국이 있는 그 자실장은 들어온 입구를 뎃챠뎃챠 두드리며 괴성을 이어나간다.

[테치이이이이잇!!! 왜 안 열리는테치!!! 와타치는 이제 이런 일 못하는 테챠아아아아!!!!! 열어라테치이이!!!]

그 모습을 보고 라인에 서 있던 남자 하나가 천천히 걸어와 G-62호의 등뼈를 그대로 후려찼다.

[테챳!!]

단 한 방에 G-62호는 무력화되어 바닥에 널부러진다. 하지만 남자가 힘 조절을 충분히 한 탓에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자실장들은 친실장과 다르게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특별히 자실장을 아껴서가 아니라 자실장은 아직 죽음이란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있기 때문에 갯벌에서처럼 마구 죽이는 것만으로는 기강이 제대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옆의 동료의 머리가 터져 죽어나가면 친실장들은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이지만, 자실장들은 '치푸푸푸 저 놈은 분충이라 죽은테치★' 정도로 생각한다. 때문에 자실장들은 단순히 죽이는 것 이상의 고통을 보여주어야 한다.

남자는 발광하던 G-62호의 머리를 잡아 든 다음 왼손으로 양쪽 볼을 꽉 움켜쥔다. 세모꼴의 입이 앞으로 모이면서 안쪽의 꿈틀거리는 혓바닥과 누런 이빨이 보인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분홍색 펜치를 꺼내들더니 자실장의 누런 어금니를 겨냥하고 단번에 잡아 뽑았다.

뽀킷-!!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G-62호의 괴성이 창고 전체를 뒤흔든다.
작은 몸집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우렁찬 고성이다.

남자는 새끼손톱만한 누런 어금니를 아무렇게나 집어 던져 버리고 이번에는 귀이개를 꺼낸다. 원래는 은색이었을 스테인레스 재질의 기다란 귀이개는 기이하게도 녹색과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남자는 꺼내든 귀이개를 아직 피가 퐁퐁 솟아 오르는 G-62호의 어금니가 뽑힌 그 구멍에다 쑤셔넣었다.

꿈칫꿈칫...
드르륵...
드륵...

귀이개는 어금니를 뽑은 구멍의 살을 파헤치고, 이빨 밑에 자리한 치수와 신경관을 긁어내기 시작한다.
분홍색 잇몸에 둘러 쌓인 검붉은색의 실같은 신경조각이 귀이개에 의해 갈가리 찢겨진다. 통증 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고 지독하다는 치통. 그 치통의 근원이 되는 치아신경을 긁어내는 그 고통은 충치로 썩어들어간 이빨을 마취 없이 드릴로 파내려가는 것보다 몇십배는 더 강렬한 것이다.

[데깍! ....까깍......... 깍!....... 끄.....깍!.....]

G-62호는 눈을 허옇게 뒤집은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 심한 고통에 온몸의 근육은 팽팽하게 수축하여 폐속의 공기조차 밖으로 밀어내지 못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춍배설구 역시 수축되어 똥마저도 나오지 않는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온몸을 부들부들 경련하며 귀이개의 움직임에 따라 꿈틀거리는 것 뿐이다.

드르륵...
까칫까칫...
드륵....
꿈칫...

신경조각을 다 긁어낸 귀이개는 이제 거의 턱뼈까지 다다랐다.
뼈를 긁어대는 그 날카로운 소리에 주변의 자실장들은 전율한다.
마치 자신이 당하는냥 어깨를 움츠리고, 귀를 막고, 피눈물을 흘리며 모두 벌벌 떨고 있다. 아예 땅바닥에 배를 붙이고 엎드려 피눈물을 흘리는 놈들도 많다.
그 넓은 공장에서 들리던 모든 소음은 가라앉고, 드르륵거리는 끔찍한 소리와 갸냘프면서도 끊이지 않는 G-62호의 거친 숨소리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데....큭!!..... 데.........까칵......]

G-62호는 입만 뻐끔뻐끔한다. 너무나 심한 고통에 목구멍으로 공기조차 밀어내지 못해 폐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만 끔뻑끔뻑 나올 뿐이다.
얼굴은 너무 찌그러져서 커다란 눈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더러운 체액만이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다.

처음에는 버둥거리던 팔다리였지만, 지금은 팽팽하게 뒤로 당겨져서 부르르 경련만 일어나고 있다. 이미 G-62호에게 비명을 지르거나, 목소리를 내뱉거나, 앞을 보거나, 콧물을 들이마시거나, 눈물을 닦거나, 팔을 휘두르거나, 다리를 움직이거나 할 힘은 사라졌다.
체내의 모든 기능은 팽팽하게 당겨져서 노도와 같은 거대한 고통에게서 어떻게든 그 조그만 위석을 지키려하는데 총투입 되어 있는 것이다.

드르륵...
드륵...

마침내 거의 힘을 다한 G-62호의 눈이 풀리려고 한다. 그것을 예리하게 캐치한 남자는 그제서야 손을 놓고 귀이개를 빼낸다.
녹색과 적색으로 범벅이 된 귀이개를 G-62호의 옷에 대충 문질러 닦고, 펜치와 함께 다시 주머니에 찔러넣는다.
그리고는 아직도 움찔움찔하는 G-62호를 발로 밀어놓고, 뒤돌아보며 말한다.

[다시 일 시작해]

자실장들의 움직임은 5분 전보다 훨씬 빨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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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갯벌과 가공소, 본관 전체에 긴 사이렌이 울린다.
오늘 업무가 끝난 것을 알리는 신호이다.

사이렌을 듣는 모든 실장석은 웃음을 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어떻게든 오늘 하루는 살아난 것이다.

일과가 끝나면 각각의 작업장별로 다시 모여 인원점검을 하고 본관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기쁨의 복귀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공소와 같이 오늘의 할당량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 곳에서는 작업량을 모두 끝내지 못하면 기쁨의 사이렌은 곧 저주의 신호가 된다.
제때 퇴근하지 못한 감독관들이 그 분노를 게을러터진 실장석에게 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오늘은 가공소에서도 제때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


일과가 끝난 저녁은 그래도 실장석들이 한숨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살벌하던 아침과 낮때와는 달리 사람들도 빨리 퇴근할 생각에 실장석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들은 6시 이후가 더 바쁘다. 이때는 실장석들이 도저히 하지 못하는 업무를 처리해야하기 때문이다.

갯벌에서 실장석들이 캐온 해산물을 중에서 상품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고, 가공할 것은 다시 종류별로 나눠 내일 가공소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한다.
그리고 실장석 숙소를 감시하는 당직 근무자들도 서로 교대를 하기 바쁘다. 이때는 실장석보다 인간들이 할 일이 더 많은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무조건 실장석들을 몰아치는 것만으로는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저녁시간 이후는 규율을 어기거나 하지 않는 이상, 나름대로의 자유는 보장해준다.
인원점검이 끝나고, 저녁밥을 먹고나면 실장석들은 헤어졌던 자들, 마마를 다시 만나고, 자유시간 동안 놀거나 아니면 조금 더 일찍 단잠에 빠질 수도 있다.


오늘도 무사히 오후 할당량을 달성한 친실장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갯벌에서 본관으로 가는 복귀행렬에 오른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자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과 혹시라도 자들이 무슨 사고라도 당하지 않았는지 불안함이 동시에 떠오른다.
겨울이라 그런지 햇님은 이제 거의 다 사라져서 어둑어둑하다.
근처의 실장석들은 서로 데스데스하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친실장은 제발 아무 일 없이 집에서 자들을 만났으면 하는 생각 밖에 없었다.


갯벌에서 일하는 친실장들은 하나같이 모습이 처참하다.
질퍽한 진흙에서 일한 탓에 온 몸이 두 눈알을 빼고는 전부 진흙투성이다.
이대로 돌아다니기 할 수는 없기에 따로 목욕을 해야한다. 물론 온갖 해물찌꺼기에 뒤덮여 살아가는 자실장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샤워시설과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고, 씻는 곳은 언제나 바닷가의 한구석이다.
바닷물을 끌어올 수 있도록 파놓은 약간 깊은 도랑에 들어가서 차가운 겨울 바닷물로 온몸을 씻는다.
그 고통은 단순히 추위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찬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해변가에서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드는 행위만으로도 위석이 파킨하고 깨져버리는 실장석이 있을 정도다.
겨우 위석이 버텨냈다고해도 돌아오는 것은 온몸을 개미떼가 깨무는 듯한 따가움과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섬뜩함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진흙때를 벗기기 위해서 실장석들은 덱! 덱! 거리면서 온몸을 부빈다. 양손으로 손이 닿는 모든 곳을 쓱싹쓱싹 부비고, 어떤 놈들은 서로 껴안고 비비기도 한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빨리 진흙때를 벗기지 않으면 이대로 죽고만다.

[데갸아아아아아아~!!!! 데갸아아아아!!!]

[데데데데데!! 살려주는데스우우우!!! 데아아아악!!]

[분충은 비키는데스!! 빨리 올라가야하는데샤아아아!!! 비켜라데샤!!]

하지만 겨우 살아서 구덩이를 나와도 몸을 말려줄 수건 따위는 없다. 죽기 싫으면 식당까지 뛰어가야한다.
역시 이 과정에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아니면 너무 서두르다 넘어져 밟혀서 죽는 실장석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런 건 인간들에겐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저녁식사 역시 아침과 마찬가지로 진행된다.
두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는 자들과 같이 밥을 먹지 못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침식사보다 훨씬 질이 떨어지는 음식이란 것이다.
아침과 점심은 가끔 가다 좀 다른 음식이 나올 때도 있지만, 저녁은 항상 같은 메뉴였다. 점심때 먹인 실장푸드를 물에 끓여 갠 것이다. 아침과는 비교할 수도 없고, 그 악취나는 점심보다도 훨씬 묽다.
데데하게 풀어진 죽인지 맹물인지는 실장푸드 부스러기조차도 안 보인다. 그냥 녹색 똥물 그 자체다. 언젠가 화장실에서 똥을 누고 엉덩이를 낙엽으로 닦을 때 본 그 똥물과 다른 점이라곤 구린내 대신 다른 악취가 난다는 것 뿐이다.

이처럼 회사에서 주는 식사는 아침에서 점심, 저녁으로 갈 수록 점점 질이 나빠진다.
아침에는 제대로 먹이지 않으면 아무리 실장석이라고 해도 제대로 부려먹지 못한다. 점심 역시 어느 정도는 먹여야 한다.
하지만 저녁을 먹이지 않았다고해서 잠을 못 잘리는 없으니 저녁은 그야말로 생색내기 정도로만 준다. 점심때 들어갔던 다양한 음식물 쓰레기도 지금은 없다.


하지만 먹는다.
불평불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만, 허기진 지금은 이런 것이라도 먹어야 사는 것이다. 그래도 뜨끈할 때 먹으면 뱃속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한결 낫다.
아침과 점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허전한 배이지만, 그래도 아무 것도 못 먹는 것보다는 몇갑절 나은 것이다.


친실장은 반쯤 국물을 들이키고나서는 슬그머니 기지개를 펴는 척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일부러 조금 늦게 식당으로 들어온 탓에 테이블은 텅텅 비어있다. 자신과 열서너마리의 실장석이 전부다. 근처엔 인간도 없다.
그걸 확인한 친실장은 먹다 남은 죽그릇을 재빨리 아직 축축하게 젖은 옷속에다 감춘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잽싸게 식당 밖으로 빠져나간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눈치챈 닌겐이나 실장석은 없는 것 같다.
친실장은 서둘러 숙소 쪽으로 달려간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 어떻게 보면 오늘 한 모든 일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미 숙소 앞의 컨테이너 박스에는 긴 줄이 서있다.
오늘 일한 분의 급여를 받기 위해서이다.

급여는 물론 현금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실장석에게 진짜 돈을 줄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장난감 지폐라든가 먹이나 간식 따위를 직접적으로 줄 수도 없다. 100%의 확률로 실장석 간에 다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타바 해산물에서는 인간이 직접 관리하는 장부에 스티커를 붙여준다. 실장석들도 충분히 볼 수 있도록 커다란 게시판에다가 웃고있는 모양의 실장석이 그려져있는 큼지막한 초록색 스티커를 해당 실장석의 번호가 적혀있는 칸 옆에 붙여준다.
특별한 머리를 타고 나지 않고서야 10이상의 수는 세지 못하는 실장석이지만, 그래도 그게 많아졌는지 적어졌는지는 알 수 있다.
그렇게 하루 일하면 하나의 스티커가 해당 실장석의 번호 옆에 붙는다. 이렇게 붙은 스티커는 월말에 돈으로 바꿔 쓸 수 있다고 했다.


이미 도착한 같은 숙소를 쓰는 실장석들은 차례로 오늘 분량의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닌겐은 각 실장석의 머리에 적힌 알 수 없는 그림을 보고 무어라고 한다. 그리고 넓은 나무판자에 붙은 종이 어딘가에 스티커를 한장 붙인다.
그게 그 실장석이 일한 분량이라고 한다. 몇 개인지는 셀 수 없지만 꽤 많이 붙은 것 같다.

친실장도 오늘 일한 분량을 받기 위해 줄을 선다.




마지막 일과까지 마치고 이제 정말로 숙소로 들어간다.
숙소는 시끌벅적하다.
하루종일 일을 마치고 돌아온 친실장과 자실장이 상봉하여 엉엉 울음바다가 터지는가 하면, 친실장 또는 자실장 하나둘, 어쩔땐 전부가 돌아오지 못해 절규하는 실장석도 부지기수다.

첫날에만해도 곳곳이 울음바다라서 닌겐들까지 달려오곤했지만, 이제 그 정도까진 아니다.
가끔 슬픔에 못 이겨 발광하는 분충도 있긴하지만, 그럴때면 어떻게 알았는지 닌겐들이 귀신같이 달려와서 그 분충을 때려잡아 죽이거나 아님 반쯤만 죽이고 다른 곳으로 끌고간다.
친실장은 그런 실장석들을 헤치고 나가며 자신의 집을 찾는다.


집이라고 해봤자 다 떨어져가는 골판지를 나눠준 것이라 모두 비슷비슷해서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몇 번이나 찾아온 경험덕에 겨우 집을 찾고 다가간다.

[마마!! 마마아아아앗-!!!]

순간 무언가 묵직한 무게가 다리에 달라붙는다. 서둘러 내려다보니 3녀다. 뒤에는 장녀와 차녀, 4녀, 5녀까지 구더기를 안고 서있다.
오늘도 모두 무사한 날이다.
친실장은 모두를 껴안고 오로롱 오로로롱 데에에엥 울음을 터뜨린다.

[오늘 아주 무서운 일이 있었던테치! 닌겐이 이빨을 뽑고 아주아주 아픈 일을 한 테치!!]

[오네챠의 말이 맞는 테찌! 정말 무서웠던테찌!! 그 당한 녀석은 결국 일 끝날때까지 있다 죽어버린테찌!]

[비명도 지르지 못했던테치.. 이빨은 만져도 아프지 않은데 닌겐은 어떻게 한건지 모르겠는테치.]

[테챠! 와타치는 오늘 손을 아주 많이 베인테치이이!! 마마 만져주는테치!]

자실장은 각자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 친실장에게 하소연한다.
친실장도 그런 자실장이 대견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아파 한 마리씩 꼬옥 끌어안아준다.
그러면서 다시 한바탕 운다.

[자, 그것보다 엄지쨩과 구더기쨩도 밥먹는데스요]

친실장은 몰래 옷 속에 숨겨온 죽그릇을 꺼낸다. 이곳까지 오느라 조금 흘리긴해지만, 그래도 반은 남아있다.

[레치! 밥인 레치! 마마 고마운레치!! 와타치, 오늘 아침말고는 아무 것도 못먹었던레치..]

5녀가 기쁜듯이 죽그릇에 달라붙는다.
각자의 작업장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친실장과 자실장들과는 달리 숙소에 남아있는 엄지실장은 점심을 먹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친자실장이 모두 일하러 간 사이에도 닌겐의 감시는 계속되기에 자가 누군가에게 먹히거나 집을 습격당할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이곳에 온 뒤로 거의 모든 것이 고통이었지만, 조금 나아진 것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공원에서 살 때는 배고픈 실장석들이 집을 습격하지는 않을까, 혹 학대파 닌겐이 가족을 노리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여기선 그런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레에에에... 또 이것인레치... 이건 맛없는레치.. 운치가 같은 레츄우...]

신나게 죽그릇에 달려들었던 엄지실장이지만 오늘도 똑같은 묽은 녹색 죽인 것을 보고 실망에 찬 말을 내뱉는다.
그 말을 듣는 친실장은 순간 가슴 속에서 뭔가 욱하고 올라오는 기분을 느꼈다.

[뭐라는 것인테치!! 하루종일 집에서 놀고만 있던 놈이 밥투정을 하는 것인테치?!]

벽에 기대 다리를 토닥거리던 차녀가 5녀의 말을 들었는지 벌떡 일어나서 큰소리로 꾸짖는다.

[게다가 저건 마마가 먹을 걸 남겨온테치!! 하루종일 놀던 너따위는 저걸 먹을 자격이 없는테치!]

[레에에에... 차녀오네챠... 그게 아닌레치... 죄송한레츄... 잘못한레치이..]

최근 차녀는 5녀에게 조금 날카로워졌다.
5녀가 아직 약간 철이 없지만 그건 이전부터 그랬다.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날을 세우진 않았는데, 이곳에서 연일 힘든 일만 하다보니 성격이 조금 더 변한 것 같았다.
자신은 아침부터 밤까지 죽도록 일만 하는데, 5녀는 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말을 노골적으로 내뱉고 있었다.

[차녀쨩! 말이 심한테치! 그런 말은 하면 안되는테치!]

장녀가 차녀를 끌어당겨 다시 자리에 앉힌다.
그래도 항상 동생들을 사이좋게 만들려고하는 장녀다.
친실장 역시 한 마디 한다.

[장녀 말이 맞는데스. 자매끼리는 모두 사이좋게 지내야하는데스. 가족끼리 싸우면 안되는 데스우. 그래야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는데스.]

[지금 5녀쨩과 구더기쨩은 우리처럼 일은 하지 않지만, 자라면 도움이 되는데스. 너희들도 어려서 아무 것도 못할 때가 있었던 데스우]

[.........]

차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에 누워 엎드려버린다.
친실장도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고 5녀를 무릎에 앉히고 조금씩 죽을 입에 흘려넣어준다.

[레에에엥... 마마... 와타치가 잘못한레치.. 다시는 밥투정 하지 않는 레치...]

[괜찮은데스우.. 언젠가는 조금 더 나은 밥을 먹여주는데스. 조금만 참는데스우...]

친실장은 5녀에게 밥을 마저 먹이고 조금 남은 국물을 기울여서 구더기쨩에게도 빨아마시게 한다.
자다 깬 구더기쨩은 별 불만없이 꿀꺽꿀꺽 먹는다. 사실 구더기는 머리가 조금 모자라 자신의 똥조차 맛있게 먹는다고 한다.
음식에 대한 불평은 거의 없는 것이다.

[레에에.. 마마 상처가 많이 생긴레치... 많이 아플거같은레츄우...]

옆에서 구더기쨩이 먹도록 도와주던 5녀가 친실장의 손을 만지면서 말한다.
그 말에 문득 손을 보니 여기저기 긴 자상자국이 많다. 바지락을 캐면서, 호미질을 하면서 조금씩 베이고 찢어진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바쁘게 이일 저일을 하느라 돌볼 새가 없었다.

[마마는 너희들보다 훨씬 튼튼해서 걱정 없는 데스우! 걱정 마는 데스!]

살짝 움직여보니 쓰라렸지만, 그래도 친실장은 자들앞에서 허세를 부려본다.



식사를 마치고 친실장은 국그릇을 잘 숨겨놓는다.
사실 식사를 식당 밖으로 몰래 빼내는 것은 엄금하는 행위이다.
닌겐에게 걸리거나 한다면 설사 죽지는 않더라도 매를 맞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벌점을 받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실장처럼 집에 점심도 먹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있는 친실장에게 먹는 걸 가져가지 말라는 것은 너무나 심한 처사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언제나 이렇게 모험을 한다.
내일 몰래 그릇을 가져다 놓으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자, 이제 모두 자는데스. 이쪽으로 오는데스요]

친실장은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으로 가서 신문지를 잘 깐다. 자신의 몸 크기 정도로 맞추고 그 위에 옆으로 눕는다. 배를 벽쪽으로 하면서 누우면 벽과 자신 사이에 공간이 조금 생긴다. 그 사이에 장녀와 4녀가 쏙 들어간다. 그리고는 두 다리를 모아 자들에게 바람이 들이치지 않도록 아랫쪽도 막는다. 그 다음 때묻은 녹색 담요를 끌어당겨 자와 자신의 몸통을 덮으면 그만인 것이다. 5녀와 구더기쨩은 자신의 머리 옆에서 자도록 한다. 자신의 두건에 반쯤 파묻혀 자면 아주 따뜻하다.


밖은 아직도 잠들지 않은 실장석들이 오고가는 소리가 분주하다.
테치테치 데스데스 떠드는 소리도 곧잘 들린다.
하지만 그건 지금 이 가족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오늘도 힘들었던 하루가 끝난다.







당연한 말이지만 후타바 해산물은 기업이다.
실장석들을 괴롭히거나 학대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곳이다.
돈만 제대로 벌린다면야 실장석들을 모두 사육실장처럼 대우해도, 하루만에 모두 죽여버려도 아무 상관없지만, 가장 수익성이 좋은 방법은 최대한 실장석들을 길게 끌고 가는 것이다.


사업 초반에는 그야말로 하루에 몇백 마리씩 죽어나가도 다음날이면 또 그만큼의 실장석들이 실려 왔기에 죽을 때까지 부려먹고, 죽은 몸뚱이를 다른 놈들의 밥으로 주고, 또 잡아온 다른 놈들을 죽을 때까지 부려먹는 순환 구조가 가능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후타바 해산물같은 실장석을 써먹는 공장이 많아져버려 실장석이 무한정 공급되는 일은 없어졌다.
부족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예전과는 달리 다른 현까지 가야하는 일도 심심찮게 생기는 것이었다. 그
리고 작업에 숙련된 실장석을 계속 써먹는 것이 생산량 향상에도 좋다는 것도 축적된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후타바 해산물에서는 무작정 실장석들을 죽이는게 아니라 나름대로 실장석들의 복지에도 신경쓰고 있었다.
황소도 너무 부려먹으면 쓰러지는 법이다. 하물며 정신적으로 터무니 없을 만큼 허약한 실장석들이니 채찍으로 몰아붙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일단 휴일이란 것이 있어 한 달에 2~4회 정도 그 날 하루는 작업 없이 쉴 수 있게 해준다.
숙소 밖으로는 나갈 수 없지만, 하루 3끼가 모두 공급되고, 기상시간이나 다른 제약 사항이 없어 하루만큼은 마음껏 자고, 놀고, 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장석들의 치안, 특히 숙소에서의 치안에 많은 신경을 썼다.
실장석이란 생물은 혼자 놔두면 더없이 약한 생물이지만, 집단이 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유혈사태가 일어난다.

특유의 다른 생물체를 깔보는 본능과 수(數)만으로 힘의 우위를 판단하는 단순저열한 지능 때문에 모아두면 한시간이 멀다하고 패싸움이 일어난다. 이 싸움은 성체실장, 자실장을 가리지 않는다.
육체적 능력이 거의 없는 구더기 저실장만을 제외하고는 엄지실장끼리도 치고박고 싸우는 게 실장석이다. 때문에 실장석이란 생산수단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치안유지는 필수적인 것이다.


일단 숙소는 인간 관리자에 의해 24시간 감시된다.

주간은 물론, 야간에도 감시가 가능한 특수 카메라로 사각지대 없이 24시간 3교대로 근무를 선다. 거기에 집향기기까지 설치해서 일정 데시벨 이상의 소음이 발생하거나 실장석의 비명에 맞춰둔 주파수음이 들리게 되면 자동으로 경보가 울리는 특수장치까지 설치해두었다.
덕분에 혹여나 실장석간의 싸움 또는 살해, 강도 등의 사건이 벌어지면 즉시 경보가 울리고, 대기하고 있던 인간 경비원이 출동한다. 경비원은 상황실의 명령에 따라 일을 저지른 분충을 체포하는데, 이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로 죽이지는 않는다. 다른 실장석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준다는 의미로 적절한 시기에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의 공개처형은 그야말로 눈 뜨고는 볼 수 없으리만치 끔찍한 것이라 대부분의 실장석들은 공개처형만 서너번 보면 다시는 문제행위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


얼마 전에 있었던 동족식 사건이 그러했다.


동족식.
실장석이 다른 실장석을 잡아먹는 것이다.
사실 이 동족식은 들실장들 사이에서는 끔찍하긴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렇게 별스러운 일도 아니다.

먹이가 떨어진 일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똥을 먹거나 아니면 자식들, 자매들, 또 어떤 때는 모친을 잡아먹는 것 말고는 별로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의 들실장들은 자신의 똥보다는 동족의 고기를 선호한다. 그렇기에 동족을 먹는 것이 슬프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실장석도 많았다.



하지만 후타바 해산물에서는 이러한 동족식을 대단히 중대한 범죄로 취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의 입장에서 동족식이란 단순히 실장석이 실장석을 잡아먹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을 파괴하는 행위와도 같다.
또 동족식을 하는 실장석은 거기에서 절대로 그치지 않는다. 한 번 동족의 고기맛을 들인 실장석은 회사에서 주는 식사 ~쓰레기 죽과 꺼칠꺼칠한 실장푸드~에 절대로 만족하지 못하고, 마치 아귀가 음식을 탐하듯이 계속해서 실장석 고기를 찾아 헤매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불어 피해를 당한 실장석들은 겁을 먹어 전체 작업의 효율이 떨어지고, 남아있는 엄지실장이나 구더기들의 목숨도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여러모로 회사에 악영향을 끼치는 중범죄 중에서도 악질인 것이다.


저번 주에 체포된 B-92호 역시 그러했다.
B-92호는 처음에는 성실하게 일하던 들실장 출신의 사원이었다.
열심히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감독관의 몽둥이에 맞으면서 쉬지 않고 일해왔다.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두 마리의 자실장들과 엄지실장 하나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할당량을 못 채웠다는 이유로 갯벌에서 한쪽 다리가 잘리면서 며칠 동안 일을 나가지 못하고 쉬게 되면서 그녀의 생도 종말로 치닫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일을 나가지 않는 실장석에게는 식사가 주어지지 않는다.
운좋게 휴일 전날에 다쳤다면 휴일에는 모든 실장석에게 식사가 주어지므로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지만, 운나쁘게도 그녀가 다리를 잘린 날은 휴일 바로 다음날이었다.
처음에는 저녁을 굶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두 자실장덕분에 간신히 하루에 한끼는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니 회복은 느려지고, 다리가 없으니 일에 나갈 수 없어 굶게 된다. 자실장들도 처음에는 기꺼이 저녁을 굶고 실장푸드를 친실장에게 주었지만, 날이 갈 수록 그녀들도 지쳐갔다.

[테에에에... 마마... 오늘은 이상하게도 저녁밥을 받지 못한테치...]

[그, 그런테치. 우리도 못 먹은테치...]

[데, 데... 괘, 괜찮은데스... 내일은 꼭 좀 부탁하는데스우...]


[[하이 테츄!]]


그러나 그 다음날도, 다음다음날도 자실장들은 밥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B-92호는 엄지실장과 꼭 껴안고 하루하루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자실장들을 기다렸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자실장들은 항상 빈손이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에는 두 자실장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자실장이 걱정되어 한쪽뿐인 다리로 겨우겨우 감독관에게까지 기어가서 자식들의 행방을 물었는데, 뜻밖에도 자식들은 무사히 복귀했다는 것이었다. 다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소등시간이 다 될 때까지 자실장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B-92호는 자기가 자신의 딸들에게 버림받은 것을 알고 조용히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날 새벽 엄지실장이 굶어죽었고, 친실장은 흐르지도 않는 눈물을 쏟으며 엄지실장의 고기를 집어먹다 순찰을 돌던 경비원에게 발각되었다.



처형은 목요일 저녁, 제 4창고의 실장석들이 모두 숙소로 돌아온 뒤에 시작되었다.
그동안 본부 외곽의 영창에 가둬졌던 B-92호가 경비원 둘에게 들려왔다.
경비원들은 실장석들이 아침점호를 받는 현관 중앙에 B-92호를 내려놓고, 실장석들을 소리쳐 불러 모은다.

[B-92호는 동족을 잡아먹는 극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 이런 분충과 같은 행동은 후타바 해산물의 존속을 위협하는 아주 질이 나쁜 것이므로 사형에 처한다!]

[데프프프프프... 이런 지옥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나은데스... 데프프프프 고기도 먹은데다 죽여도 준다니 오히려 고마운데스 데프프프프프프프프]

실장석의 그런 태도를 보면 남자가 화를 낼 법도 한데, 오히려 남자의 얼굴에는 비웃는듯한 웃음이 걸려있었다.
뒤이어 나타난 다른 남자가 가져온 것은 하나의 굵은 기둥이었다.

뭔가 불길해보이기까지 하는 검붉은빛을 띤 그 기둥은 성체실장의 키의 2배에 달했으며, 굵기는 성체실장의 허리 반만했다. 특이하게도 제일 윗부분은 둥글게 깎여있었는데, 크기는 자실장의 머리통만했다. 겉에 칠해진 것은 대체 무엇인지 빛을 받아 섬뜩한 붉은 빛을 음산하게 뿌리고 있었다.


두 남자는 B-92호의 팬츠를 벗겨낸 다음 몸뚱이를 번쩍 들어 춍배설구를 윗쪽 둥근 공 부분에 올려놨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밧줄에 메달린 추를 2개 꺼낸 다음 그것을 B-92호의 양쪽발에다 달았다. 추는 겨우 어른 주먹만한 크기였기에 B-92호는 두 다리가 조금 바닥으로 당겨진다는 느낌만 받았을 뿐 별반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데풋! 죽인다고 하더니 뭐하는데스? 조금도 아프지 않은 뎃슨~♪]

B-92호는 이미 삶을 포기했다. 그런 만큼 마지막으로 이 증오스러운 인간들을 마음껏 조롱해주리라 마음 먹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결코 저주스러운 닌겐들에게 빌지 않으리라. 실컷 욕하고 비웃어주리라.
이것이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오기였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런 도발적인 말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기둥을 들어 창고의 입구 앞에 옮겨놓을 뿐이었다.
남자가 나가면서 마지막으로 말했다.

[모두 동족식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봐둬라.]

실장석들은 모두 눈만 끔뻑끔뻑하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분명 끔찍하게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기둥 위에 올려 놓고 가버렸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분충도 어리둥절하는 표정이다.

아무리 봐도 죽인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기둥 위에 둔다고해서 죽을 것 같지도 않다. 실장석들은 타박타박 기둥 주변을 돌아다녀보고, 기둥에 손을 대 만져보기도 했지만 특별한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독을 발라놓았을지도 모르는 데스...'하는 실장석도 있었지만, 기둥 위에 앉아 있는 분충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결국 기둥을 한참이나 살펴도 별 특이점을 찾지 못하자 '굶겨 죽일 모양인데스'라고 말한 누군가의 말에 동의하고 모두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실장석들은 자신들의 예상이 틀렸다고 깨달았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대부분이 잠에 빠져든 한밤중에 B-92호의 절규하는 목소리가 창고를 뒤흔들었다.
그 엄청난 괴성에 모두가 눈을 뜨고 기둥이 세워진 입구 쪽을 바라본다.
특별한 것은 없어보인다. 닌겐이 돌아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B-92호는 양 팔을 허우적거리며 고개를 미친듯이 흔들어대고 있었다.

[와타시의 춍구멍이!!!! 찢어지는...! 찢어지는 데스우우우우우우웃!!!!!!]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B-92호의 몸은 아까 전보다 조금 더 내려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내려간 높이만큼 기둥의 위에 있던 둥근 구(球)가 B-92호의 춍배설구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구는 춍배설구보다 훨씬 컸기에 그냥 들어가는게 아니라 B-92호의 살갗을 찢고, 내장을 밀어올리며 파고들고 있었다.

발버둥치며 몸을 빼내려고해봐도 양쪽 발에 메달린 추가 계속해서 B-92호를 당기고 있어 불가능하다. 끔찍하게도 추의 무게는 대단히 절묘하여 B-92호의 몸을 순식간에 끌어당기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파고들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거기다 양손을 자유롭게 풀어뒀기에 B-92호는 손으로 기둥을 밀어내면서 다리에 가해지는 무게에 저항할 수 있다. 자신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그 행위는 오히려 고통의 시간을 늘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찌직...

찍...

고기가 찢겨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기둥은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처음에는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팬츠가 없어서 둥그런 구슬이 그저 춍배설구에 맞닿아 있다는 기분은 들었지만,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다리에 메달린 추가 몸을 아래로 잡아당기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무겁지도 않았기에 팔로 기둥을 지탱하면 충분히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괜찮은 것이어서 죽인다고 했으면서 대체 무엇을 하는 건가, 닌겐은 이해할 수 없는 놈들이다.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상황은 B-92호의 팔힘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면서 악화일로로 치닫기 시작한 것이다.

뚜둑... 뚜두둑...

뿌둑!

[데쥬보오오오오오오오오!!!!! 뼈, 뼈가 부서지는데스으으으으으으읏!!!!!! 갸아아아아아아아악!!!!]

한 번 구멍이 넓혀지자 기둥은 점점 올라오는 속도가 빨라진다.

기둥은 이제 춍배설구를 뚫고, 다리 사이에 있는 골반뼈를 뭉그러뜨리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골반뼈는 뼈중에서 가장 두꺼운 것 중 하나라서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춍배설구가 찢어지면서 흘러나온 내장도 기둥 사이에 끼어 기둥을 밀어내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물론 B-92호의 입장에서는 고통을 더 길게 지속시키는 요인 밖에 되지 않겠지만.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데갸아아아아아아!!!!!!]

B-92호는 머리가 뽑힐 정도로 흔들어대며 피눈물과 콧물, 침을 토해낸다.
양팔을 바람개비처럼 흔들었다가, 기둥을 밀어내려고 해봤다가, 다시 머리를 팡팡치다가, 또 다시 허공에 휘젓는다.
다리를 허우적거려보기도 하지만 추의 무게 때문에 움찔움찔하는 것이 고작이다. 어떻게 묶어놨는지 다리가 끊어지지도 않는다.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똥닌겐 빨리 와타시를 죽이는데슷!!! 빨리 죽여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죽여주는데스!!! 제발 죽여주는 데스우우우우우우우!!!!]

기둥은 B-92호의 가슴뼈에서 걸려 더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뭉그러뜨린 내장과 그 안의 똥, 골반뼈, 가슴뼈 등등의 뼈조각과 살점 등이 가득 차 버린 것이다.
하지만 B-92호는 죽지 않는다.


그동안의 통계에 따르면 최소한 앞으로 두 시간은 더 기다려야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말투가 바뀌어 제발 죽음을 호소하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다.
지켜보는 실장석들도 조금이라도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높은 그곳까지 손이 닿을 리가 없는 것이다.

[데극!!! 데극!!! 가슴까지 올라왔는데 왜 안 죽는데스으으으으으으!!!!! 아픈 데샤아아아아!!!!!!]

[죽여주는데데데데데스우우우우우우우!!!!! 닌겐 와타시가 잘못한데스!! 제발 죽여주는데스아아아아아아!!!!!!!!]

[자아아아앙녀어어어어어!!!!! 차아아아아아녀어어어어어!!!! 죽어서도 원망해주는데샤아아아아!!!! 죽어서도 저주해주는데갸아아아아악!!!!!]

[데 갸!!!!!!!!!!!!!!!!!!!!!!!!!!!!!!!!!!!!!!! 데 쟈!!!!!!!!!!!!!!!! 아!!!!!!!!!!!!!!!!!!!!]


할 수 있는 건 오직 비명을 지르는 것밖에 없는 B-92호는 밤새도록 울었다.
나중에는 성대가 모두 파열되어 그륵그륵하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울어댔다.





그리고 새벽 두시.
마침내 B-92호에게도 평안이 깃든다.

[데? 너희들 돌아온데스? 마마가 기다린데스... 지금은 힘들지만... 내일도 살아가는데스! 언젠가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오는데스!]

마지막으로 B-92호가 본 광경은 언젠가 들에서 살 때,

칭얼대는 장녀는 자신의 옷을 잡고,
그보다 더 어린 차녀는 한 손에 들고,
집으로 가면서 열심히 살아가자고 다짐하던,
그 때의 모습이었다.







[데.... 이제 봄이 온 데스. 너희들도 마마가 되고, 마마도 너희들의 여동생들을 많이많이 낳는데스우... 데... 괜찮은데스. 장녀쨩... 차녀....쨩..... 데.....]

파킨!

인간의 엄중한 감시와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판결, 일벌백계의 엄벌주의.
이러한 방식으로 지켜지는 엄한 규율은 들실장 시절 공원에서 살던 아수라장과는 전혀 다른 환경을 만들어냈다.

들실장에게는 생소한 단어인 '안전'이 지켜진 것이다. 실장석들은 집에 남아있는 가족들 걱정을 하지 않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는 언제나 학대파 인간이나 동족들에게 자실장들을 잃지는 않을까 두려움에 떨면서 먹이를 구해야했던 지난 날보다는 분명히 좋아진 일이었다.

이외에도 후타바 해산물에서는 실장석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오늘따라 후타바 해산물. 정확히는 제4창고가 술렁거리고 있다.
바로 조만간 '월급'이란 것이 지불된다는 소문때문이었다.

식사와 일. 그리고 약간의 휴식만으로 이루어지는 단조로운 생활로 나날이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가던 실장석들에게 월급이 나온다는 소문은 오랫동안 활기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던 그들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주었다.
'돈'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실장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몇몇 원 사육실장들을 중심으로 돈에 대한 무궁무진한 소문이 널리 퍼졌다.

'무엇이든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물건'.

'콘페이토도 스테이크도 구할 수 있는 물건'.

'예전에 살던 공원의 생활로 돌아갈 수도. 아니 어쩌면 더 옛날에 있었던 사육실장의 생활을 되찾게 해줄지도 모르는 물건'

등등 온갖 행복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원 사육실장이 중심이 되어 나온 여러 정보에 실장석 특유의 행복회로를 통한 해석이 더해져 '월급'이란 것이 대체 어떤 것인지, '돈'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둘 이상만 모이면 이에 대해 서로 데스데스하며 떠들어댔다.

[돈이란걸 가지고 있으면 닌겐의 가게에서 쓸 수 있는데스! 공원의 바깥에 있던 그 닌겐의 밝은 집을 기억하는데스?]

[데에... 한밤중에 탁아를 하는 거기말인데스우?]

[그런데스. 그곳이 바로 가게라는 곳인데스우. 그곳에는 먹을 것이 말그대로 산처럼 쌓여있는데스!]

[데데데데... 와타시도 몰래 안을 몇 번 들여다 본 적이 있었던데스... 정말 그 안에는 온갖 먹거리가 와타시의 키보다 훨씬훨씬 높이 쌓여있었던 데스우우....]

[거기에서 나오는 닌겐들은 하나같이 좋은 냄새를 풍겼던데스! 먹을걸 항상 두둑히 들고나온데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간 동족들은 하나같이 모두 죽었던데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인간이 죽였던데샤!!]

[데푸푸푸... 그 분충들은 '돈'이란게 없어서 죽었던데스우. '돈'이란게 있으면 그 안의 물건을 정당하게 가질 수 있는데스!]

원 사육실장 출신인 J-21호의 말에 주변에 모여 이야기를 듣던 여러 들실장 출신의 실장석들이 헤연히 놀란다.
J-21호는 주변을 한 번 쓰윽 둘러보면서 실장석들의 얼빠진 표정과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쳐다보는 시선들을 충분히 즐긴 다음 다시 말을 이어 나간다.

[알겠는데스우? '돈'이라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데스!! 작은 종이조각, 작은 쇳조각처럼 생겼지만, 여기에는 굉장한 힘... 그러니까... 마법의 힘같은게 숨어있는데스우! 이 힘에는 닌겐들도 꼼짝못하는데스!]

박력이 넘치는 그 말에 주변 들실장들은 '마법인데스', '두려운 힘인데스' 하고 연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린다.

[이 '돈'이란 걸 가지면 우리들도 그 힘을 쓸 수 있는데스! 우리가 먹었던 컨페이토우나 스테이크도 이 '돈'으로 사는 것인데슷!]

[데에에에...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밝은 집'이 없는데스우...]

[데에 그런데스. 그런 집은 못 본 데스우... 와타시는 밤중에 오줌을 누러 갈 때 한 번 창밖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모두 새까맣던데스!]

실장석들은 다시 급격히 시무룩해진다.
하지만 J-21호는 여전히 의기양양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한껏 뽐내는듯한 자세로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말한다.

[와타시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이곳에도 그런 곳이 있다고하는데스!]

[[[[[데에에에에에?!]]]]]]

[어, 어디에 그런 곳이 있는데스?]

[데엑! 그런 곳은 어디에서도 못본 데스우!]

[데프프프프프... 와타시가 다른 창고의 실장석에게 들은 정보인데스. 그 녀석들은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와서 이미 '월급'이란 것도 받은 데스우.
그 녀석 중 하나가 말해준데스. 이곳에도 닌겐의 물건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는데스!!]

[[[[[데에에에에엑?!]]]]]]

J-21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실장석들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소란스레 데스데스 떠들어댄다.

'그럼 첫 날의 낙원을 다시 갈 수 있는데스?', '그 가게에는 무엇이 있는데스? 행복이란 것도 있는데스?' 하며 희망찬 이야기를 떠드는 이들. '그곳에는 어떻게 가는데스?', '어디에 숨겨져있는데스?'하며 J-21호에게 연신 질문을 던지는 이들. '월급이란건 언제 받는데스?', '당장 거기로 가고싶은데스!'하며 흥분하며 들썩이는 이들. 거기에 자기들끼리 거짓말이다! 아니다!로 갈려 언성을 높여 말싸움을 하는 패도 있다.

J-21호는 그런 실장석들을 한껏 고양된 자세로 바라보며 우월감을 느낀다.

[데푸푸푸푸푸... 그렇게 안달할 것 없는 데스우. 월급을 받는 날이 되면 닌겐들이 그곳에 데려다주는 데스우.
우리들은 아직 월급을 받지 못해 가지 못하지만, 다른 창고의 녀석들은 자유롭게 다니고 있다고 한 데스우]

[데에에... 가고 싶은 데스우우...]

[그 월급은 언제 주는 데스우?]

[가지고 싶은 건 모두 다 가질 수 있는데스우? 우리들 모두가 가지기에 충분한데스우?]

[데에에에... 공원에서처럼 빼앗길까봐 두려운데스... 이것도 닌겐들이 지켜주는데스?]

[와타시들뿐만 아니라 자들도 갈 수 있는데스?]

[먹을 것만 있는데스? 와타시는 저번에 맞으면서 두건이 찢어진데스우... 옷도 구할 수 있으면 바랄게 없는데스...]

다시 한 번 실장석들이 J-21호의 주변으로 몰려들어 마구 질문을 던진다. 사실 J-21호도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다른 창고의 실장석에게 몇마디 주워들은 것에 불과하지만, 거기에 자신만의 상상까지 마구 덧붙여서 신나게 떠들고 있다.
원 사육실장이던 당시에 듣고 배웠던 것까지 더해서 그럴듯하게 말하니 다른 실장석들은 그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소문은 실장석들의 입을 거치면서 점점 불어나서 나중에는 거의 무슨 상상 속에나 등장할법한 낙원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실장석들이 예전에 잃어버렸던 희망이라는 감정을 되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쟁과도 같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식사까지 끝나 집으로 돌아온 L-32호가 먼저 와서 자고 있던 자실장들을 깨운 다음 불러모은다.

[마마아... 와타치 피곤한테치... 무슨 이야기가 있는테치?]

[테츄우우... 오네챠 말이 맞는테치... 옛날 이야기는 이만 된 테치... 졸린테츄...]

[테츄... 테... 테츄...]

차녀와 3녀는 곤히 자던 단잠에서 깨어 얼굴이 부루퉁하다.
장녀와 4녀는 아예 테치- 테- 하며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하루종일 집에서 언니들과 마마만을 기다린 5녀인 엄지와 그 손에 들린 구더기만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데스우! 우리들도 이제 월급을 받는다고 하는 데슷!]

[테에에? 월급이라는게 뭐인테츄?]

친실장은 오늘 하루동안 주변의 동료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데스데스하며 열심히 설명한다. 월급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돈이란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몇 번이고 설명한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자실장들도 친실장의 말이 거듭될 수록 점점 눈이 크게 떠진다. 나중에는 차녀가 졸고 있던 장녀의 뺨을 텟찌텟찌하며 때려 깨우기까지 한다.
장녀 역시 설명을 듣고 입을 떠억 벌린다. 엄지 역시 믿을 수 없다는듯 입을 레에- 벌리고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테테테테테.... 그럼 그 월급은 언제 받는테치?]

[마마! 마마! 와타치 구두가 다 찢어진테치! 구두도 살 수 있는테치?]

[마마! 4녀의 구두는 나중에 사는테치! 일단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은테치!]

[마마!! 와타치는 오네챠와 마마와 함께 쉬고싶은레츄... 그 돈이라는 것으로 휴일도 살 수 있는레치?]

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친실장에게 연신 질문을 던진다.
흐뭇하게 그 모습을 보던 친실장은 가슴을 쭉 펴고 당당하게 말한다.

[바로 내일인데스! 내일은 휴일이고, 그때 와타치타치들은 월급을 받아 '가게'라는 곳에 가는 데스우!]

[테에에에엣?!]

[텟츙~★ 믿기지 않는테츄! 휴일에다 원하는 것도 가질 수 있다니 와타치 정말로 행복한텟츈~☆]

[와타찌도 그런 테찌! 너무 좋아 똥을 지릴 것 같은 테찌!]

[레에에에 정말 좋아레치♡ 마마와 오네챠랑 또 함께 놀 수 있는레치!]

친실장의 놀라운 말에 모두들 진심으로 기뻐한다.
특히 차녀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며 연신 테프프프하고 웃는다.
늘 조용한 4녀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방실방실거린다.

[그러니 오늘은 자면서 내일 무얼 살 건지 생각해두는뎃슨~☆]

[[[[[네, 테치!]]]]]

[자 모두 누워 자는데스]

친실장도 자들도 모두 자리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
자들은 옆의 자매들과 함께 테치테치 조용히 속삭이다가도 갑자기 테푸푸푸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조잘조잘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그걸 탓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어떤 때는 옆의 골판지 집에서도 비슷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뒤의 집에서도. 그 집의 옆집에서도 즐거운 대화소리와 웃음소리가 터져나온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다.
제4창고에서 정말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행복이란 감정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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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창고의 입구 반대편에는 어두운 회색빛 벽돌로 쌓여진 담이 있었다.
평소에는 갈 일도 없고, 그쪽으로 가봤자 막혀있기만 할뿐이라서 안 그래도 시간에 쫓겨 사는 실장석들이 그곳에 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다르다. 경비원이 벽에 난 철문을 열어주면서 앞으로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용해도 좋다고 한 것이다.

철문을 나와 삼십미터 가량 걸어가면 우측으로 꺾인 길이 나온다.
그 모퉁이를 돌면 처음 보는 벽돌집이 나온다. 크림색 벽돌로 세련되게 지어진 집은 화려한 장식의 붉은색 지붕과 더해져 더없이 우아해보인다.
낡아빠져 거의 허물어가는 자신들의 숙소나 이곳저곳 녹이 슬어 지저분하게 보이는 식당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정면의 입구에는 커다란 입간판이 있어 무엇이라고 글씨가 쓰여져 있었지만, 당연히 읽을 수 있는 실장석은 아무도 없다.
그걸 위해서인지 바로 옆의 다른 입간판에 형형색깔의 콘페이토와 붉은색의 스테이크 등의 그림을 그려놓았다.
실장석들은 비록 글은 모르지만 그 그림을 보고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곳이 바로 후타바 해산물의 명물. 실장석 매점인 것이다.


실장석 매점 앞에는 이미 먼저 온 다른 창고의 실장석들로 북적인다.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먼저 들어간 이들이 모두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지루함을 덜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낙원을 바로 앞에 두고 안달하는 것인지 실장석들은 하나같이 데스데스- 테치테치-하며 열심히 떠들고 있다. 옆의 동료끼리. 또 친실장이 데리고 온 자실장과 끊임없이 떠드는 것이다.

매점의 정문에는 어김없이 인간 경비원이 위엄있게 서서 감시하고 있기에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실장석은 없다. 경비원 역시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실장석들을 터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실장석들은 마음 놓고 서로 대화를 나눈다.
서로에게 무엇을 살지, 어떤 것은 생각보다 품질이 좋고, 어떤 것은 별로라느니, 무엇이 새로 나왔다는둥 떠들고 있다.
자실장들을 데리고 온 이들은 혹여나 앞뒤의 실장석들에게 자신의 자들이 밟힐까봐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도 한다.
자실장들도 들뜬 얼굴로 테츄테츄 떠들고, 이 순간만큼은 친실장도 기쁜듯이 데스데스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자, 다음 100마리 들어가라]

경비원의 말과 함께 실장석들이 차례대로 들어간다.

[데게액! 어느 분충이 새치기를 하는데스!!]

[밀지마는데스! 밀지마는데스! 여기서 넘어지면 만두속이 되어버리는데스우우우!!]

[마마 손을 놓지마는데스우!! 놓으면 절대 안 되는데스!]

또 한무리의 실장석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문 안으로 사라진다. 서로 먼저 들어가려다 밟혀 크게 다치거나 때로는 죽기도 하지만 누구 하나 상관하지 않는다.
경비원도 100마리라고 했지만, 일일히 수를 꼼꼼하게 세지는 않는다. 그저 대충 밀어넣고, 다 찼다 싶으면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자, 너희들도 이제부터 저 뒤에 가서 줄을 설 거야. 차례가 되면 안에 들여보내 준다.]

제4창고의 실장석들을 인솔해 온 직원이 그녀들을 보며 말한다.

[매점의 사용법은 아침에 알려줬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시 한 번 더 설명할게.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니 잘 들으라구.]

직원은 맨 앞의 실장석 하나를 번쩍 들더니 목덜미를 잡고 앞으로 내밀어보인다.

[자, 여기 보이는 너희들의 번호... 이 번호 밑에는 바코드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에 너희들의 월급이 기록되어 있어. 우리 사람들이 만든 기계로 여기를 갖다대면... 돈이 그만큼 빠져나가는거야.]

직원은 들고 있는 실장석의 이마 옆 부분에 새겨진 번호를 툭툭 두드린다.
둔한 실장석의 눈으로는 보기 힘들지만, 번호 밑에 미세한 줄이 여러겹으로 그어져 있다. 이것이 바코드인 것이다.

[그리고 역시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물건은 너희들이 가진 돈 만큼만 살 수 있어. 돈이 뭔지, 가격이란게 뭔지, 물건을 산다는게 뭔지... 이건 아침부터 수도 없이 설명해줬으니까 이젠 더 말 안 한다.]
[데에에에에....]

[또 들어가면 역시 규칙을 잘 지킬 것! 이건 말 안 해도 다 알겠지?]
[데데데데... 그런데스우....]

[응? 목소리가 작은데?]

[[[[[[[아, 알고있는 데스우우우!!!]]]]]]]

남자의 위협어린 목소리에 모두가 합창하듯 크게 외친다.

[좋아. 그럼 맨 앞줄부터 출발!]

실장석들의 월급은 각자가 하루의 일과를 끝날 때 받았던 게시판의 스티커를 합산한 다음, 모두 전산처리를 통해 해당 실장석의 바코드에 기록된다.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친실장이 있다면 자실장의 모든 월급은 해당 친실장에게로 간다. 하지만 친실장이 없다면 자실장들 중 대표에게 몰아주거나, 아니면 각 자실장마다 따로 받을 수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가족을 유지하는 경우고, 후자는 각 자실장끼리 독립을 하는 경우다. 어느 쪽이든 후타바 해산물에서는 상관하지 않는다.

조금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하지만 이렇게 한 덕분에 실장석들끼리 돈을 두고 다투는 일도, 돈을 잃어버려 허둥대는 일도 모두 없어지게 되었다.
그전에는 직접 장난감 돈을 주거나, 원하는 물건을 주문 받은 다음 배급해주기도 했는데, 모두 신통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바코드로 모든 것을 처리하면 여러 문제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실장석들이 보이지도 않는 돈을 두고 다툴 일도 없고, 돈을 잃어버릴 일도 없는 것이다.


제4창고의 실장석들은 이미 아침에 한 차례 월급에 대한 교육과 기초적인 경제지식을 배운 상태였다.
경제지식이라고 해봤자 돈이란 무엇인가, 가격이란 것은 무엇인가, 물건을 사는 과정, 매점의 이용방법, 월급의 지급방법, 월급이란 어떻게 관리되는가 등의 아주 기초적인 것이었지만, 대부분 들실장 출신이니만큼 이해시키는데 여러 어려움이 뒤따랐다.

몇 번이고 설명하고, 모형을 두고 설명하고, 똑똑한 실장석들을 통해 다시 설명하는 등의 노력을 거친 덕에 몇몇 구제할 도리가 없는 머저리들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의 실장석들이 기초적인 생활은 가능할 정도의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교육만으로는 의문이 모두 풀리지 않는다.
돈이 무엇인지, 어떻게 쓰는 것인지는 알았지만 자신이 가진 돈이 얼마나 되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아침의 교육에서는 한 달 동안 정기휴일을 제외하고는 빠짐없이 일한 성체실장은 5만엔, 자실장은 3만엔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1부터 100까지 세지도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실장석이니 만큼 5만엔, 3만엔이 대체 얼마나 큰 돈인지 가늠조차 못하는 것이다.

[데에... 5만엔이란게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인 데스우?]

[아주 많은데스! 와타시가 그 정도에 팔려왔던데슷!]

D-23호와 J-21호가 떠들고 있다. J-21호는 원 사육실장으로 꽤나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인간들과 오랜 시간을 살았기에 아는 것이 아주 많았다.
지금도 다른 실장석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5만엔이 얼마나 큰 돈인지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5만엔이란 만엔이 5개나 있는데스! 만엔 하나만 해도 콘페이토는 물론이고 초밥과 스테이크도 많이많이 살 수 있는데스!!]

주변이 모두 웅성웅성거리지만 D-23호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이다.

[데에... 5개가 있으면 5엔인데스... 왜 5만엔인 데스?]
[그러니까 아까전부터 말했던데스! 만엔이 5개니까 5만엔인 데스우!]

[데데데데... 5만엔은... 그러니까.... 만엔이 뭐인데스우....?]
[데갸아아아아!!! 아까부터 다 말해왔던데스!! 이제 그만하는데스! 내가 너같은 돌대가리는 처음 보는데스우우웃!!!]

[데걋! 말이 심한데스!! 그럼 너는 그렇게 잘나서 주인이 공원에 버렸냐데스!!!]
[데기이이이이이이!!!! 이 똥벌레가 아픈 곳을 찌르는데스우우우!!!]

곧 둘은 투닥거리며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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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줄도 점점 줄어들어 어느새 친실장과 자들이 들어갈 때가 다가왔다.
친실장은 두건을 벗어 목에다 묶고, 그 안에는 5녀인 엄지실장을 넣었다. 엄지실장은 막내 구더기쨩을 조심스럽게 들고 얌전히 두건 안에 앉아있다.
주변에는 장녀, 차녀, 3녀, 4녀가 혹여나 마마를 놓칠까 친실장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있다.
친실장부터 5녀 엄지쨩까지. 모두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다. 철없는 구더기만이 흔들흔들거리는 두건 속이 신기한듯 연신 레후- 하고 웃을 뿐이다.

[자, 다음 들어가라.]

드디어 문이 열린다.
친실장과 자실장들은 앞의 머리통을 따라 정신없이 걸어간다.
우중충한 날씨의 바깥보다 훨씬 밝은 실내로 들어가자 눈이 부신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흥분감때문일까. 숨이 거칠어진다.

강렬한 빛에 눈이 부셔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앞을 보니, 눈앞에는 낙원이 있었다.

[데... 데에에에에...]

처음 매점이라는 곳에 들어선 실장석들은 하나같이 벌린 입을 다물줄 모른다.
새하얀 대리석 타일과 역시 순백색의 천장. 눈이 내린 것 같이 뽀오얀 크림색의 벽면.
처음 보는 순백의 세계에 일단 한 번 기가 죽는다.

거기에다 눈앞에 펼쳐진 어마어마한 과자의 벽!
공원에 살던 시절에 닌겐 아이들이 들고다니며 먹던 과자봉지가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로 벽에 줄줄이 걸려있다.
그것도 빨간 것, 노란 것, 초록색, 파란색, 검은색 등등 형형색깔의 봉지로 포장되어 있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색깔뿐만 아니라 각각의 과자마다 그려져 있는 그림이 다르고, 포장된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침이 줄줄 흐를 것 같은 고기모양의 과자가 있는가하면, 이빨이 곧 썩어버릴 것 같이 달콤할 것 같은 과자도 있다.


성체실장의 키 다섯배는 족히 됨직한 과자의 벽 바로 옆에는 사탕의 벽이 늘어서 있다.
화려한 과자의 벽에 뒤질새라 온갖 멋진 모습으로 꾸며진 사탕, 캐러멜, 젤리, 엿, 누가, 콘페이토가 가득가득 진열되어 있다.
공원에서 보던 자실장 눈알만큼 자그마한 콘페이토만 있는게 아니라 친실장의 주먹만한 것도 있고, 막대가 달려 있는 이상한 모양의 콘페이토도 보인다.
어떤 것은 사탕처럼 생긴 모양에 길이는 무척 길어서 성체실장의 키만큼 긴 것도 있다.


그 옆으로도 음식의 벽은 끊이지 않는다.
처음 온 날 먹었던 스테이크와 원 사육실장이 '소세지인데스!'라고 하는 마치 마라의 고추처럼 생긴 수상한 고기가 걸려있다.
그 옆에는 과일이 싱싱한 모습 그대로 쌓여있다. 공원에서 보던 껍데기나 완전히 썩어버려 뭉개진 것이 아닌, 원상태 그대로인 것들이다.
그 옆에는 아이스크림, 그 옆에는 음료수, 우유... 믿기지 않는 광경의 연속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데덱! 위를 보는데스우!'하는 누군가의 비명같은 외침에 실장석들은 모두 고개를 젖혀 위를 본다.
그리고 똑같이 덱! 하는 멍청한 소리를 내뱉는다.

음식의 벽면 위에는 온갖 물건들이 줄지어 걸려있었다.
가끔 공원에 놀러왔던 사육실장들이 입고 있었던 핑크빛 옷부터 시작해서 핑크색 두건, 핑크빛 손가방의 3종 세트.
예쁜 모양의 손거울과 어깨에 맬 수 있는 핸드백은 초록색부터 시작해서 핑크색,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 흰색, 노란색까지 모두 갖춰져 있다.
그 밑으로는 리본과 머리띠가 역시 종류별, 색깔별로 꼼꼼히 나눠져 길게 늘어서 있다. 어떤 것은 손바닥만한 것, 어떤 것은 친실장 머리통만한 것도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색깔도 있다.

모두들 꿈에서조차 상상해본적 없는 그 압도적인 광경에 데데- 소리를 내며 천천히 물건 앞으로 다가간다.
자실장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듯 천천히 매점으로 다가간다.

[테칫? 만질 수 없는테치?]

마치 무언가에 홀린듯 핑크빛 옷을 잡으려던 4녀의 손이 무언가에 막힌다.

[테에? 와타치의 콘페이토... 만져지지 않는테치...]

콘페이토를 집으려던 차녀 역시 성공하지 못한다.

[마마... 무엇인가 막고 있는테츄!]
[데에... 무슨 소리인데스... 데엣?]

친실장은 자들의 말에 어리둥절하면서 손을 뻗어본다.
하지만 친실장의 손 역시 무언가에 막혀 닿지 않는다.
투명한 유리벽이 상품과 실장석들 사이에 놓여있는 것이다.

[데에???]

[어이어이 물건을 사려면 뭘 살지 말하라고.]

당황하는 실장석들 뒤에 경비원이 한심하다는듯 바라본다.

[너희들 설명할때 뭘 들은거야? 물건을 사려면 뭘 살건지 가리키고 말하라고. 그러면 저쪽 뒤에서 꺼내주니까. 중요한 상품을 너희들이 만지게 놔둘 리가 없잖아?]
[데..... 스우?]

[뭐야, 너? 물건 사는 방법 안 배운거야?]
[데, 데, 데.... 아닌데스! 아, 알고있는데스우!]

친실장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면서 유리벽에 붙어 테- 테치- 하고 있는 자들을 황급히 챙긴다.
아직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바둥거리는 아이들을 꼭 껴안고 어떻게든 경비원에게서 멀어지려고 서두른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목소리나 말투로 보아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이때 꾸물거렸다가는, 말대답을 했다가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솔직히 말했다가는, 문자 그대로 '목이 날아간다'는 것을 친실장은 그간의 경험으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ㅈ, 죄, 죄송한데스우! 자들에게 똑바로 알려주는데스우! 죄송, 죄송, 죄송한데스우...]

친실장은 아이들을 움켜안은 채로 몇 번이고 경비원에게 고개를 꾸벅꾸벅 숙인다.
거듭되는 사과가 통한 것인지 경비원은 친실장을 보고 갸웃거렸다가 다른 쪽으로 간다.
친실장의 기지가 자신의 목숨과 아이들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데퓨우... 어떻게든 산 데스우...]

[마마? 왜 그러는테치? 우리들도 빨리 아마아마한 것 잔뜩 사는테츄!]

[맞는테체! 왜 뒤로 물러난테치?]

자들은 방금 전까지 자신들에게 닥쳤던 위험을 느끼지도 못한 채, 친실장의 팔에 안겨 바둥거리고 있을 뿐이다.
식탐 많은 3녀는 말할 것도 없고, 늘 현명하고 눈치가 빠르던 장녀와 차녀도 테에... 하며 눈을 앞쪽에서 떼지 못한다.

[잠깐 기다리는데스. 물건을 사는 방법을 배우는데스]

친실장은 자들을 진정시키고 군중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서서 조심스럽게 다른 이들의 행동을 관찰한다.

대부분의 동족들의 반응은 자신과 다르지 않다. 눈앞에 산처럼 쌓인 음식을 보고 광분해서 달려든다.
성체실장이든 자실장이든 독라든 옷을 입고있는 실장이든 가리지 않고 미친듯이 유리벽을 콩콩 두드린다.
그리고 그러는 이들의 등판에는 예외없이 인간 경비원의 회초리가 날아들어 피와 살점을 튀긴다.

[떨어져라! 떨어져!! 떨어지란말이다!!]

[데쟈아아아아!!!]
[데즈우우우우!!! 데개! 데갹!!]
[테챠아아아아!! 아픈 테치이이이이!!! 마마아아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기서 쓰는 것은 갯벌에서 쓰는 무지막지한 몽둥이가 아니라 가느다란 회초리라서 맞아도 죽진 않는다.
죽지는 않고 허연 뼈가 보일 정도로 살점이 찢어지고, 재수없이 팔이나 다리에 맞으면 살점을 파고들어 힘줄을 끊어버릴 정도일 뿐이다.
머리나 목에 맞으면 죽겠지만, 경비원도 죽일 생각은 없는지 상대적으로 살점이 많은 등과 배를 주로 노린다.

이 폭풍같은 매질과 경비원의 고성, 위협에 질린 실장석들이 그제서야 몇몇 쓰러진 이들을 남겨두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다.
눈앞의 음식과 예쁜 옷이 탐나기는 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이 인간 앞에서 날뛰었다가는 반드시 죽는다.
이것을 지난 한 달 간의 생활로 실장석들은 성체실장이든 자실장이든 모두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까 전에 설명들은 '매점의 이용방법'은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인간에 대한 공포는 여기와서 위석에 새겨질 정도로 배웠다.
순식간에 군중들은 침묵을 되찾아 간다.

[아~ 이래서 처음 쓰는 것들은 이렇다니까! 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설명한다! 이러고도 못 하는 놈들은 정말 머리를 박살내버릴테니까 잘 들어!]

경비원이 짜증을 토해내며 다시 한 번 더 매점의 이용방법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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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의 설명.
오늘 들은 횟수로 따지면 열일곱번째 설명을 들은 실장석들은 그제서야 매점을 조금 제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물건 중 무엇을 살지 결정한 다음에 조그만 구멍이 나있는 창구(이 창구는 실장석 키에 맞춰져 있었다. 자실장이라도 이용할 수 있도록 자그마한 발판도 있는 것이다.)쪽으로 간다.
거기의 인간에게 어떤 물건을 몇 개나 살지 말한다.
그러면 인간이 해당 실장석의 번호를 전산조회해서 계산을 완료한다.
만약 물건값이 가지고 있는 돈보다 많으면 재빨리 무엇을 포기할지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 꾸물거려 시간을 초과한다면 다시 줄의 맨뒤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 제대로 결정도 하지 않고, 무작정 창구로 달려가는 분충은 엄한 벌을 받는다.
등이었다.


친실장은 조심스럽게 창구까지 이어진 줄의 중간쯤에 서서 다른 이들이 어떻게 물건을 사는지 꼼꼼히 지켜봤다.
아직 썩 만족스러울 정도로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배운 것 같다.
자들에게도 이미 무엇을 살 것인지 결정해두라고 귀띔해두었다.

가격이란 것을 전혀 몰라서 불안하기는 하지만, 가격은 창구의 인간에게 물으면 되는 것 같다.
창구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좌우로 몇개씩이나 있어서 질서를 지키고, 규칙을 지키는 한, 인간도 때리지는 않는 것을 보고 조금은 안심했다.

[테에에에~ 정말 많이 있는테치... 저기서 하나만 고르라니 너무나 어려운테치...]

[그런테치... 너무너무 많은텟츙♥ 그래도 하나만 골라야하는테치...]

[일단 좀 더 나은 밥을 먹는 테치! 그때 먹었던 아마아마한 콘페이토와 젯훈☆스러운 스테이크는 꼭 고르는테치!!]

[테에... 차녀오네챠 말이 맞는테찌... 테에에엥.. 와타찌는 이제 그런 냄새나는 국은 먹기 싫은테찌...]

[테엣! 저 가족은 실장푸드를 고른테치. 저건 색깔이 알록달록해서 정말 맛있을 거 같은테치... 이제 우리도 그럴 수 있는 테치!]

[테에에엥.. 좋은 테찌.. 좋은테찌이...]

장녀부터 4녀까지는 무엇을 골라야할지, 어떤 것을 선택해야할지, 누가 무엇을 살 것인지 서로 이야기하느라 아주 바쁘다.
한 아이가 어느 것을 고른다고 말하면, 그 즉시 다른 세 아이가 각기 반론을 내세우며 다른 것을 고르자고 한다.
그러면서 다시 논제는 처음으로 돌아와서 무엇을 살 것인지, 어떤 것이 더 좋을 것인지 열심히 서로에게 설명하고, 때로는 무엇이 더 나은가를 두고 의견이 갈려 옥신각신 다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험악한 기색은 없다.

서로에게 설명하는 것도, 반박하는 것도, 다투는 것도 너무나 즐거운 가운데 벌어지는 것이다.
친실장은 자들에게 무엇이든 꼭 하나씩만 먹을 것을 고르라고 했다.

자들 중에는 옷이나 리본같은 사치품을 가지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아직 무리다.
가격이 싸면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나은 음식과 추위를 피할 담요이다.
분홍빛 사육실장 옷이나 빨간색 구두, 노란색 파우치를 가지고 싶은 것은 친실장도 마찬가지이지만, 그것들이 밤의 추위를 막아주고 배를 든든히 채워주는 것은 아니다.

친실장은 오랫동안 공원에서 살아남은 베테랑답게 이 재화의 홍수에서도 무엇이 진정으로 필요한지 단번에 꿰뚫어 본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꼭 먹고 싶은 음식을 하나씩 사주고, 자신은 따뜻한 담요를 하나 산다.
저기 오른쪽 중간에서 조금 위에 걸린 저 하늘색 담요가 꼭 마음에 들었다.
귀여운 동물이 수놓여져있고, 크기도 자신과 여섯 아이가 전부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큼직하다.
거기에 좀 멀리 떨어진 여기서 봐도 털이 폭신폭신한게 아주 부드러울 것 같다.
친실장은 저 담요만 얻으면 자신은 먹을 것을 안 먹어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친실장 가족의 차례가 왔다.

[주문은?]

[데기.... 저... 이 콘페이토는 얼마인데스?]

[5천엔.]

[데... 몇 개나 들어있는데스우?]

[당연히 한 알에 5천엔이지.]

[데에... 와타시의 가족은 7마리이니... 데, 데에에엣?]

친실장은 조금 느리긴 하지만 셈은 할 수 있었다.
열심히 머리를 감싸안아가며 계산을 해보니 콘페이토 한 알에 5천엔이라면 가족 7마리가 먹으려면 3만 5천엔이 있어야한다. 자실장 하나가 한 달 동안 뼈가 부서지라 일해도 못 버는 돈이다.
구더기를 빼고 6마리로 계산해도 3만엔. 아이 하나가 한 달 내내 번 돈과 맞먹는다.

[비, 비싼데스우... 그럼 저기 실장푸드는 얼마인데스?]

[7천엔. 한 알에.]

[데데데데데.....]

친실장은 부들부들 떨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잠시 전에 창구에 가까워지면서 알게 된 것인데, 창구에 서서 계산하는 실장석들이 하나같이 '뎃!', '데액!'하는 비명을 지르는 광경을 보았다.
처음에는 기쁨에 못 이겨서 탄성을 지르는 건가 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모양이다.

[데, 데, 데데데데데데... 그, 그럼 저 하늘색 담요는 얼마인.......데스우?]

[50만엔.]

[.......덱? 그게 얼마라는 것인데스?]

[네가 가진 돈의 3배.]

[.....데.... 3배가 뭐인데스]

[그냥 돌아가. 너는 돈이 모자라. 아주 많이 모자라.]

이제 친실장에게 흐르는 땀은 거의 비처럼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얼굴도 파랗게 질려있다.


실장석들은 거의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없었다.

사육실장용 옷이 새끼실장용이 100만엔, 성체실장용은 200만엔이다. 리본과 앞치마는 각각 50만엔, 80만엔이라는 가격이 붙어있다.
스테이크는 10만엔, 초밥이 30만엔, 햄버거는 20만엔, 아이스크림은 15만엔을 받았다.
쉴 수 있는 권리. 휴가도 돈을 받고 팔았는데, 가족 전체 1일 휴식권은 5만엔이고, 1마리 1일 휴식권은 3만엔을 받았다.
늦잠을 자고 오후 작업만 하는 아침작업 면제권은 조금 싸서 1만엔을 받았지만, 이건 가족 단위가 아니라 무조건 1마리가 1개씩 구입해야했다.

장난감의 경우에는 자실장용 미끄럼틀이 100만엔이고, 자실장용 조립완구세트는 80만엔, 그림 그리기 세트는 50만엔을 받았다.
조금 싼 것으로는 탁구공 하나가 3만엔, 공기놀이세트 2만엔, 배드민턴 셔틀콕이 1만엔, 고무공은 5만엔이 준비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실장석들은 콘페이토 1알(5000엔), 중급실장푸드 1알(7000엔), 고급실장푸드 1알(15000엔), 실장주 요구르트 병 크기(10000엔) 중에서 한두개를 골라 가지는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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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친실장과 자들은 콘페이토 다섯개와 담요 한 장만을 사들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담요는 물론 하늘색의 그것이 아니라 골판지처럼 꺼끌꺼끌하고, 가시 같이 뾰족한 인조섬유조각이 곳곳에 튀어나와있는 저질합성섬유로 된 것이다.
그것도 하나를 다 주는 것이 아니라 반을 찢어서 판매하고 있었다. 이정도 크기라면 자들은 어떻게든 덮을 수 있어도 자신은 못 덮는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15만엔.
거기에 콘페이토 다섯 개를 더하면 18만엔. 1만엔 초과이지만, 사정사정을 한 끝에 다음달 월급에서 공제하기로 하고 겨우 받아나올 수 있었다.

창구의 인간이 뭐라뭐라 설명해줬지만, 친실장이 모르고 있는 것은 다음 달에 갚는 금액은 1만엔이 아니라 5만엔이라는 것이다.
빚은 무조건 다섯 배 상환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후타바 해산물의 기본 원칙이기때문에 어쩔 수 없다.
즉, 친실장은 다음달 월급은 자동으로 0엔이 된 것이다.
물론 그것도 한 달을 꼬박 다 채운 경우에 한해서지만.


자실장들은 천국까지 올라갔다 바닥으로 추락한 기분때문인지 뭐라고 불평할 힘도 잃어버린채 묵묵히 걸었다.
친실장도 처참하리만치 비참한 현실에 입을 꾹 다문채 터덜터덜 걸었다.
엄지 역시 분위기를 읽은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철없는 구더기만이 레후- 레후- 하며 흔들리는 두건 속에서 기뻐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 모두 모이는데스~ 오늘은 달콤달콤한 콘페이토를 먹는 뎃승~♬]

친실장은 우울함을 날려버리려는듯 일부러 과장되게 신난 목소리로 자들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자들은 울먹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 골판지 상자의 한구석으로 왔다.

[이것들은 너희들이 노력해서 얻은 것인데스우~ 그러니 많이 먹는데스]

친실장은 콘페이토 꾸러미에서 한 알씩 꺼내 자들에게 안긴다.
자들은 시무룩한 얼굴로 콘페이토를 받아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4녀가 이따금씩 할짝거릴뿐, 장녀와 차녀, 3녀는 콘페이토를 테- 하고 바라본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친실장은 그런 자들을 보고 가슴 한구석이 차가운 무언가에 쿡쿡 찔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나 열심히 일했는데,
햇님도 뜨지 않은 새벽에 나가서 깜깜한 밤에 돌아오는 생활을 매일 했는데,
닌겐에게 맞아가며 비참한 대우를 당해가며 살아왔는데,
얻은 것은 겨우 콘페이토 한 알 뿐이다.


여기 온 처음의 그런 낙원을 기대했는데,
다시 한 번 맛난 음식을,
아니 그렇게나 맛있지 않아도 괜찮다.
무엇이 됐든 그저 배불리 먹었으면 할 뿐이었는데,
그것조차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이다.


친실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 한 알 남은 콘페이토를 꺼내 만지작거린다.
노란색의 콘페이토.
보기만해도 달콤달콤한 맛이 전해져오는 것 같아 데- 하고 침이 주르륵 흐른다.

[데... 맛있어보이는데수...]

친실장은 멍하니 콘페이토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그때 발밑에서 빤히 쳐다보는 엄지와 눈이 마주친다.
엄지 역시 멍하니 그 콘페이토를 쳐다보고 있었다.
늘 레후- 레후-하며 굴러다니는 구더기도 고개를 빳빳히 들고 멍하니 노란 광채에 빨려갈듯 쳐다보고 있다.


엄지는 친실장과 눈이 마주치자 핫! 하더니 이내 고개를 돌린다.
엄지의 뺨은 부끄러운듯 빨갛게 물들어 있다.

[데에... 엄지쨩 먹고 싶은데스우?]

[레, 레칫! 아닌레치! 와타치는 괜찮은레치...]

[아닌레후! 구더기는 먹고싶은레후! 달콤달콤할 것 같은 렛훈~☆]

엄지는 손을 붕붕 흔들며 거부하지만, 구더기는 꼬리를 빼타빼타거리며 즐겁게 웃는다.

[레! 구더기쨩 그러면 안되는레치! 이건 마마와 오네챠들이 일을 하고 받은 것인레치! 우리는 먹으면 안되는레치...]

[구더기는 그런거 모르는레후! 구더기도 달콤달콤 받고 싶은레후!!]

[레치! 구더기쨩 고집부리면 나쁜레치! 이리오는레치! 오네챠가 프니프니해주는레치]

[프니프니는 나중인레후! 지금은...]

엄지는 고집부리는 구더기를 들고 구석으로 데려간다.
친실장은 구석에서 구더기를 달래려고 애쓰고있는 엄지의 뒷덜미를 잡아 번쩍 들어 손위에 놓는다.
그리고 당황하는 엄지에게 마지막 남은 콘페이토를 내민다.

[레에에에... 마마... 와타치는 괜찮은레치... 마마가 먹는레치...]

친실장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엄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다.

[너는 좋은 자인데스우. 구더기쨩과 나누어먹는데스]

[레, 레츄?! 그래도.... 마마가 먹었으면 좋은레치....]

[마마는 괜찮은데스. 엄지쨩이 먹는데스]

[레... 마마 정말 고마운레칫!!]

엄지는 눈물 젖은 눈으로 콘페이토를 꼭 끌어안고 친실장을 바라본다.
친실장은 그런 엄지를 꼭 안아준 다음 다시 바닥에 내려놓는다.
바닥에 이르자마자 엄지는 레츄♪- 하며 구더기에게로 뛰어간다.


그때 고성이 울려퍼진다.

[뭐하는테치! 너따위가 왜 콘페이토를 먹는테치!!]

갑작스러운 고함에 친실장도 엄지도 깜짝 놀라 돌아본다.
차녀가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채, 씩씩거리며 서있다.

[데, 데스우? 차녀쨩 무슨 소리인데스?]

[무슨 소리가 아닌테체! 저 콘페이토는 와타치와 오네챠, 3녀쨩, 4녀쨩 그리고 마마가 일을 해서 받은 돈으로 산 것인테치!! 저 놈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주는 건 말도 안되는 테챠아아아!!!]

차녀는 분노에 몸까지 부르르 떨어가며 엄지를 가리킨다.
엄지는 당황해서 연신 차녀와 들고있는 콘페이토, 친실장을 번갈아 돌아본다.
몸이 벌벌 떨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빵콘도 할 것 같지만 필사적으로 참는다.

[차녀! 그게 무슨 말버릇인데스우!! 마마가 같은 자매끼리 사이좋게 지내야한다고 말하지 않은데스?!]

친실장은 조금 욱하는 성격이 있긴하지만, 지금까지 동생을 잘 돌봤던 차녀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다.
그러면서 늘 자들에게 가르쳐왔던 자매와의 우애를 상기시키려고 한다.

[엄지쨩은 아직 어려서 일을 못하는데스! 공원에서 살 때를 기억하는데스우? 그때 마마가 너희들이 집에서 가만히 있었다고 밥을 주지 않았던 적이 있는데스?]

[...........]

[우리는 가족인데스우. 지금은 엄지쨩이 어려서 돕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도움이되는데스!]

친실장의 논리정연한 말에 차녀는 씩씩거리기만 할 뿐, 뭐라고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한다.
하지만 납득 역시 할 수 없다는듯 다시 소리지른다.

[하지만 와타치는 인정할 수 없는테체!! 그렇게 힘든 일을 한 테치!! 맞아가며 차여가며 일을 한 테치!! 하지만 저 놈은 우리가 일할 때 집에서 편하게 자고 있었던테챠아아아!!!]

[왜 와타치가 받은 '돈'으로 저 녀석이 먹을 콘페이토를 사는테치? 왜 우리들이 먹을 저녁을 남겨 저 녀석을 먹여야하는테치?]

[데에.......]

친실장은 눈이 빨개진 채 울먹거리기까지하며 항의하는 차녀를 보고 할 말을 잃는다.
자매이니까. 가족이니까.
그러니까 도와가며 사는 것인데, 왜 그래야하냐니.
친실장으로서는 같은 말만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가족이기 때문인데스우!! 차녀! 갑자기 왜 이런 짓을....]

[오네챠 말이 맞는테치]

친실장의 말은 중간에 끊긴다.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니 구석에 앉아있던 3녀와 4녀 그리고 장녀가 차녀 옆에 서있다.
3녀는 한발짝 앞으로 나와 친실장에게 말한다.

[와타치도, 그리고 와타치타치들도 차녀 오네챠의 생각과 같은테치! 우리들이 일해서 받은 것을 왜 엄지에게 주는테치?]

[그런테치! 우리들이 힘들여 일한 몫으로 받은 것인테치! 엄지는 우리가 나갈때 항상 늦잠만 잔 테치!!]

늘 조용하던 4녀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주먹을 꼭 쥐고 야무지게 말한다.
친실장은 갑작스런 자들의 말에 데- 데- 당황한다.
그러면서 항상 동생을 아끼고 가족을 생각하는 장녀 쪽을 쳐다본다.
친실장의 시선을 받은 장녀는 고개를 옆쪽으로 돌리며 나직하게 말한다.

[....와타치도 동생쨩들과 같은 생각인테치]

[데에!!]

가장 믿었던 장녀의 그런 말에 친실장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린다.
엄지는 이미 눈물 범벅이 되어 빵콘으로 부풀어 오른 팬티 위에 앉아있은지 오래다.
끈적끈적한 피눈물로 온몸을 더럽히며 몸을 부들부들 떤다.

[데... 데.... 무슨 말인데스... 우리들은 가족인데스... 가족은 도와야하는...]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들의 밥을 나눠준테치!! 그걸로 충분테치!]

[맞는테치! 매일 놀고 자는 주제에 콘페이토까지 탐하다니 매우 분충테치!]

[우리들은 잠도 제대로 못자고 맞아가며 일할때 저 분충은 집에서 구더기와 놀고만 있던테체아!!!]

대화는 이미 불가능하다.
친실장은 자들의 항거에 답할 말을 찾지 못한채 데데 거릴 뿐이고, 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락바락 대들고 있었다.
다만 장녀만이 아직 부끄러움을 느끼는듯 고개를 슬며시 옆으로 돌리고 가만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장녀 혼자만이 침묵을 지킨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레, 레에... 레... 레류.... 오, 오네챠... 와타치 안 먹어도 되는레치... 콘페이토 여기 있는레치...]

엄지는 부들부들 떨면서 손에 쥐고 있던 노란 콘페이토를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는다.
빵콘으로 잔뜩 부풀어 오른 팬티 위에 앉아 있어 거동도 어려웠지만, 최소한 조심스럽게 몸을 기울여 되도록 깨끗한 곳에 콘페이토를 놓아둔다. 이미 온몸은 대변과 끈적끈적한 빨간색, 초록색 눈물로 범벅이 되어 더러워져 있다.
콘페이토를 조르던 구더기도 갑자기 돌변한 언니들의 기세에 눌려 몸을 동그랗게 말고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다. 그 정도로 자매들의 항의는 무서웠다.

[당연한 말인테체!!]

차녀는 빼앗듯이 바닥에 놓인 콘페이토를 채어간다. 그리고는 종종걸음으로 뛰어 친실장에게 간다.

[마마 여기 있는테치~ 와타치가 도로 빼앗아 온 테치이~ 마마가 먹었으면 좋은테치~]

차녀는 언제 그랬냐는듯 얼굴을 밝게 빛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테치~ 마마가 먹어야하는테치~☆ 분충한테 주는 건 말도 안 되는테츙~★]

옆에서 3녀도 차녀를 거든다.
친실장은 데- 하는 멍청한 소리만 중얼거리며 손을 뻗어 콘페이토를 받아든다. 하지만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일을 이해하기 위해 최대한으로 머리를 굴려보지만, 만족스러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친실장은 계속해서 콘페이토와 엄지, 장녀부터 4녀를 번갈아 보고만 있다. 그래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데, 데에에에... 우리들은 가족... 가족인데스...]



새로 산 담요는 따뜻했다.

정말 부드럽고 포근포근해보이던 하늘색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어제까지만해도 낡고 빛바랜 신문지를 덮고 자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합성섬유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가져다가 담요랍시고 판 것이어서 촉감은 나무껍질처럼 꺼칠꺼칠했고 곳곳에 튀어나온 뾰족한 끄트머리가 살갗을 쿡쿡 찔렀지만, 그 대신 엄청나게 두터웠다.
덕분에 그동안 따뜻함이라고는 찰싹 달라붙어 자는 자매의 몸뚱이나 친실장의 포옹 외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아이들이 정말 오랜만에 온기를 느끼며 잠잘 수 있었다.

"테에... 정말 따뜻한테...츄...."

"테! 그런테치- 땀까지 흠뻑흠뻑나는테튜~♬"

"몸은 후끈후끈♡ 얼굴은 시원시원해서 기분 정말 좋은테찌! 이것은 극락테츄우~"

"테에... 따뜻하니 금방 잠이 쏟아지는... 테... ㅊ...."

시커먼 녹색빛을 띠고 있는 담요에 몸을 파묻고 있는 4마리의 자실장.

몸을 둥글게 말고, 두더지 오락기처럼 고개만 쏙 내밀고 있다.
평소라면 각각 두어장씩 낡은 신문지를 겹쳐 몸에 꼼꼼히 두르고 다른 자매들과 함께 친실장의 품속에 안겨 온몸을 한껏 움츠린채 벌벌 떨면서 자야하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친실장이 전재산을 탈탈 털어 구입한 담요 덕분이다. 친실장과 자실장은 평생 들에서 살아온 들실장. 담요같은 것을 써본 경험은커녕 구경해본적조차도 없다.
기껏해야 공원에 있을 때 낡아빠진 걸레를 덮고 잔 것이 전부인 것이다. 그마저도 곧 찢어져 쓸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그런 자실장들에게 이 담요는 그야말로 대단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항상 추위에 떨면서 지내야했던 밤이었다. 낡아빠진 샌드위치 판넬 사이의 틈새로 밀어닥치는 차가운 바람. 밤바다에서부터 밀어닥친 섬뜩하게 차가운 기단은 실내의 창고임에도 불구하고 실장석들의 생명을 위협할만큼 온도를 떨어뜨렸다.
회사 차원에서도 실장석이 얼어죽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기에 너무 추운 날이면 히터를 켜주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실장석따위에게 기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몇십 마리가 얼어죽는걸 각오하고, 신문지나 조금 더 챙겨주는 것이 낫다는 것이 회사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장석들은 하루 중 유일하게 머리를 눕힐 수 있는 취침시간에서조차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회사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지를 지급했다. 주는 양은 골판지 하우스 하나에 4절짜리 신문지 2장씩. 그 하우스에 사는 실장석이 열마리든 한마리든 관계없이 무조건 두 장을 주었다.
두세마리만 사는 실장석 가족에게 신문지 두 장이라면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다.
한장을 반으로 접어 바닥에 깔아 스며드는 냉기를 막고, 다른 한장을 넓게 펴서 위를 덮으면 성체실장 하나와 자실장 두어마리를 감쌀 수 있었다. 서투르게하다가는 얇은 신문지가 찢어지고, 너무 꼭 덮었다가는 입김에서 뿜어져나온 습기에 흐물흐물 구멍이 나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친실장의 온기를 아이에게. 아이의 온기는 친실장에게 전해줄 수 있을만큼은 되었다.


문제는 군식구가 많은 집이었다. 식구수가 대여섯마리가 넘는 골판지 하우스에도 신문지는 무조건 두장씩만 주어졌다.
고작 신문지 두장으로는 자실장이 다섯마리만 되도 바닥에 깔기는커녕 몸위에 덮어주기도 빠듯하다. 억지로 몸을 움츠리고 자매끼리 꼭꼭 붙어서 잔다면 되기는 하겠지만, 몸부림 한 번으로 신문지가 찢어져버리기 때문에 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서너마리만 신문지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맨몸뚱이로 친실장과 꼭 끌어안고 덜덜 떨면서 밤을 새울 수 밖에 없었다. 자실장들은 '오늘은 와타치가 신문지를 쓰는테치.', '내일은 오마에가 쓰는테치' 하면서 교대로 덮고 잘 수야 있었지만, 친실장은 그런 기회조차 없다. 애초에 성체실장 정도의 몸뚱이를 감싸려면 신문지 두장으로도 모자란 감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신문지를 더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친실장은 더이상 신문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머리통이 박살나버렸으니까. 그 뒤에 서있던 자실장들도 마찬가지로 바닥에 빨간꽃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런 광경이 며칠 간격으로 연이어 계속되자 어느 실장석도 신문지에 대해서는 불평을 하지 않았다.
정말 불만이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게 된 것은 분명했다.


암록색 담요에 몸을 파묻고 테치테치하고 떠드는 네 자매도 그렇게 살아왔기에 지금 느끼는 온기가 더욱 각별했다.
벌써 취침소등을 한 지 오래였지만, 담요에 몸을 파묻고 테치테치하며 소근소근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오네챠- 조금 덥지 않은테치?"

"테치~ 땀이 흠뻑한테츄우~ 이런 날이 올거라곤 정말 꿈꿔보지 않은테츄"

"테테 그런테치. 오네챠 기억나는테치? 어제도 정말정말 추워서 밤중에 잠을 깬 테치. 눈을 떠보니 와타치만 신문지가 찢어져버린테튜~"

"테~ 4녀쨩의 잠버릇은 고약한테치~"

"하지만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없는테튜우웃~♪ 이건 약해빠진 신문지와는 달리 아주아주 튼튼한테치!"

"4녀말이 옳은테치. 거기다 신문지보다 훨씬 커서 이제 발을 쭉펴고 자도 좋아테치☆"

"테치테치~♬ 와타치는...."

아이들은 얼굴에 땀을 송글송글 흘리면서 쉴새없이 재잘거린다.
엷은 홍조로 뺨을 붉히고, 자그마한 다리를 쭈욱 펴고 부르르 떨어봤다가, 팔로 담요를 팡팡 쳐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고개를 담요 안으로 파묻고 스하-스하- 냄새를 맡기도했다가, 옆의 자매와 함께 담요 안에서 숨참기 경주를 하기도 한다. 테치테치- 테츄테츄- 하며 정말 정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그 정다운 모습에서 불과 십오센치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그와는 정반대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바스락...

바스락바스락...

"오네쨔.... 구더기.... 추운....레후우...."

"레에... 구더기쨩... 목소리를 내면 다메레치...."

신문지 조각 하나가 바르르 떨리나했더니 갸냘픈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이 골판지 하우스의 막내인 구더기와 엄지다.


아니 이젠 막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서너시간 전의 다툼에서 구더기와 엄지는 '식구'가 아니라 '똥벌레'로 결론지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그 친자매들. 언니들에게 의해서.


구더기와 엄지의 친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구더기와 엄지에게 어떤 대우도 해주지 않을 것을 통보했다.

가장 똑똑하고 상냥한 장녀 언니도.
엄하지만 누구보다도 믿음직한 차녀 언니도.
눈치가 빠르고 귀가 좋아 어떤 위험도 곧잘 피하던 3녀 언니도.
늘 자신을 챙기고 안아주며 돌보던 4녀 언니도.

더이상 언니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
너희들은 아무런 일도 못하고, 도움도 되지 않는 똥벌레이며, 똥벌레는 똥벌레처럼 살라고 말했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너무 충격적인 그 말에 엄지는 주저앉아 통곡했다.
친실장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우는 울음도 아니었고, 매정한 언니들에게 실망해서 흘린 눈물도 아니었다. 그냥 눈물이 터져나왔다.
왜 우는지, 무엇이 슬픈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눈물이 샘솟듯이 흘러나오고, 가슴의 한중간이 뻥 뚫려 무언가가 새어나오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늘 모야모야해서 기분좋았던 가슴의 녹색돌에서-- 빠득- 하는 섬찢한 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그렇게 엄지와 구더기는 골판지 하우스의 맨구석으로 쫓겨났다.

친실장은 그런 아이들의 다툼을 멍하니 쳐다만 볼 뿐이었다.
입으로는 연신 "너희들은 자매인데스. 자매들끼리는 사이좋게 지내야하는데수. 너희들은 자매인데스. 자매들끼리는 사이좋게 지내야하는데수...." 하며 똑같은 소리만 계속해서 중얼거릴뿐이었다.
눈은 하얗게 물들어 있었고, 바보처럼 벌려진 입에서는 데- 하는 멍청한 소리와 함께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엄지도 친실장에게 도움을 청해봤지만, 친실장은 데- 데수- 하며 의미없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레후... 레후... 오네쨔... 추운레후... 너무추운레후... 어째서 오네챠들은 구더기쨩을 안아주지 않는레후? 구더기쨩이 잘못한레후?"

상념에 빠진 엄지를 깨운 것은 품에 안긴 구더기쨩이었다.
아까 전부터 구더기를 재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구더기쨩은 잠들지 않았다.
그렇다고해서 구더기를 탓할 수 만은 없는 것이,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았다.

엄지와 구더기가 있는 곳은 골판지 하우스 출입구 옆의 구석.

평소에도 바람이 심하게 들이닥치는 곳이었고, 무엇보다도 출입을 위해 골판지 하우스의 한쪽을 찢어놓았기에 그 바람조차 제대로 막아주지 못하는 곳이었다. 네 언니들이 선심쓰듯 던져준 낡고 구겨진 신문지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엄지 하나도 다 못 덮을만큼 작았고 그나마도 찢어져있었다. 엄지는 그런 신문지를 모두 구더기쨩의 작은 몸뚱이를 덮어주는데 썼지만, 워낙 바람이 심하게 들이닥쳐 구더기조차도 추위에 떨고 있었다.

"오네챠... 레후... 구더기 추운레후... 추운레후... 구더기 너무 추운레후... 오네챠... 큰오네챠에게 안아달라고 하면 안되는레후?"
"구더기쨩...."

"구더기쨩이 추워하면 큰오네챠들이 따뜻하게 안아준 레후~♡ 엄지 오네챠도 좋지만, 상냥하고 따뜻한 큰 오네챠도 좋은레훗♪ 오네챠에게 부탁해서 엄지오네챠도 안아주길 바라는레후~"
"....구더기쨩....."

철모르는 구더기는 꼬리를 파닥파닥거리면서 떠들어댄다.

"레... 구더기쨩... 이제 오네챠들은 우리들을... 레에에에... 눈물이 나는 레치이... 레에엥..."

"....오네챠들은... 우리들과.. 우리들과 놀지 않는레치.... 그러니... 구더기쨩도 참는레치..."

"레후? 무슨 말인레후? 오네챠는 구더기쨩의 오네챠인레후~ 항상 구더기쨩을 귀여워해주는레후~"

"레.... 구더기쨔앙....."

엄지는 몇 번이나 멈칫멈칫 주저주저하며 설명을하려고 했지만, 이내 고개를 푹 떨구었다.
양볼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으면서도 오네챠 이야기를 하면 기분좋게 방긋방긋 웃는 구더기쨩이다.
그런 철모르는 구더기쨩에게 언니들이 자신들을 버렸으며, 이제 우리들은 오네챠에게 있어서. 오네챠들에게 있어서. 동생은커녕 똥벌레 취급을 받게되었다.... 이런 말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네챠들은 내일도 일을 하러가야하기때문에 자야하는레치... 그러니 구더기쨩도 참는레치.... 투정부리는건 나쁜아이인레츄."

"제----- 알겠는레후! 구더기쨩은 착하고 어른이니 투정부리지않는레후~ 추워도 참는제이. 구더기쨩은 다 컸으니 그정도는 낙승레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볼을 통통하게 부풀리면서 투덜거리던 구더기쨩도 언니들을 위해서 참아야한다는 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큼 아직 어리고 머리 나쁜 막내 구더기에게 있어서 언니들. 큰 언니들은 믿음직하면서도 상냥한 존재였다. ...아니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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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애애애애애앵!!!!!!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오늘도 어김없이 기상사이렌은 울린다.
사람들도 무의식적으로 귀를 틀어막을 정도의 고성이다. 몇몇 심약한 실장석들은 갑작스러운 고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킨사를 해버릴 정도로 무지막지하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는 후타바 해산물 구석구석에 퍼져 단잠에 빠져있던 이들을 가차없이 현실로 끄집어낸다.

"데스우우우... 또 하루가 시작되는데스우..."

"데에에에---!! 더 자고싶은데수... 너무 가혹한데수... 이건 지옥데스우..."

"오늘도 일해야하는데스? 오늘도데스? 오늘도 그런 힘든 일을 해야하는데스우...?"

"데기... 배고픈데수... 일단 밥부터 먹는데스우.."

사이렌 소리가 그치자 어둑한 창고 이곳저곳에서 실장석들의 불평소리가 터져나온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욕설을 주절거리면서도 바쁘게 몸을 놀리는 것은 잊지 않는다. 부스럭거리며 밤새 덮고 잔 신문지를 정돈하고, 아직 잠에서 덜 깬 아이들을 깨워 일준비를 시킨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기상 사이렌이 울려도 귀를 틀어막고 다시 곯아 떨어지거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일을 나가지 않으려하는 실장석들과 이를 잡아내려는 인간 감독관들 때문에 아침마다 전쟁을 치뤘다.
벌점을 먹고 급식량에 제한을 받거나 나중에 받을 봉급이 깎이는 걸로 끝나는 경우는 아주 운이 좋은 축이었고, 대개는 눈알 하나가 뽑히거나, 머리카락이 모두 뜯겨 대머리가 되었다.
그날그날 담당하는 감독관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일인 것이다.

"데에에에에에... 서두르는 데스우 이제 곧 집합인데스우. 늦게 일어나면 밥먹지 못하는 데스요."

"텟츄우... 피곤한테치... 어저께 두들겨맞은 오른팔이 아직 움직이지 않아테츄...."

"조금 참는데스... 밥먹으면 낫는데수..."

"테에에..... 아파테츄...."

"장녀쨩 신문지 정돈은 나중에 하는 데스! 얼른 동생쨩들 신발을 신기고, 일 나갈 준비를 서두르는데스!"

"마마! 와타치의 신발 한짝이 없어진테챠!!"


일을 시작한지도 어느새 한달째.
실장석들은 이럭저럭 후타바 해산물의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보통 실장석이라고하면 멍청한 두뇌에 걸맞지 않게 교활한 면모가 있어 걸핏하면 인간을 업신여기고, 말을 무시하고 반항하며 제 일신의 안위만을 보살피는 존재이다.
실장석은 기본적인 양심과 도덕이라는 것이 선천적으로 결여되어 길들이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 통념인데, 놀랍게도 이곳에서는 그런 반항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닌겐을 저주하는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실장석도 근처에 인간이 오면 소스라치게 놀라 입을 꾹 다문다.
항상 도망가주는데스 반드시 도망가는데스하며 중얼거리던 다른 실장석도 작업에 들어가면 놀랄만치 얌전해진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야 데스데스하며 제멋대로 떠들어대지만, 최소한 작업과 기숙사 생활에 있어서는 순종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이는 후타바 해산물의 가차없는 처벌 덕분이다.
앞서 말한 실장석의 본능. 즉, 인간에 대한 건방진 태도, 반항, 태업, 무시, 투분 등의 행위는 어디까지나 조금이라도 나아질 계산이 있어야 일어난다.
실제로 그렇든 그렇지않든 간에 실장석의 눈에 상대가 만만해보이거나, 그런 '요구'를 들어줄 것 같다는 자그마한 희망이라도 있어야 그러는 것이다.


하지만 후타바 해산물은. 후타바 해산물의 직원은 지금까지 실장석과는 일체의 대화를 나누지 않고, 철저히 짓뭉개는 행보를 걸어왔다.
반항을 하거나 항명을 하면 잔인하게 고문을 해서 몇날 며칠에 걸쳐 천천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인다.
그보다 조금 나아가서 정중하게 작업량을 줄여달라고 부탁을 하거나 사정을 하면 몽둥이로 즉시 머리통을 찌그러뜨려 죽였다.
팔이 부러져서 조개를 모자라게 주웠다거나, 아이가 아파 하루만 간호해주고 싶다는 사정을 하는 실장석도 짓밟아 터뜨려줬다. 그걸 보고 항의를 하는 놈도 물론 다 죽였다.


직원들은 실장석을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발을 헛디뎌 대오에서 튀어나간 자실장은 그 자리에서 빈대떡이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힘든데스-라고 중얼거린 친실장은 머리가 수박처럼 쪼개졌다. 점심을 먹고 깜빡 졸아버려 집합시간에 늦은 자실장은 죄질이 나쁘다하여 옆에 있던 자매와 함께 허리가 잘렸다.

집에서 기다리는 구더기와 엄지실장을 위해 저녁으로 나온 국을 몰래 기숙사로 가져가려했던 어느 친실장은 더이상 굶는 엄지실장의 끼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뒤를 밟은 직원들이 여럿 달려들어 구더기와 엄지실장은 물론, 다른 자실장과 친실장까지 모조리 밟아죽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오자 실장석들은 감히 직원들에게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소도 비빌 말뚝이 있어야한다고 대화를 하든 협상을 하든 아니면 사정을 해보든간에 상대가 이야기를 들어줘야 뭐라도 해볼텐데, 직원들은 실장석들이 무어라고 입을 열려고하면 그 즉시 몽둥이로 두들겨 패죽여버리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되자 아무리 머리나쁜 들실장이라고 하더라도 돌아가는 낌새를 파악한다.
닌겐상이 말을 먼저 걸기 전에 입을 떼면 죽는다. 반항을 하면 특별히 더 잔인하게 찢겨져 죽는다. 투분을 하거나 탈출을 꾀하거나 요구를 하면 함께 있는 가족까지 죽는다. 닌겐상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죽거나 죽을 정도로 두들겨 맞는다...


딱히 직원들이 가르쳐준 것도 아니지만, 실장석 자신들의 목숨이 걸려있어서일까.
삼주가 지나가기도 전에 실장석들은 후타바 해산물의 규범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장석은 기계가 아니다.
연료와 휴식. 연료와 휴식. 먹이와 휴식. 먹이와 잠... 이런 단순한 보상만으로 일을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실장석들이 하고 있는 일은 기계라도 얼마 못가고 고장나버릴 정도로 험악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겨우 압도적인 폭력과 권위로 일을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이는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초현상은 어느날 밤.
실장석 기숙사의 한켠에 놓인 골판지 하우스에서 시작된다.

"마... 마..."

털썩

"데, 데댯?! 차, 차녀쨔아앙!!"

친실장은 허둥지둥 엎어진 차녀에게 달려간다.
처음 왔을때보다 두배쯤 야위어진 아이의 몸을 붙잡아 일으키는 와중에 오른손에 무언가 끈적한 것이 묻는다.
피다.

"데, 데스? 너, 너 어디를 다친데스? 말해보는데스! 정신을 차리는데스, 차녀!"

"마.. 마마... 이모우토챠의 팔이..."

"데? 데, 데갸아악?!"

차녀는 왼팔이 없었다. 원래 왼팔이 달려있어야할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깨죽지에서부터 뽑혀나간듯, 하얀색 얇은 뼛조각 몇개만이 애처롭게 덜렁덜렁 매달려있을 뿐이었다.
친실장은 그런 차녀의 몸을 꽉 껴안는다.

"저, 정신을 차려보는데스우우! 차녀쨔아앙! 이, 이게 어찌된 일인데스?!"

"테에에에엥! 이모우토챠아아아!!!"

"오네챠아아아아!!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자실장들은 자매의 끔찍한 모습에 놀라서, 다친 자매를 걱정해서 울음을 터뜨린다.
거기에 친실장의 비통어린 괴성까지 섞여 조그마한 골판지 하우스가 들썩인다.

"데, 데에! 몸이 차가워지는데스! 위, 위험한데스우....!"

한참동안이나 차녀를 꼭 끌어안고 통곡하던 친실장이 겨우 정신을 차린듯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쓴다.
특히 손끝에서 전해져오는 아이의 체온이 차갑다. 이대로라면 팔 하나 잃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목숨까지 위험하다.
친실장은 가족들의 이불로 쓰는 신문지를 꺼내 그걸로 차녀를 한장씩 한장씩 잘 감싼다. 그리고 예비용으로 아껴뒀던 신문지까지 꺼내서 두둑하게 덮어주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차녀의 몸은 점점 싸늘하게 식어간다.

"테챠! 마마! 마마!! 차녀챠가 계속 차가워지는테치이이이!!"

"데에! 더이상 신문지도 없는데스.. 데.. 데...."

친실장은 잠시 옆집에서 신문지를 빌려볼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든다.
자기가 쓸 것도 없는데 남에게 빌려줄리가 없다. 오히려 두들겨 맞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테.. 테테... 테치... 추운테치.... 추워.. 추워테치..."

"오네쨔아아앙!! 정신차리는테찌!"

"테에에에엥!! 이모우토챠아아아!!"

친실장이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차녀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진다.
몸은 차가워지다 못해 시퍼렇게 죽어버렸고, 얼굴은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아직 어린 자실장도 차녀의 얼굴에 드리운 죽음의 기운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마, 마마!! 얼른 와보는테치! 차녀쨩이.. 차녀쨩이...."

장녀가 심상찮음을 느낀듯 친실장을 급히 부른다. 친실장은 옷과 두건을 벗어 들고 서둘러 차녀에게 달려간다.
그리고는 벗은 자신의 옷을 차녀에게 몇겹이나 두른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은듯 친실장은 알몸으로 차녀를 덮듯이 감싸안는다.

"테.. 테치... 마마.. 마마의 품 포근한테치..."

친실장의 헌신적인 노력덕분일까. 차녀의 얼굴에 잠시 온기가 깃든다.

"차녀쨩, 정신이 드는데스우? 정신차리는데스! 마마가! 마마가 있는데스!!"
"마.. 마마..."

"그런데스! 마마데스! 걱정할 것 없는데스! 팔은 얼마든지 나는데스! 밥먹으면 낫는데스우!"
"팔... 팔.... 테.. 테에에엥... 테에에에에에엥...."

"울지마.. 울지마는데스... 울것없는데스요... 마마가.. 장녀쨩이... 삼녀쨩이 있는데스.. 울것없는데스..."
"마마.. 와타치.. 와타치는 잘못한것 하나도 없는테치.... 밥먹고 여기로 오는 중에... 아무 이유도 없이 닌겐상... 닌겐한테 잡힌테치..."

"테에에엥.. 테엥...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팔이 잘린테치... 닌겐이 와타치를 밟고 팔을 뜯어내버린테치... 테에에엥...."
"차, 차녀쨩...."

차녀는 숨을 꼴딱꼴딱 겨우 넘기면서도 말을 쉬지 않는다.

"왜? 왜인테치? 와타치가 무슨 잘못을 한테치? 아무 말도 안 한 테치. 시키는대로 얌전히 걸어갔던테치... 그런데 왜... 왜... 와타치가 아픈 일을 당해야하는테치....?"
"억울한테치... 테에엥... 테에에엥... 억울테치.. 너무너무 억울한테치.... 테에에엥..."

결국 차녀는 진한 피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그걸 보는 친실장도, 옆에서 비통한 차녀의 한탄을 듣던 장녀도, 동생 삼녀도 적록색의 눈물을 흘린다.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차녀를 끌어안고 비통한 울음을 터뜨린다.

사실 차녀가 팔이 잘린 이유는 '항상 무리를 지어 다니라'는 후타바 해산물의 지침을 어겼기 때문이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차녀가 우는 것은. 친실장. 장녀. 삼녀가 우는 것은 단순히 팔이 잘렸기 때문이라느니, 인간의 가혹한 학대가 심하다느니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들이 우는 이유는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하루 종일 뼈가 부서져라 열심히 일을 하지만 얻는 것은 없다.
구타와 폭력은 나날이 심해진다. 주는 밥은 갈수록 점점 형편없어진다. 동족들과 데스데스 떠들며 수다를 떨 수도 없다. 잡담하는 것을 들키면 그 즉시 머리가 터져나간다.

옆집 자실장들끼리. 자매들끼리 테챠테챠 뛰어다니고 놀 수도 없다. 일과가 끝난 기숙사에서 그렇게 놀았다가는 주변을 시끄럽게 한다는 죄목으로 밟혀죽기 십상이다....
이런 불합리한 것들이. 자신들과 가족들. 더 나아가 실장석이라는 종족자체를 휘감고 있는 부조리한 것들이 너무나 서러워서 그렇게 우는 것이다.



얼마나 울었을까.
갑자기 차녀의 상태가 급변한다.

"마.. 마마.. 마마.. 어딨는테....치?"
"오로로롱... 오로로... 데, 데? 차, 차녀쨩! 왜그러는데스? 마, 마마는 여기있는데스!"

"마마... 마마! 마마! 어디... 어디테치? 안보이는테치! 새, 새까만테치... 누, 눈이 안보이는테치!"
"차녀쨩! 마마데스! 마마가 여기있는데스! 너를 꼭 끌어안고있는데스우!! 마마는 어디에도 안가는데스!"

"마.. 마마... 어두운테치.. 마...마... 와타치... 마마가 말했던.. 봄이란걸 꼭 보고싶었던...테....치....."
"차ㄴ....."

파킨!!



마지막 소원을 말하던 차녀의 목이 힘없이 뒤로 꺾인다.
두 눈은 회색빛으로 탁하게 변했고, 열린 입에서는 혓바닥이 징그럽게 툭 불거져 나온다.
친실장이 붙잡고 흔들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한쪽에만 애처롭게 매달린 오른팔만 덜렁덜렁거릴뿐이다.

그렇게 차녀는 죽었다.

"데에에에엥!! 차녀쨔아아아아아앙!!!!"

"오네챠아아아아아아아!!!"

"이모우토챠---------!!!!"

"눈을..! 눈을 뜨는데스! 눈을 뜨는데스우우우우!!! 아아아아아아!!! 차녀어어어!!!!!"


.

.

.


한참을 통곡하던 가족들은 차가워진 차녀의 시신을 중앙에 두고 둥글게 앉는다.
모두 얼굴이 초췌하여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친실장은 충격이 너무 컸던듯, 양쪽 볼이 홀쭉하게 말려들어가 있다.
그러면서도 친실장은 손에 든 앞치마로 차녀의 얼굴을 계속해서 닦아준다.

"차녀쨩은... 착했던데스.. 부지런했던데스... 공원에 있을때도 항상 마마를... 너희들을 걱정한 좋은 아이였던데스."

쓱쓱

"분명 이 아이도... 다른 아이들의 일까지 맡아 하느라 지쳤기때문인데스... 조금만 덜 착했더라면.. 조금만 더 자기만 생각했다면 좋았을 것인데스..."

쓱쓱쓱쓱

"데스... 미안한데스... 마마가 닌겐들에게 속지만 않았으면 좋았을데스... 마마.. 마마의 잘못인데스우... 마마를... 용서해주길 바라는데스..."

다시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친실장. 그런 친실장을 지켜보던 장녀가 친실장의 손을 잡는다.

"마마... 이모우토챠... 이제 그만 놔주는테치.."

"데! 하, 하지만 차녀쨩을 깨끗이 해야하는데스! 보, 보는데스! 아직도 차녀쨩의 예쁜 얼굴에 피랑 진흙이 묻은..."

"그만놔주는테치."

"............"

셋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는다.

무릎을 끌어안은채로 쪼그려 앉아 멍하니 눈만 꿈뻑이는 삼녀.
둥글게 몸을 말고 엎드린채로 흐느끼는 친실장.
장녀는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동생이었던 차녀를 내려다본다.


차녀는.
차녀의 시신은 너무도 조그만했다. 언제 와타치의 여동생이 이렇게 작게 쪼그라들었을까.

여기 오기 전의 공원에서도. 먹을 것이라곤 낙엽조각과 골판지 하우스에서 뜯어낸 골판지 부스러기 밖에 없었던 그 굶주린 공원에서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도 과히 보기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이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차녀의 나머지 세 팔과 다리를 보면 그야말로 뼈에 가죽만 붙어있다. 잘려나간 차녀의 왼팔. 왼쪽 어깨죽지에도 흔적이라곤 없다. 팔이 뜯겨 나가면 무언가 살점같은 것이. 아니 최소한 핏줄 같은 것이라도 매달려 있어야할텐데 그런 것 조차 없다.
위석의 한계를 넘나드는 과중한 노동과 부실한 식사가 맞물려 영양실조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차녀에게는. 아니 이곳의 실장석들에게 있어 휴식과 영양이란, 그야말로 간신히 숨만 쉬고 연명할 수 있을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한참동안 멍하니 차녀의 시신만을 내려다보던 장녀는 비척비척 친실장에게 다가간다.
친실장은 그때까지도 몸을 동그랗게말고 꺼이꺼이 울고만 있었다. 장녀는 그런 친실장을 흔들어 깨운다.

"...마마.... 마마..."

"데, 데스...우.... 장녀쨩... 무슨 일인데스...?"

"마마.... 저......"

장녀는 친실장을 앞에 두고 한참이나 주저주저한다.
무슨 말을 하려고하지만 결심이 잘 서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말을 잘라먹기를 십수번째.
마침내 굳은 표정을 짓고 가슴 속의 말을 내뱉는다.

"마마. 와타치를... 삼녀와 와타치를... 죽여주는테치."

장녀의 말은 너무도 놀라운 것이었다.

"데, 데에?! 너, 너, 너는 지금 무슨 말을 하는데스?!"

친실장은 당장 흘리던 눈물을 그치고 엎드려있던 자세에서 펄쩍 뛰어 그 자리에 선다.
그 동작은 너무나 빠르고 갑작스러워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의 속도였다.
그러나 그런 기예를 보고도 장녀의 표정은 담담하다. 태도 역시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나와 삼녀쨩을 죽여주길 바라는테치...... 마마."

"데, 데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데스?! 목숨은 그렇게 쉽게 버리는게 아닌데스! 차녀쨩이 죽었지만 우리들이 힘을 합쳐 열심히 살면...."

"살면 어떻게 되는테치?"

".....데?"

"지금까지 우리들은 열심히 산 테치. 응응. 정말정말 열심히 산 테치. 공원 시절에는 집에만 있었던 우리도 매일매일 달님이 있을때 나가서 달님이 다시 뜰때 집에 돌아오는테치."

"차녀쨩도, 삼녀쨩도, 마마도, 그리고 와타치도... 정말정말 노력테치. 열심테치.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된테치? 차녀쨩은 왜 죽은테치?"

"데, 데스우... 그, 그래도 죽는 것은 안되는데스! 마마가 지금까지 너희를 키운게 뭐라고 생각하는데스우! 마마도 몰라도 너희들은 무사히 살아서 봄을 맞은 다음 가족을 만들...."

장녀의 날카로운 공격에 친실장은 허둥댄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늘 아이들에게 해주던 말을 되네인다.
지금의 고난은 참고 이겨내어 봄을 맞아야 한다.
봄을 맞아 가족을 가지고 무럭무럭 행복하게 살아야한다.
아이들을 가득가득 가져 함께 즐겁게 살아간다...


그러나 더이상 그런 말은 아이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안되는테치."

"데에?"

"마마 거짓말은 이야테치. 거짓말은 안돼테치. 우리들은 봄이 와도 계속 여기에 갇혀 살아야하는테치. 봄이지나 여름이란게 와도. 다시 빙돌아 지금이 다시 되도 우린 여기서 계속 일해야하는테치."

"거, 거짓말아닌데스! 누, 누, 누가 그런 말을 하는데스? 그게 거짓말데스! 새빨간데스우!! 봄만 되면 우리들은 여기서 나가는데스!"

친실장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팔을 빼타빼타 흔들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마치 거짓말을 들킨 아이처럼 허둥댄다.

"언젠가 공장의 닌겐이 말해준테치."

"....데....."

"그 닌겐은 우리들이 죽을때까지 여기서 못나간다고 말했던테치. ....나가고 싶다고 울던 어떤 아이를 밟아죽이면서 했던말테치.
다른 아이들은 못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밑에 있던 와타치와 차녀챠... 막내쨩은 들은테치. 분명히 들었던테치."

그때 쭈그려 앉아있던 삼녀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진다.

"그리고 마마! 와타치들... 와타치들은 더이상 못 견디는테체! 너무.. 너무너무 힘든테치...! 너무... 너무 힘들어테치... 테에에엥.. 테엥..."

감정이 복받쳐서일까. 장녀의 두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제 맞는건 싫은테체! 아픈 것도, 혼나는 것도, 다른 아이를 죽이는걸 보는 것도 모두 모두 싫은테치!
일을 못하면 바로 죽이는테치! 일을 잘해도 맞는테치! 아무 이유도 없이 때리는테치! 말리면 더 맞는테치! 아픈것도 잔뜩, 괴로운것도 잔뜩테치! 이제... 이제 그런거 이야테치! 싫어테치!"

"장녀쨩....."

"봄! 봄! 봄! 봄! ...마마 봄은 안오는테치... 온다고해도... 봄이오는 곳에 우리들은 없는테치... 그전에 다 죽을것인테치."

".........."

"....그러니 마마... 마마가.. 마마가 와타치와 이모우토챠를 죽여줬으면 하는테치."

"......!!!"

"갑자기 하는 말인 아닌테치. 삼녀쨩도... 차녀쨩도... 다 이야기했던테치. 너무 힘들고 외로우면. 더이상 참지 못할 정도로 힘들면. 우리 손으로 죽어버리자고 약속했던테치."

앉아있던 삼녀가 일어서서 장녀의 옆으로 온다.
그리고 장녀의 손을 힘주어 꽉 잡는다.

"....오네챠의 말이 맞는테치."

"데........."

"마마, 와타치 죽고싶은테치. 죽어서 편해지고 싶은테치."

"닌겐에게 죽는건 무서운테치. 끔찍하게 괴롭히다가 죽여버리는테치. 그런건 이야테치.... 와타치.. 마마의 품에서 죽고싶은테치."

친실장이 다시 베챠리 소리를 내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회백색의 눈에선 말라버린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주르륵 차오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울음소리도 없다.
슬픔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으리만치 깊은 절망감이 친실장을 감싸안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무슨 이유로 지금까지 힘겹게 살아왔던 것일까.
희미하게 기억나는 어린 시절을 더듬어보면, 자매와 마마가 생각난다.
지금은 죽거나 행방을 모르게 된 여섯자매들. 오래된 일이지만 눈앞에 있는 것처럼 기억이 생생하다.가난했지만 왁자지껄 떠들고 놀며 즐거웠던 그때.

항상 무서웠던 장녀오네챠. 싸움을 잘하던 차녀오네챠. 울보 사녀... 먹보 오녀... 응석쟁이 육녀...

그리고 마마.

엄하고 무섭지만, 언제나 상냥한 마마. 푸근하게 안겼을때 마마의 옷에서 나는 마마냄새가 좋았다.

마마는... 항상 밤이면 따뜻하게 안아주며 좋은 마마가 되는데스~ 아이를 많이 기르는데스~ 하며 자장가를 불러줬다.



그 후의 독립.
사랑하는 마마와 장녀, 차녀 오네챠와 헤어지는 것은 너무나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그래도 해야만했다.

마마의 마지막 선물인 도토리가 든 비닐봉투와 얇은 골판지 박스를 들고 떠난 그 날...


이어지는 낯선 공원에서의 생활.

기존 실장석의 텃새와 먹이구하기의 어려움을 견뎌내며 겨우 맞이한 와타시의 아이들...
몸이 좋지 않아 3마리밖에 낳지 못했지만, 여섯가족, 여덟가족보다 훨씬 더 행복했다.

아이들도 하나같이 착하고 똑똑해 속 썩인 적이라고는 없었다.
가난때문에 굶는 날이 먹는 날보다 몇배나 많았지만.
긴긴 겨울밤을 물 반모금을 나눠마시며 배를 곯고 지냈지만.
그래도 그때는 행복이 있었다.


...

.....

.......그러나 이제 그런 행복은 모두 사라졌다.

이전의 아름다웠던 추억은 손에 움켜쥔 수증기처럼 허무하게 사라져버리고 현실로 돌아온다.
눈앞에 있는 것은 사랑하는 자식의 차갑게 식어버린 시체.
그리고 이젠 그만 죽여달라는 다른 두 아이.


와타시는...
와타시는 무얼 위해 살아온 것일까...


마마... 약속을...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데스...

"......장녀쨩.... 삼녀쨩....."

"........."

"........."

"마마가.... 마마가 미안해데스."

".......테."

"알겠는데스. 잘 알겠는데스우. ...마마가... 마마가 모자라서 너희들을 더 힘들게 했던데스. 미안한데스.. 마마가 이곳에 오겠다고 하지만 않았으면... 이런일이 없었을 것인데스.."

"테츄...."

"마마...."

"모든게 와타시 잘못데스. 너희들을 고생시킨 건 이 못난 마마 때문데스."

"이제라도... 이제라도 마마가 너희들을 편하게 해주는데스우..."


친실장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그 언밸런스한 기묘함에 어딘지 모르게 소름이 돋는다.

자실장들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한듯 서로의 손을 꼬옥 맞잡는다.

친실장은 기괴한 얼굴로 다가와 장녀의 목을 두손으로 감싼다.

"장녀쨩... 먼저 보내주는데스..."

"...마마 잠깐테치."

장녀는 그런 친실장의 손을 붙잡아 내린다.
그리고는 삼녀를 이끌어 그 앞에 세운다.

"....마마... 와타치가 먼저 죽으면 막내 이모우토챠가 불안해할것인테치... 막내 이모우토챠를 먼저 죽여주는테치. 와타치는 그 다음인테치."

"오네챠....."

"걱정마는테치! 이모우토챠는 무서워할것없는테치! 오네챠가 옆에서 지켜주는테치!"

"테에엥.. 테엥.. 오네챠...."

"울지마는테치! 울것없는테치! 죽으면 모두 함께 다시 노는테치! 차녀쨩도 기다리고 있을 것인테치! 조금후엔 마마도 오는테치! 그리고 모두 모두 함께 노는테츄~☆"

장녀는 불안해하는 삼녀를 안심시키려는듯 애써 밝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그런 장녀도 덜덜 떨리는 무릎은 숨기지 못한다.

.

.

.

.


"삼녀쨩... 눈을 꼭 감는데스."

"테.. 테치... 마마..."

"눈을 꼭 감고 참는데스.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스..."

"마... 마마!"


꾸욱!


"케! 케... 케폿!! 케포포.. 케, 켁!!"

"참는데스! 참는데스! 곧!! 곧 끝나는데스! 참는데스우!!"

"케포포포포포!! 케포...! 켁!! 케케케켁!!"

"삼녀챠! 참는테치! 오네챠가 여기 있는테츄!"


친실장은 삼녀를 목조르고 있고, 그 옆에서 장녀가 그런 삼녀를 응원한다.
삼녀, 장녀, 친실장 모두 온 얼굴과 가슴을 진한 적록색의 눈물로 흠뻑 적시고 있었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목졸라 죽이는 친실장.
자신의 동생이 목졸라 죽어가는 광경을 보며 응원하는 장녀.
자신이 목졸려 죽어가면서 언니와 마마를 걱정하는 삼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극마의 판데모니엄이 자그마한 골판지 상자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죽는데스! 얼른 죽는데스!! 어서 편해지는데스우우우!!"

"키.. 키킥! 키키키키.... 킥...."

"삼녀챠!! 숨을 쉬려고하지마는테치이이이!!"

"키.. 키이이이이... 익... 킥....키...."

"죽는데스! 죽는데스! 죽는데스!!"





일어서서 목을 조르는 것으로는 숨이 끊어지질 않아 삼녀를 자리에 눕히고, 그 위를 친실장이 올라탄 다음 몇번이나 목을 누른 후에야 삼녀는 비로소 숨을 거두었다.
친실장은 삼녀가 힘없이 손발을 떨구었음에도, 양쪽 눈이 회색빛으로 탁해질때까지 쉬지않고 목을 졸랐다.
장녀가 삼녀의 죽음을 확인하고, 삼녀의 몸뚱이에 가해지던 근육의 긴장이 풀려 대량의 탈분을 한 것까지 확인한 후에야 친실장은 손을 뗀다.

"하아... 하아하아하아..."

자신의 자식을 스스로 목졸려죽였다는것에 대한 충격일까.
친실장은 지쳐 자리에 주저 앉는다.
무릎을 감싸쥐고 거기에 머리를 파묻고 데에엥 데에에엥하며 훌쩍인다.


장녀는 삼녀의 시신을 차녀의 옆으로 옮긴다.
그리고는 삼녀의 빵콘이 된 팬츠를 벗겨내서 골판지 하우스 구석에 가 똥을 비워낸다.
헌 신문지 조각을 가져와서 삼녀의 굳어버린 가랑이를 꼼꼼히 닦아주고 난 다음, 다시 팬츠를 입혀준다.


"테! 이제 부끄럽지 않게 된 테치..."

".....삼녀쨩... 잘 참은테치... 차녀쨩은 잘 만난테치?"

"....와타치도... 마마도... 이제 곧 가는테치. 조금만 기다려테치..."

"마마... 와타치 차례인테치."


.

.

.

.

.

.

.

.

.


"오로로로로롱! 오로로로로로롱!! 오로로로로로롱! 오로롱! 오로로로롱!"


친실장은 세구의 시신 앞에서 엎드려 통곡한다.


장녀, 차녀, 삼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함께 일어나 방을 치우고, 밥을 먹고, 서로를 격려하던 아이들이.
가장 보배로운 보물들이.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차가운 시체가 되어 방에 누워있다.


그리고 그 둘은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자신의 손으로... 가느다란 그 목을 졸라.
목을 졸라 죽인 것이다.


왜.... 대체 왜....
왜 그렇게 착한 아이들이...
그런 아이들이 죽어야만 했던가...
누구보다도 착했던 아이.

가난했던 공원에서도, 이런 험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단 한번도 원망의 말을 하지 않았던 아이들.
아이들은 죽으면서까지 자신을 원망하지 않았다.


욕을 하고, 침을 뱉고, 자신을 매도라도 했으면 조금쯤이라도 나았을텐데.
아이들은 하나같이 죽는 와중에도 자신을 걱정하며 죽어갔다.


"마마 차녀오네쨩 먼저 만나러 가는테치. 먼저 가서 미안테치."

"마마 미안한테치. 우리들은 마마의 품에서 편하게 죽지만 마마가 걱정인테치."

"마마가 잘못한건 없는테치. 이건 전부 나쁜 닌겐의 탓테치."


그랬기에 친실장은 더욱 슬퍼하는 것이다.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걱정할 만큼의 착한 아이를 죽였다는 죄책감.
그런 상황에서 다른 방도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좌절감.
자신들을 괴롭혀서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했던 인간들에 대한 증오.
대체 자신과 아이들은 왜 이런 세상에서 태어나야만 했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


이 모든 것이 엉망으로 뒤범벅되어 친실장의 가슴에 몰려든다.


"오로로로로로로롱! 오로로로로로로로롱!! 오로로로로로로롱!!"


.

.

.

.

.

.

.


한참을 울던 친실장은 겨우 정신을 수습한다.

"...가야하는데스... 아이들이... 와타시의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것인데스..."

힘없는 몸을 겨우 일으켜 자리에 선다.
그리고는 비틀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골판지 하우스 밖은 어두컴컴하다.
벌써 취침소등을 한지 오래라 다른 집들은 정신없이 자고 있다.
밤에 화장실을 가는 실장석들을 위해 마지못해 달아준 5촉 전구 몇개만이 거대한 실장석 기숙사를 어슴푸레 밝혀주고 있었다.


"데히... 데히....."


몸안에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친실장이 향하는 곳은 후타바 해산물의 관리초소였다.

관리초소는 당직근무자 2명이 밤새도록 실장석 기숙사 전체를 통제한다. 인원수는 적지만, 곳곳에 설치된 열감시 카메라와 실장음성 채집기를 통해 정보를 받으므로 2명이서도 훌륭하게 커버하고 있었다. 감시하기에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면에서부터 약 1미터 위에 설치된 이 간이 컨테이너는 당연하게도 실장석의 출입이 엄히 금해져 있었다. 실수로라도 근처에서 서성였다가는 '거동수상석'으로 몰려 얻어터지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친실장이 필사적으로 이곳까지 온 것은 이유가 있었다.

"데.. 데스... 이.. 이제 곧인데스..."

친실장은 어두운 그늘 뒤에 숨어 관리초소를 뚫어지게 살펴본다.
그리고 목표로 한 한 곳으로 털벅털벅 뛰기 시작한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속도였지만, 그 얼굴과 몸에서 기이한 아우라가 풍겨져 나온다.
목숨을 내다버리는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각오일까.
친실장은 그대로 일직선으로 달려가 관리초소를 두르고 있는 철망을 들이받는다.


찌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뎃갸아아아아아아아아!! 데갸아아아아아아!!"


찌지지지지지지지지직!!


"데갸아아아아!! 데갸! 데갸!! 데갸아아아아아아앗!!!"


친실장이 들이받은 것은 실장석이 함부로 관리초소에 들어오지 않도록 설치한 전기 철조망이었다.
사실 말이 전기 철조망이지, 실장석에게 겁만 주기 위해서 닿으면 뜨끔할 정도의 충격밖에 가하지 않는다.
실수로라도 소중한 회사의 자산을 상하게하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전기 철조망이라고 할지라도 지금의 친실장처럼.
자실장을 감싸안듯이, 맛좋은 푸드를 움켜쥐듯이 꼭 껴안는다면 사정이 다르다.

제아무리 겁주기용도라고는 해도 전기는 전기.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오래 쥐고 있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인데, 실장석이라고 하면 말할 것도 없다.


지지지지직!!!

지지지지직!!!

"데갸! 데갸! 뎃갸아아아아!!! 뎃갸! 뎃갸아아아아아!! 데쟈아아아!!!"


친실장은 까만 숯덩이가 될때까지 전기철조망에 매달려 있었다.
행여라도 떨어질까봐 철선을 꽉 껴안고 있어, 달려온 사람들이 팔을 자르고나서야 겨우 떼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친실장도 죽었다.

그녀는 아이를 만났을까?

삼녀는 차녀와 만났을까?

장녀는 동생을 찾았을까?


그 대답은 아무리 후타바 해산물이라고 해도 모를 것이다.



















댓글 3개:

  1. 죽는 묘사나 인물의 생동감 표현이 작품 전체를 떠받들어주는거 같음.. 후타바 해산물의 로직 구성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현실에 빗대어봐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 구성이 아쉽다는 말도 쉽사리 하지 못 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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