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정말이지 너무들 하지 않아요?”

그렇죠. 보다 보면.

“해충이니 뭐니 하지만, 결국은 서식지가 인간에게 파괴되어서 어쩔 수 없이 우리 곁을 맴도는 생물이잖아요? 인간은 그 애들한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책임 말입니까?

“그렇죠. 적어도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줘야죠. 솔직히 저 비좁은 공원 안에 먹고 잘 데가 어디 있겠어요? 우리 클럽이 그나마 매번 지원해주는…….”

아, 그 골판지 상자와 별사탕 말씀이군요.

“그렇죠. 애들이 묘하게 그걸 좋아하더라고요. 좀 더 나은 방법이 있을 텐데, 당장은 그게 아니면 다 죽지 않겠어요?”

그것들은 골판지를 쓰기 전엔 어디서 살았을까요?

“아마 굴을 파거나 해서 살았을 거에요. 산에서 왔다고들 하니까.”

그럼 다시 적응할 수 있게 굴 파기 연습을 시킨다거나 하는 건 어떨까요. 요새는 곰 같은 것도 산에 다시 방류한다고 하던데요.

“아유, 그래도 그 애기들이 그 조막만한 손으로 파면 얼마나 파겠어요? 가뜩이나 못 살게 구는 사람도 많은데. 산에 풀어주면 금방 또 그 몰상식한 작자들이 와서 해코지할 지도 몰라요.”

아, 그 학대파라든가?

“그렇죠! 학대파니 학살파니 관찰파니, 도대체 그 애들 어디가 그렇게 해롭다고 기를 쓰고 괴롭히고 죽이려고 드는지! 얼마 전엔 어떤 미친놈이 한밤에 몰래 와서 골판지를 모조리 물로 적셔놨다지 뭐에요? 그 바람에 그 애들이 키우던 아가들이 여럿 익사하거나 얼어 죽었고요, 도대체 자기보다 훨씬 약한 동물을 못 살게 구는 게 뭐가 그리 잘난 줄 아는지 몰라요. 분명 전부 정신병자거나 현실부적응자인 게 분명해요.”

하긴, 어느 쪽이거나 그렇게 힘 뺄 일은 아닌 듯합니다만.

“이쪽은 힘 빼는 게 아니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 북극의 표범인지 물개인지를 구하는 거하고 마찬가지에요. 밀렵꾼들이 그것들을 죽이는 걸 보셨나요? 세상에, 모피에 구멍 안 내려고 몽둥이로 때려죽인답니다! 그런데 여기 애기들은 모피도 뭣도 얻을 게 없는 데도 온갖 흉측한 방법으로 죽인다니까요. 세상 참 흉흉해라.”

하프물범이야 워낙 수가 적다니까요. 하지만 그것들은 수가 많으니 다들 괜찮다 싶은 거겠죠.

“아니죠! 어떻게 괜찮겠어요? 그 애들은 엄연히 우리처럼 지성을 가진 생명체잖아요. 말이 동물이지 사람하고 똑같은 거라고요. 물범 같은 동물하고 똑같이 취급할 수가 없어요. 우리처럼 생각하고 사랑하고 보살필 줄 아는 애들이 그렇게 죽어서는 안 돼요. 하나하나가 모두 값진 생명인데, 다들 구더기니 벌레니 하찮게 여기다니. 그러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구해주려 하는 거지요.”

생명을 구하신다니 보람찬 일이시겠군요.

“당연하죠. 우리 아님 누가 하겠어요?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나 쓸데없는 일이랍시고 욕하고 참견하죠. 시청 인간들도 마찬가지에요. 불법투기라니, 배고픈 애들 밥 먹이는 게 불법이면 유니세프는 뭐하러 있는지.”

하하, 분명 그 깊은 뜻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겁니다.

“아이고, 우리 사장님 말만이라도 고마우셔라. 아, 케찹은 됐어요.”

네이, 핫도그 여기 있고요, 1500원입니다.

“아, 여기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곧 회원들하고 공원 앞에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오늘도 그것들한테 밥을 주시는 건가요?

“네. 벌써부터 애들이 잔뜩 몰려와서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분명 배를 곪고 있을 거에요.”

그럼 빨리 가셔야겠네요. 조심해서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갔나.

매주 일요일마다 공원에 들르는 저 애호파 회원 아줌마는 어중간한 점심을 우리 포장마차의 핫도그로 때우곤 한다.

하여간, 손님 없을 시간에 와주니 시간 죽이기라도 되어주는 건 좋다만, 허구한 날 같은 말만 되풀이하니 지겨워 죽을 지경이다. 좀 다른 주제를 꺼내면 이쪽도 성심껏 대답할 텐데 말이지, 매번 실장석의 삶이 어쩌고 권리가 어쩌고 그 지경이니 설렁설렁 건성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카트 밑으로 숨으려들던 엄지 한 놈-아마 핫도그 냄새에 눈이 돌아간 듯한-을 꼬챙이로 찍어 쓰레기통에 처박고서 재료 재고를 점검한다. 반죽은 아직 있고, 소시지가 다 떨어졌다. 50개들이 팩을 꺼내어 뜯으려는 차에 문득 성분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실장육 60%, 닭고기 20%, 전분, 대두단백, 돼지고기향, 기타 등등-







라스트 스퍼트

 

실장경마.

기가 찬 단어다. 실장석으로 경마를 한다니. 짧고 뭉툭한 팔다리, 형편없는 운동신경, 정상 상태에서도 유지되는 비만 체형…… 어느 하나 안정적인 보행엔 도움 하나 되지 않는 요소의 집합체를 주제 넘는 이족보행에서 억지로 사족보행으로 교정시킨다한들 볼만한 구경거리가 될 일은 없지 싶지만, 놀랍게도 그건 실존하는 스포츠다. 그것도 매우 인기 높은 스포츠로서, 처음 소개된 이래 몇 년 지나지 않은 지금에서는 전국 대부분의 경마장에서 부설 경기장을 신설하여 운용하는 판국이다. 물론 그 속내는 엄연히 도박이지만.

오늘도 트랙에 아홉 팀이 나선다. 안대와 재갈, 그리고 수갑으로 자유를 박탈당한 채 네 발로 땅을 기는 독라실장 위에 자실장쯤 되는 것들이 올라타서 채찍질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채찍질을 하면 제대로 된 실적을 내는 데엔 오히려 역효과라는 걸 충분히 교육받았음에도 지리멸렬한 지능과 타고난 약자멸시의 본능이 사육사의 노고를 무위로 돌리고 있다. 물론 그 사실을 숙지할 만큼 지능이 뛰어난 개체도 있다. 그러나 채찍질은 여전하다. 실장들 사이에선 보기 드문 지능을 통해, 그것들은 지금 이 순간만이 그들이 ‘갑질’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임을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기장은 출발 신호가 울리기 전부터 독라실장들의 울음소리로 시끌시끌한 것이다. 데게엑, 하고 재갈에 막혀 제대로 울리지도 못하는 비명이.

“독라노예는 와타찌를 위해 달리는 테찌!”

“이번에도 실수하면 그대로 처분되어버리는 테찌! 분충은 열심히 달려서 와타찌의 목숨을 건지는 테찌!”

“스테이크! 이번에도 스테이크를 먹어서 와타찌의 세레브함을 보여주는 테찌!”

탐욕과 절박함, 경멸과 잔인함이 비명소리와 한데 어우러져 경기장의 공기에 광기를 더한다. 마치 알콜을 흡수하듯이 관중들은 그 광기에 몸을 맡기고 소리를 지른다. 이겨라 분충! 지지 마라 똥벌레! 이번에도 하위권이면 내가 직접 대갈통을 날릴 테다! 이하 기타 등등. 고등한 인간인 그들이 한낱 미물들에게 고양되는 건 9할은 당연히 돈 때문이다. 그러나 고기 위에 후추를 치듯 트랙 위에서의 적절한 드라마가 그들을 이 경기장의 좌석으로 이끄는 데 협조했음은 틀림없다. 마치 로마 시대의 서커스처럼, 제법 자극적인 양념이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악의를 대변하듯 경멸과 조롱이 가득한 멘트를 날려대는 캐스터의 중계가 머리 위를 휩쓸고, 그 매콤한 분위기 속에서 오로지 한 팀만이 조용하다. 자실장은 다른 놈들에 비해 몸집이 크고, 독라실장은 귀 끝이 많이 헤진 게 제법 이 바닥에서 굴러왔음을 보여준다. 채찍은 사린 채 손에 단단히 쥐었고, 눈은 오로지 앞을 향한다. 마치 군계일학을 실장석으로 표현한 것 같다. 물론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트랙 위의 동족들도, 관중석의 인간들도, 심지어 본인들조차도. 그러나 명백한 온도차 속에서 그 자실장은 조용히 한마디만을 입에 담을 뿐이었다.

“……이번만 이기는 테찌, 마마.”


실장경마는 아홉 팀, 2두1조의 실장들이 장애물 달리기의 형식으로 달리며 들어오는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는 스포츠다. 기수는 자실장이고 말은 독라실장이다. 아무리 성체실장이어도 생후 1개월에서 5개월까지의 자실장이어야만 등으로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효율 중시의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잔혹극이 태어난다.

모든 독라실장은, 기수의 친모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한 이야기다. 자기 새끼가 아닌 이상 등에 태우고 네 발로 긴다는 굴욕적인 처사를 실장석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 팀은 무조건 친실장과 친자실장으로만 구성된다. 가장 아끼는 자식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보는 앞에서 살처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실장이 친모를 자기보다 열등하고 다루기 쉬운 존재로 각인하게끔 독라로 만든다. 이로써 기수와 말의 페어가 갖춰진다. 이 페어가 아홉에서 열 팀 정도 모여 훈련에 임한다. 사육실장과 같은 예절교육은 받지 않는다. 필요가 없으니까. 다만 장애물 통과 훈련과 독라 통제훈련, 체력 단련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좋은 실적을 거둔 조는 콘페이토를 상으로 받으며, 반대로 가장 뒤떨어지는 팀은 모두의 앞에서 체벌당하고 처분된다. 공포의 각인을 위해서다. 그렇게 채찍과 당근으로 추려낸 두세 조, 혹은 단 한 조만을 경기에 투입시킨다. 이렇게 아홉 조가 모여 트랙을 달리는 것이다.

트랙 위에서도 생존경쟁은 여전히 이어진다. 1위로 들어온 조는 그들이 그렇게나 바라는 스테이크와 스시를, 2위와 3위는 고급실장푸드와 콘페이토를 받는다. 9위로 들어온 조의 운명은 달라질 게 없다. 훈련 때 봤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죽음으로 경쟁자들에겐 경각심을, 관중들에겐 볼거리를 선사하게 되는 것이다. 각 경기장마다 나름대로의 처형법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곳 후타바 시 미츠바시 경마장 부설경기장에서는 매우 특별한 처형법을 사용한다. 백각형, 말 그대로 백 번 포를 뜬다는 중국의 형법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개장한 이 경기장은 그 선구안만큼이나 화끈한 퍼포먼스로 경쟁사가 부지기수로 늘어난 지금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총괄사육사 겸 처형자인 토시아키가 작은 메스로 패배자의 살을 한 점 한 점 뜯어내는 광경은 수많은 도박 중독자와 학대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커다란 오르가즘을 안겨주었다. 다만 토시아키 본인은 매우 불만족스러워했는데, 그 칼질이 100번은 고사하고 웬만한 놈들은 50번을 넘기기 전에 파킨사해버리는 탓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과 악몽보다도 실장석들을 전장으로 내모는 건 따로 있었다. 1위는 앞서 말한 스테이크와 스시 외에도 부상을 하나 받는다. 금색의 휘장이 그것이다. 반짝이는 휘장은 물욕과 몸치장에 눈이 돌아가는 실장석들에겐 그 자체만으로도 군침 도는 물건이지만, 그 진정한 용도는 따로 있다. 하나하나는 장식 외엔 아무런 쓸모도 없지만, 10개를 모으면…….

탕, 하고 권총소리가 출발을 알린다.

소리에 놀라 파킨사하는 놈은 없다. 그 정도 수준의 쓰레기는 일찌감치 바닥의 얼룩이 되었으니. 여기 올라온 것들은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인 것이다. 계속된 채찍질에 몸부림치던 독라실장들이 그대로 뛰쳐나갔지만 9번 트랙의 조는 서두르지 않았다. 조용했던, 아까의 그 모녀다. 느릿해 보이는 그 걸음에 몇몇 관중이 야유를 퍼붓지만 그럼에도 서두르지 않는다. 마침내 야유가 분노로 바뀌려고 할 무렵에, 분위기가 뒤집힌다. 한 차례의 채찍질, 그리고 한 차례의 울음. 비록 재갈에 막혀 뭉개지지만 그 기세는 본경기장의 수억 짜리 경주마에 비해도 뒤지지 않는다. 채찍질로 힘이 빠진 독라실장들이 웅덩이를 넘지 못해 빌빌거리고 있을 때, 오로지 그 조만이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웅덩이를 넘는다.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그 실장석답지 않은 모습에 놀랐지만, 안방 문의 돌쩌귀까지 이 아귀도에 부어넣은 사람은 그 조가 어떤 조인지 잘 알고 있다. 비록 지금은 간당간당한 성적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고 있지만…….

그 모녀의 팀명은 ‘질풍’.

9번 1위에 빛나는, 자유를 눈앞에 둔 유일한 조다.


애오파도 학대파도 없어 적당히 평화로운 공원에서, 한때 모녀는 조용히 살고 있었다.

누가 실장푸드를 뿌리거나 쓰레기장이 가깝거나 하진 않았지만 공원엔 다행히도 열매를 맺는 식물이 많이 있었다. 인공호수 때문에 물을 얻기도 쉬웠고 은신처가 될 덤불도 많았다. 덕분에 친실장은 10마리가 넘는 자를 기를 수 있었다. 모두가 귀엽고 예의바른 아이들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그 모두가 성체가 될 것이었다. 다 자라서 자신처럼 자를 가지는 기쁨을 알 것이었다.

그랬을 것이었다.

인간들이 왔다. 실장석이 지나치게 불어나면 나타나는 하얀 악마들, 모조리 때리고 부수고 죽여서 흔적 하나 남지 않게 한다는 공포의 대상. 마마의 마마, 또 그 마마에게서 들었던 전설 같은 재앙.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자들을 살리겠다는 일념도 부질없이 악마는 그들 가족을 한 번에 낚아챘다. 그러나 전설과는 달리 죽이지는 않았다. 그저 포대기에 한꺼번에 담아 어딘가로 옮겼을 뿐이다. 친실장은 생각했다. 하늘의 마마가 자신들을 지켜줘서 저 악마들이 자기들을 해치지 않은 거라고.

차라리 그때 죽었더라면.

정신이 들었을 때는 어느 좁은 방이었다. 햇님을 닮았지만 훨씬 작고 음침한 빛이 하나 떠서 겨우 어둠을 몰아낼 뿐이었다.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가족들과, 인간이 하나 있었다. 그림자에 가려 얼굴은커녕 몸도 잘 보이지 않았다.
누가 제일 좋아? 인간이 물었다. 보통의 실장석이었다면 일단 경계했을 것이다. 인간과 엮여 좋을 건 없는 게 실장석의 삶이다. 그러나 친실장은 인간 자체를 그리 많이 접해보지 못했을 뿐더러 막 정신이 들어 사리분별이 어려웠다. 그저 물으면 묻는 대로, 답하면 답하는 대로 데스, 하고 울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 닝겐이 뭐라고 했지? 누가 제일 좋냐고? 다들 귀여운 아이들이었지만 가장 똑똑하고 착한 3녀가 그래도 제일 좋았다. ‘데, 그래도 3녀가 좋은 자인 데스.’
다른 자들이 모여들어 울어댔다. ‘와타찌는? 와타찌는?’하고 섭섭해 하는 자들도, 마냥 마마가 좋은지 테, 하고 우는 자들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누워 있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 인간이 다시 물었다. 누가 3녀야? 친실장은 3녀를 들어 올렸고, 그 순간 지옥문이 열렸다. 영원히.

3녀를 뺀 나머지 자들을 인간이 짓밟아 뭉갰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 멍하니 보고 있던 친실장은 3녀가 품속에 기어들어 울고 불며 발광하고 나서야 현실을 마주보았다. 데, 데, 하고 말 같은 걸 혀 끝에 걸려던 순간 인간의 손길이 자신에게 날아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격통이 스치고 조금 쌀쌀해졌다고 느꼈을 때, 친실장이 본 건 피와 체액, 운치로 얼룩진 바닥과 갈가리 찢긴 옷, 그리고 머리카락이었다. 친실장이 파킨사하지 않은 건 행운이 아니라 지독한 불운이었다. 피 맺힌 비명이 좁은 방을 메웠다.

‘데갸아아아아아악! 무슨 짓인 데스! 우리 자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은 데스!’

그러나 인간은 무정히 두 모녀를 집어서 어딘가로 데려갔을 뿐이었다.

그 뒤로는 잔혹한 솎아내기의 연속이었다. 괴로운 일을 시키고, 아픈 일을 당했다. 며칠에 한 번 꼴로 동족의 모녀가 비참한 죽음을 맞는 걸 봐야 했다. 가장 힘든 건 3녀가 자신을 노예로 부리도록 강요당하는 일이었다. 끝까지 뻗대는 자는 모조리 죽었고, 3녀는 결국 인간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착한 3녀는 밤마다 인간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사과하곤 했다. 비록 칸막이가 쳐져 서로 볼 수는 없지만 마음은 바람처럼 전해져왔다.

잘하면 콘페이토를 얻을 수 있다. 콘페이토야말로 모녀의 삶의 희망이자 이유가 되었다. 그 달콤함을 입 안에 가두고 있으면 적어도 아픈 일을 잠시 머릿속에서 치워둘 수 있었다. 그러기를 거듭하자 모녀 곁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가장 우월한 개체로 선택받아, 트랙에 섰다. 전장에 오르기 전 그들을 담당했던 사육사는 말했다. 여기서 꼴찌로 떨어지면 가장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고. 그러나 이렇게도 귀띔해줬다. 기수와 말이 1등을 열 번 하면, 다시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똥벌레 주제에 그게 가능키야 하겠어?’ 곧 죽을 목숨을 두고 조롱하는 투였지만 그 말이 곧 모녀의 복음이 되었다. 열 번만 1등으로 들어오면 살아남을 수 있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 다시 자들을, 자매를 낳고 길러서 다시 행복한 나날로 돌아갈 수 있다.

행복해질 수 있다. ‘질풍’의 이름을 받은 조는, 그 믿음 아래 이름 그대로 질풍처럼 달렸다.

미츠바시 부설 경기장은 새로운 스타의 등장에 들썩였다. 그 어떤 조도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없고, 영리하게 장애물을 통과할 수도 없었다. 한 번의 1위야 요행이라 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세 번 반복되면 그것은 실력이다. 배팅액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인간들이 열광하고, 모녀가 도취했다. 그것은 뛰어난 개체와 깨지지 않은 가족애, 그리고 좋은 팀워크가 한데 어우러진 기적이었다. 스테이크와 스시의 맛이 그들의 본성 깊이 잠든 분충성을 자극했지만 비극 사이에서 굳어진 애정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그것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10회 1위, 휘장 열 개, 자유. 간단한 계산이었다. ‘질풍’은 달렸다. 9회까지 달성했을 때 후타바 시는 과연 처음으로 해방되는 경마실장모녀가 탄생할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마치 빈사의 유명인을 두고 데드풀을 하는 것과도 같았다. 운명이 그 장난감 같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그리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실장경마에서 가장 기수에 적합한 자실장의 연령은 1개월에서 5개월 내외다. 그 이하 크기 개체의 지능과 힘으론 컨트롤이 불가능하고, 그 이상이면 무게에 독라실장의 척추가 휘어진다. 실장석이라는 생물 자체의 결함이었고 아무리 뛰어난 몸과 실력으로도 그것은 커버할 수 없는 성질의 문제였다. 시간이 흐르고 자실장이 자랄수록 질풍은 사그라졌다. 2위, 3위, 그러다 차츰차츰 떨어져 저번 경기에선 6위까지 떨어진 것이었다. 보통의 녀석들에겐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정도였지만 ‘질풍’에겐 그것만으로도 지옥문이 코앞에 다가온 셈이었다. 저번 신체검사 결과는 더 비관적이었다. 이미 척추의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위석이 가까이 있었고, 더 경기를 치르다간 허리가 부러지는 게 먼저일지 척추의 파편이 위석을 찌르는 게 먼저일지 레이스를 벌일 지경이었다. 사실상 이번 경기가 은퇴식인 셈이었다. 그리고 은퇴식은 화려하게 치러질 것이다. 축하의 박수가 아니라 모녀의 피와 비명으로.
그렇게 끝낼 생각은 둘에겐 없었다.

“달리는 테찌!”

데게엑, 하고 친실장이 대답했다. 웅덩이 뛰어넘기, 계단 올랐다 내려가기, 지그재그 피하기, 가시밭길 건너기…… 몇 번이고 해왔던 것들이다. 물에 적신 실장푸드 먹기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다른 놈들은 저마다 장애물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거나 느릿느릿했다. 죄다 애송이들이다. ‘질풍’이 오랜만에 이름값을 하는 날이었다. 앞엔 아무도 없다. 그렇다, 그들 모녀는 지금껏 이 날을 위해 살아온 것이다. 바로 이 날, 자유의 날을 위해.

관중들이 점점 술렁이기 시작했다. 9번에 올인한 사람들이야 좋아죽는 얼굴이었지만 대다수의 관중들은 실장석이 행복해지는 것보다는 비참하게 죽는 꼴을 더 즐겨보는 쪽이었다. 과연 저놈들이 첫 번째 해방자가 될까? 진짜? 아니, 아니라고 해줘, 제발! 씨발 이딴 시나리오는 애호파 새끼들이나 울면서 보는 거라고! 그 사이 캐스터가 턱이 빠져라 소리를 질러대며 기록적인 순간의 도래를 예고하느라 바빴지만 모녀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상하운동 속에서 하나로 겹치는 위석의 두근거림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마마, 힘내는 테찌! 골이 코앞인 테찌! 무언으로 3녀는 응원했다. 친실장이 호응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닿기만 하면 휘장이, 자유가 손 안에…….

미끄러졌다.

3녀에게는 순간 천지가 뒤집힌 걸로 느껴졌다. 트랙의 바닥에 뺨을 갈리고 나서야 자신이 낙마했음을 깨달았다. 아니, 낙마 수준이 아니었다. 친실장이 쓰러진 것이었다. 온몸을 경련시키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게 분명했다.

“마마! 마마아악!”

공포와 절망에 물들어 3녀가 울부짖었다. 안 되는데, 골이 바로 앞인데,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으면 안 되는데. 그러나 촛불에 들이치는 눈바람처럼 현실이 희망을 좀먹기 시작했다. 비록 안대에 가려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친실장은 눈을 뒤집고 있을 게 뻔했다. 단순히 피로가 누적되어 졸도했다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신체검사에서 경고했던 위험 중 하나가 지금 일어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왜 하필……!

3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상외의 상황에 흥이 오른 인간들이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뒤에서는 이제 막 마지막 장애물을 통과한 조들이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트랙에 얼굴을 문대며 모든 게 거짓말이라 외쳐댔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마치 학대파가 짜낸 악취미스러운 시나리오처럼 세상 모두가 자신들의 목을 잡고 조여 대는 것 같았다. 정말 여기서 끝나는 건가? 안 돼! 싫어!

그 순간이었다.

“데…….”

“마마?”

“데에…… 데뎁, 데브으으읍!”

친실장이 일어섰다. 모두가 소리 질렀다. 캐스터는 아예 목 놓아 외치고 있었다. 마치 올림픽에서 인간승리의 증거라 할 만한 모습을 스포츠의 이름을 빌린 도박판 위에서, 미물 따위가 재현한 것이다. 일어선 미물은 걸었다. 걷다가, 곧 다시 달렸다. 그러다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원래 실장석은 이족보행의 동물이다. 자유를 빼앗기고 강제로 네 발로 기었던 것이 다시금 일어선 것이다. 자유를 되찾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독라를 통제해야 할 기수는 오히려 어미의 등에 업히듯 목을 꼭 끌어안은 채 매달려 있었다. 애호파가 있었다면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애오파가 있었다면 기자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류가 거의 없었기에 모두들 그저 말을 잃고 지켜볼 따름이었다.

달리는 독라실장의 재갈 틈새로 피거품이 끓고 있었다. 경고가 실질적인 위험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느려질지언정 멈추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와타시는 죽더라도.’

모성애를 불태우며 독라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었다.

‘3녀만큼은 행복하게 해주는 데스.’

실장석에겐 어울리지 않다고 할 만큼 보기 힘든 애정으로 ‘질풍’은 그 마지막 바람을 몰아쳤다. 달리다가, 걷다가, 다리를 질질 끄는 그 죽음의 달리기는 바로 뒤의 조가 그들을 앞서기 직전에 골인에 성공했다. 개장 사상 첫 번째 10회 1위, 열 번째 휘장 획득의 순간이었다. 그것은 곧 이 죽음의 도가니에서의 해방을 뜻하기도 했다.

친실장은 골인을 확인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숙이다가, 안대를 쓰고 있는 걸 자각하듯 고개를 두어 번 흔들다가, 그 자리에서 엎어졌다. 안장이 박살나며 3녀가 앞으로 튕겨나갔다. 바닥을 구르며 머리가 찌그러졌지만 3녀는 개의치 않고 기어서 친실장에게로 다가갔다. “마마…….” 그러나 친실장은 한 번 고개를 들더니, 이만 파킨,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고개를 처박고는 영영 일어나지 않았다. 위석이 뼛조각에 찔려 부서진 것이었다. 비록 함께 풀려날 수 없게 되었지만, 친실장은 자신의 마지막 자를 해방시키고 자신 또한 영원한 자유를 얻은 것이다.

3녀는 고개를 들었다. 인간들이 소리 지르고 있었다. 모두들 자신들이 죽는 꼴을 보고 즐기던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한 방 날려줬다 생각하니 왠지 즐거웠다. 분충들. 그저 조그만 경멸과 함께 3녀는 골인을 알리는, 그리고 첫 번째로 탄생한 위업의 달성자를 기리는 폭죽소리를 즐겼다. 지금 막 떠난 마마가, 왠지 자신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와타찌는 자유인 테찌!”

세상 모두가 그녀를 올리고 있었다.


-에필로그-


“어째서인 테찌! 왜인 테찌! 인정할 수 없는 테찌!”

그렇게 믿었다. 조금 전까지는.

언제나 꼴찌로 들어온 조는 저 묘하게 웃는 인간에게 죽기 마련이었다. 거미줄에 앉은 거미처럼 사지를 묶어다 팽팽히 당겨놓곤, 조그만 칼로 살점을 뜯으며 시시덕대던 인분충이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질풍’ 모녀는 결코 저리 되지 않겠다고, 반드시 살아서 나가 저 닝겐의 얼굴에 투분을 해주겠다고 맹세했었다. 안타깝게도 친실장은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하고 죽었지만, 적어도 자신만은 마마의 몫까지 다 해주겠다고 벼르던 참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인간이 자신에게 찾아온 것이다. 매번 죽던 꼴찌들처럼, 자신을 다루며.

“그러니까, 실격 처리라고.”

“어째서인 테찌! 와따찌들은 분명 골인한 테찌! 마마가 목숨 걸고 와타찌를 보내준 테찌!”

“아니, 그게 문제라니까?”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열광하는 관중들, 해방의 순간을 부르짖은 게 수치스러웠다는 듯 다시 맹렬한 디스를 퍼붓는 캐스터, 옆에서 1등상인 스테이크에 머리를 처박고 우적대는 2등 조, 그리고 반짝이는 칼날. 모든 게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기 싫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편의점 봉투에 탁아되어 음식을 똥으로 바꾼 분충을 친히 적록색 얼룩으로 바꾸어주는 친절한 인간처럼, 웃는 낯의 인간은 바로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며 3녀의 세상을 부숴댔다.

“규칙은 기수와 말이 같이 1위를 하는 거잖아?”

“같이 들어온 테찌…… 마마가 목숨 바쳐 들어온 테찌!”

“아니, 시체가 들어와도 곤란하다고. 같이 보내야 하는데 죽으면 보낼 수가 없잖아. 기수와 말 둘이서 한 팀이니까.”

“테….”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사육사가 그렇게 이야기한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었다. 구더기가 물똥을 지리며 꼬리를 흔드는 것 같은 반항의 기세로 3녀는 입을 열려 했지만, 그 전에 인간이 먼저 말했다. 토시아키의 말은 그의 메스처럼 예리했다.

“그리고, 중대한 룰 위반이 또 있다고. 이건 실장‘경주’가 아니라 ‘경마’야. 어디까지나 네 발로 기어야 한다고. 그런데 감히 두 발로 걷다니, 안 되지 안 돼.”

“테, 테…….”

“안타깝네. 만약 마마가 살아 있었다면 오늘은 그냥 돌아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그런데 기수든 말이든 죽어버리면 나머지 하나는 어쩔 수가 없어. 쓸모가 없거든. 처분해야지. 운이 없다고 생각하렴.”

"이, 이럴 수는 없는 테치……."

3녀는 마마를 부르려 했다.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묶어놓은 줄이 파르르 떨릴 만큼 몸이 진동했고, 시야는 눈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미 운치까지 질질 흘리고 있었다. 주위에서 다른 조의 비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어떻게 얻은 자유인데, 이렇게 가긴 싫어. 마마, 마마!

"이럴 수는 없는 테챠아아아아악!"

“넌 아주 많이 특별한 녀석이었지. 비명소리도 좀 특별하길 바랄게.”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메스가 들어왔다. 다시 지르기도 전에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토시아키의 칼질은 예술적이었다. 그래서 비명은 처형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나서야 터졌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람들은 열광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역대급 올렸다 떨어뜨리기가 된 이번 경기는 너무나도 황홀한 구경거리였다. 감히 살아서 경기장을 나갈 거라 생각했던 멍청한 똥벌레에게 야유가 쏟아졌다.

9번에 올인한 사람들은 멍청하게 두 발로 걸은 친실장을 욕했다. 자신의 불운과 운영 측의 농간을 인정하고 항의하는 것보다는 모든 것이 실장석의 탓이라고 여기는 게 그들에겐 더 효율적인 탓이었다.

유달리 삶에 대한 열망이 강한 탓이었을까, 3녀는 토시아키의 무수한 칼질 속에서도 좀처럼 죽지 않았다. 덕분에 토시아키는 그렇게나 학수고대하던 마의 100회 칼질을 달성했다. 세 번의 칼질로 갈비살을 마저 뜯어낸 뒤에야 3녀는 죽었다. 그 예술적인 백각형의 재현에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냈다. 감격스러운 나머지 토시아키는 속옷을 적셨다.

언제나 2등을 하여 ‘은관의 제왕’이라고 비웃음을 사던 ‘콩’ 조는 드디어 감격의 첫 1위를 달성했다. 자실장은 혼자서 몸의 두 배 크기의 스테이크 조각을 연속 빵콘을 해가며 다 먹어치웠다. 냄새를 맡은 독라실장이 찌꺼기라도 달라며 다가왔지만 자실장은 그런 모친을 걷어찰 뿐이었다.

처형당하는 3녀를 가장 크게 비웃은 건 8위와 9위를 한 조들이었다. 주제넘게 앞서가려다 처참하게 죽는 분충의 모습은 너무나도 유쾌한 것이었다. 3녀의 죽음이 워낙 하이라이트였기에 그들은 다행스럽게도 이번만은 목숨을 건진 것이었지만, 원래 자기들이 올라야 할 처형대에 손짓을 하며 웃는 모습에선 그런 사실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 같았다. 가엾게도, 그들은 내일모레 있을 경기에서 처형당할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유쾌하게 웃어댔다.

오늘도 한 경기가 끝나고 두 실장석이 죽었다. 그것은 희극이고 비극이며 드라마였지만, 이 탐욕스런 도박판에서는 매일 같이 있는 일일뿐이었다.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고 신경 쓰는 이는 더더욱 없었다. 이윽고 밤의 어둠이 경기장을 뒤덮자 모든 것이 형태를 잃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끝-













근묵자흑(近墨者黑)

 

떡잎시 해바라기 공원


골판지 상자안에서 친실장이 자실장의 머리를 물로 씻어주고 있었다.

[이제 깨끗하진 데스.]

[와타시의 머리카락이 세레브해진 테치]

먼지와 오물을 물로 씻어내 깨끗해진 머리카을 만져보며 기뻐하는 자실장을 보고 미소짓는 실장석의 이름은 해피, 이름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전 사육실장이다.

"다 자라서 이제는 귀엽지 않다"는 이유로 공원에 버려진 해피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건 자를 사육실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장녀는 사육실장이 될 소질이 있는 데스. 노력을 계속하는 데스.]

[알겠는 테치]



사육실장 출신인 해피는 들실장에게 권장되는 행동과 사육실장에게 권장되는 행동이 완전하게 상충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들에게 사육실장에게 어울리는 행동거지를 갖추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답이 안나오는 분충은 솎아냈다.

머리가 나쁜 자도 솎아냈다.

공원 산책나오는 사육실장에게 아부하고 친하게 지내면서 자들에게 사육실장의 행동과 예절을 보고 배우게 했다.

깨끗한 몸가짐을 갖추게 하기 위해 솎아낸 자들의 실장복을 세탁한후 보관하면서 자실장들이 사육실장을 만날때나 인간에게 재롱을 보일때만 입게 했다.

귀한물이지만 최대한 확보해서 자들의 머리카락을 감기거고 물을 묻힌걸레(속아낸 자에게서 벗기다가 찢어진 실장복)로 몸을 닦아 깨끗하게 했다.


이렇게 노력했기 때문에 해피의 자들은 얼핏보면 사육실장으로 보일정도로 깔끔하고 예의가 발라 공원을 찾는 애호파에도 인기가 있어 애호파가 올때마다 실장푸드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장녀는 지난주에 본 여자 닝겐을 기억하는 데스?]

[아마아마한 콘페이토를 준 여자 닝겐을 말하는 테치? 기억하는 테치.]

최근 몇주동안 주말에 공원을 찾아와 장녀를 귀여워하며 "기르고 싶어라~!"를 말하던 여자를 생각하며 해피는 말했다.

[내일은 토요일인데스. 여자 닝겐이 오는 날인데스. 내일 장녀를 사육실장으로 받아달라고 부탁하는 데스.]

사육실장, 모든 들실장이 선망하는 사육실장이란 말이 나오자 장녀는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인 테치? 지금까지 와타시를 데리고 가고 싶다는 닝겐이 있었지만 마마는 거절한 테치]

[마마가 항상 말한데스. 지금까지 장녀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한 닝겐은 학대파일 가능성이 있었던 데스. 사육실장이 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위험은 최대한 피하는게 좋은데스]

해피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납득못하는지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장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 여자 닝겐을 몇주동안 관찰한데스. 여자 닝겐은 애호파가 분명한데스. 내일 반드시 장녀를 사육실장으로 만들어 주는 데스]



다음날 아침 골판지상자안에서 해피는 장녀의 머리카락을 공들여 씻고 물을 적신 걸레로 몸을 닦았다.

[이리봐도 저리봐도 장녀는 세레브한 데스. 어떤 닝겐이라도 장녀가 아첨하면 메로메로되는게 분명한데스.]

[테프픗~ 어떤 닝겐이라도 와타시의 매력으로 메로메로 한다음 마마도 길러달라고 부탁하는 테치]

장녀의 말에 해피는 미소지으며 장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장녀의 배려는 고마운 데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는데스. 마마가 원하는 것은 장녀의 행복인데스. 장녀는 장녀만 신경쓰면 되는데스.]

[하지만 마마를 버릴수 없는 테치]

보통의 들실장은 친자, 자매끼리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 배신을 일삼는데 자신을 배려해주는 착한 장녀가 해피는 자랑스러웠다.

[마마는 원 사육실장이어서 아는데스. 애호파라도 다자란 실장석을 키우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스. 키운다해도 자실장때부터 사육실장이었던 경우만인데스. 마마는 이제 사육실장이 되지 못하는데스.]

[마마....]

[구질구질한 이야기는 그만하는데스. 오늘 사육실장이 되는 장녀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 있는데스.]

해피는 보존식 상자 아래에 있던 비닐봉투 아래에서 '그것'을 꺼냈다.

[마마 이것은.....]

[그런데스. 그린이 입고 다니던 세레브한 분홍 실장복인데스.]

[이것만 있으면 백전백승인 테치!]


해피는 1주일전에 공원에서 몇번보던 사육자실장 그린이 버려진 것을 발견했다.
다른공원이었으면 들실장들의 린치를 받아 순식간의 독라 노예가 되어버렸겠지만 애호파가 자주 드나드는 해바라기 공원의 들실장은 애호파가 뿌리는 실장프드덕분에 굶주리지 않아 버려진 사육실장에게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원인 것이다.
해피도 동족식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지만 실장복은 달랐다.

그날 해피의 골판지 상자옆 운치굴에 자실장이 한마리 늘었다.




해바라기 공원 입구쪽 잔디밭, 여러 친실장이 자들을 데려와 애호파에게 보이는 사이로 분홍색 실장복을 입은 자실장이 걸어나왔다.

"어머어머 진짜 귀여운 아이네요."

"고급 사육자실장이라고 해도 믿을거 같은 아이네요"

"집에 데려가고 싶어요"

주변에서 수근거리는 애호파 사이를 뚫고 장녀는 목표로 삼은 여자닝겐에게 걸어갔다.

[지난주 만난 이후로 잘지내신 테치?]

"안녕, 오늘은 더 귀엽구나."

[감사한 테치]

이렇게 장녀가 여자와 대화하며 논지 30분, 해피는 분위기가 어느정도 오른 것을 보고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닝겐사마 와타시가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는 데스.]

해피의 말에 여자는 웃으면서 가방에서 콘페이토 봉지를 꺼냈다.

"콘페이토가 필요한가 보구나. 여기 콘페이토가 있으니 받으렴"

[콘페이토는 괜찮은데스. 와타시가 부탁드릴것은 장녀에 대한 것인데스. 장녀를 사육실장으로 받아주시는 데스.]

"그건...."

여자는 고민되는지 약간 인상을 쓰며 말을 흐렸다.

[닝겐사마가 장녀를 주의깊게 보고 계신것을 알고 있는데스. 와타시까지 키우라는 말이 아닌데스. 와타시는 장녀가 사육실장이 되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데스.]

여자는 약간 고민하는 듯했지만 결심했는지 얼굴을 펴고 장녀에게 말했다.

"네 마마가 저렇게까지 부탁하니 길러 수 있어. 그런데 사육실장이 되면 뭘해야 하는지 알고 있니?"

장녀를 사육실장으로 만드는 마지막 관물을 통과한 것을 확인한 해피는 벅차오르는 기쁨에 피눈물을 흘렸다.

[그건 와타시가 열심히 교육시킨 데스. 문제 없는데 [집안에 운치를 싸서 닝겐 노예에게 치우게 하는 테치. 공물이 마음에 안들면 닝겐 노예에게 운치를 던져서 다시 가져오게 하는 테치. 노예가 제대로 해도 운치를 던져 괴롭히며 노는 테치] 에에에에엑!!!!!!]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서 긴장이 풀어진 몸은 장녀의 폭탄발언에 순식간에 얼어 붙었다.

"이.... 이...."

썩어가는 여자의 얼굴을 보고 해피가 생각한 것은 [마라된 데스]였다.

"이딴 분충을 내게 넘길려고 한거야!"

[데갹!]

여자의 사커킥에 차여 피를 토하며 날아간 해피에게 애호파의 발길질이 쏟아졌다.

"예의바른 자를 키우는 줄알았더니 완전 분충을 키우고 있었어"

"이딴 분충에게 준 실장푸드가 아깝네."

"이딴 분충이 있는 공원에 두번다시 오나봐라!"

[마마!!]




그날밤 해바라기 공원 보스실장의 운치굴에 독라달마가 되어 처박힌 친실장은 피눈물을 흘리며 독라달마가 되어 같이 운치굴에 처박힌 장녀에게 물었다.

[장녀는 왜 그런말을 한데스. 마마가 열심히 가르친 것을 왜 따르지 않은데스!!]

[마마가 말한 테치. 사육실장 토모다치의 행동을 보고 배우라고 말한테치. 그래서 그린이 알려준대로 말한테치!]















[오마에는 배울 친구가 없어서 분충 짓하다 버려진 녀석에게서 배운데샷!!!!!!!!!!!!!!!!!]









미도리 모놀로그 (포지티브)

 

끼익. 철컥.

“테샤아아아앗! 테챠아아앗!”

문을 열면 늘 정겨운 소리가 반겨온다. 내가 돌아온 줄 알고 갓 짜낸 비명을 목청껏 지르기 시작한다. 

독라의 자실장은 힘차게 뛰쳐나와 내 발치를 두들겼다. 오늘도 역시 기운차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샤워실로 향한다.

“테엣 테챳! 테치테치! 테···.”

샤워실 문 너머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온다. 그러나 그 마저도 잠시 뿐. 물소리가 소리를 지운다.


문을 열자 부옇게 서린 김이 딸려 나온다. 아직 뜨끈한 몸. 목욕을 마치면 늘 목이 마르다. 냉장고에 뭐가 남아있더라?

“테프프프. 테챳, 테칫 테치!”

우유 밖에 없다. 우유가 딱히 싫지는 않다. 우유향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나는 그 점이 오히려 고급지다고 생각한다.

우유 특유의 목넘김은 찬물보다 부드럽다. 시원하다. 오늘 하루도 상큼하게 마무리했다.

그치만 미도리 너는 어떨까? 나는 보란듯 냉장고 문을 닫았다.

“테챠아아아앗!”


내가 냉장고에 다가서면 녀석은 꼭 쫓아온다. 뽈뽈뽈. 하지만 이 냉장고에 녀석이 먹을 음식은 없다.

녀석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그럴 수도 있지. 피곤한 건 제 몸이다.  내가 소파에 파묻혀 TV를 켜도 미도리는 빈정거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엉덩이를 뒤로 내 빼는 게 똥을 싸거나 투분을 하려는 모양이다. 으음. 쉽진 않을텐데···.

하지만 TV가 더 재밌다. 한밤에 보는 쿠킹 쇼는 왜 그렇게 재미있는건지. 야식을 먹고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참아왔는지 모르겠다.

“끄으응. 테에에···. 테츄, 테츄!”

오늘은 닭요리구나. 치킨이 당긴다.



한참이 지나 광고시간. 한 숨 돌리러 베란다로 나선다.

어쩐지 중간부터 조용하더라니 미도리는 베란다에 있었다. 녀석은 베란다 슬리퍼를 깨물고 차고 하고있었다.

“테프프픗. 테챳 테챠아아!”

자실장 한 마리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슬리퍼는 멀쩡하다. 녀석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쏘아보지만 내 바람은 담배뿐이다.

늦은 밤의 풍경은 오늘도 변치 않는다.

TV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까지 미도리는 '똥노예'에게 벌을 주기 위해 별의 별 기이한 행동을 취한다.

그러나 우리집에 녀석이 망가뜨릴 수 있을만한 물건은 없다. 기껏해야 냉장고 안의 음식들 정도일까.

한 뼘에 그치는 몸으로 부릴 수 있는 똥노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

내가 잠자리에 들 즈음이 되어 녀석은 지쳐서 거진 울상을 짓는다.

“테에에에···. 테에에엥.”

녀석은 결국 알람을 세팅하는 나에게 매달려 때를 쓴다. 아니, 저건 억울한 표정이다. 열심히 관심을 갈구해 온 자신을 보라는 듯···.

그러나 나는 대꾸없이 침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망연히 나를 올려다 보는 미도리의 얼굴에 복잡한 주름이 진다.

침실은 조용하다. 문이 어찌나 두꺼운지 닫아두면 홀로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듯 하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는 수면의 스파이스에 그치고 만다.



삐-익···.

아날로그 알람을 쓰는 건 오래된 버릇이다. 무미건조한 소리는 잠결에 듣더라도 감정이 상할 겨를이 없다.

스탠드 곁의 시계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침실 문짝의 무게가 한 팔에 실린다. 다시 세상으로···.

우리집에 오고 나서 미도리는 아침잠이 늘었다. 내가 처음 미도리를 만난 건 이보다 이른 시각이었다.

미도리는 소파 밑의 한 구석에서 웅크려 자고있었다. 나는 미도리를 잡아 흔들어 깨웠다.

“테에···? 테에···. 테샤앗!”

활기찬 반응이다. 그럼 아침을 먹어야겠지. 냉장고에서 특제 콘페이토 한 알을 꺼냈다. 물론 음식은 아니다.

이건 음식은 아니고···. 내 손안에서 미도리는 거세게 발버둥 친다. 늘 이 모양이다. 그치만 아침을 거를 수는 없다.

“텟···! 텟! 쿠아아···.”

입에 손가락을 쑤셔 넣는다. 주둥아리를 고정시키고 '콘페이토'를 밀어넣었다. 자, 넘어가라···.

내려놓은 미도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신음을 흘렸다. 오늘도 다르지 않다. 나를 보며 애원하는 미도리.

“테에에. 테챠! 테에에에엥.”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건 미도리가 나와 약속한 일이니까.

나는 바닥을 서성이던 녀석을 베란다의 수조로 옮겨왔다. 미도리는 계속해서 신음을 토한다.

좋아. 수조 안에는 변기 대용의 페트병을 마련해놨다. 총구를 페트병에 겨누고 미도리의 배를 세게 누르면···.

“테챠아아아아앗···!”

봉인해 둔 총구의 마개가 빠지며 똥이 쏟아진다. 후우. 어차피 할 일인걸. 얌전히 스스로 해결하면 좋으련만.

페트병 꼭대기에 앉은 미도리는 쾌감과 고통이 뒤섞인 미묘한 표정을 짓고있다. 테츄흐헤 거리는 게 링갈을 쓰더라도 번역은 되지 않을 듯 하다.

그러나 내가 새 마개를 들이밀자 녀석은 정신이 드는지 다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뒤집어 얼굴을 페트병에 박아넣는다.

허공을 헤매는 양 다리 사이로 총구가 보인다. 손가락을 브이자로 벌려 다리를 고정시키면 나머지는 간단하다.

“···!”

알 수 없는 울림이 페트병 안을 맴돈다. 마개는 깔끔하게 총구를 틀어막았다. 미도리를 잡아뽑자 잠시 몸서리 치더니 화가 난 듯 팔을 휘젓는다. 붕쯔붕쯔?

나는 미도리를 수조 밖에 내려놓았다. 슬슬 나도 식사와 출근 준비를 해야한다. 챠악, 챠악 소리를 배경삼아 후라이팬을 튕긴다.

흠흠, 계란값이 금값이라지만 아침상에 에그 스크램블을 뺄 수는 없다. 달걀을 휘휘 젓는 동안 조미료를 꺼내둔다.

스크램블에 케챱을 뿌린다. 케챱이 쭉쭉 빠지는 게 미도리의 아침일을 연상시켜 가끔 기분이 상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식빵은 굽지 않는다. 사소한 취향이다. 베이컨도 굽는다.

이렇게 내가 공을 들여 아침밥을 차리고, 테이블에 앉으면 미도리는 씩씩 성을 낸다. 그러고는 역시나 내 발을 후드려 팬다.

그러나 금세 제 풀에 지쳐 쓰러진다. 아침부터 열심이다. 미도리의 진짜 아침밥은 내가 식기를 설거지 통에 놓고 난 뒤에야 주고있다.

내가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시킬 때면 녀석은 은근히 기대하는 듯 하다. 테프픗 하고 비웃으며 투분할 준비를 한다. 물론, 마개가 단단히 막고있어서 곧 울상을 짓는다.

요리는 마지막 낱알 하나마저 내입으로 들어간다. 그야 요리는 사람이 먹는거니까. 내가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이면 미도리는 격한 기분을 드러낸다.

보통은 심하게 당황하거나 화를 내거나 한다. 하지만 녀석의 식사는 바로 이것 뿐. 정수기 옆에 쌓아둔 염가 실장푸드다. 싸게 덤핑 판매하는 걸 구매해뒀다.

페트병 뚜껑에 적정량을 담아서 준다. 처음에 실장푸드를 먹이려 들었을 때, 녀석은 푸드를 집어 던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치만 이제는 노하우가 생겼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요법은 실장석에게도 충분히 먹혔다. 간단하다. 푸드를 집어 던지는 경우 이틀 정도 밥을 굶기기를 여러 번 반복하니 적어도 푸드를 던지지는 않게되었다.

그래도 푸드만이 미도리가 못 된 장난을 칠 수 있는 유일한 물품이기에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곤 있다. 예를 들어···.

간단하게 아침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미도리는 여전히 허겁지겁 푸드를 삼키고 있다. 하지만 이제 땡, 타임오버다. 나는 페트병 뚜껑 째 푸드를 빼앗는다.

반항도 잠시, 미도리는 싱크대 개수대로 버려지는 푸드를 지켜 볼 수 밖에 없다. 미도리의 식사시간은 내가 샤워를 하는 틈 뿐이다.

물론 내 기분에 따라 샤워는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한다. 뭐, 그래도 큰 문제는 없다.

내가 현관을 나서려 하자 미도리도 배웅을 나온다. 뽈뽈뽈 걸어나와 인사를 한다.

“테샤아아앗! 테챠 테샤아아아앗! 텟···.”

문을 걸어 잠글 때까지 미도리의 마중은 계속됐다. 나도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출근 길에 오른다.


미도리와는 두 달 전에 만났다. 수 개월 전, 나는 백수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큰 마음을 먹고 운동과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그 무렵의 마음가짐이 유지되어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고 미도리는 그 시절의 침전물이다.

이른 아침의 조깅은 나의 일과였다. 지금의 출근 시간보다 이른 시점에 나는 늘 집 앞의 공원의 가장자리를 달렸다.

그리고 한껏 달린 뒤, 골인 지점에는 편의점이 있어서 나는 종종 음료수를 사서 마시곤 했다. 그 편의점 입구에 미도리가 있었다.

정확히는 녀석의 일가가 있었다. 도대체 왜 그 이른 시간에 편의점을 서성였는지 아직도 미스테리지만 분명 탁아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 돌연 색다른 마음이 일었다. 긍정의 기운이 충만하던 나는 실장석이라도 길러볼까 하고 전에는 없던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데리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 중 기세 좋게 소리를 지르던 미도리를 골라들고 집으로 향했다.

내 손이 다가갈 때 일가는 한 껏 기대를 부풀렸는지, 내가 미도리만을 낚아채고 돌아가자 거센 소리로 짓걸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안면이 있던 편의점 알바가 시끄럽던 일가를 치워버렸다고 한다. 미안함에 그 친구에게 비싼 커피우유 한 팩을 사준 기억이 난다.

하여간 미도리는 우리집에서 살게 됐다. 처음 우리집에 들게 된 미도리의 처우는 지금과 달랐다.

미도리가 미도리로 불리기 이전에 녀석은 수조에서 살았다. 베란다에 둔 그 수조가 맞다.

실장석을 집에서 기르는 건 처음이었지만 녀석들의 악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조깅 중에 몇 번 마주치기도 했고···.

일부러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던 무렵이었기에 나는 실장석이 똥을 싸거나 물건을 어지럽히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수조를 썼다.

물론 녀석은 곧바로 성질을 부렸다. 처음으로 스마트폰 링갈을 처음 사용해 본 것도 그때였다.

「테챠아아앗! 와타치를 꺼내는 테샤아아앗! 이딴 거 말고 똥노예는 우마우마한 스테이크와 스시를 내놓는 테챠아아앗!」

수조를 팡팡 두들기며 내는 역정은 대체로 그런 내용 뿐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놀라운 뻔뻔함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실장석에게 질리기보단 즐거운 기대를 품었다.

나쁜 행동을 앞으로 개선해 나간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오히려 뻔뻔하게 날뛰는 모습이 가소로워 언제까지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녀석에게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점차 사회의 양지로 나아가는 나와 달리 녀석은 수조 안에서 분에 넘치는 요구만을 늘어놓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 날의 일을 뒤돌아보면 가끔 쓴웃음이 난다. 과거의 나를 미도리에게 투영하며 수조에 가둬두는 건 정말 소심한 정신승리였다는 생각이 들기에···.

그렇지만 그건 이미 지난일이다. 미도리는···. 아, 미도리는 미도리라는 이름과 더불어 저 나름의 자유를 얻었다.

취직이 결정 된 날 나는 링갈로 미도리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기분이 어떠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 테츄? 멍청한 똥노예가 뭘 실실 웃는 테챠아앗! 어서 와타치를 좁은 곳에서 꺼내는 테챠앗!」

「와타치는 이딴 곳에서 살고싶지 않은 테챠앗! 어째서 똥노예인 오마에가 넓은 방을 쓰고 세레브한 와타치가 이딴 곳에만 있어야 하는 테츄? 말도 안되는 테챠아앗!」

말을 마치기 무섭게 녀석은 투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조 벽에 똥이 가로막히는 모습을 보고 열이 뻗히는 지 발악은 더욱 심해졌다.

「테캬아아아악! 오마에 죽여버리는 테챠아아앗! 지금이라면 콘페이토를 내놓는 것으로 용서하는 테챠아앗! 똥노예는 어서 내놓는 테챠앗!」

그러나 그 시절도 지금도 우리집에 콘페이토는 없다. 지금이라면 콘페이토 닮은 게 있긴 하다.

미도리와 대화를 하던 당시 나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오랜 염원이던 취직을 이루고 방방곡곡이 기쁨을 나누던 참이었다.

나는 미도리에게도 자그마한 행복과 충분한 기회를 나눠주기로 했다. 

“너도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거지?”

「이제야 알아듣는 테츄? 테프프프, 정말 멍청한 똥노예인 테치. 우선 여기서 와타치를 꺼내주는 테챠앗.」

“하지만 그냥은 안되겠는 걸.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노력을 해야 해.”

「테에···? 그건 또 무슨 헛소리인 테샤앗!」

“나도 행복해지기 위해 매일 같이 노력해 왔다고, 그렇지만 너는 벌써 들실장에서 사육실장이 되는 행복을 누렸잖아?”

「와타치는 그 전까지 노력한 테챠! 오마에는 와타치를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하는 테치. 어서 와타치를 내보내는 테챠아아앗!」

“싫어.”

「테챠아아아아앗!」

녀석은 표정을 한껏 구기며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솔직히 저기서 대화를 포기하지 않은 나도 대견하다.

그 시점에 나의 호기심은 답답함을 이기고 있었다. 아마도.

쒸익. 쒸익. 미도리가 분을 삭여 한 풀 꺽여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대화를 시도했다.

“거봐. 그렇게 화만 내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

“풋···.”

온 얼굴을 벌름거리며 화를 참는 모습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그것이 미도리의 분을 더 부추겼지만 녀석은 이미 충분히 지쳐있었다.

말을 아끼고 있자니 미도리가 먼저 말을 걸었다.

「도대체 와타치가 어쩌란 말인 테츄.」

“성의를 보이라는 말이지. 그런 다음에 너가 원하는 걸 말해봐.”

미도리는 다시 부들부들 떨었다. 또 한참 뒤에야 미도리가 말을 꺼냈다.

「···똥노예가 와타치를 행복하게 하는 건 당연한 테츄.」

“그건 안돼. 그럼 그 수조 안에서 영원히 갇혀있던가.”

「···.」

“너가 결정을 못하겠다면, 좋아. 이런건 어때? 나는 네가 집안을 어지럽히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너를 자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어.”

「테에?」

“물론 그럴 수 있도록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지만.”

「그거인 테츄! 그렇게 하는 테츄! 똥노예는 어서 와타치를 밖으로 꺼내는 테츄!」

“너 제대로 알아듣기 한거야?”

「와타치를 꺼내면 그렇게 하는 테츄!」

“정말로 그렇게 할거야?”

「테챠아아앗! 몇 번을 말하는 테챠! 똥노예는 대체 얼마나 멍청한 테챠아아앗!」

“정말, 정말로 그렇게 할래?”

「테에캬아아아악 죽고싶은 테챠아아아앗!」

“좋아 그러면 내일부턴 그곳에서 꺼내줄게.”

내가 꺼낸다는 말을 꺼내자 녀석은 저열한 웃음을 흘렸다. 하루 종일 테프프프 거리는 소리가 멎지를 않았다.

푸드를 주려 수조에 다가가도 해냈다, '이겼다' 하는 듯한 초승달 눈을 하고 있었고, 푸드조차 먹지 않았다.

아마도 수조에서 나가면 모든 것은 해결될 거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나를 부려 원하던 스테이크와 스시라도 먹으려고 생각했나.

미도리가 잠들기 전에 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그래. 그리고 너는 이제부터 미도리야.”


이른 저녁에 미도리는 기쁨에 겨워 잠들었다. 미도리가 잠들었을 때 나는 미도리를 방에 풀어놓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더러워지기 쉬운 옷을 벗겼다. 깨지 않을까 싶었지만 녀석은 곤히 잠들어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난리가 나겠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총구를 마개로 처음 틀어막은 것도 그 날이다.

아마 그 쯤이 것이다. 어렴풋이 짜증과 분으로 날뛰는 녀석의 모습에 미미한 감정이 일기 시작한 것은···.

그야말로 볼만 한 꼬락서니였다.

실장석의 주제넘은 행동을 보고 녀석들을 학대한다는 사람들도 있는듯 싶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야 말로 극상의 엔터테인먼트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날로 우리집은 미도리의 무대가 되었다. 나는 최소한의 규칙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미도리에게 부가하지 않았다.

물론 대화도. 미도리가 그 이름으로 불린 건 그 날로 마지막이다. 대화할 일이 없었다. 링갈도 켜지 않았다.

여러 면의 개조를 마치고 나는 새로운 나날을 맞이했다. 

아침, 미도리는 약속대로 수조 밖에서 깨어났다. 녀석은 자신의 몸을 더듬다가 새삼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거추장스러운 머리털도 모조리 잡아 뽑아야 한다. 아무래도 자는 틈에 머리털을 뽑는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정당한 계약이란 양자가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집행되는 게 옳은 것 아니겠는가.

“테챠아아아악! 테챠아아아앗!” 

이제는 익숙한 거센 울음도 당시에는 더욱 싱싱하게 들렸다. 내가 머릿털을 모조리 잡아 뽑자 미도리는 한 동안 패닉에 빠졌다.

“텟···. 텟···. 테에에에엥.”

하지만 진정한 패닉은 한참 뒤에나 찾아왔다. 일을 마치고 커피를 즐기려는 나에게 미도리가 다가왔다.

커피향이 코를 찌르고 미도리는 태도를 달리했다. 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무언가를 소리치기 시작했다.

“테치 테치, 테챠아앗! 테챳!”

하지만 시고 씁쓰름한 향이 혀에 베어있는 동안 나는 테이블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얼마 안가 미도리는 총구를 뒤로 내밀고 투분을 하려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미도리는 난생 처음 느끼는 부자연스러운 감촉에 몸을 베베꼬며 까무러쳤다.

그러다 분노로 거품을 물더니 쓰러져 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티타임을 마치도록 미도리는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잘 알고있다.

그 증거로 아직까지 잘 살아남지 않았는가?

미도리의 기막힌 모놀로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미도리가 나를 반긴다. 눈에 띄게 마른 미도리의 울음은 점차 쇠해간다.

그런 미도리를 위해 오늘은 선물을 마련해봤다. 

“테에···. 테츄?”

말끔한 자실장이 케이지를 빠져나온다. 녀석은 새로운 환경을 둘러보며 가벼운 감상을 내뱉었다.

미도리가 오랜만에 얼빠진 표정을 보여줬다. 새 친구의 등장에 적잖이 놀랐나보다.

새로온 자실장도 독라를 보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먼저 마음을 연 건 기존 입주자 쪽이었다.

“테캬아아아악!”

미도리는 금세 적의를 드러냈다. 새 친구의 말끔한 옷을 시기하는 모양인지 소매를 붙잡고 늘어졌다.

“테에에엥! 테에에엥!”

자실장은 울며 내 품으로 달려든다. 나는 녀석을 안아 테이블 위로 올려줬다. 미도리는 이제 나에게 적의를 쏟으며 씩씩거렸다.

테이블에 올려 둔 자실장은 테츗거리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오랜만에 링갈을 켰다.

「쮸인님 저 독라는 무서운 테츄···. 와타치의 소중한 옷을 빼앗으려고 하는 테츄. 무서운 테츄. 테에엥.」

「내려오는 테챠아! 똥벌레는 내려오는 테챠! 오마에를 독라로 만들어서 운치굴에 쳐넣는 테챠아아앗!」

“저 친구가 무섭니?”

「그런 테츄···. 쮸인님 와타치도 독라가 되는 테츄···?」

“아니, 꼭 그런건 아니야.”

나는 새 녀석에게 미도리와의 약속을 이야기했다. 독라는 미도리의 요구에 따른 합당한 조치라는 점. 꼭 미도리와 같은 요구와 대가를 치룰 필요는 없다는 점 등.

「와타치는 쮸인님이 원하는 대로 하는 테츄. 독라는 되고 싶지 않은 테츄.」

나는 녀석을 향해 끄덕였다. 생각보다 예절 바른 개체인듯 하다. 실장샵을 둘러보다 우연히 얌전해 보이던 이 녀석을 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녀석을 보니 미도리와의 대조가 꽤나 즐거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 외로 미도리의 새 친구는 겁이 많아 보인다.

그건 별로 상관 없다. 어차피 둘을 같은 공간에 둘 수는 없다. 그랬다가 서로 싸워 무슨 난장판을 벌여 놓을지 알 수 없다.

나는 안전부절 못하던 녀석을 새 수조에 넣었다. 미도리는 수조의 아크릴을 꿰뚫어보며 새 친구에게 조소를 날렸다.

「테프프픗. 오마에같은 똥벌레는 거기가 어울리는 테츄. 고귀한 와타치가 가끔 구경오는 테츄.」

「···. 무서운 테츄. 무서운 테츄.」

새 입주자는 이전의 자신처럼 수조에서 살아간다. 미도리는 자신보다 불쌍한 처지에 있는 자실장을 보고 만족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미도리의 조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 일은 저녁에 터졌다.   

불안에 떠는 새 녀석에게 나는 콘페이토를 주어 달랬다. 더불어 변소나 따뜻한 헝겊 같은 걸 수조에 넣어줬다.

자실장은 조만간 만족스러운 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텟테로게, 텟테로게···.」

노래를 계기로 미도리는 수조에 신경을 쏟기 시작했다.

콘페이토를 받아든 새 친구를 보고 녀석은 비웃는가 싶더니, 그것이 진짜 콘테이토라는걸 깨닫고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조의 자실장은 미도리를 등지고 앉아 사탕의 달콤함을 즐길 뿐이었다. 새 녀석이 보이는 성찬의 기쁨이 점점 미도리의 신경을 긁었다.

미도리는 수조를 두들기고 위협하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미도리를 무시하고 수조에 말을 걸었다.

“새집은 마음에 드니?”

「마음에 드는 테츄. 쮸인님 고마운 테츄. 콘페이토 맛난 테츄. 아마아마한 테츄!」

“다행이다. 혹시 싫어하지는 않을까 걱정했거든.”

「그렇지 않은 테츄! 와타찌는 좋은 쮸인님을 만나서 행복한 테츄.」

「똥닌겐! 와타치에게도 콘페이토를 바치는 테챠아아앗!」

참지 못한 미도리가 결국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수조 안의 녀석도 나도 눈길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새 녀석도 분충성 다분한 미도리를 철저히 무시하려고 마음먹은 듯 냉랭한 태도만을 보였다.

그런 둘의 모습에 나는 장난끼가 동했다.

“좋아 그럼 너에게 이름을 붙여줄게.”

「테에? 이름 테츄?」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미도리야. 너를 부를 땐 미도리라고 부를게.”

새 녀석의 얼굴이 환해졌다.

「와타치 기쁜 테츄. 와타치가 미도리인 테츄! 주인님 잘 부탁하는 테츄!」

그 장면을 독라의 미도리는 똑똑히 보았다. 미도리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똥닌겐···! 어째서 저 녀석이 미도리인 테챠아앗! 미도리는 와타치인 테챠!」

「그럴 수는 없는 테츄! 와타치가 미도리일 터인 테츄! 왜 저 녀석이 미도리인 테츄! 똥닌겐···! 아니, 닝겐상! 닝겐상···!」

「닝겐상 미도리의 말을 듣는 테츄···. 와타치 미도리인 테츄···.」

미도리의 절규를 나는 무시했다. 녀석은 패닉에 빠져 수조 곁을 떠나지 못했다. 새 미도리는 행복한 표정으로 천가지를 끌어안았다.



하룻 저녁의 파란은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냈다.

수조 밖의 미도리는 한동안 공손한 말씨로 나를 불렀다. 전에는 한 번 입에 담은 적 없던 미도리라는 이름에도 집착하기 시작했다. 

「닝겐상 미도리도 콘페이토 주는 테츄···. 와타치도 우마우마 먹는 테츄···.」

물론 수조 밖의 미도리가 얻은 건 특제 콘페이토였다. 콘페이토를 받아든 미도리는 모호한 표정으로 사탕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콘페이토를 핥기 시작했다.

「와타치도 주···주인님에게 감사하는 테츄···.」

녀석은 그것이 사탕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도돈파의 감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녀석은 며칠이 지나도록 자신을 기만했다. 유일하게 내가 관심을 가져주는 시간인 아침엔 더욱 신경써서 애교를 부렸다.

「닝겐, 아니 주인님 오늘도 우마우마한 테츄···.」

미도리의 눈물 겨운 연극에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미도리의 변화는 정말 갸륵했다.

그러나 나는 미도리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실장석의 행동을 겉으로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러는 편이 미도리가 또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리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미도리가 스스로 콘페이토를 받아 들게 된 이후로 한동안 나는 그것을 직접 쑤셔 넣을 일이 없게 되었다.

단지 나는 근처에 서서 미도리가 스스로 도돈파를 핥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날은 조금 달랐다.

늘 그랬듯이 콘페이토를 넘겨받은 미도리는 한참을 서있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와타치 돌아가고 싶은 테츄. 와타치도 수조에 넣어주는 테츄. 이제 싫은 테츄···.」

처음으로 들은 녀석의 항복 선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얕은 꾀거나. 그러나 녀석은 수조에서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은 기이 없을 터였다.

나는 미도리의 말을 못들은 채 했다. 무시당한 미도리는 분에 떨며 다시 내게 말했다.

「···도대체 왜, 왜! 와타치를 데려온 테츄! 와타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테츄! 똥, 닌겐···!」

「와타치는 분명 사육실장이 되면 세레브한 옷도 입고, 우마우마한 스테이크와 스시를 매일 먹을 수 있다고 들은 테츄. 근데 어째서 와타치는 행복할 수 없는 테츄!」

「와타치도 저 녀석처럼 행복하고 싶은 테츄. 똥닌겐이라면 그건 간단한 일일 테츄! 와타치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 테츄! 제발 뭐라도 말을 해보는 테츄···.」

미도리는 한참을 항변했다. 세상에 미도리가 말한 행복의 조건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미도리의 처지는 제 자신의 과오에 불과하다. 얕은 불행의 기준을 넘나드는 일도, 넘치는 행복의 기준을 세우는 일도 모두 미도리의 업보다.

나는 간단히 미도리에게 우리의 약속을 상기시켜주었다.

미도리는 그치만, 그치만을 반복하며 억울함을 표했다. 그러나 결국엔 과거의 자신을 저주 할 수밖에 없으리라.  

물론 실장석의 사고는 그만큼 고등하지 않으니 말문이 막힌 미도리의 반응은 뻔한 일이었다.

「똥닌겐···! 죽여버리는 테챠아아앗! 죽여버리는 테챠아아앗! 와타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마에를 죽여버리는 테챠아아앗!」

나는 깊은 증오를 세기는 미도리의 입에 콘페이토를 쑤셔넣었다. 미도리는 피눈물을 흘리며 이전 처럼 고압 도돈파를 억지로 삼켜야만 했다. 


그 뒤로 미도리는 정말 괴상해졌다.

하루는 수조에 머리를 거세게 박았다. 또 다른 날에는 푸드에 입을 대지 않았다. 언젠가는 높은 곳에 올라 한참 방바닥을 응시했다.

녀석은 죽을 작정이었다. 한 때, 수조 곁을 서성이다가 새 미도리에게 '독라 못생긴 테츄.' 소리를 들은 녀석은 이전의 격노를 되찾기도 했지만 잠시 뿐이었다.

그 모습 또한 우스운 일이었다. 미도리는 자살하지 못한다. 그런 생물이기 때문이다.

녀석의 생사여탈권은 제 자신에게 있지 못하다. 실장석은 스스로 죽을 능력이 없다.

실제로 미도리는 죽을만큼 높은 곳에 오르지도 못했으며, 죽을만큼 굶지도 못했다. 겁쟁이처럼 죽는 흉내를 내고 말았을 뿐이다.

꼴사나운 모습을 지켜본 새 미도리는 가끔 나에게 「쮸인님, 독라가 죽을거 같은 테츄.」하고 경과를 알려왔지만 한사코 미도리가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수조를 나오던 날부터 미도리의 위석은 공원 앞 편의점에서 사온 오로나민씨에 잘 절여져 있으니까.

오늘도 미도리의 모놀로그는 계속된다.

녀석이 죽지못해 사는지, 살지못해 죽으려 하는지 깊이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어느 펫숍의 재고 처리법

 

z펫숍의 주인장은 이마를 감싸쥐고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지.


얼마나 썼더라.


350만원.


아니지 공임하고 원천기술, 금영 값까지 하면 700정도 던가.


아니지 700이 무어야 생각없이 특허까지 내버린 바람에 1000만원 정도는 쓴 듯 했다.


체인점까지 낼 수 있는게 아닐까 싶었을 정도로 번뜩였던 아이디어는 멀고 먼 시장경제를 빙하고 한바퀴 돌아 주인장의 뒷통수를 강하고 치고야 말았다.


멍하니 턱을 궤고 수북히 쌓인 재고를 바라보던 주인장은 홀로 탄식했다.


- 실장석들에겐 행복을, 주인들에겐 안심을.


자신도 모르게 박스에 새겨진 로고를 따라 읽는다. 그리고 자조적으로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리저리 고민해보았지만 방법은 이것뿐이지 싶었다.

여기저기 돈을 너무 많이 당겨써서 당장 다음달부터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 와 사장님 오셨다!

- 어서 어서 오세요~


z펫숍 사장의 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z공원 입구에서 신나게 손을 흔든다.

겨울을 앞둔 시점에서 공원의 들실장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자원을 제공하는, z펫숍의 사장이 나서서 만든 자원봉사 모임이었다.

그래도 실장석으로 밥벌어 먹는 자신의 위치도 있거니와, 사정상 반드시 참여해야하는 부분도 있기에 무리를 해서 물건을 챙겨온 것이다.


- 우왁... 사장님. 이... 이렇게나?

- 사료 봉지 몇개 준비해온 제 손이 부끄럽네요..

- 힘든 시기니까요. 조금 무리해서 마련해봤습니다.


실장 한가구당 하나의 물품박스를 준비해온 z펫숍 사장의 큰 배포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만다. 이 정도를 마련하려면 가게가 휘청할 정도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대충 들어보아도 가벼운 주전부리 수준이 아니라 묵직하다.


- 너무 무리하신 것 아니에요?

- 지금이야말로 무리해야할 때죠.


z펫숍의 사장이 싱긋 웃으며 박스를 내리자 그 미소에 힘이난 자원봉사 인원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차에서 물건을 이어받는다.

모두의 얼굴에 환한 미소.

베푸는 자의 우월감이니, 다른 공원이용자들의 피해를 의식하지 않는 자기만족적이고 이기적인 행위이니 하지만 결국은 좋아하는 것을 지키고자 하는 자아의 성취에 중점이 있다.

겨울을 앞둔 어려운 시기, z펫숍의 사장이 내어준 큰 배포에 사람들의 마음이 의욕으로 가득차 오른 것이다.



가을에도 본 익숙한 얼굴들과 반가운 물건들, 맛나맛나한 음식들.

들실장들이 슬슬 봉사인원에게 모여든다.



공원의 수도도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이 중지되었고 얼어붙은 땅 때문에 운치 처리도 제대로되지 않아 모양이 말이 아니다.


흰색인 부분보다 초록색인 부분을 찾는게 더 빠를 앞치마라던지, 롤 모양 그대로 버석버석 떡이 진 머리. 침자국이 굳어 버짐이 된 얼굴과 찐득거리며 안쪽 허벅다리에 달라붙는 녹색 속옷.


다만 모두 초췌하고 굶주린 표정이었다.


간절한 그 표정에 모두들 잠깐 얼굴이 굳었다가 다시 화악하고 펴진다.


'도와야 한다.'


저 이상 저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려선 안된다. 하고 말이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처음으로 손을 내미는 이가 좀 드물다. 사료와 사탕을 눈처럼 뿌려줄 것이라던 여자 회원이나, 보온제를 박스에 채워주기 위해 가져온 청년들 모두 마찬가지다.


- 겁먹을 것 없다. 추위에 지쳐보이는구나. 배도 고파 보이고.


z펫숍 사장이 먼저 말문을 연다. 손에 어느 정도의 사료를 쥐고 무릎을 낮춰 실장석 한가족을 불러본다.

경계심이 남았는지 꽤 잘 참는 모습이었지만, 사장이 사료를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하거나 수건이 따듯하다며 볼에 부비거나 하자 어느 정도 다가오기 시작한다.


- 먹을 것이 너무나 빨리 떨어진 데스.. 바닥에 깔아둔 낙엽도 금새 부스러져 추워추워한 데스..

- 그래.. 가혹한 계절이지. 어디보자, 뭐가 좋을까.


사장이 비장의 박스를 꺼내어 든다. 아직 회원들조차 열어보지 않았었기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 자. 박스 바닥에 꼭 맞을 쿠션이다.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줄거야.

- ...데...!


콧물을 주르륵 흘리며 휘둥그레해진 눈으로 쿠션을 쳐다보던 친실장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자신보다도 자들이 말이다. 얼음바닥 위에서 자는 느낌일진데,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얼마나 겁이 났을까. 누구 하나 얼어죽은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쿠션을 꼬옥 하고 안아 얼굴을 뭍은 채 눈물을 흘리는 친실장 옆에서 엄지 하나가 비죽 모습을 드러낸다.

많이 야윈 모습이다. 젓가락 만도 못한 팔두께. 식탐의 종족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가는 모습. 사장은 박스에 다시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 내민다.


아직도 조금은 겁이 나는지 움찔하고 엄지가 굳는다.

그리고,

이내 얼굴에 화안한 미소가 퍼진다. 장난감 공이다. 그것도 엄지가 아주 좋아하는 분홍색. 그것을 들고 자실장 언니들을 돌아보자 모두가 공을 얼싸안고 뒹군다.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쿠션에 고개를 박고 울고있던 친실장이 돌아보고는 빙긋이 웃을 정도로.


- 이것도 받으렴. 쿠션만으론 안돼.


박스에서 제법 두꺼운 수건을 꺼내어 친실장에게 넘겨준다. 쿠션만으로 한품이 가득 찼기에 목에다 두번 정도 둘러서.

그 놀라운 온기에 친실장의 눈이 희망으로 가득찬다.


이 정도면 괜찮은 데스!


이 정도로 따듯하다면 올 겨울을 넘길 수 있는 데스!



그런 희망의 빛이 환히 보인다.

그때 사장의 얼굴이 장난스레 엄숙해진다.


- 에잇! 이 집 장녀는 누구야! 엄마만 짐을 들게 할셈인가!

- 테히... 와타치인 테치!


깜짝 놀라 튀어나온 장녀는 제법 몸집이 있다. 아쉽게도 겨울이 오기전에 중실장을 졸업하지 못한 모양이다. 먹성이야 이미 성체실장 정도였을테니 친실장이 얼마나 힘들었을지야 짐작이 간다. 물론 그럼에도 단 하나의 가족도 버리지 않은 그 모습이 기특하지만 말이다.


- 자 이것과 이걸 받으렴.


실장석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형이 마법소녀 테치카 인형과 요술봉, 그리고 고열량의 사료를 건내준다. 짓소컴퍼니에서 실장석들의 간호식으로 만든 맛과 영양이 풍부한 훌륭한 것이다.

조금 단단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부수어서 나눠 먹다보면 겨울 쯤이야 문제 없이 넘길 수 있다. 단단할만큼 건조된 것이기에 상할 염려도 적고 말이다.


그렇게 박스 안의 물건을 모두 전달받은 가족은 서로를 꼬옥 한번 얼싸 안았다.

그것을 지켜보던 사장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가족으로써 파탄 직전이었을 것이다. 인간이나 실장석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부족하고 모자라고 궁핍하면 그 가정엔 금이 간다. 그리고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로를 탓하고 미워한다. 결국엔 파국.


하지만 지금 이들은 다시금 희망을 찾았고 그것을 통해 다행히도 끈끈히 뭉쳐졌다. 저 말 없는 포옹이 얼마나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사장은 조금 미안해질 정도였다.


이내 그 눈빛을 마주한 실장일가는 사장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서둘러 집을 향해 뛰어 사라졌다.


- 녀석들, 고맙단 인사는 좀 더 후하게 해도 좋을텐데.

- 아니 됐네. 친실장은 어서 집으로 돌아가 바닥엔 쿠션을 그 위엔 수건을 덮어 아이들을 따듯하게 해주고 싶어 마음이 급할 것이고, 자들은 장난감에 정신이 팔리고 맛난 음식에 허기가 돌아 그럴 정신이 없을거야. 이거면 됐네. 이거면 됐어.


멍하니 실장일가를 응시하는 사장의 뒷모습을 보며, 자원봉사자들은 가슴의 뭉클함을 느꼈다. 박스 안을 가득 채운 물건들 모두 그들에게 정말이지 간절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 또한 실장석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에게도 전달됐음은 당연했다.


- ....대단하세요 정말.


- 내가 무얼. 자 어서어서 나눠주세. 어느새 많이들 모였구만.


일가가 나누어받던 물품을 부러움으로 지켜보는 공원의 실장석들이 어느새 전부 모습을 드러냈다.

혹여 질투에 먼저간 일가에게 피해가 생길까 우려한 사장은 서둘러 스피커를 켜고 실장석 가족들을 일사분란히 줄세웠다.

물건들은 모두에게 돌아갈만큼 충분하며 올겨울도 싸우지 말고 행복하고 풍족하고 지내달라고 전한다.


오래간만에 받은 친절에 수건을 받아들고 눈물을 터뜨리는 친실장, 자신보다 조금큰 테치카 인형을 들고 낑낑대면서도 신이 난 엄지, 이미 봉투를 열어 사료의 맛을 음미하고 있는 욕심쟁이 자실장들의 얼굴에 활짝 핀 웃음꽃.

많은 감정들이 겨울,  z공원의 풍경을 수놓는다.

















그날 밤, 그날을 처음으로 생긴 도메인의 쇼핑몰에는 아주 많은 손님이 물 밀듯 밀려들었다.

별다른 상품은 판매하지 않는, 오히려 의아한 상품만이 즐비한 단촐한 쇼핑몰이었는데

썸네일에는 아기자기한 테치카 인형이나 장난감공, 푹신해보이는 작은 쿠션들, 조금 두꺼운 수건 등이 있었지만 정작 들어가서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은 오로지 해당 상품의 '내부에 들어있는 GPS' 칩으로 그 물건들을 추적할 수 있는 액정 레이더 뿐이었다.

매상이 잘 나오진 않을 법한, 내용물 없는 샌드위치를 파는 듯한 쇼핑몰이었지만 상품들은 금새 매진 마크가 달렸고,

모든 상품이 소진되었음을 알리고 도메인을 닫은 z펫숍 쇼핑몰 주인의 주머니는 다시금 두둑해 졌다.

관련 물품으로 굳이 금속 바나 꼬챙이, 전기 충격기 등등을 팔 필요는 없었겠지.

이미 모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구입했을테니까.



배송이 완료된 이튿날의 늦은 밤. z공원에 드물게 많은 사람들이 스산히 몰렸다.

다양한 연령대의 그들은 모두 일행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서로를 경계하다가 서로의 손에 든 작은 액정 탐지기를 보고는 피식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며 이내 공원의 곳곳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남는 건 적녹의 바닥들 뿐일 것이다.



~完






새벽의 조우




비릿한 웃음을 띄운 남자가 등가방에 잔뜩 짊어진 페트병 중 하나를 꺼내어 위아래로 찰팍찰팍 흔든다.




내부에 가라앉아 있던 푸른색 용액과 투명한 용액이 금새 섞여 보랏빛의 묘한 색으로 발광한다.




남자가 모 싸이트에서 조사해내어 만든 염소용액과 용해액, 실장 코로리 등을 특수배합으로 조합해 만든,


그 용도가 극히 흉악한 제조물이다.



이것을 박스에 부어낸다면?



최소한의 섬유만을 남기고 고열을 내며 녹아내린 박스가 안에서 곤히 잠자고 있던 실장석들을 덮칠 것이다.

이윽고 그들의 피부를 서서히 긴시간 동안 태워갈 것은 물론이며,

위아래로 피와 똥오줌을 흩뿌릴 것이고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 위석이 뿜어내는 생명력은 강제출산으로 이어질 것.


산채로 피부가 녹아내리는 고통과 채액을 뿜어내며 생명력을 잃어가는 생생한 장면을 상상하며 남자는 공원의 가장 앞에 있는 박스에 당도했다.



슬쩍 박스에 귀를 대어 본다.



흡사 돼지 축사에서나 들려올듯한 게걸스런 숨소리. 어림잡아 친실장 하나에 자실장 네다섯.

우선 시운전을 해보기 위해 남자는 페트병의 뚜껑을 열었다.




- 재밌는 걸 보여줘.




서서히 기울어 가던 병목에 용액의 첫울렁임이 걸리려던 찰나,

무언가가 남자의 팔을 덥썩 잡는다.




- 그만하지.




사랑을 나누던 남녀가 카타르시스의 절정을 느끼려던 순간 방해를 받은 것 만큼, 남자의 불쾌감은 진했다.

서서히 자신의 팔을 낚아챈 손의 얼굴로 불쾌한 눈동자가 움직인다.



키는 160이나 될까.


옷소매 끝단이 낡아빠져 헤질 정도의 차림새에 변변한 외투도 없이 거적을 둘러써 추위를 피하려는 늙은 노숙자의 모습.


불결함을 참지못하고 팔을 획하고 후려 뺀다.




- 뭐야 당신



남자는 노인의 손이 닿았던 부분을 툭툭 털어내며 있는대로 살기를 뿜어낸다.




- 그런 짓 해봐야 무어 의미가 있어. 그만하지.


- 말릴거면 말로 하지 그랬수? 아 씨발 냄새...




노인의 손이 닿았던 소매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은 남자의 미간이 있는대로 구겨진다.



- 그런 일이 아직 즐겁나?


- 아직? 뭐야. 당신 나 알아?




안그래도 기대하던 순간을 방해받아 기분이 나쁜 참에 어줍잖은 훈계까지 곁들여지자 남자의 인내심이 서서히 고갈되기 시작한다.




- 대충 알 것 같아 그러오. 사람도 없는 새벽 시간대에 얼굴을 꽁꽁 감추고 가방에 이것저것 싸와 음흉하게 웃는 모양새면 말다했지 뭐해.



- 이봐요



- 뭐하러 그러고 살아.




남자의 표정이 없어진다. 팔다리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며 더이상의 대화는 없음을 몸으로 표현하려는데 노인이 자세를 푹 낮춘다.




- ?




쭈그려 앉은 노인이 박스를 열어 안을 보이자 남자가 멈칫 움직임을 멈춘다.



이런저런 얼룩이 잔뜩 묻은 친실장의 품아귀에 꼬질꼬질한 자실장들이 손가락을 빨며 세근세근 잠들어있다. 이런저런 이물이 묻은 낙엽 속에 몸을 묻고 누런 침을 흘리며 자는 모습엔 하루의 노곤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손톱조차 없는 손으로 무얼 그리 열심히 했는지 여기저기 피부가 까져 꺼매진 모습. 아쉬운 식사지만 만족스럽게 마쳤는지 주름이 많이간 비닐봉투는 텅 비어있다.


그래서인지 어딘지 모르게 친실장의 잠든 표정에 뿌듯함이 자실장들의 표정엔 행복이 묻어있다.




- 게으르고 더럽다고 하지만 아침부터 일어나 고양이손 만도 못한 것으로 이것저것 모으러 다닌다네. 보잘 것 없는 것을 주워 모아와도 웃으며 품에 안기더구만.



- ........



- 다들 그렇게 열심히 살아.





어느덧 남자는 크게 할 말이 없어졌다.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왔던 화도 어느새 식어 있다.

그저 자신을 쳐다보는 노인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조금은 부담스러워진다.




- 얼굴과 몸에는 살이 올라 있는데 팔 다리는 가늘고



- ???



- 표정에는 여유도 없어.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라도 생기면 화부터 내지.



- ?



- 세상 사람들하고 썩 다른 차림새로 보면 세상 사람들 살아가듯 살아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시간에 홀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 마주치기도 무섭지. 하도 오래 방 안에만 쳐박혀 시간을 보내온 탓일게야.




노인이 멍한 눈빛으로 늘어놓는 말에 남자의 화가 다시 머리끝까지 올라온다.



- 이봐요!! 당신이 뭔데 다 안다는 듯이


- 내 젊을 때 이야기일세.




울컥 목소리를 높이던 남자의 말문이 턱하고 막힌다.




- 원래 사람이란게 그렇다네. 다른 사람들이 보내는 시간대와 다르게 혼자서 멈춘 시간만 살아가다 보면 그렇게 돼.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모습이 되고, 남과 대화를 나눌 수도 없는 성격이 되어버리고, 남을 피하고 남에게서 감추고 싶은 자신이 되지.



- ............



- 그러다보면 그렇게.




노인이 흉악한 용액으로 가득차 있는 남자의 가방을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 그렇게 아무의미 없는 일에 갈 길없이 맴돌고만 있는 의욕을 써버리게 된다네.





노인의 손이 다시금 남자의 어깨로 올라온다. 여전히 악취가 나는 손이지만 남자는 이번에는 그것을 뿌리치거나 하지 못했다. 아니 뿌리치지 않았다.




- 의욕이란건 살아가는 힘이고 살아가는 힘이란건 시간이란 화폐로 한정이 되어있어 젊은 친구.



- .........



- 자네 나이 때의 사람이 이렇게 살아선 안돼!





지금껏 멍해보이기만 했던 노인의 눈동자에 큰힘이 들어온다. 왜인지 어깨에 올라온 손도 좀더 무겁게 느껴졌다.





- 보아하니 자네는 주저 앉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평범하다고 무시하며 방안에 같힌 자신이 속한 세계, 자신이 관심을 가진 세계만이 특별하다고.. 그렇게 어깨에 힘을 주며 고압적으로 살아온 듯 한데..



- 그...렇지 않..



- 날마다 좋은 만남은 가지고 있나?



- 네?



- 꿈은, 꿈에 대해 이야기 나눌 친구는? 꿈을 향해 같이 걸어갈 친구는 있나?



- 꿈은... 없어요..





남자는 문득 지난 2년 동안의 자신을 돌아본다.



군대를 전역할 무렵 넘쳤던 의욕이 무색하게 그가 내민 결과물들을 사회는 매몰차게 무시했다. 자신있게 거리를 걸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니 한낮의 거리를 걸어본 적이 최근에 있기나 하던가.


점점 작아져 가는 목표를 향해 좀더 작은 태도로 작은 보상을 바라며 자기 자신을 줄이고 줄여나갔지만 최저한의 기대감마저 사회에게 배신당했을 때,



어쩌면 자신은 네모난 방안에 홀로 남아 무신경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조금더 천천히 시간이 흘러갈 것이라고.



최선을 다하는 고통과 그것이 좌절되는 시련을 잊어버리고 싶어서.



그렇게 조금이라도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는 화면 안의 작은 공간에 안주하게 되었을 때부터일까.



남자는 이렇게 으슥한 시간대에 음침한 짓을 하기 시작하게 되었었을지도.



그렇게 길게 자신을 돌아본 남자의 고개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바닥으로 눈물 또한 떨어진다.





- 그렇게 고개 숙이면 안돼.



- ....네...



- 고개를 들고 앞을 보고 아주 작은 일부터. 그래 밝은 낮 아침에 일어나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



- 출근하느라 바쁜 사람들. 이것저것 들추어메고 통화하며 뛰는 사람들, 이미 땀투성이가 되어 빵우유로 목을 축이는 사람들을 주욱 둘러다보면 말이야. 자네도 알게 될거야.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지 어디에 아직 내 눈이 닿지 않았었는지, 세상에 그림자가 있는 이유는 밝은 곳도 많기 때문이란 것도 말이야.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땅을 쳐다본다.



- 어허. 고개 숙이면 안된다니까.



- 네..



- 그렇게 고개를 들고 주욱 걸어가다보면 자네도 만나게 될거야. 같이 걸어갈 사람. 같이 말을 나누어 볼사람. 놓았던 꿈이나 잊었던 꿈 다.




고개를 든 남자의 얼굴이 한동안 눈물을 쏟는다. 끄윽 끄윽 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노인의 손이 상냥하게 남자의 어깨를 토닥여 준다.



그렇게 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사이로 어느새 어수룩한 새벽이 겉히고 이른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의 땀을 스윽하고 닦았다.



시내를 돌아다니며 박스를 모아봐도 찢어진 것, 젖어서 허물어진 것 등 여간 훌륭한 것이 없지만 역시 실장석들이 덮어쓴 박스는 각도 살아있고 품도 커서 무게도 많이 나오고 훌륭하다.



새벽녘에 나타난 청년 한명이 노인의 소일거리를 몽땅 녹여놓을 뻔 했지만 잘 타일러 돌려보냈으니 다행이었다.



리어카를 가득채운 박스 한짐을 막 힘차게 잡아 끌려는데 친실장 하나가 설움에 눈물을 흘리며 노인을 간절히 올려다 본다.














- 뭘봐 씹새꺄.


~完



















엄지와 구더기에 대한 고찰 (뭉게구름)

 

화창한 봄날에 날씨가 너무 좋아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공원을 걷던 중 한 실장일가가 눈에 띄기에
잠시 거리를 두고 보기로 했다.

“마마! 마마 이거 보는 레치!”
“뭐인 데스?”
“우지챠한테 프니프니 해줬더니 기뻐하는 레치!”
“오네챠 고마운 레후~”
“우지챠도 엄지챠도 다들 착한자인데스
칭찬하는 뎃스웅~”
“렛츙~”

골판지도 나름 잘 꾸며져 있고
가재도구도 잘 갖춰진데다
엄지와 구더기까지 자로 받아들이는
정많은 개체인거 같았다

게다가 분충이 한 마리도 없는 걸보면
솎아내기도 철저히 하는 개념실장이 틀림없었다.

“이야~ 저런 훈훈한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훈훈해진단 말이야”

“거 참 한심한 일가인 데스,
보나마나 친이 이번 봄에 독립해서
처음으로 자를 낳은게 분명한 데스
미숙한 게 딱 눈에 보이는 데스”

갑자기 무슨 소리가 나길래
아래를 내려다 보니 성체실장 한 마리가
가득 찬 비닐봉지를 들고는
개념일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쟤들이 한심하니? 가재도구도 잘 갖췄고
자들도 분충은 잘 솎아낸거 같고
게다가 정도 많은 개념 실장이잖아.”

내 말을 들은 들실장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닝겐상의 말이 맞는 것 처럼 들리지만
저 일가는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있는데스”

“치명적인 실수? 그게 뭔데?”

“그건 말인데스, 바로 엄지랑 우지챠를
운치굴에 집어넣지 않은거인 데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렇게 성실해보이는 일가가
어째서 한심하단건지.

“어째서 엄지랑 구더기를 운치굴에 넣어야하는거지?
걔들도 소중한 자식이잖아.”

“그 이유를 알고 싶으신 데스?
그렇다면 내일 아침에 시간을 내서
와타시의 집으로 오시는 데스,
와타시가 내일 하루동안 이유를 알려드리는 데스”

“그래 좋다.”

“저 그전에 부탁이 있는데스,”

“뭐냐?”

“닝겐상을 하루동안 도와주면
밥을 모을수가 없는데스,
먹다남은 거라도 좋으니
공원에 오실 때 아주 약간만
밥을 가져다 주시길 바라는 데스”

“알았다, 그럼 내일 보자”

인간에게 예의도 갖추고
조리있게 말할줄도 아는 걸 보아
이 들실장도 개념이 확실한데
어째서 저렇게 매정한 말을 하는건지
궁금해진 나는 며칠전 영화관에서 가져왔다가
냉장고에 넣어둔 팝콘을 챙겨서 공원으로 향했다.

들실장이 알려준 위치에 도착하자
나름 잘 갖춰진 골판지 집 앞에
어제의 그 들실장이 서있었다.

“닝겐상 오신 데스?”

“그래, 일단 이거 받아라”

“감사한 데스”

들실장은 내게 눅눅한 팝콘이 든 봉지를 받아
집에 보관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따라오시는 데스,
이제부터 엄지챠랑 우지챠를
운치굴에 넣지 않으면
일가실각이 확실한지 알려드리는 데스”

들실장은 어제의 일가가 보이는 위치로
나를 데려간 후 말했다

“조금만 있으면 왜 와타시의 말이 맞는지
알수 있으실 거인 데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골판지에서 친실장이 나와 주위를 경계했다
그 후 자들을 데리고 운치굴로 데려가
운치를 누게 했다.
그런데

“마마! 운치굴이 벌써 다 차버린 텟츄”
“데에? 벌써 다 찬 데스까....
새로 파야 하는 데스우......”

자들이 많은 나머지 운치굴이
꽉 차버린 모양이다.

“보시는 데스, 운치굴에 엄지챠랑 우지챠를 넣지 않으니
운치굴이 빨리 차버리는 데스”

“어라? 진짜네”

“그런데스, 닝겐상들은
운치가 알아서 사라지는
마법의 운치굴을 가지고 있지만
와타시들한텐 그런게 없는 데스,

그래서 엄지챠랑 우지챠를
운치굴에 넣지 않으면
운치굴이 너무 빨리 차버리는데스”

“그래도 운치굴은 또 파면 되잖아”

“말은 쉬운데스, 일단 마저 보시는 데스”

나는 들실장의 말에 따라
다시 실장일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자들은 듣는 데스!
오늘은 다함께 운치굴을 파는데스!”
“알겠는 테치! 와타치도 마마를 돕는 테치!”
“와타치도 마마를 열심히 돕는 레치!”
“레후!”
“엄지챠랑 우지챠는
아직 어려서 무리인 데스
집안에서 얌전히 있는데스“

실장일가는 열심히 운치굴을 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들실장은 다시 나에게 말했다

“이제 이유가 보이시는 데스?”

“이유라니? 단지 새 운치굴을 파는 것 뿐이잖아”

“바로 그거인데스, 와타시들이
굴을 빨리 팔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데스?”

“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 뿐만이 아닌데스,
하루종일 운치굴을 파다보면
밥도 못 구하는 데스,

게다가 열심히 일한 자들은
상당히 허기가 지는 데스.

그러니 결국 보존식을 모은 걸 까먹는데스
저게 며칠에 한번씩 파다보면
결국 먹을걸 많이 모을 수 없는데스”

들실장은 상당히 논리적인 이유를
조리있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걸 보면 언제나 엄지와 우지챠는
작업에서 열외시키는 데스
어려서 시키지 않는게 아니라 방해되서
시키지 않는 거인데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자들이 차별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데스”

“차별?”

“그런데스, 엄지챠랑 우지챠도
운치굴에 운치를 싸는데
왜 자기들만 운치굴 파는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느낌인 데스

그나마 저 일가는 태어난지
얼마 안 돼서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점점 쌓이는 건 확실한 데스,

그러다 보면 분충이 생기는 데스

사실 그게 제일 큰 손해인 데스
하지만 이거로 끝이 아닌데스

따라 오시는 데스“

들실장은 나를 데리고 두리번 거리다가
찾는 걸 발견한 듯 나에게 말했다

“닝겐상, 찾은 데스
일단 와타시와 모습을 숨기시는 데스”
“알았다, 이제 뭘 보여줄거니?”
“일단 저길 보면 아시는 데스”

들실장이 가리킨 곳엔
한 일가가 독라 여러마리한테
약탈을 당하고 있었다.

독라가 통통하게 살찍 구더기를
입에 넣으려 하자 친실장이 사정한다

“레훼엥, 마마 무서운 레후!”
“제발 부탁인데스, 우지챠를 먹으면 안되는데스
와타시의 소중소중한 자인데스”
“레뺘아아아아아아!”


하지만 독라는 무시하고
구더기를 씹어 먹었다
잠시후 독라들은 친실장은
죽여서 고기를 챙기고
자들은 노예로 끌고 갔다

그 모습을 본 들실장은 말을 이어갔다

“저 일가도 아까 처럼 엄지챠랑 우지챠를
자로 생각하는 일가였던 데스
하지만 그게 약탈당한 원인인 데스”

“무슨 소리니?”
따라와 보시는 데스

들실장을 따라 습격당한 일가의
집이 있던 곳으로 가봤다
개념일가 치곤 집 주변에서 나는
냄새가 상당히 지독했다


“아까 보여드렸던 일가가
운치굴을 파는 걸 보셨을 거인데스”

“그래.”

“여기서 문제는 운치굴이
꽉 차서 파고 또 파다보면
여러개의 운치굴이 생기는 데스
운치굴이 많으면 냄새가 너무 나는데스
냄새가 너무 나면 집을 아무리 잘 숨겨도
바로 약탈 분충들에게 들키는 데스”

그렇다. 들실장의 말을 요약하자면
운치굴이 많아지게 되면
냄새가 너무나서 숨길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온갖 해충이 번식해서
생활환경이 나빠지는 것도 뻔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이유를 알려드리는 데스”

“제일 중요한 이유?”

“그런데스, 엄지챠랑 우지챠를 그대로 키우면
절대로 겨울을 넘길 수 없는 데스”

“어째서냐?”

“가을이 되면 자들은 중실장이 되는 데스
중실장이 되면 자 시절보다 적게 먹는데스.
그래서 가을에는 밥모으기가 수월한데스
준비만 철저히 하고 닝겐상만 피하면
어떻게든 겨울을 나는 데스

하지만 엄지는 가을에 자실장이 되고
우지챠들은 엄지챠가 되는데스

자들은 물론이고
엄지들도 먹을게 많이 필요한데스
당장 모아야 할때 많이 먹어대니
제대로 모일 리가 없는데스

게다가 친이 밥 분배를 신경쓰겠지만
배고픔을 참지못한
엄지랑 구더기였던 자들이
보존식을 털어먹는 데스

그 때 쯤 되면 분노해서
전부 솎아내겠지만
남은건 똥 뿐인 데스

결국 일가실각인데스

결론을 말하자면 엄지랑 우지챠를
운치굴에 넣지 않으면 일가실각이란 거인데스

태어나자마자 죽이거나 먹어도 안되는데스
무조건 살려서 운치굴에 넣어야 하는데스“

“그런데 분충인 자실장을 넣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닌데스, 분충인 자는 운치굴에 넣지말고
바로 숨통을 끊어야 하는데스

자를 운치굴에 넣으면 구더기가 전멸당하는데스
달마로 만든다 해도 멍청한 우지챠들은
알아서 분충한테 다가가는 데스

분충에게 물리기라도 하면
우지챠는 잡아먹히고
재생한 분충이 운치굴을 망치는데스
그렇게 되면 비상식과 운치굴이
둘다 사라지는데스

하지만 엄지챠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지챠를 죽이거나 먹지 않는데스
비상식을 관리하는데 이만큼 적당한게 없는데스”

“과연”

“이래뵈도 와타시는 겨울을 세 번 넘기고
자들도 세 번이나 독립시킨데스”

“아하 이해됬어, 정말 고마워”

“천만의 말씀인 데스
와타시는 이렇게 생각하는데스

엄지챠와 우지챠는 세상이 와타시들에게
살아갈 각오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스

각오가 된 실장은 살아남지만
각오가 없는 실장은 실각인데스”

나는 들실장의 말을 바탕으로
논문을 발표했고
실장석 관련 학위까지 딸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해 봄
나는 현명한 들실장을 찾아갔다

“안녕 실장석아?”

“닝겐상 아닌데스? 반가운 데스”

“요즘은 어떻게 지내니?”

“네번째 자들을 독립시킨 데스
이제 자들을 새로 키우기엔 지친데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말이야,
우리집에 오지 않을래?”

“닝겐상, 그말은?”

“그래, 내 사육실장이 되어줘”

“와타시는 늙고 못생긴 데스,
정말 괜찮은 데스?”

“그럼, 너같이 똑똑한 녀석이라면
좋은 말 상대가 되어 줄거 같다”

“닝겐상! 정말 잘 부탁드리는 데스”

“그래, 네 이름은 이제부터 팝콘이다”

“좋은 이름인데스! 평생 소중히 하는데스!”

팝콘은 우리집에서 착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수명이 다해 하늘나라로 갔다.









척척라면

 

점심이 다가오자 출출해진 나는 주린 배를 붙잡고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무엇을 먹을까 두리번거리던 중 가판대에서 가장 화려하게 광고되고 있는 '척척라면'이 눈에 띄게 되는데...


'뭐지? 새로나온 실장라면인가?'


귀엽게 안경을 쓴 엄지가 그려진 광고판을 보니 '엄지짱이 라면 끓이는걸 척척 도와줘요!'라고 적혀있다.

세상에 이걸 먹지 않으면 분명 후회할거야!


[삐비빅! 5천5백원입니다!]


비싸다!

하지만 물릴 생각없이 단번에 계산완료!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은 가벼웠다.







'일요일엔 내가 실장석 요리사~♪'

집에 도착하자마자 휘파람을 부르며 호쾌하게 봉투를 확찢!

제법 큰 봉투 안에는 라면 한봉지와 엄지가 들어있는 팩으로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큼지막한 설명서가 있군!


'보자... 일단 엄지를 깨우기 위해 팩을 찢고 동봉된 활성제를 엄지 입안에 떨어뜨려 주세요..'


초록액이 담긴 플라스틱 스포이드를 잠들어 있는 엄지의 입안에 살짝 떨어뜨렸다.

녀석을 자세히 살펴보니 광고지에서 본 분홍빛 사육실장복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동물가방을 둘러맨 엄지와 판박이였다.

어.. 같이 끓여 먹는게 아닌가?


'테.. 텟테레... B-168번 부활한 레찌..'


눈을 비비며 일어난 녀석은 몽롱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에게 춍춍 다가와 90°인사를 했다.


'안녕하신 레찌? 아따찌 주인님의 아마아마한 라면식사를 도와드리기 위해 X심에서 수련 받은 '척척이'인 렛~쭈웅~♡'


자세히 보니 가슴에 X심 로고가 새겨져 있다..

멍하게 지켜보고 있자 빙글빙글 춤을 추며 라면광고도 해댄다.

새삼 이 작은 엄지실장에게서 대기업의 힘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라면을 끓이는 동안 심심하셨던 레찌이? 이제 고민은 그만! 척척이와 함께 하는 즐거운 척척라면! 자매품 실장푸라면도 있는 렛쭈웅~♪'

'너 아까 이름이 B 머시기라고 안그랬냐?'

'그건 개인이름인 레찌. 아따찌따찌들은 척척이인 레찌. 라면은 언제 끓이실 것인 레쮸?'

'어.. 지금할건데 물 받아오면 되냐?

'받아오시면 아따찌가 주인님을 위해 가장 맛있는 레시피로 라면을 요리해 드리는 렛쮸웅~♥'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나에게 윙크와 아첨을 하며 춤을 춰대는 녀석에게 물을 떠다줘 보자 냄비에 들어가 버리는 녀석.

이 녀석 깨끗한거겠지?


'레.. 아따찌의 어깨쯤 오게 다시 받아 오시는 레찌. 그리고 기호에 따라 파, 마늘 등을 넣으실거면 미리 썰어오시는게 좋은 렛찌!'


흠.. 설명서를 봐도 조리법은 엄지에게 맡겨라고 적혀있었다.

그냥 대충 끓이는 성격이라 조금 귀찮았지만 이왕 사온거 시키는대로 물을 다시 떠왔다.


'레찌찌! 물은 딱인 레찌! 이제 물을 끓이시면서 아따찌가 신호를 드리면 분말스프와 야채스프를 넣으시면 되는 렛찌!'


냄비 안에서 재잘거리는 녀석을 빼내 물을 끓이자 녀석은 또 라면광고를 해대며 몸을 씰룩거려 내 눈을 오염시켰다.

'너부리 한마리 몰고 가는 렛찌이이~! 여름엔 매~콤한 차비빔면도 좋은 렛쮸웅~♥'


왠지 별로 도움도 안되고 짜증만 나서 내 피같은 5천5백원이 아까워지기 시작할 때쯤 녀석은 점점 흥분하며 나에게 재잘재잘 명령을 내리는데...


'렛! 지금인 렛찌! 그리고 면을 준비시키시는 레찌! 곧.. 곧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 완성되는 레쮸쮸!'


내가 심드렁하게 시킨대로 면까지 넣자 동물가방을 열어 달콤한 냄새가 나는 가루를 라면에 솔솔 뿌려대는 녀석.


'척척이가 5가지 비밀레시피로 만든 마법의 가루인 렛쮸웅~ 주인님의 행복하고 건강한 식사를 위해 아따찌가 드리는 특별한 선물인 렛쮸웅~ 잠시 뒤 라면이 완성되면 맛있게 드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레~쮸웅~♬'


저게 아마 5천5백원의 이유겠지?

난 짜증이 나는걸 꾹꾹 참으며 라면이 익을 때쯤 달걀을 넣으려고 하자 척척이는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레? 안되는 레찌! 척척라면에는 달걀을 넣으면 안되는 레찌!'

'에.. 엥?! 기호에 맞게 넣어 먹으라며? 달걀은 왜 안되냐?'

'가장 마지막에 달걀은 절대 넣지 말고 주인님께 설명서 가장 밑단을 읽도록 권하라고 배운 레쮸! 설명서 읽어주시는 렛쮸우!'


라면이 왜이리 귀찮아?

난 다시는 척척라면을 먹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며 굵고 빨갛게 인쇄된 [척척이의 비밀]을 읽어내려 갔다.

그리고 비밀을 읽어내려 갈수록 내 입꼬리도 점점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크킄... 크크크크...'

'레쮸웅~♥'


날 따라 웃어대는 녀석을 손바닥에 올려두자 마음의 준비가 된듯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는 척척이.

난 녀석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지금까지 정말 수고했어. 라면이 정말 맛있다면 우리 척척이를 사육실장으로 삼아주고 싶은데.. 네 생각은 어때?'

'해낸 레찌! 척척이가 평생을 갈고 닦은 라면이 맛 없을리 없는 레쮸! 선생님 말씀대로 정말 사육실장이 된 레찌! 신나는 사육생 시작인 렛쮸웅~♥'


내 말이 끝나자마자 퉁퉁한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거리며 기뻐하는 녀석의 치맛단을 살짝 뜯어냈다.

그러자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따지는 척척이에게 뜯어낸 치맛단을 재빨리 먹여줬는데...


'렛! 아따찌의 척척실장복은 척척이 졸업시험을 통과한 엄지들에게만 허락되는 영광의 징표인 레찌! 고급실장복을 입히고 싶으시더라도 훼손하지 말고 소중히 보관해 주셨으면.. 레.. 렛챱.. 렛챱... 레에에에?! 아따찌의 척척실장복이 맛있는 레찌!'


놀란 녀석은 자신의 머리, 신발, 팬티, 가방, 안경까지 핥아봤다.


'아.. 아따치의 머리는 짭조름한 건어물인 레찌! 신발과 옷은 유부... 사랑스런 빤츠도 어묵인 레찌.. 가방은 김... 심지어 안경은 설탕으로 만들어진... 대체...'

'설명서에 적혀있더라? 라면이 완성될려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좀 도와줄래?'

'레.. 아.. 아따찌가 할 일은 다한 레찌..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특별한 라면인 레찌.. 반박할 수 없는 레찌... 어.. 어서 드시고 아따찌를 사육실장으로.. 레쨔아아아앗!'


중얼거리는 녀석을 순식간에 잡아채 라면에 풍덩 던져 넣었다.

손을 위아래로 미친듯이 파닥거리며 나에게 애원하는 모습이 식욕을 자극했다.


'레쮸와아아앗! 아따찌는 이렇게 갈 수 없는 레쨔아앗! 마마와 헤어지고 지금까지 척척이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건 시험을 수도없이 치뤄온 레쨔아아아! 척척이가 되면 행복해진다고 한 레쨔아앗! 척척이가 되면 분명 사육실장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렛뿟! 렛뿌뿌앗!'

[첨벙! 첨벙!]


입고 있던 재료들이 녹아가면서 점점 독라가 되어가는 녀석을 젓가락으로 바닥 깊숙히 찔러넣었다.

잠시 후 떠오른 녀석은 두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부푼 배를 매만지며 나에게 살려달라 빌었다.


'주인니이임! 아따찌 아가를 가진 레쨔악! 제발 뱃속의 아가들을 위해서라도 아따찌를 구해주시는 레쨔아악! 최고의 라면을 요리할 줄 아는 아따찌를 이대로 죽게 만든다면 요식업계의 큰별이 지는 것인 레쮸와아악-!!'

'무슨 소리야? 그게 니 임무라고.'


난 설명서를 가져와 녀석이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따박따박 외쳐줬다.


'척척이는 사실 기본적인 레시피만 익힌 평범한 엄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특출난 요리실력을 가진 요리사로 착각하고 있어요~ 고객님께 특별한 척척라면을 대접하고 나면 사육실장이 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척척이를 마지막으로 투입해주시면 모든 조리과정이 끝납니다~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오~'

'아.. 아니야 레찌.. 아냐...'

'소중히 여기는 실장복은 모두 식재료로 만들어졌으니 안심하고 드세요오오오~'

'레... 파-킨!'


난 파킨사한 척척이를 젓가락으로 밀치고 면발을 가득 들어 후루룩 삼켰다


'후! 후하! 뜨거워! 자 그럼 척척이를 맛볼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척척이를 집어들자 뱃속에서 미성숙한 우지챠들이 떨어지며 라면에 풍미를 더했다.


'텟테ㄹ.... 텟뺘아아악! 파-킨!'

'텟테레ㅎ... 마.. 마ㅁ....! 파-킨!'


그대로 머리를 크게 한입 베어 물고 우지챠와 함께 뜨거운 국물을 마시자 입안 가득 퍼지는 기름진 감칠맛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말 달걀을 넣었으면 너무 기름졌을거 같군.

순식간에 한그릇 뚝딱 해치운 나는 거실 쇼파에 누워 다음 척척이를 상상하며 입맛을 다셨다.


'다음 녀석은 어떻게 골려줄까?'




-끝-






그곳에서

 

"레...레, 레츄웅~??"

엄지실장이 태어났다. 좁은 구멍을 통해 밝은 세상으로 빨려나온 엄지실장이 본 광경은 상냥한 마마와 우애있는 자매들, 귀여운 우지챠와 따뜻한 집이 아닌 온갖 비명과 단말마, 시끄러운 굉음이 사방에서 난무하는 지옥과 같은 풍경이였다.

"레...? 왠지 무서운 레치이...마마! 마마아-! 와타치 여기있는 레치! 와타치 무서운 레치! 오네챠! 우지챠!!"

엄지실장은 너무나 무서워 울부짖으며 친실장과 자매들을 불렀지만 이미 마지막 힘을 다해 뱃속에 남은 엄지실장을 배출하고 절명한 목이 반쯤 찢어진 친실장과 그 근처에 살점을 흩뿌려진채 잘게 다져진 고깃조각들만이 묵묵히 엄지실장의 대답을 거부할 따름이였다.

"...레킁! 레...렛?! 마마의 냄새인 레치!"

엄지실장은 아무도 대답없이 울려퍼지는 소음속에 킁킁거리다 친실장의 냄새를 맡을수 있었다. 자신의 턱받이를 킁킁거리던 엄지는 눈밑의 눈물자국을 슥슥 손으로 문질러 대충 지운지 활짝 웃으며 냄새의 근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마...?"

그곳엔, 거대한 사체가 누워있었다. 반쯤 찢어진 목가엔 흥건하다 못해 작게 웅덩이진 체액에선 진한 친실장의 냄새가 강렬하게 풍겨있었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엔 있어야할 것들이 몇몇 없었다. 한쪽 눈알은 사라졌고 길게 내문 혀는 너덜거렸으며 절제없이 벌어진 입안엔 이빨이 깨지고 떨어져 나가 듬성듬성 비어있었다.

"...레, 레푸풉! 치픕! 치풉!"

엄지실장은 흉물스러운 친실장의 모습을 보며 입가를 손으로 가린채 풉풉 거리며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양껏 부풀어 오른 뺨과 웃음을 참느라 벌겋게 변한 얼굴. 엄지실장은 결국 동족의 똥과 피로 점철된 축축한 아스팔트 위에 들이누워 배를 부여잡으며 빵 터진채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치프프프! 레프프프프!!"

엄지실장은 이미 죽어버린, 자신을 양육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 친실장을 비웃으며 비틀거리며 일어나 사체에 발길질과 주먹질을 했다.

"하여간 쓸모라곤 우지챠 보다 못한 똥마마인 레치. 와타치는 이런 똥마마보다 훨씬 더 대단한 마마를 찾아가는 레치!"

엄지실장은 콧김을 내뿜으며 씩씩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배고프면 바닥에 널브러진 고깃조각을 주워먹고 목이 마르면 고여있는 어떤 동족으체액을 빨아 마시며 위풍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데잇! 데갸아! 데챠아아아! 데깃?!"

그리고 어느 순간, 엄지는 운명과 같은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하얀색에 적록색 얼룩이 잔뜩 뭍은 거대한 무언가가 성체실장 한마리를 처분하는 모습을.

뒷머리가 붙잡힌채 검고 딱딱한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성체실장의 모습은 추레하기 그지없었다. 노면에 부딫치며 생겨난 찢겨진 상처와 힘없이 입밖에서 휘날리는 반쯤 찢겨진 혀. 이빨이 있어야할 곳은 텅 비었고 상하로 붕붕 흔들릴때마다 진한 적록색의 액체가 사방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레...에..."

뿌직뿌직 거리며 엄지실장은 인지하지도 못한채 탈분을 하지만 압도적인 거대한 무언가의 힘앞에 감히 쳐다보지도 못해야할 성체실장의 무기력하다 못해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힘앞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왠지 모르게 무섭고, 두려웠지만 반대로 저런 엄청난 무언가가 친이 된다면 어떨지 생각을 하며 엄지실장은 흥분으로 얼굴을 붉힌채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것이다.

자신의 마마는 오로지 저것이다. 다른것 따윈 상상조차 할수가 없다. 성체실잘 마저 우지챠처럼 만드는 저것이 마마가 된다면 어떨까 상상을 하자 콧구멍이 마구 벌렁거리며 운치가 멈추질 않았다.

성체실장이 넝마, 혹은 누더기 마냥 걸레 쪼가리 처럼 너덜너덜해질쯤 엄지실장은 고개를 들어도 시야에 제대로 다 담을수 없는 무언가의 앞에 도착할수 있었다.

"오마에-!! 와타치를 길러라 레치이! 특별히 오마에를 와타치의 마마로 인정해주는...레짓!"

성체실장의 떨어진 머리통 아래에 자그마한 얼룩이 과거 그 아래에 무언가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다시 만나는 그날

 

독라 자실장의 상태는 끔찍했다.
찢어진 두피 아래로 금이 간 두개골이 보였으며 왼쪽 팔은 도로리에 담겼는지 녹다만 뼈만 붙어 있었다. 전신에는 타박상과 자상, 화상이 번져있었고 한쪽 눈알은 텅 빈채 검은 구멍만이 보였다.

“...마마에게 돌아가는 테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실장은 살아있었다. 위석의 힘으로도 어쩌면 치유되지 못할 상처를 가지고도 힘겹게 움직이며 다시한번 친실장에게 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생명의 끈을 놓지않았다.

“마마에게....돌아가는 테치!!”

무섭고, 두렵고, 눈물이 나지만 부들거리는 다리로 기어코 일어나 마지막 남은 한쪽 눈으로 자신을 학대한 인간을 바라 보았다. 죽을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심하게 학대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수 없었다.

“와타시는 마마에게 돌아가는 테치!”

인간의 손이 천천히 올라가 자실장의 눈앞으로 내려왔다.


******

“테에......”

죽는줄 알았다. 자실장은 내려오는 손을 보며 죽음을 직감했다. 시야가득 쏟아지는 손의 모습은 몇초뒤 자신이 곤죽이 되어 죽는 모습을 상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실장은 죽지않았다. 오히려 처음 붙잡혀 온 공원의 벤치로 돌아왔다. 머리카락은 없지만 두건과 옷은 멀쩡했다. 지나친 학대로 살이 쏙 빠져 옷이 헐렁였지만 상관없었다.

자실장은 밤이 깊어지길 기다리며 벤치 근처의 풀숲에 들어가 잠을 자기로 했다. 곧 친실장을 만날거라 생각하니 두근거리는 마음에 잠이 잘 오지 않았지만 억지로 한쪽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시간이 흐르고 해가 떨어지자 어둠이 찾아오면서 가로등 불빛이 내리기 시작했다. 자실장은 잠에서 깨어 과거 친실장의 냄새를 더듬으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붙잡혀 학대를 당한 기억으로 실장석치고는 주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경계하는 자실장은 곳곳에 도사리는 위험들을 잘 피해갈수 있었다.

친실장의 냄새가 강해지자 자실장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 죽음을 생각할정도로 괴로웠던 학대속에서도 친실장에게 돌아갈거라는 일념하나로 버텼다. 그리고 그것이 이뤄지는 순간이였다.

“...테에..”

하지만.
집이 가까워질수록 자실장의 발걸음은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문앞까지 몇 걸음을 남겨두곤 멈춰서버렸다. 자실장은 생각했다.

만신창이, 아니 더이상 뭘 할수 없는 몸뚱아리로 친실장에게 간다한들 자신을 반겨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도로리에 녹은 팔은 자연스럽게 뼈가 떨어져 나가 외팔이 되었다. 도로리는 일종의 화학적인 화상이라 재생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눈알도 하나 없어져 임신도 못한다.

아무데도 쓸모가 없다. 자실장은 깨달았다.

“테치이...”

문앞에 서서 자실장은 구슬프게 소리를 죽여 울며 집을 지나쳐 풀숲으로 사라졌다.

몇십분뒤 문이 열리며 성체실장 한마리가 시름에 잠긴 얼굴로 나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몇일전 사라진 자실장 생각에 가슴이 갑갑해 나온 것이다.

“...장녀, 어디로간 데스......그저 몸만 성히 돌아오는 데스.”

벤치 밑에서 자신을 마중나오던 장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성체실장은 은연중에 인간의 소행임을 알았지만 알았다고해서 뭘 할수있는건 없었다. 냄새로 쫓아갈까 싶었지만 공원 입구에서부터 냄새가 사라졌기에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데스우...”

살아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성체실장은 하늘에 수놓아진 별들을 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다시 만나는 그날을 기다리는 데스.
마마는 늘 여기에 있겠는 데스.







그리운 나의 집



좁은 세계였다.
한평도 되지 못한 골판지 박스만이 유일한 세계의 전부이자 끝이였다. 걸어서 한바퀴 도는데 약 300걸음. 어디선가 구해온 찌그러진 탁구공이 끝에서 끝까지 굴러가는데 2초. 자실장은 타는듯한 갈증을 느꼈다. 얉은 종이 넘어로 무한히 펼쳐진 또 다른 세계를. 하지만 나갈수가 없었다. 골판지 박스 안에는 먹을 음식과 마실 물, 장난감, 화장실, 잡초와 휴지를 섞어 똥으로 모양을 잡은 그럴듯한 침대까지 있지만 더 넓은 세계로 향하고 싶은 갈망은 이미 골판지 박스를 가득 채우다 못해 터져서 밖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친실장이 말하길 밖은 위험하다, 무섭다, 아직 이르다 라고 하지만 자실장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위험이란게 무엇인지, 무섭다라는게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저 박스가 접힌 부분으로 비추는 얇은 한줄기 햇살에 의지해 탁구공을 끌어안고 약간 어둡고 단조로운 박스안을 보는것만이 할수있는 전부였다.


“오늘도 열리지 않는 테치......”

대체 얼마나 시도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심심하다고 생각이 날때면 문을 밀어보지만 어떻게 했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물론 이 자실장이 게으르지 않고 친실장이 나갈때 단 한번이라도 일어나봤다면 미는게 아니라 당겨야 열린다는것을 알수가 있었겠지만 이 자실장은 태어나서 골판지박스에 도착한 순간부터 단 한번도 아침에 친실장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애초에 잘못된 방향으로 문열기를 시도하였고 한달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성공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마마가 말했던 텟츄~. 밖엔 휭휭거리는 바람씨가 있다고 한 텟치. 반짝 따스한 햇살님이 온 세상에 가득하다고한 테치. 그리고...또...또...아줌마들이 잔뜩 있다고한 테치! 무시무시한 나쁜 인간들이랑 착한 인간도 가득가득 테치!”

자실장은 멍하니 앉아 침을 흘리며 상상을 한다. 휭휭거리는 바람이 뭔지 알수는 없지만 가만히 상상을 하노라면 뱃속에서 무언가가 작게 떨리며 머릿속에 바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햇살, 무서운 아줌마, 나쁜 인간, 착한 인간, 각종 열매와 동물등등. 위석이 전해오는 환각같은 상상이 자실장이 최근 하고 있는 놀이였다. 어렴풋이, 그리고 아스련히 따스하게 전해오는 이미지들. 단편적이고 부정확하며 상당히 왜곡이 심했지만 그것이 어디인가. 지루하고 지겹고, 아무 의미도 없는 집지키기에 있어서 이것만한 것이 없었다. 물론 상상을 한번 시작하면 8,9가지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순차재생되지만 자실장의 지능이 그렇게 좋다고는 할수없기에 1번째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9번째가 지나 다시 1번째가 나타날때 쯤이면 이미 다 까먹어 새롭다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실장도 본능적으로 알수가 있었다. 조금씩 커가면서 이미지의 개수가 늘어난다는 것을. 그렇기에 자실장은 그야말로 엄지실장 마냥 먹는것을 조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성장하기 위해서 친실장이 밖에서 온갖 수모를 겪으며 때론 죽음과 마주하며 구한 귀중한 식량를 절제없이 입속으로 쓸어넣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테치......”

할줄하는 것이라곤 먹고, 자고, 싸고 이 3가지 뿐이지만 자실장은 밖으로 나가면 그 어떤것이라도 할수가 있고 될수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무서운 아줌마들은 잘 피하면 전혀 무섭지 않았고 나쁜 인간들은 잘 보고 판단하면 문제될게 없었다. 착한 인간을 만난다면 자신의 귀여움과 애교로 헤롱헤롱 거리게 만들 자신도 가득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자실장은 자신이 이렇게 매일같이 집안에 있는것은 여러모로 큰 손해라고 느꼈다. 친실장이야 늙고 못생겼지만 자신은 태어난지 3개월도 안됐다. 넘치는 에너지와 젊음, 그리고 타고난 외모를 이용한다면 수 많은 인간들을 하인으로 부리며 좀더 좋은 생활을 할텐데.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와타시가 있어야 할곳은 여기가 아닌 테치. 좁고 답답한 테치. 와타시는 더 넓고 웅장하며 굉장한 바깥세상이 어울리는 테치!”

하지만 꿈이 높다고 한들 현실은 문조차 여는 방향도 모르는 바보일뿐이다. 그저 호기심이라도 존재한다면 당겨봤으면 바로 열릴텐데 그런 생각도, 의지도, 열의도 없다. 몇가지 짤막한 지식을 맹신하며 그것 외엔 다른 생각도 못하는 등급을 매긴다면 D급 최하위 푸드용.

“나-가-고-싶-은-테-치-!!”

소리를 질러보지만 골판지박스를 빈틈없이 뒤덮은 잡초와 나뭇가지에 막혀 새어나가지도 않는다. 자실장은 상상하는 것도 피곤해 결국 눈을 감는다. 이것이 자실장의 하루일과. 눈을 뜨면 밥과 물을 먹고 똥을 싼뒤 상상을 하다가 피곤하면 잔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면 친실장이 어느새 들어와 밥을 준다. 그리고 간단히 이야기를 듣고 잔다.

“마마! 밥! 밥주는 테치이!!”
“기다리는 데스. 보존식부터 골라야하는 데스.”

질질흐르는 침이 앞치마를 흥건히 적신다. 밥이 눈앞에 있는데 참는건 곤욕스럽지만 과거 눈이 돌아가 친실장이 준비하는데 봉투안으로 들어가 마구쳐먹다가 그날 문자그대로 죽기직전까지 두드려 맞았다.

머리가 깨지는건 기본이고 팔다리가 꺾이고 뜯어지고 분대가 총구로 튀어나오고 눈알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재생하기까지 4일간 물도 못마시고 밥고 못먹고 4일내내 아퍼서 끙끙거리며 움직이도 못했다. 워낙 강렬한 기억이라 그 뒤론 침만 흘리며 자제하지만 손이 움찔움찔 거린다. 친실장은 힐끔 자실장의 모습을 보며 조만간 날을 잡아서 피눈물을 한바탕 쏟게 만들 생각이였다.

“자, 이제 밥 먹는 데스. 이건 오마에의 몫인 데스.”

보존식을 제외하고 남은 1/3을 손으로 밀어 자실장 앞으로 밀었다. 물론 맛있고 영양이 풍부한 것은 2/3인 친실장이지만 아직 자실장은 밥의 상태나 종류에 대해 아는게 없기에 그저 귀를 파닥이며 고개를 쳐박고 먹기 급급했다.

언제봐도 참으로 흐뭇한 광경이다. 비루한 고아실장 마냥 추잡스럽고 역겹게 먹는 자실장의 모습은 밖에서 밥을 구한 고생이 씻겨내려가는 기분이였다. 순식간에 다먹고 아직 반이나 남은 자신의 밥을 보며 강렬하게 요구하며 애걸하는 눈빛을 받으니 친실장은 밥이 더욱더 맛있게 느껴졌다. 일부러 천천히 자실장을 약올리듯 먹는 친실장의 모습은 친과 자가 아닌 놀러나온 사육실장과 공원의 들실장의 모습이였다. 들에서 깎여나간 자존감을 자신이 낳은 자실장으로 밖에 채울수밖에 없는 친실장.

한쪽에겐 만족스러운 식사가, 다른 한쪽은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토라진 불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누워서 잠을 청한다. 친자 할것없이 눕자마자 10초만에 자는 가운데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비춘다.


“....테에...오늘도 안열리는..?!”

텟챠아-!

비명을 지르는 자실장. 언제나 꽉 닫힌 문이 어째서 인지 휑하니 열려있었다. 친실장의 부주의로 제대로 닫지않고 나간것이 바람에 의해 밀려 완전히 열린 것이였다. 문밖에서 비추는 햇살은 자실장의 상상 그대로를 넘어 그 이상이였다. 보기만해도 눈물이 나온다. 밖에서 밀려오는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은 퀴퀴하고 눅눅하며 똥냄새로 가득한 내부를 새로운 신선한 공기로 가득채웠다. 코가 뻥 뚫릴듯한 냄새에 자실장은 떠올렸다. 태어나서 친실장을 따라 걸어왔던 그 순간들을.

그랬다. 자신은 이미 겪어봤다. 햇살을, 바람을, 동족을, 인간들을. 기억속 저편에 잠겨있던 과거의 기억이 부상해 자실장의 뇌를 강타했다. 어째서 잊고 있었나. 어째서 기억하지 못했나.

“하지만 이제는 그럴필요 없는 테치! 밖으로 향하는 길은 열려버린 테치! 이건 운명인 테치! 와타시를 축복하는 계시인 테치!”

자실장은 낮설고 두려운 마음을 감추려 크게 외치며 신중히 한발한발 문앞으로 다가갔다.

“...!!!”

문앞에 서자 그토록 보고싶어하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녹음이 가득한 나무와 풀. 푸른 하늘에 펼쳐진 새하얀 구름.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줌마들과 친구들. 그리고 웃고 떠들며 즐거워 하는 인간들과 그 앞에서 춤과 노래를 부르는 동족들.

이것이다. 그동안 친실장이 자신에게 감추었던 진실이자 진짜 세계. 이토록 아름답고 따스한 세계를 혼자만 알고 즐기기 위해 친실장은 자신을 속인 것이다! 자실장은 분노하였지만 친실장이 숨겨온 세상을 즐기기 위해 역사적이고 의미있는 한 걸음을 내딛었다. 구두 밑에서 전해오는 생소한 감각! 자실장은 감격에 빠져 부르르 거렸다.

“드디어! 드디어 나온 테치! 이제부터인 테치! 이제 시작인 테치!!”

오후 2:10분.
태어난지 3개월하고도 22일.
114일만에 자실장은 잔인하고 아름다운 야생의 세계에 들어섰다.


***


“데....데데...데에에~?!”

친실장은 휑하니 열린 문을 보며 기겁을 하며 전력으로 뛰어 집안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보존식을 뒤지거나 물을 훔치진 않았다. 하지만 자실장은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알수가 없지만 비록 멍청하고 쓸모없어 보이지만 일단 자신의 총구에서 나온 자였다. 그렇기에 나름 애를 써서 키웠지만 탈출을 한건지 누가 꼬득였는지 사라져버린 것이다. 친실장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어쩔수 없는 데스. 이미 사라져버린 데스. 포기하는 데스.”

성체실장도 훅하면 죽어자빠지는 곳이 바로 바깥세상. 그렇다고 자신의 자라는 것을 감안해도 절대 영리하다거나 춤을 잘춘다거나 노래를 잘부르는 것도 아니였다. 예쁘게 생긴것고 아니고 예의범절이 뛰어난것도 아니기에 그냥 어디선가 비참하게 죽었겠구나 생각하며 잊기로 결정하였다.

“어차피 곧있으면 추자를 낳아야하는 데스. 자는 그때 생각하는 뎃승~”

***

9월.

중순이 넘어갈 무렵 친실장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먹여살려야할 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먹는다면 하루 밥벌어서 이틀은 먹기에 하루 일하고 다음날 쉬면서 먹고 그 다음날 밥 구하는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동안 놀면서 먹어서 나름 살도 통통하게 올랐고 스트레스가 줄어서 그런지 들실장 치고는 피부톤이 한결 좋아져 있었다.

“데프프프. 추자를 일찍 낳고 월동준비를 후딱한뒤 가지고 놀면서 지내는것도 괜찮을것 같은 데스.”

여유를 되찾은 친실장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의아해하며 얼마전 공사장에서 어렵사리 구한 보검을 들고 찌를 준비를 하며 문을 열었다. 자고로 자신의 자를 가지고 노는것도 즐겁지만 남의 자를 가지고 노는 것은 그 이상으로 즐겁지 않은가. 행여나 운치굴 출산노예를 구할수도 있을거란 희망을 가진 친실장의 두 눈은 문을 두드린 원인을 본 순간 산산조각나 흔들렸다.

“데....에..?”
“......마...마,마마..”

그것은 흉측하고 더럽고, 역겹게 변해버린 몇달전 사라진 자실장 이였다.



테챱! 테챠-압! 테끄윽! 테챱테챱! 테챱-!

트림을 하면서 꾸역꾸역 입안으로 밥를 쳐넣는 자실장은 품위나 예의는 단 한톨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한쪽만 남은 오른팔로 능숙하게 먹는 것을 보니 외팔로 오래지낸것 같았다.

자실장은 흉측했다. 왼쪽귀는 없고 남은 오른쪽 귀는 반쯤 녹았고 이빨은 군데군데 없었다. 혓바닥 끝은 반으로 갈라져있었고 왼팔은 사라진채 어깨엔 화상으로 봉합되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앞쪽에 서너가닥에 뒷머리는 각각 한올씩 남아있었다. 두건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고 숭숭 뚫려있는 원피스 넘어로 상처가 아문자국이 가득했다. 팬티는 얼마나 빵콘을 했는지 늘어져 쭈글쭈글 울어있었다. 구두는 밑창이 다 닳아 없어져 발목만 감싸고 있었다.

그렇게 말없이 먹던 자실장은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미친듯이 울기시작했다.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에엔-!! 테에에엥!”

친실장은 복잡한 표정으로 자실장을 보았다. 어째서 보자마자 운치굴로 넣지 않았을까. 그것도 모자라 귀중한 밥마저 주었다. 마치 누군가 시키기라도 한것 마냥 정신을 차려보니 그러고 있었다. 한참을 울던 자실장은 친실장의 표정을 보더니 말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같은 실장석인 친실장이 듣기에도 두서가 없는 말. 듣다보니 친실장은 알수가 있었다. 대충 정리는 하자면 이랬다.


밖으로 나온 자실장은 꿈과 희망, 자신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은 채 3분을 가지 못했다. 성체가 아닌 이상 공원에 돌아다니는 성체 미만의 개체들은 장난감 내지는 먹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불행중 다행일까 급하게 먹이를 뿌리는 애호파에게 가기위해 달리던 성체실장의 동선과 겹친 자실장은 나온지 3분만에 성체실장에게 영문도 모르고 인사를 하던 찰나 걷어차여 수풀더미로 날아갔다.

정신을 차리니 팬티엔 똥이 가득차 있었고 배는 아프다 못해 숨쉬는것도 힘들지경. 척추가 부러져 재생이 끝나기까지 7시간 동안 수풀더미 속에서 상상이 아닌 현실의 세계의 모습을 여과없이 볼수가 있었다.

그곳은 자신이 생각하던 절대 상냥하던 곳이 아니였다. 피와 눈물, 절규와 저주, 애원과 증오가 가득한 곳이였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다. 엄지가 저실장을. 자실장이 엄지를. 중실장이 자실장을. 성체실장은 전부다. 힘이 곧 법이고 정의였다. 그리고 그 힘의 정점은 인간. 성체고 뭐고 인간앞에선 더럽고 추잡하게 애원하며 비굴하게 스스로 독라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살기위해 발악을 한다.

“대체...이건...거짓말인 테치이!!”

자실장의 절규는 수풀에 막혀 사라졌다. 자실장이 충격에서 벗어난것은 2일이 지나서 배에서 꼬륵꼬륵 소리에 움직일수가 있었다. 처음에 비해 불안한듯 눈알을 돌리며 덜덜 떨며 조심스레 움직이는 자실장이였지만 그늘진 곳이 아닌 공원을 가로질러 가기에 자연스레 주목을 받을수 밖에 없었다. 불행중 다행인것은 2일전 성체실장에게 걷어차여 토사물과 똥으로 범벅이 되어 건드는 동족이 없다는 것. 자실장은 울면서 공원밖으로 벗어날수가 있었다.

“...어째서 그때 집으로 오지 않았던 데스?”
“...깜빡 까먹었던 테치이...”

친실장의 한심스러운 한숨에 자실장은 화들짝 놀라 입을 다시 열었다.


공원 밖으로 나간 자실장의 모습응 추레하기 그지없어 인간들도 건들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좋던 나쁘던 관심을 받을수 없기에 그에따른 부차적인 이익, 즉 먹이를 구할수가 없었다. 그렇게 주린배를 부여잡고 졸리면 졸린대로 근처 화단에 들어가 쪽잠을 자고 간혹가다 물이 고여있으면 마시면서 정처없이 길을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기억도 나지않지만 문득 걸음을 멈추니 거기엔 커다란 신발이 보였다. 고개를 드니 까마득한 높이에 인간이 웃고있는걸 볼수가 있었다.

자실장은 저 인간이 나쁜인간인지 착한인간인지 알수가 없었지만 자신의 애교를 받아들이면 착한인간일거라 여기며 자연스럽게 텟츙 거리며 애교를 하였다. 정답일까. 두근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자 인간은 짙은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꺼낸 봉투에 자신을 담았다. 부유감과 안도감에 자실장은 그동안의 피곤함이 몰려와 잠을 청했고 일어났을땐 아늑한 침대에 어느새 씻겨진채 아기자기한 프릴이 달린 분홍 원피스가 입혀져 있었다.

그렇게 자실장은 착한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눈물을 흘렸다. 태어나 처음먹어본 실장푸드는 천상의 음식이였다. 운이 좋았다. 공원에서 본 나쁜인간이 아니라서. 자실장은 저 착한인간을 위해 최선을 다할거라 다짐을 하였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테챠아아! 테쟈아아아!! 이딴걸 누가 먹는 테챠아! 쓰레기인 테츄! 이런거 와타시의 운치보다 못한 쓰레기인 테샤아아!!”

브리리릿

알록달록한 중급푸드위에 짙은 녹색의 똥이 한무더기 쏟아졌다. 그렇게 아끼던 처음 입었던 프릴달린 분홍옷도 벗어 방금싼 똥무더기 속으로 처박았다.

“이젠 지겨운 테치이! 이딴 대접 더이상 받을수 없는 테치! 이런거 전혀 행복하지 않는 테치! 매일매일 똑같은 푸드에 옷인 테치!! 이딴 병신같은 집도 좁아터진 테치! 매일 같은 풍경 이젠 쫌스럽단 테챠! 좀더 더 좋은걸 가져오라는 테치! 좀더 더 좋은 풍경이 보이는곳으로 와타시의 집을 지으라는 테치이!!”

자실장은 점점 굳어가는 인간의 얼굴을 보며 아무것도 느낄수가 없었다. 일주일전 극한의 상황에 몰린 자실장이라면 바로 알아차렸겠지만 물질적 풍요속에 경계심부터 시작해 과거 친실장의 비호아래 머릿속이 텅텅빈 깡통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씩씩거리며 제 분에 못이겨 케이지 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자실장은 한숨을 내쉬으며 털썩 주저 앉아 혼잣말을 하였다.

“이 무슨 죄인 테치...다 와타시가 못나서 그런 테치. 저 인간은 죄가 없는 테치. 안그래도 가난한데 와타시같은 세계의 보배를 위해 할수있는건 이게 최선인게 분명한 테치...그냥 와타시가 참고 넘어가야 하는 테치. 어이, 오마에. 푸드 다시 가져오고, 옷도 깨끗히 빨고 집도 정리 해놓는 테치. 와타시는 짜증나서 한숨 자고 일어나는 테치. 와타시가 자고 일어나기전에 원래대로 똑.같.이 돌려놓는 테치. 테휴우으...”


친실장은 이 대목에서 감탄을 하였다. 잘도 인간을 저기까지 도발해놓고 목숨이 붙어있다는 것에서. 친실장은 인간의 무서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은 학대파에게 붙잡혀 학대를 받다가 탈출을 했기에.



자실장은 짜증을 내며 잠을 청했고 일어났을땐 변한건 없었다. 오히려 똥을 싸고 닦지 않아 이부자리에 똥이 흥건하게 젖어 축축해져있었다. 자실장은 또다시 화가 머리 꼭대기에 차올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다시금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 위해 케이지 넘어 인간을 보자 거기엔 탁자위에 보기만해도 오금이 저리고 힘이 빠지는 기묘한 도구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뭐가뭔지 모르지만 하나같이 은색으로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보는 순간 소중한 돌에서 경고를 미친듯이 보내왔다. 도망가라고. 미친듯이 도망치라고. 도망칠수 없다면 독라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빌라고.

“테..테, 테에...어, 어이 오,오오,오마에! 트, 특별히 와타시가 용서해줄테니 고마워 하는 테치!”

자실장은 말없이 무언가를 쥐고 다가오는 인간을 보며 떠올렸다. 공원에서 본 무시무시한 인간을.

“테...테쨔아아아아악!!”

그뒤로 학대와 고문의 연속이였다. 부서지고, 뭉게지고, 뜯어지고, 잘리고, 타오르는 끔찍한 기억. 무언가 먹기위해선 신체의 일부를 포기해야 했다. 한번 씻기위해서 머리카락 앞뒤로 한올씩, 즉 세가닥을 바쳐야 했다. 문제는 밥. 푸드는 꿈도 못꾸고 그저 스스로 똥을 먹는게 익숙해질무렵 인간은 질렸다고 자신을 공원에 풀어주었다.

그렇게 너덜너덜 걸레짝이 되어 간신히 돌아온 집. 자실장은 그렇게 울면서 말을 끝마쳤다.

“데휴....이리 오는 데스. 마마가 안아주는 데스.”
“마..마마아! 마마아! 테에에엥!!”

친실장의 품안에 뛰어든 자실장은 따스한 온기에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깨달았다. 뒷통수에 느껴지는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친실장의 애정어린 손.

“마...!! 테뵷?!...테, 프프! 테흐프프! 테...메빠소?”

친실장은 자실장이 학대를 너무 받아 두개골이 너무 깨졌다 붙었다는 것을 만져서 느낄수가 있었다. 잘못 때리다간 백치가 아닌 죽을수도 있었다. 이리저리 만지던중 그나마 괜찮은곳을 발견, 단숨에 때려 뇌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데프프프. 월동용 운치굴 노예가 꽁으로 들어온 뎃승~!”

친실장은 멍청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정도로 멍청할줄은 몰랐다. 누누히 이야기를 했지만 자신의 말을 거역하면 더이상 자가 아니라고 이야가를 했건만 끝끝내 기억도 못하고 찾아온 자실장, 아니 노예를 보며 비웃음을 가득담아 웃었다.

골판지 상자의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

“어디서 많이 보던 놈인데......아! 오랜만이다? 도망치고나서 심심했지?”
“데? 데데? ......데끼이이이?! 어째서 오마에가 여길 찾은 데샤아아아!!”

인간의 손가락이 가르킨 것은 병신이 되어버린 자실장. 친실장은 깨달았다.

들실장의 법칙 1.
-자가 사라지면 그 즉시 집을 버리거나 옮겨라.

자신이 너무 나태해졌음을. 친실장은 머리위로 그늘을 만들며 다가오는 거대한 손을 그저 멍하니 볼 뿐이였다.

“이번엔 도망치기 쉽지 않을꺼야. 기대해”
“데...챠아아아아!!”

사라진 인간의 손엔 친실장 한마리가 들려있었다.





“테...치무프! 테빠모! 테...프프..프...”

혼자남은 백치 자실장의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