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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코도리코


“테챠아!!”
“엉?”

불금을 맞이하려 퇴근하고 막 들어온 젊은 남자, 창우 앞에 나온 것은 조그마한 자실장이었다. 녀석은 뭐가 그리 당당한지 콧김을 씩씩 뿜으면서 창우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연신 뭐라뭐라 떠들어댄다.

남자는 생각한다. 이 집에 있는 실장석은 성체다. 이름은 코도리코. 들실장 출신이지만 영리하고 눈치가 빨라서 2년이 넘게 키우면서 문제 한 번 일으킨 적이 없다. 고로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이 작은 실장석은 코도리코가 아니다. 그렇다면?

단 1초도 되지 않아 남자의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정리되는 동안, 자실장은 삿대질을 멈추고 초승달처럼 휜 눈으로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바로 브리릿! 하는 소리와 함께 부풀어 오르는 자실장의 하반신. 냄새나는 녹색의 무언가가 자실장의 치마 속에서 흘러나오고 녀석은 웃으며 그 속으로 자신의 뭉툭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그 녹색의 반고체를 창우를 향해 휙 던지는 녀석. 굳이 피할 생각도 없었지만 자실장의 힘으로 날아온 덩어리는 채 10cm도 날지 못하고 퍽 하고 바닥에 떨어져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테퍄퍄퍄퍄!

맞지도 않았건만 저거 보라며 눈 뒤집어지게 웃는 녀석. 그리고 그 뒤로, 녹색의 공같이 생긴 놈들이 하나 둘씩 남자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데프프픗.”

장녀를 보낸 후 성체실장, 코도리코는 나지막 하게 웃음을 흘렸다. 완벽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는 계획이다. 주인 몰래 낳은 새끼들을 정성스레 기른 다음. 자실장들이 사리분별을 하기 시작할 때쯤이면 주인 앞에 내보내는 전략. 

이날을 위해 코도리코는 출산 전부터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계획을 짰다. 

거실에 있는 화분의 꽃 하나를 몰래 꺾어 수분한다. 거울을 보며 두 눈이 초록색이 된 것을 확인한 이후부터는 뎃데로게 뎃데로게 사랑을 듬뿍담아 노래하며 새끼들의 탄생을 기다렸다. 노래는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졌지만 그 전체적인 내용은 비슷했다.

뎃데로게~ 자들은 듣는데스. 마마는 사육실장인 데스~ 세상은 콘페이토와 스시, 그리고 스테이크가 넘쳐나는 천국인 데스~ 천하디 천한 들실장과 달리 오마에들은 사육실장의 자로서 세레브한 삶을 살 것인 데스~

코도리코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새끼들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그 꿈틀댐은 날이 갈수록 더욱 크고 힘찬 느낌이 들었다. 마치 환호하듯, 자신의 앞에 펼쳐진 세레브 라이프를 찬양하듯. 그럴수록 코도리코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분홍색 색소가 들어간 고급 푸드를 아작! 하고 한입 베어 문 코도리코는 그 푸드의 영양이 자식들에게 가길 바라며 노래를 잇는다.

뎃데로게~ 자들은 듣는데스. 어서 나와 마마와 같이 찬란한 영광을 누리는 데스. 온 세상이 오마에들의 것이고 온 우주가 오마에들의 놀이터니 오마에들은 사육실장으로서 만물의 지배자가 될 것인 데스~

노래는 이미 사육실장의 삶을 넘어 인간조차 불가능한 소유의 영역으로 넘어갔지만 일반적인 실장석이 그렇듯 코도리코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체 그러한 말을 거침없이 내 뱉었다. 자들이 태어나면 또 행복이 시작될 것이다. 지금까지도 행복했지만 더 행복해질 것이다. 코도리코는 입에서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데프픗 흘렸다.



이윽고 임신한지 2주가 될 무렵, 미도리는 슬슬 출산이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어디보자, 코도리코는 달력을 보았다. 음, 딱 좋다. 오늘은 화요일. 몰래 키우며 3번 해씨가 뜨고 질 동안 자들을 교육하면 금요일쯤에는 자들을 주인에게 내보내도 좋을 만큼 교육이 끝날 것이다. 느껴지는 태동은 약 4마리 정도. 영양도 잘 섭취했기에 적어도 3마리는, 아니, 어쩌면 4마리 모두 자실장으로 태어날 거 같았다.

능숙하게 물그릇에 물을 채우고 출산자세를 취하는 코도리코.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힘을 주자 그 밑으로 제법 큰, 점막에 싸인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텟테레!”

우렁차다. 원래 실장석들이 태어날 때 안 그래도 큰 소리가 더 커지지만 첫번째 나온 자의 울음소리는 다른 모든 실장석의 울음소리를 모아도 이것보단 작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탄생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마에가 장녀인 데스.”
“테햐!”

데챱데챱 점막을 취하고 활짝 웃는 코도리코의 말에 장녀라 불린 자식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환호한다. 장녀, 자식들 중 맏이이자 무엇이든 1등으로 받을 수 있는 존재. 만물의 위에 있다는 사육실장으로 태어난 것도 기쁜데 그중 첫번째다? 이건 환성을 지르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텟테레!”

코도리코가 장녀를 내려놓는 순간 두번째 새끼가 빛을 향해 뻗어 나왔다. 데챱데챱. 초보실장이라면 당황할만한 상황에서도 코도리코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능숙하게 점막을 취하자 팔다리가 쑥쑥 자라나며 자실장이 나온다. 

“오마에는 차녀데스. 여기 장녀와 함께 있는 데스요.”
“하이 테치.”

그 뒤로 두마리가 더 어미의 뱃속에서 나왔다. 그렇게 총 네마리. 코도리코의 예상이 얼추 맞아떨어졌다.

“자들, 이제부터 사흘간 오마에들은 몰래 숨어살며 마마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데스.”
“왜 와타치타치가 숨어 사는 테치?”

장녀가 묻는다. 

“몰래 숨어있다가 주인사마께 서프라이즈를 선사할 생각이기 때문인 데스.”
“왜 와타치가 닝겐노예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줘야 하는 테치! 그딴 건 와타치 재능의 낭비인 테치!”

차녀가 짖었다. 분충성이 가득하지만 코도리코는 마냥 귀엽다는 듯 웃는다.

“물론인 데스. 하지만 서프라이즈가 성공적일수록 오마에가 누릴 세레브 라이프는 더욱 클 것인 데스.”
“테에, 그러면 와타치가 친히 노예에게 서프라이즈를 제공해 주는 테치!”
“마마, 사흘인 뭐인 테치?”

이번엔 삼녀.

“해씨가 세번 오르고 내릴 시간인 데스. 어렵게 생각하지 마는 데스요. 마마와 세번 자고 일어나면 그때인 데스.”
“마마, 배고픈 테츄! 스테키와 스시는 어디있는 테츄?”

막내. 

코도리코는 예상했단 듯 옷을 끌어올리고 장녀부터 젖을 먹였다. 막 태어난 새끼들은 치아도 약하고 섭식력도 낮다. 어미의 젖은 그런 자실장들에게 넘치는 영양을 공급함과 동시에 그 안에 들어있는 호르몬을 통해 성장을 촉진시킨다. 사흘정도 젖을 먹이면 웬만한 들실장이 서너개월을 먹여 키운 자실장과 같은 체구를 가지게 될 것이다. 

“테에에엥! 마마의 맛나맛나는 와타치 것인 테츄! 와타치가 먹고 커져야 하는 테츄엥!”

어미의 젖을 다 마셔버릴 듯 쭉쭉 빠는 장녀와 차녀를 보고 막내가 질겁하듯 울었다. 매달린 두 자실장은 그런 막내를 흘끗 보고는 테프프프 치프프프 비웃었다. 어찌 이리 귀엽단 말인가. 코도리코는 장녀와 차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로부터 사흘간은 약속했던 것처럼 새끼들에게 숨어사는 법과 기타 필요한 교육을 했다. 3일동안 참을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자실장들은 매시간마다 열화와 같은 분노를 토했다. 소리를 지르고, 투명한 눈물을 흘리며 울고, 지금이라도 노예닝겐의 앞에 나가서 정당한 권리를 찾겠다는 소리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어르고 달래는 코도리코. 약속의 때가 온다. 기다려라. 분충덩어리지만 본능적으로 마마에게 대들었다간 순식간에 육편이 될 수 있음을 아는 자실장들은 툴툴 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숨어 지냈다.



그리고 대망의 데뷔일. 장녀, 차녀, 삼녀는 주인의 앞에서 ‘재롱’을 떨고 있었다. 코도리코의 마음속에 기쁨이 퍼져나갔다. 자실장은 네마리나 있다. 정도는 다를지언정 그들 중 적어도 하나 정도는 주인의 마음에 쏙 들 것이다. 저봐라. 장녀가 벌써부터 극대의 재롱을 부리고 있다. 차녀와 삼녀도 그 대열에 합류하려 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와타시의 세레브 라이프가 오는 데스.”
“마마?”

그런 코도리코를 바라보는 자실장. 막내인 사녀다. 자신의 윗자매 셋이 전부 나갔건만 막내는 아직도 코도리코의 발치에서 우물거리고 있었다.

“아닌데스요 4녀차. 어서 주인사마께 가는 데스.”
“진짜로 이러면 세레브 라이프가 펼쳐지는 테츄카?”
“물론인 데스.”

활짝 웃는다. 코도리코의 웃음에는 아무런 거짓이 없었다. 그에 용기를 얻는 4녀. 바로 주인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사녀 또한 배운대로 행한다. 주인에게 극상의 기쁨을 주는 재롱을 부린다.

“코도리코?”

창우가 웃는 얼굴로 코도리코를 부른다. 이거 느낌이 좋다. 주인은 웃으면서 4마리의 새끼를 집어들고 코도리코를 향해 다가왔다.



그날로부터 이틀간, 방음처리를 잘 해 놨던 덕에 집 안의 소리가 새나갈 일이 없는 남자의 집에서는 그야말로 학대 파티가 벌어졌다. 

먼저 위석을 찾아 활성제가 든 통에 담근다. 이건 학대의 기본이다.

“테챠아!!! 와타시가 왕자님과 키스할 입에 그딴 더러운 거 넣지 마ㅜㅎ메ㅐㅗㅁ오!!!”

그러고는 니퍼를 입에 넣어 치아를 하나하나 뽑고 남은 부분을 소형 토치로 지진다. 핵심은 이를 ‘하나씩’ 뽑는 것이다.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나선지 치아가 아주 튼튼하게 잘 났다.

“머, 머리카락이!!! 테에에에에엥!!!”

그 다음에는 머리카락을 뽑는다. 그것도 한 번에 다 뽑는 게 아니라 몇 올씩 검지 손가락에 감은 뒤 엄지로 쥐어 뽑는다. 노예라 여겼던 닝겐에게 잡혀 자신이 노예가 된다. 심지어 아주 천천히. 머리카락은 야속하게 뽑혀 나가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무력감이 실장석들의 마음을 휘감았다.

“눈씨! 눈씨 돌아와 주는 테치! 와타치의 아이가!”

그 다음 옷을 찢어버린다. 거기에 더해 몇 놈은 눈을 뽑는다. 그것도 한 쪽만. 그러고는 그 중 한 놈만 활성제를 눈에 발라 눈이 다시 생기게 만든다. 그러면 놈은 학대받는 처지도 잊고 다른 자매들을 비웃는다. 

“테프프프프! 오마에들 같은 더러운 것들은 와타시와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없는 테치. 어이 닝겐노예! 이제사 자신의 위치를 안 테치? 어서 와타시에게 발모제와 분홍 드레스를 ㄱ…테챠아!!!!”

물론 그 놈도 다시 눈을 뽑는다. 눈이 생겼다가 다시 눈이 뽑히면 그 절망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별했던 자신이 다시 특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치프프픗 잘난척하더니 꼴 좋은 테치.”

깔아보던 자매들에게 비웃음을 받는 것은 덤.

“마마! 와타치를 구하는 테츄아!! 약속했던 세레브 라이프는 어디있는 테츄!!”

고문이 반복되자 막내가 어미를 찾는다. 그 소리에 다른 자매들도 어미의 존재를 떠올렸다. 

“걱정마라. 너희가 끝나면 그 다음은 코도리코의 차례니까.”

창우가 말했다. 자실장들은 창우의 눈을 보았다. 악마가 저런 것일까? 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마마도 저 손길을 피해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 켠에 만족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일요일 저녁. 이틀간 행한 학대의 끝은 역시나 파킨사였다. 검은 물줄기가 말라붙은 네개의 떡덩어리를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담는다.

“후~”

만족감에 가벼운 한숨을 쉬는 남자. 

“자, 이제 약속한 대로 코도리코 차례지.”
“부르셨는 데스까?”

어느새 남자의 옆에는 코도리코가 와 있었다. 그리고 웃고 있었다. 창우는 그 얼굴을 보고 답으로 함박 웃음을 돌려주었다.

“이번에도 또 잘 즐겼다야 이번에 걔, 장녀였나? 여튼 그놈은 진짜 분충 오브 분충이더라. 아주 좋았어.”

창우가 코도리코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다. 코도리코가 기분 좋은지 뎃승 하고 운다.

무척 똑똑하기에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와 반대로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코도리코는 2달에 한 번씩 자실장을 낳아 주인 앞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주인은 그 ‘서프라이즈’를 받고 신나게 자실장들을 학대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주인의 취미에 걸 맞는 초특급 분충을 만들기 위해 코도리코는 자기가 아는 수단을 총동원하는 것은 물론, 실장폰으로 인터넷의 바다를 뒤지며 정보를 끌어모았다. 코도리코의 지식이 올라갈수록 태어나는 자실장들의 분충도는 점점 높아져 이윽고 하늘을 찔렀다. 

그 분충을 학대함으로써 창우는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고 코도리코는 그 반대급부로 주인의 애정과 충분한 의식주를 보장받는다. 그야말로 윈윈이고 양자가 만족하는 그런 생활이다. 물론 중간에서 죽어나가는 자실장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야 이번에도 수고했다. 오늘은 기분도 좋으니 통삼겹살 사와서 에어프라이어에 구워먹자.”
“좋은 데스요 주인사마.”

창우의 말에 반색하는 코도리코. 그렇다. 세레브 라이프는 펼쳐졌다. 단지 그 주체가 자실장들이 아니라 오롯이 창우와 코도리코에게만 해당한다는 게 문제였을 뿐이지만.

“데프프픗~ 고마운 데스요 아가들.”

그 소리에 어딘가인지 모를 곳에서 테챠! 소리가 들렸지만 둘이 나가고 없는 방에 공허하게 울려퍼질 뿐이었다.








왜 사지멀쩡한 실장육이 더 비싸냐고?


“왜 사지 멀쩡한 실장육이 더 비싸냐고?”

G는 자실장을 굽다말고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새로 생긴 식실장 구이 식당. 나는 오랜만에 식실장 공장에 근무하는 친구 G와 만나 회포를 푸는 중 오랫동안 궁금했던 것 하나를 문득 떠올리고 질문을 던졌다.

“아니 생각하면 좀 웃기잖아.”
“그게 웃길 게 있나?”

“테취아!! 테츄아아아!! 테붹!!” (이거 놓는 테챠!! 이 보배를 건드리면 오마에 찌저주기는 테챠!! 테뷁!!)

나는 불판에 올라간 자실장을 가리켰다. 

“아니 봐봐. 자, 일반 식실장 고기는 다른 고기, 소고기나 돼지 혹은 닭고기처럼 다 부위별로 손질되어 나오지?”
“그렇지.”
“그런데 이런 가게에서는 그냥 한 마리가 통째로 나오잖냐?”

끄덕끄덕. G가 긍정한다.

“테챠아아아악!!! 테샤악!!!!” (와타치사마의 세레브하고 고져스한 몸을 이런 식으로 다룰 수는 없는 테챠아아아!!!!)

시끄러운 놈의 성대를 익혀버릴 심산인지 G는 자실장을 뒤집어 버렸다.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통째로 나오는 놈들은 굳이 손질할 필요도 없고 그냥 세척하고 출하하기만 하면 되는데 일반 실장육을 사서 한 마리 만드는 것보다 비쌀 이유가 있냐는 거지. 생각해보면 마치 저지방 우유가 지방을 빼는 추가공정이 들어갔으니 더 비싸다라는 급의 헛소리 아닌가 싶어서.”

G는 이야기를 듣더니 팔짱을 끼더니 흐음하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이 친구야 고기 탄다. 안 구울 거면 집게는 이리 주고 고민해라.

“테치아아아아악!!! 테챠!!!!(뜨거운 테챠!! 고귀하고 존엄한 레이디인 와타치에게 무슨 짓인 테챠!!!)

내가 집게를 잡아 자실장을 뒤집자 온 몸에 검은 선이 그어진 자실장이 우렁차게 외쳤다. 그걸 보더니 피식 웃은 G가 입을 열었다.

“너 현미밥 먹어본 적 있냐?”
“갑자기 그건 왜?”
“아니 일단 대답해봐.”
“음, 있지. 가끔 현미밥 해 먹어.”
“너 그러면 뭔가 이상한 거 못 느꼈냐?”
“뭐가?”
“현미가 뭐냐? 수확한 쌀에서 껍질을 덜 벗긴 거지? 다 벗기면 우리가 흔히 먹는 백미가 되는 거고.”
“어 그렇지? 도정을 덜한 쌀이지.” 
“그런데 현미가 백미보다 더 비싸지?”
“어?”

“테에에에엥!! 테치 테치 테챠!!!!! (똥닝겐은 그만 떠들고 고귀하고 세레브하신 와타치를 뜨거뜨거에서 구하는 테챠!!!!!)”

G는 씨익 웃더니 내게서 집게를 다시 받아들고는 자실장을 꾸욱 눌렀다.

“테챠아아아!!!!!!!!!”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냐? 백미보다 더 도정을 덜했다는 건 공정이 덜 들어간 건데 왜 백미보다 현미가 비쌀까?”
“어…생각해보니 그렇네?”
“자, 내가 설명해줄게. 첫째로 도정기를 보면 요즘은 거의 다 백미용으로 나와.”

“테츄아악!!!! (마마! 불행하기만 했던 와타시를 구하는 테츄아아아아!!!)

“그러니까, 너나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 생각과는 달리 도정기로 조금만 깎으면 현미, 더 깎으면 백미 뭐 이런 게 아니고 오히려 백미를 깎는데 최적화된 기계가 있는 거야.”
“흠, 그렇구만?”
“그런 상황에서 현미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정미소는 현미만을 깎는 기계를 하나 더 들여놔야 하는 거지.”

“테찌이이이이!!!! 찌이이이이!!!!” (찌이이이이!! 와타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찌이이이이!!!)

몰랐다. 그러고보니 현미가 비싼데도 나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사먹고 있었다. G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아니, 막말로 도정정도에 따라 현미, 백미 도정이 둘 다 가능한 기계가 있다고 쳐도. 일단 현미를 깎으려면 셋팅을 다시 해야한단 말이지? 그리고 그 셋팅이 빨라도 최소 30분 정도는 잡아먹을 거고 말이야.”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거 셋팅하는데 30분은 좀 오바다.”
“솔직히 30분이면 빠른 거야. 평균적으로 한시간은 걸려.”
“아니, 무슨 셋팅이 30분에서 한시간이나 걸려?”
“아닐 거 같지? 셋팅만 하면 다냐? 일단 쌀 투입해서 셋팅한데로 깎이는지 확인하고 그게 아니면 다시 쌀 넣고 그걸 될 때까지 해야해. 그러면 그거 하자고 쌀 낭비하고 시간 쓰지.”
“아…그렇겠네.”
“너도 나처럼 경제학 전공한 대졸 나부랭이니까 알 거 아니냐? 이거 한다고 할 동안 까먹는 시간은 뭐다?”
“그 시간에 백미 도정하는 걸 포기한 기회비용이지.”
“그렇지. 그리고 아무래도 현미는 백미에 비해 수요가 적지? 그러면 생산도 많이 안 할거고 그 찔끔 생산한 현미에 고정비용, 도정비, 그리고 기회비용까지 녹이면?”
“아, 그러니까 양 적은 현미에 백미 생산하는 비용의 곱절이 얹어진다는 말이구만?”
“빙고.”

G는 가볍게 박수를 쳤다. 이런 게 뭐라고 나는 살짝 들떠서 굽고있던 자실장을 나도 모르게 꾸욱 눌렀다.

“테에에에….테지이…테? 테챠아아악!!!!!” (살려주는 테치. 와타치는 닝겐상의 노예인 테치. 살려만 주면 흑발의 자를…테? 테챠악!!!!)

“그리고 이걸 아까 네가 말한 식육용 실장석에 대입해봐.”
“너네 공장도 그러냐? 전용기계가 있고 막 그래?”
“어. 우리 공장은 식실장육 생산의 거의 전 공정이 자동화가 되어 있어. 사람이 손으로 하는 건 실장석을 투입하는 것과 포장된 실장석의 품질을 검증하는 것뿐이지.”

G는 무언가를 투입하는 듯한 손짓을 하며 설명했다.

“실장석을 투입하면 일단 세척모듈이 용액을 분사해서 옷과 머리털을 녹이고 물로 씻어내. 그 다음엔 다음 모듈이 팔다리를 썰고, 다음은 척추를 들어내는 모듈이 몸을 가르고 척추를 들어내지. 이런 구조로 흘러가.”

흐음. 나는 계속하라는 신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걸 사지 멀쩡하게 내놓으려면 팔다리를 써는 모듈, 머리를 써는 모듈, 뼈를 빼내는 모듈 거기에 기타 등등의 모듈을 끄고 거기에 사람이 들어가서 일일이 끄집어 내서 포장기에 넣어야 한다는 거야.”
“아. 자동화된 모듈 중간에 사람이 들어가야 되는 거구나.”
“그렇지. 그리고 그렇게 사지 멀쩡한 놈들 생산한 이후에는 다시 기계 모듈 연결하고 재가동가며, 그거 제대로 된 건지 다시 셋팅 확인해야 하지.”
“하, 거 완전 난리구만.”
“그러고서도 그 사지멀쩡한 놈들 생산량이라도 많은가 하면 그것도 아냐. 사람이 다 손으로 해야하기 때문에 기계 공정 대비 생산성이 한 1/3 나오나? 그러면 그 인건비에 그 시간동안 일반 실장육을 생산했을 시 얻을 수 있는 기회비용까지 더해지면 볼장 다 본거지 뭐.”

“테에에에엥…”

“아니 그런데. 그러면 그런 사지멀쩡한 놈만 뽑을 수 있는 라인을 만들면 되는 거 아냐?”

내 질문에 G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안돼. 라인을 따로 깔 수요가 없는데 그걸 어떻게 해.”
“엥? 수요가 없다고?”
“흔히 우리 같은 학대파라는 양반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지들이 뭐 세상의 절대다수인줄 알아요.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값싸고 맛있는 고기를 먹고 싶어하지 고기를 학대하면서 먹는 취미는 없단 말이지. 안 그러면 학대용 식실장 파는 식당이 이만치 희귀하겠냐고.”

뼈아픈 소리다. 학대파들은 모든 식실장 식당이 실장석을 학대하며 먹는 줄 알지만 그런 식당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당장 나와 G가 앉아있는 이 식당만 해도 이 수도권 남부에 단 2군데 밖에 없는 곳 중 하나다. 

“수요도 적어, 돈도 안 돼, 비용은 갑절이야. 그러니 사지 멀쩡한 놈이 훨씬 비쌀 수 밖에.”
“하, 결국은 수요와 공급의 문제구만.”
“유구한 역사지. 왜 교수님이 경제학은 이걸로 시작해서 이걸로 끝난다고 했는지 알 거 같다.”

“테에에엥…” (와타치를 먹지 마는 테에에엥…)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겋게 익어버린 자실장을 둘로 찢었다.

“테찍!!!”

“누군가는 가위로 써는 게 좋다지만 이렇게 젓가락으로 거열형을 집행하는 게 최고지.”
“죄인 자실장은 역적죄로 거열을 받으라~”
“미친 ㅋㅋㅋㅋ”

고기굽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두 남자의 술잔이 짠 하고 맞부딪힌다. 

밤이 깊어간다.








참피와 말



[와타시가 그만하라고 했는 데스!! 그러면 그만 해야 하는 데스!! 그런데 왜 그만 안 하는 뎃샤!!]

이 더러운 놈은 오랜만에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사 가던 내게 나타나서는 뭐라할 틈도 없이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비닐봉투에 지 똥을 처바른 놈이다. 집에 빨리 가려고 공원길을 가로지르던 게 잘못된 판단이었나 보다. 아니 그런데 이 작은 도심공원에 이런 놈이 어떻게 살고 있지?

그래도 다행히 비닐봉지가 막고 있고 안에 든 것들도 대부분 비닐포장이 된 것들이라 봉지에서 냄새 나는 거 외에는 별 피해가 없었지만 너무 화가나서 발로 밟아 댔는데 뭐라뭐라 지껄이길래 폰을 꺼내서 링갈을 켜보니 저 지랄을 떨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그만하긴 뭘 그만해! 갑자기 튀어나와서 남의 거에 똥 발라놓고 적반하장으로 지랄이네!”
[그게 어떻게 똥닌겐 것인 데샤!!! 그건 와타시 것인 데스! 와타시가 그리 말했으니 와타시 것인 데스!]

뭔 개소리야 이 미친 참피새끼는? 나는 발에 무게를 실어 놈의 다리 두 쪽을 짓밟았다. 곧 뼈가 산산조각나는 소리와 함께 참피놈은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다시 내 봉투를 보고는 자기 거라고 울부짖었다.

“이게 왜 네꺼냐 참피새끼야!”
[와타시가 와타시 거라고 했으면 와타시 거인 데스! 심지어 멍청한 똥닌겐이 그것도 못 알아 들을까봐 친히 고귀한 와타시의 운치까지 발라놓은 데스! 그 정도면 아무리 배운 것 없고 눈치 없어도 알아서 먹을 걸 바치고는 공손히 물러나도 모자랄 판에 이런 폭거를 저지르는 데샤!!!]

와 이 정도쯤 되면 어처구니가 없는 걸 넘어서 웃음이 나온다.

“네가 뭐라도 되냐? 아니, 뭐가 된다고 한들 내가 내돈 주고 사온 물건에 똥칠한다고 네 거가 되는 게 말이 되냐? 왜? 아주 세상 모든 것에 똥칠하고 네 거라고 우기지?”
[세상씨는 와타시에게 봉사해야 하는 데스! 와타시는 아무런 대가 없이 세상씨와 노예들에게 섬김받아야 한단 말인 뎃샤! 그런데 왜 와타시가 말해도 안 해주는 데스!! 이건 직무유기인 데스! 다 신고해버릴 거란 데스!!]

꼴에 신고라는 단어는 또 어디서 듣고 온 건지. 나는 신고해보라고 조롱하면서 참피놈 양 손마저 짓이겨 놓았다.

[데—갸--------!!!]

이제는 비명인지 포효인지 링갈로 번역도 안 되는 피 끓는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어이쿠, 검은 눈물도 흘리고 있네.

“저기, 무슨 일이십니까.”

그러고 있자니 경찰관 한 분이 다가오신다. 걸으면서 오시는 걸 보니 신고를 받거나 해서 오신 건 아니고 우연히 주변을 돌다가 내 모습을 보고, 그리고 이 실장놈 비명을 듣고 오신 모양.

경찰관을 보더니 초승달 눈을 휘며 데프프 웃는 성체. 같잖아서 피식 웃어주고는 경찰관분께 자초지정을 설명 드렸다. 녹색의 분비물이 묻은 명백한 증거까지 있다 보니 경찰관 분은 순간 얼굴을 찌푸리고는 놈을 흘겨보신다.

[어서…저 똥닝겐을 체포하란…]
“어휴, 욕보셨네요. 요즘 저런 놈들이 가끔 나와서 저희도 골치입니다.”
“몇놈 저런 놈이 나오나 보죠?”
“말도 마세요. 갑자기 튀어나와 행인들 방해하고, 그거 까지면 좋은데 똥 바르려 들고 그때마다 파출소에 신고접수가 엄청 들어옵니다. 저희가 뭘 어쩔 수가 없는데 말이죠.”
“고생하시네요.”

내가 비닐봉지에서 음료수 한 캔을 꺼내 드리자 이런 거 받으면 안 된다고 한사코 사양하시는 경찰관분. 그래도 고생하시는데 호의로 드리는 거기도 하고 마침 CCTV도 없는 고마운(?) 상황이라 몇 번 권하니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음료를 받아 드신다.

[데? 데에?]

한편, 자기가 원하는 데로 나는 체포되고 내가 산 주전부리들은 자기 것이 되기는커녕, 나와 경찰관분이 화기애애하게 담소만 나누자 성체놈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이다.

[어째…서인 데스…와타시는 이…세상의 왕…]
“그럼 이 놈은 저기 쓰레기통에만 잘 버리고 가시면 됩니다.”
“넵.”

경찰관분이 가시고 나는 대충 과자 하나를 꺼내 다른 과자 비닐에 대충 옮겨담고, - 그 와중에도 내가 과자봉지를 뜯으니 제놈 주는 줄 알고 데프프 웃은 참피놈이 레전드다 진짜 – 빈 과자비닐을 장갑처럼 써서 성체놈 뒷덜미를 들어올렸다.

[또옹 닝겐…어서 와타시를 집으로 모셔가…]
“어 그래. 어서 네가 있어야 할 집으로 가자. 저 쓰레기통에 있으면 수거하시는 분이 오셔서 수거하실 거야.”
[그게…무슨…망발…]
“그리고 매립지 가서 그때까지 살아있으면 산체로 묻히거나 소각장 가서 불타 죽을 거다.”
[데히…!]

그제서야 자신이 죽음의 원 웨이 티켓을 끊었다는 걸 알아챈 참피놈. 내게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둥거리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은 지렁이가 꿈틀대는 것 만도 못한 움직임을 보일 뿐이다.

[벗어나는 데스…움직이는 데스…똥 닝겐은 와타시에 메로메로 될 것을 명하는…]
“그래그래 여기서 잘 기다리렴. 혹시 아냐? 청소부 아저씨가 네게 메로메로 될지?”

쓰레기통 뚜껑을 닫고, 나는 어디서 울려 퍼지는 지 모를 데에엥 소리를 배경으로 집으로 걸었다.



집에 와서 봉지 내용물을 꺼내 정리하고 있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음을 넘어서 궁금증이 들었다. 도대체 왜 참피놈들은 자기가 말을 하면 다 그대로 이뤄질 거라고, 아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고보니 저번에 누가 마이튜브에 올린 영상에는 수조에 든 자실장이 왜 밥하고 콘페이토를 가져오라 하는데도 아무도 안 듣냐고 호통(?)치는 영상도 있었지.

이놈들은 진짜 자신이 말하면 뭐든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이튿날 학교에 가서 공강시간에 동아리 방에서 뻐팅기다가 오타쿠 동기녀석에게 내가 겪은 이야기를 해줬다. 동기 녀석은 그걸 듣고는 그거 마치 언령 같다고 이야기했다. 언령이 뭐냐고 물으니 그 일본 만화 같은 데서 나오는 개념인데 말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어서 특정한 말을 하면 그 말에 담긴 힘이 발휘된다는 것이었다. 즉, 참피들은 자기 말에 언령 같은 힘이 있다고 믿는 거 아니냐는 것.

그 자리에서는 그게 무슨 되도 않는 소리냐며 웃었다. 동기도 진지하게 한 이야기는 아닌지라 같이 웃었는데, 집에 와서 그 말을 곱씹어보니 왠지 그동안 참피들이 해온 행동을 봐서는 진짜 그 언령인지 뭔지와 연관성이 있어 보였다. 게다가 더 깊이 생각해보니 참피놈들의 고향도 마침 일본이지 않은가?

생각난 게 있으면 바로 해야 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즉시 풀어야 한다는 내 좌우명 답게, 나는 바로 그날 학교 중앙도서관으로 돌진하여 언령과 참피에 대한 책을 닥치는 데로 찾았다.

먼저 조사한 책들은 일본의 ‘언령’에 대한 책들. 뭔가 학술서 같으면 대충 다 모아놓는 대학교 도서관 답게 이런 것에 관련된 책들도, 다소 오래된 것이 많긴 했지만, 얼추 몇 권은 있었다.

책들을 읽고나니 신기한 게, 의외로 말에 힘이 담겨 있다는 생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퍼져 있었다. 존귀하거나 무서운 것은 일부러 그 이름을 피해 부르지 않는 행위는 동아시아에서는 피휘, 유대인 같은 셈족계통에서는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근대이전까지 유럽에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이름을 알면 그것을 물리칠 수 있다는 전설이 여럿 내려왔다고 한다. 이건 그 존재의 ‘진명’을 부르면 그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일본의 주술적 전설과도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또 조금 딴 소리긴 하지만 그렇게 직접적인 이름을 피해서 부르다가 나중가면 아예 그 이름이 실전되는 경우도 생기는데 앞서 말한 셈족계통이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다가 그걸 까먹고 나온 게 야훼고 게르만 / 슬라브어권에서는 곰이 너무나 무서워서 ‘갈색 그것’ 혹은 ‘꿀 먹는 것’ 등으로 부르다가 나중에는 아예 곰의 원래 이름은 잊어버리고 그 별칭이 곰의 명칭이 되었다.

심지어 그런 관념은 지금도 있다. 물론 주술적인 힘이니 그런 걸 믿는 건 아니고 낙인효과라고 해서 여러 명의 사람이나 집단이 한 사람이나 다른 집단에게 ‘너는 ~~한 사람이다.’ 라는 말을 되풀이하면 청자가 어느새 자신을 그 틀에 끼워 맞추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런 것까지 조사하고 나니, 서서히 참피들의 행동양식에 대해 단서조각이 모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 결정적인 것, 그러한 개념을 참피가 어떻게 알게 되었나 하는 것이 남았다.

그래서 대충 언령을 비롯하여 언어가 가진 힘에 대한 믿음에 대해 감을 잡은 나는 그 뒤로는 참피에 대한 책을 뒤졌다.

참피가 기록된 가장 오랜 문헌기록은 기원후 7세기, 일본 야마토 조정의 기록이다. 당시 야마토는 백제멸망 후 일어난 백제부흥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정예병 대부분을 보냈다가 백강전투에서 상실하는 엄청난 손실을 겪었다.

그거 누가 우리로 치면 미국이 외계인에게 침공당해 그걸 구원하려고 전방사단들을 있는 대로 차출해 보냈는데 그게 첫 전투인 샌프란시스코 전투에서 전멸당한 상황이라고 했었나? 하여튼 그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란다.

그래서 야마토 정부는 당장 국가 방위를 위해 아직 북부 정도만 지배하고 있던 큐슈에서 물자며 병사며 마구 징발하기 시작했다. 참피는 바로 그 징발에 관한 문헌에서 등장한다.


‘야마토 조정은 처음 실장석과 접촉하였을 때, 이들을 ‘작은 사람’으로 보았다. 조정에 올라오는 보고서에 이들을 사람(人)이라고 기재한 것이 그 근거라 할 수 있다. 피정복민을 자신의 군사로 징병하던 시대상황으로 볼때, 야마토 조정은 실장석을 병력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곧 큐슈 대제독 아베노 히라부는 이들이 사람이 아니며 이기적이고 사람들이 농사지은 작물을 훔쳐먹는 해수라고 보고를 올림으로써 그러한 시도가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아마노 히로하타, [일본 고대사회의 역사], p.138.-


참피는 큐슈 남부에 서식하고 있었고 야마토는 큐슈 남부까지 점령하면서 처음 접했다. 처음에 야마토 조정은 이 ‘작은 소인’을 사람이라고 생각해 병사로 쓸 수 있는지 흥미를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힘없고 이기적인 참피의 습성상 얼마 안 있어 야먀토는 실장석을 병사는커녕 잡역부로도 못 쓰는데다 농작물을 훔쳐먹는 해수로 삼아 토벌했다.

그러나 참피의 번식력으로 인해 완전 토벌에는 실패했고, 다만 같은 사람은 아니니 고기로는 쓸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야마토 조정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이 번식력이 좋은 해수를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곧 아베노 히라부는 덴노에게 올리는 보고를 통해 이들을 잡아 말리면 오래 보관 가능한 저장식품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 보고에 보이는 ‘오랜 기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3개월 이상의 장기간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가축을 거세하고 도축하는 등의 기술이 대륙으로부터 유입되지 않아 저장성이 높은 고기를 만드는 기술이 극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노 히로히타, Ibrd, p.139.-


그리고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 일본에서는 실장석을 주술적 목적으로도 이용한 것이 보였다.


‘매년 정월에 덴노의 안녕을 빌고자 음양사들은 실장석을 이용하였다. 그 실장석은 화려하게 치장되었으며 좋은 음식을 한껏 배부르게 먹도록 하였다. 이 의식은 하루에서 이틀가량 진행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덴노는 수수한 옷을 입었다. 이는 잡귀나 부정한 것들이 실장석을 덴노로 착각하게 하여 그에 깃들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루에서 이틀동안 그리 대접받은 실장석은 안하무인의 존재가 되었다고 하며, 이는 잡귀들이 실장석의 안에 들어가 나타난 현상이라 보았다. 그리고 그 직후 그렇게 한껏 올려진 실장석을 경내로 옮겨 모든 옷과 털을 제거했다. 이때 실장석이 탈분하지 못하도록 그 총구를 마개 따위로 막았는데, 이는 실장석의 몸에 쌓인 부정(정결하지 못한 것)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다.
이윽고 신관들은 세상의 모든 악과 부정을 다 짊어진듯한 표정을 한 실장석을 산속 넓적한 바위 위에 눕힌 후 사자(死者)의 시신 위에 돌을 놓아 그 혼백이 부정을 끼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처럼 커다란 돌로 움직이지 못하게 봉했다. 그러고는 여기있다! 여기있다! 라고 실장석의 둘레를 돌며 외쳤다. 이것은 마치 여기 돌로 봉인된 존재가 덴노다 라고 외치는 행위였다고 해석된다. 그리하여 그 실장석은 죽어갈 때까지 덴노에게 갈 수 있는 부정을 짊어지고 말라죽게 된다.’
-이치하라 츠네히코, [실장석의 주술적 이용: 헤이안 시대부터 전국시대까지], pp.120-121.-


그 이후로 실장석은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내가 흥미로워한 부분 아마도 전국시대 조정 귀족인 듯한 작자의 눈으로 그 시대를 바라본 기선집에 나오는 대목이었다.


‘덴노가에서부터 일반 공가(귀족가)에 이르기까지, 실장석의 새끼를 기르는 것은 그리 보기 힘든 것이 아니다. 다만 기르는 것은 새끼때로, 실장석이 크면 성질이 사납고 행동이 오만방자해진다고 하여 신에게 공양하는 것이 보통이다.’
‘신사와 절에서는 매년 실장석으로 공양을 지낸다. 다 큰 실장석을 함에 가두고 시간이 지나 그리 죽은 실장석을 태움으로써 부정을 없애는 의식이 주를 이룬다. 불가에서는 원래 살생을 행함을 금기시하나 다 큰 실장석은 깨끗하지 못함이 모인 존재로 보아 이를 태우는 것은 부정을 태우는 것이지 살생이 아니라고 본다.’
-작자미상, 기선집, 케이오 출판사 발간본(1999)을 기준으로 함-


즉, 이미 전국시대쯤 가면 새끼 한정이지만 실장석 사육도 나타나고, 앞서 헤이안 시대에 보았던 주술적 ‘공양’ 또한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게 무슨 의미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주술적’ 이용에 주목했다. 참피들은 인간과 가까이하면서, 또 ‘이용’ 당하면서 서서히 말이 힘을 가진다는 개념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 가설에 쐐기를 박는 자료가 나왔다.


‘…실장석을 이용함에 있어 ‘말’의 힘을 이용했다. 실장석은 새끼를 베면 실장노래를 부름으로써 새끼에게 기초적인 교육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다. 따라서 이 부분을 이용하기 위해 실장어를 잘 하는 사람을 선발, 교육하여 임신한 실장석의 입을 막은 후 이 사람이 실장의 언어로 필요한 사항을 새끼에게 교육하게 되었다.’
-탄조 아키토시, [전국시대 실장석의 활용에 대하여], p.209-



‘실장석들이 가장 잘 받아들인 관념은 말의 신령이 가진 힘이었다. 이윽고 실장석들은 자신들도 이런 힘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츠다 히로오, [초승력에 대한 일본 내 관념의 변화], p.54-


즉, 실장석들은 몇 세기 동안 인간과 같이 지내면서 말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는 관념을 자연스레 받아들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마 말에 힘이 있다는 생각은,

‘말에 힘이 있다.’ → ‘내 말에 힘이 있다.’ → ‘그러므로 와타시는 신적인 존재다.’ → ‘와타시는 만물을 지배하는 자다.’

라는 매우 참피스러운 왜곡과정을 거쳐 위석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이 가설이 맞다면 인간으로부터 받은 지식에서 인과관계고 뭐고 자기에게 불리한 점은 싹 무시하고 달콤함 말만 뽑아서 속삭이는 위석의 영향으로 참피들은 자신들의 말이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고, 말하면 모두 이뤄져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니 간혹가다 녀석들이 다급할 때 주변 무생물에게 아첨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행동을 해달라고 말하는 현상이 이해가 간다.

‘와타시가 자를 낳아야 하니 똥문씨는 어서 열리는 데스웅~’

내가 일전에 야산공원에 갔다가 화장실 앞에서 본 한 만삭의 성체실장석은 열리지 않는 문에 아첨하고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채 새끼들을 길바닥에 철퍽철퍽 싸질렀다. 그때 울고불고 왜 자기가 이렇게 말했는데 안 열리냐는 놈을 보고는 비웃었는데 그건 그 놈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행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한가지 의문이 더 생긴다.

실장석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왜 놈들이 매일 그러고 살지 않는 것일까?

이건 논문이나 책을 더 찾아봐도 되겠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참피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더 빠르겠지. 나는 짐을 챙겨 학교 근처 뒷산 자락으로 발을 옮겼다.



[닝…겐상. 와타시가 뭔가 잘못을 했는 데스까?]

뒷산 학교 주차장 겸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발견한 녀석은 내가 봐도 너무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야, 내가 널 죽인댔냐, 학대를 한댔냐. 주접 그만 떨고 묻는 것에 대답이나 해줘.”
[저, 정말로 안…죽이시는 데스까?]
“어. 아 물론 네가 되도 않는 분충짓하면 이자리에서 때려 죽이겠지만 그것만 아니면 해 안 입힐 거니까 안심해도 된다. 그리고 답변 잘 하면.”

나는 녀석들이 죽고 못 사는 별사탕, 통칭 콘페이토를 꺼내 녀석의 눈 앞에 내밀었다.

“이걸 주지.”

꿀꺽, 자신을 순식간에 죽여버릴 수 있는 존재를 앞에 두고도 욕망이라는 본능은 녀석으로 하여금 군침을 삼키게 만든다.

[답변드리겠는 데스. 만족스러우실지는 모르겠지만 성심성의껏 답변드리겠는 데스.]
“좋아. 먼저, 너도 네 말에 힘이 있다는 사실을 믿나?”
[그거인 데스까? 음, 사실 와타시도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는 데스 닝겐상.]
“오호라. 너도 세상이 다 네 밑이고 다 노예라는 생각이 있겠군?”
[뎃?! 아 그렇다고 막 닝겐상께 운치를 던진다든가 하는 건 아닌데스! 정말인 데스!]
“어, 그건 방금 안 던진 거 보고 알았으니 됐다. 다음질문.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왜 그걸 고래고래 안 떠들고 사는 거야?”
[그러니까, 와타시도 왜 세상이 와타시 마음대로 안 되는가? 와타시가 말 하면 그대로 이뤄져야 한다 같은 생각은 있는 데스. 기실, 와타시뿐만 아니라 다른 이웃상들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인 데스.]

녀석은 음 하고 뭔가를 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있어도 당장은 먹을 걸 구하는 것 부터가 우선인 데스. 그 다음은 이 몸 뉘일 자리도 구해야 하고. 자가 생기면 그 자들을 먹여 살릴 걱정부터 해야하는 데스.]
“그건 그렇지.”
[그런 상황에서 와타시가 말하면 뭐든 되어야 하는 뎃샤 하고 떠들고 다닌 들 그게 이뤄지지도 않는데 떠들면 뭐하겠는 데스까? 오히려 명줄이나 재촉하지.]
“흠, 좋아. 괜찮은 대답이었어.”

나는 약속대로 녀석에게 콘페이토를 내밀었다. 녀석은 쭈삣거리면서도 욕망 가득한 눈으로 콘페이토를 좇았다.

“코로리나 뭐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마라. 못 믿겠으면 좀 있다 집에 가져가서 구더기나 엄지를 먹여보든가.”
[뎃?! 데에, 죄송한 데스. 닝겐상을 의심하는 건 나쁜 거지만…]
“네가 그러는 데는 이유 있는 거 아니까 나쁘게 생각치는 않으마. 여하튼 답변은 고마웠고, 이건 시간 빼앗은 데 대한 보상이다.”

나는 가져온 건빵도 한봉지 얹어주었다. 연신 고개를 숙이고는 오늘의 수확을 가지고 돌아가는 성체참피.



그 이후로도 몇 놈의 인터뷰(?)를 더 따내서 들어봤다. 학교 뒷산 참피놈들 이야기만 들으면 표본이 한정될까 싶어 집 주변 산 공원 놈들도 몇 놈 잡아서 들어봤다. 그 결과, 몇몇 분충들을 제외하면 다들 하는 이야기가 비슷했다.

‘먹고 살기 바쁜데 그딴 도움 안 되는 짓은 왜 하나?’

그랬다. 녀석들도 어렴풋하게는 안다는 거다.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걸. 그러니 내 앞에서 벌벌 떨던 녀석들처럼 평소에는 쥐꼬리만 한 이성으로 그런 엉터리 생각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말, 세상은 내가 말하는 데로 이뤄져야 한다! 라고 내뱉는 놈들은 대개 자신들 나름대로 극한 상황에 몰린 녀석들이었다. 처음 내게 투분하고 지랄하던 그 놈도 피골이 상접했던 게 몇날며칠을 굶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몰릴 데로 몰리면 이성이 실종되면서 분충성과 함께 자신의 말이 신적인 권위를 가진다는 그 되도 않는 개소리가 고개를 쑥 내미는 것이다. 조금 궤는 다를지라도 당장 사람만 해도 그렇잖는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본성이 나온다고. 문제는 그래도 좋은 본성이 나올 수 있는 사람과 달리 실장석은 백퍼센트 분충성만 나온다는 거지만.



나는 이 내용을 대충 정리해서 내가 가는 커뮤니티 참피 게시판에 게재했다. 재미없는 글이라 금방 묻히겠거니 했지만 웬걸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곧 바로 이름난 학대파들이 양충이든 분충이든 모아서 굶기거나 학대하여 극한 상황을 만든 뒤 참피들이 와타시가 명하노니!! 하는 영상을 찍어 올렸다.

심지어 학계의 몇몇 학자들에게서 내가 가진 자료를 써도 되겠는가에 대한 문의도 받았다. 뭐 거창하게 공동저자나 제2,3 저자 정도는 아니지만 -그러기엔 내가 수집한 자료 및 분석 수준도 낮고- Special Thanks에 내 이름을 올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했으니 나로서도 득을 봤다는 느낌이다.

하여튼 업계 네임드들과 무려 학계 거물급 학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셈이니 이게 참 득인지 실인지 모르겠다만서도 평생 이렇게 주목받아본 적이 없으니 나 개인으로서는 참 좋은 경험이었다.

고마워 참피.








한밤중의 일


테치

뭐지? 토요일 저녁, 오랜만에 치킨을 먹고 TV를 보고 있자니 내 귀에 들릴 리 없는 무언가의 소리가 들린다.

“소피아?”
“데스? 무슨 일이신 데스?”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TV를 보던 얼굴을 돌려 나를 쳐다보는 내 사육실장 소피아. 나는 순간 소피아가 낸 소리인가 했지만 이미 키운지 3년이 넘은 성체인 소피아의 어미는 ‘테치’가 아니라 ‘데스’ 로 변한지 오래다.

“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소리 데스? 어떤 소리 데스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소피아. 정말로 모르는 눈치다. 그렇다면 방금 내가 들은 소리는 뭐지? 환각이라도 들었나?

테치

분명히 들었다. 확실하게 테치라고 했다. 요즘 야근과 출장의 연속이라 피곤해서 헛것이라도 들었나 싶었을 때 또다시 작지만 선명한 그 소리가 들렸다.

“뭐야, 방금 자실장이 내는 소리 같은 게 들렸는데?”
“자실…장 데스까?”
“어. 그 왜 테치였나? 너 어릴 때 너도 테치라고 했잖아. 그 소리가 나는 거 같은데?”

내 말에 소피아는 뭔가 떨떠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피곤해서 뭔가를 잘못 들으신 거 아닌 데스? 요즘 계속 그 회사라는 곳에서 늦게 들어오시거나 해씨와 달씨가 몇번 반복해서 오르내리는 동안 집에 못 들어오시지 않은 데스까.”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두번째 듣고 나니 뭔가 있는 거 같아.”
“정말 들으신 데스까? 와타시 걱정되는 데…”

테치테치

순간 침묵. 

TV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와 소피아 둘의 시선이 서로 맞닿았다.

“들었지?”
“들은…데스.”

나는 TV를 껐다. 불안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는 소피아를 뒤로하고 나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두리번 두리번 시선을 옮겼다.

“뭐지? 분명히 들었는데 어디지?”

계속 자실장이 있을 법한 곳을 둘러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자실장은커녕 실장석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은 곳은 베란다지만 그런 곳에 자실장이 있다는 건 말도 안ㄷ….

테치!

있다.

테치치치!

있었다.

테츙?

분명히 실장석이 있으면 안 되는 곳에 실장석이 있었다. 크기를 보아하니 내가 찾는 자실장이 맞는 거 같았다. 녀석은 그 조막만한 손으로 계속 베란다문을 톡톡 치고 있었다. 베란다와 거실을 가르는 창이 워낙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지라 자실장이 그 작은 손으로 통통 치는 소리 정도는 완벽에 가깝게 차단해 버렸던 것이다.

“주, 주인사마…”

덜덜 떠는 소피아. 나는 손으로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소피아의 목에서 목걸이형 링갈을 벗겨냈다. 소피아는 순간 놀란듯 흠칫 하면서 내 손을 잡았지만 이내 손을 내리고 내가 목걸이를 가져가게끔 놔두었다.

“테치이! 테치 테치!”

나는 베란다문을 열고 링갈을 들어 녀석 가까이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링갈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번역되어 나온다.

“주인사마인 테치? 마마에게 말 많이 들었던 테치.”

자실장은 방긋 웃으며 안아달라는 듯 팔을 활짝 펴고 테치테치 떠들었다.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주인사마? 마마? 나는 순간 역한 기운이 올라와 이 맹랑한 자실장을 당장에라도 때려 죽일 뻔했다. 내 옆에서 긴장한듯 내 다리를 꼭 잡고 있는 소피아가 아니었으면 그리 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처리를 할 때가 아니다. 이 놈이 도대체 어떻게 여기 들어올 수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웃는 얼굴로 자실장에게 물었다.

“너, 자실장이구나.
“네 테치. 마마의 귀여운 자인 테치.”
“하하, 귀엽구나.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니?”
“테? 어떻게 들어왔냐는 테치?”

내 질문에 자실장은 뭔가 고민하는 거 같더니 바로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마마가 들여보내준 테치. 마마가 와타시는 여기서 태어났다고 말한 테치.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다. 여기서 태어났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는 분노로 다시 한번 몸을 떨었다. 하지만 무작정 분노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흠, 어라?

뭐지? 나는 순간 무언가 스파크가 튀듯 생각이 났다. 별로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희미해진 기억. 자실장을 보니 그 기억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맞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너무나도 딱 맞다. 

“자실장아, 네 마마는 어디 있니?”
“테? 마마 말인테치?”

자실장은 뭔가 갸우뚱하더니 이내 아 하며 그 뭉툭하기 짝이 없는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데…뎃?!”

자실장의 손 끝에 있는, 지목받은 소피아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 순간 확실해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사람을 기만해도 유분수지. 

나는 손이 벌벌 떨렸다. 분노가 진정되지 않는다. 그동안 얼마나 잘 해줬는데! 어떻게 대했는데 이런 식으로 배신을 한단 말인가?

“데, 데스 데스.”

소피아가 벌벌 떨면서 내 바지를 꼭 쥐었다. 나는 그런 소피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힉!”

놀란듯 숨을 삼키며 뒷걸음질치는 소피아. 그러나 빵콘도 하지 않고 덜덜 떨지 언정 여전히 얌전하게 있는 소피아는 훈련받은 사육실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후…”

나는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처리하자.”





잠시 후, 어느 공원의 뒷편 으슥한 풀밭 한 곳. 나는 벌벌 떠는 독라들을 앞에 두고 노려보고 있었다.

“오로롱 오로롱 잘못한 데스. 다시는 안 그러는 데스. 제발 용서해주시는 데스.”

그 중 큰 독라가 눈물을 흘리면서 내게 빌며 뭐라뭐라 입을 열고 있었다. 내 손에 들린 목걸이형 링갈에서 가증스러운 놈의 소리가 번역되어 나온다.

“야, 네가 외롭다고 새끼 깔 때는 마냥 좋았지? 그런데 그거 아냐?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른 다는 거.”
“평소에 자비로운 모습을 많이 보이신 데스. 그래서 자를 보여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인데스…”
“뭐래냐? 한마디로 남의 사정이나 생각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지 좋을 대로 했다는 거 아냐?”
“오로롱…”

부정을 안 하는 거 보니 진짜 그리 생각했나 보다. 

“야, 내가 그동안 널 어떻게 대했냐? 발로 차길 했냐 아니면 나쁜 짓 한다고 쫓아내길 했냐? 나는 그래도 나름 자비롭게 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이따위로 통수를 치냐?”
“자비로우실 거면 끝까지 자비로우시는 데스…”
“뭐가 어쩌고 어째?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아주 기어오르네?!”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화가 나다가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지가 뭔데 날 자비롭니 뭐니 판단을 하고 자빠졌나? 게다가 뭐? 자비로울 거면 끝까지 자비로우라고? 이게 실장석의 사고구조인가?

놈의 어처구니없는 망발에 분노하고 있자니 역시 지 어미와 똑같이 독라가 된 새끼는 그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저건 마마가 말했던 주인사마가 아니다. 분명 주인사마는 친절하고 자애로운 분이라고 했다. 자신이 나타나면 따뜻한 물로 아와아와를 시켜줄 것이고 그 후에는 스시와 스테이크를 먹여줄 것이라고 했다. 더 이상 마마가 가져오던 그 맛없는 덩어리들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도대체 자기 눈 앞의 저건 무엇인가? 새끼 실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눈은 분명 그리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화가 더 치밀어 오르다 말고 뭔가 탁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

무엇때문인지 모를 깊은 한숨만이 내 입에서 나올 뿐이다. 사람이 분노가 일정 선을 넘어가면 오히려 차분해지고 허탈해진다고 했던가? 내가 지금 딱 그런 꼴이다.

내가 한숨을 쉬고 있으니 화가 누그러졌다고 생각이라도 한 건지 녀석이 다시 지껄이기 시작했다.

“용서해주시는 데스우. 그리고 저 아이를 제발 키워주시는 데스. 그리고 아이는 마마가 필요한 데스. 그러니…”
“닥쳐!”
“데에엥!!!”

이게 뚫린 입이라고 쓰레기 같은 말을 내 뱉는 구만? 이딴 개소리, 아니 개에게 미안하네. 여튼 되도 않을 소리 계속 듣고 있을 필요가 더 있나? 나는 이만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넌 네 스스로 기회며 뭐며 다 걷어찼다. 그래놓고서는 키워주네 어쩌네 그딴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제발 자비로운 분으로 돌아와 주시는 데스... 오로롱...”
“웃기고 앉았네. 난 한 번도 너 같은 놈에게 자비로운 놈이었던 적 없었거든? 진즉에 뭘 하든 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한 내가 병신이지.”
“이러고 어찌 살라는 것인 데스까. 독라가 되면 공원으로 갈 수도 없는 데스…”
“내 알바냐?!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라!”

나는 가볍게 – 어디까지나 ‘가볍게’ – 놈을 걷어찼다. 내게는 가볍다지만 놈에겐 아니었던지 놈은 데갸악! 소리와 함께 날아가더니 땅에 부딪혀 널부러졌다.

그 모습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자실장이 테에엥 울며 자기 어미쪽으로 토테토테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런 놈은 내 손으로 죽이는 것보다도 비참하게 만든 후 살려놓는 게 낫다. 어차피 계절은 겨울, 저대로 놔두면 추위 속에 고통받다 비참하게 죽을 것이다. 인간을 상대로 그 얕은 꾀로 기만을 저질렀으니 저 정도는 해야 내 마음이 후련하기도 하고.

테에엥 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눈도 돌리지 않고 집으로 걸었다.





집에 와 신발을 벗고 집안을 둘러보니 그 난장판이 마치 태고적 일인듯 고요하다. 오직 그 새끼놈이 싸질러 놓은 녹색 분변과 그 냄새만이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조용히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하…. 

허무하다. 나름 호의를 베푼 거 같은데 이런 식으로 돌려받는 것이 인생에 한두번은 아니지만 이런 결말은 매번 경험할 때마다 허탈함에 나도 모르게 한 숨을 쉬게 된다. 문득 손에 쥔 목걸이형 링갈을 쓱 올려본다. 

이 물건도 이제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가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거실에서 무언가가 나와 내게 다가왔다.

“데스데스응?”
“어, 놀랐지 소피아. 이젠 괜찮아.”

나는 거실에서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나온 소피아의 목에 목걸이를 다시 채웠다.

“야 목걸이 잘 썼다. 덕분에 그 놈들이 무슨 짓거리를 꾸몄는가를 아주 생생하게 들었다.”

어떻게 거짓말을 해도 그딴 거짓말을 할 수 있나 모르겠다. 

“다행인 데스 주인사마. 갑자기 자실장이 나타나질 않나, 와타시더러 마마라질 않나 놀라서 말도 안 나온데스.”

우리 소피아는 불임인데 말이다.

최근 사육실장은 불임처리를 해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안구를 하나 적출하고 의안을 끼운다든가 분대에서 새끼를 생성하는 부분만 없앤다든가 해서 불임으로 만든다는데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고 여튼 그런 식으로 불임처리를 하기에 사육실장이 새끼를 낳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그러니 지가 우리 소피아 새끼라고 테치테치 나오는 놈은 뻔할 뻔자로 주변 들실장의 새끼가 몰래 들어와서는 자식 행세를 하는 것이다.

“소피아야, 미안하지만 저 창문 닫자 안되겠다.”

나는 베란다 창문에 작게 난 특수창 – 사육실장이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만든 작은 별도창문 -을 가리켰다. 소피아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와타시도 그게 좋을 거 같은데스 주인사마. 죄송한 데스. 너무 갑갑해서 환기 좀 시키겠다고 열어놓은 창문으로 새끼를 들이밀 줄은 몰랐던 데스.”
“됐어. 네 잘못아냐. 나도 그냥 괜찮겠지 싶어서 열린 거 방치해 놨으니.”
“그런데 집 더 뒤져봐야 하지 않겠는 데스까? 아까 그 자실장 말고 다른 자실장도 들어왔을 지도 모르는 거 아닌데스?”
“괜찮아. 나도 몰랐는데 이 링갈에 위석 서쳐기능도 있더라. 그거 돌려봤는데, 지금 잡히는 게 너 하나야.”

내 말에 소피아는 그제서야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혹여나 숨어있던 놈이 나와서 집안이 난장판이 되거나 하는 일은 없겠는 데스요. 그런데 정말이지 저기로 자기 새끼를 들어 넣다니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는데 진짜 그럴 줄은…”
“하여간 들실장놈들 뻔뻔한 건 알아줘야해.”

나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분노로 씩씩거리며 특수창을 닫았다. 소피아도 한 숨을 푸 하고 내쉬더니 문득 궁금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여기에 탁아를 했다는 데스?”
“내가 다른 사람과 달리 지보고 들실장이라고 쫓아내거나 하지 않고 가끔은 먹을 걸 줬다고 그랬 덴다. 그거 보고는 제놈에게 그 뭐라더라? 메로메로? 된 게 틀림없으니 지 자식놈을 밀어 넣으면 분명히 키워줄거라고 생각했다나봐.”
“데에…”

소피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지금 내 표정도 그리 다르지 않겠지.

“뭐, 지 자식새끼놈 소피아 네 자식이라고 들이 밀고 우리 둘 다 그놈의 매력? 웃기지도 않네. 여튼 그 매력인지 뭔지에 홀려서 키우면 그제서 사실은 내가 저 자실장의 진짜 어미다! 하고 나타날 생각이었겠지 뻔할 뻔자로.”
“아니 무슨 생각을 해도 우지챠도 안 할 그런 단세포적인 생각을 한다는 데스까?”
“몰라. 혹시 알아? 이 추위에 이판사판이니 행복회로를 돌렸을지.”
“데스우…”

소피아도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곧 소피아는 밝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래도 주인사마 표정이 어느 정도 풀리신 것 같아서 다행인 데스. 아까는 너무 무서워서 차마 말조차 걸지 못할 정도였는 데스.”
“내 표정이 그랬어?”
“나름 주인사마와 가까이 지냈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건 처음 본 데스요. 와타시는 이러다가 주인사마께서 그 들실장들을 찢어죽이시는 건 아닌가 걱정한 데스.”
“에이 너도 걱정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런 놈들 걱정해줄 필요 있어?”
“와타시는 그 들실장들이 죽는 건 상관없는 데스. 하지만 주인사마의 손을 더럽히게 되지 않냐는 데스요.”

소피아가 나를 걱정스레 쳐다보는 데 마음이 찡했다. 이러니 더더욱 그 들실장놈이 괘씸했다. 만약 불임수술이 아니었으면 소피아가 누명을 쓰고 잘못하면 처분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그런 건 하나도 신경쓰지 않고 남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지들 이익이나 챙기려드는 놈들이 들실장이다. 나는 가슴 깊이 그 점을 새겼다.

“이제 들실장놈들 보면 최소 때리고 쫓아내진 않아도 철저하게 무시해야 되겠어.”
“그러시는 게 좋을 거 같은 데스.”

나는 물티슈로 대충 놈의 새끼가 싼 분변을 닦아냈다. 제대로 된 물청소는 날이 밝은 후에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소피아가 나를 도와 꼼꼼하게 운치를 닦아냈다.

“어디선가 실장석 울음소리가 들리는 데스.”

소피아의 말. 나도 귀를 기울이자 자그마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녀석들의 울음일지 아니면 또 죽어가는 그저 그런 들실장들의 울음소리일지. 나는 감흥 없이 물티슈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밤이 점점 깊어왔다.








느끼기엔 너무 똑똑하고 알기엔 너무 멍청한 슬픈 지성이여



생명체여, 너 슬프도다. 행복을 느끼기엔 너무도 고등하고, 행복을 알기엔 너무도 하등하구나!
- 쎄쌀로니키의 필로네스.


“데에…”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생태공원. 서울시는 인구압으로 터져나가는 동부 주거지구 시민들의 쉼터를 조성하고, 남양주시는 그 시민들이 쓰는 돈으로 새로운 세수원을 마련한다는 윈윈전략을 들어 만든 이곳은 그 드넓은 규모로 인해 곧 일본에서처럼 사육실장 유기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공원이 되었다.

이 분홍 옷의 성체 또한 그렇게 버려진 많고 많은 사육실장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야.”
“뎃?”

그리고 이 원사육실장에게 말을 거는 중년의 관리원 또한 많고 많은 공원 관리원 중 하나일 뿐이다.

“나원참 하루가 멀다 하고 버려지는 놈이 나오네. 넌 또 무슨 이유로 버려졌냐?”

휴대폰 링갈앱을 통해 자신에게 그렇게 묻는 관리원에게 사육실장, 아니 이제는 원사육실장이 된 성체가 입을 열었다.

“데…뭐가 문제였던 건지 잘 모르겠는 데스…”

일견 멍청한 소리지만 원사육은 왜 자신이 버려졌는지 정말로 알지 못했다. 

“그냥 이유없이 버려진 거야?”
“잘…모르겠는 데스.”
“뭐 똥 같은 거 여기저기 싼 거 아냐? 아니면 밥투정을 했다든가?”
“운치는 화장실 가서 누고 뒷처리도 잘 한 데스. 옷도 깨끗하게 잘 빨아 입었고 푸드는…조금 질린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투정 같은 건 안 한 데스우…”

그럼 왜 버려졌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남자. 왜 버려졌을까? 문득 성체실장은 무언가 하나가 더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어?”
“어제…자를 가지고 싶다고 하긴 한 데스.”
“그거네.”
“데스우…”

원사육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사육실장 교육을 받을때부터 누누히 듣던 소리. 자를 가지지 말라는 소리. 그게 용서받지 못할 행동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돌씨의 유혹은 강렬했다. 어쩌면, 자신만은, 자신의 주인만은 다를 줄 알았다.

“왜 자를 가지겠다고 했냐?”
“돌씨가…돌씨가 자를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 했던 데스.”
“그동안은 행복하지 않았어? 네 행색을 보아한데 학대를 받거나 한 건 아니어 뵈는데.”
“주인사마는 참 좋은 분이었던 데스.”
“그런데 왜 그랬어?”
“더 행복해지고 싶었던 데스.”
“더 행복해?”

사육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인님의 집에 와서 지금껏 먹었던 푸드를 먹어본 데스. 처음엔 교육받던 시절 먹었던 더러운 푸드가 아니라 깨끗하고 맛있는 푸드를 먹어서 참 행복했던 데스.”
“그리고?”
“그 다음엔 분홍색의 사육실장 옷을 받은 데스. 원래 입고 있던 흔한 초록색 옷이 아니라서 행복했던 데스.”
“그 다음은?”
“그 다음에는…몸을 제대로 누일만한 집과 침대를 받은 데스. 항상 잘때마다 내일 일어났을 때 보이는 것이 브리더상과 그 브리더상에게 죽어가는 동기들이 아니어서 행복했던 데스.”

거기까지 말하고, 성체실장은 공허한 눈으로 빈 공간을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운을 땠다.

“그리고…자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 데스.”
“여태껏 행복했는데 어째서?”
“어째서냐는 데스가…당연한 거 아닌 데스까? 자를 가지면 행복한 데스. 그래서 그렇게 말한 데스.”
“그러면 그 이전에는 행복하지 않았어? 너 방금전에 자를 가지기 전에도 행복했다고 했었잖아.”
“그랬던 데스. 그런데…”

성체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어느새부턴인가 행복한 것이 잘 느껴지지 않았던 데스. 자고 일어나서 밥먹고 다시 잠에 드는 그 시간은 분명 행복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너무나 공허했던 데스.”
“한계효용을 느껴버린 건가?”
“데스?”

남자의 중얼거림에 그게 뭐냐고 고개를 드는 원사육실장. 남자는 길게 한 숨을 내 쉬고는 말했다.

“이 세상 모든 즐거움이 다 그렇지만, 행복에도 ‘역치’라는 게 있단다.”
“역치 데스? 그게 뭐인 데스?”
“예를 들어, 네가 처음에 말했듯이 매일 냄새나고 맛없는 푸드만 먹다가 어느날부터 깨끗하고 맛있는 푸드를 먹으면, 처음에는 기분이 좋겠지.”

하지만, 이라고 남자는 맗한다.

“그것도 처음에나 그렇지 그걸 계속 먹다 보면 그게 당연한 것이 되어버려. 그러다 보면 그 맛 좋은 푸드를 먹어도 더 이상 행복하지 않지.”
“그랬던 데스. 처음에는 참 좋았는데, 어느새부터 그게 맛이 없었던 데스.”
“게다가 옷도, 집도, 이름도. 처음 받았을 때는 뛸 듯이 기쁘고 행복했는데 그걸 계속 가지고 살다 보면 너무도 당연한 풍경이 되어 거기서 느끼는 즐거움이 사라져.”
“맞는 데스. 처음 가지는 와타시만의 옷이었던 데스. 하지만 조금 있으니 그저 그런 당연한 것이 된 데스.”
“그게 역치라는 거야. 행복도 계속 느끼다보면 처음 느꼈던 행복만큼 그것을 느끼기는 힘들지. 그렇게 새로운 행복을 느끼는 감정은 계속 줄어들다가 어느 순간에는 0이 돼.”
“닝겐상도 그런 데스?”
“그럼, 우리도 생명체인데 그걸 왜 안 느낄까? 내가 방금 한계효용이라고 말했지? 그게 인간들이 느끼는 그런 것이 실물경제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니 저명한 학자 나으리들이 그걸 보고 붙인 이름이야.”

관리원은 음 하고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지성 있는 동물이라면 당연히 그런 걸 느껴. 궤는 조금 다르지만 옛날에 매슬로우라고 하는 학자 양반이 이런 말을 했지. 인간은 처음에는 안전이 보장되는 것에 행복을 느끼지만, 곧 잘 먹고 자고 싶어하고, 그게 충족되면 주위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며 종국에는 자아실현을 하고 싶어한다고. 즉, 하나의 행복이 충족되면 곧 더한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는 거지.”
“그렇다면, 와타시는 왜 쫓겨난 데스? 와타시는 그저 역치가 다 되어서 그걸 뛰어넘는 행복을 요구한 것밖엔 없는 데스. 그건 당연한 거 아닌 데스?”
“음, 그게 말이야. 당연하되 당연하지 않은 것이거든.”

이건 또 무슨 말장난인가? 성체는 따지듯 물었다.

“오마, 아니 흥분해서 죄송한 데스. 닝겐상은 분명 그 역치를 뛰어넘으려 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했던 데스. 아닌 데스까?”
“맞아.”
“그렇다면, 그게 ‘당연한’ 거라면 그걸 ‘당연히’ 얻어야 하는 거 아닌 데스까?”
“그건 내가 느끼는 ‘당연한’ 거지, 그걸 주변에서 들어줄 의무는 없거든.”
“뎃?”

뜬금없어 뵈는 소리에 잠시 말문이 막히는 원사육실장. 

“잘 들어봐라. 우리는 생물이고 그렇기에 한 번 행복을 느끼고 나면 어느 순간에는 그게 식상해져. 그리고는 더 큰 행복을 찾게 되지. 그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더 큰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해.”
“그 리스크라는 건 무엇인 데스까?”
“글쎄…뭐라고 딱 설명하기는 힘든데, 그 행복을 얻기 위해서 짊어져야 할 ‘불확실성’ 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불확실성 데스?”
“그래. 너 더 큰 행복을 위해 자를 가지고 싶다고 주인에게 말했지?”
“그런 데스.”
“하지만 주인이 그걸 들어줄지 아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렸지. 그걸 허락할지 아닐지. 너는 그걸 확실하게 몰라. 그게 바로 리스크지.”
“하지만 아까도 닝겐상이 말씀하셨다시피 와타시가 더 큰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건 ‘당연하다’라고 하신데스. 그러면 주인사마도 당연히 그걸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 데스?”
“그건 ‘너’에게나 당연한 거지, 그걸 듣는 ‘주인’에게는 당연한 게 아니거든.”
“데에?”

이게 무슨 소리일까? 당연한데 당연한 게 아니라고? 왠지 선문답 같은 질답에 원사육실장은 머리에서 쥐가 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구상 그 어떤 생물도 그걸 다 이루고 사는 생물은 없어.”

그런 원사육과는 다르게, 관리원은 왠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데…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데스. 왜 ‘당연한’ 것을 요구했는데 이런 꼴을 당하는 데스….”
“아까도 말했잖아. 바라는 건 우리지만 들어줄 수 있는 건 주변이니까.”
“주변…데스까?”
“그래. 더 행복한 삶을 위해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건 주변 사람들에게 너희가 누리는 것을 희생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다오 라고 말하는 것이나 매한가지거든.”
“와타시는 주인사마에게 희생하라고 한 적이 없는 데스.”
“정말로? 설마 너 새끼를 낳으면 주인이 더 행복해질거라고, 그래서 주인에게도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한 게 아니고?”
“…”

그리 생각했다. 부정할 수 없다. 관리원은 그럴 줄 알았다며 씩 웃더니 다른 산등성이를 바라보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네 생각일 뿐이야. 그저 너에게 맞춰 형편 좋게 생각한 것이지. 그리고 그걸 주변 사람들이 수용하느냐 마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사정, 그들이 내게 가지는 감정 등에 달려있지. 내가 그 사람들이 아닌바에야 그 사람들이 이걸 수용할 수 있을지 아닌지는 잘 몰라. 그게 바로 아까 말했던 불확실성, 즉 리스크고.”
“와타시가 행복을 느끼는 것이면, 주인사마에게도 행복 아니었는 데스까? 그러니 와타시는 ‘당연히’ 그걸 요구해도 되는 거 아니었는 데스?”
“그게 당연한 거면 나는 왜 가족과 헤어져 이렇게 산등성이 공원에 처박혀 있고 너는 왜 주인에게 버려져 모든 걸 잃었을까…
“…”

다시 한번 침묵.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자를 낳으면 주인은 더 많은 푸드와 옷 그리고 집을 사야했을 거고 그것은 주인에게 커다란 추가부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여태껏 그래왔듯 귀여운 와타시가 낳은 자를 보면 주인도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면 주인의 추가적인 희생도 그것으로 상쇄되지 않을까? 라고 행복회로를 들렸었다.

그리고, 결과는 자신의 신분 앞에 ‘원’자가 붙는 상황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닝겐상 말씀은 와타시에겐 ‘당연한’ 욕구지만, 그걸 들어주냐 마느냐는 주인사마의 결정에 달린 거다라는 데스까?”
“정답. 너 똑똑하구나? 여태껏 다른 놈들은 이 말을 이해하는 놈이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지.”

남자의 말에 원사육실장은 허탈한듯 웃었다. 남자 또한 실없는 웃음을 짓는다.

“어찌보면, 우린 둘 다 우리가, 우리 주변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행복을 요구한 것일지도 모르지. 지금 우리의 처지는 그래서 받는 벌인거고.”

또 다시 침묵. 어디에선가 새들이 휘드르르르 지저귀는 소리가 주변을 감싼다.

“난 말야. 대기업의 차장이었어.”

남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생을 풀어놓았다.

“난 어릴 때 찢어지게 가난했지. 밥도 잘 못 먹을 정도로.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어. 엄청나게 노력했지. 죽도록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해 대기업에 취직해서는 상사에게 아부하고, 부하들을 챙기며, 때로는 없는 마음도 꾸며내어 사람들에게 싹싹하게 대했지.”

사육실장 후보로 태어나 죽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 했고 배고파도 먹지 않아야 했으며 땡깡을 부리고 싶어도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그 결과였을까? 나는 이름만 대면 다들 알 굴지의 대기업에서 차장까지 올랐고 예쁘고 착한 아내와 좋은 아이들까지 얻었지. 이만하면 행복한 인생이다 싶었어.”

그렇게 끝까지 교육을 마치고 출하되어 샵에 전시되었다. 그리고 기한이 지나 폐기되거나 하지 않고 지금의 주인을 만나 사육실장이 바라는 것들을 얻었다. 행복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만족하지 못했어. 더 많이 벌고 싶었고, 언젠가부터 마누라가 더 이상 예쁘게 보이지 않더라고.”

하지만 날이 가고 더 이상 푸드도, 옷도, 집도 세레브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바람을 피웠지. 마누라보다 더 젊고 예쁜 여자와 말이야. 행복했지. 잠시는 말이야.”

그래서 더 큰 행복을 위해 자신은 자를 원한다 말했다.

“그러다 들켰어. 그러자 내 주변은 빠르게 무너져 내리더라. 아내는 펑펑 울었고, 자식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고는 등을 돌렸지. 추문이 돌아서 내 평판은 엉망이 되었고 그 때문에 회사에 더 있지도 못해서 나왔는데 막상 나와보니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그러다 자는 새에 쥐도 새도 모르게 버려졌다.

“뭐, 그래도 아주 죽으란 법은 없는지 친구 연줄로 이렇게 공원 관리인이랍시고 한 자리 잡아서 이렇게 살고 있다. 단칸 월세방이긴 하지만 몸 누일 곳도 하나 구했고.”
“그게…와타시하고 무슨 상관인 데스 닝겐상…”
힘겹게 짜낸 듯한 목소리. 남자는 성체를 한 번 바라보고는 씨익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요즘 집에 돌아가면 말이야. 그때가 떠올라. 집에 가면 마누라가 웃으며 반겨주고 아이들이 뛰어나오며 나를 안아주던 그 때 말이야.”
“…”
“그때는 몰랐어. 그게 행복이었단 것을. 내가 바라는 행복은, 사실 거기 있었는데…그놈의 역치가 무언지 참…”
“데에…”
“옛날에 어떤 수도사가 이런 말을 남겼더라. ‘생물이여, 너 슬프도다. 행복을 느끼기엔 너무 고등하고, 행복을 알기엔 너무 하등하구나.’ 지금 너와 내 꼴에 딱이지 않니?”
“무엇을 말인 데스까…와타시는…”
“모르는 척 하지마라 이녀석아. 너 아까부터 내 말 다 알아듣고 있는 거 알고 있다.”
“…”
성체는 말없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한번 행복한 것을 느끼고 나면 더 위의 행복을 느끼고 싶어할 정도로 고등한 지성을 가졌지만, 진짜 행복이 어디 있는 가는 모르고 헤맬 정도로 하등한 지성을 가진 생물…”
문득 남자는 친실장을 돌아봤다. 친 역시 남자를 돌아보고 있었다. 

“나하고.”
“와타시데스.”
“하하하하.”
“데프프프.”

알고 있었다. 적어도 마음 한 켠에서는. 

찢어진 가난을 겪어 지금의 풍족한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았다. 하지만 더 행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륜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는 쾌락을 추구했다. 그래서, 버려졌다.

교육시절 보았던 들실장의 일상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 알았다. 하지만 더 행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인이 들어줄 수 있는 것 이상의 행복을 추구했다. 그래서, 버려졌다.

둘은 동일했다. 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등한 감각과 하등한 생각을 가진 생물로서. 파랑새를 새장에 두고도 있지도 않은, 그러나 그렇기에 있을 거라고 믿은 파랑새를 또 갈구했다.

한 사람과 한 실장은 한참을 웃었다. 자조일지 고소일지 모르는 그런 웃음.


두 생물 위로 어느덧 아침을 알리는 태양이 기지개를 편다. 밝아져 오는 동쪽 하늘을 보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노래한다.

“뭐, 내 여건상 너를 키우거나 할 여력은 안 되지만, 만약 여기서 잘 살아남으면 가끔 관리사무소로 놀러와라. 접대야 못 해주겠지만 적어도 말이라도 붙이고 남은 먹을 거리가 있으면 챙겨줄 수 있겠지.”
남자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그에 화답하듯 성체 또한 일어났다.

“와타시는 꼭 살아남을 것인 데스. 이번엔 주어진 행복에 감사하며 악착같이 살아보겠는 데스요 닝겐상.”
“그래라.”
“하지만.”

원사육은 씁쓸하게 웃었다.

“왠지 살아남고 자를 낳고 나면 이번에도 또 그 위의 행복을 추구할지도 모르겠는 데스.”
“그러다 또 죽을 고비에 닥쳐도?”
“그럼 그때 가서 또 후회하는 데스.”
“오오. 역시 지성있는 생명체야. 너도, 나도 말이지.”
“데스?”
“사실은, 나도 생겼거든. 생활이 안정되니까, 요 앞 다방 미쓰김이 좀 예쁘게 뵈더라고.”
“또또 파멸을 목전에 두고 계신 거 아닌 데스까?”
“하하하하하!”
“데퍄퍄퍄퍄!”

또다시 한참을 웃고 둘은 손을 흔들며 서로 반대방향으로 나아간다.


지성있는 생물은 슬프다. 주어진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행복을 찾는다.

하지만 그래도 또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이루려 하루를 산다.

어쩌면 삶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왜 삶에서 의미를 찾는가? 삶은 욕망이다.
- 찰리 채플린





















멍청함의 아이러니


“마마가 돌아오지 않는 테스…”

중실장 정도로 뵈는 실장석이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걱정스레 말을 꺼냈다.

비가 온다. 푹푹 찌던 늦여름이었다면 은혜의 손길이었을 것이 완연히 겨울로 들어가는 이 시기에는 사신의 낫질보다도 더 소름 끼친다.

그것은 이 산이라 부르기 힘든 언덕배기도 온다. 명칭은 공원이지만 그저 동네의 언덕 하나에 체육관과 운동장을 지어 놓고 지역 주민들의 산책길 정도로만 쓰는 언덕. 그 언덕 산책로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숲, 그리고 그 중 한 그루의 나무 밑에 있는 토굴에는 한 실장석 일가가 살았다.

친실장과 중실장 하나, 자실장 셋, 그리고 저실장이 둘.

친실장이 꽤나 수완이 좋은지 토굴 안에는 박스가 장판 마냥 깔려있고 드러난 나무 뿌리가 가려주지 못하는 곳에는 군데군데 비닐이 둘러쳐져 빗방울이 들어오는 걸 막고 있었다.

“오네챠, 마마는 아직인 테치?”
중실장 옆에서 아직 자실장 크기의 실장석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말을 건낸다. 중실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마 조금 늦어지는 모양인 테스. 들어가서 이모토들과 더 놀고 있는 테스.”
안에서는 작은 자실장 두마리가 저실장들을 프니프니하며 놀고 있었다. 

동생을 들어보내고 장녀는 무심하게 추적추적 비가 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닝겐에게 잡히기라도 한 거 아닌 테스까…”

닝겐.

무서운 그 이름. 실장석을 잡아가고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악마. 장녀는 친이 닝겐에 대해 가르쳐준 것을 상기했다.


[자들, 잊지마는 데스. 절대로 닝겐들에게 가까이 가면 안 되는 데스.]
친은 가족이 다 모일때가 있으면 늘 그렇게 가르쳤다.
[닝겐들은 와타시타치를 보면 잡아서 죽이려고 하는 데스. 그 자리서 죽이지 않아도 초록 봉투씨에 넣어버리거나 하면 그 안에서 굶어죽거나 무서운 철컹철컹씨에 들어가서 갈려죽는데스.]
그러면서 친은 두 팔을 들고 아래위로 맞부딫히며 철컹철컹하는 소리를 내고 그것을 본 자실장들은 공포로 몸을 떨었다.

[마마, 그래도 친절한 닝겐상도 있지 않은 테치?]
[친절한 닝겐상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닝겐들이 더 많은 데스. 게다가 삼녀, 오마에가 봤을 때 그 닝겐이 친절한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데스?]
사녀의 물음에 친실장은 엄한 얼굴로 답했다.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되는 데스. 먹을 것을 준다든지 착해보인다든지 하는 이유로 그 닝겐을 의심없이 따라갔다가 돌아오지 않게 된 동족들을 많이 본 데스.]
[마마, 그래도 그 오바상들은 사육실장이 되어서 안 돌아온 거 아닌 테치?]
이번에는 차녀가 묻는다. 실장석들의 빈약한 상식선에서는 그렇게 판단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럴리는 없는 데스.]
하지만 친실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와타시는 본 데스. 사육실장이 되었다고 희희낙락했던 동족들은 갈갈이 찢긴 채로 녹색 봉투씨에 담겨 있었는 데스.]

마치 그때 그 광경이 재현되기라도 한 듯 친실장은 몸을 부르르 떨며 몸서리 쳤다.

[와타시는 절대! 절대 닝겐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인 데스. 와타시는 똑똑한 마마의 가르침을 받은 데스. 그렇기에 와타시는 닝겐에게 굴복하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데스!]
친은 단호하게 말했다.


장녀는 잠시 눈을 감는다. 객관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장녀는 스스로가 그리 현명하거나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마마의 반 정도는 될까? 아마 그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더하진 않을 것이다. 친도 늘 장녀는 왜 그리 우둔하냐며 혼내고는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장녀는 하지 말아야 할 짓에는 손을 대지 않고 살아왔다. 자신은 멍청하다. 우둔하다. 그래서 어떤 유혹이든 접하게 되면 넘어가 버릴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그런 유혹의 눈에 들지 않게 살아야 한다. 만약 접하더라도 어떤 마음도 먹지 말고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오네챠, 마마 안 오는 테치?”

상념에 잠겨있던 장녀를 깨운 건 차녀와는 다른 동생의 목소리. 삼녀다. 아마 구더기 프니프니도 끝내고 더 할 게 없어진 탓이겠지.

“와타시가 한번 찾아보겠는 테스. 삼녀는 차녀와 같이 문을 잠그고 있는 테스.”
삼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안으로 쪼르르 들어간다. 장녀는 그 모습을 보며 씩 웃고는 옷깃을 여미고 산을 내려갈 준비를 했다. 친이 이렇게까지 늦는 경우는 잘 없다. 똑똑한 마마인 만큼 무슨 일이 생겼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한 번 찾으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장녀 오네챠, 와타시도 가도 되는 테치?”
어느새 나온 차녀가 걱정스레 물어본다. 장녀는 고개를 저었다.
“차녀는 이모토챠들과 구더기를 돌보는 테스. 삼녀와 사녀는 아직 어려서 혹시라도 문을 제대로 못 잠그거나 할 수 있는 테스.”
만약 와타시가 잘못되면 오마에가 그때부터 장녀인 테스,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장녀는 굳이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늘 위험이 도사리는 실생이지만 그걸 지금 상기시켜 불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느덧 내리던 가을비는 부슬비같이 변했다. 그런 부슬비라도 실장석의 누추한 옷은 충분히 적실 수 있다. 젖은 옷에서 서서히 에워오는 추위에 떨면서도 장녀는 마마와 같이 몇번 내려가본 길을 따라 산 밑으로 조금씩 내려갔다.

이윽고 다가온 산의 초입. 장녀는 망설였다. 마마와는 여기까지만 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밖은 닝겐의 영역이다. 이곳을 나가면 어떤 위험과 유혹이 있을지 모른다. 

자신은 거기에 저항하며 마마를 찾아올 수 있는가?

장녀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마마를 찾지 못하면 일가실각이다. 경험많고 똑똑한 친이 없으면 남은 중실장과 자실장들로서는 절망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판사판이다. 장녀는 한 발을 내딛었다.


다행스럽게도, 산 입구를 나간 지 얼마되지 않아 장녀는 친을 찾을 수 있었다. 친은 살아있었다! 그것도 멀쩡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듯 증표같이 생긴 무언가를 쥐고는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마마!”
장녀는 가쁨과 반가움에 친을 불렀다.

“덱?! 오마에 장녀…어떻게 여기 온 데스까?”

장녀는 순간 당황했다. 친의 얼굴에 띈 표정은 반가움이 아니다. 의아함과 당황스러움이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간신히 자신을 찾아온 자식을 만날 때 지을 얼굴은 아니다.

“마, 마마. 여기서 뭐하시는 테스. 어서 돌아가는 테스. 이모토챠들이 기다리는 테스.”
장녀는 간신히 감정을 수습했다. 마마도 너무 놀라서 그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배신하듯 친은 장녀의 청을 거부했다.

“오마에만 돌아가는 데스. 와타시는 안 가는 데스.”
“마마?”

왜? 어째서? 

장녀의 마음을 읽었는지 친실장은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와타시는 사육실장이 된 데스.”

사육실장!

그 말에 장녀는 가슴에서 환희가 들어차는 느낌을 받았다. 그 어떤 실장이 이 말에 두근거리지 않을 수 있을까?

들실장의 삶은 늘 고단하다. 

자나 깨나 습격 등지에 떨며 잠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삶. 
배고프지 않게 먹을 수 있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삶. 
추울 때는 동사의 위험에 직면하고 더울 때는 말라죽을 위험에 노출된 삶.
콘페이토는커녕 단 것이 무엇인지도 한 번 먹어보지도 못하고 끝나는 삶. 

이 모든 것이 사육실장이 되면 해결된다.

하지만,

“하지만 마마. 마마는 언제나 닝겐상이 사육실장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 믿지 말라고 한 테스.”
장녀는 친이 늘 강조하듯 말한 것을 기억했다. 닝겐은 영악하고 변덕스럽다. 그러니 절대로 가까이하지 말아라.

“데프픗. 와타시는 똑똑한 데스. 이 닝겐상이 애호닝겐인지 아닌지 정도는 딱 봐도 알 수 있는 데스야. 게다가,”
그러나 평소 자신이 하던 말을 스스로 부정하며, 친은 양손을 허리에 짚으며 뽐내듯 말했다.

“만약에 학대닝겐이라고 해도 어떻단 말인 데스? 와타시는 그런 닝겐조차 애호닝겐으로 만들 수 있는 데스. 마마에게서 전수받은, 그리고 와타시가 살면서 갈고 닦은 스킬만 있으면 능히 그럴 수 있는 데스.”
초승달 눈을 뜨며 웃는 저 존재는 정말로 자신의 친이 맞는가? 자신의 지식을 믿어 의심없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는 친실장은 더 이상 장녀가 알던, 마마가 아니었다.

“오마에같이 한심한 실장은 못 하는 데스. 하지만 와타시는 할 수 있는 데스.”
“마마…”
망연자실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장녀를 보고 친은 다시 한번 비웃듯 데프프픗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친실장은 곧 정색을 하더니 차갑게 읊조렸다.

“닝겐은 자가 있으면 귀찮다고 한 데스. 그래서 와타시는 자가 없다고 한 데스. 그러니…”
친의 표정이 급격하게 험악해진다.

“어서 저리 가는 데스! 다시는 와타시 눈 앞에 나타나지 마는 데스. 오마에든 다른 자든 나타나면 모르는 들실장이라고 하고 죽여버릴 것인 데스!”
눈에 불똥이 튄다고 하는 게 이런 것일까?

“마마, 절대로 닝겐들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한 건 마마인 데스…”
장녀는 절망감에 몸부림치며 다시 한번 친을 설득하려 애원했다. 

“와타시는 다를 것인 데스! 와타시는 할 수 있는 데스! 뭘 보는 데스까? 천한 들실장 따위가 닝겐노예를 얻은 사육실장을 감히 굽어보는 데스? 어서 썩 꺼져라 데스!!”
친은 이제 숫제 네발로 땅을 짚고 위협했다. 실장석의 저 위협자세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해치려 할 때 나오는 자세다. 

장녀는 터져나올 거 같은 울음을 삼키며 산을 향해 뛰었다.

사육실장은 친자간의 정도 간단하게 내칠 정도의 유혹이란 것인가…그 똑똑하다가 자부했던, 그렇기에 절대 닝겐상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했던 마마조차도 저럴 정도로 그게 그리도 좋단 말인가? 

장녀는 소리죽여 오열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네챠!”
장녀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흠칫 몸을 떨며 정신을 차렸다. 차녀다. 차녀가 왜 여기에? 장녀는 주위를 둘러본다.

“오네챠, 무슨 일인 테치요?”

집이다. 그리운 집이다. 차녀가 있고 다른 가족들이 있는 집이다. 아마 정신없이 뛰어오면서 집까지 온 모양이다. 장녀는 크게 한숨을 내 뱉었다. 안도일까 아니면 절망일까? 아니, 둘 다겠지…

“오네챠, 마마는 어떻게 된 테치?”
말없이 한숨을 내 쉬는 장녀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낀 건지 차녀의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차녀…마마는…”
장녀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씁쓸한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닝겐에게 발각된 테스. 아마...”

차마 말을 잊지 못했지만 차녀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비록 그 의미가 장녀가 본 것과는 다른 것이었겠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와타시도 간신히 도망쳐 온 테스…와타시도…간신히…”
장녀는 목이 매이는 것을 느꼈다. 적녹의 눈에서 흐르는 것은 아마도 빗물이겠지. 차녀의 눈에도 두줄기 색색의 빗물이 흐른다. 집 안에는 비도 오지 않고 그 물에 색깔은 더더욱 없으련만. 두 자매는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고 잔혹한 현실을 마주했다. 


남겨진 4자매의 운명은 그야말로 혹독 그 자체였다.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한다는 지식이 없어서 친으로부터 짬짬이 전수받은 지식과 그나마 남아있는 보존식을 먹으며 버텼다.

하지만 결국 그 모진 추위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사녀가 동사했다. 부족한 들의 삶 속에서도 착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였건만 운명의 신이라는 작자는 자는 동안 사녀의 생명을 거두어 버렸다. 겨울의 땅은 실장석의 손으로는 도저히 팔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해서 자매들은 마치 풍장 마냥 보이지 않는 곳에 사녀의 시체를 올리고 다른 동물들이 처리해줄 것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사녀와 특히 친했던 삼녀는 그날 울다가 까무러칠 뻔했다.

차녀는 먹이를 구해보려 빌라촌까지 내려갔다가 운행하던 차에 깔려 죽었다. 보존식이 동이 나자 장녀와 차녀가 각각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다가 차녀가 변을 당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벽시간대에 치인 데다 그 직후 비가 와서 차녀의 존재를 씻어 내려버렸다. 그래서 그 누구도 그 언덕에 실장석이 사는 지는 몰랐다. 하지만 희미할지언정 냄새는 남는다. 남아있는 냄새로 차녀가 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렸다는 것을 안 그날 장녀와 삼녀는 차녀의 시체조차 건지지 못했음에 하루 종일 오열만 했다.

저실장 두 마리는 새해가 밝았을 무렵 사이좋게 굶어 죽었다. 비록 자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족같이 여기며 살았기에 저실장들의 표정은 아사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해맑기 그지없었다. 장녀는 그들의 포대기를 벗기고는 한 마리를 말없이 삼녀에게 내밀었다. 땅은 여전히 얼어붙어 딱딱하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구멍을 팔 체력조차 아껴야 한다. 둘은 피눈물을 흘리며 저실장을 먹었다.


그렇게 구차한 삶이라도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던 두마리는 끝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했다.

어느 새벽 언덕 근처에 위치한 빌라촌. 이제 간신히 봄의 해가 고개를 내밀고 아직 쓰레기 수거차조차 움직이지 않는 시간대지만 그런 시간임에도 두 뭉치의 그림자가 무언가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네챠, 이걸 보는 테스. 밥으로 할 만한 게 많이 있는 테스.”
두 뭉치 중 하나, 이제는 중실장으로 성장한 삼녀가 조용히 장녀를 부른다.

“대박테스. 어서 봉지에 옮겨담는 테스.”
삼녀가 가리킨 봉지를 보며 장녀가 작게 환호한다. 어둡지만 그럼에도 음식물이 가득 찬 것이 보일정도로 빵빵한 봉지. 둘은 능숙한 손길로 봉지의 묶음을 풀어헤치고 가져온 다른 봉지에 음식물 쓰레기를 옮겨 담는다. 

“며칠간은 밥 걱정은 없겠는 테스 오네챠.”
“그런 테스.”
음식물 쓰레기를 옮겨 담으면서 두 자매는 힘든 줄 몰랐다. 겨우내 지옥 같은 삶을 살아온 자매에게 음식물 쓰레기는 진수성찬이다.

“그럼 이걸 옮겨 담고 있는 테스 삼녀챠. 와타시는 생활용품이나 이런 걸 조금 더 찾아보는 테스.”
장녀는 가지고 온 다른 봉지를 피며 말했다.

“알겠는 테스요 오네챠. 하지만 조심하는 테스.”
“알겠는 테스.”
자신을 걱정해주는 삼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장녀는 조용히 발을 떼며 주위를 살폈다.

“음? 뭐인 테스까? 저건…”
무언가 큰 봉지가 있다. 어쩌면 저기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호기심에 다가가던 장녀는 그러나 희미한 빛이 알려주는 봉지의 색을 본 순간 숨을 삼켰다.

녹색의 봉지. 

그것은 예전에 친이 알려주었던 봉지였다. 실장석을 폐기하는 봉지.

그리고 그런 봉지의 용도를 증명하듯 녹색봉지 안에는 독라에 달마, 그것도 모자라 석녀에 온 몸이 멍들고 찢겨 있는 성체가 들어있었다. 그 주변에는 역시나 찢긴 포대기와 우지챠들의 조각이 같이 있는 걸 보면 강제출산도 당한 것 같다. 살아있는 우지챠들도 있었으나 그저 살아만 있을 뿐. 소리 없는 외침만이 가득하다.

“심한테스…절대 닝겐들에게 가면 안 되는 테스.”
분명 모진 학대를 당했겠지. 장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순간, 죽은 줄 알았던 성체의 눈알이 희미하게나마 움직여 장녀를 쳐다봤다. 그 모습에 장녀는 놀라 소리를 지르며 쓰러질뻔 했지만 간신히 입을 틀어막고 다리에 힘을 주며 버텼다. 소리를 질러 존재를 들키면 실각이다.

그 성체는 분명 살아있었다. 생명의 반응은 그리 크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있었다. 아마 봉지에 담겨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어제 밤에 담겨 나온 게 아닐까? 

놀람도 잠시 장녀는 조심스레 봉지로 다가갔다. 함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이 주변에 자신들 외에 동족이 있었단 사실이 장녀의 행동을 지배했다.

봉지 가까이 다가가자 어떤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잘 보니 녹색 봉지의 묶인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냄새였다. 동족식도 시킨 건가, 평소 같으면 그리 심하지 않은 실장취가 이렇게 두꺼운 봉지 틈새로 흘러나오는 걸 보면 닝겐은 이 성체에게 동족, 아니면 정말 심하게도 이 성체가 낳은 자식들을 도로 먹였을 수도 있다. 장녀는 닝겐의 그 잔인함에 다시 한번 치를 떨었다.

그런데 이 냄새, 왠지 모르게 친숙하다. 분명 어디선가 맡은 적이 있는 냄새인데…

냄새??

마마다! 장녀는 순간 놀라서 가져온 봉지를 떨어트렸다.

마마다. 확실하다. 봉지 입구가 꽉 묶여있어 희미할지언정 분명 마마의 냄새다. 자신들을 버리고, 다른 동족은 안 될지라도 자신은 누구보다도 닝겐의 무서움을 잘 알정도로 현명하기에 닝겐을 현혹시킬 수 있다며 호랑이의 아가리에 뛰어든 마마다.

“…”
“…”

온 몸이 성한 곳이 없는 성체실장이 장녀를 바라보고 있다. 한쪽만 남은 그 공허한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이미 몇번을 울었다 말랐는지 모를 그 녹색의 와디(사막에 있는 건천. 우기에만 물이 흐름)에 녹색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와디에 내리는 물과 달리 생명의 물은 아니었다.

장녀는 그런 친을 그저 담담하게 바라봤다. 

친실장은 무엇이라도 말하려는 건지 입이 벙긋거린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아니, 뭔가 말하려고 했어도 두꺼운 초록빛의 비닐에 가로막혀 들리지 않았을 거다.

“이 녹색봉지는 무엇인 테스? 우마우마한 냄새가 나는 테스야.”
어느새 삼녀가 장녀 곁으로 다가오더니 말을 건낸다. 

“삼녀차, 돌아가는 테스. 저건 와타시타치를 가두는 무서운 봉지인 데스. 게다가 가져가도 너무 두꺼워서 찢지도 못하고 힘만 드는 테스.”
“테에, 아까운 테치”
말과는 다르게 미련없이 돌아서는 삼녀. 오늘의 수확은 충분하다. 그 봉지 속 내용물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둘은 조용히 보금자리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앞장서는 삼녀의 뒤를 보며 장녀는 아까 친이 무언가 말을 하려던 것을 떠올렸다.

무슨 말이었을까? 너희는 절대로 나처럼 되지 마라? 아니면 잘못했으니 구해달라? 그것도 아니면 자기를 구해서 낳아준 은혜를 갚아라? 

장녀는 피식 웃었다. 이제와서 구해줄 마음도 없었지만 애초에 구하고 싶어도 구할 방법도 없었다. 하지만 예전에 친실장이었던 그 존재가 뭐라 말했든지 간에 하나는 확실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 테스. 마마도 현명했지만 결국은 실장석이었던 테스… 그저, 그저 와타시는 다를 거라는 믿음으로 파멸하는 평범했던 실장석이었던 테스.”

장녀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비가 오려나? 구름이 짙어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장녀는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양심의 그늘


평범한 사각형 건물의 S시 실장석 처리소. 

S시 남부 공단과 주거지역을 가르는 중간 녹지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처리소다. 다만 특이하다면 이곳은 사육실장을 전문적으로 폐기처리하는 곳이라는 것 정도. 그나마도 요즘은 정부의 강력한 유기실장 방지조치에 따라 사육실장 유기에 엄청난 과태료가 부과되면서 사육실장을 처리해주는 처리소가 늘어서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곳은 사육주들 사이에서 굉장히 특이한 처리소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왜냐고? 

처리소라면 정기적으로 처들어오는 애오파 시위대나 항의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걸까? 처리소라고 하면 크든 작든 가서 야만적이라고 시위를 하고, 심지어는 자그마치 전국구 국회의원과 연줄이 있던 처리소에도 쳐들어가 결국 그곳을 문 닫게 했던 양반들이 이 처리소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까?

혹시 이 곳이 평소에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외진곳이라 그 존재를 모르는 걸까?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S시나 심지어 옆 A시에서도 실장석과 연관된 사람들은 이곳을 모르는 사람이 더 드물다. 애호파 사육주들조차 분충이 되거나 임신을 한 자신의 사육실장석을 처분하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곳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건 이곳의 운영방식을 3일간 지켜보면서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흰색의 페인트칠과 아이보리색 가구가 조합된 깨끗해 뵈는 방. 실장석들의 비명소리와 피 내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곳은 처리소의 접수처다. 내부는 마치 우체국처럼 번호표 뽑는 기계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고, 접수자가 대기하며 앉을 수 있는 벤치형 의자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직원이 앉아있는, 얇은 투명 아크릴 장막이 쳐진 데스크가 있다.

“오늘 어째 한산하다?”

그 직원칸에 앉아 있던 중년의 직원, 방철곰 과장은 핸드폰을 보며 소리죽여 웃고있는 젊은 직원에게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그러게요. 어째 이 접수처가 조용한 날도 있고 별 일이네요.”

핸드폰에서 눈을 때지 않은 체 젊은 직원, 명시악.

“어디보자, 오늘은 몇마리나 들어왔나?”

“현재 30마리 정도네요. 이 정도면 한산하다 못해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해도 말 되겠다 싶어요.”

“그러게.”

너털웃음을 짓는 방철곰.


그때, 출입문에 설치된 도어벨이 울린다.

둘은 반사적으로 ‘어떻게 도와드릴…”까지 말하다가 들어온 사람의 면면을 보고는 웃으며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그럭저럭 별로 없네요.”

하얀 모자에 하얀 옷, 평상복은 절대 아닌 그 이질적인 옷에는 ‘㈜로젠’이라는 기업명이 붙어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실장석에 관한 모든 것을 취급하는 회사 ‘로젠’. 그 직원이 애호물품 관련으로 여기 왔을 리는 없으니 필경 구제업무로 온 것일 것.

“오늘은 몇 마리입니까?”

“20마리 정도였든가? 잠깐만요.”

구제업체 직원은 박스를 잠시 내려놓고는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아, 성체하고 자실장 포함 21마리네요. 여기 확인하시고 확인장 찍어주세요.”

방철곰 과장이 종이를 받아 확인하는 사이 최시악 대리가 상자를 열어 숫자를 셌다. 그 후 최시악이 방철곰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바로 종이에 확인장을 찍어 직원에게 돌려줬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쾌활한 인사와 함께 구제업체 직원은 가벼워 뵈는 발걸음으로 접수처를 나갔다. 부럽구만~ 오늘부터 며칠간 휴무려나. 최시악이 살짝 부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방금 직원이 나간 유리문을 바라보자 뒤에 있던 방철곰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 대신 저 사람들은 일요일에도 참피 잡는다고 일하잖아. 우린 그거 대신이라 생각해야지.”

“우와! 귀신이세요? 아니 어떻게 제 말씀은 듣지도 않고 그렇게 추측하심까?!”

“네 나이대 화상들이 하는 생각은 뻔하디 뻔하다 이놈아! 어서 이거나 들어 옮겨!”

왜냐하면 나도 그랬거든. 명시악을 한 대 쥐어박은 방철곰은 여전히 웃으며 투덜거리는 젊은이를 보며 껄껄 웃었다.


“그나저나 진짜 많네요. 아니 이 놈들이 다 한 때는 사육실장이었다니 믿기질 않는단 말이죠.”

낑낑대며 박스를 끌차에 올린 명시악은 박스안에서 이리저리 널브러져 곤히 잠든 실장석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럴 거면 사질 말아야지 쯧쯧.”

방철곰은 혀를 찼다. 

이 박스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실장석들은 모두 원사육실장인 놈들이다. 즉, 버려지거나 주인이 잃어버리고는 실종 처리된 것들. 이런 놈들은 대부분 멋모르고 도로로 나오다 차에 치이거나 길고양이, 혹은 사람에 의해 죽을 운명이다. 아니면 최악의 경우 골목이나 공원 등지에 몰래 숨어사는 들실장에게 잡혀 출산노예가 되는 거고.

그러니 여기 있는 놈들은 어찌보면 운이 좋았던 놈들. 분홍색 실장복이 다 헤진 걸로 보아 버려진 지 1년이 넘어 뵈는 개체도 간혹 보인다. 이런 실장석은 공원이든 골목이든 어딘가에 정착을 했다는 의미다. 뭐, 그래본들 잡혀온 시점에서는 다 끝난 거지만.

“도대체 버릴 거면 우리 같은 처리소에 맡기면 되지 않나요? 그럼 사육등록말소부터 사체처리까지 확실하게 해주는데.”

끌차를 밀어 방철곰의 자리에 온 명시악이 말했다. 그 말에 방철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5만원도 아깝다 이거 겠지. 아니면 일말의 양심? 그걸 그렇게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서도, 차마 자기 손으로 죽이진 못하니 알아서 잘 살아남아보렴~ 하는 거.”

“우와 최악! 위선이 다른 게 아니네요.”

“어쩌겠어? 우리 알바 아니긴 하지. 하지만 일단 이 놈들이 여기 잡혀온 시점에서.”

방철곰은 명시악이 밀고온 박스에 RFID 인식기를 가져다 댔다.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지.”
인식기가 삑- 소리를 내자 방철곰 앞에 있는 모니터 화면에서 사육실장의 이름과 등록번호, 그리고 그 소유주들이 적혀 있는 자료가 나온다.


실장석이 한국에 첫 선을 보일 때, 일반인들은 잘 몰랐지만 예전부터 일본의 실장석에 대해 조사해 왔던 사람들은 우려를 표했다. 실장석의 그 무한에 가까운 번식력이 장래 한국의 생태계에 큰 위협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은 그 뜻을 모아 정부에 전달했고, 이에 정부는 지금 와서는 신의 한 수라고 불린 대책을 수립할 수 있었다. 무슨 대책이냐고? 정부는 사육실장석의 출하 당시 독점 판매사인 로젠사에게 규제를 하나 걸었다.

사육실장은 그 존재를 표시하기 위한 칩을 의무적으로 삽입해야 한다.

이 칩은 사육실장의 증거임과 동시에 관리를 위한 목적이기도 했다. 공정이 추가되는 것에 로젠사는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어차피 프리미엄을 받고 비싸게 팔 생각이었기에 시장 개척 차원에서 오케이를 했다. 

그렇기에 버려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나 들실장처럼 보여도 인식기를 가져다 대면 사육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뭐, 사육실장은 샵에서 구입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사육이 낳은 새끼들을 분양하기도 하고 이런 분양 출신 실장석은 당연하게도 칩이 없어 관리가 안 된다고는 하는데 그건 여기서 논하기엔 너무 긴 주제라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른 데서 알아보기로 하자.


“자아, 그러면 이 명단에 따라 네가 말한 ‘위선자’ 들을 한 번 조져 보실까.”

방철곰은 명단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이구야, 이 양반은 깡 좋게 그냥 버렸네?”

“저 사람은 실종신고를 했네요? 실종된 지 1년이 넘어서 사망처리 되었다라…”

“저런 거에 현혹 되지마. 요즘 사육주란 양반들 중에는 일부러 버리고는 실종 신고하는 악질도 있으니까.”

방철곰은 냉정하게 명단을 살폈다. 확실히 사육실장 유기에 따른 과태료 처분이 많아지니 머리가 좋은 사람들 중에서는 사육을 버린 후 실종신고를 해버리는 사람도 생겼다. 이러면 자신은 사육실장을 버린 게 아니게 되어 돈도 아끼고 똥벌레도 처리하는 셈이 되니 사육주 입장에서는 일석이조. 물론 잡혀온 사육실장이 버려졌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애초에 실장석이라는 놈들은 거짓말이 일상인 놈들이라 놈들의 주장은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래도 빨리만 찾는다면야 그런 놈들 엿 먹이는 것도 가능하잖아요.”

“그러고보니 저번에 그 여자 표정 끝내줬지.”

말하다 말고 둘은 뭔가를 떠올린듯 소리내어 웃었다.

가끔 원사육실장을 잡아오면 실종신고가 된 지 보름도 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러면 실종신고를 한 사육주에게 연락하여 사육실장을 돌려주게 되는데 간혹 가다 저렇게 사육실장을 버리고 실종신고를 한 사육주들은 정말 복잡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보호소에 내방하게 되는 것이다.

“아 진짜 그때 정말 웃겼죠. ‘와따시 버리지 마는 뎃샤아~’ 하는 놈을 앞에 두고는 표정을 있는 대로 구기면서도 차마 버렸다고는 못하니까 분노로 벌벌 떨며 인수증에 사인하던 그 여자를 보고 있자니 웃음 터지는 걸 간신히 참았다니까요.”

“그거 후속 이야기도 아냐? 결국 그 여자 며칠 안 있어 여기 와서는 정식으로 사육등록 말소하고 그 똥벌레 처분해 버렸지.”

“맞아요. 그때 변명이랍시고 하는 말이 ‘밖에서 며칠 지내다보니 완전 들분충이 되었더라.’ 였나? 진짜 가관이긴 했네요.”

둘은 웃으면서 명단을 정리하고는 끌차를 밀어 어딘가로 보낸다.


그런 사수와 부사수의 티키타카가 오간 시간이 지나고 오후.

한 여름인데도 긴 팔에 마스크를 두르고 선글라스를 낀 여성은 카운터에 조용히 박스 하나를 내려놓고 무언가를 오후 접수 담당직원 – 최정규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 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 이름은 ‘카와이’, 구입날짜는 대략 작년 1월이란 말씀이시죠?”

“네…”

다소 우렁차기까지 한 직원과 달리 여성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어디보자, 아! 나왔네요. 카와이, 등록번호 JR-2022-011938A 로군요. 네 확인되었습니다. 아, 처분사유 말씀하셨었나요?”

“아니요…그, 이번에…제가…아, 아니 부모님과 같이 사는데 부모님이 실장석 알러지가 생기셔서…”

딱 봐도 거짓말이네. 귀로 들은 이야기를 사유란에 등록하면서 오전의 콤비와는 또 다른 접수직원, 최정규는 생각했다. 박스 안에 잠든 실장석을 보니 딱히 분충짓을 한 거 같지도 않을 정도로 깨끗한 옷과 머리카락을 유지하고 있다. 대개 이 시기에 실장석을 처분하는 건 여행을 가려는 데 걸리적 거린다든가 싫증이 났는데 마침 여름이라 높은 불쾌지수에 냅다 지르던가 하는 것이 많다.

하지만 최정규는 그걸 밖으로 절대 드러내지 않을 정도의 직무의식은 가지고 있다. 뭐가 되었든 나하고는 관계없지. 타이핑을 끝내고 남자는 의뢰자를 향해 의자를 돌리며 말했다.

“네, 접수 다 되셨습니다. 참고로 이 실장석은 며칠간 이곳에서 보관하게 됩니다. 보관 기간은 본 사의 사정에 따라 유동적이며 다시 사육실장을 찾으러 방문하셔도 다시 찾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조건에 동의하십니까?”

“…네.”

양심일까 아니면 죄책감일까? 아주 잠시 망설인 거 같았지만, 끝내 여자는 동의의 표시를 뱉었다.

“자 그럼 여기 서명해 주시고 처분비 5만원 되겠습니다. 상자는 이쪽으로 건내 주시면 됩니다.”

남자의 말에 여성은 떨리는 손으로 사인을 하고는 황급히 밖으로 나선다. 그런 여성을 보며 마음속으로는 혀를 차지만 얼굴은 여전히 영업용 미소를 유지하는 최정규. 


이렇듯 접수처는 다른 처리소와 같다. 특이할 것이 없는 광경.



하지만 이 처리소의 진짜 특이한 점은 바로 이 다음 공정부터 시작된다.


끌차에 실려간 실장석들이 가는 곳은 보관소다. 투명 아크릴로 만든, 600*600*600 (mm기준)의 정사각형 케이지 300개가 몰려 있는 곳. 

“똥노예! 어디간 데스 똥노예!! 감히 와타시를 모시지 않고 어딜 쳐 간 데스까!!”

“오로롱 오로롱 주인사마 초록이가 잘못한데스. 다시는 밥투정 안 할 테니 제발 돌아와 주시는 데스…”

“테에에 마마, 여긴 다른 오바상들이 많은 테츄. 와타치들이 왜 여기 온 테츄까?”

“…그냥 자는 데스 장녀…”

“데샤아아아!!! 드디어 자유를 찾았는데!! 자고 싶을 때 자고, 귀여운 자도 낳을 수 있게 되었는데 똥닝겐들은 와타시를 왜 잡아온 뎃샤아아아아!!!!!!”

오만가지 사연을 가진 원사육실장들이 그 아크릴 케이스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 중에는 브리더도 포기할 상분충도, 인분충 주인에 의해 버려진 양충도 있지만 케이스에 갇힌 시점부터는 이미 ‘원’사육실장일 뿐.


“오늘은 총 52마리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직원이 담담하게 외친다. 그 말에 원사육실장들은 흠칫 몸을 떨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고로 오늘은 먼저 들어온 52마리가 처분된다.”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그 집행을 위해 뒤에 서 있던 직원 4명이 케이지로 다가온다. 직원들은 케이지에 붙어있는 순번표 중 빠른 순서대로 실장석들을 끄집어 냈다.

케이지는 곧 광란의 현장으로 변한다. 처분되는 놈, 처분되지 않는 놈 가릴 것 없이 모두 울부짖고 가슴속에 있던 한을 토해낸다. 어차피 실장석들은 숫자를 세지 못한다. 숫자를 좀 센다는 놈도 10 이상은 세지 못한다. 그렇기에 실장석들로서는 어디까지 처분되는가를 모른다. 

52마리의 실장석이 카트에 담긴다. 담긴 실장석들의 눈에 처분장으로 가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들어왔다. 그야말로 마지막 여정, 그린마일이다.

52마리는 절규한다.

“데…뎃샤아!!! 이건 말도 안 되는 데스아!! 고귀한 와타시가 왜 다른 똥벌레 때문에 죽어야 하는 데샤아아아아아아!!!”

절규하는 놈.

“니, 닝겐상. 기다려주시는 데스! 내일, 아니 오늘 저녁에는 분명히 주인사마가 와타시를 데리러 와주실 것인 데스!! 제발…조금만…”

애원하는 놈.

“이걸 보는 데스! 귀엽지 않은 데스? 이렇게 귀여운 자들을 낳아줬건만 왜 똥닝겐은 메로메로 되지 않는 데스?! 눈깔이 삔 데스까!!!”

억지부리는 놈.

“와타치 몸에 손 대지 마는 테치! 와타치는 닝겐의 씨를 받아 흑발의 자를 낳을 고귀한 공주마마인 테치이이잉!! 소, 손 치우는 찌아아아아!!!”

위협하는 놈.


각양각색의 감정과 행동이 난무하지만 귀마개를 낀 직원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이건 그저 일이다. 들어온 만큼 처분하는 평소와 같은 일.

“마마, 다행인 테츄! 와타시타치는 살아남은 테츄! 내일은 반드시 닝겐들을 메로메로 시켜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인 테츄츄츄~”

그 와중에 오늘 처분되지 않고 아크릴 케이스에 남은 한 일가의 자실장이 기뻤는지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런데스. 오마에와 와타시의 세레브함이면 닝겐들은 당장 달려와 스테이크와 스시를 바치고 도게자 할 것인 데스. 데프프프.”

그 마마로 보이는 성체는 웃으며 자를 쓰다듬었다. 자신들은 살아남았다! 왜냐고? 저 처분장으로 가는 똥벌레들보다 세레브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주인이라고 망발을 일삼던 노예닝겐을 버린 자신들은 그 누구보다도 세레브하다!

치프프프 데프프프 웃고있는 일가의 케이즈 앞에 다시 붙은 숫자는 ‘1’. 새로운 입주자(?)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방을 빼줘야 하는 번호.

아마 내일이면 그들의 망상이 그 결실을 맺는 순간이 올 것이다. 



몇대의 끌차에 실려 그린마일의 종점에 다다른 실장석들. 빠져나가보려 발버둥치고 다른 실장을 밟고서라도 박스위로 올라가려는 그들의 처절한 사투는, 그러나 나가지 못하도록 밀봉된 박스뚜껑 앞에서는 부질없는 노력일 뿐이다.

후두두둑

“뎃캬!”

“데샤아아악!!”

“텟?! 텟챠!!”

“테에? 텟, 텟테로게에~”

“샤아아아아!!”

“텟테레!”

“텟테레!”

“텟테레!”


직원이 박스를 열고 끌차를 어딘가에 들어 올린다. 탈탈 터는 그 동작에 실장석들은 어딘가로 쏟아져 들어갔다. 낙하의 충격에 비명을 지르는 성체와 자실장들 가운데 몇몇은 박스 안에서의 혈투로 인한 혈액이 눈에 튄 건지 임신을 했거나 강제출산을 하고 있다.

“여, 여긴 어디인 데스?”

그 와중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한 성체실장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살펴본다. 자신들보다 앞서 떨어진 실장들이 쿠션 역할을 해준 덕분에 다친데 없이 멀쩡히 떨어진 성체. 그러나 어두운 밀실에서 앞으로 벌어질 사태는 이 성체가 차라리 압사당해 죽은 자신의 동족들을 부러워할 무언가였다.

“데에…뭔가 고기 냄새가 나는 데스야. 설마, 닝겐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고귀한 사육실장인 와타시에게 바칠 고기를 대령하는 데스?”

난폭하게 다뤄지고 떨어졌음에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듯한 소리. 하지만 어쩌랴, 이렇게라도 행복회로를 돌리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할 정도의 삶이거늘.

곧 그 성체의 망상과는 다르게 사면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데, 데, 데, 데샤아아아아아!!!!”

벽에서 나오는 불길은 이내 멎었지만 실장석들은 그 자신의 몸에 붙은 불로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마!! 뜨거운 테챠아아아아!!!”

“장녀! 어디간 데샤!! 오마에를 낳아준 와타시를 위해 희생 안 하고 어딜 쳐 간 뎃샤아아아!!!”

“똥마마!!!”

“장녀! 오마에만이라도 지켜주는 데스!! 절대 지켜주는 데스야!!”

“마마, 뜨거운 테츄아!!!”


온갖 회한, 분노, 슬픔이 교차한다. 


“자, 그럼 6시간동안 난방열 공급 배관 열어놓고. 모두 퇴장!”

그런 소각로와 딴판으로, 소각로 밖에서는 분주하게 움직이던 직원들이 담담한 표정으로 소각로실 밖으로 나간다. 

실장석들은 몸이 거의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조금만 불을 붙여줘도 스스로 잘 타오른다. 게다가 이리저리 몸부림을 치며 불이 붙지 않은 동족에게도 기꺼이 불을 붙여주니 매우 편하다. 이렇게 타오른 실장석들의 열은 배관을 따라 근처 공단에 아파트에 공급된다. 마치 열병합 쓰레기 소각장 겸 발전소랄까? 이런 점이 이 시설이 근처 주민들에게 경원시되는 것을 줄여주는 이유기도 하다.


이렇듯 이 처리소는 특이하게도 300개의 케이지를 두고 그날그날 들어오는 숫자만큼 기존에 수용하던 실장석을 처리하고 있다. 

물론 이 곳도 몇 번인가 동물보호 단체나 실장석 보호협회 등지에서 항의 차 방문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의 시스템을 듣고는 얼마 안 가 나가고는 다시는 오지 않았다.


들어온 만큼 처분된다.


이 말의 의미는 명백하다.

‘버리지 않으면 처분되는 실장석도 없다.’

주인이 아무런 생각이나 준비없이 실장석을 애완동물로 구입하고, 그걸 준비가 되지 않았다든가 실증났다든가 하는 여러가지 핑계로 버리면 그 숫자만큼 이곳에 먼저 들어온 원사육실장들이 폐기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지만 이론적으로는 유입되는 실장석이 없다면 기존 원사육실장들은 좁고 불편한 공간에서나마 천수를 누리고 갈 수 있다. 하지만 개업이래 그 어떠한 실장도 그런 혜택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여기서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실장석은 로미라는 이름을 가졌던 원사육실장. 

보관기간은 사흘이었다.

300개라는 케이지 숫자도 로미가 절실히 갈망했던, 단 하루만 더 살게해 달라고 했던 소원을 지켜주지 못했다. 조금 똑똑한 실장이었던 로미는 처음 들어왔을 때 배정된 케이지 숫자를 보고 그래도 조금은 살다 갈 수 있겠거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튿날 저녁에 바로 처분대상에 근접하는 순번으로 몰렸고 그 다음날에 처분 당했다.

그런 시스템이 은연중에 그들의 가장 아픈 부분을 헤집고 있었던 것이리라.

‘이것이 너희의 민낯이다.’

자신들은 다르다고 자부하지만 이곳에 사육실장 처분을 맡기로 오거나 무단으로 버려 잡혀오게 만드는 사육주들은 대부분이 애오파라 자부하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처분소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실장석을 버리지 않게끔 만드는 것이다. 버려졌을 때, 사육실장의 생은 끝이 난다. 처분소는 그저 종말에 치닫는 실장석들이 운명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곳일 뿐이다.


“마마! 에메랄드 여기 있는 테챠!! 어서와서 구해주는…챠아아아아!! 뜨겁테챠!!!”

“와타시는 살아야 하는 데스! 온 세상을 와타시의 자들로 채울 의무가 있는 데샤아아!!”

“주인사마…”


오늘도 52마리의 원사육실장이 수거되고, 52마리의 원사육실장이 소각된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처리소의 평범한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




“형님아, 진짜 고기 먹을 수 있어?”
“하모. 내만 단디 믿으면 된다카이.”
“니 우리 형이 잡는 모습 본적 이번이 처음이제? 끝내준다 아이가.”

내가 아직 한창 뛰어다니기 좋아했을 어린 시절, 그 시절 나는 나름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곱상한 샌님이었다. 얼굴 피부는 하얗고 그 시절 트랜드였던 나비넥타이에 멜빵바지가 제법 잘 어울리는 그런 아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내 아버지는 전형적인 시골서 상경한 상경민이었고 그렇기에 명절때가 되면 나는 늘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의 고향에 내려가곤 했었다. 지금 세대는 잘 상상이 안 되겠지만 그때 고속도로란 그냥 길다란 주차장에 다름 아니었다. 우리 식구가 어렵사리 구한 버스표를 들고 탄 버스는 그 주차장에 갇혀 오가지를 못하고 12시간을 넘기는 건 예사였고 새벽에 출발해 아버지의 옛 시골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밤이 되던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그런 고생길에도 내가 명절을 즐거운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사촌 형들과의 추억이 그만큼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럼 어디로 가야 하는데?”
“쩌기 언덕 보이제? 글로 갈끼다.”
“저기 형님이 말한 그게 있어?”
“그래. 며칠전에 나하고 형이 가서 봤다 아이가.”

80년대 초 시골 중에는 포장도로는커녕 전기나 가스도 안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내 큰아버지, 그러니까 사촌 형들의 아버지께서도 큰어머님과 선을 보실 때 자랑하셨던 것이 우리집에는 전기도 들어오고 읍내에 극장도 있다는 거였다니 말 다했지.

하지만 그렇기에 밤이 되어 큰집 소유 밭 한가운데 평상을 펼치고 누워 있노라면 여치의 울음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머리위로는 은하수가 빛나는 광경이 펼쳐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난 아이에게 그보다 신기하고 멋진 광경이 또 있으랴?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내게 가장 커다란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참피잡이였다.

“며칠 전에 슬쩍 봤는데 아주 물이 잘 올랐드라. 먹으면 맛이 기가막힐거라카이.”
“야야 니 참피 무 본적 없제?”
“응 없어.”
“그라믄 이번이 처음이제? 니 이번에 먹으면 참피 먹고잡다고 노래를 부를기다.”







지금에야 어디를 가든 식실장 집이 드물지 않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참피란 먹는 게 아니라 혐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에게 빌붙어서 그 부산물에 기대 사는 주제에 인간을 보면 노예로 취급하고 똥을 던져대는 생물을 먹으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사실 그때도 식실장을 취급하는 집이 있긴 했지만 그때 식실장이란 지금 세대가 개고기집을 보는 것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저 먹는 사람만 몰래 먹는 그런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반일감정이 지금보다도 더 심한 시기였으니 일본에서 건너온 참피들은 녹돼지 혹은 참피라고 불리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심하게는 왜벌레, 왜놈돼지라 불리며 보이면 보이는 대로 족족 죽어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건 시골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시골은 더했다. 이놈들이 농작물을 서리해가는 건 예사고 심하면 애써 키워 놓은 작물에 지꺼라는 표시로 죄다 똥을 싸서 망쳐 버리기도 했다. 그렇기에 참피는 보는 족족 패대기쳐서 죽였다. 그렇지만 도시와 달랐던 점은 그 참피를 곧잘 먹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큰형님아, 참피를 어떻게 먹는데?”
“궈 먹제.”
“구워 먹어?”
“니 모르는갑제? 참피는 삶아 묵어도 되지만 제일 맛있는 건 역시 가을참피 궈 먹는 거다 아이가.”
“가을참피? 왜?”
“그 참피가 겨울에는 겨울잠 자거든. 그라서 가을에 엄청 처먹어서 살 찌우고 겨울에는 잠깐잠깐 일나서 조금씩 먹으면서 봄 올때꺼정 버틴다 아이가. 그래서 가을 참피는 살이 피둥피둥한 게 기름이 올라서 음청 맛있다. 구우면 기름이 잘잘 흐르면서 육즙이 미친다니까.”

큰 형의 실감나는 설명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던 것 같다. 살쪄 기름이 오른 고기를 상상하면 어찌 아니 그럴 수 있을까!

80년대 중반은 한국이 가난에서 본격적으로 벗어나기 시작하는 시기였지만 아직도 삼시 세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다. 도시도, 시골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아니, 시골은 더했지. 채소는 조달 가능하지만 고기는 읍내에서 소나 돼지 잡는 날 아니면 구경하기 힘든 시기였다. 

그렇기에 늘 배고픈 시골 아이들에게 참피는 맛있는 고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름 도시샌님인 내게도 고기는 다다익선이었다.

“그라니까, 뒤쳐지지 말고 잘 따라 오그레이.”
큰 형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훤칠한 키, 그리고 다부진 몸을 가진 전형적인 시골 소년이었다. 그때 이미 중학생으로 동네 꼬맹이들의 골목대장 같은 위치였다. 

“오랜만에 고기 묵자는 건디 뒤쳐지면 안 된다카이!”
작은 형은 시골이라기 보다는 도시 애에 더 가깝게 곱상하게 생긴 게 특징이었다. 그래서 읍내에서 잘 생긴 걸로 소문이 자자하다든가 했었다. 하지만 성격은 촐랑거리고 까불거리는 아이 그 자체에다 나하고 2살 차이라 늘 나와 티격태격 했었다. 하지만 그래서 그런가 우리 둘은 늘 만나기만 하면 의기투합이 잘 되었고 지금도 작은 형과는 스스럼없이 연락을 하고 지낸다.


이런, 사족이 길었군. 하여튼 사촌 형들을 따라 야트막한 뒷산에 올라갔다. 형들의 날랜 발걸음을 간신히 따라가고 있자니 큰 형이 팔을 들어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조용히 자세를 낮추는 사촌 형들의 모습에 나도 똑같이 따라했던 기억이 난다.

“여기 어디쯤이었는데…”
큰 형이 나지막히 말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형님아, 여기 아이가?”
“그란 거 같다.”
작은 형이 어딘가를 가리키자 큰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낙엽이 가득한 곳이었는데 내가 봐도 뭔가 부자연스럽게 낙엽이 많이 덮혀있었다.

“형님아, 여기 파면돼?”
“오야, 조심히 파그레이.”
“야야 뱀굴일지도 모르니 잘 단디 들춰 보고 파그라.”

나뭇잎 더미를 하나씩 조심스레 들추자 제법 큼지막한 굴 입구가 보였다. 대략 20cm정도 되는 것이 성체가 기어서 드나들기 딱 인 크기였다. 큰 형이 조용히 하그레이 하면서 나지막히 말하고는 자세를 낮추어 내부를 가만히 살폈다.







코츙~ 코츙~
도로롱 퓨우~ 도로롱 퓨우~

무언가가 자면서 코를 고는 소리. 난 몰랐지만 작은 형이 이게 새끼 참피가 코를 고는 소리라고 했다.

“저마들 코 고는 소리 들리제? 뱀굴 아이네. 참피굴 맞다. 이 때는 어미놈이 밥 주으러 나가 있을 시간이다. 그라니 굴 안에는 새끼들 밖에 없을끼다.”

과연 잘 들여다보니 어미는 나가고 없는지 굴 안에는 새끼들로 보이는 조그마한 참피들만 있었다. 어디보자 하나, 둘, 서이, 너이…숫자를 세보니 대략 6마리 정도였다. 

“다 디비라.”
큰 형의 말과 함께 작은 형이 굴 입구 주변에 있던 나뭇잎들을 거칠게 흩어버렸다. 그러자 들리는 소리에 새끼들이 일어났는지 테츄? 테치? 테치테치 같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테? 텟! 테챠!!!
테엣?!

처음에는 우리가 어미인줄 알고 굴 초입으로 나와 반겼던 녀석들은 이내 어미가 아니라는 걸 알자 테챠! 소리와 함께 기겁한 표정으로 다시 뛰어들어가 연신 굴 안을 부산스레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긁개 가지고 왔제? 그거 써서 을른 끄내라.”
“요놈들 그라게 뛰어본들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카이.”
작은 형은 능숙하게 효자손을 넣어 새끼 참피들을 하나씩 낚아 꺼냈다. 나올때마다 테에엥 우는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작은 형! 나도 해보면 안 돼?”
“어, 해봐라.”
작은 형이 내준 효자손을 들고 나는 손을 최대한 뻗어서 참피를 걸어 꺼내려 했다. 하지만 역시나 처음 해보는 거라 그런지 내 효자손 끝은 여기저기 도망다니는 참피들을 놓치고 허무하게 허공을 휘집었다.







“테프프프.”
“치프프픗.”

내가 몇번 허탕을 치자 남은 새끼 몇몇이 초승달 눈을 뜨며 나를 비웃듯이 웃었다. 

“와씨, 너네들 죽었어!”
“야야, 그라믄 안 되지.”
“작은 형, 저놈들이 나 놀려.”
내가 거듭된 실패에 화를 내자 보다 못한 작은 형이 옆에서 훈수를 두었다.

“쩌기 저마들 머리수건 쓴 거 보이제?”
“응 보여.”
“그 긁개로 저 수건을 착 걸어서 꺼내야 하는기다.”

작은 형의 조언을 듣고 나는 다시금 효자손을 들이밀어 잡기를 시도했다. 그 새끼참피들은 나를 놀리려는 듯 테프프프 웃으며 뛰어다녔지만 이제는 방법을 터득한 내 효자손에 하나씩 끌려나왔다.







“테챠!!!”
“테샤아아아!!!”
“테치테치테치!!”

그렇게 끌려 나온 새끼들을 건내 받은 큰 형은 능숙하게 새끼놈들 머리카락을 다발로 묶어 끈처럼 만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를 놀리며 좋다고 뛰다니던 녀석들은 하나로 묶여서 테에엥 치에엥 울고 있었다.

“오메야, 윽수로 토실토실하데이. 이 굴 어미놈 을매나 해쳐무낄래 새끼가 이리 토실하노?”
“마 토실하면 잘 되었제. 먹을 거 많은 거니께. 너 쩌그 가서 아까 준비해온 거 가져온나.”
넉살 좋은 큰 형 말에 작은 형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언덕 밑으로 내려갔다. 나는 큰 형이 묶어놓은 새끼묶음을 보니 정말 신기했다. 도시에서도 간혹 보이는 참피지만 항상 어른들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이렇게 지근거리서 보기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와 많이 잡았다!”
“야야 니 잠깐!”
“왁?! 왜 뭔데?”
한 발을 내딛다 놀란 나를 확 잡아채고는 큰 형이 방금 전 내 발 밑에 있던 낙옆을 조심스레 치웠다.

거기엔 제법 넓게 판 구멍이 숨겨져 있었다.

“니 클 날뻔 했다. 조심해라카이.”
“구멍이네? 개구멍이야?”
“아이다. 이거 똥굴이다.”
“똥굴?”
“그래. 이게 이놈들 똥숫간이다.”

큰 형이 보여준 그곳에는 악취나는 참피 똥과 함께 그 똥으로 범벅이 된 체 기어다니는 참피 애벌레들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아마 그때 나도 모르게 으엑 하는 표정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때 시골에는 전통 화장실이 당연한 거였다. 통칭 푸세식이라고도 부르는 전통 화장실은 그 경악스러운 냄새와 비주얼로 어린 내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내가 어릴 때는 도시지역 학교도 화장실이 그런 푸세식인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하필이면 우리 학교가 그런 꼴이라 나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는 절대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그랬다가 저학년때는 바지에 지린 적도 있었지 거참 허허허. 참고로 시골 큰집에서는 그래서 집 앞 화단에다 크고 작은 걸 보곤 했다.

하여튼 참피들도 그런 인간을 모방이라도 한 건지 푸세식 화장실 비슷한 걸 만들어 놨던 것이다.

“큰 형아, 이놈들 똥숫간에 왜 지들 구더기가 있는데?”
“아, 니 모르나? 임마들 새끼 까면 이런 새끼참피말고 이 구더기도 나온다 아이가. 그라믄 새끼는 키우고 구더기는 똥숫간에 너어삐서 똥 먹여 키운다.”
“으엑? 자기 새끼한테 똥 먹여?”
“그렇다카이.”
“아이고, 니는 이런 것도 몰랐나? 거 서울촌놈 공부 헛했다 아이가.”
“우이씨. 나도 이제부터 참피 공부할 거야!”
큰 형과 어느새 올라왔는지 옆에 있던 작은 형이 놀렸고, 둘은 삐쳐서 볼 부풀린 나를 보고 유쾌하게 웃었다. 그때 나는 그저 놀림당한 거에 툴툴거렸을 뿐 장래에 참피 연구가가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아마 그 때의 치기가 조금은 나를 지금의 길로 이끈 걸지도 모르겠다.

“형님아, 그런데 이 똥숫간 구더기도 구워먹어?”
나는 썩 내키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큰 형님에게 물었다. 아무리 고기가 좋아도 참피 똥에 절여지다시피한 구더기를 구워먹는 건 난이도가 높았으니까. 내 말에 큰형님은 방금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시겠다는 표정으로 크게 웃으시고는 고개를 저으셨다.

“아이다. 아무리 고기라도 똥 먹은 구더기들은 똥냄새도 심하고 또 안에도 똥이 가득해서 궈먹기엔 파이다.”
“그러면 이놈들 먹어?”
내가 새끼참피들을 가리키자 놈들이 다급하게 일제히 테치테치 테에엥 소리를 지르며 버둥거렸다. 링갈이 없으니 우리 말은 못 알아들었겠지만 제깐놈들 생각에도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낌새는 챈 것 같았다.

큰형은 씨익 웃으며 또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놈들 중 몇 놈은 묵을긴데, 그보다 내가 신기한 거 보여주꾸마.”
그러더니 큰 형은 어느새 올라온 작은 형더러 큰집 장독대에서 몰래 퍼온 고추장을 꺼내게 하셨다.



“잘 보거레이. 이노마들 이 초록눈 있제? 여다 이 뻘건 고추장 발라뿌면~”
“테에? 테, 텟챠아아아아!!! 텟테로게!!”
새끼 한 놈의 녹색눈에 고추장을 바르자 그 새끼놈의 비명과 함께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작은 형이 바로 다라이를 새끼 밑에 내밀었다.







“텟테레!”
“텟테레!”
“텟테레!”
“텟테레!”

그리고 순식간에 총구에서 녹색 점막에 둘러싸인 구더기가 쏟아져 나왔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엄지 손가락 만한 크기로 거의 10마리가 넘게 쏟아져 나왔던 것 같다. 강제출산 치고는 나오는 구더기들 씨알이 정말 굵었던 기억으로 보면 그때 가을참피가 정말로 잘 먹긴 했었나 보다.

“레후레후.”
“레히~레후레후.”
“레후? 레훗.”
“레후?”

열 마리가 넘는 구더기가 다라이 안에서 연신 레후레후거리며 우리를 쳐다봤다. 내가 신기해서 한 마리를 들어보니 점막 안에서 구더기가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꼬리와 네 발을 연신 꿈틀거렸다. 굉장히 신기하면서도 기괴한 광경이었다.

“우와 신기하다. 새끼참피가 구더기 낳았어.”
“신기하제? 이놈들은 눈 색깔만 바뀌면 새끼 놓는다.”
“그라고 이놈들 지금 나온 구더기 있제? 이거 점막 없애뿌면 새끼된다 아이가.”
“점막 없애면 구더기가 새끼돼?”
“그렇다카이. 이게 초록 점막 남겨놓으면 구더기 되고 점막 닦으면 새끼된다.”
“와, 신기하다. 그럼 이거도 점막 닦으면 새끼 되는 거야?”
내 말에 작은 형은 살짝 고민하더니 아마 안될끼다 라고 했었다.

“왜?”
“이놈들은 엄청 작지않나? 새끼가 낳아서 그란데, 그라믄 이거는 닦아도 구더기 될끼다. 새끼가 새끼 노면 이리 된다 안 카나.”
“그렇구나. 점막 닦아볼라 그랬는데.”
“그라도 실망치 마라. 이게 궈 먹으면 윽수로 맛있다.”
“이놈들 구워먹는다고?”
“그마들은 방금 막 나온 놈들이라 똥도 없고 깨끗하다 아이가. 가을새끼가 낳은기라 야들도 맛있다카이.”
맛있다는 말에 나는 기대감으로 방긋 웃었던 거 같다.

자기도 새끼면서 새끼를 깐 참피는 미라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바짝 쫄아들어 있었다. 큰 형은 그 새끼를 원래 새끼들 앞에 내려놓았다. 새끼들은 그게 자기 미래가 될 거라는 걸 알았는지 미친듯이 테에에엥 울었다.

“자 그라믄 두 마리 정도 더 새끼 까고 나머지는 그냥 궈 먹제이. 알았제?”
“응.”
“그카자.”

그렇게 두 마리를 더 빼서 강제출산을 시키자 다라이 안에는 거의 30마리 정도의 구더기들이 레후레후 합창을 하며 꾸물거렸다. 큰 형은 어디선가 가져온 통에 불을 피웠다.

페인트통이었을까? 다른 깡통이었을까? 아니면 아예 깡통조차도 아닌 무언가였을까?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때 네모난 통 안에 불을 피웠던 것은 확실하게 기억난다.

“느그들 뭐하노?”
불이 어느 정도 올라오고 큰 형이 구더기들을 넣으려 할 찰나 갑자기 들려온 어른의 목소리에 우리는 일제히 그쪽을 바라봤다.

“아, 춘식이 아부지 아니심꺼? 안녕하십니꺼.”
큰 형이 그 분을 알아보고서는 바로 인사했다. 아는 동네 분인거 같았다.

“오야, 느그구나. 쟈는 누구고?”
“서울 작은 아부지 아들입니더. 야야 인사드리라, 쩌기 감나무집 춘식이 아버님이시다.”
“안녕하세요.”
“아아, 니 명수 아들이구마. 니 내 모르제? 명수가 어릴 때 나하고 명수 형님아하고 잘 놀았다. 명수 이번에 내려왔다 카더니 왔나보제?”
“야, 어제 저녁에 왔다 안 캅니꺼.”
“아이고, 명수 왔는데 내 술 한 병 가가야 하겠구마. 그런데 느그들 뭐 하고 있었노?”
“참피 새끼 잡아서 궈먹을라고 합니더.”
큰 형의 말에 그분은 아시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예삿일이다 라는 표정이셨다.

“야야, 거 불 안 나게 조심하그레이.”
“야 알겠심더.”
춘식이 아버지라고 불리셨던 동네 어르신은 그렇게 불 피우는 것에만 주의를 주시고는 또 휘적휘적 가던 길을 가셨다.







테에에엥!!
그 분이 가시고 나니 갑자기 새끼 참피들이 또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작은 형님아, 얘들 또 왜이래?”
하도 서럽게 울길래 물어본 내 질문에 작은 형님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피식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까 어르신 왔다 아이가? 이 쪼깨난 것들이 아까 그 어르신이 자기를 구해줄 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니 서럽다 그카는 기다.”
“왜 그 어르신이 자기들을 구해줘?”
“그라니까. 아무 이유도 없이 세상 모든 게 지들을 위해서 있다고 믿는다 아이가. 뭐든 다 지꺼고 뭐든 다 지 시다바리인기라.”
“이상한 녀석들이네?”
“안 그라모 우덜이 열심히 농사 지 놓은 거 좋다고 가 가겠나? 가끔 훔치가다 잡히뿌면 막 승질 부린다카이. 와 지꺼 가 가는데 잡냐 그칸다.”
“참피 새끼들 다 도독놈이다!”

적반하장은 기본에 온 세상이 자기들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그 정신머리. 그 때 일반적인 사람들은 잘 모른체 그저 경멸했을 뿐이지만 농민들은 벌써부터 실장석이 어떤 정신구조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빠삭했다. 내가 실장석 연구에 있어 초반부터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건 사촌 형들이나 큰아버지께 들었던 지식과 경험 덕분일 거다.

“므하는데? 묵자 얼른.”
작은 형이 배가 고픈지 재촉했다. 

“알았다. 니 배 많이 고픈가보네?”
“고기 앞에 두고 뭐라카노. 얼른 묵자.”
“아이고 알았다. 얼른 묵자. 가져온 거 이리 가 온나.”

큰 형은 웃으면서 바로 다라이 속에 있던 구더기들을 작은 형이 가져온 나무꼬치에 하나하나 꿰기 시작했다.

레뺘아아아!!!
레훼에에엥!!
레삐! 레삐이! 레삐!!!
삐야아아아!!!!!







한 마리씩 꿰일 때 마다 구더기들의 비명이 온 산이 떠나가라 울렸다. 도와달라! 구해달라! 하지만 그래본들 도와주러 올 존재는 없었다.

“이거 하나씩 꾸라.”
“알았다.”

큰 형이 하나에 열 마리쯤 꿴 꼬치를 하나씩 건내자 작은 형이 그걸 받아 통 위에 걸쳐놓았다. 3개의 꼬치가 불 위에 착지했다.

레훼야악아아!!!
뺘아아--레삐이이이이!!!
레뺘아아아아아!!!!
레햐--아아아아!!!

지글지글 연기와 함께 고기가 불에 익는 소리가 풍겨온다. 꼬치에 꿰인 것도 모자라 온몸이 불타오르면서 구더기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생생하게 귀에 전달된다. 그리 크다고는 못할 불이지만 엄지손가락 크기의 구더기들을 태우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지글지글

가장 먼저 구더기들의 앞 머리카락이 불에 흩날린다. 구더기들은 숫제 악다구니를 지르는 것 같았다. 

레훼에에에에!!! 레뺘아아아아!!!!

머리카락이 탈 때도 그러더니 구더기들은 더 격하게 울어재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직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이한 재산 중 하나와 나중에 자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빼앗은 거니 그 원통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예나 지금이나 봐주는 경우는 없지만 말이다.

살짝 거부감이 들 만도 하건만 오히려 구더기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즐겁기만 했다. 덫에 걸린 쥐를 물에 빠트려 죽였을 때, 다리에 붙은 거머리를 잡아 불에 지져 죽일때와 마찬가지로 해수 혹은 해충을 응징하여 죽이는 것과 같이 못 볼 걸 봤다기 보다는 오히려 쾌감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까?

어느덧 구더기들의 비명도 잠잠해진다. 그와 동시에 세 사람의 시선도 고기에 집중되었다. 

“자 묵자. 니 하나 먼저 받아라.”
큰 형은 잘 익은 구더기 꼬치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감사인사와 함께 받아 든 꼬치는 정말이지 먹음직스럽다는 말이 낭비일 정도로 절묘한 고기내음을 확 풍겼다.

“와, 구더기들 새까맣다. 형님아, 그런데 이거 탄 거 아니야?”
“다 먹는 방법이 있다 아이가. 잘 보그라.”

불이 고루 가진 않기 때문에 미처 다 타지 않은 포대기를 붙이고 나오는 구더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막 태어난 참피 새끼의 옷이나 포대기는 지금도 닭껍데기에 비유해서 먹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문제가 없기도 하고 오히려 군데군데 시커멓게 탄 포대기를 껍질 까듯 벗기는 재미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포대기를 찢어 까면 아이보리색으로 잘 익은 속살이 드러나 더욱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효과도 있어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기도 했다.

“잘 봤제? 니도 하나 까무 보레이.”
“응!”

큰 형이 시범을 보여주자 나도 맨 위에 있는 구더기의 까만 옷가지를 깠다. 잘 익은 속살이 드러나자 진짜 군침이 돌았다.

레헤…
내가 입으로 가져가려하자 순간 구더기가 움찔함과 동시에 힘 없는 비명을 뱉었다.

“어? 형님아, 이거 살아있어!”
내 말에 한창 껍질을 까시던 큰형이 보더니 반색했다.

“와 니 운 좋데이.”
“이게 운 좋은 거야?”
큰형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진짜 운 좋은거라 안 카나. 어르신들이 그라는데 이놈들은 이렇게 살아서 고통 받으마 더 맛있어진다 카드라.”
“와 진짜로?”
“그카모. 이게 윽수로 맛있다 아이가.”
이제는 그게 ‘짓소산’의 작용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그런 걸 몰랐다. 어른들도 그저 경험에 의해 그러면 맛있더라 하는 것만 알뿐이었다. 그래서 간혹 큰 참피라도 잡는 날에는 어르신들이 그 참피를 굽거나 삶기 전에 매달아놓고 죽지 않을 정도로 매타작을 하셨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레히이…레히…
먹지말라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그냥 아픔에 지르는 비명이었을까?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었던 어린 나는 한입 야무지게 베어 물었다.

우적우적

맛있다!

쫄깃쫄깃한 육질, 나는 고기요! 라고 외치는 듯 입안에 퍼지는 그 감칠맛! 씹을 때마다 탄력 있는 살이 이를 밀어내고 살 속에 박혀있던 육즙이 혀에 감기며 그 존재를 뽐냈다. 닭고기 육수처럼 은은하면서도 돼지고기 육수처럼 구수한 맛이 겹쳐 아이러니한 감성을 내게 자랑했다. 

어린 마음에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는 잘 몰랐지만 표현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맛과 향이라는 강열하고도 원시적인 감각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방금 참피를 먹은 양 생생하게 뇌를 감도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심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입맛을 다시는지 하하.

테에에에에에엥…
우리가 꼬치를 다 먹어갈 무렵, 아직 팔팔하게 살아있는 새끼들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작은 형님아, 얘들 왜 울어? 혹시 자기 자식들 먹었다고 그러는 거야?”
작은 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이다. 그노마들이 그런 생각이 있을 거 같나? 지 안 주고 우덜끼리 먹었다고 저카는 걸기다.”
“뭐? 미친놈들 아냐? 지 새끼가 먹히는데?”
“그게 참피다. 아까 똥굴 봤으멘스도 그러나? 게다가 가끔 으른참피 때리 직일라 카다보면 우리한테 지 새끼 내던지고 도망가는 놈 천지다 안 카나.”
“니 아까 못봤구마. 저노마들 내가 고기 꾸고 있으니까 입에서 침 질질 흘려가싸며 쳐다보드라꼬. 왜 느들만 묵냐, 지도 달라 이거제.”
“진짜 미친 놈들이네…”

그때 새끼가 흘렸던 눈물이 색이 있는 거였던가 투명이었던가…생각은 잘 안 난다. 아마 색이 있는 눈물이라고 해도 진짜 자기 자매의 새끼가 죽어서 그 비통함에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저 이제 자기 차례라는 걸 알아서 울었을 수도 있다. 혹은 진짜로 맛있는 고기가 앞에 있는데 자기가 못 먹어서 분노했든가. 하지만 앞서도 몇 번 말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렇게 우리는 세 마리 자실장이 낳은 구더기를 열심히 먹었다. 하지만 그리 크지 않은 자실장이 낳은 구더기였기에 명당 대충 열 마리를 먹었지만 그리 배가 차는 느낌은 아니었다.

“자 이제 남은 새끼들하고 아까 새끼 낳은 놈들도 궈묵자.”
“그럼 똥빼기 하나?”
“어, 저기 시냇물서 하면 된다.”
“똥빼기?”
“아까 구더기는 막 나온거라 똥이 읎는데, 임마들은 평소 먹은 게 있어놔서 안에 똥들었다 아이가? 그래서 먹을라면 똥 먼저 빼야하는기라.”
큰 형은 그리 말하더니 작은 형과 함께 새끼묶음을 들고 개울로 향했다.

“아 와이리 안 빠지노. 니 와이리 세게 묶었는데?”
“줘봐라 형님아, 그걸 와 못 빼는데?”
큰형이 불평하자 작은 형이 묶음을 받아 들더니 그 중 한 마리를 쭉 잡아 뺐다. 아니, 빼려고 했다.

“끄응차!! 아 와이리 안 빠지노!”
작은 형이 힘을 줬지만 여전히 참피는 묶음에서 빠지질 않았다. 아마 밧줄 대신에 얽어놓은 뒷머리카락이 얽혀도 단단히 얽힌 것 같았다.

“니도 똑같구만 뭘 어디서 용을 부려쌓노.”
“아 쫌만 기다리봐라카이!”
큰 형이 놀리자 작은 형은 살짝 성을 내더니 참피를 잡은 손에 힘을 더욱 줬다.

테? 테? 테챠아아아!!!! 테챠아아아!!!!!
작은 형 손에 잡힌 참피는 지금 벌어지는 사태에 울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며 비명을 질러 댔다. 엉킨 뒷머리가 두피를 잡아당기며 생기는 아픔도 아픔이고 아까 말했던, 유이한 재산 중 마지막 하나인 머리카락이 떨어져 나가는 데 대한 근원적 공포도 있었을 것이다.

“좀 빠지라카이!"

작은 형의 얼굴이 용광로마냥 벌게 질 정도로 힘을 주자 뚜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손에 잡힌 참피의 뒷머리카락이 조금씩 조금씩 끊겼다.






뚜드드득!

“됐다!!”

테챠아아아아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뒷머리카락이 다 뽑혀나간 참피를 작은 형이 큰 형에게 내밀었다. 

테? 테에? 테에에에?!?!?!



뒷머리가 없어진 새끼참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짧디 짧은 두 팔을 붕붕거려 뒷머리를 만져댔다. 그러더니 흩날려야 할 머리카락이 없어진 걸 알고는 세상이 다 무너진 얼굴을 하며 우리를 노려봤다. 기어이 자신의 머리카락까지 뜯어가 버린 묶음에 대한 증오요 그렇게 만든 사람에 대한 공포기도 했을 것이다.

“잘 보그레이.”
큰 형은 그 참피를 바로 시냇물에 담그더니 배를 리드미컬하게 눌렀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부그럭럭럭 보그르르르

형이 배를 누를 때마다 물에 잠긴 새끼의 입에서 거품이 올라왔다. 어느정도 물을 먹었다고 판단하자 큰 형은 참피를 물 밖으로 뺐다.

“이리 물을 먹여가 밖에서 물 빼면 똥이 빠진다.”
물 밖에서 다시 참피의 배를 누르자 총구로 녹색물이 쫙쫙 나왔다. 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자 큰 형은 다시 새끼를 물 속에 담궈 아까와 같이 배를 반복해서 눌렀다.

“이거를 몇 번 해서 참물 나올때까지 하면 된다아이가.”
졸지에 물고문을 당한 새끼참피는 거의 기진맥진해 있었다. 죽은 거 아닌가 싶었지만 잘 보니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생각해보면 참 큰 형의 스킬이 상당했었다. 그 고문 같은 걸 하고도 끝까지 안 죽였으니 말이다.

나머지 두 마리도 똥빼기를 하자 큰 형이 나를 불렀다.

“야야 아까 그 작대기 가져온나.”
“이 꼬치 막대기?”
내가 아까 구더기를 꿸 때 쓴 나뭇가지를 들자 두 형이 폭소를 했다. 

“야 갑자기 꼬치는 뭔 꼬친데?”
“아 참말로 갑자기 꼬치는 뭐꼬!”

나는 두 형이 왜 갑자기 웃는지 몰라 당황했다가 이내 이유를 알고 얼굴이 벌게 졌다. 당시 그쪽지방 사투리로 꼬치는 어린아이들이 남자의 성기를 지칭하는 단어였었기 때문이었다. 고추가 꼬추가 되고 그게 다시 꼬치가 되는 변환이었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형들은 전혀 이 막대를 꼬치라 안 불렀던 것이 생각났었다.

“아, 아니야!”
“야야 방금 꼬치라믄서!”
“꼬치랬데요! 꼬치랬데요!”
“아니라고! 아, 맞아! 꼬지야 꼬지!”
“꼬지는 또 뭐꼬 하하하핳!!”

정말이지 그냥 서울에서는 이걸 꼬치라 불러! 라고 했으면 되었을 것을 그때는 왜 그리 부끄럽다고 그리 말을 했는지. 그렇게 한참을 놀리던 두 형은 내가 울상이 되니 놀리는 것을 그만뒀다. 

“자자, 그 꼬치…푸핫! 여튼 가져와 보라카이.”
큰 형은 심통이 나서 입을 쭉 내민 내게서 나뭇가지들을 받아 들더니 아까 작은 형이 묶음서 뽑은 참피를 들었다.

“잘 보라카이 이카믄 된다.”
큰 형은 그 말과 함께 나뭇가지를 순식간에 새끼의 총구서 입까지 관통을 시켜버렸다. 정말 전광석화라는 게 이런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순식간에 해냈다.

테? 테에? 테에에??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꼬치에 꿰인 참피조차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서 테에에 하고 멍청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자 봤제? 이라믄 된다 아이가.”
“형님아, 나도 할래! 해볼래!”
“그래라. 그 꼬치, 풋크크크…에 꽂으면 된다.”
“아 쫌!”

또다시 웃음폭탄이 터지려는 사촌 형들을 뒤로 하고 나는 퉁퉁거리며 나뭇가지를 들었다. 작은 형이 묶음에서 새끼 한 마리를 분리했다. 이번엔 별 문제없이 머리카락째로 잘 분리되었다.







“이노마가 점마 머리칼을 가져가서 이카는가 보다.”
작은 형의 말마따나 이번에 분리된 참피는 아까 처음 떨어져 나온 참피의 머리카락까지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그걸 봤는지 꼬치에 꽂혀있던 새끼놈이 테챠!!!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갑자기 두번째로 분리된 놈이 초승달 눈을 하고는 치프프프 웃었다. 

“한 놈은 내 머리칼 내놓으라꼬 설치고 다른 놈은 니거 내가 가있다고 설치네 잘 논다 잘 놀아.”
큰 형이 가소롭다 느꼈는지 두 놈의 싸움(?)을 지켜보며 한 마디 말했다. 나도 어이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놈들은 가족애가 없구나, 그때 들었던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내가 참피를 연구함에 있어 가차없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뭐하는데? 얼렁 끼워뿌라.”
작은 형의 일갈에 나는 바로 치프프 웃는 놈의 총구에 나뭇가지를 끼웠다. 그제서야 웃음을 그치고 바로 눈물을 흩뿌리는 새끼녀석. 

테챠아아악!!! 테쟈아!!!!

이번에는 머리카락을 뜯기고 가지에 꽂힌 놈이 이놈을 비웃었다. 내가 능숙하지 못하고 새끼놈이 버둥거리는 바람에 총구에 끼우다가 여기저기 상처를 냈다. 게다가 총구에 나뭇가지가 들어가자 이놈이 더더욱 난리를 치는 바람에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입 밖으로 나뭇가지를 꺼낼 수 있었다.

“야 이거 잘 하모 윽수로 맛나겠네.”
“왜 형?”
“니가 잘 하진 못해서 이카이카 했지 않나? 아마 이노마 안에 상처 윽수로 났을끼다.”
큰 형의 말에 나는 조금 시무룩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말에 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이노마 고통 으지게 받았을 거 아이가? 그란데 아직 살아있단 말이제? 그라니 아까맨치로 더 맛있어질거다 카이.”
“어 그러면 나 잘 한거야?”
“윽수로 잘 했데이.”

큰 형이 그렇게 나를 치켜세워주는 사이 작은 형이 마지막 남은 새끼도 꼬치에 끼워서 가져왔다. 그렇게 테에엥 우는 세마리를 바로 불 위에 올렸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바로 참피들의 머리카락부터 불타올랐다.

테쟈!!!!! 테챠아!!!!
테챠아아아!!!!
테치잉!! 테치이이이이!!! 테치!!!







불타는 머리카락을 보며 새끼들이 가장 비참한 소리로 울부짖었다. 

“이놈들 진짜 옷이랑 머리카락 아끼네.”
“니 몰랐나? 참피놈들 머리카락하고 옷을 제일로 아낀다. 으른참피는 지 머리칼하고 옷만 건사할 수 있으멘 지 새끼도 막 버린다 안카나.”
“가끔가다 옷 좀 뜯을라카믄 아주 나라 잃은 독립운동가가 따로 없다카이. 빼액 우는데 온 사방에 다 울린다아이가.”

또다시 나는 훗날 참피 연구가로서 거듭나기 위한 지식을 얻었다.

불은 머리카락에 이어 참피들의 옷도 태웠다. 새끼들은 온몸을 힘차게 버둥거렸지만 그런다고 꼬치에 꿰인 몸이 탈출할 수 있을리도 없었다. 오히려 여기저기 불이 골고루 잘 붙도록 도와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테에에에엥!!!

한 놈이 제 눈이라도 보호하려는 듯 그 짧은 두 팔로 눈을 가려보지만 채 다 가려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불이 피해가지도 않았다. 

치에에에에엥!!!!

“아따 우는 꼴 봐라. 즈 새끼 까봐야 우리 쌀 훔치먹는 거 밖엔 못할 놈들이 새끼는 와 그리 까고싶다고 난리고.”
“아니제. 훔치먹는 게 아니라 온 사방천지에 널린 지꺼 가져가는 거 아이가.”
“그러다가 맞아 죽는 놈들 많다며? 그런데 저 놈들은 그런 것에서도 못 배워?”
“배우면 그게 참피가? 사람이제.”

몸에서 체액이 흘러나오니 불도 슬슬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형님아, 불 약해진 거 같은데?”
“다 수가 있다 아이가. 잘 보그레이.”
내 말에 큰 형은 아까 새끼를 낳아 쪼그라든 참피를 통 속에 넣었다.

“어? 아깝게…”
“아이다. 저거 비쩍 맬래서 무을 것도 읎고 구워도 딱딱해서 맛도 파이다. 그란데 이 참피놈들이 몸에 불이 잘 붙거든? 그라서 그냥 불 살리는데 쓰는 게 낫다카이.”
“아 그렇구나.”

지금도 캠핑가면 착화제로 가장 좋은 것이 바짝 말린 참피살이라지? 지방질이 많아서 그렇게 불이 잘 붙는다고 한다. 그때 사촌 형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른 참피가 들어가고 조금 기다리자 불이 다시금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치솟는 불길 속에서 테에에 하는 작은 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어린 마음에 그런 건 무시할 만한 일이었다.

“자, 다 익었다. 온나. 얼른 묵자.”
큰 형이 꼬치를 하나씩 나눠줬다. 내가 받아든 꼬치는 시커멓게 거슬린 참피가 아직도 살아서 테에…같은 얼빠진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건 어떻게 먹는데?”
내 말을 듣자마자 작은 형님이 바로 참피 옷을 죽 찢어버리고 한입 베어물었다.

“니 저번에 여기와서 닭 삶은거 뭇제? 옷 뱄기뿌고 그카면 된다.”
“아까 구더기처럼?”
“구더기보다 먹을 게 많아서 맛있을 끼다.”

나는 작은 형이 알려준 데로 검게 그을린 옷가지를 뜯고는 잘 익은 속살을 앙물었다.

“맛있다!”
“그제? 이게 음청 맛있다카이.”
“닭구이 같애. 저번에 아빠가 명동가서 사줬는데 이거 그 맛이랑 비슷해!”
“이야, 그라모 우리는 맨날 명동서 먹는 닭구이 먹고 있었는갑제.”
“시골 살아도 서울놈들 안 부럽다카이.”
아이 세명은 왁자지껄 웃으며 참피구이의 맛을 음미했다.

그렇게 구더기 열 마리에 새끼 하나까지 먹으니 제법 배가 찼다. 

“아 그란데 놈이 슬슬 올 때 됐는데?”
“놈?”







데샤아아아!!!

아마 먹을 것을 훔쳐 돌아오던 어미놈이 우릴 본 모양이었다. 숨을 헉헉거리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러면 산 초입에서부터 제놈들 굽는 냄새를 맡고 설마? 하면서 달려왔던 거겠지. 그놈도 양반은 못 되겠군. 지금 생각하자니 문득 생각이 든다.

“형님아! 크다! 큰 게 나타났다!!”
“오메 운 좋네. 야 잡으라 저거!!”
“알았다!”

작은 형이 부리나케 달려가더니 성체참피를 바로 걷어차버렸다. 성체참피가 바로 나동그라지자 작은 형은 아까 새끼들처럼 성체의 뒷머리를 잡아 올려서 가져왔다.

데샤!!!! 데쟈아!!!! 데스데스데스!!!!

성체는 벗어나려는 듯 힘차게 바둥거렸다. 내 새끼들 내놔라! 내 행복을 내놔라! 였겠지. 하지만 그래본들 작은 형의 손아귀 하나 떨쳐내지 못했다. 

“오메 이거 살찐거보소. 주변 밭에서 으지게도 마이 훔쳐뭇구만.”
“이건 조마 비려서 우리가 묵기엔 좀 파이고 집에 갔다주자. 갔다주뿌면 아부지하고 작은 아부지가 잘 드실끼라.”
“어? 그런데 우리 아빠도 참피 먹어?”
“니 몰랐나? 우리한테 참피 잡아서 묵는 거 갈쳐준 게 서울 작은아버지다 안 카나.”
“진짜? 우리 아빠도 참피 잡아서 먹었어?”
“그렇다카이. 옛날에 작은 아부지가 올매나 날랬는데. 작은 아부지 한 번 나갔다 하면 그날 이 동네 참피들 씨가 말랐다 아이가.”
“작은 아부지가 참피 잡아서 꿔주면 동네 잔치했제.”

사촌 형들에게서 아버지의 무용담을 듣고 있자니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아니, 이 맛있는 걸 그동안 안 가르쳐 주시고 당신만 드셨단 말인가? 

나중에 사촌형들 말로는 그날 집에 가서 내가 아버지께 왜 아빠만 먹었냐고 울었다고 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어쩔 줄 몰라 하던 아버지와 자초지정을 들으시곤 집이 떠나가라 웃으시던 큰아버지 이야기는 지금도 사촌형들이 나를 놀리는 단골 주제다. 그럴 정도로 그날 먹었던 참피고기는 별미였었다.

이렇게 앉아 있자니 괜히 옛날 추억이 떠오르네 거참. 날도 날이니 슬슬 사촌형들 전화나 해볼까?







“야 다 탄다. 어서 먹자 고마.”
“아니 형은 어째 올라온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사투리가 나와?”
“너하고 있으니까 이리 나오제. 다른 사람하고 있으면 내도 표준말 신사다 안 카나.”
“야, 니 모르제? 이노마 직장에서는 번득한 서울놈 행세한다 아이가.”
“아 형님아 그건 또 와 꺼내는데!”
서울의 한 식실장 식당. 남자 세명이 둘러앉아 산채로 구워지는 참피들을 감상하며 사는 이야기를 한다.

서로 놀리고, 와하하하 웃는 소리에 짠 하는 소리가 함께 부딛히며 소주잔이 부딪힌다. 

오랜 추억이 소주를 타고 내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고마워 참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