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추억




“형님아, 진짜 고기 먹을 수 있어?”
“하모. 내만 단디 믿으면 된다카이.”
“니 우리 형이 잡는 모습 본적 이번이 처음이제? 끝내준다 아이가.”

내가 아직 한창 뛰어다니기 좋아했을 어린 시절, 그 시절 나는 나름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곱상한 샌님이었다. 얼굴 피부는 하얗고 그 시절 트랜드였던 나비넥타이에 멜빵바지가 제법 잘 어울리는 그런 아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내 아버지는 전형적인 시골서 상경한 상경민이었고 그렇기에 명절때가 되면 나는 늘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의 고향에 내려가곤 했었다. 지금 세대는 잘 상상이 안 되겠지만 그때 고속도로란 그냥 길다란 주차장에 다름 아니었다. 우리 식구가 어렵사리 구한 버스표를 들고 탄 버스는 그 주차장에 갇혀 오가지를 못하고 12시간을 넘기는 건 예사였고 새벽에 출발해 아버지의 옛 시골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밤이 되던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그런 고생길에도 내가 명절을 즐거운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사촌 형들과의 추억이 그만큼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럼 어디로 가야 하는데?”
“쩌기 언덕 보이제? 글로 갈끼다.”
“저기 형님이 말한 그게 있어?”
“그래. 며칠전에 나하고 형이 가서 봤다 아이가.”

80년대 초 시골 중에는 포장도로는커녕 전기나 가스도 안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내 큰아버지, 그러니까 사촌 형들의 아버지께서도 큰어머님과 선을 보실 때 자랑하셨던 것이 우리집에는 전기도 들어오고 읍내에 극장도 있다는 거였다니 말 다했지.

하지만 그렇기에 밤이 되어 큰집 소유 밭 한가운데 평상을 펼치고 누워 있노라면 여치의 울음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머리위로는 은하수가 빛나는 광경이 펼쳐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난 아이에게 그보다 신기하고 멋진 광경이 또 있으랴?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내게 가장 커다란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참피잡이였다.

“며칠 전에 슬쩍 봤는데 아주 물이 잘 올랐드라. 먹으면 맛이 기가막힐거라카이.”
“야야 니 참피 무 본적 없제?”
“응 없어.”
“그라믄 이번이 처음이제? 니 이번에 먹으면 참피 먹고잡다고 노래를 부를기다.”







지금에야 어디를 가든 식실장 집이 드물지 않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참피란 먹는 게 아니라 혐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에게 빌붙어서 그 부산물에 기대 사는 주제에 인간을 보면 노예로 취급하고 똥을 던져대는 생물을 먹으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사실 그때도 식실장을 취급하는 집이 있긴 했지만 그때 식실장이란 지금 세대가 개고기집을 보는 것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저 먹는 사람만 몰래 먹는 그런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반일감정이 지금보다도 더 심한 시기였으니 일본에서 건너온 참피들은 녹돼지 혹은 참피라고 불리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심하게는 왜벌레, 왜놈돼지라 불리며 보이면 보이는 대로 족족 죽어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건 시골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시골은 더했다. 이놈들이 농작물을 서리해가는 건 예사고 심하면 애써 키워 놓은 작물에 지꺼라는 표시로 죄다 똥을 싸서 망쳐 버리기도 했다. 그렇기에 참피는 보는 족족 패대기쳐서 죽였다. 그렇지만 도시와 달랐던 점은 그 참피를 곧잘 먹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큰형님아, 참피를 어떻게 먹는데?”
“궈 먹제.”
“구워 먹어?”
“니 모르는갑제? 참피는 삶아 묵어도 되지만 제일 맛있는 건 역시 가을참피 궈 먹는 거다 아이가.”
“가을참피? 왜?”
“그 참피가 겨울에는 겨울잠 자거든. 그라서 가을에 엄청 처먹어서 살 찌우고 겨울에는 잠깐잠깐 일나서 조금씩 먹으면서 봄 올때꺼정 버틴다 아이가. 그래서 가을 참피는 살이 피둥피둥한 게 기름이 올라서 음청 맛있다. 구우면 기름이 잘잘 흐르면서 육즙이 미친다니까.”

큰 형의 실감나는 설명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던 것 같다. 살쪄 기름이 오른 고기를 상상하면 어찌 아니 그럴 수 있을까!

80년대 중반은 한국이 가난에서 본격적으로 벗어나기 시작하는 시기였지만 아직도 삼시 세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다. 도시도, 시골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아니, 시골은 더했지. 채소는 조달 가능하지만 고기는 읍내에서 소나 돼지 잡는 날 아니면 구경하기 힘든 시기였다. 

그렇기에 늘 배고픈 시골 아이들에게 참피는 맛있는 고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름 도시샌님인 내게도 고기는 다다익선이었다.

“그라니까, 뒤쳐지지 말고 잘 따라 오그레이.”
큰 형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훤칠한 키, 그리고 다부진 몸을 가진 전형적인 시골 소년이었다. 그때 이미 중학생으로 동네 꼬맹이들의 골목대장 같은 위치였다. 

“오랜만에 고기 묵자는 건디 뒤쳐지면 안 된다카이!”
작은 형은 시골이라기 보다는 도시 애에 더 가깝게 곱상하게 생긴 게 특징이었다. 그래서 읍내에서 잘 생긴 걸로 소문이 자자하다든가 했었다. 하지만 성격은 촐랑거리고 까불거리는 아이 그 자체에다 나하고 2살 차이라 늘 나와 티격태격 했었다. 하지만 그래서 그런가 우리 둘은 늘 만나기만 하면 의기투합이 잘 되었고 지금도 작은 형과는 스스럼없이 연락을 하고 지낸다.


이런, 사족이 길었군. 하여튼 사촌 형들을 따라 야트막한 뒷산에 올라갔다. 형들의 날랜 발걸음을 간신히 따라가고 있자니 큰 형이 팔을 들어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조용히 자세를 낮추는 사촌 형들의 모습에 나도 똑같이 따라했던 기억이 난다.

“여기 어디쯤이었는데…”
큰 형이 나지막히 말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형님아, 여기 아이가?”
“그란 거 같다.”
작은 형이 어딘가를 가리키자 큰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낙엽이 가득한 곳이었는데 내가 봐도 뭔가 부자연스럽게 낙엽이 많이 덮혀있었다.

“형님아, 여기 파면돼?”
“오야, 조심히 파그레이.”
“야야 뱀굴일지도 모르니 잘 단디 들춰 보고 파그라.”

나뭇잎 더미를 하나씩 조심스레 들추자 제법 큼지막한 굴 입구가 보였다. 대략 20cm정도 되는 것이 성체가 기어서 드나들기 딱 인 크기였다. 큰 형이 조용히 하그레이 하면서 나지막히 말하고는 자세를 낮추어 내부를 가만히 살폈다.







코츙~ 코츙~
도로롱 퓨우~ 도로롱 퓨우~

무언가가 자면서 코를 고는 소리. 난 몰랐지만 작은 형이 이게 새끼 참피가 코를 고는 소리라고 했다.

“저마들 코 고는 소리 들리제? 뱀굴 아이네. 참피굴 맞다. 이 때는 어미놈이 밥 주으러 나가 있을 시간이다. 그라니 굴 안에는 새끼들 밖에 없을끼다.”

과연 잘 들여다보니 어미는 나가고 없는지 굴 안에는 새끼들로 보이는 조그마한 참피들만 있었다. 어디보자 하나, 둘, 서이, 너이…숫자를 세보니 대략 6마리 정도였다. 

“다 디비라.”
큰 형의 말과 함께 작은 형이 굴 입구 주변에 있던 나뭇잎들을 거칠게 흩어버렸다. 그러자 들리는 소리에 새끼들이 일어났는지 테츄? 테치? 테치테치 같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테? 텟! 테챠!!!
테엣?!

처음에는 우리가 어미인줄 알고 굴 초입으로 나와 반겼던 녀석들은 이내 어미가 아니라는 걸 알자 테챠! 소리와 함께 기겁한 표정으로 다시 뛰어들어가 연신 굴 안을 부산스레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긁개 가지고 왔제? 그거 써서 을른 끄내라.”
“요놈들 그라게 뛰어본들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카이.”
작은 형은 능숙하게 효자손을 넣어 새끼 참피들을 하나씩 낚아 꺼냈다. 나올때마다 테에엥 우는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작은 형! 나도 해보면 안 돼?”
“어, 해봐라.”
작은 형이 내준 효자손을 들고 나는 손을 최대한 뻗어서 참피를 걸어 꺼내려 했다. 하지만 역시나 처음 해보는 거라 그런지 내 효자손 끝은 여기저기 도망다니는 참피들을 놓치고 허무하게 허공을 휘집었다.







“테프프프.”
“치프프픗.”

내가 몇번 허탕을 치자 남은 새끼 몇몇이 초승달 눈을 뜨며 나를 비웃듯이 웃었다. 

“와씨, 너네들 죽었어!”
“야야, 그라믄 안 되지.”
“작은 형, 저놈들이 나 놀려.”
내가 거듭된 실패에 화를 내자 보다 못한 작은 형이 옆에서 훈수를 두었다.

“쩌기 저마들 머리수건 쓴 거 보이제?”
“응 보여.”
“그 긁개로 저 수건을 착 걸어서 꺼내야 하는기다.”

작은 형의 조언을 듣고 나는 다시금 효자손을 들이밀어 잡기를 시도했다. 그 새끼참피들은 나를 놀리려는 듯 테프프프 웃으며 뛰어다녔지만 이제는 방법을 터득한 내 효자손에 하나씩 끌려나왔다.







“테챠!!!”
“테샤아아아!!!”
“테치테치테치!!”

그렇게 끌려 나온 새끼들을 건내 받은 큰 형은 능숙하게 새끼놈들 머리카락을 다발로 묶어 끈처럼 만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를 놀리며 좋다고 뛰다니던 녀석들은 하나로 묶여서 테에엥 치에엥 울고 있었다.

“오메야, 윽수로 토실토실하데이. 이 굴 어미놈 을매나 해쳐무낄래 새끼가 이리 토실하노?”
“마 토실하면 잘 되었제. 먹을 거 많은 거니께. 너 쩌그 가서 아까 준비해온 거 가져온나.”
넉살 좋은 큰 형 말에 작은 형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언덕 밑으로 내려갔다. 나는 큰 형이 묶어놓은 새끼묶음을 보니 정말 신기했다. 도시에서도 간혹 보이는 참피지만 항상 어른들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이렇게 지근거리서 보기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와 많이 잡았다!”
“야야 니 잠깐!”
“왁?! 왜 뭔데?”
한 발을 내딛다 놀란 나를 확 잡아채고는 큰 형이 방금 전 내 발 밑에 있던 낙옆을 조심스레 치웠다.

거기엔 제법 넓게 판 구멍이 숨겨져 있었다.

“니 클 날뻔 했다. 조심해라카이.”
“구멍이네? 개구멍이야?”
“아이다. 이거 똥굴이다.”
“똥굴?”
“그래. 이게 이놈들 똥숫간이다.”

큰 형이 보여준 그곳에는 악취나는 참피 똥과 함께 그 똥으로 범벅이 된 체 기어다니는 참피 애벌레들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아마 그때 나도 모르게 으엑 하는 표정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때 시골에는 전통 화장실이 당연한 거였다. 통칭 푸세식이라고도 부르는 전통 화장실은 그 경악스러운 냄새와 비주얼로 어린 내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내가 어릴 때는 도시지역 학교도 화장실이 그런 푸세식인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하필이면 우리 학교가 그런 꼴이라 나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는 절대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그랬다가 저학년때는 바지에 지린 적도 있었지 거참 허허허. 참고로 시골 큰집에서는 그래서 집 앞 화단에다 크고 작은 걸 보곤 했다.

하여튼 참피들도 그런 인간을 모방이라도 한 건지 푸세식 화장실 비슷한 걸 만들어 놨던 것이다.

“큰 형아, 이놈들 똥숫간에 왜 지들 구더기가 있는데?”
“아, 니 모르나? 임마들 새끼 까면 이런 새끼참피말고 이 구더기도 나온다 아이가. 그라믄 새끼는 키우고 구더기는 똥숫간에 너어삐서 똥 먹여 키운다.”
“으엑? 자기 새끼한테 똥 먹여?”
“그렇다카이.”
“아이고, 니는 이런 것도 몰랐나? 거 서울촌놈 공부 헛했다 아이가.”
“우이씨. 나도 이제부터 참피 공부할 거야!”
큰 형과 어느새 올라왔는지 옆에 있던 작은 형이 놀렸고, 둘은 삐쳐서 볼 부풀린 나를 보고 유쾌하게 웃었다. 그때 나는 그저 놀림당한 거에 툴툴거렸을 뿐 장래에 참피 연구가가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아마 그 때의 치기가 조금은 나를 지금의 길로 이끈 걸지도 모르겠다.

“형님아, 그런데 이 똥숫간 구더기도 구워먹어?”
나는 썩 내키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큰 형님에게 물었다. 아무리 고기가 좋아도 참피 똥에 절여지다시피한 구더기를 구워먹는 건 난이도가 높았으니까. 내 말에 큰형님은 방금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시겠다는 표정으로 크게 웃으시고는 고개를 저으셨다.

“아이다. 아무리 고기라도 똥 먹은 구더기들은 똥냄새도 심하고 또 안에도 똥이 가득해서 궈먹기엔 파이다.”
“그러면 이놈들 먹어?”
내가 새끼참피들을 가리키자 놈들이 다급하게 일제히 테치테치 테에엥 소리를 지르며 버둥거렸다. 링갈이 없으니 우리 말은 못 알아들었겠지만 제깐놈들 생각에도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낌새는 챈 것 같았다.

큰형은 씨익 웃으며 또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놈들 중 몇 놈은 묵을긴데, 그보다 내가 신기한 거 보여주꾸마.”
그러더니 큰 형은 어느새 올라온 작은 형더러 큰집 장독대에서 몰래 퍼온 고추장을 꺼내게 하셨다.



“잘 보거레이. 이노마들 이 초록눈 있제? 여다 이 뻘건 고추장 발라뿌면~”
“테에? 테, 텟챠아아아아!!! 텟테로게!!”
새끼 한 놈의 녹색눈에 고추장을 바르자 그 새끼놈의 비명과 함께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작은 형이 바로 다라이를 새끼 밑에 내밀었다.







“텟테레!”
“텟테레!”
“텟테레!”
“텟테레!”

그리고 순식간에 총구에서 녹색 점막에 둘러싸인 구더기가 쏟아져 나왔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엄지 손가락 만한 크기로 거의 10마리가 넘게 쏟아져 나왔던 것 같다. 강제출산 치고는 나오는 구더기들 씨알이 정말 굵었던 기억으로 보면 그때 가을참피가 정말로 잘 먹긴 했었나 보다.

“레후레후.”
“레히~레후레후.”
“레후? 레훗.”
“레후?”

열 마리가 넘는 구더기가 다라이 안에서 연신 레후레후거리며 우리를 쳐다봤다. 내가 신기해서 한 마리를 들어보니 점막 안에서 구더기가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꼬리와 네 발을 연신 꿈틀거렸다. 굉장히 신기하면서도 기괴한 광경이었다.

“우와 신기하다. 새끼참피가 구더기 낳았어.”
“신기하제? 이놈들은 눈 색깔만 바뀌면 새끼 놓는다.”
“그라고 이놈들 지금 나온 구더기 있제? 이거 점막 없애뿌면 새끼된다 아이가.”
“점막 없애면 구더기가 새끼돼?”
“그렇다카이. 이게 초록 점막 남겨놓으면 구더기 되고 점막 닦으면 새끼된다.”
“와, 신기하다. 그럼 이거도 점막 닦으면 새끼 되는 거야?”
내 말에 작은 형은 살짝 고민하더니 아마 안될끼다 라고 했었다.

“왜?”
“이놈들은 엄청 작지않나? 새끼가 낳아서 그란데, 그라믄 이거는 닦아도 구더기 될끼다. 새끼가 새끼 노면 이리 된다 안 카나.”
“그렇구나. 점막 닦아볼라 그랬는데.”
“그라도 실망치 마라. 이게 궈 먹으면 윽수로 맛있다.”
“이놈들 구워먹는다고?”
“그마들은 방금 막 나온 놈들이라 똥도 없고 깨끗하다 아이가. 가을새끼가 낳은기라 야들도 맛있다카이.”
맛있다는 말에 나는 기대감으로 방긋 웃었던 거 같다.

자기도 새끼면서 새끼를 깐 참피는 미라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바짝 쫄아들어 있었다. 큰 형은 그 새끼를 원래 새끼들 앞에 내려놓았다. 새끼들은 그게 자기 미래가 될 거라는 걸 알았는지 미친듯이 테에에엥 울었다.

“자 그라믄 두 마리 정도 더 새끼 까고 나머지는 그냥 궈 먹제이. 알았제?”
“응.”
“그카자.”

그렇게 두 마리를 더 빼서 강제출산을 시키자 다라이 안에는 거의 30마리 정도의 구더기들이 레후레후 합창을 하며 꾸물거렸다. 큰 형은 어디선가 가져온 통에 불을 피웠다.

페인트통이었을까? 다른 깡통이었을까? 아니면 아예 깡통조차도 아닌 무언가였을까?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때 네모난 통 안에 불을 피웠던 것은 확실하게 기억난다.

“느그들 뭐하노?”
불이 어느 정도 올라오고 큰 형이 구더기들을 넣으려 할 찰나 갑자기 들려온 어른의 목소리에 우리는 일제히 그쪽을 바라봤다.

“아, 춘식이 아부지 아니심꺼? 안녕하십니꺼.”
큰 형이 그 분을 알아보고서는 바로 인사했다. 아는 동네 분인거 같았다.

“오야, 느그구나. 쟈는 누구고?”
“서울 작은 아부지 아들입니더. 야야 인사드리라, 쩌기 감나무집 춘식이 아버님이시다.”
“안녕하세요.”
“아아, 니 명수 아들이구마. 니 내 모르제? 명수가 어릴 때 나하고 명수 형님아하고 잘 놀았다. 명수 이번에 내려왔다 카더니 왔나보제?”
“야, 어제 저녁에 왔다 안 캅니꺼.”
“아이고, 명수 왔는데 내 술 한 병 가가야 하겠구마. 그런데 느그들 뭐 하고 있었노?”
“참피 새끼 잡아서 궈먹을라고 합니더.”
큰 형의 말에 그분은 아시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예삿일이다 라는 표정이셨다.

“야야, 거 불 안 나게 조심하그레이.”
“야 알겠심더.”
춘식이 아버지라고 불리셨던 동네 어르신은 그렇게 불 피우는 것에만 주의를 주시고는 또 휘적휘적 가던 길을 가셨다.







테에에엥!!
그 분이 가시고 나니 갑자기 새끼 참피들이 또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작은 형님아, 얘들 또 왜이래?”
하도 서럽게 울길래 물어본 내 질문에 작은 형님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피식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까 어르신 왔다 아이가? 이 쪼깨난 것들이 아까 그 어르신이 자기를 구해줄 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니 서럽다 그카는 기다.”
“왜 그 어르신이 자기들을 구해줘?”
“그라니까. 아무 이유도 없이 세상 모든 게 지들을 위해서 있다고 믿는다 아이가. 뭐든 다 지꺼고 뭐든 다 지 시다바리인기라.”
“이상한 녀석들이네?”
“안 그라모 우덜이 열심히 농사 지 놓은 거 좋다고 가 가겠나? 가끔 훔치가다 잡히뿌면 막 승질 부린다카이. 와 지꺼 가 가는데 잡냐 그칸다.”
“참피 새끼들 다 도독놈이다!”

적반하장은 기본에 온 세상이 자기들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그 정신머리. 그 때 일반적인 사람들은 잘 모른체 그저 경멸했을 뿐이지만 농민들은 벌써부터 실장석이 어떤 정신구조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빠삭했다. 내가 실장석 연구에 있어 초반부터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건 사촌 형들이나 큰아버지께 들었던 지식과 경험 덕분일 거다.

“므하는데? 묵자 얼른.”
작은 형이 배가 고픈지 재촉했다. 

“알았다. 니 배 많이 고픈가보네?”
“고기 앞에 두고 뭐라카노. 얼른 묵자.”
“아이고 알았다. 얼른 묵자. 가져온 거 이리 가 온나.”

큰 형은 웃으면서 바로 다라이 속에 있던 구더기들을 작은 형이 가져온 나무꼬치에 하나하나 꿰기 시작했다.

레뺘아아아!!!
레훼에에엥!!
레삐! 레삐이! 레삐!!!
삐야아아아!!!!!







한 마리씩 꿰일 때 마다 구더기들의 비명이 온 산이 떠나가라 울렸다. 도와달라! 구해달라! 하지만 그래본들 도와주러 올 존재는 없었다.

“이거 하나씩 꾸라.”
“알았다.”

큰 형이 하나에 열 마리쯤 꿴 꼬치를 하나씩 건내자 작은 형이 그걸 받아 통 위에 걸쳐놓았다. 3개의 꼬치가 불 위에 착지했다.

레훼야악아아!!!
뺘아아--레삐이이이이!!!
레뺘아아아아아!!!!
레햐--아아아아!!!

지글지글 연기와 함께 고기가 불에 익는 소리가 풍겨온다. 꼬치에 꿰인 것도 모자라 온몸이 불타오르면서 구더기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생생하게 귀에 전달된다. 그리 크다고는 못할 불이지만 엄지손가락 크기의 구더기들을 태우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지글지글

가장 먼저 구더기들의 앞 머리카락이 불에 흩날린다. 구더기들은 숫제 악다구니를 지르는 것 같았다. 

레훼에에에에!!! 레뺘아아아아!!!!

머리카락이 탈 때도 그러더니 구더기들은 더 격하게 울어재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직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이한 재산 중 하나와 나중에 자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빼앗은 거니 그 원통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예나 지금이나 봐주는 경우는 없지만 말이다.

살짝 거부감이 들 만도 하건만 오히려 구더기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즐겁기만 했다. 덫에 걸린 쥐를 물에 빠트려 죽였을 때, 다리에 붙은 거머리를 잡아 불에 지져 죽일때와 마찬가지로 해수 혹은 해충을 응징하여 죽이는 것과 같이 못 볼 걸 봤다기 보다는 오히려 쾌감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까?

어느덧 구더기들의 비명도 잠잠해진다. 그와 동시에 세 사람의 시선도 고기에 집중되었다. 

“자 묵자. 니 하나 먼저 받아라.”
큰 형은 잘 익은 구더기 꼬치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감사인사와 함께 받아 든 꼬치는 정말이지 먹음직스럽다는 말이 낭비일 정도로 절묘한 고기내음을 확 풍겼다.

“와, 구더기들 새까맣다. 형님아, 그런데 이거 탄 거 아니야?”
“다 먹는 방법이 있다 아이가. 잘 보그라.”

불이 고루 가진 않기 때문에 미처 다 타지 않은 포대기를 붙이고 나오는 구더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막 태어난 참피 새끼의 옷이나 포대기는 지금도 닭껍데기에 비유해서 먹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문제가 없기도 하고 오히려 군데군데 시커멓게 탄 포대기를 껍질 까듯 벗기는 재미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포대기를 찢어 까면 아이보리색으로 잘 익은 속살이 드러나 더욱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효과도 있어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기도 했다.

“잘 봤제? 니도 하나 까무 보레이.”
“응!”

큰 형이 시범을 보여주자 나도 맨 위에 있는 구더기의 까만 옷가지를 깠다. 잘 익은 속살이 드러나자 진짜 군침이 돌았다.

레헤…
내가 입으로 가져가려하자 순간 구더기가 움찔함과 동시에 힘 없는 비명을 뱉었다.

“어? 형님아, 이거 살아있어!”
내 말에 한창 껍질을 까시던 큰형이 보더니 반색했다.

“와 니 운 좋데이.”
“이게 운 좋은 거야?”
큰형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진짜 운 좋은거라 안 카나. 어르신들이 그라는데 이놈들은 이렇게 살아서 고통 받으마 더 맛있어진다 카드라.”
“와 진짜로?”
“그카모. 이게 윽수로 맛있다 아이가.”
이제는 그게 ‘짓소산’의 작용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그런 걸 몰랐다. 어른들도 그저 경험에 의해 그러면 맛있더라 하는 것만 알뿐이었다. 그래서 간혹 큰 참피라도 잡는 날에는 어르신들이 그 참피를 굽거나 삶기 전에 매달아놓고 죽지 않을 정도로 매타작을 하셨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레히이…레히…
먹지말라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그냥 아픔에 지르는 비명이었을까?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었던 어린 나는 한입 야무지게 베어 물었다.

우적우적

맛있다!

쫄깃쫄깃한 육질, 나는 고기요! 라고 외치는 듯 입안에 퍼지는 그 감칠맛! 씹을 때마다 탄력 있는 살이 이를 밀어내고 살 속에 박혀있던 육즙이 혀에 감기며 그 존재를 뽐냈다. 닭고기 육수처럼 은은하면서도 돼지고기 육수처럼 구수한 맛이 겹쳐 아이러니한 감성을 내게 자랑했다. 

어린 마음에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는 잘 몰랐지만 표현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맛과 향이라는 강열하고도 원시적인 감각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방금 참피를 먹은 양 생생하게 뇌를 감도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심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입맛을 다시는지 하하.

테에에에에에엥…
우리가 꼬치를 다 먹어갈 무렵, 아직 팔팔하게 살아있는 새끼들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작은 형님아, 얘들 왜 울어? 혹시 자기 자식들 먹었다고 그러는 거야?”
작은 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이다. 그노마들이 그런 생각이 있을 거 같나? 지 안 주고 우덜끼리 먹었다고 저카는 걸기다.”
“뭐? 미친놈들 아냐? 지 새끼가 먹히는데?”
“그게 참피다. 아까 똥굴 봤으멘스도 그러나? 게다가 가끔 으른참피 때리 직일라 카다보면 우리한테 지 새끼 내던지고 도망가는 놈 천지다 안 카나.”
“니 아까 못봤구마. 저노마들 내가 고기 꾸고 있으니까 입에서 침 질질 흘려가싸며 쳐다보드라꼬. 왜 느들만 묵냐, 지도 달라 이거제.”
“진짜 미친 놈들이네…”

그때 새끼가 흘렸던 눈물이 색이 있는 거였던가 투명이었던가…생각은 잘 안 난다. 아마 색이 있는 눈물이라고 해도 진짜 자기 자매의 새끼가 죽어서 그 비통함에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저 이제 자기 차례라는 걸 알아서 울었을 수도 있다. 혹은 진짜로 맛있는 고기가 앞에 있는데 자기가 못 먹어서 분노했든가. 하지만 앞서도 몇 번 말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렇게 우리는 세 마리 자실장이 낳은 구더기를 열심히 먹었다. 하지만 그리 크지 않은 자실장이 낳은 구더기였기에 명당 대충 열 마리를 먹었지만 그리 배가 차는 느낌은 아니었다.

“자 이제 남은 새끼들하고 아까 새끼 낳은 놈들도 궈묵자.”
“그럼 똥빼기 하나?”
“어, 저기 시냇물서 하면 된다.”
“똥빼기?”
“아까 구더기는 막 나온거라 똥이 읎는데, 임마들은 평소 먹은 게 있어놔서 안에 똥들었다 아이가? 그래서 먹을라면 똥 먼저 빼야하는기라.”
큰 형은 그리 말하더니 작은 형과 함께 새끼묶음을 들고 개울로 향했다.

“아 와이리 안 빠지노. 니 와이리 세게 묶었는데?”
“줘봐라 형님아, 그걸 와 못 빼는데?”
큰형이 불평하자 작은 형이 묶음을 받아 들더니 그 중 한 마리를 쭉 잡아 뺐다. 아니, 빼려고 했다.

“끄응차!! 아 와이리 안 빠지노!”
작은 형이 힘을 줬지만 여전히 참피는 묶음에서 빠지질 않았다. 아마 밧줄 대신에 얽어놓은 뒷머리카락이 얽혀도 단단히 얽힌 것 같았다.

“니도 똑같구만 뭘 어디서 용을 부려쌓노.”
“아 쫌만 기다리봐라카이!”
큰 형이 놀리자 작은 형은 살짝 성을 내더니 참피를 잡은 손에 힘을 더욱 줬다.

테? 테? 테챠아아아!!!! 테챠아아아!!!!!
작은 형 손에 잡힌 참피는 지금 벌어지는 사태에 울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며 비명을 질러 댔다. 엉킨 뒷머리가 두피를 잡아당기며 생기는 아픔도 아픔이고 아까 말했던, 유이한 재산 중 마지막 하나인 머리카락이 떨어져 나가는 데 대한 근원적 공포도 있었을 것이다.

“좀 빠지라카이!"

작은 형의 얼굴이 용광로마냥 벌게 질 정도로 힘을 주자 뚜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손에 잡힌 참피의 뒷머리카락이 조금씩 조금씩 끊겼다.






뚜드드득!

“됐다!!”

테챠아아아아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뒷머리카락이 다 뽑혀나간 참피를 작은 형이 큰 형에게 내밀었다. 

테? 테에? 테에에에?!?!?!



뒷머리가 없어진 새끼참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짧디 짧은 두 팔을 붕붕거려 뒷머리를 만져댔다. 그러더니 흩날려야 할 머리카락이 없어진 걸 알고는 세상이 다 무너진 얼굴을 하며 우리를 노려봤다. 기어이 자신의 머리카락까지 뜯어가 버린 묶음에 대한 증오요 그렇게 만든 사람에 대한 공포기도 했을 것이다.

“잘 보그레이.”
큰 형은 그 참피를 바로 시냇물에 담그더니 배를 리드미컬하게 눌렀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부그럭럭럭 보그르르르

형이 배를 누를 때마다 물에 잠긴 새끼의 입에서 거품이 올라왔다. 어느정도 물을 먹었다고 판단하자 큰 형은 참피를 물 밖으로 뺐다.

“이리 물을 먹여가 밖에서 물 빼면 똥이 빠진다.”
물 밖에서 다시 참피의 배를 누르자 총구로 녹색물이 쫙쫙 나왔다. 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자 큰 형은 다시 새끼를 물 속에 담궈 아까와 같이 배를 반복해서 눌렀다.

“이거를 몇 번 해서 참물 나올때까지 하면 된다아이가.”
졸지에 물고문을 당한 새끼참피는 거의 기진맥진해 있었다. 죽은 거 아닌가 싶었지만 잘 보니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생각해보면 참 큰 형의 스킬이 상당했었다. 그 고문 같은 걸 하고도 끝까지 안 죽였으니 말이다.

나머지 두 마리도 똥빼기를 하자 큰 형이 나를 불렀다.

“야야 아까 그 작대기 가져온나.”
“이 꼬치 막대기?”
내가 아까 구더기를 꿸 때 쓴 나뭇가지를 들자 두 형이 폭소를 했다. 

“야 갑자기 꼬치는 뭔 꼬친데?”
“아 참말로 갑자기 꼬치는 뭐꼬!”

나는 두 형이 왜 갑자기 웃는지 몰라 당황했다가 이내 이유를 알고 얼굴이 벌게 졌다. 당시 그쪽지방 사투리로 꼬치는 어린아이들이 남자의 성기를 지칭하는 단어였었기 때문이었다. 고추가 꼬추가 되고 그게 다시 꼬치가 되는 변환이었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형들은 전혀 이 막대를 꼬치라 안 불렀던 것이 생각났었다.

“아, 아니야!”
“야야 방금 꼬치라믄서!”
“꼬치랬데요! 꼬치랬데요!”
“아니라고! 아, 맞아! 꼬지야 꼬지!”
“꼬지는 또 뭐꼬 하하하핳!!”

정말이지 그냥 서울에서는 이걸 꼬치라 불러! 라고 했으면 되었을 것을 그때는 왜 그리 부끄럽다고 그리 말을 했는지. 그렇게 한참을 놀리던 두 형은 내가 울상이 되니 놀리는 것을 그만뒀다. 

“자자, 그 꼬치…푸핫! 여튼 가져와 보라카이.”
큰 형은 심통이 나서 입을 쭉 내민 내게서 나뭇가지들을 받아 들더니 아까 작은 형이 묶음서 뽑은 참피를 들었다.

“잘 보라카이 이카믄 된다.”
큰 형은 그 말과 함께 나뭇가지를 순식간에 새끼의 총구서 입까지 관통을 시켜버렸다. 정말 전광석화라는 게 이런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순식간에 해냈다.

테? 테에? 테에에??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꼬치에 꿰인 참피조차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서 테에에 하고 멍청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자 봤제? 이라믄 된다 아이가.”
“형님아, 나도 할래! 해볼래!”
“그래라. 그 꼬치, 풋크크크…에 꽂으면 된다.”
“아 쫌!”

또다시 웃음폭탄이 터지려는 사촌 형들을 뒤로 하고 나는 퉁퉁거리며 나뭇가지를 들었다. 작은 형이 묶음에서 새끼 한 마리를 분리했다. 이번엔 별 문제없이 머리카락째로 잘 분리되었다.







“이노마가 점마 머리칼을 가져가서 이카는가 보다.”
작은 형의 말마따나 이번에 분리된 참피는 아까 처음 떨어져 나온 참피의 머리카락까지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그걸 봤는지 꼬치에 꽂혀있던 새끼놈이 테챠!!!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갑자기 두번째로 분리된 놈이 초승달 눈을 하고는 치프프프 웃었다. 

“한 놈은 내 머리칼 내놓으라꼬 설치고 다른 놈은 니거 내가 가있다고 설치네 잘 논다 잘 놀아.”
큰 형이 가소롭다 느꼈는지 두 놈의 싸움(?)을 지켜보며 한 마디 말했다. 나도 어이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놈들은 가족애가 없구나, 그때 들었던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내가 참피를 연구함에 있어 가차없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뭐하는데? 얼렁 끼워뿌라.”
작은 형의 일갈에 나는 바로 치프프 웃는 놈의 총구에 나뭇가지를 끼웠다. 그제서야 웃음을 그치고 바로 눈물을 흩뿌리는 새끼녀석. 

테챠아아악!!! 테쟈아!!!!

이번에는 머리카락을 뜯기고 가지에 꽂힌 놈이 이놈을 비웃었다. 내가 능숙하지 못하고 새끼놈이 버둥거리는 바람에 총구에 끼우다가 여기저기 상처를 냈다. 게다가 총구에 나뭇가지가 들어가자 이놈이 더더욱 난리를 치는 바람에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입 밖으로 나뭇가지를 꺼낼 수 있었다.

“야 이거 잘 하모 윽수로 맛나겠네.”
“왜 형?”
“니가 잘 하진 못해서 이카이카 했지 않나? 아마 이노마 안에 상처 윽수로 났을끼다.”
큰 형의 말에 나는 조금 시무룩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말에 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이노마 고통 으지게 받았을 거 아이가? 그란데 아직 살아있단 말이제? 그라니 아까맨치로 더 맛있어질거다 카이.”
“어 그러면 나 잘 한거야?”
“윽수로 잘 했데이.”

큰 형이 그렇게 나를 치켜세워주는 사이 작은 형이 마지막 남은 새끼도 꼬치에 끼워서 가져왔다. 그렇게 테에엥 우는 세마리를 바로 불 위에 올렸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바로 참피들의 머리카락부터 불타올랐다.

테쟈!!!!! 테챠아!!!!
테챠아아아!!!!
테치잉!! 테치이이이이!!! 테치!!!







불타는 머리카락을 보며 새끼들이 가장 비참한 소리로 울부짖었다. 

“이놈들 진짜 옷이랑 머리카락 아끼네.”
“니 몰랐나? 참피놈들 머리카락하고 옷을 제일로 아낀다. 으른참피는 지 머리칼하고 옷만 건사할 수 있으멘 지 새끼도 막 버린다 안카나.”
“가끔가다 옷 좀 뜯을라카믄 아주 나라 잃은 독립운동가가 따로 없다카이. 빼액 우는데 온 사방에 다 울린다아이가.”

또다시 나는 훗날 참피 연구가로서 거듭나기 위한 지식을 얻었다.

불은 머리카락에 이어 참피들의 옷도 태웠다. 새끼들은 온몸을 힘차게 버둥거렸지만 그런다고 꼬치에 꿰인 몸이 탈출할 수 있을리도 없었다. 오히려 여기저기 불이 골고루 잘 붙도록 도와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테에에에엥!!!

한 놈이 제 눈이라도 보호하려는 듯 그 짧은 두 팔로 눈을 가려보지만 채 다 가려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불이 피해가지도 않았다. 

치에에에에엥!!!!

“아따 우는 꼴 봐라. 즈 새끼 까봐야 우리 쌀 훔치먹는 거 밖엔 못할 놈들이 새끼는 와 그리 까고싶다고 난리고.”
“아니제. 훔치먹는 게 아니라 온 사방천지에 널린 지꺼 가져가는 거 아이가.”
“그러다가 맞아 죽는 놈들 많다며? 그런데 저 놈들은 그런 것에서도 못 배워?”
“배우면 그게 참피가? 사람이제.”

몸에서 체액이 흘러나오니 불도 슬슬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형님아, 불 약해진 거 같은데?”
“다 수가 있다 아이가. 잘 보그레이.”
내 말에 큰 형은 아까 새끼를 낳아 쪼그라든 참피를 통 속에 넣었다.

“어? 아깝게…”
“아이다. 저거 비쩍 맬래서 무을 것도 읎고 구워도 딱딱해서 맛도 파이다. 그란데 이 참피놈들이 몸에 불이 잘 붙거든? 그라서 그냥 불 살리는데 쓰는 게 낫다카이.”
“아 그렇구나.”

지금도 캠핑가면 착화제로 가장 좋은 것이 바짝 말린 참피살이라지? 지방질이 많아서 그렇게 불이 잘 붙는다고 한다. 그때 사촌 형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른 참피가 들어가고 조금 기다리자 불이 다시금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치솟는 불길 속에서 테에에 하는 작은 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어린 마음에 그런 건 무시할 만한 일이었다.

“자, 다 익었다. 온나. 얼른 묵자.”
큰 형이 꼬치를 하나씩 나눠줬다. 내가 받아든 꼬치는 시커멓게 거슬린 참피가 아직도 살아서 테에…같은 얼빠진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건 어떻게 먹는데?”
내 말을 듣자마자 작은 형님이 바로 참피 옷을 죽 찢어버리고 한입 베어물었다.

“니 저번에 여기와서 닭 삶은거 뭇제? 옷 뱄기뿌고 그카면 된다.”
“아까 구더기처럼?”
“구더기보다 먹을 게 많아서 맛있을 끼다.”

나는 작은 형이 알려준 데로 검게 그을린 옷가지를 뜯고는 잘 익은 속살을 앙물었다.

“맛있다!”
“그제? 이게 음청 맛있다카이.”
“닭구이 같애. 저번에 아빠가 명동가서 사줬는데 이거 그 맛이랑 비슷해!”
“이야, 그라모 우리는 맨날 명동서 먹는 닭구이 먹고 있었는갑제.”
“시골 살아도 서울놈들 안 부럽다카이.”
아이 세명은 왁자지껄 웃으며 참피구이의 맛을 음미했다.

그렇게 구더기 열 마리에 새끼 하나까지 먹으니 제법 배가 찼다. 

“아 그란데 놈이 슬슬 올 때 됐는데?”
“놈?”







데샤아아아!!!

아마 먹을 것을 훔쳐 돌아오던 어미놈이 우릴 본 모양이었다. 숨을 헉헉거리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러면 산 초입에서부터 제놈들 굽는 냄새를 맡고 설마? 하면서 달려왔던 거겠지. 그놈도 양반은 못 되겠군. 지금 생각하자니 문득 생각이 든다.

“형님아! 크다! 큰 게 나타났다!!”
“오메 운 좋네. 야 잡으라 저거!!”
“알았다!”

작은 형이 부리나케 달려가더니 성체참피를 바로 걷어차버렸다. 성체참피가 바로 나동그라지자 작은 형은 아까 새끼들처럼 성체의 뒷머리를 잡아 올려서 가져왔다.

데샤!!!! 데쟈아!!!! 데스데스데스!!!!

성체는 벗어나려는 듯 힘차게 바둥거렸다. 내 새끼들 내놔라! 내 행복을 내놔라! 였겠지. 하지만 그래본들 작은 형의 손아귀 하나 떨쳐내지 못했다. 

“오메 이거 살찐거보소. 주변 밭에서 으지게도 마이 훔쳐뭇구만.”
“이건 조마 비려서 우리가 묵기엔 좀 파이고 집에 갔다주자. 갔다주뿌면 아부지하고 작은 아부지가 잘 드실끼라.”
“어? 그런데 우리 아빠도 참피 먹어?”
“니 몰랐나? 우리한테 참피 잡아서 묵는 거 갈쳐준 게 서울 작은아버지다 안 카나.”
“진짜? 우리 아빠도 참피 잡아서 먹었어?”
“그렇다카이. 옛날에 작은 아부지가 올매나 날랬는데. 작은 아부지 한 번 나갔다 하면 그날 이 동네 참피들 씨가 말랐다 아이가.”
“작은 아부지가 참피 잡아서 꿔주면 동네 잔치했제.”

사촌 형들에게서 아버지의 무용담을 듣고 있자니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아니, 이 맛있는 걸 그동안 안 가르쳐 주시고 당신만 드셨단 말인가? 

나중에 사촌형들 말로는 그날 집에 가서 내가 아버지께 왜 아빠만 먹었냐고 울었다고 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어쩔 줄 몰라 하던 아버지와 자초지정을 들으시곤 집이 떠나가라 웃으시던 큰아버지 이야기는 지금도 사촌형들이 나를 놀리는 단골 주제다. 그럴 정도로 그날 먹었던 참피고기는 별미였었다.

이렇게 앉아 있자니 괜히 옛날 추억이 떠오르네 거참. 날도 날이니 슬슬 사촌형들 전화나 해볼까?







“야 다 탄다. 어서 먹자 고마.”
“아니 형은 어째 올라온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사투리가 나와?”
“너하고 있으니까 이리 나오제. 다른 사람하고 있으면 내도 표준말 신사다 안 카나.”
“야, 니 모르제? 이노마 직장에서는 번득한 서울놈 행세한다 아이가.”
“아 형님아 그건 또 와 꺼내는데!”
서울의 한 식실장 식당. 남자 세명이 둘러앉아 산채로 구워지는 참피들을 감상하며 사는 이야기를 한다.

서로 놀리고, 와하하하 웃는 소리에 짠 하는 소리가 함께 부딛히며 소주잔이 부딪힌다. 

오랜 추억이 소주를 타고 내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고마워 참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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