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아이템


"슬슬 오후의 밥 모으기 하러 나가는 데스. 오마에들, 준비는 된 데스?"

"네ㅡ 테치~."
"이모토쨩 서두르는 테치!"

작게 접은 식량 봉지를 겨드랑이에 낀 자실장들이 골판지 하우스를 들여다보는 친실장에게 씩씩하게 대답한다.

"레훗? 레후~!"

구더기실장도 언니들을 따라 씩씩하게 꼬리를 흔들며 대답한다.

"구더기쨩은 작으니까 밥 찾기는 아직 무리 테치. 집 보기 부탁하는 테치."

차녀가 쓴웃음을 지으며 구더기실장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선물 갖고 올 테니까 얌전하게 코 자고 있는 테치."

"구더기쨩 기다리는 레후..."

가장 예뻐해주는 차녀에게 집을 봐달라고 부탁받은 구더기실장은 조금 아쉬운 듯이 물러났다.

"오네쨩! 다들 기다리고 있는 테치!"

한발 먼저 밖으로 나간 사녀가 차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해님이 지기 전엔 돌아올 테치."

구더기실장에게 가볍게 볼을 비비고 나서 차녀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기다렸지 테치!"

"이제 다 모인 데스. 그럼 문단속 데스."

실장 친자의 집은 인간이나 다른 실장석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숲 속에 감춰져 있었고,
옆으로 누운 골판지를 조금이라도 넓게 사용하기 위해 뚜껑을 바깥쪽으로 내밀어 지붕과 벽 대신으로 삼았다.
친실장은 바닥의 연장 부분에 해당하는 골판지 뚜껑을 꺾어 올려서 문 대신으로 삼고는 뚜껑 앞으로 큰 돌을 굴렸다.

친실장이 처음 골판지 하우스를 만들었을 때는 문이 하우스 안으로 쓰러지는 결점이 있었다.
고민 끝에 쓰레기장에서 주운 압정을 좌우 벽에 하나씩 달아서 도어 스토퍼로 만드는 개량을 떠올린 이후, 문이 쓰러지는 일은 없어졌다.
문은 압정 스토퍼와 바깥에 놓아둔 큰 돌에 끼어있어서 자실장이나 구더기실장의 힘으로는 안에서 열 수 없다.
이로써 안에 있는 구더기실장은 완전히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열린 면의 아래쪽 반이 닫혔을 뿐인데도 골판지 하우스 안이 제법 어두워진다.

"레후~."

열린 면의 위쪽 반을 올려다보며 구더기실장이 쓸쓸하게 울었지만 밖에 있는 언니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데스데스 테치테치 하며 밖에서 들리던 가족의 목소리가 이윽고 멀어져가자 조금 전의 소란이 거짓말 같은 정적에 휩싸였다.

친실장, 자실장 네 마리, 구더기실장 한 마리가 한꺼번에 들어가면 비좁은 골판지 하우스지만 구더기실장 한 마리뿐이면 터무니없이 거대한 공간이다.
너무 조용해서 귓속이 아프다.
오늘은 바람 소리도, 밖에서 날아다니는 날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구더기실장의 위치에서 바깥쪽으로 얼굴을 돌리면, 강한 햇살이 닿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관목의 잎사귀들과 얼마 되지 않는 푸른 하늘이 보인다.

단조, 너무나도 단조로워서 울적한 시간이 흘러간다.

"레후~ 레후~."

구더기실장이 의미도 없이 울어보지만 대답하는 이는 없다.

한기를 느낀 구더기실장은 몸을 부르르 떨며 똥을 조금 흘리고 나서 골판지 안쪽까지 꼬물꼬물 기어갔다.
골판지 안쪽에는 침구로 쓰는 낡은 수건이 꼬깃꼬깃 뭉쳐져 놓여있고, 그 위에 차녀가 선물로 주워온 엄지실장 인형이 얹혀져 있다.

낡은 수건에 올라가서 구더기실장보다 조금 큰 플라스틱제 엄지실장 인형에 몸을 기댄다.
인형은 차가웠지만 좋아하는 차녀가 가까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구더기실장의 표정이 살짝 풀린다.
무언가 즐거운 생각을 하려 했지만 구더기실장의 작은 머리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구더기실장은 뭔가 열심히 생각하려 했지만 그러는 사이 졸음이 와서 잠들어버렸다.


                   △


닷새 전까지만 해도 자실장 네 마리와 구더기실장은 이른 아침과 오후,
두 번 밥을 찾으러 나가는 친실장의 귀가를 매일 골판지 하우스 안에서 함께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물 그릇과 화장실 대용의 스티로폼 쟁반, 침구인 낡은 수건 외에 아무것도 없었던 골판지 하우스에서는,
자실장 네 마리에게 있어서 자매 구더기실장은 최고의 애완동물이자 장난감이기도 했다.
구더기실장도 인기를 누리며 매일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닷새 전 저녁, 자실장들이 어느 정도 커졌다고 판단한 친실장은 "오마에들에게 이것을 주는 데스."하며 자실장 네 마리에게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작은 봉지를 내밀었다.
이제까지 제대로 밖에 나가지 못했던 자실장들은 갑작스러운 선고에 동요했지만,
친실장의 "밥 모으기를 안 하는 자는 밥의 몫이 줄어드는 데스."라는 한마디가 결정타가 되어 네 마리 모두 내일부터 밥 모으기에 따라가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구더기실장은 "구더기쨩도 가는 레후ㅡ!"라고 떠들었지만
친실장은 "바깥은 위험하니까 구더기쨩은 집 보는 데스."라고 말하며 상대하지 않고 문단속을 하고서 자실장들을 데리고 나가버렸다.
골판지 하우스에 남겨진 구더기실장은 소리 높여 울었지만 잠시 후 울다 지쳐 잠들어버렸다.

정오 이전에 돌아온 실장 친자는 눈물바다 속에서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구더기실장을 발견했다.
친실장이 이파리로 바닥을 걸레질하는 동안 차녀는 눈물에 젖은 구더기실장을 안고 달래며,

"바깥은 위험한 테치. 마마의 말대로였던 테치. 자동차에 길고양이, 까마귀, 위험한 것이 잔뜩 있었던 테치.
죽은 동료도 몇 마리 보고 왔던 테치. 구더기쨩은 좀 더 커지고 나서 나가는 테치."라고 말을 건넸다.

말을 걸면서 차녀는 깨닫고 있었다.
자신은 매일 키가 자라고 있는데 구더기실장은 태어났을 때보다 조금 커졌을 뿐이다.
어쩌면 평생 이대로일지도 모른다. 함께 밥을 모으러 나갈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외톨이는 쓸쓸한 레후우."

"음~ 맞다! 선물 가져오겠는 테치."

"정말 레후?"

"정말 테치. 열심히 찾을 거니까 구더기쨩도 열심히 집 보는 테치!"


실장 친자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오후의 밥 모으기에 나섰다.
구더기실장은 울고 싶은 것을 참으며 마마와 언니들을 배웅하고, 오로지 자는 것으로 지루한 시간을 때웠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 무렵, 눈을 뜬 구더기실장이 아직 가족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알고 다시 소리 높여 울 뻔한 바로 그때,
낯익은 데스데스 테치테치 소리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렸다.
밥 모으기에서 돌아온 실장 친자는 꼬리를 떨어져 나가도록 흔들며 기쁨을 표현하는 구더기실장의 환영을 받았다.
가장 먼저 구더기실장에게 달려가는 차녀의 식량 봉지에서는 선물인 엄지실장 인형이 반쯤 삐져나와 있었다.


선물로 엄지실장 인형을 고른 것은 사실은 친실장이었다.
쓰레기장에서 밥 찾기를 끝낸 뒤에도 "구더기쨩한테 선물을 약속한 테치."하며 쓰레기 뒤지기를 멈추지 않는 차녀를 보다 못해서,
타지 않는 쓰레기 속에서 엄지실장 인형을 찾아내어 "오마에가 나르는 데스."하며 차녀의 식량 봉지에 밀어 넣었다.

엄지실장 인형은 한달 전부터 타지 않는 쓰레기에 섞여 종종 나오게 된 물건으로, 높이는 4㎝, 머리와 팔다리, 뒷머리가 움직이는 플라스틱제의 채색된 인형이다.
"자들의 장난감으로 하는 데스."하며 몇 개 가져가는 들실장도 있지만,
대부분의 들실장들은 살아있는 장난감인 구더기실장이나 엄지실장이 이미 가족에 있어서 먹을 수도 없는 엄지실장 인형은 탐내지 않는다.

들실장들은 알 길이 없지만 이 인형은 실장푸드 회사가 내놓은 '실장석 전용 청량음료'에 딸린 판촉용 부록이었다.
'실장석 전용 청량음료'는 판매 초기에는 전혀 팔리지 않는 상품이었지만, 성분을 바꾸고 행운을 부르는 럭키 아이템으로 명명한 엄지실장 인형을 부록으로 넣고
텔레비전 선전을 내보내자 삽시간에 사육실장들이 사육주에게 보채서 박스 단위로 구매하는 히트 상품이 되었다.

사육실장들이 노리는 것은 수백 개에 단 한 개 존재하는 '황금 엄지실장 인형'.
행운을 부르는 럭키 아이템인 엄지실장 인형 중에서도 최상급의 행운을 부른다는 황금 엄지실장 인형은,
텔레비전에서 "당첨된 데스~!!"하며 황금 엄지실장 인형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실장석과, 그것을 부럽게 바라보는 실장석들의 광고가 연일 방송되자
얼마 안 가서 사육실장들의 물욕을 일으켰다.
사행심에 사로잡히기 쉬운 실장석들은 자신이야말로 황금 엄지실장 인형에 당첨될 자격이 있다며 단번에 혈안이 되었다.
사육주들은 싸구려 금도금 인형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육실장의 조르기에 못 이겨 사주고 만다.

황금 엄지실장 인형이 나올 확률은 수백 개에 한 개꼴,
이것이 당첨이라면 자연스럽게 꽝이 될 '녹색 옷에 갈색 머리카락으로 채색된 평범한 엄지실장 인형'이 대량으로 나오기 마련이지만,
사치에 익숙해진 사육실장들은 평범한 엄지실장 인형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키ㅡ! 꽝 인형은 재수가 없는 데스!!"하며 그 자리에서 버린다.
그 결과, 최근에는 들실장도 쓰레기를 뒤질 때 엄지실장 인형을 얻을 기회가 늘었다.

또한 황금 엄지실장 인형을 찾다 보면 '실장석 전용 청량음료'도 대량으로 사육실장의 수중에 남게 되지만,
실장석 취향의 무턱대고 달콤한 맛이기에 대부분의 사육실장들은 청량음료를 버리는 일 없이 벌컥벌컥 마셔서 처리한다.

그렇다. 바로 이렇게 한 번이라도 들이키도록 하는 것이 실장 푸드 회사의 목적이었다.
황금 엄지실장 인형을 노리고 실장석 전용 청량음료를 사준다고 해도 음료수를 마시지도 않고 버린다면 상품으로서는 실패다.
설령 마시더라도 황금 엄지실장 인형이 나오면 더는 음료수를 사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도 상품으로서는 실패다.
부록이 딸려있지 않아도 꾸준히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지 않으면 그동안의 개발 투자가 물거품이 된다.

5개월 전, 실장푸드 회사가 시장에 내놓은 실장석 전용 청량음료의 첫 출하분은 반품으로 산을 쌓았다.
실장석의 건강을 고려하여 질리지 않는 약한 단맛을 가미한 것이 역효과가 나왔다.
사육주는 실장 푸드를 출시하는 회사 제품이라면 실장석의 건강에 좋을 것이라 여기고 실장석에게 주지만,
회사의 연구실에서 키우는 테스트용 실장석과 달리 애호파에게 키워지는 실장석들은 인간용 청량음료에 완전히 길들어 있어서
이제 와서 약한 단맛의 청량음료를 마셔도 맛있다고 느끼지 않고 입에 대기만 해도 거부 반응을 보였다.


대량 반품 파동의 와중에 실장푸드 제조 회사 내에서 열린 반품 대책 회의는 논쟁이 일어났다.

영업 부문 측은,
"이번 사태를 초래한 원인은 상품 개발 방침에 잘못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당사는 실장석용 청량음료를 건강 음료로 개발했지만 청량음료는 실장 푸드와 달리 기호품 성격이 짙어서 실제 소비자인 사육실장들의 기호 측면을 중시해야 했다.
이러한 대량 반품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음 생산분에는 상품 외견과 가미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가미에 대해서는, 실장석이 단것을 선호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청량음료를 더 단맛으로 변경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저 달콤하게 만들기만 해서는 콘페이토나 초콜릿 같은 과자류를 뛰어넘을 수 없다.
사육실장들이 청량음료를 고르게 하려면 다른 한방이 필요하다.

당사 연구실에서 입수한 이 자료에 의하면 실장석은 아주 소량의 알코올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되었다.
심지어 취한 상태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되었다.
술 자체를 실장석 음료로 팔면 애호파의 반발이 생기지만, 청량음료에 알코올을 약간 넣었을 경우는 어떨까.
비록 농도는 진하지 않아도 실장석에게 한 번이라도 대량으로 마시게 한다면 맛을 들인 실장석이 반드시 다른 한 병에 손을 뻗을 것이다."

그렇게 강하게 주장했다.

그에 대해 상품 연구 개발 부문은,
"품질에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반품은 실장석용 청량음료가 시장에 침투할 때의 일시적인 현상이다."라고 상품 개발 초기의 건강 지향 노선을
유지할 것을 주장했지만 반품의 산을 떠안은 유통 관리 부문의 비명을 들은 뒤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투자 비용 회수를 우선하려는 회사 경영진은 청량음료 개발 방침을 영업부문의 주도에 맡기기로 했다.
또한 최초의 한 병을 사게끔 해서 마시게 하기 위해 판촉용 부록을 추가해서 텔레비전 선전을 내보낼 것도 동시에 결정되었다.

회사 연구실의 테스트용 실장석을 이용한 실험 결과도 양호했고, 중국 공장에서 과잉 생산하던 실장석 인형을 싼 값에 대량으로 입수한 일도 있었기에
3개월 뒤 실장푸드 제조 회사는 청량음료에 새로운 상품명과 화려한 라벨을 붙이고 출하를 시작했다.
미심쩍은 합성감미료와 착색료, 향료를 듬뿍 섞은 음료가 되어,
라벨의 '사람용 음료가 아닙니다. 주인분은 마시지 말아주세요.'라는 붉은 글자로 된 주의문 아래에 기재된 원재료의 숫자는 배로 늘어났다.
향료 나열에 섞여 자연스럽게 '과실주'가 적혀 있다.
이는 알코올 성분 표시 의무가 없는 미량의 알코올이 들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병 주둥이에는 속이 보이지 않는 작은 은색 비닐 봉투가 걸려 있고, 안에는 엄지실장 인형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


혼자서 집을 보던 구더기실장이 문득 잠을 깼다.
누가 자신을 부른 기분이 들었지만 잘 모르겠다.
가족이 돌아왔나 싶어서 고개를 들고 돌아보았지만 골판지의 열린 면으로 엿보이는 하늘은 아직 푸르러서 그런 시간이 되지는 않은 것 같다.
가족이 돌아오는 것은 하늘이 붉어졌을 무렵이라는 것쯤은 구더기실장의 머리로도 기억하고 있다.

어쩐지 무척 신경이 쓰였기에 더 잘 보겠다고 고개를 휘휘 돌리지만 머리를 골판지 하우스 안쪽으로 향하고 자고 있었기에 시야에 제약이 있다.
몸의 방향을 바꿔보려고 한 구더기실장은 몸을 두세 번 흔들어 기세를 붙여서 낡은 수건의 경사면을 가볍게 옆으로 굴러서 바닥으로 내려갔다.
구르는 도중 신이 나서 "텟테레ㅡ."하고 소리가 나와버리지만 바닥에 도착해서 옆구르기가 멈출 즈음에는 대개 눈이 빙글빙글 도는 것이 혼자 데굴데굴의 단점이다.

"조금... 기분 안 좋은 레후...."

조금 흐트러진 구더기실장이 중얼거린다.

바스락, 바스락바스락

집 앞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구더기실장이 문이 있는 방향으로 바동바동 몸을 돌리자, 바깥으로 열린 뚜껑이 왼쪽 벽에 닿은 부분이 더욱 벌어질 것처럼 천천히 스르륵 움직이고 있다.

이내 지붕 부분의 뚜껑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바깥으로 벌어져 지붕이 왼쪽으로 풀썩 기울었다.

"레? 레훙?"

구더기실장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왼쪽의 뚜껑은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아직 바깥쪽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구더기실장이 기척을 느끼고 시선을 떨어뜨리자, 문과 골판지 본체에 살짝 생긴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는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레후우?"

위험이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더기실장이 태평하게 운다.
틈새를 통해 안을 들여다보는 눈은 구더기실장을 주시하고 있다.

이윽고 바깥에서 "구더기쨩 테치이!"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안을 들여다보던 눈이 사라지고 "텟치 텟치!"하며 문 앞에 놓인 돌을 치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구더기실장은 역시 가족이 돌아왔나 싶어서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지만 이윽고 "마마 어딨는 레후?"라고 중얼거렸다.
평소 같으면 고임돌을 치우는 친실장의 모습이 문 위로 보였을 텐데 오늘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제법 시간이 흐르고 문이 바깥쪽으로 반쯤 쓰러졌을 때, "텟치 텟치!"하는 목소리가 끊기더니
낯선 자실장 한 마리가 문과 골판지 본체의 틈새로 몸을 비집고 들어와 골판지 안으로 뛰어들었다.

자실장은 일직선으로 구더기실장을 향해 달려오더니 구더기실장을 와락 끌어안았다.

"구더기쨩 구더기쨩 구더기쨩, 귀여운 테치이!!"

"렛뺘ㅡ!!"

처음으로 맡는 가족 이외의 체취. 느닷없는 사태에 놀란 구더기실장은 낯선 자실장의 품속에서 똥을 지리며 몸부림친다.

"테치!? 구더기쨩 미안 테치. 아팠던 테치이?"

자실장이 구더기실장을 천천히 내려주자, 구더기실장은 도움을 청하는 듯이 눈물과 똥을 흘리며 안쪽에 있는 수건과 엄지실장 인형을 향해 꼬물꼬물 움직였다.

당황하는 바람에 낡은 수건의 경사면을 잘 오르지 못한다.
꼬깃꼬깃 뭉쳐져 놓여있는 수건 위에서 버둥거리는 사이에 움푹 들어간 곳에 빠져서 발랑 뒤집어졌더니,
어느새 바로 뒤까지 온 자실장이 구더기실장을 뒤덮을 듯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레뺘! 렛뺘ㅡ!"

눈물을 찔끔거리며 싫어싫어하는 구더기실장을 보고 난처한 표정을 짓던 자실장,
구더기실장이 올라가려던 곳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건을 달려 올라가 엄지실장 인형을 집어들고,

"구더기쨩, 이거 테치? 이거 테치?"

그렇게 말하며 엄지실장 인형을 구더기실장 옆에 놓았다.

구더기실장은 구색만 갖춘 단순한 돌기에 불과한 두 손 두 발로 엄지실장 인형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자실장에게서 얼굴을 돌리고 떨고 있다.

"무섭지 않은 테치. 구더기쨩한테 아무 짓도 안 하는 테치."

자실장은 구더기실장의 옆에 앉아서 말을 건다.
구더기실장을 살짝 쓰다듬으려고 손을 뻗지만 그때마다 낌새를 알아챈 구더기실장이 움찔하고 반응하는 바람에 어쩌면 좋을지 고민하던 자실장,
문득 무언가 떠올리더니 "텟테로체~♪"하고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구더기 실장의 떨림이 멈췄다.
이것은 마마나 오네챠들이 가끔 흥얼거리는 노래의 멜로디. 구더기실장이 아는 유일한 곡.
자실장이 부르는 곡의 가사와 가족이 부르던 곡의 가사는 내용이 여기저기 달랐지만 구더기실장의 기억력으로는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엄지실장 인형에 매달려있던 팔다리에서 점점 힘이 빠지고, 노래에 맞춰 꼬리를 느긋하게 흔드는 구더기실장.

"레훙, 레후웅♪"하며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다.

노래가 끝나는 타이밍을 가늠하여 자실장이 구더기실장의 배를 프니프니 눌러본다.

"레후우."

구더기실장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구더기실장의 작은 머리를 차지하고 있던 '공포'는 완전히 '만족'으로 바뀌어있었다.
엄지실장 인형에서 팔다리를 떼고 드러누운 구더기실장이 싱글벙글하며 자실장을 바라보고 묻는다.

"레ㅡ? 오네쨩 누구 레후?"

이 자실장은 구더기실장의 언니들보다 크다. 굳이 말하면 중실장에 가깝다.
문 앞에 놓아두었던 돌도 이 크기의 자실장이었기에 그나마 움직였던 것이리라.

몸 곳곳에 찰과상이 있고 뒷머리도 많이 빠졌다. 실장복도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있고 몇 군데 찢어지고 피가 밴 자국이 있다.

구더기실장의 물음에 자실장의 얼굴이 흐려졌다.

"오네쨩? 오네쨩은... 오네쨩 테치! 오네쨩이니까 오네쨩 테치!"

"레훙?"

혼란스러워 하는 구더기실장을 끌어안은 자실장은 구더기실장을 어르며 골판지 하우스 안을 휙 둘러보았다.

"레후레후~♪"

자실장의 체온이 전해져서 따뜻해진 것에 기분이 좋아진 구더기실장. 이제 자실장이 누구든 상관없어졌다.

"구더기쨩은 혼자 테치?"

행복감에 휩싸인 구더기실장은 자실장이 갑자기 무슨 질문을 했는지 몰랐지만 일단,

"그런 레후♪ 오네쨩, 프니프니해주는 레후. 비행기해주는 레후."

그렇게 적당히 대답하며 꼬리를 파닥파닥 움직이며 애교를 부리고 있다.

자실장은 조금 생각하더니 구더기실장을 보며 말을 건넸다.

"...오네쨩하고 똑같은 테치. 결정한 테치! 오네쨩은 구더기쨩의 오네쨩이 되는 테치! 여기서 같이 사는 테치."

"레후레후우♪ 오네쨩, 오네쨩 레후."

자실장이 구더기실장 혼자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줄도 모르고, 구더기실장은 놀이 상대가 생겼다며 무턱대고 좋아하고 있다.

뭐하고 놀까? 프니프니는 당연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싶고 데굴데굴 놀이도 하고 싶다....
그렇지, 그것이 좋겠다.

"오네쨩, 저기 레후우."

구더기실장의 얼굴은 낡은 수건의 산 정상을 향하고 있다.

"구더기쨩 졸린 테치?"

자실장의 물음에 구더기실장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저기, 저기 레후우."

구더기실장을 안은 자실장은 구더기실장이 말하는 대로 수건의 산을 올라 정상까지 나아갔다.
수건의 산 너머에는 가루 세제용 계량스푼이나 망가진 경첩 등의 잡동사니 몇 개가 뒹굴고 있었다.

"테~?"

이것이 이곳 가족의 차녀가 가져온 선물들인 것을 모르는 자실장은 수건 정상에서 잡동사니 더미를 놀라서 바라보고 있었지만,
품속의 구더기실장이 꿈틀꿈틀 내려가고 싶어하는 것을 깨닫고는 잡동사니 근처까지 다가가서 구더기실장을 바닥에 내려주었다.

"레후레후우♪"

구더기실장은 잡동사니 중에서도 유독 기이한 모양을 한 물체에 다가가더니 잡동사니에서 튀어나온 레버를 몸으로 건드리기 시작했다.

"오네쨩, 이거 눌러주는 레후우."

"이거 누르는 테치?"

구더기실장이 조르는 대로 레버를 누른 자실장, 레버는 용수철 장치로 되어있어서 힘이 많이 필요하다.
조금 밀렸나 싶었을 때 용수철 때문에 밀려 나오고, 심지어 잡동사니 본체가 바닥을 미끄러져 자실장에게서 멀어져버린다.
간단한 일인 줄 알고 레버를 누른 자실장, 땀까지 흘리며 끙끙대는 동안에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점점 알 수 없어졌다.
곁눈질로 구더기실장을 보니 구더기실장의 눈은 기대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테칫, 테치, 텟치이이이!"

결국 자실장은 벽까지 잡동사니를 밀고 나가서 혼신의 힘을 다해 레버를 눌렀다.

끼리리리링 낮은 소리를 내며 잡동사니의 원반부가 회전하여 파지직 불꽃이 튄다.
불꽃의 빛은 잡동사니 상부를 덮은 클리어 오렌지와 클리어 블루의 플라스틱 커버를 통해서 골판지 하우스 안을 아름답게 꾸몄다.

"텟!!?"

갑작스런 작동에 다리 힘이 풀려 자빠지는 자실장.

잡동사니는 이윽고 작동을 멈췄다. 자실장은 놀란 나머지 자빠진 그대로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지만 구더기 실장이,

"레후우♪ 레후우♪ 예쁜 레후우."하는 함성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오네쨩, 더, 좀 더 레후우!!"

구더기실장이 이 장치에 대해 알고서 움직여달라고 조른 것임을 간신히 깨달은 자실장은 일어서서 쭈뼛쭈뼛 잡동사니에 다가간다.

한쪽 발로 잡동사니를 톡톡 건드려봤지만 조금 전과 같은 불꽃은 나오지 않는다.
어렴풋이 자극적인 냄새가 가득한 바람에 콧속이 간질거려서 자실장은 "테칭!"하고 재채기를 했다.

"오네쨩, 좀 더 레후우!"

뒤에서는 구더기실장이 계속 보채고 있다.

코를 훌쩍거리며 "테~ ...파직파직 예뻤던 테치.... 와타치도 더 보고 싶은 테치...."하고 중얼거리는 자실장.

한 번 더 잡동사니를 내려다본다.
파직파직을 한 번 더 보려면 저 레버를 힘껏 누르면 된다.

"텟츄ㅡ♪ 오네쨩한테 맡겨주는 테치!"


사흘 전 오후, 애호파의 집 마당에서 사육실장이 가지고 놀던, 플라이휠과 부싯돌을 사용한 싸구려 양철 장난감.
사육실장이 간식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간 사이, 자실장들의 응석에 못 이긴 친실장이 마당에 몰래 침입하여 훔쳐온 장난감으로
자실장과 구더기실장은 약 한 시간가량 계속 놀았다.


                   △


"테에에... 피곤한 테치...."

낡은 수건 위에 대자로 누운 자실장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중실장에 가까운 체격이긴 하지만 용수철 장치로 된 장난감으로 노는 것은 자실장에게는 중노동이었다.

골판지 하우스의 열린 면이 보이는 장소까지 이동해서 드러누운 자실장의 옆에 구더기실장이 꼬물꼬물 기어온다.

아직 더 놀고 싶은 건가 싶어서 자실장이 머리를 움직여 구더기실장을 보니,

"오네쨩, 고마운 레후우. 예뻤던 레후우."하고 몸을 비비며 기댄다.

"테~ 테츄웅♪"

만족감에 휩싸인 자실장. 어쩐지 피로감마저 기분 좋다.

자실장은 구더기실장의 배에 한 손을 두르고 가볍게 통통 두드리며 말을 건넨다.

"오네쨩 피곤하니까... 이번에는 이야기로 하는 테치."

"이야기 레후? 이야기해주는 레후우."

흥분한 구더기실장의 꼬리가 파닥파닥 움직여 자실장의 다리에 몇 번이나 닿는다.

"무슨 이야기로 하는 테치?"

"레후ㅡ ...밥 이야기가 좋은 레후우."

자실장은 친실장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에서 밥과 관련 있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마의 말을 잘 듣는 자실장과 구더기실장 자매에게, 신이 상으로 등에 날개를 달아주어서 하늘을 날게 되는 이야기.
자매는 온 세상의 공원이나 쓰레기장을 날아다니며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을 많이 가지고 마마에게 돌아와 가득 칭찬받는 내용이 이어진다.

"...이렇게 해서 구더기쨩과 오네쨩과 마마는 계속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테치."

이야기를 마치고 숨을 고른 자실장이 구더기실장을 보았더니 구더기실장은 완전히 황홀경에 빠져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이따금 "레훗, 레훙♪"하고 울고는 경련하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하늘을 날고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며 한창 미식 여행을 하는 중이리라.

구더기실장의 반응에 만족한 자실장은 구더기실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구더기쨩은 정말로 이야기 좋아하는 테치. 오네쨩의 가족 구더기쨩도 이야기 좋아했던 테치.
많이 있었던 이모토쨩들도 다들 이야기를 좋아했던 테치. 마마는 여러 이야기를 해줬던 테치."

가족에 대해 떠올린 자실장은 딱히 구더기실장에게 들려줄 의도 없이, 골판지 하우스의 열린 면으로 살짝 엿보이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떠오르는 대로 중얼거린다.

"마마는 노래도 잘 불렀던 테치. 매일 이모토쨩들하고 잔뜩 논 다음에는 마마가 가져온 밥을 먹으며 마마의 자장가를 들으면서 다 같이 코 잠든 테치."

"밥, 밥, 맛있는 레후우."

자실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구더기실장이 '밥'이라는 단어에 반응하여 맞장구를 친다.

"마마도 이모토쨩들도 오늘 아침까지 잘 지냈던 테치."

자실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흐려진다.

"그 녀석 테치. 마마가 아침밥을 찾으러 가고 나서 와타치가 이모토쨩들을 돌보고 집을 보고 있을 때 그 녀석이 온 테치."

"이모토쨩들이 집 밖에 뭐가 있는 기척이 난다고, 마마가 돌아온 게 틀림없다고 떠들기 시작한 순간, 집 문을 막대기로 열어젖히고 그 녀석이 들여다본 테치.
마마가 없는 것을 안 그 녀석이 문틈으로 막대기를 찔러넣어서 집 안에서 몇 번이나 휘두른 테치."

"레후우....."

하늘을 나는 공상에 빠져서 자실장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던 구더기실장, 자실장의 모습이 이상한 것을 깨닫고 꼬리 움직임이 멈춘다.

"와타치도 이모토쨩들도 막대기에 몇 번이나 맞아서 다친 테치. 너무 아파서 울었던 테치.
울음 소리를 들은 마마가 달려오도록 큰 소리로 울었는데 소용없었던 테치.
그 녀석이 집 안에 들어와서 본보기로 가장 큰 자인 와타치의 머리털을 잡고 흔들고 짓밟은 테치.
그 녀석이 오마에는 노예로 살려준다고 와타치한테 말하고 나서 집 구석에서 울고 있는 이모토쨩들을 잡고 한 마리씩 먹기 시작한 테치."

자실장은 여동생들이 잡아먹히는 모습을 자세히 말하기 시작했다.

첫번째가 된 여동생이 머리부터 갉아 먹혀 그대로 움직이지 않게 된 일.
통째로 베어먹힌 여동생의 머리털을 '그 녀석'은 입속에서 요령 있게 골라내더니 피범벅이 된 털뭉치를 바닥에 뱉었던 일.
다음 여동생부터는 옷과 머리털을 쥐어뜯겨 물그릇의 물로 쓱싹쓱싹 씻고 나서 먹은 일.
도중에 틈을 타서 도망치려던 여동생도 있었지만 골판지에서 나가기 전에 붙잡혀 막대기에 꿰어진 일.

자실장의 말에 억양은 없다. 눈빛도 완전히 가라앉아 있는 일종의 트랜스 상태에 빠진 채 계속 이야기한다.

가족에 대한 것을 떠올려버린 자실장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구에게랄 것 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것은 자신의 신변에 일어난 비극을 마치 제삼자의 시점에서 담담히 이야기함으로써,
고통이나 슬픔 같은 감각과 현실을 분리하여 감정 폭발로 인한 자아 붕괴를 막으려는 자기방어 본능에 따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실장의 이야기는 아직 계속되었다.

'그 녀석'에게 짓밟힌 채 여동생들이 잡아먹히는 것을 울며 보고 있어야만 했던 일.
'그 녀석'이 여동생들을 다 먹고 마지막으로 남은 구더기실장의 목을 비틀어 따서 내용물을 쭙쭙 빨아먹고 있을 때,
마마가 돌아와서 싸움이 벌어졌던 일.
자신을 짓밟던 '그 녀석'의 다리에서 벗어나 반갑게 폴짝거리며 마마를 응원했던 일.
'그 녀석'이 쥔 막대기가 마마의 얼굴에 박힌 일.
괴로워하는 마마에게 '그 녀석'이 올라타 막대기를 몇 번이나 찔러서 결국 마마가 움직이지 않게 된 일.
목덜미를 물어뜯긴 마마의 목이 뒤로 넘어간 일.

"마마가 진 테치. 와타치는 무서워서 도망친 테치. 그 녀석이 마마의 생명의 돌을 갉아먹는 사이에 도망친 테치."

"마마 없는 테치. 이모토쨩들 없는 테치. 집 돌아갈 수 없는 테치. 몇 번이나 넘어지고 몇 번이나 언덕을 굴러떨어져서 이 집에 오게 된 테치."

누워있는 자실장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렀다.
자실장은 표정도 바꾸지 않고 울음 소리도 내지 않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눈물이 마를 때쯤,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을 전부 털어놓은 자실장은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검고 차가운 것이 사라지는 감각을 느끼고,
눈에는 조금 전 구더기실장과 놀 때의 빛이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트랜스 상태가 풀리고 잠시 후 눈물을 닦은 자실장은 문득 신경이 쓰여서 목을 구부리고 옆에 있는 구더기실장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구더기실장이 반응이 없다.

"구더기쨩? 구더기쨩!"

설마 새로운 가족마저 잃은 것이 아닐까 당혹한 자실장은 구더기실장의 몸을 흔들어본다.

"레ㅡ후~."

구더기실장은 자고 있었다.
정확히는 자실장의 이야기 도중, 자실장과 자매가 막대기로 맞는 대목을 들었을 때 아픔을 상상하고 이미 정신을 잃었다.
구더기실장은 운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만일 자실장의 여동생들이 잡아먹히는 세세한 모습까지 듣고 있었다면 구더기실장의 취약한 감성으로는 기절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구더기쨩 코 자버린 테치. 오네쨩도 조금 자는 테치."

구더기실장을 안는 듯이 한 손을 두른 채로 몸을 옆으로 돌리고, 자실장은 살짝 웃고 나서 눈을 감았다.



                   △


"으음...."

실장 푸드 제조 회사의 상품 연구개발부 부장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서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서류의 내용은 실장석용 청량음료의 불시 검사 성분표.
본래는 상품 품질 관리부문의 업무이고 상품 연구개발부의 업무가 아니었지만 부하가 물어보았던 소문의 진위를 꼭 자기 부서에서 확인하고 싶었기에
품질관리부 부장에게 전화를 하고 출하 트럭을 붙잡아 몇 상자를 내려서 자체 조사를 하고 말았다.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성분표를 가져온 주임이 서류의 한 곳을 가리키며 중얼거린다.
볼펜으로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수치는 청량음료의 함유 알코올양이 사내 자료 수치의 다섯 배나 많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건강 지향을 고집하던 상품 개발 연구부가 청량음료에 알코올을 섞는 건에 동의할 때 끝까지 사수했던 조건은
'알코올 중독 실장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성체실장이 하루에 최대 15개나 청량음료를 마신다고 가정해도 알코올 중독에 빠지지 않는 양을 알아보기 위해 상품 연구개발부는 한달에 걸쳐 실험을 했다.
개체차를 고려해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알코올양을 알아내기 위해 70마리에 가까운 실험용 실장석이 알코올 중독의 희생양이 되었고,
안전권 내에서 함유 알코올양을 정하고 회의로 전 부서의 동의도 얻었건만 그 약속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소문으로는 다른 회사가 동일한 컨셉의 청량음료를 개발 중이라는 미확인 정보에 놀아난 영업부문이,
필승 플랜으로 제조 관련 부서에 알코올 증량을 하게끔 뒷공작을 벌였다고 한다.
게다가 품질관리부의 불시 검사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알코올양 다섯 배의 청량음료가 검사 대상이 되지 않도록 상품 창고 관리에 잔재주를 부리고 있다는 뜻이다.
상품 연구개발부나 품질 관리부가 속아 넘어간 이상, 이는 중대한 사태다.
이 회사는 조직으로서 기능 부전을 일으키고 있다.

"그럼 어디서부터 손을 댈까...."

서류에서 눈을 뗀 그는 안경을 벗고 눈 위로 가볍고 둥글게 눈을 마사지한다.

다섯 배.... 매일 청량음료 여러 개를 주는 가정이면 알코올 중독 실장이 무시할 수 없는 비율로 발생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출시한 지 한 달된 현시점에서 전국의 사육실장 중 몇 마리가 잠재적 알코올 중독 실장이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알코올 섭취량 측정 실험에서 발생한 알코올 중독 실장의 난폭함과 말기 증상의 비참함을 떠올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완용 식품 전문 회사라고 해도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안경을 다시 걸치며 생각한다.
상품 연구개발부로서는 일단 행동을 하기 전에 품질 관리부를 아군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화기에 손을 뻗으려던 그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인 판촉용 엄지실장 인형을 포착했다.
인형은 아양 포즈를 취하고 이쪽을 향해 놓여있다.
그는 문득 인형이 얄미워져서 손가락 끝으로 인형을 탁 쳐서 날렸다.



                   △


"테ㅡ 테츗!"

재채기를 한 자실장의 눈이 살짝 열린다.

"테에ㅡ? 테치?"

아직 머리에 피가 돌지 않았기에 텅 빈 눈으로 상반신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이 어디였는지 떠올리려고 했을 때, 옆에서 구더기실장이 "레후우."하고 숨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그래, 조금 전까지 이 외톨이 구더기쨩과 놀고 있었지. 이제부터 이 집에서 둘이서 살아가기로 했었지.
그런 것들이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골판지 하우스의 열린 면을 통해 밖을 보니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노을이 질 것이다.
"테에ㅡ."하고 하품을 함과 동시에 배가 꼬륵 울린다. 오늘은 식사도 못 해서 완전히 공복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자고 있는 구더기실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구더기쨩, 오네쨩 배고픈 테치이. 오네쨩 지렁이라도 찾아올 건데, 밥은 지렁이도 좋은 테치이?"

그렇게 묻자 구더기실장은 잠이 덜 깬 소리로 "먹고 싶은 레후우."하고 작은 소리로 대꾸했다.

"잡아올 테니까 구더기쨩, 집 보기 부탁하는 테치."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든 자실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녀석'이다. '그 녀석'이 골판지 하우스 앞에 쭈그려 앉아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입안이 쉬익하는 소리를 내며 마른다.

"겨, 겨우 찾아낸 데스. 이런 곳에 숨어있던 데즈즈우. 와타, 와타시한테서 도망치려 하다니, 나, 나쁜 노예 데스."

살짝 뿌옇고 초점이 맞지 않는 것 같은 '그 녀석'의 눈이 상하 좌우로 데굴데굴 부지런히 움직인다.

"테칫! 텟치치테칫치치치!!"

벌벌 떨며 주저앉은 채 뒷걸음질을 시작한 자실장의 다리에 꾸벅꾸벅 조는 구더기실장이 닿았다.

"레훙?"

잠의 세계에서 불려나온 구더기실장이 응석 부리는 소리로 운다.
잠이 덜 깨서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구더기실장을, 자실장은 순간적으로 붙잡아서 낡은 수건 속에 밀어 넣어 숨겼다.

"?! 레...!"

얼굴을 스쳐서 잠에서 깬 구더기실장은 수건에서 빠져나온 꼬리를 파닥파닥 움직이며 무언가 외치고 있었지만,
자실장은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수건을 잡아당겨 위를 더 덮었다.

"뭘 하, 하는 데즈우. 어, 얼른 나오는 데스. 이, 이 엘리자베스님이 명령하고 있는 데즈우!!"

원사육실장인 성체실장이 골판지 문 앞의 고임돌을 차 날리고서 문을 난폭하게 열고 하우스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우스 안에 며칠이나 목욕하지 않은 실장석의 체취와 썩은 고기 냄새가 퍼진다.
한때는 순백으로 빛나며 고급 실장복의 옷자락을 장식하던 레이스 프릴은 진흙과 찢겨 먹힌 동족의 파편을 흡수하여 부풀어 올랐고,
연한 보라색이었던 실장복은 피에 물들어 검은 얼룩투성이의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두건과 앞치마에는 식사하고 남은 찌꺼기가 들러붙어 악취를 풍긴다.

뿌직 뿍 뿌브브브븍!

"테챳! 텟!? 테에에에엥!"

뱃속에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실장은 물 비슷한 탈분을 약간 한 다음, 성대한 소리를 내며 방귀를 뀌었다.

"에, 엘리자베스는 배가 고픈 데즈. 빨리 나오는 데스우!"

조바심이 난 성체실장은 손에 든 막대기, 원 터치로 펴고 접는 실장석용 양산으로 골판지 하우스의 벽을 탕탕 두드리며 위협한다.
이 양산은 길러지던 때부터 마음에 들어하던 물건으로, 원래는 실장 댄스의 소품으로 주인에게서 받은 것.
이 성체실장과 함께 버려졌고 지금은 무기로 애용하고 있다.

"테에! 테에에엥!"

'그 녀석'에게 붙잡히면 먹힌다.

골판지 하우스가 흔들리고 낡은 수건의 산에서 굴러떨어진 자실장은 정신없이 손에 닿는 것을 던졌다.
모래알 같은 직경 수 밀리미터의 작은 돌이나 실밥 덩어리,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낙엽.
너무 가벼워서 10cm도 날아가지 못하고 성체실장까지 닿는 것이 하나도 없다.
자실장이 엄지실장 인형의 다리를 붙잡아 던진다. 적당한 무게와 크기를 가진 인형은 공중을 날아 성체실장의 얼굴에 맞았다.

"데즛!?"

무언가 얼굴에 맞은 것에 놀란 성체실장, 아래를 내려다보니 엄지실장이 굴러다닌다.

"데프프. 이건 오마에의 공물 데즈우?"

눈이 나쁜 성체실장은 엄지실장 인형을 인형이라 생각 못 하고,
자실장이 이성을 잃고 여동생 엄지실장을 던진 것으로 착각하여 인형을 입으로 가져가서 힘차게 턱을 닫았다.

까득

성체실장의 앞니가 플라스틱제 인형에 커다란 이빨 자국을 냈지만 그뿐이었다.
깨물면 쉽게 끊어져야 할 엄지실장이 끊어지지 않고, 기세가 지나친 턱 힘이 잇몸에 무리한 부담을 준 결과, 앞니가 전부 연달아 빠졌다.

" *@#!? ・・・・・!!  $&%?! "

앞니에 닿아있던 신경 몇 개가 뜯긴 충격으로 성체실장은 경직되어 있다가 잠시 후 인형과 함께 앞니와 피를 퉷 뱉어내고는 몸부림치며 괴로워했다.

"데갸아아아!! 아픈 데즈우!!! 닝겐, 닝겐! 빨리 의사한테 데려가는 데즈우우우우!!"

너무나 아픈 나머지 버려진 것도 잊고 입에서 주인에 대한 명령이 튀어나온다.

자실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테에에에에엥!!"

달리면 팬티 속의 압박된 똥이 틈새로 흘러나와 기분 나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잡아먹히면 모든 것이 끝.
다행히 골판지 문은 성체실장이 열어주었다.
'그 녀석'은 수건에 밀어 넣은 구더기쨩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니 도망쳐서 흥분이 가라앉을 즈음에 이곳으로 돌아오면 구더기쨩과 단둘이 계속 함께 지낼 수 있다.

똥의 궤적을 뚝뚝 남기면서 자실장은 성체실장의 코끝을 스치며 밖으로 도망쳐나왔다.

성체실장은 몸부림치면서 엄지실장 인형을 잡고 매섭게 노려본다. 성체실장의 얼굴에 충격이 밀려온다.

"이건 꽝 인형 데즈우우!!"

수풀 속으로 달아나는 자실장의 모습을 시야에 포착한 성체실장은 피범벅이 된 잇몸으로 흐늘흐늘 이를 갈며,

"데규우우! 저 똥애새끼!! 바, 바보 취급하다니 기필코 죽이는 데즈우우!!"하고 내뱉고는 자실장을 뒤쫓아 수풀 속을 헤치며 들어갔다.


                   △


석양을 받아 수풀 속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며 달아나는 자실장을 성체실장이 뒤쫓는다.
자실장이 관목 사이를 빠져나가 몸을 웅크려 가지 밑을 빠져나가는 데 반해,
성체실장은 관목에 진로를 방해받거나 양산이 가지에 걸리거나 해서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다리는 느리지만 몸이 작은 만큼 우거진 수풀 속에서는 자실장이 유리하다.
하지만 자실장도 혼란에 빠져 쓸데없이 달리는 바람에 성체실장에게 몇 번이나 붙잡힐 뻔한다.
성체실장의 머리 위치에서는 관목의 잎들에 가려져 자실장을 알아보기 어려움에도, 날카로운 울음 소리를 내며 달리는 통에 위치를 알려주며 달아나고 있는 꼴이다.

자실장도 성체실장도 이미 옷은 찢어질 대로 찢어진 상태, 조금이라도 영리한 실장석이었다면 절대로 안 했을 자해 행위에 성체실장은 눈에 핏발을 세웠다.
자실장에게 바보 취급받았다고 생각한 성체실장은 자실장을 용서할 수 없었다.
주인에게 버린다고 선고받고 까마득히 먼 이 공원에 내버려지고 나서 일주일, 수중에 남은 것은 실장복과 양산뿐.
선수필승으로 들실장을 뎦쳐서 잡아먹어 온 삶에 대한 집착, 항상 이겨나온 실력과 자신감을,
요깃거리밖에 안 되는 자실장에게 업신여겨진 기분이 들어서 용서할 수 없었다.

달리면서 오른손을 앞으로 내민다.

"오마에 따위한테 비웃음당하고 가만 있을 와타시가 아닌 데즈!"

자실장의 머리털에 닿았지만 관목 옆으로 슥 빠져나가서 놓치고 말았다.
실장복 옷자락이 가지에 걸려서 다시 툭 찢어진다.

"와타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데즈우!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데즈우!!"

양산을 휘두르려 했지만 가지에 걸려서 비틀거린다.

"도망치지 마는 데스 먹이! 오마에 따위는 먹어주는 데즈! 와타시를 비웃은 오마에는 와타시의 먹이가 되는 데즈우!!"

관목 사이를 누비고 다니던 자실장의 앞이 갑자기 트였다. 내리막이다! 그렇게 생각한 자실장은 주저 없이 관목 너머로 뛰어들었다.
오전에 '그 녀석'에게서 달아났을 때도 내리막길을 굴러서 '그 녀석'을 따돌렸다.
이번에도 달아나 주겠어!

앞을 달리던 자실장이 우거진 잎에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자실장을 쫓아 관목으로 뛰어들고, 그리고 빠져나온 성체실장은 붕 뜨는 부유감을 느꼈다.
발 디딜 곳이... 없다.
관목의 너머, 내리막길이 아닌 높이 2미터 정도의 낭떠러지로 뛰쳐나온 성체실장은 질주 자세 그대로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한다.
눈앞에 노을로 물든 공원의 경치가 펼쳐지고, 낭떠러지의 바닥이 점점 육박한다.
머릿속은 새하얗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눈앞의 경치를 받아들이고 있다.
붉게 물든 바닥은 바닥이라기에는 몹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바닥이라고 생각한 곳이 공원 연못의 수면인 것을 깨달은 것은 성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착수하기 직전이었다.



                   △


성체실장은 몸부림치고 있었다.

녹조가 번식한 연못은 성체실장이 일어서면 얼굴이 나올 깊이였음에도 불구, 바닥에 진흙이 쌓여있었기에 다리로 차도 질척질척 미끄러져서,
연못에 빠진 실장석에게 바닥이 없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항상 반쯤 열려있는 입과 코로 사정없이 물이 들어온다.
먼저 떨어진 자실장은 익사하기 전에 착수의 충격으로 죽어버렸는지 팔다리가 떨어지고 수면에 핏자국을 퍼뜨리며 엎어진 채로 둥둥 떠있더니,
이윽고 머리부터 먼저 빨려 들어가듯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괴롭다. 물속에서 팔다리를 버둥거려서 머리만은 어떻게든 수면으로 내밀어 보려 하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코로 물을 빨아들여버린다. 비강과 기도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물 너머로 일그러져 보이는 천상의 경치는 뭉게구름이 떠있는 노을 진 하늘.
연못 건너편 물가에 있는 것 같은 두세 마리의 실장석으로 보이는 그림자가 시야 끝에 들어온다.

저 녀석들은 웃고 있을까.
분하다. 들실장들 따위에게 비웃음 받을 삶이 아니었을 텐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질 터였는데.

고급 실장석으로서 브리더에게 혹독하게 훈육받은 자실장 시절.
애완동물 샵에 납품된 동료들 중에서는 가장 빨리 팔렸다는 자부심.

길러질 초기에는 브리더에게서 배운 대로 주인에게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주인을 기쁘게 할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주인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충실한 실장석'이 아닌 '애완동물인 고급 실장석이 기뻐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는 날까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을 때의 기쁨.
누가 가장 먼저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행운의 황금 엄지실장 인형에 당첨될지를 겨루어, 새끼들과 함께 달콤한 주스를 몇 병이나 비웠던 나날.
그 시절은 즐거웠다.
와타시의 행복이야말로 주인의 행복. 닝겐이 행복해지려면 우선 와타시를 행복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지는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이상해졌다.


새끼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항상 무슨 일에 조바심을 내고 영문 모를 일에 격앙하고 대성통곡.
턱이 지친다면서 고급 실장푸드를 걷어차고 주스만 마신다.
열심히 훈육하려고 애썼지만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조바심이 노이로제로 변하여 울증과 조증을 몇 번이나 되풀이한 끝에 사건은 일어났다.
마시던 주스를 두고 방을 나온 사이, 아이들이 페트병을 넘어뜨려 바닥에 엎지른 주스를 엎드려서 핥고 있어서 잔소리를 했더니,
아이들이 "시끄러운 테치! 부족한 테치. 더 가져오는 테치!"라고 대꾸를 했다.
머리에 피가 솟았고, 그 다음부터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정신이 들고 보니 "다시 하는 데스. 다시 하는 데스."하고 중얼거리며 맞아서 으스러진 새끼들의 살을 정신없이 입으로 나르고 있었다.
어느새 들어온 주인이 바로 뒤에 서 있는 것도 모르고.

왜 그런 하찮은 일에 화를 내고 말았을까.

왜 그런 짓을 하고 말았을까.
그 아이들을 정말로 사랑했는데.

어떻게든 살아가려 했다.
살아나가서 네 마리 새끼의 환생을 낳아 이번에는 함께 행복해질 생각이었다.
다시 낳아주는 것이 그 새끼들에 대한 최대한의 사죄라고 믿었다.

꼬륵

입에서 토해낸 숨 대신에 다시 물이 들어온다.
휘두르던 팔이 몹시나 무겁다.
이제는 경치도 보이지 않고, 수면의 잔물결을 통과한 저녁 하늘의 붉은 띠만 눈에 들어온다.

"...주, 인, 님...."

폐속의 마지막 공기와 함께 오랫동안 입에 담지 않았던 단어를 토해내고는 성체실장은 연못 바닥에 퇴적된 진흙 속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



"구더기쨩, 구더기쨩! 일어나는 테치!"

차녀가 구더기실장을 흔든다.

"레ㅡ...."

구더기실장은 조금 전부터 차녀의 품속에서 숨소리에도, 신음소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느다란 소리를 내고 있다.


밥을 모으고 돌아왔더니 골판지 문이 열려있었다.
골판지 하우스 자체도 조금 패여있었고, 실장석의 이빨이 섞인 핏덩이도 있었다.
친실장은 다른 곳의 실장석이 식량을 훔치러 온 건가, 구더기실장은 잡아먹혔나 싶어서 주위를 경계했지만 수건의 산에 오른 차녀가,

"구더기쨩의 냄새가 나는 테치!"하고 말을 꺼내기에 수건을 들췄더니 안에서 기절한 구더기실장이 굴러나왔다.
구더기실장이 먹히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은 식량을 목적으로 다른 실장석이 온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구더기실장에게 상황을 듣고 싶지만 아직 정신을 잃은 채로 차녀의 팔에 안겨있다.

"주는 데스."

친실장은 차녀에게서 구더기실장을 빼앗아서 꼬리를 잡고 거꾸로 매단 채 입 앞으로 가져갔다.

친실장이 하아아앗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심호흡하고서 후~하고 구더기실장에게 입김을 불어넣는다.
비릿한 입 냄새와 암모니아 냄새가 조금 섞인 미지근한 숨이 구더기실장을 덮친다.

"레뺘아아아아!!!"

거꾸로 매달린 구더기실장이 각성 효과를 가진 암모니아 세례를 받고서, 있으나 마나 한 양손 양발을 한껏 내뻗고 경련하며 눈을 떴다.

"테치ㅡ!"

"마마는 역시 대단한 테치!"

자실장들이 친실장에게 찬사를 퍼붓는 가운데, 차녀만이 구더기실장을 걱정하여 두 손을 머리 위로 뻗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구더기쨩?! 구더기쨔아아아앙!!"



                   △


"...데?..."

해가 저물고 이제 밤이 시작되는 어둑한 황혼 속에서, 친실장은 주저앉아 관자놀이에 손을 대고 침묵을 지킨다.
반쯤 예상은 했지만 구더기실장이 말하는 내용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구더기실장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놀고 있었더니 날개가 자라고, 오네쨩하고 같이 파직파직 빛나는 밥을 먹으러 마마에게 갔다.

상으로 무서운 얼굴을 한 신이 모두를 때리면서 노래를 불러줘서 공원 이곳저곳이 코 잤다....


친의 질문에 영합하여 대답하고 있기에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용이 다르다.
이래서는 이야기를 듣는 의미가 없다.
자실장들이 구더기실장의 이야기에 테치테치하고 헤살을 놓는 것을 곁눈으로 보며 한숨을 쉬는 친실장.
오늘은 큰 수확이 있어서 어두워지기 전에 분류해놓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하우스까지 왔건만, 구더기의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낭비를 했다.
곧이어 어둠이 짙어졌다.

"아무튼 다른 곳의 무서운 아줌마가 왔을지도 모르는 데스. 와타시는 오늘 밤 집 입구를 막고 잘 테니까 오마에들은 집 안에서 수건을 덮고 자는 데스.
알겠는 데스? 그럼 얼른 밥 먹는 데스."

"텟치이ㅡ!"

"텟츄~웅♪"

환성을 지르는 자실장들.

차녀는 "구더기쨩... 거짓말쟁이 아닌 레후."하며 훌쩍이는 구더기실장을 달래고 있다.


큰 수확이란 버려진 사육실장에게서 빼앗은 식량.

오후, 밥을 모으러 가려고 실장 친자가 쓰레기장에 이어서 골목길을 걷고 있을 때,
폐공장의 공터 옆 언덕길에 차가 멈춰 서더니 무거워 보이는 골판지를 양팔로 안은 남자가 나왔다.
상자에서 "데쟈ㅡ앗, 데쟈아아!!"하고 포효가 들리기에 내용물은 실장석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학대파 데스! 숨는 데슷!"

친실장과 자실장들은 전봇대 뒤에 숨어서 상황을 엿본다.

남자는 주위에 보는 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남자의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쇠파이프 울타리 앞으로 나아가서
비탈길의 3미터 아래에 있는 폐공장 안의 분지를 향해 하나, 둘, 셋 구령을 하며 기세를 붙여 골판지를 던졌다.
골판지는 모서리부터 쿵 하고 착지해서 그대로 완만한 비탈을 두세 번 굴러서 바위에 부딪쳐 멈췄다.
골판지 모서리가 부딪칠 때마다 "데걋!!"하고 비명이 나왔지만 바위에 부딪쳐 멈추고 나서는 찍소리도 나지 않는다.
남자는 두 손을 탁탁 털어 먼지를 내고는 후련한 표정으로 차로 돌아가 떠났다.

전봇대 뒤에서 자초지종을 보고 있던 실장석 친자가 우회해서 울타리 틈새를 통해 폐공장 부지 안으로 들어가 조심조심 골판지를 조사했다.
바위에 부딪친 상자 한쪽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져 있고 반짝거리는 실장복이 보였다.
놀랍게도 안에 있는 실장석은 아직 살아있었다. 하지만 신음하기만 할 뿐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뭔가 잘못이라도 저지르고 닝겐에게 버려진 사육실장이겠지만, 퍽 거칠게도 버리는구나 하고 친실장이 생각하고 있을 때,
자실장 하나가 테치ㅡ 테치ㅡ하고 친실장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골판지 안쪽을 가리킨다.
골판지 틈으로 캔디가 보인다. 그것도 봉지째로.
틈새로 손을 쑤셔 넣어 난폭하게 봉지를 꺼내자, 열려있던 봉지에서 캔디가 우수수 떨어졌다.
미친듯이 좋아하는 자실장들.
더 없는가 싶어서 친실장이 눈을 부라리자 실장푸드나 사육실장용 숄더백도 보인다.
이것들이 쿠션이 되어서 원사육실장이 즉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사육실장에게는 일용품에 불과하지만 들실장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준 선물.
굴러들어온 행운에 친실장은 골판지 위로 기어 올라가 뜀박질을 하며 골판지의 벌어진 틈을 넓힌다.
그러고 나서 방해되는 원사육실장을 끌어내고 골판지 안의 물건을 그러모았다.
신음밖에 할 수 없는 중태의 원사육실장은 땅바닥에 뒹구는 채로, 희희낙락하며 수집 작업에 힘쓰는 친실장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서둘러야 한다.
다른 들실장들 눈에 띄기 전에 가져갈 수 있는 것만 가져가고 이 자리를 뜨는 것이 좋다.
고급 실장 푸드, 리본, 컬러풀한 실장복, 장난감과 그림책, 식기 등등이 차례차례 골판지에서 나온다.
그나저나 많이도 쑤셔넣었다. 마치 원사육실장의 소지품을 전부 집어넣은 모양새다.

무아지경으로 캔디에 달라붙어있는 자실장들을 야단치고서 우선 먹을 것, 가벼운 장식품 순으로 들게 한다.
사실은 전부 가져가고 싶지만 자실장은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고 자신도 부피가 큰 것은 잘 들 수 없다.
장난감은 단념하고 옆에 내팽개쳤다.
그림책을 열자 둥근 기호가 많이 쓰여있다. 닝겐이 히라가나라고 부르는 기호.
원사육실장은 제법 학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들에게는 글자가 필요 없으니 그림책도 필요없다.
애완동물 가게의 가격표가 붙은 신상 팬티. 이것은 귀중품, 받아두자.
새것인 커다란 수건도 가져가고 싶지만 골판지 하우스에는 너무 크다....

먹다 만 과자 봉지를 들게 된 차녀는 내던져진 장난감 중에 낯익은 형상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구더기실장에게 선물로 가져간 적도 있는 엄지실장 인형, 그런데 눈앞에 있는 것은 온몸이 금 삐까한 엄지실장 인형.
저것을 가지고 돌아가면 구더기실장이 기뻐할까.
친실장은 수확물을 편의점 봉투에 집어넣기에 여념이 없고, 자매들은 "체력을 붙이는 테치! 짐은 줄이는 테칫!"하고 말하고는 받은 음식을 제멋대로 먹기 시작한다.
차녀는 몰래 장난감에 다가가서 황금 엄지실장 인형을 주워 과자 봉지 속에 밀어 넣었다.

"데~...."

식량은 전부 가져갈 생각이었지만 곤란한 물건이 나왔다. 미개봉한 페트병 음료가 여러 개.
그러고 보니 그 닝겐은 골판지를 무거운 듯이 들고 있었다.
화려한 라벨이 붙은 이 음료는, 쓰레기장에서 병 바닥에 남아있던 물방울을 핥은 일이 있기에 달콤한 음료라는 것은 알고 있어서
꼭 가져가고 싶었지만 몇 개나 가져가기에는 너무 무겁다.
여기서 마시고 가버릴까 생각한 그때, 밥을 모으고 돌아가는 들실장들이 건너편 길에서 느긋하게 걸어오는 모습이 친실장의 눈에 들어왔다.
지금 눈에 띄어 집단으로 몰려오면 전부 빼앗겨 버린다.
방금 얻은 숄더백에 페트병을 세워서 쑤셔넣으니 뚜껑이 닫히지는 않지만 네 개가 들어갔다.
아깝지만 나머지는 버리고 가자.

장난감과 중태의 실장석을 흘끔 본다. 저녁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오마에들, 철수하는 데스!"

"테칫?!"

"테에에에엥, 마마, 가다리는 테치이!"


새끼들에게 명령한 것은 좋지만 친실장은 분지에서 나오는 데 애를 먹었다.

무겁다.

빵빵하게 부푼 편의점 봉지를 멘 것도 모자라 무거운 숄더백을 끌고 있다.
짐을 든 자실장들이 친 옆을 스쳐 지나간다.
바닥의 요철 때문에 숄더백이 몇 번 튀어 오르는 바람에 페트병 하나가 빠져나와 분지 바닥에 굴러다녔지만 친실장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히려 갑자기 걷기 편해진 것에 기뻐하며 떠나버렸다.

페트병은 중태의 원사육실장 근처까지 굴러가서 멈췄다.
원사육실장은 흙먼지로 범벅이 된 페트병을 보고 "데에에."하고 슬프게 운다.
미칠 것 같이 마시고 싶은데 온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매일 몇 개나 들이붓듯이 마시던 음료수가 있는데도 손이 닿지 않는 답답함.
병목에는 안이 보이지 않는 작은 은색 비닐 봉투가 걸려있고, 안에는 엄지실장 인형이 들어있다.
금삐까 인형은 이미 가지고 있다. 어떤 소원이든 이루어진다면 지금 눈앞에 굴러다니는 청량음료를 마시고 싶다.

"데에에 데에에."

이윽고 녹색 옷의 집단이 분지를 에워쌀 때까지, 원사육실장은 슬프게 울어댔다.


                   △


보존 가능한 식량을 골판지 하우스 아래의 구멍에 숨긴 다음, 즐거운 식사가 시작되었을 무렵에는 완전히 밤이 되어있었다.
사육실장의 음식은 역시 다르다. 일단 신 냄새가 나지 않고 미끈거리지도 않는다.
개봉된 식량이나 과자 봉지가 꽤 많았지만 여는 수고가 줄어서 고마울 정도다.
먹다 만 오래가지 않는 식량과 함께 상자에 담겨있던 것으로 보아 그 사육실장은 아마도 음식물 쓰레기마냥 버려진 것이리라.

"디저트♪ 디저트 뎃스웅♪"

자실장들보다 한발 먼저 식사를 끝낸 친실장은 페트병을 손에 든다.
어둠에서도 눈이 적응하면 사물의 형태 정도는 파악된다.
색깔을 즐길 수 없는 것은 유감이지만 내일 아침까지 참을 생각은 없다.
친실장은 페트병을 두 다리에 끼우고 뚜껑 부분을 확인한다.
손으로 뚜껑을 돌리려 했지만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는 개봉된 병과 달리 미개봉 페트병 뚜껑은 역시 단단하다.
손끝으로 미세한 물건을 잡는 작업이 어려운 실장석도 병을 열기 쉽도록 뚜껑 끄트머리가 판 모양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그곳을 적당한 도구로 쥐고 뚜껑을 돌리면 열리게 되어 있기에 친실장은 이빨로 뚜껑을 물고 시도해봤다.

"뎃! 데에에에에!"

힘주다가 이빨이 잘못될 것 같았기에 친실장은 골판지 하우스를 나와 뭔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본다.
양손에 바나나 쪼가리나 작은 빵 조각을 들고 우물우물 먹고 있던 자실장들도 나와서 마른 침을 삼키며 어미의 행동을 지켜본다.
저것이 좋겠다 싶어서 관목 가지에 뚜껑을 끼우고 시험해본다.

"뎃승!"

병을 두 손으로 들고서 기합을 한 번 넣고 힘주어 돌리자 푸슉하고 가벼운 소리를 내며 뚜껑이 열렸다.
환성을 지르는 자실장들 앞에 거친 콧김을 뿜으며 한 손으로 병을 쥐고 밤하늘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는 친실장.
그대로 다른 한쪽 손을 허리에 대고 꿀꺽꿀꺽 마신다.
조금 전 먹은 실장 초콜릿이나 찐빵과는 또 다른 달콤함이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튄다.
고생해서 가져온 보람이 있었다. 네 개 가져왔지만 한 개는 어딘가에 떨어뜨렸고, 짐이 너무 무거워서 다른 하나도 도중에 버리고 왔다.
무리해서라도 가져올 것을 그랬다.

푸하~! 하고 한숨을 돌리니 새끼들이 다리 밑에서 "테치~잉, 테츄ㅡ웅♪"하고 조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 새끼들에게도 나눠주기로 한 것을 떠올린 친실장은,
어둠 속에서 발끝의 감각으로 땅바닥의 움푹 들어간 곳을 찾아서 편의점 봉투를 깔고 절반 정도를 벌컥벌컥 들이붓고는,
"오마에들도 먹는 데스."하며 다시 병에 입을 대었다.

"테치~!"

"테츄테츄♪"

자실장들이 편의점 봉투 위에 엎드려서 정신없이 들이킨다.
어둠 속에서 느릿느릿 퍼지는 수면에 밤하늘이 비치고, 자실장이 목을 움직일 때마다 별이 반짝반짝 빛난다.
이렇게 맛있는 것이었다면 마마가 쓰레기장에서 빈 페트병을 빨고 있었던 것도 이해할 것 같다.

"레후~웅! 레후? 레뺘! 레뺘뺫 뺘!!"

함께 마시던 구더기실장이 몸을 너무 내밀어서 음료수 안에 빠진다.
구더기실장을 끌어올린 차녀가, 코로 음료수가 들어가서 눈물을 찔끔이며 재채기하는 구더기실장을 할짝 핥자 구더기실장이 반쯤 울며 웃는다.

"구더기쨩 달콤한 테치!"

"레~."


한 병 반은 친실장이 마시고, 반병은 자실장들이 마셔서 페트병 두 개는 순식간에 비었다.
식사가 끝난 다음은 잠만 자면 되지만 오늘은 왠지 마음이 붕 떠서 잘 기분이 나지 않는다.

"마마~ 파직파직 보고 싶은 테치!"

자실장들이 떠들기 시작한다.
여느 때 같으면 귀찮아서 마지못해 했겠지만 오늘 밤은 기분이 동한 친실장.
콧노래를 부르며 골판지 하우스로 기어들어가 더듬거리며 양철 장난감을 꺼냈다.

끼리리리링 낮은 소리를 내며 양철 장난감의 원반부가 회전하여 파직파직 불꽃이 튄다. 불꽃의 빛에 비친 주위의 관목 녹음이 흥을 돋운다.
환성을 지르며 불꽃 아래를 휘젓는 자실장. 멍하니 입을 벌리고 빛에 시선을 빼앗긴 자실장.

"레후~! 레후ㅡ웅♪"

구더기실장도 차녀에게 안겨서 불꽃을 즐기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레후~! 레후? 레ㅡ...오네쨩... 오네쨩이 없는 레후우."

품속에서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한 구더기실장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구더기쨩? 왜 그러는 테치? 모두 여기 있는 테치."하고 말을 건네지만 구더기실장은 싫어싫어하며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끼리리리링 끼리리리링 커다란 소리를 두 번 내며 양철 장난감이 불꽃을 토했다.
차녀와 구더기실장은 놀라서 얼굴을 들고 유난히 화려한 불꽃을 바라본다.

"데에ㅡ. 피곤한 데스우. 자, 오늘은 이제 끝인 데스우우."

친실장의 폐막 선언을 들었을 즈음, 차녀와 구더기실장은 조금 전 칭얼거리던 것도 잊어버렸다.


                   △


골판지 하우스 안에서 수건을 덮고 자는 자실장들.
입구를 막고 가로누운 친실장은 벌써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

차녀는 구더기실장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속삭이며 말해준다.

"구더기쨩도 밖에 나가고 싶은 레후우."

"커지면 같이 외출하는 테치."

"빨리 커지고 싶은 레후우."

평소와 같은 대화의 반복.

옆에서 자는 장녀가 눈을 감은 채로 "시끄러운 테치."하고 두 마리에게 짧게 불평한다. 이것도 매일 밤 같은 반복.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전에 정신이 번쩍 든 차녀는 수건에서 빠져나와 물그릇 뒤에 숨겨놓았던 황금 엄지실장 인형을 꺼냈다.
저번에 가져온 보통 색깔의 엄지실장 인형은 오늘 돌아와보니 다른 실장석의 이빨 자국과 피가 묻어있어서 "기분 나쁜 데스."하며 마마가 밖에 내버렸다.
마침 대신할 것을 얻어서 다행이다.

"구더기쨩. 오늘 선물 테치."

차녀는 수건에 기어들며 구더기실장에게 인형을 건넨다. 어둠 속의 희미한 불빛으로도 인형의 금도금이 독특한 질감을 자아낸다.

"오네챠, 고마운 레후우."

졸음을 견딜 수 없었던 구더기실장은 인형을 껴안고 혀 꼬인 말투로 차녀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잠들어 버렸다.
차녀도 눈을 감는다.
어두워서 인형의 온몸이 금 삐까라는 것을 구더기실장이 모르지 않았을까.
내일 아침 구더기실장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는 동안 차녀도 잠에 곯아떨어졌다.



                       ▼



황금 엄지실장 인형은 가짜.
문지르면 벗겨지는 금도금.
'행운을 부르는 럭키 아이템'은 이름뿐.
이름과 달리 관련된 자들 대부분을 불행하게 했다.

 

                       ▼


"데ㅡ...."

"테치ㅡ...."

아침 햇살을 받은 골판지 하우스 안에서 친실장과 자실장들이 입을 떡 벌리고 있다.

어젯밤 구더기실장이 수건 위에서 고치를 만들었다.
구더기실장이 고치를 만든다는 것은 소문으로 들은 적 있지만 자신의 집의 구더기실장도 고치를 만들 수 있었을 줄은 몰랐다.

광택 있는 녹색의 고치는 조금 무겁고 부피가 있어서 친실장이 찌르면 천천히 흔들거린다.
며칠 지나면 여기에서 팔다리가 난 구더기실장이 엄지실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나올 것이다.
고치를 만들 징조가 전혀 없었기에 무엇이 계기가 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가족은 구더기실장의 고치란 이런 것인가 하고 고치를 장난감처럼 찌르고 있지만, 차녀만이 고치가 무겁고 부피가 있는 이유를 알고 있다.
구더기실장은 금 삐까 인형을 안은 채로 고치를 만들었음이 틀림없다.
마마에게 알려줄까 했지만 금 삐까 인형을 보고 싶다고 고치를 부술지도 모르기에 생각을 고쳐먹고 가만히 있었다.


"뎃?"

정신을 차린 친실장이 얼빠진 소리를 낸다.
평소 같았으면 이미 벌써 식량을 모으러 나갔을 시간이다. 어제 가져온 식량은 보존식으로 숨겨둔 몫 말고는 이때다 싶어서 다 먹어버렸다.

어제 마신 페트병이 자꾸 신경 쓰인다. 어쩌면 돌아오는 길에 도랑에 버렸던 한 병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맛있었다. 맛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실장 시절 마마와 여동생들과 함께 놀 때 느꼈던 행복을 떠오르게 했다.
다시 한번 마시고 싶다. 다른 들실장에게 빼앗길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없으면....
공원에 산책하러 오는 사육실장이라면 그 음료수를 갖고 있을까.
주인에게서 벗어나 혼자 어슬렁거리는 멍청한 사육실장이 어디 없을까.

아니다, 사육실장이 있는 집에 잠입하면 그 음료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파직파직 빛나는 장난감을 훔치러 들어갔던 집은 보안이 느슨해 보였다.
어쨌든 다른 들실장들이 그 맛을 알기 전에 가능한 한 독점하고 싶다!

친실장은 어제 폐공장에서 페트병을 여러 개를 포기한 일을 잊어버려서 그 음료에 맛들인 들실장이 인근에서 급증한 것,
똑같은 생각을 하는 들실장이 몇 마리나 있는 것을 아직 모른다.

어제 빼앗은 숄더백을 맨다. 이것이면 오케이. 그 음료수를 가지러 갈 준비가 되었다.


친실장이 다그치는 와중, 밥 모으는 봉지를 들고서 차녀는 "금삐까 인형을 보고 구더기쨩이 놀라는 건 며칠 더 늘어난 테치."하고 생각한다.

평소의 버릇대로 골판지 문이 탁 닫혔다.
오늘은 햇볕이 강하다. 돌아보니 나무 사이로 비친 햇살로 골판지 하우스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골판지 하우스를 향해 "구더기쨩, 집 보기 부탁하는 테치!"하고 외친 차녀는 밥을 모으러 가는 가족의 뒤를 뒤쳐지지 않기 위해 달리면서,

"테~... 이제 구더기쨩이 아닌 테치. 다음에 만날 때는 엄지쨩 테치!"하고 중얼거린다.

자실장은 고치에서 나올 엄지실장을 만날 날이 반드시 올 것임을 의심치 않으며 그날 집을 나섰다.
달리는 자실장의 등 뒤로 새파란 남쪽 하늘에 적란운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초여름을 알리는 눈부시게 빛나는 구름, 이 하늘 아래 힘차게 살아가려는 모든 것에 축복을 내리는 듯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던 이 친자의 운명 따윈 조금도 예감할 수 없는 그런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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