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리의 불운

 

어느 평범한 실장숍 안, 오늘도 활기찬 ―필사적인― 자실장들의 자기어필이 재잘재잘 울려퍼지는 한구석에 큼지막한 중실장 하나가 오도카니 앉아 있다. 이녀석을 편의상 미도리로 부르도록 하자.

누가봐도 판매시기를 아득히 놓친 미도리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겉보기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육실장 후보다. 딱히 못생긴 것도, 행동거지가 멍청하거나 버릇없는 것도 아니다. 활발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것은 커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 되려 자실장 시절에는 초특급 가격표가 붙어 있었던 녀석이었다. 조금은 의외의 이유로 미도리는 불운하게 곧 성체가 되는 이 시기까지 팔리지 못했다.

초기 사육실장 붐을 지나오고 대중의 실장석 이해도가 향상된 지금, 사육실장이 자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는 일반상식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 판매되는 자실장들은 분류가 끝나자마자 레이저로 총구를 지져 불임처리를 해놓는 게 일반적이다. 총구의 착상기능에 더해 쾌락기능도 함께 마비되므로 빵콘 억제 효과도 있어 훈육이 편해지는 이점이 있었다. 거기에 별도 판매되는 안구보호용 렌즈를 착용하면 실장석 스스로 임신하겠다는 발상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성장방지 성분을 함유한 푸드도 거의 필수품이 되었다.

미도리는 이 흐름에 역행하는,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는 훈육사에 의해 빚어진 최후의 걸작이었다. 일본에 찾아가 직접 명인에게 전수받았다는 훈육비법을 자랑스러워하는 훈육사는 새 방법을 받아들이길 거부했고, 인수한 숍의 불임처리 또한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이것이 불운하게 미도리의 가격표에 붙은 [불임시술 안됨] 태그의 원인이 되어 마지막 순간에 애호파의 손길을 뿌리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미도리가 아직 판매용 수조에 남아 있을 수 있던 이유는 역전의 훈육사가 감탄해 마지않을 정도인 타고난 낙천성과 부지런한 기억력 덕분이었다. 팔리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낙담하기 마련인 다른 보통 재고실장과는 다르게, 미도리는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끊임없이 기억을 일깨웠다.

존경하는 닌겐 훈육사가 가르쳐준 사육실장의 본분을. 그것은 가슴 속 소중한 돌이 말하는 본능과 정반대였다.

자를 가득 낳아 세상을 채우는 테스 - 하지만 사육실장은 허락 없이 절대 자를 가질 수 없는 테스.
동족은 믿을 수 없는 적인 테스 - 하지만 사육실장끼리는 모두 친구인 테스. 괴롭힘과 질투는 다메인 테스.
먹이는 냉큼 먹어치워야 하는 테스 - 하지만 사육실장은 어떤 상황에서든 주인의 명령을 기다려야 하는 테스.
배불러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먹어치우는 테스 - 하지만 사육실장은 주시는 만큼만 먹는 테스.
와타시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인 테스 - 하지만 주인님을 포함한 모든 닌겐상이 위에 있는 테스.
닌겐과 천한 동족들은 모두 노예인 테스 - 하지만 '노예'란 말을 하면 바로 사육실장은 끝인 테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력이 속절없이 이어지고 미도리는 성체가 되었다. 중실장 때까지는 실낱같이 남아있던 희망의 끈이 모조리 끊긴 것이다. 성체 사육실장은 아무도 사가지 않는다. 이런 개체는 출산 전용으로 자를 가지는 욕망만큼은 원없이 충족되다 죽든지, 아니면 그대로 '갈려' 동족의 먹이가 되든지의 운명을 따르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미도리에게도 그 시간이 찾아오는 듯 보였다.

미도리는 수조에서 꺼내져 숍 내부로 옮겨졌다. 오랜만에 보는 점장의 얼굴을 미도리는 올려다보았다. 이 순간이 앞으로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임을 미도리는 직감하였다. 우선 인사부터. 미도리는 기억한대로 공손하게 손을 모아 꾸벅 고개를 숙였다 들어 점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신 데스."
"그래. 여전히 예의바르구나."
"감사한 데스."
"바로 물어봐도 될 것 같구나. 이제 자를 가지고 싶지 않니?"

짧은 순간 미도리의 머릿속에 온갖 상념이 섞인다. 자를 가지는 것. 가슴 속 돌이 당장 그렇다 말하라고 외친다. 하지만 배운 내용대로라면 자를 가지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어쩌면 이것은 점장의 시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철썩같이 믿어온 것들에 대한 의문이 미도리의 안에서 싹트고 있었다. 이렇게 자신은 전부 기억하고 지키려고 하는데 어째서 팔리지 못하는가? 어째서 저 철딱서니없고 무식한 아이들은 제꺽제꺽 먼저 팔려나가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실생은 운이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본능을 따라보는 게 어떨까?

미도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제3의 대답을 선택하였다.

"점장상이 원하시는대로 하겠는 데스."

합격이었다.


미도리는 판매용 수조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부풀어오르는 배를 안고 아무도 없는 작은 방에 앉아 태교의 노래를 불렀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결과였다. 뱃속에서 움직이는 새끼들을 느끼면서 난생 처음 어미가 되는 행복감을 맛보았다. 지금껏 운없고 불확실하기만 했던 삶에 광명이 비추는 기분이었다. 부르는 노래에 힘이 들어갔다. 뱃속의 자들에게 아는 것을 모두 알려주면서도, 마마의 행복감을 고스란히 전해주려고 애썼다.

"귀여운 자들을 가지게 돼서 마마는 정말 운이 좋은 데스우~ 어서 얼굴을 보고 싶은 데스우~ 뎃데로게~"

미도리가 산기를 보이자 점원이 출산 준비를 시작했다. 출산용 풀에 들어간 미도리는 고통과 행복이 교차하는 오묘한 표정으로 힘을 주었다. 곧 건강한 자실장이 하나둘씩 얼굴을 내밀었다. 텟테레 하는 듣기좋은 탄성이 방안을 채운다. 곧 자들을 안게 될 생각에 땀에 흠뻑 젖은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나 미도리의 자들은 미도리의 품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점막이 채 떨어지지도 않은 자들을 한아름 안아들고 점원이 방밖으로 나간 것이다.

"뎃..? 점원상!! 점원상!!! 와타시의 자들을 돌려주는 데스우~!"

미도리의 외침은 대답없이 방안을 맴돌았다.


산후조리 명목으로 한동안 좋은 푸드가 제공되었다. 하지만 미도리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처음 배아파 낳은 소중한 자들을 안아보지도 못하고 빼앗겼다. 자신의 임신은 점장상의 '허락'이 아니었단 말인가? 자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대로 인간들에게 이용만 당하다 버려지는 삶이란 말인가? 미도리는 다시 자신이 불운하다 느끼기 시작했다. 얼마 후 다시 임신해도 처음만큼 기쁘지 않았다.

"처음이라 분충도 있고... 기본적으로 너무 밝은 애들이라 부적합하네. 다시 힘써봐."

점원의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뒤로 하고 미도리는 태교를 재개했다. 하지만 처음만큼 힘이 실리지 않았다.

"뎃데로게~ 부디 무사히 태어나는 데스우... 마마는 그것밖에 바라지 않는 데스우..."

두번째 출산은 한번 경험해봤기 때문인지 한결 수월했다. 자들의 수가 훨씬 적어진 탓도 있을 것이었다. 태어난 자들을 점검하는 점원의 안색을 살피며 미도리는 이번에도 자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우울해졌다. 그런데.

"고생했어. 이제 안아볼까?"
"뎃... 정말인 데스우?"
"마마 낳아줘서 고마운 테츄~"
"와타치도 안아주는 테츄!!"
"테츄.."

단 세마리의 자실장을 안아든 기쁨도 잠시, 미도리는 다시 자들을 빼앗겼다. 이번에는 '배우고' 온다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그 배움의 의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저 자들이 모두 무사히 배움을 마칠 수 있을까. 걱정과 안타까움이 홀로 된 미도리를 휘감았다.

"운이 없는 자들인 데스우... 와타시가 사육실장이었다면 전부 올바르게 키울 자신이 있었는 데스우..."


걱정과는 다르게 며칠 뒤 자실장들은 무사히 미도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해후의 기쁨을 나누는 미도리와 자들을 지켜보던 점원이  미도리에게 가만히 속삭였다. 지금까지 미도리가 들었던 명령 중 가장 가혹한 것이었다.

"자들 중 한 마리만 선택해라. 나머지 애들도 죽지는 않으니까 안심하고."
"데엣...."

점원상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하나같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들이지만, 여기서 골라야만 한다. 미도리는 처음으로 반항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장녀는 똑똑하다. 어디서든 잘 해나갈 수 있어보인다. 차녀는 다소 응석받이지만 가장 활기차고 귀엽다. 밖에서 보던 다른 사육실장들보다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해보인다. 삼녀는 처음에 말도 잘 못했다. 어딘지 자신감이 없고 처진 모습이 옛날의 미도리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미도리가 보듬어주지 않는다면 똑같은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삼녀로 하겠는데스."
"좋아. 최종 합격."

미도리와 삼녀는 다시 판매용 수조로 옮겨졌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삼녀는 미도리의 손이 많이 가는 자였다. 사소한 것에도 겁을 먹고 울어대 안고 어르다가 시간이 다 갔다. 가끔 이쪽을 보러 오는 손님들을 맞을 처지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이곳으로 온 까닭은 다시 팔리기 위함이라고 미도리는 이해했다. 하지만 미도리는 둘째치고 이런 삼녀를 귀여워할 닌겐상이 있을까? 차라리 장녀나 차녀를 선택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미도리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도 다시는 되돌릴 방법이 없음을 알았다. 삼녀를 선택한 직후 미도리는 석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 남은 자신의 자를 힘써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 마지막이 결국 처분장의 분쇄기라고 해도.

"마마는 운이 없는 데스우. 하지만 오마에가 있어 다행인 데스."
"테끅... 마마, 운이 뭐인 테츄?"
"와타시타치가 주인님을 만나면 알게 되는 데스."


그러던 어느날, 한 남자가 미도리의 수조를 들여다보았다.

"흠, 얘들을 추천하시는 이유가..?"
"처음 기르시는 분들도 쉽게 키우실 수 있는 상품입니다. 기본적으로 얌전하고 소심하죠. 친실장이 똑똑하니 따로 신경쓸 거리도 별로 없고, 불임처리가 됐으니 수가 늘어나지도 않을 겁니다. 자실장도 친실장이 보살펴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이건 좀..."

미도리는 이번에도 친자의 불운을 원망했다. 삼녀가 눈물자국을 두 볼에 남긴 채 방금 겨우 미도리의 품에서 잠들었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는 인사도 애교도 부릴 수 없다. 그저 자신들을 바라보는 남자를 향해 목례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뭐, 조용할 것도 같네요. 작은 녀석이 크면 어떡하죠?"
"그것도 성장억제 푸드를 사서 먹이시면 됩니다. 친실장이 죽을 때가 되면 그때 자라게 해서 새끼를 낳게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거죠."


미도리와 삼녀는 '사이좋은 친자 세트' 상품명을 달고 진열되었다.

자실장은 귀엽지만 신경쓸 데가 많고, 내버려두면 크고작은 사고의 위험이 크다. 두 마리 이상은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 사이가 나빠지기 쉽고 보기에도 좋지 않다. 사이좋은 자매는 비슷하게 똑똑하고 성격좋은 자실장을 선별하기 힘들어서 비싸다. 기껏 성체까지 키우면 집의 주인이 되려는 망상을 품거나 새끼를 낳고 싶다고 떼쓰는 분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초보자가 키우기에는 더더욱 까다로운 애완동물이다.

드물게 미도리같이 성격좋은 개체가 성체까지 팔리지 않을 때 자를 갖는 것을 허락하고 그중 가장 심약한 새끼와 묶어서 내놓는다. 친실장은 자의 양육에 온 신경을 쏟느라 허튼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자실장도 자실장대로 친실장에게 의존하게 돼 섯부른 말썽을 피우지 않는다. 주인과의 확실한 서열이 있기 때문에 친자가 한꺼번에 분충화할 위험도 적다.


남자는 미도리 친자를 사 자신의 집에 들였다. 미도리는 남자에게 정식으로 '미도리'란 이름을 받았다. 자신들이 팔린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친자를 선택해준 주인에게 더욱 감사하게 되었다. 삼녀도 주인의 집에 익숙해지자 우는 일이 줄었고 착한 아이가 되었다. 그래도 미도리에게는 마음속 한구석 불안이 있었다. 자신들이 더 힘껏 주인을 돕지 못한다는 점에 대한 죄송함이었다. 그러나 주인은 이렇게 말하며 웃을 뿐이었다.

"괜찮아. 너희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즐겁거든."

남자는 몇년간 허송세월하다 겨우 취직에 성공했다. 이미 또래보다 한참 뒤떨어진 인생계획을 서두르는 대신 이대로 독신으로 살기로 했다. 그래도 돌아보면 텅 빈 집이 적적해서 기르기 편한 애완동물을 알아보던 차에 미도리 친자가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미도리들의 먹을것을 챙겨주고 친자가 노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남자는 묘한 만족과 안도감을 느꼈다. 살아가기 위해 여러가지를 포기한 남자와 미도리는 종족은 다르지만 많은 것이 닮았다.

"마마, 운이라는 게 무엇인 테츄?"
"와타시가 오마에와 있는 것인 데스우. 와타시타치가 주인님을 만난 것인 데스우. 와타시타치는 운이 좋은 데스우."

"테에.. 잘 모르겠지만 기쁜 테츄~"

운과는 거리가 먼 생을 살아온 이들의 운은 마지막 기회에 찾아왔다.












운치굴 독라 엄지 (persecution)



최근 실장석 학대파 커뮤니티 '데스넷'에서 '운치굴 엄지 구하기' 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이것은 즉, 운치굴에서 비상식 구더기들을 프니프니하며 마마에게 먹히는 날까지 평생을 봉사하는 엄지실장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들실장 세계에서 엄지실장은 태어남과 동시에 실장 카스트 최하층으로 밀려나, 죽기 직전까지 빠져나올 수 없는 축축힌 흙구덩이 속에서 자매들과 친의 실장분을 받아먹으며 살아간다. 빛 한줄기 귀한 운치굴 속에서 일가의 운치로 얼룩진 팔다리에 검회색 곰팡이가 피어나는 와중에도 엄지들에게는 비상식 구더기의 똥빼기 임무가 주어져 있다. 밤낮으로 프니프니를 요구하며 레후- 하고 꿈틀대는 구더기들의 보챔과 운치굴 밖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들려오는 일가의 행복한 일상에 의한 극심한 스트레스,또 습관적 식분에 의한 심각한 영양결핍 때문에 운치굴 엄지들은 대부분 앙상하게 마른 몸통과 문드러진 팔다리, 텅 빈 머리숱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일가의 식량창고 속에서 평생을 노동하며 가끔씩 가족들의 식탁으로 올라가는 통통한 구더기들을 몇 마리 배웅하고, 더 이상 프니프니도 할 수 없을만큼 팔이 문드러지고 실장복과 머리칼도 남지 않게 되어 완전한 독라가 될 때 쯤이면 마침내 자매들의 양분이 됨으로써 비참한 실생을 마칠 수 있다.

본래 참피는 위석 깊숙한 곳으로부터 언제나 세레브하고 행복한 생활을 바라는 생물이다. 운치굴 엄지가 똥독이 올라 다 헤져 못쓰게된 실장복을 걸치고, 썩어 짓물린 상태로 구더기 똥빼기를 하다가 제멋대로 비틀린 팔로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진흙섞인 운치를 퍼먹으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희망 때문이다.

대개 미숙아 엄지를 출산하는 친실장들은 운치굴 안으로 엄지를 밀어넣으면서 실생 최대로 소중하고 소중한 약속을 한다.


"5녀는 다른 자들보다 작아서 아직 같이 살 수 없는데스"

"5녀는 세레브한 자실장이 될 때까지 구덩이에서 우지짱들을 돌보는 데스."

"그렇지 않은 데스. 구더기를 돌보는 일은 5녀의 특별한 사명인 데스. 마마는 5녀를 믿는 데스."

"5녀가 우지짱들을 잘 돌보고 어엿한 자실장이 되면 반드시 다른 자들과 함께 길러주는 데스. 약속하는 데스우."


위석 깊이 새겨진 본능이 운치굴만은 안된다며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실장 지옥이라며 엄지실장을 보채지만, 마마의 약속과 오네챠들의 진심어린 배웅을 받으며 엄지들은 불안한 예감을 뒤로하고 굳은 결의를 품은 채 어두운 운치굴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을 붙잡고 매일 운치굴 입구가 밝아질 때마다 마마를 올려다보며 언젠가 다시 거두어질 그 날을 기다린다.

캄캄한 운치굴 속에서, 언젠가 운치굴 안을 내다보며 자신을 응원하던 마마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해질 쯤이면 이제는 이따금씩 빛이 쏟아지는 운치굴 입구를 올려다보아도 저것이 마마인지 아니면 매일같이 자신을 비웃는 오네챠들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위석 한 켠에 완전히 꺼져 가는 희망과 함께 어느새 레후- 하고 제법 살이 오른 구더기 소리에만 반응하여 기계적으로 프니프니를 반복하는 엄지 노예가 된다.

어느날 친실장이 보기에 엄지노예의 눈깔이 한층 탁해진 것이 이젠 프니프니 노예로도 못 써먹겠다 싶어 운치굴 안으로 뭉툭한 팔을 집어넣는다. 컴컴한 구덩이 안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친의 손을 마주한 엄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신선한 구경거리에 신이 난 구더기 몇 마리가 굼실굼실 친의 팔을 쫓아 기어다닌다. 이전까지 몇 번이나 친의 손이 운치굴 안으로 들어왔지만 선택되는 것은 항상 구더기들이었다는 것을 엄지실장은 알고 있다. 친의 두껍고 따뜻한 손이 운치굴 이곳저곳을 더듬다가 우연히 구더기 한 마리의 등에 맞닿는다. 언제나 춥고 습한 지하에서 살아가던 구더기는 지상의 온기에 깜짝 놀라 배를 까뒤집으며 격하게 탈분한다. 엄지는 전에도 여러번 본 장면이다. 하지만 구더기를 몇번 더듬던 친의 손은 구더기를 지나 다른 곳으로 향한다. 엄지는 왠지 구더기를 지나쳐 점점 자신에게로 팔이 다가오자 그제서야 비로소 오랫동안 품고 있던 희망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그때 운치굴 바깥에서 엄지를 찾는 따뜻한 친의 목소리가 들린다. 웅크려 앉아있던 엄지의 축 쳐진 귀가 실생 처음으로 쫑긋이 선다. 언제부턴가 감각이 무뎌지고 점점 맛을 느낄 수 없게 된 암녹색 입과 혀에 힘이 들어간다. 운치와 진흙이 섞인 늪같은 바닥을 문드러진 다리로 비틀비틀 내달려 엄지실장이 친의 팔에 안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따뜻함이 독라가 된 엄지의 차가운 전신을 감싼다. 엄지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탈분하며 목청껏 마마를 부른다. 엄지가 놓칠새라 힘껏 껴안은 친실장의 팔이 찬찬히 똥구덩이 위로 빠져나간다.

이미 썩을 대로 썩어버린 몸뚱이라고 해도 엄지실장은 보존식으로써 영양이 풍부하다. 친실장은 분변냄새가 진동하는 엄지를 끌어내 일단 마른 나뭇잎과 종이 등으로 운치를 닦아낸다. 평생 운치만 먹고 운치밭에서 살아서 그런지 닦아내고 닦아내도 운치가 나온다. 엄지는 자신의 상황을 잘 모르는 듯 볼에 붉게 홍조를 띄우고 츄우웅 츄우웅 행복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언제부턴가 운치를 던지고 비웃어도 반응하지 않게 되어 관심 밖이었던 엄지노예가 흉측한 몰골로 돌아오자, 자매들의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얼굴을 구기고 신경질적으로 엄지를 닦아내는 친실장과 그런 엄지를 비웃는 자들의 표정 한 구석에는 모두 '기대감'이 있었다.

엄지는 운치를 비직비직 쏟으며 자신이 똥구덩이에서 얼마나 모진 고초를 겪으며 통통한 구더기를 길러냈는지 성토한다. 엄지의 손질이 대충 끝난 친실장은 서둘러 만찬 준비를 한다. 엄지는 자신이 운치굴로 들어갔을 때보다 훨씬 커진 자매들을 보고 조금 겁먹은 듯 하지만 이제는 자신도 일가의 어엿한 구성원이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이전에 자매들에게 받았던 심한 괴롭힘도 잊고 자실장들을 쫓아 하우스 이곳저곳에 발자국을 찍으며 사랑과 온기를 요구한다.

엄지가 자신이 길러낸 구더기들과 만나고 싶다며 레치치 떠들어 대기 시작할 때 쯤 친실장이 양 손으로 독라 엄지를 들어올린다. 자실장들은 이미 골판지 바닥에 둘러 앉아 얌전히 식사를 기다리며 눈을 빛내고 있다. 옆구리와 겨드랑이 가득 전해져 오는 친의 온기를 느끼며 엄지가 길게 목을 뻗어 친실장의 팔을 핥짝여 깊은 애정을 표현한다. 왜인지 모두가 조용해진 골판지 하우스 안애서 자신을 기대감에 넘치는 표정으로 이곳저곳 살펴보는 친을 향해 엄지는 본능적으로 손을 입 주변에 가져다 대고 목을 살짝 기울여 귀여운 포즈를 취한다. 레츄웅 하는 엄지의 아첨소리가 하우스를 채운다.

자신의 양 팔에 매달려 비굴한 표정으로 아첨을 하는 엄지에게 친실장은 드디어 '선고'를 내린다.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되는 데스? 오마에는 지금부터 우마우마가 되는 데스우♪"
"오마에 덕분에 비상식들이 죽지 않고 잔뜩 모였던 데스"
"역시 먹지 않고 노예로 쓰기 잘한 데스~"
"마마가 손발을 잘라줄 테니 자들은 기다리는 데스~"

친실장의 무자비한 선고가 엄지에게 쉴새없이 몰아친다. 현실을 받아들일 시간은 엄지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어느새 아첨하던 것도 잊고 레- 하는 얼빠진 소리만 내며 친실장이 뱉은 말들을 조합하던 엄지는 위석 깊은 곳으로부터 강하게 본능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위석은 빨리 이곳에서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다. 도망치지 않으면 동족들에게 잡아먹힌다. 하지만 엄지는 도망치지 못한다. 레? 하고 엄지가 고개를 갸웃인다. 엄지의 정신력은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실생 평생동안 붙잡으며 버텨온 희망을 버린다면 자신은 또 운치굴애서 살아야 한다.

조용하던 하우스 안에서 엄지의 찌르는 듯한 괴성이 터진다. 친실장은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데퍄퍄 웃으며 엄지의 팔을 해체한다. 엄지는 격렬한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변화에 온몸을 비틀며 저항하지만 자신을 짓누르는 친의 오른팔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자실장들은 친의 손에 붙잡혀 약맞은 날벌레 처럼 온 몸을 파닥거리면서도 산채로 전신이 천천히 분해되는 엄지 주변으로 모여들어 꼴사나운 엄지의 표정과 목숨 구걸을 지켜보며 저마다의 값싼 감상평과 함께 엄지를 비웃는다. 엄지는 실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격통 속에서 위석이 알려주는 진실을 조금씩 깨닫는다.

엄지의 양 팔 단면이 모두 거칠게 잘리고 왼쪽 다리를 뜯어내기 시작할 즈음 애처롭게 울며 목숨 구걸을 하던 엄지가 경련하며 기괴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지루한 해체쇼 속에서 엄지는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이미 반쯤 튀어나온 탁한 눈에서는 어느새 검은 눈물이 흐르고 있다. 자매들과 친을 노려보는 눈빛 속에는 깊은 증오와 원망, 그리고 아직까지도 버리지 못하는 일말의 희망이 있다. 엄지는 있는 힘껏 혀를 움직여 친과 자매들에게 지금이라도 좋으니 자신을 길러준다면 용서해 주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통 때문에 혀가 제멋대로 움직여 입에서 괴상한 쇳소리만 나온다. 일가는 저마다 편한 곳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엄지의 팔다리를 하나씩 들고 정신없이 뜯어먹는다. 엄지는 몸통과 목만 남아 피가 끓는 쇳소리를 반복하며 일가의 행복한 저녁 식사를 지켜본다. 엄지는 목과 몸통이 분리될 때까지 변변한 저항도, 아무런 말도 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파킨하여 죽는다.

엄지노예에게 있어 희망이라는 것은 달마가 되어 자신이 뜯어먹히는 것을 지켜보는 와중에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운치굴에서 평생 비참하게 썩어가는 자신의 실생을 담보로 맞바꾼 약속이기 때문이다. 마마에게 산채로 잡아먹히는 순간에도 마마에게 의존하는 것 말고는 들에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나약한 엄지실장이다.

운치굴 엄지 구하기의 핵심은 출생하는 순간부터 지옥같은 실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엄지가 헛된 희망을 버리고 운치굴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에 있다. 애호파들이나 좋아할 법한 엄지 구하기에는 사실 그 나름의 재미도 있고 방법도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학대파인 나도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간단한 도구를 챙겨 근처의 두루마리 공원을 찾았다. 더위가 한풀 꺾인 공원의 오후는 평화롭다. 공원 초입부터 눈에 띄는 점은 사람보다 실장석이 훨씬 많다는 것.

마마와 함께 잔디밭으로 나들이를 나온 자실장들, 그늘에서 보존식을 까먹는 일가 등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가을이 가까워 오는 이맘때의 실장석들의 얼굴에는 일종의 여유가 느껴진다. 자신의 머리보다 한참 높은 곳에서 익어가는 열매를 바라보며 자신의 자들도 무럭무럭 자라나 나무에 달린 열매처럼 독립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찬 친들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화목한 일가들 사이에서 엄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다. 온 가족이 풀밭에 나와 초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는 순간에도 엄지는 땅속에서 구더기들과 뒤엉켜 조금은 덜 습해진 보금자리에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산책로룰 따라가다 보니 광장에서 애호파에게 푸드를 받기 위해 몰려든 실장들이 눈에 띈다. 파리떼처럼 몰려 저마다 먹이를 받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난투극을 벌이는 실장 무리의 바닥쪽을 유심히 살펴보면 엄지 손가락만한 실장이 다른 실장석 사이에서 구더기를 안고 위태롭게 서 있다. 푸드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애호파의 눈에 띌 리가 없다. 애호파를 목청껏 부르짖던 엄지는 별안간 어떤 성체의 발에 차여 무리 속으로 사라진다. 곧 바닥에 남아 있는 멏 개의 작은 얼룩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나는 광장을 지나 실장석들의 골판지가 몰려 있는 작은 숲 쪽으로 향한다.

적당한 높이의 나무들로 이루어진 공원의 작은 숲. 이곳부터는 본격적인 실장석들의 거주지역이다. 귀를 기울이면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 사이로 테치테치 데스데스 하는 소리가 수풀 이곳저곳에서 작게 들린다. 얕은 실장취는 안개처럼 숲을 덮고 있다.

요령껏 풀숲을 헤치다 보면 나무그늘 옆에 자리잡은 적당한 크기의 골판지 하우스를 찾을 수 있다. 나는 오래지 않아 나뭇잎과 잔가지들이 엉성하게 덮힌 골판지를 찾아냈다. 어설프게나마 골판지와 비슷한 색깔의 자연물로 위장을 시도한 점은 칭찬해 줄 만 했다.

하우스 옆 흙바닥에는 마른잎을 대충 얹어놓은 작은 구멍이 보인다. 오늘의 목표는 저 작은 구멍 안에 있다.

나는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자세를 낮추고 구멍 근처에 귀를 가져다 댄다.

서서히 올라오는 역한 실장분 냄새 사이로 엄지의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집중한다.


"....레후~ ......레후~"

"......... 레치레치........레치....."


바닥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사이로 구더기와 엄지실장의 울음이 미약하지만 확실하게 들린다.

나는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이번에는 골판지 하우스에 귀를 대어 본다. 익숙한 실장취가 코를 찌른다.


"코츙........ 코츙........"

"데슈......... 데휴......"


손가락 끝으로 골판지 입구를 살짝 눌러본다. 저항감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안쪽에 돌을 두어 침입자 대비책을 마련해 놓은 듯 하다. 나는 골판지 문을 밀지 않고 양쪽 문 틈 사이에 손톱을 걸어 잡아당겼다. 신체적 특성상 좁은 곳에 손을 넣고 당기는 것이 불가능한 실장들에게 있어 밀리지 않는 골판지 입구는 훌륭한 방범장치일지 모르지만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짙은 실장취, 말라붙어 꾸덕한 똥내와 함께 아늑한 하우스의 전경이 펼쳐진다. 나는 초가을의 찬바람과 오후의 볕이 하우스 안의 평화를 깨지 않도록 주의하며 골판지 내부를 살핀다. 골판지 입구에는 역시 주먹만한 돌덩이가 놓여 있었고 들실장 가족이 낮잠으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흙과 먼지를 뒤집어쓴 낡은 가재도구와 집 곳곳에 널린 용도를 알 수 없는 쓰레기들, 바닥을 굴러다니는 잘린 곤충 다리와 벽 이곳저곳을 보수하느라 말라붙은 보온재와 운치자국들, 그리고 그런 환경에도 아랑곳않고 친의 품에 들러붙어 새근새근 자고 있는 꼬질꼬질한 자실장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대표적인 들실장 일가의 풍경이었다.

나는 일가를 어떻게 처리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곧 그만두기로 한다. 이곳은 들실장 거주지이기 때문에 일가를 처리하려다가 소란이 생겨 들실장들의 주목을 받으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곤란해진다. 그래봐야 몰려든 들분충들은 전부 구제하면 그만이지만 굳이 피를 보고 싶지는 않다.

나는 골판지 문을 다시 조용히 닫고 운치굴 위를 조악하게 덮어놓은 마른잎들을 한장씩 치운다. 나뭇잎이 하나씩 걷히며 운치굴 안쪽이 더욱 자세히 보인다.


"구더기짱 프니프니 바라는 레후~"

"병신 오네챠는 뭐하는 레후 어서 우지짱에게 봉사하지 못하는 레후?"

"병신 레후 ~ 병신 레후~"

"이제는 지겨운 레치... 팔씨가 너무 아픈 레치....."


뜨뜻하게 올라오는 습한 운치냄새와 함께 일가의 하우스와는 대비되는 운치굴의 일상이 들려온다. 작은 틈 사이로 보이는 엄지는 이미 독라인데다가 심하게 팔이 뭉게져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구더기들의 성화에 못 이겨 비척비척 걸어서 프니프니를 하기 위해 저실장에게 다가간다. 엄지를 병신 오네챠라고 업신여기던 투실투실한 구더기는 프니프니가 시원치 않다며 윽박을 지르다가도 나중에는 엄지의 배에 똥을 지리며 프니후~ 하는 소리를 낸다. 엄지는 자신의 주위로 몰려들어 배를 보이는 구더기들에게 번갈아 프니프니를 한다. 구더기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배를 까뒤집고 분변을 쏟아내며 자신에게 더 양질의 프니프니를 해달라고 보챈다. 나는 엄지의 표정에서 깊은 피로와 번민을 엿본다. 서둘러 나뭇잎을 모두 치운다.

배를 뒤집고 고개가 하늘을 향해있던 구더기들은 갑자기 세상이 밝아지자 저마다 깜짝 놀라 돌기를 꿈틀대며 레훗? 레훼에엥- 하는 반응을 보인다. 칙칙한 운치굴이 밝아진 것을 알게된 엄지도 레- 하며 운치굴 입구를 올려다본다. 나뭇잎이 모두 사라져 밝아진 운치굴 내부를 볼 수 있게 된 나는 절로 표정이 구겨진다.

똥밭에서 굴러 꼬리부터 얼굴까지 운치로 범벅이 된 저실장들은 난생 처음 보는 인간을 보고도 검먹기는 커녕 짧은 꼬리를 흔들며 방긋방긋 웃는다. 링갈에는 닝겐 상에게 프니프니를 요구한다고 출력되고 있다. 볕을 받아 추레한 몰골이 완전히 드러난 엄지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인간을 처음 만난 엄지가 머릿속에서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빠르게 행동에 옮기기로 한다.

"엄지실장아 안녕? 나는 애호파 인간씨란다. 유감스럽게도 오늘 학살파가 찾아와 너희 마마가 파킨해 죽어버렸단다."

"레..렛!?...렛?..... 레ㅡ"

갑작스러운 마마의 사망선고를 접한 엄지는 고장난 시계처럼 렛? 레- 하는 얼빠진 소리만 반복한다. 조금씩 떨리는 동공은 약이 다 된 전구처럼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다. 적록이었던 눈동자가 색을 잃어가며 탁해진다. 엄지의 레- 하는 울음소리가 점점 갈라져 모래를 가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를 낸다. 운치굴애서 일가의 분변을 받아먹으며 천한 취급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지켜온 엄지의 마지막 희망이 마마의 죽음과 함께 바스러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 엄지야. 나는 사육실장으로 기를 만한 귀여운 실장을 찾고 있단다."

나에게 점점 건방지게 프니프니를 요구하던 구더기들마저도 놀라 얌전해질 만큼 파격적인 제안. 사육실장이 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실생 역전인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세레브한 귀티가 묻어나는 존재인 사육실장은 명실상부 실장 최고급 계층으로서 닝겐의 부산물이나 주워먹고 공원에서 빌빌대며 살아가는 천한 들실장과는 존재의 격이 다른 것이다. 들실장과 운치굴 노예 사이의 신분격차 이상으로 사육실장과 들실장과의 사이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격차가 있다. 자신보다 훨씬 덩치 큰 닝겐을 노예로 부리고, 세상의 모든 우마우마한 산해진미를 분대가 터질때까지 먹고, 골판지 따위가 아닌 세레브한 궁전에 살면서 수많은 노예실장을 거느리며 세상을 흑발의 자로 가득 채워 행복한 실생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선택받은 존재가 되는 것은 모든 들실장들의 꿈인 것이다.

그런데 실장석 계급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들실장 노예계급, 그 중에서도 가장 힘없고 하찮은 엄지 노예에게 있어 자신이 실장 계급 최상층의 사육실장이 된다는 것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일일 것이다. 그저 똥구덩이에 처박혀 구더기 똥빼기에 신물이 나서 제발 마마에게 거두어져 다른 자들과 함께 운치가 아니라 마마가 구해오는 푸드를 먹으며 자매들에게 괴롭힘 받지 않고 길러지는 것이 평생의 바람인 엄지에게 사육실장이 된다는 것은 밑바닥 무저갱에서부터 천상까지 직통으로 뚫리는 짜릿한 초고속 실생역전 열차인 것이다. 자신을 매일같이 비웃던 똥같은 자매들과, 길러주겠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더러운 총구에서 쏟아지는 운치를 먹을 것을 강요하는 마마보다도 한참 높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서 파킨할 만할 제안을 실제로 엄지노예가 받게 된 것이다.

맛이 간 태엽인형처럼 의미없는 동작만 되풀이하던 엄지는 나의 제안을 듣자 벼락을 맞은 것처럼 한동안 온 몸을 파르르 떨었다. 언젠가 엄지실장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인 운치를 퍼먹으며 가끔씩 돌리던 행복회로속의 시뮬레이션이 아니었다. 현실은 행복 회로보다 훨씬 아마하고 감미로운 법이다. 나를 쳐다보는 엄지의, 이제는 거의 회색빛이 도는 탁한 양눈에서 서서히 적록의 안광이 쁨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축 쳐져 뒤로 접혀 있던 삼각형의 귀는 어느새 쉴새없이 상하로 팔랑거리고 있다. 엄지의 한손이 천천히 생기가 돌아오는 뺨으로 향하고, 혓바닥에는 혈색이 돌기 시작한다.

"레...레츄웅~?"

마마에게도 한 번 보여준 적이 없을 실생 최대의 필사적인 아첨을 선보인 엄지를 지켜보며 나는 미소를 짓는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후래쉬 라이트를 꺼내 운치굴 안을 비추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운치굴 내부가 밝은 빛으로 가득 찼다. 순식간에 너무나 강한 빛에 자극받은 구더기들이 레훼에에엥- 레삐이이이 하고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엄지에게 이 눈부신 자극은 전혀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운치굴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광명을 바라보는 엄지실장은 감격하여 천천히 구원의 빛을 향해 양 팔을 뻗는다. 운치굴에서 평생을 고통받으며 맞바꾼 소중한 약속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순간인 것이다. 똥독이 올라 문드러지고 비틀린 팔도 엄지가 보기에 광명을 받아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구덩이의 벽과 바닥에 이곳저곳 지저분하게 흩어진 암녹색의 운치들도, 엄지의 눈으로 보기에 눈부신 빛을 받으니 에메랄드 보석처럼 빛나는 듯 했다. 엄지는 구원의 빛 앞에서 자신의 실생을 망쳐놓고 속박하던 운치굴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행복을 느꼈다.

"우리 집에 가서 깨끗하게 거품목욕도 하고 맛난 푸드도 먹자. 너를 위해 예쁜 실장복과 머리칼도 준비해 두었단다."

엄지실장은 꿈에서도 상상해 본 적 없었던 세레브하고 달콤한 말들이 쉴새없이 자신의 위석을 직격하자,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지 눈깔의 초점이 나가고 그것으로 모자라 눈알이 제멋대로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때, 강렬한 후래쉬 라이트 때문에 급격하게 스트레스를 받은 구더기 한마리가 레삐이... 하더니 파킨하고 말았다. 구더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자로서 대접받을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엄지에게 있어 구더기가 운치굴에서 파킨한다는 것은 재앙과 같은 일이다.
하지만 엄지는 구더기들이 뒈지든지 말든지 신경쓰지 않았다. 엄지는 총구에서 수도꼭지처럼 분변을 퀄퀄 쏟아내며 츄우웅 츄우웅 하는 소리를 내고, 엉덩이를 흔들며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댄스로 표현하고 있었다. 엄지에게 있어 운치굴이나 구더기 같은 것은 이제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자신은 이제 선택받은 사육실장, 실장 카스트 최상층에 군림하는 세레브하고 보배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천박한 들의 것들과는 영원히 안녕인 것이다. 이제 엄지는 다시는 지옥같은 운치굴로 돌아오지 않고 행복으로 가득한 실생을 보낼 것이다. 라이트로 엄지의 이곳저곳을 비춰보던 내가 멋쩍은 표정으로 이런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그런데 저기 미안한데, 나는 귀여운 실장을 찾고 있어서 말이야."
"너는 내가 찾는 귀여운 실장이 아닌 것 같아."

내 말을 들은 엄지의 행동이 천천히 멈춘다. 머리를 긁적이며 안타깝다는 투로 건넨 가벼운 거절, 그것은 엄지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한다. 팔랑거리던 귀도 어느새 뻣뻣하게 되어 버리고, 행복으로 가득했던 표정은 괴기스럽게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고 여태까지 겪어온 자신의 불행을 털어내듯 맹렬하게 탈분하던 총구에서는 이제 맥빠진 바람소리만 나온다. 하지만 엄지는 곧 자신을 길러줄 수 없다는 사실에 반발해올 것이 분명하다. 실장석은 백이면 백 자신을 귀엽고 세레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엄지를 손쉽게 납득시키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셀피 모드를 켜서 엄지의 눈앞으로 들이민다.

"이게 네 모습이란다. 입 주변이 아예 운치색으로 썩어 버렸구나. 팔도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서 뭉게져 있고.. 엉덩이는 똥독이 올리서 다 불어 터져 있잖아.. 이런 실장은 전혀 귀엽지 않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 독라 엄지는 카메라애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뒷걸음질치다 뒤로 자빠지더니, 저것이 자신인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네 발로 서서 스마트폰에 대고 위협자세를 취한다. 치이이 츄아아! 하고 눈앞에 있는 괴물에게 연신 위협을 가하던 엄지의 표정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점차 일그러진다. 스마트폰에 맺힌 라이트가 비추는 운치굴의 모습은 엄지가 보기에 실장들의 지옥, 운치굴에 걸맞는 풍경이었다. 흉한 얼굴과 이미 못 쓰게 된 팔다리, 피부를 뒤덮은 녹검색 곰팡이, 바닥에서 허우적대며 괴로워하는 똥범벅 구더기들과 후레쉬 라이트를 받아 번들거리는 역겨운 실장분의 산, 그야말로 엄지 노예에게 어울리는 보금자리였다. 엄지실장은 이내 절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 있는 구더기들은 꽤 귀여우니까 내가 데려가서 사육실장으로 삼도록 할게."

나는 바닥을 구르며 아직도 밝은 빛에 적응하지 못하는 저실장 두 마리를 집어올렸다. 구더기가 운치굴 밖으로 끌려 올라가는 익숙한 광경을 본 엄지실장은 마치 아주 높은 곳에서 깊은 땅속으로 떨어지는 동물이 발버둥치는 모양처럼 온 사지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기어코 내 손과 가까운 쪽으로 바퀴벌레처럼 기어와서 팔을 뻗으며 링갈에도 번역되지 않는 비명인지 무엇인지 모를 소리로 울부짖는다. 찰나의 시간, 세상에서 가장 세레브한 존재였던 엄지실장은 다시 지옥의 바닥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이제 엄지실장에게는 일말의 희망조차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인간의 손에 처음으로 올려져 흥분한 구더기들은 자신들을 위해 매일 프니프니하던 엄지의 존재도 까맣게 잊고 방긋방긋 웃으며 아무렇게나 탈분해 마음껏 기쁨을 표현한다. 나는 죽은 구더기 한마리와 아직도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엄지실장을 남겨둔 채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내가 구멍에서 멀어지자 엄지실장의 소름끼치는 절규는 더욱 커진다. 잠시 뒤 일가의 골판지가 부산스러워지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절규하던 엄지의 소리가 뚝 끊긴다. 청명하게 돌 깨지는 소리가 난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구더기들을 다시 운치굴을 향해 던져넣고는 자리를 떠난다. 마지막 순간에 엄지에게 주어진 진정한 자유를 축복하면서





말조심 (냉동고기)

 

어느 날 저녁, 어느 공원

해질녘이기에 집으로 들어가 조용히 잠드는 것이 일반적인 실장석의 생활.

그러나 오늘은 왠일인지 이 공원의 실장석들이 전부 자신의 자들까지 전부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데스 데스
테치 테치
테츄 테츄
레후 레후

덕분에 뜬금없이 소란스러워진 공원.

그러나 공원에 있던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별 반응이 없다.

어쩌면 오늘 있었던 일이 벌써 사람들에게까지 퍼진 것일수도 있다.

성체만 100마리에 가까운 실장석들이 향한 곳은 공원 중앙의 공터 한쪽 구석.

'보스'의 연설대다.

그리고 연설대 앞에는 이미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은 채 독라가 되어 엎어져 있는 성체실장 한마리와 자실장 한마리.

성체실장은 눈을 까뒤집은 채 링갈조차 포착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로 데히...데히...거리고 있고 그 옆에서 자실장이 그것보단 약간 큰 소리로 마마라고 하는 것을 보아 친자인 것으로 보인다.

일찍 온 실장석들은 이미 독라 친자에게 운치를 던지며 놀고 있기에 운치범벅이 된 친자.

이때쯤 되면 운치 때문에 질식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때,

[그만! 그만하는 데스!]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우렁찬 소리.

그리고 일순간 쥐죽은 듯 조용해지는 실장석 무리.

'보스'가 왔다.

천천히 연설대 위로 오르는 실장석 한 마리. 이 녀석이 바로 이 공원의 보스.

키는 일반적인 성체실장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크며 큰 키에 걸맞은 장대한 체구는 실장석들에게 본능적인 위압감을 불러일으킨다. 성체가 된 직후 구제를 피해 이 공원에 왔으며 여기서만 3년을 더 지내며 6마리의 자들을 독립시킨 베테랑 중의 베테랑 들실장이다.

2년 전, 자기 자신이 이 공원의 보스임을 선언하였고 이후 자신에게 반항하는 수많은 실장석들을 친히 운치굴에 처박아가며 자신의 권위를 확립했다.

이 개체가 보스가 된 후 공원의 실장석들에게도 질서라 할 만한 것이 생겨 쓰레기장을 덜 더럽히고, 공원을 덜 더럽히고, 인간들에게 덜 엉겨붙게 되었기 때문에 인근 주민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실장석의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지라 일탈을 저지르는 개체는 있는 법. 더군다나 인간과 엮였다면, 그것도 인간을 분노하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라면 공원의 실장석 전체가 위험해지는 경우도 있다.

오늘 보스가 공원의 실장석을 소집한 이유는, 하필 그런 종류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오마에타치는 와타시가 왜 오마에타치를 불렀는지 알고 있는 데스?]

실장석들이 저마다 수근거린다.

[보스, 혹시 오늘 있었던 '바꿔치기' 때문인 데스?]

한 실장석이 답한다.

[그것 때문인 데스.]

바꿔치기.

사육실장의 옷을 빼앗아 자기가 입고 인간에게 사육실장인 척 행세하는 것. 물론 몸뚱이는 먹이가 된다. 실장석은 단순히 동족식을 꺼리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선호하는 쪽에 가깝다.

물론, 바꿔치기를 해 봤자 인간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기에 인간에게 다른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면 백이면 백 응징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오늘의 독라친자는 바꿔치기를 시도했고, 곧바로 그 사육실장의 주인에게 발각되어 그 자리에서 일가실각을 당할 것을,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보스가 다른 실장석들의 교육 재료로 쓰고 싶다고 요청해 받아온 것이다. 들실장에 잔뜩 분노한 인간에게 보스 자신도 들실장이면서 요청을 하고, 그 요청이 받아들여진다는 데서 이 동네의 주민들이 보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선 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오마에타치는 독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데스?]

보스가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실장석들은 저게 무슨 말인지 생각해보다가, 이윽고 너 나 할것 없이 웃음을 날린다.

독라에 대한 실장석의 생각이야 따로 말 할 필요가 없다.

소란이 가라앉기까지 조금 기다린 후, 보스가 또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구더기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데스?]

역시나 아까와 똑같은 반응.

차이점이 있다면, 대놓고 자기는 비상식이라는 말을 들은 저실장 몇몇이 파킨해버린 것 정도.

[...그렇기에 오마에타치는 기억해 두는 데스. 이 공원의 어떤 실장석이라도 사육실장을 건드리면 이렇게 되는 데스.]

보스의 조용하지만 위엄있는 목소리.

거기다 어느새 손에 바베큐용 포크를 들고 있다. 예리하고 튼튼한 만큼 다른 실장석이 쓰기엔 너무 크고 무겁기에, 오직 보스만 다룰 수 있는 보스의 상징과도 같은 무기.

일순 침묵하는 실장석 무리.

[독라라도, 구더기라도, 심지어 독라 구더기라 할 지라도 사육실장이라면 이 공원의 어떤 실장석보다도, 와타시보다도 지위가 높은 데스.]

독라 친자에게 다가가는 보스.

포크를 치켜들고, 곧바로 독라 친자의 위석에 꽂아넣는다.

[데햐아아...]
파킨

애초에 말을 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힘이 빠져있던 친은 힘없이 죽었고

[테챠아아아아악!]
파킨

그나마 힘이 좀 남아있던 자실장은 제법 큰 비명을 내지르며 숨통이 끊겼다.

[시체는 적당히 치우는 데스.]

그 말을 끝으로, 보스는 퇴장했다. 이후 공짜 고기를 가지기 위해 격렬한 쟁탈전이 벌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 애초에 시체를 적당히 치우란 것이 이 뜻이었다.

그러나, 이날 밤 사육실장과 들실장의 넘을 수 없는 격차를 되새겨준 보스의 말은 공원의 들실장들에겐 상당히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공원의 실장석들은 사육실장이 되어 보스보다 더 높은 지위를 손에 넣기 위해 공원 밖에선 이전보다 더 극성스럽게 탁아를 시도하며 공원 안에선 이전보다 더 집요하게 바꿔치기를 할 기회를 노리게 되었고, 분노한 주민들은 결국 구제사를 불렀다.

보스는 치명적인 말실수를 했다.

실장석이란 생물은 행복회로의 영향으로 남의 말, 남의 행동을 철저하게 자기 좋을 대로만 해석하고 기억한다. 브리더들이 실장석과의 이상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꼽는 것이 자기 좋을 대로 왜곡해 받아들일 여지가 없는 무미건조하고 간결한 명령문인 것은 이 때문.

보스는 사육실장은 들실장보다 훨씬 높은 존재니 건드리면 안 된다는 의도로 한 말이었지만 실장석들은 사육실장이 되면 보스를 뛰어넘는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하고 그 부분만 기억했다.

실장석답지 않게 너무 현명한 탓일까, 아니면 아직 덜 현명해서 실장석이 그런 생물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보스는 다른 실장석들도 자신의 의도를 알아줄거라 생각하고 말에 사족을 붙여버렸다. 그리고 그 사족의 결과는 공원 단위의 실각이다.









실장사냥 (냉동고기)

 

3월 초순의 어느 날, 어느 도시의 이름없는 뒷산.

산실장은 사람을 피해 첩첩산중에 자리를 잡는다는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도시와 아주 가까운 이곳에도 산실장 군락이 있다. 그것도 꽤 큰 규모로.

처음으로 이 산에서 살기로 결심한 실장석 자매가 첫 삽을 뜬지 어느덧 10년, 이젠 성체실장만 30여 마리가 있는 최초의, 그리고 최대 규모의 중심군락과 이 중심군락의 개체수 과밀 및 단 한번의 습격에 의한 몰살을 방지하기 위해 여기서 떨어진 곳에 2~8마리의 성체실장들로 이루어진 위성군락 대여섯개를 거느리는 수준까지 확장되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 위성군락 중 하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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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예상한 대로였던 데스.]

장로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다섯이 먹기엔 보존식이 부족했던 데스.]

지난 가을에 자신과 자매, 그리고 자신의 자 2마리와 자매의 자 1마리까지 총 5마리가 떨어져나와 위성군락을 형성하였다. 처음 굴을 파고 보온재와 보존식을 장만하는 것은 중심군락에서 지원해 주지만 산실장의 살림, 일손이 넉넉할리가 없으므로 중심군락의 지원은 언제나 조금씩, 혹은 많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아직 3월 초, 보존식으로 3주일을 더 버텨야 하는데 남은 보존식은 기껏해야 3일분 정도.

[오네챠...아니, 장로. 이젠 어째야 하는 데스?]
[밖에 나가 먹이를 구해야 하는 데스. 아직 밖은 춥지만 다른 방법은 없는 데스.]
[하지만 장로 말대로 아직 밖은 추운 데스. 추우면 먹을것도 없는 데스.]
[와타시도 아는 데스. 그래서 방법을 생각중인 데스.]

장로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위성군락이라 해도 엄연히 하나의 군락이다. 당연히 장로는 하나의 군락을 이끌만큼 머리가 좋고 이런저런 경험이 많이 쌓인 개체 중에서 선발한다. 장로의 기억 속에, 이것과 비슷한 상황을 겪은 경험 역시 있었다.

그때 그 시절의 장로는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했었는가?

일반적인 산실장들과는 다르게 도시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자신들만의 입지조건을 이용한 해결책. 최초의 자매들로부터 대를 이어 전해져 내려오는 수단...

[...역시 그 방법뿐인 데스.]
[장로?]
[이모토챠, 기억나지 않는 데스? 저저번 봄이 오기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데스.]
[....생각해보니 그랬던 데스! 그때 마마랑 오바상들이랑 와타시타치랑 오바상들의 자들이랑...]
[이번에도 그걸 하는수밖에 없는것 같은 데스.]
[뎃...! 와타시타치 만으로도 괜찮은 데스?]
[자들이 있는 데스. 자들도 이미 다 컸으니 충분히 할 수 있는 데스. 어차피 자들도 해봐야 하는 데스.]
[그럼 하는 데스. 언제 할 생각인 데스?]
[오늘 준비해서 내일 햇님이 뜨기 전에 할 생각인 데스. 와타시가 준비를 할 테니 이모토챠는 자들에게 설명해놓는 데스.]
[알겠는 데스.]

장로가 하려는 것은 바로 들실장 사냥.

최초의 자매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지식, 봄이 오기 전에 보존식이 다 떨어지면 들실장들을 사냥해라. 군락과 도시가 아주 가깝고 들실장이 없는 도시는 없다는 점을 활용한 이 산에 사는 산실장들만의 생존전략.

물론 산실장들은 동족식을 거의, 혹은 아예 하지 않는다.

구더기만 빼고.

그러므로 산실장들이 들실장을 사냥하는 것은 출산노예, 속칭 자판기를 마련하려는 것. 이맘때쯤에는 거의 모든 들실장이 성체 상태이기에 산 채로 잡기만 하면 자판기로 충분히 써먹을 수 있다. 물론, 들실장도 월동으로 인해 살이 많이 빠지고 기력도 약해져서 이런 시기에 잡은 것들은 최대한 관리해도 한달쯤 버티는 정도가 한계지만 그정도면 충분하다.

자매가 자들을 불러놓고 들실장 사냥에 대한 설명을 할 동안, 장로는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다. 산 속의 3월 초. 아직은 봄인지 겨울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 살벌한 냉기가 장로를 휘감는다. 그러나 그런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냥의 준비물을 챙긴다.

노예가 시끄럽게 소란피우지 않도록 입에 쑤셔박을 낙엽뭉치
노예를 묶는데 쓸 아주 질긴 덩굴

실패는 절대 용납되지 않으므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서 가장 좋은 품질의 것만 챙긴다.

그렇게 신중하게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덧 해질녘. 아직 실장석에겐 낮이 너무 짧다. 굴로 돌아온 장로.

[남은 보존식은 오늘 다 먹는 데스. 내일 사냥에 쓸 힘이 부족하면 안되는 데스. 그리고 보존식을 오늘 다 먹으니 내일 사냥에 실패하면 군락실각인 데스. 자들은 반드시 기억해두는 데스. 실패라는 선택지는 없는 데스!]
[네 데스!]

보존식을 전부 먹어치운 후, 장로를 제외한 실장석들은 전부 일찍 잠들었다. 내일은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야 하니까. 장로는 그 시절의 장로가 그랬듯이, 밤을 새며 내일 늦지 않도록 다른 실장석들을 깨우는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어느덧 밤이 지나고, 해는 뜨지 않았으나 하늘은 서서히 밝아져 오는 박명의 때에 장로는 다른 실장석들을 깨웠다.

도구는 어제 전부 준비했고 식량은 어차피 없으니 일어난 후 몸이나 풀면서 잠을 깨우고 바로 출발한다.

그러나, 시작부터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장로의 차녀가 굴 밖으로 나오길 거부한 것.

[차녀, 뭐하는 데스?]
[마마! 너무 추운 데스! 이런 날씨엔 움직일 수 없는 데스!]
[마마가 아니라 장로인 데스. 그리고 허튼소리 하지마는 데스. 빨리 따라나오는 데스.]
[말도 안되는 데스! 이런 날씨엔 가다가 얼어죽는 데스!]
[추운 건 알고있는 데스. 얼어죽을 수 있다는것도 알고있는 데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추워도 할 일이 있을땐 해야하는 데스. 마지막으로 말하는 데스. 빨리 나오는 데스.]
[와타시는 절대 못나가는 데스! 얼어죽기 싫은 데스! 갈려면 마마나 가는 데샤악!]
[...]
[데...]
[...]
[마마...?]
[...]
[마마...왜 그러는 데스?]
[...그러면 어쩔수 없는 데스. 오마에는 남아있는 데스. 절대 다른데 가지 말고 반드시 굴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데스.]
[알겠는 데스!]

예상치 못한 실랑이 때문에 쓸데없는 곳에서 시간이 낭비되어 버렸다. 이대로라면 사냥을 시작하기도 전에 해가 떠버릴 것이다. 해가 뜨면 들실장에게, 그리고 닝겐들에게 발견될 확률이 높아지고, 그러면 사냥은 실패한다. 차녀는 두고 갈 수밖에.

나머지 넷은 터덜터덜 산을 걸어 내려간다.

장녀, 그리고 자매의 자는 왜 차녀만 따뜻한 굴 속에 남겨놓고 자신들만 데려가는지 항의하고 싶었으나, 옆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장로의 섬뜩할 정도로 굳은 얼굴을 보고선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한 20분쯤 걸어 내려가니 곧바로 나오는 공원.

여기가 목적지다.

장로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덤불 하나를 지목했고, 군락 전체가 우선 그리로 가서 몸을 숨겼다.

사냥이 시작되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들분충들을 공격하는 요령을 다시 설명하는 데스. 첫번째는 습격 대상을 결정하는 것인 데스.]

어제 자매가 한번 알려주었지만, 장로가 다시 한번 설명을 시작한다.

[저기, 저 나무 밑의 열려 있는 골판지 보이는 데스? 저런건 무시하는 데스. 이런 날씨에 열려있는 골판지면 들분충들이 살지 않는 골판지일 가능성이 높은 데스.]

[저 풀숲 속에 있는 골판지도 어지간하면 넘어가는 데스. 골판지를 숨길 수 있는 위치를 잡을만큼 머리가 굴러가는 들분충이면 먹이도 잘 찾아먹고 힘을 쌓은 놈이라 의외로 격렬하게 저항하는 경우가 있는 데스.]

[그러니 어차피 널린게 들분충인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는 데스. 그냥 닫혀 있는 골판지 중에 눈에 잘 띄는걸 골라서 뜯어보면 어지간해선 맞아떨어지는 데스.]

그밖의 특이사항들

[여기 맞은편 덤불 속엔 아주 덩치 크고 힘센 들분충이 있는 데스. 예전엔 여기 사는 들분충들의 장로같은 녀석이었던 데스. 조심하는 데스.]

[그리고 저기 저 가시덤불에 굴 파놓은 들분충! 저놈은 위험한 데스. 들분충 주제에 머리가 더럽게 좋아서 저 들분충을 노리던 와타시의 자매 중 하나가 역으로 당해버린 데스. 저 들분충 놈이랑은 언젠간 와타시가 직접 결판을 낼 것인 데스.]

[두번째로 사냥 방법은...이건 역시 직접 해보는 것이 가장 나은 데스. 이모토챠는 망을 보고 자들은 와타시와 함께 작업하는 데스. 이모토챠에게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은 들어놓은 데스?]
[네 데스.]
[그럼 지금 바로 시작하는 데스. 저기 닝겐들이 벤치라 부르는 것의 아래쪽에 있는 골판지가 첫번째 목표인 데스.]

장로의 말대로, 자매는 망을 보고 장로와 자들은 조용히 골판지로 접근한다.

골판지 바로 앞에서 골판지에 귀를 갖다대는 장로. 살아있는 실장석이 있다면 숨소리나 뒤척이면서 부스럭대는 낙엽소리가 난다. 그리고 이 골판지에서도 그런 소리가 난다.

장로는 약간 뒤로 물러나면서, 자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공격 개시.

자들은 굴에서 가져온 나뭇가지 창을 곧바로 골판지 뚜껑의 틈 사이에 찔러넣고 젖혀서 열어버렸고, 장로는 골판지가 열리자마자 뛰어들어가 순식간에 월동중인 친자의 입에 낙엽뭉치를 쑤셔넣었다. 뒤이어 뛰어들어온 자들이 합세해 반항을 하지 못하도록 들실장 친자의 팔을 분질러버리고 독라로 만든다.

23초. 골판지 하나를 털어버리는데 걸린 시간.

이번이 처음 습격인 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입을 쑤셔막는 것은 습격조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실장석의 역할이기에 장로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산실장이라지만 그래도 실장석이라는 걸까. 다른 실장석을 공격하는 솜씨만큼은 타고났다고 봐야 할 수준이다.

곧이어 독라가 되버린 들실장 친자를 뒤집어 부러뜨린 팔을 다시 등 뒤로 꺾어서 가져온 덩굴로 묶고, 긴 덩굴 하나로 두마리의 목을 묶어서 끌고 갈 채비도 마쳤다.

첫번째 사냥은 깔끔하게 성공했다.

포획물은 성체급 들실장 2마리.

자판기 둘로는 5마리 군락이 한달을 버틸 만큼의 구더기를 만들기에는 약간 부족하다. 한마리가 더 있으면 좋겠지만 이미 해는 떠오르기 시작했다. 들실장 포획은 여기서 관두는 수밖에 없다.

군락은 포획한 노예들을 끌고 굴로 돌아간다

장로의 장녀가 앞을, 자매의 자가 뒤를, 장로와 자매가 각각 좌우를 살펴보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산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산인데다 발걸음이 느린 노예들까지 데리고 있어서 굴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내려갈때의 3배 가량인 1시간 정도.

그리고 드디어 굴 앞까지 왔건만, 장로는 갑자기 군락을 멈춰세운다. 뭔가 할 일이 남았다는 듯.

혹은, 두번째 사냥을 시작하려는 듯.

[이모토챠, 도와줄 수 있는 데스?]
[...할 생각인 데스?]
[알고 있었던 데스?]
[뻔한 데스. 장로가 자를 '오마에'라고 칭하는 경우는 하나뿐인 데스.]
[...그런 데스. 해야만 하는 데스.]

자매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자들은 와타시타치가 다시 나올때까지 여기서 잠깐 기다리는 데스.]

라고선 장로와 함께 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날 군락의 개체수는 성체실장 4마리로 줄었다.

출산노예 3마리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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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라는 환경은 실장석에겐 가혹하다.

지형은 험하고, 먹이는 부족하고, 천적은 많고, 겨울은 더 춥고 더 길다.

그래서 산실장들은 살아남기 위해 장로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 장로가 군락을 위해 내린 결정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래서 산실장들은 살아남기 위해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추워도, 더워도, 배고파도, 목말라도 참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합당한 이유 없이 장로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혹은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산실장으로 살아갈 자격이 없다. 후환을 막기 위한 처단만이 있을 뿐.

비정해 보이지만, 이것도 산실장들이 살아남는 비법 중 하나다.








콘페이토

 


" 데갸아아앗!! 안되는 데스! 당장 와타시의 집을 내려놓는 데스우우!! "





 흔한 공원에서, 자실장 세 마리와 친실장 하나라는 평범한 구성을 이루고 있던 실장석 일가가 있었다.



친실장이 먹이를 구한답시고 쓰레기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닌겐에게 집까지 미행당하기 전까지는



" 이 똥 분충새끼들은 쳐 죽여도 죽여도 말을 안 들어 처먹어, 쓰레기장 앞에 걸려있던 시체 못 봤냐? 눈깔도 없나 이새끼들은 "


물론 친실장이 못 봤을리 없다, 인간의 눈 높이에 보이지 않게, 실장석의 눈 높이에만 볼 수 있도록 교묘하게 박스로 가려놓은 후 

살아있는 미이라 같은 몰골이 되어 버린 실장석 반 시체들. 온몸에 있는 장기들이 다 끄집어 내어진 후 눈 코 입을 사정없이

찌그러트리고 뭉게놓고는 아물지 못하도록 바늘과 실로 난도질 하다 싶이 꼬매놓은 몰골을, 그 몰골을 가지고도 고통스러워 하며

꿈틀대고 기이한 소리를 내는 실장석을 비웃으며 밥을 구하는게 하루 일과였으니까.


" 오늘은 바쁘니까, 후딱 끝내고 간다 벌레새끼들아 "


남자는 일가의 전 재산이나 다름 없는 골판지집을 내동댕이 치고는 내팽게쳐 진 가재 도구들과 골판지 집과 같이 

즈려 밟기 시작하자 친실장의 외침과 저항이 더욱 격렬해진다.


" 안돼는 데스!! 그만!! 그만하는데스!! 이제 거기서 밥을 구하지 않겠는데스니 집을 돌려주는 데스!! "


친실장과 남자의 신파극 아닌 신파극이 벌어지는 동안, 자실장들은 잠이 덜 깼는지, 아니면 눈 앞의 현실이 아직 믿겨지지 않는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닌겐의 대한 공포심에 굳어버렸다는게 정답이겠지만.


남자는 발 밑에서 귀찮게 구는 친실장을 한번 차 날렸다. 전력을 다 해서 차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적당히 봐 준것도 아니었다.

평소 같았으면 쓰레기장 근처에 만들어놓은 그런 끔찍한 몰골을 해 놨겠지만, 시험기간이다 과제다 진짜로 바쁘기 때문에 후딱 끝내고

갈 생각일 뿐.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롤 끝낸 후 봐 줄 생각은 아니었다.


남자에게 차여진 친실장은 언청이 코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빵콘을 해 댔다. 자신들에게 빵콘은 절대 운치굴에다만 하라던

엄한 친실장이 빵콘을 하며 구르는 모습을 보자, 분충끼가 있던 삼녀는 테프프픗 웃어버렸지만, 상황이 심각한 것을 깨달은

장녀가 친실장에게 다가갔다.


" 마마아앗!! 괜찮은 테치? "

" 마마는...괜찮은.... "

[콰직!]

" 테챠아아아!!! "


친실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쇠 파이프를 휘둘러 친실장의 두개롤을 부셔 놓았다.


" 마...마마가!! "

" 테에에엣!! "

" 똥닌게에에엔! 마마에게 무슨짓을 한 테치이이이!! "



피떡, 아니 이제 육편이 되어버린 친실장을 쳐다보던 장녀가 겁도 없이 남자에게 달려 들며 소리를 꽥 지르자 

머리에 피가 쏠려 몇번씩이나 시체를 박살내던 남자는 시끄러운 소음에 정신을 차린듯 쇠파이프 질을 멈췄다.


" 아, 오늘 진짜 바쁜데 이 똥벌레 새끼들 때문에... 에휴 "


한숨을 쉬며 자신에게 소리를 지른 후 마마를 그만 아프게 하라며 신발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자실장을 잠시 쳐다본 남자


" 이미 옷은 다 버린거, 서비스 좀 더 해주다 갈게 "


남자는 능숙하게 세 마리 자실장을 독라로 만들고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집으로 향했다.

일가 실각과 독라가 된 충격에 태어난지 얼마 안 되는 추자라도, 상황이 몹시 좋지 않게 흘러간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정줄을 놓은 듯 하염없이 울어재끼는 차녀와 장녀, 걸레짝이 되어버린 친실장의 시체를 잠깐 바라보던 삼녀는

남자가 집을 박살내는 과정에 내팽게쳐진, 친실장이 절대 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과자 상자의 벌어진 틈 사이로 나온

무언가의 실루엣에 홀리듯 슬며시 과자 상자를 열자. 

삼녀의 본능이 이것은 마마가 태교 속에서만 설명해 주던 콘페이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테에에... 이것이 콘페이토 테치? "


마마가 피떡이 되어 죽은것도 까맣게 잊은 채 눈을 반짝이며 콘페이토를 하나 집어들은 삼녀.

본능적으로 콘페이토 끝에 혀를 대 보자, 전기가 흐른 듯 충격적인 단맛에 찡함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아첨이 나오고 말았다.





" 텟~츙♡ 콘페이토 너무너무 아마아마 한 텟치! "





그런 삼녀의 뒤에, 누군가가 슬며시 다가왔다.



마마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실장석 치고는 감각이 예민해진 것일 까? 자신의 뒤에 나타난 인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본 삼녀의 앞에는 삼녀와는 비교되도록 눈이 퉁퉁 불은 장녀가 과자 박스 안에서 굴러다니던 나머지 콘페이토 하나를



들고는 멍 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 뭐인 테치? 당장 와타시의 콘페이토 내려놓는 테치!! "





자신이 발견한 콘페이토를 집어 들은 장녀의 모습에 기가 찬 삼녀는 장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반응하듯 콘페이토를 들고 어딘가로 달려가는기 시작하는 장녀.





" 테...? 도... 도둑년인 테챠!! "





장녀를 쫒을 생각에 콘페이토를 옆구리에 낀 삼녀는 그제서야 자신들의 주위를 둘러싼 시선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풀 속에서 깜빡이는 적녹빛의 눈빛, 일가 실각당한 실장가족을 터는 것 만큼 쉬운 일이 실장석에게 또 있을까?



지금은 그저 이 실장석 가족을 풍비박산낸 닌겐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조바심 내며 눈치게임을 하고 있을뿐



이 일가족을 박살낸 남자 덕분에 이 자실장들이 촌극을 벌이는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삼녀 또한 장녀가 달려간 반대 방향으로 달려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그제서야 눈치만 보던 적록빛 안광의 주인공들이 뛰쳐 나와 그때까지도 주저 앉아 울고 있던 차녀를 입 안으로 쑤셔 넣었다.





장녀는 눈물을 훔치며 달렸다. 태어나서 부터 시작된 고생길. 



변변치 않은 식사와 세상은 아름답다던 태교와는 정 반대인 골판지집 생활.



이제는 의지할 친실장도, 집도 가족도 없는 독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멈춘 나무 그루터기 밑에서 장녀는 손에 들려있는 콘페이토를 바라보았다.



유혹하듯 달콤한 향을 내뿜는 콘페이토에 혀를 대 맛을 느끼자



오늘 있었던 모든 끔찍한 일이 달콤함에 잊혀져 갔다.





" 아마...아마 테츄웅~ "





무언가에 홀린 듯 콘페이토를 핣는 장녀의 혀놀림에, 그렇게 크지도 않던 콘페이토는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잠시동안이나마 모든것을 잊게 해 주고 행복감만이 가득했던 콘페이토의 단맛에 취했던 장녀가 입 안에 단맛이 점점 희미해지자



잊고 있던 현실이 기억나며 눈물이 차 오르기 시작했다. 허나 그 눈물은 장녀에게 남은 가혹한 현실 때문만이 아니었다







" 배...배가... 아픈.... "





입 안에 단맛이 사라지자 찢어질 듯한 복통이 찾아왔다.



장녀가 먹은 것은 콘페이토가 아닌 코로리, 그것도 구제용이 아닌 학대용으로 쓰이는 복통 집중, 지효성 코로리였다.



끔찍한 고통에 배를 움켜잡고 발버둥을 치는 장녀는 죽은 마마를 애타게 찾는 목소리 조차도 낼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있었다.











그 시각, 삼녀 또한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때 쯤 공원 중앙에 있는 벤치 밑에 주저앉고 말았다.



벤치 밑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지 이리저리 둘러본 후, 잠시나마 느꼈던 단맛에 다시 취하기 위해 콘페이토에 혀를 갖다



대는 찰나에 삼녀의 눈에 실장가족이 눈에 띄었다.







그 가족은 자신이 알던 실장석 가족의 모습과는 달랐다.







마마는 항상 바쁘니 놀자고 하지 말 것.



마마가 없는 동안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 것.



닌겐은 절대적으로 위험하니 절대 가까이 가지 말 것.







하지만 삼녀의 눈에 띄인 실장가족은 자신이 알고 있던 가족의 형태가 아니었다.



잔디 밭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친실장과.



그 옆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춤추는 자실장.



그리고 그 실장가족을 보며 웃고 있는 닌겐.







짧은 자실장의 실장 댄스와 노래가 끝나자 닌겐이 춤추고 노래하던 자실장에게 콘페이토를 건내주었다.



저 실장석은 어떤 고난을 겪었기에 저렇게 쉽게 콘페이토를 얻는 것인지 알수 없던 삼녀는



마치 콘페이토에 홀릴 때 처럼 그 실장가족과 닌겐 앞으로 무심코 다가가고 있었다.







사육 자실장이 콘페이토를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는, 주인과 사육 친실장에 앵콜 사인에 정중하게 인사한 후 다시 춤과 노래를 



시작하려 할 때 쯤 사육실장 가족과 닌겐이 더러운 독라를 발견하고는 표정이 굳어 버렸다.







독라는 두 마리와 한명의 인간의 시선이 집중되자 옆구리에 끼고 있던 콘페이토를 마치 자신과 그 자실장이 차이가 없다는 듯 



자랑스럽게 핣기 시작했다.





힘겨웠던 질주 탓에 콘페이토의 달콤한 맛은 더더욱 진해진 듯 했다, 삼녀의 모습을 보고서는 친실장 뒤에 숨어 속삭이듯 말하는



자실장의 말을 듣기 전 까지는.





" 더러운 테치... 저게 들실장인 테츄까? "





그 말을 듣고는 발끈한 삼녀가 콘페이토에서 혀를 때고 자실장을 째려보자 친실장이 삼녀를 쨰려보며 자실장에게 말했다







" 그런 데스우, 원래 들실장들은 저렇게 더럽고 천박한 데스, 리리짱은 절대 저렇게 행동하면 안돼는 데스 "







삼녀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는 성큼성큼 자실장을 향해 다가갔다.





" 뭐라고 지껄인 테챠아아앗!! 저딴 똥분충보다 와타시가 더 아름다운 테치!! "







그 와중에 핑크색 사육실장복을 입고 정성껏 단장해 있는 자실장과 수풀을 맨 몸으로 가로지르며 다리 사이에 운치를 지리며


뛰어다녔던 자신의 모습을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자실장에게 미친개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 세레브한 와타시에게 사육실장 자리를 내놓는 테챠아아앗!! "







짜증난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닌겐이 실장채를 들어 삼녀를 쳐 내기도 전에, 사육 친실장이 삼녀를 있는 힙껏 걷어찼다.


삼녀의 입에서는 방금 전까지 꿈과 같이 느껴졌던 콘페이토의 단맛은 사라지고, 비릿한 자신의 피 맛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성체 실장에 걷어차인 충격으로 왼쪽 팔과 늑골이 다 부러진 삼녀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콘페이토가 없어졌다는것을 깨닫고



격통을 느끼면서도 허겁지겁 콘페이토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곧 자신과 몇 걸음 안 되는 곳에서 모래와 읅이 잔뜩 묻은 채


굴러다니고 있는 콘페이토를 발견하고는 고통에 몸을 덜덜 떨며 콘페이토를 주워 멀쩡한 손으로 간신히 가져간후 주저 앉았다.





아까처럼 오늘 있었던 일을 다 잊을수 있도록, 아니 지금 느껴지는 격통조차 잊어버릴것이라 믿으며 



기를 쓰며 혀를 댄 콘페이토가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삼녀의 시야의 희미해지도록 자신을 걷어 찬 닌겐과 실장 가족이 공원을 떠나는 실루엣이 흐려지듯 보이자



삼녀는 발광하듯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 왜!!! 와타시는!! 안돼는 테챠!! 와타시도 세레브해질 권리가 있는 테치야악!! 지금이라도 와타시를.... 꺽... "





성체 실장에게 전력으로 걷어차인 충격일까, 한쪽 폐가 다 찢어져 버린 삼녀는 입에서 피를 한 웅덩이 쏟아냈다.



그러고는 피 웅덩이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콘페이토를 필사적으로 핣기 시작했다.





" 와타시도...행복....해... 질.... "





하지만 죽을때 까지 핣아도 그 콘페이토에서 단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름의 공원: 익어버린 세계 (121.)

 

변화의 중대성을 깨달은 것은 오직 극소수 뿐이었다.


계절은 여름. 태양빛이 실장석의 오른 쪽 눈처럼 지구를 새빨갛게 달구는 시기, 찌는듯한 더위가 지구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인간들의 목숨마저 앗아가는 나날. TV에서는 연일 폭염에 희생된 수백만 마리의 가축과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보도되고있다. 가장 인색한 자린고비도 부채를 내던지고 에어컨과 선풍기의 전원을 켜는 이상기후의 한복판에서 고통받는 것은 공원의 들실장도 예외가 아니다.

“이상한데스… 분명 이정도는 아니었던데스…”

공원 언저리, 나무그늘 밑에 위치한 한 골판지에서 나체인 실장석이 공허한 눈으로 중얼중얼 혼잣말을 되뇌고 있다. 실장석의 발치엔 마찬가지로 나체인 두 자실장이 신문지 위에 누워 혀를 쭉 내밀고 간신히 숨만 내쉬고있다. 

“테에에…”
“테휴우-...”

비록 꼬라지가 말이 아니라지만 친실장은 나름대로 공원에서 손에 꼽을만큼 애정 깊고 현명한 녀석. 몇 년이란 세월을 들실장으로 살아오며 여러 마리의 새끼들을 성체로 길러내 독립시키고 풍족한 세간살이를 갖춘 친실장은 그 실적만으로 공원의 들실장들에게 은근히 존경받아왔다. 

“장녀, 삼녀, 괜찮은데스? 마마를 향해 인사해보는데스.”

“테…”
“테후-...”

그런 친실장이었지만 작금의 더위엔 완전히 속수무책. 금지옥엽으로 키운 일곱 마리의 자들은 태풍과 장마가 끝난 후 찾아온 여름 무더위에 두 마리만을 남기고 모두 죽었다. 살아있는 두 마리도 아직 숨이 붙어있다 뿐이지 완전히 식욕을  잃어 제대로된 식사를 못하고 친실장이 꼭꼭 씹어서 흘려넣어주는 죽을 입에 머금다 토하기 일쑤. 이대로라면 두 자실장도 자매들의 뒤를 따라간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있었지만 단순한 실장석에 불과한 친실장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기에 친실장은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이 지겨운 더위가 끝나고 선선한 계절이 오기만을 빌었다. 

“자들, 땀을 많이 흘려서 신문지가 축축해진데스. 마마가 옮겨줄테니 얌전히 하는데스요.”

“테…”
“테-...”

친실장은 드러누운 두 자실장을 조심스럽게 뒤집어 옆자리로 옮긴다. 한때 일곱 자매들이 누워있던 잠자리엔 썰렁한… 아니, 기분 나쁠 정도로 미지근한 공기만이 남아 친실장의 가슴을 차갑게 도려낸다. 친실장은 뒤집어놓은 자실장들의 땀으로 번들번들한 등을 자실장들의 옷으로 부채질하며 조금은 더위가 물러가기를 바랐다. 

‘차라리, 닌겐상들에게 이 자들만이라도 부탁하는 편이 낫지 않은데스…’

순간적으로 마음이 약해진 친실장은 잘 사용하지 않아 녹슨 행복회로를 돌려본다. 인간의 집에서 시원한 목욕을 하며 맛읶는 간식을 배 커지게 먹는 자들과 자신의 모습은 상상만해도 달콤한 것. 하지만 곧 제정신이 돌아온 친실장은 말도 안되는 망상에 빠졌다고 생각해 두 손으로 뺨을 찰싹찰싹 때린다. 완전히 탈진해서 물먹은 걸레처럼 늘어진 자들을 데리고 불볕을 걸을만한 체력은 누구에게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조금만 더 버티면 시원한 계절이 올 때가 된다. 그같은 사실을 떠올리고 마음을 다시 다잡아보려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친실장. 친실장의 얼굴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육수를 맞은 자들이 끄으응 신음소리를 낸다. 친실장은 자들의 등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고 깊게 한숨쉰다.

‘어쩌다… 어쩌다 이렇게 된 데스우…’ 




2
친실장이 다른 들실장처럼 다가올 더위를 대비하지 않고 넋놓고 있던 것만은 아니다. 친실장은 여름을 맞는 것도, 견디기 힘든 무더위를 보내는 것도 처음이 아니었기에 봄에 낳은 새끼들을 위하여 초여름부터 여름나기 준비를 했다. 친실장이 가장 우선시한 것은 물. 실장석에게도 치명적인 여름철 탈수증을 막기 위해, 기온이 가장 올라간 대낮에 골판지 주위에 뿌려두기 위해, 그리고 정말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더울 때 자들이 몸을 식힐 수 있도록 쓰레기장에서 슬쩍한 양철 개밥그릇에 가득 채워넣기 위해 친실장은 식수용도를 제외하고 미리 일곱 병이나 되는 페트병에 물을 가득 채워놓았다. 성체인 친실장에게도 1.5리터들이 페트병을 나르는 것은 너무나 힘든 중노동이기 때문에 작은 500ml들이 페트병에 물을 떠나르기를 스무 번이 넘도록 해야했지만 오직 자들의 쾌적한 여름나기를 위해 친실장은 제 몸을 아끼지 않고 집과 수돗가를 왕복했다. 친실장은 가지고있던 모든 페트병을 가득 채우고나서야 겨우 만족했다. 어쨌든 물이란 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대비는 만전, 무더위따위 올 테면 와바랏! 하며 뿌듯한 마음이 된 친실장은 이번 여름에야말로 한 마리의 낙오 없이 모든 자들을 잘 길러내겠다고 다짐했다.

무더위의 전조인 태풍은 올해도 여지없이 공원을 덮쳤다. 그러나 매년 공원의 수많은 들실장들을 그들이 웅크린 골판지집째로 나뭇가지, 전봇대, 지붕 모서리 등등에 꽂아놓는 태풍의 무서움을 여러 해 동안 경험한 노련한 친실장은 미리 대비책을 세워뒀다. 바로 공원 구석의 돌덩이와 흙더미 사이에 파놓은 여름용 별장. 먹이찾기의 도중 발견한 주인 없는 동굴에 친실장은 자들을 껴안고 들어가 거센 바람을 피했다. 

“바람씨 무섭지 않은테치~♬ 마마의 따끈따끈한 품만 있다면 얼마든지 와보라는것인테치~♬”
“별장이라니 세레브한테치~♬ 세레브한 마마를 둔 나는 세레브한테치~♬”
“우지쨩은 마마 살냄새가 나서 안심되는렛훙… 졸린레후… 한숨 자는레히…”
“레,레힛, 나도 들이는레치! 휘잉 휘잉 무서운레챳! 좀더 나를 안쪽에 보내는레치이잇!”

돌과 흙으로 된 지붕이 굳건하게 바깥의 바람을 막아주고 있었지만 틈새로 들어오는 소음, 찢어지는 듯한 바람과 그 바람에 휩쓸린 들실장들의 비명은 막아주지 못했다. 그리고 작은 엄지실장의 정신이 그같은 환경을 버티지 못하는 바람에 작은 엄지실장은 안전한 친실장과 언니들의 틈바구니를 빠져나와 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즉시 바람에 휘말려 친실장이 어찌 할 틈도 없이 사라져버린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레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태풍에 휩쓸린 엄지실장은 새된 단말마를 내며 연약한 몸이 산산조각으로 찢어졌다. 비록 엄지실장이라도 차별 않고 귀엽게 여기던 친실장이었지만 그래도 엄지는 어디까지나 엄지에 불과한 것. 작은 엄지실장 하나를 잃고 여름의 가장 큰 위협인 태풍을 무사히 넘긴 일을 다행으로 여기며 자들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테, 마마… 집이…”
“테에에엥-  공씨가 없어진테치에에에엥-”
“우지쨩의 담요씨가 안보이는렛훙? 그게 없으면 우지쨩은 잠을 잘 수 가 없는레훼엥…”

“자, 자, 자들은 뚝 그치는데스요. 없어진 것들은 마마가 새로 얻어다주는데스. 자들이 멀쩡한 것만으로 마마는 다행인데스.” 

원래 거주하던 골판지집은 비바람에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무너져 흐물거렸고 준비해둔 살림살이도 태반이 사라져 흩어져버렸지만 노련한 친실장은 좌절하지 않았다. 태풍이 지나가면 공원의 경쟁자가 줄어드는 탓에 먹이나 잡동사니따윈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써 준비해둔 무거운 페트병들은 그대로 남아있었고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자들이 무사히 남아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친실장은 잃어버린 것들을 대체할 물건을 찾아 부지런히 공원을 누볐다. 

친실장은 공원 탐색을 하며 드문드문 아는 얼굴들을 보고 또 한 번 여름을 무사히 넘긴 것을 자축하는 인사를 나눴다. 들실장에게 있어 사계란 봄에 자들을 낳고 위험한 폭우와 태풍을 넘기면 잠깐 더운 기간 게으르게 보내다가 풍성한 가을에 겨울날 준비를 하고 겨울은 그동안 모아온 것들을 축내며 또 늘어지게 지내는 것. 평소엔 빈말로도 사이좋다고 할 수 없는 이웃들이지만 연중 가장 커다란 위험을 무사히 넘긴 기쁨은 과거의 앙금도 사르르 녹일 만큼 커다란 것이었다. 모처럼 찾아낸 물건을 이웃에게 양보하기도 하고 양보받기도 하면서 친실장은 적당히 전리품을 갈무리해 집으로 돌아갔다.



태풍의 뒤엔 친실장이 예상했던대로 기분나쁜 더위가 찾아왔다. 어쩐지 평년보다 조금 이르지 않나 싶기도 했지만 노련한 친실장은 과거의 경험을 거울삼아 더위가 가실 때까지 일가의 옷을 모아 고이 접어두고 비축한 물을 아낌없이 풀어 더위를 호소하는 자들을 위로했다. 

“언니쨔앙-! 물대포 나가는테츄!”
“차녀주제에 건방진테치! 내가 쓰나미 맛을 조금만 보여주는테치!”
“우지쨩, 시원한레치?”
“참방참방 시원한렛훙~♬ 브리브리, 운치 나오는렛훙~♬”

아침이 되면 친실장은 땀흘려 끈적해진 바람에 기분나빠하는 자들을 양철 개밥그릇으로 만든 간이 수영장에 넣었다. 잔뜩 물장구를 치고 물장난하며 까부는 자들이 더위를 잊는동안 친실장은 나무에 기대 느긋하게 물을 마시며 쉬었다. 해가 중천에 뜨면 일가는 좁은 골판지 대신 나무그늘 밑에 신문지를 깔고 드러누워 뜨거운 해가 떨어질 때까지 잠을 잤다. 해가 지는 늦은 저녁이 되면 친실장은 하루종일 놀고 먹고 자느라 지쳐서 잠이 든 귀여운 새끼들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진한 입맞춤을 하고는 식수와 식료의 탐색을 위해 나른한 몸을 일으켰다. 더위를 잊도록 잠자리에 들고싶은 것은 친실장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새끼들이 구김살 없이 즐겁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골판지를 나와 서늘한 밤바람을 몸에 걸쳤다.

그렇게 일가가 한가로이 보내길 며칠, 친실장은 작은 위화감을 느꼈다. 바로 날씨가 풀어질 기미는커녕 오히려 더 더워진다는 것. 낮잠을 자다 왠지 숨이 가빠와 잠이 깬 친실장의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빈 포대기를 시작으로 친실장의 반대 방향을 향해 이어진 녹색의 선이었다. 그리고 그 끝엔 직사광선 밑에서 말라비틀어진 고기 조각이 된 칠녀 구더기가 있었다.

“데, 데뎃? 이게 어떻게 된 일인데스? 우지쨩이 왜 저런 곳에 있는데스? 육녀, 일어나보는데스!”

오녀 엄지가 태풍에 휩쓸려 날아가고나서 구더기를 전담해 돌보던 육녀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장녀부터 사녀까지 모든 자실장도 친실장의 외침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친실장에게서 거리를 두고 드러누워 가쁜 숨을 내쉬며 진땀을 흘리는 자들을 발견한 친실장의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다.

“뭐인데스, 왜이러는데스!”

친실장은 자들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파악하고 얼른 페트병을 뒤집어 물을 끼얹었다. 한바탕 물벼락을 뒤집어쓴 자들은 그러나 기운을 차리기는커녕 물을 머금은 걸레처럼 축 늘어졌다. 자실장들은 기도를 막은 물을 기침으로 뱉어내며 작은 신음소리를 흘렸다.

“테복, 테베에…”

하지만 육녀 엄지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가만히 두 눈을 감은 육녀 엄지의 입에는 친실장이 쏟은 물이 그대로 고여있었다. 

“데엣, 데엣끄, 오로롱…”

육녀 엄지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친실장에게 슬퍼할 시간은 없었다. 네 마리의 자실장들 또한 힘없는 표정의 얼굴이 발갛게 떠서 금방이라도 육녀 엄지의 뒤를 따라갈 것만같았기 때문이다. 친실장은 피눈물을 흘리며 엄지의 사체에서 팔다리를 비틀어 떼내어 자실장들의 입에 넣었다. 자실장들은 입에 들어온 고기를 힘없이 오물오물 빨아먹었다. 작은 육녀 엄지의 작은 팔다리는 아주 천천히 자실장들의 목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뒤 자실장들의 얼굴에서 괴로운 기색이 조금씩 사라졌다. 한고비 넘긴 친실장은 곰곰이 무거운 머리를 굴려 상황을 파악했다. 낮잠을 잘 때만 해도 육녀 엄지에게 안겨있던 우지쨩은 더운 온도탓에 일가와 육녀 엄지의 품을 벗어나 꼬물꼬물 기어나갔다. 얼마 안가 목숨처럼 아끼는 포대기까지 벗어던진 우지쨩은 그대로 시원한 곳을 찾아 계속 기어서 친실장이 깔아놓은 신문지의 영역을 넘어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맨 돌바닥까지 기어가버린 바람에 말린 멸치같은 모습이 되었다. 육녀 엄지는 낮잠을 자던 자세 그대로 살이 익어버려 자는듯이 죽어있었다. 두 새끼의 죽음에서 공통적으로 추정되는 사인은 바로 더위. 몇 해 전의 폭염에서 친실장이 새끼들을 모두 잃었을 때와 비슷하게 죽은 육녀 엄지를 보고 친실장은 나약한 우지쨩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육녀 엄지가 더위에 꺾여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실장이 상황 파악을 끝내고나니 새삼스럽게 더위가 느껴졌다. 주변 공기는 짜증나게 덥고 습해서 마치 한증막에 있는 것처럼 숨쉬기 힘들었다. 팔다리는 저릿저릿했고 머리는 어지러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튼튼하진 않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성체 실장석인 자신이 이정돈데 어린 자실장들은 오죽하랴. 친실장은 황급히 페트병을 열어 개밥그릇 가득 물을 채우고 자실장들을 담갔다. 물은 바깥의 공기만큼 미지근했지만 머리만 내놓고 온몸이 물에 잠긴 자실장들의 표정에 조금씩 생기가 돌아왔다. 

“테에에… 마마테치?”

“장녀쨩, 정신이 좀 드는데스우?”

“몸씨가 너무 뜨거운테치잉… 그래도 목욕 기분 좋은테츄웅…”

파리하게 시든 미소라도 띄워보내는 장녀에 다소 안심이 된 친실장은 조심스럽게 장녀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평소라면 친실장의 부드러운 손길에 안정감을 느끼고 좋아했을 장녀는, 하지만, 친실장의 손길을 피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마마, 더운테치이… 쓰담쓰담 괜찮은테치…””

“데이, 미안한데스우. 사과의 의미로 마마가 부채질을 해줄테니 너는 햇님이 떨어질 때까지 목욕하면서 쉬는데스. 햇님이 없어지면 제법 선선해질 것인데스.”

“텟츄웅...♬”

“...이 더위가 끝나면 곧 가을인데스. 가을이 되면 달콤달콤한 감이랑 맛나맛나한 밤이 떨어지는데스. 쌉쌀한 은행과 떫은 도토리도 입에 익으면 맛있는데스요. 데프프프, 그때쯤엔 딸들도 자라서 테스테스 하면서 마마를 도와 봉지 한가득 보존식을 모으는데스. 정말 기다리기 힘든 것인데스.”


친실장의 소망과는 반대로 더위는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오히려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의 폭염이란 악명을 자랑하는 무더위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연일 계속되었다. 여름을 수차례 경험한 친실장도 견디기 어려운 더위를 처음으로 겪는 자실장들의 처지는 말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땀을 흘려 열을 발산하기 위해 혈관은 한껏 확장되었고 심장은 넓어진 혈관에 피를 보내기 위해 밤에도 쉬지 않고 펌프질을 했다. 과부화된 심장은 뇌에 충분한 혈액을 보내지 못해서 자실장들은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심장은 콩닥콩닥 뛰는데 호흡은 가쁘고 정신은 혼미한 상태였다. 

과거의 경험에서 미루어보아 더위는 며칠 내 끝날 것으로 판단한 친실장은 힘들어하는 자실장들을 위해 비축해둔 물을 아낌없이 썼다. 하루에 서너 번 친실장이 선언하는 물놀이 시간이 되면 자실장들은 환호하며 일제히 개밥그릇에 들어가 친실장에게 물을 부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자실장들의 미소와 함께 비축해둔 페트병이 한 병 또 한 병 줄어들어도 더위가 사그라들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내일에야말로, 내일은 기필코 더위가 물러날 것이라고 친실장은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페트병 뚜껑을 열었지만 기승을 부리는 더위는 이제 가만히 누워있어도 등을 적시는 땀에 기분이 나빠지게 만들 정도였다. 

친실장이 모아둔 물은 오래지 않아 동이 났다. 얌전히 더위를 참고 물놀이 시간을 기다리던 자실장들은 친실장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개밥그릇에 기어올라 물놀이 시간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내왔지만 당장 마실 물도 부족한 마당에 귀중한 물을 낭비할 수 없어 친실장은 자실장들에게 부정의 뜻을 전했다. 격렬한 반대와 떼쓰기를 각오했건만 자실장들은 조용히 미지근한 개밥그릇에서 기어나가 아무데나 털썩 드러누웠다. 더위에 입맛을 잃어버린 지 오래인 자실장들에겐 떼를 쓸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더위에 시들어만가는 자실장들을 바라보는 친실장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더위가 물러나도록 시원한 바람 한 줄기, 작은 구름 한 조각이라도 나타나길 바라는 친실장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친실장은 결국 물을 찾아나서기로 마음먹고 자실장들에게 마지막 남은 물을 한 모금씩 나눠주고는 집을 나섰다.

사람에게 물이란 수도꼭지를 틀면 콸콸콸 쏟아져나오는 것이지만 들실장들에게 폭염의 공원에서 물을 구하기란 나름대로 위험을 동반하는 것이다. 견디기 힘든 무더위와 무거운 물병의 무게는 말할 것도 없고 더위를 피하기 좋은 수돗가에서는 종종 자리나 물 쟁탈전으로 유혈사태가 발생하곤 한다. 태풍이 지나간 공원이 아무리 들실장이 줄어들었다고해도 폭염동안 황금처럼 귀중해지는 물의 공급처에는 사방팔방의 들실장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같은 이유때문에 친실장은 식수가 절실해질 때까지 더위를 호소하는 자실장들의 눈초리를 애써 외면해왔다. 자들의 더위를 해소해주기 위해 몇 번이나 수돗가를 왕복하는 리스크를 짊어질 수는 없었기 떄문이다. 하지만 결국 식수조차 바닥나버리고 물 없이 사흘도 못버티는 자실장들을 위해 친실장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무가 심어진 흙바닥을 벗어나 길가에 심어진 덤불을 헤치고 인간의 보행로를 향해 한 발을 내딛었을 때

“데, 데갸앗!”

친실장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뒤로 나뒹굴었다. 

“뭐, 뭐인데스. 뭔가 있는데스…”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것은 바로 태양으로부터 길가의 보도블럭이 내뿜는 반사열의 벽이었다. 친실장이 서있는 그늘진 흙바닥도 더웠지만 햇빛을 막을 그늘도 열을 흡수할 물방울도 없는 길바닥은 정오의 뙤약볕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었다. 그 열은 마치 투명한 장막처럼 친실장의 손을 가로막고 통과하는 것을 거부했다. 수돗가로 향하기 위해선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길을 어떻게 건너야할지 친실장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건너편에서 부스럭거리는 기척이 들렸다.

“데데…?”

기척의 주인은 친실장과 마찬가지로 나체인 들실장. 친실장도 가끔 가다 본 기억이 있는 공원의 이웃 실장석이었다. 그러나 그 표정은, 그 얼굴은 전혀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데...베…”

들실장의 눈은 초점을 잃고 풀어져 있었다. 열린 입에선 혓바닥이 늘어져 나왔지만 그 외엔 의미없는 신음소리 뿐. 더운 날씨에 고통받는데도 들실장의 몸에선 기이하게 한 방울의 땀이나 침도 흐르지 않았다. 팔은 좀비처럼 전방으로 치켜들었지만 눈앞의 덤불을 헤친다는 임무를 완수했음에도 들실장의 팔은 내려가지 않고 허공에 걸려있었다. 덤불에서 과감히 나와 찜통같은 보도블럭 위에 선 들실장은 더위도 아랑곳않고 천천히 발을 끌었다. 그리고 단 몇 걸음만에 하수구 철망에 발이 끼어 앞으로 고꾸라졌다. 분명히 아팠을 텐데도 들실장은 비명소리 없이 잠깐 팔을 움찔움찔 하더니 총구에서 공기 빠져나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움직임이 멎었다.

명백히 죽음을 알리는 눈앞의 광경에 친실장은 소름이 돋았다. 여지껏 뜨거운 공기가 기분나쁘긴 했어도 그것 때문에 실장석이 죽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던 친실장이었지만 눈앞의 들실장이 말라죽는 걸 봐버린 친실장은 주변을 둘러싼 대기가 더이상 무해하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한 친실장은 조용히 마른 침을 삼켰다. 어느새 친실장의 몸도 열사병의 초기에 접어들어가고 있었다. 친실장은 더위에 몽롱해진 정신을 집중해 상황을 정리했다. 

생각이 정돈될수록 친실장의 마음은 무거워져왔다. 눈앞의 길은 덥다는 수준을 넘어 동족이 죽을 정도인 것. 하지만 옆구리에 낀 500ml짜리 페트병을 시원한 물로 채워가지 않는다면 소중한 자들은 물론이고 친실장 또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몸은 그늘과 휴식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지만 이성은 수풀을 헤치고 보도블럭으로 나갈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명백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의 고통에 친실장은 욕지기를 느끼며 걸음을 떼었다.

직사광선의 햇빛은 친실장의 생각보다도 훨씬 뜨거웠다. 마치 빛이 질량을 가지고 친실장을 억누르는듯한 느낌에 친실장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정신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뜨거운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워 굽는듯한 느낌에 친실장은 숨도 쉬지 못했다. 친실장에겐 영겁같은 시간, 하지만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끝에 생명의 위기를 느낀 친실장은 목표로했던 수돗가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황급히 눈앞에 있는 벤치의 그늘 밑으로 몸을 던졌다. 

“데히이, 데히이, 데후우, 데후우우…보웨에엑-”

친실장은 맨땅에 고개를 쳐박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입에선 구토가, 총구에선 설사가 친실장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눈앞의 시야가 뒤틀리고 팔다리가 제멋대로 떨려왔다. 땅이 올라가고 하늘이 꺼지는듯한 감각에 친실장은 발라당 나뒹굴었다. 피부에 물집이 잡히고 속살을 지나 위석까지 뜨겁게 달궈진 듯했지만 더이상 벗을 것도 없어 친실장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은 듯 기절했다.

한참을 대자로 드러누워 호흡과 정신을 되찾은 친실장은 이내 자신이 너무 무방비하게 있었음을 깨닫고 주위를 살폈다. 힘이 바닥나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들실장은 언제 동족들에게 습격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공원 한복판에서, 더위에 지쳐 옷을 챙겨입는 것을 잊은 나체상태이기까지 하다면 더더욱. 그러나 공원은 죽은 듯이, 마치 친실장 외엔 아무도 없는 세계가 된 것처럼 조용했다. 

“데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모두 평소의 공원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지만 너무나 귀에 익은 매미 소리만 지루하게 울리는 공원에선 들실장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늘 수풀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들실장들의 고통에 찬 신음, 환희에 찬 함성, 공포에 질린 비명, 위선에 찬 아양이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마치 세상 모든 실장석이 사라지고 친실장만이 남은듯한 감각. 그 완벽한 일상이 들려주는 낯선 비일상에 어쩐지 겁이 난 친실장은 익숙한 곳을 찾아 그늘을 따라서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공원의 중심지에 해당하는 광장에는 아기천사가 나팔로 물을 흘리는 분수, 몇 대의 자판기와 쓰레기통이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더위를 피해 나들이를 온 인간 일가족과 그들에게 아첨하고 먹이를 얻으려는 들실장들로 북적거리던 광장엔 역시 몇 마리의 들실장이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일상은 사라져있었다. 

집 근처 그늘에 쳐박혀 비축해둔 물을 마시느라 친실장이 알지 못한 것은 바로 공원이 며칠 전부터 폐쇄되었단 것. 살인적이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난에 가까운 폭염에 정부로부터 외출 자제 권고가 내려지고 폭증한 물 수요 때문에 공원의 수돗가, 분수와 화장실이 단수상태라는 것. 따라서 공원의 들실장 전체가 생존에 필요한 물을 며칠째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장석이 아무리 카오스적인 존재라고 해도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면 죽는 것은 생물이라면 피할 수 없는 진리. 공원의 들실장들 중 멍청하지만 운이 좋아 태풍에서 살아남은 것들은 폭염의 며칠만에 모아놓은 수분을 모두 땀으로 배출해버리고 체온 조절 능력을 잃어버렸다. 땀으로 열을 배출할 수 없게 된 들실장들은 열사병으로인한 무기력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다가 쓰러져 그대로 구워졌다. 그밖에 친실장처럼 물을 비축해둔 들실장들은 가진 물이 동나자 갈증에 허덕이다못해 주변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수분인 자실장의 목을 따 피를 빨았다. 엄지와 구더기를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어 침을 내보기도 하고 테치테치 울부짖는 자실장을 붙잡아 머리를 따내서 솟구치는 피를 마셔 목을 축여보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침을 마시는 것은 언발에 오줌누기고 염분을 포함하고 있는 피는 오히려 갈증을 부채질할 뿐. 결국 후세를 맡기기 위해 마지막까지 남겨둔 소중한 자실장의 피와 뇌수를 남김없이 빨아먹은 들실장들은 타는 듯한 갈증으로 물을 찾아 광장으로 향했다. 

그렇게해서 친실장의 눈앞엔 스스로 자실장을 모두 죽여서 미쳐버리고 갈증에 돌아버린 들실장들이 만드는 광란의 현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광장에 오는 것으로 마지막 힘을 짜낸 한 들실장은 친실장이 광장에 오기 전에 본 녀석처럼 메말라 구토와 마른 방귀를 흘리며 쓰러져 절명했다. 조금의 여력이 있었던 한 들실장은 눈앞에 쓰러진 들실장의 목덜미를 물어 찢고 흐르는 피를 탐하다 햇빛에 몸이 익는 바람에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다. 좀 더 여유가 있던 한 들실장은 완전히 달궈진 수도꼭지를 붙잡고 헛되이 돌려보았지만 물이 나오지 않는 절망감에 위석을 자괴해버리고 말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뜨거운 햇빛이 작열하는 공원의 광장엔 그럼에도 물을 찾아나선 들실장들이 뇌까지 달궈져 이성이 마비된 채 죽음의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압도적인 죽음의 풍경에 오금이 저려온 친실장은 들고있던 페트병도 내버리고 온힘을 다해 도망쳤다.

40도가 넘어가는 기온, 그리고 그것을 상회하는 길바닥을 달리는 친실장의 몸도 이성도 천천히 고장나고 있었다. 무수한 들실장을 파멸시켜온 무모한 행복회로를 대신해 친실장의 목숨을 부지시켜온 이성이 마지막으로 내놓은 해답은 결국 인간에게 부탁하는 것. 그시점에서 친실장에게 남은 대안이 있었을까? 행복회로의 발로와 다를 바 없는 헛된 가능성에 기댈만큼 친실장에겐 더이상 시간도 선택도 남아있지 않았다. 스스로의 생명이 타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집에서 기다리는 자들을 위한 일념 하나로 물을 구하기 위해 친실장은 쉬지않고 공원의 바깥을 향해 달렸다. 고기 썩는 냄새와 고요한 숲을 뚫고 도착한 공원의 입구엔 출입금지라 적힌 금줄만이 걸려있었다. 

‘물… 닌겐상… 물… 자들에게… 물…’

몽롱한 정신으로 친실장은 금줄을 넘어 공원의 경계 바깥에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곧바로 엄습해오는 강렬한 열기를 느끼고 두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나마 녹지가 있는 공원과 달리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자동차와 더운 바람을 뿜어대는 건물 실외기, 물을 순식간에 증발시키고 햇빛을 반사하는 아스팔트 바닥의 열은 친실장이 서있는 길에 아지랑이를 만들 정도였다. 

그같은 환경을 친실장의 나약한 몸이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고온에 뇌세포가 파괴되며 의식이 부분부분 단절되고 기억이 흐릿해지는 친실장. 흘러가는 주마등 사이에서 친실장은 겨우 자들을 기억해내고 마지막 힘을 짜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평상시에도 데스데스 무언가를 요구해오는 알몸의 들실장을 상대할 이는 드물텐데 하물며 이런 폭염 속에서는 학대파조차 걸음을 멈출 리 없으리라. 결국 몇 분을 허탕친 끝에 기력과 인내심이 바닥나버린 친실장은 마지막으로 횡단보도에 서있는 검은 색 옷을 입은 다리를 토닥토닥 때려 주의를 끌고 입을 열려는 찰나, 정신이 아찔해지며 피를 토했다. 

“데복! 데보엑! 데이, 데즈아아…”

내부 장기가 무너지며 피를 토하는 와중에도 친실장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걱정은 인간, 그것도 검은 인간의 양복을 더럽혔다는 공포였다. 점심시간에 공원에 찾아오는 직장인들은 대개 점잖고 때떄로 도시락의 찌꺼기를 양보할만큼 우호적, 적어도 공격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선의를 착각해버리고만 분충들이 그들의 양복을 더럽히기라도 하면 분충들은 변변찮은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피떡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니 9회말 2아웃의 상황에서 찾아온 마지막 기회를 내야 뜬볼로 날려버린 것과 다름이 없는 친실장의 심정은 절망을 넘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려 하고있었다. 이제 전부 끝났다. 나는 물론 봄에 태어나 행복한 세상의 즐거움을 만끽해야 할 딸들도 고작 여름을 넘기지 못한 채 이대로 끝난 것이다. 체념한 친실장은 힘없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쓰러졌다.

“어머, 괜찮니? 안색이 많이 안좋아보이는구나.”

“...데뎃?”

하지만 단단한 구둣발 뒤축을 각오했던 친실장의 머리에 느껴진 감촉은 인간의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시원한 그늘과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그 의외로운 손길에 어리둥절한 친실장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로사리오를 쥔 손, 십자가 목걸이 그리고 검은 베일과 동그란 안경 밑에 걸린 인자한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천한 들실장에겐 과분한 신의 인도였을까? 친실장이 건드린 인간은 다름아닌 근처를 지나가던 수녀였던 것이다.

친실장은 기대하지도 않은 따뜻한 손길에 감동했지만 눈물샘이 말라버려 동그란 눈만 휘둥그레 뜬 채 ㅛ수녀를 바라보았다. 수녀는 가방에서 손수건과 물병을 꺼내 손수건을 적셔서 주저없이 친실장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물을 먹여주었다. 목을 타고 흐르는 단순한 생수가 친실장에겐 마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신, 아련히 그리워지는 마마의 밀크와 같이 느껴졌다.

“너희들도 많이 힘들겠구나. 그래도 힘내서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을 거란다. 아가들은 키우고 있니?”

“데, 데스! 데스!”

“후훗, 그래. 미안하지만 변변한 건 없고, 이거라도 가져가서 나눠주렴. 그럼 가볼게?”

신호등이 바뀐 걸 확인한 수녀는 생수병과 작은 쿠키 한 봉지를 친실장에게 주고는 길 건너로 사라졌다. 친실장은 선물을 꼭 껴안은채 수녀의 뒷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친실장도 들실장으로서 수없이 많이 인간들에게 아첨을 떨고 구걸을 해왔다. 그 때마다 값싼 동정심에, 작은 우월감에 음식을 던져대는 사람들을 향해 친실장은 고마움 대신 모든 것을 가진 인간들이 통 크게 굴지 않고 짜투리만 내놓는다 생각해 아니꼬움을 느꼈다. 노련한 들실장답게 대놓고 그런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친실장도 자기중심적인 실장석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수녀의 자애와 헌신 앞에선 미물에 불과한 친실장도 따뜻한 감정으로 위석이 뭉클했다. 친실장은 수녀가 떠난 방향을 향해 길게 고개를 숙였다.


수녀가 준 물로 목을 축이고 몸을 닦아준 물티슈의 습기가 마르며 몸이 시원해진 친실장은 자들이 목이 빠지게 친실장을 기다리고있을 집을 향해 달렸다. 돌아가는 길 또한 덥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친절한 수녀를 생각하며 왠지 어렸을 때 사별한 그리운 친실장이 떠오른 친실장의 발걸음은 무겁지 않았다. 친실장은 친실장으로서 또 하루 자들을 굶기지 않고 목과 배를 채워줄 수 있어 행복한 마음으로 크게 외쳤다.

“자드을~♡마마가 무엇을 가져왔나 보는데스~♡”

그러나 골판지 집의 분위기는 더운 날씨와 달리 얼음물이라도 쏟아진 것처럼 차가웠다. 더위를 견디는 것만으로 완전히 탈진한 장녀와 삼녀는 눈을 감고 죽은 듯 드러누워있었다. 그리고 차녀는 사녀의 배에 올라타 사녀를 죽어라 패고있었다.

”데, 차녀, 지금 뭐하는…”

“죽어테치! 죽어테치! 너같은 건 죽어버리라는테치!”

“테븟! 테벳! 치베! …”

“지금 뭘 하고있는데샤아앗!”

친실장은 차녀를 거칠게 밀쳐 골판지 구석으로 날려버리고 사녀의 상태를 살폈다. 얼마나 맞았는지 사녀의 얼굴은 붉은 피와 푸른 멍으로 얼룩져 모자이크처럼 되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남김없이 뽑히고 엉망진창으로 부어오른 사녀의 눈엔 눈물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마마앗… (파킨).”

사녀는 생명력이 바닥이 나 친실장의 손에 안기자마자 위석이 깨져버렸다. 분노한 친실장이 분노를 쏟을 대상을 찾아 고개를 돌려보니 차녀 역시 골판지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어있었다.

“이게 대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데스우우우! 오로로롱…”

분노, 슬픔, 혼란이 친실장의 마음에 소용돌이쳤다. 그러나 감정에 몸을 맡길 만큼의 여유가 친실장에겐 없었다. 친실장은 장녀와 삼녀의 입을 열어 물을 흘려넣고 쿠키 부스러기를 넣어주었다. 

“테에에… 마마아… 살아있던테치…?”

장녀와 삼녀는 다시 한 번 실장석다운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두 자실장은 눈꺼풀을 움직일 힘도 없다는듯이 눈을 뜨지 못했다. 그저 친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릴 뿐인 장녀에게 친실장은 말을 걸었다.

“장녀, 대체 동생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데스? 왜 차녀가 사녀를… 그토록 사이 좋았던 자들이…”

“너무 더웠던테치이… 더운데 마마가 오지 않아서 나는 짜증이 났던테치.. 그런데 사녀가 잠에서 깨서는 마마를 찾아 울었던테치… 가뜩이나 더운데 시끄럽게 구는 사녀가 짜증이 나서 나는 화가 많이 났던테치… 차녀도 삼녀도 화를 많이많이 낸테치이이… 테끅, 하지만 사녀는 계속해서 울었던테치… 우리도 마마가 걱정되는데 사녀는 마마가 오지 않을 거라고, 마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계속해서 울었던테치이… 나도 차녀도 삼녀도 이제 고아가 됐다고 했던테치… 그래서 테끅… 차녀가 화를 못참고 사녀를 막 때린테치… 나는 뒤늦게 말리고 싶었지만 힘이 없었던테치… 너무 더워서 아무런 힘이 나지 않았던… 테에엥... “

죽을 만큼 더운 날씨에 자실장들의 나약한 마음은 연약한 몸만큼이나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그리고 정신이 붕괴되지 않도록 억압된 감정의 배출이 절실했던 사녀는 마음 속 비관을 늘어놓는 것으로, 차녀는 쌓인 짜증을 폭력성을 분출하는 것으로 해소한 것이다. 친실장이 계속 옆에 붙어서 자들을 안심시켜주었다면 자들의 정신이 코너에 몰리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실장도 딱히 놀러나갔던 게 아니라 생존에 필수적인 물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외출을 감행한 것. 나아가도 죽고 물러서도 죽음 뿐이라면 두 자실장의 죽음은 필연이었을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답이 없는 현실속에 친실장은 무력감과 절망감에 휩싸여 눈물을 흘렸다.



지겨운 더위는 며칠 더 계속되었다. 매일 아침 어김없이 더운 날씨에 한숨을 쉬며 친실장은 눈을 떴다. 수녀가 준 페트병이 바닥나도록 장녀와 삼녀의 상태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집 구석엔 수녀에게 받은 쿠키가 조금 줄어든 채 남아있었지만 자들이 제대로 밥을 넘기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 친실장은 그것을 감히 먹지 못했다. 더운 열기에 모든 욕구를 잃어버린 일가는 영혼을 빼앗긴 인형처럼 하염없이 누워있기만 했다.

“이정도로 더우리라곤 듣지 못했던데스… 마마가 말해주지 않았던데즈우…”

지친 친실장은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생각하는 대신 두 자실장을 잃은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는데만 골몰했다. 사실 어떻게 해도 지금의 상황을 벗어날 방도가 달리 없는 것이다. 평범한 들실장이 자들을 쉬게 할 시원한 곳 따위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애초에 자들은커녕 친실장부터 체력이 바닥났기 때문에 그늘을 벗어나 뜨거운 길 위에 설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이런 상황에도 자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싶다.

“그래, 이정도로 덥진 않았던데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스… 분명 이정도는 아니었던데스…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는데스...”

친실장은 천천히 땀을 닦느라 뒤집어놓았던 자실장들을 바로 눕힌다. 뒤집한 장녀와 삼녀의 회색 눈동자.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팔과 근육의 힘이 풀어져 총구 사이로 주르륵 힘없이 흐르는 똥이 친실장에게 사실을 고한다. 장녀와 삼녀 또한 더위를 버티지 못했노라고.

“데프프프프프, 데퍗퍗퍗퍗퍄!”

엄밀히 따지면 오래 버텼다고 할 수 있다. 공원의 동족이 전부 더위에 타죽고 난 뒤에도 며칠을 더 버틴 친실장의 정신은 마침내 박살이 났다. 친실장은 등에 달라붙은 목숨과 같이 소중한 머리카락을 스스로 뽑아 던지며 외친다.

“더웠던데스! 이까짓 머리카락, 엉겨붙어서 성가신데스! 나는 독라라도 세레브한데스! 아름다운데스! 세상 모든 만물이 절세가인인 나의 알몸에 반해 경배하는데샤앗!”

식욕마저 사라져 물도 밥도 먹지 못한 친실장의 어디에 그런 힘이 남아있었는지 친실장은 모여드는 파리를 손으로 휘저어 내쫓으며 어두운 골판지를 박차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밖을 향해 뛰쳐나간다. 친실장의 눈에는 이미 이성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를 속박하던 이성이 사라진 친실장은 한 마리의 훌륭한 분충이 되어 들어줄 이 없는 공원과 세계를 향해 절규한다.

“데갸앗! 데갸아아아악! 나오라는데샤아! 마마! 햇님! 닌게엔!! 공원이 왜이리 더운데스아아아!”
“나는 이런 더위에 있을 몸이 아닌데샤아! 나의 딸들도 시원한 그늘 밑에서 차가운 스시와 미네랄 워터를 즐겨야 마땅할 몸인데스아아아! 알았다면 당장 나의 앞에 도게자해서 그동안의 더위에 대해 사죄하는데샤아아아!”
광란에 빠진 친실장은 멈추지 않고 덤불숲을 헤쳐 직사광선이 작열하는 정오의 보도블럭 위를 달린다. 치명적인 고온을 직감한 몸이 생체 기능을 하나 둘 정지시킨다. 장기가 기능을 상실하고 체온 조절 능력도 떨어져 어느덧 땀도 흐르지 않는다. 무릎이 마른 장작처럼 역방향으로꺾여 뒤로 쓰러져버린 친실장의 행진은 끝이 났음에도 눈이 뒤집힌 친실장의 절규와 저주는 멈추지 않는다. 

“왜 나를 괴롭히는데스! 태어나서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변변치않았던데스! 어째서 아름다운 나에게 콘페이토와 스테이크를 바치는 자가 없는데스!”

“마마는 나를 사육으로 만들 의무가 있었던데스! 똥닌겐이 불우한 나를 데려갈 책임을 져버린데스!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인데스우!”

“고귀한 내가 이렇게 노력한데스우! 그런데 세상은 왜 이런 지옥인데스우우!  데아아아아! 나는 단지 행복해지고싶었을 뿐인데스우우! 왜 내가 이렇게 불행한데스우우우우우우!”

…[파킨]




온난화가 초래한 이상기온은 당연히 공원의 들실장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전국의 모든 공원에서, 산과 밭과 들에서 인간도 견디기 어려운 폭염에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고있다. 하지만 폭염은 더이상 올해만 찾아오고 마는 일시적인 이상이 아니다. 빙하가 녹으며 그 속에 묻혀있던 온실가스가 해방되어 지구의 온도를 더욱 높이고 올라간 온도는 다시 빙하를 녹이는 악순환이 진행중이다. 여름의 긴 폭염과 겨울의 이상한파는 그 결과물일 뿐. 운이 좋아서, 혹은 고된 노력끝에 간신히 살아남은 들실장들이 과연 끊임없이 찾아오는 냉탕과 온탕의 세례를 견딜 수 있을까? 펄펄 끓는 지구를 위해 실장석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갖지않으면 모른다

 

"데갸아아아아악!!!!!"


오늘도 공원의 공중화장실에는 실장석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출산을 하던도중 습격을 당한것이겠지

소리가 들리고 잠시후 옷에 적록색 체액을 묻힌 한 성체실장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녀석은 자를 가진다는것을 증오하고있었다
한때 자신의 모친과 함께 학대파에게 잡혔을때 자신의 친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면서까지 살아남으려고했고 친에게 죽임당하기 직전, 학대파가 친을 죽여서 친이 절망하는꼴을 맛보고 기분이다! 하면서 자신은 살려줬던것이다

그 일 이후로 이 실장석은 자나 자를가진 친실장을 혐오하게되었고 주기적으로 출산을 하려하는 실장석들을 습격해서 처리하는것을 주로 하고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에 한 친실장이 도망치는 엄지를 붙잡아서 패는것을 목격하였다


"오마에는 분충데스 분충데스!! 또 보존식을 건든데샤!!!"

"레챠아아앗!! 마마!!! 죄송한레치!! 아픈레치!!"

"닥치는데샤!!! 보존식을 쳐먹었으니 오마에도 보존식행인데샤!!"

"레챠아아아아아아아!!!"


공원에서 흔히 볼수있는 광경
자를 식량으로 삼는 아주 흔한 일이다

그것을보고 성체실장은 다시 혀를찬다


[츳]


더러운걸 봤다는 느낌으로 혀를차며 비온뒤 고여있는 물웅덩이를 지나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평범한 실장석들과 같이 식량, 보존식, 물병 등 있을건 다 있다

다른거라면 새끼의 존재나 흔적이 아예 없다는것



몇일쯤 지났을까 자신의 몸에 이변을 눈치챘다
평소라면 금방 따라잡아서 죽여버렸을 친실장을 놓친다던가
이상하게 배가 더부룩한데 식량을 많이섭취한다던가
이상한 느낌이 계속 드는것이다
설마하며 강가에 가서 물에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는데 양쪽눈이 녹색이다... 임신의 증거인것이다

자신은 분명 총구도 만지지않고 팬티도 깨끗하게 관리하는데 어째서 임신한거지!?

하고 생각하니 며칠전 화장실에서 임신실장을 처리하고 돌아오던길... 무시하고 밟고 지나온 물웅덩이에 꽃가루들이 떠있던것이다

물이 튀며 팬티에 묻었고 팬티에 꽃가루가 총구쪽으로 침투한것이다


자신이 평소 혐오하던 임신실장이 되버리자 혐오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어서 이 녀석들을 없애버려야한다...!!


다짐하고 손에 상처를내서 붉은색 피를 낸 후 자신의 한쪽눈에 바르려던 순간...


[움찔]

"...!"


구더기보다 미세한 자그마한 움직임이었지만 성체실장의 몸은 굳어버렸다
자신의 안에 생명이 있다... 라는것이 느껴진것이다



결국 낙태를 하지 못하고 부푼 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기가 사냥한 임신실장만 해도 두자릿수
하지만 자기또한 임신실장이 되버렸다

배를 어루만진다
자신의 배가 아닌것같이 좀더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게 자를 갖는다는것인가
이게 자인가...


자신이 평생을 증오해온 대상이 이렇게 따스할줄 누가알았겠는가

성체실장... 아니 임신실장의 입에서 처음불러보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뎃데로게~ 뎃데로게~ 마마는 오마에들을 사랑하는데스... 잘태어나주는데스 오마에들은 상냥하고 사랑스럽고 복받은 자랑스러운 와타시의 자인데스~ 뎃데로게~"


알고 말하는것이 아닌 본능으로 나오는 노랫말

위석에 수십, 수백년에 걸쳐서 각인된 정보
그것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몸을맡기고 노랫소리를 흘려내고있다


임신실장은 처음으로 행복이라는것을 느꼈다



.
.
.



시간이 흘러 슬슬 자들이 나올것이라고 위석이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둔 거대한 대야에 생수를 들어붓고 그곳에 출산자세를 취하고 잠시 기다렸다

화장실출산은 자신이 여러번 습격햇기에... 죄책감이 느껴져서 그곳을 이용하는것은 포기하고 집안에서 출산하기로 했다

그만큼 화장실출산이 위험하기도 하고 자신의 자들이 소중해서 내린 결정인것이다

기다림도 잠시 금방 양눈이 빨간색이 되며 산통이 시작되었다


"데..데에!! 자들은 어서 나오는데스!!!"

"데갸아아아아아아앗ㅡ!!!"


"텟테레!"
"텟테레!"
"텟테레!"
"텟테레!"
"텟테레!"


서둘러 점막을 제거하고 손발이 자라나는걸 기다려보니
첫출산임에도 무려 건강한 자실장만 5마리가 나왔다
평소 영양분이 풍부하고 실장석들을 처리하던 근력이 있기에 성공적인 출산이었다


"잘태어나준데스 와타시의 보배들... 오로롱"

"""테치테치테치!"""


드디어 임신실장이 아닌 친실장이 된것이다
친실장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자실장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꼬옥 안아주었다

이제... 이 사랑스러운 자들과 함께한다면 앞으로의 실생이 행복으로 가득할거라는 기대감에 가득차있었다


.
.
.



하지만 행복은 길지 못했다

상자앞에서 일가가 사이좋게 놀고있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한 학대파의 눈에 띄어버린것이다

멋모르고 학대파에게 다가간 멍청이 삼녀가 짖이겨지고


"테벳"


도망치던 겁쟁이 사녀가 학대파의 돌에맞아 절명하고


"테뱌앗!!"


덤벼들던 용감한 장녀가 발에차여 바닥의 얼룩이되고


"챠아아아아아!!!,벳"


아양떨던 분충 오녀는 그대로 학대파가 손으로 꽉짜서 끔찍하게 짜여죽었다


"테,.테...!챠아아아베베벱벫....뿌득"


남은것은 자신과 차녀뿐


"사이좋은 가족이 이렇게되니 어때...? 똥벌레야"


학대파는 웃으며 내려다보았다

총구가 느슨해지며 빵콘을 할것같았지만 차녀를 위해서라도 총구를 조였다
차녀만은... 차녀만은 어떻게든 살려야한다
저 학대파는 자신들이 행복해보이기에 죽이려는것이다..
그럼....


친실장은 깨달았다



"닝겐상...! 와타시의 자를 와타시가 죽일테니 와타시만큼은 살려주는데샤!!"



그때 자신을 바라보던



"이런 똥벌레는 와타시가 보존식으로 쓰려한데스 어차피 소모품이니 와타시는 죽기싫은데샤!!!"



자신의 친의 적록색 눈물의 의미를



"오마에 똥벌레가 와타시를 위해 희생하는데샤아아앗!!!"





이제는 이해 할수있을것같다









그리고 친실장이 마지막으로 본것은
학대파의 적록색 빠루였다



[콰직]




.
.
.



"푸하하하핫...역시 똥벌레는 똥벌레인가"

"..테챠 똥마마인테챠아아!!!! 잘뒤진테챠 똥오바상!!"

"..야"

"텟!?"


학대파가 무서운 눈으로 차녀를 내려다보자 차녀가 움찔하였다


"오랜만에 재밌는걸 봤으니 넌 특별히 살려주마 크큭.."


학대파는 비웃으며 그 자리를 떠났고
적록색 체액이 잔뜩묻은 잔해들과 차녀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이세상에 상냥한 마마따윈 없는테치... 와타치가 성장해서 다 슬픈일을 해주겠는테치"


굳은얼굴의 자실장 한마리가 자신의 골판지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일뿐이었다








실장석과 메시아 (선공)

 

시 외곽의 생태공원, 막 겨울의 추위가 가시고 공기 중에 은근슬쩍 따스함이 느껴지는 시기에 그 녀석이 나타났다.

"닝겐은 항상 우리 자매들을 위하여 봉사하던 존재였던데스! 다시 그런 세상이 도래할 것인데스!"

봄을 맞아 골판지 상자의 보수, 보존식 보충, 춘자의 출산 준비 등으로 정신없이 바쁜 실장석들 사이에서 열심히 '인간 노예설'을 전파하는 녀석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반응이 그닥 좋지 않았다.

"시끄러운데스! 닝겐이 노예인걸 누가 모르는데스!"
"데햐햐햐!! 저년 아마 버려진 사육실장인 모양인데스"

그러나 점차 '닝겐은 물론 삼라만상이 실장석을 위하여 봉사하는 세상이 곧 온다!'는 달콤한 말을 줄기차게 쏟아내는 이 실장석에게 귀를 기울이는 녀석도 한 둘 생겨났다.

"... 그래서 닝겐은 우리 자매들을 모시던 시절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고 저렇게 포악하게 변한 것인데스"
"데히..."
"데..."

이제부턴 메시아라 하겠다. 메시아가 실장석 들에게 전파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한 때 닝겐은 물론 모든 동물과 하늘마저 실장석 자매들이 원하는대로 따르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수억만년간 고귀한 자매들을 모시며 평화롭게 돌아가던 우주는 변절자에 의하여 위기를 맞는다.'

'자매들 사이에서 실취석이라 불리던 무리가 배신을 한 것이다.'

'그녀들은 세상에서 실장석에 대한 기억을 지워 버렸으며, 거기에 더해 자매들을 혐오하도록 기억을 조작하기까지 했다.'

'세상은 더이상 자매들을 모시지 않았고, 오직 실취석만을 위하여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원래부터 실취석에 대한 증오가 대단한 실장석들이기에 실취석이 악당이라는 점에 쉽게 동의를 했고, 더불어 저 꼴보기 싫은 실취석년들에게 닝겐들이 좋아 죽는 미스테리(실장석 입장에서)를 풀어주는 이야기에 순식간에 메시아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실장석들이 늘어났다.

"그,그,그,그럴줄 알았던데스!!!"
"데에... 이제야 이해가 가는데스 그래서 그 못생긴 년들을..."

메시아의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실장석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데스! 실취석년들이 모든 것을 조종하지는 못하는데스!"

메시아는 거기에 항상 실장석들이 수긍할만한 답을 하였다.

"자매상... 와타시가 예쁜 옷을 입고 있다고 치는데스... 그 옷을 자매상이 억지로 뺏으면 어떻게 되는데스까?"
"데에... 데... 찢어지는...데스?"
"바로 그것인데스 실취석들은 자매들을 배신하고 힘을 빼앗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힘이 사라져버린데스"
"데에... 어리석은 년들인데스..."

그리고 마침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실장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럼...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가 다시 닝겐 위에 설 수 있는데스까?"

이때부터 메시아는 단순한 이야기꾼을 넘어 일종의 사상가가 되었다.

메시아는 닝겐들이 자매들을 모시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려면, 모든 실장석들이 그 때처럼 고귀한 마음을 가지고 우아하게 행동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 목욕하고 옷을 빨아 몸을 청결히 유지하고, 서로를 죽이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며, 똥도 아무데서나 싸지르지 않고, 성욕에 미쳐 총구를 쑤셔대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 자매들의 모습을 보고 세상이 예전의 기억을 회복할 것이고, 원래 자매들의 것이었던 모든 권능이 돌아올 것이다. 이것이 메시아의 주장이었다.

공원의 실장석들은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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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공원의 풍경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지금쯤 말라 죽은 독라의 시체가 뙤약볕 아래 흩어져 있고, 그늘에는 갈증에 미쳐버린 실장석들이 서로를 뜯어 피를 마시고 있어야 하지만, 누구도 그런 광경을 보지 못했다.

"자매상 안녕한데스? 여기 물을 좀 들어보는데스야~"
"자매상 감사한데스~"

실장석들은 서로 협동하여 혼자서는 꿈도 못 꿀 양의 물을 길러오고, 심지어 서로 나누고 있었다. 이번 여름, 공원에서 탈수로 죽은 실장석은 한 마리도 없었다.

"데에~ 아직도 저기 골판지에 사는 자매가 있는데스?"
"데뎃! 어서 치워야 하는데스!"

메시아의 지시에 따라 골판지 집들은 모두 철거되었다. 메시아에 따르면 실장석들은 본래 요정같은 존재로 하늘의 날씨마저 조종할 수 있었기에 비바람을 막아줄 집 따위는 필요 없었고, 집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초라한 골판지 집은 절대 아니었다고 한다. 따라서 골판지 집들은 닝겐이 자신의 예전 주인을 떠올리는데 있어 방해가 되는 요소에 불과했고, 철저하게 파괴된 것이다. 대신 모든 실장석들은 공원의 정자나 커다란 나무 밑에 함께 모여 공동생활을 하고 비를 피했다.

물론 골판지 집이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저항이 없지는 않았다.

"데갸아아아악!!! 무슨 짓인데스!! 왜 우리 집을 부수는데스까!!!"
"자...자매상 진정하는데스!!"
"비켜라데스!! 비켜데스!!!"

특히 똑똑했던 소수의 실장석들은 메시아의 말을 믿지 않았고 자신들끼리 뭉쳐서 사람은 물론 실장석의 발길도 닿지 않는 공원의 깊숙한 곳으로 골판지 집과 함께 숨어버렸다.

매일 아침 공원을 따라 흐르는 강변은 세탁과 목욕을 하려는 실장석들로 붐볐다. 덕분에 이 공원 안을 돌아다니는 실장석들의 위생상태도 급격하게 올라가, 처음 공원을 방문한 사람이 보면 '왜 여기엔 사육실장밖에 없지?'라는 의문을 품을 정도였다.

식생활도 상당히 달라졌다. 원래 주식이었던 음식물 쓰레기는 닝겐들에게 혐오감을 주기에 최대한 비중을 줄여야 했다. 실장석들은 공동사냥을 통해 예전이라면 절대로 잡지 못했을 날벌레들을 사냥할 수 있었고, 그 외에 식용이 가능한 공원 내 식물과 과실, 기타 잡기 쉬운 달팽이, 애벌레 등을 모아 함께 먹었다.

공원의 방문객들에 대한 태도도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이라면 먹을거리를 가진 사람에게 앞다투어 달려들어 당장 손에 든 것을 바치라고 아첨을 하며 발광했겠지만, 이젠 더이상 그런 녀석들을 볼 수 없었다.

"우리가 왜 아첨을 해야하는데스?"

메시아는 말했다.

"아첨은 닝겐이 자매들을 향해 해야할 것인데스, 왜 우리가 아첨을 하는데스?"
"데에..,"
"닝겐들의 기억 속에 아첨하는 자매들은 없는데스, 오직 닝겐의 봉사에 정중히 인사만 하면 충분했던데스"

이제 사람들이 가끔 남은 도시락을 던져주면, 그것을 받아 꾸벅 인사하고 서로 나눠먹는 실장석만이 있을 뿐이었다.

공원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반긴 것은 물론 애호파들이었다.

"OO공원의 실장석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OO공원의 실장석들은...!"

그닥 인기 없었던 이 공원은 어느새 전국 애호파들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나날이 공원을 찾아 오는 애호파의 수는 늘어갔고, 그만큼 입소문도 빠르게 퍼졌다. 반대로 실장석들 또한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변해가는 닝겐의 태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닝겐들도 조금씩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데스! 자매상들 모두 힘내는데스야!"

메시아가 외쳤다.

"이제 조금인데스!"

실장석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공원은 주말이면 이 특별한 실장석들을 보기 위한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북적였고, 아이들과 자실장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애호파 부모들은 실장석을 신뢰하였기에 갓난아이라도 실장석과 함께 놀도록 내버려두었고, 실장석 또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행동하였다. 

가을이 다가올 무렵엔 어찌나 방문객이 많아졌는지, 실장석들은 더 이상 사냥이나 채집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남긴 음식만으로 배를 채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앞서 골판지를 잃지 않기 위하여 공원 깊숙히 숨어버렸던 똑똑한 개체들조차 이 변화를 감지하였고, 자진하여 자신의 골판지집을 해체하여 바치며 이제부터 메시아를 따를 것임을 맹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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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제 1회 실장석의 날(10.05) 기념행사  축]

공원 곳곳에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이 곳에서 처음 발견된 실장석들의 독특한 생활 문화를 애호파들이 적극적으로 홍보한 결과이다. 정부차원에서 10월 5일을 실장석 보호를 위한 기념일 정했고, 첫 실장석의 날을 맞아 OO공원에서 성대한 행사가 있을 예정이었다. 시장과 구청장, 몇몇 시의원을 포함해 애호파 국회의원까지 참석이 예정된 대형 이벤트였다.

그리고 그 중 한 플래카드 아래 야심한 밤임에도 공원의 거의 모든 실장석들이 집결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메시아가 오늘 한 가지 말을 전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한데스야~"
"그러게 말인데스 메시아 자매께서 이렇게 모이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데스"

기대와 흥분,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기다리는 실장석들 사이로 메시아가 올라선다. 여기저기 낮은 환호가 터져나왔다.

"자매 여러분 안녕하신데스"
"""안녕하신데스!!"""

메시아의 인사에 실장석들이 복창했다.

"오늘 모인 것은 다름이 아니라 드디어 닝겐들이 우리를 기억해냈기 때문인데스"
"""...!!!"""

갑작스러운 메시아의 선언에 할 말을 잃은 실장석들이었다. 개중 몇몇은 울음을 터뜨렸다.

"데흑...데흐흑... 드디어 기억한데스까..."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온 공원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왜 이렇게 늦은데스 닝겐!! 조금 더 빨리 우리를 기억했으면 장녀는 죽지 않아도...!!"
"오로로로롱!!!"

다만, 의심 많은 실장석도 있기 마련이다.

"메시아 자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데스까? 와타시는 오늘 닝겐한테서 별다른 변화를 못 느낀 데스야!"
"그런데스 그런데스"

메시아가 플래카드를 가리키며 답했다.

"오늘 공원 곳곳에 걸린 저 천을 보지 못한데스?"
"데에?"
"저 천에는 정확히 이렇게 적혀있는데스... '자매들의 날이 도래했으며 그것은 바로 내일'이라고!!!"
"데뎃!!!"

그러자 불완전하게나마 글을 읽을 줄 아는 몇몇 실장석들이 플래카드의 문구를 읽어나간다.

"하나... 회?... 짓...소우세...키의 날... 마,맞는데스!! 맞는데스야!!!!!"
"데샤아아아아아아!!!!!"

메시아의 말을 뒷받침해주는 증거가 나오자 공원은 이제 환호의 도가니다.

"그...그러고보니 요새 날씨도 더워 죽겠다가 갑자기 선선해진데스야??"
"맞는데스!! 하늘씨도 이제 우리의 말을 따르는데스!!"
"내일이면 스시도 스테이크도 한가득인데스!!"
"마마!! 와타치는 옷이 더 갖고 싶은테치!"
"마음대로 요구하는데스 장녀! 내일이면 모든 닝겐이 우리에게 봉사하는데스!!"

메시아가 흥분한 군중을 진정시킨다.

"그만하는데스!!!"
"데뎃!"
"우리의 위치를 잊은데스까? 아무리 닝겐이 우리를 기억했다고 해도 우아하게 행동해야하는데스!!"
"데... 그. 그런데스"
"맞는데스 맞는데스"

메시아가 말을 이어간다.

"내일부터 시작될 닝겐의 봉사는 당당하게, 절대 비굴하지 않게 받는데스! 스시와 스테이크, 콘페이토 모두 한가득이지만, 우리 자매들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세상의 지배자로서 복귀하는 날인데스야!"

메시아의 말에 실장석들이 차분해진다.

"그런데스..."
"그치만 지금까지 닝겐이 와타치타치에게 한 짓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테..."
"아닌데스 장녀!! 그런 것도 모두 용서하는 것이 지배자의 자세인데스!!"

메시아가 미소 짓는다.

"그럼 오늘은 모두 푹 쉬고 내일 있을 귀환식을 준비하는데스"

마지막 말을 마친 메시아는 다시 실장석들 사이로 사라졌다. 실장석들 또한 살짝 들뜨긴 했으나, 메시아가 말한 '지배자의 품위'를 유지하며 해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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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들의 집회가 있었던 다음 날, 공원은 제 1회 실장석의 날을 맞아 아침부터 붐볐다. 방문객들은 저마다 푸드를 잔뜩 싸들고 와 행사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고, 개중에는 콘페이토를 챙겨온 사람도 있었다. 실장석들은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제 메시아의 주의에 따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새침하게 공원을 거닐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회자의 인사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오늘 이 자리를 찾아와주신 여러분,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초록 아가씨 여러분 반갑습니다!"

애호파 방문객들에게 웃음이 번졌고, '주인공' 그리고 '아가씨'란 단어를 포착한 실장석들은 가슴이 터질듯 뛰었다.

"제 1회 실장석의 날을 맞아 OO공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벤트를 준비하였습니다. 먼저..."

사회자의 안내가 이어지고, 몇몇 참을성 없는 자실장들은 조그맣게 불만을 표한다.

"마마... 언제까지 이 새끼 닝겐이랑 놀아줘야 되는테치? 이제 빨리 스시와 스테이크를 먹었으면 하는테치요..."
"데후후 3녀 조금만 기다리는데스요? 아무리 하인이어도 함부로 부리면 안되는데스"
"테..."

몇 분간 행사 내용을 소개한 사회자가 말했다.

"그럼~ 먼저! 공원의 실장석들을 위한 '푸드 대폭발'이 있겠습니다. 방문객 여러분은 모두 가지고 오신 푸드를 나눠어~ 주세요!!"

사회자의 지시에 방문객들이 환호와 함께 푸드를 실장석들에게 뿌린다.

평소라면 눈이 뒤집혀서 푸드를 주워 먹었을테지만, 이미 '세상의 주인' 자리에 올라와 있는 실장석들에게 닝겐의 이런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단 한마리의 실장석도 바닥에 떨어진 푸드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일부는 발을 동동 구르며 항의했다.

"데뎃!! 뭐인데스!! 좀 더 정중하게 주지 못하는데스!!"
"테챠아!! 무례한테치!!"

예상과는 달리 실장석들의 반응이 차갑자 방문객은 물론 사회자마저 당황했다.

"음...크흠... 사실 오늘처럼 좋은 날에 아가씨들에게 푸드만 드릴 수는 없죠!"
"바로 맞는데스!!"
"좀 정신이 드는데스까?"
"그럼~ 푸드 대폭발에 이어서 바로 '콘페이토 대폭발'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방문객들은 '와~'하는 환호를 지르며, 실장석들에게 콘페이토를 뿌렸다. 후두둑 떨어지는 콘페인토를 머리에 맞은 실장석들의 심기는 이제 한계까지 불편해졌다.

"데...데...데샤아아아아아!!!"
"이게 뭐하는 짓인데스아!!!"
"하인이 미친테치... 미쳐버린테치..."

한층 더 가라앉은 실장석들의 반응에 방문객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고, 몇몇 어린아이들은 기대와 다른 실장석들의 험악한 모습에 빼액 울음이 터져버렸다. 사회자 또한 1시간 정도로 기획되었던 '푸드 대폭발'과 '콘페이토 대폭발'이 단 5분만에 마무리 될 위기에 처하자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사실~ 오늘 행사에서 가장 큰 선물은 푸드와 콘페이토 따위가 아니죠? 그럼 바로 오늘의 메인 코스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무대 뒤를 향해 급하게 손짓을 하고, 당황한 관계자들이 뛰어나가 방문객 사이로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거대한 트럭이 들어온다.

"데후..."
"이제야 말귀를 좀 알아듣는데스까?"
"테프프프 닝겐이 미쳐버린줄 알았는테치요?"

마침내 기대를 충족할만한 크기의 무언가가 나타나자 실장석들은 다시 와글와글 신이 났다. 방문객들 사이에서도 다시 미소가 번진다. 사회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트럭을 개방하도록 지시한다.

"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선물을 제공해주신 OO택배 김철웅 대표이사님 인사 들으시죠!"

트럭의 지붕이 열리며 나타난 것은 인상 좋은 대머리 아저씨와 튼튼해 보이는 골판지 상자들이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OO택배 김철웅입니다. 오늘 제 1회 실장석의 날을 맞아 OO공원의 작은 아가씨들을 위하여 저희 OO택배에서는 저희 회사에서 사용하는 상자를 이용하여 300개가 넘는 골판지 집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자는 저희가 취급하는 고가의 화물을 담기 위하여 튼튼한 내구성은 물론 방수, 보온, 심지어 제한적인 방화 기능까지 갖춘..."

철썩!

김철웅 대표의 말을 끊은 것은 커다란 운치 덩어리였다. 누가 던졌는지는 모르지만, 정확한 제구력으로 김철웅 대표의 비어있는 정수리를 제대로 메꿔버렸다. 동시에 수십 수백의 운치가 김철웅은 물론 사회자와 방문객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치아아아아악!!! 더 이상은 못참는테챠!!!"
"죽어데스!!! 노예 죽어데스아!!!"
"언제 저 따위 골판지 달라고 했냐데스!!! 너희 집을 바쳐라데스!!"
"대체 어떤 하인이 주인을 골판지에 살게하는데스까아아아아!!!"

공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반 년 넘게 눌러왔던 실장석의 본능이 기대가 무너지자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백여마리의 성체실장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아래의 방문객들을 향해 일제히 똥을 투척하고, 방금 전까지 갓난아이와 공놀이를 하던 자실장들은 이제 아기의 손을 묶고 입에 정신없이 똥을 처넣고 있었다.

"저 녀석 맞춘데스!! 이제 저 닝겐은 와타시의 것인데스아아아!!"
"이제 이 새끼 닝겐은 공식적으로 와타치의 노예테치이이이이!!!!"

또 몇몇은 그 동안 참았던 성욕을 폭발시켜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아이들 앞에서 집단 자위를 시작했다.

"데후 데후 거기 오마에 나름 미소년인데스야?? 와타시를 위해 봉사를 하는데스~웅"

이 지옥같은 광경은 어린이들에게 평생 함께할 트라우마를 심어주기에 충분했으며, 심지어 일부 심약한 성인마저 기절하게 만들었다. 오늘 행사에 참석한 사람 거의 대부분이 애호파였던 점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누구도 이 난동을 폭력으로 저지할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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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의 날 행사가 악몽으로 변해가는 것을 멀리 떨어진 벤치에 앉아 다소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어느새 다가온 메시아가 앉았다.

"고생했다 미도리아"
"감사한데스"
"음... 그냥 골판지만 다 버리게 해서 겨울에 전원 동사하는 시나리오로 가려고 했는데"
"데에..."
"실장석의 날인가 뭐시긴가 보고 시나리오를 조금 바꾼게 일이 너무 커져버린 것 같다"
"죄송한데스"
"니가 미안해 할 건 아니지"

남자는 마침내 신고를 받은 구제업자들이 도착하여 발광하는 실장석들의 머리통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을 확인한 후 벤치에서 일어났다.

"다음 공원으로 가자 미도리아"
"하이데스!"








사돈 남 말

 

「죄송합니다. 안타까옵게도, 귀하와 함께하지 못함을 전해드리게 되었습니다. 부디 다음번에도 귀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뵙길 소망하오며, 귀하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지갑은 이미 돈이 떨어진지 오래고,
양복은 보이지 않게 해져 안감이 떨어지는 판이며
구두는 굽이 닳았습니다.


딱 한벌 있는 양복입니다.

살아생전에 양복 잡수시고 일할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마이너스 통장 한도까지 땡겨보겠읍니다.
하지만,

그럴 행운은 제 평생에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지갑은 돈이 떨어진지 이미 오래라서요,
제발 부탁에 한달에 한 번이라도 돈 얼굴을 뵈옵고 살기를 소망하는 바이오니

'아이고 어디를 가셨다가 이제 오십니까'
하고 절을 해야할 판입니다.

이제 진짜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저는 어떻게 해야 쎄레브한 양복을 잡수시고 남들과 같이 살아 보겠읍니까?

제가 무엇이 그리도 부족하시길래
다들 저를 싫어하십니까?

하고 백주 대낮에 부모도 몰라보게끔 술에 취하신 토시아키씨,

그네에 걸터앉아 참이슬을 빨간 딱지로 나발을 부시는 오후 한낮이다.


노란 병아리차 한대가 토시아키씨 앞을 지나간다.
인솔 선생님의 눈길이 한심을 띄었다가 경계를 보인다.

아이들 부모도 제각기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다.

부모도 몰라보는 낮술에 남의집 귀한자식을 알아볼리 만무하다.

아아니, 나도 남의 집 귀한자식입니다. 우리 엄마아빠 나를 얼마나 이뻐하시는데요!

하고 술주정에 탄식하는 소리가 그대로 세레브하신 미시들에게 들리니
지금이라도 경찰이 들이닥쳐도 할 말 없겠지만

양복이 토시아키씨를 살렸다.

양복 아니었으면 그대로 망세간지갑자로 은팔찌행인 것이지만

나는 죄가 없소 하고 양복이 토시아키씨를 살린 것이다.


다시 오후 네 시의 공원이 따분한 햇살 아래 소주병이 빛난다.


「닌겐상, 세레브한 닌겐상, 와따시의 자들이 예쁘지 않은데스우? 틀림없이 행복해지는데스우!」

벌개진 시선에 자기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 참피가 자 네마리를 몽주리몽주리 데리고 토시아키씨 발 아래 섰다.
자기 자식 이쁘다고 하늘 높게 치어든 손에 꼬질꼬질한 참피새끼 하나가 토시아키씨에게 환하게 웃어주고 있다.

자기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나 한다던데, 지금 토시아키씨 눈에 남의 집 귀한 자식이 신경이나 쓰이는 눈인가
하고 물어도 대답없는 것은 팔불출에 반편이기 때문에 그렇다.

면접에서 번번히 물 먹고도 포기할 줄 모르는 토시아키씨나
번번히 탁아로 좋은 꼴 못보는 참피들이나 매한가지인거 같은데

과연 여기의 어디에서 시너지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까.

문득 이력서가 갑자기 토시아키씨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가 시너지 효과가 번득이는데

대체 이 참피들은 무슨 근거로 행복해진다고 하는 것인지 토시아키씨가 목을 가다듬고 묻는다.


「귀하께서 저에게 탁아하시려는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와따시다찌를 키우면 행복해지는데스! 쎄레브한 옷을 입은 닌겐상은 틀림없이 쎄레브한 닌겐데스우! 그런 닌겐상에게는 쎄레브한 와따시의 쎄레브한 자가 딱인데스우!」

「귀하께서 저에게 자를 탁아하시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십시오.」

「주위를 둘러보는데스! 쎄레브한 와따시다찌와 쎄레브한 닌겐상밖에 없는데스! 천생연분인데스!」

전혀 설득이 되지 않고 있다. 갑자기 토시아키씨 마음에 열불이 인다.


「죄송합니다. 귀하의 자와 함께하지 못함을 전해드리게되어 매우 유감임을 전해드리는 바이오며, 부디 다음번에 다시 좋은 인연으로 만나뵙기를 소망합니다.」

하며, 소주병 주둥이로 쳐든 자의 모가지를 따버린다.

이제는 아예 외워버린 대사다. 이게 뭐냐.

지금 복무신조 외우자는 것이냐.

따인 자의 모가지에 지랄에 발광하는 것은 친실장만 그런것도 아니다.
토시아키씨 마음에도 열불이 이는 것이다.

시방 나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것도 아니고 돈벌자고 지금 이지랄떠는 중인데
이새끼들은 목숨보다 귀하다는 자식의 생명을 가지고 면접을 이따구로 보다니

그 죄가 죽을죄라는 것을 알려줘야만 한다. 이것은 토시아키씨의 사명이다.


「닌겐상! 닌겐상! 그럼 이 자는 어떤데스우!! 아까 자는 솔직히 분충이었던데스!! 이 자는 닌겐상의 마음에 쏙 들것인 데스!」

「그런데츄! 와따치는 운치도 잘 가리는데츄! 춤도 노래도 잘하는데츄!!」

「귀하께서는 춤과 노래가 장기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잠깐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닌겐상은 잘 듣는데츄! 두눈 크게 뜨고 잘 보는 데츄! 와따시가 춤추고 노래하는데츄!!」

이 나른한 초여름 오후에 소주병을 끼고 앉은 사람 앞에 참피 씰룩대봐야 노친네들 젓가락장단만큼도 못한 것이다.

토시아키씨가 안주삼아 그대로 꼬질꼬질한 자실장 대가리를 씹어버린다.
들실장 꼬질꼬질한 기름기 반질반질한 머리카락이 토시아키씨 입에 걸리지만
취객에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부모도 못알아보는 낮술을 우습게 보는게 아니다.

「데갸아아!! 똥닌겐 뭐하는데샤!! 와따시 자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데샤!!! 그 자는 제일 귀여웠단 자인데샤!!!」

지랄 발광으로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철지난 참피의 대가리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주병목을 손에 쥐고 대가리를 후려주었다.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다.

그 증거로 움푹해진 대가리를 손으로 감싸고 쩔쩔매는 80년대 아동교육만화에 나오는 혹달린 소년 꼴을 지금 참피가 하고 있지 않느냐.

전통은 시공을 초월하여 소중한 우리것을 전통이라 한다고 얼핏 배운것도 같으니
그래도 소주병은 아직 한 개 남았다.

「금번 저희 회사에 지원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면접을 잘 보시면 사육 실장이 되십니다. 면접을 못 보시면, 여기 소주병 한 개로는 여러분의 대가리를 따서 보관하고, 여기 소주병 한 개로는 여러분의 대가리를 움푹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똥닌겐!! 그런 소리는 더 일찍하라는데샤!!! 와따시다찌는 면접이 뭔지 모르는데샤!! 사육 실장을 하는데샤! 쎄레브한 와따시다찌인데샤!!!! 쎄레브가 와따시다찌에게는 어울리는데샤!!」

이런 멍청한 발언은 문답이 무용이다. 옆에 있던 참피 하나 또 박살내준다. 아직 발언하지도 못한 자실장이지만 아마 토시아키씨도 이렇게 면접 떨어진 적이 있었을 것이다. 틀림없다.

「여러분이 사육실장이 되시면 저에게 무엇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엇을 하는 데스!! 똥닌겐이 오히려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냐는데스!!」
불이 치밀어올라 소주병으로 죄다 밀어버려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려다가, 문득 묻는다.

「연봉 협상을 먼저 말씀하십니까. 1년에 콘페이토 12봉을 드리겠습니다.」

「무슨말인데스!!! 많은것인지 적은것인지 모르겠는데스!! 똥닌겐은 더 쉽게 말하는데샤아악」

토시아키씨 속에 불이 난다. 열불이 난다. 마치 예전 철없던 시절 자기 모습 보는 것도 같다.
온갖 병신같던 예전 일이 주마등으로 스쳐지나가고있다. 그래도, 다년간의 면접탈락으로 이제 얻은 것이 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좀 뭔가 알 것도 같다.

「좋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스테이크, 1주일에 콘페이토 세 알을 드리고 하루에 세 번 일반 실장 푸드를 드리겠습니다.」
「데프프프, 좋은데스! 하루에 세 번 콘페이토를 주고 일주일에 네 번 스테이크가 와따시다찌에게 어울리지만 특별히 많이 봐준데스. 어서 우리들을 데려가는데스!!」
「저희 회사에는 그렇게 많은 참피가 필요없습니다. 자실장 하나만으로 족합니다. 지원자께서는 좀 더 깊은 고려를 부탁드립니다.」

「와따시다찌중에서 자 하나라니 터무니없는데스!! 쓸데없는 소리인데샥!!」

「조건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스테이크, 일주일에 세 번 콘페이토, 하루에 세 번 일반 실장푸드로 여러분은 무엇을 주실 수 있습니까?」

「세레브한 와따시의 삼녀를 키우는데스! 차녀는 분충이고 장녀는 세레브했었던데스! 하지만 삼녀는 순둥이에 머리도 좋은 것 같은 데스!! 삼녀를 키우는데스! 똥닌겐에게는 과분한데스.」

「삼녀께서는 무엇을 하실 수 있습니까?」

「치이이.. 와따시... 와따시는... 닌겐상, 와따시는 그러니까 착한테치. 마마의 말을 잘 듣고 착한 자가 되는 테치.」

「보라는데스! 삼녀는 순하고 착한데스! 어서 탁아해 키우는데스!!」

「전혀 설득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삼녀씨는 자기 팔꿈치를 핥을 수 있겠습니까?」

「?」

삼녀는 자기 팔꿈치를 핥으려고 한다. 그러나 핥아질 수가 없다.
토시아키씨 마음에 벌써 삼녀는 낙점이다. 아니 지금 되고말고를 따질 땐가? 안 되도 되게 하라. 응?

이 지옥같은 세상에서 빌어먹자고 면접보러 다니는 판에 되고 말고를 따질 때냐고. 일단 된다고 말을 해야지

하고 혼자서 고개를 내젓고 있는 토시아키씨, 실은 얼마전 면접에 우쭈물쭈물대다 떨어진 이유가 여기있다.


「자는 빨리 팔꿈치를 핥는데샥!!! 왜 못핥는데샤!!! 똑똑하다고 칭찬해줬다고 진짜 머리좋은줄 알았던데샤아아!!」
「마마!! 안되는테치!! 혀가 닿지 않는 테치이!!」
「팔꿈치 못핥는 자는 분충인데샤!!! 팔꿈치따위 왜 못핥는데샤아아!! 사육실장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는 자인데샤!!」
「안되는테치!! 죽어도 안되는테치이!! 팔이 안굽는데챠아아!」
「미친소리하지말고 핥아주는데샤아아!!」

결국 이 미친 모녀는 자실장의 어깨와 팔을 부러트리고야 말았다.

그래도 좋다고 눈물 범벅을 해가지고 혓바닥 낼름거리는 자실장의 모습에 토시아키씨는 질려버렸다.

그래, 니들은 합격이다. 오 시발 안되는 것도 되게 하는구나 진짜. 그래 좋다. 어디 같이 한 번 희망찬 미래를 설계해 보자꾸나.

「마지막 질문입니다. 귀하께서는 10년뒤 어떤 모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한 것을 묻는 똥닌겐인데스!!! 세레브한 와따시다찌 자를 많이 낳아 행복해지는데스! 자는 행복인 것인 데스! 다시 물을 필요도 없는 데스!!!」



「안됐지만 귀하께서는 저희 회사의 면접에서 떨어지셨습니다.」

하고 소주병을 날려 준다.

「데갸아오오!! 미친닌겐인데스!! 똥닌겐인데스!! 합격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냔데스!!」
「자실장 하나만 된다고 했잖아 미친참피새꺄」
「그럼 와따시를 키우는데스!!! 저따위 자는 트럭으로 낳아주는데규오오오!!」

소주병으로 후려서 한번 더 날려준다.

「금일 면접에 수고하심을 알려드리며, 감사의 뜻으로 다음번 탁아때는 니 말만 하지 말고 내가 듣고싶어 하는 말씀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세레브한 사육 실장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하며, 자들 대가리가 들어있는 남은 소주병을 친실장 입에 꽂아주었다.

친실장이 열심히 뭐라 말하는 것 같지만 오물대는 입은 아무래도 자실장 대가리를 씹는 것 같다.

아무래도 좋다. 여기 으스러진 팔을 한 자실장이 뭔가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토시아키씨는 오늘의 이 낮술로 뭔가 해답에 한 발짝 더 다가간 느낌이다.

결국 면접이라는건, 사돈 남 말이 아닌가.

왜 저 참피새끼들은 꼭 옆구리 찔러 절받게 하는건지 모르겠는 것이
아마 지금까지 자기를 봐온 면접관들의 생각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