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함의 아이러니


“마마가 돌아오지 않는 테스…”

중실장 정도로 뵈는 실장석이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걱정스레 말을 꺼냈다.

비가 온다. 푹푹 찌던 늦여름이었다면 은혜의 손길이었을 것이 완연히 겨울로 들어가는 이 시기에는 사신의 낫질보다도 더 소름 끼친다.

그것은 이 산이라 부르기 힘든 언덕배기도 온다. 명칭은 공원이지만 그저 동네의 언덕 하나에 체육관과 운동장을 지어 놓고 지역 주민들의 산책길 정도로만 쓰는 언덕. 그 언덕 산책로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숲, 그리고 그 중 한 그루의 나무 밑에 있는 토굴에는 한 실장석 일가가 살았다.

친실장과 중실장 하나, 자실장 셋, 그리고 저실장이 둘.

친실장이 꽤나 수완이 좋은지 토굴 안에는 박스가 장판 마냥 깔려있고 드러난 나무 뿌리가 가려주지 못하는 곳에는 군데군데 비닐이 둘러쳐져 빗방울이 들어오는 걸 막고 있었다.

“오네챠, 마마는 아직인 테치?”
중실장 옆에서 아직 자실장 크기의 실장석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말을 건낸다. 중실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마 조금 늦어지는 모양인 테스. 들어가서 이모토들과 더 놀고 있는 테스.”
안에서는 작은 자실장 두마리가 저실장들을 프니프니하며 놀고 있었다. 

동생을 들어보내고 장녀는 무심하게 추적추적 비가 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닝겐에게 잡히기라도 한 거 아닌 테스까…”

닝겐.

무서운 그 이름. 실장석을 잡아가고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악마. 장녀는 친이 닝겐에 대해 가르쳐준 것을 상기했다.


[자들, 잊지마는 데스. 절대로 닝겐들에게 가까이 가면 안 되는 데스.]
친은 가족이 다 모일때가 있으면 늘 그렇게 가르쳤다.
[닝겐들은 와타시타치를 보면 잡아서 죽이려고 하는 데스. 그 자리서 죽이지 않아도 초록 봉투씨에 넣어버리거나 하면 그 안에서 굶어죽거나 무서운 철컹철컹씨에 들어가서 갈려죽는데스.]
그러면서 친은 두 팔을 들고 아래위로 맞부딫히며 철컹철컹하는 소리를 내고 그것을 본 자실장들은 공포로 몸을 떨었다.

[마마, 그래도 친절한 닝겐상도 있지 않은 테치?]
[친절한 닝겐상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닝겐들이 더 많은 데스. 게다가 삼녀, 오마에가 봤을 때 그 닝겐이 친절한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데스?]
사녀의 물음에 친실장은 엄한 얼굴로 답했다.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되는 데스. 먹을 것을 준다든지 착해보인다든지 하는 이유로 그 닝겐을 의심없이 따라갔다가 돌아오지 않게 된 동족들을 많이 본 데스.]
[마마, 그래도 그 오바상들은 사육실장이 되어서 안 돌아온 거 아닌 테치?]
이번에는 차녀가 묻는다. 실장석들의 빈약한 상식선에서는 그렇게 판단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럴리는 없는 데스.]
하지만 친실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와타시는 본 데스. 사육실장이 되었다고 희희낙락했던 동족들은 갈갈이 찢긴 채로 녹색 봉투씨에 담겨 있었는 데스.]

마치 그때 그 광경이 재현되기라도 한 듯 친실장은 몸을 부르르 떨며 몸서리 쳤다.

[와타시는 절대! 절대 닝겐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인 데스. 와타시는 똑똑한 마마의 가르침을 받은 데스. 그렇기에 와타시는 닝겐에게 굴복하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데스!]
친은 단호하게 말했다.


장녀는 잠시 눈을 감는다. 객관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장녀는 스스로가 그리 현명하거나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마마의 반 정도는 될까? 아마 그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더하진 않을 것이다. 친도 늘 장녀는 왜 그리 우둔하냐며 혼내고는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장녀는 하지 말아야 할 짓에는 손을 대지 않고 살아왔다. 자신은 멍청하다. 우둔하다. 그래서 어떤 유혹이든 접하게 되면 넘어가 버릴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그런 유혹의 눈에 들지 않게 살아야 한다. 만약 접하더라도 어떤 마음도 먹지 말고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오네챠, 마마 안 오는 테치?”

상념에 잠겨있던 장녀를 깨운 건 차녀와는 다른 동생의 목소리. 삼녀다. 아마 구더기 프니프니도 끝내고 더 할 게 없어진 탓이겠지.

“와타시가 한번 찾아보겠는 테스. 삼녀는 차녀와 같이 문을 잠그고 있는 테스.”
삼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안으로 쪼르르 들어간다. 장녀는 그 모습을 보며 씩 웃고는 옷깃을 여미고 산을 내려갈 준비를 했다. 친이 이렇게까지 늦는 경우는 잘 없다. 똑똑한 마마인 만큼 무슨 일이 생겼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한 번 찾으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장녀 오네챠, 와타시도 가도 되는 테치?”
어느새 나온 차녀가 걱정스레 물어본다. 장녀는 고개를 저었다.
“차녀는 이모토챠들과 구더기를 돌보는 테스. 삼녀와 사녀는 아직 어려서 혹시라도 문을 제대로 못 잠그거나 할 수 있는 테스.”
만약 와타시가 잘못되면 오마에가 그때부터 장녀인 테스,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장녀는 굳이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늘 위험이 도사리는 실생이지만 그걸 지금 상기시켜 불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느덧 내리던 가을비는 부슬비같이 변했다. 그런 부슬비라도 실장석의 누추한 옷은 충분히 적실 수 있다. 젖은 옷에서 서서히 에워오는 추위에 떨면서도 장녀는 마마와 같이 몇번 내려가본 길을 따라 산 밑으로 조금씩 내려갔다.

이윽고 다가온 산의 초입. 장녀는 망설였다. 마마와는 여기까지만 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밖은 닝겐의 영역이다. 이곳을 나가면 어떤 위험과 유혹이 있을지 모른다. 

자신은 거기에 저항하며 마마를 찾아올 수 있는가?

장녀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마마를 찾지 못하면 일가실각이다. 경험많고 똑똑한 친이 없으면 남은 중실장과 자실장들로서는 절망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판사판이다. 장녀는 한 발을 내딛었다.


다행스럽게도, 산 입구를 나간 지 얼마되지 않아 장녀는 친을 찾을 수 있었다. 친은 살아있었다! 그것도 멀쩡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듯 증표같이 생긴 무언가를 쥐고는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마마!”
장녀는 가쁨과 반가움에 친을 불렀다.

“덱?! 오마에 장녀…어떻게 여기 온 데스까?”

장녀는 순간 당황했다. 친의 얼굴에 띈 표정은 반가움이 아니다. 의아함과 당황스러움이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간신히 자신을 찾아온 자식을 만날 때 지을 얼굴은 아니다.

“마, 마마. 여기서 뭐하시는 테스. 어서 돌아가는 테스. 이모토챠들이 기다리는 테스.”
장녀는 간신히 감정을 수습했다. 마마도 너무 놀라서 그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배신하듯 친은 장녀의 청을 거부했다.

“오마에만 돌아가는 데스. 와타시는 안 가는 데스.”
“마마?”

왜? 어째서? 

장녀의 마음을 읽었는지 친실장은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와타시는 사육실장이 된 데스.”

사육실장!

그 말에 장녀는 가슴에서 환희가 들어차는 느낌을 받았다. 그 어떤 실장이 이 말에 두근거리지 않을 수 있을까?

들실장의 삶은 늘 고단하다. 

자나 깨나 습격 등지에 떨며 잠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삶. 
배고프지 않게 먹을 수 있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삶. 
추울 때는 동사의 위험에 직면하고 더울 때는 말라죽을 위험에 노출된 삶.
콘페이토는커녕 단 것이 무엇인지도 한 번 먹어보지도 못하고 끝나는 삶. 

이 모든 것이 사육실장이 되면 해결된다.

하지만,

“하지만 마마. 마마는 언제나 닝겐상이 사육실장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 믿지 말라고 한 테스.”
장녀는 친이 늘 강조하듯 말한 것을 기억했다. 닝겐은 영악하고 변덕스럽다. 그러니 절대로 가까이하지 말아라.

“데프픗. 와타시는 똑똑한 데스. 이 닝겐상이 애호닝겐인지 아닌지 정도는 딱 봐도 알 수 있는 데스야. 게다가,”
그러나 평소 자신이 하던 말을 스스로 부정하며, 친은 양손을 허리에 짚으며 뽐내듯 말했다.

“만약에 학대닝겐이라고 해도 어떻단 말인 데스? 와타시는 그런 닝겐조차 애호닝겐으로 만들 수 있는 데스. 마마에게서 전수받은, 그리고 와타시가 살면서 갈고 닦은 스킬만 있으면 능히 그럴 수 있는 데스.”
초승달 눈을 뜨며 웃는 저 존재는 정말로 자신의 친이 맞는가? 자신의 지식을 믿어 의심없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는 친실장은 더 이상 장녀가 알던, 마마가 아니었다.

“오마에같이 한심한 실장은 못 하는 데스. 하지만 와타시는 할 수 있는 데스.”
“마마…”
망연자실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장녀를 보고 친은 다시 한번 비웃듯 데프프픗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친실장은 곧 정색을 하더니 차갑게 읊조렸다.

“닝겐은 자가 있으면 귀찮다고 한 데스. 그래서 와타시는 자가 없다고 한 데스. 그러니…”
친의 표정이 급격하게 험악해진다.

“어서 저리 가는 데스! 다시는 와타시 눈 앞에 나타나지 마는 데스. 오마에든 다른 자든 나타나면 모르는 들실장이라고 하고 죽여버릴 것인 데스!”
눈에 불똥이 튄다고 하는 게 이런 것일까?

“마마, 절대로 닝겐들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한 건 마마인 데스…”
장녀는 절망감에 몸부림치며 다시 한번 친을 설득하려 애원했다. 

“와타시는 다를 것인 데스! 와타시는 할 수 있는 데스! 뭘 보는 데스까? 천한 들실장 따위가 닝겐노예를 얻은 사육실장을 감히 굽어보는 데스? 어서 썩 꺼져라 데스!!”
친은 이제 숫제 네발로 땅을 짚고 위협했다. 실장석의 저 위협자세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해치려 할 때 나오는 자세다. 

장녀는 터져나올 거 같은 울음을 삼키며 산을 향해 뛰었다.

사육실장은 친자간의 정도 간단하게 내칠 정도의 유혹이란 것인가…그 똑똑하다가 자부했던, 그렇기에 절대 닝겐상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했던 마마조차도 저럴 정도로 그게 그리도 좋단 말인가? 

장녀는 소리죽여 오열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네챠!”
장녀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흠칫 몸을 떨며 정신을 차렸다. 차녀다. 차녀가 왜 여기에? 장녀는 주위를 둘러본다.

“오네챠, 무슨 일인 테치요?”

집이다. 그리운 집이다. 차녀가 있고 다른 가족들이 있는 집이다. 아마 정신없이 뛰어오면서 집까지 온 모양이다. 장녀는 크게 한숨을 내 뱉었다. 안도일까 아니면 절망일까? 아니, 둘 다겠지…

“오네챠, 마마는 어떻게 된 테치?”
말없이 한숨을 내 쉬는 장녀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낀 건지 차녀의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차녀…마마는…”
장녀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씁쓸한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닝겐에게 발각된 테스. 아마...”

차마 말을 잊지 못했지만 차녀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비록 그 의미가 장녀가 본 것과는 다른 것이었겠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와타시도 간신히 도망쳐 온 테스…와타시도…간신히…”
장녀는 목이 매이는 것을 느꼈다. 적녹의 눈에서 흐르는 것은 아마도 빗물이겠지. 차녀의 눈에도 두줄기 색색의 빗물이 흐른다. 집 안에는 비도 오지 않고 그 물에 색깔은 더더욱 없으련만. 두 자매는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고 잔혹한 현실을 마주했다. 


남겨진 4자매의 운명은 그야말로 혹독 그 자체였다.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한다는 지식이 없어서 친으로부터 짬짬이 전수받은 지식과 그나마 남아있는 보존식을 먹으며 버텼다.

하지만 결국 그 모진 추위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사녀가 동사했다. 부족한 들의 삶 속에서도 착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였건만 운명의 신이라는 작자는 자는 동안 사녀의 생명을 거두어 버렸다. 겨울의 땅은 실장석의 손으로는 도저히 팔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해서 자매들은 마치 풍장 마냥 보이지 않는 곳에 사녀의 시체를 올리고 다른 동물들이 처리해줄 것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사녀와 특히 친했던 삼녀는 그날 울다가 까무러칠 뻔했다.

차녀는 먹이를 구해보려 빌라촌까지 내려갔다가 운행하던 차에 깔려 죽었다. 보존식이 동이 나자 장녀와 차녀가 각각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다가 차녀가 변을 당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벽시간대에 치인 데다 그 직후 비가 와서 차녀의 존재를 씻어 내려버렸다. 그래서 그 누구도 그 언덕에 실장석이 사는 지는 몰랐다. 하지만 희미할지언정 냄새는 남는다. 남아있는 냄새로 차녀가 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렸다는 것을 안 그날 장녀와 삼녀는 차녀의 시체조차 건지지 못했음에 하루 종일 오열만 했다.

저실장 두 마리는 새해가 밝았을 무렵 사이좋게 굶어 죽었다. 비록 자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족같이 여기며 살았기에 저실장들의 표정은 아사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해맑기 그지없었다. 장녀는 그들의 포대기를 벗기고는 한 마리를 말없이 삼녀에게 내밀었다. 땅은 여전히 얼어붙어 딱딱하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구멍을 팔 체력조차 아껴야 한다. 둘은 피눈물을 흘리며 저실장을 먹었다.


그렇게 구차한 삶이라도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던 두마리는 끝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했다.

어느 새벽 언덕 근처에 위치한 빌라촌. 이제 간신히 봄의 해가 고개를 내밀고 아직 쓰레기 수거차조차 움직이지 않는 시간대지만 그런 시간임에도 두 뭉치의 그림자가 무언가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네챠, 이걸 보는 테스. 밥으로 할 만한 게 많이 있는 테스.”
두 뭉치 중 하나, 이제는 중실장으로 성장한 삼녀가 조용히 장녀를 부른다.

“대박테스. 어서 봉지에 옮겨담는 테스.”
삼녀가 가리킨 봉지를 보며 장녀가 작게 환호한다. 어둡지만 그럼에도 음식물이 가득 찬 것이 보일정도로 빵빵한 봉지. 둘은 능숙한 손길로 봉지의 묶음을 풀어헤치고 가져온 다른 봉지에 음식물 쓰레기를 옮겨 담는다. 

“며칠간은 밥 걱정은 없겠는 테스 오네챠.”
“그런 테스.”
음식물 쓰레기를 옮겨 담으면서 두 자매는 힘든 줄 몰랐다. 겨우내 지옥 같은 삶을 살아온 자매에게 음식물 쓰레기는 진수성찬이다.

“그럼 이걸 옮겨 담고 있는 테스 삼녀챠. 와타시는 생활용품이나 이런 걸 조금 더 찾아보는 테스.”
장녀는 가지고 온 다른 봉지를 피며 말했다.

“알겠는 테스요 오네챠. 하지만 조심하는 테스.”
“알겠는 테스.”
자신을 걱정해주는 삼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장녀는 조용히 발을 떼며 주위를 살폈다.

“음? 뭐인 테스까? 저건…”
무언가 큰 봉지가 있다. 어쩌면 저기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호기심에 다가가던 장녀는 그러나 희미한 빛이 알려주는 봉지의 색을 본 순간 숨을 삼켰다.

녹색의 봉지. 

그것은 예전에 친이 알려주었던 봉지였다. 실장석을 폐기하는 봉지.

그리고 그런 봉지의 용도를 증명하듯 녹색봉지 안에는 독라에 달마, 그것도 모자라 석녀에 온 몸이 멍들고 찢겨 있는 성체가 들어있었다. 그 주변에는 역시나 찢긴 포대기와 우지챠들의 조각이 같이 있는 걸 보면 강제출산도 당한 것 같다. 살아있는 우지챠들도 있었으나 그저 살아만 있을 뿐. 소리 없는 외침만이 가득하다.

“심한테스…절대 닝겐들에게 가면 안 되는 테스.”
분명 모진 학대를 당했겠지. 장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순간, 죽은 줄 알았던 성체의 눈알이 희미하게나마 움직여 장녀를 쳐다봤다. 그 모습에 장녀는 놀라 소리를 지르며 쓰러질뻔 했지만 간신히 입을 틀어막고 다리에 힘을 주며 버텼다. 소리를 질러 존재를 들키면 실각이다.

그 성체는 분명 살아있었다. 생명의 반응은 그리 크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있었다. 아마 봉지에 담겨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어제 밤에 담겨 나온 게 아닐까? 

놀람도 잠시 장녀는 조심스레 봉지로 다가갔다. 함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이 주변에 자신들 외에 동족이 있었단 사실이 장녀의 행동을 지배했다.

봉지 가까이 다가가자 어떤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잘 보니 녹색 봉지의 묶인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냄새였다. 동족식도 시킨 건가, 평소 같으면 그리 심하지 않은 실장취가 이렇게 두꺼운 봉지 틈새로 흘러나오는 걸 보면 닝겐은 이 성체에게 동족, 아니면 정말 심하게도 이 성체가 낳은 자식들을 도로 먹였을 수도 있다. 장녀는 닝겐의 그 잔인함에 다시 한번 치를 떨었다.

그런데 이 냄새, 왠지 모르게 친숙하다. 분명 어디선가 맡은 적이 있는 냄새인데…

냄새??

마마다! 장녀는 순간 놀라서 가져온 봉지를 떨어트렸다.

마마다. 확실하다. 봉지 입구가 꽉 묶여있어 희미할지언정 분명 마마의 냄새다. 자신들을 버리고, 다른 동족은 안 될지라도 자신은 누구보다도 닝겐의 무서움을 잘 알정도로 현명하기에 닝겐을 현혹시킬 수 있다며 호랑이의 아가리에 뛰어든 마마다.

“…”
“…”

온 몸이 성한 곳이 없는 성체실장이 장녀를 바라보고 있다. 한쪽만 남은 그 공허한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이미 몇번을 울었다 말랐는지 모를 그 녹색의 와디(사막에 있는 건천. 우기에만 물이 흐름)에 녹색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와디에 내리는 물과 달리 생명의 물은 아니었다.

장녀는 그런 친을 그저 담담하게 바라봤다. 

친실장은 무엇이라도 말하려는 건지 입이 벙긋거린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아니, 뭔가 말하려고 했어도 두꺼운 초록빛의 비닐에 가로막혀 들리지 않았을 거다.

“이 녹색봉지는 무엇인 테스? 우마우마한 냄새가 나는 테스야.”
어느새 삼녀가 장녀 곁으로 다가오더니 말을 건낸다. 

“삼녀차, 돌아가는 테스. 저건 와타시타치를 가두는 무서운 봉지인 데스. 게다가 가져가도 너무 두꺼워서 찢지도 못하고 힘만 드는 테스.”
“테에, 아까운 테치”
말과는 다르게 미련없이 돌아서는 삼녀. 오늘의 수확은 충분하다. 그 봉지 속 내용물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둘은 조용히 보금자리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앞장서는 삼녀의 뒤를 보며 장녀는 아까 친이 무언가 말을 하려던 것을 떠올렸다.

무슨 말이었을까? 너희는 절대로 나처럼 되지 마라? 아니면 잘못했으니 구해달라? 그것도 아니면 자기를 구해서 낳아준 은혜를 갚아라? 

장녀는 피식 웃었다. 이제와서 구해줄 마음도 없었지만 애초에 구하고 싶어도 구할 방법도 없었다. 하지만 예전에 친실장이었던 그 존재가 뭐라 말했든지 간에 하나는 확실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 테스. 마마도 현명했지만 결국은 실장석이었던 테스… 그저, 그저 와타시는 다를 거라는 믿음으로 파멸하는 평범했던 실장석이었던 테스.”

장녀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비가 오려나? 구름이 짙어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장녀는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양심의 그늘


평범한 사각형 건물의 S시 실장석 처리소. 

S시 남부 공단과 주거지역을 가르는 중간 녹지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처리소다. 다만 특이하다면 이곳은 사육실장을 전문적으로 폐기처리하는 곳이라는 것 정도. 그나마도 요즘은 정부의 강력한 유기실장 방지조치에 따라 사육실장 유기에 엄청난 과태료가 부과되면서 사육실장을 처리해주는 처리소가 늘어서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곳은 사육주들 사이에서 굉장히 특이한 처리소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왜냐고? 

처리소라면 정기적으로 처들어오는 애오파 시위대나 항의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걸까? 처리소라고 하면 크든 작든 가서 야만적이라고 시위를 하고, 심지어는 자그마치 전국구 국회의원과 연줄이 있던 처리소에도 쳐들어가 결국 그곳을 문 닫게 했던 양반들이 이 처리소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까?

혹시 이 곳이 평소에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외진곳이라 그 존재를 모르는 걸까?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S시나 심지어 옆 A시에서도 실장석과 연관된 사람들은 이곳을 모르는 사람이 더 드물다. 애호파 사육주들조차 분충이 되거나 임신을 한 자신의 사육실장석을 처분하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곳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건 이곳의 운영방식을 3일간 지켜보면서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흰색의 페인트칠과 아이보리색 가구가 조합된 깨끗해 뵈는 방. 실장석들의 비명소리와 피 내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곳은 처리소의 접수처다. 내부는 마치 우체국처럼 번호표 뽑는 기계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고, 접수자가 대기하며 앉을 수 있는 벤치형 의자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직원이 앉아있는, 얇은 투명 아크릴 장막이 쳐진 데스크가 있다.

“오늘 어째 한산하다?”

그 직원칸에 앉아 있던 중년의 직원, 방철곰 과장은 핸드폰을 보며 소리죽여 웃고있는 젊은 직원에게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그러게요. 어째 이 접수처가 조용한 날도 있고 별 일이네요.”

핸드폰에서 눈을 때지 않은 체 젊은 직원, 명시악.

“어디보자, 오늘은 몇마리나 들어왔나?”

“현재 30마리 정도네요. 이 정도면 한산하다 못해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해도 말 되겠다 싶어요.”

“그러게.”

너털웃음을 짓는 방철곰.


그때, 출입문에 설치된 도어벨이 울린다.

둘은 반사적으로 ‘어떻게 도와드릴…”까지 말하다가 들어온 사람의 면면을 보고는 웃으며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그럭저럭 별로 없네요.”

하얀 모자에 하얀 옷, 평상복은 절대 아닌 그 이질적인 옷에는 ‘㈜로젠’이라는 기업명이 붙어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실장석에 관한 모든 것을 취급하는 회사 ‘로젠’. 그 직원이 애호물품 관련으로 여기 왔을 리는 없으니 필경 구제업무로 온 것일 것.

“오늘은 몇 마리입니까?”

“20마리 정도였든가? 잠깐만요.”

구제업체 직원은 박스를 잠시 내려놓고는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아, 성체하고 자실장 포함 21마리네요. 여기 확인하시고 확인장 찍어주세요.”

방철곰 과장이 종이를 받아 확인하는 사이 최시악 대리가 상자를 열어 숫자를 셌다. 그 후 최시악이 방철곰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바로 종이에 확인장을 찍어 직원에게 돌려줬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쾌활한 인사와 함께 구제업체 직원은 가벼워 뵈는 발걸음으로 접수처를 나갔다. 부럽구만~ 오늘부터 며칠간 휴무려나. 최시악이 살짝 부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방금 직원이 나간 유리문을 바라보자 뒤에 있던 방철곰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 대신 저 사람들은 일요일에도 참피 잡는다고 일하잖아. 우린 그거 대신이라 생각해야지.”

“우와! 귀신이세요? 아니 어떻게 제 말씀은 듣지도 않고 그렇게 추측하심까?!”

“네 나이대 화상들이 하는 생각은 뻔하디 뻔하다 이놈아! 어서 이거나 들어 옮겨!”

왜냐하면 나도 그랬거든. 명시악을 한 대 쥐어박은 방철곰은 여전히 웃으며 투덜거리는 젊은이를 보며 껄껄 웃었다.


“그나저나 진짜 많네요. 아니 이 놈들이 다 한 때는 사육실장이었다니 믿기질 않는단 말이죠.”

낑낑대며 박스를 끌차에 올린 명시악은 박스안에서 이리저리 널브러져 곤히 잠든 실장석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럴 거면 사질 말아야지 쯧쯧.”

방철곰은 혀를 찼다. 

이 박스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실장석들은 모두 원사육실장인 놈들이다. 즉, 버려지거나 주인이 잃어버리고는 실종 처리된 것들. 이런 놈들은 대부분 멋모르고 도로로 나오다 차에 치이거나 길고양이, 혹은 사람에 의해 죽을 운명이다. 아니면 최악의 경우 골목이나 공원 등지에 몰래 숨어사는 들실장에게 잡혀 출산노예가 되는 거고.

그러니 여기 있는 놈들은 어찌보면 운이 좋았던 놈들. 분홍색 실장복이 다 헤진 걸로 보아 버려진 지 1년이 넘어 뵈는 개체도 간혹 보인다. 이런 실장석은 공원이든 골목이든 어딘가에 정착을 했다는 의미다. 뭐, 그래본들 잡혀온 시점에서는 다 끝난 거지만.

“도대체 버릴 거면 우리 같은 처리소에 맡기면 되지 않나요? 그럼 사육등록말소부터 사체처리까지 확실하게 해주는데.”

끌차를 밀어 방철곰의 자리에 온 명시악이 말했다. 그 말에 방철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5만원도 아깝다 이거 겠지. 아니면 일말의 양심? 그걸 그렇게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서도, 차마 자기 손으로 죽이진 못하니 알아서 잘 살아남아보렴~ 하는 거.”

“우와 최악! 위선이 다른 게 아니네요.”

“어쩌겠어? 우리 알바 아니긴 하지. 하지만 일단 이 놈들이 여기 잡혀온 시점에서.”

방철곰은 명시악이 밀고온 박스에 RFID 인식기를 가져다 댔다.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지.”
인식기가 삑- 소리를 내자 방철곰 앞에 있는 모니터 화면에서 사육실장의 이름과 등록번호, 그리고 그 소유주들이 적혀 있는 자료가 나온다.


실장석이 한국에 첫 선을 보일 때, 일반인들은 잘 몰랐지만 예전부터 일본의 실장석에 대해 조사해 왔던 사람들은 우려를 표했다. 실장석의 그 무한에 가까운 번식력이 장래 한국의 생태계에 큰 위협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은 그 뜻을 모아 정부에 전달했고, 이에 정부는 지금 와서는 신의 한 수라고 불린 대책을 수립할 수 있었다. 무슨 대책이냐고? 정부는 사육실장석의 출하 당시 독점 판매사인 로젠사에게 규제를 하나 걸었다.

사육실장은 그 존재를 표시하기 위한 칩을 의무적으로 삽입해야 한다.

이 칩은 사육실장의 증거임과 동시에 관리를 위한 목적이기도 했다. 공정이 추가되는 것에 로젠사는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어차피 프리미엄을 받고 비싸게 팔 생각이었기에 시장 개척 차원에서 오케이를 했다. 

그렇기에 버려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나 들실장처럼 보여도 인식기를 가져다 대면 사육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뭐, 사육실장은 샵에서 구입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사육이 낳은 새끼들을 분양하기도 하고 이런 분양 출신 실장석은 당연하게도 칩이 없어 관리가 안 된다고는 하는데 그건 여기서 논하기엔 너무 긴 주제라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른 데서 알아보기로 하자.


“자아, 그러면 이 명단에 따라 네가 말한 ‘위선자’ 들을 한 번 조져 보실까.”

방철곰은 명단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이구야, 이 양반은 깡 좋게 그냥 버렸네?”

“저 사람은 실종신고를 했네요? 실종된 지 1년이 넘어서 사망처리 되었다라…”

“저런 거에 현혹 되지마. 요즘 사육주란 양반들 중에는 일부러 버리고는 실종 신고하는 악질도 있으니까.”

방철곰은 냉정하게 명단을 살폈다. 확실히 사육실장 유기에 따른 과태료 처분이 많아지니 머리가 좋은 사람들 중에서는 사육을 버린 후 실종신고를 해버리는 사람도 생겼다. 이러면 자신은 사육실장을 버린 게 아니게 되어 돈도 아끼고 똥벌레도 처리하는 셈이 되니 사육주 입장에서는 일석이조. 물론 잡혀온 사육실장이 버려졌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애초에 실장석이라는 놈들은 거짓말이 일상인 놈들이라 놈들의 주장은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래도 빨리만 찾는다면야 그런 놈들 엿 먹이는 것도 가능하잖아요.”

“그러고보니 저번에 그 여자 표정 끝내줬지.”

말하다 말고 둘은 뭔가를 떠올린듯 소리내어 웃었다.

가끔 원사육실장을 잡아오면 실종신고가 된 지 보름도 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러면 실종신고를 한 사육주에게 연락하여 사육실장을 돌려주게 되는데 간혹 가다 저렇게 사육실장을 버리고 실종신고를 한 사육주들은 정말 복잡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보호소에 내방하게 되는 것이다.

“아 진짜 그때 정말 웃겼죠. ‘와따시 버리지 마는 뎃샤아~’ 하는 놈을 앞에 두고는 표정을 있는 대로 구기면서도 차마 버렸다고는 못하니까 분노로 벌벌 떨며 인수증에 사인하던 그 여자를 보고 있자니 웃음 터지는 걸 간신히 참았다니까요.”

“그거 후속 이야기도 아냐? 결국 그 여자 며칠 안 있어 여기 와서는 정식으로 사육등록 말소하고 그 똥벌레 처분해 버렸지.”

“맞아요. 그때 변명이랍시고 하는 말이 ‘밖에서 며칠 지내다보니 완전 들분충이 되었더라.’ 였나? 진짜 가관이긴 했네요.”

둘은 웃으면서 명단을 정리하고는 끌차를 밀어 어딘가로 보낸다.


그런 사수와 부사수의 티키타카가 오간 시간이 지나고 오후.

한 여름인데도 긴 팔에 마스크를 두르고 선글라스를 낀 여성은 카운터에 조용히 박스 하나를 내려놓고 무언가를 오후 접수 담당직원 – 최정규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 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 이름은 ‘카와이’, 구입날짜는 대략 작년 1월이란 말씀이시죠?”

“네…”

다소 우렁차기까지 한 직원과 달리 여성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어디보자, 아! 나왔네요. 카와이, 등록번호 JR-2022-011938A 로군요. 네 확인되었습니다. 아, 처분사유 말씀하셨었나요?”

“아니요…그, 이번에…제가…아, 아니 부모님과 같이 사는데 부모님이 실장석 알러지가 생기셔서…”

딱 봐도 거짓말이네. 귀로 들은 이야기를 사유란에 등록하면서 오전의 콤비와는 또 다른 접수직원, 최정규는 생각했다. 박스 안에 잠든 실장석을 보니 딱히 분충짓을 한 거 같지도 않을 정도로 깨끗한 옷과 머리카락을 유지하고 있다. 대개 이 시기에 실장석을 처분하는 건 여행을 가려는 데 걸리적 거린다든가 싫증이 났는데 마침 여름이라 높은 불쾌지수에 냅다 지르던가 하는 것이 많다.

하지만 최정규는 그걸 밖으로 절대 드러내지 않을 정도의 직무의식은 가지고 있다. 뭐가 되었든 나하고는 관계없지. 타이핑을 끝내고 남자는 의뢰자를 향해 의자를 돌리며 말했다.

“네, 접수 다 되셨습니다. 참고로 이 실장석은 며칠간 이곳에서 보관하게 됩니다. 보관 기간은 본 사의 사정에 따라 유동적이며 다시 사육실장을 찾으러 방문하셔도 다시 찾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조건에 동의하십니까?”

“…네.”

양심일까 아니면 죄책감일까? 아주 잠시 망설인 거 같았지만, 끝내 여자는 동의의 표시를 뱉었다.

“자 그럼 여기 서명해 주시고 처분비 5만원 되겠습니다. 상자는 이쪽으로 건내 주시면 됩니다.”

남자의 말에 여성은 떨리는 손으로 사인을 하고는 황급히 밖으로 나선다. 그런 여성을 보며 마음속으로는 혀를 차지만 얼굴은 여전히 영업용 미소를 유지하는 최정규. 


이렇듯 접수처는 다른 처리소와 같다. 특이할 것이 없는 광경.



하지만 이 처리소의 진짜 특이한 점은 바로 이 다음 공정부터 시작된다.


끌차에 실려간 실장석들이 가는 곳은 보관소다. 투명 아크릴로 만든, 600*600*600 (mm기준)의 정사각형 케이지 300개가 몰려 있는 곳. 

“똥노예! 어디간 데스 똥노예!! 감히 와타시를 모시지 않고 어딜 쳐 간 데스까!!”

“오로롱 오로롱 주인사마 초록이가 잘못한데스. 다시는 밥투정 안 할 테니 제발 돌아와 주시는 데스…”

“테에에 마마, 여긴 다른 오바상들이 많은 테츄. 와타치들이 왜 여기 온 테츄까?”

“…그냥 자는 데스 장녀…”

“데샤아아아!!! 드디어 자유를 찾았는데!! 자고 싶을 때 자고, 귀여운 자도 낳을 수 있게 되었는데 똥닝겐들은 와타시를 왜 잡아온 뎃샤아아아아!!!!!!”

오만가지 사연을 가진 원사육실장들이 그 아크릴 케이스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 중에는 브리더도 포기할 상분충도, 인분충 주인에 의해 버려진 양충도 있지만 케이스에 갇힌 시점부터는 이미 ‘원’사육실장일 뿐.


“오늘은 총 52마리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직원이 담담하게 외친다. 그 말에 원사육실장들은 흠칫 몸을 떨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고로 오늘은 먼저 들어온 52마리가 처분된다.”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그 집행을 위해 뒤에 서 있던 직원 4명이 케이지로 다가온다. 직원들은 케이지에 붙어있는 순번표 중 빠른 순서대로 실장석들을 끄집어 냈다.

케이지는 곧 광란의 현장으로 변한다. 처분되는 놈, 처분되지 않는 놈 가릴 것 없이 모두 울부짖고 가슴속에 있던 한을 토해낸다. 어차피 실장석들은 숫자를 세지 못한다. 숫자를 좀 센다는 놈도 10 이상은 세지 못한다. 그렇기에 실장석들로서는 어디까지 처분되는가를 모른다. 

52마리의 실장석이 카트에 담긴다. 담긴 실장석들의 눈에 처분장으로 가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들어왔다. 그야말로 마지막 여정, 그린마일이다.

52마리는 절규한다.

“데…뎃샤아!!! 이건 말도 안 되는 데스아!! 고귀한 와타시가 왜 다른 똥벌레 때문에 죽어야 하는 데샤아아아아아아!!!”

절규하는 놈.

“니, 닝겐상. 기다려주시는 데스! 내일, 아니 오늘 저녁에는 분명히 주인사마가 와타시를 데리러 와주실 것인 데스!! 제발…조금만…”

애원하는 놈.

“이걸 보는 데스! 귀엽지 않은 데스? 이렇게 귀여운 자들을 낳아줬건만 왜 똥닝겐은 메로메로 되지 않는 데스?! 눈깔이 삔 데스까!!!”

억지부리는 놈.

“와타치 몸에 손 대지 마는 테치! 와타치는 닝겐의 씨를 받아 흑발의 자를 낳을 고귀한 공주마마인 테치이이잉!! 소, 손 치우는 찌아아아아!!!”

위협하는 놈.


각양각색의 감정과 행동이 난무하지만 귀마개를 낀 직원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이건 그저 일이다. 들어온 만큼 처분하는 평소와 같은 일.

“마마, 다행인 테츄! 와타시타치는 살아남은 테츄! 내일은 반드시 닝겐들을 메로메로 시켜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인 테츄츄츄~”

그 와중에 오늘 처분되지 않고 아크릴 케이스에 남은 한 일가의 자실장이 기뻤는지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런데스. 오마에와 와타시의 세레브함이면 닝겐들은 당장 달려와 스테이크와 스시를 바치고 도게자 할 것인 데스. 데프프프.”

그 마마로 보이는 성체는 웃으며 자를 쓰다듬었다. 자신들은 살아남았다! 왜냐고? 저 처분장으로 가는 똥벌레들보다 세레브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주인이라고 망발을 일삼던 노예닝겐을 버린 자신들은 그 누구보다도 세레브하다!

치프프프 데프프프 웃고있는 일가의 케이즈 앞에 다시 붙은 숫자는 ‘1’. 새로운 입주자(?)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방을 빼줘야 하는 번호.

아마 내일이면 그들의 망상이 그 결실을 맺는 순간이 올 것이다. 



몇대의 끌차에 실려 그린마일의 종점에 다다른 실장석들. 빠져나가보려 발버둥치고 다른 실장을 밟고서라도 박스위로 올라가려는 그들의 처절한 사투는, 그러나 나가지 못하도록 밀봉된 박스뚜껑 앞에서는 부질없는 노력일 뿐이다.

후두두둑

“뎃캬!”

“데샤아아악!!”

“텟?! 텟챠!!”

“테에? 텟, 텟테로게에~”

“샤아아아아!!”

“텟테레!”

“텟테레!”

“텟테레!”


직원이 박스를 열고 끌차를 어딘가에 들어 올린다. 탈탈 터는 그 동작에 실장석들은 어딘가로 쏟아져 들어갔다. 낙하의 충격에 비명을 지르는 성체와 자실장들 가운데 몇몇은 박스 안에서의 혈투로 인한 혈액이 눈에 튄 건지 임신을 했거나 강제출산을 하고 있다.

“여, 여긴 어디인 데스?”

그 와중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한 성체실장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살펴본다. 자신들보다 앞서 떨어진 실장들이 쿠션 역할을 해준 덕분에 다친데 없이 멀쩡히 떨어진 성체. 그러나 어두운 밀실에서 앞으로 벌어질 사태는 이 성체가 차라리 압사당해 죽은 자신의 동족들을 부러워할 무언가였다.

“데에…뭔가 고기 냄새가 나는 데스야. 설마, 닝겐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고귀한 사육실장인 와타시에게 바칠 고기를 대령하는 데스?”

난폭하게 다뤄지고 떨어졌음에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듯한 소리. 하지만 어쩌랴, 이렇게라도 행복회로를 돌리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할 정도의 삶이거늘.

곧 그 성체의 망상과는 다르게 사면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데, 데, 데, 데샤아아아아아!!!!”

벽에서 나오는 불길은 이내 멎었지만 실장석들은 그 자신의 몸에 붙은 불로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마!! 뜨거운 테챠아아아아!!!”

“장녀! 어디간 데샤!! 오마에를 낳아준 와타시를 위해 희생 안 하고 어딜 쳐 간 뎃샤아아아!!!”

“똥마마!!!”

“장녀! 오마에만이라도 지켜주는 데스!! 절대 지켜주는 데스야!!”

“마마, 뜨거운 테츄아!!!”


온갖 회한, 분노, 슬픔이 교차한다. 


“자, 그럼 6시간동안 난방열 공급 배관 열어놓고. 모두 퇴장!”

그런 소각로와 딴판으로, 소각로 밖에서는 분주하게 움직이던 직원들이 담담한 표정으로 소각로실 밖으로 나간다. 

실장석들은 몸이 거의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조금만 불을 붙여줘도 스스로 잘 타오른다. 게다가 이리저리 몸부림을 치며 불이 붙지 않은 동족에게도 기꺼이 불을 붙여주니 매우 편하다. 이렇게 타오른 실장석들의 열은 배관을 따라 근처 공단에 아파트에 공급된다. 마치 열병합 쓰레기 소각장 겸 발전소랄까? 이런 점이 이 시설이 근처 주민들에게 경원시되는 것을 줄여주는 이유기도 하다.


이렇듯 이 처리소는 특이하게도 300개의 케이지를 두고 그날그날 들어오는 숫자만큼 기존에 수용하던 실장석을 처리하고 있다. 

물론 이 곳도 몇 번인가 동물보호 단체나 실장석 보호협회 등지에서 항의 차 방문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의 시스템을 듣고는 얼마 안 가 나가고는 다시는 오지 않았다.


들어온 만큼 처분된다.


이 말의 의미는 명백하다.

‘버리지 않으면 처분되는 실장석도 없다.’

주인이 아무런 생각이나 준비없이 실장석을 애완동물로 구입하고, 그걸 준비가 되지 않았다든가 실증났다든가 하는 여러가지 핑계로 버리면 그 숫자만큼 이곳에 먼저 들어온 원사육실장들이 폐기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지만 이론적으로는 유입되는 실장석이 없다면 기존 원사육실장들은 좁고 불편한 공간에서나마 천수를 누리고 갈 수 있다. 하지만 개업이래 그 어떠한 실장도 그런 혜택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여기서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실장석은 로미라는 이름을 가졌던 원사육실장. 

보관기간은 사흘이었다.

300개라는 케이지 숫자도 로미가 절실히 갈망했던, 단 하루만 더 살게해 달라고 했던 소원을 지켜주지 못했다. 조금 똑똑한 실장이었던 로미는 처음 들어왔을 때 배정된 케이지 숫자를 보고 그래도 조금은 살다 갈 수 있겠거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튿날 저녁에 바로 처분대상에 근접하는 순번으로 몰렸고 그 다음날에 처분 당했다.

그런 시스템이 은연중에 그들의 가장 아픈 부분을 헤집고 있었던 것이리라.

‘이것이 너희의 민낯이다.’

자신들은 다르다고 자부하지만 이곳에 사육실장 처분을 맡기로 오거나 무단으로 버려 잡혀오게 만드는 사육주들은 대부분이 애오파라 자부하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처분소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실장석을 버리지 않게끔 만드는 것이다. 버려졌을 때, 사육실장의 생은 끝이 난다. 처분소는 그저 종말에 치닫는 실장석들이 운명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곳일 뿐이다.


“마마! 에메랄드 여기 있는 테챠!! 어서와서 구해주는…챠아아아아!! 뜨겁테챠!!!”

“와타시는 살아야 하는 데스! 온 세상을 와타시의 자들로 채울 의무가 있는 데샤아아!!”

“주인사마…”


오늘도 52마리의 원사육실장이 수거되고, 52마리의 원사육실장이 소각된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처리소의 평범한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녹진이의 시골집 마당 생활! (어이김씨)


녹진이는 원래 들실장이였다.
정확히는 엄지실장이였다.
평소 자기를 괴롭히던 6녀가 야옹씨에게 분충짓 하다가 일가 전체가 휘말려 실각 당하게 되자 테엥 테엥 하고 울다가 지금의 주인이 불쌍하다 하여 데려왔다.
대부분의 실장석이 꿈에도 바라던 사육실장이 된 것이였다.
그리고 녹진이는 다시 들실장이 되었다.
사육실장의 금기인 자를 가졌기 때문이였다.
아니, 사실 주인은 거기까지는 봐줄려고 했다.
근데 그건 자실장 한두마리에 양충일 경우인 것이지 사육실장으로 살면서 호의호식 한 덕분에 영양 상태가 극도로 좋아 자실장을 열마리나 낳은데다가 죄다 분충이였다.
거기다 화룡정점으로 자식을 낳고 무슨 근자감에 빠져든건지 이를 꾸짖는 주인에게 고로시 후 이집내집 시전 하다가 위석 적출후 뒷마당에 끌려나와 온몸의 뼈가 다 부셔지도록, 그러나 죽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쳐맞았다.

"데, 데가아아악!!!! 손씨가! 발씨가!"

초고농축 활성액에 담겨진 위석과 그간 잘 먹고 살아온 덕분에 금새 달마에서 회복 되기 시작하는 녹진이. 맨 처음 주인에게 표출했던 반항심은 온데간데도 없이 그저 공포와 혼란만 남아있었다. 주인은 차가운 눈으로 이 은혜 모르는 벌레를 내려다 보았다. 자실장들은 얻어 맞지는 않았지만 똥노예라고만 생각했던 닝겐이 그 대단한 마마를 순식간에 줘패버리고 달마로 만들어 버리자 죄다 빵콘 하고 말았다.

"똥벌레 녹진이, 그간 누구 덕분에 잘먹고 살아왔건만 감히 주인한테 으르렁 거려?"

"자, 잘못한데스...! 주인사마!"

"난 너한테 자실장 한 두마리 정도만 허용 해줬어. 그런데 이게 뭐야? 10마리나 낳았네? 게다가 나를 노예로 생각 하는 분충들이네?"

"데, 데에에엑...! 주, 주인 켁!"

주인의 빠따가 녹진이의 이를 부수고 입안에 쳐박혔다. 

"날 주인이라 부르지마. 왜냐면 넌 이제 사육실장이 아니기 때문이지."

주인은 버둥거리는 녹진이를 빠따에 힘을 줘서 눌러버리며 자실장들을 바라보았다. 건방지게 투분이나 하는 상분충들, 곧바로 처리 해버릴까? 생각 해봤지만 그렇게 해서는 성이 차지가 않았다. 사실 교육 안 받은 자실장이야 그냥 벌레이기에 별 생각은 안나지만 꽤씸하기로는 녹진이가 제일이였다.
즉, 주인은 어떻게 하면 녹진이에게 참교육을 시전 할 수 있을지 고민 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금방금방 죽어버리는것들이니 죽여버리는건 일도 아닌데..."

"테에엥! 마마!"

"데겍! 데겍!"

이와중에도 자실장들은 녹진이에게 달라붙었고 녹진이는 고통 속에서도 자실장들을 걱정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주인의 뇌리에 좋은 생각이 스쳐지났다. 주인은 씨익 웃더니 녹진이 입에 쳐박은 빠따를 빼고는 품속에서 초고속 재생액을 퍼부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손발과 이빨을 재생하는 녹진이, 주인은 녹진이의 멱살을 붙잡고 잔인하게 속삭였다.

"자, 녹진이. 너는 이제부터 내 앞마당에서 살꺼야. 그리고 너는 거기서 고통스럽게 살아야 해."

"데, 데갸아아악....!"

녹진이의 주인의 잔인한 속삭임에 끝 모를 살의를 느끼고 다시금 빵콘을 하고 말았다. 주인은 목줄을 가지고 와 녹진이에게 채운 후 질질 끌고 갔다. 자실장들은 뭣도 모르고 울면서 따라갔다. 뒷마당과 앞마당의 연결을 차단하는 나무 울타리 문을 열고 앞마당으로 나오자 녹진이는 그제서야 주인집 문이 열릴때 얼핏 볼수 밖에 없었던 앞마당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었다. 
앞마당에는 자그마한 닭장과 개집, 그리고 감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대문 너머에는 푸르른 논밭이 있었는데 바람이 한번 불어오자 순간 녹색의 물결이 수려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뒤로는 커다란 산이 웅장하게 서있었고 그 풍경에 녹진이는 고통도 잊고 순간 멍해졌다. 주인이 바닥에 깔고 정성껏 꽃과 야채를 심어놓은 뒷마당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옛날옛적 산실장으로 살아오던 실장석의 본능을 일깨워줬다.

"자아, 너는 이제 사육실장이 아니야. 마당실장이지. 좋게 생각하라고? 아예 들실장으로 사는것보다는 나으니깐."

콰악!

"데엑!"

주인, 아니 남자는 녹진이의 목줄을 작업 하는 동안 도망 못가게 난간 위로 아슬아슬하게 위로 묶어 올렸다. 목을 매다는건 아니고 까치발을 해야만 목줄이 더이상 쥐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덕분에 녹진이는 자연을 목도하게 된 감동은 온데간데도 없이 필사적으로 까치발로 서야 했었다.
그동안 남자는 창고에서 삽을 가져와 마당 한구석을 파냈다. 
운치굴 할 구덩이, 그리고 적당히 세운 판자와 파낸 흙으로 지지대로 하우스를 대충 만들었다.

"자, 여기가 이제 니 하우스여."

남자는 쇠말뚝을 깊게 박고 거기에 목줄을 꽉 묶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기진맥진해진 녹진이는 그저 데에에엑 할 뿐이였다.



1일째, 

녹진이는 위석이 초고농축 활성액에 담겨진 덕분에 얻어맞은 충격에서 금방 회복 하고 말았다. 녹진이는 흐리멍텅 해진 눈으로 남자가 식사라면서 바닥에 살짝 오묵하게 판 구덩이에 퍼부은 음식물 쓰레기를 보았다. 거기에는 이제 쓸모가 없어진 실장사료가 잘게 부셔져 있었다. 
배려인가? 아니, 남자는 그냥 음식물 쓰레기랑 섞어서 주면 이 벌레들이 사료만 곱게 빼먹을까봐 그냥 잘게 부셔서 준 것이였다. 이틀전 저녁 이후로 아무것도 못먹었던 녹진이는 허겁지겁 음식물 쓰레기를 먹었다.
들실장시절 먹었던 익숙한 맛이였다. 아니, 그때 보다는 낫긴 했다. 그때는 마마가 음쓰 봉투에서 방치된지 좀 되어 쉰 냄새가 나는걸 얻어왔더라면 이건 말 그대로 그날그날 발생한 음식물 쓰레기니 상하지는 않았던 것이였다.

"오로롱..."

다만 전날 아침까지 사육실장으로 살다가 마당실장으로 추락하여 들실장이나 다름 없는 꼴을 하게 되니 자연스레 하늘과 땅과 운명과 전 주인을 원망하는 녹진이였다. 그러나, 아직 자신에게 희망은 남아있었다. 전날 아침 자신이 배 아파해가며 낳은 눈에 넣어도 안아플 귀여운 자식들이....!

철퍽!

"무능한 똥마마!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귀여운 아타시를 보필해야 하는데 감히 우마우마에 먼저 입을 대는 테치? 그 죄는 독라달마가 되어도 모자른 테치!"

일단 운치굴 노예는 필요한 것 같았다. 



5일째,

녹진이와 자실장 9마리들은 이제 마당 생활에 완전히 적응 했다. 때는 6월, 햇살이 점점 따가워지고 있지만 남자가 흙과 판자로 대충 만든 하우스는 비바람과 햇빛 정도는 막아줬다. 게다가 흙벽에 몸을 기대노라면 기분 좋은 서늘함이 더위를 식혀주었다.

"테에에에엥... 마마.... 햇빛씨가 뜨거운테치... 꺼내주는 테치..."

운치굴 노예는 그런거 없이 직빵으로 햇빛을 맞아 노릇노릇하게 익혀져야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목줄에 묶인 녹진이와는 달리 자실장들은 자유로웠기 때문에 햇빛이 덜할때면 마당을 신나게 쏘다녔다. 몰론 태어난지 일주일도 안된 자실장 체력 한계상 5~6m가 다였지만. 어쨋든 자실장들은 삼삼오오 뽈뽈 흩어지며 각종 호기심들을 채워나갔다.

"테치, 이건 뭐인테치?"
"마마는 멍멍씨라 부른테치."
"멍멍씨?"

삼녀와 사녀는 어느새 개집까지 찾아가 눈 앞에서 졸고 있는 개를 쳐다보며 한 마디 했다. 늙은 개 땡구였다. 땡구는 남자의 친척이 기르던 사냥개였는데 멧돼지 사냥하다가 부상을 입게 되었고 사냥 활동에 나서지 못하게 되자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시골집에서 남은 여생을 요양하게 된 것이였다.
땡구는 처음에는 의기소침 했지만 평화롭고 조용한 시골 풍경이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오늘도 기분 좋게 햇살을 받으며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역전의 용맹한 모습은 온데간데도 없이 한없이 늘어진 모습이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분충 두 자매는 뭔가 생각난건지 키득거리며 땡구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테푸푸풋, 정말이지 멍청해 보이는 멍멍씨인테치."
"고귀한 아타시와는 달리 정말로 한심해 보이는테치!"

그렇게 비웃으면서 조잘거리자 땡구는 기분이 나빠졌다. 영민한 땡구는 눈 앞의 똥벌레들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지만 대충 그 의도는 알 수가 있었다. 땡구는 조용히 그르렁 거렸다. 이쯤 되면 뭔가 심각하다는걸 깨달아야 했지만 자매들중에서 멍청하기로는 톱을 앞다투어 달리는 삼녀와 사녀는 그칠줄 모르고 계속해서 땡구를 조롱 했다.

"그르르릉...."

떙구는 이제 완전히 잠이 다 깼다. 두 눈은 떠지고 이빨이 드러났다. 몸을 반쯤 일으키자 삼녀와 사녀는 땡구가 예상 외로 크다는것을 깨닫고 살짝 빵콘을 했지만 오히려 더 기세등등하게 땡구를 모욕 했다.

"잘된테치! 오마에는 이제 아타시의 노예인테치!"
"고귀한 아타시를 섬기는거니 영광으로 알라는테치!"

삼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투분이였다. 그때, 때마침 낮잠에서 깨어난 녹진이는 멍하니 마당을 둘러보다가 삼녀와 사녀가 땡구 앞에서 멍청한 짓을 저지르는것을 보자 대경실색하며 달려나가려 했지만 목줄에 의해 금새 주저 앉았다.

"안된데스! 삼녀! 사녀! 당장 이리로 오라는... 데겍!!!!"

"컹!"

삼녀가 팬티 속에 손을 빼내려는 순간 땡구는 이제 더이상 못참고 삼녀의 상반신을 통째로 물었다. 삼녀는 뭐라 반응할새도 없이 그데로 절명했다. 땡구는 삼녀의 상반신을 뱉고 사녀를 보았다. 사녀는 잠깐 굳어있다가 도망치는대신 한 손을 볼에 가져다 대었다.
아양이였다.
땡구는 사녀를 잘금잘금 씹어댔다. 삼녀와는 달리 고통은 오래갔고 다른 자실장들은 즉시 빵콘 하여 마마에게 달려 오들오들 떨 뿐이였다. 한참 후 남자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올때 녹진이는 다른 자실장들을 끌어 안은채 통곡 하고 있었고 땡구는 갈기갈기 찢겨진 삼녀와 사녀의 시체를 보며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듯 씩씩 대고 있었다. 
그걸 보며 남자는 대충 일의 전말을 깨달을수가 있었다.

"똥벌레놈들...."

보나마나 자실장 두마리가 땡구를 상대로 분충짓 하다가 참교육 당한거겠지.

"한심한 녀석들 같으니..."

남자는 삼녀와 사녀의 시체를 대충 대문 너머 길건너편에 있는 논두렁에 던졌다. 드렁허리나 미꾸라지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땡구야, 소세지 줄테니깐 화풀어."

"헥헥헥헥!"

땡구는 소시지라는 말에 기쁜듯 꼬리를 훽훽 치면서 남자에게 재롱을 부렀다. 남자는 그런 땡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녹진이에게 다가갔다. 오로롱 거리며 대성통곡 하는 녹진이의 머리를 살짝 걷어차며 "식사시간이다." 라고 말하며 밥그릇용 얇은 구덩이에 음식물 쓰레기를 쏟아부었다.
그러고는 집 안에 잠깐 들어가더니 개 전용 소시지를 가지고 와 땡구의 입에 직접 물려주었다.
녹진이는 마침 배고팠던지라 고개를 박고 자실장들과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치우며 원망하는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색눈물이 투명한 눈물로 바꾼지는 오래였다.



25일째,

녹진이는 먼저 간 삼녀와 사녀를 떠올렸다. 

"괘씸하고 멍청한 년들이였던데스."

생각해보면 멍청한 것들이였다. 땡구가 두 녀석들을 물어 죽인건 괘씸 했지만 두 녀석은 그러지 않아도 본인이 독라달마형에 처할 예정이였다. 왜냐하면 멍청한 주제에 식탐만은 많아서 감히 마마의 음식을 함부로 먹어치우는 괘씸한 것들이였으니깐.
몰론 삼녀와 사녀가 살아있었을때는 다른 자매들보다는 많이 먹기는 해도 자실장인 이상 먹어치우는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녹진이가 이런 생각을 하는건 이유는 다름 아니라 성장한 자실장들의 식사량 때문이였다.

"테에... 더 없는테치?"

음식물 쓰레기 양은 여전... 아니, 이제 더이상 분쇄 해서 섞어서 줄 사료가 없게 된 이상 양이 줄어들었는데 자실장들은 몸집이 더 커졌기 때문이였다. 마당에서 음식물 쓰레기로만 연명 하는데 왜 이럴까? 그건 다름이 아니라 남자가 준 음식물 쓰레기에는 비계라던가 껍데기라던가 야채의 잔뿌리나 시든 부분이라던가 밥알들이 있는데다가 특히나 영양만점 사료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자실장들은 다른 들실장에 비하면 무럭무럭 자랄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사료는 이제 둥이 났고 남자는 혼자 살았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 양은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결국 자매들은 한정된 식량을 가지고 매끼마다 자매들과 싸우거나 혹은 벌레나 지렁이를 잡아 먹어야 했었다. 녹진이? 목줄에 묶여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무슨?
결국 녹진이는 결단을 해야 했다.

"자들 들어보는데스."

"뭐인테치?"
"밥시간인테치?"
"벌레씨?"
"전 오녀처럼 운치를 먹는테치?"
"밥!"
"우마우마!"
"똥노예가 또 진상을 하러온테치?"

"그건 아닌데스."

그러자 곧바로 실망을 하는 자실장들, 그러나 이어진 녹진이의 말에 다들 환호작약 했다.

"실망하지 말라는데스! 우마우마씨가 어디 있는지 이 대단한 마마가 예견한데스!"

"우마우마!"
"그게 어디에 있는테치?"
"노예가 진상 하러 오는게 아닌테치?"

"그건 바로! 달걀씨인데스!"

녹진이는 닭장을 가리켰다. 몇마리의 닭들이 평소처럼 꼬꼬 거리며 사료를 쪼아 먹거나 달걀을 품고 있었다. 

"자들은 달걀씨를 먹어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것은 딱딱하고 동근 껍데기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저절로 하얗고 노랗게 되면서 우마우마한 밥씨가 되는데스! 하얀색 살점은 보들보들, 따뜻했고 노란색 살점은 진하고 고소한 맛이였던데스!"

주인이 어쩌다가 해준 계란 후라이가 참 인상적인 모양이였나보다.
그러자 자실장들은 저도 모르게 침을 줄줄 흐르며 녹진이가 말한 달걀씨를 벌써부터 스시나 스테이크에 비견 되는 최상의 진미로 인식 하기 시작했다.

"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테레비씨에서 본 바로는 그 달걀씨라는것은 저 닭씨들이 품고 다니는것인데스!"

"그런테치?"
"근데 그 달걀씨는 어디에 있는테치?"

"닭장에 있는데스."

"닭장? 마마가 가르킨 저 닭씨들이 있는 곳 말인테치?"

"그런데스, 자들은 이제 달걀씨를 가져와야 하는데스."

그 말에 자실장은 아우성거렸다. 아니, 가져올거면 본인이 가져와야 해야지 왜 고귀한 자기들에게 시키는것인가? 정말이 괘씸한 마마가 아닐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마가 첫날에 솎아낸 전 오녀ㅡ현 운치굴 독라 노예ㅡ의 옷씨를 들고 팔랑거리자 툴툴거리면서 닭장으로 갔다.

"테에에... 아타시보다 큰 테치..."
"계속 꼬꼬 거리는 테치."
"정말 안으로 들어가야하는테치?"

달걀씨를 가지러갈때는 아무 생각이 안들었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게 되니 위압감이 장난 아니였다. 마마만큼이나 큰 덩치도 그러했지만 날카로운 발톱과 뾰족한 부리, 그리고 자신들을 향해 못마땅하게 쳐다보는듯한 그 두 눈까지. 태어난지 이제 한달 다되가는 자실장들이 함부로 범접 할만한게 아니였다.

"테챠아아앗! 무엄한테치! 닭씨는 아타시의 세레브한 미식을 방해하지 말라는 테치!"

육녀가 그렇게 소리지르면서 닭장문 사이로 들어갔다. 그러자 칠녀도 질새라 육녀를 따라갔는데 그걸 보고 다른 자매들은 '감히' 저 분충년들이 자기들을 빼놓고 달걀씨를 독점 하려는것처럼 보이자 따라가려 했다.
그래, 곧이어 닭장 안에서 육녀와 칠녀가 수탉의 무자비한 부리 쪼임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테게에엑!"
"텍텍!텍텍!"

수탉의 부리는 육녀의 뱃가죽을 손쉽게 뚫고 그 속에 있던 분대를 뽑아냈다. 육녀는 테에엑 하다가 분대를 뱉어낸 수탉이 재차 위석을 쪼아내자 그대로 절명 했다. 칠녀는 그것을 보고 빵콘 하면서 재빨리 돌아가려 했지만 달걀을 품고 있던 암탉이 칠녀가 자신의 앞을 지나가자 흥미 본위로 부리로 머리를 쪼아대자 곧바로 백치가 되어버렸다.

"하무라뾰... 루빠모... 메빠소..."

다섯명의 자매들은 그것을 보며 빵콘 했다. 수탉은 이제 흥분해서 홰치자 혼비백산 해져버렸다. 자실장들의 눈에는 저 두려운 닭씨가 금방이라도 얇은 철망을 뚫고 자신들에게 날아올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자매들에게 싸리빗자루가 한번 쓸고 지나갔다.

"아니 이 새끼들 왜 여기서 빵콘하고... 엉? 뭐야? 닭장안에 두마리나 들어갔네?"

남자는 가만히 자실장들을 쳐다보았다. 자실장들은 난데없는 싸리빗자루질에 경황이 없어 하는가운데 달걀 만을 울부 짖었다.

"달걀씨! 아타시의 세레브한 미식이!"
"똥닝겐! 당장 저 닭씨들을 해치워버리고 달걀씨를 아타시한테 대령하라는텕!"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남자는 싸리빗자루로 자실장들을 쓸어다니면서 꾸짖었다.

"아니 이 새끼들이 진짜? 감히 누구 밥을 넘보는거야? 보나마나 니놈들 애미가 시켰구만!"

"테갸아아악!"
"텟치! 텟치! 어지러운! 텟치!"
"테데뎃!"
"테에엑!"
"테챠아아앗!"

"데, 데에엑..."

자실장들은 싸리빗자루에 쓸리고 쓸려 마침내 녹진이 앞까지 쓸려나갔다. 남자는 감히 자신의 식탁에 올라갈 달걀 후라이를 노린 녹진이를 쳐다 보았다. 

"데스웅~♥"

남자는 녹진이의 턱을 한번 후려쳤다. 녹진이와 자실장들은 벌로 그날 저녁을 밥빼기 당했다.



58일째,

그간 녹진이와 자실장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 두가지 발생했다. 땡별에 잘 못먹고 못마셔 죽을뻔한걸 때마침 일주일 정도 장마기간이 오는 바람에 땡별에 말라 죽을 걱정도 못 마실 걱정 없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남자가 몇년동안 미뤄왔던 냉장고 정리를 했기 때문이였다. 시골집에 가보면 알겠지만 냉장고가 기본 두대에 먹을게 넘쳐나는 시골 특성상 먹을걸 이것저것 선물 받기 마련인지라 혼자 사는 남자가 제때제때 못 해치워 냉장고에 집어넣고 잊어 버린게 부지수였는데 남자가 장마가 와서 밖에 일 못나가자 이 참에 냉장고 정리를 하였고 그 결과 먹지도 못할 것들이 넘쳐났다. 남자는 이걸 즉시 녹진이한테 짬처리 시켰다.

그동안 본의 아니게 굶주림에 시달렸던 녹진이들은 똥노예가 이제야 알아 모신다며(한대 얻어터졌다) 꾸역꾸역 먹어치웠지만 거의 장마기간인 일주일 넘게 배부르게 지낼수가 있었다. 몰론 일주일 지나자 눈에 띄게 줄어든 양을 보고 녹진이는 식량 통제를 하였다. 좀 오래 가는것들은 자기가 따로 보관하고 금방 상하는것들만 먹어치우게 했다. 
그리고 금방 상하는 음식들을 다 먹어치우고 덜 상하는 음식들만 남게 되자 녹진이는 지난 두달 동안 실추되었던 마마로서의 위엄을 일주일 동안 되찾을수가 있었다.

"데숭."

"마마! 오늘도 아타시에게 일용할 양식을 나눠주셔서 고마운테치!"
"테치! 오늘도 아름답고 근사한테치!"
"뒤룩뒤룩 접힌 살은 마마의 위엄을 나타나는테치!"
"마마! 오늘도 전 오녀에게 운치를 퍼부어 위계질서를 바로 잡는테치!"
"마마가 내려준 우마우마 경단, 잘 먹겠는테치!"

식량 배분을 끝낸 녹진이가 한번 헛기침을 하자 자실장들은 앞다투어 녹진이에게 아부를 했다. 그리고 남자와 땡구는 그 꼴을 보고 참 한심하다고 생각 했다. 그때, 열어놓은 현관문을 통해 다음 뉴스가 흘려나왔다.

ㅡ예, 올해는 장마가 작년에 비해 비교적 짧게 끝난 대신 태풍이 조금 이르게 찾아올 예정인데요

ㅡ기상청의 예보에 따르면 내일 오후 7시 쯔음에 태풍이 한반도 남부에 상륙해서 그 다음날 새벽 3시에 강원도 방향으로 대각선으로 빠져 나간다고 합니다.

ㅡ일부 학자는 이러한 날씨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날씨가 정말 불규칙 해진 것이라 하였습니다.

"뭐?! 장마가 끝난지 이제 일주일 밖에 안됬는데 벌써 태풍이 와?"

남자는 기겁하면서 즉시 태풍을 대비 하기 시작했다. 개집이나 도구처럼 바람에 날라가기 쉬운 것들은 죄다 창고 안에 쳐박아 놓았다. 닭들도 대충 철망 같은 걸로 창고 안에다가 임시 닭장을 만들어 그 안에다가 집어 넣은 후 문을 굳게 닫고 그 앞에다가 모래주머니를 쌓아 튼튼하게 보강 했다. 

"땡구는... 우리 집에 오자."

남자는 마지막으로 집 밖에 날라다닐만한 것들이 없는지 재점검 했다. 닭장처럼 설치형 시설은 아쉽지만 이번 태풍에 무사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만들때 시멘트랑 나무, 철망을 써서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태풍은 그런거 상관 없이 죄다 부셔버리니깐. 남자는 집 창문들을 굳게 닫기 위해서 집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녹진이네 하우스를 바라보았다. 
대충 판때기를 박아넣고 흙덩어리를 치덕치덕 발라 만든 초라한 하우스, 태풍이 오면 100% 날라갈게 뻔했다.

"흐음..."

남자는 잠깐 고민하다가 남아도는 모래주머니를 녹진이네 하우스 주변에 쌓았다. 그리고 작년에 쓰다 남은 시멘트를 반죽 해서 통째로 판잣집 외벽에 부었다. 딱히 녹진이를 위해서는 아니였고 녹진이의 병신짓을 지켜보는게 재밌어서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였다. 무엇보다, 진짜로 녹진이를 위해서였더라면 이번 태풍이 올때 녹진이와 자실장을 집안으로 들이거나 창고 안에 들여놨어야 했다. 허나 남자는 그러지 않았다.
녹진이가 살아서 병신 짓거리를 해서 웃겨주면 좋긴한데 이번 태풍에 죽어도 상관 없다.
이게 남자 안에서 녹진이의 인식이였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남자는 녹진이에게 먹다남은 김치찌개를 주었다. 돼지고기 살코기가 서너점 정도 들어 있었는데 녹진이는 그걸 보자 부리나케 달려와 고기들을 씹지 않고 집어 삼켰다. 남자는 그런 녹진이를 보며 비웃더니 이내 한 마디 했다.

"죽기 싫으면 네 판잣집 안으로 들어가는게 좋을꺼야."

"데엑?"

"테챠아앗! 마마가 고기를 다 먹은테치!"
"난 김치쪼가리라도 상관 없는테치!"
"테치! 마마! 똥닝겐에게 다시 고기를 진상.. 테붓!"
"닝겐사마! 똥마마를 숙청하라는 테치!"
"닝겐! 나를 후원하라는 테치!"

녹진이가 남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은 것은 그날 저녁이였다. 갑자기 눈을 제대로 뜰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이내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지다가 빗줄기와 바람이 몸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데에에에엑!!!"

남자가 이중삼중으로 쌓아놓은 모래 주머니는 물기를 머금고 더욱더 무거워져 비바람을 훌륭히 막아내고 있지만 천장은 막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녹진이는 속절 없이 비바람에 시달려야 했다. 다행인것은 모래주머니가 옆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나 잔해들을 막아주고 있다는 점이였지만 그걸 이해할 지능이 없는 녹진이는 그저 남자를 저주하면서 새끼들을 꼭 안았다.

"테챠아아아악!!!"
"일가실각인테치!"
"테르르아아아악!"
"테갸갸각!"
"이타이한테치!"

자실장들의 비명에 안되겠다 싶은 녹진이는 자리에 일어나 자실장들을 하우스 안쪽으로 들여놓고 자기는 바깥을 향해 등을 돌려 비바람을 대신 막아주기로 했다. 허나 일어서는 순간 강한 바람이 모래주머니를 타고 넘어와 녹진이와 자실장들을 하우스 안쪽 벽에 몰아 부쳤다.

"데갸아아아악!!!!"

"테벳!"
"텟치!"
"테에엥!"
"텍!"

ㅡ파킨!

막내인 십녀는 벽에 부딪친 충격을 못이기고 그만 파킨 해버리고 말았다. 녹진이는 울부 짖으려 했지만 입을 벌리는 순간 바람이 입안을 왕창 헤집어버려서 나오는건 괴상망측한 말이였다.

"데뿌와아오아와와와왕~!"

결국 녹진이는 바람이 약해져 버린 틈을 타서 겨우 겨우 몸을 돌려 자실장들을 감싸안을수가 있었다. 그렇게 녹진이는 태풍이 지나가 잠잠해지는 새벽이 올때까지 그대로 비바람을 등으로 맞아야 했다. 
녹진이는, 버텨냈다.

다음날 아침, 남자는 창문을 통해 하늘이 맑게 빛나는 것을 보자 즉시 문을 열었다. 창고 문 앞을 가로 맞은 모래주머니를 치우고 문을 열자 닭들은 임시 닭장 안에서 얌전히 꼬꼬 거리고 있었다. 원래 있던 닭장은 그리 심하게 파손 되지 않았다. 끽해봤자 문 경첩이 약간 뜯겨나간 정도?
남자는 닭들을 원래 있던 위치에 돌려 보내고 개집도 꺼내놨다.

"멍!"

"그래, 땡구야. 너도 집이 좋지?"

남자는 태풍으로 지저분해진 마당을 쓸기 위해 싸리빗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한참을 열심히 마당을 쓸다가 문득 녹진이를 떠올렸다.

"아니, 내가 왜 이런 꿀잼을 놓친거지?"

마당 한구석에 있던 녹진이네 하우스로 가보니 판때기 천장은 진작에 뜯겨나갔다. 그리고 녹진이는 탈진한 모습으로 자실장들을 꼭 끌어 안고 있었는데 남자가 다가오자 힘 없이 울었다.

"데스우..."

가만히 살펴보니 다섯마리의 자실장 중 1마리가 죽어있었다. 남자는 피식 웃으며 한 마디 했다.

"그정도면 많이 살았네?"

"데샤아아아아아....."

녹진이는 으르렁 거렸지만 밤새 태풍에 시달린 녹진이의 입에 나오는것은 매가리 없는 울음 뿐이였다. 남자는 그런 녹진이와 자실장들을 위해 특별히 싹난 감자 한박스를 퍼부어줬다. 색눈물은 다시금 투명해졌다.



68일째,

한차례 큰 풍파를 겪은 녹진이네 하우스, 다행히 남자가 모래주머니도 치워주고 뜯겨나간 천장도 다시 보수해줬다. 그동안 그들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잠을 자다가 밥시간 되면 감자와 음식물 쓰레기를 먹었고 배부르면 운치를 싼 후 다시 잠을 잤다. 그렇게 열흘 가까이 지나자 녹진이와 자실장들은 기력을 되찾을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먼저 한 것은 내분이였다.

"테샤아아악! 더이상 못참는테치 무능한 똥마마!"

"뭐, 뭐라고 한데스?"

"오마에가 무능하기 때문에 아타시들은 굶주리고 목마르고 비바람에 시달려야 한 테치!"
"맞는테치! 뭐? 우마우마의 공정한 분배? 그거 다 똥닝겐이 마련해준거지 오마에가 주는건 아닌테치!"

차녀와 팔녀가 그렇게 대들자 녹진이는 마마로서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몸소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순간 차녀와 팔녀는 그럴줄 알았다는듯 쨉싸게 몸을 돌려 마당을 달려갔다. 녹진이는 쫒아가려 했지만 목줄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결국 녹진이는 씩씩 대면서 한 마디 했다.

"밖은 지옥인데스. 전 들실장으로 살아온 와타시가 보증 하는데스."

장녀와 구녀는 한심하다는듯 녹진이를 쳐다보았다. 허나 녹진이의 말은 맞았다. 차녀와 팔녀는 마당에서 살아온 나날이 지옥 같다고 생각 했지만 그것은 틀렸다. 아늑한 집안은 아니였지만 담벼락이 그들을 지켜주었고 관록 있는 사냥개 땡구가 고양이나 잡짐승이 함부로 집안에 들어오는걸 막아주었다. 거기에 매일매일 음식물 쓰레기이지만 먹을게 부족하나마 보충 되었으니 태풍 같은 재해가 아닌 이상 남자의 집, 벽 안은 그녀들을 지켜주었다.

"테치... 긴 풀씨인테치..."

"물씨가 많은테치!"

차녀와 팔녀는 시시덕 거리며 논밭을 구경 했다. 태어나서 두달 넘게 마당에서만 살아온 자실장들에게 마당 밖, 집 밖은 정말이지 신기한거 투성이였다. 팔녀는 신기하다는듯 논을 내려다 보았다. 정말로 많은 물들이 가득차 있었고 자신의 얼굴과 푸른 하늘이 비쳐졌다. 떡하고 입을 벌리다가 무언가가 물 밑에서 쏜살처럼 지나가자 테엣! 하고 놀랬다. 신기해서 손을 뻗다가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그만 논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풍덩!

"테에엣!"

"무슨 일인테치?"

"물에 빠진 테치!"

그 말에 차녀는 주변을 둘러보는걸 멈추고 즉시 팔녀에게 다가갔다. 팔녀는 물속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다.

"일어서지 못하겠는테치!"

"도와주겠다는테치!"

차녀는 즉시 논 속으로 들어갔다. 차갑지만 기분 좋은 시원함이였다. 차녀는 부르르 떨며 팔녀에게 다가갔다. 허나 다가갈수가 없었다. 차녀의 발이 진흙 속에 빠져버린 탓에 한 발자국 내딛으려 해도 진흙이 발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럴수 없던 것이였다.

"텟치! 텟치!"

설상가상으로 몸부림 칠때마다 몸이 진흙 속으로 잠겨들기 시작했다. 결국 목까지 물에 잠기고 나서야 두 자매는 서로 악다구니를 퍼붓기 시작했다.

"오마에 때문인테치! 오마에가 경솔하게 빠져버린 탓에 나도 이 꼴이 되버린테치!"

"헛소리 마라는 테치! 차녀는 오네 주제에 약하니깐 고귀한 아타시를 구하지 못했기에 이런 꼴이 되버린테치!"

"테샤아아악!!!"

"테샤아아아앗!!!!"

그렇게 서로 악다구니를 쓰는 와중에 무언가가 팔녀에게 다가갔다. 아까 팔녀가 논 바깥에 있었을때 보았던 무언가였다. 그것은 메기였다. 원래 여기 살던 메기는 아니였지만 이 밭의 주인인 농부가 친환경 농법을 시도 해본다고 풀어 버린 까닭에 여기 살게 되었다. 메기는 자신의 앞에서 부주의 하게 첨벙 거리는 두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몸의 절반 크기만한 생명체는 척 봐도 굼떠보였다.

"테, 테치?"

"이, 이게 뭔 테치? 긴긴씨 아닌테치?"

30cm 에 달하는 메기는 아무리 커봤자 15cm 도 안되는 자실장들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커보였다. 자신의 주변을 느릿하게 헤엄치고 있는 메기는 아무리 멍청한 자실장이라 할지라도 곧이어 벌어지는 슬픈 일을 짐작 할 수가 있었다.

"테, 테챠아아앗! 똥마마! 똥오네! 다, 당장 아타시를 구하라는 테치이이이읽?!"

결국 공포에 견디다 못한 팔녀가 발버둥치는 순간 메기가 그 입을 쩍 벌리고 팔녀의 상반신을 집어 삼켰다. 메기는 짓소산을 느꼈다. 맛있다! 메기는 곧바로 남은 하반신도 마저 먹어치웠다. 그러고는 넋나간 표정으로 아첨 하고 있는 차녀를 바라보았다. 

"텟츙?"

공포심에 빠져 짓소산이 전신 끝까지 배출된 차녀는 더더욱 맛있었다.



230일째,

이제 완전히 겨울이 되었다. 남자는 핫초코를 호로록 마시면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는 따뜻한 털 스웨터를 입은 땡구가 추위를 느꼈는지 두꺼운 거적으로 외벽과 내벽을 두르고 입구는 이중 삼중 두거운 비닐 다발을 설치해서 바람을 막고 벽에도 열선을 깔아놔 따뜻한 개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그걸 보며 주변에 모래주머니를 쌓아 바람을 더 막게 해볼까? 생각해봤다. 닭장은 더더욱 보강해서 동사할 걱정은 안해도 된다.

"흠..."

남자는 마지막으로 녹진이네 하우스를 바라보았다. 구녀는 온데간데도 없다. 왜 없냐면 10월 말 감 수확시기때 어쩌다가 땅에 떨어진 홍시를 한번 맛보고는 아마아마를 맛보겠다며 설치다가 설익은 감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핏자국이 되고 말았던 것이였다.
남자는 그때 그 구녀의 시체를 감나무 밑에 묻어놨다.
애도의 의미는 아니고 비료라도 되라고.

철컥,

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온 몸을 으슬으슬하게 만든다. 세상은 온난화다 뭐다 해서 겨울이 더이상 따뜻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이런 산골짜기는 이야기가 다른법, 예년처럼 싸늘한 바람이 그를 반겨줬다. 남자는 녹진이에게 다가갔다.
녹진이는 얼어죽은 장녀를 앞에 둔채 어디선가 날라온 신문지를 이불 마냥 두른채 덜덜 떨고 있었다. 남자는 장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옷은 벗겨져 있었고 장녀는 한껏 웅크린 자세로 죽어 있었다.

"옷을 뺏었구나?"

"데에....."

사실 녹진이가 가지고 있는 자실장의 옷은 딱 하나 밖에 없었다. 첫날 바로 녹진이에게 투분 하며 대든 오녀의 옷 뿐이였고 태풍에 죽은 십녀는 아직 모성애가 있었던 녹진이가 손수 묻어준 탓에 그녀의 손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머지 자실장들은 죄다 녹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죽었기 때문에 녹진이가 옷을 챙기지 못했다.
유일한 하나, 마지막 까지 살아남은 장녀를 빼고 말이다. 녹진이는 품안에 안긴 장녀와 오녀의 옷가지를 꼭 껴안더니 마침내 힘이 다 빠진 모양인지 벌러덩 뒤로 넘어졌다.

주르륵

남자는 닫을 생각도 못하는 녹진이의 입에 핫초코를 부었다. 혀에 달콤함이 느껴지고 목구멍 너머로 따뜻함이 느껴지자 전신에 활력이 돌아오는것을 느낀 녹진이는 흐리멍텅 해진 두 눈이 다시 또렷해졌다. 녹진이는 갑자기 미친듯이 쪼갰다. 
작년 겨울 이후로 다시 맛을 보지도 못했던 핫초코를 마시게 되자 남자가 다시 자신을 사육실장으로 들인다는 착각에 빠진 것인가? 혹은 조금 기운이 돌아오자 자신이 장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아서 실성을 한 것인가? 둘 중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 걸까?
한참을 웃던 녹진이는 갑자기 색눈물을 흘렸다. 빨갛고 푸르게 빛나는 아름다운 눈물을, 눈물은 한방울씩 흘려나가더니 이내 멈췄다. 녹진이는 마지막으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주인사마, 정말로 죄송한데스. 그리고 그때 와타시를 거둬줘서 고마웠던데스. 주인사마와 함께 했던 나날은 정말로 즐거웠던데스."

"오냐,"

잠시후 남자는 밥그릇용 웅덩이를 깊게 파냈다. 그는 거기에다가 제대로 된 사육실장복을 입은 녹진이와 장녀를 담요에 감싼채 묻었다. 녹진이가 아직 자실장 시절에 입었던 사육실장복을 남자는 어째선지 여태 가지고 있었다. 깊게 묻고 녹진이네 하우스를 허물어 그 위에 봉분 까지 만들어 놓은 남자는 운치굴에 갔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오녀가 운치가 발효하면서 나오는 열로 인해 이 강추위에도 아직까지 목숨을 연명 하고 있었다.

"야."

"테엣? 너, 너, 똥닝겐 잘만난테치! 어서 세레브하고도 고귀한 아타시를 궁전으로 모시라는테치!"

"니 마마랑 자매들 다 죽었다."

그 말에 오녀는 멍하니 있다가 이내 비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테치치치! 그 무능한 똥마마와 멍청한 자매들이 죽었다니 마땅한 결말인테치! 감히 이 고귀한 아타시를 이곳에 유배 시키다니 천번 죽어도 모자르는테치!"

"그러냐? 그나저나 너도 참 징글징글하다. 네 마마는 마지막에 정신 차렸는데 너는 아직도 그러냐?"

"아타시는 제정신인테치!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도 세레브한 아타시는 이 궁벽한 곳이 아니라 궁전에 살아야 하는 테치!"

"그래, 그래, 궁전에 살게 해주마."

"테치치치! 이제야 말귀를 알아 듣는테치!"

"지하 궁전에 말이야."

남자는 곧바로 삽을 들어 운치굴 구멍을 매꿨다. 여기까지 와놓고도 오녀는 참으로 징글징글 했다. 그러고보니 첫날 자신을 보자마자 먼저 투분 했던게 저 녀석이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해서 잘 모르겠다. 남자는 녹진이의 무덤을 향해 한 마디 했다.

"쟤는 진짜 안되겠다."

그때 어디선가 동의한다는듯 데스웅 하는 소리가 들린것 같았다. 바람 소리인가? 남자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 남자는 실장석을 일평생 다시는 기르지 않았다.








공원구제 맛도리 클리셰 (ㅇㅇ(222.238))


공원의 어느 수풀 속에 위치한 골판지 상자...

상자 안에는 다섯마리의 자실장들이 벽에 기대어 있거나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넋이 나가있음. 

'테에...'

'텟?'

'테엣!'

그렇게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자실장들은 이내 익숙한 냄새를 맡자 용수철 튕기듯 일어나서 입구로 와르르 몰려감. 

이내 문이 열리고 등장하는 친실장...자실장들은 테치테치, 테츄테츄 시끄럽게 마마의 귀환을 환영함. 

친실장은 사랑스러운 자들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띄우지만 이내 다시 그늘진 얼굴로 돌아옴. 

친실장의 어두운 얼굴을 눈치 채지 못한 자실장들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친실장이 들고 있는 비닐 봉투를 빤히 바라봄...벌써 삼일째 제대로 된 음식(음쓰)을 먹지 못했던 거임... 

오늘은 마마가 맛나맛나를 잔뜩 가져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친실장의 비닐 봉투에서 나온 것은 맛대가리라곤 없고 씹기도 힘든 풀쪼가리들...그마저도 충분한 양이 아님... 

풀쪼가리를 보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린 자실장들...특히 막내는 그대로 주저앉아서 고개를 떨굼. 

'"미안한 데스...마마가 무능력한 탓인 데스..."

사실 아님, 친실장은 벌써 세번의 겨울을 견디고 여러 자를 독립시킨 전적이 있는 베테랑 친실장임. 하지만 근래 먹이터가 여럿 폐쇄되면서 먹이를 구하는게 매우 힘들어지고 말았음...

먹이터가 폐쇄된 이유는 불어난 들실장들이 쓰레기장을 헤집어 놓아 이루어진 조치지만 들실장들이 그 사실을 알리는 없음. 

"......"

자실장들은 말없이 친실장이 뽑아온 잡초를 입에 넣기 시작함. 멍하니 오네챠들을 바라보던 막내 오녀도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잡초더미로 향함... 

단지 맛이 없는 수준을 넘어 먹어서는 안될 무기물을 먹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어쨌거나 잡초를 입에 꾸역꾸역 넣고 억지로 삼키기 시작함. 

어차피 다른 방도가 없음. 이미 울면서 떼도 써보고 친실장에게 매달려 빌어도 봤지만...바뀌는 것은 없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은 거임.

이내 잡초더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허기조차 사라지지 않음...

장녀는 뭉툭한 손으로 애꿎은 배만 슥슥 문지르다...문득 생각 났다는 듯이 친실장을 향해 말함.

"마마는 먹지 않아도 되는 테치?"

"괜찮은 데스, 자들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른 데스우."

그럴리가 있나...친실장은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걱정해준 장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줌. 그러다가 아예 안아 들고 몸 전체를 구석구석 햝아주기 시작함.

"테프프픗, 마마 간지러운 테치이~"

어른스러운 척 해봐야 이제 태어난지 두달이 안된 어린 자실장...

마마의 품에 폭 안긴채 들실장식 아와아와를 받는 장녀는 이내 배고픔도 잊고 '텟츄우~ 텟츄우~' 하며 친실장에게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함. 

그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는 다른 자실장들...응석쟁이 삼녀는 참지 못하고 달려가서 마마의 치맛자락에 몸을 묻음.

"아타치도 예뻐예뻐 해주는 테츄!"

"차녀부터 차례대로 기다리는 데스야. 순서를 잘 지켜야 착한 자인 데스."

그래...다른 것이 행복이냐. 이게 행복이다.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이 순간 만큼은 하나도 배고프지 않다고 생각하는 친실장...

그리고 내일은...내일은 맛나맛나와 우마우마를 잔뜩 구해 자들을 배터지게 먹여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애호파 닌겐들이 와서 실장푸드를 줄지도 모르겠다며 행복회로를 돌림.

애호파가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이 벌써 반년 전의 일임을 까먹은 거 같음... 

"......마......가......악.....!"

친실장이 장녀와 차녀의 차례를 마치고 삼녀를 안아든 순간이었음. 

저 멀리로 부터 동족의 비명 소리 비슷한 것이 들려오기 시작함. 

친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림.

동족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님.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있는 일이라 이젠 자실장들도 놀라지 않음.

그런데 뭔가 이상함. 

마음이 콩닥 콩닥하는 것이... 

".......하......악......오는........도망.......!"

동족의 비명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면서 또렷해짐. 그리고 친실장 일가는 똑똑히 들음. 

"하얀악마가 오는 데스우!!!!!!!!!!!!!!!!!! 모두 도망치는 데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갑자기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하는 자실장들. 

친실장이 어린 자들에게 유일하게 가르친 배변교육도 무색하게, 안겨있는 삼녀를 포함해 자실장 전원이 거하게 빵콘을 함. 

부릿. 브리리릿. 

탓할 수도 없음. 탓할 사람도 없음. 이미 친실장도 제정신이 아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친실장의 팬티도 점점 녹색으로 물들고 있었음. 

하얀 악마. 

위석이 알려주는 본능적인 정보중 하나. 

들실장들에게 있어서 하얀악마는 그냥 자연재해임. 예고없이 밀려드는 쓰나미 같은거임. 

친실장 일가의 골판지 상자는 공원에서도 제법 후미진 곳에 있음. 친실장의 마마가 알려준 지혜 중 하나...이미 공원은 지옥도가 시작되고 있었음.

조용히 시작된 구제 작업은 입구란 입구는 모조리 차단막을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됨. 

눈치가 빠른 일부 실장석들은 빠르게 공원에서 도망치려고 하지만 이미 늦음...색눈물을 흘리며 의미없는 점프를 해보거나 차단막을 뭉툭한 손으로 두드려보지만 연약한 손만 우그러질 뿐임. 

우왕좌왕 도망치다 하얀 악마를 마주친 어떤 일가의 친실장은 그저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하얀악마를 향해 엄지실장을 들어올림...친실장은 자기가 지금 뭘 하는지도 모름. 이미 머릿속은 몇 번이나 미치고 미쳐서 백치 비슷한 상태가 되었음. 그냥 본능적으로...기계적으로 행동중임.

머리가 조금 모자라게 태어난 엄지실장은 생애 처음 느껴보는 부유감에 '레햐야~' 거리면서 자기도 품에 안고 있던 구더기를 하얀 악마에게 자랑하듯 내밈.

하얀악마는 말없이 빠루를 치켜올려 내려침. 그렇게 세마리 실장석은 '구제'됨.

돌아와서 친실장 일가의 골판지 안. 

베테랑 친실장도 구제작업은 처음 겪어봄. 
  
머릿속으로 '어떡해야 하는 데스. 어떡해야 하는 데스. 어떡해야하는 데스!!!' 하면서 맹렬하게 작은 뇌를 돌려보지만 친실장의 마마에게서 이런 것은 교육받지 못함. 위석 또한 하얀 악마에 대한 무한한 공포만을 알려주고 있을 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음. 

결국 친실장이 선택한 것은 도망임. 

품에 삼녀를 안은 채로 벌떡 일어난 친실장의 허벅지 사이로는 운치가 새어나오고 있음. 

그대로 골판지 상자를 나가 도망치려던 친실장의 귀에 장녀의 목소리가 들려옴.

"마마...?"

아뿔싸, 하얀 악마의 무서움에 소중한 자들 조차 잊어버리고 도망칠 뻔 했던 것임. 

친실장은 자실장들을 향해 외치듯 말함.

"당장 도망쳐야 하는데스...! 하얀 악마가 오고 있는 데스! 모두들 마마를 따라...아니, 전부 각각 따로 사방으로 도망치는 데스으!"

친실장은 자기가 내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을 내림. 하지만 자실장들은 친실장의 영리함을 이어받지 못한 것 같음. 

친실장의 입에서 '하얀악마'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삽시간에 혼란에 빠지고 만 것임.

테...테...테....테챠아아아아! 테치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아 빵콘을 하는 자. 골판지 상자를 무의미 하게 빙글 빙글 돌면서 빵콘을 하는 자. 골판지 한 구석으로 도망가 손에 닿지 않는 귀를 향해 두 손을 올린 채로 부들부들 떨면서 빵콘을 하는 자. 무거운 돌이 괴어져 있어 열릴 리 없는 보존식 상자를 향해 뛰어가면서 빵콘을 하는 자...

"조용하는 데스!!! 빨리 도망쳐야 하는 데스!!!"

애가 타는 친실장이 소리를 질러 보지만 소용이 없음. 그나마 품 안의 삼녀는 이상하게 조용함. 

그 와중에 동족의 비명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친실장이 다시 정신을 차림. 

이젠 어쩔 수가 없음. 마지막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듯 여전히 도망칠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자들을 향해 "마마는 분명히 도망치라고 말한 데스..." 하며 삼녀를 안은 채로 상자 안을 나가버림. 

"테? 마마? 마마? 마마아!!!"

친실장이 자기들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깨달은 네마리 자실장들. 

이제는 마마를 목놓아 울면서 찾기 시작함. 의지할 곳 마저 잃어버린 자실장들은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맘. 

"모두들 그만우는 테치! 마마는 우릴 버린 테치! 하지만 이곳 골판지 상자에 숨어있으면 안전할 것인 테체!"

장녀의 외침. 골판지 안에서 조용히 숨죽여 숨어있는다. 자실장들이 가장 만족할만한 선택지었음. 

끊임없이 들리는 동족의 비명소리...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저벅 저벅' 소리...

네 마리 자실장들은 구석에 모여 자신을 버린 똥마마를 저주하며 오들오들 떰...

친실장이 안전한 곳에 자리 잡고, 골판지 상자의 위장에도 나름 신경을 썼다지만 어디까지나 같은 실장석의 입장에서임.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냥 좀 후미진 곳에 대놓고 있는 골판지 상자에 불과함. 

심지어는 열려있는 상자 입구로부터 테에엥...치에엥...소리가 그대로 울려퍼지고 있음. 

골판지 상자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하얀 악마...골판지 안에서 힐끗 힐끗 입구를 쳐다보던 장녀는 결심을 함. 

'내가 나가서 하얀 악마를 막아야 하는 테치. 아타치가 진심펀치를 날린다면 하얀 악마도 도망쳐 버릴 것인 테체!'

갑자기 용기백배하여 입구로 향하는 장녀. 다른 자매들은 여전히 오들오들 떠느라 장녀가 떠난 것도 눈치 채지 못함.

친실장은 자실장들에게 인간의 무서움을 여러번 일러준 적이 있었고, 하얀 악마 또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 하지만 실제로 자실장들은 인간을 마주쳐 본적이 없음. 

장녀는 내심 인간이래봐야 자기 마마 정도의 크기일 것이라고 생각함. 물론 성체실장만 되더라도 장녀 같은 자실장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간단히 오체분시 할 수 있지만...

"덤비는 테챠아아아! 하얀 악마는 따위는 아타치의 핵펀치 한방인 테......체?"

처음으로 인간을 마주한 장녀. 그리고 자기의 생각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지 깨달음. 

삽시간에 어두워진 시야. 아무리 목을 들어 올려보아도 끝도 없는 거대한 몸체...동족의 살점과 피가 끝없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무언가'

장녀는...

"테츄웅~?"

그대로 하얀 악마의 워커화에 짖밟혀버림. '치벳.' 소리 조차도 내지 못한채로 장녀라 불리던 것은 신발 밑창 사이로 '촤악!' 소리를 내며 밀려나옴.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또 다른 두 눈동자가 있었음.

바로 친실장... 

도망치다가 도저히 자를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 친실장은 돌아왔지만, 하얀 악마가 골판지 상자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곤 수풀에 숨어 관망하고 있었던 것임. 품 안에는 삼녀를 소중하게 안은 채로. 

용감한 장녀가 순식간에 바닥의 얼룩이 되는 것을 보며 피눈물을 흘리는 친실장. 

하지만 그것은 이제 시작일 뿐임. 

하얀 악마는 거침없는 손으로 골판지 상자를 들어 안에 있는 것을 탈탈 털어버림. 

"테챠아아아아!"

"마마 살려주는 테챠아아아아아!"

"테벳!"

골판지 안의 가재도구와 뒤섞여 바닥으로 낙하하는 자실장들. 

바닥으로 떨어진 것만으로 빈사 상태가 된 자실장들을 하나하나 구제해 가는 하얀악마. 

조각조각나서 마마를 부르짖다, 저주하다...마지막에는 '살고 싶은 테치...죽고 싶지 않아요 테치...'

하면서 회색빛 눈이 되어가는 자들을 보며 친실장은 끝없이 피눈물을 흘림. 

자기가 나가봐야 할 수 있는 것 따위는 없음을 잘 알고 있음. 어떻게든 자기라도 살아남아...품속의 삼녀를 살려야함. 

하얀악마는 들고온 자루 속에 자실장들의 시체와 가재도구, 보존식을 쓸어담고 운치굴 마저 꼼꼼하게 막아버린 채 다른 곳으로 향함. 

누가봐도 이상하게 요동치고 있는 수풀에 눈길을 한번 줬으면서도 말없이 자리를 떠남. 

시간은 흘러 흘러 오후...3년만의 공원 구제작업은 끝이 남. 

친실장은 더 이상 동족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후로도 한시간 정도를 더 버티다가 터벅 터벅 수풀에서 나와 이제는 흔적만 남은 자신의 옛 집터를 바라봄. 

허망한 집터에 주저앉아 기이하리만큼 조용해져 버린 주변을 둘러보던 친실장...

"그래도 삼녀는 살린 데스...삼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데스...삼녀...삼녀는 괜찮은 데스?"

친실장은 다시 마음을 굳게 먹으며...아까부터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삼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삼녀를 품 안에서 들어올림.

삼녀는...이미 눈이 시꺼멓게 변한 채로 혀를 내밀고 죽어 있었음.

마음이 심약한 삼녀는...하얀 악마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친실장의 품 안에서 파킨사하고 말았던 것. 단지 혼란속에서 친실장이 눈치 채지 못했을 뿐임. 

"데...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친실장은 현실을 부정하다...하얀 악마를 부르짖으며 자기도 한번 죽어보라 발광을 하다...지쳐서 피눈물을 흘리다...말없이 조용히 일어남. 

"더 이상 이런 곳에서는 살 수 없는 데스...낙원을 찾아 떠나는 데스..."

떨어지는 해를 뒤로 한 채, 평생을 살아온 공원을 떠나는 친실장. 

다음 날, 도로 위 아스팔트에는 큰 얼룩 하나만이 남아있었음 








미도리를 훈육시켜주세요 (ㅇㅇ(175.213))


"네?"

그건 삼촌이 수의사로 일하는 동물병원에서 알바를 시작한 지 3일째의 일이었다.
TNR을 나라에서 세금으로 지원해주는 걸 알고 있다며 털바퀴를 병원에 던져놓곤 자신에게 돈을 내놓으란 캣맘 이후로,
참신함을 느끼게 할 진상이 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 내게 그 아줌마는 분홍색 사육실장복을 입은 자실장을 내밀며 말했다.

"훈육이요. 미도리가 요즘 말을 너무 안 들어서요."
"텟! 테챠! 테챠아아아!!"

자실장은 뭐라뭐라 항의를 하는 것 같았지만, 애초에 '실장석 진료 불가'를 병원 문 앞에 붙여둔 우리 병원에 링갈 따위는 없었다.
아줌마는 오구오구 그랬어요, 라며 자실장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달래고 있었다.
물론 그 아줌마도 링갈은 쓰고 있지 않았다. 귀에 아무것도 끼고 있지 않았으니까.

"보호자님, 여기는 훈련소가 아니라 동물병원이구요. 죄송하지만 저희는 실장석은 진료를 볼 수 없어요."

이런 진상들은 팩트만을 제시해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던 내가 차분하게 설명해줬지만,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성질이 긁힌 건지 순식간에 아줌마의 인상이 표독해졌다.

"제가 그런 걸 모르고 온 것 같아요? 어차피 다 똑같이 작은 동물인데, 전문병원이 아니면 더 저렴하니까 온 거잖아요."
"!?"

나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음, 으음, 거리며 할 말을 찾고 있는 동안,
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들렸음에도 보호자가 진료실로 들어오지 않자 이상함을 느낀 건지 삼촌이 카운터로 나왔다.

"무슨 일인가요?"

그러자 삼촌의 하얀 의사 가운을 본 아줌마가 나를 위아래로 훑는 것을 잊지 않으며 시선을 삼촌에게로 돌렸다.

"역시 의사 선생님하고 얘기를 해야죠. 미도리를 훈육시키려고 왔어요. 의사 선생님이니까 미도리가 안 다치게 잘 가르쳐주실 수 있겠죠?"

다시 들어도 말이 안 되는 문장이었다. 수의사와 실장석 훈육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삼촌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하 웃으며 물론이죠, 라고 대답했다.

"커피 한 잔만 드시고 오시면 금방 착한 미도리로 훈육시켜드릴게요. 2층에 카페 있으니까 여기 무료 쿠폰 가져가세요."

그러면서 삼촌은 매번 내게 뒷담을 하던 2층 카페의 쿠폰을 그 아줌마에게 주고 내보냈다.
나는 이 어이없는 전개에 당황하며 삼촌에게 물었다.

"삼촌, 실장석은 진료 안 보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리고 카페 쿠폰은 왜 갖고 있어요? 맨날 그 카페 아줌마 욕하시더니."

삼촌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드랍쉽'이라는 알 수 없는 단어만 말할 뿐이었다.
그러고는 아줌마가 카운터에 올려둔 미도리를 손으로 쥐더니,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검은 비닐봉투에 넣곤 팔꿈치로 봉투를 눌려버렸다.

"삼촌!?"

그것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깜짝 놀란 내 모습에 오히려 놀란 듯, 삼촌이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병원에서 그것들 진료를 안 보는데 너네 아빠한테 실장석 명의라고 불리는 이유를 아니?"
"어, 아뇨. 저야 모르죠..저번에 물어봐도 안 알려주셨잖아요."
"이리 와봐라."

나는 삼촌을 따라 진료실 안쪽으로 향했다. 삼촌은 그곳에서 작은 냉장고를 뒤적이더니 독라 자실장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 독라 자실장은 신기할 정도로 삼촌이 터뜨려 죽인 '미도리'와 닮아 있었다.

독라 자실장은 누가 봐도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지만, 삼촌의 손가락을 껴안지도 않고 가만히 떨고만 있는 게 신기했다.
삼촌은 그런 자실장에게 분홍색 사육실장복을 내밀며 말했다.

"네 이름은 앞으로 '미도리'고, 임시 사육실장이 될 거야. 분충짓을 하면 다시 냉장고로 갈 거란다. 이해했니?"

자실장은 여전히 벌벌 떨면서 짧게 테치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전개에 삼촌에게 물었다.

"얘는 그냥 다른 자실장이잖아요. 이게 실장석 명의랑 무슨 상관이에요?"
"얘들은 작아서 수술하기도 어렵고, 워낙 몸값이 싸다 보니까 진료비가 조금만 비싸도 화를 내는 분들이 많단다."

삼촌은 사육실장복을 입은 자실장의 머리에 인조 머리를 심으며 말했다.

"그래서 실장석 명의는 똑같이 생긴 실장석 구해오는 실력이 기준이야."
"아."









화석짤 보고 이거 실장석 얘기 아닌가 싶어서 걍 대충 써봄 중간에 캣맘 얘기는 내 경험담(실화)임







아기참피 삼형제 (ㅇㅇ(lej020122))


한 친실장이 자신의 자 셋을 독립시켰습니다.

"오마에타치도 이제 독립인데스...

장녀는 게으른 데스. 계속 낮잠이나 자고 정작 밤에는 자지 못하는 것은 나쁜 버릇인 데스. 이를 꼭 고쳐야 하는 데스.
차녀는 무난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 데스.
삼녀 와타시의 보배는 마마만큼 똑똑하니 자로 공원을 채울 수 있을 것인 데스요.

다들 꼭 무사하는 데스. 바이바이 데스."

"..."
"마마!"
"고마웠던 데스!"

곧 세 자들은 공원에 하우스를 만들었습니다. 게으른 장녀는 덤불과 짚을 이용해서 하우스를 만들었고, 무던한 차녀는 골판지 상자를 가지고 하우스를 만들었습니다. 똑똑한 삼녀는 버려진 사물함을 하우스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 세 자매들에게 학대파가 찾아왔습니다.

"이모토챠아아아아-!!!! 제발 살려주는 테챠아아아아아아악-!!!"

피투성이의 차녀가 반독라 상태로 삼녀에게 달려왔습니다.

"오네챠 무슨 일인 데스?"
"학대파 닝겐이 찾아온 데스! 와타시의 하우스를 잃어버린 데스! 제발 살려주는 데스!"
"장녀 오네챠는 어떻게 된 데스?"
"모르는 데스. 와타시만 도망쳐 온 데스."
"데프프픗...이쪽으로 오는 데스요.

삼녀는 차녀를 자신의 하우스로 안내하면서 생각했습니다.

'평소에도 차녀년이 먼저 텟테레했다고 나대는 꼴이 한심했던 데스. 적당히 방심하고 있을 때 독라달마 자판기로 만드는 데스.'

얼마 지나지 않아 튼튼한 사물함 하우스가 나타났습니다.

"여기로 들어가는 데스. 분충들이 습격해도 여긴 안전 데스."

삼녀는 차녀를 데리고 사물함 하우스에 들어간 후 문을 닫았습니다.

바로 그 때,

덜컹!

갑자기 하우스의 문이 어렵지 않게 열렸습니다.

"뎃...뎃..."

"데샤아아아아아아아-!!!"

차녀와 삼녀는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질렀습니다.

"흐흐흐...도망치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 너희들은 이제 나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거다."

.
.
.

덤불과 짚으로 만든 하우스 밑에서, 장녀는 차녀와 삼녀가 학대파에게 잡혀가는 것을 보며 한숨을 지었습니다.

"똥마마도 그렇고 분충 이모토챠도 그렇고 살아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닝겐이나 분충에게 눈에 띄지 않는거라는 것을 모르는 데스우."

처음에 학대파는 장녀를 찾아왔으나, 장녀가 자신의 하우스인 덤불 안에 웅크려 있는 것을 보고 불평하며 장녀를 잡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바지가 덤불 가시로 엉망이 되는 것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널려있는 다른 분충들을 잡으면 되니깐요.

"일단 밤씨가 되기 전까지 푹 자두는 데스. 밤씨가 되면 닝겐들도 분충들도 다들 자러 갈 테니 말인 데스."

그리고 장녀는 눈을 붙였습니다.








엄지의 탈출기 (빵콘장인)


9월
장마가 끝나고 찾아온 무더위에 도로에 챰피들이 자동으로 보존식이 되는 계절

공원 외곽 어느 한 운치굴

여느 들실장 일가의 운치굴과 같이 이곳엔 수많은 구더기와 푸니푸니 백치 노예가 한 마리 있었다.

"레후"

"푸니 푸니후"

"운치 우마우마"


평범한 운치굴인 이곳엔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다. 
구더기 사이엔 옷과 머리가 온전한 엄지 한마리가 운치를 주워 먹고 있었다.

 분충 짓을 해서 솎아진 걸까?

그렇다기엔 옷과 머리가 온전했다


그럼, 운치를 누다 발을 헛딛어 빠진 걸까?


그렇다기엔 누군가 운치를 누기와도 어둠을 숨을 뿐이지 살려달라는 소리는 일절 없었다.



그렇다면 왜 이 엄지는 여기 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선 한 달 전 장마가 시작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무리 버린 자식들이 있는 운치굴이라도 장마로 인한 침수는 일가에게 있어 큰 손실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입구 주변에 흙을 쌓아 빗물이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자들에게 운치를 누는 동안 입구를 최소한으로 열라고 당부한다. 
이 때문에 장마 시에는 내부 확인이 사실상 불가하다. 
이때 구더기 한 마리가 고치를 틀었다. 
원래라면 우화하기 전에 보양식이 되어야 할 운명이었으나 일찍 시작한 장마에 기적적으로 안전하게 고치를 틀고 장마 막바지에 무사히 우화해 엄지로 성장한 것이다.


"마마 와타치 손발 긴긴씨인 레치"
"오네챠 손발 긴긴씨인 레후? 부러운 레후. 세레브한 레후"
"렛? 여긴 운치굴인 레후?"
엄지는 총명했다. 
우화를 마친후 바로 자신의 상황을 인지했다.
"여길 나가야 하는 레치. 하지만…."

엄지는 생각했다.

자신의 자매들이 밖으로 끌려가는 것이 과연 마마가 말한 밖으로 나가 세레브한 삶을 누리는 것인가.
처음엔 그렇다고 믿었으나 백치 노예와 독라 구더기들을 보곤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여긴 지옥인 레치. 도망가야 하는 레치'


그렇게 엄지는 탈출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였다.


처음 시도는 입구로 나가는 것이었다.

엄지의 짧은 다리로는 불가했다.


 다음은 땅굴을 파는 것이었다.


다행히 기나긴 장마로 수분을 머금어 부드러워진 땅은 유약한 엄지의 팔로도 충분히 파낼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파내어도 부드러워진 흙은 무너져 내렸다. 

이러한 방법 말고도 정말 다양한 방법을 시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성장이다. 
영양이 가득한 운치를 먹어 성장해 탈출하는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이 계획을 위해 엄지는 배가 터질 때까지 운치를 먹었다. 
자란 몸을 숨기기 위해 흙으로 흙 무더기를 만들어 낮엔 그뒤에선 잠을 청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엄지는 몇 주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자랐다. 
이제 며칠이면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거의 다 온 레치" 
"오네챠 많이 큰 레후!" 
"축하하는 레후. 와타치가 푸니푸니 해주는 레후" 
구더기 한마리가 엄지의 품으로 푸고들어 열심히 꿈틀거렸다.
"고마운 레치. 헤헤 푸니푸니는 와타치가 해주는 레치" 
구더기들도 크게 자란 엄지를 축하해주었다. 
기분이 좋아진 엄지는 밤새 구더기들을 푸니푸니해주었고 오랜만에 구더기들 사이에서 잠들었다. 

"운치를 똥벌레들에게 선물하는 테치" 
"잠시 기다리는 데스. 비상식들을 먼저 확인하는 데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엄지는 잠에서 깼다. 
친실장과 자실장이 운치를 누기 위해 온 것이다. 
'핀치인 레치.' 
엄지는 빠르게 흙 무더기에 몸을 숨겼으나, 어제의 격력한 푸니푸니에 흙무더기 일부가 무너져 몸이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 
'여기까지인 레치. 하지만 마지막엔 즐거웠던 레치' 
 운치굴을 막고 있던 플라스틱이 열리고 친실장의 눈이 보였다. 
'레치...' 
털썩 
그때 갑자기 앉아 있던 백치 자판기가 넘어졌다. 
엄지는 재빠르게 그 뒤로 숨을 수 있었다. 

"흠 문제없는 데스. 슬슬 몸보신할 겸 한두 마리 꺼내 먹어도 될 거 같은 데스. 자는 기대하는 데스" 
"테치테치" 

 플라스틱이 닫히고 엄지는 백치를 보고 말했다. 
"덕분에 살아남은 레치 고마운레치" 
감사 인사 후 자판기를 다시 세워 앉혔다. 

 그리고 며칠 후 밤
오늘도 운치를 배터지게 먹고 구더기들과 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플라스틱이 열리더니
자실장의 얼굴이 보였다. 

자실장인 밤중 돌아다니지 말라는 말을 까먹고 밤에 운치를 누러온것이다.
"텟? 엄지? 마마에게 말하는 테치" 
엄지를 보자 자실장은 마마에게 달려갔다. 
필히 자신에 대해 말할 것이다. 

"계획보다 이르지만 탈출하는 레치" 
 엄지는 열린 입구로 나가기 위해 점프했으나 약간 부족했다. 
"아... 역시인 레치" 

 "손발 긴긴 엄지챠를 돕는 레후" 
"레후~~" 
그때 구더기들이 발 아래로 모이더니 엄지를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거의 닿은 레치" 
손을 뻗은 엄지는 입구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이제 올라가는 레치. 레!!!!!" 
힘겹게 조금씩 올라가는 도중 밖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친실장이 나오는 소리였다. 
"조금만 더 레치!!!" 
이 속도라면 들키고 말 것이다. 
운치먹던 힘까지 냈으나 느리다.
엄지는 걷는 것도 힘들어 한다. 
그런 엄지가 빠르게 절벽은 타는 건 불가능하다. 
"레에엥! 최선을 다했지만, 엄지 따위로 탈출은 불가했던 레치. 아니 와타치가 조금더 조심했더라면" 

포기하기 직전 갑자기 몸이 날아오르듯 올라갔다. 
그렇게 기적적으로 탈출한 엄지는 뒤를 보았다. 
그곳엔 백치 자판기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마에가 도와준 레치?" 
"빠...ㄹ...가....는...ㄷ....ㅔ....ㅅ" 
백치가 말하는 것에 놀란 것도 잠시 친실장의 그림자가 보여 엄지는 풀숲으로 몸을 숨겼다. 

"뭐인 레치. 이해가 안 되는 레치. 그래도 탈출한 레치" 
엄지는 무사히 탈출했지만, 긴장이 풀리는지 풀숲 안에서 곤히 잠들었다. 
이제부터 더 큰 고난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곤히 
 그 시각 운치굴 
"아무리 봐도 없는 데스. 자판기 위치가 바뀌였지만 아마 넘어진 것인 데스. 문제없는 데스" 
"하무라뾰 메빠소" 
안에는 자판기가 특유의 울음소리를 낼뿐이었다 
"분명 엄지였던 테치" 
"거짓말은 나쁜 데스. 그것보다 이 한밤중에 나온 데스까?. 마마가 절대 밤에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은 데스까?"
테츄우웅
테븟 
친실장은 아첨하는 자실장의 머리를 내려쳤다 
"테에에엥" 

 "행.....ㅂ...ㅗ..ㄱ..하....ㄱ...ㅔ...사....ㄴ...ㅡ..ㄴ...데....ㅅ...장....ㄴ...ㅕ"








자를 낳지 않겠다는 약속 (기릿(218.153))


"....그러니 주인사마도 약속을 지켜줬으면 하는 데스..."

"야...미도리...아니...하.....하......."


말문이 막힌 듯 연신 마른세수를 하는 남자와

그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떳떳히 밝히는, 한치의 물러섬도 보이지 않는 어느 한 성체실장


그들은 '자를 낳지 않겠다' 는 약속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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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

아마 인간에게 키워지는 실장석의 80퍼센트는 그 이름일 것이다

학대파에게 키워지는 실장석의 95퍼센트는 그 이름일 것이다

애호파들에게 키워지는 실장석은...차라리 미도리가 낫지, 엘리자베스, 까트린느 등의 고급지고싶어하는 촌스러움이 한가득 들어간 이름들이 대다수이다, 신기할정도로 애호파들의 미적감각은 실장석들과 닮아간다


남자의 집에서 함께 살고있는 사육실장 미도리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극히 평범한 사육 성체실장이다

이름은 미도리
나이는 1살 하고 6개월
어미는 공장식 출산석
분양처는 동네 실장샵
가격은 당시 기준 8만원
떨이실장들에 비해 비싸지만
고급실장들에 비해 상당한 싸구려

그저 가격에 맞는 지능수준

태어나자마자 영리함과 양충끼를 보이며 프리랜서 전문브리더와의 1대1 수업 후 출하되는 수십만원 S급들과는 다르게

쓰레기, 멍청이, 울보, 병신들이 한대 모여 대충 자격증만 딴 실장샵 소속 브리더에게 훈육을 받은 뒤 매대로 보내지는 그런 녀석들 중 하나

교육의 내용은 정말 기초적인것이 전부, 손으로 밥먹기, 화장실 가리기, 주제를 알기, 아첨하지 않기 등등

종종 초보브리더의 실수로 똥먹지 말기, 동족 먹지 말기, 새끼 까지 말기 등등의 교육을 누락하여 진행할때도 있지만 딱히 중요한게 아니니 패스

아무튼, 뭐 그리 낮지 않은 생존률 40퍼센트의 확률로 교육을 수료받은 녀석

실장샵 훈육 후 판매되는 기초교육 완료 자실장들은 기본가격 5만원으로 시작, 이후 성향에 따라 가격이 낮아지기도 높아지기도.

녀석은 나름 조용한 성격과 모든걸 이해하진 못하지만 인간의 말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녀석이였기에 5만원보다는 비싼, 10만원보다는 저렴한 8만원의 가격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그녀의 언니는 교육 첫날 브리더의 실수로 옆에 있던 분충 대신 죽게되었다, 생존했을시 그녀의 예상 가격은 12만원이였다

그녀의 동생은 모든 교육 후 생존하였지만 두드러지는 특징 없이 5만원으로 전시되다가 말차라떼를 마시는 샵 사장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똥을 쉐이크처럼 만들어 찍어먹다가 가격표 수정을 당했다

최종 가격은 2천원이였다

참고로 출산석인 그녀의 어미는 한때 40만원의 가격표를 가진 S급으로 지방의 작은 실장샵 내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했었다. 그리고 공장에 팔리는 순간 최종 가격은 2만원이였다

모든 자매가 사육실장의 기회가 있었다는 것은 그녀의 어미가 충분히 영리한 양충이였다는 증거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어미는 여느 실장석들과 다를 것 없이 자를 낳고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수직하락 시켜버렸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태어난 사육시절 어미의 새끼들, 미도리의 한참 언니가 되었을 녀석들은 아주 착실하게 분충이 되어주어 한마리를 제외한 모두 분쇄기에서 멍청한 삶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살아남은 한마리는 아마 아직도 공원 어딘가에서 자판기 노릇을 하며 제 어미의 가업을 이어주듯, 운치굴의 출산석으로 살아가고 있다


구구절절하게 기나긴 설명이 있었지만 결론은 하나다

남자가 키우는 미도리라는 성체 실장석

이녀석은 남들이 들으면 "굳이 왜 키워?" 라는 소리를 들을 수준 정도, 딱 그정도 레벨의 실장석이다

키우는 이유는 단순하다. 정.

사실 그거 말곤 없다

조용한 성격인지라 딱히 애교도 없고
(덕분에 미도리의 생존기간이 길어진 것도 있을것이다)

지능이 높진 않지만 나름 머리를 써보려 노력하고
(실장석에게 애매한 지능은 천천히 찾아올 죽음의 저주이다)

그리고....그리고...

그냥 정 때문이다


함께 했단 이유 하나로 몸 안에 들어있는거라곤 솜 밖에 없는 인형 따위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고,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실장석 따위에겐 없는 '정' 이라는 것이니

당장 버려도, 키워도 별 다를 것 없는 남자의 상황 속, 남자는 인간임을 택했을 뿐이다

매체에서 비춰지는 모습과는 다르게 학대파는 100명 중 1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고, 남자는 그저 평범한 99명의 사람이였다

평범한 주인과 평범한 실장석. 그들의 사이가 갈라질 계기 또한 너무나도 평범한 이유에서이다


임신과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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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난 너와 좀 더 얘기를 나눠보고싶어, 그러니까 니 말은...지금 이게 너에게 불공평하게 느껴진다는거야?"

"하이데스...와타시는 불공평하다 느끼는데스...주인사마는...와타시와의 약속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한데스..."


실장언어번역어플, 링갈어플에 적혀있는 문장을 볼때마다 남자는 어이가 없어 '허 참-' 하는 탄식에 가까운 한숨이 나올 뿐이였다

차라리 이 내용이 잘못 번역된거였으면 하는 마음, 하지만 이 어플은 애호파들을 위한 어플스토어 공식버전, 엉터리 링갈어플이 아닌 100퍼센트 정확도가 인증된 비공식 링갈어플이다, 미도리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100퍼센트 정확하게 번역 중이였다
(엉터리 링갈어플 번역이였다면 '나는 너무 슬퍼요 나는 주인님을 사랑해요 따위로 번역되고 있었을 것 이다)


"미도리,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 굉장히 화가났단다, 네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서...그렇게 말하는거야?"

남자는 정당한 분노를 인간의 마음으로 억지로 눌러앉히고 있었다

사육실장이 말대답을 했다
사육실장이 말대답을 두번이상 했다
사육실장이, 주인을 가르치려는 듯한 발언을 내뱉었다

이것만으로 공원 버려질 이유, 분쇄기에 갈릴 이유, 보건소에서 태워질 이유, 나아가 누군가에겐 후천적 학대파가 될 이유로 충분했다

실장석들에게 한번의 행동이란 없다

실수는 고쳐질수있다, 하지만 그들의 진심 어린 행동은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다

"주인사마에게 사과를 받고싶은데스, 그리고 주인사마가 저지른 일은 주인사마가 해결해줬으면 하는데스, 와타시가 그랬던 것 처럼 주인사마도 꼭 약속을 지켜줬으면 하는데스."

미도리는 자신의 말에 확신을 가진 두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임신에 대해, 그녀는 확고한 생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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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했던 하루였다

너무나도 평범했던 하루에

기적이 찾아왔을 뿐

솔직히 말하자면 의도했던 기적은 아니였다

하지만 다짐했었다, 혹여 그런 일이 생긴다면, 생각지도 못한 기적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다면 받아드리자, 그리고 그 기적을 축복하며 노래하자, 세상에 태어날 가장 소중한 보물을 위해, 온 우주에 자랑을 하자- 라고

하지만 어떻게 얘기를 해야하지?

너무 행복에 겨운 모습을 보이기엔 어른스럽지 않아 보일 것 같고

무심한 척 하기엔 행복해서 미칠 것 만 같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먼저 알려주고싶다, 하지만 너무 놀랄까봐 좀 걱정이다

과연 어떤 반응일까? 사실 혼나는건 어느정도 각오하고 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였으니 조금은 혼날 수 밖에 없겠지

그래도 분명 나를 닮아 귀여운 아이를 본다면 무조건 화가 풀릴것이다

그리고 함께 예뻐하고 아껴줄것이 분명하다

나의 부모가 그러했을것이고

나 역시도 그럴것이니

행복하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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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 여기 앉아보렴, 할 얘기가 있단다"

사뭇 긴장된 분위기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남자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 다른 표정을 지은채 자신을 부르기에 그저 다가갔다

남자는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제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고 사람의 표정을 읽는것 까지는 할 줄 모르는 평범한 사육실장 미도리는 연신 작은 목소리로 '데에? 데에?' 하며 남자의 말을 기다리고있었다


"미도리.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으렴"

"하이데스"


.....


....


...



"미도리!! 나 아빠가 된다!!!!"

갑작스러운 남자의 외침과 기상에 깜짝 놀래 "드에엣!" 소리를 내며 뒤로 발랑 자빠져버리는 미도리

남자는 이내 "아차차 미안미안~" 이라는 말과 함께 그녀를 들어올려 높이높이, 안아안아를 해주며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미도리!!! 내가!!! 아빠가 된다니까!!! 이야아!!!!"

아마 이웃들이 들었다면 주의를 줄 법할 정도의 큰 목소리, 하지만 그 내용까지 함께 들렸다면 훈훈하게 웃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

"으아아~ 사실 뭐지...음 미도리에게 어떻게 설명해야될지 모르겠지만 원래 사람은 임신이랑 그 출산 전까지 위험한것도 많고~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라서 괜찮은 시기가 올때까지는 얘기를 잘 안할때도 있고 또 음.....어 그래 원래 임신을 하고 안전해질때까지는 잘 얘기를 안하거든~ 그래서 우리 부모님께도 아직 말씀 못드렸는데 정말 참을수가 없어서 너한테는 얘기하게됐다 미도리! 놀라게해서 미안해 흐흐...."

두서없이 내뱉는 남자의 말들

평소엔 미도리가 알아듣기 좋게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하는 그였지만 행복한 감정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듯 그는 환호를 내지르며 보통 사람이 알아듣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격양된 상태로 말을 하고 있었다


"올때마다 너한테 바삭바삭한 초콜릿을 줬던 긴머리 여자 기억해? 그 사람이 엄마고 내가 아빠야!

미도리에게는 여자친구 라는 개념을 가르쳐주는게 쉽지 않았기에 굳이 길게 설명을 한 적이 없었다, 그나마 항상 같은 간식을 챙겨주게 하면서 기억할 수 있도록 했지 실장석의 지능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남자이다

미도리는 '아내는 아닌데 아내처럼 행동하는 낯선 인간' 이라는 개념을 당연히 이해하지 못하였다

아내면 아내고 아니면 아닌거지 그 중간에 무엇인가 있다 라는걸 도저히 이해할 지능이 되지 않았기에 뇌에 과부화가 걸리는 듯 한 녀석을 위해 그냥 바삭바삭 초콜릿을 주러 가끔 오는 긴머리 사람이라고 기억을 시켜줬을 뿐

남자와 여자의 잠자리는 무조건 여자의 자취방에서 진행되었었다


남자는 여자친구의 임신소식에 너무 신이나서 부모님께 먼저 연락을 드리려했지만 임신초기에는 유산이 너무나도 쉽게 되기도 하기에, 혹시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안정기에 돌입할 때 까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두분은 분명 처음엔 화를 낼 것 같아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아빠가 된다는 자랑을 도저히 참을수가 없던 그는 그의 애완동물, 사육실장 미도리에게 먼저 자랑을 하게 된것이다
(물론 가장 먼저 그가 아빠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는 회사 건물 1층 주차장에서 살고있는 길고양이였지만, 남자는 불편한 표정을 한 길고양이의 두손을 잡고 마구 자랑을 하다가 아주 살짝 깨물렸다)


"아무튼~~~.....으음 큼큼 흠흠흠!...아무튼 미도리, 후우, 너에게도 동생 같은 존재가 태어나는거란다, 그리고 더 많은 가족이 생기는거고 우린 다 함께 살게될거야! 집도 더 좋은 곳으로 갈거고!"


이제서야 진정이 된 남자는 다시 한번 짧고 간결하게 미도리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1. 나는 아빠가 될것이다
2. 더 좋은 집으로 갈것이다
3. 나와 아내, 나의 아이, 그리고 미도리, 넷이서 함께 살것이다
4. 우린 행복한 가족이 될것이다


미도리가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이 좋은 소식을 알리고 함께 기뻐해주길 바랬다

미도리에게 있어서도 더 넓은 집, 자신을 잘 챙겨주는 예쁜 인간, 그리고 어쩌면 평생을 함께 할 친구가 생길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도 기쁨일것이라 확신하였다

만약 미도리가 아주아주 똑똑한 개체였다면, 그녀는 수명이 다해 죽을때까지 사육실장으로서 최고의 환경과 안정 속, 가족들의 정을 함께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다

적어도 남자는 그녀를 남들보다 인간에 가깝게 대접해주었고 그녀의 아내 될 사람도 마찬가지였으니

제 아무리 세레브한 실장석이라 한들 감히 누리기 힘든, 인간과 대등한 관계에서의 가족생활.







미도리는 평범한 실장석이였고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도, 동의하지도 못하였다


"하지만 주인사마, 약속한 것과 다른데스"

불쾌한듯한 말투로 데스데스 하는 미도리의 말에 남자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다

"주인사마, 와타시타치는 자를 낳지 않기로 약속한게 아니였던데스?"


미도리는 애매하게 영리한 지능을 지닌 평범한 실장석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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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도 높고 인간에 대한 우호도도 높은 녀석들은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다


지능은 높되 분충끼가 심한 녀석들은 학대파들에게 나쁘지 않은 가격에 팔린다


그저그런 지능에 인간 우호도가 높아도...뭐 나쁘지는 않다


지능도 낮고 분충끼가 심한 녀석들은...구하고싶다면 대충 공원에 가서 아무거나 주워오면 된다



미도리는 애매한 지능에 인간 우호도 역시 애매한, 대표적인 실장샵 상품이였다

그런 그녀를 남자는 나름 인간대 인간처럼 대우해주었고

실제로 간단한 집안일 정도를 부탁하며 때때로 그에 걸맞는 보상을 해주기도 하였지만...사실 집안일은 정말 하나마나 한 수준이였다

미도리가 하루종일에 걸려 겨우겨우 끝낸 청소의 퀄리티는 남자가 10분이면 더 말끔히 할 수 있을 정도

빈말이라도 도움이 정말 하나도 되지 않는 레벨이였지만 그럼에도 그 모습이 대견하여 칭찬해주고 쓰다듬어주었다

하루종일 홀로 심심해있을 미도리가 걱정되었지만 스스로 청소도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오히려 정서적으로 이 편이 그녀에게 더 도움이 되어보이기도하였다

남자는 미도리를 신뢰하였고 그렇기에 더 깊은 관계의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도무지 남자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만 연신 내뱉고 있었다


"와타시도 자를 가지고싶었던데스. 하지만 주인사마와 약속을 했기에 와타시는 지킨데스, 외로워도 참은데스, 그런데 어째서 주인사마는 와타시와의 약속을 어기고 자를 가진 데스? 너무한데스"


미도리는 정말로 억울한듯 두 주먹(같이 생긴 손을)을 불끈 쥐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모두가 같이 살아야하는데스? 그럼 와타시가 집안일을 더 많이 해야하는거 아닌데스? 주인사마의 자도 와타시가 키워야하는거 아닌데스? 주인사마는 청소도 빨래도 아무것도 돕지 않는데스, 그런데도 자를 가졌다는건 그걸 전부 와타시에게 시키려고 그런거아닌데스까?"


미도리는 정말로 억울한듯...목소리까지 떨리고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믿고있었다

자신이 하루종일 남자를 위해 집안일을 하는 것이라고.

그녀가 작은 빗자루를 쓸며 지나간 자리에는 뭉친 먼지가 여전히 한가득이였고

지저분한 걸레로 닦은 테이블은 종종 냄새까지 났었다

빨래랍시고 시키는건 하루에 한두번, 그녀의 옷과 팬티를 직접 손빨래 하라고 한 것 밖에 없지만 그마저도 영 신통치않아 남자는 샤워를 하며 그녀의 옷을 다시 한번 빨아주곤했다


행복회로라는건 극단적인 상황일때만 발동하는 초능력 따위가 아니였다

미도리는 자신이 청소해놓은 바닥이 진심으로 거울처럼 반짝거린다 믿고있었고

자신이 걸레질을 한 곳은 신기할정도로 좋은 향기가 난다 믿고있었고

남자의 모든 빨래를 자신이 전부 손빨래 해주고있다고 믿고있었다

이런것들 또한 행복회로였다



미도리가 세시간을 넘게 닦아봤자 남자의 물티슈질 한번에 깨끗해질 곳들이였지만

그 모습을 보고 미도리는 '정말 도움되지 않는 남자인데스....' 라고 생각하기까지 했었다

이것이 그들의 지능적 한계이다





"주인사마를 위해 모든것을 한 데스...그런데 주인사마는 왜 먼저 와타시에게 아침인사를 오지 않는데스?...왜 밥먹을때 와타시에게 감사인사를 하지 않는데스?...왜 이불정리를 하지않는데스?...와타시는...주인사마를 위해 노력하는데 왜 주인사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스??....."



".........."


미도리는 조용한 녀석이였지만 자신의 불만을 꾹꾹 참고 말하지 않았을 뿐, 속에서 그 불만들을 상당히 삭히며 괴로워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세레브한 존재인 이몸이- 이런 뉘앙스는 절대로 아니였다

미도리는 단순히 남자와 평등한 관계이길 바랬을 뿐이였다

미도리의 눈에 남자는, 주인이라는 이유로 제 할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 건방진 녀석이였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않고, 할 줄 모르는듯한 주인이라는 녀석이 멋대로 자를 가지겠다고 통보를 한 셈이다

공평해야 할 우리 둘의 관계를 주인인 남자가 깨뜨려버렸다고 느꼈다


미도리는 자신이 먹는 밥과 간식, 안전한 공간이 누구 덕에 나온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적이 없다. 아쉽게도 지능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그 모든 것들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한다. 남자는 그냥 나가서 하루종일 놀다가 들어와서 '그 공간'에 있는 푸드와 간식들을 꺼내주는 것 뿐이면서 뭘 그렇게 생색을 내는지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함께 나갔던 산책은 자신을 위한게 아닌 남자를 위한 것 취급이였다, 자신이 그토록 가고싶어했던 궁전같은 집(실장석 출입금지 백화점)은 한번도 데려가주지 않고 남자가 가고싶은 곳만 갔다. 재미있긴 했지만 그래도 남자를 위해 간게 아닌가



미도리는 말 그대로 진심으로 억울하였다


"주인사마...이번에는 와타시도 용서못하는데스....그러니 주인사마도 약속을 지켜줬으면 하는 데스"

"야...미도리...아니...하.....하......."

"다른건 약속이라고 말한 적 없는데스...와타시도 참는데스...하지만 '자를 낳지 않겠다' 라고 약속한데스...함께 얘기했으니 지켜주는데스"


실제로 남자가 기본교육은 완료되어있는 미도리에게 신신당부한 규칙은 오로지 하나...자를 낳지 않는 것 뿐이였다

남자는 샵에서 교육받은 것과 이것 하나만 지킨다면 미도리를 가족처럼 대우해줄 수 있었고 실제로 그는 그녀를 단순 애완동물 취급하여 방치하거나 하지 않았다

보상의 개념을 알게해주고 노동을 통해 인간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실장석들의 입장에선 단순히 자신들을 부려먹는다 라고 생각했을지언정....남자는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인간과 가깝게 취급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이해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애매한 지능은 실장석 뿐만 아니라, 사육주에게도 적지 않은 데미지의 저주가 되었다


"주인사마"

"그만....미도리 그만...."







"자를 없애는 데스. 명령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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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미도리 기준에서의 평등, 공평이였다

인간과 온전히 똑같을 것,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할 것

그리고 이것이 미도리 기준에서의 양보와 배려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인이지만 내가 참자, 철없는 저이를 내가 용서하자

또한 이것이 함께 살아가는 인간과 실장석에게 저주였다

인간은 온전히 사육실장을 위해준다

사육실장은 절대로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육실장인 본인들이 더 희생하는 것이라 여기기나 하지



사육실장 미도리가 주인인 남자에게 말대답을 했다, 그것도 두번 이상

화를 냈고 자신의 불만을 얘기했다, 세번 이상

만약 그녀가 브리더에게 교육을 받는 중에 이런 행동을 했더라면 그녀는 굳이 분쇄기로 가기 전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온몸이 갈기갈기 찢겼을것이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그 어떤 실장석도 감히 해본 적 없을 문장을 자신의 주인에게 내뱉었다

'너의 자를 지워라, 내가 명령한다.'

타고난 분충성이 깨어난것이 아니다, 위석이 시킨 말도 아니다

미도리는 오로지 평등한 관계를 위해, 억울했던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더 강하게 말한 것도 있다

주인과 자신을 대등한 관계로 명령을 했다

참 우스운 사실은, 만약 그들의 대화를 어느 학대파가 듣고있었다면 당장 그들에게 달려와 미도리를 팔아달라며 돈뭉치를 내밀었을 것이다

색다른 바리에이션을 가진 분충은 언제나 없어서 못 팔 정도로 귀한 녀석이니 말이다



미도리의 마지막 말에 상당히 분노한 남자였지만 그는 평범한 사람이다

길고양이가 제 손을 물어 피가 나게 했다고 냅다 밟아 죽이는 미친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교육에 실패하여 입질을 심하게 하는 애완견을 자비 없이 주먹으로 때릴 수 있는 사람 또한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얼마든지 정은 떨어질 수 있다


어쩌면 그 저주라는 놈은 생각보다 오래된 것들인지도 모른다

이미 인간과 실장석이 소통이 가능할때부터, 까마득한 옛날부터 저주였을지도 모른다

소통이라는 저주 덕에, 단 10분도 되지 않아 남자는 1년 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미도리와의 정이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성체실장인 녀석은 그리 작은 크기가 아니다. 당연히 갓 태어난 아기보다 거대하고 영리하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배변을 이용하여 공격을 하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동족을 잡아먹는 일도 서슴치 않다는건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 위험한 동물을, 주인의 아기를 죽이라고 말하는 짐승 따위를 어떻게든 어르고 타일러 함께 산다는건 말도 안된다


길고양이도, 입질하는 애완견도 죽일듯이 패는건 인간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저 멀리 가져다 버리는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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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였다

그저 조용히 묵묵히 큰 골판지 상자를 가져와 미도리의 모든 물건들을 담기 시작했다

널부러져있던 장난감, 간식, 남아있는 푸드, 아끼는 드레스 두벌


장난감을 상자에 담을때 까지만 해도 미도리는 그 모습을 보며 '이제야 정신차리고 청소를 하는데스, 에휴데스' 라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얘기할걸 이라는 생각만을 가졌다

그 모든것들을 한 상자에 다 넣는 것을 보았을땐 머리가 따라가지를 못했다

'저걸 왜 저기 다같이 넣는거지?' 라는 생각만 했을 뿐


모든것을 상자에 넣고 포장을 한 남자는 잠시 멍하게 눈을 감더니 이내 주섬주섬 옷을 벗어 샤워를 하러 갔다

자신을 쳐다보고있는 미도리를 애써 무시하며, 어째서인지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내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얘기하지 말걸...아니 그러지 않았다면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몰라...'

어느 방향으로나 약속된 헤어짐의 길

애석하게도 미도리를 향한 정이 99퍼센트 사라졌다

하지만 가장 깊고 진하게 묻은 단 1퍼센트의 정이 남자를 괴롭게 하였고

너무나도 행복한 소식을 들은 그 날, 남자는 반대되는 괴로운 결정을 하며 홀로 눈물을 흘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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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아침, 외곽으로 나가는 도로는 한산하다




"주인사마, 어디가는거인데스?"

"........"

"데에...날씨가 좋은데스...멀리멀리 산책데스?"


"........"


"처음보는 길인데스, 기대되는데스"



"........"



"주인사마, 할 말이 있는데스"




"........"




"사실.....와타시 바삭바삭초콜릿을 가져온데스"





"......."






"핑크가방에 넣어놓은데스, 아껴먹고있던데스"






"........"







"주인사마랑 나눠먹는데스, 어제는 죄송했던데스"




".............."






"하지만 와타시의 말을 들어줘서 감사한데스"






"................."






"와타시도 힘들지만, 약속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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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도로, 반대 방향

남자는 여전히 말이 없다

중간중간 차오르는 눈물이 심하게 앞을 가려 잠시 갓길에 차를 멈춰 세워 한참을 흐느끼다 다시 출발할 뿐

자신의 행동에 정당화 하고싶지는 않아 죄책감은 거대하게 남자를 씹어댔고

짧은 시간, 수백번은 더 다시 돌아갈까 고민을 했지만 어쩌면 지금 헤어지는게 옳다는 것을 알기에 묵묵시 자신의 집으로, 홀로 돌아갈 뿐이다

오로지 나의 인간 가족을 위해서.






미도리는 도로 갓길 가드레일 안쪽, 수풀 깊숙한 곳에 남자가 만들어준 커다란 골판지 하우스와 그 안에 담긴 제 물건들을 멍하게 바라만 보고있다

무슨 생각이 있기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 상황이 뇌에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에 순수하게 멍만 때리고 있을 뿐

버려졌다 라는 생각 따위도 나지 않고, 남자가 사라지는건 뭐 매일 아침 그러하니 딱히 중요하지 않고

오랜만에 맡는 풀내음이 썩 기분이 좋아,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눈을 감아보니 나쁘지 않아

그저 조용히 나뭇잎 바람에 부딫히는 소리를 들으며 "데에...." 소리만을 내고있었지만




"뎃!.........."


아차

주인님이 가기 전에 초콜릿 같이 먹기로 했는데

방금 갔으니 늦은 저녁에야 돌아올 주인을 생각하며 뒤늦게 함께 먹지 못한 초콜릿을 꺼내어 쳐다보는 미도리


달콤한 향기가 너무 좋아 당장이라도 먹고싶지만 스스로 주인님과 함께 먹기 위해 약속한 것이니, 미도리는 주인님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실장석이기에 그것을 다시 가방에 넣는 그녀

다시 골판지 상자 안, 햇살이 살짝 들어오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홀로 "데에데에~데스데스~" 노래를 부르며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 마냥, 평소처럼 혼자 시간을 보내며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마냥 기다린다


저 멀리에는 집에선 보기 힘든 예쁜 꽃들이 한가득 피어있지만

약속을 잘 지키는 미도리는 그것들에서 관심을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눈을 돌려 노래에 집중을 한다


결국에는

평범한 인간과 평범한 실장석의 가장 평범한 결말일 뿐이다








출산 후 (고갤막내)


-텟테레~
-텟테레이~

늦은 저녁. 인적이 끊긴 공원의 한 화장실서 이제는 익숙한 실장석의 탄생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변기에 고인 물속엔 옅은 녹색 점막에 쌓인 새끼들이 7마리나 있었다. 친실장은 서둘러 한마리씩 혀로 햝아주지만 4마리째 햝자 거기엔 자실장이 아닌 엄지실장이 웃으며 재잘거리고 있었다. 

“반가운 레치! 마마도 오네챠들도 반가운 레치! 와타찌 마마의 자로써 우지챠 확실하게 돌보는 레치!”

친실장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걸 인지하지 못한 엄지실장은 땅에 발이 닿기 무섭게 튀어나가 자신보다 큰 자실장들에게 다가갔다. 자실장들은 이미 나름대로 말을 나누며 일종의 무리를 형성하고 처음보는 세상인 화장실 내부를 신기한듯 구경하고 있었다. 

“오네챠! 와타찌 막내인 레치!”

하지만 자실장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막 태어났다고 하지만 본능적으로 자신과 다르다는걸 알기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였다. 

“저건 뭐인 테치?“
”신기한 테치...“
”반짝이는 테치“

엄지는 아무리 말을 걸고 눈 앞에서 껑충껑충 뛰어도 관심하나 주지 않자 슬슬 조바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엄지실장 특유의 좀더 본능에 충실한 무의식이 보호, 즉 무리에 끼지 못하면 죽는다는걸 알기에 자실장 무리에 인정을 받지 못하면 큰일 난다는걸 감지한 것이다. 

친실장은 덤덤한 눈으로 엄지실장을 보고선 물 위에서 점막에 쌓인채 꿈틀거리며 필사적으로 친실장에게 어필하며 점막을 벗겨주기를 바라는 3마리의 새끼들을 보았다. 엄지가 태어난 이상 저것들은 어차피 잘 나와야 엄지이기에 더이상 엄지를 늘리기 싫은 친실장은 구더기가 되는걸 기다리고 있었다. 

들리지 않지만 들린다. 점막이 굳어가며 구더기로 형태가 고정되는 공포와 절망에 휩싸인 새끼들의 비명과 표정이. 자실장보다 못한 미성숙 개체가 엄지. 그런 엄지보다 못한 것이 바로 구더기다. 실장석 계급의 최하위이자 가축이나 다름없는 구더기. 

점막이 굳어갈수록 이지가 퇴화하고 생각이 뚝뚝 끊긴다. 내가 더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공포에 미쳐서 웃거나 정신을 놓지만 구더기로 완전 퇴화가 되면 정신도 같이 그 수준으로 떨어지며 회복하기에 친실장은 점막에 갇힌 새끼들을 보며 가학적이면서 쾌감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비웃을 뿐이였다. 

한편, 엄지는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는 자실장들을 뒤로하고 다시금 친실장에게 다가가 알짱거리며 관심을 요구하지만 친실장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점막에 쌓인 이모토챠들만 보고 있었다. 엄지는 생존본능이 극에 다달았고 변기의 가장자리에서 미끄러져 안으로 들어갔다. 

“마마 와타찌 이런것도 할수 있는 레치!”

그리곤 근처 가장 가까운 점막에 달라붙어 혀로 햝기 시작했다. 그 순간 미쳐가던 점막안에 있는 새끼의 얼굴이 환하게 변하며 눈물을 흘리며 단 1의 도움도 안되는 엄지를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엄지의 혀론 20시간이 넘게 햝아야 가까스로 80%정도 벗기지만 그것을 알리가 없는 실장석이기에 친실장은 감히 허락도 없이 까부는 엄지의 행동이 불쾌할 따름이였다. 엄지 딴에는 나름의 필요성과 쓸모, 착한 아이를 염두해둔 행동이지만 애초에 실장석에게 있어서 엄지는 자신의 새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엄지의 모든 행동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친실장은 이 불쾌한 엄지를 죽일까 생각했지만 곰곰히 지켜보니 변기의 벽은 엄지에게 절대로 탈출이 불가능한 높이라는걸 깨달았다. 지금까지 출산을 하면서 엄지를 한두번 낳아본게 아니기에 평소대로 살려두면 귀찮게 계속 앵겨붙는걸 알기에 오히려 함정에 스스로 뛰어든 엄지를 보면 유쾌할 따름이였다. 

엄지의 헛된 수고는 2분만에 끝났다. 혀가 쓸려 피가 나고 고통이 일어나자 행위를 곧바로 멈춘 엄지는 기대에 찬 눈으로 위를 보자 벌떡 일어나 주변 정리를 하는 친실장의 모습이 보였다. 기이함을 느꼈으나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기기에 가만히 기다렸다. 

3분이 더 흐르자 점막이 완전히 굳어 3마리의 구더기가 멍청한 얼굴로 엄지에게 다가갔다. 구더기의 입장에선 유일하게 자신과 가장 근접한 생명체는 엄지였으며 서로 상부상조 하는 공생의 관계이기에 본능적인 이끌림이 있는 것이였다. 

“레후?”
“엄지 오네챠 반가운 레후!”
”레? 후?“

엄지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며 꾸물거리며 다가오는 구더기를 환한 미소로 반기며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곤 마마인 친실장의 애정어린 칭찬을 상상하며 살짝 눈을 감았다. 

”....레치?“

하지만 엄지는 아무리 기다려도 자신이 상상한 것이 이뤄지지 않자 서둘러 눈을 떴을땐 커다란 마마의 손에 붙잡혀 변기 위로 붕 뜨는 구더기들의 모습이였다. 그토록 원했건만 자신에게는 단 한번의 손길도 없던 마마의 관심. 자기가 아닌 자기보다 못한 구더기가 관심을 받는 이해를 벗어난 사태에 이해를 거부한 엄지의 뇌가 현실을 받아들이기 까지 1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레, 레쨔아아아—!!“

엄지는 괴성을 지르며 팔다리를 마구 휘두르며 물장구를 치며 울었다. 구더기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자신이 아닌 저급한 되다만 녀석들에게 어째서 마마의 관심이 가는지 분노가 차올랐다. 엄지의 괴성에 호기심이 일어난 자실장들은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꼴사납게 발광하는 엄지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이 얼마나 추잡해 보이는가. 

“테뿌뿌뿌!”
“치프프픕!!”
“테퍄퍄퍄!!”

엄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위에서 들리는 비웃음소리. 거기다가 아래에서 위를 본다는 굴욕적인 구도. 태어난지 15분도 흐르지 않은 엄지의 프라이드는 산산조각나 흩어졌다. 

“내려오는 레치! 당장 내려오는 레치! 와타찌를 내려다보지 말라는 레찌이-!!”

엄지의 고함에 웃음소리를 커져갔고 엄지는 결국 변기 위에서 파닥이는 자실장들의 다리가 보였다. 

”자들은 일어나는 데스! 집까지 갈 길이 먼 데스. 마마를 제대로 따라오는 데스.“

친실장의 말에 웃던 자실장들은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억양으로 대답을 하며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레...? 마마?? 마마?? 마마?! 마마! 와타찌 여기 있는 레치! 와타찌 아직 못올라간 레치! 마마, 와타찌 두고가지 마는 레치! 여기 너무 높은 레치! 올려주는 레치! 마마-! 와타찌 버리지 마는 레치! 마마-! 마마-! 마마!!!!“

엄지는 그제서야 자신이 버림받았으며 여기에 내려온게 스스로 죽으러 온 것임을 깨달았다. 

”마마-! 와티찌 아직 여기에 있는 레치-! 와타찌 착한아이 되는 레치! 밥도 잘 먹고 운치도 잘 누는 레치! 그러니 버리지 마는 레치! 그러니 살려주는 레치!!“

엄지는 다급하게 자신이 미끌어져 내려온 변기의 벽을 기어오르기 위해 벽을 탈려고 했지만 세라믹 변기에 물때로 인해 지나치게 미끄러워 단 한 발자국도 오를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점프를 해도 1cm 깊이의 물의 저항도 엄지에겐 커다란 장애물이였다. 미끄러져도 물로 인해 다치지 않지만 문제는 체력이였다.  막 태어나 먹은 것도 없기에 탈출하기 위해 몸을 쓸수록 점점 야위어가는 엄지. 

”돌아와주는 레치! 마마-! 마마-! 와타찌도 마마의 아이인 레치—!!“

엄지의 최후의 기력을 짜낸 필사의 목소리.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절망에 빠진 엄지는 무의식적으로 위석에서 굶주림과 고독에 죽는 자신을 상상했다. 안색이 창백해진 엄지는 문득 물에 비친 자신의 뒤로 커다란 무언가를 보았다. 서둘러 몸을 돌려 위를 보자 거기엔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던 마마의 모습이 보였다. 

”믿었던 레치...믿고 있던 레치! 와타찌 마마가 돌아올거라 믿고 기다린 레치!“

희망찬 얼굴로 두 팔을 벌린 엄지의 콧구멍이 벌렁였다. 역시 자신의 마마다. 역시 마마는 자신을 버릴리없다. 

”레프픕..! 마마 부끄러워 하는 레치? 하지만 와타찌 마마를 용서한 레치! 그러니 와타찌를 들어올려도 괜찮은 레치! 와타찌가 허락하는 레치!“

”와타찌 힘이 없으니 마마의 품에서 포근하고 따뜻하게 집으로 가는 레치! 집에 도착하면 와타찌를 위한 특별한 밥과 잠자리를 받는 레치. 밤에 배고플수 있으니 마마의 젖도 듬뿍 먹어야하니 마마의 품에서 자는 것도 좋은 레치. 그리고 일어나 우지챠들 프니프니도 하는 레치. 하지만 우지챠가 3마리면 힘들수 있으니 마마에게 특별히 한마리 프니프니 하게 허락해주는 레치!”

엄지는 쉴새없이 쫑알거리며 친에게 요구를 늘어놓았다. 밝은 표정과 달리 엄지의 몸은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친실장의 반응은 없었고 4분간 쉴새없이 말하던 엄지는 결국 입을 닫았다. 

“.....마마, 이것만 알려주는 레치.”

엄지는 알고 있었다. 

“....마마에게 와타찌는 좋은 아이인 레치?”

소중한 돌이 말한다. 

-엄지는 자가 아닌 데스. 

버림받았다는건 진작에 알았다. 

하지만.
혹시나.
어쩌면. 
행여나. 

진짜진짜 혹시몰라 해본 말이였다. 안될건 알지만 그래도 천운이 닿으면 자로써 받아주지 않을까 싶어서. 

”와타찌 버림받으면 죽는 레치.“
”잔뜩 굶어서 죽는 레치“
”밥도 못먹고 운치도 못 누고 죽는 레치“
”혼자 외롭고 쓸쓸하게 죽는 레치?“
”마마의 품에 안겨보지도 못한 레치“
”우지챠 프니프니 한번 해보지도 못한 레치“
”....레끕, 레끅..! 레에에엥-! 레에에에엔—!! 이런거 싫은 레치! 죽기싫은 레치!“
”...데흠, 역시 좀 아까운 데스.“
”레?“

엄지는 자신의 몸통을 감싸안는 따스한 손길을 느꼈다. 점막에 벗겨질때를 제외한 처음으로 받아보는 따스한 손길. 영원히 넘어갈수 없던 거대한 벽이 너무나 쉽게 자신의 시야 아래로 내려간다. 

”역시 버리긴 아까운 데스“

엄지는 친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똑똑히 들었다. 엄지는 죽음의 순간 구원이 내려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걸 깨달았다. 역시 마마는 자신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밥도, 운치도, 프니프니도, 젖도 잔뜩 먹을 것이다. 아낌없이 잔뜩 먹고 무럭무럭 커서 오네챠들 처럼 성장하면 마마에게 따끔하게 말하며 혼내줄 것이다. 

이것보아라! 
이렇게 자신이 성장했다!
나를 그때 버렸다면 얼마나 후회했는가!

흥분에 쌓인 엄지가 정신을 차린것은 깨질듯한 두통을 느꼈을때였다. 

“레?? 레쨔아아-!”

눈앞엔 커다란 마마의 입안이 보였다. 흉물스럽게 꿀렁이는 혀와 그 너머에 시커먼 목구멍은 너무나 무서웠다. 엄지는 자신의 머리가 쪼개는 고통에 두 팔을 위아래로 벌리며 손 끝에서 단단한 친실장의 치아를 느낄수가 있었다. 

“무슨짓인레챠아-!”

살아남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살아 성장해서 자신을 잡아먹을려는 친실장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팔이 끊어질듯이 아팠지만 머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한풀 꺾이자 엄지는 할수있음을 느꼈다. 

생각보다 버틸만하다. 아니, 자신의 이 놀랍고 두려운 힘을 조금만 더 쓴다면 능히 마마의 이빨을 부수고 탈출하리라. 

”레챠아아압-!! 레쨔아아아-! 츄아아아-!“

엄지의 기합찬 소리와 함께 우직거리는 마마의 이빨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자 엄지의 눈이 희번뜩 번들거렸다.

”?“

-빠직

친실장은 이 사이에 낀 엄지의 대가리를 한번더 아주 살짝 다물었다. 이 사에서 들리는 빠개지는 소리와 함께 입 밖으로 튀어나온 뻣뻣하게 일자로 쭉 핀 엄지의 몸통이 삽시간에 축 늘어지는걸 보았다. 

”뎃?! 실수한데스...살짝 누른다는게 생각보다 더 약해서 우그러진 뎃스....“

친실장은 실망한 표정으로 입안에 넣은 엄지를 뺐다. 관자놀이 부근이 일자로 푹 파여 눈알이 데롱거리는 엄지는 두 팔이 없었다. 

친실장은 엄지를 버릴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웠다. 저대로 버리면 다른 놈이 와서 맛있게 먹을터. 그럴바엔 차라리.

”와타시가 먹는게 나은 데스~. 어차피 와타시의 총구에서 나온거니 와타시가 먹는게 제일 나은 데스.”

친실장은 데롱거리는 엄지의 눈알를 똑 떼고 변기로 버린뒤 축 늘어진 엄지의 등을 크게 깨물었다. 피부가 찢지고 근육이 떨어지며 이쑤시개 같은 척추가 들어났다. 그럼에도 엄지가 정신을 차리는것 같지 않자 두어번 허공에 흔들다 실망한 표정으로 한입에 털어넣었다. 

“엄지도 먹어서 배좀 찼으니 슬슬 자들을....데??“

친실장은 느긋하게 배를 두드리며 화장실 밖으로 나왔을땐 어딘가 익숙한 모습의 자실장 3마리가 성체실장 한마리에게 뒷머리카락이 붙잡힌채 거친 바닥에 다리를 갈리며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마마-! 어디있는 테치! 발씨 점점 없어지는 테챠아-!”
“아픈 테치! 아픈 테치이! 그만하는 테치!”
“마마가 오마에 따윈 한방에 죽여버리는 테치! 그러니 놔주는 테치!”

울부짖으며 자신을 찾는 자실장들이 자신의 자 임을 알았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게 화장실 계단 옆에 숨어서 손에 들린 검은 봉투를 보았다. 그 안에는 잠을 자는 구더기 3마리. 친실장은 한숨을 내쉬며 봉투안에 손을 집어넣어 빼냈다. 

“데, 이번 출산은 실패인 데스. 이거라도 마저 먹고 다시 힘내는 데스. 자는 또 낳으면 되는 데스웅~!”

그리곤 손에 쥔 것들을 입안에 넣고선 씹어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