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를 키우는게 이득아닐까?


 


들실장들의 번식은 봄, 가을에 일어나며
보통 봄에 태어난 자들을 춘자라고 부르고 성체까지 기르는데,
독립할 수 있는 중실장 이상으로 성장하는데에는 대략 1년이 걸린다.



춘자 셋과 추자 셋을 각각 키운다고 가정해보자



춘자들은 친실장이 겨울을 지내느라 영양이 부족하여 대부분 엄지실장 크기이며 몸이 약하게 태어나며 위석의 힘도 약하다.

3~4월 봄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5~6월의 보릿고개동안 굶주려 제대로 크질 못한다.

자실장 크기로 클 때까지는 사실상 밥만 축내는 엄지나 다를바가 없다.

가을에 영양이 풍부할 때 자실장으로 성장하여 겨울을 나는동안 중실장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봄여름에 엄지 셋
가을겨울에 자실장 셋
봄에 중실장 셋
이 되는것이다.



반면에

추자들은 친실장이 여름~가을 동안 영양을 보충하였기 때문에 자실장으로 태어나며 몸이 튼튼하고 위석의 힘도 강하다.

추자들이 튼튼하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운치굴에 버려져서도 살아남고 보존식으로 만들때도 금방 파킨하지않고 버티며 죽어서 썩지 않는것이다.

9~10월 가을에 바로 자실장으로 태어나서 보존식 모으는데 손을 보탤수도 있다.

무엇보다 춘자와 추자가 가을에 자실장, 겨울에 중실장으로 성장이 동일하기 때문에 봄에 독립시키는것은 동일하다.

즉 봄의 보릿고개를 버티는데에도 불리한 점이 없는것이다.

봄여름에 자가 없고
가을겨울에 자실장 셋
봄에 중실장 셋
이 되는것이다.



봄 여름에 엄지 셋을 키워야 하는 춘자보다
봄 여름에 자가 없는 추자가 압도적으로 생존에 유리하다.



게다가 추자의 이득은 더 있다.

춘자들은 엄지로 태어나 뇌가 작아 배우는 속도가 느리며 가을겨울에는 이미 태어난 지 6개월 가량이 지났기 때문에 배우는 속도가 매우 느려지게된다. 즉 보존식 모으기와 월동준비를 배우는게 매우 느리다.

추자들은 자실장으로 태어나 뇌 용량이 성체와 비슷하며 가을의 보존식 모으기와 월동준비, 겨울나기를 태어나서 6개월 이전에 경험하며 빠르게 배울수 있다.



봄여름의 탁아도 없고
충분히 모아둔 보존식으로 월동실패 탁아도 없고
엄지들이 동족식 독라에게 습격당할일도 없는
인간과 실장석 모두에게 이득인 일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너희들도 춘자들은 모두 솎아내고 추자들을 낳아 키워야 한다는 거지. 알겠니?"

[데데뎃... 몰랐던 데수웅... 역시 닝겐사마는 똑똑한 데스우. 당장 이 쓸모없는 춘자들을 솎아내는데슷!!]

[레에에!! 마마!! 와타찌 장녀인 레찌!! 슬픈일 하지마는레치이!]

[레챠! 레쮸아! 팔씨 다리씨가! 머리씨가!! 뽑히는 레츄아아악!!!]

[오네챠들 우지차가 되는 레후? 기쁜레후! 같이 프니프니 받는 레후우~]








실장 타로 1~3 (완)

 

'오로롱, 주인님... 와타시를 놔두고 어디로 가신 데스우... 곧 어두워지는 데스우... 빨리 와주는 데스우...'

미도리는 낯선 공원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주인을 찾고 있었다. 늘 하던 즐거운 산책 후 목욕하고 꿀잠을 청하는 행복한 하루였을 터이다. 오늘따라 다른 가본 적 없는 공원으로 이끄는 주인을 의심하지 않고 순수하게 새로움과 신기함을 만끽한 미도리였다. 실장석의 능력으로 집을 혼자서 찾아가는 것은 무리인만큼 갑자기 사라진 주인이 오지 않는다면 미도리의 운명은 뻔했다.

해가 지고 공원에도 어둠이 깔렸다. 인간의 출입이 잦아든 밤의 공원은 낮의 공원과는 딴판의 풍경이 펼쳐진다. 인간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낮에는 사이좋고 예의바른 실장을 연기하던 실장들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도리처럼 막 버려진 사육실장이 맞이할 결말은 정해져 있었지만, 미도리는 좀 달랐다. 눈물을 닦고 결연하게 일어서서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주인님이 늘 말씀하시던 '운명'일지 모르는 데스. 기필코 살아서 주인님을 다시 만나고 마는 데스.'

사실 마음의 병이 깊어진 주인은 나쁜 선택을 하기 전 미도리를 제 손으로 처리하지 않고 버림으로써 마지막 인사를 한 것이라는 사실을, 따라서 이 세상에서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운명도 미도리를 막을 수 없었다.


거짓말처럼 미도리는 공원 생활에 잘 적응해나갔다. 운좋게 집도 구하고, 노예를 빼앗아 굴에도 처박았다. 자를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이 유일한 흠이었지만 여러모로 성공적인 들실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먹이는 아닌 기묘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 이웃을 만나며 미도리의 실생은 다시 급변을 맞이한다.

'이웃상, 그것은 카드가 아닌 데스?'
'아, 미도리상. 카드라고 부르는 것인 데스우? 뭔지는 모르지만 예뻐서 가져온 데스.'

카드에 그려진 그림은 미도리가 아는 것이었다.

'아, 이건 '힘'이라고 하는 카드인 데스. 예쁜 여자닌겐상이 무서운 어흥씨를 안고 있는 게 보이는 데스? 이 닌겐상은 어흥씨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흥씨도 닌겐상을 공격하지 않는 데스. 곧 용기있고 힘있는 닌겐상이라는 말인 데스.'

이웃 실장은 눈이 휘둥그레해져서 미도리를 쳐다보았다.

'어쩜 그렇게 잘 아는 데스우?'
'주인님이 항상 이런 카드를 보고 점을 치셨던 데스우. 옆에서 보다보니 배운 데스...'
'점이 무엇인 데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것인 데스우.'
'미도리상도 그걸 할 수 있는 데스?'
'데에...?'

미도리는 이웃의 눈을 다시 쳐다보았다. 기대감과 간절함에 찬 반짝거리는 눈. 주인과 있을 때 주인을 찾아오는 인간들에게서 자주 보던 눈빛이 이런 거였나 생각했다.

'데에.. 볼 수는 있지만, 점을 치는 닌겐상들은 '복채'라고 해서 꼭 대가를 받는 데스. 공짜로 봐주면 와타시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 데스.'
'그럼 주는 데스! 이거면 되겠는 데스우?'

이웃은 옷을 뒤져 꼭꼭 숨겨둔 콘페이토 한알을 꺼냈다.

'데... 그럼 안 될 건 없는 데스. 지금 있는 '힘' 카드로 보면 아마 힘을 쓸 일이 생길 것인 데스. 동족이나 야옹씨의 공격일지도 모르는 데스. 하지만 이웃상은 힘이 세니 걱정할 게 없는 데스우.'
'신기한 데스우! 고마운 데스 미도리상!'

떠나가는 이웃과 손에 남겨진 콘페이토. 미도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음날 아침, 미도리는 누군가 하우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어제의 그 이웃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도리상, 대단한 데스!! 어제 노예가 반항해서 죽을 뻔했지만 잔뜩 두들겨패준 데스우! 보답인 데스!'

그 독라의 것임이 분명한 다리토막을 미도리에게 주고 이웃은 떠나갔다.

'와타시도 혹시...?'

항상 미래를 자신감있게 예언하는 주인의 모습을 동경하던 미도리였다. 옆에서 일하는 것을 보면서 주인이 쓰는 카드들의 의미도 대충 다 알고 있었다. 인간의 일이라면 모르지만, 실장들 사이 일이라면 자신도 점을 칠 수 있지 않을까.

결심이 들자 실행은 빨랐다. 적당한 크기의 종이조각을 모으고, 연필을 구해 유치하지만 실장석도 알아볼 수 있는 상징을 그려나갔다. 실장석이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의 카드들은 생략하고, 펜타클은 콘페이토로, 소드는 못 보검으로 하는 식으로 실장석에게 맞는 내용으로 바꾸었다. 며칠간 노력한 끝에 미도리만의 실장 카드덱이 완성되었다.

'끝난 데스우... 이제 와타시도 주인님처럼 점을 쳐보이는 데스.'

첫 손님은 미도리 자신. 떨리는 손으로 '카드'들을 섞고, 펼치고, 뽑았다. 첫번째 질문은 이 일이 잘 될는지였다. '매지컬 테치카'와 '9 콘페이토'가 뽑혔다. 자신의 능력으로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해석하고 미도리는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데프프... 이렇게 하는 게 맞는 데스? 나쁘지 않은 데스우... 좋은 점괘인 데스..'

이런 표정을 가끔 주인도 지은 듯하다고 생각하는 미도리였다.



"다음 분, 들어오는 데스."
"안녕한 데스 미도리상."
"아, 또 온 데스. 오늘은 뭐가 궁금해서 온 데스?"
"오늘 하루 운세가 보고 싶은 데스우. 여기 복채인 데스.. 도토리로 괜찮은 데스?"
"문제없는 데스. 잠시만 기다리는 데스."

".....안 좋은 데스, 오마에 혹시 자가 있는 데스?"
"그런 데스... 무슨 일인 데스우?"
"막대기 다섯개가 나온 데스. 이건 싸움을 뜻하는 데스, 자들 중에 말썽을 피우거나 다투는 자가 있는 데스우?"
"차녀가 장녀에게 반항하고 동생들을 괴롭히긴 하는 데스... 그 자가 문제인 데스?"
"그럴 지도 모르는 데스, 정 문제라면 솎아내는 것도 방법인 데스우."
"데에.... 알겠는 데스우. 감사한 데스 미도리상."


미도리의 '점집'은 대성황이었다. 처음 미도리가 점을 본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그 개념부터 이해하기 어려웠던 실장들은 의심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점차 미도리의 점괘가 효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실장들이 늘고 목소리가 커지면서 공원 거의 전부가 미도리의 고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실 두루뭉술하게 끼워맞춘 말이 어떻게 맞은 것이든, 아예 반대로 일어난 것을 기억 왜곡으로 맞다고 믿게 되었든 단순하고 속기 쉬운 실장석이기 때문에 그 효과는 컸다.

미도리도 점을 보면서 나름대로 노하우를 익혀나갔다. 아무리 간소화시킨 타로 덱이라고 해도 인간 사회에 비하면 훨씬 단순하고 유치한 실장석의 삶이니만큼 정확한 대입은 힘들기 마련. 점을 보러온 실장의 표정과 말, 행동을 보고 상황을 짜맞추어 그럴 듯한 점괘를 들려주는 데 능숙해졌다. 실장석의 입장에서는 말해주지도 않은 것같은 사실들을 전부 아는 듯이 늘어놓는 미도리가 그렇게 신비해보일 수 없었다. 현실의 인간을 방불케하는 기술로 미도리는 이번의 친실장이 얼굴이 퀭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함으로 보아 자들을 여럿 기르느라 힘에 부친다는 것을 진작 눈치챘다. 이렇게 넌지시 암시를 주면, 이 친실장은 집에 돌아가 차녀가 별반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입을 줄일 겸 솎아내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미도리는 용하다고 칭송받는 것이다.


"그럼 다음분."
"처음 뵙겠는 데스 미도리상, 와타시는 미란이라고 하는 데스."
"반가운 데스 미란이상, 무엇이 궁금한 데스?"
"와타시는 이 공원에 온 지 세 밤 지난 데스. 주인님이 기다리라고 하고 안 온 지 세 밤인 데스."
"안 된 일인 데스.."
"주인님이 와타시를 버린 건 아는 데스, 그래도 후회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 데스..."
"문제없는 데스우. 오마에의 주인님이 지금 어떻게 사는지 보면 되는 데스?"
"그런 데스우! 여기 마지막 남은 콘페이토인 데스."

"..... 푸드 세개인 데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는 데스?"
"데에... 모르는 데스."
"푸드는 먹을것인 데스. 하나는 미란이상의 몫, 하나는 주인님의 몫. 나머지 하나는 뭐겠는 데스?"
"데에에....?"
"오마에의 주인님은, 다른 실장을 기르고 있다는 말인 데스."
"데에에에에!!! 그럴 리 없는 데샤아아아!! 주인님은 항상 와타시가 마지막 실장이라고 했던 데샤아아!!!!"
"오마에!!! 난동피울 거면 꺼지는 데샷!"

하우스 밖을 지키고 서 있던 실장 두엇이 냉큼 들어와 미란이라는 전 사육실장을 끌고 나갔다. 미도리는 한숨을 내쉰다.


미도리가 공원에서 명성을 얻어감에 따라 미도리를 추종하는 무리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개중에 미도리로 인해 삶이 바뀌었다고 진지하게 믿는 부류였다. 집과 가족을 버리고 미도리의 집 옆에서 기거하는 그들은 미도리를 의심하거나 점이 잘못되었다고 난동피우는 실장으로부터 미도리를 보호하고, 복채로 받은 음식들을 나눠먹고 운치굴을 대신 관리하며 미도리의 집을 넓히고 고치는 등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았다. 미도리는 다른 어떤 일을 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게 놔두지도 않았다. 보스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공원에서 미도리는 보스와 같은 영향력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미도리에게 가장 자주 점을 보러 오고 가장 문제를 일으키는 부류는 바로 미란이같이 공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전 사육실장들이었다.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인에 대한 미련을 놔주지 못한 채 점에만 매달리는 그들에게 미도리는 연민을 느끼면서도 마지막까지 남은 재산을 털어먹었다. 경험이 부족한 전 사육실장들에게 공원은 하루종일 주인을 기다리면서 살아남을만큼 녹록한 곳이 아니다. 저 미란이란 녀석도 다시 미도리에게 점을 볼 공물을 구하느라 식량과 집을 얻기는커녕 서서히 굶어죽거나 제발로 공원을 뛰쳐나가 객사할 운명일 게 뻔하므로.


"오늘은 더이상 없는 데스?"
"복채가 없는데 점을 보겠다고 우기는 실장이 있는 데스."
"무슨 일인지 들어보는 데스. 들여보내는 데스."

역시 꾀죄죄해졌기는 하지만 핑크색 프릴 달린 옷을 입은 꼴이 전 사육실장이다.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은 자실장 한마리가 새끼인 듯 손을 잡고 있었다.

"감사한 데스 미도리상... 와타시는 미순이라 하는 데스."
"반가운 데스.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복채도 없이 온 데스?"
"죄송한 데스... 와타시가 이 공원에 온 지도 일곱 밤이나 된 데스. 그동안 이 자만 남고 전부 슬픈 일을 당했고, 머무를 집도 먹을 것도 없는 데스. 와타시는 주인님께 돌아가고 싶은 데스."
"... 주인님께 돌아갈 수 있을지를 보면 되는 데스우?"
"그런 데스우... 대신 이 자를 드리는 데스. 노예로 부려도 좋은 데스. 주인님을 만나면 다시 찾으러 오겠는 데스. 그때는 두배로 갚겠는 데스."
"테에... 마마..."
"장녀는 마마를 따라올 수 없는 데스. 기다리면 꼭 찾으러 올 것인 데스."
"잠깐... 프니프니할 노예는 이미 많은 데스. 게다가 이 자는 사육실장으로 태어난 데스. 힘도 약하고 쓸모없는 자를 뭘 보고 맡으라는 것인 데스?"
"면목없는 데스. 장녀는 똑똑하고 뭐든 열심히 하는 데스. 조수로라도 써주었으면 하는 데스..."
"테.. 열심히 하는 테치..."
"데에에... 일단 알겠는 데스."

".. 바퀴 카드인 데스."
"무슨 뜻인 데스...?"
"바퀴만 보면, 길에서 붕붕씨나 따릉씨에 깔리지 않게 주의하라는 말인 데스."
"데에.... 알겠는 데스.."
"닌겐들은 운명의 바퀴라고 부르기도 하는 데스, 오마에와 주인이 운명으로 맺어진 관계라고도 볼 수 있는 데스."
"운...명? 이 뭐인 데스?"
"만나기 싫어도 다시 만난다는 뜻인 데스우."
"주인님을 만날 수 있다면 좋은 말인 데스!"



미순이라는 실장을 마지막 손님으로 떠나보내고, 친실장과 헤어진 충격에 아직도 히끅거리며 울고 있는 그녀의장녀를 옆에 두고 미도리는 생각에 잠겼다. 와타시도 주인에게 돌아갈 길을 알았다면, 주인 대신 외로움을 달래줄 자들이 옆에 있었다면. 생활이 안정되고 나서 자를 가지려는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미도리도 나름대로 고급 사육실장의 재질로 태어난 개체였다. 태어나자마자 받은 불임시술은 아직 그 효과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원래라면 단호히 내쫓았을 미순이에게 점을 봐준 것일지도 몰랐다.

"오마에, 울만큼 운 데스?"
"테에?"
"사육실장이었으면 이름이 있을 것인 데스. 뭐인 데스우?"
"테.. 미영이라고 하는 테치..."

미영이를 지켜보다 미도리에게 한 생각이 스쳤다.

"오마에의 마마가 똑똑하다고 해서 받아줬으니, 앞으로 시험을 봐서 확인하는 데스. 통과하지 못하면 독라로 만들어서 운치굴에 처박는 데스."
"테에... 무슨 시험인 테치..?"
"와타시가 점을 보는 카드를 알려주는 데스. 하루에 한장씩 알려줄테니 잘 외우는 데스."
"알겠는 테치..!"


주인도 항상 누군가를 가르치곤 했다. 조금더 닮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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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뭘 보는 거야?"
"자기야, 여기봐봐, 참피가 차에 또 치였어."
"아 또야? 이 동네 정말 짜증난다니까."
"근데 자기야.. 이거.. 미순이 닮지 않았어?"
"또 이상한 소리한다. 내가 걔들을 어디다 버렸는데 여기까지 와?"
"그래도 생긴 거랑 옷이 너무 똑같은데..."
"걔들 냄새나고 돈많이 든다고 갖다버리자 한 거, 오빠잖아. 그리워?"
"그건 아닌데... 어, 아직 살아있어!"
"데...에....."
"으, 징그러. 얼른 가자. 누가 치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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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분 오시는 데스."
"미도리상, 사육분충이 찾아온 데스, 괜찮은 데스우?"
"복채만 가져오면 안 될 건 없는 데스."
"알겠는 데스, 들어가는 데스."

손님인 사육실장이 신기한 표정으로 미도리의 '점집' 안을 둘러보았다. 혈색도 좋고 표정도 밝다. 무엇보다 저 양쪽 다 녹색으로 빛나는 눈과 부풀어오른 배. 임신까지 허락받은 행복한 사육실장이다. 미도리는 프로답게 질투를 내색하지 않고 응대한다.

"잘 온 데스, 태어날 아이들이 궁금한 것인 데스?"
"역시 소문대로인 데스우. 정확한 데스."
"하나하나 보려면 카드를 많이 뽑아야 하는 데스. 복채는 충분한 데스?"
"문제없는 데스우."

사육실장은 가방에서 미니어처 스테이크를 꺼냈다. 퍼져가는 달콤한 향기에 하우스를 지키던 경호실장마저 움찔한다. 역시 사육실장은 다르구나, 미도리는 속으로 탄식하면서 미영이에게 눈짓을 건넸다. 미영이가 제 몸만한 통을 끌고 나와 공손하게 인사한다.

"그럼 섞겠는 테치."

미영이는 통을 껴안고 있는 힘껏 흔들었다. 통에 들어 있는 '카드'들이 이리저리 섞인다. 어차피 인간들이 쓰는 카드를 그대로 가져와도 실장석의 솜씨로는 화려한 셔플이 불가능하다. 그저 손으로 휘젓는 게 최대라면, 더 다루기 편한 골판지나 나무토막에 그림을 그려넣고 뽑는 게 퍼포먼스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괜찮다. 자실장 조수를 얻은 덕에 더 극적인 연출을 꾀할 수 있는 것에 미도리는 만족했다.

"첫째로 장녀를 보겠는 테치."
"여황제인 데스."
"그게 뭐인 데스?"
"..와타시도 가장 높은 닌겐상이라고만 알고 있는 데스. 아무튼 장녀는 아주 착한 자가 될 모양인 데스. 동생을 잘 돌봐주고 그럴 힘도 있는 자인 데스."
"그럼 다행인 데스우."

"다음은 차녀인 테치."
"막대의 마라인 데스."
"데에엣!! 마라라고 한 데스우?"
"데프프프. 이름만 마라지 마라가 나온다는 말은 아닌 데스. 이 자도 좋은 데스. 급하기는 하지만 정이 많은 자인 데스."
"깜짝 놀란 데스우."

"삼녀 차례인 테치."
"별 카드인 데스."
"하늘의 별님인 데스?"
"그런 데스. 삼녀는 아주 예쁘고 밝은 자가 될 것인 데스."
"기분좋은 데스우."

"사녀까지 보겠는 테치."
"......."
"이건 뭐인 데스? 주인님이 사는 집씨처럼 생긴 데스우..."
"탑이라고 하는 데스. 잘 참지 못하고 화도 많은 자인 데스. 엄지라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이 자는 할 수 있다면 솎아내는 게 좋은 데스."
"데에...."
"오마에라면 잘 알 것인 데스우. 분충을 참아줄 상냥한 주인님은 많지 않은 데스. 그 분충이 단 한 마리라도."
"잘 알겠는 데스. 고마운 데스."

마지막 카드 결과에 심각하게 입을 다문 사육실장이 하우스를 나가고, 미도리 역시 굳게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한번에 많은 카드를 보아서 휴식이 필요하다. 결국 실장석의 자질이란 것은 어미의 태교가 큰 부분을 차지하므로, 저 실장의 사녀가 정말로 분충으로 태어날지는 전적으로 어떻게 결과를 이해하고 노래를 부를지에 정해져 있다. 분충이 섞여 있다는 가능성에만 집착한다면 다른 자들마저 모체의 심리에 영향을 받아 나쁜 요소를 가지고 태어날 터. 변변찮은 새끼들만 낳은 사육실장의 미래는 뻔하다.

미영이가 분주하게 꺼낸 카드를 다시 담고 자리를 정리한다. 미도리는 그런 미영이를 보고 한번 쓰다듬어준 다음 방금 손님이 가져온 스테이크를 손짓하여 가리켰다.

"좀 쉬는 데스. 저건 가져가서 문밖의 오바상들이랑 나눠먹도록 하는 데스."
"테? 미도리상은 안 먹는 테치?"
"와타시는 괜찮은 데스. 미영이쨩이 많이 먹고 크는 데스."


미도리가 공원 모두가 따르는 존재가 된 이후, 자신들도 눈치채지 못한 새 공원 분위기가 바뀌었다. 분충들이 매일 투쟁을 벌이는 지옥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원에는 늘 동족식을 노리거나 방문하는 인간과 사육실장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무리가 있는 법. 하지만 그런 자들까지 미도리의 신봉자가 된 이후로는 그런 행동이 깨끗이 사라졌다. 언젠가 집과 무기 등의 재산을 가지고, 자를 낳을 수 있다는 희망. 언젠가는 자신과 자들을 길러줄 인간이 나타나리라는 믿음. 미도리가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공원의 구성원들은 저마다 더 강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애호파들이 사육실장을 데리고 산책하기 안전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공원에는 더 많은 방문객이 모였고, 이들이 나눠주는 푸드와 생활용품으로 공원의 들실장들은 더욱 살기 좋아졌다. 들실장이 사육실장과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사육실장들도 공원을 믿음으로 다스리는 미도리의 존재를 듣게 되었다. 주인의 눈을 피해 미도리에게 앞날의 길흉을 물으러 오는 사육실장이 늘어났다. 미도리는 항상 졸렸고 피곤에 찌들었다. 다른 어떤 보스들도 탐낼 부와 권력을 얻었건만 그것은 미도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항상 엉뚱한 곳으로 튀는 것이 실장석이 사는 세상의 섭리였다.


"미도리상, 미도리상!! 큰일난 데스우!! 어서 도망치는 데스우!!"
"서두르지 마는 데스. 무슨 일인 데스?"
"어떤 모자란 자가 닌겐에게 이곳을 알려준 데스!! 닌겐이 곧 오는 데스!"
"도망칠 필요 없는 데스우. 어차피 닌겐이 한번 찾겠다고 맘먹으면 와타시타치는 도망쳐 봤자인 데스."
"하지만 그 닌겐이 미도리상에게 나쁜 짓을 하면.."
"괜찮은 데스우. 별일 없을 것인 데스."

방금 뽑은 카드가 나쁜 의미였다면 미도리도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미도리는 그러면서도 미영이를 부하에게 데려가게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 있습니다, 있어요!! 자 여러분, 타로점을 본다는 참피를 지금 소개합니다!"
"어서오시는 데스 닌겐상."

자신을 찍는 휴대폰 너머 인간에게 악의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미도리는 내심 안도했다. 그는 그저 화제와 조회수를 탐내 왔을 따름이었다. 인간이 쏟아내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미도리는 그새 녹슬어버린 듯한 손을 움직여 카드를 뽑고 읽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도리, 이런 점을 보는 건 어디서 배웠나요?"
"주인..님이 이걸 가지고 점을 보고 돈을 벌었던 데스. 와타시는 옆에서 보다가 저절로 배우게 된 데스."
"아, 주인에게 배웠다. 더이상은 묻지 않겠습니다, 크흠! 그러면 미도리, 스스로 생각하기에 실력은 있다고 보시나요?"
"주인님을 보고 따라하는 것 뿐인 데스. 잘 모르는 데스."
"겸손하기까지!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른 참피입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이렇게 본 점을 믿나요?"
"믿지 않는 데스."

남자는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잠시 머뭇거렸다.

"왜 믿지 않는 거죠? 그러면 점을 보는 이유가 있나요?"

미도리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주인님은 주인님이 죽는 날까지 미도리와 함께라고 하신 데스우. 하지만 주인님은 와타시를 버렸고 와타시는 이제 늙은 데스. 그게 안 믿는 첫 번째 이유인 데스."

"어떤 닌겐과 실장들은 자기가 원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몇번씩 같은 걸 보게 하는 데스. 그런 자들에게는 제대로 봐주는 의미가 없는 데스. 그러면 와타시도 무시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데스."

"하지만 좋은 말을 들은 자는 기분이 좋아져서 더 씩씩해지고, 나쁜 말을 들은 자는 더 조심조심해져서 더 잘 살게 되는 데스. 와타시가 그 자들을 속였다 해도 그 자들은 와타시의 도움을 받은 것인 데스."

뜻밖의 대답에 실망한 듯 남자는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고 돌아갔다. 미도리 역시 진이 빠져서 덜렁 드러누웠다. 실로 오랜만의 인간과의 대화였다. 그 인간이 주인님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도리는 그날 밤 내내 주인과 다시 만나는 꿈을 꾸었다.



다음 인간의 방문은 며칠이 채 지나지 않은 한밤중이었다.

"미도리상! 또 닌겐이 오는 데스!!"
"이 시간에... 예감이 좋지 않은 데스."
"다음에 오라고 하는 데스우?"
"어차피 와타시타치의 말을 들을 닌겐일 리 없는 데스우. 미영이쨩, 이 오바상이랑 잠시 나가 있는 데스."
"테... 미도리상과 같이 있고 싶은 테치."
"작은 자는 방해만 되는 데스. 어서 가는 데스."

미도리는 늘상 하던대로 카드를 무심코 뽑아보았다. 나온 그림에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미영이도 그것을 보았다.

"미도리상? 그 카드는 분명..."
"어서 미영이쨩을 데리고 가는 데스, 썩 가는 데스!!"



잠시 뒤 미도리 앞에 나타난 남자는 그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의 인간이었다.

"안녕, 점쟁이양반?"
"아.. 안녕하신 데스."
"히히. 역시 뭔가 있긴 있네. 확 쪼는 거 보니까. 여러분! 사상 최.초. 학대신사를 한방에 알아보는 분충입니다!"
"데에에에!!!"
"뭘 그리 겁먹나. 나는 학대파지만 신사라고. 네가 진짜 용한 점쟁이인 걸 증명하면 살려준다니까? 물론 틀리면 죽을 거야~"
"데.... 알겠는 데스우.."
"마침 한장이 뽑혀 있네? 그걸로 해봐. 어우 뭘 그린 거여. 여러분 이거 알아볼 수 있겠어요?"
"주..죽음인 데스..."
"오, 말그대로 죽는다는 뜻?"
"그, 그런 데스. 실패, 파괴도 되는 데스...."
"그렇구만~ 근데 어쩌지? 이건 점쟁이양반 운명을 본거거든?"

뒷말을 내뱉을 여유도 없이 미도리는 남자의 손에 붙들려 집 밖으로 던져졌다.

조용했던 공원은 미도리의 비명소리, 때리는 소리, 발로 차는 소리로 뒤덮였다. 남자는 과연 학대신사였다. 급소를 피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지 않으면서 미도리를 천천히, 확실하게 고통을 주고 있었다. 잠시 후 누가 불러모으기라도 한 듯 공원의 모든 실장이 달려나왔다. 닌겐은 무섭지만 남자 한명이라면 쫓아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공원의 보스인 미도리가 당하고 있다. 실장들이 남자를 에워싸자 남자는 천천히 미도리를 놓아주었다.

"똥닌겐!!! 미도리상에게 무슨 짓인 데샤아아앗!!!"
"당장 운치범벅이 되기 전에 도게자로 사과하는 데샷!!!"
"와우~ 이 공원 정말 재밌는데? 오길 잘했어, 그쵸 여러분?"

그 말을 하고 남자는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 집어던졌다. 순간 모든 실장들이 얼어붙었다. 겉옷에 가려져 맡지 못했던, 그 인간의 몸과 옷에 깊이 배인 냄새. 셀 수 없이 많은 동족의 피가 응축된 학대파의 냄새였다. 압도당한 실장들이 슬금슬금 물러서자, 남자는 다른 폰을 꺼내 조작하고 어떤 영상을 틀기 시작했다.

일전의 남자가 찍어간 미도리의 영상이었다.

"믿지 않는 데스."
"주인님은 와타시를 버렸고 와타시는 이제 늙은 데스. 그게 안 믿는 첫 번째 이유인 데스."
"그런 자들에게는 제대로 봐주는 의미가 없는 데스. 그러면 와타시도 무시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데스."



진실을 알게 된 실장들은 동요했다. 동요는 곧 분노와 의구심으로 번졌다.

"미도리상, 이게 무슨 말인 데스! 설명해 보는 데샷!!!"
"와타시타치의 점이 전부 가짜였던 데스??"
"어서 말해보는 데샷!!!"

남자는 타이밍 좋게 실장들의 혼란에 불을 지폈다.

"여기서 이 미도리의 말대로 사육실장이 돼서 떠난 동족을 본 적이 있나?"
"분충이란 말을 믿고 착한 자를 솎아낸 적은?"
"먹음직한 사육실장을 보고도 죽이지 말란 말에 참은 적은 있냔 말이다."
"이 미도리는, 점이란 수단을 이용해 너희들을 편하게 부려먹었을 뿐이란 말이야."

대부분의 실장들이 남자에게서 등을 돌려 미도리에게 달려들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나머지는 미도리의 집으로 돌진했다. 그 나머지는 끝까지 미도리의 편을 들려던 극소수를 린치했다. 남자는 그 아비규환을 흐뭇하게 촬영하고 있었다.

"여러분 제 손을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근데 이 점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맞았네? 자기는 죽고, 공원 지배는 실패하고, 집은 파괴당하니... 점쟁이 인정! 또 인정!"

이미 만신창이가 된데다 분노한 실장들의 공격을 받고, 급기야는 뜯어먹히면서 미도리의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아직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미도리는 이것 역시 '운명'이 아닐까 생각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것도 운명, 공원에서 살아남은 것도 운명, 이렇게 죽게 되는 것도 운명. 죽고 가는 곳에서 주인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운명이다. 미도리는 마지막으로 생전 최후의 카드의 의미를 속으로 되새겼다.

'죽음은 또한 새로운 시작인 데스....'




공원의 소란이 정리되고, 형체도 남지 않은 미도리와 추종자들의 시신, 모조리 약탈당해 폐허로 변한 집을 멀리서 바라보며 미도리의 심복들은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들 역시 날이 밝아 발견당하면 똑같은 운명을 맞을 게 뻔했다. 그 중 가장 나이가 많고 똑똑한 실장이 입을 열었다.

"이 공원을 떠나는 데스. 옆 공원에 가는 데스."
"미도리상의 복수는 포기하는 데스?"
"방법이 없는 데스우. 미영이쨩도 있고 아무리 와타시타치라도 저 분충들을 다 이길 수 없는 데스."
"옆 공원에 가도 그쪽 동족들이 와타시타치를 받아주겠는 데스?"
"방법이 있는 데스. 와타시타치에겐 미영이쨩이 있는 데스."
"테...?"
"미영이쨩은 미도리상에게 배운 게 있지 않는 데스? 미도리상의 뜻을 다른 공원에서 잇는 것인 데스우."

미영이는 언젠가 미도리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렸다.

'옛날에는 떠돌아다니는 닌겐상들이 주로 점을 보았다고 한 데스.'
'그 닌겐상들은 왜 떠돌아다닌 테치?'
'미움을 받았기 때문인 데스.'
'점을 보았기 때문인 테치?'
'그것 때문만은 아닌 데스. 하지만 점을 보았기 때문에 떠돌아다닌 것일지도 모르는 데스.'
'그것은 왜인 테치?'
'점을 보면 하늘님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말이 있는 데스.'

".... 해보겠는 테치."




공원과 공원을 떠돌아다니며 점을 치고 살아가는 들실장 무리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수많은 사람이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려고 움직였지만 아직까지 밝혀진 바는 없다.




















행복한 자실장 미니 (청십자실장)

 

미니의 세계는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니는 행복이란 것을 몰랐다. 미니에게 있어 행복은 숨쉬는 듯이 당연한 것. 
아름다운 빛깔의 실장 드레스들, 언제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실장푸드와 콘페이토.
연분홍빛 얇은 천이 드리워진 캐노피 침대, 푹신한 실크 침구와 질릴 정도로 많은 수 많은 장난감들. 
미니에게 그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오히려 당연하기에 미니는 행복이란 것을 알 수 없었다.
태어나서 부터 이어진 날들. 보장된 일상, 약속된 미래.
미니는 그저 앞으로도 오늘과 같은 내일이, 내일과 같은 미래가 이어질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미니의 세계에는 한 사람만이 존재했다. 
마마, 상냥하고 아름다운 마마. 잘 생각해보면 인간이 자실장의 어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미니는 그런 생물학적 관계따위는 알지 못했다. 태어나서 부터 계속 옆에 있었기에 마마, 상냥하기에 마마.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마마. 미니의 마마, 마마의 미니. 미니에게 마마는 세상의 전부였다.
행복하지만 좁고, 지나치게 치우쳐있는 미니의 세계. 그 안에서 미니는 행복했다. 


미니의 하루는 햇님이 얇은 캐노피 커튼을 통과해 미니의 눈가를 핥을 때쯤에 시작되곤 했다.
자실장 사이즈에 맞추어진 연분홍빛 실크 침대는 구름과 같이 푹신푹신해 달콤달콤한 잠을 꾸게 해줬다.
하지만 미니는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잠에서 덜 깬 몸은 좀 더 잘 것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미니는 기운차게 침대 아래로 내려섰다.
오늘은 일주일에 하루 밖에 없는 마마와의 날이다. 미니는 휴일이라는 개념에 대해는 잘 몰랐지만, 
항상 마마는 햇님이 뜰 때 밖으로 사라져, 햇님이 질 때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여섯 밤을 자고 난 아침에는 하루종일 미니와 있어준다.
미니는 침대 옆에 놓인 자실장용 전신 거울을 들여다보며 아침 몸단장을 시작했다. 
옅은 갈색빛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가볍게 빗어내려 뒤로 늘어뜨렸고, 
자느라 살짝 삐쳐나온 앞머리에는 물을 발라 얌전히 눌러주었다.
눈꼽이 낀 눈을 부비자 거울 너머에는 귀여운 적록색 눈동자가 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테에...하며 잠깐 자신의 귀여움에 넋을 잃은 미니는 손으로 뺨을 툭툭 치더니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오늘의 선택은 연 노랑빛 원피스. 미니가 가장 좋아하는 옷이었다.
흰색 카라 아래에는 수줍게 핀턱을 잡고 점점히 콩단추를 달았고, 
소매는 종모양으로 부풀리고 옅은 베이지색 토션레이스로 마무리했다.
가슴께 아래에서 넉넉하게 주름을 잡은 풍성한 치맛 자락에는 구름처럼 새하얀 새틴 프릴이 앙증맞게 달려있었다. 
여기에 미니는 같은 넓은 챙의 보닛을 집어들었다. 
원피스와 같이 연 노랑빛에, 하얀색 레이스가 달려있는 보닛은 햇빛이 강한 날씨에나 어울리는 모자였지만, 
미니에게는 예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미니는 조심스럽게 개나리색 공단끈을 잡아 목 밑으로 리본을 묶었다. 
거울 속의 미니의 모습은 누가 봐도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미니는 조심스럽게 한쪽 손을 뺨에 갖다대고 테츙~ 이라고 거울에 아첨을 했다.
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일까. 빨리 이 모습을 마마에게 보여줘야지. 
미니는 치맛자락을 잡아들고 토닥토닥 마마의 침실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미니가 자실장 치곤 작은 체구인 것도 있겠지만, 미니의 방과 마마의 침실은 어느정도 거리가 있었다. 
탁탁, 한참을 걷자 문이 살짝 열려있는 마마의 침실 문이 눈에 띄였다. 
원래는 문을 잠궈놨지만 도구를 써서도 손이 닿지 않는 미니를 
배려하여 마마가 집의 모든 문을 완전히 닿지 않고 열어둔 것이다.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가니, 마마는 아직 잠을 자는 중인듯 새근새근하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마마는 미니보다 잠꾸러기인테치. 미니는 가볍게 키득거리고는 마마의 침대로 다가가 마마를 불렀다.
마마, 마마. 미니가 왔어요. 얼른 일어나서 나를 안아줘요. 
한참을 미니가 마마를 불렀을까, 잠에서 덜 깬 듯한 마마가 미니를 들어 침대보 위에 눕혔다. 
안녕, 미니. 잘잤니? 응, 마마. 마마도 잘 잤어요? 테치테치하는 말 소리가 들리고, 
마마는 미니의 고운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마마로서는 잠이 덜깬 상태에서하는 약간의 습관 같은 것이었지만, 미니는 마마의 이 손길을 좋아했다.
저절로 벌어지는 세모꼴 입에서는 테에- 하는 행복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미니를 쓰다듬더니, 마마는 이내 기운차게 미니를 안아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자, 아침 먹어야지. 미니. 아침을 먹지 않으면 착한 아이가 되지 못해요.

마마의 흥얼거림에 미니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 어제의 아침을 생각했다.
어제의 마마의 밥은 달콤짭짤이었다. 마마는 웃으면서 이건 햄버그 스테이크야. 
라고 했지만 미니에게는 마마의 밥은 달콤짭짤이었다.
달콤짭짤은 한 입 베어물면 고소한 맛과 함께 진한 소스의 향이 혀에 배어들어 매우 맛있었다.
 하지만 달콤짭짤에 곁들여 나온 주황씁쓸은 싫었다.
미니가 주황씁쓸을 먹고 싶지 않다고 떼를 쓰자, 마마는 웃으면서 편식을 하면 착한 아이가 되지 못한다고 했다. 
착한 아이. 미니는 그 말에 찔끔 눈물을 삼키며 주황씁쓸을 삼켰다. 
물컹한 식감과 함께 비린맛이 혀에 퍼졌지만 미니는 참고 마마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마마는 그 모습을 보고 착한 아이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미니는 기뻤다.

오늘의 밥은 뭘까? 마마가 바쁜 날에는 가끔 실장푸드를 주곤 했지만, 기본적으로 마마의 날에는 마마가 직접 밥을 만들어주곤 했다.
마마, 오늘의 밥은 뭐에요? 미니가 포크와 스푼을 쥔 손으로 테이블을 작게 탕탕 치자, 
마마는 그 버릇없는 행동에도 거의 다 되어간다며 미니에게 웃음을 보내왔다.
한참을 칭얼거리던 미니의 코 끝에 고소한 냄새가 스쳤다. 미니는 흥분하여 마마, 마마라며 손발을 버둥거렸다.
오늘의 아침은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과, 베이컨 기름으로 구운 계란 프라이, 
오븐에 살짝 구워낸 김이 나는 부드러운 모닝빵과 딸기잼.
그리고 아직 자실장인 미니를 배려한 실장용 우유였다. 

물론 미니에게는 그 음식들은 반짝반짝한 분홍색 고기, 고소고소한 냄새가 나는 하얀 동그라미와 노란 동그라미, 
맛있는 냄새가 나는 부드러운 갈색 동그라미, 코가 멀어버릴 정도로 달큰한 냄새가 나는 빨간색 보석, 
그리고 마마의 맛이 나는 밀크였다.
잘 먹겠습니다와 테치라는 한 사람과 한 마리의 식사인사가 울려퍼지고, 이윽고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실장 손에 맞춘 식기였지만, 아무래도 실장석은 실장석, 완전히 깔끔하게 식사를 하는건 불가능 했는지 기껏 예쁘게 차려입은 
원피스에 베이컨 기름따위나 계란 노른자가 튀었다. 
마마는 미니, 깔끔하게 먹어야지. 지지야 지지. 라며 싫은 내색 하나없이 냅킨으로
미니의 옷에 묻은 얼룩을 닦아내어 주었다. 가끔은 마마의 저 손길이 좋아서 미니가 일부러 식사를 흘리고 먹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마마의 날이니까. 
미니는 미니 나름 깔끔하게 식사를 마치고서는 부엌 한 켠에 마련된 자실장용 세면대에서 손과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냈다.
오늘은 마마와 함께 밖으로 놀러가기로 약속했다. 예쁘고 귀여운 모습만 보여줘야지. 미니는 거울을 보며 웃었다.


한 사람과 한 마리의 식사가 끝나고, 마마가 뜨겁고 까만물을 마실 때 쯤에 미니는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산책을 나갈 때에는 항상 가방을 챙겼다. 미니는 빨간색 가방을 제일 좋아했다. 자실장 체구에 맞춘 빨간색 에나멜 가방에는 
앙증맞게 작은 노랑 병아리가 그려져있고, 옆에 작게 mini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미니는 글자도, 병아리라는 동물도 몰랐지만
마마가 이 가방에 그려진 노랑노랑과 미니가 닮았다며 웃었던건 기억했다.
모래장난을 할 삽, 분홍색 공단 리본, 간식으로 먹을 콘페이토와 미니가 좋아하는 기타 장난감들.
가방이 불룩 부풀어 오를 정도로 장난감을 가득 집어넣고 있자, 마마가 미니의 방으로 걸어 들어왔다.
자, 미니. 가방 메고 벨트도 차야지. 보통의 자실장보다 작은 미니는 가방을 맬 때 끈이 흘러내리곤 했기에,
마마가 가방끈 사이에 가는 벨트를 둘러 흘러내림을 막아주는 것이었다. 
세칸 정도로 조였었지? 하고 마마가 벨트를 조이자, 미니는 턱 차오르는 숨에 테치테치 거리며 마마의 손을 토닥토닥 때렸다.
마마, 답답해요. 숨이 막혀요. 
미니의 의사를 알아차렸는지 마마는 미니를 조이던 벨트를 풀어내곤 헐떡대는 미니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미안, 미안. 요즘 미니가 많이 자랐나 보구나. 이제는 두칸만 잠궈도 되겠어.
헐떡대던 미니는 마마가 말한 '자란다'는 말에 반응해 흥분해 손발을 흔들었다. 
미니에게 있어 자란다는 건 마마처럼 손발씨가 긴긴이 된다는것.
그걸 위해 싫어하는 주황씁쓸도 참고 먹고, 밥도 푸드도 꼭꼭 씹어 먹었다. 마마, 나는 얼른 마마처럼 크게 자라고 싶어요.
빨리 마마처럼 크게크게 자라서 마마랑 같이 자고 싶어요. 항상 마마와 자고 싶어하는 응석쟁이 미니였지만, 
마마는 항상 미니는 작아서 위험하니까 미니가 나중에 크게크게 자라면 같이 자자. 라고 했었다. 
물론 마마는 자실장과 인간이 같이 잤을 때 일어날 사고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저렇게 달랜 것이겠지만. 
미니는 그저 자란다=마마와 함께 잘 수 있다라고만 이해했다. 
마마, 어제보다 더 커진거 같지 않아요? 라며 발을 쭈욱 뻗어 키를 높여보려는
미니의 재롱에 마마는 허허 웃으며 미니, 이제 그만하고 나가야지. 라고 말했다. 이제 미니가 기대하던 바깥 산책시간이다. 
한 사람과 한 마리는 현관문을 걸어 나섰다.



미니와 마마가 나선 공원은 애호파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었다.
원래는 들실장들이 점령하고 있었던 공원이지만, 
애호파들과 일부 구제업자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구제업자들이 들실장들을 구제하고,
일부 남은 그나마 말을 잘 들어먹는 개념실장들을 일정 수 이상 늘어나지 않게 관리하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는 경비사무소가 있어 혹시나 모를 학대파들을 감시하고, 
들실장들이 바깥에 나가 주택가에 민폐를 끼치지 않게 관리하는 곳.
사육실장을 목줄을 하지 않고서도 마음대로 풀어놓고도 안심할 수 있는, 마치 애호파들을 위한 낙원 같은 공원이었다.

미니는 간만에 나온 바깥에 신나 테치테치 거리며 모래밭으로 뛰어갔다. 
언제나 마마바라기였던 미니지만, 자실장 특유의 호기심은 이길 수 없는 모양이었다.
미니의 마마는 미니가 모래밭에서 노는걸 확인한 이후에, 큰 나무 그늘 아래의 벤치에 앉아 같은 애호파인 A씨와 대화를 시작했다. 
마마에게도 이 공원은 미니가 뭘 하건 안심하고 눈을 뗄 수 있는 공원이었기에, 마마는 미니에게서 잠시 관심을 거두고서는 가볍게 날씨 이야기를 이어갔다.


미니는 언제봐도 작고 귀엽네요.
A씨는 항상 미니에 대한 칭찬으로 말을 시작하곤 했다.

아뇨, A씨네 에메랄드도 얼마나 귀여운데요. 오늘은 에메랄드는 데리고 나오지 않으셨나봐요?

그러고보니 늘 데리고 나오던 에메랄드가 보이지 않는다. 미니의 마마는 그 화제에 대해 언급하며 A씨의 얼굴을 살핀다. 

아, 저희 에메랄드는 가벼운 감기기운이 있어서요. 애아빠가 데리고 병원에 가서 저는 잠시 미니쨩이나 구경할까 하고 왔답니다.
그러고보니 그 이야기는 들으셨나요?

무슨 이야기요?

B씨네 초롱이 말이에요, 성장이 빠르다곤 생각했지만 벌써 성체실장이 되어서 새끼들을 낳았지 뭐에요.

세상에!

저번에 B씨가 초대해주셔셔 보고 왔는데, 역시 자실장들은 귀엽더라구요. 아, 물론 미니도 귀엽지만 말이에요.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자실장이라...저도 보고 싶네요. 요즘 우리 미니는 성장기인 모양이에요. 
오늘 자실장용 벨트를 하는데 좀 꽉 끼는게 조만간 크게 자랄 모양이에요. 

어머, 미니는 성장이 느린 거 같더니. 꼭 그런것만도 아닌 모양이네요.

아뇨. 저는 작고 귀여운게 좋아서...저대로 크지 않아줬으면 좋을텐데. 

미니의 마마는 가볍게 입맛을 다시며 모래장난을 하고 있는 미니를 바라본다. 
그 눈빛은 미니를 따뜻하게 바라보던 아까의 눈빛과 달리 어딘가 차가웠다. 마치 물건을 쳐다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미니는 모래 성을 만들고 있었다. 작은 손으로 뭉친 흙덩어리 위에 집에서 가져온 리본을 달았다. 
여기는 마마와 미니의 성. 여기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마마와 함께 놀아야지. 미니의 행복한 상상은 미니의 위로 드리워지는
작은 그림자에 의해 깨졌다. 
관리가 되긴 했지만 약간 낡은 녹색 실장옷을 입고 있는 자실장이었다.
아마도 미니의 예쁜 옷과 장난감에 이끌려 온 것이리라. 지금도 미니의 눈치를 살살보는 모습이 미니와 같이 놀고 싶은 모양이었다.
지속적인 구제로 인해 이 공원에는 사육실장에게 적대적인 실장석은 전부 걸러내졌다. 지금 미니의 눈치를 보는 자실장도 그저 
새로운 놀잇거리에 흥미를 느끼고 온 것 일뿐. 미니에게 딱히 위협을 가하려는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니는 다른 실장석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자신도 실장석인데, 오히려 같은 실장석들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집 안에서 너무 오냐오냐 자라서 그런걸까? 미니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자실장을 보고는 겁에 질려 장난감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곧바로 울며 마마를 부르며 뛰어가기 시작했다. 

한창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미니의 마마는 바짓단에 느껴지는 묵직한 감촉에 시선을 내렸다.
분명 모래장난에 열심이던 미니였을텐데, 미니는 자신의 바짓단에 머리를 묻고 테치테치하고 울고 있었다.
의아한 머리를 들어 미니가 놀던 모래밭을 돌아보자, 거기에는 미니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들실장이 있었다.
아하, 저 들실장 때문에 미니가 겁을 먹었구나. 미니의 마마도 다른 실장석에 대한 두려움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아침 일찍 다른 실장석이 나오지 않을 때에 공원에 나온건데. 아무래도 자신의 배려는 큰 의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미니야, 무서워 하면 안돼지. 쟤는 나쁜 애가 아니라 미니 친구에요. 미니 친구.
아니에요 마마, 나는 저런 무서운건 몰라요. 미니는 무서워요. 혼내주세요. 
몇 번을 달래도 울기만 하는 미니에게 포기했는지, 미니의 마마는 A씨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미니를 안아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밖에 있어도 의미는 없다. 빨리 집에 돌아가야지.

그럼 저 먼저 들어가볼게요. 다음에 뵈요.

네, 생각있으시다면 B씨에게 연락해둘게요.

네네, 그럼 부탁드려요.

미니의 마마는 미니의 가방과 훌쩍거리는 미니를 안아들곤 집으로 돌아갔다.




아까 울던것은 잊어버린지 오래인지, 미니는 집에 돌아오자 마자 블럭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녹색의 원기둥을 세우고, 노랗고 긴 블럭을 위에 올린 뒤에, 마지막으로 새빨갛고 뾰족한 블럭을 맨 위에. 
어린아이라도 만들 수 있는 간단한 구조의 블럭성이었지만 실장석의 섬세하지 않은 손으로는 조금 무리였을까.
몇 번을 쌓고 무너트리고를 반복하다 끝내 울음을 터트리는 미니를 보다못한 마마가 미니의 손에서 블럭을 빼앗아 들어 가지런하게 세웠다.
자, 미니. 이러면 완성이지? 이제 뚝 그치자. 
마마, 마마 대단해요. 미니는 울었다는게 거짓말처럼 뚝 울음을 그치고 방긋거리며 블럭성 주위를 춤추며 돌기 시작했다.
마마는 정말 대단하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도 쉽게 해낸다. 마마는 뭐든지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마마의 아이다.
자신의 그런 마마의 아이라는게 자랑스러워진 미니는 가슴을 앞으로 불룩 내밀고는 테에, 하며 헛기침을 몇 번 내쉰다.

그런 미니를 내려다보던 마마는 시계를 흘끗 보더니 미니를 안아든다.
자, 이제 미니. 낮잠 시간이야.
싫어요. 좀 더 놀고 싶어요. 아직 잠이 안 와요.
푹 자지 않으면 착한 아이가 아니에요. 자 방으로 가자. 방으로.

아직 신나는 놀이가 많이 남았는데, 입을 내밀던 미니는 조금 칭얼거리더니 마마의 품에 안겨 반항없이 침대에 눕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조금 피곤한 것도 사실이었다. 마마의 날이라 들뜬 것이 졸음을 내쫓아 줬을 뿐.
베개를 바로 하고 이불을 목까지 덮어준 마마는 미니의 손을 토닥이며 자장가를 불러줬다.
미니가 좋아하는 노래. 비록 내용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미니는 마마의 목소리를 좋아했다.
마마가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는 것이 좋았다. 칭얼거리던 미니의 목소리가 이윽고 새근거리는 숨소리로 바뀌자.
미니의 마마는 토닥거리던 손을 놓고 일어서 거실로 향했다. 미니는 귀여웠다. 하지만.
미니의 마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미니의 세계는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기다리는 초록이 (청십자실장)

 

초록아, 이제 그만하고 방에서 나와. 밥 먹어야지.

테에...생각없는 테치. 와타치는 됐으니 닝겐상 먼저 밥 드시는 테치.

초록이를 향해 건네지는 철수의 목소리에는 옅은 한숨이 어려있었다. 
초록이가 밥을 먹지 않은지 벌써 5일이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록이라고 생각 없이 이름이나 붙여줬으면서, 사이는 정말 좋았었구나...

철수의 동생, 철우는 정이 많은 녀석이었다. 퇴근 길에 우연히 눈에 띈 엄지 실장 한 마리조차 그냥 넘기지 못할 만큼.
폭우가 쏟아지던 날 흠뻑 젖은 채로 작은 엄지실장 한 마리를 껴안고 왔을 땐 어찌나 놀랐던지.
나도 나름 초록이를 신경써줬다고 생각했는데, 초록이에게는 주인은 철우 한 명인 뿐인가보구나.

그렇지만 초록아...철우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고.




철우가 사고로 죽은지는 벌써 일주일 째였다. 
사인은 교통사고. 야근을 끝내고 새벽에 졸면서 횡단보도를 걷던 철우를 운전자가 미처 보지 못하고 치어버린 사고였다.
철우가 죽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에는 자신조차 어안이 벙벙했으니까.
형제라고 해도 보통은 데면데면한 사이다. 그렇지만 혈육의 죽음에는 눈물이 나왔다. 
출근하기 싫다며 잠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던 녀석의 얼굴에 베개를 던졌던게 바로 어제 일인데.

빈소에서 상주 노릇을 하던 철수가 이틀밤을 새고 돌아온 푸석한 얼굴로 집에 돌아왔을 때,
초록이가 테치-,테치-, 거리며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주인님은 언제 돌아오는 테치? 요즘은 통 보이지 않으시는 테치이...또 출장인 테츄카?
라고 말했을 때 저도 모르게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철우는 이미 죽었는데.



철수의 심각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평소에는 철수에게 잘 다가오지도 않던 초록이는 콘페이토를 얻어낼 때나 보여주던
실실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철수에게 말을 걸었다.
닝겐상 너무 심각한테치. 와타치가 뭔가 잘못한 테치? 
주인님이 언제나 바쁜건 알고 있는 테츄우...그래도 언제 돌아오시는지 소식정도는 알고 싶은 테치. 
닝겐상은 알고 계시지 않은 테치? 주인님은 언제 돌아오는 테치?


...와..

테츄우?

...돌아와.

닝겐상? 잘 안 들리는 테치.

철우 죽었어. 이제 안 돌아와.

테텟...닝겐상 농담도 심한 테치. 평소에 많이 싸우더라도 그런 말은 하는게 아닌 테치.

네 주인.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고.

....


초록이가 철우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까지는 이틀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그 사실을 왜곡한다고 하던가. 실장석에게는 흔히 행복회로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이틀 정도는 오히려 평소보다 식욕도 왕성해서 실장석이란 녀석은 원래 은혜도 모르는 녀석이구나. 하고 저도 모르게 체념했을 정도였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철우가 없는 빈 방을 쳐다보던 초록이는 어느 순간 밥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그 때 깨달았다. 

아, 드디어 초록이가 철우가 죽은 걸 알았구나.
철우가, 정말 죽었구나.


자신조차 철우의 죽음을 곧바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초록이에게는 같은 사람을 잃은 것에 대한 약간의 동질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자신과 초록이의 안에 동그랗게 뚫린 구멍 하나. 그 구멍의 이름은 철우였다.








초록이라는 이름을 받기 전까지의 엄지 시절의 기억은 드문드문 끊겨있었다.
상냥한 마마는 언제부터인가 돌아오지 않았다. 장녀 오네차는 마마를 찾겠다며 나가버렸다.
병약한 차녀 오네차는 어느 날 아침 차갑게 식어있었다. 
삼녀 오네차는 갑자기 사라져 공원 한 가운데서 찢겨진 고깃덩어리로 발견됐다.
우지챠는 며칠 밥을 먹지 못하자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늘 북적이던 골판지 상자가 텅 비어버리기 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행복은 언제나 포만감처럼 금방 꺼져버린다. 그것은 초록이, 아니 초록이라는 이름을 받기 전의 작은 엄지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엄지 실장이 골판지 집을 나서기로 마음 먹은건 차녀 오네차가 죽어버린 후 딱 삼 일이 지난 이후였다.
마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장녀 오네차도, 차녀 오네차도, 와타시의 자매들은 모두 죽어버렸다.
하늘이 쏟아져 내리는 물방울들이 마치 엄지 실장의 마음을 대변해 주듯이 토독, 토독하며 적막이 가득한 골판지 집 귀퉁이를 쓸어내렸다. 친실장이 돌보지 않은 골판지집은 어느새 군데군데 바람과 빗물이 새어, 사실상 바깥에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밖에라도 나가보는 거다. 엄지 실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철우, 그러니까 지금의 주인님을 만난건 굉장한 우연에 가까웠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는 자실장은 물론 성체실장에게도 꽤나 큰 체력소모를 요구한다. 
인간에게도 세찬 빗속을 걸어가는 건 힘든 일이다.
하물며 그 대상이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며칠을 굶고 굶어 체력조차 떨어진 엄지실장이라면 어떨까.


실장화에 찬 물이 차박차박 소리를 내며 피부를 때리고, 바닥에 튕겨져가 작은 물궤적을 그렸다. 
머리카락은 이미 물에 젖은 걸레꼴이 되어 옷에 달라붙은 지 오래였다. 
보온을 해야 할 옷은 빗물에 푹 절여져 오히려 체온을 뺏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갈 곳은 없었다. 그저 걸어갈 뿐. 엄지 실장은 닝겐도, 실장석도 없는 공원을 걷고 또 걸었다.
그저 앞으로 걸어갔다. 마치 걷고 걸으면 도착할 장소라도 있는 것 마냥. 마마와 함께 했던 산책로도, 
자매들과 몰래 빠져나와서 놀았던 장소도, 마마가 와타치타치를 낳았다고 들은 곳들도. 빗물과 함께 차박차박 걸어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빨갛고 네모난 상자가 엄지 실장에 눈에 띄었다.
저 곳은 예전에 마마가 아마아마가 나온다고 한 상자였다. 
닝겐상들은 저기에 아마아마를 저장해두고 동그라미와 아마아마를 교환해 간다고 들었다.
곧 죽을 실생이라면, 최소한 마지막엔 아마아마를 먹고 싶었다. 엄지 실장은 홀린듯 비척거리며 빨갛고 네모난 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공원에 설치된 자판기에는 빛바랜 차광막이 드리워져있었다. 옆에는 관리가 되다만 나무 벤치 하나.
방치되다시피한 자판기에는 부주의한 사람들이 던져놓고 간 음료캔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동그랗고 기다란 아마아마. 엄지실장은 두건에 맺힌 빗물을 토독하고 털어내고 음료캔 앞에 쭈그려 앉았다.
자그만 손을 들어 음료캔을 들어보려 해도, 어차피 엄지실장. 캔을 기울일 힘은 커녕 끌어당길 힘조차 모자랐다.
엄지실장은 제자리에 주저앉아 천장을 올려다봤다. 차광막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마치 엄지에게 말을 거는 듯 했다.
마마도, 오네챠들도 모두 갔단다. 이제 엄지 네 차례야. 엄지실장은 웃었다. 웃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왁, 씨발 깜짝이야!


갑작스러운 소리에 엄지실장은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엄지실장의 앞에는, 엄지실장처럼 빗속을 지나왔는지 흠뻑 물에 젖는 커다란 닝겐상이 서 있었다.
마마가 닝겐상은 위험하다고 했는 테치. 그렇지만 이제 걸어갈 힘도, 도망갈 힘도 없는 테치. 체념한 엄지실장의 앞에
의아한 닝겐상의 시선이 다다랐다. 

뭐야, 이 빗속에도 참피가 다 다니네? 얜 뭐야? 되게 쪼그맣네...앞주머니에도 들어가겠다.

죽이건 살리건 마음대로 해요. 어차피 와타치는 여기서 끝이니까. 포기하다 못해 흙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린 엄지 실장의 목덜미를
닝겐상이 휙 들어올려 시선을 마주친다. 엄지실장은 눈을 감을 힘도 없이 닝겐상과 시선을 마주한다.
그 시선에 이상하게 장난기가 어려있는 것을. 엄지실장은 눈치채지 못했다.

일단 뭐라도 좀 마실까. 

닝겐상은 주머니에서 동그랗고 반짝반짝한 것을 꺼내어 네모난 상자안에 넣었다. 
뭔가를 누르는 듯 하더니 이윽고 쾅. 하는 작은 벼락소리와 함께
닝겐상이 네모난 상자안에서 길고 동그란것을 꺼냈다. 저것이 닝겐상들의 아마아마.
엄지 실장의 시선은 자연스레 갈망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와타치도 저 아마아마를 먹고 싶었는데.
엄지 실장의 시선을 눈치챘을까. 닝겐상은 길고 동그란것을 바라보다 엄지실장에게 내밀었다.

아..어, 너도 마실래?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엄지실장은 테에...? 하는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마주했다. 와타치에게 아마아마를 주는 테치?

엄지실장을 바라보던 닝겐상은 엄지실장의 몸을 들어 동그랗고 긴 아마아마를 엄지실장에게 안겨주었다. 
순간, 차가운 비와 다른 따뜻함이 엄지의 몸에 확 퍼진다. 
이게 뭐인 테치? 따뜻한 테치이...뭔가 안심 되는 테치.
엄지의 풀어진 표정을 봤는지, 닝겐상은 아마아마를 뺏어 엄지의 입에 갖다댄다.
꿀꺽하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아마아마. 그것은 엄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보는 극상의 단맛이었다.
한참을 아마아마에 취해 음료캔을 반쯤 비운 엄지가 문득 시선을 들어 닝겐과 얼굴을 마주했다.

왜 와타치에게 잘 해주는 테츄카? 엄지실장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한 것을 보자
닝겐상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엄지는 아직도 그 웃음을, 빗속의 그 시간을 잊지 못했다. 



너, 우리 집 안 올래?









상냥한 주인님, 와타치를 구해주신 주인님.
이제 초록이는 주인님께 필요없게 된 테치?
초록이는 언제나 착한 아이로 있었던 테츄. 이제 떼쓰지 않는 테치. 같이 놀아주지 않아도 되는 테치.
초록이에게 있어 철우는 세계의 전부였다. 그런 세계를 한 순간에 잃어버린 초록이에게, 
철수가 말하는 잔혹한 현실 따위는 초록이에게 닿지 않고 있었다. 사실은 초록이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예전의 마마처럼, 장녀 오네차처럼, 차녀 오네차처럼....삼녀 오네차처럼....우지챠처럼...
주인님은 돌아오지 않는다. 주인님은 돌아오지 않는다. 
수 많은 친지의 죽음을 본 엄지 실장으로서는 피부에 와닿게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록이는 믿고 싶었다. 차라리 와타시가 나쁜 아이라서 주인님이 오지 않는 거라고.
그렇다면 주인님은 이 세상 어디엔가 살아있는 셈이니까. 초록이는 생각했다.

별님, 달님.
와타치의 소원을 들어주는 테치.
이 공은 와타치가 제일 아끼는 공인 테치. 보물을 받고 주인님을 돌려주는 테치.
와타치의 푸드도 먹고 싶다면 얼마든지 먹는 테치. 혹시 와타치의 머리카락을 원한다면 눈물이 찔끔 나더라도 참을 수 있는 테치.
아야아야한 일을 하더라도 참을 수 있는 테치. 그러니까 제발, 제발 주인님을 돌려주는 테챠아!!

초록이는 지금은 주인이 사라진 텅 빈 방안에서 소리없이 절규했다.




철수가 초록이에게 갖는 감정은 가벼운 책임감 같은 것이었다. 애완동물이라고는 해도, 어차피 실장석.
그것도 죽은 동생의 유품이었다.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죽지 않게 관리는 해주고 있지만, 본인보다는 마음이 덜 가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는 애정. 그 정도가 철수가 초록이에게 느끼는 마음이었다.

초록이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한창 먹어야 할 성장기의 엄지 실장이었다. 거기에 본디 식탐도 많은 녀석이었다.
어쩌다 철우가 출장을 나가게 되어 자신이 먹이를 챙겨줘야 했을 때, 
한 번 먹이를 잊은 적이 있을 땐 대성통곡을 하며 온 집안을 시끄럽게 했던 초록이다.
예전 들실장 때 심하게 굶은 탓인지 먹이에 대해서는 다른 실장석보다 큰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다.
이렇게 며칠 동안이나 굶는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몇 번을 억지로 먹여볼까 했는데도 금새 먹은 것을 모두 게워내는 초록이 덕에 이제 될 대로 되라며, 방치한게 5일째였다. 
먹는 녀석이 의욕이 있어야 할텐데. 입을 뜯고 억지로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초록이가 좋아하는 콘페이토를 흔드는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콘페이토에 ㅋ만 들어도 달려와서 다리를 토닥토닥 두드렸을 텐데.
오늘도 초록이에게 밥 먹이기를 실패한 철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초록이에게만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도 일이 있고, 일상생활이 있는데. 자신의 애완동물도 아닌 녀석에게 계속해서 휴가를 쓸 수도 없으니까.





초록아, 나 나간다. 오늘은 제발 밥 좀 먹고. 

다녀오시는 테치.

초록이는 앉아있을 기운도 없는지 벽에 기대어 앉은 채 고개만 까딱여 기운없는 인사소리를 냈다. 
차라리 내가 보지 않을 때 뭐라도 훔쳐먹었으면 좋겠는데. 
출근철에 몸을 끼워넣은 철수는 이윽고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초록이의 기억을 흘려냈다.


퇴근길, 왠지 기운이 없어 평소와는 다른 루트로 퇴근길을 정했다.
평소라면 질색했을 북적거리는 상점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이것저것 떠들어대는 사람들 사이에 자신의 상념도 날아가 버리길 바라며 
걷던 철수의 눈에 한 간판이 눈에 띄었다.

- 해피 실장병원


철수는 홀린듯 간판에 그려진 웃고있는 실장석 그림을 보더니, 결심한 듯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시간은 꽤 늦은 저녁이라, 건물 안에 있는 건 접수처의 여성과 자신 혼자. 
그것도 사람이 없어 조금 졸던 참인지 잠기운이 어린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여성의 얼굴에 철수는 어설픈 미소를 건넸다.

아....어서오세요. 실장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아, 저 제가 여기 처음이라.

어머, 그런데 실장석은 데려오지 않으신건가요?

아...그게 사실 사정이 있어서.


머뭇거리던 철수는 이윽고 철우와 초록이의 이야기를 접수처의 여성에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기에 진솔하게 이야기가 나오는지 몰랐다.
네네,하며 가볍게 맞장구를 치며 철수의 이야기를 듣던 여성은 눈을 살짝 찡그리며 철수에게 이야기했다.

주인에 대한 애정이 깊은 개체네요. 실장석 중에서는 드문데 아예 없지는 않아요.

아. 그럼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나요? 역시 억지로 먹여야하나요?

원래 이런건 원장님이 잘 아시는데. 지금 원장님도 퇴근하셔셔요.
뭔가 먹이긴 해야되는데 억지로 먹이는 건 좋지 않아요. 억지로 먹이다가 음식물이 목구멍을 막아 질식하는 경우도 있어서.
왜, 사람도 못 먹으면 링거액 같은걸 달잖아요? 실장도 같아요. 밥을 못 먹으면 영양제라도 주는게 좋죠.


여성은 철수에게 이런저런 상품 설명을 늘어놓았다. 철수는 대강 여성이 이게 괜찮아요. 라고 권해준 것을 적당히 골라 구입했다.
여성은 감수성이 풍부한지, 생판 남일 초록이의 걱정을 하며, 혹 식욕이 생긴다면 이것도 먹여보세요 라며. 샘플용 작은 콘페이토도 한 봉지 넣어주었다.


안녕히 가세요. 시간 되시면 꼭 초록이도 데려오시구요!  

초록색 봉투에 그려진 실장석의 얼굴이 좌우로 흔들린다. 사람이 빠진 거리를 걷는 철수의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영양제라, 철우 녀석이라면 초록이가 한끼만 굶어도 당장에 초록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갈 녀석이었지.
둘은 이상하게 웃기는 부분에서 잘 맞는 부분이 있어서, 
가끔은 둘이 실장석&인간 콤비의 개그 프로그램이 있다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그렇게 둘의 시시덕거리는 장난에 웃었던 과거를 떠올렸다. 옛날엔 정말 그랬었는데.



걸음에 따라 켜지는 센서등에 깊은 침묵이 철수의 등을 떠밀었다.
이상하게 집으로 걸음을 옮길 수록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뚜벅,뚜벅하는 발걸음 소리가 차디찬 돌바닥에 울려퍼지고. 
그에 비례해 철수의 심장은 격렬하게 뛰었다. 아냐, 설마. 오늘 아침도 기운이 없긴 했지만 아직까진 괜찮겠지.
삐빅 하는 도어락의 오픈 소리에, 철수는 문을 열고 싶은 마음과 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같이 잡아 문고리를 잡아 밀었다.
철컥. 삐비빅. 


집 안은 적막했다. 싱크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와, 거실에 걸린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철수의 신경을 긁어냈다.
마치 살을 파내고 뼈를 긁어내는 듯한 기분나쁜 소음이었다. 철수는 옷도 제대로 벗지 않은 채 구두만 대충 벗어낸 뒤 
거실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아침에 초록이가 기대 있었던게 저쪽 쯔음 이었는데. 자리에는 먼지 한 톨 없었다.
또 철우 방에 가서 누워있을 수도 있으니까. 철수는 짐짓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려 애쓰며 철우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초록아? 


주인 없는 방의 불은 꺼져있었다. 초록이도 어두운 방안에서 웅크려 앉아있곤 했기에, 나갈 때도 딱히 불은 켜두지 않은 채였다.
더듬어 스위치를 올리자 침대위에 웅크려 누운 초록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무언가를 껴안은듯 뒤돌아 누운 초록이의 모습.
괜히 걱정한 걸까. 어쨌거나 영양제는 놔줘야 하니까. 조심스레 초록이의 어깨를 건드리던 철수는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라며 
초록이를 뒤집어 눕혔다. 떨리는 손으로 초록이의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댄 철수는 이윽고 어깨를 떨어트리며 무릎을 꿇었다.
손에 쥔 실장 병원의 봉투가 아무렇게나 나뒹굴며 노랑빛 영양제가 바닥에 흩어졌다.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은 초록이의 얼굴은, 웃고 있는 자실장 그림처럼 너무나 해맑았다.
안고 있는 사진의 철우의 웃는 얼굴을 닮은 것 처럼. 

















황혼녘



어미가 죽고나서, 어리고 연약한 자식들만이 외로이 남겨졌다.

식어버린 몸뚱이에 말을 걸어보아도 돌아올 대답은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엔 시간이 꽤 걸렸다.

마지막까지 시체에 매달리며 울부짖던 응석꾸러기 4녀는 자매의 거친 제지가 있은 후에야 겨우 어미의 옷자락에서 손을 뗐다.

묻어줄 땅을 파는 일도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조그만 혀로 굳어있는 피부를 닦아낸 뒤 , 골판지 하우스 구석에 방치해둘 뿐이었다.

허나, 자식들은 그게 죽은 어미에 대한 최고의 예우라고 생각한걸까, 그런 처사에 토다는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자식들을 먹여줄 어미가 사라졌기에, 자식들은 그저 비축해둔 보존식을 먹으며 버틸 수 밖에 없었다, 버틴 끝에 희망이 오리라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는 않았고, 단순히 본능에 따른 행동이었다. 떫은 맛을 내는 벌레 사체, 수풀 열매조각, 가끔씩 애호파가 뿌리고

가던 실장푸드를 나눈 일부분. 한창 먹어야 성장하는 자실장과 엄지실장에겐 턱없이 모자라는 빈약한 끼니이다. 자연스레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줄기만 하고 늘 일이 없는 식량을 최대한 아끼려면 그 방법 뿐인 것을...

허나 분배의 차별이 없는것은 아니었다. 먹이의 배분을 맡는 장녀는 스스로 가장 많은 먹이를 가졌고 그 뒤로 차녀, 삼녀, 사녀...


십녀에 들어서 엄지들에겐 그 작은 엄지의 손으로조차도 감싸지는 적은 먹이만을 받았고 구더기에겐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불만의 목소리는 용납되지 않았다. 장녀의 매서운 눈초리와 핏줄 잡힌 주먹뿐만이 아니더라도, 그냥 무언가 트집 잡을만한 거리를 기다리는 듯한 이 혈기어린 분위기 자체가, 불만을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머릿수가 11에 달하는 새끼들이 원을 둘러 앉아 조용히 식사를 한다. 실장석의 식사란 게걸스럽고 소란스럽고 불결한 것이지만

이 일가의 모습은 마치 장례식장에서 조용히 육개장을 뜨는 조문객처럼 엄숙하다. 

부분의 먹이를 조각내어 조금씩 씹는다, 아주 천천히, 그럼에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어미가 살아있었을때도 그다지 배부르게 먹어본 기억은 없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도 빈곤하다.

가장 먼저 끼니를 마친 엄지 십일녀가 빈약한 찌꺼기가 묻은 손을 핥으며 언니들을 바라보고 있다. 십녀는 매몰되어버린 운치굴을 뭔가 아쉽다는듯이 바라보고 있다.

점점 식사를 마친 자매들의 시선을 느끼게 된 웃언니 실장들은, 허겁지겁 먹이를 먹어치웠다. 마치 빼앗기기라도 할것처럼.

구더기는 십이녀는 꼬르륵거리는 배를 차가운 바닥에 댄 채로 배고프다는 울음소리를 높였다. 허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어미가 죽은 뒤로 막내로서 예쁨받던 구더기는 무관심, 냉대를 받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구더기로선 모든게 이해되지 않았다.

자매들은 자연스레 똥을 먹기 시작했다. 거부감은 없었다, 원래부터 해오던 일이기에. 

먹을게 생겼다고 생각한 구더기의 기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얼마 안 가 골판지 하우스 내에선 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미의 죽음으로 불투명해진 미래와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먹이통의 

무정함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자매들 사이에서 신경전이 일어난 것이다. 친실장이 살아있을때엔 모두 평화롭게 중재되었을만한 일이, 다혈질이고 미숙한 장녀에게 일가의 통제권이 쥐어지자 일어난 일이었다. 

잠버릇이 고약하다는 이유, 식사할때 쩝쩝거리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 하품이 거슬린다는 이유, 괜히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으며, 언성을 높이고, 아랫동생일 경우엔 구타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웃언니들의 일방적인 화풀이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여동생들은 자신보다 아래인 자매에게 화풀이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장녀는 차녀와 삼녀에게 손찌검을 하고, 차녀와 삼녀는 사녀, 오녀, 육녀에게 억울함을 폭행으로 누그러뜨린다. 가장 마지막 피해자는

멍자국을 가진, 눈물과 달아오른 얼굴을 한 엄지들에게 걷어차이는 구더기, 애정과 사랑, 프니프니는 고사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

샌드백이 되어야 하는 구더기는 그저 몸을 둥글게 말며 서럽게 울부짖을 수 밖에 없었다. 






골판지 상자 안에서 특별히 할 일은 없었으므로, 그저 똥을 집어먹거나 멍때리며 초점없는 응시를 하는 것이 자매들의 일상이었다.

대화라 할만한 것은 없었다. 배고프다던지, 부패가 시작된 어미의 시체를 바라보며 친실장을 그리워하는 말만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왔을뿐.

가끔 행복회로가 돌아가 기분이 좀 풀린 엄지들이 구더기를 프니프니 해주는 것 외엔, 골판지 하우스 안에서의 움직임이라곤 없었다.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구더기가 프니프니의 쾌감으로 교성을 높일때면, 숨죽이고 있던 자매들의 신경을 거슬려 무자비한 응징을 당했다. 

복부를 가격당하고, 등에 발길질을 당하고, 꼬리를 짓밟히고, 구더기 관리를 똑바로 안하냐는 트집으로 엄지들도 폭행당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점점 줄어드는 먹이를 배분받고 있던 엄지들은 장녀로부터 이제부터 먹이를 주지 않겠다는 통첩을 들었다.

각자의 똥조차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판국이기에, 결국 엄지들은 사형을 선고받은 셈이었다.

미친듯이 울부짖고 아첨하고, 결국에는 위협하고 먹이통에 달려들었지만, 끝은 장녀의 무자비한 폭행이 몇분동안이나 이어진 끝에, 벽에 날아가 쳐박히는 것이었다.

여윈 채로 숨만 쉬고 있는 멍투성이 구더기는 이제 몸도 말지 않은 채로 그 광경을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엄지들은 겨우 몸을 추스른 뒤, 골판지 구석으로 피신했다. 자신들에게 허락받은 유일한 공간이라고는 구멍이 숭숭 뚫려 

하우스 안에서 가장 모진 바람이 들어오는 그 곳이 유일했다. 악이 가득 찬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를 간다.

식사중인 언니 자실장들을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그리고 번갈아 파리가 꼬인 채로 악취를 내뿜고 있는 어미의 유해를 원망스럽게 째려보았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구더기는 결국 아사했다. 소중히 하던 포대기도 벗어 그걸 오물오물 씹어먹고 운치로 물든 바닥을 비참하게 핥아먹다 검은 눈물을 흘린채 무관심과 절망 속에서 죽었다.

자연의 구더기치고는 대단히 오래 생존한 편이었다. 무엇이 그 연약한 저실장에게 깃들었길래 그리 오래 살아남았을까.

자매들은 한때의 사랑스러운 막내였던 구더기를 친실장의 시체 옆에 가져다 눕혔다. 애석하게도 살아있었을때의 냉혹한 무관심이 

죽고나서야 겨우 조금의 예우를 받은 채로 구더기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 구더기의 영혼은 성불하지 못하고 영원히 구천을 떠돌 것이리라..

구더기가 죽고나서, 골판지 상자 안의 분위기는 더욱 흉흉해졌다. 어미에 이어 자매들중에서도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은 누구일지 알 수 없다, 

...

아니,

아마 자매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구더기의 죽음에 하얗게 질리고, 먹이의 배분이 끊긴 엄지들은 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허나 엄지가 생각해내는 방도라 해봐야 거기서 거기일뿐이다.

십녀 엄지는 자매들에게 끝없이 아첨하고, 빌붙었다. 귀뚜라미의 다리 한 짝이라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어리광을 부리고, 애교를 떨었다.

얻는 것은 없었다.

십일녀 엄지는 홀연히 사라졌다. 잠깐의 환기를 위해 열어둔 뒷문을 다시 닫을때 깨닫고 둘러보면, 십일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

십녀는 구더기처럼 조용히 숨지길 원하지 않았다. 자매들의 신경질과 폭행 속에서도 아첨을 멈추지 않았다. 돌아오는 것은 주먹과 발길질 뿐임에도, 배가 고프다며 마구 아첨을 해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 꼴을 두고보지 못한 장녀가 십녀의 면상에 니킥을 먹이는 것을 시발점으로, 분노가 폭발한 자매들이 십녀 엄지를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몸을 웅크리며 필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구해봤지만, 그저 묵묵히 그런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는 자매들과 자신을 린치하는 자매들은 그 요청을 철저히 무시했다.

눈알이 터져나오고 갈비뼈가 부서지고 목을 가격당해 괴로운 기침 이외는 아무것도 낼 수 없게된 후에야 집단구타는 멈췄다.

장녀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엉망이 된 엄지의 머리카락을 쥐고 골판지 구석에 내동댕이쳤다.

십녀 엄지는 다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왔다...






반병신이 된 십녀 엄지는 체온을 나눌 자매가 사라진 후로 처음 맞는 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피가 흥건해있는 십녀 엄지의 자리엔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 기분 나쁘다는 이유에서였다.

먹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자매들끼리의 포식을 우려한 친실장이 일부러 거짓교육으로 동족의 고기를 먹는다면 시름시름 앓다가 끔찍하고 비참하게 죽어간다는 내용을 자식들에게 주입한 끝에, 이 자매들은 동족식을 하고 있는 동족들이 보여도 저 불쌍한 분충은 얼마 안 가 죽을것이라며 혀를 차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렇기에, 먹히지도 않고, 그저 고요히 시체인 채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자비라면 자비였을까?

그나마 친실장의 품에 뉘여진 구더기와는 달리, 십녀 엄지는 그렇게 외로운 구석에서 홀로 썩어갈 것이다.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장녀의 어깨는 조금 가벼워졌다. 먹이가 바닥나, 배분하는 일을 더이상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파랗게 질린채로 비명을 지르고, 방방 뛰고, 울부짖는 여동생들을 바라보며 장녀는 그저 미소지었다.  허탈함과, 편안함이 담겨있는 묘한 미소였다.

...얼마 안 가 마지막 발버둥이라도 쳐 볼 심산인 행동이 시작되었다, 차녀의 선동에 오녀와 육녀, 칠녀, 팔녀가 가세해 자신들을 길러줄 인간, 아니, 최소한 자신들을 책임감 있게 끝까지 키워줄 새 마마를 찾는 여정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딱히 준비할 것은 없었다. 마지막 똥까지 싹싹 긁어먹고, 그나마 조금 있는 물로 목을 축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장녀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나마 자매들중에서 현실감각이 있고 가장 어미로부터 가르침 받은게 많은 

녀석이여서 그랬을까, 자매들을 향한 그 미소엔 바보의 기행을 지켜보는 자의 한심함이 담겨있었다.

얻어맞고, 때리는 관계였던 자매들이 갑작스럽게 이룬 화합은 묘하게도 조화로웠고, 단결되어 보였다. 생존을 위해서일까.

곧 다섯 자매는 하우스 안에 남기로 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허례허식의 인사를 한 뒤, 하우스 밖으로 떠나갔다.

그에 맞춰 장녀는 마지막으로 떠난 팔녀를 배웅한 뒤, 다시 골판지 하우스의 문을 단단히 걸어잠갔다.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서부터 점점 비명소리가 들려오더니, 골판지 하우스로 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자매들을 달래는 장녀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이런 소리가 날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그 비명의 주인공은 자매들이었다. 아마 생각도 없이 다른 성체에게 길러달라고 요구했다가, 자신들을 먹잇감으로 보는 성체실장에게

쫒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염치도 자존심도 없이 다시 하우스로 도망쳐온 것이겠지.

얼마 안 가 문 밖에서는 세 마리 정도의 자매들의 헉헉 거림과 처절하게 문을 열어달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이에 반응한 것은 사녀였다, 자매들의 위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 힘없는 몸을 일으켜 다급하게 문을 향해 달려갔다.

사녀는 응석꾸러기임과 동시에 정이 많았다, 어미가 죽기 전까지 자신의 식사도 양보했을 정도로. 그 정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이었다. 

문의 조잡한 잠금쇠를 풀려던 사녀였으나, 이내 장녀에게 제지당했다. 사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장녀를 올려다보자, 장녀는 고개를 저으며 사녀를 문에서 떼어냈다. 이 문을 열어제낀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리라 생각한 장녀의 결단이었다.

장녀에게 비키라고 외치며 잠금쇠를 향해 달려들었으나, 장녀의 완력엔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사녀는 장녀에게 거칠게 끌려가 눈물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문이 열리지 않자 세 자매들의 외침은 점점 다급해져갔다. 그리고 이윽고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정말 엄청난 기세로 비명을 질러대며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기 시작했다.

왜 열어주지 않는 것이냐, 너희의 소중한 자매가 위기다, 빨리 우리들을 구해라, 우리들을 버릴 셈이냐.

절박한 호소는 이내 모멸적인 저주로 변했다. 자신들을 버리기로 한 골판지 상자 안 자매들의 변화를 눈치 챈 모양이다.

죽여버리겠다는 협박도 서슴치 않고, 이대로 죽어버린다 해도 죽어서라도 저주하겠다는 외침을, 결국 사녀와 자매들은 외면했다.

곧, 성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비명소리, 무언가 뜯어먹히는 소리, 기괴하게 꺽꺽대는 자매의 신음이 얼마간 들리더니,

다시 한번 정적이 찾아왔다.

모르는 목소리의 문을 열라는 협박과 함께 몇번인가 문을 강제로 열어젖히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자매들을 잡아먹은 들실장들은 발걸음을 돌렸다.

한바탕의 소동에 겁 많은 여동생들은 가뜩이나 없는 운치의 형편에도 빵콘까지 하며 떨고 있었고, 장녀는 그런 여동생들을 어루 달래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이윽고 진정된 여동생들은 바깥의 자매가 어찌 되었는지 알아채곤 비통한 울음소리를 높였다.

자기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였을까,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혈연의 정 때문이였을까.




있지도 않은 기력을 우는 것에 낭비한 자매들은 지쳐 쓰러졌다. 그런 자매들을 지켜보는 장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장녀는 조금 넓게 찢어져 있는 벽의 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주황의 햇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마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달님이 곧 올라올때 햇님이 발하는 마지막 색깔의 빛이라고 했다.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다.


사람의 말로는 황혼 녘.

황혼 녘마저 끝난다면 햇빛은 완벽하게 사라지고 삼라만상 모든 세상에 짙은 어둠이 깔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황혼이라는 단어는 어떤 일이나 인물의 거의 마지막, 끝만을 남겨둔 우울한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

장녀는 번갈아 바라보았다.

찌꺼기만이 남아있는 먹이 통.

바닥을 보이고 있는 페트병의 물.

문 주변에서 말라가기 시작한 바깥에서 흘러들어온 피.

거의 부패된 친실장과 구더기, 엄지의 시체.

지독하게도 굶주린 배, 여윈 얼굴을 하고 잠들어 있는 자매들.


사라져가고 있는 햇님이 마지막으로 내고 있는 애처로운 햇빛.

이들 모두, 황혼, 경각에 달해있다.







[ 와타치에게 참으로 잘 어울리는 광경이 아닌테치.. ]







장녀는 얼마 안 가 조용히 잠들었다.







장생 2 - 받아들일 줄 모르기에 슬픈 지성에 관하여

 

장생은 자신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해보았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주인이었다.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주인을 위해 번식 또한 포기했다. 그 대가로 실장석이 살아서 바랄 수 없는 안온한 삶을 받았다.
그러나 장생은 알고 있었다. 언젠가 행복의 끝이 찾아 올 것임을.
썩 좋은 삶이었다. 칼날이 배를 파고들기 전에 장생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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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럽게 자신이 학대파라 말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화가 났다. 본인의 사명을 깨달은 마흔 살 이후로 오늘만큼 허망한 날이 없었다.
그 편안히 잠든 얼굴, 약 올리는 듯한 얼굴…

놈의 배를 깠었다. 선연히 빛나는 그것을 집으려는 순간, 위석이 부스러졌다.
손이 닿지 않을 지평선처럼.
뭘 해볼 틈도 없었건만 똥벌레놈은 허락도 없이 절명했다. 합의 없이 슈킹하고 도망간 윤락녀처럼.

그 시체에 분풀이를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은 남자는, 악을 쓰며 책상을 걷어찼다. 정강이에 선명하게 느껴지는 통증에 악악대며 신음하던 남자는, 이내 일어나 자기 몸을 해치는 대신 선풍기를 집어 던졌다. 노란 땀을 질질 흘리며 남자는 숨을 몰아쉬었다.

이 더위 속에 선풍기를 박살냈다는 것을 깨닫자, 천천히 진정이 되었다. 그제서야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 쾅. 선생님, 안에 계십니까. 00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남자는 이를 갈았다. 잡것들이 왜 제집인 양 문을 두드려 대는지,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
금수들의 하인을 자처하는 저급 인간들!

남자는 으르렁거렸다. 
물론, 혹여 누가 들을까 조심스럽고 작은 소리로.

[그놈의 실장 삼권…]



장생은 처음엔 재떨이였다. 주제를 배웠다.
좀 더 자라서는 밥벌레였다. 예의와 검약, 대가 없는 친절의 가치를 배웠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는 청소부였다. 노동과 청결이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배웠다.
그 후엔 아파트 텃밭을 지키는 경비였다. 그 때서야 알 수 있었다.
세상엔 자살하는 종(種)도 존재할 수 있음을, 실장석은 이미 도태되었음을.
장생은 종적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실패가 뻔한 생물에게도 기회를 준 주인의 은혜에 감사했다.


경찰이 604호의 문을 두드린 것은 실장석의 권리 때문이 아니었다.
음침한 이웃의 집에서 들려온 비명에 겁에 질린 주민들의 신고 때문이었다.
한참을 두드려도 답이 없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이 경위는 조금 열린 문을 확 젖히려 했지만 실패했다. 손 끝에 느껴진 저항감의 정체는 현관문에 걸린 구식 걸쇠였다. 이경위의 눈가가 꿈틀했다. 도어락을 쓰지 않는 집이라.
문틈 너머엔 희번덕한 눈만 내민 남자가 있었다. 독한 냄새가 훅 풍겨왔다.
술, 양파, 어쩌면 분변의 내음. 수상하기로는 짝이 없었다.
이 경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계셨네요. 열라고 말씀 드렸는데 안 여세요?]

[내 아무것도 모르오. 아무것도 없소.]

[왜 안 열어요. 안에 뭐있어요?]
[아무것도 없다뇨. 이웃 사람들이 소리를 들었는데. 이 문 여시라구요.]

경찰서 막내가 을러대는 사이, 이 경장은 무력시위처럼 문 틈을 거세게 열어젖히는 시늉을 했다.
집주인이 다급히 문고리를 쥐었다. 집 안에 있는 무언가를 숨기려는 것 처럼.
경장은 보았다. 그 손에 묻은 피를. 경장의 미간이 경련했다.

[…선배님., 저거…]
[선생님, 이 문 안 열어요? 공무집행 방해에요.]

[무시하지 마라, 내 집이라고 말했다. 안된다 했다.]

[집행방해라고 다 고지했어. 부숴.
문에서 나와계세요 선생님.]


피투성이 방, 사방에 흩어진 적녹색 내장. 형편없이 해체된 고기덩이들.
시체를 다룬 방식에는 울분이 가득 담겨있었다.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것을 알아채기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이 경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동행한 막내가 헛구역질을 했지만, 탓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자신도 토하고 싶었으니까.

이 경장은 겁 먹어선 안된다고 되새겼다.
사람의 시체가 아니다. 눈 앞의 사람은 영화 속 개싸이코가 아니라, 소형동물 학대범일 뿐이다.
태연한 척의 일환으로, 이 경장은 일부러 훈계조로 말했다.
[아저씨,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봅시다. 위 아래에 이웃집 있잖아요. 이러시면 안되는거죠. 이웃들 겁먹잖아요.]

쬐죄죄한 남자는 시뻘게진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마치 바지라도 벗고 있는 양, 혹은 자위를 하다 들킨 사람처럼.

그 때, 구경하던 주민들을 물러나게 하던 막내가 그를 불렀다. 탁상 위의 살점 같은것을 가리키며.
[경장님, 이거 보십쇼.]
[왜?]
[뒷목에... 사육실장 바코드 같은게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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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가 되는 과정은 복잡했다.
주인은 장생이 ‘엄밀히 합법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장생은 지금까지처럼 같이 지내기만 하면 안되느냐 물었지만, 주인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만 했었다.
그 땐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입주민 회의에서 열변을 토한 주인 덕에 텃밭 경비로 채용되고 나서, 남의 것을 훔치려는 동족을 수도 없이 상대해보고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동족들은 손에 넣은 것을 너무 쉽게 잃었다. 다른 선택지가 있어도 약탈을 일삼았다.
그토록 약함에도 잔인하고 오만하고 포악했다.

주체성이 없는 것들은 길러지기만 바라며 면전에서 인간에게 투분했다.
주체성 넘치는 것들은 용감하게 인간의 샌들에 이쑤시개를 쑤셔넣었다.
두 부류의 본질은 그 최후만큼이나 닮아있었다. 배울 줄 모르고, 받아들일 줄도 모르는, 스스로를 무지와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오만함과 아집.
동족들은 공생이 가능한 생물이 아니었다. 인간은 물론, 동족들끼리도.
스스로가 곧 한계인, 무엇을 해도 안될 비천하고 멍청한 생명들.

장생은 텃밭을 지켜냈다. 목숨을 걸고 미친 독라들의 머리를 수도 없이 부쉈고, 숨어든 도둑들의 실장취를 추적해 경비에게 알렸다.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썼지만, 주인은 ‘아직 네 존재가 불만인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죽을 것 같이 힘들었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장생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죽 시달렸으면 그렇겠는가, 하고.

주인은 가끔 장생을 관찰하다가 보온재에 보검을 휘두르거나, 빛나는 골판지를 두드렸다.
주인은 그것이 ‘글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주인은 글을 쓰고 또 썼다.
장생의 눈엔 쓸모 있는 일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주인의 생각은 달랐다.
주인은 종종 글은 세상을 바꾼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생이 실장석이기 때문에 주거에 거주해선 안된다는 조례를 바꿀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무척 힘들고, 가능성도 적지만, 항상 시도해볼 가치는 있는 법이라고.

그 말이 장생의 심장을 울렸다. 그래서 장생은 그것을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아아니 말이 심하십니다. 왜 짐승들이 똑똑하고 착하다고 생각합니까?
사람말을 해도 속은 다 분충입니다!
그렇게 선하고 좋은 새끼면, 벌써 실장인으로 우화라도 했겠지!]

분충은 무엇이고 실장인은 무엇인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 경장은 관자놀이를 짚으며 짜증을 냈다.
[아, 알았으니까 진정 좀 합시다, 아저씨.]

일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네임벨에 적힌 연락처의 주인은 한 시간만에 경찰서로 왔다. 그리고 이 경위는 낯설지 않은 얼굴에 놀랐다. 실장석의 주인은 유명 작가라고 했다. 그리고 죽은 실장석은 다름아닌 ‘개정 애완동물조례 1호’ 실장석, 장생이었다.

[와, 저분이 ‘들실장놈’ 쓰신 분이에요?]
[막내야, 들리겠다. 다물자.]

작가는 말했다. 애초에 도리가 없었다는 것은 본인도 알고 있었다고. 비를 맞아도 멍드는 몸뚱아리 때문에 천수를 누리기 힘든 슬픈 생물.
그 싹싹함에 정이 들어 키우기로 작정한 날부터, 본인도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그 결말이 이런 식이라니.



벌금형밖에 방법이 없다는 말에, 살해당한 실장석의 주인은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러나 실장석을 죽인 남자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었다.
그는 부당하다고 길길히 날뛰었다. 아무도 맞지 않을 주먹을 휘두르며.

[참피는 박멸을 해야 해! 지능이 있는 생물이 사람에 맞서면 얼마나 위험한 지 알아?
역사적으로 근본 잡힌 사람이 이래서 필요한 거야! 훈련을 받은 실장석은…]

그는 한참동안 떠들다가, 한국 말로는 논리적으로 말하기 힘들었는지 이내 외국어로 또 한참 무어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골이 아파오기 시작한 이 경장은 한쪽 귀를 막고, 막내에게 물었다.
[뭐라는거야?]
[변호사 불러달랍니다.]

작가는 그 난동을 담담히 들어 넘겼다. 그리고 자칭 ‘학대파’가 지쳐 입을 다물었을 때, 비로소 조용히 말했다. 
형사님이 안쓰러운 사람이라고 설득하셨지만, 안되겠다고.
정해진 직업이 없다고 해서 합의를 해줄 순 없다고.

이 경장은 가슴이 답답했다. 
글러먹은 사람은 없다고 믿던 순진했던 시절처럼, 학대파라는 남자에게 묻고 싶었다.
사람도 아닌 것을, 어떻게든 보호하기 위해 그런 법률이 생겼다면, 필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버려진 구더기는 성체가 되었다. 재떨이는 식솔로 거듭났다.
처음엔 살아남기 위해, 그 다음엔 인정받기 위해, 주인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다.
지배나 번식과 같은 모든 생육의 본능을 거부했다. 스스로의 결단으로 한 눈을 뽑아버린 날, 주인은 정말 많이 놀라워했다.
정녕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장생의 업인 것 같다고 말하며.

남자가 가르쳐준 ‘글’은 장생을 진정 자유롭게 했다. 그로 인해 겸허를 깨달았다.
소통의 아름다움과 도덕의 아이러니, 그리고 하늘 너머의 무한한 세상의 경이를 배웠다.
장생은 종종 자신이 종의 한계를 넘을 가능성을 목격한 것 같다는 황홀함에 빠졌다.
그러나 그것이 메스를 멈추는 데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칼날이 위석을 도려내기 직전까지, 장생은 다른 생각을 했다. 자신이 진정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허파는 정직하게 비명을 토했지만 머리 속으로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숫자 30씨는 2씨로도 3씨로도 5씨로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을 줄여서 2x3x5라고 쓴다.
우주는 넓다. 지구를 온 세상 실장석의 수만큼 담아도 인간의 입 속 빗물만큼도 안된다고 했다.
그것이 어쩌면 행복회로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한 순간, 장생에게 그것은 진실이 되었다.

장생은 감격했다. 일생동안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궁극적인 현실도피를, 마침내 위석이 허락했다. 
어느 실장석도 경험해보지 못한 형태로. 마치, 불가능에 대한 기나긴 도전에 대한 보상처럼…
가르침을 받을 때의 숭고한 경이. 검은 공간 속에서, 장생은 그것에 둘러싸여 있었다.

장생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악의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이 순간, 위석이 지금 안락사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을. 
장생은 깨달음의 감정속에서 떠날 수 있게 해준 위석의 배려에 감사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 직전, 장생은 담담히 생각했다.
그를 심판하겠다고 하던 자에 관하여.
손에 동족의 피와 똥이 묻은 사람, 동족의 냄새가 배어있던 사람, 어쩐지 동족과 닮은 사람.
자기혐오를 남에게 떠넘겨야 비로소 견딜 수 있는, 받아들임 없는 슬픈 지성에 관하여.








인어가 되는레후

 

… 요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장석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은 액운을 부르는 행위였다. 때문에 집안에 실장석이 멋대로 눌러앉으면, 설득해 내쫓거나 키우는 수 밖엔 없었다. 이에 관해 일본의 나가사키 지방에선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진다.

어느 어촌의 주민들은 매일매일의 삶이 고역이었다. 영주 가문이 키우는 실장석 가족의 횡포 때문이었다. 탐욕스러운 영물들에게 안락한 삶을 제공하기 위해 영주는 주민들을 가혹하게 부렸다. 

이에 그 곳을 지나던 상인이 꾀를 내었다. 서역 상인들에게 들었던 동화를 토대로, 상인은 실장을 퇴치하는 노래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부르게 했다. 간절함이 담긴 주민들의 노래를 들은 영주의 실장들은, 욕망에 코를 벌름거리다 마침내 혹해버렸다. 그들은 아름다운 인어가 되기 위해 바다에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는 설화로만 여겨졌으나, 실제로도 비슷한 방식으로 많은 실장석들이 수장당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2000년대 초입에 들어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최근엔 생물학적 증거까지 등장했다. 일본 서부 연안에서 발견된 이 기묘한 종은…

[실장석의 생태 2권 p158, 아종 - 수생실장석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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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후?]
바뀐 물결의 흐름에 구더기는 깨어났다.

아니, 이 경우엔 올챙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꼬리엔 갯강구 같은 섬모가, 돌기가 있어야 할 자리엔 앙증맞은 지느러미가 달려있다. 목 뒤엔 그럴듯한 아가미까지 달렸다.

옷도 머리칼도 날 적부터 물살에 씻겨 간지 오래지만, 구더기는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조막만한 머리로는 당장 어제 일도 기억하지 못한다.
구태여 기억할 이유도 없다. 지상의 여느 구더기들처럼, 바다속의 이 구더기도 별 것 없는 일상을 살고있다.
먹고 싸는 것이 전부인 삶이, 마시고 싸는 정도로 바뀌었을 뿐.

[레후! 오늘도 물씨 맛난 레후!]
밑바닥이 아닌 물살 한가운데에 있지만, 헤엄친다기보단 떠밀려다니는 듯한 모습이다. 
구더기의 체력으론 물길을 거스를 수 없다. 따라서 놈들은 해초처럼 떠다니는 모습으로 바다에 적응했다. 
머리를 위로, 꼬리를 아래로 향한다. 잔잔한 해류에 뱃살이 돛처럼 펼쳐진다. 해류의 압박을 장을 비우는 용도로, 그리고 돛을 미는 바람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그리곤 저절로 입으로 들어오는 플랑크톤과 찌꺼기를 섭취한다. 
구더기는 모른다. 특정 지역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폭풍속에서 키를 잡은 해적처럼 위석이 발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동 프니프니 신비한레후! 프니후! 프니후!]
그러나 고뇌와 고행은 구더기의 몫이 아니다. 구더기는 그저 세상 행복한 얼굴로 뻐끔거린다. 물속에서 말해봐야 무슨 쓸모가 있느냐는 질문은, 구더기에겐 중요하지 않다. 단순함과 망각이야말로 구더기의 미덕이다.

그런 구더기지만, 나름 원대한 목표가 있다. 매일 눈을 감을때마다 구더기의 귓가엔 희미한 노래가 맴돈다.
‘세레브한 인어가 되는데스. 인어는 아름다운데스, 자유로운데스. 행복한데스.‘
‘꼭 인어가 되는데스.’
[그런레후! 우지챠는 인어가 되는레후!]
매일 힘찬 외침과 함께 구더기는 기상한다. 
어떻게 해야 인어가 되는지, 인어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른다. 
다만 인어로 향하는 여정의 전망은 나쁘지 않아보인다. 매일매일 몸이 크고 무거워지고 있으니까.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구더기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구더기는 레후레후 콧노래를 부르며 입 안의 찌꺼기를 씹는다.

[우지챠도 인어가 되는 레후! 분명 - ]
소리도 없이 어떻게 알아들은건진 몰라도, 바로 옆을 지나는 동료가 빙긋 웃으며 뻐끔거린다.
그러나 녀석은 거들던 말을 맺지 못한다.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놈이 있던 곳을 스윽 지나친다. 동료 구더기는 그 자리에 없었던 것 처럼 사라졌다. 구더기들처럼 그루퍼도 입안에 무엇이 들어오건 가리지 않는다. 

구더기는 그것도 알지 못한다. 자신이 그렇게 될 뻔 했다는 것은 더더욱 모른다. 
구더기에겐 좁은 시야 또한 장수의 비결이다. 
어차피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위석이 약한 구더기로선 모르는 게 약인 경우가 많다. 

오늘도 알아채지도 못한 위기 속에서 하루를 버텨낸 구더기는, 몇 주 뒤 심히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무거워진 몸이 저절로 땅 아래로 가라앉은 것이다. 

당황해 사지를 흔들어보지만 모래가 조금 날릴 뿐이다. 
바닥에 깔린 모래의 감촉은 낯설지만 포근했고, 내리누르는 물은 무거웠다. 별안간 코에서 실이 뿜어져 나오며 온 몸을 감았다. 구더기는 당황 속에 눈을 끔벅이며 잠에 빠졌다…


그리고, 또 며칠 뒤.

[뎃스우?]
고치의 흔적을 이불처럼 밀어내며 놈은 눈을 떴다. 목살 사이의 아가미를 제외하면, 완연한 성체실장의 모습이다.
졸린 눈을 무심코 부비던 실장은, 몇 분 뒤 화들짝 놀란다. 눈을 부비는 팔의 존재를 그제서야 깨달은 탓이다. 실장은 제 팔다리를 휘적여 모랫바닥에 천사 모양을 만든다. 잔뜩 즐거워하던 실장은 마침내 결론을 내린다.
[데뎃! 팔씨 다리씨 생긴데스! 인어가 된 데스! 노래씨는 사실이었던데스!]

구더기일 적엔 막연히 인어가 되는 꿈만을 꾸었다. 더 커진 머리 속에서, 그 꿈은 이제 온갖 창의적인 망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온 바다가 복종하는뎃스! 온갖 맛있는 것들이 가득 생기는데스! 닌겐노예가… 닌겐이 무엇인데스? …하여튼, 아주아주 좋은일만 가득할 것인데스!]
사실 별로 창의적이진 않다. 실장석이 그렇지 뭐.

희희낙락하며 놈은 일어서려 했다.
그리고 도로 주저앉았다. 영문도 모른채 몇 번 더 허우적거리던 놈은, 마침내 어렴풋이 깨달았다.
팔다리가 생겼지만, 운신의 자유는 생기지 않았다. 놈은 여전히 수압과 해류를 이겨낼 수 없었다.
[데… 데…]

실장은 바닥을 기면서 움직이는 법을 간신히 배웠다. 피눈물을 흘리며 실장은 한걸음씩 팔다리를 모래 밑에 묻었다. 그러나 고난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전처럼 입만 벌리고 있어선 어째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닷물로 물배가 가득 찼지만, 어쩐지 허기가 채워지질 않았다. 실장은 필사적으로 물고기 시체나 해초 따위를 찾아다녔다. 찾지 못하면 고통에 떨며 단단한 산호초나 말미잘이라도 씹어야 했다.
구더기 시절처럼 뱃가죽이 펄럭인다고 날아오르는 일도 없었다. 땅바닥 생활의 구속감은 실장을 비참하게 했다. 심술궂은 작은 게들이 코와 혀를 꼬집을때면 더욱 그랬다.

폭풍처럼 밀려드는 해류는 종종 놈을 모래에서 뽑아 던져버렸다. 그렇게 떨어져 돌부리에 부딪히면 몹시 아팠다. 해류를 피하려 동굴 속에 숨으면 어김없이 원 주인들에게 물리며 도망쳐야 했다. 맛이 영 별로인 것이 실장이 살아남은 유일한 이유였다.
실장은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은 인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울다 지쳐 잠드는 시간이 점점 늘어만 갔다. 그리고 또 며칠 뒤.

[데?]
팔다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피눈물을 흘리며 애써봐도 소용없었다. 팔다리가 그동안 먹은 산호초 따위의 석회물질로 변해버린 탓이었다. 움직일 수 없다면 먹이를 구할수도, 물살을 피할 곳을 찾을 수도 없었다. 절규하려던 실장은 코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실이었다.

[데… 어쩌면, 이번에 변한다면, 이번에야말로…]
실장은 분명히 기억했다. 지난번에 실이 나왔을 땐 팔다리가 생겼다. 그 때 자신은 인어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몸이 변했을 뿐이었다…

[뎃데로게, 인어가 되는데스. 반드시 되는데스. 자고 일어나면 인어가 되어 있는데스.
길고 긴 팔다리, 세레브한 목소리, 아름다운 머릿결.
물 속을 마음껏 헤엄치는 인어가 되는데스.
인어가 되면, 세레브하고 행복한 일만 있을 것인데스. 뎃데로게, 뎃데로게…]
잊은 꿈을 되새기며 놈은 다시 한번 잠이 들었다.


그러나 깨어난 실장을 맞이한 것은 가혹한 현실이었다.
‘데갸아아앗 - !’

코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분명 실이었다. 그러나 순수한 고치실은 아니었다. 그것의 기능과 형태는, 양서류의 기다란 알집과 닮아있었다. 구더기들이 담겨 잔뜩 부풀어오른 실은, 비강을 터트려 큰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구더기들이 부화하며 알집이 터졌다. 물살에 찢어진 점막은, 씻겨 사라지는 대신 친실장의 피부에 들러붙었다. 피부에 스며든 점막은 독처럼 몸을 마비시켰다. 온몸이 팔다리처럼 뻣뻣해졌다.
저항을 막는 일종의 마비독이었다. 이제 친실장은 꿈틀거릴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레후? 우지챠 탄생레후?]
[마마는 어디인 레후?]
[레? 발 밑에서 맛있는 냄새 레후?]
[레후! 참을 수 없는 레후! 우지챠 먹는레후!]

갓 태어난 구더기들은 코를 킁킁거리더니, 자신이 태어난 산호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것이 마마인줄도 모른 채. 
실장의 비명은 마비독과 해수에 묻혀 물거품으로 흩어졌다. 
자를 안아보지 못하는 미련, 구더기에게 먹히는 회한, 인어가 되지 못한 분노, 고기가 되는 공포. 온갖 감정이 실장의 온몸에 역류했다. 
구더기들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씹을수록 맛있어지는 무언가에 감탄할 뿐.

‘데쟈아아아아 - !’

그리고 며칠 뒤, 마침내 성체의 해골만 남았을 때쯤, 많은 구더기들에게 어엿한 지느러미가 생겼다.
[레?]
[레후? 떠오르는 레후?]
[자동 프니프니레후! 신비한레후! 프니후! 프니후웃!]

늘어난 뱃살과 지느러미가 저절로 펼쳐졌다. 해류를 타고 구더기들은 둥실 날아올랐다. 마침내 먹이에서 눈을 뗀 구더기들은 보았다. 햇살이 일렁이는 수면 아래, 넓고 아름다운 물 속의 오색 풍경을.

[넓은 레후?]
[레히이! 대단한 레후!]

구더기들의 머리 속에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어쩐지 그립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불러준 태고의 노래.
‘인어가 되는데스.’
물속에서 전달될 수 없는 목소리가 아닌, 위석에서 위석으로 전달된 간절한 바램이다.
앞으로 수 개월간 파킨사를 방지해줄 소중한 기억이기도 하다.

[상상만 해도 행복한레후!]
[인어 되는레후!]
[하는레후! 우지챠 절대절대 인어하는 레후!]
[물씨는 우지챠를 높이높이 보내주는 레후! 인어가 되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레후!]
날아오르는 구더기들은 하나같이 레후레후 웃음짓는다. 
자신들이 무엇을 저질렀는지도,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선조들이 무엇에 홀려 이곳에 왔는지 놈들은 모른다. 인어공주가 다리를 얻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루었는지도 당연히 알 길이 없다.

물 속에선 말을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에겐 다리의 댓가로 내놓을 목소리가 없다.
구더기들은 모른다. 이 여정의 끝에서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할 것임을. 오로지 쓸모도 없는 다리의 대금을 치르기 위해서. 그들의 마마가, 또 마마의 마마가 그랬듯이. 

왜곡된 동화에 홀려 바다로 흘러 들어온 선조들처럼, 구더기들은 제멋대로의 전망에 웃음지으며 해류에 몸을 맡겼다.
각자의 마음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멋진 노래를 부르며.
[인어 해서, 마음껏 긴긴씨 돼서, 바다를 자유롭게 여행할것인 레후 - !]







쇼 미 더 운치 (귀문방주)

 

내 이름은 김철웅. 일명 도시아귀(都市餓鬼: 도시 하나를 아귀처럼 모두 삼키겠단 의미)라 통하는 랩퍼다. 

말이 좋아 랩퍼지 실상은 동네 건달이다. 그냥 어린 시절 공부는 싫고 힙합이 뭔가 있어보이고 인기도 많을거같아

학교도 안나가고 얼렁뚱땅 랩이나 한답시고 이래저래 놀러나 다녔다. 

그 결과 남들 다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취직자리 알아보고 있을 때 난 백주대낮에 이 사람없는 공원에서 랩연습이나 하고 있다.

힙합판에는 나보다 뛰어난 실력자들은 널리고 널렸다. 진정 힙합이나 랩을 위해 모든것을 쏟아부은 사람들의 꿈과 열정은

나같이 빈둥거리면서 말만 빨리하는것 같은 랩따위가 넘볼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저 힘든게 싫어서 도망친 자의 최후인 것 같아 씁쓸하지만

이 또한 인과응보였다. 이유야 어찌됐든지간에 내가 선택한 길이었으니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이라도 공부를 해야하나? 아니면 그냥 공사판이든 뭐든 가서 일이라도 해야하나? 싶지만 

빈둥거린게 태반이긴 해도 내 어린시절을 힙합과 보내왔다. 이제껏 한게 아까워서란 미묘한 감정과 더불어

이미 한번 도망쳤는데 또 다시 도망친다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란 생각에 섣불리 그만두지를 못한 것이다.

이렇게 깊게 생각하다보면 마음 한편이 갑자기 꽉 막혀온다. 

이도저도 못하면서 이러면 안된다는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수없는 내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다.

아직 여름이지만 마음속과 등살은 을씨년스러운 찬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저 납덩이가 된 마음에선 눈물은 커녕 어떠한 표정도 지어지질 않았다. 

부모님은 너의 선택을 믿겠다며 지원해 주시지만 뒤에서 바라보는 슬픈 모습을 생각하면 이 선택이 너무나도 후회된다.

그렇다고 힙합판이란게 지금 정신차리고 노력만 한다고해서 되는판이면 누구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심난한 마음속에 오늘도 이 빈 공원에서 난 랩을 한다. 슬픈 마음을 고독으로 씻어내며 랩을 한다.

사람이 없기에 들어주는 이는 없지만 종종 실장석들이 와서 음식을 요구하거나 시끄럽다며 투분을 해오긴 한다. 

투분하는 녀석들은 바로가서 머리와 몸을 분리시켜주지만 음식을 요구하는 녀석들에겐 싸구려 과자 한두개 나눠주곤 했다.


확실히 이때까지만 해도 실장석은 내 인생엔 아무 인연이 없는 그러한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그 실장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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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오늘도 그냥 하염없이 정답없는 연습을 해야하나..."

한숨을 쉬면서 난 벤치에 앉았다. 이 벤치야말로 내 작업실이다. 

어차피 보는사람도 없으니 오늘도 폼을 잡아가며 프리스타일을 시작했다.

"Yo, 여기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나의.."

그때였다. 난 아직도 그 오프닝을 잊지 못한다.


-Tha- That is 닝겐-상↗-


응? 하고 옆을 쳐다보니 웬 실장석과 그 실장석의 새끼들이 단체로 와 있던 것이다. 

머리를 뒤집어 쓴 두건을 해적두건처럼 머리 윗부분만 묶고 양갈래 머리는 어떻게한건지 한데로 모아서 포니테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실장석은 분명 노래를 좋아하지만 못부르기로 유명한 녀석들인데 방금 그 후크에 답답한 마음을 관통하는 스웩을 느꼈다.


-Tha- That 오마에의 형편없는 랩실-력에/ 똥통 속 우지챠도 / 저 닝겐은 틀렸다 말한 데-↗스. 

고-귀한 와타시가 넘어가줘도 / 오마에는 이 공원이 오마에 것인줄 아는 데-스. 

더이상 G랄말고 Death 하라는 뎃-스. 오마에의 무대는 이 공원에 없는 데-스.-


사실 실장석들이 말을 험하게 하는것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여기서라도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에

링갈은 언제나 켜두고 있었다. 분명 기묘하긴 하지만 랩이었다. 이 친실장은 프리스타일을 하고있었다. 

데스 데스우임에도 알수 없는 힘이 있었다.


"너 지금 랩한거니..?"


-오마에가 입-에서 / 쓰레기 씨~를 뱉어내는 데-스↗/ 씨-들이 구려서 / 태교에도 절라게 구린 데-스↗

구린내는 오마에 입에서나 내는 데-스↗ / 저기 혼자가서 혼자 구려지는 데-스↗-


이건 분명 프리스타일 랩배틀 신청이었다. 아무리 내가 재능이 없기로소니 이젠 실장석에게까지 무시를 받았다.

원래라면 바로 때려죽여야겠지만 그렇게 되면 실장석에게 프리스타일에 져서 폭력을 주체못한 진짜 쓰레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실장석에게조차 질순 없다. 나 또한 도시아귀란 이름을 단 만큼 절대 지지 않으리라.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똥~벌레 들↑이↑ / 최고의 힙-합에 딴지를 거~는것이 /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모르는 것↗이↑/ 맞아죽기 싫으면 빨리 꺼지는 것이~?"


가볍게 받아치면 알아서 나가떨어져 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힙합실장석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응수했다.



-데프프프프프프.-

-오-마에는 닝겐이란 것 하나로 와타시를 누-르려 하는 데스/ 하지만 눌려 death하는건 와타시가 아닌 데스/

와타시의 CE↑LE↑BU↑한 노래에 오마에의 자-존심이 눌-리는 데~스/ 힘으로 눌러봐야 눌리는건 오마에의 노래 데~스/

오마에의 소음 때~문에 여러 이웃상들이 귀를 누르고 사는 데~스/ 

이쯤되면 주댕이 누르고 와타시가 자비를 베^풀^떄 꺼져주는 데~스-


내랩이 소음이라고? 분명 실장석들도 인간과 취향이 상당히 엇비슷하여 인간이 좋아하는 노래는 실장석도 좋아하곤 한다.

그런데 소음이라고? 이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문제다. 실장석을 만족시키기 이전에 진짜 내 자존심이 눌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힙합실장은 그걸 완벽히 캐치해냈다. 


"내-랩이 소음인건 니 귀가 더러워서인 거-지↗ / 씻지도 않고 먹는거라곤 먹다남긴 음식물 쓰레기나 먹어대는 거-지↗

거지에겐 내 힙합은 닿지않는 거-지↗/ 쥐뿔도 모르는 녹돼지들은 쓰레기나 쯉쯉빨며 내 앞에서 꺼지라는 거-지↗"


실신공격을 포함한 프리스타일을 바로 해주었다. 실장석들은 마음이 약해서 쉽게 자괴한다 하니 이정도면 뭐....


-거~~~~~~~지 데쓰~~~우? / 자~들은 듣는 데쓰~~~~~~~~~~~~~~~우?!-

-저 똥닌겐은 와타시를 거^지^라 모욕한 뎃스 / 와타시타치가 거지인 데~쓰우?/ 자들은 뭐라 생각하는 데스?-

-아닌테치!-

-절대로 아닌 테엣치!-

-우리가 왜 거지인 테에엣치?!-

-거지는 똥닌겐인 테에에엣치이!-

-레치 정답은 레치!,마마에게 패배해서 할 말이 없어 괜히 우리를 욕하는 닝겐상이 거지인 레~치!-

-우지챠도 프니프니랑 닝겐상이 거지인건 아는 레후-


그러면서 내 발밑에 운치를 던져대기 시작했다. 다행이도 신발에 닿진 않고 발 앞 언저리에만 툭 툭 떨어졌다.


-오마에는 와타시보'고' 거지라 하고 있는 데스 ,하~지만 와타시는 집이 있'고' / 먹을게 있'고' /

옷도 있'고'/ 오마에를 발라버릴 노래가 있고 데스/

오마에는 이시각에 오는 닝겐인걸 보'니' 일도 없'고'/ 먹는 꼴을 보아하'니' 먹을것도 없'고'/

 옷도 와타시타치처럼 한 벌이'니' 차이없'고'/

오마에같은 똥벌레는 와타시는 진즉에 솎아내-'고'/ 

오마에를 솎아내질 못하는 오마에의 친의 속 썩는 모습을 생각하니 와타시의 속도 썩'고'/

독립도 못하는 성체실장은 독라노예인데스가/ 

더는 부모를 속썩이지 말'고' 똥닌겐은 운치굴에나 박혀있는 데-스- 


내가 이전부터 계속 생각해온 부분을 또 정확히 건드렸다. 순간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탁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ㅆ 똥버... 아니.."

여기서 욕을하고 일어나면 몽땅 인정하고 고작 실장석 따위에게 정말로 패배했단 것이 된다.

숨을 깊게 들이내쉬고 다시 한 번 받아쳤다.


"똥벌레들의 이^야^기 잘 들었 지/ 지금은 내가 돈이 없을지도 모르 지 / 하지만 아직 세 상에 발표를 안해서 그런 것이 지/

곧 있으면 알아서들 날 데려가 지/ 나를 알아주는 세상에서 어차피 너네는 똥벌레 지 / 시간이 지나면 보건소에서 나오 지 / 그러면 너네는 구제되 지"


물론 현재 상황을 비벼보면 내겐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뭐 어떠랴. 실장석들 앞인데.

거기에 '그나마 내가 잘했던'비트박스를 선보였다. 


"북치기 박치기 북북..."


-데퍄퍄퍄퍄퍞퍄퍄퍄퍄퍄!!-

힙합친실장이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졀라게 웃기는 닝겐인 데스우! /잘 들은 데스우!-

목청을 가다듬더니 A자 입을 씰룩거리며 바로 랩이 튀어나왔다.


-닝겐들은 와타시타치들에게 행복회로를 돌리며 허황된 꿈이나 꾼다 말한 '데스우!'/

 그런데 아니 이게 무슨일인'데쓰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우우?' 

행복회로는 여기 앞에있는 닝겐이 돌리고 있는게 아닌데스우?/ 곧있으면 알아주는 데스우?/ 와타시가 처분되는 데스우?/

어느것도 지금이 아닌 나중일인 데스우??/ 행복회로를 너무돌린 데스우? / 너무돌리 나머지 머리가 핑핑 데스우?/

와타시타치는 현재를 살아가게 아닌 데스우?? /혹시 미래에서 오신 닝겐상인 뎃쓰우우우우웅? -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모두 사실이었다. 얼굴이 대춧빛이 되어 눈을 부라리자 친실장이 다시 목청을 가다듬는다.


-와타시타치는 오늘도 힘차게 살아가는 뎃스우 / 와타시들은 물론 닝겐들이 먹다남긴 것과 버린 쓰레기들로 살아가는 뎃스우/

하지만 와타시타치는 현재를 살아가는 데스우-


그러더니 친실장이 자들에게 손짓했다.

-자들은 뭘 하고 있는데스우? 북을치는지 박을치는지 하면서 닝겐이 또 입에서 운치를 뱉는데

 와타시타치도 뭔가 보여줘야 되지 않는데스우?-

-그런테치-

-맞는테치-

-이날을 위해 운치를 하고오지 않은테치-

-우지챠 운치할 시간인레치~-

-레후?- 

그러더니 하나같이 내앞에서 엉덩이를 까고 부리릿부리릿 운치를 싸기 시작했다. 

실장석의 배변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그 소리와 냄새또한 가관이다.

하지만 이 똥벌레들의 운치타임에는 리듬이 있었다. 아무래도 친실장이 교육을 많이시킨 모양이다.

'부리릿 부릿 부릿 부르르르르르 부리릿 부리리릿 부리리리릴리 뿌직뿌직 (레히~) 뿌리릿 뿌릿 뿌릿...'

난 숨이차서 비트박스를 그만했지만 이 실장석들은 끝도없이 운치를 해댄다.

-벌써끝난테치?-

-시시한테치-

-똥닌겐은 운치나 맞는테치-

-레치~ 운치던지는 타임인 레치~-

-우지챠도 운치가지고 놀고싶은 레후~-


또 이녀석들 운치를 발앞에 던져댄다. 반달눈을 하면서 날 보고있던 친실장은 데프프 하며 웃다가 이내 피날레를 날렸다.


-오마에가 입씨에서 뱉어내는 건 냄새만 나는 운-치/ 그런 운치는 우지챠도 안먹는 운-치/ 

와타시들이 만들어 내는건 공원을 자로 가득 메우는 멋진 운-치/

자들의 운치는 오마에의 입에서 나오는 것보다 멋진 운-치/ 우지챠도 좋아하는 그런 운-치/ 

오마에가 행복회로를 돌리는 모습은 와타시타치에겐 최고의 운-치/

운-치같은 닝겐을 상대해주는 세레브한 와타시는 자들에게도 아주 멋진 운-치/ 

상대해 줄 만큼 해 줬으니 이제 운-치는 꺼지라는 데스웅-


내 랩과 더불어 내 존재 자체를 실장석에게 무시당했다. 하지만 난 이걸 반박할 수가 없다. 모두 사실이니까.

하지만 난 울화를 참지못하고 실장석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발이 나가자마자 무언가에 미끄러져 크게 앞으로 넘어졌다.

운치였다. 실장석들이 랩을하면서 미리 던져둔 운치에 미끄러졌다.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발목을 삐었는지 쉽지가 않았다.

실장석들은 닝겐을 물리쳤다며 대단히 기뻐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팠다. 정말 너무나도 아팠다. 다리가 아파 일어날수도 없긴 했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실장석들에게 무시당할 정도로 생각해보면 난 너무나 안일한 삶을 살고 있었다. 

저 실장석도 자신의 어미에게서 독립했을 것이고 친실장의 자들도 곧 독립하겠지.

하지만 난 부모님에게 얹혀살면서 빈둥빈둥 대충대충 행복회로나 돌리며 언젠간 되겠지 하는 마음에

행복회로나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분을 삭히면서 조용히 걸터앉았다. 내가 저들과 다른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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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은 후,난 큰 반성을 했다. 실장석에게 졌다는 비참함보단 오히려 자신감을 얻었다. 

프리스타일은 물론 원래 쓰고 있던 랩에도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랩이라는 것 자체가 화사하고 멋지기도 하지만 자신의 울분과 슬픔을 표출하기 위한 종류이기도 하다.

그때의 실장석은 자신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표현했다. 물론 과장된 헛소리가 태반이긴 했지만

실장석 특유의 강한 행복회로 시너지가 랩에 자신감을 보태주었기에 어지간한 프리스타일보다 멋졌던 것이다.

내가 랩을 하면서 그동안 들었던 괴로운 생각과,그 실장석에게서 봤던 

실장석임에도 불구하고,아니 실장석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그 말도 안되지만 당연하듯 내뱉는 프리스타일의 이미지를 접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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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였을까. 내 일은 묘하게 잘 풀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랩이 갓 성인이 되어 자신의 길을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자극이 되었다나 뭐라나.

어느정도 인지도도 얻기 시작했고,작은 무대에서 공연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던 도중 문득 그 실장석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정도의 스웩이 있는 실장석이라면 분명 공원에서도 잘 나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간을 내어 그 공원을 다시 찾아갔다.


워낙 비주얼이 특이했던 실장가족이라 찾는데 어렵진 않으리라 생각하고 적당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근데 풀숲 사이로 테에엥- Thae -aneg 하면서 느낌이 살아있는 울음소리가 났다.

풀을 치워보니 그때 힙합실장의 자실장이 있다. 그런데 모양새가 성치가 않다. 

"무슨일이니?"

-테... Thae--- Tat! 그때 마마에게 발린 닝겐상?-

분하지만 사실이다. 근데 그건 둘째치고 무슨일인가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테.. Mama의 노래실력이 너-무-나- 뛰어났던 테치... / 이-웃집 오-바상들도 패배해 파-킨한 테치...

늘 먹을게 가득했던 테치... 행-복하게 늘 노래했던 테치... / 그런데 똥-닌겐이 질-투를 한 테치....

시끄럽다고 자매들을 죽인테치..... 마마를 두들겨패서 죽기직전이 되버린테치....-

처음엔 랩을하나 싶더니 이내 슬픔에 복받쳐서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너의 마마를 보고싶구나. 해치지 않을테니 안내해주지 않을래?"

-테에에...-


멀지않은 곳에 반파된 골판지 상자가 있었다. 그 골판지를 열어보니 퀴퀴한 냄새와 동시에 독라가 되어 오늘내일 하는 친실장이 있었다.

-tha.. that... 아노토키노 닝겐상...-

"그래. 기억하는구나."

-와타시는 이미 틀린데스... 그때 닝겐상을 이겼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떠들고 다녀서 다른 닝겐들의 주목을 끈 데스..

이렇게 죽기직전이 되어서야 깨달은데스... 당장은 잘난거같아도 겸손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던데스... 

"....."

이 실장석은 죽어가면서도 내게 교훈을 주었다. 하마터면 잊을뻔한 '겸손'. 랩할때는 자신있게 상대를 제압해야하지만

겸손이란 모토를 잃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잠깐 잘 나가는것 같아도 금세 다칠 수 있다는 것을.

"너한텐 참 여러가지로 배웠다."

-..뭘말인데스?-

"아냐 아무것도. 그러면 어떡하면되나. 도움을 좀 주고싶기는 한데,어떡하면 좋을까?"

-데프프... 와타시의 매-력에 메로메로되서  /와타시의 총-구를 레로레로 하고싶은 것은 알겠지만...

이제 그런건 필요없는데스.. 와타시의 소울은 이제 리듬과 함께 살아가는데스... -

역시 실장석은 실장석이다. 내손으로 끝내줄까 했다가 겨우 참았다.

-그러면 닝겐상.. 부탁이 있는데스.-

"뭔데?"

-와타시의 자는... 이제 저 자 하나뿐인데스. 저.. 자를 데려가주실 수 있는데스우?-

"데려가는것 정도야 뭐."

-감사한데스. 데,, 데겍!-

친실장은 갑자기 각혈을 했다. 너무 심하게 당해서 상처의 재생이 되질 않는 모양이다. 

-데.. 데.. 와타시의 소울은 이제 리듬과 함께하는데스.. 하지만 와타시의 유산은 영원한...-

순간 옆에있던 돌멩이를 집어들고 자신의 초록눈 위의 눈두덩를 크게 찍었다.

-데.. That - de Ro ge-

단말마와 같은 친실장의 태교와 동시에 Park - in 하는 소리가 들렸다. 친실장의 소울이 결국 리듬에 Park 한듯 하다.

-Tat tae ryei~-

그때 갑자기 소울이 느껴지는 탄생의 노래와 동시에 친실장의 총구에서 우지챠 하나가 기어나왔다.

자실장이 슬픔을 뒤로한 채 우지챠의 점막을 핥아주었다. 하지만 죽어가는 친실장의 자여서 그런지 태생이 우지챠였나보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태어나자마자 마이크로 프니프니를 요구하는 레-후 / 우지챠가 어려운걸 모른다고 하는건 오해 레-후

마마가 태교로 가르쳐준 노~래로 요구하는 레-후 / 오네챠도 마마도 프니프니 레- 후

우지챠를 안키우면 손해인 레-후 / 우지챠는 공원의 떠오르는 스웩 레-후

마마의 뱃속에서부터 세상에 나오기까지 레-후/ 마마의 뒤를 이을 새로운 mc 프니프니 레~후

우지챠 무대에 도래 Yeah~ 두루마리 공-원↗/


태교를 랩으로 받았기 때문에 나온 우지챠도 속사포 프리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레t me do it Again~ 후~!-


-우지챠....-

자실장이 조용히 꼭 껴안아주었다. 마마의 뒤를 이을 정도의 훌륭한 래퍼의 재탄생인 것이다.


"....랩하는 자실장과 우지챠라..."

나는 그 두 자매를 들고 경매에 팔아버렸다.

아직은 쩐이 부족한 입장이라 애완동물을 키우기도 그랬을 뿐더러,랩하는 실장석이라 하니 불티나게 경매가가 올라갔다.

들리는 바로는 자실장은 성체가 되자마자 출산석이 되어 힙합실장석을 많이많이 낳았다고 한다. 

절대 내가 뒤끝이 있어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우지챠는 어떤 유명한 래퍼가 비싼돈을 주고 샀고,우지챠와 듀엣으로 앨범도 하나 냈다고 한다.




이 기묘한 일이 있은 후에도 난 여전히 작곡과 랩에 힘을 쓰고 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서.

나 도시아귀,아직 대박이 나진 않았지만,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 

때론 실장석처럼 생각하는 것도 꽤 괜찮은 듯 싶다.

"지금은 힘들어도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는 거지."

당시에는 노력도 없이 대충 살면서 되도않는 미래를 꿈꾸며 이런 행복회로를 돌렸었지.




그래.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있는 지금은 아니니깐. 오늘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거야.








신장개업 (세레브한미도리)

 

 근처 직장인들이 가볍게 저녁을 때우기 좋다고 소문난 F시의 먹자골목.
 아주 싼 값은 아니지만 적당한 가격대의 요리와 다양한 안주들을 구비한 가게들로 먹자골목은 불황도 잊은 듯 언제나 불야성을 이루었다.
 평일 저녁 부터 골목을 오가는 직장인들.
 그러나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그에 따른 불청객도 함께하기 마련이다.
 바로 실장석들이었다.

[닝겐상! 지나가지 마는 데스우! 와따시의 자를 보는 데스. 귀엽지 않은 데스까?]
[텟츙! 텟츙! 똥 샐러리맨은 와따시한테 메로메로 되는 테치! 와따시의 매력에 사로잡혀 사육실장으로 삼는테치!!]

 취객과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로막고 호객행위를 하는 실장들.
 들실장이 양손 높이 들어올린 자실장은 나름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윙크도 해보이고 애교도 떨어보지만, 이들의 무모한 도전의 결말은 언제나 단 하나의 결말로 정해져 있을 뿐이다.

[지벳!]

"에이 시발! 구두에 똥 묻었어!!"

 의도로 밟은 것은 아니다. 그저 무릎에도 오지 않는 실장석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아 무심결에 밟아버린 직장인이 볼멘 소리를 한다.
 탁아를 시도하다 밟혀 죽는 실장석.
 가게 입구로 당당히 들어가다가 빗자루에 맞아 납작해지는 실장석.
 가게 문에 운치를 바르다가 알바가 휘두르는 몽둥이에 머리가 사라지는 실장석 등등
 바글 바글한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몰려든 실장석이 곤죽이 되고 흩어지는걸 친은 골목 저편에서 한심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들은 보는 데스. 닝겐에게 가까이가면 왜 안되는지 알겠는 데스까?]

 친은 실장석 치곤 아주 우수한 개체였다.
 보통은 먹이를 구하러 혼자 몰래 다니곤 했지만, 오늘은 어떤 의도였는지 둥지에서 자들을 모두 끌고 나와 먼 발치에서 먹자골목의 광경을 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 현장 학습을 하러 온 것이다.
 다섯의 자실장들은 테치테치 떨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사실 친은 현장 학습 외의 다른 의도를 갖고 이자리에 나왔다.

[테프프프픗!!]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다해도 동족이 이리 죽고 저리 죽는 비참한 지옥도에 기가 질릴 법도 한데, 셋째는 달랐다.
 덜덜 떠는 자매들과 달리 프픗 하고 웃으며 입꼬리를 올리더니 두 눈을 초승달처럼 뜨며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는 것이었다.

[마마. 저건 세레브하지 못한 분충들이어서 죽는 테치. 귀여운 와타시는 다른 테치!! 와타시라면 분명히 닝겐도 메로메로 되는 테치!!]

 셋째의 말에 친은 조용히 짱돌을 치켜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친은 실장석 치곤 아주 우수한 개체였다.

[자들은 듣는 데스. 이제부터 자들은 네 자매인 데스]
[텟? 마마? 뭐하는 테.. 텝!!!!]

 테갸악 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셋째는 입을 움켜쥐고 바닥을 구른다.

[잘도 개념 코스프레를 해왔지만 여기서 드러난 데스. 셋째는 실각인 데스]
[텝! 테에엡! 테에에벱!!!!]

 콩 콩 콩 절구 찍는 소리와 함께 셋째는 바닥의 얼룩으로 변하고 말았다.

[데헤... 데헤.. 데헤에...]

 셋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서야 친의 짱돌질은 멈췄다.
 격한 운동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친은 남은 자들을 돌아보았다.

[오마에들도 이 분충하고 같은 생각을 한 데스까?]
[아닌테치!]
[마마! 와타시들을 믿는 테치!!!]
[마마의 말은 법인 테치! 어기지 않는 테치!!]

 친의 또하나의 의도는 바로 솎아내기.
 언제나 같은 생활 한정된 공간에서 머무는 둥지에서의 생활로는 자들이 분충끼를 드러내는지 아닌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정형화된 패턴에 적응하여 분충끼를 숨기고 연기하는 자식들이 종종 급변화된 상황.
 인간이 나타난다던지, 처음 보는 무언가를 쫓아간다던지 하여 일가를 실각시키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친은 이렇게 소풍을 간다는 핑계로 자들을 다른 환경에 노출 시키고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여기에 셋째가 보기좋게 걸려들어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었다.
 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친에게 사정한다. 자신이 결백함을, 분충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쓴다.
 친은 냉정한 눈으로 그들을 흝어보고는 짱돌을 내려 놓고 발걸음을 돌린다.
 현장 견학도, 솎아내기 테스트도 끝났으니 이제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는 것.
 남은 자들은 친만큼이나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이므로 이제부터 본격 적인 생활의 지혜를 전파하는 길만이 남았다고 친은 생각했다.

[자들은 모두 따라오는 데스. 이제 자들도 조금만 지나면 어엿한 중실장이 되는 데스. 지금까진 와타시가 혼자 사냥을 나갔지만 자들이 동참하면 더욱 효율이 높아지는 데스. 겨울을 날 수 있는 데스. 이제 이 마마가 가장 좋은 사냥터를 알려주는 데스]

[사냥터 테치?]

[아마아마가 가득가득 나오는 그곳 말하는 테치?]

 셋째의 처형 이후 분위기가 가라앉아있던 자녀들에게 생기가 깃든다.
 우수한 친은 항상 어디에선가 다른 가족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아마아마한 먹거리를 구해오곤 했다.
 그 비밀의 정체가 오늘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런데스. 하지만 주의사항이 있는데스. 먼저 마마가 닝겐이 있는지 정찰을 하고 오는 데스.]

 인적이 드문 골목을 쫄래 쫄래 앞장서 가던 친이 손을 뻗어 자들을 정지시키자, 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화단과 벽돌 사이로 모습을 감춘다.
 과연 우수한 자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여운 자들이라 생각하며 친은 흡족한 미소를 짓고는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골목 밖을 살폈다.
 친이 찾는 것은 눈에 익은 간판이 있는가 없는가였다.
 이 골목은 찾아오는 손님은 많지 않지만, 숨겨진 맛집이 있기로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라 단골이 가끔 찾아오는 그런 가게가 있는 곳으로 친은 그 가게 음식쓰레기통을 뒤져 일가의 생계를 도맡아 오고 있었다.
 친이 찾는 간판은 바로 [풍천장어].
 하지만 늘 오던 거리가 맞는데도, 풍경도 비슷한데도 그 간판이 보이질 않았다.

[데에.. 어찌된 데스...?]

 비닐 봉투를 내려놓고 양 눈을 비벼보는 친.
 하지만 비비고 다시 보아도 간판에는 이전의 길다란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읽을 수 없는 인간의 글씨와 함께 뚱뚱해보이는 물고기가 그려져있었다.
 이전의 가게가 망하고 새로운 가게가 들어왔다는걸 알리가 없는 친은 급격한 환경의 변화를 눈치채고 고민했다.

'자는 듣는 데스. 익숙한 게 바뀌면 일단 물러나 상황을 주시하고 다시오는 데스. 익숙하지 않은 일을 했다간 큰 화를 입는 데스'

 자신의 마마가 들려줬던 충고를 기억하며 친은 일단 물러나기 위해 땅에 떨어뜨린 비닐봉투를 다시 집었다.
 그리고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벽돌과 화분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자들을 보고 그제야 자신이 혼자온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그런데스... 오늘은 자들에게 수업을 하러 온 데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와타시가 뭐가 되는 데스...? 무능력한 마마라고 비웃음을 당할게 분명한 데스. 그리고 밥은 어떡하는 데스? 여기가 아니면 우마우마한 먹거리를 구할 수 없는 데스...)]

 잠시 고민을한 친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내밀어 가게 앞 풍경을 살폈다.
 수조도 그대로.
 가게 디자인도 그대로.
 바뀐 것은 오직 간판 뿐이다.
 그렇다면 환경이 갑자기 바뀐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그때, 돌연 가게 문이 열리며 나타나는 사람을 보고 친은 몸을 낮췄다.
 거리가 떨어져 들킬 가능성은 낮았지만, 조금의 위험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동혁아! 장어하고는 다르다 그거. 내가 말한거 알지?"

"알아요! 고양이가 못가져가게 음식물 쓰레기 비닐에 싸서 쌀포대기에 다시 담고 있어요."

 가게 안에서 주방장이 시키는 소리에 알바인 동혁은 지겹다는 듯 대꾸하곤 조리의 부산물을 비닐봉투에 담아 두꺼운 쌀포대에 다시 담아 입구를 졸라메고 있었다.

"혹시라도 짐승이 먹으면 그거 난리난다. 잘 쫌매!"

 알바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상적인 광경.
 친은 그 광경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멀어서 뭐라고 하는지 들리진 않았지만, 알바는 늘상 봐오던 그 닝겐이 맞았으니까 결국 돌발상황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알바가 가게문을 닫고 다시 안으로 들어간걸 확인한 친은 자들에게 손짓해 다가오도록 지시 했다.
 자들과 함께 쌀포대 앞으로 쪼르르 달려간 친은 작은 목소리로 설명을 늘어놓았다.

[보는데스. 모습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이게 바로 아마아마 주머니인 데스.]

[빨리 보고 싶은 테치 마마!!]

[와타시가 해보는 테치!!]

 성급한 막내가 달려들어 쌀 포대를 손으로 두들기고 이빨로 깨물었지만, 질긴 쌀포대기가 그런 걸로 꿈쩍할리가 없다.
 그 귀여운 사투를 데푸풋 하며 감상한 친은 우수한 자신의 능력을 뽐내듯, 두건 안에서 작은 무언가를 꺼냈다.

[텟! 마마 그건!!!!]

 친이 꺼낸 것은 바로 가위였다.
 어떤 어린 초등학생이 어린이 바느질 도구로 쓰다가 잃어버렸을 법한 미니 가위를 친의 마마의 마마의 마마는 용케 입수해 가보로 대대손손 전해주었던 비장의 보물이었다.

[자들은 보는데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가보인 싹둑싹둑씨인 데스. 이 싹둑싹둑에 걸리면 뭐든지 한방인 데스. 비겁한 똥닝겐은 이런 두꺼운 주머니 안에 아마아마를 숨겨놓았지만, 우리의 세레브한 가보 앞에선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는 데스]

 친은 데흥! 하고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보이곤 미니 가위를 들어 쌀 포대를 썰기 시작했다.
 아무리 가위라고는 하나 오랜 세월 사용해 녹이 슬고 이가 빠져 잘들지 않아, 친은 진땀을 흘리며 겨우 쌀포대에 친의 두 손이 들어갈만한 구멍을 뚫어냈다.
 그러나 쉴 시간은 없다.
 언제 인간이 다시 나타날지 모르니 허비한 시간만큼 서둘러야만 했다.
 친은 자들을 시켜 봉투를 활짝 벌리게 하고 구멍에 양손을 집어넣어 안의 비닐을 찢고 내용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마마! 이 올록볼록한건 뭐인 테치까?]

[그건 생선의 알인 데스. 먹으면 톡 하고 터지는 맛이 일품인 데스]

 안에 퍼담기는 내용물을 보며 자들이 물어보면 모양을 보고 친이 대충 설명해준다.
 자들은 그걸 보며 테에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자들은 비닐봉투에 차오르는 생선 살과 껍데기 내장을 맛보고 싶어 침을 질질 흘렸지만, 아까 세상을 등진 셋째와 같은 꼴이 되기 싫어 필사적으로 참는다.
 그 모양을 보며 친은 미소 지었다.

[하나 정도는 먹어도 되는 데스.]

[정말인 테치?]

[마마 고마운 테치!!!!]

[알은 와타시의 것인 테치! 와타시가 먹는 테치!!!]

 친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녀,차녀,사녀가 모여들어 비닐봉투의 내용물을 테챱테챱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한다.
 분명 친은 하나만 먹으라고 했지만 한번 맛본 아마아마에 자들의 이성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오녀는 달랐다.
 바닥에 떨어진 생선 눈알을 들고 친에게 쫄래쫄래 다가와 앙증맞은 두손에 담긴 생선 눈알을 친에게 건내주는 것이었다.

[마마. 마마가 가장 힘든테치. 와타시가 양보하는 테치. 마마가 먼저 먹는 테치]

 결국 마지막 까지 남은 것은 오녀 뿐.
 감격한 친은 눈물을 흘리며 오녀가 준 생선눈알을 받아들었다.

[(결국 마마가 했던 것처럼 남은건 마지막 자뿐인 데스.... 나머지 분충들은 집에가서 때려 죽이는 데스 오로롱)]

 오녀가 준 생선 눈알을 한입 베어물고 남은 반을 오녀에게 건낸다.
 오녀도 테치테치 기뻐하며 남은 눈알을 베어 문다.
 눈알이 톡 터지며 새콤한 즙액이 감미롭게 입안에 맴돌다 사라지고 가장 안쪽의 쫄깃한 젤라틴이 씹는 감칠맛을 더해준다.
 가히 경험하기 힘든 맛.
 지금까지 이곳에 사냥을 나오면서도 겪어보지 못한 진미중의 진미가 아닐 수 없다.
 친은 색다른 맛에 다시금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피를 토했다.

[뎃? 데헥 뭐인 데스? 켁. 왜 왜 숨이 쉬어지지 않는 데스.... 이게 뭐인 데... 데... 데....]

 당황한 친의 눈에는 이미 비닐봉투에 대가리를 박고 탁한 눈으로 죽어있는 분충 자녀들과, 생선 눈깔을 씹다가 그대로 파킨한 오녀가 들어왔다.

[팔은 움직이는데스!! 세레브한 와타시의 명령인데스!! 다리도 움직이는 데스!!!!]

 오로지 말을 듣는 신체는 총구 뿐. 총구에서 대량의 운치를 뿌득뿌득 뿜어내며 마비된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던 친은 한맺힌 단말마를 내질렀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데스!! 우수한 와타시가 죽는건 세계의 손해인 데스!!!! 와타시는 우수한 씨앗을 남겨 똥닝겐을 노예로 부려야하는데스!!!!!! 왜 와타시가 와타시가 이런곳에서 왜에에에에에에!!! 죽을 순 없는 데샤아아아아앗!!!!!!!!!!!!!]

파킨.

 동시에 너무나 시끄러운 소리에 가게 뒷문이 열리고 주방장 철웅이 뛰어나와 눈앞의 참상을 목격했다.

"야 이동혁 이색햐!!! 내가 조리하고 남은거 잘 버리라고 했어 안했어!! 실장석이 복어 먹고 다 뒈졌잖아!!! 너 잘리고 싶어?!?!!!"








실장석을 지켜보는 남자

 

동료들과 밥을 먹고, 혼자올라오는 건물 옥상.

여기서 커피를 마시거나 폰을 만지작 거리며
30분 정도 있다가 다시 일하러 가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하늘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취미인
나에겐, 흐리거나 맑거나 비가 오거나 해도
펜스가 쳐져 있어 날씨 영향을 안 받고
멍하니 있을 수 있는 이 곳이 딱 좋았다.

그리고 우리 쪽 건물과 옆 보험사 건물과는
약간의 틈이 있는데, 우연찮게 거기서 움직이는
자그마한 살색 덩어리를 보았다.

자실장.

그것도 독라.

====

어떤 경위로 그곳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녀석은 처음 봤을 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울며 무언가를 찾는 듯 했다.

자기 어미일까? 아니면 자기 자매들일까.

만약 그들이 맞다면 그 녀석을 두고 간 것일까.

아니면 어떤 이유로 운 나쁘게 떨어트린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엔 전자였다.

녀석들은 독라같은 개체는 따돌리고 괴롭혀서 노예로
만들거나 먹이가 될 새끼들을 낳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니까.

하여튼, 녀석은 한참을 주저앉아 울었다.
하지만 들어주는 이가 있을 리 없었다.

건물 옆 도로에서 나는 차들의 소리는 자실장 하나의
비명이 어떻게 뚫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이 건물들은 방음 시설이 생각보다 완벽했으며 그곳에 
뚫린 문이라곤 그 쪽으로 들어가는 녹슨 철문이 다였으니까.

... 하지만 그 곳도 쓰레기로 막혀 있을텐데.

생각 할 수록, 저 녀석의 존재는 미스터리다.

====

다음날, 녀석은 우는 것이 지쳤는지 여기저기를 쑤셔보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집을 짓고있는 건가. 그 와중에 자실장 크기로도 들 수 있는
나무판을 들자, 나오는 이끼와 버섯무더기를 보고는
기쁜 울음소리를 낸다.

그리고 한 입 크게 베어물고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정도로도 행복할 수 있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녀석은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하는 모양이다.

하기사 우리도 하늘 보고 사는 것이 손에 꼽는데. 우리보다
살기 힘든 자실장이 하늘 보는 거야, 드물지.

걱정이라곤 다 버섯과 함께 뱃속으로 넣어버린 듯한
표정을 짓던 녀석은 뭔가 다짐을 했는지 주먹을 꽉쥐는
포즈를 하더니 여기 저기서 잡동사니를 모았다.

그리곤... 쌓기 시작한다.

기둥, 벽... 지붕.. 녀석이 만족한 듯 뒤로 물러서자, 
거기엔 위에서 지켜보아도 그럴싸 한 집이 완성 되어있었다.

바람 한 방에 다시 무너지긴 했지만.

무너지는 집에 비명을 지르고 발을 동동 구르며 울던 녀석이지만,
다시 얼굴에 힘을 팍 주면서 일어나 하던 일을 반복했다.

뭐, 노력하는 만큼 나왔으면 좋겠네, 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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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드디어 집을 짓는데 성공한 듯 했다.

위에는 비를 막을 것으로 보이는 비닐까지 씌워져있다. 
저 작은 몸으로 저걸 어떻게 한 건지 궁금할 정도로 완벽하게.

게다가 덮고 남은 것으로 보이는 비닐로 옷을 해 입기까지
했다.

두건까지 있는 걸 보니 오히려 감탄 보단 웃음이 나오는 꼴이다.

뭐, 나름 똑똑한 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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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녀석이 저기에 갇힌지 다시 일 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저 좁은 곳에서 어떻게 음식조달을 하는지 몰라도,

처음 그곳에 갇힌 것에 비해 살까지 올라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녀석의 손은 어디서 뭘하는 것인지 흙먼지가 묻어있고
군데군데 상처까지 나있었다.

그리고 본래 나무판을 들어 꺼내먹던 버섯과 이끼가
사라져있었다.

그제야 나는 녀석이 집안에 굴을 파고, 그것들을
양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똑똑해도, 너무 똑똑한 것 아닌가..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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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과에 녀석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생활화가 되어갈 때 즈음,

녀석의 집 앞에는 갖가지 식물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마 옆 보험사 건물 쪽에서 추진중이던 옥상 텃밭에서
떨어진 씨앗들인 것 같다.

어둡고 축축한 건물 사이라도, 반사광이 비치고 이 맘때
쯤이면 햇빛이 들어서일까?

식물들은 다른 텃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지만,
꾸준히 자라나고 있었다.

독라 녀석은 그것을 처음에는 먹어보려 했지만,

무언가 생각난 것인지 더 이상 손을 대진 않았다.

가끔, 호기심에 그 조그마한 손으로 톡톡 건드려보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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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중순이 되었다.

전 사육실장 스팸이 나를 실망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녀석은 어느새 자라나 스팸의 중실장 때의 크기로 자라났다.

울음소리도 굵어졌을 것이나 야생의 녀석이라 그런지
잘 울지는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저 좁은 곳에 천적이라도 나타났다간 녀석은
참살일테니.

그 와중에도 식물들은 자라고, 녀석은 밥을 먹고 할일이 없으면
이리저리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면서 혼자 놀기 시작한다.

그러면 미약한 바람이 흘러 어느정도 자란 식물들이 같이
춤을 추듯 이리저리 흔들린다.

녀석은 그것이 그렇게도 좋은지, 혼자 웃으면서 가끔 식물의 잎을 잡고
같이 춤을 추는 듯 이리저리 흔든다.

인간이 저랬다간 식물은 잎이 다 뽑혀 버리겠지만,

실자석.. 그것도 저것 말곤 아무것도 할 것 없는 녀석은 잎을 소중히
잡으면서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외로워 보이는 구만, 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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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드디어 식물들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녀석은 그것이 먹을 것임을 알면서도, 섣불리 먹으려 하지 않는다.

저건 또 어디서 배운걸까

오히려 있던 음식도 아끼고 그 좁은 곳을 어떻게든 샅샅이 뒤지며 가끔
부주의한 녀석들이 흘린 음식물 쓰레기나 먹다만 간식봉지를 수거해
자기 집으로 들고 들어갔다.

본능적으로 거기엔 음식이 적고, 겨울을 일찍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나도 일이 성수기라, 그 이상 녀석이 더 다른 할 일을 찾는 것을 보지 못해
평소보다 빨리 일을 마치러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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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천고마비의 계절.

하지만 녀석은 다른 실장석에 비해 마른 상태였다.

비록, 그게 인간의 미적 감각으로 더 좋아보인다 할지라도.

내가 보지 않는 동안 여러모로 이 공간에 제대로 적응했는지,
점심시간이 되면 재빠르게 집안으로 숨었다가 사람들이 떨구는
음식물이 어느 정도 쌓였다 싶으면,

그것을 다시 나가 수거한뒤 재빠르게 다시 들어갔다.

게다가 가끔 떨어지는 잡동사니나 쓰레기들 역시 집으로.

녀석에겐 회색 콘크리트 나무에서 생필품이 열매처럼 떨어지는
것 처럼 보이는 걸까.

...하지만 그 수많은 잡동사니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지는 건지.

집 내부를 보고 싶지만 이 내려보는 각도에선 어디로 봐도 무리다.

왠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내가 바보같아져, 그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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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녀석들이 가장 바빠질 시기인, 월동 준비기간이 온다.

녀석은 어떻게 이 겨울을 날까. 저 독라의 몸으로.

사뭇,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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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가오는 늦가을, 녀석의 모습이 사뭇 달라졌다.

비닐봉투는 두겹이 된데다 그 안에 천쓰레기들을 채워넣고,

어디서 구한건지 자신의 발에 꼭맞는 비닐봉투와 정체모를
뚜껑을 발에 신고 그 안에도 천쓰레기를 채워넣었다.

머리엔 팀장이 춥다고 회사로 시켰지만 아동용으로 와 홧김에
이 곳으로 던져버린 털모자와, 손엔 여직원들이 냄새난다고
버려 버린 수면양말.

겨울 준비를 마친 위풍당당한 모습의 녀석이 누군가에게 자랑
이라도 하고 싶은 듯 서있었다.

너무 거하게 뿜어서 녀석이 올려다 보기 전에 내려가기로 했다.

정말이지 재밌는 녀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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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컬러풀한 수면양말과, 빈곤이라 적힌 수면양말을 낀
손을 부지런히 놀리며 무언가를 하는 독라.

아니, 이젠 독라가 아닌가.

하여튼 녀석은 늦가을에 돌입한 식물들이 열매를 맺고 그것들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잽싸게 그것들을 모아 지붕에 말리기 시작했다.

저런 건 또 어디서 배운거지. 혹시 사육실장이었나?

하여튼 녀석은 낙엽도 하나 빠트리지 않고 전부 모아 가져간다.

아마 보온재로 쓸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저걸로 충분할까..

걱정이 됐지만 내가 더 신경쓸 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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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워서 그다지 올라오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녀석이 뭔가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 안 올라올 수가 없다.

게다가 내 예상은 적중해, 녀석은 또 내가 놀랄거리를 
그 작은 두손으로 만들고 있었다.

양말을 낀 두손에, 봉투까지 끼고 눈을 만지며 무언가를 하는 녀석.

눈장난을 하는가 싶었지만 달랐다. 그것을 집의 지붕에 빠짐없이 바르고 있었다.

녀석은 이글루를 만들고 있던 것이다.

그래.. 눈으로 만든 집은 실제로 안이 따스해지는 효과가 있지.

하지만 그것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왠지 기운없는 포즈에 힘없이 처덕처덕 눈을 바르는 모습,
그리고 누런 콧물을 훌쩍이며 우는 건지 코를 흘리지 않으려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눈을 바르는 녀석.

이내 내가 커피를 다 마시고 내려갈 때 즈음, 녀석은 양손을
들고 만세를 하며 다 만든 것을 자축하고 있었다.

잘됐네, 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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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기 시작한다.

눈은 녹아내리고, 녀석은 눈이 녹기 시작해 들어오는 물이 집을 침투한 듯,

병뚜껑과 페트병 발린 것에 물을 퍼나르기 바쁘다.

가끔 일이 힘든지 눈물을 흘리는 것도 종종 보였다.

그래도 겨울을 났으니 괜찮은 등가교환 아닌가, 독라?

그렇게 무심히 녀석의 웃긴 물퍼내기를 보던 중, 한가지 변화를 알아 챌 수 있었다.

녀석의 눈이, 양쪽이 초록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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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따듯해진 요즘, 녀석은 불룩해진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예전에
스팸에게서 자주 듣던 노래를 하고 있었다.

뭐, 그런만큼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음에 그렇게 잘 들리진 않아 다행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어지고, 어느 날은 집 앞 귀퉁이에
네모 플라스틱 그릇을 꺼내 물을 채워놓았다.

그렇군, 출산대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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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물그릇을 만들고 머지않아,

녀석은 이틀째 날 버스소리가 요란한 와중에
출산을 마쳤다.

녀석들은 이미 어미의 뱃속에서 차소리나 소음에 대한 면역을
가지고 태어난 듯, 주위가 시끄러운 와중에도 개의치 않고
건강히 태어났다.

수는 전부 10마리.

게다가, 자식들도 녀석을 닮아..

모쌩겼다.

완벽한 실장석이다.

녀석은 핥아주는 것을 마치고, 주위에서 울음소리를 내면서 자신을
부르고 애교를 부리는 녀석들을 보면서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잘됐네, 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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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그 후로 태어난 이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듯 했다.

내가 올라갈 때마다, 녀석의 자식들은 의미불명의 몸짓을 하면서
어미의 관심을 끌거나 서로 무언가 소꿉놀이를 하는 듯 했고

웃거나 떠드는 소리.. 혹은 노랫소리도 가끔 들려왔다.

녀석은 그런 자식들을 하나씩 껴안아주고, 핥아주고 꾸며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듯 했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한다 독라.

거기서 떠드는 건, 위험해.

이미 내게도 들리고 있는데.

====

인간이 없는 자연이란 환경은, 굉장히 조용한 편이다.

그리고 그 조용한 가운데 먹이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포식자들은 청력을 진화시켜왔다.

차소리가 없었다면, 자실장 때에 독라녀석이 우는 소리에
이미 녀석은 포식자의 먹이로 전락했겠지.

하지만 차소리도 그들의 소리를 커버하지 못하는 요즘..

녀석의 행복은 드디어 끝을 맞았다.

====

내가 그것을 발견한 것은, 이미 모두 끝난 상황이었다.

바닥에 묻은, 적록색의 체액의 얼룩.

반만 남아 기어가고 있는 자식과

무언가의 이유로 바짝말라 가랑이 사이에서 점액질과
수많은 저실장들을 낳고 죽어있는 자식..

그리고 남은 자식들을 끌어안고 피눈물을 흘리는 독라.

그나마 녀석은 그 녀석들이라도 살아서 다행이라고 토닥이는 듯한데,
과연 그럴까.

그 후로, 나는 포식자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을정도로,

녀석은 포식자의 호구같은 표적이 되었다.

아무 긴장조차 하지않고 못을 휘두르고 있는 독라에게 다가서는
'얼룩 고양이'.

간단하게 독라의 팔을 긁어 못을 떨어트리게 하고, 집으로 뛰어들어
자실장 중 하나를 물고 달아난다.

독라는 팔을 흔들고 울부짖으며 자기 자식을 찾아보려 하지만,
소용없다. 이미 떠나간 자식은 수만갈래로 찢겨 녀석의 먹이로 전락
했겠지.

녀석은 한참을 울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 일주일.

녀석의 자식들은 2마리 밖에 남지 않았다.

====

그리고 어느 날 부터, 녀석의 모습이 골목에서 사라졌다.

갑작스런 일이었다. 나도 처음엔 당황해 여기저기를 살폈지만,
녀석의 모습은 내가 조금 늦게 내려갈 때까지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볼때에 온 고양이 녀석도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인듯,
여기저기를 살피고 집안으로 들어가보려 했으나

거기엔 이미 무언가가 막고있는 듯 나무판을 긁는 소리만이 조금
거슬리게 퍼질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죽거나 그곳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녀석의 일은 내 기억에서 점점 잊혀져 갔다.

====

여름이 지나고, 다시 가을.

골목 아래를 본 것은 우연이었다.

분명 없어졌었던 녀석이, 집앞에서 자식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놀라서 자세히 보자, 그것은 자실장들이 뉘여있는, 흙더미..

무덤이었다.

그리고 녀석의 모습은 피골이 상접한,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형체.

하지만 자실장들은 어느정도 살이 오른 통통한 몸.

나는 그제야, 녀석이 집안에 틀어박혀 포식자가 그곳을
포기할 때까지 버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자실장들은 먹이면서, 자신은 굶었던 것이다.

굉장한걸.

정말 굉장해.

게다가 녀석은 다 만들어진 8개의 흙더미에 기도를 하듯이 양손을 모으고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자실장들도 따라했다.

나도 모르게, 나도 그것을 따라하고 있었다.

====

하지만, 녀석의 목숨도 오래가진 못했다.

어느날 자실장들이 급박하게 우는 것을 듣고 내려다 보자,
거기엔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듯한 독라의 모습이 보였다.

땅을 등진 채 누워 하늘을 보면서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모습으로 헉헉대는 독라.

나는 그 독라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1년간, 굳세고 현명하게
살아온 그 독라를.

그러던 와중,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양팔에 자식들을 들어 나에게
바치듯, 하늘에 바치듯 들어올리는 독라.

뭔가 귀찮아 질 것 같아, 그냥 자리를 떴다.

밑에서 자실장들이 구르고 우는 소리가 들리지만, TV프로가
끝나고 난 뒤의 광고같은 느낌이었다.

독라가 죽음으로써, TV프로는 끝난 것이다. 여운을 남기고.

자실장까지 남길 필요는 없다.

====

다음 날, 녀석은 하늘을 보던 자세 그대로 죽어있었다.

눈은 시꺼멓게 타들어가, 표정은 모든 것을 원망하는 표정으로.

누군가를 원망하고 저주한걸까?

녀석도 결국은 실장석이었던 걸까.

자실장들이 그 옆에서 몸을 흔들며 울고 있지만 죽은놈이 대답을
해줄리가.

너희들이 울고 있을 상황은 아닐텐데.. 라고 속삭여 보지만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자실장은 자실장이다.

혼자 살아남을 수 없는 개체.

독라쪽이 오히려 이상한 타입이었다.

그래서 나의 관심을 끌던 것이고.

그 외의 녀석들은, 결국 스팸의 자식들 처럼 날 실망시키는 일 밖에는
하지 못하는 것이다.

====

결국, 남은 두마리는 겨울을 버티지 못했다.

그나마 따듯했던 집조차 놔두고 어미의 곁에서 얼어죽은 두마리.

하지만 무섭게 일그러진 어미의 얼굴과는 다르게, 녀석들은
마치 잠이라도 자는 듯 어미의 품에서 조용히 목숨을 다했다.

이 독라의 얘기는 여기서 끝난 것이다. 자실장조차 남지 않은
그런 결말이었다.

...

오늘은, 맥주가 좀 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