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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대결

 

[뎃데로게~ 뎃데로게~ 뎃뎃뎃 뎃데로게~♪]

오늘도 공원에선 실장석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행복한 내일을, 스테이크와 스시와 콘페이토로 가득한 미래를 꿈꾸는 노래. 인간의 귀엔 그저 멱따는 소리를 좀 더 규칙적으로 질러대는 것뿐이지만, 실장석에겐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지금도 한 마리의 실장석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보통 노래를 부르는 건 자실장 정도로, 성체로 자라면 임신 중 태교할 때를 제외하곤 별로 부르진 않지만, 어째선지 이 실장석은 다 자란 상태에서도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실장석 주제에 삶이 즐거운 걸까, 아니면 자신의 노래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진 걸까.


“오호, 노래를 부르는구나?”

[뎃?]

한 남자가 노래실장에게 다가간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지만 눈엔 살기가 그득하다.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굳이 다가가고 싶지 않은 인상이지만 실장석이 인간의 표정과 속내를 구분할 리 만무하다. 동족의 피가 묻은 빠루를 들고 있어도 길러준다고만 하면 눈이 뒤집히는 놈들 아닌가.

이놈도 마찬가지다. 잠시 경계심을 갖지만, 곧장 이어지는 ‘올리기’에 곧 풀어지고 만다.


“정말이지 기막힌 노래인데? 너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녀석은 처음 봤는걸.”

[데프프프, 똥닝겐이 와타시의 진가를 알아본 데스. 그런 데스우, 와타시만큼 노래를 잘 부르는 놈은 이 공원엔 없는 데스. 이런 특별한 와타시를 데려가 키우는 건 어떤 데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닝겐은 정말 큰 실수를 하는 것인 뎃샤아아아!]

“하하, 자신감 넘치는걸. 마음에 들었어."


남자의 눈동자가 번뜩인다. 분충의 머리를 내려쳐 터뜨릴 셈인가?

아니다. 아직 아니다. 뭔가를 숨기고 있다. 노래실장을 내려다보던 그는 곧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이죽거린다. 모르긴 몰라도 실장석에겐 안 좋은 일이다. 애초에 사람과 마주한 실장석에게 좋은 일이란 좀체 없는 법이지만.


“그렇다면 노래로 대결을 해보자고. 네 노래에 감명 받게 된다면 난 네가 말하는 대로 집에 데려가 사육실장으로 키워주마.”

[정말인 데스우? 데프프프,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 마는 데스. 똥닝겐은 분명 와타시를 데려가 키우게 해달라고 사정하게 되는 데스.]

“대신, 조건이 있단다.”

[데에?]

“내 노래를 듣고 한 번이라도 빵콘을 하지 말 것. 하면 그 즉시 넌 죽든 살든 내 맘대로 만들 테니까.”

[데프프프, 쉬운 일인 데스. 똥닝겐의 노래로는 운치는커녕 눈물도 흘리지 않는 데스.]

“그래? 그럼 약속한 거다?”

남자의 확언에 실장석은 이미 승리하기라도 한 듯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멋진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인간의 모습이, 그 뒤로 이어지는 스테이크와 스시로 둘러싸인 나날이 재생된다. 산더미처럼 쌓인 콘페이토를 씹으며 숨쉬듯 자를 낳는다. 하나 같이 예쁜 흑발실장들. 마마를 닮아 노래도 기가 막히게 부른다. 아름다운 합창이 노예인간을 거느린 집안에 드높이 울려 퍼진다.

그것은 뇌내에서 분출된 화학물질이 불러일으킨 망상. 망상은 행복감을 고양시키고, 불행한 실장석의 삶으로 피폐해진 정신을 안정시키는 한편 온몸의 생명력을 강화시킨다. 일종의 체내마약이라 할 수 있다. 온갖 험악한 환경에서도 실장석들이 끈덕지게 살아가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행복회로가 만능은 아니다. 때때로는 가장 피해야 할 순간에 발동되어 주인을 위기로 몰아세우는 것도 바로 이 행복회로인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같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실장석은 노래를 부른다. 목청이 찢어지도록.


[뎃데로게~ 뎃데로게~ 뎃뎃뎃 뎃데로게~ 뎃데로게 젯데로게 젯젯젯 젯데로게~♪]


지나가는 학대파가 없다는 게 놈에겐 행운이다. 듣는 순간 바로 허리가 분질러지도록 발차기를 날렸을 테니까. 남자도 들어주기 힘든지 얼굴을 조금 일그러뜨린 그 노래는 실장석들이라면 누구나 부르는 행복의 노래였다.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하여 태어나면 부족할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인간은 누구나 노예이며 잡아다가 세레브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기만의 노래. 콘페이토와 스시와 스테이크처럼 어째서 놈들이 태어날 때부터 아는지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 중 하나였다. 좀 더 생존에 유리한, 그러니까 인간과는 관계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대신 전수할 순 없는 걸까.

노래는 계속 이어졌지만 남자의 표정은 조금 일그러진 채 그대로였다. 물론 더 부드러워지지도 않았다. 한참을 부르고서 남자의 반응을 살핀 노래실장은 조금 골이 난 듯 했다.


[데뎃! 똥닝겐! 와타시가 고귀한 노래를 열심히 불렀는데도 박수 하나 안 치다니 졸렬한 데스! 아니면 와타시의 노래가 너무 감격스러워 굳어버린 데스? 뭔가 반응을 보이란 뎃샤아아아아!]

“아, 끝났니? 그럼 이제 내가 불러도 될까?”

[부르든지 말든지 마음껏 하란 뎃샤! 어차피 똥닝겐의 노래는 와타시에겐 아무런 감흥도 없을 것인 데스! 그러니 얌전히 와타시를 모실 준비나 하란 데스!]

“뭐, 졸렬하지도 감격스럽지도 않지만 말이지. 그럼 부른다.”


이번엔 남자가 노래를 불렀다. 그건 희곡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번쯤 들어봄직한 노래였다. 가사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옛날에 임금님이 있었는데
실장석을 기르고 있었네
자기가 낳은 자식처럼
굉장히 사랑했지

어느 날 재단사를 부르니
재단사는 금방 대령했네
자, 실장석의 윗도리와
바지의 치수를 재라!

벨벳에다 비단 안감을 댄 옷을
실장석은 입었다네
저고리엔 리본에다
십자가도 달려 있고

금방 재상이 되어
커다란 훈장도 달았지
거기에다 자들도 궁중으로 들어가
벼락감투를 하나씩 썼다네

고관대작과 귀부인들은
그 바람에 두통거리,
왕비와 시녀들도
투분한 운치투성이

열 받아도 으깨서는 안 되고
내쫓아서도 안 되었다네」


[데프프프, 당연한 데스. 와타시는 응당 그런 세레브한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는 데스. 똥닝겐이 생각보다 아첨을 잘하는 데스? 설마 노래로 와타시의 미래를 설명해줄 준 몰랐던 데스. 패배를 처음부터 인정한 데스? 좋은 자세인 데스. 그럼 이제 와타시를 데려가서 일단은 아와아와한 목욕을……]

“아직 후렴 안 끝났어.”

[데뎃?]


그리고 이어지는 후렴.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으직-


[데뵤오오오오오오오오옥?!]


후렴과 함께 남자는 발을 들었다가 힘껏 짓밟았다. 짓밟힌 건 노래실장의 발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발등 전체가 짓이겨진 상황. 뒤로 발라당 넘어진 노래실장은 사지를 버둥거리며 빵콘을 했다. 눈물을 흘리며 고통에 울부짖는 그 모습을 보며 남자는 이제야 마음이 후련하다는 듯 쾌활히 웃었다.


“이런, 빵콘해버렸네. 그럼 얘기는 끝났지.”

[웃기지 마는 데스 똥닝겐! 오마에가 와타시의 다리를 아야아야해서 그런 데스! 반칙인 데스! 치사한 데스!]

“난 빵콘을 안 하면 된다고 했지 손을 안 댄다고 한 적은 없는 거 같은데. 뭐, 키워줄 생각도 없었지만.”

[데갸아아아아악! 이 똥닝겐이 와타시를 속인 데스! 당장 운치를 처발라서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뎃샤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러니까 똥벌레 멱따는 소리로 산책하는 사람 심기를 건드리면 못 쓰지… 멍청한 분충은 용서하지 않아요!”


남자의 노래가 이어졌다. 뒷일을 직감한 노래실장이 비명을 지르며 그만두라고 했지만… 사람도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낱 실장석 따위가 말로 사람을 막을 순 없는 노릇인 것이다. 후렴구가 반복되고, 남자의 발길질도 계속되었다.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우리들이야 한 마리라도 보이면
바로 으깨서 죽여 버린다!」


네 개의 적록색 얼룩과 함께 달마가 된 노래실장은 데히, 데히 거리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 옷을 뜯어다 신발에 묻은 피와 체액을 대충 닦아낸 남자는 근처에서 기웃거리는 실장석들을 보며 말했다.


“이거 먹어도 된단다.”

[데갸아아아악! 그만두는 데스! 와타시는 먹는 게 아닌 뎃샤아아아아아악!]


남자가 등을 돌리자마자 달려드는 동족들을 보며 노래실장은 괴성을 질러댔지만, 말했잖은가, 사람도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실장석도 실장석의 말을 듣지 않는다. 도덕이라는 브레이크도 없는 판에 불구가 된 동족은 그저 맛 좋은 먹이일 뿐. 그렇게 노래실장은 한순간에 고깃덩이가 되어 동족들의 식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신이 이 공원에서 가장 고귀하다고 믿고 있던 놈의 입장에선 처참한 최후겠지만, 애초에 놈은 고귀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만과 무지로 명을 재촉한 평범한 들실장일 뿐이다.

동족의 혈육을 씹고 뜯는 실장석들은 좀처럼 맛볼 수 없는 고기의 맛에 흠뻑 취한다.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아지자 너나 할 것 없이 노래가 나온다. 마마의 마마, 또 그 마마의 마마로부터 위석을 통해 전해 내려온 행복의 노래.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한 데스~ 따뜻한 햇님이 있고 먹을 건 풍족한 데스~


[뎃데로게~ 뎃데로게~ 뎃뎃뎃 뎃데로게~ 뎃데로게 젯데로게 젯젯젯 젯데로게~♪]

“햣-하!”


몰려든 실장석들을 보고 난입한 학대파의 빠루가 머리 위로 내려쳐질 때까지, 노래는 이어졌다.


-끝-

***

여담으로 남자가 부른 건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노래인 레후
물론 원본은 실장석이 아니라 벼룩인 레후








실장향

 

실장향이란 물건이 있다. 스프레이처럼 생긴 게 실장석에게 뿌리면 근처에 있는 다른 실장석들이 몰려와서 잡아먹는다는 희한한 물건이다,

원래 일반 샵에선 무슨무슨 법 때문에 판매가 제한되어 있지만, 지인을 통해 운 좋게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그냥 꺼라위키식 카더라처럼 과장된 소문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공짜로 얻은 거니까 실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데스웅~?”

“테츄웅~?”

“레츄웅~?”

“레후~”

마음먹기가 무섭게 웬 실장 일가가 내 앞에서 아첨을 떤다. 성체 하나, 자실장 하나, 엄지 하나, 구더기 하나. 뭔가 딱 본보기 같은 구성이다. 사람 앞에서 함부로 나대지 말란 거 못 들었는지, 그러고도 지금까지 어찌어찌 새끼 까고 살아남았다는 생각 같은 건 집어치우고, 일단 실험 개시다.

푸쉭-

“데뎃?”

“텟!”

“레칫!”

“레히!”

뭔가 반응도 하나같이 판에 박은 게 마치 꺼내놓은 마트료시카 인형 같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데에…”

“테에?”

“레치…”

“레후?”

아, 저 새끼들 눈 돌아갔어.

잘 보니 서로서로 보는 눈빛이 제 피붙이 보는 게 아니라 맛 좋은 고기 보는 눈빛이다. 친실장은 벌써 입에서 군침 흘리고 있고, 먹이사슬 최하위인 구더기만 아무것도 모른 채 레후거리며 프니프니 해달라고 배를 뒤집고 있다. 엄지가 그걸 집어 든다. 혹시… “레뺫!” 거 시발 말하자마자 이 꼴이냐.

“레츙~”

행복한 얼굴로 구더기의 배를 베어 무는 엄지. 입에 적록색 피를 묻히며 열심히도 파먹는다. 구더기는 더 견디지 못하고 파킨해버렸고, 그게 무슨 출발신호라도 되는지 놈들은 실장 마트료시카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구더기를 먹은 엄지를 자실장이 들어다 머리를 물어뜯는다. 뇌가 으스러져 빵콘을 하고 팔다리를 파닥대는 와중에도 입에서 구더기를 놓지 않는다. 한편 자실장은 그대로 친실장에게 들어 올려져 하반신부터 먹힌다. 한 입에 허리 아래가 사라진 놈을 친실장은 탈탈 털어 분대와 내장의 남은 부분까지 입에 넣는다. 그러고는 남은 자식들의 잔해를 마치 보쌈 먹듯 한 입에 집어삼킨다. 워우.

그렇게 흐뭇한 얼굴로 제 자식들을 와구와구 씹는 놈을 놔두고 나는 공원을 나왔다. 놈 등 뒤로 열댓 마리는 되는 놈들이 비슷한 얼굴로 기다리는 걸 봤으니.

일단 효과가 탁월한 건 직접 봤고, 대체 뭔 성분이기에 이런 효과를 내는 걸까. 화학 성분 같은 거면 인체에 유해할 테니 경고문이라도 붙어 있겠지만 그런 것도 없고.

그래서 지인-같은 학과의 선배다. 소문난 학대파라나-에게 물어보니 뜻밖의 답변이 날아들었다.

“아, 실장향? 그거 순 사카린 덩어리야 덩어리.”

사카린?

“응. 실장석들 단 거에 좋아 죽잖아. 일단 입에 넣으면 못 멈추게 아예 존나 단 걸로 채워놓은 거야. 그 식용 스프레이하고 비슷한 거지.”

근데 그거 가지고 애들이 옵니까?

“반은 사카린이고 반은 실장석에게서 추출한 페로몬이지. 너 그거 알지? 실장석들은 개체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어서 그거 가지고 지 새끼들 구분하고 탁아한 것도 찾아낸다고.”

그렇죠.

“그런데 이게 연구해보니까 날 때부터 구더기거나 가을 때 태어난 놈들은 냄새 성분이 약간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뭐라더라, 그런 냄새를 가진 놈은 친실장도 지 자식이라기 보단 먹을 걸로 보게끔 된다던데. 그래서 여간 애정 깊은 놈이 아니면 비상식으로 쓰는 거래.”

그건 처음 들었네요. 그럼 그 성분이란 게?

“응, 그 냄새 성분을 압축해서 사카린 분말이랑 섞은 거지. 그래서 냄새에 이끌려 와서 한 입 먹어 보니 존나 맛있다, 이런 구조란 거지.”

고작 그런 걸로 효과가 나다니 뭔가 웃기네요.

“실장석이야 다 그러니까 뭐.”

그렇게 새로운 지식을 하나 얻었다. 

그 전에 내 몸에 뿌리고 공원에 나가서 반응을 보는 게 좋겠다.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해보는 게 제일이니까.








전설

 

“텟, 마마! 저기 보는 테치! 세레브한 물건이 잔뜩 쌓여 있는 테치!”

“데에…”

어느 실장 친자가 공원을 거닐다 무언가를 발견했다. 사람도 들어갈 너비의 구덩이에 온갖 실장용품이 그득하게 쌓여 있었다. 분홍빛 사육실장복이며 실장핸드백, 실장리본까지, 들에서는 가재도구를 다 내다팔아도 구하지 못할 물건들이 산더미를 이루는 걸 보고는 자실장은 눈이 돌아갔다. 그러나 친실장은 왠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분명 세상의 보물인 와타치를 위해 똥닝겐이 준비해놓은 선물 세트가 틀림없는 테츙~ 어서 가서 마마 것도 주워오는 테치!‘

“그만두는 데스 장녀.”

“테에?”

“저기는 ‘슬픈일 구덩이’인 데스. 들어가면 안 되는 데스.”

자실장은 불만과 의문이 반반 섞인 얼굴로 친실장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의 보물인 자신이 가면 안 될 이유가 뭐가 있다고? 저렇게 빛나는 보물들이 대놓고 손길을 기다리는데? 그런 자실장의 마음을 읽었는지 친실장이 구덩이 건너편을 가리켰다.

“데프픗, 버려진 주제에 얼씬대다니 분대가 부은 데스. 이 공원의 철칙을 듬뿍 맛보여주는 데스웅~”

“데갸아아아앗! 그만두는 데스! 와따시의 세레브 옷에 손댔다간 닝겐노예가 가만 안 있을 것인 데샤아아아!”

“똥닌겐이 오마에를 걷어차고 침 뱉는 것까지 다 봤는데 어디서 구라를 치는 데수? 오마에는 특별히 독라형 추가인 데스!”

“데갸아아아아아!”

거기에선 공원 동족들의 버려진 사육실장 린치가 한창이었다. 짓밟고, 후려패고, 운치를 바르고, 리본을 뜯어내고, 머리털을 뽑고, 핸드백을 빼앗고, 옷을 벗기고… 전형적인 공원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달랐다.

“오마에가 아무리 울부짖어봐야 똥닝겐은 쳐다도 안 보는 데스~ 분명 다른 분충을 데려다 흑발의 자를 만들 것인 데스웅~”

“똥닝겐은 오마에를 지켜주지 못하는 데스! 그 증거로 오마에의 물건은 모두 ‘슬픈일 구덩이 행인데스~”

“그만두는 데스! 닝겐노예가 봉헌한 와따시의 세레브 인생이…!”

공원 실장들은 사육실장에게서 압수한 물건들을 자기들이 나눠 갖는 대신 ‘슬픈일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심지어 엉덩이를 까고는 거기다 운치를 싸는 놈도 있었다. 자실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저 귀한 것들을 저렇게 다루지? 공원 실장들이 독라가 된 전 사육실장을 어디론가 끌고 갈 때까지도 자실장은 그 한 가지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장녀에겐 아직 이 공원의 비밀에 대해 말해준 적이 없었던 데스. 그러니 지금부터 이야기해주는 데스.”

자실장을 도운 건 친실장이었다.

친실장은 구덩이 끄트머리에 다가가서 주저앉았다. 자실장도 친실장에게 다가가 그 품속에 안겼다. 마치 자기 전 콘페이토와 스테이크에 대한 아름다운 전설을 얘기해줄 때와 마찬가지로, 친실장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오래 전 일인 데스. 마마도 마마의 마마에게서 들은 데스. 마마의 마마도 그 마마에게서 들었던 데스. 하여간 너무 오래된 일인 데스. 그래서 진짠지 가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 정도도 오래된 일인 데스.

그때도 이 구덩이는 있었다고 하는 데스. 하지만 이런 세레브한 물건 따윈 없었던 데스. 다만 공원 동족들이 분충을 던져 넣었다고 하는 데스. 그래서 언제나 울부짖는 소리만 들렸다는 데스.

그때 어느 사육실장이 이 공원에 왔다고 하는 데스. 왜 왔는진 아무도 모르는 데스. 단순히 길을 잃은 데스? 임신해서 버려진 데스? 싫증난 닌겐에게 버려진 데스? 학대파에게서 도망쳐 나온 데스? 아니면 스스로 박차고 나온 데스? 아무도 모르는 데스. 그저 왔다고만 하는 데스.“

“치프픗, 분명 못생겨서 버림받은 게 분명한 분충인 테치.”

“그럴 지도 모르는 데스. 하지만 그 자는 평범한 분충이 아니었던 데스.

그 누구보다 크고 강했던 데스. 독라노예로 삼으려 한 놈은 독라노예로 만든 데스. 자판기로 만들려 한 놈은 달마가 된 데스. 그렇게 공원 모두를 제패한 데스. 보스가 된 데스.“

“보스테치?”

“보스인 데스.

그리고 보스가 된 날, 그 사육실장은 공원의 동족들을 모두 데리고 이 구덩이로 온 데스. 그리고 그때까지 입고 있던 사육실장복을 모두 구덩이에 내던진 데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는 데스.

‘푸드도 콘페이토도 필요 없는 데스. 사육도 세레브도 필요 없는 데스. 아양 떠는 분충의 물건은 모두 벗어던지는 데스.’

보스는 그렇게 말한 데스. 닝겐의 쓰레기로 연명할지언정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이 더 낫다고 했던 데스. 자기가 버림받아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차라리 들실장으로 사는 게 더 나은 처지여서 그랬던지는 알 수 없는 데스.

신기하게도 보스의 말은 잘 지켜진 데스. 아마도 공원을 잘 이끌어서 그랬던 것 같은 데스. 버려진 사육분충들도 옷과 물건을 구덩이에 던지고는 공원의 일원이 된 데스. 그렇게 한동안 공원은 평온해졌던 데스.“

“테에에…”

“하지만 보스가 죽고 나서부터는 어딘가 달라진 데스. 아양 떠는 분충도 다시 생겨나고 자를 들이밀다 일가실각하는 분충도 다시 생긴 데스. 하지만 구덩이는 그대로 있는 데스. 달라진 건 구덩이로 오는 놈들인 데스.

더 이상 스스로 옷을 벗어 던지는 분충은 없는 데스. 이제 동족들은 장녀가 본 것처럼 사육분충이 보이는 대로 이 곳으로 붙잡아 오는 데스. 옷을 벗기고는 조롱하는 데스. ‘똥닝겐에게 빌어보는 데스웅~ 오마에를 구해줄 노예는 어디에도 없는 데스웅~’ 대부분 버려진 분충들이라 독라노예로 끝장나는 데스.

그래서 여기가 ‘슬픈일 구덩이’인 데스. 처음엔 ‘닝겐 따윈 필요 없는 데샤악!’하고, 지금은 ’똥닝겐은 와따시를 구하지 않고 무엇하는 데샤악!‘하는 소리가 가득해서 그런 데스. 여기 물건들엔 그 분충들의 독기가 그대로 서린 데스. 그래서 아무도 손대지 않는 데스. 오마에도 손대면 안 되는 데스.“

“너무 어려운 테치. 와타치 잘 모르는 테치.”

“손대지 말라는 것만 알아들으면 되는 데스.”

친실장은 그렇게 끝맺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너무 흘렀고, 해는 어느새 중천에 가 닿았다. 굳이 땀을 빼고 싶지 않았기에 친실장은 집으로 향했고 자실장은 그런 친실장을 달음박질로 쫓았다. 친자의 등 뒤로 독라노예가 된 사육실장의 구슬픈 비명만이 은은히 울려 퍼졌다.

“오로로롱! 똥닝겐은 세레브한 와따시를 구하지 않고 어디서 뭐하는 데스! 오로로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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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해머 소설 번역을 보고 쓴 데스

워해머엔 엘다라는 이름의 귀쟁이 외계인 종족이 있는 데스

이들은 잘 나가던 시절엔 자기들이 신보다 위대하다 생각하곤 신상을 모조리 구덩이에 처넣은 데스

그러다 폭싹 망하고 나선 무능한 신 따윈 필요없다며 다른 종족의 신상까지 걷어다 구덩이에 처넣은 데스

정말이지 실장석 같은 마인드가 아닌 데스웅? 데프픗







심심풀이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실장석 가족을 보았다. 성체 하나, 자 셋, 엄지 하나. 들실장치곤 산아 제한을 잘하는 놈인가.

친과 자들이 집인 듯한 골판지 박스 앞에 모여 앉아 떠들고 있다. 뭘까, 공원에서 관리를 소홀히 한 건가, 아니면 이놈들이 대범하게 구는 걸까. 대놓고 사람 눈에 띄면 결과는 그리 좋지 않을 텐데.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하고 넘어가기로 하고, 뭘 하고 있나 싶어서 봤더니 엄지를 둘러싸고는 막 머리를 쓰다듬는 중이었다.

[데스~ 데스 데슷~ 뎃스웅~ 데스 데스야~]

[테치치치…… 텟치! 테치테치~ 텟츄~웅~]

[렛츄~웅~]

[보에~ 보에 보에~]

오호, 집안의 막내를 귀여워해주는 중인가. 고양이가 새끼를 핥아주는 것과 비슷하겠지만, 저놈들은 어중간하게 사람과 닮은 탓에 뭔가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든단 말이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친실장이 먼저 알아보고는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러고는 내 앞에 서더니 막 떠들기 시작한다.

[데스! 데스데스! 데스, 데스뎃스웅! 데샤아아아아앗!]

링갈이 없어서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보나마나 먹이를 달라든지 길러달라든지 그런 말이겠지. 실장석이 인간에게 관심을 두는 건 대개 그런 이유 때문이니까. 그런데 이것들은 왜 인간이 자기들보다 풍족하고 강하다는 걸 알면서도 꼭 후자만 까먹고 다니는 걸까. 지능으로 따지자면 훨씬 모자란 비둘기들도 사람이 다가서면 일단 피하고 보는데.

[뎃스웅~ 데스데스! 데프픗…….]

한참을 지켜보려니 친실장이 갑자기 자들 사이로 들어가서는 엄지를 데리고 나왔다. 그러고는 번쩍 들어 올려 나에게 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엄지는 나를 보고 [렛~츄웅~]하고 애교를 떨고 친실장은 데프프프 하고 웃는다. 으흠, 얼마나 귀여운 아이냐, 우리 중에서도 가장 귀엽다, 데려가서 키워보지 않겠느냐, 대략 그런 표현인가. 만약 데려가겠다고 하면 덤으로 나머지도 다 데려가 달라고 할 테고.

일단 엄지를 집어 들었다. 친실장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서 침을 튀기며 웃고, 자들은 그런 어미 근처에 몰려 막 테치테치 거리고 있다. 행복회로가 발동한 건가? 아마 놈들의 머릿속에선 흔히 말하는 세레브한 생활상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을 것이다. 손가락에 잡힌 엄지도 어미와 같은 상황인지 똥을 흘리며 웃고 있다. 자기가 원할 때마다 행복한 망상에 잠길 수 있다니 편리한 놈들이다. 마약 중독자도 아니고.

물론 망상에 젖어 사니 불행이 다가와도 모르는 거겠지만.

신속히 엄지의 두건을 벗기고, 옷을 잡아 뜯고, 머리를 뽑은 다음 친실장 앞에 놓아주었다. 친이고 엄지고 둘 다 아직 행복회로가 끝나지 않았는지 여전히 웃고 있을 따름이지만, 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일제히 엄지의 몰골을 보고, 그 다음엔 나를 보고, 다시 엄지를 본 다음, 그제야 일제히 빵콘을 하며 자지러진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어이쿠, 세 마리밖에 안 되는 데도 이런 소리라니. 그러나 효과는 확실해서, 있지도 않은 스테이크의 산에서 구르고 있던 듯한 친실장이 곧 정신을 차렸다. 놈은 엄지의 상태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음 장면은 너무나도 뻔했기에 난 등을 돌리고서 갈 길을 갔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렛츙? 레? 레…… 레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네 발자국쯤 걸었을 때에야 등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하하하.

***

오늘도 어제와 같이 공원에서 산책 중이었다. 문득 그 실장석들 생각이 나서 어제와 같은 길로 가기로 했다.

골판지 박스는 건재했다. 확실히 이 근처엔 학대파가 없어서 저렇게 무방비한 놈들도 오래 살아남는다. 물론 성가시게 구는 놈은 관리인이 집게로 채가서 그렇게 막나가는 놈도 잘 없다만. 그나저나, 그놈들은 어쩌고 있을까.

좀 더 다가가자 놈들이 보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빙 둘러 모여 있었다. 어제의 불행으로 상처받은 가족을 서로 보듬는 건가 했지만, 자세히 보니 내가 너무 물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설마 했지만, 너무 식상한 결과라 말도 안 나왔다.

[데스! 데스 데스! 데샤아아아앗!]

[테프프프프…… 테치 테치!]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잇?!]

친실장과 자들이 엄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애정 표현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험악한 표정으로 뭐라 짖고 있다. 분명 독라가 된 막내를 매도하고 있는 거겠지. 혐오와 경멸이 흠뻑 묻어나서 실장석이 아닌 나라도 눈치 챌 정도였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다.

자실장들은 팬티에서 녹색 똥을 듬뿍 퍼다가 엄지에게 바르고 있다. 놈들은 자기보다 하등하거나 노예인 개체에게 똥을 칠하는 걸로 우위를 표한다고 들었다. 머리와 옷이 없어진 정도로 가족에서 노예인가. 가족이 적으로 돌변한 상황에서 엄지는 생기 넘치는 모습 대신 빛이 사라진 눈으로 벌벌 떨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성체도 못 견딜 판국에 어린 엄지가 버텨낼 리는 만무하다. 그나마 치이이이잇, 츄와아앗 하며 반항인지 애걸인지 반복하고 있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들은 체도 안 한 채 린치에 열중하고 있다. 얼마 못 가 죽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지의 비명을 뒤로 하고 갈 길을 갔다. 힘내렴.

***

며칠 뒤 다시 그 길로 산책을 나섰다. 골판지 박스는 여전히 자리에 있었고, 실장석 가족들도 거기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내가 다가갔을 때엔 막 식사가 끝났는지 다들 배를 두드리며 길 위에 뻗어 있었다. 행인이 없어서 그런지 외식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식사 자리가 좀 지저분했다. 특히 적록색 얼룩과 뼈로 보이는 조그마한 파편들이 눈에 띄었다. 세어 보니 엄지가 보이지 않았다. 과연, 가족이라도 독라가 되면 그런 꼴을 당하는지.

입에 적록색 얼룩을 묻힌 채 데스데스거리던 친실장은 나를 보더니 자들에게로 다가가 한 놈을 집어들고 왔다. 그리고는 저번에 했던 것처럼 내밀었다. 자실장도 나를 보며 애교를 떨었다.

[텟츄~웅~]

허참.

옷만 달리 입었다고 알아보지도 못하는 건가.

헛웃음을 참고는 자를 집어 들었다. 이번엔 친실장은 물론 나머지 자들도 모조리 행복회로를 돌리는지 멍하니 웃고만 있었다. 그 틈을 노려 집어든 자실장의 옷을 벗기고 머리를 뽑아 버렸다. 놈은 갑작스런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테치테치 거리기만 했다. 조심스레 친실장 옆에 놓아두고는 나머지 것들도 모조리 독라로 만들었다. 자, 이제 예전의 엄지와 같은 꼴이 된 자기들을 보며 놈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놓인 자실장은 가족들을 둘러보더니 그 자리에서 똥을 지리고 말았다. 더 지켜볼까 하다가 그냥 뒤돌아서서 갈 길을 갔다. 그런데 주위에서 하나둘 씩 다른 실장석들이 나타나 그 가족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독라로 변한 걸 보고 행동에 나선 모양이다. 가족끼리도 그리 가혹한 처분이라면, 원래부터 남인 놈들은 어떤 짓을 할지 상상도 안 간다.

얼마 안 가 등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저번에 들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처절한 소리였다. 뭔가 고기 씹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역시 산책은 심신에 좋은 것이다. 더불어 약간의 심심풀이도.



-끝-





탁아

 

어느 성체 들실장과 자실장 하나가 풀숲에 숨어 뭔가를 훔쳐보고 있었다.
골판지 집을 나서는 친실장과, 몰려나와 배웅하는 자들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마마는 먹을 걸 구하러 가는 데스우. 장녀는 이모토챠들 잘 돌보고 있는 데스.]

[알겠는 테츄! 귀여운 이모토챠들은 와따시가 지키는 테츄!]

[마마, 오늘도 맛난 거 가득가득 가져오는 텟츄웅♡]

[레에에에엥, 좀 더 놀아주고 가는 레체에에엣]

실장석이 사는 곳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아침의 풍경.
그러나 그걸 노려보는 두 쌍의 눈동자는 심상찮은 분위기를 띄고 있다.

[저 분충의 행동거지를 잘 보고 들어두는 뎃승.]

[하이 텟치.]

친실장이 멀리 떠나는 걸 지켜본 뒤, 둘은 풀숲 사이로 몸을 감췄다.


친실장은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운 좋게 살점이 많이 남은 생선뼈를 발견한 것이다.
매운탕을 끓였다가 쉬어서 버린 것이지만, 상했든 썩었든 별 탈 없이 먹어치우는 실장석에겐 어디까지나 좋은 먹이다.

[마마 온 데스~]

그러나 친실장이 골판지 집으로 들어왔을 때 본 광경은......

[테츄아아아아아아악! 아픈 테츄! 먹지 마는 테츄!]

[데프프, 잘 먹고 잘 자란 자라 그런지 진미인 뎃승. 좀 더 맛있어지게 천천히 먹어주는 뎃승~]

피와 내장으로 흠뻑 젖은 골판지 안,
그리고 들실장에게 다리부터 뜯어 먹히는 중인 자신의 자.
멍청히 굳었던 것도 잠시, 격분한 친실장은 비장의 무기인 대못을 꺼내들고 달려든다.

[데갸아아아아아악! 당장 자를 내려놓는 데스 분충!]

마치 어느 고오오급 시계의 사이보그 사무라이가 ‘류진노 켄노 쿠라에!’를 외치며 선질풍참을 갈기는 듯한 기세.
그것에 눌렸는지 들실장은 대못이 팔을 스치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먹던 자를 던지고는 그대로 밖으로 달아났다.
친실장은 얼른 자를 살핀다. 피범벅이 된 채 다리 하나를 비롯하여 곳곳의 신체가 뜯겨나갔다.

크기와 냄새를 통해 친실장은 가까스로 그것을 ‘장녀’라고 인식했다.

[마마, 마마인 테츄...?]

[정신 차리는 데스 장녀! 이게 어찌 된 일인 뎃샤아아아아!]

[테에에에에.... 왠 아줌마가 와서 이모토챠들 다 잡아먹어버린 테츄... 와따시는 특별히 맨 마지막에 먹어준다고 괴롭히며 놀았던 테츄... 죄송한 테츄... 오네챠들 지킨다고 했는데 못 지킨 테츄...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엥!]

[그나마 오마에라도 살아남아 다행인 데스! 오로로롱, 오로로롱!]

확실히 다른 자실장과 엄지가 모조리 잡아먹힌 건 큰 손실이지만, 적어도 성체가 될 확률이 제일 높은 장녀가 살아남은 건 천만다행인 일이다. 실장석 특유의 강력한 재생력이 뒷받침 되면 장녀가 당한 중상은 잘 먹이기만 해도 며칠 이내에 나으리라.
그러나 들실장에게 당한 이상 여기에 더 머무르는 건 위험한 일이다.

[집을 옮기는 데스. 여긴 위험한 데스...]

그날 밤, 친실장은 보존식량과 포갠 골판지를 들고 장녀를 업은 채 다른 곳으로 떠났다.

등에 업힌 자가 운치를 조금씩 바닥에 흘리는 건 그녀로선 알 길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로부터 두어 달이 지나, 장녀는 몸이 나은 건 물론 중실장이 되어 테스 하고 울게 되었다.
새로운 자들도 낳아서 예전보다 오히려 가족이 많아졌다.
친실장은 먹이 조달 겸 독립 교육을 위해 장녀를 대동하고 다녔다. 그리하여 장녀는 근처의 지리와 위험요소들을 익히게 되었다.

그날도 친실장은 장녀를 데리고 먹이 조달을 나설 생각이었다.

[차녀챠는 문을 굳게 닫아걸고 마마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리는 데스.]

[알겠는 테치! 마마와 장녀 오네챠 잘 다녀오시는 테치!]

[다른 이모토챠들은 차녀 이모토챠 말 잘 듣고 있는 테스. 착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아마아마한 콘페이토라도 어떻게든 얻어다 주겠는 테스.]

[테에! 콘페이토테치!]

[와따치도 먹고 싶은 레츄!]

그렇게 떠들썩한 배웅이 막 끝나려는 순간, 풀숲을 헤치고 뭔가가 나타난다.
친실장은 대경실색했다. 예전에 자신의 자들을 거의 모두 먹어치웠던 그 들실장이었던 것이다.

[데프프, 이번에도 맛난 분충들을 많이 만들어둔 데스우? 이번에도 신세 좀 지는 뎃승.]

[웃기지 마는 데샤아아아아앗! 오마에는 이번에야 말로 와타시가 직접 요절을 내주는 데스!]

[테에에에엥! 마마, 저 아줌마 무서운 테체아아앗!]

[자들은 모두 들어가는 데스! 장녀! 오마에는 예비용 보검을 들고 따라오는 데스! 이모토챠들의 원수를 갚을 기회인 뎃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친실장은 무기를 몇 개 더 구했으며 장녀에겐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휘두르는 법까지 가르쳐놨다.
이번에야말로 그 교육이 빛을 발할 때다. 저 분충을 독라달마자판기노예로 만들어 죽은 자들의 원한을 풀리라,
친실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원수 말인 테스?]

푹-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

[원수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던 테스.]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장녀가 자신을 찌르기 전까진.

[테프프, 솔직히 기다리기 지쳤던 테스. 와타시는 마마가 어느 들분충에게 당해 화장실 노예가 되지 않았나 생각했던 테스.]

[데프픗, 와타시도 오마에가 멍청한 짓을 해서 솎아내진 건 아닌가 생각했던 뎃승... 다행히 둘 다 지금까진 무사했으니 잘 된 데스야~]

[데, 데뎃?!]

친실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장녀와 저 원수가 서로 친자인 것처럼 군단 말인가?
이모토챠들을 모조리 먹어치우고 자기도 거의 먹을 뻔했던 분충을, 어째서......?

눈알을 디룩디룩 굴리는 그 꼴을 보며 비웃던 들실장이 입을 열었다.

[아직 이해 못한 것 같으니 친절히 설명해주는 뎃승. 오마에의 자는 장녀 포함해서 그날 이미 모조리 와타시가 먹어치운 뎃승. 오마에가 장녀라 생각하며 애지중지 길렀던 자는 사실 와타시의 자였던 뎃승. 오마에의 분충 자들을 훔쳐보며 행동거지를 흉내 내게 시킨 뎃승. 고기에서 짜낸 즙 좀 묻히고 연기 좀 한답시고 속아 넘어가다니 바보 아닌 뎃승? 조금만 주의 깊게 살폈다면 분명 다른 점이 보였을 것인 뎃승.]

[데쟈아아아아아......]

그동안 원수의 자를 애지중지 길렀다는 충격적인 폭로에 친실장은 행복회로를 돌릴 틈도 없이 머릿속이 망가져버렸다.
그 꼴을 지켜보던 장녀는 테프픗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마에의 운치 냄새 나는 분충들을 이모토챠라고 부를 때마다 토할 뻔한 테스. 하지만 오늘부로 모두 끝난 테스. 그래도 지금까지 키워준 건 매우 감사한 테스. 말하자면, 오마에와 오마에의 분충들은 모조리 와타시의 독립 기념 선물 노예란 말인 테스!]

[데프프, 과연 와타시의 자라 실수 없이 끝낸 뎃승. 자, 어서 독립 기념 선물 보따리를 풀어헤쳐 보는 뎃승~]

중실장은 대못을, 들실장은 심신 고루 망가진 친실장을 질질 끌며 골판지 집으로 들어갔다.
곧 안에서 자실장과 엄지들의 비명소리가 퍼졌으며, 그 이후로 친실장의 가족들 중 골판지 밖으로 살아서 나온 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뻐꾸기는 탁란을 하여 제 새끼를 다른 어미새가 키우게 한다.

실장석도 비슷하게 탁아를 한다. 다른 게 있다면 뻐꾸기가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상대에게 사기를 칠 때, 실장석은 자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능력의 소유자에게 어설프게 판돈을 걸었다가 목숨 포함해서 모두 날려먹는다는 점이지만.

그러나 실장석의 카오스인자가 발현했는지, 놀랍게도 뻐꾸기와 비슷한 수준의 발상을 떠올리는 데 성공한 실장석이 생겼다.
그 실장석은 몇 년의 생애 동안 위와 같은 행위를 몇 번이고 반복하여, 공원 절반 이상을 자신의 자로 채우는 데 성공했다.
보통의 실장석들이 그와 비슷한 행위를 입에 담기가 무섭게 목숨을 잃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놀랄만한 성과인 셈이다.

비록 정기 구제 때 발각당해 빠루의 한 줌 핏물로 맺히는 결말을 맞았으나 그 들실장은 비교적 행복하게 갔다.
미리 파놓은 탈출구를 이용해 그녀 태생의 실장석 다수가 도주하였고, 그들 대부분이 친실장의 탁아 노하우를 익혀 놓았던 것이다.

그들은 실장석의 세계를 점령해갈 것이다. 식물보다 느리지만, 제국처럼 광활하게.



-끝-






미도리의 기묘한 이야기 - 바람의 독라

 

내가 미도리를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5년 전, 20년만의 한파가 몰아닥친 겨울의 일이었다.

편집자와의 술 약속이 갑자기 취소된 바람에 하릴없이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려는 찰나, 웬 꾀죄죄한 실장석 하나가 자실장 하나를 안아들고 내게 다가온 것이다. 오리털 파카로 막아도 베일 것 같은 칼바람을 실장석의 같잖은 옷가죽 한 장으로 버틴다는 건 어불성설이건만, 그 실장석은 곧 파킨사할 듯 파들바들 떨면서도 제법 예의를 갖춰서 인사하는 게 아닌가. 세상엔 애호파도 학대파도 있다지만 난 굳이 말하자면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쪽이어서, 그 조그만 게 대체 무엇을 하려고 내 앞을 막나 하고 시큰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원래는 자식을 키우는 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이번 겨울은 너무나 추워 버티기 힘드니 날이 풀릴 때까지만 잠시 맡아달라는 말이었다. 몰래 탁아를 시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개념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말투까지 실장석치고는 꽤 정중한지라 혹시 원사육실장인가 하고 살펴봤지만 인식칩도 이름표도 없고 옷도 전형적인 들실장의 것인 걸 보면 그런 건 아닌 듯했다. 혹시나 하고 이번엔 자실장을 살폈다. 간혹 분충들이 자기 자식을 학대해놓곤 살려달라며 자작극을 벌인단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실장은 이미 죽어 있었다. 사람도 못 견디는 추위를 친실장의 품속이라 한들 미약한 자실장이 버틸 리가 없었으니. 그렇게 일러주자 친실장은 소리도 못 지르고 그 자리에 엎어져 버렸다. 아, 파킨사했나 싶었지만 기절했을 뿐 아직 살아 있었다. 그냥 두고 가려니 왠지 마음에 걸려 집에 데리고 와 버렸다. 그 실장석이 미도리였다.

미도리는, 정말 보기 드문 개념실장이었다. 따뜻한 물로 씻기고 마른 걸레로 덮어주자 곧 정신을 차린 다음 한 것이 자식의 죽음을 애도하기 앞서 목숨을 구해준 내게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을 정도로.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자신이 무엇을 하는 게 신상에 이로운지 잴 수 있는 실장석은 거의 없으며, 때문에 매 초마다 몇 마리씩 죽어나가고 있는 게 놈들의 현실인 걸 놓고 보면 그와 같은 태도는 정말 희귀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운도 기가 막히게 좋았다. 적어도 학대파가 아닌 날 찾아 왔으니. 흥미가 돋은 난 미도리를 키우기로 결심했고, 4년 뒤 불행한 사고가 생기기 전까지 우리는 한 집에 살았다. 불쌍한 미도리, 눈깔사탕을 한 입에 삼키면 안 된다고 그렇게 일렀건만.

미도리와 함께 지내면서 난 보통 실장석을 기르는 집에선 거의 하지 않을 짓을 종종 했다. 그동안 살면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물론 미도리가 그만한 지성을 가진 흔치 않은 실장석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에 앞서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자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미도리는 내 엉뚱한 시도에 훌륭하게 보답해주었다. 언젠가 미도리는 공원 방향으로 이상한 옷을 걸친 인간들이 몰려가고 난 다음이면 으레 바람에 비명과 피냄새가 섞여 오는 일을 다섯 번은 겪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미도리가 말한 건 2년에 한 번씩 있는 공원구제임이 분명했고, 그 말에 따르면 그녀는 최소 10년은 넘게 살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명할 뿐만 아니라 오래 살아왔기도 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오래 살고 그만큼 많은 걸 보고 들었기에 현명해졌다는 게 맞겠지만. 태어나자마자 죽는 경우도 부지기수인 들실장의 삶에 비하면 그녀는 정말 천운이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오래 산 탓인지 미도리는 종종 내게 믿지 못할 이야기를 하곤 했다. 확실히 1년마다 세대가 바뀌는 실장석의 특성상 오래 살면 살수록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되리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도 미도리가 언젠가 내게 해주었던 걸 기억을 되살려 받아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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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시가 아직 엄지에 불과했던 때의 일인데스.

그땐 와타시도 마마와 오네챠, 이모토챠, 우지챠와 함께 공원에서 살고 있었던 데스. 그땐 그래도 먹이 구하기가 쉬워서 지금처럼 다들 고생하면서 살진 않았던 데스. 다만 그 공원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던 데스.

굉장히 큰 실장이 하나 있었던 데스. 공원의 두목실장이었던데스. 정말이지 커서, 닝겐사마의 허리까지 올라오는 놈이었던 데스. 붕쯔붕쯔를 하면 닝겐사마들도 슬금슬금 피할 정도였데스. 덩치만큼 포악해서, 마음에 안 들면 때려눕히곤 사지를 뽑아버렸던 데스. 다들 당해내지 못해서, 먹을 게 풍부해도 놈에게 바치느라 온종일 굶어야 했던 데스. 게다가 놈은 동족식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놈이었던 데스. 보통은 어쩔 수 없이 하거나 갈 데까지 간 놈들이나 하는 걸, 놈은 마치 콘페이토를 먹듯이 해치웠던 데스. 와타시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오네챠들도, 놈에게 먹혔던 데스.

놈에게도 자실장들이 있었지만 둥지에다 꽁꽁 숨겨두고 언제나 우지챠 한 마리만 데리고 다녔던 데스. 그 우지챠도 무지막지 큰 놈이었던 데스. 뱃속에 있을 때 같이 있던 엄지와 우지챠를 몽땅 먹어 치우고 태어난 놈이라 다들 수군거렸던 데스. 우지챠 주제에 독라 노예를 거느릴 정도로 건방졌던 데스.

다들 그 놈만 보면 치를 떨었던 데스. 하지만 이길 수 없어서 다들 숨죽이고 살았던 데스. 겨우 비축한 비상식량을 빼앗기고, 자실장과 엄지가 잡아먹히고, 우지챠는 큰 우지챠에게 잡아먹히고, 대들면 팔다리가 뽑혀 자판기가 되거나 독라노예가 되는 매일매일이었던 데스. 다들 언제까지 이리 사나 하고 거의 파킨사 직전에 몰려 살았던 데스.

그날까지는 데슷.

어느 날 공원 입구에 웬 독라가 나타났던 데스.

우리 구역의 놈은 아니었던 데스. 분명 다른 데서 쫓겨나 여기까지 흘러온 놈이라고 다들 수근거렸데스. 희한한 건 독라인데 뭘 걸치긴 했다는 것이데스. 얼룩덜룩한 턱받이를, 몇 겹이고 허리에다 두른 놈이어서 다들 희한하게 보고 있던데스.

이윽고 다른 실장이 그 독라에게 다가가서 타일렀던 데스. 분명 매우 마음씨 여린 실장이었던 데스. 여기엔 아주 흉악한 놈이 살고 있어서 머무를 데가 못 되니 차라리 도망가는 게 좋을 거라고 했던데스. 보통 독라를 보면 노예로 삼으려 들거나 자판기로 만드는데 말이데스. 그런데 그 독라는 가만히 듣다가 별안간 이렇게 외치는 게 아닌데스?

‘이 곳에서 가장 강한 놈을 데려오는 데스!’

마치 화난 닝겐사마가 외치는 것처럼 커다란 목소리였던 데스. 옆에서 듣고 있던 몇이 바로 빵콘해버릴 정도였던 데스. 그러자 소리를 들었는지 몇몇 분충이 나뭇가지를 들고 달려왔던데스. 건방진 독라를 자판기로 만들어버려야 한다고 했던데스. 무서워서 와타시는 마마 뒤로 숨었던 데스.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데스.

독라가 손을 내지르자 나뭇가지를 들고 달려든 분충의 몸에 구멍이 나버렸던 데스. 다른 한 놈은 팔을 휘두르자 머리가 한 바퀴 돌고는 그대로 파킨해버렸던 데스. 그러자 다른 분충들이 모두 빵콘해서 흩어져 버린데스. 와타시들은 보고도 믿을 수 없어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데스. 그러자 독라가 먼저 이쪽으로 다가왔던 데스. 마마는 독라가 와타시를 해코지할까봐 꼭 껴안은 데스. 그렇지만 독라는 와타시한텐 관심이 없었데스. 다만 이렇게 말한 데스.

‘이런 친피라론 부족한데스. 가장 강한 놈을 데려와라는 데스.’

마마는 어떤 면에선 무모했던데스. 어쩌면 두목실장을 몰아낼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했던데스. 실패하면 일가실각이지만, 걸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던 데스. 그래서 독라를 두목실장의 둥지 앞에 데려갔던데스. 독라는 둥지 앞에 오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던 데스.

‘가장 강한 놈은 이리 나오라는 데스. 나오지 않으면 겁쟁이 분충일 뿐인데스.’

어느새 구경하러 나온 일가가 그 기세에 모두 빵콘해버린데스. 이윽고 두목실장이 큰 우지챠와 함께 나온데스. 하지만 붕쯔붕쯔도 없이 그저 데스스스 웃기만 했던 데스. 하기야 독라 주제에 감히 닝겐사마도 가까이 않는 자신에게 덤빈다는 게 기가 찼을 것인데스.

‘데스스스, 멍청해보이는 독라데스. 자판기로 쓰면 딱 좋을 것 같은 데스.’

옆의 우지챠도 거들었데스.

‘멍청한 레후. 오마에는 마마의 붕쯔붕쯔만 봐도 빵콘해버린레후. 여기서 그만두면 특별히 와따시의 프니프니 노예로 삼아주는 레후. 목숨을 건질 유일한 방법인 레후.’

하지만 독라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다가갔던 데스. 그러자 두목실장 앞으로 몇몇 분충들이 나선데스. 닝겐사마들도 그렇지만, 힘센 자 곁엔 언제나 아양을 떨어서 콘페이토 조각이라도 챙기려는 분충들이 있는데스. 놈들도 그런 부류였던 데스. 자그마치 열둘이나 됐던 데스. 놈들도 두목실장을 믿고 다른 실장들의 식량을 뺏던 놈들이었던데스. 놈들이 한꺼번에 덮쳤던데스. 우린 분명 독라가 금방이라도 갈기갈기 찢겨서 고기가 될 거라 생각했던데스.

정확히 반대였던 데스. 덤벼들었던 분충들은 하나 같이 어디가 부러지거나 구멍이 나서 쓰러졌던 데스. 대략 눈 세 번 깜빡이자 열두 놈이 모조리 쓰러진데스. 이건 닝겐사마께 거짓 없이 전하는 진실인데스.

그 모습을 보자 두목실장도 조금 두려워졌는지 약간 물러났던데스. 하지만 두목이 고작 독라에게 밀려서야 체면이 서지 않았던 데스. 결국 두목실장은 붕쯔붕쯔로 위협하며 독라에게 다가갔데스. 손을 뻗어서 매번 하던 것처럼 팔을 뽑으려 했던 데스.

독라가 더 빨랐던 데스. 뻗은 팔을 잡아서 비틀어버린 데스. 이상한 소리와 함께 두목실장의 팔이 풀잎처럼 덜렁거렸데스. 그와 같은 소리는 언젠가 학대파가 찾아와 이웃의 실장의 목을 비틀어 뽑을 때 났던데스.

한 번도 그렇게 다쳐본 적이 없는 두목실장은 데샤아아아악 하고 울부짖으며 뒹굴었던데스. 그러자 독라가 그 위로 올라타고는 두목실장의 얼굴을 연신 갈겼던데스. 얼마나 세게 갈겼는지 한 번 갈길 때마다 얼굴이 안으로 쑥 들어가는데스. 피범벅이 되어서 눈이 물들어 강제출산이 되어버린데스. 뎃데레- 하고 두목실장이 우지챠를 쉴 새 없이 쏟았지만 독라는 멈추지 않았던 데스. 독라가 손을 멈췄을 땐 공원의 모든 실장들이 모여 구경하게 되었고, 두목실장의 머리는 목 위에서 사라져 있었던 데스.

큰 우지챠는 ‘마마가 핀치레후. 세레브한 와타시는 독립하는 레후-’하면서 도망가고 있었던데스. 독라는 그마저도 보내지 않았던 데스. 꼬리를 낚아채고는 땅바닥에다 세게 내리쳤데스. ‘레뺫-’하고 우지챠의 눈알이 튀어나간데스. 그걸로 두목실장의 시대가 끝장난데스. 독라는 두목실장의 시체에서 턱받이를 뺏들고는 허리에다 매달았데스. 그제야 와타시들은 독라가 다른 여러 곳의 두목실장을 끝장냈다는 걸 깨달은 데스.

제일 먼저 그 전날 자실장을 잡아먹힌 실장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던데스. 그 뒤에 이어 모두가 두목실장의 시체에 달려들었던데스. 복수의 시간이었던 데스. 시체는 금방 뱃속으로 사라지고 갓 태어난 우지챠들도 간식이 된데스. 두목실장의 집도 털린 데스. 자실장들도 모조리 끌려나와 모두의 식사로 전락한 데스. 닝겐사마의 말로 하면 인과응보인 데슷?

하지만 독라는 시원찮은 표정이었던 데스. 다른 실장들이 둘러싸고 모두의 보물이라고 치켜세웠지만 기뻐하는 기색이라곤 보이지 않았데스. 와타시는 궁금해 하다가 문득 독라의 팔을 봤던 데스. 독라의 팔 끝엔 조그만 상처가 나 있었던 데스. 아마 두목실장이 죽기 전에 마지막 발악으로 물어뜯었던 게 분명한 데스. 독라도 그걸 보고 있었던 데스. 그러곤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데스.

‘아직 수행이 부족한 데스...’

독라는 그 길로 공원을 떠났고, 두 번 다시 볼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데스.

이 이야기는 모두 참인 데스. 와타시가 보장하는 데스.

이 이후에 공원은 평화로워졌지만 얼마 못 가 또 위험한 일이 생겼던데스. 마마가 공원을 버리고 와타시를 데리고 나와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건 바로 그 때문인데스.

그 이야기에 대해 듣고 싶은 데스?

그렇다면 내일 아마이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달라는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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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미도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내게 해주곤 했다.

오늘 같이 바람이 차가운 날이면 으레 그때의 기묘한 이야기들이 떠오르곤 하지만, 다른 이야기들을 꺼내는 건 다음 기회에 미루도록 하겠다.


-끝-






경계선

 

4월의 두루마리 공원, 오전 1시.

“데뎃, 데베베벱-”

성체실장 하나가 화변기에 퍼질러 누운 채 총구에 힘을 주고 있다. 붉게 물든 두 눈이 출산이 임박했음을 알렸고, 벌려진 총구 안쪽에서는 묽은 배설물과 함께 점막 덩어리가 나올락 말락 하고 있었다.

이 개체는 제법 영리한 축에 드는 듯하다. 대부분의 실장석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는 수면을 취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 녀석은 다른 동족들이 곯아떨어지기를 기다린 뒤 일부러 한밤중에 출산을 시도하고 있었다. 예민한 후각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역시 낮보다는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운데도. 그 이유는 아마 다른 동족들의 습격이라는 위험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동족식에 별다른 터부를 갖지 않는 실장석에게 있어 막 출산을 끝내어 힘이 빠진 친실장과 갓 태어나 연약한 자충들은 말 그대로 한 끼 식사로의 정중한 초대장이나 다름없다. 물론 그걸 알기에 서너 마리씩 임시 무리를 짓거나 출산 이후 최소한의 조치만 한 뒤 바로 싸들고 집으로 튀는 식의 예방책을 세우긴 하지만… 그런 수고를 들여도 꼭 한두 마리씩은 배고픈 동족의 간식거리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데교오오옥!”
“텟테레~”

그러나 이 개체는 일부러 밤잠을 설치는 노고를 들인 덕에 아무런 걱정 없는 출산의 기회를 얻었다. 운좋게도 화장실엔 불까지 켜져 있었다. 노력의 대가라고 해야 할까. 일단 한 마리가 총구를 비집고 나오자 둑이 터진 듯 점막에 쌓인 자충들이 쉴 새 없이 산성(産聲)을 토하며 쏟아져 내렸다. 큰 놈은 중지 정도의 크기, 작은 놈은 새끼손가락만 하다. 꼬물대는 구더기 같은 것들이 그렇게 11마리 태어났다.

숨을 몰아쉬던 성체는 자들의 수를 헤아려보고는 꽤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짓는다. 허나 안심하긴 이르다. 변기에 고인 물이 시간을 최대한 늦춰주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고 있다간 몇 분도 안 되어 점막이 말라붙어 저실장으로 변할 터이다. 일단 제일 큰 놈을 하나 골라 혀로 점막을 핥는다.

과학의 힘으로도 채 해명되지 않은 경이로운 순간이다.

점막이 제거되어 공기와 접촉하자 구더기 같던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돌기가 길어져 사지를 이루고 포대기는 분리되고 벌어져 두건과 원피스 형태의 옷을 이룬다. 곧 뒷머리와 턱받이가 돋고 팬티가 생긴다. 인간은 이 변이에 대해 그저 경악밖에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나 실장석에게도 충분히 신비스러운 시간이다.

“텟츙~”

친실장에게 자실장은 애교를 떤다. 건강한 우량아다. 키울 만한 가치가 있다. 친실장은 순식간에 판정을 끝내고는 변기 바닥에 자실장을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위석으로 각인되었는지 가장 가까운 점막 덩이에 달라붙어 물어뜯고 핥아댄다. 친실장 또한 다음 자충을 집어 들어 점막을 취한다.

“레치치칫!”

점막이 사라지고 변이가 끝난 자충이 엄지 특유의 미성숙한 웃음소리를 냈다. 순간 친실장의 얼굴이 굳는다. 들생활에 있어 응석받이 성향이 강한 엄지는 애정 깊은 개체가 아니고서야 그다지 반갑잖은 존재다. 그러나 일일이 신경 쓰고 대응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맏이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곁에 내려놓고는 다시 작업에 임한다.

다행히 두 마리 모두 별 탈 없이 친의 점막 제거를 돕는다.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몇 분 뒤, 11마리 모두의 점막 제거가 끝났다. 결과는 자실장 네 마리, 엄지 세 마리, 저실장 네 마리. 자식욕이 강한 개체라면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친실장에겐 그럭저럭 합격점이다. 갖가지 울음소리로 적막을 깨는 자들을 내버려둔 채 친실장은 잠시 주위를 살핀다.

인기척도, 불길한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다. 당분간은 괜찮을 듯하다.

마음을 정한 듯 친실장은 옷을 걷는다. 적록색의 젖꼭지가 드러난다.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혐오스러워하는 기이한 신체. 그러나 여기서부터 실장석의 출산 그 두 번째 신비가 펼쳐지는 것이다.

친실장은 우선 자실장 두 마리를 집어 들어 가슴팍에 묻는다. 순간적으로 숨이 막혀 버둥대던 두 놈은, 곧 위석에 각인된 기억에 따라 꼼지락대며 젖꼭지를 찾아 움직인다. 그렇게 어미의 젖을 찾아내어 물고 빤 지 몇 초 지나지 않아, 신비의 정체가 직접 그 몸으로 드러난다.

중지 비슷한 크기의 작달만한 몸이 몇 배속 영상처럼 순식간에 자라난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두 마리는 어지간한 손바닥 정도의 크기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자실장의 몸집으로 자라났다. 물리법칙이 실종된 듯한 광경. 그러나 그 본질은 의외로 평범하다.

꿀벌의 애벌레가 로얄젤리를 먹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여왕벌과 일벌로 갈리듯, 실장석의 초유는 자충을 ‘진정한 새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비록 자실장과 엄지가 갓 태어날 땐 비슷한 크기더라도 곧 몸집과 건강 상태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나는 건 바로 이 초유의 영향 탓이다. 제 머리만 한 새끼를 십 수 마리씩 뱃속에 넣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 또한 초유의 힘 덕분이다.

물론 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개체는 한정되어 있다. 비상식량 취급인 저실장은 당연히 제외된다. 엄지 또한 마찬가지다. 신체 대부분은 비슷하게 발달해도 아직 머리 부분이 미성숙한 탓에 초유의 폭발적인 성장력이 잘 듣지 않는 탓이다.

불운한 추자들도 초유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늦가을엔 노동력을 제공하고 겨울엔 몸을 비상식으로 제공할 놈들에게 초유를 나눠준다는 건 아까운 일이니까. 자를 비상식으로 여기거나, 번식욕과 권력욕을 동일시해 다산하는 개체의 경우엔 아예 초유를 먹이는 것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소모품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건 과분한 일이니까.

아무튼, 순식간에 몸이 불어난 언니들을 보며 변기 바닥에서 자충들은 신기해한다. 대단하다, 멋지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작디작은 몸으로 아우성쳐보지만 친실장은 냉정하게 테치테치 우는 자충들만 들어다 젖을 먹인다.

저실장들이야 지능이 떨어지니 곧 흥미를 잃고 프니프니를 요구하지만, 엄지들은 슬슬 떼를 쓰기 시작한다. 왜 저 녀석들만 먹이는 거냐! 나도 먹고 싶다! 먹고 커지고프다! 그러나 친실장은 무시한다. 이미 격이 달라진 자실장들 또한 자기네들끼리 떠들기 바쁘다.

곧 한 마리가 폭발하는 분충성을 이기지 못하고 친실장을 매도하기 시작한다. 당장 내게도 젖을 먹여라, 똥애미! 독라로 만들어버린다! 위석에 각인된 기억은 이미 그들에게 독라는 노예라는 철칙까지 가르쳐준 듯하다.

이윽고 초유를 다 먹인 친실장은 자실장들을 쓰다듬으며 엄지들을 관찰한다. 엄지들은 떼를 쓰고 악을 지르고 구르고 욕을 한다. 얼음장 같은 적록색 눈에 곧 남다른 한 마리가 들어온다. 다른 자매들을 보며 어쩔 줄 모르는 엄지. 이러면 안 된다, 이건 아니다 하는 말을 해보지만 자매들이 듣지 않아 난처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감식은 순식간에 끝났다.

친실장은 일어났다. 엄지들은 순간 멈칫한다. 일어선 마마는 그 무엇보다도 커서 올려다보려면 목이 꺾일 지경이다. 그 커다란 마마가 곧 시커먼 무언가에다 자신들을 들어 조심스럽게 집어넣는다. 그것이 실장석의 필수품인 비닐봉투라는 건 아직 엄지들은 모른다. 이젠 알 필요도 없지만.

행여나 뭉개질까 조심조심, 엄지와 저실장들을 집어다 봉투에 넣고는 둘러멘다. 비닐봉지 안에서 엄지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치프픗 웃어댄다. 똥애미가 드디어 분수를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걸을 필요 없이 편히 들고 가 주는 것이다. 분명 콘페이토와 스시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분충이 행복회로를 돌리는 속도는 동족들에 비견해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다.

그러나 한 마리,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엄지만은 비닐봉투 대신 자실장들 곁에 놓아진다. 왜 자신은 다른 자매들과 함께하지 않는지 어리둥절하던 엄지에게 친실장은 말한다.

-오마에는 걷는 데스. 뒤따라오는 데스우.

그리고는 걷는다. 자실장들도 곧 그 뒤를 따른다. 영문을 모른 채 멍하니 있던 엄지도 황급히 뒤따라 걷는다. 엄지의 작은 보폭으론 느리게 걷는 편인 친실장을 따라잡기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하지만 본능이 알려준다. 여기서 뒤처지면 버림받는다. 버림받으면 죽음뿐이다. 울음마저 참아가며 엄지는 친실장과 언니들을 뒤쫓는다.

앞서 말했듯이, 들생활에서 엄지는 반갑잖은 존재다. 응석은 심하고, 식탐은 강하고, 지능은 떨어지고, 분충일 가능성도 높다. 그러므로 들실장은 엄지를 자식이라기 보단 일종의 ‘여러 기능이 달린 비상식량’으로 다루곤 한다. 저실장이 파킨하지 않게 프니프니를 시키거나, 집안이 더러워지지 않게 운치를 치우거나, 자들에게 예절을 가르칠 때 교재 대신 이용하는 등. 물론 무엇을 시키든 결국은 운치노예로 쓰이다가 잡아먹히는 결말이긴 하지만.

그러나 드문 예외가 있다. 기를 만한 가치가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을 때가 그렇다. 비록 초유도 영양분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엄지가 제대로 성장할 기회는 드물지만, 놈들도 역시나 실장석. 저실장도 고치를 틀고 우화하듯 운만 따라준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친실장은 눈치를 살필 줄 아는 엄지를 따로 골라낸 것이다. 만약 집까지 제대로 따라온다면 엄지는 막내로 대접받으며 자랄 것이다. 뒤처진다면… 뭐, 그땐 자신이 상관할 바 아니니 상관없고.

흙길을 밟으며 아픔을 느끼는 엄지는 봉투 안에서 떠들고 있는 자매들이 부러웠다. 봉투 안의 엄지들은 나머지 한 마리의 자매가 버려졌다며 웃고 떠드는 중이었다. 잠시 뒤엔 처지가 거꾸로 될 것이다. 처절하게. 놈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다. 사지를 하나씩 언니들의 첫 식사로 헌납당한 뒤 운치굴에 처박혀 프니프니노예로 여생을 보낼 것이다.

자와 노예 사이의,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선은, 그렇게 지금 막 정해졌다.

시간은 이제 오전 2시에 다다랐다. 도심의 밤하늘엔 별도 달도 없지만, 대신 가로등의 주황빛 조명이 보도를 비추고 있다. 그 빛을 친실장 하나와 자실장 네 마리와 엄지 한 마리가 가로지르며 잠시나마 길쭉한 그림자를 남겨놓았다.

그 일가의 앞날이 번영일지 실각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딛는 걸음은 그림자만큼이나 곧았다.


-끝-






약탈자들 1~2 (완)

 

독라의 이름은 메론이었다.

이름이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메론은 원래 사육실장 출신이었다. 만약 자를 낳지 않았다면, 낳았다 하더라도 눈앞에서 자들이 처분당하는 현실을 받아들였다면, 어쩌면 아직까지도 메론은 여전히 실장푸드와 사육복을 누리는 생활을 이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들의 죽음에 눈이 돌아간 나머지 주인의 발목을 물어뜯은 대가는 참혹했다. 최후의 자비로 골판지 박스는 남겨놓고 간 주인이지만, 사육실장을 독라 상태로 공원에 방생한다는 건 사실상 직접 손대지만 않았을 뿐이지 사형선고 판결이나 마찬가지라는 건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기껏해야 하루 이틀 버티고 끝장날 거라 주인은 생각했다.

그 예측은 틀렸다.

[마마는 먹을 것을 구하러 가는 데스우. 자들은 마마가 올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마는 데스.]

[하이 테치. 오늘도 맛난 거 잔뜩 가져오는 텟츄웅!]

[마마 와따치도 맛난 거 먹고 싶은 레치!]

[레후? 우지챠도 먹는 레후? 그럼 프니프니 안 하고 가도 괜찮은 레후.]

골판지를 나서는 메론을 자들이 배웅했다. 자실장이 둘, 엄지가 셋. 게다가 웬만하면 비상식 취급받을 저실장도 하나 있었다. 공원의 독라가 키운다곤 생각지 못할 대가족. 애초에 독라로 버려진 지 1년을 넘겼는데도 화장실 노예가 아니라 골판지 하우스의 주인 노릇을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메론은 해냈다.

운이 죽여주게 좋아서? 글쎄. 들실장의 세계에서 운이란 믿을 게 못 된다. 아침 때 불행을 넘기더라도 저녁 때 죽음의 운명이 내려치는 게 놈들의 일상이다. 이 모든 건 오로지 메론 자신의 수완 덕분인 것이다.

위이이이이잉-

[데에에에....]

어디선가 울리는 소음에 메론은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언젠가부터 계속 들려오는, 고막을 자극하는 불쾌한 울림. 마치 집 근처를 맴도는 것 같은 느낌에 등골이 싸하기도 하지만 저건 아무래도 어쩔 수 없다. 그보다 먹을 걸 구하는 게 더 급하다. 오늘 당장 먹을 것과 저장식을 해결해야 한다. 아직 그럭저럭 남아 있긴 하지만 들생활에서 앞날이란 알 길이 없는 것. ㅁ슨 수를 써서든 최대한 확보해놓는 게 좋다.

마침 메론에겐 좋은 계획이 있었다. 독라 사육실장이란 죽음의 패널티를 넘기게 해준 실장석 나름의 수완이, 구체적으로는 메론의 팔에 들린 비닐봉지 안의 무언가가 오늘도 그 위력을 발휘할 참이었다.

***

[마마, 저기 보는 테치! 왠 못생긴 아줌마가 독라로 있는 테치!]

[데프픗, 그런 데스. 참으로 꼴불견인 독라인 데스. 대낮에 나돌아 다니다니 죽음을 자청하는 모양인 데스.]

[마마, 죽게 놔두긴 너무 불쌍하니 세레브한 와타치가 노예로 삼게 해주는 테츄!]

[오마에는 너무 착해서 탈인 데스. 그럼 가서 저 독라를 노예 삼아 화장실에 처박도록 하는 데스우~]

먹이를 구하러 나온 듯한 친실장과 자실장이 메론에게로 다가왔다. 외적인 미를 중요시하는 실장석에게 있어 한눈에 알아보기 쉬운 옷과 머리카락은 곧 미의 상징이자 지위의 표식이다. 자연히 그걸 잃은 실장석은 하등 개체, 노예로 취급되어 부려 먹히거나 포식당해 삶을 마감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실장과 친실장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메론에게 다가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메론의 발밑까지 다가온 장녀는 곧 팬티를 내리고는 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운치를 한껏 싸질렀다. 그리고는 그걸 한 움큼 퍼서 메론의 발에다 발랐다. 노예로 삼겠다는 마킹이었다.

성체인 메론과 자실장의 체격 차이는 두 배를 웃돈다. 그러나 동족간의 포식이 만연한 실장석임에도 자실장에겐 두려워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등 뒤에 버티고 선 친실장을 믿는 걸까.

[노예! 오마에는 세레브한 와타치의 노예로 임명된 테치! 어서 도게자를 한 뒤 와타치의 총구를 핥는 테치! 그러면 와타치가 마마에게 일러 화장실에 살게 하는 자비를 베푸는 테츄!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독라로 만드는 테챠앗!]

[데프프, 장녀는 역시 영특한 데스.]

메론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다만 친실장을 눈여겨볼 뿐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눈빛. 그러나 친실장은 장녀를 응원하느라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메론이 비닐봉지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등 뒤에 감추는 것도 보지 못했다. 비닐봉지를 손에서 놓는 건 그저 곧 도게자를 하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테, 테? 테찌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잇?! 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자, 장녀어어어어어어어어어?!]

그 독라가 갑자기 자를 잡아들어 다리를 물어뜯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마맛! 마마앗! 살려주는 테츄! 노예가 미친 테치! 미친 독라인 테챠아아아아앗!]

[데겍! 당장 장녀를 놓는 데스, 미친 분충! 당장 자판기로 만들어버리는 데샤아아아앗!]

장녀의 오른다리를 다 뜯어먹은 메론은 친실장이 달려드는데도 느긋하게 서 있었다. 다만 코에 주먹이 면상에 처박히기 직전에 등 뒤에 숨겼던 무언가를 앞으로 뻗었을 뿐이다.

[데겍...!]

다름 아닌 꼬챙이였다. 공원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파는 닭꼬치를 꿰던 것이다. 어느 몰지각한 시민이 먹고 버린 것을 메론이 주워서 일종의 단창처럼 다듬었고, 그 회심의 무기는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종종 요긴하게 쓰이곤 했다. 이번 희생양인 친실장은 구멍 난 목을 부여잡은 채 바닥에 뒹굴었다. 피가 목구멍을 막아 입을 열 때마다 꺽꺽거리는 소리만 났다.

동족이 험한 꼴을 당하면 보통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조롱하는 게 들실장의 본성이다. 그러나 메론의 얼굴엔 아무 표정도 없었다. 숨이 막혀오는 친실장에게 그 무표정은 오히려 린치를 가하는 가학심 가득한 동족의 얼굴보다 더 끔찍한 것이었다.

[테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잇?!]

메론은 뒤이어 장녀의 왼팔을 뜯어먹은 뒤 그대로 등 뒤로 던져버렸다. 그러고선 나지막이 물었다.

[오마에, 아까 와타시를 어떻게 하겠다 지껄인 데스?]

친실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메론도 별다른 대답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는지 말을 거두었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다.

친실장은 왼쪽 눈두덩이에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메론이 꼬챙이 끝으로 그어버린 것이다. 본능적으로 메론의 속셈을 눈치채버린 친실장이 그만두라 외치려 했지만 목소리는 피에 잠겨 나오지 않았고, 다만 뱃속이 부글거리며 불운한 탄생을 예고하는 중이었다.

‘안 되는 데스, 지금은 안 되는 데스! 이 미친 독라 앞에선 안 되는 데샤아아아앗...!’

[텟테레~]

소리 없는 절규를 무시한 채 친실장의 몸은 출산신호를 받아들였다. 곧 몸의 영양분을 짜내어 만들어진 저실장들이 차례차례 쏟아져 나왔고, 메론은 그것들을 하나씩 봉지에 주워 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노리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뒤늦은 후회 사이로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예감이 스며 나오자 친실장의 뇌는 위석붕괴를 막기 위해 맹렬히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아닌 데스... 모든 건 꿈인 데스... 모두 나쁜 꿈인 데스우...

봉지가 제법 묵직해지고 친실장이 눈에 띄게 해쓱해지자 메론은 친실장의 눈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자비를 베풀 생각인가? 아니, 뭔가 더 있다. 그러나 행복회로로 고통을 막는 것도 급급한 친실장이 그걸 깨달을 리는 만무했다. 어차피 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호흡도 제대로 안 될 뿐더러 사지는 온전하더라도 강제출산으로 힘이 다 빠졌으니.

[와타시는 가보는 데스. 남은 건 오마에들끼리 알아서 하는 데스.]

이 말만을 남긴 채 메론은 짐을 챙기곤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이윽고 행복회로가 막 끝난 친실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공짜 고기에 굶주린 동족들의 핏발 서린 눈들이었다. 자기처럼 독라를 노렸을 놈들은 메론과 친실장의 대결을 보고는 좀 더 쉬운 쪽으로 목표를 바꾼 것이다.

아무렴, 어디 구멍 날 위험이 있는 고기보단 좀 적더라도 손쉬운 고기가 낫지.

‘데, 뎃스웅...’

공포에 질려 아첨의 자세를 취하려던 친실장은 그대로 날아든 발길질과 주먹질에 넝마가 되어버렸다. 다음엔 머리카락과 옷을 뜯겨 독라가 되고, 곧이어 배를 물어 뜯겨 내장과 분대가 끌려나오고, 이리저리 당겨진 끝에 수십 조각으로 나누어져, 나중에는 그저 적록의 얼룩만이 바닥에 남았을 뿐이었다.

[테히이이이이이이이이...]

한편 보지는 못했어도 대강 친실장의 운명을 짐작했는지 장녀는 피눈물을 흘리며 버둥거렸다. 적어도 팔만 뜯어먹었다면, 차라리 다리만 다 뜯어먹었다면 비틀거리든 기어가든 움직일 수 있었을 테지만, 팔다리 하나씩이 없는 몸은 그 자리에서 비적거릴 뿐이었다.

누군가가 자기를 들어 올리는 느낌에 장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 미친 독라였다. 자신의 팔다리를 질겅거리느라 입과 이빨이 온통 적록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극심한 공포에 장녀는 성대하게 빵콘했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이잇?!]

다리 끝에 걸린 팬티가 운치의 무게를 못 이겨 바닥으로 떨어진 것도 모를 정도였다. 장녀는 남은 한쪽 팔을 얼굴에 갖다 대며 떨리는 목소리로 [텟츄웅~♡]하고 아첨을 떨었다. 바로 머리부터 뜯어 먹혀도 할 말 없는 행동이었지만 독라는 그러는 대신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장녀는 생각했다. 세레브한 와타치의 매력이 전해져서 메로메로된 테치?

[오마에, 살고 싶은 데스?]

그 한마디에 행복회로가 급격히 돌아갔다. 장녀는 미친 듯이 외쳤다.

[그런 테치! 살려주는 테치! 운치 묻혀서 미안한 테치! 다신 나쁜 짓 하지 않는 테치! 제발 목숨만 살려주는 테치 아줌마아아아앗!]

[좋은 데스. 오마에는 살려주는 데스.]

통했다! 살 길이 보인다! 이 모든 게 세레브한 자신의 매력 덕분이라 생각하며 장녀는 행복회로의 안락함에 빠져들었다. 이제 자신의 세레브한 매력에 굴복한 독라는 곧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도게자를 하며 노예로 들여 달라 청할 것이다. 그럼 제일 먼저 더러워진 총구를 핥아서 깨끗이 하는 영광을 누리게 해줘야지...

그러나 힘이 들어간 손아귀가 장녀의 허리를 짓눌러 그 망상을 깨뜨리고 덤으로 뼈와 내장을 상하게 했다.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하는 장녀에게 독라실장은, 메론은 속삭였다. 마치 악마가 달콤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유혹하는 듯한 말이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는 데스우.]

***

[테갸아아아아아아아악!]

[레에에에에엥! 레에에에에엥!]

[레후? 프니프니후?... 레뺫!]

골판지 박스 한 곳에서 비명 섞인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골판지 한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자실장. 팔다리 한쪽씩을 잃은 장녀였다. 이곳은 원래 그녀의 집이었지만, 오늘부터는 아니다. 그저 적록색 얼룩이 묻은 쓰레기만 자리에 남을 것이다. 다름 아니라 바로 그녀 자신 때문에.

[똥오네챠가 우릴 팔아치운 테챠아아아악! 저주하는 테치 똥분충!... 치벳-]

[아줌마 살려주는 렛츙~ 와따치는 착한 자인.. 레챠아아아아악!]

[레훼에에에엥- 우지챠 엄지 오네챠에게로 보내주는 레후-]

친실장은 평범한 들실장이었다. 말인즉슨 지금처럼 온화한 계절이면 절제 없이 자를 싸지르는 족속이란 것이다. 때문에 메론이 장녀의 안내에 따라 골판지 박스를 방문했을 때, 거기엔 자실장만 7마리에 엄지 11마리, 그리고 운치구덩이에서 원래 엄지였던 것으로 보이는 독라노예와 구더기 십 수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메론이 원하던 것이었고, 한편으론 한 일가의 실각을 뜻하기도 했다.

[오마에는 기다리는 데스.]라며 장녀를 골판지 구석에 처박은 메론은 즉시 문을 닫아건 채 살육에 임했다. 물어뜯고, 짓밟고, 찌르고, 도망치는 놈은 잡아채서 처박아 뭉개고, 벌벌 떠는 놈은 머리를 으스러뜨리고, 기타 등등.

그 다음엔 하나하나 꼬챙이로 찔러서 확실하게 파킨사시킨 뒤 모조리 봉지에 쓸어 담았다. 고깃덩이에 깔리며 안에 있던 저실장 몇몇이 레뺫 하고 압사했지만 메론은 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화장실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갔다.

[오마에는 먼저 보내주는 데스.]

거의 말라죽기 직전인 운치노예를 두 입에 베어 삼킨 뒤 메론은 아직도 떨고 있던 장녀를 집어 들었다. 자매들을 팔아넘겼단 죄책감과 살육의 현장을 코앞에서 목격한 충격 때문에 장녀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오마에 덕분에 수확이 컸던 데스. 고마운 데스우.]

[테... 테히...]

[그럼 약속대로 오마에는 살려주는 데스... 단.]

와그작.

[@#$%&...!!!!]

이젠 말로조차 표현할 수 없는 비명을 장녀는 목이 터져라 질렀다. 나머지 한쪽다리마저 뜯어 먹힌 탓이다. 흐르는 피를 손으로 쓱 닦으며 메론은 무정히 말했다.

[가족을 팔아넘기는 오마에 같은 분충을 바깥으로 보낼 순 없는 데스. 이젠 우리 집 화장실 노예로 평생 사는 데스야.]

확실히, 살려준다고만 했지 어떻게 살려주는지는 말하지 않은 것이다. 나름 약속을 지켰다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새로운 운치노예와 한 봉지 가득한 고기를 얻은 메론은 집으로 돌아왔다. 자들은 어미의 금의환향에 방방 뛰며 좋아했고, 그런 자들을 메론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푸근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장녀는 곧바로 화장실 바닥에 처박혔다. [저 분충에게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는 데스.] 메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메론의 자들은 화장실에 모여 장녀의 머리 위에 운치를 쌌다. 축축한 감촉과 끔찍한 냄새가 장녀의 세계를 부숴나갔다. 어째서 파킨하지 않는 테치...? 묘하게 튼튼한 자신의 위석을 원망하는 장녀였다.

한편 메론은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직 살아있는 저실장은 모조리 화장실로, 죽은 저실장과 실장석 시체들은 비상식으로 저장, 죽은 놈들 중 가장 큰 건 오늘의 만찬. 원래는 차녀였지만 이젠 허리가 물어 뜯겨 두 토막이 난 고깃덩이를 메론과 자들은 맛있게 나눠먹었다.

[많이많이 먹는 데스야.]

[마마 고마운 테치! 맛있게 먹는 텟츄웅♡]

[레프픗, 분충의 고기라 그런지 한결 더 맛난 레치.]

[레후? 고기 맛있는 레후! 운치보다 맛난 레훗!]

자들이 고기에 달라붙어 물어뜯는 걸 바라보며 메론은 머리 부분을 들어올렸다. 눈은 이미 탁한 회색빛으로 물들었지만, 절규와 증오가 뒤섞인 표정은 아직도 살아있는 듯했다. 아까 죽으면서 저주를 퍼붓던 놈이었던가. 메론은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귀찮다는 듯 이내 머리를 입에 넣고 우적거렸다. 아직 덜 발달된 두개골과 푸석푸석한 뇌가 곤죽이 되어 뒤섞였다.

메론은 생각했다. 멍청한 놈들이라고.

옷과 머리카락이 그나마 서로를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에 들실장들은 독라가 보인다 싶으면 무조건 달려들고 본다. 주인과 산책할 적에 그런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에야 들실장이 독라가 될 정도면 그렇게 뜯길 정도로 약하다는 증거니 당연히 표적이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메론의 경우는 달랐다.

주인은 몰랐지만, 메론은 사실 실장석 가운데선 꽤 영리한 축에 드는 개체였다. 주인과 함께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그녀는 여러 가지 지식을 습득했다. 그 중엔 도구를 쓰는 법과 마련하는 법은 물론 포식자가 사냥을 할 때 어떤 속임수를 쓰는지, 혹은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상대할 때 어떻게 하는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메론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했다.

사육실장일 적에 푸짐히 공급받은 영양도 한몫했다. 들실장 성체가 보통 30cm에 겨우 닿는 데 비해 메론은 40cm 가까이 자란 상태였다. 실장석끼리의 싸움이야 인간 입장에서는 그냥 토닥거리는 걸로 보일 정도로 부실한 것이지만, 이 정도까지 체격 차이가 나면 완력이든 치악력이든 무시할 게 못 된다. 거기다 도구까지 사용하니 웬만한 들실장은 함부로 덤볐다간 말 그대로 뼈도 못 추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메론은 절대 정을 베풀지 않았다. 버려진 사육실장은 습격이나 린치도 문제지만, 혹독한 들생활의 실상을 모르는 게 부지기수라 눈에 뻔히 보이는 속임수에 넘어가 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메론은 버려진 이후로 오로지 이기적으로 행동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해주었다. 덕분에 주인이 마련해준 골판지를 아직까지도 유용하게 쓰고 있는 것이고.

오늘의 약탈도 성공적이었다. 메론도 웬만하면 빼앗은 옷을 걸치고는 평범한 들실장인 양 먹을 것을 구하지만, 정기적으로 독라인 자신을 미끼로 약탈에 나선다. 약탈에서 얻은 고기는 귀중한 먹이거리다. 잘 말리면 저장식이 되고 영양도 비교적 풍부하다. 자들에게 먹이면 다른 들실장의 자에 비해 훨씬 튼튼하고 강하게 자란다.

동족식은 분충도가 높아지는 원인이지만, 엄격한 솎아내기를 통해 아직까진 눈에 띄지 않는 정도로 유지되고 있었다. 사실 메론 자신이 어느 정도 방임한 점도 있었다. 들생활에선 사육실장일 때의 순종적이고 유순한 성향보다는 조금은 난폭하고 교활한 면모가 훨씬 도움이 된다는 걸 익힌 것이다.

메론은 이렇게 키운 자들이 테스 하고 울게 되면, 곧장 약탈에 동행시켜서 사냥 방법을 전수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자들을 성공적인 포식자로 만들어 독립시키는 것이다. 강한 자들은 보다 수월하게 번성할 테고, 그렇게 자들로 공원이 가득해진다면 주인의 손에 죽은 첫 자들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은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오마에들은 와타시의 보배인 데스우. 얼른 먹고 자라는 데스.]

진수성찬에 배가 봉긋 솟아오른 자들을 메론은 껴안았다. 자들도 따스한 어미의 품에 안겨 재잘거렸다. 그리고 모녀들의 행복한 시간 사이에서, 운치투성이가 된 장녀는 피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제발 누군가가 자신을 최대한 빨리 죽여주길.

혹은 저들을 자기 가족과 똑같은 꼴로 만들길.

***

[마마는 오늘도 먹을 걸 구하러 가보는 데스. 집을 잘 지키고 있어야 착한 자인 데스야.]

[마마, 오늘은 안 가면 안 되는 테치? 아직 먹을 게 많은 테츄.]

[바보 같은 소리 마는 데스. 저장식을 많이 쌓아둬야 겨울을 버틸 수 있는 데스.]

[테에에... 오늘은 기분이 이상한 테치. 마마가 없으면 안 될 거 같은 테치.]

[차녀 오마에는 다 좋은데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서 탈인 데스. 그러면 마마도 밥만 구하고 바로 올 테니 그때까지만 참는 데스.]

[알겠는 레치! 다녀오는 레치 마마!]

[레후! 다녀와서 프니프니 해주는 레후!]

며칠 전의 수확도 아쉽다는 듯 메론은 골판지를 나섰다. 물론 이번엔 제대로 옷을 걸친 채였다. 다른 동족들과 부대끼며 음식물 쓰레기를 모으는 건 확실히 고된 일이다. 그러나 그만둘 순 없었다.

지금껏 약탈에 실패한 적도 없고 그때마다 풍부한 식량이 손에 들어왔지만 너무 자주 시도했다간 끝이 안 좋은 법이다. 자신과 비슷한 식으로, 그러나 훨씬 자주 설치던 어느 분충이 빈틈을 보이자마자 집단 린치를 당해 골판지채로 작살이 나는 걸 메론은 본 적이 있었다. 게다가 아무리 동족이 넘쳐난다 해도 무한한 건 아니다.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면 자연히 경계도가 높아지고 의심의 눈초리도 많아질 것이다.

그 사실을 이해한다는 점에서, 메론은 그 어떤 세레브 사육실장보다도 현명하다 할 수 있었다.

위이이이이이잉-

그러나 아무리 현명하다 해도 해결할 수 없는 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저 소름끼치는 소음. 머리 위에서 들리는 걸로 보아 분명 집 근처 나무가 근원일 테지만 실장석의 팔다리로는 거기까지 기어올라서 확인한다는 게 불가능했다. 집을 옮기면 될 일이지만 그러기엔 이미 재어놓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생각 같아서는 그 소릴 내는 놈을 찾아다 박살내고 싶지만... 메론은 그저 한숨을 쉬며 터덜터덜 걸어갈 뿐이다.

소음이 며칠 전보다 더 심해졌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채.

***

[렛츄웅~ 공놀이 재밌는 레치!]

[하지만 바깥에 못 나가서 답답한 레치... 오늘은 날씨도 좋은데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레츄아...]

[어두컴컴한 데만 있어야 하니 속 터질 거 같은 레치!]

[4녀 이모토챠, 얼마 전에 함부로 혼자 나가 놀다가 산 채로 찢겨져서 먹힌 분충을 못 본 테치? 마마 말대로 집안에 있는 게 상책인 테챠.]

[프니프니해주면 좋은 레후! 프니프니 언제 받아도 기분 좋은 레후!]

메론이 나간 동안 메론의 자들은 다른 집에서 강탈한 공을 가지고 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기적인 약탈 덕분에 가지고 놀 전리품은 많았지만 역시 어린 나이라 햇빛 아래서 뛰노는 것보단 못했다. 엄격한 훈육 덕에 마마의 보호 없이 나가는 건 금물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지식과 욕구 사이의 골은 쉽게 메우기 힘들었다.

[렛챠아아아앗! 이렇게 된 이상 노예를 괴롭혀서 노는 레치!]

[3녀 오네챠 똑똑한 레치! 똥노예를 패면 기분이 풀릴 게 분명한 레츄웅♡]

[너무 괴롭히지 마는 테치. 노예가 죽어버리면 화장실의 우지챠를 프니프니해줄 수 없는 테치.]

교대로 수상한 놈이 다가오는지 감시하는 메론의 1녀와 2녀, 공놀이에 푹 빠진 5녀 엄지를 제외한 둘은 그 넘치는 활동성을 분출하기 위해 화장실로 다가갔다. 거기엔 팔 하나만 남은 채 테에 하고 우는 자실장이 있었다. 일가실각한 장녀였다. 운치 반 저실장 반인 화장실 구덩이 안에서 장녀는 반쯤 죽은 눈을 한 채 거의 무의식적으로 저실장들의 배를 누르고 있었다. 프니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엉성한 손길에 화장실 안은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참이었다.

[이 독라 오네챠 프니프니 시원찮은 레훼에에엥-]

[뭐하는 레후! 얼른 꾹꾹 누르는 레후 똥노예!]

[테... 테히...]

죄책감과 공포, 고통과 절망이 뒤섞여 눈가에 검은 얼룩을 남겼다. 파킨하지 않는 게 이상한 상태에서 사지도 온전치 않은 지라 장녀는 엄지실장 둘이 끌어당기는 것만으로도 수월하게 화장실로부터 끌려나왔다. 체중이 급격히 빠진 데다 별다른 저항도 없었던 탓이다.

곧바로 엄지실장들의 린치가 시작되었다.

[와따치의 세레브한 킥을 받는 레치! 영광으로 아는 레챠앗!]

[레프프, 분충은 이렇게 꾹꾹 밟아줘야 길이 드는 렛츄웅~]

차고, 짓밟고, 때리고, 매도한다. 들실장 특유의 잔학한 놀이. 사육실장의 자로 태어나고 아직 어림에도, 그 위석엔 이미 훌륭한 분충의 싹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어째서 와따시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테치...? 장녀는 생각했다. 본인 또한 그와 별다를 바 없었다는 건 이미 머릿속에서 치워진 지 오래였다.

어째서 파킨하지 않는 테치... 차라리 빨리 죽여주는 테치...

그러나 골판지 하우스의 그 누구도 장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구더기 프니프니용으로 될 수 있는 한 살려두라는 메론의 명령 탓이었다. 게다가 아직 엄지실장의 완력으로는 죽을 만큼 괴롭히는 건 가능해도 목숨을 끊는 건 힘들었다.

[헥, 헥, 지치는 레치...]

[이 분충 아무리 때려도 비명 하나 안 지르는 레츄! 이러면 때리는 맛이 없는 렛챠아!]

[그쯤 해두고 다시 화장실에 처넣는 테치. 그러다 죽으면 마마가 한 소리 할 것인 테치.]

[레에에... 아직 충분히 못 즐긴 레치...]

슬슬 목소리가 굵어지는 게 중실장이 될 모양인 1녀가 엄히 말했지만 3녀와 4녀는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채 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쯧 하고 혀를 차며 장녀가 일어섰다. 아무래도 노예는 자기가 직접 화장실에 처넣어야겠다. 일어선 김에 슬슬 버릇이 없어지는 엄지들도 쥐어박아주고. 그러려던 차에 새된 5녀의 목소리가 발목을 잡아챘다.

[렛! 나비씨인 레치!]

나비.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것. 햇빛 아래 알록달록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그것들은 새끼 실장들에겐 선망의 대상이다. 개가 차를 쫓듯, 손에 잡힐 듯 말 듯 농락하는 듯한 날갯짓은 그야말로 마음을 잡아끄는 일종의 유혹과도 같은 것이다. 마침 심심하던 차에 나비씨 잡기 놀이를 하자는 마음이 모두에게 동했다. 1녀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테? 5녀챠, 나비씨 어딨는 테치?]

[여깄는 레치! 나비씨 와따치에게 얼른 와주는 렛츄웅♡]

위이이이이잉-

순간 집안에 소음이 가득 찼다. 마마가 종종 못마땅하게 여기던 그 소리. 그리고 그 근원은...

위이이이잉-

5녀 앞에 내려앉은 나비씨였다. 아니, 나비씨였나? 오래 전이지만, 1녀가 마마와 함께 봄날 나들이를 나갔을 때 본 나비씨는 커다랗고 하얀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나비씨는 뭔가 이상하다.

몸통이 너무 크다. 그때의 나비씨는 날개를 빼면 저실장보다 작고 갸름한 몸통이었지만 이 나비씨는 엄지실장보다도 약간 큰 몸집을 가졌다. 얇고 단단해 보이는 날개에 까맣고 노란 줄무늬가 독살스러움을 내뿜는다. 한때 인간에게 길러지며 여러 가지를 배웠다는 마마는 나비씨란 보통 꽃의 꿀을 빨아먹고 산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저 두꺼운 턱은... 아무리 봐도... 뭔가를 잘근잘근 씹는 데에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 1녀 오네챠... 저거 나비씨 맞는 테치...?]

[모르겠는 테츄... 마마는 저런 나비씨 알려준 적 없는 테치...]

왠지 모를 불길함에 몸서리치는 1녀와 2녀,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나비씨가 왔다고 환호하는 엄지들, 그 사이로 제일 먼저 나비씨에게 다가간 건 저실장이었다. 나비씨가 뭔지도 모르는 저실장이었지만 일단 처음 보는 것에는 주체 못할 흥미가 돋는 것이다.

[레후? 나비씨인 레후? 새로운 프니프니 받아볼 수 있는 레후?]

저실장이 다가온 것을 알아챘는지 나비씨가 부웅 날아서 저실장 곁에 안착했다. 그리고는 더듬이와 앞다리로 툭툭 두들겨 가며 주위를 돌았다. 뭔가를 감정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레휏! 프니프니치고는 좀 많이 엉성한 레후! 좀 더 성의 있는 프니프니 부탁하는 레후!]

그러다 턱을 벌리고는...

[레뺫?!]

[우지챠아아아아아아아?!]

나비씨가 저실장을 물어뜯었다. 커다란 턱이 등을 한 번 스치고 지나가자 거기엔 살점이 뭉텅이로 뜯겨나간 상처만이 나갔다. 저실장에 고통을 못 이겨 몸서리치자 나비씨는 다시 한 번 우악스러운 턱을 디밀었다. 이번엔 배가 뜯겨나갔다.

[레뺘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픈 레후! 나비씨 프니프니 아닌 레후! 살려주는 레훼에에엥!]

[우지챠아아아아앗! 당장 우지챠한테서 떨어지는 레치 똥벌레!]

5녀가 공을 팽개치곤 나비씨에게로 달려들었다. 아니, 나비씨도 아니다. 저건 괴물이다. 작지만 흉악한, 우지챠를 괴롭히는 무서운 괴물. 엄지들이 앞 다투어 달려들고 자실장들도 질세라 합세했지만, 괴물은 잽싸게 날아 골판지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우지챠 괜찮은 레치? 많이 아픈 레치?]

[레... 레히이이...]

5녀가 저실장을 안아들었지만 등과 배가 뭉텅 베인 저실장은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운치가 질질 흘러나오고, 상처 사이로는 내장이 보였다.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저런 상처에도 얼마쯤 버티겠지만, 그 정도의 회복력은 저실장에겐 바랄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파-킨하고 맑은 소리가 나며 저실장의 눈이 회색으로 바랬다.

[우지챠...? 우지챠아아아아아아아?!]

[레갸아아아아악! 괴물이 우지챠를 죽인 레챠앗!]

[이게 대체 무슨 일인 테챠!]

경악하는 동생들을 앞두고 1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구더기도 가족이니 잘 보살피라던 마마의 말을 지키지 못했음은 물론, 그게 다른 동족의 침입도 아니라 난데없는 괴물의 습격 때문인 게 충격이었다. 그나마 구더기만 죽이고 도망친 게 다행이지만...

그런데 도대체 저건 어디서 온 건가?

그 속마음에 대답해주듯 소음이 집 근처로 다가왔다. 저실장의 죽음에 슬퍼하는 동생들은 느끼지 못한 모양이지만, 입구에 가장 가까웠기에 장녀는 즉시 빵콘할 정도로 겁에 질렸다. 그러나 공포와 호기심은 비례한다는 말처럼, 1녀의 어깨를 붙잡고 끌어당기듯 확인하고픈 마음이 요동쳤다. 적어도 뭐가 뭔지는 봐야 어찌할지 생각할 수 있으니.

1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

[데, 오늘은 별다른 수확이 없는 데스. 여러모로 난감한 데스.]

바닥을 겨우 채운 비닐봉지를 든 채 메론은 터덜터덜 걸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수확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만 이런다면 별 문제 없겠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약탈의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동족식 경험이 있는 실장석은 오로지 동족식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음식물 쓰레기보단 아무래도 나은 먹이인 데다 포식으로 인해 붙는 몸집 덕에 약탈이 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끝은 여러모로 좋지 않다. 다쳐서 운신이 힘들어졌다간 보복을 당하고, 혹여나 사육실장을 건드렸다간 하얀 악마를 부르기 십상이다. 사육실장으로 살 때 배운 지식이었다. 약탈을 하면서도 자들에게 되도록 음식물 쓰레기나 잡초를 먹였던 건 그러한 결과를 최대한 막기 위해서였지만... 이렇게 식량난이 지속된다면 이주를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기맛을 본 자들이 잘 따라줄지.

그렇게 깊은 상념에 잠겨 골판지 앞까지 온 메론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소음이 지금까지 들었던 것 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들렸고, 그 근원지는 바로 자기 골판지 하우스 안이며, 게다가 그 사이에서 미묘하게 비명 같은 게 섞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피 냄새가 난다.

[데뎃?!]

메론은 골판지를 열어젖혔다. 그리고 눈앞의 광경을 목도했을 때 원사육실장으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와타시의 자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목청이 찢어질 듯한 비명 사이에서 수십 마리의 장수말벌 무리가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잔칫상 메뉴는, 말할 것도 없이 메론의 자들이었다.

메론의 자들이 본 건 일종의 정찰대였다. 장수말벌은 한 마리가 목표지점에 다다라서 페로몬을 발산하고, 나머지 본대가 그 페로몬 표식을 따라가서 약탈을 벌이는 놈들이다. 골판지 박스 곁의 나무 위에 있던 말벌집에서 나온 한 마리가 메론의 집을 발견했고, 저실장의 살점을 뜯어서는 집으로 가져갔다. 그것이 먹을만 하다는 판단을 내린 장수말벌들은 곧장 약탈을 벌이러 내려갔고, 별다른 저항수단이 없었던 메론의 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이제서야 메론은 깨달았다. 소음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노랗고 검은, 커다란 날벌레. 주인은 그것이 매우 무서운 곤충이며 사람 또한 쉽사리 당해낼 수 없다고, 실장석인 넌 눈에 띄는 즉시 죽을 수도 있다고 겁을 주곤 했다. 메론은 그때마다 저딴 벌레 따윈 한 손으로 해치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인간은 실장석보다 옳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당장 와타시의 자들에게서 물러나는 뎃샤아! 데갸아아아악!]

메론은 팔을 휘둘러 장수말벌을 쫓아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오히려 장수말벌을 자극했는지 십여 마리가 달려들어 물어뜯고 쏘기 시작했다. 한 번 쏘면 그걸로 끝장인 꿀벌과 달리 몇 번이고 계속 찌를 수 있는 장수말벌의 침은 그야말로 킬러의 흉기나 다름없었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몸을 웅크린 메론은 자들의 몰골을 보고 오열했다.

멀리 떨어진 자그마한 얼룩은 아마 저실장일 것이다. 엄지들은 이미 반 이상 해체되었고, 그 주위로 장수말벌이 살점을 뜯어다가 경단으로 만드는 중이었다. 자실장들은 몸 여기저기가 퍼렇게 부은 채 한두 마리의 장수말벌과 함께 죽어 있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을 하다 독침에 떡이 되었겠지. 사람에게도 위협적인 독인만큼 손바닥 크기의 자실장에겐 치명타로 작용했으리라.

진작 집을 옮겼어야 했다. 소리가 났을 때부터 그래야 했는데. 메론은 피눈물을 쏟으며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어째서인 데스, 다들 좋은 자였던 데스. 건강하게 자라 훌륭한 약탈을 배울 자였던 데스. 무럭무럭 자라서 공원을 제패하고 닝겐의 콧대도 꺾어줄 자였던 데스! 어째서 이렇게 죽어야 했던 데스...!

메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수말벌들은 메론의 자들을 조금씩 해체해나갔다.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팔을 휘둘러봐도 잡히는 건 없고, 오히려 틈새를 노려 박아대는 벌침에 고통은 더해간다. 벌써 눈두덩이가 부풀어 올라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나 메론은 포기하지 않는다. 자꾸만 주인에게 죽은 첫 자들이 떠오른다. 이번만은 안 되는 데스... 뺏기지 않는 데스...! 그 집착이 오히려 죽음으로 이끄는 유혹이란 것도 모른 채.

자신은 몰랐지만, 메론의 움직임은 이미 아까에 비해 배 이상 느려졌다. 독이 서서히 몸에 퍼지는 것이다. 대략 10여 분이 지나면 한때 공원을 제압했던 약탈자는 싸늘한 시신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몸은 한나절 동안 해체되어 말벌집으로 옮겨지고, 새로운 약탈자들을 키울 중요한 식량이 될 것이다.


메론은 분명 영리한 실장석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한낱 실장석일 뿐이었다. 

***

[테에에...]

장녀는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를 괴롭히다 말고 왜 저렇게 날뛰는 걸까. 팔다리를 흔들고, 뛰어다니고, 그러다 엎어지고, 손짓발짓을 허공에 해대다 결국엔 뻗어버린다.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자긴 그저 마마를 기쁘게 해주려고 노예를 하나 얻으려 했을 뿐인데. 노예가 생기면 여러모로 좋은데. 마마에게 야단맞아 가며 총구를 깨끗이 닦거나 먹을 구더기가 없다고 불평하다 얻어맞을 일도 줄어들 텐데. 하지만 모든 게 끝장나버렸다. 마마도, 자매들도, 집도. 차라리 그때 입 다물고 집으로 돌아갔더라면.

흐릿한 시야를 헤치고 뭔가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붕붕거리는 소리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다. 파킨 직전의 위석이 최후의 행복회로를 가동한다. 재생력은 뛰어나지만 내구력이 약한 실장석을 위해 발달된 그것은, 웬만한 생물은 즉사에 이를 고통을 환상으로 차단시켜 생명을 유지시킨다. 그리하여 장녀의 눈에 비친 건 이미 오래 전의 죽은 마마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는 모습이었다. 온기마저 느껴지는 듯한 정교한 환상에 장녀의 눈엔 일순간 생기가 돌았다.

[마마 테치...?]

그런 데스. 그동안 고생 많았던 데스우. 얼른 안기는 데스우.

[마마......]

장녀는 남은 한 짝의 팔을 뻗었다.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 환상과 현실의 경계일까. 그러나 실장석의 작은 뇌는 그 간격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손을 뻗으라 지시할 뿐이다. 닿으면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올 것처럼.

[마마가 와준 테치... 이제 모두 끝인 테츄...]

그렇게 실낱같은 행복에 지탱하여 뻗은 손이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와그작-

장녀 위에 올라탔던 장수말벌이 목을 물어뜯었다.

조금 탁한 파킨 소리와 함께 장녀는 숨을 거두었다. 이윽고 몇 마리의 장수말벌이 더 달라붙어 그 말라빠진 몸을 조각조각 냈다. 화장실에서 그녀가 기도했던 두 가지 소원이 모두 이루어진 것에 대해, 장녀가 기뻐할지는 의문이었지만.

***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들이 아니면 누가 실장석을 학대하고 구제할 수 있겠냐고.

그러나 경험 많은 사람들은 안다. 학대든 구제든, 사람은 자연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약탈 또한 마찬가지다. 역사상 가장 악랄한 약탈자들은, 언제나 자연의 권속이었으니까.


-끝-





실장석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1>

실장석이 인간과 공존한 역사는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그 예로 유럽 지역에 구전되는 소인설화의 경우는 대부분이 실장석에 기반을 둔 것으로 추측된다.

그렘린은 따뜻한 기계 안에 숨어들었던 실장석이 기계가 작동함과 동시에 폭발한 것을 보고 오인한 것이라 여겨진다. 비산하는 적록색 체액을 녹색 안개로, 이물질이 들어가 고장 난 기계를 괴물의 장난으로 착각한 것이다.

노움과 드워프는 폐광이나 갱도에 숨어들어 지내다 발각된 실장석이 모티브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외형은 노움 쪽이 훨씬 실장석과 비슷한데, 이는 노움이 드워프에 비해 비교적 이후의 시기―그러니까 실장석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정착한 이후―에 창작되었기 때문이다.

무리 생활을 하는 야생 실장석들은 고블린의 원형이라고 생각된다. 동족식과 노예 사육과 같은,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보다 추악한 모습은 옛사람들로 하여금 작고 사악한 소귀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집에 숨어든 실장석은 브라우니와 레프러콘의 유래가 되었을 것이다. 실장석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시절, 미신에 기댔던 옛사람들은 어둠을 틈타 집안을 돌아다니는 난쟁이를 해충이라기보다는 보다 초자연적인 존재로 여겼고, 이는 그대로 민담의 소재가 되었다. (다만 집안일을 도와준다거나 신발을 대신 만들어준다는 이야기는 실장석의 습성이나 능력에 비추어볼 때 착각이거나 일종의 과장법으로 여겨진다)

체인질링은 실장석의 고전적인 탁아 습성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산업화 이전 시절, 실장석들은 대문 앞에 자를 놔두고 가는 식의 탁아를 행하곤 했는데―당연한 이야기다. 비닐봉지와 편의점이 언제 생겼는지 생각해보라―, 이를 두고 요정이 아이를 바꿔치기하려 든다고 여겼던 것이다. 요정과 바꿔치기 당한 아이란 말 또한 ‘실장석만큼 멍청한 아이’란 말이 요정 전설과 섞여 와전된 것인 듯하다.


<2>

체계적인 식실장 생산을 처음으로 진행한 나라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독일이다.

으레 떠올리곤 하는 중국의 경우, 실장석이 처음 들어온 건 일본의 견수사가 수양제에게 선물로 보낸 것이었던 데다 당시엔 영물의 일종으로 여겨졌기에 식재료로 쓴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다. 이후 수가 증가한 뒤에도 민간에서 잡아다 요리하는 데 그쳤을 뿐 독일과 같은 본격적인 시도는 없었다.

19세기, 강대국 건설에 박차를 가하던 프로이센은 당시 ‘상당히 이상한 동물’ 취급을 받던 실장석을 유용한 군량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그 당시에도 실장석은 특유의 질긴 생명력과 출산율로 여기저기서 민폐를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먹이의 제한이 없다는 점과 함께 그 어느 가축보다 뛰어난 점으로 지목되어 프로이센은 곧 체계적인 실장석 사육 및 실장육 생산 시스템 개발에 돌입했다.

이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후에 벌어진 보불전쟁에서는 모든 전역의 군사들이 원활한 실장육 공급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다만 그 품질과 맛은 조악해서 최전선 외엔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던 데다 생산 공정 또한 비위생적이라 종종 문제가 되었다. 오죽하면 실장육 군량화에 앞장선 비스마르크조차 ‘실장석 사육장은 정치판과 같아 보기에 심히 좋지 않다’란 말로 비꼬기까지 했을까.

그러나 1차 대전에 들어서는 이렇게 푸대접받던 실장육마저도 없어서 못 먹는 것이 되고 말았다. 양면전쟁으로 물자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던 독일제국은 전쟁 후반 소진된 군량의 대다수를 재배가 쉬운 순무와 실장육으로 대체했다. 이 절박했던 상황은 서부전선의 어느 군인의 수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은 바우어 하사가 양키들의 참호에서 통조림을 훔쳐왔다.
모두들 돼지고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새우였다.
해산물은 다들 좋아하지 않는다. 비린내가 나는 탓이다.
하지만 그 망할 짓-소보단 여러모로 낫다. 감사할 따름이다.
식단은 며칠째 변함이 없다. 아침은 짓-소 수프, 점심은 순무빵, 저녁은 짓-소와 순무 스튜.
그나마도 없어서 한 끼는 굶어야 한다.
후방에서의 사정도 여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한다.
정녕 하늘은 우리 독일을 버리셨단 말인가?...
...적어도 죽을 땐 이 짓-소 말고 다른 걸 입에 넣고 나서 죽고 싶다...’

전후에도 독일군의 군량 목록에 실장육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2차 대전에 들어서는 실제로 사용되진 않고 배급에나 포함되는 정도로 축소되었다. 일선 장병들의 반발이 극심한 탓이었다. 사용량이 저하됨에 따라 국가적으로 추진했던 사육생산 시스템 또한 자연스럽게 폐기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체계화된 사육생산 시스템이 영영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보불전쟁 이후 선진화된 육군을 견학하러 왔던 일본의 사절단이 육군 교리와 함께 이 시스템 또한 배워간 것이다. 어차피 일본에도 실장석은 발이 채일 정도로 많았고, 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던 것이다. 덕분에 2차 대전 내내 일본군은 쌀밥마저 못 먹는 상황에서라도 실장육은 지겹도록 공급받으며 끈질기게 버텼고, 그 바람에 원자탄을 직격으로 맞고야 말았다.

전쟁이 끝난 뒤 실장육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며 그 실용성 또한 의심받기에 이르렀으나, 이후 추가적인 개량과 보완이 이루어지면서 실장육은 햄이나 소시지와 같은 육류 가공품의 형태로 우리의 식탁에 잔존하게 되었다. 또한 이는 새롭게 부상한 애완실장 산업에도 적용되어, 오늘도 각지의 사육장에서는 이루 셀 수 없는 출산석들이 먹고 낳고 죽는 죽음의 순환을 반복하는 중이다.


<3>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고대 일본에서는 실장석을 귀하게 길렀다고 한다.

날 때부터 가진 옷은 고귀한 태생을,
옷의 푸른색은 젊음을,
몸속의 위석은 부유함을,
많이 먹고 많이 싸는 습성은 풍족함을,
다산하는 특성은 번영을,

이 다섯 가지를 오복(五福)이라 부르며 상서로운 영물의 증거로 받아들였고, 때문에 천황가나 귀족 가문에서 복의 상징으로 길렀다고 전해진다. 또한 중국에 견수사나 견당사를 보낼 때도 종종 공물로 천황가에서 기르는 실장석들 중 일부를 골라 보내기도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들 중 성공적으로 분양된 실장석 중 일부가 변이를 일으켜 실홍석의 기원이 되었을 거라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뒤이은 천황의 위신 하락과 귀족들간의 권력 투쟁, 그리고 무사 집단의 발호로 고위 계층의 실장석 애호 풍습은 점점 사라져갔고, 야생에 풀려나 급격하게 번식한 실장석들이 민가에 피해를 입히자 일반 농민들에게는 그저 해충 내지 요긴한 육류품 취급을 받게 되었다. 또한 전국시대 동안에는 실장석을 식량으로 쓰려는 다이묘들 때문에 실장석의 지위가 하락하고 말았다.

여기에 추가타를 먹인 사람이 바로 지나친 동물 애호로 ‘개 쇼군’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1646~1709)였다. 그는 개나 소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을 끔찍이 아꼈지만 실장석에 대해선 이상하리만치 무관심했는데, 혹자는 츠나요시가 어릴 적 투분을 당한 기억 때문에 실장석을 혐오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자세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아무튼 그의 치세 당시 급격하게 개의 수가 늘면서 이 개들이 실장석을 간식으로 삼는 바람에 도시에서는 실장석이 씨가 마를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사육생산 시스템을 들여온 군부에서 다시금 수가 불어난 실장석을 군량으로 활용했고, 이에 전후 GHQ는 실장석 사육 및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법령을 추진하고 대대적인 구제에 돌입했다. 덕분에 얼마간은 실장석의 원산지인 일본 내에서조차 실장석을 보기가 힘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실장육 사업이 다시금 부활하고, 버블경제 당시엔 부를 자랑하는 척도로 기묘한 애완동물을 기르는 풍조가 늘면서 실장석은 다시금 그 수를 불리게 되었다. 게다가 이 사육실장들이 유기되거나 탈출하여 번식하면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일본 남부 어디에서나 실장석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4>

기록에 따르면 고대 실장석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초기 인류와 같은 집단 사냥과 채집을 했다고 한다.
<중세 유럽에 전해져오는 옛 이야기>


옛날 옛적, 하느님께서 세상만물을 창조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도 사탄은 하느님의 일을 시기하고 미워하면서도 자기도 그분과 닮고 싶어 주위를 맴도는 중이었습니다. 그의 눈에 마침 아담과 이브가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아직 선악과를 먹기 전의 일인지라, 둘은 발가벗고도 부끄러움을 모른 채 에덴동산에서 뛰놀고 있었습니다. 사탄의 눈엔 그 꼬락서니가 여간 시원찮은 게 아니었습니다.

‘어째서.’ 사탄은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저런 미개한 것들을 하느님과 닮았다 할 수 있을까? 저리도 못생겼는데! 나라면 저것들보다 더 아름다운 걸 만들 수 있을 거야.’

사탄은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하느님이 하신 것처럼 흙을 모아 인형을 빚어 생명을 불어넣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흙이 생각보다 잘 뭉쳐지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사탄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묘수를 떠올렸습니다. 동물들의 분변을 섞으면 흙덩이가 좀 더 잘 뭉쳐질 것 같았던 겁니다. 그리하여 크기는 좀 작지만 나름 모양새가 잡힌 덩어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사탄은 실장석의 남녀를 나누는 대신 하나로 합쳐서 혼자서도 번식이 가능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남녀가 나뉜 건 아무리 봐도 거추장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또한 사탄은 흙덩이를 빚으며 자신이 나름 생각한 장식들을 덧붙였습니다. 풀을 짓이겨 몸통에 감싸서 발가벗은 인간과는 차별을 두었습니다. 눈은 빛나는 색색의 보석을 박아 넣었고, 머리카락도 붙여서 두 갈래로 늘였습니다. 그런 다음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인간보다 나아지라는 바람에 일곱 번 숨을 불어넣고 하룻밤을 기다리자 ‘뎃데레~’하는 소리와 함께 흙덩이가 살아 움직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실장석입니다.

사탄은 분명 실장석이 인간보다 아름다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만들어놓고 보니 실장석은 인간은커녕 하느님이 만드신 그 어떤 짐승과 비교해도 나을 게 없는 추물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무거나 집어삼키고는 아무데나 똥을 갈기고, 심지어 자신을 만든 사탄에게도 데스데스거리며 오만불손하게 굴어댔습니다. 사탄은 자신이 만든 게 실패작이란 걸 깨닫고는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바로 그때, 하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무얼 하고 있느냐?”

실장석이 ‘뎃스웅?’하고 역겨운 아첨을 떠는 사이 사탄은 몸 둘 바를 모르고 황급히 대답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소인이 하느님을 닮고자 하는 마음에 당신께서 하신 일을 따라했습니다만, 결과물은 보시다시피 이런 천한 것이 나왔습니다. 어찌하여 저는 하느님과 같은 일을 할 수 없는 겁니까?”

잠시 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너의 욕심이 지나쳐 화를 불렀구나. 숨결은 한 번으로도 족하거늘 어찌 여러 번이나 불었단 말이냐? 네 숨결 한 번에 티끌 하나가 더불어 들어가는 걸 모른단 말이냐?”

사탄이 대답했습니다. “무슨 티끌 말씀이옵니까?”

“네 마음속의 티끌인 죄악이 숨결을 타고 그것에게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저것에겐 일곱 죄악이 깃들었으니, 분변이 섞인 고로 가장 비천한 태생인데도 자신이 제일 고귀한 줄 알며 다른 만물을 깔보고, 조금이라도 자기보다 잘난 점이 있으면 시기하며, 좁은 마음은 언제나 분노로 차 있어 약한 자에게 쏟아내려 한다. 또한 배가 터질 듯이 먹어도 언제나 허기져 하고,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음행을 예사로 하며, 탐욕이 들끓어 그것들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고는 편히 드러누워 세상이 제 뜻대로 돌아가기만을 생각하니, 그 흉함을 어디다 빗대겠느냐?”

하느님의 말에 사탄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온갖 정성을 들여 하느님을 흉내 낸 물건이 저런 짐승이란 사실에 수치스러움이 배가 될 판이라, 사탄은 부리나케 하느님께 애걸했습니다. “하느님, 저와 제 행위가 비록 미천하오나, 저 실장석이란 짐승은 하필 제 손에 만들어져 세상만물이 응당 갖춰야 할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바라건대, 하느님께선 저 미물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나마 저 인간보다 나은 점 하나를 실장석에게 주십시오.”

하느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이 옳으니, 내가 실장석에게 축복을 하나 내리겠다. 내가 말하노니, 실장석은 비록 세상의 그 어떤 짐승보다 하찮으나, 그 자손은 인간보다 번성하여 세상 모든 곳에 널리 퍼지리라. 인간이 실장석을 하나 밟아 죽이면 그 일곱 배가 생길 것이니, 너희는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번창하리로다.”

그제야 사탄은 하느님이 자신을 골탕 먹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런 실패작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세상 모든 곳에서 들끓는 건 그야말로 자기 얼굴에 똥칠하는 일이니까요. 뒤늦게 펄펄 뛰는 사탄이었지만 이미 하느님은 떠나신 뒤였습니다.

그렇게 실장석은 생겨났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사탄이 뱀을 시켜 아담과 이브를 실장석 비슷한 존재로 떨어뜨리는 일이 생기지만 그건 좀 더 나중의 일입니다. 이후로도 실장석은 계속 수가 불어났고, 어찌나 불어났는지 대홍수 때 노아의 방주에 타지 못해 휩쓸려 가고도 살아남은 개체가 있어 다시금 번성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구걸과 탁아, 그리고 인간의 사물에 기대는 현상은 산업화 이후 생겨난 풍조로, 학자들은 이것이 실장석이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의존적인 습성을 가진 탓이 아니라 먹을 것과 살 곳이 부족해진 실장석이 변화한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즉 구하기 힘들어진 사냥감과 채집품을 포기하고 대신 쉽게 구할 수 있는 쓰레기를 생존의 도구로 삼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의 실장석들은 인간의 환경파괴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돌연변이인 셈이다.


<끝>







실장석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



<1>

실장석이 인간과 공존한 역사는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그 예로 유럽 지역에 구전되는 소인설화의 경우는 대부분이 실장석에 기반을 둔 것으로 추측된다.

그렘린은 따뜻한 기계 안에 숨어들었던 실장석이 기계가 작동함과 동시에 폭발한 것을 보고 오인한 것이라 여겨진다. 비산하는 적록색 체액을 녹색 안개로, 이물질이 들어가 고장 난 기계를 괴물의 장난으로 착각한 것이다.

노움과 드워프는 폐광이나 갱도에 숨어들어 지내다 발각된 실장석이 모티브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외형은 노움 쪽이 훨씬 실장석과 비슷한데, 이는 노움이 드워프에 비해 비교적 이후의 시기―그러니까 실장석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정착한 이후―에 창작되었기 때문이다.

무리 생활을 하는 야생 실장석들은 고블린의 원형이라고 생각된다. 동족식과 노예 사육과 같은,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보다 추악한 모습은 옛사람들로 하여금 작고 사악한 소귀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집에 숨어든 실장석은 브라우니와 레프러콘의 유래가 되었을 것이다. 실장석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시절, 미신에 기댔던 옛사람들은 어둠을 틈타 집안을 돌아다니는 난쟁이를 해충이라기보다는 보다 초자연적인 존재로 여겼고, 이는 그대로 민담의 소재가 되었다. (다만 집안일을 도와준다거나 신발을 대신 만들어준다는 이야기는 실장석의 습성이나 능력에 비추어볼 때 착각이거나 일종의 과장법으로 여겨진다)

체인질링은 실장석의 고전적인 탁아 습성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산업화 이전 시절, 실장석들은 대문 앞에 자를 놔두고 가는 식의 탁아를 행하곤 했는데―당연한 이야기다. 비닐봉지와 편의점이 언제 생겼는지 생각해보라―, 이를 두고 요정이 아이를 바꿔치기하려 든다고 여겼던 것이다. 요정과 바꿔치기 당한 아이란 말 또한 ‘실장석만큼 멍청한 아이’란 말이 요정 전설과 섞여 와전된 것인 듯하다.


<2>

체계적인 식실장 생산을 처음으로 진행한 나라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독일이다.

으레 떠올리곤 하는 중국의 경우, 실장석이 처음 들어온 건 일본의 견수사가 수양제에게 선물로 보낸 것이었던 데다 당시엔 영물의 일종으로 여겨졌기에 식재료로 쓴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다. 이후 수가 증가한 뒤에도 민간에서 잡아다 요리하는 데 그쳤을 뿐 독일과 같은 본격적인 시도는 없었다.

19세기, 강대국 건설에 박차를 가하던 프로이센은 당시 ‘상당히 이상한 동물’ 취급을 받던 실장석을 유용한 군량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그 당시에도 실장석은 특유의 질긴 생명력과 출산율로 여기저기서 민폐를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먹이의 제한이 없다는 점과 함께 그 어느 가축보다 뛰어난 점으로 지목되어 프로이센은 곧 체계적인 실장석 사육 및 실장육 생산 시스템 개발에 돌입했다.

이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후에 벌어진 보불전쟁에서는 모든 전역의 군사들이 원활한 실장육 공급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다만 그 품질과 맛은 조악해서 최전선 외엔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던 데다 생산 공정 또한 비위생적이라 종종 문제가 되었다. 오죽하면 실장육 군량화에 앞장선 비스마르크조차 ‘실장석 사육장은 정치판과 같아 보기에 심히 좋지 않다’란 말로 비꼬기까지 했을까.

그러나 1차 대전에 들어서는 이렇게 푸대접받던 실장육마저도 없어서 못 먹는 것이 되고 말았다. 양면전쟁으로 물자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던 독일제국은 전쟁 후반 소진된 군량의 대다수를 재배가 쉬운 순무와 실장육으로 대체했다. 이 절박했던 상황은 서부전선의 어느 군인의 수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은 바우어 하사가 양키들의 참호에서 통조림을 훔쳐왔다.
모두들 돼지고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새우였다.
해산물은 다들 좋아하지 않는다. 비린내가 나는 탓이다.
하지만 그 망할 짓-소보단 여러모로 낫다. 감사할 따름이다.
식단은 며칠째 변함이 없다. 아침은 짓-소 수프, 점심은 순무빵, 저녁은 짓-소와 순무 스튜.
그나마도 없어서 한 끼는 굶어야 한다.
후방에서의 사정도 여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한다.
정녕 하늘은 우리 독일을 버리셨단 말인가?...
...적어도 죽을 땐 이 짓-소 말고 다른 걸 입에 넣고 나서 죽고 싶다...’

전후에도 독일군의 군량 목록에 실장육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2차 대전에 들어서는 실제로 사용되진 않고 배급에나 포함되는 정도로 축소되었다. 일선 장병들의 반발이 극심한 탓이었다. 사용량이 저하됨에 따라 국가적으로 추진했던 사육생산 시스템 또한 자연스럽게 폐기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체계화된 사육생산 시스템이 영영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보불전쟁 이후 선진화된 육군을 견학하러 왔던 일본의 사절단이 육군 교리와 함께 이 시스템 또한 배워간 것이다. 어차피 일본에도 실장석은 발이 채일 정도로 많았고, 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던 것이다. 덕분에 2차 대전 내내 일본군은 쌀밥마저 못 먹는 상황에서라도 실장육은 지겹도록 공급받으며 끈질기게 버텼고, 그 바람에 원자탄을 직격으로 맞고야 말았다.

전쟁이 끝난 뒤 실장육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며 그 실용성 또한 의심받기에 이르렀으나, 이후 추가적인 개량과 보완이 이루어지면서 실장육은 햄이나 소시지와 같은 육류 가공품의 형태로 우리의 식탁에 잔존하게 되었다. 또한 이는 새롭게 부상한 애완실장 산업에도 적용되어, 오늘도 각지의 사육장에서는 이루 셀 수 없는 출산석들이 먹고 낳고 죽는 죽음의 순환을 반복하는 중이다.


<3>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고대 일본에서는 실장석을 귀하게 길렀다고 한다.

날 때부터 가진 옷은 고귀한 태생을,
옷의 푸른색은 젊음을,
몸속의 위석은 부유함을,
많이 먹고 많이 싸는 습성은 풍족함을,
다산하는 특성은 번영을,

이 다섯 가지를 오복(五福)이라 부르며 상서로운 영물의 증거로 받아들였고, 때문에 천황가나 귀족 가문에서 복의 상징으로 길렀다고 전해진다. 또한 중국에 견수사나 견당사를 보낼 때도 종종 공물로 천황가에서 기르는 실장석들 중 일부를 골라 보내기도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들 중 성공적으로 분양된 실장석 중 일부가 변이를 일으켜 실홍석의 기원이 되었을 거라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뒤이은 천황의 위신 하락과 귀족들간의 권력 투쟁, 그리고 무사 집단의 발호로 고위 계층의 실장석 애호 풍습은 점점 사라져갔고, 야생에 풀려나 급격하게 번식한 실장석들이 민가에 피해를 입히자 일반 농민들에게는 그저 해충 내지 요긴한 육류품 취급을 받게 되었다. 또한 전국시대 동안에는 실장석을 식량으로 쓰려는 다이묘들 때문에 실장석의 지위가 하락하고 말았다.

여기에 추가타를 먹인 사람이 바로 지나친 동물 애호로 ‘개 쇼군’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1646~1709)였다. 그는 개나 소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을 끔찍이 아꼈지만 실장석에 대해선 이상하리만치 무관심했는데, 혹자는 츠나요시가 어릴 적 투분을 당한 기억 때문에 실장석을 혐오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자세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아무튼 그의 치세 당시 급격하게 개의 수가 늘면서 이 개들이 실장석을 간식으로 삼는 바람에 도시에서는 실장석이 씨가 마를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사육생산 시스템을 들여온 군부에서 다시금 수가 불어난 실장석을 군량으로 활용했고, 이에 전후 GHQ는 실장석 사육 및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법령을 추진하고 대대적인 구제에 돌입했다. 덕분에 얼마간은 실장석의 원산지인 일본 내에서조차 실장석을 보기가 힘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실장육 사업이 다시금 부활하고, 버블경제 당시엔 부를 자랑하는 척도로 기묘한 애완동물을 기르는 풍조가 늘면서 실장석은 다시금 그 수를 불리게 되었다. 게다가 이 사육실장들이 유기되거나 탈출하여 번식하면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일본 남부 어디에서나 실장석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4>

기록에 따르면 고대 실장석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초기 인류와 같은 집단 사냥과 채집을 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구걸과 탁아, 그리고 인간의 사물에 기대는 현상은 산업화 이후 생겨난 풍조로, 학자들은 이것이 실장석이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의존적인 습성을 가진 탓이 아니라 먹을 것과 살 곳이 부족해진 실장석이 변화한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즉 구하기 힘들어진 사냥감과 채집품을 포기하고 대신 쉽게 구할 수 있는 쓰레기를 생존의 도구로 삼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의 실장석들은 인간의 환경파괴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돌연변이인 셈이다.


<끝>






수다



“정말이지 너무들 하지 않아요?”

그렇죠. 보다 보면.

“해충이니 뭐니 하지만, 결국은 서식지가 인간에게 파괴되어서 어쩔 수 없이 우리 곁을 맴도는 생물이잖아요? 인간은 그 애들한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책임 말입니까?

“그렇죠. 적어도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줘야죠. 솔직히 저 비좁은 공원 안에 먹고 잘 데가 어디 있겠어요? 우리 클럽이 그나마 매번 지원해주는…….”

아, 그 골판지 상자와 별사탕 말씀이군요.

“그렇죠. 애들이 묘하게 그걸 좋아하더라고요. 좀 더 나은 방법이 있을 텐데, 당장은 그게 아니면 다 죽지 않겠어요?”

그것들은 골판지를 쓰기 전엔 어디서 살았을까요?

“아마 굴을 파거나 해서 살았을 거에요. 산에서 왔다고들 하니까.”

그럼 다시 적응할 수 있게 굴 파기 연습을 시킨다거나 하는 건 어떨까요. 요새는 곰 같은 것도 산에 다시 방류한다고 하던데요.

“아유, 그래도 그 애기들이 그 조막만한 손으로 파면 얼마나 파겠어요? 가뜩이나 못 살게 구는 사람도 많은데. 산에 풀어주면 금방 또 그 몰상식한 작자들이 와서 해코지할 지도 몰라요.”

아, 그 학대파라든가?

“그렇죠! 학대파니 학살파니 관찰파니, 도대체 그 애들 어디가 그렇게 해롭다고 기를 쓰고 괴롭히고 죽이려고 드는지! 얼마 전엔 어떤 미친놈이 한밤에 몰래 와서 골판지를 모조리 물로 적셔놨다지 뭐에요? 그 바람에 그 애들이 키우던 아가들이 여럿 익사하거나 얼어 죽었고요, 도대체 자기보다 훨씬 약한 동물을 못 살게 구는 게 뭐가 그리 잘난 줄 아는지 몰라요. 분명 전부 정신병자거나 현실부적응자인 게 분명해요.”

하긴, 어느 쪽이거나 그렇게 힘 뺄 일은 아닌 듯합니다만.

“이쪽은 힘 빼는 게 아니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 북극의 표범인지 물개인지를 구하는 거하고 마찬가지에요. 밀렵꾼들이 그것들을 죽이는 걸 보셨나요? 세상에, 모피에 구멍 안 내려고 몽둥이로 때려죽인답니다! 그런데 여기 애기들은 모피도 뭣도 얻을 게 없는 데도 온갖 흉측한 방법으로 죽인다니까요. 세상 참 흉흉해라.”

하프물범이야 워낙 수가 적다니까요. 하지만 그것들은 수가 많으니 다들 괜찮다 싶은 거겠죠.

“아니죠! 어떻게 괜찮겠어요? 그 애들은 엄연히 우리처럼 지성을 가진 생명체잖아요. 말이 동물이지 사람하고 똑같은 거라고요. 물범 같은 동물하고 똑같이 취급할 수가 없어요. 우리처럼 생각하고 사랑하고 보살필 줄 아는 애들이 그렇게 죽어서는 안 돼요. 하나하나가 모두 값진 생명인데, 다들 구더기니 벌레니 하찮게 여기다니. 그러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구해주려 하는 거지요.”

생명을 구하신다니 보람찬 일이시겠군요.

“당연하죠. 우리 아님 누가 하겠어요?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나 쓸데없는 일이랍시고 욕하고 참견하죠. 시청 인간들도 마찬가지에요. 불법투기라니, 배고픈 애들 밥 먹이는 게 불법이면 유니세프는 뭐하러 있는지.”

하하, 분명 그 깊은 뜻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겁니다.

“아이고, 우리 사장님 말만이라도 고마우셔라. 아, 케찹은 됐어요.”

네이, 핫도그 여기 있고요, 1500원입니다.

“아, 여기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곧 회원들하고 공원 앞에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오늘도 그것들한테 밥을 주시는 건가요?

“네. 벌써부터 애들이 잔뜩 몰려와서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분명 배를 곪고 있을 거에요.”

그럼 빨리 가셔야겠네요. 조심해서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갔나.

매주 일요일마다 공원에 들르는 저 애호파 회원 아줌마는 어중간한 점심을 우리 포장마차의 핫도그로 때우곤 한다.

하여간, 손님 없을 시간에 와주니 시간 죽이기라도 되어주는 건 좋다만, 허구한 날 같은 말만 되풀이하니 지겨워 죽을 지경이다. 좀 다른 주제를 꺼내면 이쪽도 성심껏 대답할 텐데 말이지, 매번 실장석의 삶이 어쩌고 권리가 어쩌고 그 지경이니 설렁설렁 건성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카트 밑으로 숨으려들던 엄지 한 놈-아마 핫도그 냄새에 눈이 돌아간 듯한-을 꼬챙이로 찍어 쓰레기통에 처박고서 재료 재고를 점검한다. 반죽은 아직 있고, 소시지가 다 떨어졌다. 50개들이 팩을 꺼내어 뜯으려는 차에 문득 성분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실장육 60%, 닭고기 20%, 전분, 대두단백, 돼지고기향, 기타 등등-







라스트 스퍼트

 

실장경마.

기가 찬 단어다. 실장석으로 경마를 한다니. 짧고 뭉툭한 팔다리, 형편없는 운동신경, 정상 상태에서도 유지되는 비만 체형…… 어느 하나 안정적인 보행엔 도움 하나 되지 않는 요소의 집합체를 주제 넘는 이족보행에서 억지로 사족보행으로 교정시킨다한들 볼만한 구경거리가 될 일은 없지 싶지만, 놀랍게도 그건 실존하는 스포츠다. 그것도 매우 인기 높은 스포츠로서, 처음 소개된 이래 몇 년 지나지 않은 지금에서는 전국 대부분의 경마장에서 부설 경기장을 신설하여 운용하는 판국이다. 물론 그 속내는 엄연히 도박이지만.

오늘도 트랙에 아홉 팀이 나선다. 안대와 재갈, 그리고 수갑으로 자유를 박탈당한 채 네 발로 땅을 기는 독라실장 위에 자실장쯤 되는 것들이 올라타서 채찍질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채찍질을 하면 제대로 된 실적을 내는 데엔 오히려 역효과라는 걸 충분히 교육받았음에도 지리멸렬한 지능과 타고난 약자멸시의 본능이 사육사의 노고를 무위로 돌리고 있다. 물론 그 사실을 숙지할 만큼 지능이 뛰어난 개체도 있다. 그러나 채찍질은 여전하다. 실장들 사이에선 보기 드문 지능을 통해, 그것들은 지금 이 순간만이 그들이 ‘갑질’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임을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기장은 출발 신호가 울리기 전부터 독라실장들의 울음소리로 시끌시끌한 것이다. 데게엑, 하고 재갈에 막혀 제대로 울리지도 못하는 비명이.

“독라노예는 와타찌를 위해 달리는 테찌!”

“이번에도 실수하면 그대로 처분되어버리는 테찌! 분충은 열심히 달려서 와타찌의 목숨을 건지는 테찌!”

“스테이크! 이번에도 스테이크를 먹어서 와타찌의 세레브함을 보여주는 테찌!”

탐욕과 절박함, 경멸과 잔인함이 비명소리와 한데 어우러져 경기장의 공기에 광기를 더한다. 마치 알콜을 흡수하듯이 관중들은 그 광기에 몸을 맡기고 소리를 지른다. 이겨라 분충! 지지 마라 똥벌레! 이번에도 하위권이면 내가 직접 대갈통을 날릴 테다! 이하 기타 등등. 고등한 인간인 그들이 한낱 미물들에게 고양되는 건 9할은 당연히 돈 때문이다. 그러나 고기 위에 후추를 치듯 트랙 위에서의 적절한 드라마가 그들을 이 경기장의 좌석으로 이끄는 데 협조했음은 틀림없다. 마치 로마 시대의 서커스처럼, 제법 자극적인 양념이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악의를 대변하듯 경멸과 조롱이 가득한 멘트를 날려대는 캐스터의 중계가 머리 위를 휩쓸고, 그 매콤한 분위기 속에서 오로지 한 팀만이 조용하다. 자실장은 다른 놈들에 비해 몸집이 크고, 독라실장은 귀 끝이 많이 헤진 게 제법 이 바닥에서 굴러왔음을 보여준다. 채찍은 사린 채 손에 단단히 쥐었고, 눈은 오로지 앞을 향한다. 마치 군계일학을 실장석으로 표현한 것 같다. 물론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트랙 위의 동족들도, 관중석의 인간들도, 심지어 본인들조차도. 그러나 명백한 온도차 속에서 그 자실장은 조용히 한마디만을 입에 담을 뿐이었다.

“……이번만 이기는 테찌, 마마.”


실장경마는 아홉 팀, 2두1조의 실장들이 장애물 달리기의 형식으로 달리며 들어오는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는 스포츠다. 기수는 자실장이고 말은 독라실장이다. 아무리 성체실장이어도 생후 1개월에서 5개월까지의 자실장이어야만 등으로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효율 중시의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잔혹극이 태어난다.

모든 독라실장은, 기수의 친모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한 이야기다. 자기 새끼가 아닌 이상 등에 태우고 네 발로 긴다는 굴욕적인 처사를 실장석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 팀은 무조건 친실장과 친자실장으로만 구성된다. 가장 아끼는 자식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보는 앞에서 살처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실장이 친모를 자기보다 열등하고 다루기 쉬운 존재로 각인하게끔 독라로 만든다. 이로써 기수와 말의 페어가 갖춰진다. 이 페어가 아홉에서 열 팀 정도 모여 훈련에 임한다. 사육실장과 같은 예절교육은 받지 않는다. 필요가 없으니까. 다만 장애물 통과 훈련과 독라 통제훈련, 체력 단련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좋은 실적을 거둔 조는 콘페이토를 상으로 받으며, 반대로 가장 뒤떨어지는 팀은 모두의 앞에서 체벌당하고 처분된다. 공포의 각인을 위해서다. 그렇게 채찍과 당근으로 추려낸 두세 조, 혹은 단 한 조만을 경기에 투입시킨다. 이렇게 아홉 조가 모여 트랙을 달리는 것이다.

트랙 위에서도 생존경쟁은 여전히 이어진다. 1위로 들어온 조는 그들이 그렇게나 바라는 스테이크와 스시를, 2위와 3위는 고급실장푸드와 콘페이토를 받는다. 9위로 들어온 조의 운명은 달라질 게 없다. 훈련 때 봤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죽음으로 경쟁자들에겐 경각심을, 관중들에겐 볼거리를 선사하게 되는 것이다. 각 경기장마다 나름대로의 처형법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곳 후타바 시 미츠바시 경마장 부설경기장에서는 매우 특별한 처형법을 사용한다. 백각형, 말 그대로 백 번 포를 뜬다는 중국의 형법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개장한 이 경기장은 그 선구안만큼이나 화끈한 퍼포먼스로 경쟁사가 부지기수로 늘어난 지금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총괄사육사 겸 처형자인 토시아키가 작은 메스로 패배자의 살을 한 점 한 점 뜯어내는 광경은 수많은 도박 중독자와 학대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커다란 오르가즘을 안겨주었다. 다만 토시아키 본인은 매우 불만족스러워했는데, 그 칼질이 100번은 고사하고 웬만한 놈들은 50번을 넘기기 전에 파킨사해버리는 탓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과 악몽보다도 실장석들을 전장으로 내모는 건 따로 있었다. 1위는 앞서 말한 스테이크와 스시 외에도 부상을 하나 받는다. 금색의 휘장이 그것이다. 반짝이는 휘장은 물욕과 몸치장에 눈이 돌아가는 실장석들에겐 그 자체만으로도 군침 도는 물건이지만, 그 진정한 용도는 따로 있다. 하나하나는 장식 외엔 아무런 쓸모도 없지만, 10개를 모으면…….

탕, 하고 권총소리가 출발을 알린다.

소리에 놀라 파킨사하는 놈은 없다. 그 정도 수준의 쓰레기는 일찌감치 바닥의 얼룩이 되었으니. 여기 올라온 것들은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인 것이다. 계속된 채찍질에 몸부림치던 독라실장들이 그대로 뛰쳐나갔지만 9번 트랙의 조는 서두르지 않았다. 조용했던, 아까의 그 모녀다. 느릿해 보이는 그 걸음에 몇몇 관중이 야유를 퍼붓지만 그럼에도 서두르지 않는다. 마침내 야유가 분노로 바뀌려고 할 무렵에, 분위기가 뒤집힌다. 한 차례의 채찍질, 그리고 한 차례의 울음. 비록 재갈에 막혀 뭉개지지만 그 기세는 본경기장의 수억 짜리 경주마에 비해도 뒤지지 않는다. 채찍질로 힘이 빠진 독라실장들이 웅덩이를 넘지 못해 빌빌거리고 있을 때, 오로지 그 조만이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웅덩이를 넘는다.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그 실장석답지 않은 모습에 놀랐지만, 안방 문의 돌쩌귀까지 이 아귀도에 부어넣은 사람은 그 조가 어떤 조인지 잘 알고 있다. 비록 지금은 간당간당한 성적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고 있지만…….

그 모녀의 팀명은 ‘질풍’.

9번 1위에 빛나는, 자유를 눈앞에 둔 유일한 조다.


애오파도 학대파도 없어 적당히 평화로운 공원에서, 한때 모녀는 조용히 살고 있었다.

누가 실장푸드를 뿌리거나 쓰레기장이 가깝거나 하진 않았지만 공원엔 다행히도 열매를 맺는 식물이 많이 있었다. 인공호수 때문에 물을 얻기도 쉬웠고 은신처가 될 덤불도 많았다. 덕분에 친실장은 10마리가 넘는 자를 기를 수 있었다. 모두가 귀엽고 예의바른 아이들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그 모두가 성체가 될 것이었다. 다 자라서 자신처럼 자를 가지는 기쁨을 알 것이었다.

그랬을 것이었다.

인간들이 왔다. 실장석이 지나치게 불어나면 나타나는 하얀 악마들, 모조리 때리고 부수고 죽여서 흔적 하나 남지 않게 한다는 공포의 대상. 마마의 마마, 또 그 마마에게서 들었던 전설 같은 재앙.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자들을 살리겠다는 일념도 부질없이 악마는 그들 가족을 한 번에 낚아챘다. 그러나 전설과는 달리 죽이지는 않았다. 그저 포대기에 한꺼번에 담아 어딘가로 옮겼을 뿐이다. 친실장은 생각했다. 하늘의 마마가 자신들을 지켜줘서 저 악마들이 자기들을 해치지 않은 거라고.

차라리 그때 죽었더라면.

정신이 들었을 때는 어느 좁은 방이었다. 햇님을 닮았지만 훨씬 작고 음침한 빛이 하나 떠서 겨우 어둠을 몰아낼 뿐이었다.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가족들과, 인간이 하나 있었다. 그림자에 가려 얼굴은커녕 몸도 잘 보이지 않았다.
누가 제일 좋아? 인간이 물었다. 보통의 실장석이었다면 일단 경계했을 것이다. 인간과 엮여 좋을 건 없는 게 실장석의 삶이다. 그러나 친실장은 인간 자체를 그리 많이 접해보지 못했을 뿐더러 막 정신이 들어 사리분별이 어려웠다. 그저 물으면 묻는 대로, 답하면 답하는 대로 데스, 하고 울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 닝겐이 뭐라고 했지? 누가 제일 좋냐고? 다들 귀여운 아이들이었지만 가장 똑똑하고 착한 3녀가 그래도 제일 좋았다. ‘데, 그래도 3녀가 좋은 자인 데스.’
다른 자들이 모여들어 울어댔다. ‘와타찌는? 와타찌는?’하고 섭섭해 하는 자들도, 마냥 마마가 좋은지 테, 하고 우는 자들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누워 있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 인간이 다시 물었다. 누가 3녀야? 친실장은 3녀를 들어 올렸고, 그 순간 지옥문이 열렸다. 영원히.

3녀를 뺀 나머지 자들을 인간이 짓밟아 뭉갰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 멍하니 보고 있던 친실장은 3녀가 품속에 기어들어 울고 불며 발광하고 나서야 현실을 마주보았다. 데, 데, 하고 말 같은 걸 혀 끝에 걸려던 순간 인간의 손길이 자신에게 날아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격통이 스치고 조금 쌀쌀해졌다고 느꼈을 때, 친실장이 본 건 피와 체액, 운치로 얼룩진 바닥과 갈가리 찢긴 옷, 그리고 머리카락이었다. 친실장이 파킨사하지 않은 건 행운이 아니라 지독한 불운이었다. 피 맺힌 비명이 좁은 방을 메웠다.

‘데갸아아아아아악! 무슨 짓인 데스! 우리 자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은 데스!’

그러나 인간은 무정히 두 모녀를 집어서 어딘가로 데려갔을 뿐이었다.

그 뒤로는 잔혹한 솎아내기의 연속이었다. 괴로운 일을 시키고, 아픈 일을 당했다. 며칠에 한 번 꼴로 동족의 모녀가 비참한 죽음을 맞는 걸 봐야 했다. 가장 힘든 건 3녀가 자신을 노예로 부리도록 강요당하는 일이었다. 끝까지 뻗대는 자는 모조리 죽었고, 3녀는 결국 인간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착한 3녀는 밤마다 인간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사과하곤 했다. 비록 칸막이가 쳐져 서로 볼 수는 없지만 마음은 바람처럼 전해져왔다.

잘하면 콘페이토를 얻을 수 있다. 콘페이토야말로 모녀의 삶의 희망이자 이유가 되었다. 그 달콤함을 입 안에 가두고 있으면 적어도 아픈 일을 잠시 머릿속에서 치워둘 수 있었다. 그러기를 거듭하자 모녀 곁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가장 우월한 개체로 선택받아, 트랙에 섰다. 전장에 오르기 전 그들을 담당했던 사육사는 말했다. 여기서 꼴찌로 떨어지면 가장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고. 그러나 이렇게도 귀띔해줬다. 기수와 말이 1등을 열 번 하면, 다시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똥벌레 주제에 그게 가능키야 하겠어?’ 곧 죽을 목숨을 두고 조롱하는 투였지만 그 말이 곧 모녀의 복음이 되었다. 열 번만 1등으로 들어오면 살아남을 수 있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 다시 자들을, 자매를 낳고 길러서 다시 행복한 나날로 돌아갈 수 있다.

행복해질 수 있다. ‘질풍’의 이름을 받은 조는, 그 믿음 아래 이름 그대로 질풍처럼 달렸다.

미츠바시 부설 경기장은 새로운 스타의 등장에 들썩였다. 그 어떤 조도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없고, 영리하게 장애물을 통과할 수도 없었다. 한 번의 1위야 요행이라 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세 번 반복되면 그것은 실력이다. 배팅액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인간들이 열광하고, 모녀가 도취했다. 그것은 뛰어난 개체와 깨지지 않은 가족애, 그리고 좋은 팀워크가 한데 어우러진 기적이었다. 스테이크와 스시의 맛이 그들의 본성 깊이 잠든 분충성을 자극했지만 비극 사이에서 굳어진 애정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그것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10회 1위, 휘장 열 개, 자유. 간단한 계산이었다. ‘질풍’은 달렸다. 9회까지 달성했을 때 후타바 시는 과연 처음으로 해방되는 경마실장모녀가 탄생할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마치 빈사의 유명인을 두고 데드풀을 하는 것과도 같았다. 운명이 그 장난감 같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그리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실장경마에서 가장 기수에 적합한 자실장의 연령은 1개월에서 5개월 내외다. 그 이하 크기 개체의 지능과 힘으론 컨트롤이 불가능하고, 그 이상이면 무게에 독라실장의 척추가 휘어진다. 실장석이라는 생물 자체의 결함이었고 아무리 뛰어난 몸과 실력으로도 그것은 커버할 수 없는 성질의 문제였다. 시간이 흐르고 자실장이 자랄수록 질풍은 사그라졌다. 2위, 3위, 그러다 차츰차츰 떨어져 저번 경기에선 6위까지 떨어진 것이었다. 보통의 녀석들에겐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정도였지만 ‘질풍’에겐 그것만으로도 지옥문이 코앞에 다가온 셈이었다. 저번 신체검사 결과는 더 비관적이었다. 이미 척추의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위석이 가까이 있었고, 더 경기를 치르다간 허리가 부러지는 게 먼저일지 척추의 파편이 위석을 찌르는 게 먼저일지 레이스를 벌일 지경이었다. 사실상 이번 경기가 은퇴식인 셈이었다. 그리고 은퇴식은 화려하게 치러질 것이다. 축하의 박수가 아니라 모녀의 피와 비명으로.
그렇게 끝낼 생각은 둘에겐 없었다.

“달리는 테찌!”

데게엑, 하고 친실장이 대답했다. 웅덩이 뛰어넘기, 계단 올랐다 내려가기, 지그재그 피하기, 가시밭길 건너기…… 몇 번이고 해왔던 것들이다. 물에 적신 실장푸드 먹기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다른 놈들은 저마다 장애물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거나 느릿느릿했다. 죄다 애송이들이다. ‘질풍’이 오랜만에 이름값을 하는 날이었다. 앞엔 아무도 없다. 그렇다, 그들 모녀는 지금껏 이 날을 위해 살아온 것이다. 바로 이 날, 자유의 날을 위해.

관중들이 점점 술렁이기 시작했다. 9번에 올인한 사람들이야 좋아죽는 얼굴이었지만 대다수의 관중들은 실장석이 행복해지는 것보다는 비참하게 죽는 꼴을 더 즐겨보는 쪽이었다. 과연 저놈들이 첫 번째 해방자가 될까? 진짜? 아니, 아니라고 해줘, 제발! 씨발 이딴 시나리오는 애호파 새끼들이나 울면서 보는 거라고! 그 사이 캐스터가 턱이 빠져라 소리를 질러대며 기록적인 순간의 도래를 예고하느라 바빴지만 모녀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상하운동 속에서 하나로 겹치는 위석의 두근거림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마마, 힘내는 테찌! 골이 코앞인 테찌! 무언으로 3녀는 응원했다. 친실장이 호응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닿기만 하면 휘장이, 자유가 손 안에…….

미끄러졌다.

3녀에게는 순간 천지가 뒤집힌 걸로 느껴졌다. 트랙의 바닥에 뺨을 갈리고 나서야 자신이 낙마했음을 깨달았다. 아니, 낙마 수준이 아니었다. 친실장이 쓰러진 것이었다. 온몸을 경련시키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게 분명했다.

“마마! 마마아악!”

공포와 절망에 물들어 3녀가 울부짖었다. 안 되는데, 골이 바로 앞인데,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으면 안 되는데. 그러나 촛불에 들이치는 눈바람처럼 현실이 희망을 좀먹기 시작했다. 비록 안대에 가려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친실장은 눈을 뒤집고 있을 게 뻔했다. 단순히 피로가 누적되어 졸도했다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신체검사에서 경고했던 위험 중 하나가 지금 일어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왜 하필……!

3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상외의 상황에 흥이 오른 인간들이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뒤에서는 이제 막 마지막 장애물을 통과한 조들이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트랙에 얼굴을 문대며 모든 게 거짓말이라 외쳐댔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마치 학대파가 짜낸 악취미스러운 시나리오처럼 세상 모두가 자신들의 목을 잡고 조여 대는 것 같았다. 정말 여기서 끝나는 건가? 안 돼! 싫어!

그 순간이었다.

“데…….”

“마마?”

“데에…… 데뎁, 데브으으읍!”

친실장이 일어섰다. 모두가 소리 질렀다. 캐스터는 아예 목 놓아 외치고 있었다. 마치 올림픽에서 인간승리의 증거라 할 만한 모습을 스포츠의 이름을 빌린 도박판 위에서, 미물 따위가 재현한 것이다. 일어선 미물은 걸었다. 걷다가, 곧 다시 달렸다. 그러다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원래 실장석은 이족보행의 동물이다. 자유를 빼앗기고 강제로 네 발로 기었던 것이 다시금 일어선 것이다. 자유를 되찾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독라를 통제해야 할 기수는 오히려 어미의 등에 업히듯 목을 꼭 끌어안은 채 매달려 있었다. 애호파가 있었다면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애오파가 있었다면 기자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류가 거의 없었기에 모두들 그저 말을 잃고 지켜볼 따름이었다.

달리는 독라실장의 재갈 틈새로 피거품이 끓고 있었다. 경고가 실질적인 위험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느려질지언정 멈추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와타시는 죽더라도.’

모성애를 불태우며 독라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었다.

‘3녀만큼은 행복하게 해주는 데스.’

실장석에겐 어울리지 않다고 할 만큼 보기 힘든 애정으로 ‘질풍’은 그 마지막 바람을 몰아쳤다. 달리다가, 걷다가, 다리를 질질 끄는 그 죽음의 달리기는 바로 뒤의 조가 그들을 앞서기 직전에 골인에 성공했다. 개장 사상 첫 번째 10회 1위, 열 번째 휘장 획득의 순간이었다. 그것은 곧 이 죽음의 도가니에서의 해방을 뜻하기도 했다.

친실장은 골인을 확인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숙이다가, 안대를 쓰고 있는 걸 자각하듯 고개를 두어 번 흔들다가, 그 자리에서 엎어졌다. 안장이 박살나며 3녀가 앞으로 튕겨나갔다. 바닥을 구르며 머리가 찌그러졌지만 3녀는 개의치 않고 기어서 친실장에게로 다가갔다. “마마…….” 그러나 친실장은 한 번 고개를 들더니, 이만 파킨,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고개를 처박고는 영영 일어나지 않았다. 위석이 뼛조각에 찔려 부서진 것이었다. 비록 함께 풀려날 수 없게 되었지만, 친실장은 자신의 마지막 자를 해방시키고 자신 또한 영원한 자유를 얻은 것이다.

3녀는 고개를 들었다. 인간들이 소리 지르고 있었다. 모두들 자신들이 죽는 꼴을 보고 즐기던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한 방 날려줬다 생각하니 왠지 즐거웠다. 분충들. 그저 조그만 경멸과 함께 3녀는 골인을 알리는, 그리고 첫 번째로 탄생한 위업의 달성자를 기리는 폭죽소리를 즐겼다. 지금 막 떠난 마마가, 왠지 자신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와타찌는 자유인 테찌!”

세상 모두가 그녀를 올리고 있었다.


-에필로그-


“어째서인 테찌! 왜인 테찌! 인정할 수 없는 테찌!”

그렇게 믿었다. 조금 전까지는.

언제나 꼴찌로 들어온 조는 저 묘하게 웃는 인간에게 죽기 마련이었다. 거미줄에 앉은 거미처럼 사지를 묶어다 팽팽히 당겨놓곤, 조그만 칼로 살점을 뜯으며 시시덕대던 인분충이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질풍’ 모녀는 결코 저리 되지 않겠다고, 반드시 살아서 나가 저 닝겐의 얼굴에 투분을 해주겠다고 맹세했었다. 안타깝게도 친실장은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하고 죽었지만, 적어도 자신만은 마마의 몫까지 다 해주겠다고 벼르던 참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인간이 자신에게 찾아온 것이다. 매번 죽던 꼴찌들처럼, 자신을 다루며.

“그러니까, 실격 처리라고.”

“어째서인 테찌! 와따찌들은 분명 골인한 테찌! 마마가 목숨 걸고 와타찌를 보내준 테찌!”

“아니, 그게 문제라니까?”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열광하는 관중들, 해방의 순간을 부르짖은 게 수치스러웠다는 듯 다시 맹렬한 디스를 퍼붓는 캐스터, 옆에서 1등상인 스테이크에 머리를 처박고 우적대는 2등 조, 그리고 반짝이는 칼날. 모든 게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기 싫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편의점 봉투에 탁아되어 음식을 똥으로 바꾼 분충을 친히 적록색 얼룩으로 바꾸어주는 친절한 인간처럼, 웃는 낯의 인간은 바로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며 3녀의 세상을 부숴댔다.

“규칙은 기수와 말이 같이 1위를 하는 거잖아?”

“같이 들어온 테찌…… 마마가 목숨 바쳐 들어온 테찌!”

“아니, 시체가 들어와도 곤란하다고. 같이 보내야 하는데 죽으면 보낼 수가 없잖아. 기수와 말 둘이서 한 팀이니까.”

“테….”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사육사가 그렇게 이야기한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었다. 구더기가 물똥을 지리며 꼬리를 흔드는 것 같은 반항의 기세로 3녀는 입을 열려 했지만, 그 전에 인간이 먼저 말했다. 토시아키의 말은 그의 메스처럼 예리했다.

“그리고, 중대한 룰 위반이 또 있다고. 이건 실장‘경주’가 아니라 ‘경마’야. 어디까지나 네 발로 기어야 한다고. 그런데 감히 두 발로 걷다니, 안 되지 안 돼.”

“테, 테…….”

“안타깝네. 만약 마마가 살아 있었다면 오늘은 그냥 돌아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그런데 기수든 말이든 죽어버리면 나머지 하나는 어쩔 수가 없어. 쓸모가 없거든. 처분해야지. 운이 없다고 생각하렴.”

"이, 이럴 수는 없는 테치……."

3녀는 마마를 부르려 했다.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묶어놓은 줄이 파르르 떨릴 만큼 몸이 진동했고, 시야는 눈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미 운치까지 질질 흘리고 있었다. 주위에서 다른 조의 비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어떻게 얻은 자유인데, 이렇게 가긴 싫어. 마마, 마마!

"이럴 수는 없는 테챠아아아아악!"

“넌 아주 많이 특별한 녀석이었지. 비명소리도 좀 특별하길 바랄게.”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메스가 들어왔다. 다시 지르기도 전에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토시아키의 칼질은 예술적이었다. 그래서 비명은 처형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나서야 터졌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람들은 열광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역대급 올렸다 떨어뜨리기가 된 이번 경기는 너무나도 황홀한 구경거리였다. 감히 살아서 경기장을 나갈 거라 생각했던 멍청한 똥벌레에게 야유가 쏟아졌다.

9번에 올인한 사람들은 멍청하게 두 발로 걸은 친실장을 욕했다. 자신의 불운과 운영 측의 농간을 인정하고 항의하는 것보다는 모든 것이 실장석의 탓이라고 여기는 게 그들에겐 더 효율적인 탓이었다.

유달리 삶에 대한 열망이 강한 탓이었을까, 3녀는 토시아키의 무수한 칼질 속에서도 좀처럼 죽지 않았다. 덕분에 토시아키는 그렇게나 학수고대하던 마의 100회 칼질을 달성했다. 세 번의 칼질로 갈비살을 마저 뜯어낸 뒤에야 3녀는 죽었다. 그 예술적인 백각형의 재현에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냈다. 감격스러운 나머지 토시아키는 속옷을 적셨다.

언제나 2등을 하여 ‘은관의 제왕’이라고 비웃음을 사던 ‘콩’ 조는 드디어 감격의 첫 1위를 달성했다. 자실장은 혼자서 몸의 두 배 크기의 스테이크 조각을 연속 빵콘을 해가며 다 먹어치웠다. 냄새를 맡은 독라실장이 찌꺼기라도 달라며 다가왔지만 자실장은 그런 모친을 걷어찰 뿐이었다.

처형당하는 3녀를 가장 크게 비웃은 건 8위와 9위를 한 조들이었다. 주제넘게 앞서가려다 처참하게 죽는 분충의 모습은 너무나도 유쾌한 것이었다. 3녀의 죽음이 워낙 하이라이트였기에 그들은 다행스럽게도 이번만은 목숨을 건진 것이었지만, 원래 자기들이 올라야 할 처형대에 손짓을 하며 웃는 모습에선 그런 사실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 같았다. 가엾게도, 그들은 내일모레 있을 경기에서 처형당할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유쾌하게 웃어댔다.

오늘도 한 경기가 끝나고 두 실장석이 죽었다. 그것은 희극이고 비극이며 드라마였지만, 이 탐욕스런 도박판에서는 매일 같이 있는 일일뿐이었다.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고 신경 쓰는 이는 더더욱 없었다. 이윽고 밤의 어둠이 경기장을 뒤덮자 모든 것이 형태를 잃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