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속 실장석




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 12월 1일 임자 4번째기사

짐승 한 마리가 조수(潮水)를 타고 양천포(陽川浦)로 들어왔다. 포(浦) 옆의 백성들이 잡으니, 그 소리가 소[牛]가 우는 것 같았다. 생김새는 팔다리가 짧은 꼬리 없는 원숭이(猿猴)를 닮았으나 의복을 갖추었으며, 언청이 아가리에 코는 구멍만 있고 눈은 좌우가 달랐다. 이는 일찍이 우리 나라에 없었던 것이다. 임금이 명하여 그것을 사복시(司僕寺)에서 기르게 하니, 날마다 콩 2관(貫) 씩을 소비하였다.

※1관 : 약 3.5kg
※사복시(司僕寺) : 조선시대 왕이 타는 말, 수레 및 마구와 목축에 관한 일을 맡던 관청 . 일본에서 바친 코끼리를 맡아 기른 곳이기도 하다.







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 12월 10일 신유 6번째기사

전 공조 전서(工曹典書) 이우(李瑀)가 죽었다. 사복시에서 녹원후(綠猿猴)를 기르고 있었다. 이우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가보고, 그 꼴이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녹원후가 노하여 똥을 이우의 얼굴에 던졌다. 이우는 3일을 앓다가 죽었다.

※녹원후(綠猿猴) : 녹색의 원숭이







태종실록 26권, 태종 13년 11월 5일 신사 4번째기사 


녹원후를 전라도의 해도(海島)에 두도록 명하였다. 병조 판서 유정현(柳廷顯)이 진언(進言)하였다.

"길들인 녹원후는 이미 성상의 완호(玩好)하는 물건도 아니요, 또한 나라에 이익도 없습니다. 사람을 상하게 하였으니, 만약 법으로 다스린다면 죽이는 것으로 마땅합니다. 또 변은 제 몸만큼 싸는 게 냄새가 고약하기 짝이 없으며 일 년에 먹이는 꼴은 콩이 거의 수십석에 이르니, 청컨대, 전라도의 해도(海島)에 귀양을 보내주소서."

임금이 웃으면서 그대로 따랐다.







태종실록 27권, 태종 14년 2월 29일 계유 3번째기사


길들인 녹원후를 육지(陸地)로 내보내라고 명하였다. 전라도 관찰사가 보고하기를,

"길들인 녹원후를 순천부(順天府) 장도(獐島)에 방목(放牧)하는데, 섬에서 자라나는 잡초(雜草)를 주니 사흘간 먹지 아니하고 통곡을 하였습니다. 어느새 걸신 들린 마냥 먹어대기 시작하여 날로 비만( 肥滿 )해지되, 근처에 사람이 있으면 다시 소리내어 눈물을 흘립니다."

하니, 임금이 듣고서 불쌍히 여겼던 까닭에 사복시로 보내 처음과 같이 기르게 하였다.



만약 조선에 코끼리 대신 참피가 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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