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물점의 고객



대향시장 말미의 작은 철물점은 대게 시장에서 점포를 하는 소매장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다.
작게는 못 부터 크게는 판넬까지 취급하고 있어서, 농담으로나마 철물점이 시장을 만들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20년 넘게 점주를 하고 있던 철웅씨의 형편은 한결같이 넉넉치 않았다.
아주 가끔 문 두드리고 올 옆집 사장님네를 기다리고 있을 뿐, 다른 고객이 올 거라는 기대는 일찍이 접었다.
원래 거기에 있었던 풍경처럼, 철물점이 그렇게 여겨지게 되듯이, 철웅씨도 점차 철물점처럼 되어갔다.
철물점처럼 되어간다는 건, 입으로 오가는 것 없이 조용히 지내게 되었다는 뜻이다.






"테츄우..."

잡물이 들어있는 피피박스를 매대에서 내려 마감하려는 와중에 왠 쥐소리같은 것을 들었다.
야심한 시각에 왠일로 없던 기척이 있자 철웅씨는 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왠 벌거벗은 대머리 실장석이 하나 있었다. 크기를 보니 아직 다 자란 놈은 아니다.


시장조합에서는 조합비를 사용해서 매년 두어번씩 시장 근처의 실장석 구제를 신청해왔다.
냄새나고 불결한 실장석은 그렇지않아도 팍팍한 매상에 찬물을 끼얹는 무익한 해충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향시장 근처에서 실장석을 보는 일은 이제와서는 거의 희귀한 일이 되었다.
그런데 그 시장 구석태기에 박혀 하룻장사를 하는둥 마는둥하는 철물점에 실장석이라.


빛에 이끌려 왔는가? 먹이를 구하러 왔는가? 알 수 없군.
철웅씨는 무겁게 눈을 굴리며 정문에서 벌벌 떠는 자실장을 노려본다.
자실장은 떨고 있는 와중에도 "테츄"라고 말하며, 철웅씨가 정리하고 있던 피피박스를 바라보고만 있다.
아무래도 이 박스 안에 든 것을 원하는것인가. 철웅씨는 대강의 사정을 알게 된 후 서서히 장도리쪽으로 손을 옮겼다.
너에겐 안타깝게도 여기 안에 든 건 실장석이 먹을만한 게 아니다.


그러나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철웅씨의 손은 잠시 머뭇거렸다.
매상 없는 가게에 왠 재수가 달라붙었는지는 몰라도, 여기서 연장질을 해봐야 더 불결해질 뿐이다.
철웅씨의 손은 장도리 대신 주머니에 들어있는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한동안 켤 일이 없었던 실장린갈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다.


"여기엔 왜 왔지?"

인간이 실장석의 말로 말을 할 수 있게 된 걸 알게 되자 자실장의 떨림이 멈추었다.

"테에.. 닝겐상에게 부탁이 있는테치.."

"나는 사육할 생각도, 먹이를 줄 생각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게 아닌테치. 와타치는 무기를 사고싶은테치."

"무기를?"

철웅씨는 예상과 영 다른 대답을 듣게 되자 잠시 얼빠진 얼굴을 했다. 곧 평소의 우거지상으로 돌아와선,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사고 말고 한다는거지?"



"부..분명히 닝겐상들이 쓰는 돈은 하나도 없는텟치...

그래도 꼭 필요한테츄. 부탁하는테츄."

철웅씨는 대게의 분충들이 대가없이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을 넌지시 알고 있었다.
인간을 업신여기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 바치는 노예로 판단해버린다고 하던가.
자실장의 간절한 부탁은 철웅씨에게 딱 분충의 행각으로 보이기 충분했다.


"무상의 대가는 없다. 실장석이든 인간이든 말이야.

지불할 것이 없다면 나가도록해라. 가게에서 피냄새가 나는 것은 사양이다."


"와타치.. 줄 것은 없는테츄. 하지만, 하지만, 해드릴 수 있는게 있는테치!"

철웅씨의 단호한 거절에 자실장의 울음소리가 더 절박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철웅씨의 입장은 단호했다.
네놈들이 하긴 뭘 해. 당장 나가지 못해. 그런 말을 하고 쫓아낼 참이었다.


"알고있는테치. 와타치타치는 닝겐상에게 미움받는테치.
닝겐상은 와타치타치가 사는 곳에는 하얀 악마를 보내는테치. 와타치타치는 꼼짝없이 죽어야하는테치.
와타치는, 와타치타치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알려줄 수 있는테치."

"그게 무슨 소리냐? 너희가 살고 있는 곳의 위치를 밝히겠다고?"

"그 말 대로인테치. 닝겐상에게 해드릴 수 있는건 이것 뿐인테치..."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제안이었다. 목석같던 철웅씨도 이 제안에는 잠시 넋을 놓았다.
아마도, 그런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자실장은 실장석의 은밀한 커뮤니티를 내부고발하려고 하고 있다.


도시의 온갖 구석에서 은밀히 살아가는 실장석들은 인간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
예컨데, 신문지로 하우스를 은폐한다던가, 하수관 등의 탈출로를 확보해 둔다던가 하는 하찮은 수단들을 이용한다.
다만 언제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폐를 끼치는 족속들인만큼, 그 은닉수단은 때때로 지나치게 효과적이어서
전문 구제업체가 조사해야할 만큼 깊숙한 곳에 숨어버리는 일도 왕왕 있는 것이다.


철웅씨는 잠시 이 실장석의 제안을 생각해보았다.
이런 어린 놈이 아무 방해도 없이 시장 구석까지 들어온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간혹 있다는 그런 경우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조만간 또 시장조합이 조합비를 들여 구제업체에 의뢰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라리 이 내부고발자를 이용하는 편이 어떨까.


"어떤 무기를 원하지?"

"텟? 부탁을 들어주시는테치?"
"은신처에 대한 정보가 믿을만하다는 전제 하에 넘겨준다. 원하는 걸 말해봐라."

"테치.. 그렇다면 그 박스 안에 있는 뾰족뾰족씨를 원하는테치."

"뾰족뾰족씨? 아. 못인가."

철웅씨는 그 자리에서 적당한 크기의 철못을 골랐다. 10cm가 안 되어 보이는 자실장이 쓰기에는 이 정도가 적당해보인다.

"이 놈을 넘겨주겠다. 지금 네가 가진 정보를 말해."







자실장은 한동안 설명을 했다. 비록 실장석의 설명이었지만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철웅씨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구제를 통해 쫓겨난 실장석들은,
어느샌가 인간이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힘든 곳에 숨어있었다. 정말이지 성가신 놈들이다.

철웅씨는 잠시 정보의 가치를 생각해보았다. 이건 살 만한 정보가 아닌가.

"무상의 대가는 없으니까. 나도 이 녀석을 주겠다."
"테엣! 감사한테치! 상냥한 닝겐상인테치!"

건내준 못을 받아들고는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자실장을 보자, 철웅씨조차 웃음이 나왔다.

"이봐. 그 은신처의 위치를 밝혔다는 것은 너도 조만간 죽는다는 뜻이다.
곧 여기 사람들이 조치를 취할거라고. 뭘 고마워하는거냐?"

"그런건 알고 있는테치."

"뭐라고?"

"와타치는 마마와 이모토쨩들과 같이, 그 위치에서 조용히 살고있었던테치.
그런데 얼마 전에 하얀 악마들에게 쫓겨난 분충들이, 조용히 살고있던 와타치타치를 덮쳐온테츄..."


자실장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훌쩍거렸다. 철웅씨는 어느샌가 링갈에 표시되는 말을 지켜볼 뿐이었다.

"와타치도 거기서 죽는 줄 알았던테치. 그렇지만 살아남은테치.
대신 마마나 이모토쨩이 모두 희생된테치. 그래서 와타치만 살아남은테치.
그렇지만 와타치는 어차피, 머리카락씨도 옷씨도 모두 빼앗겨서 살아남을 수 없는테치.
와타치.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족의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테치."

"그런가."

"뾰족뾰족씨는 고맙게 쓰는테치. 감사한테치. 닝겐상. 안녕인테치."


자실장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토테토테, 철웅씨의 철물점을 나서 시장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철웅씨는 그 모습이 사라질 때 까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 결연한 모습에 무언가의 영향을 받은것만 같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코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정말 재수가 어떻게 되었다.
철웅씨는 가게를 마감하고, 셔터를 내렸다.





다음날 아침. 개시까지는 두시간 정도를 앞둔 새벽에 철웅씨는 터벅터벅 가게로 향했다.
셔터를 열기 위해 열 발자국 전 부터 주머니 속의 열쇠를 주섬주섬 꺼내려는 참이었다.
셔타 앞에 무언가 살덩이가 있는 것 처럼 보이더니, 실장석이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맨몸에, 대머리의 실장석이었다.
그러나 몸집은 어엿한 성체로, 25~30cm정도 되어보이는 신장을 가지고 있었다.
성체실장은 철웅씨를 보자 별안간 "데샷! 데스아앗!" 이라며 대뜸 위협적인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새벽잠이 달아날 법한 짜증나는 목소리에, 철웅씨는 무의식적으로 발로 차 갈겨버리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을 멈추게 되었다. 저 성체실장이 들고 있는 것은...


대머리 자실장의 머리와, 어젯밤에 건내준 듯한 못이었다.
신기하게도 철웅씨는 부글거리던 마음이 순식간에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어제처럼 스마트폰의 링갈 어플을 작동시켰다.


"왜 남의 가게 앞에서 행패지?"

"뎃!!! 똥닌겐!! 오마에가 이 분충한테 보검을 넘긴데스?!"


.....아하.
과연. 그렇게 된 것인가.
철웅씨는 돌아가는 상황을 한 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어제 자실장이 들려준 이야기에 등장한 분충이란 녀석은 이 놈을 말한 것인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데프프프. 멍청한 분충이었던데스. 와타시는 미리 다 알고 있었던데스."


대체로 분충이 그렇듯이, 자기자랑을 할 수 있는 구석이 조금이라도 생긴다 하면,
아무리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자만에 빠져 나불나불 불어대는 것이 이 놈들의 특징이다.
철웅씨는 이 멍청한 놈의 자전적 영웅담을 흥미가 다할 때 까지 들었다.


"와타시는 이 분충의 친과 마마가 몰래 쑥덕거린 걸 들은데스.
여기에 오면 뾰족뾰족이라는 보검을 구할 수 있다고 한 걸 들은데스.
이 독라 분충이 사라진 걸 알게 된 뒤로 와타시는 함정을 파 둔 데스.
이 분충은 와타시를 해치려고 한 모양이지만 어림없었던데스.
와타시가 분충 따위에게 죽는다니 있을 수 없는데샷!!"


뿌듯한 듯이 배를 앞으로 불뚝 내밀며 한 껏 잘난체를 하고선, 성체 실장은 대뜸 못을 철웅씨에게 겨눈다.


"오마에는 분충 따위나 돕는 똥닝겐인데스!
오마에의 죄는 죽어도 갚지 못하는데스! 당장 와타시와 자들에게 사죄하는데스!
이 뾰족뾰족을 더 내놓는데스! 덧붙여서 푸드도 내놓는데스!
일평생 와타시타치를 섬기는 똥노예가 되어야하는데스!!"


철웅씨는 퍼덕퍼덕거리는 팔에 들려있는 못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따위 허약한 생물이 아무리 힘껏 찔러봤자, 죽어주는 생물이라곤 동족밖에 없을 것이다.
별다른 위협을 못 느낀 철웅씨는 손을 뻗어 날렵하게 못을 낚아채었다.

"뎃? 데엣?"하며 사라진 못을 넋 놓고 바라보는 성체실장. 곧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고..

"데샤아앗!! 와타시의 보검을 돌려주는데샷!!"


철웅씨는 잠시동안이었지만, 제대로 값을 치루고 돌아간 고객을 회상했다.
그리고 눈 앞에 있는, 되먹지 못한 손님을 잠시 바라보았다.

철웅씨의 다리에 다가와선 종아리 부근을 토닥토닥, 힘껏 때리고 있었다.
아랑곳하지않고 셔터를 올렸다. 가게 안에 들어가 어제의 피피박스를 다시 끌어 매대에 올려두곤,
철웅씨는 몇 개인가 못을 더 꺼내왔다.


"데엣? 뾰족뾰족이 잔뜩인데스! 당장 모두 내놓는데샤앗!!"

"대가가 있다면 모두 주겠다."

"뎃샤아!! 무슨 소릴 하는데샤!! 똥닌겐의 물건은 모두 오마에의 주인인 와타시의 것인것을 모르는데스?

대가를 바라는 것은 죽어서도 못 갚을 죄인데스!! 당장 다 내놓으란"


철웅씨는 시끄러운 실장석의 팔에다 방금 회수한 못을 찔러주었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악!!! 데아아아아아악!!!!"

"어제 온 손님은 제대로 지불했는데 말이야."

"데쓰으으아아앗!! 무슨 짓인데스!!! 똥닌겐!!!
와타시의 섬섬옥수가아아아!!! 데샤아아아아아앗쓰!!!"


못에 찔려서 발버둥치는 실장석은 그야말로 꼴볼견이었다.
철웅씨는 이어서 팔과 다리에도 연이어 못을 박아넣었다.

"데앗 덱 뎃샷 데에엥" 하며 실장석의 신음소리가 변화해갔다. 점점 듣기 싫은 목소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제 온 자실장이 뭘 주고 갔는지 아나?"

"그딴건 모르는뎃샤아아!! 당장 돌려놓는데스!!! 와타시를 치료하는데스으!!"

"네놈들이 ~~의 구석가에 숨어살고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갔지."

"데...뎃?!"

"그런 손님이면 애프터서비스도 충분히 해 줘야하지 않겠어.

네놈의 일가를 모두 청소해주지. 각오하라고."

"데.. 데에에에..."


철웅씨는 잠시 바닥에 굴러다니는 자실장의 머리를 본다.
어제 잠시였지만, 만나고 난 뒤 철웅씨의 얼굴에는 철물점 주인으로서의 딱딱한 모습은 잠시 사라졌다.
대체 뭐가 이 변화를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간만의 소동이어서인가. 손님이어서인가.
아무려면 어떠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만남이었다. 아마 오랫동안 기억이 나겠지.

철웅씨의 얼굴에는 다시 화색이 돈다.
그는 못을 힘차게 잡고 찌르며, 아침잠을 멀리 날리는 비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데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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