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쨩 1~6

 


 "어서오세요!"

 나는 시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실장샵인 '아이코우도우(愛好堂)'로 들어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실장석 애호일변도의 가게이다. 학대파의 물건을 취급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구더기 저실장에서부터 엄지실장, 자실장 그리고 성체실장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애호파의 기호에 맞추어져 있었다.

 애완용으로 특별히 개량된 혈통 좋은 출산석에게서 태어나, 전문가 중의 전문가인 브리프에게 엄격한 훈육을 받고 출하되어 배변훈련, 인간에 대한 기본예절, 인간사회의 기초 상식과 귀여운 재주까지 완벽히 터득한 실장석들인 것이다.
 보통 실장석이라고하면 그 태생적인 성격이 지극히 천박하여 아무리 교육을 해도 한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아이코우도우'의 실장석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특별히 엄선된 자질 높은 실장석을 교육시킨다. 그리고 그 실장석이 아이를 낳으면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애정이 깊으며, 가장 귀여운 자실장만을 골라 다시 성체실장이 될 때까지 기른다. 이 성체실장이 아이를 낳으면 다시 앞의 행동을 반복한다. 이렇게 십수 대에 걸쳐 특별히 길러진 덕분에 천박한 본성은 거의 없다고해도 좋을 정도로 감퇴되었다. 외모 역시 실장석 평균을 아득히 상회할 정도로 귀엽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는 추저분한 들실장과는 다르게 성체실장이라고 하더라도 덩치가 그리 크지 않다. 나이를 먹고 성장하더라도 언제까지나 귀여운 모습으로 있을 수 있도록 개량한 것이다.

 이 특출난 재질과 외모 위에 또 엄격한 교육이 더해진다.
 배변훈련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식사예절, 인사하기, 청소하기, 세탁하기, 옷매무새 단정히 하기, 잠자리정리하기 등의 예의범절도 완벽히 터득해야만 진정한 하나의 '실장석'으로서 아이코우도우의 매대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실장석 기르기의 초보자도, 아직 동물을 다루는데 익숙치못한 어린 아이라도 이 실장석이라면 문제없이 기를 수 있다.
 결코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충직함. 가장 작은 엄지실장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예의범절을 모두 터득한 덕분에 교육에 서툰 사람이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놀아주지 않더라도 타고난 그 본성은 결코 타락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아이코우도우가 세상에 자랑하는 애완실장인 것이다.



 하지만 그 만큼이나 그 가격은 대단히 높다.
 보통 일반 실장샵의 애완실장석과 비교했을때 2~3배. 학대파가 애용하는 분충 실장석과 비교하면 그 값은 거의 30~40배에 육박한다.

 이는 아무리 실장석 기르기가 취미인 나라고 하더라도 선뜻 구입할 수 없는 거금이다.


 ........

 하지만 아이코우도우의 실장석은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근 6개월만에 다시 매장을 찾은 것이다.



 "아- 오랜만에 찾아주셨군요. 메릴쨩은 잘 있나요?"


 서글서글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반가운 표정으로 반겨준다.
 오랫동안 이곳을 애용한덕에 꽤나 친해진 점장이다.


 "하하, 그 동안 조금 바빠서요. 메릴은 늘 잘 있죠."

 "이제 메릴도 1살이 다 되가는군요. 오늘은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혹시 메릴의 선물을?"

 "아 예. 선물이랄까... 사실 요새 일이 꽤 바빠져서 메릴과 자주 못 있어줬거든요. 메릴이 외로워하는 것 같아서 친구나 동생이라도 하나 구해줄까해서요."

 "정말- 언제나 상냥하시군요! 혼자 있는 아이를 생각해서 그런 생각까지 하시다니... 이쪽...! 이쪽으로 오시죠!"


 점장의 안내로 다가간 매대에는 여러 자실장들이 각각의 수조에서 테츄- 테츄- 떠들고 있었다.
 가로세로 30센치 정도의 방에는 한마리나 두마리 정도의 자실장이 있다.
 과연 이름 높은 아이코우도우의 실장석답게 남자가 가까이 다가가도 놀라는 기색이 없다.
 실장샵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자신을 데려가라고, 자신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모습도 전혀 비치지 않는다.
 그저 남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점잖게 자리에 앉아있거나, 조용히 서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메릴쨩의 친구라면... 이쪽 라인에서 살펴보시는게 좋을듯하군요. 이쪽이 비슷한 나이대거든요. 생후 8개월에서 1년 사이인 아이들입니다."

 "네, 그럼 좀 보겠습니다."

 "천천히 둘러보세요."


 점장은 남자를 안내하고 조용히 다른 매대로 간다.
 이 역시 이곳의 독특한 영업전략이다.
 어떤 종류의 실장석을 찾는지만 듣고, 고객이 원하는 실장석을 추려내서 보여준다.
 그 뒤의 선택은 전적으로 손님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 아이가 좋아요'하는 직원의 추천은 물론이고, '이 아이는 머리가 정말 좋죠.'하는 은근한 조언도 일절 하지 않는다.

 이곳 '아이코우도우'의 실장석은 모두가 훌륭하고 뛰어나다.
 어떤 실장석을 골라도 똑똑하고, 사랑스러우며, 충직하다.
 그렇기에 어느 실장석이 어느 실장석보다 뛰어나다고 말 할 이유가 없다.... 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거기에 '실장석과 주인의 만남이라는 감격적인 순간에 다른 이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 ...라는 지극히 애호파스러운 논리도 끼어있었다.


 남자는 익숙한듯이 매대를 한 번 쭉 훑어보았다.
 점장이 보여준 라인에는 총 10개의 수조.
 남자는 그 중에서 두 마리 이상의 자매가 들어있는 4개의 수조는 제외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 한 마리다.

 남은 여섯 개의 수조를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여섯 마리의 실장석 모두 훌륭하다.
 역시 아이코우도우...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옷매무새가 깔끔한 것은 물론이고, 방 정리도 확실하게 되어있다.

 아이코우도우는 애호파의 성지라는 이름답게 이런 매대의 수조까지도 세심하게 꾸며주고 있었다.
 보통의 실장샵은 낡은 헝겊이나 걸레같은 수건 하나만 덜렁 넣어준다.
 그러나 이곳의 수조에는 자실장 전용 침대와 전용 화장실은 물론이고, 먹이와 물도 항상 그득히 담아놓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도록 한다. 거기에 작은 장난감 공까지 넣어주고 있었다.

 보통의 자실장에게 이런 호사스러운 환경을 제공하면 금새 어질러지고 말 것이다. 먹이가 가득 담겨있는 그릇을 보고 냉정을 유지할만한 자실장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이곳의 자실장은 그런 하찮은 것과는 격을 달리한다는 듯이 아주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먹이 그릇 주변에는 부스러기조차 없으며, 급수대 근처도 깔끔하기 그지없다. 잠을 자는 전용바구니 위에는 조금 어설프지만 덮는 이불도 잘 정리해두었다.
 이것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훌륭한 자실장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몇 번이나 수조를 들여다보았다.
 후보는 여섯에서 셋까지 줄여놓았다.
 하지만 그 셋에서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다.


 "음..."


 나도 모르게 옅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늘 그렇지만 오늘도 정말 고르기가 힘들다.


 그때,






 "텟!"


 자실장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자실장은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하더니 곧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운다.


 "이놈 봐라..."


 나는 그 수조로 다가간다.
 내가 다가가자 고개를 돌리고 멀쩡한 바구니를 이리저리 만지던 자실장이 더더욱 당황한다.
 곱게 드러난 이마에 진땀이 삐질 흐른다.


 "테... 테에..."


 내가 계속해서 쳐다보자 자실장은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잠깐 가만있더니, 이내 결심을 한듯 허리를 꾸벅 숙여 나에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돌아서서 다시는 이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음... 귀여운 아이네. 너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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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에... 주인님 와타시를 선택해주셔서 감사한테츄..."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그 아이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씨익 웃어주었다.


 내 웃음에 조금 마음이 진정됐을까.
 그 아이는 주섬주섬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까 전에... 와타치가 와타치도 모르게 아첨 자세를 취한테치.... 그래서 주인님이 와타치를 미워하실까 걱정한테츄..."

 ".....주인님 정말 죄송한테치! 앞으로는 절대 그런짓 하지 않는테츄!"


 확실히 내가 이 녀석을 고른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보통의 실장샵에서도 휘하 실장석들에게 엄격히 금지하는 아첨 포즈를 아이코우도우의 실장석이 한다...
 아이코우도우에 여러 번 드나든 사람이라면 직접 보고도 믿지 않았을 광경이다.
 남자 역시 그런 자실장에게 대단한 흥미를 느껴 그 아이를 데려왔다.


 "그때 왜 그런 포즈를 했어?"

 "텟!........."

 "혼내려는게 아니야. 궁금해서 그래."


 나는 다시 미소를 한가득 짓고 자실장에게 물어본다.
 그러자 자실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말한다.


 "테.... 주인님이 왠지... 아니... 저어... 그냥 주인님이 좋아보였던테찌..."

 "...그래서 와타치도 모르게... 그랬던테찌... 정말 죄송테치..."

 "내가 좋아보였다고?"

 "테에! 그런테츄. 주인님이... 처음봤는데도 주인님은 정말 상냥해보이셨던테치... 그래서 그래서... 와타치도 모르게 그만 그렇게 해버린테치..."

 "응~ 그랬구나. 그래. 나도 그런 네가 귀여워서 고른거니까... 이제 괜찮아!"

 "테, 테, 테엣?! ...와타치가... 귀엽테츄?"

 "응응. 그렇다니까."

 "테에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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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제부터 여기가 네 방이야."

 "테, 테에엣?!"


 내가 자실장을 바닥에 내려놓자 그 아이는 마치 감전된듯 펄쩍 자리에서 한 번 뛰더니 멍하니 주변을 쳐다본다.

 그도 그럴 법하다.
 내가 데려간 그 방은 방 전체를 실장석용으로 꾸며놓은 곳이니까.

 슈퍼더블사이즈 크기의 전용 침대는 최고급 쿠션과 전기 온열시스템까지 구축된 최신형 모델이다. 거기에 덮는 이불도 극세사를 재질로 만들어 마치 젖은 스펀지처럼 부드러운 것이다.
 방에는 따로 에어컨이 달려있었지만, 내가 없을 때도 간단한 냉방은 가능하도록 실장석 전용 사이즈의 앙증맞은 선풍기도 갖다 놓았다.
 먹이 그릇은 '사료용', '간식용', '고기용'으로 해서 모두 3개나 된다. 급수기도 그냥 평범한 물을 담은 것과 실장석의 입맛에 맞춘 스포츠음료를 가득 채운 것 두 개가 있다.
 전용 화장실은 따로 비데가 설치된 최신형 모델이다. 거기에다 타이머로 설정된 2개의 방향기구가 볼일이 끝나자마자 달콤한 향수를 몸에 뿌려준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도 자실장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장난감일 것이다.

 장난감의 바다.
 실장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우지Q 미니카가 모델별로 바닥에 어지럽게 굴러다닌다.
 거기에 지프, 미니밴, 쿠페, 세단 등등 다양한 모양의 자동차 장난감도 함께 돌아다닌다.
 헝겊인형은 아예 산처럼 방구석에 쌓여있다. 토끼, 강아지, 고양이, 펭귄, 기린 등등.. 종류도 대단히 많다.
 또 상반기에 최고의 실장석 애호물품으로 선정된 최신 구더기인형도 있다. 특수재질로 만들어져 원래 구더기 저실장의 촉감을 그대로 살렸다고 하는 물건이다. 말랑말랑하고 폭신폭신해서 잠잘 때 끌어아는 인형으로 이름이 높다.
 거기에다 그림그리기 도구와 자실장 사이즈에 맞춘 미니 피아노, 직접 타고 놀 수 있는 비행선, 고무공과 골프공, 탁구공, 야구공, 테니스공... 등등의 다양한 공까지...

 태어나자마자 엄격한 훈육과 절제된 생활에서 살아온 자실장으로서는 정말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런 광경이다.







 "텟츄우우웅~!!! 주인님 고마운테츄우우우우~~~!!"


 자실장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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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자~ 이제 그만 놀고 밥먹어야지?"

 "테엣! 밥테츄! 주인님 고마운테츄!"

 "그래그래. 넌 뭘 좋아하니?"

 "테... 와타치는 아무거나 다 잘먹어요테츄. 밥투정은 이야테치. 절대하면 안되는테치."

 "그래... 넌 정말 착하구나. 하지만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있겠지?"

 "테츄.... 저.... 저어.... 콘페이토가 너무 좋아테츄."

 "콘페이토? 달콤한 걸 좋아하는구나?"

 "테엣☆ 그런테치. 달콤한 것 너무 좋아테츄!"

 "그래그래... 그럼 오늘 우리가 처음 만났으니... 특별히 맛있는걸 먹자."






 나는 준비한 음식을 꺼내 그릇에 가득 담아 밀어주었다.


 "자, 어서 먹어."

 "잘먹겠습니다테치!!   .......테에에... 처음보는 음식인테츄..."


 자실장은 늘 먹던 초록색 실장푸드가 아닌 하얀색 덩어리를 보자 조금 주저한다.
 하지만 주인님의 음식을 거절해서는 안된다는 훈육을 기억해내고 얼른 음식을 집는다.


 "....테?"


 약간 주저하며 음식을 집었지만, 손에 든 음식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하고 맛있는 냄새가 난다.


 "....폭신폭신테치..."


 그리고 지금까지 실장샵에서 먹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으리만큼 부드럽다.



 합!



 "테에??? 테에에에에????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음식을 입에 넣은 자실장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내가 준 것은 단순한 실장푸드가 아니라 마쉬맬로우에 쵸코시럽과 생크림을 끼얹은 것이다.
 원래 실장석에게 인간이 먹는 음식을 주는 것은 금기에 속한다.
 인간의 음식은 그 맛과 자극이 너무나 강렬하여 한 번 인간의 음식에 맛을 들이면 밋밋한 실장푸드는 잘 먹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보통의 음식도 그런데, 극한으로 단맛을 추구한 이 마쉬맬로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평생에 처음 맛보는.
 아니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한 농후하고도 강렬한 맛이 머리를 강타한다.
 단맛을 가장 좋아하는 실장석에게 있어서 그 극한의 단맛은 똥을 놓칠 정도로 황홀할 정도다.
 그 맛에 취해, 그 맛에 빠져 자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맛있는테치!! 맛있는테치!!"

 그 맛에는 아무리 누대에 걸쳐 수련을 해온 아이코우도우의 실장석도 버텨내지 못한다.
 자실장은 연신 테츙★테츙♥하며 마쉬멜로우를 걸신들린듯 집어먹는다.


 "테치이이이~♬  텟찌이이이~~♪"


 "맛있는테츙! 맛있는테쮸! 주인님 정말 고마운테치. 정말 맛있는테치. 정말 감사한테치."


 "달콤한테치! 달콤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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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에에에... 오늘 정말 행복했던테치... 와타치가 살면서 가장 행복한 날인 테치..."


 자실장은 전용 침대에 누워 구더기인형을 껴안고 누운채로 중얼거린다.


 "테에에엥... 너무... 너무 기쁜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는테쮸... 이상한테찌..."


 새어나온 눈물에 눈을 쓱쓱 비비던 자실장은 다시 구더기 인형을 꼭 껴안는다.


 "밥... 정말 맛있었던테치. 그런 맛은 난생 처음테치... 콘페이토와는 비교도 안 되던테치..."

 "장난감... 장난감도 정말정말 많았던테치... 오늘은 절반도 다 보지 못했던테치... 구슬만 겨우 가지고 놀았던테치..."

 "테에에엥... 테엥... 정말... 정말정말 상냥하신 주인님테치... 고마운테치... 이런 와타치에게 너무 과분하신 주인님테치."

 "침대도... 그전 것보다 훨씬훨씬 좋은테치... 살던 방만큼이나 큰 테치. 이불도 너무너무 부드러워테찌... 열도 후끈후끈나는테치..."

 "웅... 그리고 또... 또.... 테치..."


 연신 고마움을 표하던 자실장의 눈이 점차 가물가물해지며 감긴다.


 "....그리고... 주인님은 와타찌에게 이름도 주신 테찌.... 와타찌를 메릴쨩이라고 한테찌... 와타찌는 이제부터 메릴테찌..... 테....."


메릴이 집에 온 지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정말 전심전력으로 메릴을 소중하게 돌봤다.
 처음 메릴을 데려온 것이 금요일 저녁이었기에 그 날 하루와 주말 연 이틀을 모두 메릴과 함께 노는데 쓴 것이다.
 함께 실장용 그림셋트로 그림을 그리고, 산처럼 쌓인 봉제 동물인형을 하나하나 꺼내서 '이건 기린, 이건 팬더, 이건 강아지, 이건...' 하는 식으로 하나하나 이름도 가르쳐주었다.
 메릴은 테- 하며 입을 벌리고 내가 보여주는 봉제인형을 꼭 끌어안아도 보고, 품에 안고 킁카킁카 냄새를 맡기도 했다. 조금 무섭게 생긴 사자나 하마인형은 약간 두려운듯 손끝으로 살짝 만지기만 했다.

 자동차를 가지고도 놀았다.
 자실장에게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우지-Q는 메릴도 굉장히 좋아했다.
 땅바닥에 바퀴를 붙이고 뒤로 당겼다가 떼면 앞으로 튀어나가는 단순한 작동방식이지만, 그런 것을 처음 보는 메릴은 너무나 신기해했다.


 "테- 테엣! 정말 빠른테츄! 정말 빠른 구더기쨩인테찌!"

 "주, 주인님! 다시 한 번 해주시는테츄! 이번에는 반드시 구더기쨩 잡아보이는테치!"

 "하하.. 자, 그럼 다시 간다!"

 "테칫!"


 슈웅~~~!!


 메릴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골문 앞의 골키퍼처럼 다리를 넓게 벌리고 서서 우지-Q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 짧은 팔이 반응한 것은 이미 우지Q가 다리 가랑이 사이를 지나 저 멀리 사라져버린 후였다.


 "테, 테찌!! 또 놓쳐버린테찌! 테.... 정말 빨라테츄..."

 "우지쨩도 저렇게 빠르게 갈 수 있는테츄? 응? 우지쨩?"


 메릴은 내가 첫날에 선물해준 구더기 인형이 정말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어디에 가든 항상 구더기 인형을 소중히 안고 가는 것이 마치 친동생을 대하는듯 하였다. 메릴은 그 구더기 인형을 '우지쨩'이라고 불렀다. 내가 '우지쨩이 누구야?'라고 물으면 자신의 동생이라고 하며 방긋 웃었다.


 주말에는 실장석 전용 음악킷트로 전자오르간도 쳐보고, 바이올린도 켜보았다.
 자실장이 직접 탈 수 있는 전용 오프로드카도 타서 방과 거실을 일주하기도 했고, 각양각색의 공으로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공놀이도 실컷했다.

 그렇게 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특식을 먹는다.
 첫날의 마쉬맬로우를 기점으로하여 고급 와규 스테이크, 특제 장어소스를 끼얹은 고급실장푸드, 차갑게 식힌 코코아에 마쉬맬로우를 얹은 것, 갓 구운 떡 위에 초코 시럽을 바른 것, 한팩(50g)에 2000엔이나 하는 최고급 세레브 실장용 실장푸드, 토치기 산 고급멜론에 이탈리아 파라뇨 생햄을 곁들인 것... 왠만한 고급 사육 실장석이라도 입에 대지 못할 최고급 음식만을 먹여주었다.
 양도 원하는 만큼 먹여준다. 결코 그만 먹어라라든가 아껴먹으라든가 그런 품위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테, 테테테텟, 텟츄우우웅~~☆★"


 메릴은 음식을 한 입씩 먹을때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감격에 젖어 몸을 부르르르르 떤다.
 '아이코우도우'가 이름 높은 실장샵이라고 하나 지금까지 먹던 것은 기껏해야 중급실장푸드에 지나지 않는다.
 며칠 공기 중에 놔둔 비스킷처럼 딱딱하고 퍼석퍼석하여 식감이 그다지 좋지 않다. 거기다 맛- 맛이라고 해봐야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 슴슴한... 사람으로 치면 맨밥과 같은 느낌이다. 간혹 계절에 따라 특식으로 푸드가 아닌 다른 음식이 나올 때도 있긴 하다. 그래봐야 주는 것은 콘페이토 두어알에 시꺼멓게 푹 익은 바나나 한 개. 조금 시든 것 같은 사과 반쪽, 당근과 감자, 양파, 양배추에 생선찌꺼기를 약간 넣고 끓여낸 특제죽 정도가 전부였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이것은 그야말로 실장석의 두뇌로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격차가 있었다.


 "맛있는텟츙 맛있는텟츙"

 "테에에에.. 텟?! 테.. 아닌테치... 혓바닥이 녹는줄 알았는데 착각이었테찌..."

 "맛있어테치이이이... 테에에... 흐물흐물하게 되버리는테치...."

 "주인님 감사한테츙 감사한테츙..."



 하지만 무엇보다 메릴이 기뻐하는 것은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산더미 같이 높게 쌓인 장난감도 아닌 '메릴'이라는 이름이었다.
 내가 메릴이라고 이름을 불러줄때마다 메릴은 귀를 쫑긋쫑긋 세우고 볼이 빨갛게 상기되었다.


 "이름 불리는게 그렇게 좋아?"

 "네, 테치! 와타치가 가장 좋아하는 주인님이 주신 이름테치! 어떤 선물보다 이게 가장좋아요테츄~♬"


 메릴은 빙그르르 한바퀴 돌더니 테찌하며 점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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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그럼 나는 내일부터 출근을 해야하니까...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야해. 응, 메릴?"

 "알은테츄! 와타찌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테찌!"

 "그래. 그럼 잘 자라."

 "안녕히주무시는테치, 주인님."



 남자는 불을 끄고 방 밖으로 나간다.
 커다란 방에는 메릴과 그 동생 '우지쨩'만 덩그러니 남았다.


 "테.... 오늘도 정말 재밌는 날이었던테치...."

 "웅... 웅... 오늘은 피아노라는걸 쳐본테치... 정말 신기한소리테치... 그리고... 공놀이 아주 즐거웠던테츄... 웅..."

 "우지쨩 듣고있는테찌? 테... 와타찌는 정말 훌륭하고 착하고 상냥하고 멋진 주인님을 만난테찌... 정말 와타찌는 행운인테찌... 와타치에게 과분한 주인님인테치..."


 메릴은 자리에 누워 꼭 껴안은 우지쨩에게 이것저것 쉴새없이 말을 떠든다.


 "가게에서 교육을 받을때는 정말 너무 힘들고 무서웠던테치....."

 "함께 들어간 와타치의 언니... 동생... 모두모두 가득가득 죽어버린테치... 테.... 테...."

 "그러면서도 항상 두려웠던테찌... 어떤 주인님을 만날지... 혹시 무서운 주인님을 만날지.. 걱정한테치..."

 "하지만 우지쨩! 이제 괜찮은 테치.. 이렇게 상냥하신 주인님을 만난 테치. 그런 와타치는 분명 행운아중의 행운아테치."

 "그래도... 그래도... 그럴수록 더욱더 주인님께 예의범절을 구해야하는테치... 잘해준다고 버릇없이 굴면 그건 정말정말 나쁜아이인테치..."

 "응? 우지쨩...? 응... 응...... 졸린테치..... 우지쨩... 잘 자는... 테....zzz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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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월요일.
 다시 회사로 나가야하는 날이다.
 보통이라면 어떻게든 단 1분이라도 더 따뜻한 침대에 누워있고 싶어서 지각 직전에야 일어나는 몸이지만, 오늘은 출근 3시간 전에 눈이 번쩍 떠졌다.
 알람 따위를 맞출 필요도 없다.
 얼마나 오늘. 지금 이 때를 기다렸던가...
 살짝 흥분이 된다. 숨도 조금 가빠진다.


 나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준비해둔 것을 가지고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베란다의 구석진 곳에서 오늘을 위해 준비해둔 작은 병 하나와 손가락만한 튜브를 꺼냈다.

 튜브에는 '램브란트 유화물감'이라는 마크가 선명하다.
 그리고 작은 병에는... 비닐로 꽁꽁 싸여있지만, 그래도 은근한 구린내가 새어나온다.
 이건 메릴의 똥이다.

 나는 이 두 개를 비커에 조금씩 덜어낸다.
 똥과 물감의 비례는 3:1 정도... 거기에 약간의 식용유를 붓는다.
 그리고 나서 유리막대로 세차게 젓는다. 
 곧 걸쭉걸쭉한 녹색 페이스트가 만들어졌다.

 다음에는 이걸 조심조심 주사기의 피스톤 안에 채워넣는다.
 용량은... 1/3 정도... 아냐 1/2 정도로 할까...

 ...됐다. 무사히 들어갔다.




 이것을 들고 조심조심 소리가 나지 않게 메릴의 방으로 들어갔다.


 "테스... 테....스...... 테스..... 테.... 테...츄.... 테츄...."


 메릴은 귀엽게 숨소리를 내면서 구더기 인형을 꼭 껴안고 자고 있다.
 나는 메릴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캐시미어 이불을 들춘다.





 꾸욱....

 쯉!! 
 주륵!

 쭈우웁!!
 주륵.. 주르륵!!


 그리고 나서 망설임없이 주사기를 메릴의 팬티와 엉덩이,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이불에 골고루 뿌려준다.
 지독한 구린내가 코를 찌르지만, 전혀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앞으로의 짜릿한 일을 생각하면 지금의 구린내조차 내게는 꽃향기와 다를바 없는 것이다.


 단 몇 초만에 새하얀 시트는 초록색의 더러운 똥으로 범벅이 되었다.
 내가 새로 선물해준 새하얀 실장팬츠도 찐득찐득한 똥으로 뒤덮혔다.
 메릴의 작고 통통한 다리에도 똥국물이 흘러내린다.


 '됐다....!'


 일을 마치자 나는 서둘러 방 밖으로 나간다.
 작업을 하면서도 항상 메릴의 상태를 살폈지만 조금도 눈치챈 것 같지 않다.
 여전히 태평한 얼굴로 귀엽게 테스테스- 테츄테츄-하며 침을 흘리고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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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짜릿한 기분을 진정시키고 주사기와 똥그릇, 물감을 정리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샤워를 했다.
 그러고나서 가볍게 아침 식사를 끝마치고, 옷을 갈아입는 것을 제외한 모든 출근준비를 끝마쳤다.
 시계를 보니 출근 2시간 전이다.


 "큼! 큼! 메리이이이일~~ 아침이야! 이제 일어나야지!"


 나는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메릴의 방을 통통 두드린다.
 그러자 안쪽에서 미약하지만 후다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와 동시에 메릴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주, 주, 주, 주인님!! 저, 저기....! 저, 저기...........! 테... 테테테테테...."

 "응? 무슨 일이야? 메릴? 잠꾸러기구나아아~"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와 동시에 시큼하고 구릿한 똥냄새가 코를 쿡! 찌른다.


 "어?! 이게 무슨 냄새야?"

 "테... 테.... 테에에에... 주. 주인님... 이건... 저기... 테에에에엥..."

 "응? 왜그래? 메릴? 어엇? 너... 너... 너 설마?"


 나는 메릴의 침대로 뛰어간다.




 침대는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눈부시게 새하얀 하얀 시트는 초록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진한 녹색과 거무튀튀한 찌꺼기가 섞인 녹색즙이 흰 시트를 더럽힌 것도 모자라 오리털 베개까지 시퍼렇게 물들였다.
 볼 것도 없이 똥이다.
 내가 한 짓이지만.

 그리고 그 옆에서 메릴이.
 역시 녹색 똥으로 범벅이 된 팬티를 벗어 손에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더럽혀진 것만은 팬티뿐이 아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의 아랫단도 온통 녹색범벅이다.
 머리카락도 밑으로 내려오는 부분은 어김없이 똥찌꺼기가 묻어있다.
 제딴에는 어떻게든 닦아보려고 했던 것일까. 양손 역시 시퍼렇게 물들어있다.


 "너!!! 지금 뭐한거야!!!"





 나는 짐짓 큰 고성을 지른다.
 그 말에 울먹울먹거리던 메릴이 주먹만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무릎을 꿇는다.


 "테... 테테테테.... 주, 주인님... 테테테에에엥... 테에에에엥... 와타치... 와타치를 용서해주시는테츄....."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에!! 죄송한테츄! 죄송한테치! 잘못한테치!! 테에에엥..."

 "와타치가... 와타치가 이런 똥을 못가릴줄은... 테에에엥... 죄송한테츄!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는테치... 제발... 제발 용서해주시는 테치..."


 메릴은 무릎을 꿇은 채로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
 이마를 땅에 쿵쿵 박으면서 허리가 부러져라 굽혀댄다.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가 파랗게 질렸다가를 반복한다.
 몸은 쉴새없이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다.


 "뭐라는거야!! 너 이 놈!! 넌 똥도 못가리는 분충이냐!!"

 "테... 테에엣?!! 테... 테에에엣.. .테에.. 테테테......"

 "정말!! 뭐 이런게 들어왔어! 에잇! 이 똥벌레같은놈!!!"


 나는 쉬지 않고 고함을 버럭버럭내지른다.
 이제 메릴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경련한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똥벌레 같은 년!! 똥도 못 가리는 더러운 년!!"

 "똥도 못 가리는 주제에 애완용실장석이라니! 더럽다! 더러워!!"


 나는 쉬지 않고 욕설을 내뱉는다.
 내가 고함을 지를때마다 메릴은 세차게 경련하다.
 테끅! 테끅! 거리면서 등과 어깨가 감전된듯 부르르르 떨린다.
 조그마한 얼굴은 눈물과 콧물 그리고 침으로 범벅이 되어있다.


 "죄송한테치... 죄송한테치... 주인님 정말 죄송한테치... 아타치를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주시는테츄..."

 "메릴은 나쁜아이테치. 나쁜아이인테치... 와타치가 잘못한테치... 바로 고치는테치... 그러니 제발 똥벌레라 하지 말아주시는테츄..."


 메릴은 머리를 땅에 쿵쿵 박으면서 몇 번이고 용서를 구한다.
 부들부들 몸을 가눌 수 없으리만치 떨면서도 주섬주섬 사죄의 말을 올린다.
 하지만 그런 메릴에게도 '똥벌레'라는 매도는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나 혼나는 와중에도 '똥벌레'라는 호칭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그도 그럴 것이 애완용 실장석.
 특히 엄한 훈육을 견뎌내고 상품으로의 가치를 인정받아 매대에 선 아이코우도우의 실장석이라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생존률 10% 미만의 엄격한 훈련과정.
 언니와 동생. 때로는 친실장까지 죽어나가는 피로 얼룩진 그 길을 걸어나온 것이 바로 이들이다.
 함께 시작했지만, 수많은 이들이 훈련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
 그때 훈육사와 브리더는 통과하지 못한 이들을 두고 '똥벌레'라고 불렀다.
 '똥벌레'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더기가 낀 똥만도 못한 존재.
 밥은 커녕 숨 쉴 가치조차 없다.
 살아가려면 '똥벌레'가 되서는 안 된다.
 '똥벌레'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 아니 죽어야만 한다.

 이런 말을 뼛속 깊이. 아니 위석에 새겨질 정도로 들었던 것이 바로 아이코우도우의 애완실장이다.
 죽을 만큼. 어떤 때는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이겨내고, 미쳐버리려고 하던 정신을 간신히 다잡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이것만 참아내면 '애완실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옥훈련을 견디고 당당히 아이코우도의 매대에 선 그 날, 브리더는 자부심을 가지라고 했다.
 너희들은 지금까지의 길에서 죽은 '똥벌레'와는 다른 고귀한 존재라고 말했다.
 그것은 메릴에게. 그리고 또 다른 모든 자실장들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긍심으로 남겨졌다.


 그런 자부심을.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애완실장에게 똥벌레라고 욕하는 것은-
 그야말로 실장석으로 살아온 평생을 송두리채로 부정하는 것과 같다.
 때문에 아이코우도우에서 주는 안내책자에서는 '아무리 화가 나도 똥벌레, 분충이라는 용어를 쓰지말아주세요'라고 확실히 명시되어 있었다.
 물론 나도 그걸 잘 알고 있다.
 벌써 몇 년째 아이코우도우를 애용하면서 그곳의 점장과 직원에게서 여러번 들은 것이니까.

 그래서 난 이 '똥벌레'라는 단어가 주는 파괴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뭐라는거야 이 똥벌레가!! 지금 주인한테 대드는거냐?!"



 "테... 테... 아닌테치.. 그런거 아닌테치 주인님... 와타치는 그저..."

 "닥쳐라! 정말이지 어디서 이런 똥벌레가... 똥도 못가리는 주제에 말대답이나하고..."

 "주, 주인님........."

 "입닥쳐!!"

 "테.... 텟..... 테에에엥... 테에에에엥...."


 결국 메릴은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막고 있던 감정의 벽이 나의 매도로 인해 완벽히 허물어진 것이다.
 어떻게든 사죄를 하고 용서를 구하던 메릴이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은 채로 통곡한다.
 초록색, 빨간색 눈물이 볼을 타고 앞치마와 옷을 흠뻑 적신다.
 그러고도 눈물은 그치지 않아 바닥에 웅덩이를 만든다.


 아- 기분 좋다.
 그것을 본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에 휩싸인다.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취미-
 나만의 실장석 기르기인 것이다.

 실장석 학대야 요즘 세상에 있어서는 별반 이야기거리도 되지 않는 일이다.
 나 역시 그 학대가 주는 짜릿한 맛을 어린 시절부터 경험해왔고, 나이를 먹은 지금에서도 끊지 못하고, 아니 끊기는 커녕 점점 더 가학적으로 발달시켰다.

 학대라고 하면 흔히들 생각하는 것이- 불로 지지고, 머리카락을 빼앗고, 꼬챙이로 찌르고, 칼로 베고, 강제 출산을 시키고, 눈앞에서 자식을 죽이고... 이런 것을 떠올리지만, 나는 다르다.
 물론 그런 육체적 학대도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고, 가치가 있음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끔 생각날때 맛보는 길거리 포장마차의 음식 정도밖에 안된다.
 먹을 때는 나름대로의 맛이 있지만, 먹고 나면 별로 여운도 없고 의미도 없는-
 어쩌다가 한 번 먹는 것으로는 괜찮지만, 오랫동안 그것을 주식으로 삼기에는 어렵다.

 하지만 이 방법-
 물리적 폭력은 일절 배제하고, 말로, 언어로, 정신적으로 하는 학대는 그 맛이 완전히 다르다.
 자기 자신도 실장석을 괴롭히는 존재로까지 격하시켜야 성립할 수 있는 물리학대와는 달리, 이 정신학대는 그럴 필요가 없다.

 정신학대에서의 나는 어디까지나 착하고 상냥하면서 완전히 고결한 '주인님'이다. 
 내가 폭언을 하고 욕을 하고 고함을 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똥벌레'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뿐이다.
 그러니 내가 하는 행동은 아주 정당한 일이며, 그것을 아는 실장석도 반항하지 않는다.
 아니 반항은 커녕 어떻게든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빌어댄다.

 -이 각별한 맛은 물리학대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아주 독특하면서도 유니크한 맛인 것이다.



 메릴은 이제 몸을 둥글게 말고 귀를 양손으로 막으려고 애쓰면서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이....."


 메릴의 동그란 등이 가느다랗게 떨리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욕설을 내뱉으려고 한 순간,
나는 간신히 오늘이 첫날임을 기억해내고 참아낼 수 있었다. 그렇다 아직 겨우 첫날인 것이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베어먹으면 나중에 먹을 것이 남지 않는다.


 ".....일어나라."

 "...테... 테테테... 테... 테.... 테테테.. 테텟...."

 "일어나라니까!"

 "테, 텟츄! 텟... 테에에에... 주, 주인님....."

 "네 잘못을 이야기해봐라."

 "테, 테에?!"

 "이젠 말도 못 알아먹는거냐?! 네 잘못을 스스로 이야기해보라고!!"

 "테엣.. 텟... 테에.. 주, 주인님... 와타찌... 와타찌는........ 와타찌는....."

 "...ㄸ, 또, 똥을 못 가리고.... 똥을 싸버린테츄... 똥가리기를 못한.... 테...치.... 테에에엥..."

 "정말이지... 넌 대체 뭘배운거냐? 그러고도 네가 애완실장이야?"

 "테에에엥... 테에에엥.... 죄송한테치.. 죄송한테치.... 한 번만 용서해주시는테치.... 죄송한테치...."

 "......용서받고 싶냐?"

 "테, 텟! 물론테치! 주, 주인님...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테치...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인테치..."

 "좋아. 그 대신!"

 "....네가 더럽힌 그 옷과 팬티, 그리고 이불과 요. 전부 네가 세탁해야한다. 알았어?"

 "테, 테에에.. 테, 테치! 알겠습니다테치! 와타치, 빨래하는 것도 모두 배운테치! 반드시 깨끗하게 만들어보이는테치... 반드시... 반드시 그렇게 해보이는테츄!!"

 "좋아.... 어디 한 번 지켜보겠어."



 나는 메릴과 더러워진 이불, 요를 가지고 목욕탕으로 갔다.
 목욕탕 역시 자실장의 손이 닿는 위치에 냉수, 온수 밸브가 각각 하나씩. 그리고 자그마한 세탁비누와 샴푸, 스폰지가 담겨진 세면도구함이 있었다.
 언제든지 메릴이 사용할 수 있도록 첫날에 꾸며놓은 것이다.


 "자, 여기라면 너도 빨래를 할 수 있겠지?"

 "그, 그런테츄! 와타치... 반드시 깨끗하게 해보이는텟츄우우우!!"

 "그렇단말이지... 그럼 못하면 어떡할래?"

 "테, 테엣? ....테..... ....그, 그런 일은 없을 것인테치! 와타치 목숨을 걸고 반드시 해내는테치!"

 "흐음... 그래? 그렇다면 어디 두고보자."

 "....어제 말한대로 난 오늘부터 일을 하러간다. 내가 퇴근하고 돌아왔을때까지 깨끗이 해놓지 못한다면......"

 "테.... 테에......"

 "어디 두고보자."

 "테에에엥... 주, 주인님....."




************************************************************************************


 두 시간 뒤, 남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그런 남자를 현관 앞까지 가서 배웅하는 메릴.
 비록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지 않아도 메릴의 태도는 정중하기 그지없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이마가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혀보지만 남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쿵!


 육중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면서 남자는 사라진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메릴은 겨우 고개를 든다.



 "....테에.... 주인님... 가버리신테치이....."

 "테에에엥... 테에에엥... 정말... 정말 죄송한테치... 와타치는... 와타치는 정말 바보테치...."

 "주인님께 수고를 끼쳐버린테치... 주인님을 화나게만든테치.... 테에에에엥... 테엥..."


 메릴은 다시 자리에 주저 앉아 통곡하기 시작한다.
 빨갛고 초록색인 눈물이 흠뻑 목덜미와 앞치마를 적신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두 눈이 퉁퉁 부어있다.
 원래는 눈부신 하얀색이었던 앞치마도 초록 얼룩과 빨간 얼룩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이렇게 울고만 있어선 아무 것도 되지 않아테치...."


 한참을 울던 메릴은 그제서야 큰 결심을 한듯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퉁퉁부은 눈에서 새어나오던 눈물도 그쳤다.
 잔뜩 풀이 죽은 얼굴도 결연한 것으로 대체되었다.
 작지만 다부지게 꼭 쥔 주먹은 결의를 다지는 것처럼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와타치가... 와타치가... 한 일에 책임을 지는테치! .....주인님께 사죄를 드려야하는테치."

 "약속... 주인님과의 약속을 꼭 지키는테치! 응응.... 꼭 지켜야하는테치!"


 힘찬 걸음으로 메릴이 향한 곳은 욕실이었다.
 초록색 똥이 범벅이 되어버린 이불과 요가 놓여있었다.
 작고 앙증맞은 메릴의 팬티도 함께.


 "테에에에... 정말 부끄러운테츄..... 똥도 못가리다니... 정말 와타치는..... '똥벌레'......인.... 테치?"


 눈앞의 이불과 요, 팬티를 마주친 메릴에게서 방금까지의 당당함이 눈녹듯이 사라져버린다.
 귀도 돼지귀처럼 추욱 쳐져버렸다.
 다시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온다.


 "아, 아닌테체! 그런 거 아닌... 테치....  지금이라도 제대로 하는테치! 우울해지면 다-메 테치!"

 "빨래... 빨래를 하는테치... 반드시.... 절대로 깨끗하게 만들어보이는테치!!"



 아이코우도우에서는 실장석에게 기본적인 예절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재주도 함께 가르친다.
 이부자리 정리하기, 주변 청소하기, 물건 정리정돈하기, 옷 개기, 얌전하게 먹이 먹기....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애완실장석으로서는 반드시 배워야한다는 교양과목이었다.
 그 중에는 빨래도 있었다.


 "우선 뜨거운 물로 빨랫감을 적셔야하는테치... 충분히 적셨으면 비누로 문지르는테치... 그리고 다시 물로 헹구는테치... 웅웅... 그런테치... 잘 기억하고있는테치"

 "일단 물로... 적시는테치...."


 메릴 역시 우수한 실력으로 아이코우도우의 지옥 훈련을 견뎌낸 개체이다.
 특히 빨래와 청소는 원래 깔끔한 성격인 메릴과 궁합이 잘 맞아,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나서 브리더와 훈육사에게 여러번 칭찬을 받은 적도 있었다.
 이번에도 반드시 깨끗하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을 적셨으면... 더러운게 빠질때까지 밟는게 좋다고.... 닌겐상이 말씀하신테치..."

 "이렇게 밟으면 더러운 물이 빠지는테... 테텟? 테에엣??"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이불을 밟아가던 그린의 두 눈이 급격하게 커진다.
 당연히 물에 씻겨내려가야할 녹색 똥물이 오히려 점점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이다.
 이런 일은 배우지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당황한 메릴은 허둥지둥 점점 굳어들어가는 녹색 오물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왜, 왜이러는테치? 왜이러는테치? 이상한테치. 이상한테치. 분명히 더러운 물이 빠져야하는테치... 그런데 왜 이렇게 점점 진해지는테치? 왜 딱딱해져테치??"


 처음보는 기이한 일에 메릴은 눈에 띄게 당황한다.
 점점 더 초록색 똥물이 진해져가는 것이다.


 "치, 치, 치, 치, 침착... 침착하는테치... 그, 그런테치! 여기선 비누를....."


 떨리는 손으로 비누조각을 집어 녹색물에 문지른다.
 그러나 전혀 씻겨내려가지 않는다.
 녹색물은 오히려 옆으로 점점 더 번져가는 것 같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녹색물이 흥건히 묻은 곳을 중심으로 점점 이불이, 천이 오그라들고 있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남자가 오늘 새벽 주사기에 담아 뿌린 것은 단순한 똥이 아니라, 녹색 유화물감을 섞은 것이었다.
 유화물감은 일반적인 물감과는 다르게 한 번 굳어버리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물로 씻어내려고 들었다가는 더 큰 일이 난다.
 수분과 접촉을 하면 오히려 빳빳하게 굳어들고, 섬유자체에도 변형이 일어나 오그라들게 된다.
 유화물감을 씻어내려면 벤졸과 같은 용매나 특수약품을 쓰는 수밖에 없다.


 "텟.......치.......? 이......게..... 뭐...인테...츄?"


 하지만 그것을 알 리가 없는 메릴의 눈은 시꺼멓게 죽어가고 있었다.



 매주마다 반복되는 것이지만 월요일의 업무는 정말이지 참기 힘들다.
 어떻게든 주말의 달콤함을 위해 눈앞의 일들을 다음주로 미뤄두기만 해서일까. 지난 주에 별 생각없이 미루기만했던 일이 부메랑이 되어 눈앞에 쌓인다. 길고도 지루한 평일근무를 다시 5일. 또는 6일이나 더 버텨야 쉴 수 있다는 생각을하니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주변 동료도, 상사도, 거래처 사람도. 말은 하지 않을 뿐이지 같은 심정일 것이다. 덕분에 월요일의 사무실 분위기는 굉장히 침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경질적이라 할 정도로 날카롭다.

 그런 일터에서 돌아온 날은 너무나 지친다.
 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서둘로 옷을 갈아입고 바로 욕실로 달려가본다.
 문틈으로 살짝 엿보니 메릴쨩이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열심히 이불을 씻어대고 있었다.


 "텟체! 텟체! 텟체! 텟체! 열심히 문지르는텟츄! 텟체! 텟체! 텟체! 텟체!"

 북북북북...

 "텟체! 텟체! 텟체! 텟체! 반드시 깨끗해질거인텟치! 텟체! 텟체! 텟체! 텟체!"

 북북북북...

 "텟체! 텟체! 텟체! 텟체! 할 수있는테찌! 해낼거인테체! 텟체! 텟체! 텟체! 텟체!"

 북북북북....



 메릴쨩은 미친듯이 비누를 이불에 문지르고, 양손으로, 아니 온몸으로 거품을 낸다.
 부글부글 거품이 일어 작달만한 메릴쨩을 덮어버린다.
 눈, 코, 입에 거품이 들어가 콜록콜록거리면서, 비명을 지르면서도 잠시도 손발을 쉬지 않는다.


 "좋은텟치! 이번에야말로 깨끗해질거인텟츄!"


 얼마나 문질러댔을까.
 이불은 거품에 뒤덮여 보이지도 않는다.
 메릴쨩은 수도꼭지로 가서 물을 튼다.


 "반드시!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성공하는텟츄!"


 꾸르르륵... 꾸륵...


 메릴쨩이 붙잡은 손잡이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거품덩어리가 씻겨내려가고 이불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색깔은 여전히 초록색. 
 흉칙할 정도로 시꺼먼 암록색이었다.


 "테..........................에....."


 메릴쨩은 이번에도 실패한 것을 보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 자신도 모르고있었지만, 이번은 오십일곱번째 실패였다.
 아침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밥은 커녕 수돗물로 입술만 축이고 하루종일 일했었다.
 손발이 너무 아파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을 빼면 자리에 앉아봤던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이불을 깨끗이 씻어내는 것은 실패하고 말았다.


 "테...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너무한텟츄.... 너무한텟치.... 왜 깨끗해지지 않는테치? 테에에엥...."


 결국 메릴쨩은 울음을 터뜨린다.
 빨갛고 초록색의 피눈물이 가득가득 넘쳐흐른다.
 그렇게나 그렇게나 열심히했는데 어째서 깨끗해지지 않는거야.
 주인님... 도와주세요 주인님...



 "이봐."


 "텟?!"


 그 주인님이 눈앞에 서있었다.
 갑작스런 상봉에 메릴쨩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한참을 멍하니 남자를 올려다보다가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달려간다.


 "주, 주인니이이임!!! 테에에에엥!!! 주인님!!! 주인님! 주인니이이임!!!"


 메릴쨩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남자에게 다가가 안기려고 한다.
 하지만 남자의 발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뒤뚱뒤뚱 달려오는 메릴쨩의 앞을 위협스럽게 막는다.


 "테......에....?"

 "뭐하는거냐 지금? 그런 더럽고 잔뜩 젖은 몸으로 어딜 오는거야?!"

 "테, 테틱?!"

 "정말이지... 넌 예의범절이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것 같구나."

 "테...? 텟츄우...? 주, 주인님...."

 "너는 가게에서 뭐라고 배웠어? 더러운 몸으로 주인에게 다가와도 된다고 배웠냐? 아니, 그전에 몸가짐을 깨끗이하라고는 안 배웠어?"

 "테......."


 그제서야 메릴쨩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와타찌가 성급했던테찌.... 주인사마에게 굉장한 실례를 저질렀다테치....'

 "넌 대체 왜 이렇게 멍청하냐? 응?"

 "테....테.. 테.... 주인님..........."

 "하루종일 뭘했길래 그렇게 더러운 꼴로 돌아다니는거야? 엉? 얌전히 있으라는 내 말은 뭐로 들은거야!!"

 "주, 주, 주인님... 와타찌... 하루종일 이불을 빨래했어요테츄.. 그래서 젖었던테치. 그래서 옷이 조금 더러워진테찌... 용서... 용서해주세요테치..."

 "뭐어?! 빨래를 했다고? 그래.... 그러고보니 너 아침에 분명히 목숨을 걸고 깨끗이 해놓는다고 했지? 어디보자."

 "텟!!!"

 "얼른 보자니까. 분명히 네가 약속했었지?"

 "테에에에...."

 "약속했었냐고 묻잖아!!!"


 나는 고함을 꽥 지른다.
 갑작스러운 고성.
 그것도 소리가 잘 울리는 욕실에서 가해지는 고성은 아직 어린 자실장 메릴쨩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하지만 정작 메릴쨩은 귀가 아픈 것을 인지할 겨를도 없다.
 주인님이 화났다는 것을 깨닫고 두려움과 죄송스러움에 벌벌 떨기만 할뿐이다.


 "주, 주, 주, 주, 주인님....... 저..... 저어.........테....치....."

 "그래 어디 보자. 여기 이게 이불이지....."


 나는 메릴쨩의 뒤에 있는 이불을 주웠다.


 "주, 주, 주, 주, 주인님...."


 메릴쨩은 어떻게든 녹색투성이 이불을 몸으로 숨기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난 단번에 이불을 낚아채서 펼쳐본다.
 그리고


 "뭐야아아아!!!! 야!!!!"


 아까전보다 두배는 큰 소리를 지른다.


 "너어!!! 지금 이게 빨래를 했다는거야?! 엉?!"

 "테테테테테테테테테....."


 메릴쨩은 이젠 대답도 못하고 덜덜덜 턱만 떨고 있다.
 눈망울은 급격하게 커져가고, 동공이 점점 확대된다.
 너무나 놀라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다.
 그대신 반쯤 헤- 벌린 입에서 침이 주륵주륵 흐를 뿐이다.


 "이걸봐라!! 이게 깨끗하게 해놓겠다고 한 결과냐?! 엉?!!"

 "테테테테테테.... 테테...."


 그래도 메릴쨩은 아무말도 못하고 턱만 덜덜덜 떤다.


 "대답을 해라 이 똥벌레새끼야!!!!"

 "테엣챠?!!!"


 음. 역시 똥벌레라는 소리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단번에 자리에 허물어지듯이 주저앉는다.


 "정말 답이 없는 분충이다! 진짜 똥벌레야!!"

 "똥도 못가리는 주제에 거짓말을 해? 깨끗이 해놓겠다고 했으면서 왜 지키지 않았나?!!"

 "테... 테테테테테테......"

 "대답해라 이 병신같은 년!!!"

 "히끅!! 테... 테츄..... 주인님... 와타찌는....."

 "와타찌는..... 와타찌..... 정말 노력한테치.... 잠시도 쉬지않고 빨래를 했어요테치..... 그런데도... 그런데도.... 도저히 깨끗해지지 않는 테치...." 

 "어디서 말대답이야 이 똥벌레가!!!"

 "테햐아?!"

 "뭐? 열심히 했어? 열심히한 결과가 이거냐?! 너도 눈이 있으면 봐라 이 쓰레기년!!"


 나는 온갖 욕설로 메릴쨩을 매도하면서 손에 든 축축한 이불을 바닥으로 집어던진다.
 유화물감이 계속해서 비누와 접촉해 이젠 초록색이 아니라 시꺼먼 색을 띠고 있다.
 여기저기 너덜너덜거리는 것이 정말 열심히 빨래한 것 같다.
 구멍이 날 정도로 문질러댔겠지.


 "자, 봐라!! 이게 빨래를 했다는 놈의 결과냐? 흥!!! 보나마나 하루종일 낮잠이나 자다가 거짓말을 하는거겠지."

 "아, 아, 아닌테체에!!!! 그런거... 그런거 아닌테츄우우우!!! 메릴은 정말정말 열심히 했...."

 "닥쳐라!!!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거냐?!"

 "테? 테엣? 테..... 그... 그런게 아닌테츄...."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거냐?! 대답해!!"

 "아... 아닌테치... 주인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테치...."

 "그래? 그럼 네가 거짓말을 한거지?"

 "테햐아?! 테테... 그.... 그렇지 않은테치... 와타찌 절대 거짓말 하지 않았어요 테츄...."

 "뭐야아아아!!! 그게?! 나도 거짓말을 안 했고, 너도 거짓말을 안 했는데 왜 이불은 이렇게 더러운거냐?!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테... 테테테테테...."

 "대답해라, 이 분충!!! 네가 거짓말을 했지?!"

 "테.... 그.... 그... 테...."


 이젠 말에 논리도 없고 그저 윽박지르기만 할뿐이다.
 하지만 이미 메릴쨩은 그런 것을 구별할 수 있을만한 정신이 없다.
 그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채 주섬주섬 되는대로 말을 할뿐이다.

 음- 좋다.
 오늘 하루 받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


**********************************************************************


 실컷 욕을 쏟아내고 나는 메릴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두려움과 추위에 오돌오돌 떠는 메릴을 수건에 감은 다음 나는 미리 준비한 거울을 가지고 왔다.
 크기는 메릴의 키보다 조금 큰 정도. 그것을 벽에다 잘 걸어둔다.
 그리고 메릴을 부른다.


 "이리와라. 메릴."

 ".....네, 테츄....."

 "오늘 넌 아주 큰 잘못을 했다. 그렇지?"

 "...네... 네....테치..."

 "그게 뭐냐?"

 "테.... 와타치는.... ㄸ, 똥을..... 못 가린테츄.... 그래서 이불과 옷을 더럽힌테치..... 그리고..."

 "주인님과의 약속.... 이불을 깨끗이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테츄..."

 "그래. 바로 그거다. 벌을 받아야겠지?"

 "........네 테치.... 벌.... 받는테치.... 받아야하는테찌..... 와타찌가... 잘못한테츄..."


 메릴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콩콩하며 이마를 바닥에 부딪힌다.
 부들부들 떨어대는 그 작은 모습은 진심으로 사죄를 하는 것이다.


 "벌을 받겠다라고? 좋다. 일어나라 메릴."

 "여기 거울을 봐라. 뭐가 보이나?"

 "테.... 테에.... 와타찌... 메릴이 보이는테쮸..."

 "아니다."

 "...테에?"

 "여기 비치는건 메릴이 아니다. 똥벌레다."

 "테퍗?!"

 "난 메릴을 똥도 못가리고, 이불을 더럽히고, 빨래도 못하는 그런 똥벌레로 기른 적이 없다."

 "--그러니- 지금 이 거울에 비치는 건 메릴이 아니라 똥벌레다."

 "테.... 아닌.... 테츄.... 그런거 이야...테치...."

 "뭐라고?!"


 나는 짐짓 목소리를 높인다.
 갑작스러운 나의 역정에 메릴은 다시 짧은 팔로 귀를 막으려고 애쓰며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테챳! 테... 주인님.... 죄송한테치... 죄송한테치... 하지만... 똥벌레라고하지는 말아주시는테츄..."

 "와타치... 와타치 어떤 벌이라도 받는테츄... 닌겐사마에게... 가게에서 그랬던것처럼 맞아도 좋은테츄..."

 "죗값을 치르게해주시는테치..."


 스스로 매를 맞겠다고 자처하다니.
 정말 훌륭한 마음가짐을 가진 실장석이다.
 솔직히 왜 자기가 체벌을 받아야하는지 의심스러운 상황.
 그녀 자신도 그런 의문이 조금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런 것을 드러내지 않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이 어찌 갸륵하지 아니한가.


 "흥! 똥도 못가리는 더러운 똥벌레따위에게 손대기는 싫다!"

 "테챠!!"

 "아직도 넌 정신을 못차리는 것 같군."

 "어이 똥벌레! 지금부터 거울을 보면서 내가 하는 말을 따라한다!"

 "테지이이...?"

 "나는 똥벌레다!"

 "테챠아아?!"

 "뭐하는거냐! 당장 따라해라! '나는 똥벌레다!'"

 "테..... 테...... 테...."

 "이 똥벌레가 뭐하는거야!! 야!!!!!!"


 나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큰 고함을 지른다.
 메릴은 다시 피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따라해라!! 당장 따라해!! 나는 똥벌레다!!"

 "테챠아아... 테챠... 안되는테치.. 못하는테치..."

 "따라해라!!!! 따라해!!! 따라해!! 따라해!!!!!!"

 "테챠... 테... 테..."

 "따라하라니까 이 똥벌레!!! 공원에다 내다버린다!!!"

 "테갸앗?!"


 공원에 내다 버린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메릴은 조그만 입을 놀려 중얼거린다.


 "와......타찌는.... ㄸ... 또.... ㄸ... 똥.... 똥벌레....테.....츄..."

 "안들린다 더 크게!! 그리고 더 빨리 말해!!"

 "와타찌는.... 또... 똥벌레... 테....치...."

 "더 크게!! 더 빨리!!"

 "와타찌는... 똥벌레...테치..."

 "더 크게!! 그리고 거울을 쳐다봐라!!"

 "와타찌는... 똥벌레테치..."

 "더 크게!!! 눈을 감지마라! 눈을 떠라!! 눈앞에 있는게 뭐냐?! 말해!!"

 "와타찌는 똥벌레테챠아아아아아!!! 테에에에엥!! 테에에엥!!!"

 "시끄럽다!! 울지마라 이 분충!!"



*******************************************************


 교육은 거의 삼십분이나 계속되었다.
 그 결과 메릴은 내가 시킨대로 제법 잘 해내게 되었다.
 지금도 거울 앞에서 거울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우렁차게 대사를 외우고 있다.




 "너는 똥....벌레테치.... 너는 똥벌레....테치....... 너는 똥벌레테치...."


 처음에는 '나는 똥벌레다!'라는 대사를 외우게 시켰다.
 한참을 그 대사를 외우게 한 다음, 어느 시점에서는 거울을 향해 손가락질 하면서 '너는 똥벌레다.'라고 말하게 시켰다.

 이것도 꽤나 격렬하게 거부했지만 결국 내 말대로 하게 되었다.


 "너는 똥...벌레..테치.. 너는 똥벌레테치....  테에엥... 테엥.. 테끅... 테끅... 너는..."


 거울에는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친다.
 그것을 보고 똥벌레라고 매도하게 시킨다.
 언뜻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자부심이 높은 실장석. 특히나 스스로가 엄격한 훈련을 통과했다고 자부심을 느끼는 애완용실장석에게 있어서 이것은 그야말로 정신을 붕괴시킬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

 다른 실장석들이 놀려도 참을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인 실장석이다.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 자부심 높고, 자존심이 센 애완용 실장석이.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욕을 하게 만든다-

 그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울만큼 치욕적이고 힘든 일이다.
 정신력이 약한 실장석은 피를 케폿- 하고 토하며 죽어버리기도 한다.

 지금 메릴이 피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거울을 향해 연신 똥벌레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너는... 똥벌레테치.... 너는... 똥벌레테치..."

 "어이, 똥벌레~~ 목소리가 점점 줄어드는데?"

 "너, 너는 똥벌레테치!! 너는..... 똥벌레테치!!"

 "좀 더 큰소리로!! 그리고 얼굴 돌리지마라!! 손을 더 뻗어!!"

 "너는 똥벌레테치!! 너는 똥벌레테치!!!!!! 너는 똥벌레테챠아아아아!!!!!"



 나는 메릴이 그렇게 자신을 똥벌레라고 매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맥주를 홀짝거린다.
 야구 하이라이트가 TV에서 흘러나오지만 음소거를 해놓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것보다 훨씬- 적어도 100만배는 즐겁고 재밌는 것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너는 똥벌레테챠아아악!!! 똥벌레... 똥벌레... 너는 똥벌레테챠아아아!!!!!"


***************************************************************************



 맥주가 조금 과했을까.
 소파에서 잠깐 졸았던 모양이다.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런- 내일도 출근하려면 얼른 자야겠다.




 문득 메릴이 생각나서 쳐다본다.
 메릴은 이제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눈은 시꺼멓게 죽어들어가있고, 바보스럽게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잠시도 입이 쉬지 않는다.


 "너는 똥벌레테치... 너는 똥벌레테치...  너는 똥벌레테치... 나는 똥벌레테치.... 나는 똥벌레테치..."

 "너는 똥벌레테치... 너는 똥벌레테치... 나는 똥벌레테치... 나는 똥벌레... 똥벌레...."


 으~응. 깜빡했구나.
 나 이거 시켰었지.


 "어이 똥벌레... 아니 메릴. 이만해도 좋아. 들어가 자라구."

 "나는 똥벌레테치... 나는 똥벌레테치... 나는 똥벌레테치... 나는 똥벌레테치..."


 이런이런 너무 시켜서 머리가 맛이 간 건가?
 이것도 너무 시키면 바보가 되는데....

 오늘은 직접 침대로 데려가서 재워줘야겠다.


 "나는 똥벌레테치... 나는 똥벌레테치... 나는 똥벌레테치... 나는 똥벌레테치... 나는 똥벌레테치... "



나는 메릴에게 육체적인 괴로움은 절대로 주지 않는다.
 밥먹이를 빼앗아 끼니를 굶기거나 옷이나 머리카락을 두고 협박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손을 대는 일따위는 결단코 없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잡아 뽑고, 옷을 태우고, 팔을 자르고, 내장을 쑤시고, 강제출산.....
 그런 것은 길가에 돌아다니는 들실장에게나 하는 것이다.
 그런 천박한 학대는 이런 고급 실장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고급 실장석에게는 고급 실장석에 어울리는 학대를 해줘야 하는 것이다.



 메릴의 이불과 침대가 녹색범벅이 된 그 날 저녁에 바로 최신형의 침대와 이불, 베개로 교체해주었다.
 먹이도 역시 이전처럼 최고급으로 준비한다. 
 오늘은 최고급 마츠자카 안심 스테이크와 카르보나라풍 연어 스파게티, 고사리떡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토핑을 준비했다. 무게대비로 따져보면 내가 입에 대는 것보다 훨씬 고급이다.
 식사 이외에도 언제나 마음껏 간식을 먹을 수 있도록 콘페이토는 아예 메릴의 몸통만한 병에 가득 담아주었다. 이것도 슈퍼에서 파는 싸구려 콘페이토가 아니라 실장샵에서 판매하는 제대로 된 실장석용 콘페이토다. 실장석이 좋아하는 과일향과 꽃향기에 특수 감미료를 섞어 보통의 그것보다 열배는 더 비싼 제품이다.
 급수대도 3개나 준비해주고 있다. 하나는 시원한물. 하나는 달콤한 오렌지 쥬스(사과쥬스, 포도쥬스, 자몽쥬스 등 매일매일 다른 맛으로 바꿔준다). 하나는 영양 높은 스포츠음료수이다. 이것 역시 48시간동안 냉보온이 가능한 최고급 제품이다.


 구름 위의 존재라고 알려진 세레브 실장을 제외하고서는.
 아니 세레브 실장에 비해서도 그다지 뒤지지 않는 대우를 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메릴은 날이 갈수록 메말라갔다.




 "야!! 흘리지 말고 쳐먹으랬잖아!! 왜 자꾸 흘리고 먹어!!"

 "테... 테치... 죄송... 죄송합니다 테치... 죄송해요테치..."

 "입에 음식이 있으면 말하지마라 이 분충!!"

 "테............"



 '주인님 죄송한테치... 죄송한테치....'


 메릴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입에 든 것을 우물우물거리고 있다.
 실장석의 꿈이라고 하는 스테이크.
 그 스테이크에서도 정점에 위치한 마츠자카 소의 안심을 입에 물고 있지만, 메릴은 아무런 맛도 감동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겨우겨우 눈물을 꾹 머금고 기계적으로 입을 놀려 씹어갈 뿐이다.
 분명 향긋하고 달콤하면서 농후한 맛이 입안 가득히, 혓바닥 올올히 새겨들 것인데, 메릴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금 메릴은 고기의 맛따위를 느낄 여유란 없었다.
 어떻게든 지금의 식사시간에 있어서 주인님께 흠결이 잡히지 않아야하는 것이다.



 남자가 메릴에게 앞으로 같이 밥을 먹자꾸나. 라고 했을 때, 메릴은 진심으로 감동했다.
 주인님과 함께 하는 식사.
 주인과 함께 밥을 먹는 다는 것은 모든 자실장들에게 있어 꿈과 같은 일이었다.
 인간에 있어서는 신데렐라가 되는 일. 아니 그 이상이라고나할까..

 실장석에게는 그저 같은 시간에 밥을 먹기만해도 감격스러운 일이다.
 주인은 식탁에서 먹고, 실장석은 차가운 바닥 한 구석에서 개처럼 엎드려 홀짝거려도 그 식사는 영광스러운 것이다.
 감히 주인님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밥을 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
 그것은 감히 메릴으로서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엄청난 제안이었다.


 "테츄웅~♥"



 그러나 그것이 지옥이라는 것을 깨닫기 까지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년!! 이 더러운 년! 또 흘렸지!!"

 "테.. 텟챠...!"

 "야! 내가 말한지 1분도 안 지났다! 그렇게 네 년의 대가리는 돌대가리냐?!"

 ".......테........"

 "이런 똥벌레같은 년! 주인의 말을 무시해?! 야!!"

 "...테.. 테... 텟챠... 주... 주인님 그것은 저기....."

 "밥을 다 삼키고 대답하랬지 이 똥벌레!!"

 "테... 테튜우우......"



 남자는 식사시간 내내 메릴을 욕하고 매도하며 시간을 보낸다.
 남자가 지적하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밥을 소리내서 먹는다. 입에 음식이 든 채로 이야기를 한다. 흘리면서 먹는다. 맛있는 것만 골라서 먹는다. 편식한다. 많이 먹는다....
 메릴이 무엇을하든 혼을 냈다.

 당장 오늘만 해도 자실장인 메릴이.
 아니 자실장을 떠나 실장석으로서 먹기 대단히 어려운 스파게티가 메뉴로 나왔다.
 손가락이 없는 뭉툭한 손이라 젓가락은 커녕 스푼조차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게 실장석이다.
 그런데 오늘은 스파게티가 나온 것이다.


 남자가 준비해둔 실장석용 포크와 수저세트로 남자가 하는 것을 흉내내어 면을 감아올리려고 하지만 그대로 테이블 위에 철퍼덕 떨어뜨린다.
 메릴의 얼굴색도 까르보나라의 크림색처럼 새하얗게 꽃으로 질려버린다.


 "이 년!!! 기껏 준비해둔 음식을 흘려? 너는 식사예의도 모르는 분충이냐?!"

 "테.... 테챠아!! 주인님! 용서해주시는테체!!"

 "아... 정말 무식하고 교양없는 년이라니까... 넌 이런 것도 안 배웠니?"

 "테... 테츄... 죄송한테츄... 용서해주시는테치..."


 실제로 배우지도 않았다.
 아무리 아이코우도우가 애호 실장석의 명가라지만, 어디까지나 실장석 레벨에서 가능한 것만 가르친다.
 엄격한 식사예절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실장푸드를 먹는 것을 기본으로 스테이크와 초밥, 콘페이토우 같은 고급음식이면서도 실장석과 친숙한 음식 몇 가지를 더 가르칠뿐이다. 
 애초에 정상적인 실장샵이라면,  사람들도 맵시있게 먹기 어려운 스파게티 먹는 법 같은 것은 당연히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다.


 "또 흘렸구나!!"

 "히기! 죄, 죄송합니다테체.... 더.. 더욱 더 노력하는테치....."

 "이런이런 정말 똥벌레라니까..."

 "테체! 테... 테에에엥... 텡...."

 "음식 앞에 두고 울지마라!!"



 메릴은 끝없이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남자. 
 주인의 잘못은 정말 조금도. 티끌만치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차려진 음식은 정말정말 너무도 훌륭하다.
 그녀가 보통의 애완 실장석과는 다른 최고급 영양푸드를 먹으며 자라왔다고 해도, 콘페이토우를 먹어보는 것이 3대에 걸친 소원이라는 들실장과는 다르게 매일 2알씩 콘페이토를 받는 고급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해도.
 남자가, 주인이 차려주는 음식은 그런 과거의 그것과는 몇 단계나 더 높은. 아니 그 이전에 상상조차 못해본 것이었다.

 그렇기에 메릴은 자신을 책망한다.

 '테히이... 이렇게 맛난 음식을 차려주신 고마운 주인님인테츄... 그런데도 와타치는 더럽게 먹은테치... 정말 무능한테치...'

 '혹시... 혹시혹시혹시혹시.... 와타...찌... 정말로 똥벌레인....테츄?'

 '그런거인....테치?'



 사실 지금 메릴이 하는 행동은 애완실장 레벨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뛰어난 것이었다.
 일반적인 애완실장. 설사 아이코우도우의 고급애완실장이라고 하더라도 이정도의 진수성찬을 받게 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엄한 예의범절과 조교를 받은 실장석이라도 어디까지나 실장석.
 그 탐욕의 화신에게서 이렇게 좋은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도 예의범절을 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인 것이다.

 하지만 메릴을 그런 탐욕을 일으키기에 앞서 주인에게 감사의 예를 표한다.
 아무리 맛있어보여도 먹이를 게걸스럽게 탐닉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예의범절(그것이 한 번도 배우지 못한 것이지만)을 차려 먹으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실장석의 레벨을 아득히 뛰어넘은 훌륭한 행위인 것이다.


 물론 남자도 실장석을 십수 년이나 키워보았기에 그런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다.



 철퍼덕


 또 다시 스파게티가 하얀 국물과 함께 테이블 위로 떨어진다.
 자주색 테이블보가 하얀색으로 물들어가면서 그와 동시에 메릴의 얼굴도 같은 색으로 변한다.


 "또!! 또!!! 또!!! 또오오오!!!!!"

 "죄송한테치! 죄송한테치! 다시... 다시 사죄드리는테치! 용서해주시는테체아아!!"

 "이런 병신같은년 식탁에서 소리지르지마라!!"

 "테......."

 "정말이지... 어디서 이런 똥벌레가... 이 정도도 못하는 똥벌레라니... 정말 똥벌레라니까 제기랄!"

 "............"

 "왜 가만히 있는거냐? 지금 불만있다는거냐?!"

 "테, 테에! 그, 그런거아닙니다테치! 와타치는.. 그저.... 주인님이 조용하라고하셔서... 가만히테치..."

 "닥쳐라!! 뭘 잘했다고 주절거리는거야!!"


 메릴은 고개를 숙여 눈을 감고 두 손으로 눈을 꽉 누른다.
 눈물이 손틈으로 주륵주륵 새어나온다.


 '테... 눈물 나오면 안되는테치... 제발 나오지말아주는테치... 눈물 나오면 또 주인님이 싫어하시는테치.... 그럼 또 혼나는테치... 그런거 이야테치...'


 메릴은 밥이 먹기 싫어졌다.
 아무리 산해진미라고해도 이렇게까지 혼나면서 먹고 싶지는 않았다.
 주인님을 이렇게까지 화내게하면서까지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굶는게 났다.
 배는 고프겠지만, 더이상 주인님을 화내게 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이상 실망시켜드리지 않아도 되니까.


 "저어... 주인님테찌... 와타찌 배부른테치... 이제 그만 먹어도 좋은테치..."


 메릴은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남자에게 말한다.
 식사가 시작된지 10분이 지났지만, 입에 넣은 것은 국수 몇 가닥과 하얗고 달큼하고 짭짤한 국물 조금이 전부였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진동을 하지만, 전혀 먹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와타찌 이제 배불러요테치! 이제 가득가득 먹은테치!"


 메릴은 애써 눈물을 감추고 입에 억지로 미소를 짓는다.
 주인님께 걱정을 끼쳐드려서는 안된다는 생각과 혹시나 반항으로 비춰질까봐를 염려해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 상냥한 마음도 남자의 고함소리에 박살이 나버린다.


 "네 이 년!! 이 분충!! 똥벌레!! 더러운 돼지!! 뭘 잘했다고 히죽거리는거야!!"

 "테챠아?!"

 "그렇게 혼나고도 정신을 못차렸어?! 반성하는 기미도 없구나 이 똥벌레!!"

 "죄송합니다테치! 죄송합니다테치! 반성하고있는테체! 무례를 저지른테치! 용서해주세요테치이이!!"

 "그리고 뭐? 다 먹었어? 음식을 남기겠다는거냐?!"

 "테... 테... 그런거 아닌테치... 와타치는.. 그저...."


 남자의 잔소리는 다시 10여분 이어졌다.


***************************************************************************************************



 메릴은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스테이크로 손을 뻗는다.
 이것도 나이프와 포크를 능숙하게 써야하지만, 그래도 스파게티보다는 훨씬 더 먹기 쉽다.
 야무지게 포크와 나이프를 놀려 밥을 먹는 메릴이지만, 그래도 남자의 호통이 벼락처럼 떨어진다.


 "이 년!! 고기만 골라먹다니! 골고루 먹어야지! 왜 이건 안 먹어?! 반항하는거냐?!"

 "테에... 그런거 아닌테치이..."


 메릴은 눈물을 흘리며 스파게티로 포크를 옮긴다.


 "테엥.. 테에에엥...."

 "밥먹는데 재수없게 울지마라!!"

 "히끅... 히끅......"




 철퍼덕



 "테챠아아아?!"


 또 스파게티가 떨어진다.


.
.
.
.


 식사가 시작된지 30분이 지났지만 메릴의 몫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쇠고기 스테이크도 2/3 넘게 남아있었고, 스파게티는 테이블에 떨어진 것을 다시 그릇에 담았기때문에 원래와 같은 양. 아니 처음보다 더 늘어있었다. 국수가 수분을 흡수해서 더 불어난 것이다.
 남자는 자신 몫의 식사는 예전에 끝내고 느긋하게 에스프레소를 한잔 마시며 메릴을 지켜보고 있다.

 메릴은 그런 남자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들부들 떨면서 쇠고기 조각을 집는다.
 하지만 도무지 입에 넣을 자신이 없다.







 또 흘리지 않을까.
 또 고기만 먹는다고 혼나지 않을까.
 또 무슨 실수를 지적받을까...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런 메릴을 보고 남자는 상냥하게 말한다.



 "왜 그러니? 맛있게 먹어라."



 애완 실장석에게 있어서 가장 큰 즐거움은 주인과의 교감이다.
 먹는 것과 자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는 보통의 실장석과 달리, 뱃속에 있을때부터 철저한 주입식·세뇌식 교육을 받아온 애완실장석은 굶주림과 졸림보다 인간(주인)의 관심을 더 추구하도록 변한다. 고급이면 고급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짙게 나타나서, 종내에는 실장석 스스로가 주인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이러한 속성은 주인에게 있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가만히 있어도 실장석이 먼저 애교를 떨고, 살갑게 다가오는 것은 절로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이니까.

 애완 실장석과 교감을 나누는 방법은 산책, 놀이, 책읽어주기, 식사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실장석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대화였다. 교감이라기보다는 운동에 가까운 산책과 놀이.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책 읽기, 식사와는 달리, 대화는 사랑하는 주인님과 비교적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 즉, 실장석이라고해도 주인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항상 주인님께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하는 그녀들에게 이것은 지고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메릴이 잠을 설쳐가면서도 바라마지 않던 그 '대화'는 이제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변해버렸다.



 남자와 메릴은 각자의 소파에 몸을 충분히 파묻고 TV를 보고 있는 중이다.
 메릴이 앉아있는 소파는 실장석용으로 특별히 설계된 주문제작품으로 그 가격은 인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피대비로 따지면 오히려 스무배는 높은 가격일 것이다. 실장석이 좋아하는 침향목을 소재로하여 장인이 조각칼로 하나씩 깎아내고, 조립을 할때도 못 따위는 일절 쓰지 않고 나무와 나무를 엇갈려서 만든다. 겉에 바르는 도료도 화공약품은 일절 쓰지 않고, 천연 벌꿀과 염료를 적당히 섞어 향기로운 냄새가 오래 퍼지도록 하는 놀라운 물건인 것이다. 약간 과장을 보태면 거기 앉아있기만해도 향기로운 냄새가 몸에 밴다고 할 지경이다.

 그런 소파에다 자그마한 실장석 전용 커피테이블도 옆에 놓여져있다.
 그 위에는 특제우지챠가 담긴 보온병과 간식으로 최고급 콘페이토우, 실장용 치즈, 돼지껍질튀김이 각각의 바구니에 그득히 담겨있다.

 편안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간식을 먹으면서 TV를 본다.
 이것만해도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일텐데, 거기에 주인과의 대화까지 더해진다면...
 그것은 애완실장석이라고 하더라도 감히 꿈꿔볼 수 없는 사치와 행복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사치와 행복을 모두 누리고 있는 주인공.
 메릴의 안색은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최근 북미 전역에 이른 경제한파는 관련 업체의 불황은 물론, 전체적인 주식보유량의 재고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에 국제통화기구에서는 당기금 절상을 통한 환형급락을 방지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음... 확실히 그다지 좋지 않구나아~ 그래, 메릴. 너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테..... 테에에.... 엣? 테........?"

 "방금 본 내용 말이야. 너는 지금 당기금 절상이 옳다고 생각하니?"

 "테..........츄....우....?"


 메릴의 뒷목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들어간다.
 무언가 대답을 해야하는 상황이란 건 알고 있다.
 주인님이 질문을 한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뭐라고 대답을 해야하는지.
 아니, 그 이전에 대체 무엇을 물어본 것인지조차도 메릴은 이해할 수 없었다.


 '테..... 테...... 뭐인테츄우? 뭘 본 테치? TV에 이상한 닌겐사마가 나오고... 뭐라고 말은 분명히 한 테치...'

 '그래도 무슨 말인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은테치....'


 메릴은 커다란 머리를 붕붕 흔들어가며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애쓰지만 헛된 일이다.
 남자가 틀어놓은 TV 프로그램은 경제 전문 방송. 그것도 초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 아마추어 애널리스트라고 간판을 걸만한 사람들이나 간신히 이해할 정도의 고차원적인 내용이다. 물론 남자도 앵커가 말하는 내용의 80% 이상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남자만해도 그럴 수준인데, 실장석.
 그것도 자실장인 메릴에게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
 나아가 무언가 의견을 구사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노력의 여하, 재능의 여부를 떠나서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도-
 당연하게도 충직하고 착한 메릴은 그런 것을 모른다.
 그저 어떻게든 답을 해야한다는 것만이 머릿속에 맴돈다.


 '테테테테테... 테... 어쩌는테치... 정말...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는테찌......'


 남자는 그런 메릴을 느긋하게 지켜보면서 캔맥주를 홀짝거린다.
 커다란 머리통을 두손으로 부여잡고 데굴데굴 눈을 굴린다.
 식은땀이 얼굴 가득히 흘러내린다.
 얼굴은 삶은 호박처럼 새빨개져서 어쩔줄을 몰라한다.


 '뭐라고 대답해야 좋은테치? 뭐인테치?'

 '테에엥... 테엥.... 텟슨.... 텟슨텟슨텟슨.... 이젠 뭘 물었는지도 기억 안나테치... 아무 것도 기억 안나는테치...'

 메릴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차오르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마음이 답답하고 눈가가 뜨거워진다.
 애써 눈을 찌그러뜨리면서 눈물이 새어나오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울면 안되는테치... 울면 주인님이 싫어하시는테치... 우는것 이야테치.....'

 '테에.. 테에에엥... 그래도 눈물이 나오는테쮸... 테.... 테엥.... 텟슨텟슨....'



 한참이나 쩔쩔매는 메릴을 내려다보던 남자는 이내 지루해졌는지 큰소리로 호통을 내지른다.


 "그것도 모르냐 이년아!!!!"

 "테챠아아아!!!"


 오십센치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지르는 고함소리.
 그 정도의 고성을 그렇게나 가까이서 들었는데 부리부리하며 똥을 싸지 않은 것은 메릴이 얼마나 엄한 교육을 받아온 실장석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메릴은 갑작스런 고함에 귀를 막고 엎드려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지만, 빵콘을 하는 것만은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렇게 탈분은 참아냈지만, 남자의 고성은 아직 어린 자실장인 메릴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고, 머리를 어지럽히기에는 충분했다. 몇 번 텍-텍- 거리며 헛구역질을 하고, 몇 번이나 몸을 부르르르 떨어대고나서야 겨우 진정이된듯 남자를 올려다본다.

 "주, 주인님... 죄송... 죄송해요테치.... 모르겠는테...치...."

 메릴은 온몸을 가을바람에 잔가지가 휘날리듯 격렬하게 떨어대고 있다.
 고개를 연신 꾸벅꾸벅 숙이면서 남자에게 사죄를 청하지만,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혼난 것이 몇번째일까.
 어제나 지난 날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오늘만 해도 몇 번인지 셀 수 조차 없다.

   
 "죄송... 죄송해요테치... 용서를.. 용서해주세요테치... 몰라서 죄송한테치..."

 "몰라서 미안한테치... 주인님 화내는거 이야테치... 화내지 말아주셨으면테치... 사죄하는테치"

 "죄송한테치... 죄송한테치... 공부하는테치... 와타찌 공부해서 대답하는테치.. 죄송한테치..."


 주먹만한 피눈물을 뚝뚝 흘리지만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저 허리가 반으로 접힐만큼 숙이면서, 고개를 꾸벅꾸벅 땅에 쳐박는다.
 어찌나 깊이 숙였는지 허리에서 뚜둑뚜둑하는 소리가 날 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메릴을 보며 남자는 더욱더 매도를 가한다.


 "너 정말 애완용실장이 맞니?"

 "테, 테, 테, 테에? 그, 그런테치... 와타찌는... 와타찌는... 브리더사마의 교육을 모두 통과하고 증표도 받은테치... 가게 뒷편의 교육장에서 통과하고 매장에 설 '자격'을 받아....."

 "그런 년이 왜 이렇게 무식한거야!! 앙!!!"

 "테개!"

 눈물을 주섬주섬 주워 삼키면서 겨우 말을 이어나가던 메릴이 전기에 감전된듯 푸드덕 경련한다.

 "그런 교육을 받았다는 년이!! 증표까지 받았다는 년이!! 이 정도로 멍청하다는거야? 이런 쉬운 질문 하나도 대답못하는 주제에! 그러고도 네가 '자격'이 있다는거냐?!"

 "............테........."

 ".......거짓말이지?"

 "테...... 테에? 무, 무슨 말인테치.... 주인니....님?"

 "그러니까 너 거짓말한거지? 교육을 통과했다는 거... 아니, 애초에 넌 교육도 안 받았지?"

 "테, 테햐아아아?! 무, 무슨 소리인테치 주인님! 와타치는 분명 교육받은테치! 아이코우도우의 애완사육실장 시험을 통과해서 가게에 진열되는 자격을...."

 "그럼 대답해보란말이야!! 방금 내 질문에 대답해봐라!!"

 "지금 당기금 절상을 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테햐아아아아아!!"

 "..................."

 ".................."

 "..........모르겠는테찌...."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올라간다.
 다시 한 번 고함을 지르려는 그때, 메릴의 말이 이어진다.

 "정말.... 정말 모르겠는테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어낼 수 없는테찌....."

 "모르는걸 적당히 대답하는건 거짓말테찌.... 거짓말은 절대 안되는테찌...... 키워주시는 주인님께 거짓말은 절대절대절대절대절대 이야테치....."

 그러면서 메릴은 다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주인님 죄송한테치.... 와타치 정말 모르겠어요테치.... 무식을 사죄드리는테치.......... 벌을 내리시면..... 달게 받는테치..."

 더할 나위 없이 정중한 사과에 남자는 잠시 할말을 잊은듯 멍하니 쳐다본다.


 잠시 후 남자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며 차가운 말이 새어나온다.

 "흐응~ 벌을 받겠다 이거지?"














실장석의 일상 ~붉은 꽃

 

 황혼이 깔리기 시작하는 주택가의 골목길을 한 친실장 모녀가 가로지르고 있다.
 서쪽 하늘에서는 눈부시게 찬란한 황금빛 광채가 지평선 끝에서 끝까지 비추고 있다.
 누구라도 탄성을 일으킬만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지만, 친실장 모녀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은듯 터덜터덜 지친 발걸음만 옮길 뿐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끝도 없이 이어지던 담벼락과 담벼락이 잠시 끊기고 한적한 공터가 나타난다.
 친실장과 자실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공터 앞에 발걸음을 멈춘다.


 "마마 쉬고 싶은테치"

 "데... 발이 아픈데스우?"

 "발도 아프고 다리도 아픈테츄. 오늘은 그만 쉬었으면 좋겠는테치."


 자실장은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친실장에게 테치테치 떠들어댄다.
 그런 자실장이 안쓰러워서였을까. 친실장은 자신의 앞치마를 들어 자실장의 이마를 훔쳐준다.


 "데... 그럼 마마가 살펴보고 오는데스. 잠시 기다리는데스우."

 "알은테치."


 친실장은 들고 있던 낡은 비닐봉투와 자실장을 근처의 전신주 뒷편에 숨긴다.
 그리고 자신은 조심스레 공터 안으로 들어선다.


 공터는 그리 넓지 않았다.
 겨우 삼십평 남짓한 크기에 토관이나 철근, 방수포에 덮힌 목재, 가근, 비계 따위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한쪽에는 커다란 모래가 친실장 키의 몇배는 되는 높이로 쌓여있었다.
 친실장은 그런 각종 건축자재를 요령있게 뎃스뎃스 피해다니며 주변을 꼼꼼히 살핀다.
 무서운 닝겐이 있지는 않은지, 혹시 다른 동족이 먼저 차지하고는 있지 않은지, 잔인한 고양이가 숨어있지는 않은지. 열심히 주변을 수색한다.

 십여 분 후.
 모든 곳을 꼼꼼히 살펴본 친실장은 허둥지둥 자실장을 숨겨둔 전신주로 뛰어간다.
 다행히 자실장은 무사했다.
 비닐봉투를 꼭 끌어안고 와들와들 떨고는 있었지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듯하다.
 친실장은 데-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실장을 들어 꼭 안아준다.


 "테-!! 마마가 돌아온테치!"

 "데에 잘 기다리고 있었던 데스. 역시 너는 착한 아이인데스~"

 "테--챠!! 무서웠던테찌! 무서웠던테챠-!!"

 "쉬이! 조용하는데스! 큰소리는 다--메데스요. 그것보다 얼른 따라오는데스네-"


 친실장은 눈물이 그렁그러한 자실장을 달랜 다음, 비닐봉투를 들고 뎃샤뎃샤 공터쪽으로 뛴다.
 자실장도 그런 친실장을 놓칠새라 혼신의 힘을 다해 쫓아간다.


 친실장은 아까 전에 눈여겨 봐둔 토관으로 들어간다.
 토관은 공터 안에서도 후미진 곳에 있어 누구의 눈에 띌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친실장은 연신 토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불안해 한다.
 허나 자실장은 오랜만에 다리를 편히 쉴 수 있게 되어 조금 들떠 있다.


 "테에... 아늑한테치... 바닥도 딱딱하고 축축하지 않은테에치~"


 자실장은 손을 들어 바닥을 팡팡 내리쳐본다.
 콘크리트 토관의 딱딱한 감촉이 아무래도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늑한 곳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늘 쓰레기국물이 질척한 쓰레기장이나 근처 공원의 흙바닥에서만 자왔던 자실장에게는 상당한 발전이다. 바닥이 둥그스름하게 곡선을 이루고 있어 어딘지모르게 푸근한 느낌을 주는 것도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자실장은 이내 다리를 쭉 뻗고 누워 기분좋은 콧소리를 흥얼거린다.


 "테치~♬ 테치~♪ 오늘 잠자리는 썩 훌륭한테치~♬"


 그런 자실장의 즐거운 흥얼거림은 친실장에 의해 중단됐다.


 "데-!! 조용하지 못하는데스?! 어디서 노래를 부르는뎃샤-!!"


 삐쿳!


 토관 주변을 한바퀴 순찰하고 돌아오던 친실장은 자실장의 흥얼거림을 듣고 허둥지둥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는 바로 주먹을 들어 자실장의 머리통을 후려갈긴다. 손속에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았던듯 자실장은 단번에 몇십센치를 붕- 날아올랐다가 떨어진다.


 "테에에엥! 아픈 테챠----아---!!"


 편안하게 자리에 누워있다 갑작스런 일격을 얻어 맞은 자실장은 불이난듯 울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두고볼 친실장이 아니다. 재빨리 자실장을 들어올린 다음 두터운 두 손으로 입과 코를 꽉 막는다.


 "테봇! 테보보봇! 테보옹옷!"


 친실장의 손에 코과 입을 막혀 숨을 쉴 수 없게 된 자실장이 팔을 마구 휘두른다.
 피눈물을 흘리며 바둥바둥 한껏 몸을 비틀어대지만 친실장은 요지부동이다.
 한참을 비드럭대다가 꺽- 꺽- 거리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눈이 풀리려하자, 그때서야 친실장은 손을 뗀다.


 "테휴---! 테히이이이!! 테에히이--!!"


 자실장은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온듯 연신 숨을 가쁘게 쉰다.
 이미 눈물은 쏙 들어가버린지 오래다.
 지금은 오직 다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에 집중하여 전신을 푸득푸득 경련하며서도 숨만 빨아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실장을 친실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마마가 말했던데스우. 어떤때라도 절---대! 소리를 내면 안되는데스!"

 "테히... 테히이이..."

 "소리를 내면 우리들은 단번에 들키는데스! 무서운 고양이도! 개도! 심지어 닝겐들도 눈치채버리는데스우! 그렇게되면 죽는 일밖에 안 남는뎃갸--!!"

 "테... 테챠....."

 "......"

 "마.... 마.... 미안한테치...."


 자실장은 겨우 울음을 삼키고 고개를 푹 숙인다.


****************************************************************************


 지쳐 쓰러진 자실장을 눕히고 친실장은 비닐봉투를 주섬주섬 뒤지기 시작한다.
 비닐봉투의 안쪽은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로 엉망이다.
 빈 라면그릇, 찌그러진 캔, 잡화점 광고지, 햄버거 포장지, 구겨진 신문지... 다양한 생활쓰레기를 끈기있게 꺼내자 맨 안쪽에서 잔뜩 찌부러진 편의점 주먹밥이 하나 나온다.

 친실장이 주먹밥을 꺼내놓자 마치 시체처럼 축 늘어져있던 자실장이 반짝 눈을 빛내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침을 줄줄 흘리며 주먹밥을 뚫어지도록 쳐다본다.
 그런 자실장이 귀여워서였을가. 친실장은 메마른 얼굴에 한줄기 미소를 띄운다. 그리고는 비닐봉투에서 나무젓가락을 한짝을 꺼낸다.

 나무젓가락은 원래의 것에서 반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꺾인 단면은 굉장히 날카로웠다. 친실장은 그 중 하나를 들어 날카로운 부분으로 주먹밥의 포장지를 가만히 찌른다.


 폭!


 날카로운 나무젓가락의 단면이 포장지를 뚫자, 친실장은 다른 젓가락을 들어 솜씨좋게 그 구멍에 쑤셔넣는다. 그리고는 양옆으로 힘껏 벌려 헤집는다.


 포샷!

 후드드득...


 주먹밥의 얇은 포장지는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찢어진다.
 친실장은 생각대로 되서 기쁜듯 뎃데로게-♬ 하고 가볍게 흥얼거린다.


 친실장은 나무젓가락을 소중하게 챙겨 다시 비닐봉투에 넣고, 이번엔 빈 편의점 도시락 용기를 꺼낸다. 빈 용기에 찢은 주먹밥을 얹은 다음, 떨어진 밥풀 하나도 놓칠새라 꼼꼼히 바닥을 살핀다. 한참을 뒤진 끝에 더이상 떨어진 밥풀이 없자 친실장은 눈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는 자실장을 부른다.


 "자- 오래 기다린데스~ 어서 밥먹는데스우."

 "텟--챠! 우마우마한 밥텟츈★"

 "자자 어서 먹는데스. 많이 있으니 천천히먹는데스우."

 "마마~ 잘먹겠는테치♡"

 친실장이 먼저 밥 한덩이를 입으로 옮기는 것을 시작으로 자실장도 주먹밥에 달려든다.


 와구와구와구와구와구


 "맛있는텟츈♡ 맛있는텟츈♥"


 자실장은 얼굴을 거의 파묻다시피하고 주먹밥을 게걸스럽게 먹는다.
 사실 말이 주먹밥이지 산산히 부서져버려 원래의 형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거기다 그 주먹밥이란 것도 근처의 가게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내버린 것인데다가, 쓰레기통에서 더운 여름 기온을 한껏 받아 마구마구 썩어가고 있던 것이다. 이미 밥알은 잔뜩 쉬어버려 곰팡이가 덕지덕지 낀 녹색빛을 띄고 있었다. 속재료였던 우메보시마저 썩어버려 죽처럼 흐물흐물해졌다. 썩은 악취를 넘어 독한 가스마저 내뿜고 있는 그런 주먹밥을 자실장은 마치 세상에 더없는 진미인양 미친듯이 먹는 것이다.


 "우마우마테치☆ 우마우마테치★ 우마우마한 밥 맛있는텟츈~☆"


 자실장은 엉덩이를 흔들흔들 흔들어대면서 연신 탄성을 내지른다.
 진심으로 맛있는듯 입가는 온통 녹색 곰팡이 투성이다.
 친실장은 그런 자실장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간간히 밥덩이 몇알을 입으로 옮길 뿐이다.



 "텟푸우웅~♡ 정말 배부르게 먹은텟찌! 마마 고마워요테치!"


 다 썩은 주먹밥이 사라지는 것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자실장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친실장은 자실장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른지 푸근한 미소를 얼굴에 띄운다.


 "많이 먹은데스우?"

 "텟츄★ 실컷먹은테체!"

 "잘된데스... 응응... 잘된데스우..."

 "테... 그러고보니 마마는 별로 먹지 못한테...치..."


 배가 부르니 비로소 친실장의 생각이 난 것일까.
 자실장은 친실장이 거의 먹지 않은 것을 떠올리고 몹시도 미안해 한다.


 "데에에 마마는 괜찮은데스우. 마마는 어른이라 괜찮은데스. 많이 먹어야하는 것은 아기데스."


 그런 걱정어린 말을 듣고 흐뭇하게 미소를 띄우는 친실장.
 자실장은 친실장의 품에 안겨 테치테치 투정을 부린다.


  "테---! 와타치는 아기 아닌테치이!"


 . 
 .
 .
 .
 .



 황금빛 황혼도 모두 꺼지고 괴괴한 어둠이 주변에 깊게 깔린다.
 친실장과 자실장은 빛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깜깜한 어둠속에서 서로를 꼭 껴안고 테치테치 데스데스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 절대 인간 근처에서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하는데스."

 "테-! 무서운테체!"

 "그런데스우. 무서운데스. 아주아주 무서운데스. 닌겐들은 우리들은 상상도 못하는 끔찍한 방법으로 죽이는데스.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으면 절대 닌겐은 보지도 않아야하는데스. 달콤한 말을 해도 절대 꾀여서는 안되는데스."

 "테츄! 알은테치!"

 "너는 똑똑한 아이데스..."

 ".........."


 친실장은 손으로 자실장을 더듬어 푸긋푸긋한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준다.
 자실장은 답답할 법도 한데 친실장을 꼭 끌어안고 놔주지 않는다.


 "....밤이 깊은데스우. 너는 조금 잠을 자두는데스. 내일도 많이많이 걸어야하는데스우."

 "....테...."

 "........."

 "....저기 마마."

 "데에?"

 "그 '산'이라는 곳은 얼마나 남은테치?"

 "데...... 아직 꽤 남은데스... 아니 아주 멀고도 먼 데스."

 "테츄... 지금도 많이많이 걸었던테체... 더 걷는 것은 이야테츄..."


 자실장은 한숨을 폭 내쉰다.


 "......힘들 것인데스. 어린 너에게는 많이 힘들다는 것도 아는데스우. 하지만... 하지만 참아야하는데스."

 "거기에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데스. 떠돌이처럼 이곳저곳 숨어다닐 일도 없는데스우. 닌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일도 없는데스. 고양이에게 죽을까봐 떠는 날도 안녕데스."

 "테에... 먹을 것도 많은테치?"

 "물론데스. 먹을 것도 아주아주 많은데스. 언젠가 공원에서 봤던 나무를 기억하는데스?"

 "스테! 기억하는테츄! 아마아마한 열매가 잔뜩 열리던 신기한 것이었던테체!"

 "그런 나무가 '산'이라는 곳엔 아주아주 많은데스. 공원처럼 열매를 두고, 나무를 두고 다툴 일도 없는데스..."

 "테... 믿기지 않는테치... 그런데 마마는 어떻게 그런 것을 다 아는테츄?"

 "데........"


 처음으로 친실장의 말문이 막힌다.
 만일 주변이 충분히 밝았다면 자실장은 회한에 찬 친실장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리라.


 ".......예전에 한 번 가봤던데스."



 .
 .
 .
 .
 .
 .

 까만 구름 사이에 달도 숨어버린 깊은 밤.
 자실장은 테츄테츄 깊게 곯아 떨어진지 오래다.
 그러나 친실장은 빨갛고 초록색인 눈을 꿈뻑꿈뻑거리고만 있었다.
 간간히 깊은 한숨도 쉰다.


 "데에... 주인님... 보고 싶은 데스우...."


 친실장은 멍하니 중얼거린다.




 친실장은 원래 사육실장이었다.
 세레브 실장만큼의 최고급 실장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해서 아무렇게나 내다파는 하급 사육실장도 아니었다.
 제법 이름 있는 중견기업의 애완실장석센터에서 고도의 교육을 받고 출하된 제대로 된 사육실장이었던 것이다.
 열에 아홉은 죽는다고하는 처절한 훈육과정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그때 거기서 운을 다 써버려서였을까.
 그녀가 만났던 주인은 그리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다.



 자실장이었을때는 찐빵처럼 통통한 외모에 참을성 많은 성격과 사려깊은 배려, 정중한 예의 등으로 남자는 무던히도 그녀를 예뻐했다. 수영장, 전용 장난감, 주말마다 피크닉... 많은 것을 해주었고, 그녀는 잠시동안이나마 '행복감'이 무엇인지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두달이라는 꿈같은 시간이 흘러버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테찌테찌에서 테스테스하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다시 얼마 안 있어 데스데스하는 성체의 목소리로 변하는 순간. 남자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의 행동거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아니 같이 지내면서 배우고 관찰했던 지식으로 자실장시절보다 훨씬 더 원숙해져 있었지만, 남자의 애정은 차갑게 식어만 갔다. 애정은 곧 미움으로. 증오로 변해갔으며 이전에는 일절 없었던 폭력도 곧잘 가하기 시작했다. 항상 먹던 밥이 싸구려 푸드로. 싸구려 푸드에서 다시 음식물 찌꺼기로 변하는데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한 남자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그녀는 몇백번이나 용서를 구하고, 이전보다 훨씬 더 예의를 지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늦봄 무렵.
 낮잠 시간에 날린 꽃씨 하나가 그녀의 왼쪽 눈을 초록색으로 물들인 그 날.
 그녀는 남자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고 집밖으로 내쫓겼다.
 함부로 임신을 한 벌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성체실장이 다 되어 귀엽지 않게 된 그녀를 내다버린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그날.
 친실장이 됐고,
 또 한편으로는 들실장이 되었다.


***************************************************************************************************************





 사흘 뒤.


 친실장과 자실장은 손을 꼭 잡고 길거리를 걷고 있다.
 모녀의 얼굴에는 어쩐지 미소가 감돈다.
 테치테치하며 주변을 쿄로쿄로 돌아보는 자실장은 원래 호기심이 많으니 그럴 수 있지만, 항상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경계하기 바쁘던 친실장까지 방긋방긋 미소를 띄고 있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간다.
 근 삼주일에 걸치 대장정 끝에 이제 목표로 했던 산에 거의 도착했기 때문이다.
 고개 위로 펼쳐진 거대한 산을 연신 들여다보며 모녀는 테치테치 데스데스하며 떠든다.


 "마마! 큰테찌! 아주아주 큰테찌이이!!"

 "데에... 그런데수... 마마도 여기서 보는 것은 처음데스우."

 "이렇게 클줄은 생각도 못한테치! 굉장한테치! 정말 정말정말정말 큰 테챠!"


 사실 산이 아니라 야트막한 언덕에 불과했지만, 모녀에게 있어서는 거대한 에란챠 산맥 못지 않게 다가온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두근거림에 모녀는 좀처럼 얼굴에서 미소를 떨어내지 못한다.



 "마마, 조금 쉬었으면 하는 테치."

 "데스☆ 마침 저기에 좋은 장소가 있는데스우. 저기로 가는데스."



 친실장은 자실장과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여기 앉는데스."

 "테- 마마의 두건테치... 와타치 그냥 앉아도 되는테치."


 친실장은 자신의 두건을 풀어 돌바닥에 깔아준다.
 바닥이 조금 우툴두툴해서 행여나 딸이 배길까봐 염려한 것이다.


 "데에~ 너는 아기데스. 아기는 사양하지 않아도 되는데스~♥"


 꿈에 그리던 신천지에 다와서 기분이 좋아진 것일까.
 친실장도 자실장도 얼굴에 분홍빛 미소가 한가득이다.



 그래서였을까.
 친실장은 평소에 늘 게을리하지 않던 주변의 경계를 놓치고 말았다.



 "안녕히가세요!"

 "네~ 수고하세요."


 지이이잉


 순간 모녀의 뒷편에서 편의점의 자동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더불어 사람의 목소리도.

 친실장은 거의 반사적으로 자실장을 들어 품에 껴안는다.
 그리고 재빨리 옆에 놓인 쓰레기통으로 달려가 숨는다.


 "마, 마마!"

 "쉬잇! 조용히하는데스! 니, 닌겐이 온 데스우!"


 친실장은 놀라 부들거리는 자실장을 꼭 껴안는다.
 행여나 소리라도 지를까 입을 꼭 막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마음을 느슨히 푼 것 때문이었을까.
 친실장이 반사적으로 숨은 곳은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다.


 "쓰레기통이... 아... 여기있구나. 우, 우와아앗!!"


 편의점에서 나온 남자는 우롱차를 한번에 들이키고 쓰레기통을 찾다가 모녀를 목격하고 비명을 지른다.
 어지간히 놀랬는지 몇걸음이나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남자.
 그리고는 자신을 놀라게 한 상대가 하찮은 실장석이라는 깨닫고 얼굴을 붉힌다.


 "이, 이 자식이..."


 "데, 데, 데스우..."


 그때라도 도망갔으면 좋았을걸.
 친실장은 갑작스런 조우에 딱딱하게 몸이 굳어버린다.


 거기에 더해 지금 친실장이 자실장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도 상당히 좋지 않았다.
 친실장이 자실장을 앞으로 꼭 껴안은 모습.
 그 장소는 편의점 입구 근처.

 누가 보더라도 자신의 아이를 '탁아'하려는 모습이다.






 "이 자식 감히 탁아를 하려하다니!"

 "데, 데엣?!"

 "왜?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더냐? 이젠 하다하다 실장석까지 날 무시하는거야?!"


 남자는 친실장을 무섭게 노려보며 윽박지른다.
 친실장은 갑작스런 고성에 어리둥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대기만 할뿐이다.
 갑자기 왜이러는걸까 와타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인간은 어떻게든 피하려했는데. 무슨 잘못을 한걸까. 이 닝겐은 대체 왜이러는걸까. 순식간에 여러 상념이 머리를 스쳐지나가지만 친실장은 무엇하나 잡을 수 없었다. 그저 데-데-하는 멍청한 소리만 입에 울려퍼질뿐이다.


 "흥! 그래, 그놈을 넣으려했겠다?"

 덥썩

 "테챠?!"

 남자는 친실장에게 안긴 자실장을 잡아든다.
 갑작스러운 남자의 강탈에 친실장은 영문도모른채 자실장을 빼앗기고 만다.
 자실장도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깨닫지 못한듯 멍하니있다.


 "테챠아아아아아아-!!! 마마아아아아아아----앗!!!"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자실장이었다.
 남자가 자실장을 붙잡은 부위가 뒷 머리카락이었던 탓에 끊어지는듯한 고통에 번쩍 정신이 든 것이다. 그 비명을 듣자 친실장도 비로소 정신이 돌아온듯 남자에게 달려든다.


 "니, 닌겐상!! 무, 무, 무, 무슨짓데스우!! 돌려주는데스! 와타시의 소중한 아이데스!! 그러지마시는 데스우----우우우!!!"


 "마마아아아앗!! 도와, 도와테찌이이이이!!! 마마아아아!! 무서운테챠아아아----!!!"


 자실장은 거의 발광한다.
 뒷머리에서부터 가해지는 엄청난 통증.
 신장의 몇십배가 넘는 높이에 매달렸다는 공포심.
 무섭고도 무서운 닌겐에게 잡혀버렸다는 절망감.
 거기에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예감이 뒤섞여 자실장을 감싼다.

 뿌지지지지직!!

 뿌직! 뿌직! 뿌지지직!!


 그리고 거의 본능적으로 자실장은 탈분한다.
 공포심을 느끼면 똥을 싸는 것이 실장석의 본능.
 남자가 앗!하는 사이에 자실장은 이미 자신의 머리통만큼이나 팬츠를 빵콘시키고 말았다.


 "우왓!! 더러워!!"


 자실장의 빵콘에 남자는 깜짝 놀라 들고있던 손을 휘두른다.


 "테-------"


 남자의 손을 떠나버린 자실장.
 몸이 붕뜨는 느낌에 놀라 자실장은 눈을 치켜뜬다.

 순간 아래에 있는 친실장과 눈이 마주친다.


 "마마--- 도와..."


 퍼석




 자실장은 그대로 수직낙하한다.
 그리고는 데친 토마토가 뭉그러지듯이 그대로 터져버렸다.
 도와달라는 한마디 말조차 끝내지못할 정도로 빠른 순간이었다.
 단 1초만에 자실장이 고기죽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왓! 손에 묻었어! 제기라아아알!!"


 남자는 손에 한방울 튄 자실장의 녹색똥에 절규하며 뛰어간다.



 "데, 데, 데, 데......"


 친실장은 온몸을 벌벌 떨면서 허둥지둥 자실장의 잔해로 다가간다.
 터져버린 핏덩이 앞에 털석 무릎을 꿇는다.
 부들부들 경련하는 손으로 조금전까지만해도 딸이었던... 고깃덩어리를 조심스레 끌어안는다.


 주륵

 툭

 투둑


 친실장이 손을 대자마자 고깃덩어리는 마치 흐물거리는 죽처럼 파스라진다.
 하지만 친실장은 그래도 손을 멈추지 않고 조심조심 고깃덩이를 헤쳐나간다.
 그리고 자실장의 머리통을 발견한다.


 "데, 데, 데, 데, 데... 데데...."


 머리통이라고 하지만 절반 밖에 없다.
 이마 위쪽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으리만치 으깨져서 순두부같은 회백색 점액이 걸쭉하게 묻어나온다.
 두 눈알은 완전히 짓뭉개져 있었고, 이빨은 하나같이 깨져 있었다.
 예쁜 테치테치 노랫소리를 흥얼거리던 목구멍으로 찌부러진 내장이 스멀스멀 밀려나오고 있다.


 "데, 데, 데, 데, 데쟈아아아아아아!!!!"

 "데쟈아아아아아아!!!! 데쟈!! 데쟈! 데쟈아아아아아아!!!"


 친실장은 자실장의 반 남은 머리통을 붙잡고 절규한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채 처절한 비명만을 지르는 친실장.
 눈에서는 피눈물을 넘어 새까만 눈물이 흘러나온다.
 슬플때 나온다는 적록색의 피눈물보다 한 단계 위의 검은 눈물이다.
 위석을 자괴시킬 정도로 심한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았을때 흘린다는 눈물.

 그만큼 지금 친실장은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전부인 아이였다.
 하나뿐인 아이.
 모든 것과 바꾸어 겨우 지켜낸 아이였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쯤이야 언제든지 줘도 아깝지 않았다.
 다행히 그런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아이도 참 순박하고 착했다.
 가끔 아이다운 실수도 저지르긴했지만, 자신에게 아까우리만치 착하고 현명했던 딸이었다.
 희망이었다.
 마지막 삶의 보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그런 딸이.
 지금은 머리통만 남았다.
 대답없는 고기죽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친실장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
 그 절망감이 얼마나 깊은지.
 그 누구도 감히 짐작조차 못하리라.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데갸아아!! 데갸! 데갸!! 데갸아아아아아!!!"


 친실장은 무릎을 꿇은 자세로 고개를 위로 젖혀 연신 기성만을 질러댄다.
 눈물은 흘리지만 특유의 오로로롱하는 슬픔의 소리도 없다.
 딸을 죽인 남자. 닌겐에 대한 원한도 토로하지 않는다.

 지금 친실장이 절규하는 대상은.
 비탄하는 상대는 그 남자도. 닌겐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둘러싸왔던 모든 것.
 어린 시절 어미의 뱃속에서 강제로 끄집어 나온 이후부터 시작해서,
 자매와 친구들이 모조리 어육이 되어 갈려나가던 교육석 시절,
 애완실장 판매대에서 하루 열일곱시간씩 애교를 부려야했던 그때,
 남자에게 팔려와서 며칠만에 질려버려 구박을 받던 때,
 그리고 아이를 낳자마자 쫓겨나버렸던 때,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수많은 박해와 괴롭힘을 당했던 때...

 그 모든 것이 합쳐진 그 무언가.
 그녀를. 아니 실장석이란 존재 자체를 휘감고 있는 온갖 부조리함에 대해 그녀는 절규하는 것이다.


 케폿!!


 "쿨럭!쿨럭!"


 연신 괴성을 버럭버럭 질러대던 친실장의 입에서 검은피가 쭈욱 솟구친다.
 너무 소리를 지르느라 목이 심하게 상해버린 것이다.
 큰 혈관이라도 터진듯 연신 꺼룩꺼룩하면서 검은 핏덩이를 토해낸다.
 한참을 토해내고서야 멈춘 친실장은 조금 정신을 되찾은듯 조용해진다.


 질퍽


 다시 딸의 사체를 만져보는 친실장.
 아까와는 달리 차갑다.
 식어버린 것이다.


 "데스우... 데스... 데스......... 데...... 데데... 미안한데스우... 미안한데스... 마마가 미안한데스..."

 "마마가... 마마가... 조금만 더 똑똑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것인데...스...."

 "숨는게 아니라 도망갔으면 괜찮았을 것인데스... 마마때문인데스... 마마때문에 네가 죽은데스... 미안데스.... 미안해데스.."


 친실장은 무릎을 꿇은 채로 중얼중얼거린다.
 그리고는 두건을 벗어 땅에 펼친다.
 두건 위에 딸의 시체. 아니 잔해를 옮기기 시작하는 친실장.


 철퍽...

 주르륵..

 "데에에엥... 데엥... 마마와 같이 산으로 가잔데스...."


 철퍽


 "너는 없지만... 그래도 마마와 함께 가는데스... 좋은 곳에 묻어주는데스..."


 툭

 투둑


 "집앞에... 아니 집 안에 묻는데스... 거기서라도 마마와 함께... 오래오래... 계속 살아가는데스우..."



 친실장은 연신 검은 눈물을 뚝뚝 흘러가며 딸의 잔해를 담는다.
 땅에 떨어진 신발, 손끝, 발끝, 피부조각까지 샅샅이 찾아 옮기고 나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서 비척비척 움직인다.


 "......산으로 가는데스... 이 아이의 소원이었던데스우... 산으로 가서... 산을 보여주는데스..."


 힘이 완전히 빠진듯 비척비척 비틀비틀대는 걸음이지만 그래도 친실장의 걸음은 확실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눈앞의 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실장석의 걸음으로라도 이삼십분만 걸으면 어귀에 닿을 것이다.


 "산.... 산인데스... 보이는데스우? 저곳이... 네가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살고 싶어했던 산 데스우..."


 굳은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에 든 두건에 말을 거는 친실장.


 그때 친실장의 뒷편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아!! 저깄다!! 저놈이에요!!"

 "아, 네!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친실장은 뒤를 돌아본다.
 나타난 것은 아까전 자실장을 죽인 남자와 처음보는 남자였다.
 처음보는 남자는 손에 이상하게 생긴 긴 막대기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저놈이라구요! 나한테 탁아하려고했던 놈이!!"

 "아, 알겠습니다! 제게 맡겨주시죠."


 처음보는 남자는 긴 막대기를 들어 친실장을 가리킨다.


 "이, 이자식이 사람 장사를 말아먹어도 유분수지! 어디 할 짓이 없어 내 가게 앞에서 탁아질이냐!!"


 긴 막대기는 호를 그리며 친실장의 목덜미로 떨어진다.




 "데에?"





 뻐억!






 툭





 "우왓?! 죽었어요?"

 "그럼요! 한방에 머리를 날려버렸습니다."

 "정말... 이런 대낮에 탁아나 당할뻔하고..."

 "며, 면목이 없습니다 손님! 항상 가게 주변은 깨끗이하려고 애쓰는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아! 손은 닦으셨나요?"



 두 남자는 무어라고 제멋대로 지껄여대며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길가에는 친실장이었던 머리통과
 자실장이 담긴 두건이 오도카니 놓여있을 뿐이다.




  






농가와 실장석

 


후타바 시를 둘러싸고 있는 아카기 산자락 일대에는 농가가 자리잡고 있다.
 가구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산어귀부터 시작되는 임야와 과수원, 도시의 외곽과 맞닿은 제법 넓은 들판에서는 쌀과 여러 가지 특용작물들을 재배하고 있었다. 강을 끼고 있어 토질이 비옥한데다가 공장 같은 산업시설은 거의 없는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후타바 시의 농산물은 주변은 물론이고, 다른 지방에서도 질이 좋기로 널리 소문이 나 있었다. 특히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 농산물은 품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여 전국 각지로 팔려나가고 있었다. 외국의 저렴한 농산물에 밀려 맥을 추리지 못하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대단히 특기할만한 일인 것이다.


********************************************************************

 겨울도 이제 거의 끝자락에 접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내린 것도 한 달쯤 전의 일이었고, 얼음도 대부분 녹아 그늘진 곳을 제외하고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매서운 바람도 한풀 기세가 꺾여 햇볕이 구름에 가리지 않는 날이면 그럭저럭 외투를 입지 않고도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봄의 기운이 제법 가까워진 것이다.


 [데에... 오늘도 겨우 살아남은데스우...]

 허름한 창고에서 성체 실장석 하나가 주춤주춤 걸어나온다.
 아직 아침이지만 구름이 없는 탓에 햇빛이 잘 내리쬔다.
 실장석은 하얀 입김을 토해내며 넝마같이 헤진 자신의 옷을 두손으로 감싸안고 한 번 부르르 떤다.

 타박타박...

 실장석은 마치 유령처럼 힘없이 걸어간다.
 겨울의 기세가 꺾였다고 하지만 가진 것이라고는 얇은 옷 한겹뿐인 실장석에게는 여전히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추위다.
 얇은 옷을 한껏 추켜올려 추위를 막아보려고 하지만, 옷이 가려주지 못하는 얼굴이나 다리, 손끝, 그리고 여기저기 찢어진 구멍 사이로 보이는 살결은 보라색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동상이 계속해서 도져 살결마저 너덜너덜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옷이라고 해봐야 벌써 삼 년의 세월동안 세탁을 한 것은 채 다섯 번도 되지 않는다. 처음의 푸릇푸릇한 초록색은 간데없고, 온갖 때와 오물이 찌들어서 짙은 회색으로 보인다. 자주 살결에 스치는 겨드랑이 부분과 옆구리 언저리는 이미 헤질대로 헤져서 구멍이 나있었다. 악취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신발...
 역시 옷과 같은 세월을 견뎌온 만큼 그에 만만치 않을 정도로 넝마가 되어 있다.
 평생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비사육실장의 일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참을 걸어 실장석이 다다른 곳은 한 농가였다.
 농가라고는 하지만 목재를 뼈대로 하고 기와를 올린 것이 작은 저택같은 크기다.
 실장석은 그 크기에 눌린듯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대문 근처에서 두리번두리번거리며 서성인다.

 조금 기다리자 여기저기서 비슷한 차림의 실장석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가장 먼저 도착한 실장석만큼이나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는 실장석, 대머리에 옷도 반쯤 찢어져 비닐봉지를 두르고 있는 실장석, 자그마한 자실장 하나를 두건에 넣고 어깨에 걸머진 실장석... 모두 족히 열 마리는 넘는다.

 실장석은 주변의 다른 동족과는 한마디 인사도 나누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바람을 피할 곳을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깨끗하게 정리된 집앞 도로는 변변한 흙더미조차 없어서 세찬 아침의 칼바람을 고스란히 맞는 수 밖에 없다.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어도 보고, 한 걸음 전진 한 걸음 후퇴를 반복하며 어떻게든 얼어죽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몇 번이나 대문을 힐끔힐끔거리며 무언가를 기다린다.


 삐이걱...

 첫번째 실장석이 도착하고 거의 삼십 분이 흘렀을 무렵 대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것을 신호로 군데군데 퍼져 있던 실장석들이 우르르 뛰어온다.

 [데데데데데스우우우~~~ 닌겐상~~ 일자리를 주시는데스우~~]

 [데에에엑!! 와타시! 와타시가 먼저인데슷! 와타시가 제일 먼저 온 데스우우우!!]

 [데갸아아!! 이 똥벌레가 무슨 소리를 하는데샤아아!! 넌 분명 나보다 늦게 온데스!!]

 [닌겐상! 닌겐상!!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시는데스우!! 와타시는 저번에도 저저번에도 일을 하지 못한데스! 이대로라면 자들이 모두 굶어죽는데스! 제발... 제발 일을 시켜주시는데스!!]

 [와, 와타시도 마찬가지인데스!! 무슨 일이든 다 하는데스! 무슨 일이든 잘 할 수 있는데스!!]

 [와타시는 자도 데려온데스! 와타시는 자와 함께 하기 때문에 일을 더 빨리 끝낼 자신이 있는데스! 먹이는 한 마리분만 주셔도 좋은데스!! 와타시에게 맡겨주시는데스우우우!!!] 

 실장석들은 집안에서 나온 남자를 향해 데스데스하며 필사적으로 호소한다.
 대부분의 얼굴은 초록색과 빨간색의 눈물이 주르르르 흐르고 있다. 
 가식이 아닌 진짜 비통한 울음소리가 가슴 속 폐부를 지나 하얀 입김과 함께 토해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남자와의 어느 정도 거리는 유지한다.
 아무리 사정이 급박하다고해도 인간의 몸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예의'라고 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대문 앞의 실장석 무리를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번에도 말했잖아! 이제 너희들이 할 일 따윈 없다고! 다들 돌아가버려!!]

 [데데데데스우.... 제발 부탁드리는데스! 돌 고르기도, 쓰레기 줍기도, 풀뽑기도 모두모두 자신있는데스우!!]

 [데개에에~ 와타시는 사정하는데수... 벌써 사흘이나 아무 것도 먹지 못한데수... 이대로는 정말 죽는데수..]

 [데승... 데승... 밥은 반절만 받아도 좋은데스.. 무엇이라도 시켜주시는데스.. 제발 부탁드리는 데스 닌겐사마...]

 실장석은 하나둘씩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바닥에 갖다 댄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모든 실장석들은 땅에 엎드려 있었다.
 그러면서도 제발 일거리를 달라고 끊임없이 사정한다.

 잠시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무슨 일이라도한단말이지? 그럼 이리 따라와라.]

 그리고 앞장 서서 집의 반대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

 남자가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줄줄이 실장석들을 뒤에 붙이고 도착한 곳은 야트막한 도랑이었다.
 눈앞의 논에 물을 대는 것으로, 너비는 약 1미터에 깊이는 그 반 정도였다.
 바닥과 벽면을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꾸며놓았지만, 지난 봄과 여름에 물대기를 한 이후에는 거의 손보지 않았기 때문에 말라붙은 진흙과 이끼가 벽면과 바닥에 잔뜩 끼어 있었다.

 [오늘은 여기를 전부 깨끗이 청소해라.]

 [[[[데에........]]]]

 실장석들은 하나같이 말을 잃고 멍하니 도랑을 쳐다보았다.
 도랑의 길이는 약 500미터에 육박한다. 당장 여기서 쳐다봐도 실장석의 낮은 키로는 그 끝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다 깊이도 자신의 키만큼이나 깊다. 언뜻 상태를 봐도 심각하다. 인간의 '깨끗하게'라는 말이 주는 엄정함을 지난 몇 번의 노동으로 뼈저리게 알고 있는 실장석들로서는 지금 남자가 말한 일의 난이도가 얼마나 높은 것임을 단번에 깨달았다.

 [데... 데, 데, 데, 데에에에... 너무 긴 데스우...]

 [......그런데스... 이렇게 많은 일은 우리들이 다 할 수 없는데스... 너무 많은데스...]

 몇몇 실장석이 조심스럽게 남자를 올려다보면서 어렵게 입을 뗀다.
 입을 놀려 말을하면서도 모든 신경은 남자에게 쏠려있다.
 연신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이 일의 어려움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남자의 한 마디에 그런 시도도 모두 무산으로 끝나버렸다.

 [싫으면 하지 않아도 좋아.]

 [데에!!]

 실날같은 희망을 걸고 있던 실장석들의 어깨가 추욱 늘어진다.


 [어차피 이런 겨울에 할 일 따위가 있을리 없잖아. 농사일은 봄부터 하는 거라고 이 머저리들아.]

 [그래도... 뭐 그 동안의 성의를 봐서 이렇게 일거리를 주는 건데, 뭐? 일이 많아? 싫으면 하지마!!]


 남자는 도로변의 흙덩이를 발로 차 날리면서 고함을 지른다.
 움츠러든 실장석의 어깨가 다시 한 번 더 좁아진다.

 실장석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벌써 며칠째나 일거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동안은 조금씩 모아왔던 먹이라든가 얼음을 녹인 물로 버텼지만, 이젠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당장 자신은 둘째치고 아이들은 하루라도 더 굶는다면 필시 죽고 말 것이다.

 [데이... 와... 와타시는 하는데스! 와타시에게 시켜주시는데스!!]

 야윌대로 야윈 자실장을 등에 업은 친실장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실장석들도 하나둘 힘없이 손을 든다.
 길게 뻗어있는 도랑을 데- 하며 멍하니 바라보던 실장석도, 남자의 발 근처에 무릎을 꿇고 있던 실장석도.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할 수 없이 손을 든다.


 [좋~~아. 모두 하겠다는거지? 그럼 규칙은 알고 있겠지? 일을 제대로 마치면 밥을 준다! 하지만 해가 질 때까지 다 끝내지 못하면 밥은 없어! 알겠지?]

 남자의 으름장에 실장석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마치 송장이 무덤으로 들어가듯이 느릿느릿 도랑으로 뛰어든다.

 [데기... 축축한데스... 차가운데스...]

 [데에... 발이 시려운데스... 저릿저릿한 물이 가득인데스...]

 [데에에에~~엣! 들어와보니 더 넓은데스... 무리인데스... 너무 넓은데스우... 데에에엥... 데엥...]

 [.....마...마? 그럼 와타치랑 마마 밥 없는테치? 또 굶어야되는테치?]


 일을 하겠다고 자원한 실장석은 모두 열여덟마리.
 그 중 자실장은 모두 세마리였다.
 덩치가 작고 힘이 약해 노동에는 거의 힘을 쓸 수 없는 자실장들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노동력은 열다섯마리가 전부였다.
 어찌보면 꽤 많은 숫자지만, 오늘의 할당량인 도랑 청소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건강한 실장석 하나가 하루종일 쉬지 않고 열심히 논밭의 쓰레기와 돌을 골라내도 그 면적은 대여섯평에 불과하다.
 오늘의 일은 논밭에서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작은 도랑을 청소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열다섯 마리의 실장석으로 장장 오백미터에 이르는 길고 긴 농수로를 청소하는 것은 어떻게 봐도 무리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떠들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데스우. 입을 놀릴 시간에 조금이라도 일을 하는데스.]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살집 있는 실장석 하나가 손을 걷어붙이고 버려진 고무호스 조각을 주워 비닐봉투에 담는다.
 비닐봉투는 남자가 가져다 준 것이다.
 그 말에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던 실장석도, 엎드려 통곡하던 실장석도 눈물을 쓱쓱 문질러 닦고 하나둘씩 비닐봉투를 들어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실장석이 살아가려면 전적으로 인간에게 기댈 수 밖에 없다.
 도시에서라면 깊은 밤이나 새벽을 틈타 쓰레기장을 뒤지거나, 아니면 약간의 행운이 필요한 일이지만 애호파의 눈에 띄어 먹이를 받아먹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이런 농촌지역에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직접 소각로를 가지고 있어서 집에서 나오는 왠만한 생활쓰레기는 그냥 태워버린다. 그래서 쓰레기장에는 태울 수 없는 가구나 폐가전제품, 깡통이나 유리병 같은 재활용품만 나올 뿐이다. 
 애호파 역시 이런 시골까지. 시에서 차로 달려 삼십분 이상 걸리는 이런 곳까지 올리가 만무하다. 거기에다 지역 주민들은 실장석을 농사일을 망치는 해수(害獸)로 취급하기 때문에 먹이를 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봄이 되면 보리싹이 푸릇푸릇하게 올라오고, 여름이 되면 온갖 과일과 푸성귀가 돋아나온다. 가을이면 그야말로 온 들녘이 황금빛 벌판이 되어 곡식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나무마다 달콤달콤 향기가 나는 열매가 잔뜩 익어서 빠알간 빛깔을 자랑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나무열매도 여기저기서 열린다. 그 양은 실장석들로서는 눈으로 보고도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들의 신체보다 열배. 아니 백배는 넘을듯한 양이 차곡차곡 들판에, 집에, 창고에 쌓여간다. 그것들 중 아주 조금... 눈치 채지도 못할 만큼의 양만 있더라도 자신과 자식들은 물론이고, 다른 모든 실장석들도 배부르고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들판에 열리는 곡식도, 산에서 나는 푸성귀나 버섯도, 나무마다 열리는 열매도, 심지어 땅에 떨어진 낟알 하나하나마저 주인이 있었다. 그것은 모두 인간의 것이었다.
 들판 전체를 뒤덮은 보리밭에서 보리싹 하나를 딴 실장석은 그 자리에서 짓이겨진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썩은 나뭇껍질에서 돋아난 버섯을 몇 개 딴 자실장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집에 숨어있던 동생들과 나중에 돌아온 친실장까지 모두 오뎅꼬치에 엉덩이부터 입까지 꿰뚫린채 땅에 꽂혀 말라죽었다.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과일나무에 가까이 간 실장석은 풀어놓은 고양이에게 사지가 찢어발겨졌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서 떨어진 곡식 한 톨을 줍던 실장석 가족은 머리 위에서 뿌려진 실장도로리에 온 놈이 걸죽걸죽하게 녹아버렸다....


 아무 것도 없다.
 들판과 산녘에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려있었지만, 그것들 중에 실장석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먹을 것만 없는 게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도시에서는 꽤나 자주 보이던 골판지 상자도 여기서는 거의 찾기 어렵다.
 물을 담을 수 있는 음료수병, 항상 유용하게 쓰이는 노끈, 여름에는 햇빛을 막아주고 겨울에는 따뜻함을 주는 천조각이나 헌옷 등등의 생활용품도 도시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불가능하다.


 그런 실장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인간에게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실장석이 비록 형편없는 신체능력을 가지긴했지만, 그래도 '숫자'가 있다.
 모내기라든가 모판 만들기, 가지치기, 수확 등의 큰 일은 못하지만, 사람을 쓰기에는 아깝고 하긴 해야하는 일 정도는 실장석에게 맡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농약을 쓰지 않고 실장석에게 잡초나 해충을 모두 잡게해서 유기농 농작물을 재배한다거나, 비가 오는 날에 물꼬가 무너지지 않게 밤새도록 지켜보도록 시킨다거나, 우물이 막히면 아래로 넣어서 상황을 살펴보게 한다거나, 가을 수확 후 관리하지 않은 농수로를 청소하게 시킨다거나 말이다.

 그 대가로 인간은 실장석에게 살 수 있는 공간과 음식을 준다.
 사는 곳은 폐가가 된 곳이나 무너져 쓸 수 없게 된 옛날 창고에다 덮을 것은 비료포대 정도가 전부였고, 음식은 잔반찌꺼기 아니면 최하급 실장석 사료가 전부였지만, 어쨌든 주긴 주는 것이다.

 [데히... 데히... 너무 힘든데스... 그리고 너무 큰 데스... 도저히 이건 못 끝내는 일인데스]

 [....입을 놀리면 더 빨리 지치는데스. 천천히라도 일을 하는데스우.]

 [아줌마 말이 맞는데스우. 한 번 쉬면 다시 일어나는 건 배나 힘이 드는데수. 힘을 내는데스]

 [데히... 데히이... 와타시가... 와타시가...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잃고 여기까지 온 것은 이런 것때문이 아니었던데스... 데히히히히히히...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에엥.....]

 실장석 하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철퍼덕 주저앉아버린다.
 주변에서 쓰레기를 줍고 막힌 흙덩이를 돌로 부숴뜨리던 실장석들이 한 번씩 고개를 돌려 쳐다볼 뿐, 이내 신경을 끄고 다시 자기 일에 매진한다. 일을 하면서 보는 흔하디 흔한 광경일 뿐이다.

 [데히히히힉... 데힉... 데에에에엥!! 미안한데스우우!! 마마가 미안한데스우우우!! 괜히 '이주'를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인데스우!!]

 울음은 점점 통곡으로 변해간다.
 보다 못한 가장 나이 많은 실장석이 뒤돌아 그 실장석에게 다가가려 할 때,

 [테에에에엥!! 마마아아아!! 울지마는테체!! 와타치가... 와타치가 있는테치이이!!]

 한 자실장이 뛰쳐나와 울고있는 실장석의 배에 달라붙는다.

 [테에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엥!! 마마가 울면 와타치는 이야테치! 울지마는테치! 울면 와타치도 슬픈테치이이이!!]

 [데스우우우우우!! 마마가... 마마가 미안한데스!! 마마가 바보라서 네 언니도, 네 동생도 모두 죽은데스우우우웃!!!]

 [아닌테체! 아닌테체! 그런거아닌테찌이이이!! 동생쨩도, 언니쨩도 마마를 원망하지 않는테치!! 마마 잘못이 아닌테찌이!]

 [데에에... 데에에에에엥!! 데에에에에에엥!!!]

 [테에엥!! 테에에에에에에엥!!! 마마아아아아!!!]


 다가가려던 나이 많은 실장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쓰레기를 주으러 간다.


 이곳에 사는 실장석의 절반은 도시에서 이곳으로 '이주'를 온 들실장이었고, 또 다른 절반은 깊숙한 산 속의 실장석 부락에서 살다 '탈출'을 한 산실장이었다. 
 밥이 없어서, 공원이 황폐해져서, 천국이 있다는 말에.
 더 이상 자식을 겨울나기 식량으로 삼기 싫어서, 너무 엄격한 부락의 규율에 지쳐, 아이를 마음껏 가지고 싶어서.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이곳에 흘러들어왔다.

 도시에 사는 실장석들은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가본 원 사육실장에게서 음식이 온 지천에 널려있는 '천국'이라는 존재를 들었다. 부락에 사는 실장석들은 먼 곳으로 사냥을 나간 이들에게서 나뭇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열매가 달린 나무가, 그것도 수십 수백그루 있는 '극락'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각자 들은 방법과 그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들의 목적은 같았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에서 살고 싶다.
 먹을 걱정, 죽을 걱정, 아이들을 잃을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다.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고 싶다...

 그런 일념만으로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그런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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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뉘엿뉘엿 능선 뒤로 넘어가고 있는 태양을 보자 실장석들은 마음이 조급해진다.
 맡은 일은 무조건 해가 지기 전에 끝을 내야한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일을 마치지 못하면 그 날 일한 품삯은 조금도 받지 못한다.
 실장석들이 밤을 새워 일을 하고 싶어도 가로등조차 없는 암흑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데에 불을 비춰줄 한가한 인간도 없는 것이다.


 [아직도 쓰레기가 남은 데스우?]


 나이 많은 실장석이 불안한 얼굴로 앞서 나가있는 실장석들에게 묻는다.


 [일단 흙덩이 정리는 놔두고 어서 가서 쓰레기부터 줍는데스!]

 [데스! 모두 함께 쓰레기부터 줍는데스!]


 너나 할 것없이 몸을 정신없이 놀린다.
 해가 지기 전까지 도랑을 모두 정리해놓지 않으면 오늘 먹을 밥을 받을 수 없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어도, 아무리 많은 일을 했어도 정해진 분량보다 적게 하면 하나도 인정받지 못한다.
 거기에는 어떤 변명도 사정도 통하지 않는다.
 그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실장석들이기에 어떻게든 해가 지기 전에 일을 끝내려고 서두르는 것이다.


 [테치! 손이 너무 아픈테치... 쥘 수도 없는테찌...]


 자실장 하나가 피가 뚝뚝 흐르는 손을 부여잡고 울먹인다.
 하지만 누구 하나 돌아봐주는 이가 없다.

 다른 실장석들도 모두 손이 상처투성이다.
 날카로운 깡통을 줍다가 뾰족한 나뭇가지를 치우다가 날카로운 철사에 찔려서...
 하지만 상처를 돌볼 여가가 나지 않는다.
 일단 어떻게든 눈에 보이는 쓰레기부터 다 치워야하는 것이다.


 [데수우! 저기도 있는데수!]

 [빨리 치우는데스우!]

 [데갸악!! 아픈데스! 깨진 병조각인데스!!]

 [데에!! 위험한데스! 큰 것만 줍고, 나머지는 일단 여기 흙으로 덮어두는데스우! 어서어서 서두르는데스!! 곧 해가 지는 데스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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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실장석 열다섯마리... 나중에는 자실장들까지 고사리같은 손을 보태기는 했지만, 여하튼 열다섯에서 열여덟마리의 힘으로 장장 오백미터나 되는 농수로를 제법 깨끗하게 치워낸 것이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물론이고 잘 띄지 않는 자잘한 것까지 모두 깨끗이 치웠다.
 도랑이 구부러지는 부분에 쌓인 토사도 말끔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물의 흐름에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치워놓기까지 했다.
 비록 아침부터 해가 지는 저녁까지 거의 12시간이나 걸리긴 했지만, 건장한 남자 두어명이 달라붙어도 족히 두세 시간은 걸릴만한 일이었던 것을 생각해볼때 정말 열심히 일한 것만은 분명했다.
 실장석들도 자신들이 이루어낸 것이 믿기지 않는지, 아니면 자랑스러운 것인지 너나할 것 없이 농수로 위의 도로에 한데 모여 배를 보이고 누워있었다.


 [데히... 데히이.... 어떻게... 다 끝낸데스....]

 [데에에에... 정말... 와타시가 살면서 가장 열심히 일했던 날인데스... 집에 돌아갈 힘도 없는데스...]

 [데승... 데승... 맞는데스... 정말 손 하나도 움직일 힘이 없는데스...]

 [걱정마는데스우. 맡은 일을 모두 끝냈으니 닌겐이 밥을 줄 것인데스... 밥을 먹고 힘을 내서 돌아가는데스우...]

 [테에? 마마... 정말 오늘은 밥을 먹을 수 있는테찌?]

 [그런데수우~ 너도 오늘 열심히 도와서 이렇게 일을 모두 끝낼 수 있었던데스... 수고한데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밥먹는데스.]

 [테에에에!! 와타찌 밥먹고싶은테찌! 그리고... 그리고... 동생쨩들에게도 밥 가져다 주고 싶은테찌...]

 [데에에...]

 [동생쨩도 며칠이나 굶은테찌... 밥을 가져가면 동생쨩들도 반드시 아주아주 기뻐할 것인텟츙★]

 [데스우우우.... 너는 착한 언니인데스...]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한쪽 끝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서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아직 태양은 산마루 중턱에 걸려있어 눈부신 황금빛을 비춰주고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두려운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던 실장석들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싱글벙글한 얼굴이다.
 너무나 힘든 하루였지만 곧 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흥! 제때에 끝냈다고? 그럼 어디 검사를 해야겠어....]


 남자는 늘어져있는 실장석을 보고 콧방귀를 뀐 다음 농수로의 끝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주의깊게 바닥을 살펴보고, 도랑이 구부러지는 지점에서는 근처의 나뭇가지를 꺾어 바닥을 쿡쿡 찔러보기까지 한다.
 끝까지 간 다음에도 다시 돌아오며 꼼꼼히 살펴보는 남자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어라... 깨끗하잖아... 난감하군... 당연히 실패할줄 알고 먹을 건 아무 것도 안 들고 왔는데에....)


 애초에 남자는 실장석들이 이번 일을 성공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백미터가 넘는 농수로. 가을 수확 이후 전혀 관리하지 않아 온갖 쓰레기가 쌓여있고, 봄날이지만 아직 추위가 온전히 가신 것도 아니다.
 필시 반의 반도 끝내지 못하고 도망치거나, 아님 얼어죽거나 둘 중 하나의 이유로 실패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이렇게 다 끝낸 것이다.
 그것도 꽤나 훌륭하게.


 (음.... 어떡한다.... 먹을 걸 가지러 집까지 다시 가기 귀찮은데....)


 실장석들이 모여있는 곳과 가까워질수록 남자의 고민은 깊어져간다.
 한숨을 쉬며 점퍼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 남자.
 그리고 주머니의 무언가를 꺼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래...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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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츙♥ 이제 밥을 먹을 수있는테치이~]


 자실장 하나가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짓고 빙그르르 돌며 춤을 춘다.
 야윌대로 야위어 신고 있던 신발마저 헐렁해진 앙상한 몸매지만, 곧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테에~ 마마아~ 오늘 밥은 무엇인테치? 와타치 밥알갱이를 먹고 싶은테츄!]


 다른 자실장은 친실장의 다리를 배고 누운 채로 말한다.
 오른손을 심하게 베여 친실장의 두건으로 감싼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퐁퐁 새어나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표정은 밝다.
 손은 아프지만, 어쨌든 곧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어 기쁜 것이다.


 [데에... 밥알갱이가 나오면 꼭 먹여주는데스... 꼭 먹여주는데스우...]

 [테쮸! 와타찌는 밥알갱이가 너무 좋아테츄! ...씹으면 말랑말랑하고... 또오... 입에 넣고 오~~래 기다리면 달콤달콤한 맛이나는테쮸!]

 [.....오늘 반드시 그렇게 먹을 수 있을 것인데스...]


 친실장은 누운 자실장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한다.



 [어이!! 이게 뭐야!!!!]


 하지만 그런 행복한 상상은 남자의 고함소리에 의해 산산히 부서졌다.


 [이봐!! 이게 뭐냐고!! 이러고도 일을 다했다는거냐!!]


 실장석들이 모여있는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남자는 두손을 허리에 짚고 서있었다.
 화가 난듯한 얼굴에 고함소리.
 실장석들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친다.


 [데, 데, 데, 데, 데에에..... 니, 닌겐사마... 무, 무, 무, 무, 무슨 일이신...데스우...?]


 가장 나이가 많은 실장석이 남자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다른 실장석들도 우르르 뛴다.


 [이것봐! 여길 보라고!! 이렇게 쓰레기가 있는데 무슨 청소를 했다는 거야!!]


 남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그곳의 도랑에는 파란색 담뱃갑이 하나 떨어져있었다.


 [데, 데에?! 데에에에?! 이, 이럴 리가 없는데스!!]


 나이 많은 실장석이 구르듯이 도랑으로 뛰어들어가 담뱃갑을 줍는다.


 [이, 이, 이, 이럴 리가 없는데스우!! 분명히... 우리들이 몇 번이나 살펴본데스!! 도랑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하고... 위에서도 또 살펴본데스... 분명히 다 치운데스!!]

 [그럼 뭐냐 그건?! 도랑에 떨어진 걸 네 손으로 방금 주웠잖아?!]

 [덱?! 데..... 데.... 데...... 그, 그, 그래도 아닌데스우!! 정말 우리들은 깨끗이 치운데스!!]


 나이 많은 실장석은 다른 이들의 동의를 구하려는듯 모여있는 실장석들을 쳐다본다.


 [그런데스! 맞는데스우!! 우리들 정말 열심히.. 꼼꼼히 살펴본데스!! 그렇게 큰 게 있었다면 못봤을리가 없는데스!!]

 [마마 말이 맞는테찌! 와타찌도 몇 번이고 찾은 테찌! 도랑 위에서도 보고, 도랑 안에서도 많이 많이 돌아다닌테찌이!!]

 [우리들은 조그만 유리조각도, 찢어진 비닐조각도 모두모두 주워낸테치! 그렇게 크고 눈에 띄는 것을 못 찾았을리가 없는테치!]


 다른 실장석들도 모두 너나할 것 없이 그럴리 없다고 항변한다.
 너무 당황하여 입만 뻐끔뻐끔거리는 녀석들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을 빌미로 오늘 일한 품삯을 받지 못하는, 그야말로 최악의 사태에 이를 수도 있기에 모두가 하나같이 필사적이다.


 [흥! 말은 번지르르하구만!! 어차피 너희들 실장석 따위가 제대로 일을 할 리가 없지. 분명 대충 시간만 떼우고 놀다가 다했다고 우기는거겠지? 일을 제대로 못 끝냈으니 오늘 품삯은 없다!!!]

 [[[[[[[[[[데갸아아아아악?!!!]]]]]]]]]]]


 남자의 그 말에 실장석들 모두가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너무나 놀라 눈이 회색빛으로 물들어버려 눈물조차 쏟지 못한다.
 모두가 할 말을 잊고... 아니 할 말이 너무나 많지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입만 뻐끔거린다.


 [데.... 데.... 데개.... 닌겐사마... 아닌데스.. 아닌데스... 우리들... 정말정말 열심히 일한데스... 조금도 쉬지 않았던데스... 목숨을 걸고 모두가 일해서.... 겨우 다 끝낼 수 있었던데스...]


 그나마 나이 많은 실장석이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남자에게 애원한다.


 [여기.. 여기를 보시는데스!! 오늘 우리들이 주운 쓰레기인데스! 이렇게 많이 주운데스... 제발 봐주시는데스...]


 나이 많은 실장석이 가리키는 곳에는 오늘 실장석들이 주운 쓰레기가 가득 담긴 봉투가 몇 개나 쌓여있었다.
 20리터 용량은 됨직한 봉투마다 음료수캔, 농약병, 쓰다버린 고무호스, 찢겨진 비료포대 등등 온갖 쓰레기가 가득 차있었고, 그 봉투만해도 거의 스무 개가 넘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실장석이 조금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는 가장 큰 증거인 것이다.


 [흥! 믿을 수 없다! 어차피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걸로 대충 채운거겠지!]


 근처에는 쓰레기장도, 그리고 쓰레기장에는 변변찮은 쓰레기도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남자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데에.. 아닌데스우... 믿어주시는데스... 믿어주시는데스 닌겐사마... 데에... 데에에엥... 데에에에에에엥.....]


 나이가 다른 실장석들보다 곱절로 많아 항상 리더 역할을 하던 나이 많은 실장석도 복받치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실장석들도 모두 통곡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그 광경을 질렸다는듯이 흘끗 쳐다보고는 한숨을 쉬며...


 [춥구만... 이럴 때는 한 대...]


 남자는 담배를 빼 한개피 입에 물고 불을 당긴다.
 연기가 곧 입과 코를 통해 뿜어져 나온다.

 그때,



 [데에? 어째서 닌겐사마가 쓰레기를 입에 물고 있는데스우?]


 유일하게 울고 있지 않던 실장석 하나가 남자를 가리키며 묻는다.
 남자는 몰랐지만, 처음 담뱃갑을 제대로 치우지 못했다고 실장석들을 탓할 때부터 주의깊게 남자를 관찰하던 실장석이었다.
 나이 많은 실장석이 말한 것처럼 실장석들은 몇 번이나 도랑을 돌아다니며 미처 줍지 못한 쓰레기를 찾고, 그것도 모자라서 도랑 위를 돌아다니면서도 쓰레기가 있는지 없는지 주의깊게 보았다.
 그런데 저렇게 큰 물건이 있는지 몰랐다니? 실장석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실장석은 다른 동료들이 항의할때도, 사정할때도, 그리고 지금 통곡할때도 주변에 전혀 휩쓸리지 않으며 남자를 관찰했다.
 그리고 실장석은 주워낸 담뱃갑을 슬쩍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분명히 남자가 '쓰레기'라고 말한 그것을 입에 무는 것까지 보았다.


 [뭐, 뭐?]


 남자 역시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다.
 그 이상한 낌새에 통곡하던 실장석들도 눈물을 거두고 남자를 바라본다.


 [데.....스우?]


 주변의 공기가 달라진 것을 남자도 눈치챈다.
 이럴 때 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지금 똥벌레주제에 나를 의심하는거냐아아!!!]


 퍼어어억!!!


 [데기이이이잇!!!!!]


 똑똑한 실장석의 똑똑한 머리통은 남자의 발에 걷어차여 도랑 너머로 멀리멀리 날아가버렸다.


 [일도 제대로 하지 않은 주제에 감히 사람을 의심해?! 안되겠구만! 너희들에게 밥은 없다!! 당장 꺼져버려!!]


 남자는 씩씩거리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른 실장석들은 말도 하지 못한 채 아직 푸들거리는 몸통과 남자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인지 남자에게 달려가며 눈물로 사정한다.


 [데에에에엥!!! 닌겐사마아아아!! 가지 마시는데스!! 가지 마시는데스우우우!!]

 [밥을!! 밥을 주시는데스!! 밥을 주시는데스우!! 오늘 우리 모두 일을 마친데스!! 왜 안주시는데스우우우!!]

 [제발.. .제발 밥을 주시는데스우우우!! 오늘도 굶으면 죽어버리는데스!! 오로로로로롱!!!]


 그러나 실장석들의 느린 걸음으로 뛰다시피 가는 남자를 따라잡을리가 만무하다.
 몇걸음 가보지도 못하고 남자는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이젠 완전히 탈진해버려 눈물만 줄줄 흘린 채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실장석들에게 남겨진 세마리의 자실장이 머뭇머뭇하며 다가온다.


 [테에.... 마.....마....? 밥은.... 어디있는테......치?]


 고개를 돌려 자실장을 쳐다보는 친실장의 눈에 태양이 완전히 산 뒤로 저물어가는 모습이 들어온다.
 어둠이 깔리고,
 차가운 밤바람이 분다.

















공학도와 실장석 일가

 


어느 새벽 늦은 시간에 철웅은 어두컴컴한 자취방에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의 노트북 모니터에는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 창이 하나 떠 있었고 그 가장 상단에는 '공학의 인문학적 이해 -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라는 소제목이 한가운데에 가지런히 정열되어 있었다. 


철웅은 시계를 힐끗 보았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 다섯 시 반. 해당 강의는 오늘 일 교시 아침수업이었고 제출 마감기한이 임박할수록 자꾸만 압박감은 무겁게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겨우 교양 수업 주제에 교수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고 그 덕분에 지금 철웅은 잠도 못 자고 과제에 매진해야만 했다.










'... 네, 그렇습니다. 흔히들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별하는 기준을 도구의 사용여부라고 말하곤 하죠. 인간은 약한 신체능력을 대체하기 위해 적절히 도구를 사용했으며 인류 문명의 발전은 도구의 발전과정으로 치환할 수 있다는 견해는 상당한 타당성을 지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인다 쳐도, 인간 외에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동물에게서 원시적인 도구의 사용을 목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경우로...'


강의의 막바지에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 주었다.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의 생태에 대해 관찰한 후 레포트를 쓸 것'. 학생들의 원망섞인 탄식이 강의실을 채웠음에도 늙은 교수는 껄껄 웃으며 그들의 항의를 묵살할 뿐이었다.


'선배. 선배는 어떻게 할 거에요?'


'글쎄다.. 동물원은 가 봤자 소용없을꺼고. NCG 다큐멘터리라도 다운받아 봐야 하려나. 철웅이 너는 어쩔건데?'


'....'


'야, 너 설마..?'


학과 내에서도 괴짜라고 소문이 자자히 퍼진 철웅이었다. 물론 사람의 취미생활이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존중해야겠지만, 하필 그의 취미라는 것이 저 불결하고 더럽고 추악하기 짝이 없는 실장석의 관찰이었으니 남들의 이야기거리가 될 만은 했다. 선배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진짜 할 거냐? 라는 눈빛으로 철웅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철웅은 이번만은 자기 선택이 옳다고 생각했다. 비록 실장석이 멍청하고 허약하기 짝이 없는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 생물일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현재 인류에 가장 근접한 사고를 가진 생물임은 틀림없다. 인정하든, 인정하기 싫든 말이다. 세상 어느 동물이 언어를, 문법체계가 잡혀 있고 추상적인 개념도 자유자재로 묘사할 수 있는 고도의 언어를 사용하는가. 동물들의 습성을 관찰함으로써 인간의 공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라면, 돌고래나 침팬지같은 원시적인 기술보다는 그나마 인간의 것을 어설프게 모방했을지언정 우리와 닮아 있는 실장석의 도구를 관찰하는 것이 더 학습의도에 맞는 활동이리라.


그래서 철웅은 공원으로 나섰다.


"야. 이 근처에 가장 똑똑한 일가가 어디 사냐?"


"데프프픗. 똥닝겐이 마침 잘 찾아 온데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이 공원에서 가장 세레브한 와타시를 당장 데려가 아마아마한 콘페이토를... 데걋!"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보이는 것마다 골판지 상자 뚜껑을 열고 이리저리 물어 보았지만 대개 돌아오는 것은 보기에도 역겨운 분충성 발언이었고 철웅은 그럴 때마다 더 듣기도 싫어져서는 상자 채로 일가를 뻥 걷어찼다. 어쩜 실장석이란 다 이 모양일까, 하며 짜증이 몰려왔고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그는 인내했다. 두 시간을 꼬박 써서 물어가면서, 때로는 고문에 가깝게 추궁한 결과 몇 마리에게서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대답이 있었다.


그들의 어설픈 묘사 때문에 찾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능이 뛰어난 실장석이라면 집을 외부 침입자가 발견하기 어려운 곳에 잘 숨겨 놓았을테니. 그래도 그는 부지런히 발품을 판 끝에 한 골판지 박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안녕?"


"데, 데뎃..!!! 니, 닝겐인 데스! 자들은 모두 마마 뒤로 숨는데스!!"


철웅이 골판지 상자를 열고 인사했다. 별로 위협적인 제스쳐도 취하지 않았고 나름 행동을 천천히 해 최대한 그들을 놀라지 않게 하고 싶었는데도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약간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성체실장은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면서 철웅에게 말했다. 꽤나 조심스러웠다.


"닝겐상이 여긴 무, 무슨 일인 데스..? 우린 닝겐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조용히.."


"아냐, 그런 거. 해치려고 온 건 아니니까 무서워할 것 없어. 잠깐 얘기나 하고 싶어서 말이지."


철웅은 잠시 일가를 둘러보았다. 자는 다섯 마리. 성체에 가까운 중실장 하나는 팔을 활짝 펼쳐 최대한 동생들을 숨기려 했고, 자실장 둘은 덜덜 떨면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엄지는 구더기를 품에 안은 채 언니들의 가장 뒤에 자리했다. 가족애는 있는 게 분명. 낯선 침입자를 경계하되 함부로 도발하지는 않는다. 도주에 방해가 될 뿐인 빵콘도 없다. 확실히 잘 찾아오긴 한 모양이었다.


읏차, 하며 근처 풀숲에 앉았다. 인간의 집이었다면 주인의 허락을 구한 후에 들어갔겠지만, 애써 찾은 실장일가의 집을 당장 무너뜨릴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실장들의 머릿수에 맞춰 여섯 개의 콘페이토를 집 안에 던졌다.


"일단 미리 선물. 내 이야기를 듣고 부탁 몇 개만 들어주면 이걸 다 주지."


그는 그들의 눈앞에 콘페이토 봉지를 흔들었다. 오늘 담배값마저 포기하고 산 고급 별사탕이었다. 아깝지만 별 수 있나.


"코, 콘페이토인 데스? 감사한데스. .. 자들은 함부로 손 대지 않는데스! 장녀는 어서 전부 모아 비상식 창고에 갖다 두는데스."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저 귀한 콘페이토를 눈앞에 두면서도 인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눈앞에서 먹어치우지 않는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또한 아무리 콘페이토라도 필수품이 아닌 기호품. 그 경제적 가치를 생각하면 함부러 낭비할 수 없을 것이다. 철웅은 잠시 이 성체실장은 실장석 기준으로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성체실장은 철웅에게 꾸벅 허리를 숙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는 데스. 콘페이토를 주셨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성심껏 닝겐상을 돕는 데스."


"아냐.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야. 그냥 내 질문에 몇개만 대답해 주면 돼."


그리고 그는 휴대폰의 녹음버튼을 눌렀다. 자, 뭐부터 물어 볼까.


"너희는 도구를 쓰지? 덩치도 작고 힘도 약한 너희가 맨몸으로 들에서 살아남을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너희가 평소에 쓰는 도구를 나한테 보여줬으면 하는데. 아, 가져갈 건 아니니까 걱정 말고. 잠깐만 보고 돌려줄께. 약속."


"정말인 데스? ... 알겠는데스. 닝겐상께 하나씩 보여드리는 데스."


성체실장은 잠시 불안한 눈으로 철웅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곧 이내 한숨을 푸욱. 어차피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그들의 거절은 묵살될 것이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조금이라도 인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요구를 들어주어 얌전히 물러가게 하는 것이 낫다. 성체는 집 구석구석에 보관해 둔 도구를 하나씩 소개하기 시작했다.


"... 이건 뭐지? 전구 같은 건가."


"그런 데스.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안을 환하게 밝혀 집을 보수하거나 다른 일을 하는데스. 단지 어둡다는 이유만으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데스. 야생의 삶은 혹독한데스. 대비는 아무리 철저히 해도 과하지 않은데스."


"호오.. 좋아. 그런데 어떤 원리로? 전기가 통할 리는 없고, 건전지가 다 닳면 어떻게 새로 구해서 갈아끼우는 거야?"


실장석은 철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조금 태도가 달랐다.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스. 와타시는 닝겐상들이 쓰고 버린 고철덩어리에서 재료를 모아 이걸 직접 만든데스."


이것은 생각 외의 성과였다. 실장석 입장에서는, 아니 웬만한 인간에게도 간단한 전자제품을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철웅은 속으로 내심 감탄했다. 인간이 쓰고 버린데서 배선이나 회로를 긁어 모은건가?


하지만 실장석이 다시 말을 이엇다.


"닝겐상들의 쓰레기를 잘 뒤져 본 데스. 운이 좋은 날에는 이상한 빛이랑 열이 나는 따끈따끈한 철씨를 찾을 수 있었던데스. 가끔은 들고 집에 오는 길에 손 씨가 화상을 입긴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가져 온 재료를 모아서 이렇게 유용하게 쓸 수 있었던데스."


"이상한 빛이랑 열... 잠깐만. 그거 혹시 방사능 말하는 거 같은데? 뭐 우라늄이나 그런.. 하긴, 확실히 가전제품을 잘 찾아보면 극미량의 방사능 물질을 발견할 수도 있었겠지."


"그런 데스. 와타시는 닝겐상들이 쓰고 버린 것들을 잘 모은데스. 쉽지는 않았지만 촉매를 사용해서 원자핵 붕괴반응을 조금씩 유도한데스. 발산되는 에너지는 E=MC^2인 데스. 이 원리로 만든 아크 원자로를 이용해서 인간들이 쓰고 버린 전구에 접합해 빛 씨를 부를 수 있는데스. 아마 와타시의 자의 자의 자의 자의 자의 자가 평생 써도 꺼지지 않을 만큼 오래 갈 것인데스."


"... 뭐 좋아. 괜찮네. 다른 것도 좀 보여줄래?"


"알겠는데스. 닝겐상은 여길 보는데스."


성체실장은 집 한구석에 있는 운치굴을 가리켰다. 철웅은 불쾌감에 인상을 찡그렸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대충 굴이나 파서 만ㄷㄴ 자기 화장실을 무슨.. 하는 와중에 이상한 것을 느꼈다. 저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뭐야. 보통 저 자리는 운치굴이 있을.."


"맞는데스. 운치굴인데스."


"하지만 아무것도 없잖아? 설마.. 배수처리를 잘 해서 안을 깨끗하게 유지하는건가?"


"아닌 데스. 물은 귀한 데스. 함부로 쓸 수 없는데스."


실장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타시는 초끈이론에서 말한 다중우주론에 주목한데스. 와타시가 직접 양자역학에 입각한 방정식의 해를 구해서 운치굴 입구에 차원과 차원의 경계와 연결된 워프 포탈을 설치한데스. 저 안은 끝없이 넓어서 아무리 운치를 싸도 냄새가 나지 않는데스. 위생 관리에 이보다 더 유용할 수는 없는데스. 좌표를 조금만 바꾸면 창고로도 쓸 수 있는데스."


"워프 포탈. 다른 우주와 연결. 좋아. 계속."


실장석은 이번에는 커터칼을 하나 꺼내 보여주었다.


"이건 평범한 커터칼이잖아. 이 정도는 특별할 것도.."


"아닌 데스. 와타시는 날을 단분자 커터로 개조한데스. 정말정말정말정말로 얇은 데스. 이 날은 딱 분자 한 줄로 이루어져 0에 수렴하는 굵기를 지닌 데스. 그러면서도 부러지지 않고 튼튼한데스. 이걸로 베지 못하는 물건은 없는데스."


이것도 제법 신기한 물건이었다. 말로만 듣던 단분자 커터라면 이 세상에서 베지 못할 물건이 없을 것이다. 과연 이 정도 무기가 있다면 실장석보다 훨씬 강대한, 어쩌면 중무장한 학대파의 습격도 잘만 하면......


"닝겐상이 보기에는 보잘것 없을 지도 모르지만 와타시의 역작인데스. 와타시타시들은 이걸로 골판지를 도려내 창문을 낼 수 있었던데스. 줄기가 질겨 떼 내기 힘든 나무열매도 딸 수 있었던데스. 이 자의 옷을 보는데스. 와타시가 이 칼을 써서 옷을 예쁘게 도려내 레이스를 만들어 준 데스!"


.... 철웅은 할 말을 잃었다. 실장석은 약간은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데에.. 사실은 플라즈마 빔 샤벨을 만들려고 했지만 재료를 아직 모으는 중인데스. 완성되면 닝겐상께 보여드릴테니 한번 더 찾아와도 좋은 데스."


".... 휴우. 좋아. 계속 설명해 줘. 다른 것도."


"반응이 왜 그런데스? 닝겐은 실장석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데스. 와타시도 알고 있는데스. 우리는 닝겐상에 비해 너무나도 멍청한 데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서 도구를 만들어도 인간들의 눈에는 한심하고 원시적이기 짝이 없을 것인데스. 어쨌든... 계속해서 이걸 보는데스."


"작은 고무공이잖아? 이건 뭐야?"


"그냥 공이 아닌데스. 와타시가 개발한 신소재인데스. 기본적으로 탄성 계수가 1이고, 자체적으로 주변의 모든 물리적 간섭을 무력화시키는 데스. 예를 들어서... 이렇게 던져서 벽에 한 번 튕기면 운동에너지 손실 없이 던진 속도 그대로 돌아오는데스. 반복해서 튕겨도 마찬가지인데스. 와타시는 닝겐상들보다 멍청해서 열역학 제 2법칙을 극복하는데도 머리를 한참이나 써야 했던데스."


"정말로? 그럼 거의 영구기관이나 다름없는 걸 발견했다는 건데.. 이걸 어떻게 쓰는거지?"


"보여드리는데스. 엄지는 우지챠를 마마에게 데려오는데스!"


엄지실장이 짧은 다리를 뒤뚱거리며 마마에게 구더기를 내밀었다. 구더기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해맑게 '프니프니후-'라는 말을 반복해서 말했다. 성체실장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엄지실장을 눕혔다. "보는 데스." 하고 공을 살짝 구더기의 배 위에 튕겼다.


"프니프니- 프니프니 기분 좋은레후♪"


"... 맙소사.."


공은 구더기의 배 위에서 튕겼다. 그리고 공중에서 정점을 찍고 중력에 이끌려 다시 내려와 구더기의 배에 튕겨올랐다. 보통의 고무공이었다면 점점 운동에너지를 잃고 그 주기가 짧아져야 했겠지만, 성체실장의 역작은 항상 같은 높이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도중에 멈추지 않는다면 평생을 이렇게 프니프니를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엄지도 잘 쓰면 귀한 노동력이 될 수 있는데스. 그런 엄지를 구더기의 프니프니만 시키는 것은 낭비인데스. 차라리 이렇게 자동화된 프니프니 도구를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한 데스."


성체실장이 설명했다. 철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근데.. 음.. 뭐. 다 신기하긴 했는데. 마지막으로. 혹시 무기 같은 건 없나? 다 편리해 보이기는 하는데, 그래도 적으로부터 너희 몸을 지키려면 강한 무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


"왜 그 말이 안 나오나 했는 데스. 끝까지 그 질문은 안 하기를 바랬지만... 물어보시니까 대답해드리는 데스. 아까 보여드린 원자로를 기억하는데스?"


전구의 에너지원으로 쓰이고 있는 그것. 철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게 만든 도구를 지금은 이렇게 집을 밝히는 데에나 쓰고 있는데스.. 하지만 가끔은 강한 적이 나타나는데스. 고양씨나 빠루를 든 학대파는 보검(못)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적인데스. 그럴 때는.. 슬프지만 저 원자로를 파괴적인 방향으로 쓸 방법을 마련해 놓은데스. 우라늄은 충분한데스. 와타시는... 자들을 지키기 위해 악마가 될 각오를 한 데스. 너무 우마우마한 폭발이라 와타시도 일가의 손실을 각오해야 하긴 하지만.."


"너 설마..."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인 E=MC^2. 핵분열 현상을 유도해낼 수단만 있다면 약간의 물질만으로도 막대한 에너지를 만들 수 있었다. 성체실장은 말 없이 긍정했다. 철웅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실장석의 손에 무시무시한 무기가 들려 있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도 단 두 번밖에 쓰이지 않은, 수 십만의 인명피해를 낳은 비극을 불러일으킨.


철웅은 순간 빠루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불쌍하지만 이것들은 너무나 위험한 것을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머리를 날리고 저 원자로를 부수지 않는다면..


"... 단 한번 쓴 적이 있었던데스. 와타시는 적의 눈앞에 전구의 갖다대고 원자로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높였던데스. 전구가 과부하로 터져버리면서 열이 열 개가 넘는 파편이 사방으로 튄 데스. 그렇게 전구 하나를 희생시켜서 고양씨를 사살한데스 ... 미안한 데스. 와타시가 끔찍한 얘기를 한 걸 알고 있는데스. 와타시도 다시는 쓸일이 없기를 바라는데스."


철웅은 그 때 삐빅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옆을 돌아보았고 옆 자리에 두었던 휴대폰 액정에서 갤럭시 로고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런. 밧데리가 나가 버렸네. 어쩔 수 없지.. 이 정도로 자료수집은 끝내도록 할까.







"에라이. 씨발"


철웅은 잠시 한 실장 일가와 함께한 낮의 인터뷰를 회상했다. 화룡점정이라 했던가. 마무리는 항상 중요한 것이다. 그는 여태까지의 기록과 자신의 견해, 그리고 책에서의 인용구를 잘 정리했고, 이제 레포트의 마지막 부분에 짧게 결론을 지을 일만 남아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고민하다가, 짧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 이처럼 실장석이라는 동물은 필요에 따라 도구를 사용하고 심지어 제작하기도 하나, 더럽게 멍청하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주목할 만한 의의는 찾기 힘들다고 간주된다.'









뉴턴의 실장권법



옛날옛날에 한 무술가가 있었다. 그는 한평생 혹독하게 몸을 단련했고 자신의 기술을 연마하는 데에 일생을 바쳐 온 참된 무술가였다. 이미 그는 왕가에서 인정한 챔피언이었고 그에 대적할 수 있는 이는 대륙을 통틀어서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무술가는 오늘도 만족하지 않고 더 강해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아. 질렸다. 이건 버려야겠어."


고서점에서 발견한 무술책이었다. 당연히 기초 교본 정도로 익힐 수 있는 테크닉은 이미 마스터한 지 오래였지만, 혹여나 그가 놓친 것이 있을 수도 있었고 또한 지금의 경지에서 기본을 다시금 공부한다면 다른 깨달음이 있을 수 있을지도 몰라 구입한 서적이었다.

물론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고, 남자는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책을 공원 한복판에 던져버린다.


"데스우?"


그리고 그 책은 때마침 공원을 배회하던 한 실장석의 눈에 들어왔다.

며칠이 지났다.








실장석이 이를 드러내며 포효했다. 






"데챠아아아앗!"


"아, 아니..?"


한 남자가 있었다. 어렸을 적엔 나름 촉망받던 인재였고, 입시를 성공적으로 마쳐 나름 명문대를 졸업하기까지 했지만, 이 나이까지 먹도록 취직도 하지 못해 고향에 있는 부모님의 집에서 몇 년 동안 밥만 축내던 백수였다. 

그는 오늘도 제 한심한 인생을 비관하며 하염없이 공원이나 거닐던 도중, 웬 겁대가리를 상실한 실장석 하나가 자신의 앞길을 막는 장면을 보았다.


"실장권법. 똥닌겐은 이미 죽은데스!"


붕쯔붕쯔. 파파팟. 탁. 

제 모습이 나름 위협적이라 생각하는지 그것은 짧은 팔다리를 이리저리 휘두른다.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수박 겉핥기로나마 격투기를 익힌 듯한 모습이었다.


"덤비는데스. 나한테 지면 집노예가 되는데스."


그것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남자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공부에 매진해 온 탓에 몸은 약했고, 운동이랑도 담을 쌓아왔던 그였지만 그래도 잘 쳐봐야 제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는 실장석에게는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짜증이 났는데, 발로 뻥 걷어차버리고 가던 길을 가려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러려 했다.


"아아. 갈아입고 오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어요?"


"뎃. 도망치는 데스. 그러나 올바른 선택인 데스."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적당히 장단을 맞춰서 놀아주는 척이라도 해볼까. 남자는 왠지 온화한 어조로 실장석을 달랬고, 그것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남자의 뒷모습에 대고 비웃는다.


"어이. 왔다구."


"데젝. 갑자기 뒤에서. 무례한 놈 데스우.

데프프. 갈아입으면 더 강해지는데스?"


그는 집에서 무술복으로 갈아입은 이후에 다시 그 실장석을 찾았다. 그것은 어디서 발견했는지 누군가 먹다 버린 사과조각을 질겅거리며 불량하게 앉아 있었다. 어설프게 도복을 차려입은 남자의 모습을 보고, 그것과 그것의 자는 코웃음을 친다.


구더기 두 마리가 운치의 원을 그려 링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실장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독라의 머리에 돌을 내려쳐서 벨로 갈음한다. 


때앵.


"닌겐. 흠씬 패주는데스."


데오오옷!


궤상망측한 기합을 넣으며 그것이 달려들었다. 풍차처럼 팔을 휘두르는 꼴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제게 달려들어온다고 나름 속도를 내는 꼴이란, 그동안 따뜻한 차 한잔을 끓여서 마시고 와도 될 만큼이나 하품이 나온다.

하지만 남자는 혼신의 연기를 다해 아슬아슬하게 그것의 공격을 피했다. 


"아. 아으윽!"


"똥닝겐. 무술복은 통판인 데스? 폼인 데스? 데프프."


옆차기 세 방이 남자의 복부에 꽂혔다. 물론 타격감이래봤자 토닥토닥 정도. 솜방망이와 비교해도 솜방망이가 화를 낼 정도였지만. 남자는 무릎마저 꿇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가히 골든 라즈베리 남우주연상을 받을 만한 연기력이었다.


"평일 낮에 뭐하는 데스? 그러고보니 똥닝겐 인분충인데스?"

"우가아 !"


나름 피니쉬 무브를 치려는 것인지, 그것은 한쪽 다리를 든 채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남자를 난타했다. 세상 어느 무술에서 나온 동작인지 우스꽝스러울 뿐이었지만, 거의 남자는 핀치에 몰렸다. 그는 힘이 풀려 맨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정신의 끈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닝겐상! 일어나는데스!"


"우웃? 왓?! 독라투성이?"


어디선가 들린 목소리. 그는 고개를 돌렸고, 그 곳에는 간절히 두 손을 모아 둘의 혈투를 보고 있는 독라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남자가 한 대를 맞을때마다 진심으로 탄식을 흘리고 있었고, 두 눈에서 적록의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필사적으로 남자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 일가는 권법을 터득하고 나서 난폭해져서 선량한 우리들은 곤란해진데스."


"공원에 평화를 되찾는데스우!



노력하는데스. 니트라도 좋은 데스!

일어서는데스. 일어서는데스, 닝겐!"


납득이 갈 만했다. 그런 일이 있을 만도 하지. 어설프긴 하지만 그래도 기초적인 무술동작을 배웠다 정도로도 다른 실장석을 상대로 우위을 점할 수 있었겠지.


"결정타, 데샤뵷!"


놈은 이제 결정타를 날리려 하고 있었다. 남자가 이미 그로기상태라 판단했는지, 이제 끝장을 내기 위해 경계도 없이 큰 동작을 막 시전하려던 차였다. 뭐, 슬슬 질리기도 시작한 참이었고 때마침 저렇게 관객들까지 모였으니까.. 남자는 그제서야 몸을 일으킨다.


"나의 마음을 도려내는 분충은 용서하지 않아요!"


무술도 뭣도 아니었지만 신체능력 자체가 비교도 되지 않으니까. 남자는 한참을 달려오던 그것의 머리채를 잡아채버리고는 인정사정없이 그것의 복부를 두드렸다. 불의의 일격임을 차치하고서라도 참피의 나약한 내구도로 견딜 만한 데미지는 아니었다. 놈은 순식간에 분대가 터져버렸고, 적록의 눈물에 입에서는 피까지 토해내며 단 몇 방에 전의를 상실했다. 마마의 승승장구를 지켜보던 자들은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달아났다.


"테치테치!"

"닝겐상.. 아, 아리가또 데스웅!"


연출이긴 하지만 꽤 극적이라고도 할 만했지. 거의 패배 직전까지 몰리던 그가 독라들의 응원에 힘잆어 악의 보스를 처치할 수 있었으니. 지켜보던 독라들 역시 환호하며 남자의 주위에 몰려들었고 남자들은 독라 중 하나를 잡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마치 승자가 챔피언 벨트를 들어올리듯이.




"뎃데로게. 공원수호자의 탄생데스우!"

"아리가또레치!"

"사이코오레치!"


다만. 남자는 그 독라들이라고 특별취급을 해 줄 생각은 없었지만. 어차피 그의 눈에는 똑같은 똥벌레일 뿐이었다. 심지어 옷까지 입고 있지 않음에 더 혐오스럽게 보이기까지 했으니. 남자는 그대로 손에 들고 있던 독라를 내팽개쳤고, 그것은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바닥에 곤죽이 되어버렸다.


"실장에게 격려받은 이 굴욕. 보고 있었던 놈들은 용서하지 않아요!"

"덱, 데갸아악!"

"테차아~!"


순식간에 백 팔십도 태도를 바꾸어버린 남자에게 독라들은 모두 경악했다. 조금이라도 눈치가 빠른 것들은 당장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쳤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은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해 있다가 그대로 남자의 발길질에 터져나갔다. 물론 어느 쪽이든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이 똥벌레새끼들! 안 그래도 기분 좆같았는데, 오늘 잘 걸렸다. 핫-햐!"









다리에 걸리는 대로 걷어차고, 팔을 휘두르다가 잡히는 대로 후려쳤다. 그 뚱뚱한 몸으로 도망쳐 봤자 남자의 부실한 체력으로도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남자는 괴성을 질러가며 주변의 똥벌레들을 척살했다.

그렇게 눈에 보이던 마지막 녀석을 처리한 참이었다.


"하 씨. 그렇잖아도 이력서 또 떨어져서 열 오르던 참이었는데, 무슨 똥벌레놈들이 사람 기분 잡치게 하고 있어. 덕분에 시간낭비나 하고.."


남자는 숨을 헐떡이며 담배불을 붙인다. 연기를 한 모금 깊게 빨고 뱉는다.

안 그래도 취직은 언제 하냐며 집에서 닦달을 듣고 오던 차였는데. 이 꼴로 집에 들어오냐면 옆집 누구 아들은 어느 기업에 갔다고 자랑하는데, 넌 이제 대낮부터 녹돼지들이랑 놀고 오는 거냐며 욕을 얼마나 바가지로 처먹을지. 그는 욕지기를 씹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오늘은 특히 한심한 짓이었기도 했고. 

아씨. 전공이 그런데 어쩌라고.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이렇게 취직 안 될 줄 알았냐고. 이럴 줄 알았으면 적당히 전망있는 공대나 갈 걸, 괜히 자연대나 가서는.. 머리 끝까지 짜증이 뻗쳐올라서는 남자는 쥐고 있던 참피 하나를 저 멀리 던져버린다.


"그래. 씨발. 날아가라. 짜식이, 멀리도 가네."


데갸악 하는 비명이 멀어지면서, 참피는 수려한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날았다. 남자가 집어던진 힘을 실어 저 높이 솟구치다가도, 으레 그렇듯이 땅으로 이끌려 떨어진다.

잠깐만.

떨어진다? 


"아.. 하하. 그래. 그거였어. 그거였다고!"


불현듯 무언가가 그의 뇌리에 스쳤다. 그래, 왜 그걸 여태 당연하게 생각한거지?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아이디어이지만 왠지 모를 확신히 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남자는 황급히 짐을 챙겨 집으로 달려간다. 실장석들을 두드려 패느라 이미 체력은 많이 소진된 상태였지만,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는 것도 잊은 채로 무언가에 홀려 그의 서재로 우당탕 올라갔다. 

참피들의 운치를 잔뜩 묻힌 그 꼴에, 그리고 그 냄새에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그에게 향하는 힐끗거림, 그리고 쑥덕임. 심지어 주방에서 들려 오는 지긋지긋한 엄마의 욕마저 지금만은 귀 너머로 흘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참을 잊고 있던 전공서적을 펼쳤다. 미친 듯이 노트에 무언가를 휘갈겨 적기 시작했다.



얼마 후 아이작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