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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실장석의 별이다 1

 


굴 속 잠자리에 누워있던 중실장은 돌연 일어나 둥지 밖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온 중실장은 말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는 것 만으로 빨려들어갈 같이 검은 밤하늘, 그 위에선 별님들과 달님이 조용히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장녀!"

밤하늘에 눈을 빼앗긴 중실장의 등 뒤로 성체 실장석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중실장의 친실장이었다.

"장녀! 자다말고 나와서 뭘하고 있는 데스? 부엉씨라도 나타나면 어쩌려고 그러는데스까? 냉큼 들어와서 자는데스!"

친실장은 중실장을 꾸짖었다.
산 속에는 밤낮 구분 없이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약하디 약한 산실장에게 한가로이 밤하늘을 즐기며 감상에 젖어있을 여유 따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와타시..."

중실장의 어깨가 떨렸다.

"와타시는 장녀가 아닌테츠!!"

마치 울분을 터트리듯 중실장은 외쳤다.

"차녀인데스!! 상냥한 장녀 오네챠의 이모토챠인 차녀인테츠!!!"

중실장의 말에 친실장의 얼굴이 굳었다.

"...오마에."
"마마는!"

중실장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마마는 이상한테츠!"
"...뭐가 이상한데스까?"
"마마는, 마마는 분하지도 않은테츠까!? 그 장녀 오네타가 그렇게... 그렇게 닝겐에게 그렇게 죽어버린게 분하지도 않은테츠까?"

이틀전

독립을 앞둔 준성체 장녀와 중실장 차녀는 동생 자실장들과 함께 둥지 근처로 나와 햇볕을 쮀고 있었다.
천적의 눈을 피해 하루종일 캄캄한 굴 속에서 지내는 자실장들의 하루 중 유일한 레크레이션
여느때처럼 평화로운 외출이었다.
하지만 늘그렇듯 불행은 예고없이 찾아오는 법

따사로운 햇볕을 만끽하던 산실장 자매는 그만 등산로를 이탈한 등산객과 마주치고 말았다.

다행히

장녀의 민첩한 대처 덕에 차녀 이하 자실장들은 무사히 보금자리 굴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장녀는 돌아오지 못했다.

산실장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흥분한 등산객이 자매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순간
장녀는 용감하게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동생들이 피할 틈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보다 예닐곱배는 큰 등산객의 다리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생각지 못한 기습에 화가난 인간은 장녀를 인정사정없이 짓밟았다.
일격으로 장녀는 숨이 끊어졌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인간은 들고 있던 막대기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장녀를 내려치고 커다란 발로 콱콱 짓밟았다.
그 억척스러운 몽둥이질, 발질질에 장녀의 몸은 흙과 낙엽이 뒤섞인 육편이 되어버렸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자매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똥물을 지리며 둥지를 향해 달리는 것 뿐이었다.

항상 엄격한 마마와 달리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나 자상했던 장녀는 동생들에게 또 다른 어미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장녀에게 벌어진 일이 자기와 동생들 탓이라는 생각이 차녀 중실장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날 이후 중실장은 잠들 수 없었다.

하지만 친실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너무나 태연했다, 그 모습을 중실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장녀챠는 마마가 와타시 타치들 중에서 가장 사랑하던 자가 아니었던테츠?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없었던 일처럼 지낼 수 있는 테츠까?"

중실장은 알고 있었다, 장녀를 바라보는 친실장의 눈빛이 자신과 다른 자매들을 향하는 눈빛과 다르다는 사실을
질투가 나고 분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자상한 장녀가 중실장은 그저 좋았다.


그런데 친실장이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장녀라 부르는 순간
마마가 장녀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실장은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정말..."

급기야

"마마가 맞긴 한테츠까?

격해진 감정에 선을 넘고 말았다.

"차녀! 오마에!!"

차분히 듣고 있던 친실장은 그 한 마디에 언성이 높아졌다.
중실장은 곧 닥쳐올 고통을 예감하며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각오했던 친실장의 손찌검은 날아들지 않았다.
잠시 후 살며시 눈을 뜬 중실장의 눈에 비친것은 상념에 젖은듯한 친실장의 서글픈 얼굴이었다.

그런 중실장을 보며 친실장은 한숨을 푹 쉬었다.

"...와타시는 모든 자들을 똑같이 사랑하는데스, 다시는 그런 슬픈 소리는 하지 마는데스."
"......"
"다만 그 자, 장녀에게 유난히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건 사실인데스.
오마에와 다른 자들의 눈에는 그게 그 장녀를 유독 아끼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르는데스야."
"......"

달빛 아래 두 마리 사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장녀가 닝겐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에 마지막 말을 기억하는데스?"


중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너무도 선명하게 마치 방금전 들은 말처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상냥했던 장녀가 닝겐에게 달려들기 전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고 했던 마지막 말

"차녀챠는 반드시 이모토챠들과 함께 행복해지는테스"

장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상냥했다.

"그런데스."

그 말을 들은 친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녀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행복해져야하는데스, 행복해지기 위해선 슬퍼하고 앉아 있을 틈이 없는데스"
"...마마"
"뭐인데스까?"
"행복이라는게 도대체 뭐인테츠까?"
"......"
"매일 굶주림을 걱정하고 야옹씨, 멍멍씨, 까악씨, 부엉씨... 무서운 것들로 부터 숨어다니고 그러다 닝겐과 마주치면 언제라도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이런 삶에 정말 행복이라는게 있는테츠?"
"차녀..."
"와타시는 와타시는 잘 모르겠는테츠, 와타시는 너무 약한테츠. 약한 와타시 때문에 눈 앞에 장녀챠가 그렇게 죽어버린테츠.
와타시는 장녀 오네탸의 말대로 행복해질 자신이 없는테츠."

중실장의 오드아이에서 적녹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런데스까?"

친실장은 눈물을 흘리는 중실장의 곁에 다가와 부드러운 손길로 중실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마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걸보니 슬슬 어른이 된 모양인데스."
"테츠?"

생각지도 않았던 친실장의 말에 중실장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사실... 사실 마마도 차녀만할때 그런 생각을 했던데스야."

친실장은 슬며시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마마의 마마에게 물어봤던 데스, 행복이란건 뭐냐고 와타시타치 실장석들은 무엇을 위해 사냐고"
"......"
"마마의 마마께서 뭐라고 말해줬는지 듣고 싶은데스까?"
"듣고 싶은데스"
"...모른겠다고 하신데스"
"테에... 그런..."
"정확히는 '몰라도 좋다'라고 말했던데스야"
"...그게 무슨 말인테츠까?"
"지금 이 삶이 힘들고 괴로워도 마마에게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자들이 있는데스.
어쩌면 와타시는 진정한 행복을 영영 찾지 못할지도 모르는데스, 하지만 이이데스요.
와타시는 세상에 오마에 처럼 착하고 예쁜 자들을 남기는데스.
차녀챠도 마마가 되어 또 차녀챠를 닮은 착하고 예쁜자들을 남기고 그 자들이 마마가 되어 또 자를 남길 것인데스.

와타시는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해도 자의 자 또 자의 자들에게는 진정한 행복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인데스

자를 남기는 것은 행복을 찾는 다리를 놓는 일인데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마마는 지금 행복한 데스요."

"...와타시는 잘 모르겠는테츠"

"그럴 것인데스"

친실장은 다시 중실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젠가 오마에도 마마가 되면 알게되는데스"

마마가 된다.
중실장인 차녀에게는 그것이 그저 먼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분하고 괴롭고 무서워도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데스
언젠가 실장석들이 행복을 찾는 그 날이 올때까지 자를 가득가득 낳는데스"

이 말을 끝으로 친실장은 다시 둥지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친실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중실장은 머뭇거리며 뒤 따라 둥지로 향했다.










들실장의 우울

 


천국이었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볕과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빰을 어루만지고
조각구름이 떠있는, 쪽빛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
그 위에선 형형색색 온갖 종류의 꽃들이 손짓하며 반기듯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분홍색 꽃 한송이를 꺽어 코로 가져가 본다.


코를 간지럽히는 달짝지근하면서도 싱싱한 꽃향기


모든 것이 평화로운 이 곳은 틀림없는 천국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완벽한 이 곳에서도


소중한 '주인님'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목청이 터져라 주인님을 부르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내리고 어둠이 밀려왔다.





"데갸아아아아-앗!!!"



골판지 둥지 속에서 잠에 빠져있던 실장석은 째지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적녹색 눈물자국과 흥건한 식은땀, 땀에 녹아난 먼지가 섞인 시커먼 땟국물로 얼굴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가늠이 안되는지 연신 두리번 거리던 실장석은 곧 허탈한 얼굴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재미없는 꿈을 꾼데스야.'



위태롭게 서있는 좁디 좁은 골판지와 젖은 골판지에 슬은 퀘퀘한 냄새의 곰팡이
찢어진 신문지 위 어지럽게 쌓여있는 도토리, 잡열매 몇 알


초라하기 짝이 없는, 틀림없는 현실이었다.


녀석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밖에는 아직 햇님도 다 나오지 않았다, 고단한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석달전까지 녀석은 사육실장이었다.

「미도리」

사육실장들에게 성의없이 붙여주는 흔하다 못해 식상해 빠진 이름

하지만 미도리에게는 처음으로 가져본 자신의 것, 주인님에게 받은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자신의 이름이었다.


미도리가 태어난 곳은 사육실장 공장이었다.

잉태된 순간부터 들리는 목소리


「주인님의 행복이 실장석이 행복이다」


「실장석은 오로지 주인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


성대가 절제된 채 좁은 축사에 결박된 출산실장의 배에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브리더의 메뉴얼대로 짜여진 태교
그것을 친실장의 목소리라 철썩 같이 믿고 그 가르침을 위석에 새긴채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점막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차가운 컨베이어 밸트에 실려 친실장과는 영원한 이별

그리고 이어지는 학대나 다름없는 괴로운 훈육의 나날

체벌, 굶주림, 가르침을 따라가지 못한 친구들의 처참한 죽음

짧은 시간 동안의 짧지 않은 아픔들을 뒤로하고 마침내 사육실장이 되어 마침내 만난 주인님


자신을 받아주고 '미도리'라는 이름을 지어준 주인님을 위해 미도리는 훈육받은 대로 모든 것을 바쳤다.


주인에게 행복을 주기위해 춤과 노래를 했다.
식사는 흘리지 않기 위해 온신경을 써가며 조심스럽게 갉아먹었다.
화장실은 꼭 정해진 장소를 이용하고 스스로 청소했다.
네모상자 속에서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예쁜 옷을 입은 실장석을 보고도 절대 투정부리지 않았다.



미도리에게 다른 것은 필요치 않았다.

오직 주인님의 사랑, 그거면 충분했다.

그것만이 자신의 삶의 이유이라고 녀석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도리는 세상 그 어떤 실장석보다 행복한 실장석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단 일주일만에 끝났다.


일주일째 되는 날 밤


미도리는 공원에 유기되었다.


딱히 미도리가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미도리는 나름 엄격한 훈육을 견뎌낸, 분충과는 거리가 먼 개체였다.
설령 분충이라고 해도 안락한 사육실장 취해 본성을 다 드러내기엔 일주일은 너무 짧은 시간


하지만 그 짧은 시간만에 미도리의 주인은 미도리에게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렸다.




미도리의 주인은 학대파도 애호파도 아닌 실장석에 별 관심이 없던 가볍고 충동적인 남자였다.

그랬던 남자가 갑자기 애완동물, 그 중에서도 주류가 아닌 실장석을 키우기 시작한 동기는 사소한 것이었다.
사람들의 환심, 특히 젊은 여성들의 환심을 사는데 작은동물들을 키우는 것이 유용하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던 차에 실석전문숍이 눈에 띄였을 뿐이었다.


이렇게 사소한 변덕으로 시작한 사육이 오래갈리 만무하다.

남자는 얼마 안가 미도리를 유기하기로 결심했다.

남자는 자신의 무책임함을 자비라고 합리화하며 미도리를 보건소로 보내는 대신 한밤 중 공원에 유기했다.


태어나서부터 인간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미도리는 하루아침에, 그렇게 아무 준비없이 들실장이 되었다.


들에 버려진 원사육실장들의 말로는 뻔하다.

버려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행복회로에 취해있다가 들실장들의 눈에 띄여 놈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거나
팔다리가 뜯긴채 운치굴에 쳐박혀 남은 여생을 구더기 자판기로 전락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미도리는 살아남았다.


버려졌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다른 원사육실장들이 그러하듯 미도리 역시 자신이 버려졌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사고가 일어났다, 주인님은 반드시 자신을 찾아 돌아와주실 것이다'라고 미도리는 굳게 믿고 있었다.


마치 무인도에 표류해 구조선을 기다리는 생존자처럼 미도리는 주인님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유기 당시 자실장에 불과한 미도리였지만 이 공원의 들실장들은 대부분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었다.
맞서 싸우지 않고 도망치는 것은 영양상태가 좋은 사육 자실장의 체력으로 아슬아슬하게 가능한 일이었다.


미도리는 밤낮으로 동족의 눈을 피해다니며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워먹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다,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주인님과 다시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석달의 시간이 지나고

동족의 눈을 피하기에 급급한 자실장이었던 미도리는 당당하게 공원을 활보하는 성체가 되었다.

험한 들생활이 완전히 몸에 익었건만 미도리는 아직도 자신을 사육실장으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도리는

주인님을 위한 춤과 노래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육실장이기 때문에
언제나 몸을 청결히하고 매일 옷과 속옷 빨레를 잊지 않았다, 사육실장이기 때문에
공원의 다른 인간님들에게 구걸하고 아첨하지 않았다, 사육실장이기 때문에
들실장들 처럼 자를 갖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사육실장이기 때문에


언젠가 자신을 찾아와줄 주인님을 기다리며


지금까지 미도리는 자신만의 사육실장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악몽으로 새벽잠을 설친 미도리는 졸린눈을 비비며 아침 밥구하기를 나섰다.




"데스아아앗-!!! 그만! 그만!! 당장 꺼지는 데샤아앗-!!!"



공원이 떠나가라 울려퍼지는 돼지 멱 따는 소리


공원에 나온 미도리의 눈에 보인 것은 이 공원 들실장들에게 린치를 당하고 있는 원사육실장 일가였다.



"테에에엥-!! 무능한 똥마마! 당장 닝겐 노예를 데려오는테츄아앗-!!"
"테찌이이이-!! 더러운 오바상, 와타찌는 맘마가 아닌테찌이이-잇!!!"
"데갸아아앗-! 자들은 얼마든지 먹어도 좋으니 세레브한 와타시에게는 손대지 마는데수웃! 오로롱~!! 오로로롱~!!"



말하는 꼴과 자실장들을 보니 필시 사육실장이면서 주인 몰래 새끼를 낳았다 버려진 분충이리라
녀석들이 입고 있는 사육실장의 상징과도 같은 분홍색 옷은 이미 피와 오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대체 똥노예 닝겐은 어디서 뭘하고있는 데스앗! 고귀한 와타시가 더러운 들노예에게 공격당하는데수읏!! 오로로로롱~!!"



끝까지 올일없는 주인을 부르고 자신의 자들까지 방패막이로 쓰며 저항해보지만 말짱 헛일


안락한 생활에 절어있던 저 분충에겐 미도리 처럼 약게 빠져나갈 재주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같은 원사육실장이라도 도와줄 의리 따위 있을리가 없었다.


'감히 사육실장의 금기인 자를 갖다니 쫓겨나는게 당연하다'라고 미도리는 생각했다.


피맛을 본 들실장들의 인정사정없는 린치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곧 '파킨'하는 맑은 파열음과 함께 공원은 다시 잠잠해졌다.



"좋은 밥을 먹던 놈이라서 그런지 분충치고는 괜찮은 고기맛인데스"
"자충들도 살이 야들야들한 것이 진미였던데스, 세레브한 와타시의 델리케이트한 테이스트에 그만인 데스야"



찢겨나간 사육실장 일가의 고기맛에 대한 들실장들의 품평이 이어졌다.


전리품으로 챙긴 사육실장의 고깃덩이를 들고있던 녀석들 중 하나가 미도리와 눈이 마주쳤다.
행여 미도리가 고깃덩이를 보고 달려들까, 놈은 들고 있던 고기를 허겁지겁 세모입에 억지로 우겨넣더니 득의양양한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미도리를 비웃었다.


그 꼬락서니를 본 미도리는 한숨을 쉬고 걸음을 제촉했다.


애초에 사육실장인 자신이 동족식 따위를 할리가 없건만
버림받은 분충들이나 들에서 구르는 분충들이나 역시 상종할 것들이 아니다라고 미도리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요즘 사육분충놈들이 많이 진상되서 배가 터질것 같은 데스야"



들실장 하나가 불룩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분명 세레브한 와타시를 알아본 닝겐 노예들의 공물이 분명한 데스, 데프프프픗"


다른 녀석이 들분충 다운 헛소리하며 동조했다.


하지만 미도리 역시 요 며칠간 버려지는 사육실장들이 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원을 지나는 인간님들의 눈에는 자신도 버려진 분충들과 같아 보이는 것일까?


미도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자신은 저런 분충들과 다르다,  자신은 이렇게 기특하게 살아남아서 주인님을 기다리고 있다.



"...와타시는 저런 분충들과는 다른 데스."



마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미도리는 중얼거렸다.




잠시 후



아침 밥구하기를 마치고 둥지로 돌아가는 미도리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꿈자리가 사나운 날이었지만 일진은 나쁘지는 않았다.
밥가방으로 쓰는 비닐봉지 안에는 속이 꽉 찬 도토리들과 각종 잡목 열매, 우화중인 곤충들의 번데기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던 미도리,하지만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미도리는 밥가방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주인님'

미도리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눈에는 금방이라도 울것처럼 눈물이 그렁거렸다.


꿈에 그리던, 단 한시도 잊은적이 없는 주인님을 발견한 것이다.


밥가방은 이미 미도리의 머릿속에 없었다, 미도리는 전력으로 주인님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뎃?"


주인에게 달려가 안기려던 미도리는 걸음을 멈췄다.


남자의 손에 잡혀있는 목줄,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것을 본 순간 미도리는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목줄이 매여있는 그것은 미도리가 본 적 없는 미지의 생물체였다.


적녹 오드아이
녹색 신발과 녹색 원피스
머리를 감싸고 있는 녹색 두건, 그 사이로 나와있는 세갈레 머리다발
하늘하늘한 흰색 턱받이와 그 위에 매듭지어진 앙증맞은 빨간 리본까지


실장석


대략적인 차림새는 같지만 생김새는 전혀 딴판이었다.

짜리몽땅한 실장석과는 다르게 쭉쭉 뻗어있는 길쭉길쭉한 팔다리
가누기 힘들 정도로 큰 실장석의 머리에 반도 안되는 작은머리
실장석의 아마색 머리카락보다 더 밝고 풍성한 브론즈 빛 머리카락
오똑하게 서있는 콧날과 완만한 각을 이루는 닫혀있는 입, 분명한 이목구비까지


미도리는 위석에서부터 위화감이 느껴졌다.


자신과 같은 실장석이 아니었다, 아니 실장석일지도 모르지만 자신과 절대로 다른 녀석이다


그리고 곧 미도리의 위석 속에서 생소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분노, 위석 깊숙한 곳에서부터 저 처음보는 것을 향한 적개심이 솟구쳤다.


미도리는 확신했다.


저것이 주인님을 가로챘다.


미도리는 확신했다.

지금까지 주인님과 헤어져 들에서 거친 밥을 씹고 차디찬 바람을 오들오들 떨어야 했던 원흉


주인님을 가로챈 저 길쭉길쭉한 녀석을 미도리는 용서할 수 없었다.


"죽여버리는데샤아아-앗!!!"


이성을 잃은 미도리는 괴성을 지르며 길쭉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헛, 시발! 이새낀 또 뭐야!"


남자는 자신의 실장석에게 달려드는 들실장을 급하게 발로 차날렸다.

남자는 자신이 버린 미도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남자의 눈에 실장석들은 다 똑같이 못생긴 녀석들일 뿐이었다.
남자에게 차여 날아간 미도리는 피를 흘리며 공원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놈의 공원은 구제도 안하나? 공무원들은 세금받아 쳐먹으면서 뭐하고 있는거야?"



정작 자신이 석달전에 이 공원에 실장석을 유기한 전과가 있었지만 이미 남자의 머릿속에 그 일은 남아있지 않았다.

쓰러져있는 미도리를 잠시 노려보던 남자는 신발 밑창을 바닥에 몇번 문지르곤 반대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굳이 저 똥벌레를 터트릴 생각은 없었다, 잘못 밟았다 옷이나 신발에 피와 똥이라도 튀면 큰일이니까

그보다는 큰맘먹고 구해온 '이 녀석'을 이용해 괜찮은 여자에게 말한마디 붙이는데 온정신이 팔려있었다.


남자의 목줄에 매어있는 녀석은 실장석의 최신 개량품종인 '아메리칸 짓소'
한국에서는 속칭 '양짓소', '미국참피'라 불리고 있었다.

기존 실장석과는 달리 날렵한 몸매에 뚜렷한 이목구비
특유의 역한 실장취 대신 라벤더 향이 나는 실장석이라고 하기엔 거의 다른 동물이 되어버린 획기적인 개량종이었다.

'미국의 아이들이 테디베어, 바비인형 대신 짓소를 품에 안고 잠드는 날까지!' 라는 정신나간 프랜차이즈를 내건 아메리칸 짓소

하지만 세상일이란 묘한 것이라 가끔 이런 정신나간 아이디어가 통하기도 한다.

아메리칸 짓소는 소셜네트워크를 주도하는 몇몇 셀럽들이 호응을 받아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남자 역시 SNS를 통해서 유행을 접하게 되었고 곧장 샵에서 아메리칸 짓소를 분양받았다, 물론 충동적인 선택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한편


남자에게 차여 날아간 미도리는 사경을 헤메고 있었다.
약하디 약한 실장석의 몸, 성인 남성의 발길질은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한 방에 갈빗대가 부러지고 부러진 뼛조각들이 폐와 분대에 박혀 살이 도려내지는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 미도리에서 육체의 고통은 뒷전이었다.

주인님에게 버림받았다.

그 사실이 만신창이가 된 몸의 아픔보다 더 아프게 느껴졌다.

미도리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멀어져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데에에에에... 데에에에에에에-엥... 데이이이이..."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필사적으로 쥐어짜서 주인을 불렀다.

주인님, 왜 저를 두고 가시나요. 왜 제가 아니라 그 녀석인가요.

그 소리를 들은 것일까?

남자의 뒤를 따르던 양짓소는 살짝 고개를 돌려 미도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데프프프픗"
양짓소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웃음소리
가늘어진 눈에는 미도리를 향한 경멸과 오만함이 담겨있었다.

외모는 다를 지언정 그것은 분명 우월감에 젖은 실장석의 그것이었다.

미도리의 위석이 위태롭게 삐걱거렸다.



초주검이 된 몸으로 간신히 둥지로 돌아온 미도리는 둥지 근처 화단에서 분홍색 코스모스를한 송이를 꺾어왔다.
골판지 안에 힘없이 주저앉은 미도리는 꺽어온 코스모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금 이 코스모스를 쓴다면 틀림없이 임신할 것이다.

임신과 출산은 사육실장에게 금기 중의 금기

주인의 허락없이 자를 갖는 분충은 사육실장의 자격이 없다.

허락

주인



"...데프프프픗!"


미도리의 뒤틀린 세모입에서 조소가 세어 나왔다.
허락이라니? 더 이상 누구에게 허락을 구한다는 말인가?


주인이라니? 누가 나의 주인님이란 말인가?

미도리는 속옷을 벗고 코스모스를 총구로 가져갔다.

곧 미도리의 골판지에서는 얕은 물소리와 함께 발정한 실장석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쾌감에 젖은 교성인 듯하면서도 비탄에 찬 절규인것도 같은 기묘한 울음소리였다.


다음날 미도리의 양눈은 녹색으로 물들었다.


들실장 미도리는 그 날 친실장이 되었다.


며칠 뒤


변기 속 태어난 자들을 내려다보는 미도리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태어난 열마리 중 건강한 자실장은 고작 세마리, 나머지 일곱마리 중 엄지가 세마리 저실장이 네마리였다.

아마도 그 날의 일로 위석이 약해진 탓이리라

변기 안에서 마마를 부르는 일곱 엄지와 구더기들을 변기에 내버려둔재 미도리는 자실장들과 자리를 떠났다.



아직 몸에 점막의 물기가 다 마르지 않은 자실장들 안고 미도리가 향한 곳은 공원 앞 편의점이었다.

미도리의 선택의 탁아였다.

갖태어난 자들은 끊임없이 미도리에게 젖을 보챘지만 미도리에게 자들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 자들을 탁아해 기필코 사육실장으로 만들겠다.

그리고 다시 사육실장이 되어 주인님을 가지고 사랑 받겠다.

미도리의 머릿 속은 이런 생각들로 꽉차있었다.

때마침 한 남자가 편의점에서 나왔다, 손에는 봉투가 들려있었다.

미도리는 제빨리 남자의 뒤에 따라 붙었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인 봉투에 자실장 세마리를 넣으려 했다.

미도리가 자를 봉투에 넣으려는 순간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본 남자와 미도리의 눈이 마주쳤다.

"...뭐냐, 넌?"

"데..."

미도리의 오른손이 입가로 향했다.

"데츄우우우-웅~☆"



fin
















겨울나기

 


찬 바람이 매섭게 부는 12월의 밤



캄캄한 밤하늘에선 어느새 하얀 눈송이가 나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겨울의 첫눈입니다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거리는 눈송이가 밤하늘을 수놓은 모습은 제법 낭만적인 풍경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거친 들판에서 차가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에겐 그런 낭만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소복소복 싸여가는 눈은 야생동물들에게 고난의 계절이 시작됨을 알리는 경종과도 같은 것입니다.



도시의 골칫덩어리 들실장들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같은 시각 가까운 어느 공원



"데에에에..."



잠결에 화장실로 향하던 들실장,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걸음이 멈추어 섭니다.

들실장은 자신의 납작한 콧잔등 위에 떨어진 하얀 것을 벙어리 손으로 훔쳐 슬쩍 맛을 봅니다.



도시의 콤콤한 먼지냄새가 섞인 차가운 물기가 혀끝에 맴돕니다.



"결국 올 것이 온 데스야..."



그제서야 들실장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밤하늘에서는 굵은 함박눈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며칠전 이 들실장이 물그릇으로 쓰는 통조림 캔 속 물 위로 살얼음이 얼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본 들실장은 제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만 막상 눈이 쏟아지는 것을 보자 가슴 한 구석이 덜컥 내려앉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뎃데로게 뎃데로게~ 세레브한 와타시타치를 위해 가을씨는 오래오래오래 가는데스우~

겨울씨는 다메다메, 멀리멀리 가버리는데스우~



이 순간에도 들실장의 위석 속 행복회로는 달콤한 헛소리와 함께 생생한 가을 들판의 환각을 보여주고 있는 모양입니다.



휘이이이잉~



데극, 데에에엣츄웃!



하지만 곧 휘몰아치는 눈발 섞인 찬바람이 들실장의 망상을 날려버립니다.

들실장은 크게 재채기를 하며 몸을 크게 부르르 떱니다.



행복회로 속 망상과는 달리 겨울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모든 들실장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그 시련의 계절이 말입니다.



이 들실장은 지금까지 3번이나 겨울을 넘긴, 들실장 치고는 매우 노련한 축에 속하는 개체입니다.



말라붙은 논바닥처럼 갈라진 눈가의 주름, 군데군데 보이는 희끗희끗한 새치와 닳고 닳아 맨들맨들해진 암녹색 실장복이 녀석의 짧지만 짧지 않은 이력을 보여줍니다.



야생에서 들실장의 목숨은 파리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천적과 동족의 습격, 인간들의 구제 그리고 다른 불운한 죽음의 위기까지

숱한 위기 끝에 겨울을 넘기고 살아남아 다음 해 봄을 맞이하는 개체는 극소수입니다.



이 녀석은 그야말로 실장석 답지 않게 '행운'이 따라다니는 개체라 할만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운이 이번 겨울 역시 무사히 넘기리라 보장해주진 않습니다



빈약한 신체 능력과 아둔한 지능, 부족한 주의력으로 먹이사슬 피라미드 최하층 밑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이 들실장들입니다.

겨울을 넘기기 위해서는 빈약한 능력들을 짜내고 또 짜내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해야만 합니다.



그렇게까지 해도 월동의 성공률은 극히 희박한 것입니다.



이 노(老)실장의 작은 머릿속 생각은 거기까지 미치고 있는 것일까요?

잠시 동안 눈발이 날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노실장은 이내 어기적어기적 제 둥지속으로 기어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한가롭게 있을 때가 아닌데스, 겨울씨가... 온데스우."



들실장의 월동이 지금 막 시작되었습니다.



노실장의 둥지는 비닐과 낙엽에 덮여 감춰진 골판지 상자 아래로 완만하게 굴을 파 내려간 구조입니다.

굴 바닥에는 보온을 위해 깔아둔 낙엽과 신문지, 각종 비닐 조각 등이 수북하게 쌓여있습니다.



실장석에게는 개구리, 뱀 등 일부 변온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동면능력이 없습니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가사상태에 빠지는 경우는 흔히 있습니다만 들에서 그렇게 되었다간 바로 천적들이나 동족의 먹잇감이 되기에 십상입니다.

운 좋게 천적들의 눈을 피한다고 할지라도 외부의 구호 조치가 없다면 그대로 완전히 탈진해 위석이 자괴되어 죽게 됩니다.

대부분의 들실장들은 한겨울의 추위를 이기지 못한 채 영원히 싸늘하게 식어버립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체온을 지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먹고 또 먹어가며 정신을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겨울을 넘길 줄 아는 현명하고 노련한 개체들을 경험을 통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들실장의 월동 방법은 간단합니다.



추워지기 전까지 땅딸막한 몸을 최대한 살찌운 뒤 겨울이 시작되면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는 둥지 속에 틀어박혀 비축해둔 먹이를 갉아 먹으며 봄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 전부입니다.



좁은 둥지 속에 몸을 욱여넣은 채로 먹이를 깨작깨작 갉아먹으며 버티는 그 모습은 '월동'이라기 보다는 동장군에 맞서는 '농성'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지만 이 정도의 계획을 짜는 것도 들실장들의 머리로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들실장들이 당장 눈앞에 먹을 것이 풍족한 가을에 도취하여 식욕이 동하는 데로 먹이를 먹어치우는데 급급한 나머지 먹이를 비축하는 것을 게을리하기 일쑤 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대책 없이 많은 수의 새끼까지 낳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들실장들은 최후는 하나같이 일가실각으로 끝납니다, 개중에는 최후의 발악으로 인간들에게 뒤늦은 탁아를 시도하다 발각되어 대규모 구제조치를 자초하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데스우, 뎃스우..."



느릿느릿 한참을 기어 제 둥지 가장 깊숙한 곳에 도착한 노실장은 수북하게 쌓여있는 낙엽 더미를 이리저리 걷어내기 시작합니다.



곧 낙엽 더미 속에 감춰져였던, 노실장이 가을 내내 비축한 먹이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싹 마른 잡목 열매들과 도토리, 솔방울, 곤충 사체와 우화되다 만 번데기, 들쥐의 사체 따위가 가득 담긴 비닐봉지 몇 개가 눈에 띄는군요.



"레... 레에.... 레...."



"치이이...."



그리고 나뭇가지에 배가 활짝 열린 채로 꿰어져 첩첩이 쌓여있는 벌거숭이 저실장, 엄지실장, 자실장들이 보입니다.



이렇게 내장을 발라내 건조한 동족의 고기는 들실장들의 주된 월동 보존식입니다.



보존식은 주로 납치하거나 직접 출산해 조달하기 쉬운 다 자라지 않은 실장석들로 만들어집니다.

위석만 남겨두면 장기보존이 쉽고 먹었을 때 소화 효율도 높아 들실장들이 으뜸으로 여기는 보존식입니다.



몇 마리는 저런 몰골이 되고도 아직 의식이 붙어있는 모양입니다.



노실장의 얼굴을 보자 눈물샘에 남아있던 피눈물을 짜내며 나지막이 소리 내 울고 있군요.



"레에... 레에에에..."



"테에에..."



"치에에..."



보존식들의 음산한 울음소리가 굴 전체에 울려퍼집니다.



그중 몇 마리는 아직 기운이 남아있는지 제 몸을 꿰고 있는 나뭇가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꿈틀거립니다



"치에에... ㅁ... 마... 마아..."



그 중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자실장 한마리가 눈에 띕니다, 거의 말라버린 목청을 쥐어짜 내며 노실장을 부르는군요.



이 녀석은 바로 노실장이 직접 낳아 둥지를 보수하는데 부려먹다 보존식으로 만들어버린 추자들 중 한 마리입니다.



노실장은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추자를 잠시 지긋이 바라보더니





"......"





곧 녀석의 몸을 꿰뚫고 있던 나뭇가지를 뽑아냅니다.



"마, 마마~ 마아~ 마~"



오랜만에 어미의 손길이 닿자 감격한 추자는 더욱 목청을 쥐어짜네 애달픈 목소리로 어미를 부릅니다.

마침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지 눈은 초승달 눈이 되었고 말라비틀어져 가는 얼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갑니다.



하지만



"데스우우우..."



녀석과 마찬가지로 초승달 눈이 된 노실장의 입에서는 기대와는 전혀 반대되는 말이 나옵니다.



"겨울이니 든든하게 먹어둬야 하는데스우, 그러니 오늘 특식은 오마에인데스우. 데프프프픗!"



"치..치에에에엣-!"



노실장의 말에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추자의 처절한 절규와 함께 눈에 남아있던 피눈물이 왈칵 뿜어져나옵니다.

하지만 노실장은 전혀 아랑곳 않고 버둥거리는 추자를 그자리에서 머리통부터 질겅질겅 씹기 시작합니다.



"챱챱챱! 아직 싱싱해서 그런지 육즙이 쥬시한데스웅~ 역시 와타시가 직접 낳은 가을 분충인데스! 지고의 일미인데스우! 챱챱챱챱!"



"찌이...찌이이이..."



파킨-!



노실장의 입질에 머리를 통째로 먹혀버린 추자는 짧게 경련하더니 결국 위석이 깨져버리고 맙니다.

노실장은 추자의 고기가 어지간히 입에 맞는지 얼굴에 홍조까지 띠며 자신이 배아파 낳은 고깃덩어리를 꼭꼭 씹어 삼킵니다.



잠시 후



"끄어어어억-! 빵빵데스우!"



앉은 자리에서 추자 한 마리를 남김없이 먹어치운 노실장이 부른 배를 두드리며 거하게 트림을 터트립니다.



꾸르르르륵~



"데뎃?"



그러기가 무섭게 노실장의 뱃속 분대가 바로 소화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자신이 직접 낳은 추자의 고기라 소화가 더 빠른 모양입니다.



노실장은 구르릉거리는 배를 어루만지며 슬금슬금 자리를 옮깁니다.



그리곤 둥지 한구석에 비닐봉지 한 장을 넓게 펼치곤 그 앞에서 속옷을 벗어 던집니다.



"데, 데스으으으우웅~♡"



뿌오오옹~



브리리리리릿-!!



자세를 잡기 무섭게 노실장의 총구가 벌어지고 실장석 특유의 비음 섞인 교성과 함께 비닐봉지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운치가 촤르륵 쏟아져내립니다.



실장석의 배설은 중요한 생리작용임과 동시에 총구의 성감대를 만족시켜주는 탁월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겨울에는 그 중요성이 한층 더 배가 됩니다.



"데스우우..."



노실장은 방금 전 자신이 쏟아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운치더미를 잠시 바라봅니다.

그리곤 행여 누가 볼세라 두리번거리며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 굴 속을 이러저리 살피더니



"데챱데챱데챱데챱!"



곧 벙어리손으로 자신이 방금 전 싼 운치를 세모입에 열심히 퍼넣기 시작합니다.



"데챱데챱데챱! 데헥,데흑!! 떫은 데스우! 쓴 데스우! 구린데샤아아앗-!! 왜! 왜 세레브한 와타시가 이런꼴을... 오로롱~ 오로롱~ 데챱데챱데챱!"



운치를 먹는다는 사실이 어지간히 서러운 모양인지 노실장은 적녹색 눈물까지 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손은 부지런히 운치를 입에 퍼 넣고 있습니다.



식분 행위, 청결과 담을 쌓고 사는 들실장들 조차 극도로 꺼리는 행위입니다.

실장석의 본능상 식분을 한다는 것은 곧 노예로의 추락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겨울 생존에 이런 알량한 자존심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거북하기 짝이 없지만, 식분은 월동에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죠.



소화 효율이 낮은 내장 구조를 가진 실장석의 배설물에는 상당량의 영양소가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수분 함량도 매우 높습니다.

식분을 통해 영양소를 최대한 섭취하고 잃었던 수분을 보충하는 것은 긴 겨울을 버티는데 매우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물론 노실장의 식분이 이런 구체적인 사고를 통해 얻은 결과물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저 위석 속 본능과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던 중 우연히 얻은 경험이 어우러진 결과물일 것입니다.



이렇게 먹고 싸고 싼 것을 다시 먹고

다시 먹고 싸고 싼 것을 다시 먹는...



둥지 속에 틀어박혀 봄이 올 때까지 이 거북한 행위를 우직하게 반복하는 것, 그것이 이 노실장이 3번의 겨울을 넘길 수 있게 만들어 준 생존 전략입니다.



이런 암울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은 오직 생존과 번식을 향한 열망 그리고 위석 속 행복회로가 보여주는 환상들 뿐입니다.



행복회로 속, 노실장은 따뜻한 햇볕 아래 콘페이토가 산처럼 쌓인 넓은 들판에서 자신을 닮은 자들과 함께 세상을 녹색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망상이 절정에 달했는지 노실장은 입을 헤 벌린 채 눈은 완전한 초승달 모양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와들와들 떨고 있는 운치 범벅이 된 손으로 귀뚜라미 시체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고 있습니다.



이루지 못할 행복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저 좁디 좁은 굴속에서 자신의 똥을 퍼먹고 있는 그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이 모습이야말로 가장 실장석 다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삼 개월여의 시간이 더 흘렀습니다.



부쩍 따뜻해진 햇볕에 쌓여있던 눈이 녹아내리고 봄의 기운이 완연해진 3월의 이른 아침



"데에에에..."



겨우내 인기 척이 없던 골판지 상자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엉금엉금 기어나옵니다.



월동을 위해 둥지 속에 틀어박혀 있던 노실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행운의 여신은 올해도 노실장을 버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기껏해야 2M 깊이도 채 되지 않는 굴속에서 시베리아 동장군이 몰고 오는 엄동설한의 추위를 견디고 살아남은 것입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핼쑥해진 볼과 움푹 들어간 두 눈덩이, 동상으로 여기저기 터진 살과 입가에 덕지덕지 말라붙어있는 운치 찌꺼기

부쩍 초췌해진 몰골은 노실장의 이번 월동이 얼마나 혹독했었는지를 짐작게 해줍니다



추위는 물러갔지만 노실장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져 탈진 직전입니다.

지금 당장 영양 보충이 절실합니다.



이 시기 공원에는 먹을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실장은 경험을 통해 어디로 가야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노실장은 둥지에서 대못을 챙깁니다 그리곤 무언가를 찾아 연신 두리번거리며 인기척 없는 공원을 터벅터벅 가로질러 갑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실장이 도착한 곳은 공원 화단의 잔디밭입니다.



"킁킁킁킁.. 데슨?데슨! 킁킁킁킁!"



잔디밭에 도착한 노실장

들창코를 잔디밭에 푹 박은 채 쉴새없이 킁킁 거리며 무언가의 냄새를 좇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잠시 뒤



"데뎃! 겟츄! 겟츄데스우!!"



한참 동안 코를 박고 있던 노실장이 반색하며 다급하게 대못으로 무언가를 땅에서 캐냅니다.

노실장 땅에서 캐낸 것은 바로 겨울 동안 흙 속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던 냉이 나물의 뿌리였습니다.

냉이를 캐낸 노실장의 적녹 두 눈엔 마치 보물선을 찾아낸 선원처럼 물기가 어립니다.


노실장은 냉이에 붙은 흙을 툭툭 털어내고는 냉이를 통째로 입에 넣고 으적으적 씹기 시작합니다.


곧 젖은 흙내음과 함께 쌉싸름하고 향긋한 냉이의 향이 노실장의 입안에서 맴돌기 시작합니다.

"우마우마한데스우! 우마우마한데스우!!"

지난 석달간 보존식와 운치로 밑도 끝도없이 내려가있는 노실장의 입맛에 생생한 냉이의 맛과 향은 실로 감미로운, 봄의 맛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힘겹게 겨울을 넘기고 살아남은 자만이 맛볼수 있는, 노실장이 찾은 작은 행복의 맛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FIN













들실장의 월동

 


낙엽이 바람에 사락거리는 늦가을

공원 수풀 속에 감춰진 어느 들실장의 골판지 둥지

그 안에는 자실장 여덟 마리가 수북히 쌓여있는 누렇게 시든 잡초더미 둘레에 모여 앉아 있었다.

으구적으구적으구적

""테에... 테에에에...""

자실장들은 잡초를 세모입에 우겨넣어 씹고 또 씹었다, 얼굴에는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이 녀석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먹어본 것이라곤 출산 직후 친실장이 잠깐 물려준 모유 몇 모금 외엔

잡초, 잡초, 잡초...

오로지 이 잡초 뿐

차가운 가을바람에 누렇게 시든 잡초는 맛은 고사하고 아무리 열심히 씹어도 삼키기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그렇게 간신히 우겨넣은 잡초가 순식간에 운치가 돼 분대를 가득 채우면 골판지 밖 화장실 구멍에 운치를 쏟아내고 다시 돌아와 잡초를 먹는다.

이것이 이 자실장들의 일과였다.

"테이... 테챠아아앗!!"

말없이 잡초를 씹던 한 녀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여덟 마리 중 둘째였다.

"매일! 매일!! 매일!!! 이딴 운치같은 풀만 먹은 테챠-!!!"

차녀는 씹던 잡초를 바닥에 내던졌다.

"이딴건 하나도 아마아마하지 않은 테치!!
마마가 뱃속에서 들려준 노래와는 다른테치!!
인간 노예가 진상한다는 스테이크, 스시, 콘페이토는 어디간 테츄까?!
세상의 보배인 귀여운 와티시가 이딴 풀만 먹는건 이상한 테치, 언어도단인 테치! 직무유기인 테챠앗!"

참고 있던 화가 폭발했는지 차녀는 붉어진 얼굴을 씰룩거리며 고래고래 악을 썼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그런 차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딱 한 마리, 차녀의 발광을 못마땅해하는 눈으로 쏘아보던 한 마리가 입을 열었다.

"닥치는 테치!"

평소에 차녀와 사이가 나쁜 육녀였다.

"시끄러운테치! 불만이 있으면 나가는테치!
마마의 말을 귓등으로 들은 테츄까? 착한 자는 봄에 인간노예를 메로메로 시켜 사육실장이 되는테치!
다메 분충은 절대 사육실장이 될 수 없는테치!
오마에는 빼도박도 못할 분충이니 사육실장이 되긴 틀린 테치, 평-생 여기서 운치같은 풀이나 먹으며 운치나 싸는테치! 치프프픗-!"

"빤쮸에 운치나 묻히고 다니는 육녀 주제에 건방진 테치, 와타시의 핵주먹 맛이 보고 싶은 테츄까?"

"핵주먹이고 지랄이고 오마에야 말로 허구언날 빤쮸에 운치를 지리는 못난이 분충 주제에 큰소리 치지 마는 테치!"

""치프프픗!""

육녀의 말에 듣고 있던 다른 녀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닥치는테츄앗-!"

정곡을 찔렸는지 얼굴이 벌게진 차녀가 이를 들어내며 위협했다, 하지만 육녀는 오히려 그 반응을 즐기는 듯했다.

"치뿌뿌뿌픗! 싫다면 어쩌는 테츄? 또 빤쮸에 운치라도 지릴 셈인..."

"테챠아아아앗-!"

육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차녀가 육녀에게 달려들었다.

이에 질새라 육녀도 이를 들어내며 주먹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뒤엉킨 두 마리, 서로를 물어뜯고 토닥토닥 주먹을 날리며 골판지 바닥을 뒹굴었다.

잠시 후

"테븕-! 테히이이이-..."

파킨-!

처량한 단말마에 이어지는 맑은 파열음.
피투성이로 싸늘하게 식어비린 자실장은 백탁색으로 흐려진 눈을 허공을 향한채 혓바닥을 축 늘어뜨렸다.

"테헥... 테헥... 테헥...."

간발의 차이로 승자는 차녀였다.
불과 몇 분 세상빛을 일찍 본 것이 승패를 갈랐다.

"또, 또-옹 분충 주제에... 까불지 말란 테치... 테헥... 테헥..."

식어버린 육녀에게 언니의 위용을 과시하듯, 차녀는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애써 허새를 부렸다.

꾸르르르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녀의 분대가 요란하게 울었다
격렬한 싸움끝에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른 몸이 에너지를 원한다는 신호였다.

'...분충에게 벌을 줬더니 배가 고파진 테치'

그 순간 차녀의 시선이 마치 무엇인가에 이끌린 것처럼 식어버린 육녀를 향했다.

어느새 차녀의 입가에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잡초 이외에는 입에 대지 못한 차녀였다.
그런 녀석이 체력을 극한으로 소모한 상태에서 피냄새까지 맡자 위석 깊은 곳에 잠들어있던, 동족식을 즐기는 실장석의 본성이 깨어난 것이다.

제 손에 맞아 죽은, 불과 몇 분전까지 자매였던 육녀가 차녀의 눈에는 자신을 위해 차려진 진수성찬으로 보였다.

"치프프프픗"

차녀의 눈이 한층 더 가늘어졌다.
되도 않는 우월감에 젖어있는 그 웃음은 영락없는 들분충의 그것이었다.

"똥육녀에게 고귀한 와타시의 피와 살이 되어 살아가는 영광을 허락하는 테치, 감사히 여기는 테치"

이제는 들을리 없는 육녀에게 마치 큰 선심을 쓰 듯 말한 차녀는 육녀의 팔뚝을 집어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오마에?"

그 순간 등 뒤에서 차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식사를 방해받았다고 생각한 차녀는 돌아보며 이를 들어냈다.

"테챠아앗-! 시끄러운 테챠-! 고귀한 와티시는 지금 바쁘니 조용..."

쇳소리를 내며 위협을 가하던 차녀는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자 말문이 막혀버렸다.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친실장이었다.

"오마에, 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데스까?"

"테에에에에에엥-!!!"

친실장은 얼음장 처럼 차가운 눈으로 차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놀란 차녀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으며 빵콘하고 말았다.

"...오마에는 이모토챠를 잡아먹는 분충이었던데스?"

그 말을 들은 차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차녀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친실장을 보며 차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테..."

이대로는 틀림없이 슬픈일을 당한다.

"...테츄우우우웅~☆"

막다른 골목에 몰린 차녀의 선택은... 아첨이었다.

피투성이, 멍투성이 얼굴로 활짝 미소를
자연스럽게 입가로 가져간 오른손에 고개는 살짝 갸우뚱, 거기에 잔뜩 코를 먹은 콧소리까지

언젠가 부릴 닝겐 노예를 메로메로 시키기 위해 남몰래 갈고 닦아온 비장의 아첨
마마도 틀림없이 화를 풀고 완전히 메로메로 될 것이라 차녀는 의심하지 않았다.

'이거라면 문제없는테치, 마마가 이렇게 귀여운 와티시에게 슬픈 일을 할리가 없는테치!'

차녀의 아첨에 다가오던 친실장의 걸음이 멈췄다
아첨이 통한다고 확신한 차녀는 한층 더 기교를 부리며 아첨을 이어갔다.

"테츄우웅~☆ 테츄우우우우~웅~★ 테츄... 테게븟-!?"

그 순간 차녀의 얼굴에 친실장의 주먹이 꽂혔다.

압도적인 체급차이에서 나오는 묵직한 한 방
차녀는 피와 잇조각을 뿌리며 골판지 반대편까지 날아가 벽에 쳐박혀버렸다.

"...허튼짓을 하는 분충인데스."

"테히...테에에에에에에엥-!!"

"분충은 벌을 주는데스."

친실장은 굵은 다리로 쓰러져있는 차녀의 머리를 짓밟았다.
차녀의 팬티가 빵콘한 운치로 부풀어 올랐다.

"테에에에엥-!! 마마!! 전부, 전부 저 분충 잘못인테치!! 세상에서 귀여운 와티시는 아무 잘못 없는테치!!
독라는 다메인테치!! 와티시의 은하수 같은 머리카락이 없는 이 세상은 이야인테치, 온세상에 손해인 테치!!
와타시는 마마의 가장 귀여운 차녀인테치! 귀엽고 똑똑한 와타시가 마마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테치! 테에에에에엥-!!!"


"...오마에의 더러운 옷..."

친실장은 차녀를 밟고 있는 다리에 천천히 체중을 실었다.

"구린내 나는 머리카락 따위는 필요없는 데스."

뿌직뿌직

"테츄아아아아아악~!!"

자실장의 연약한 두개골이 빠게지는 불쾌한 소리가 났다.

"이딴건 이딴건 이상한 테치! 이 와타시, 와타시가 죽을리가 없는 테치!!
망할 똥마마! 당장 이 족발을 치우는테치! 와타시의 핵주먹이... 테고오오오록... 테이이이..."


퍼석

파킨-!

썩은 감 터지는 소리와 함께 최후의 순간까지 행복회로를 돌리던 차녀의 작은 머리가 그 자리에서 터져버렸다.

""치프프프픗!""

골판지 한켠에서 차녀의 최후를 지켜보던 다른 녀석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소리 죽여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친실장은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 하나같이 답이 없는 분충들인데스.'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이 골판지 속 자실장들은 모두 친실장이 이번 가을에 낳은 추자들이다.
정성 들여 키운 소중한 춘자들은 가을이 되기 전 장성해 집을 떠났고 이 공원 반대편 먼 곳에 자리를 잡았다.

추자들은 월동 준비를 위해 키우는 가축, 친실장은 단 한순가도 녀석들을 자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훈육은 전혀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저 위계질서를 잡기위한 가혹한 체벌만 존재할 뿐
자연히 추자들은 자매간의 우애고 뭐고 없는 되먹지않은 분충이 됐다, 그렇게 키워진 녀석들인 것이다.

친실장은 사이좋게 시체가 된 차녀와 육녀를 밥구하기용 봉지에 담았다.

좀 더 운치를 만들어야 했을 녀석들인데 뜻밖의 일로 계획이 어긋나고 말았다.

친은 남아있는 여섯 추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마에들도 나쁜 자가 되면 이렇게 슬픈일을 당하는데스, 곧 겨울이 되는데스요.
어서 이 풀로 운치를 잔뜩잔뜩 만다는데스, 운치굴을 운치로 가득가득 채우는데스"

"테에에에엥~ 마마!"
"풀로 운치 만들기는 이제 다메인테치"
"스시 스테이크 콘페이토는 어디있는 테츄?"
"마마가 뱃속에서 해준 노래와는 다른 테치, 테에에엥~"
"제발 귀여운 와타시에게 좀더 맛나맛나한 밥을 주는 테치, 부탁하는 테츄~웅~♡"
"테에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엥-!!"


한 마리를 시작으로 마치 봇물 터지듯 추자들은 울고불며 골판지가 떠나가라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친실장은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겨울에 독라가 되서 쫓겨나고 싶은 분충은 계속 투정 부려보는 데스."

"테에에엥~!! 테끕테끕"

친실장의 한 마디에 투정을 부리던 여섯 마리는 다물 수 밖에 없었다.
행복회로가 일상인 분충들이었지만 친실장의 싸늘한 눈에서 그 말이 단순한 으름장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잠시동안 벌벌 떨고있는 추자들을 노려보던 친실장은 추자들을 손짓으로 곁에 불렀다.
추자들이 쭈뼛거리며 어렵사리 다가오자 친실장은 한 마리씩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마마가 말했던데스요, 착한자들은 마마와 겨울을 나고 봄에 닝겐노예를 메로메로 시켜 세레브한 사육실장이 되는데스."

오랜만에 듣는 마마의 상냥한 목소리, 오랫동안 바래왔던 다정한 손길.

그리고...

사육실장

듣는 것만으로도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이 얼마나 세레브한 말인가?
지금까지의 고난에 대한 실로 합당한 보상이 아닌가?

언제 겁에 질렸었냐는 듯 추자들이 눈이 빛났다.

"테츙~☆ 와타시는 마마의 말을 잘듣는 착한 자인테충~☆"
"차녀는 분충이니까 마마에게 솎아진 테치, 당연한 일인 테치!"

"와타시는 다른테치! 착한 자이니 봄에 닝겐 노예를 메로메로 시킬게 분명한테츄!"
"와타시는 닝겐 노예를 둘, 아니 셋 아니 넷 아니 넷... 아무튼 닝겐 노예들에게 우마우마한 것을 잔뜩 진상킬 것인 테츄"
"와타시를 닮은 자들로 세상을 가득가득 채우는 테츙, 치프프프픗"


""치프프프픗""

"....꼭 그렇게 하는데스, 그러니 어서 이 풀들을 전부 운치로 만드는데스요. 곧 겨울인데스"

""하이 테츄!""

말을 마친 친실장은 돌아서 나와 골판지 입구를 닫았다.

'역시 분충들이라 속이기도 쉬운 데스, 데프프픗.."

추자들의 헛소리를 듣는 동안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느라 고역이었던 친실장은 그 자리에서 소리없이 웃었다.

매년 이런 식이었다.

사육실장

분충치고 이 말에 넘어가지 않는 녀석들은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슬슬 때가 된 데스.'

화장실 구멍에 나뭇가지를 찔러넣어 운치의 양을 가늠한 친실장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운치굴에 충분한 양의 운치가 모였다.

월동 준비를 마칠 시간이 온 것이다.



"이제 그만하는 데스."

그만이라는 친실장의 말에 잡초를 씹고 있던 추자들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텟?""

"오마에들 지금까지 고생이 많았던데스, 운치굴에 운치가 가득가득인 데스."
"테... 마마, 그럼 이제 잡초는 그만인테츄?"
"그만인데스"


""테치테치테치테치!""

지옥같은 잡초 먹기가 끝났다는 말에 추자들은 환호했다.
추자들 중 한 마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와 친실장의 다리에 얼굴을 부볐다.

"마마, 대견한 장녀인 와타시를 칭찬해주는 테치~☆ 와타시가 아니었다면 똥이모토챠들은 진작에 도망가버렸을 테츄요"
"...오마에가 장녀였던 데스까?"
"텟? 마마,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테츄? 와타시가 장녀인데 당연한 테치"
"아닌데스, 신경쓸것 없는 데스"

친실장은 장녀를 두 손으로 높이 안아들었다.

"그동안 이모토챠들과 고생이 많았던데스, 오마에는 착한자인데스"
"테츄우웅~ 마마~♡"


"그러니..."

친실장은 장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러니 이제 다시 마마에게 돌아오는데스"
"...테츙?"

콰직

장녀는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방금전까지 마마에게 안겨 있었는데 어느새 눈앞에는 분충 이모토챠들이 창백해진 얼굴로 천장에 거꾸로 메달려 있었다.

왜일까?

곧 장녀는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친실장은 억센 손으로 장녀의 머리를 밀어 그대로 뒤로 젖혀버렸다.
젖혀져서는 안될 정도로 젖혀진 뒷통수가  등뒤에 박혀버릴 정도였다.

인간이라면 단숨에 즉사했겠지만 질기디 질긴 생명의 실장석.
그대로 죽지도 못한 채 고통에 찬 얼굴로 피눈물을 질질 흘리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장녀에게 벌어진 참극을 본 다른 녀석들은 그 자리에서 빵콘하고 말았다.

"테갸아아아아앗-!"
"드디어 똥마마가 미쳐버린테치!"
"똥마마, 거짓말인테치? 사육실장이 된다고 하지 않은 테치까"
"도망가는테치!! 세상의 보배인, 고귀한 와타시가 이딴 식으로 죽을 순 없는테챠!!"
"테에에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엥!"
"테...테.... 테츙~ 마마는 귀여운 와타시는 살려주는게 분명한 테츄, 안그런 테츄? 테츙~"


도망가려는 자, 저주를 퍼붓는 자, 끝까지 살아보겠다고 아첨하는 자

골판지 안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골판지 문은 친실장이 들어오면서 빗장을 단단히 걸어버린지 오래

자실장, 그것도 골판지 속에 처박혀 잡초만 먹어온 녀석들의 빈약한 체력과 작은 두뇌로는 그 빗장을 열 길이 없었다.

단 한마리도 친실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친실장은 한 마리 한 마리 씩, 그 자리에서 모가지를 꺽어버렸다.
마마라고 불렀던 녀석들임에도 친실장의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들에서 잡은 먹이들을 손질하는 것과 다를 것 없이 익숙하고 군더더기 없는 솜씨였다.

한편

가장 먼져 목이 꺽여 널브러진 장녀는 의식이 흐려져가는 와중에 한 가지를 떠올렸다.

친실장이 한번도 자신과 다른 녀석들을 한 번도순서에 맞게 불러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이름이 없는 실장석들에겐 장녀, 차녀, 삼녀하는 순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단 한번도 마마에게는 그리 불린 적이 없는 것이다.
만약 영리한 녀석들이었다면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마마는 한번도 자신들의 마마였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 녀석들에겐 무리던 것이다

"테츄아아아앗-!!"

뿌직

눈물 콧물을 쏟으며 최후까지 아첨하던 마지막 추자의 목을 꺽어버린 친실장은 본격적인 손질을 시작했다.
친실장이 자랑하는 보검(깨진 유리병 조각)으로 배를 가르고 썩기 쉬운 내장들은 훑어내 그 자리에서 먹어치웠다.
속이 비어버린 추자들의 속을 활짝 열 나뭇가지에 꿰고 덕장에 동태를 널 듯 골판지 안 건조대에 차곡 차곡 메달았다.
추자들의 내장을 뺄때 소중한 돌은 남겨추자들의 입에 물렸다, 덕분에 추자들은 이 꼴이 되고도 숨이 붙어 있었다.
산송장으로 아슬아슬하게 숨만 붙은 상태로 건조시킨 보존식은 부패할 위험은 적고 말리기 편하면서 육질도 한결 났다는 사실을 이 친실장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안되는 짧은 실장생을, 운치까지 착취당하다 내장이 털린채 나뭇가지의 꿰인 추자들

원망에 찬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차가운 바람에 맛있게 말라갈 것이다.

보존식 작업을 마친 친실장은 화장실 구멍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쌓여있는 운치 더미 위에는 태어나자 마자 운치굴에 던져진 엄지와 구더기들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마마-!"

오랜만에 얼굴을 보인 친실장을 알아본 엄지들이 레치레치 소란을 피윘다.

"마마, 이제 운치굴은 싫은 레치!"
"구더기챠들이 이만큼 커질때까지 잘돌본레치!"
"옷을 돌려주는 레치 꺼내주는레치! 꺼내주는레치!!"
"엄지는 착한자인 레치! 레에에에엥~"
"이제 운치는 싫은레, 마마의 밀크! 마마의 밀크가 마시고 싶은 레치!"


"구더기 곧 고치가 나올 것 같은레후~ 대견한 구더기에게 상으로 프니프니를 요구하는레훙~"
"이제 구더기 어른인레후~ 똥엄지챠의 빈약한 프니프니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된레후~"



운치굴 생활이 고역이었는지 필사적으로 어미에게 호소하며 매달리는 엄지들과 가득 쌓여있는 운치를 잔뜩먹어 살이 빵빵해진 구더기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친실장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데프프픗,이쯤하면 된 데스. 와깟따요! 오마에들 모두 꺼내주는데스. 와타시의 자비에 감사해하는데스"

"레에에엥~ 마마 너무 좋은레치"
"역시 마마는 귀여운 와타시를 버리지 않은 레치"


"구더기 이제 나가는레후? 나가면 고치를 만드는레후, 손발이 쑥쑥인 레후~ 국보급 와타시의 세상 데뷔인 레후~ 뎃데레~"
"레훙~ 이제 똥엄지챠의 빈약한 프니프니는 졸업인레후? 신나는레후~ 마마의 익사이팅한 어른의 프니프니를 받는레후"



잠시 후

""레치이이이잇-!""
""레삐이이이잇-!""


골판지에서 엄지, 구더기들의 작은 단말마가 울렸다.

운치굴에서 꺼내진 녀석들은 모두 제 언니들과 함께 건조대에 걸리는 신세가 되었다.

마침내 운치만 남은 운치굴을 친실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실장석의 배설물, 운치
친실장이 추자들에게 잡초를 모아다주는 수고를 하며 운치를 싸게 한건 이유가 있었다.
구더기, 엄지 노예들을 먹이는데 쓰이는게 고작인 운치도 겨울을 준비하는 들실장들에겐 소중한 자원, 잘만 모은다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다.


농가에서 발효 퇴비를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운치굴을 하우스 아래 위치하도록, 무너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파낸 뒤 그 속에 충분한 양의 운치를 모은다.
우마우마한 밥(음식물 쓰레기, 곤충의 사체등)과 낙엽, 나무껍질 등을 아낌없이 운치굴에 넣고 나뭇가지로 휘져어 골고루 잘섞어 준다.
시간이 자나면 음식물 쓰레기와 낙엽등에 붙어있던 박테리아가 운치를 분해한다.
운치가 부패하는 과정에서 이산화산소, 질소, 매탄가스등과 함께 부패열이 발생하는데 그 열이 최대 60도에 육박했다.
운치가 완전 분해되는 최대 약 한달간 체온 유지에 소모할 체력을 대폭 아낄 수 있다.
보온재와 골판지 외 이렇다 할 난방기구 없이 겨울을 버이는 들실장에게 더할나위 없이 요긴하다.

충분한 양의 운치와 식량이 모이면 추자들을 보존식으로 만들고 동면에 들어간다.

어떻게 터득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이 공원 지혜로운 들실장에게 대대로 내려진 겨울을 넘기는 방법이었다.

추자 손질을 모두 끝낸 친실장은 또 다른 굴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추자들이 손대지 못하도록 숨겨놓은 밥가방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데스.'

마침내 홀몸이 된 前 친실장은 골판지 하우스문을 대못을 빗장삼아 걸어잠궜다.

홀로 따뜻한 둥지에 대자로 누워 녀석은 생각했다.

봄이 오면 어떤 봄꽃으로 춘자들을 가질까, 민들레? 개나리?

"데프프프픗"

녀석은 내년 봄에 태어날 자신처럼 똑똑하고 귀여운 자들과 함깨 할 날을 꿈꾸며 잠들었다.

어느 늦가을, 바람이 차가운 날이었다.



fin









막내 우지챠

 


공원 구석 수풀 속에 감춰진 어느 들실장 일가의 골판지 둥지

"""마마~! 오늘은 와타시타치와 놀아주시는테츄!"""

이 둥지의 일가, 자실장 세 자매는 오늘도 친실장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한목소리로 응석을 부리고 있었다.

"마마앙~ 와타시, 옛날이야기가 좋은 테츄~"
"아닌테치! 둥실 둥실~ 높이 높이~ 놀이를 해주시는 테치"
"테에에엥~ 와타치가 먼저 마마와 높이 높이~ 하는 테치잇!"

각자 기대감에 들떠 멋대로 떠들어대는 자실장들

하지만

"...안되는 데스!"

친실장은 단호한 표정으로 자신의 치맛자락을 붙잡은 자실장들의 손을 밀어냈다.

"마마는 밥구하기를 나가야 하는데스! 오마에타치, 오늘 저녁에 굶어도 좋은 데스까?" 

하며 친실장은 하우스 구석에 놓여있는 때 묻은 탁구공을 손으로 가르켰다.

"얌전히 하우스 안에서 저 공으로 놀고 있는 데스! 마마는 바쁜 데스야"

하지만 자실장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테에엥~! 마마! 공씨로 노는 것은 이제 지겨운 테치! 다메인 테츄!"
"하우스 안은 너무 좁은 테치! 어두운 테치, 답답한 테치!"
"와타시타치도 마마와 함께 넓고 넓은 바깥 구경이 하고 싶은 테츄! 마마는 귀여운 와타시타치의 부탁을 들어주시는 테츄웅~☆"

"""테츄우우웅~☆"""

미리 준비라도 한 듯 동시에 오른손으로 입가를 짚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첨을 하는 세 마리
'이거라면 제 아무리 엄격한 마마도 귀여운 자신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라고 녀석들은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녀석들에게 돌아온 것은 

콩!콩!콩!

"테엥!?"
"치에엣!?"
"테츙!?"

골통을 흔드는 칠실장의 따끔한 꿀밤 세례였다.

"안된다면 안되는 것인 데스!!"

"""테에에에에엥~?"""

"벌써 마마의 가르침을 잊은 데스까? 바깥에는 위험한 것들 투성이인데스! 마마의 허락없이 나가면 모두 '슬픈일'을 당하는데스. 허락없이 나가서 '슬픈일'을 당하는 분충은 마마의 자가 아닌데스!"

"""츄우우우..."""

친실장의 단호한 모습에 자들은 더 이상 보채지 못하고 그저 얼얼한 머리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거릴 뿐이었다.

"명심하는 데스! 절대 마마가 올때까지 하우스 밖으로 나가선 안되는 데스!"

다시 한번 자들에게 신신당부한 친실장은 하우스를 나선 뒤 문을 빗장으로 단단히 걸어 잠갔다.

"...데스우우우~"

그리고 돌아선 친실장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앞에선 자들을 위해 엄하게 굴었지만 저리 풀죽은 자들 모습을 보는 친실장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친실장 자신 역시 철없던 자실장 시절 밥구하기를 나선 마마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얼마나 지루했던가?
그 때의 지긋지긋한 지루함과 둥지를 뛰쳐나가고 싶었던 충동을 친실장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마마 허락 없이 하우스 밖으로 뛰쳐나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다른 오네챠들의 마지막 모습까지 친실장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친실장의 자, 세 마리는 이제 태어난 지 불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어린 녀석들이었다.
이렇게 어린 녀석들이 친실장의 비호없이 외출을 하는 것은 곧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제 막 세상 빛을 본 한창 호기심이 왕성할 시기
좁고 어두운 골판지 하우스 안 갇힌 채 하루종일 친실장의 귀가만 기다리는 일은 어린 녀석들에게 어지간히 고되고 힘든 일일 것이다.

자들이 친실장에게 매달려 저렇게 놀아달라 보채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한 번쯤 밥구하기를 쉬고 제대로 된 바깥 구경을 시켜줄 필요가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시기는 호기심 못지않게 식욕 역시 왕성한 시기, 이 시기의 영양 상태가 앞으로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자들을 배불리 먹여야했다.

그러기 위해선 친실장이 하루종일 밥구하기를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착잡한 마음을 가슴 한 곁에 묻어두고 친실장은 먹이터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신발 밑창이 닳도록 돌아다닌 끝에 밥가방에 자들을 위한 음식물쓰레기와 풀벌레, 잡목 열매 등을 어느 정도 모을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아슬아슬하지만 오늘 저녁도 자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무거워진 밥가방을 짊어지고 친실장은 터벅터벅 둥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슬슬 코끝에 둥지와 자들 그리운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레훼에에에엥~ 레에에에엥~"

어디선가 저실장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친실장이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니 웬 성체 실장석 한 마리가 한 손에 구더기의 꼬리부터 거꾸로 잡은 채 지나가고 있었다.

꼬리를 잡혀 대롱대롱 매달린 구더기는 고통스러운 듯 울며 피눈물을 펑펑 쏟았다.

"레훼헤헹~ 오바상~ 우지쨔 꼬리가 아픈 레후~ 좀 더 부드럽게 안아주는 레후! 레훼엥~ 배씨가 꼬르륵꼬르륵 아픈 레후! 어서 프니프니를 해주는레후! 레훼에에엥~"
"시끄러운데스! 프니프니 따위는 오마에의 마마에게 시키는 데슷! 고기 주제에 누구 마음대로 프니프니인 데스까!"
"레훼에에엥~ 레에엥~ 마마! 마아아앙~! 레에에엥!"

보아하니 다른 녀석의 둥지에서 구더기 납치해오는 중인 모양이었다.

'우지챠 데스....'

오랜만에 구더기을 친실장의 머릿속에 옛추억이 새록새록 스쳐 지나갔다.

둥지 속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친실장의 마마가 건내준 구더기 한 마리

약하디 약한, 자신의 힘으로는 스스로 운치 조차 누지 못하는 가엽고 하찮은 구더기

보통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운치굴 가축 취급만 받는 구더기였지만.... 외로웠던 그 시절 친실장에겐 구더기를 보살피는 것은 무료함 견디는데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랬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 친실장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곧 구더기를 잡고있는 성체 실장석에게 다가갔다.

"어이...."

"데샤아아아앗!!"

친실장이 무어라 말을 붙이려 하기가 무섭게 성체 실장석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와타시! ...와타시의 고기인 데스! 고기를 빼앗는 분충은 쳐죽이는데샤아앗-!"

들실장 치고도 어지간히 성질이 고약한 분충인지, 말을 붙이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언성을 높여댔다.

"...진정하는데스, 와타시는 그저 묻고 싶은게 있어서 그런 데스"

"데슷...데슷-! 뭐인 데스?! 할말이 있으면 빨리 하고 저리 꺼지는 데스!"

"그 구더기.... 어쩔 셈인데스까?"

"데에에에~엥? 그게 무슨 마라같은 소리인 데스? 오마에는 바보천치인 데스까??
당연히 운치굴에 던져버리는 데스, 그리고 살이 통통하게 오를때까지 운치를 잔뜩 먹이는 데스!
통통하게 살찐 구더기만큼 우마우마 한 것이 또 어디 있는 데스까? 데프프프프픗-!"

분충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나지막하게 웃었다, 어느새 입가엔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역시 그런 데스까, 이이데스."

고개를 끄덕인 친실장은 매고 있던 밥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오마에, 와타시와 거래를 하는데스. 이 도토리 여섯 알을 줄 테니 구더기는 와타시가 데려가는 데스."

"데샤아아아앗-! 마라 같은 소리 하지 마는 데스! 그깟 도토리 따위와 고기를 바꾸는 병신이 어디있는 데스?
운치만 열심히 먹이면 고기를 잔~뜩 먹을 수 있는데 도토리 따위라니! 이까짓건 오마에나 많이 처먹는 데샷-!"

분충은 친실장이 도토리를 들고 있던 손을 찰싹 때렸다.
친실장이 손에 들려 있던 도토리가 데구르르르 땅에 떨어졌다

"똥멍청이는 쳐 죽이기 전에 저리 꺼지는 데샤아아앗~!"

순간 친실장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서 이를 드러내고 맞붙어 싸움을 시작할 기세였다.

"...데스"

하지만 잠시 눈을 부라리던 친실장은 곧 말없이 떨어진 도토리를 줍기 시작했다

"데스우... 오마에의 말대로인 데스, 와타시가 셈이 어두웠던 데스. 사과하는 데스."

하며 친실장은 다시 옷소매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데헤에엣? 킁킁킁킁... 데헤에에에엣!?"

친실장이 꺼낸 것을 본 분충 깜짝 놀라며 연신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친실장이 꺼낸 것은

분홍색에

오돌토돌한 돌기가 잔뜩 나 있고

은은한 단내를 풍기는

작은 알갱이

그것은 다름 아닌 모든 실장석들이 꿈꾸는 양식 '콘페이토'였다.

콘페이토를 보자 분충의 입에서 침이 주르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전에 닝겐들이 옆 공원에 뿌린 것을 주워온데스, 이거라면 괜찮은 데스까?"

"데헥-! 데헥-! 얼른얼른... 얼른 그 분홍분홍한 것... 그것을 와타시에게 주는 데스! 콘페이토를 내놓은 데샤아아앗~!!"
"그럼 구더기는 와타시가 데려가도 좋은 데스까?"
"그딴건 아무래도 좋은 데슷! 콘페이토오~! 콘페이토오~ 데샷~!!!"

분충은 친실장의 품에 구더기를 거의 떠밀다시피 하고는 친실장의 손에서 콘페이토를 훽 채갔다
정작 친실장은 콘페이토에 별 미련이 없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품 속 구더기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데훼헤헤헤헤힛~! 웬 호구같은 똥멍청이 분충을 만난데스웅~ 뎃데로게~♪ 뎃데로게엣~♬"

이런 비웃음 소리를 남기고 분충은 잰걸음으로 멀리 사라져갔다.
분충이 지나간 자리에는 뚝뚝 흘러내린 침 자국들이 길게 늘어져있었다.

"데스..."

친실장은 말없이 멀어져가는 분충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친실장의 말엔 한점의 거짓도 없었다.

틀림없이 그 콘페이토는 닝겐들이 옆 공원에 뿌리고 간 것이었다.

단지 그 콘페이토를 뿌리던 닝겐들이 하나같이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옆 공원에서 실장석들의 울음소리가 확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분충에게는 굳이 이야기 해주고 싶지는 않았던 친실장이었다.

"레에에에에엥..."

낯선 성체들에 둘러싸이자 겁을 먹고 꼬리로 얼굴을 감싼 채 벌벌 떨고 있던 구더기는 주변이 조용해지자 슬금슬금 똬리를 풀고 친실장을 올려다보았다.

"레에에... 오바상은 누구인 레후? 오바상은 우지챠 프니프니 해주는 레후웅? 배씨가... 배씨가 꼬르륵꼬르륵 아픈 레후..."

안색이 창백하진 구더기는 절박한지 초면인 친실장에게 배를 보이며 프니프니를 졸라댔다.

"이이 데스요"

고개를 끄덕인 친실장은 벙어리 손으로 구더기의 배를 살살 위 아래로 쓰다듬어 주었다.

"레훗! 레후후훗~!!"

브릿! 브리리릿~!

꽤 오랫동안 쌓여있었는지 친실장이 프니프니를 해주기가 무섭게 구더기의 총구에서 찐득한 물똥이 잔뜩 뿜어져 나왔다.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프니프니를 받자 창백해졌던 구더기의 얼굴엔 금방 혈색이 돌아왔다
속을 비워내고 개운해진 구더기는 친실장을 향해 방긋방긋 웃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구더기를 보며 친실장은 말했다.

"오늘부터 와타시가 오마에의 '마마'인 데스"
"레후? 오바상이 우지챠 마마인 레후?"

구더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에... 오바상은 우지챠의 마마가 아닌 레후, 하지만 마마인 레후? 아파아파하던 우지챠에게 프니프니를 해준 레후! ...마마인레후! 우지차 어려운 건 하나도 모르겠지만 마마 오바상인 레후! 아무튼 기쁜 레후! 그러니 좀 더 프니프니를 해주는 레후~!"
"하우스에 오마에의 오네챠들이 있는 데스, 오네챠들이 프니프니를 잔뜩 해주는 데스요."
"레후 오네챠 레후?"

친실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구더기와 말을 주고 받는 동안 친실장은 둥지에 도착했다.

끼이익-

"다녀온 데스"

"""다녀오신 테츄"""

"오늘은... 선물이 있는데스!"

친실장은 품에 안고 있던 구더기를 자들 앞에 내밀었다.

"오늘부터 오마에타치의 새 이모토챠인데스"

"레에에엥..."

갑작스래 낯선 자실장들을 만나자 겁을 먹었는지 구더기는 꼬리로 얼굴을 가리며 똬리를 틀었다.

"""테챠아아아아~!"""

"레히이이~잇!?"

구더기를 본 세 자매는 너 나 할 것 없이 달라붙어 구더기의 뺨에 얼굴을 부비기 시작했다.

"테챠~ 새 이모토챠인 테츄웅~♪"
"작은 테츄! 귀여운 테츄!"
"꼭 아가같은 테츄!"

"레에에~ 레프프프픗! 우지챠 간지러운 레후~"

세 자매의 호의적인 반응에 겁먹었던 우지챠인 그제야 안심했는지 그제서야 방긋방긋 웃기 시작했다.

그런 자들을 향해 친실장이 말했다.

"오늘부터 우지챠는 오마에들의 막내 이모토챠인데스, 마마가 없는 동안 우지챠를 잘 돌봐줘야 하는 데스요."

"""하이테츄~!"""

"레후우우웅~♬"

이렇게 세 자매와 막내 우지챠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지챠의 등장으로 지루하기만 하던 세 자매의 생활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자기보다 작고 연약한 막냇동생을 돌보기 위해 자실장들은 종일 바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가 약한 우지챠를 위해 꼭꼭 씹은 먹이를 손수 입에 넣어주고

"우지챠 이렇게 맛나맛나한 것은 처음 먹어보는 레후우웅~"

배 불리 먹은 우지챠의 소화를 돕기 위해 프니프니를 해주고

"레뺘아아앗~!! 극상의 프니프니인 레후우웃! 오네챠 프니프니 박사인 레후? 우지챠, 오네챠의 프니프니로 둥실둥실 해진 레후~♬"

실컷 프니프니를 받은 우지챠가 흘린 물똥을 닦아 주고

"레에에에... 우지챠 운치 잔뜩 지린 레후웅~"

우지챠와 함께 공놀이를 하고

"우지챠 공씨가 좋은 레후! 이렇게 즐거운 일은 처음인 레후~!"

그러다 지치면 함께 낮잠을 자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레에에에... 코츄~ 코츄~ 코츄~~"

생애 처음 맛보는 가족의 온기와 사랑

생채 처음 그 행복을 맛본 우지챠의 얼굴에선 언제나 방긋방긋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귀여운 막내 이모토챠, 우지챠의 등장으로 친실장이 없는 동안에도 둥지에서는 자실장 세 자매의 웃음소리와 환희에 찬 구더기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자들이 친실장에게 놀아달라 응석을 부리는 일도 사라졌다.

덕분에 친실장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먹이를 구해 자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

그렇게 꿈만 같은 몇 주가 지나갔다.

언제나 처럼 밥구하기를 마치고 돌아온 친실장
그런 친실장을 맞이하는 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있었다.
가장 앞서 울고 있는 장녀의 품에는 우지챠가 안겨있었다.

"테흡, 테끕.. 마마, 마마아~! 우지... 우지쨩이 움직이지 않은테치! 테에에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엥~~ 우지쨔아아앙~~! 테에에에에엥~~""

골판지 둥지안은 순식간에 적록색 눈물바다가 되었다.

친실장은 장녀에게서 구더기의 건네받았다.

구더기의 몸은 딱딱하고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구더기는 죽어있었다.

평소 낮잠을 자던 모습 그대로, 편하게 똬리를 틀고 살짝 혓바닥을 내민 아주 평온한 얼굴로 말이다.
아마도 평소와 같이 낮잠을 자던 중에 그대로 숨이 끊어진 모양이다.

눈물, 콧물을 쏟아내는 자들과 달리 친실장은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마치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구더기는 점막과 상관없이 처음부터 미숙아로 태어나 어미의 손에 운치굴에 던져진 녀석이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아주 희박한 확률이지만 고치를 치고 엄지로 우화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건만
미숙하게 태어난 구더기의 수명은 그 잠깐의 시간을 버티지 못할 정도로 덧없이 짧았다.

구더기들이란... 그렇게 서글픈 존재들이었다.

"와타치가 나쁜오네챠라 우지쨩이 죽어버린 테치... 우지짜아아앙~! 테에에에엥!"
"우지쨔아아아앙! 미안한 테치!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엥, 테끕! 테에에에에엥~! 우지챠아아앙~!"

친실장은 울고 있는 세 자들을 양 손으로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오마에들의 잘못이 아닌 데스, 오마에들은 세상에서 가장 상냥한 오네챠들이었던 데스요."

친실장은 손으로 자들의 엉망이 된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우지챠는... 우지챠는 오마에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난 데스, 그래서... 착한 우지챠는 하늘에서 일찍 부르는 데스."
"테에에... 그럼 우지챠는 하늘로 간 것인테치?"
"그런 데스, 언젠가... 모두 하늘나라로 가면 그때 우지챠도 다시 만나게 되는 데스."

"""테에에에..."""

친실장의 말에 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린 이 녀석들에게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조금 어려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이처럼 소수의 현명한 친실장들은 모두 하찮게 여기는 구더기를 통해 자들의 정서교육과 스트레스 해소

그리고 죽음에 대한 교육을 도모하기도 했다.

잠시 뒤

자들에게 '우지챠를 숲에 묻어주고 오겠다'고 말한 친실장은 싸늘하게 식은 구더기를 안고 숲으로 향했다.

숲에 도착한 친실장은 싸늘하게 식은 구더기를 넓쩍한 돌 위에 내려놓았다.


"오마에는 충분히 오마에의 몫을 해낸데스, 오마에는... 참으로 기특한 막내였던 데스."

친실장은 이미 식어버린 구더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친실장은 양손으로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니... 이제 가족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데스."


딱!딱!딱!딱!딱!


돌부딪치는 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식사시간


울다 지친 자들에게 친실장은 평소에 먹던 먹이와 함께 웬 고기 경단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낯설지만... 왠지 그리운 맛이 나는 그 고기 경단을... 세자매는 꼭꼭 씹어먹었다.



FIN









들실장의 출산

 


겨울이 물러가고 새생명이 싹트는 봄이 찾아왔습니다.

따사로운 봄볕이 내리는 어느 공원

양 손에 비닐봉지를 든 성체 실장석 한 마리가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녀석의 배는 잔뜩 부풀어 있고 두 눈이 모두 녹색입니다.

봄꽃으로 춘자를 임신한 친실장이군요.

친실장이 뒤뚱뒤뚱 걸음을 옮길 때 마다 녀석의 팬티에서 새어나온 암녹색 배설물이 땅에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임신한 실장석이 이렇게 배설물을 흘리는 경우는 딱 한 가지, 출산이 임박한 겁니다.

이미 진통이 시작됐는지 친실장 얼굴은 땀과 눈물로 엉망이 되어있습니다.

잠시 후

만삭의 친실장이 도착한 곳은 공원 외각에 위치한 공중화장실.

공중화장실이 공원에 서식하는 들실장들에게 중요한 장소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으며 사방을 튼튼한 벽이 보호해주는 공중화장실은 중요한 식수원임과 동시에 안전한 출산을 위한 최적의 장소입니다.

잠시 주변을 살피던 친실장은 곧 비어있는 변기칸 하나를 차지하고는 문을 걸어잠급니다. 그리고는 가지고 온 비닐봉지 속에 든 것을 양변기에 쏟아 붓습니다.

자갈과 모래입니다.

속이 얕은 화변기와는 달리 속이 깊은 양변기에서 그냥 출산했다간 새끼들이 변기 배수구에 빠져 익사할 위험이 있습니다.
자갈과 모래로 배수구를 막아 변기물의 수위를 올리고 새끼들이 배수구 깊숙히 빠지는 일을 방지합니다.
들실장들은 살아남기 나름대로 지혜를 발휘해 환경 변화에 적응한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최근 이 방법을 익힌 들실장들이 늘어나 공중화장실 변기가 망가지는 일이 잦아져 시설을 관리하는 지자체에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자갈과 모래를 다 털어 넣은 친실장은 변기 위로 기어올라가기 시작합니다.
변기 정도의 높이에서도 떨어졌도 뱃속 새끼들에게 치명적 일 수 있기 때문에 친실장의 움직임은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잠시 후 변기에 오른 친실장은 자세를 잡습니다.

무릎을 살짝 굽히고 엉덩이를 쭉 내밀어 총배설강을 최대한 물에 가깝게 붙인 뒤 자신의 양갈래 뒷머리털을 붙잡아 균형을 잡습니다.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일상적인 배설 자세와 별반차이는 없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는 잠시 정적이 흐릅니다.

「데기잇-!」

침묵을 깨는 기묘한 울음소리와 함께 총배설강이 벌어지고...

퐁-당

배설물과 반투명 점막에 쌓인 약 5cm 크기의 저실장이 변기물 위로 떨어집니다.

「텟테레~♪」

막태어난 저실장은 세상에 자신이 왔다고 알리듯 특유의 울음소리를 냅니다.

연구에 의하면 모든 실장석들은 태어날 때 같은 울음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어푸-어푸-! 테치이잇! 테치이이잇!!!」

「데스!데스!데스웃!」

변기물에서 허우적 거리는 저실장을 친실장이 다급히 건져올립니다, 그리고 바로 저실장의 몸을 뒤덮은 점막을 부지런히 핥기 시작합니다.

「테츄우웅~♪ 테츄웅~♪」

어미의 손길이 닿자 저실장은 그제서야 안심했는지 생글생글 눈웃음을 지으며 어미에게 아첨을 합니다.

아첨은 갓태어난 저실장의 유일한 생존수단 입니다, 자칫 어미의 비위를 건드렸다간 영영 저실장으로 전락하거나 그 자리에서 솎아내기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친실장이 점막을 핥자 점막 속에 묻혀있던 저실장의 손발과 머리카락이 쑥쑥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5cm에 불과 했던 몸집이 순식간에 8cm까지 자라납니다.

방금 전까지 저실장이었던 녀석은 이제 자실장이 됐습니다.
마침내 어엿한 장녀로 거듭난 것입니다.

장녀의 팔다리가 온전한지 이리저리 살핀 친실장은 장녀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습니다.

「테에에에엥~? 테츄아앙~ 테치이이~! 테에에엥!!」

「데스우...」

어미에게서 떨어지기 싫은지 장녀는 막무가내로 칭얼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리 인내심이 있는 녀석은 아닌 듯 합니다.

「데기잇-!!!」

하지만 갈길이 바쁜 친실장에겐 장녀의 투정을 받아줄 여유가 없습니다, 아직도 어미의 뱃속엔 세상 빛을 기다리는 새끼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또 다른 저실장이 변기물 위로 떨어지고 어미는 정성껏 점막을 핥아줍니다.

약 15분 동안 친실장은 아홉 마리의 건강한 자실장을 낳았습니다.

[[테츄웅~ 테츄우웅~♪ 테치! 테치! 테치!
테에에엥!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에엥~!!]]

저마다 어미에게 자기주장을 하느라 바쁜 자실장들
화장실이 순식간에 떠들썩해집니다.

「...데샤아아앗-!!!」

[[테히이이이잇-!!]]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친실장이 자실장들에게 이를 들어내며 위협의 쇳소리를 냅니다.
어미의 갑작스러운 위협에 놀란 자실장들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버립니다, 몇 마리는 총배설강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서 묽은 운치를 지리고 맙니다..

「데스! 쉬잇-! 데스야! 쉬잇-!」

[[테츄아아.. 테츄웃...]]

친실장은 손을 입가에 가져가는 시늉을 하며 자들에게 조용히 하라며 주의를 줍니다.

새끼들이 조용해지자 친실장은 자갈과 모래를 담았던 비닐봉지에 새끼들을 넣습니다.

자들과 무사히 둥지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출산은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 친실장은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출산을 마친 들실장은 많은 동물들의 표적이 됩니다.

그 중 최악의 천적은... 바로 같은 들실장들입니다.

혹독한 겨울을 나고 영양결핍 상태인 들실장에게 갓태어나 굼뜨고 약한 자실장은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인 사냥감입니다.
운이 좋다면 출산으로 약해진 친실장까지 가축으로 삼을 수 있어 일석이조입니다.

때문에 시끄러운 울음소리로 동족들의 이목을 끌어서는 좋을 것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자칫 일가실각의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군요, 친실장의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

화장실 앞에는 어느새 나타난 성체 들실장 몇 마리가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친실장이 흘린 배설물 냄새로 근처에 출산하는 녀석이 있다는걸 알아차린 모양입니다, 다행히 아직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는 듣지 못한 것 같군요.

서성거리는 녀석들 모두 하나 같이 겨우내 잔뜩 굶주렸는지 피골이 상접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움푹 들어간 눈만은 살기로 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저마다 손에는 무기로 쓸 대못과 유리조각, 나무가지 따위를 들고 있습니다.

위험한 상황입니다.

이대로 화장실 밖에 나갔다간 친실장과 새끼들은 굶주린 동족들에게 습격 딩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친실장은 이내 결단을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친실장은 봉지 속 새끼들 중 한 마리를 꺼내듭니다.
가장 늦게 태어난 막내 자실장입니다.

「테츙? 테츄우웅♥」

「데스...」

긴박한 상황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막내는 어미의 손길이 닿자 그게 그저 좋은지 아양을 떱니다.

친실장은 손의 막내와 잠시동안 가만히 눈을 맞춥니다.

「테에?」

그리고는 막내를 있는 힘껏 습격자들을 향해 던집니다.

큰 호를 그리며 날아간 막내는...

철퍽!

배회하던 습격자들 한복판에 떨어졌습니다.

「테츄아아아아아아악-!!」

아직 숨이 붙어있는 막내의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울려퍼집니다.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녀석의 몸은 거의 으스러져 피투성이가 됐습니다.

녀석은 아직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듯 합니다.

「테츄아아아악!!! 테츄아아아악!!! 테에에에에엥!!!」

고개질을 하며 애타게 친실장을 불러보지만 어디에서도 친실장은 찾을 수 없습니다.
주위에는 낯선 들실장들의 흉흉한 눈빛만 반짝일 뿐...

[[데갸아아앗-!!
데샤아아앗-!!
데스앗!! 데스데스!!!]]

굶주린 들실장들이 일제히 신선한 고기를 향해 달려듭니다, 그리고 피냄새에 흥분한 들실장들 간에 피비린내나는 난투극이 벌어집니다

방금 세상 빛을 본 막내 자실장은 짧은 생을 그렇게 마감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사이 친실자은 남은 여덟 마리가 든 비닐봉지를 들쳐매고 황급히 그 자리를 빠져나갑니다.

친실장은 비정하게도 막내 자실장과 일가의 안전을 바꾼겁니다.
막내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는지 어미와 다른 자매들은 무사히 습격자들을 피해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습격자들을 따돌린 친실장은 자신이 흘린 배설물 자국을 따라 둥지를 향합니다.
도착한 곳은 공원 반대편 수풀 속, 땅에 반쯤 묻힌 가전제품용 골판지에 시트비닐과 낙엽을 덮어 만든 둥지입니다.

친실장은 골판지 집에 들어가 나뭇가지로 입구에 빗장을 걸어 잠급니다.

마침내 친실장의 출산을 위한 짧으면서도 긴 여정이 끝났습니다

긴장으로 굳어있던 친실장의 얼굴에 이제서야 안도의 빛이 돕니다.
친실장은 봉투 속 새끼들을 일일히 안아주며 핥아주고는 차례차례 젖을 물려줍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보는 어미의 사랑에 자실장들은 정신없이 어미의 젖을 탐합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내려주던 친실장의 눈에 눈물이 흐릅니다.

「오로로롱~ 오로로롱~ 오로로로롱~」

친실장의 탁한 울음소리가 골판지 속에 울려퍼집니다.
새끼들과 무사히 둥지에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정이 격해진 걸까요?
어쩌면 제 손으로 습격자들에게 던져버린 막내가 생각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친실장이 눈물을 훔치는 사이 자실장들은 피로와 만복감으로 순식간에 깊은잠에 빠졌습니다.
친실장은 넝마조각을 꺼내 잚든 새끼들에게 덮어주고는 그 곁에 누워 체온을 나눠줍니다.

오늘 탄생한 일가의 고단한 하루가 그렇게 끝나갑니다.

이 어린 자실장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배울 것이 많습니다.
먹이구하기, 천적피하기, 집짓기 그리고 실장석의 목숨을 위협하는 본성을 억누르는 법까지...

연구에 의하면 공원에서 태어난 들자실장들이 성체가 되어 독립할 확률은 약 7%안밖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과연 일가실각을 피해 내년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시간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