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불실장

 



무거운 몸을 이끌며 맨션의 문을 연다. 애완동물인 미도리가 맞이한다.

"늦은 테치! 똥닝겐! 빨리 먹이 내놓는 테치!"

나는 대답한다.

"뭐? 네놈 따윈 하루이틀 정도 안 먹어도 안 죽잖아 이 자식아.
 나는 오늘 하루종일 일해서 죽을 지경이라고. 좀 닥치고 있어 분충."

신발을 벗고 거실에 들어가 손에 든 봉투를 거칠게 탁자 위에 놓는다.

"죽을 지경ㅋㅋㅋㅋ 말단직 수고ㅋㅋㅋㅋ 그런 오마에한테 길러지는 와타치 불행ㅋㅋㅋ"

뒤따라붙는 미도리의 목소리를 등뒤에서 들으며 찬장을 찾는다.

"아, 푸드 다 떨어졌다 HAHAHAHA."

"무슨 HAHAHA...가 아닌 테치! 오마에는 와타치를 굶겨죽일 작정이냐 테치!"

"시끄러워 망할 벌레가... 애초에 네 먹이에 돈 쓰는 것도 아까워."

"오마에가 와타치의 노예니까 테치! 와타치를 돌보게 해줬건만 그..."

"테치테치 시끄러워. 이거라도 먹어."

나는 탁자 위의 봉투에서 오징어채 팩을 꺼내 먹이그릇에 조금 넣어준다.

"이것뿐 테치까!? 먹이도 똑바로 준비 못하는 테치까!?"

"닥치고 처먹어 빵콘 새끼. 바다의 은혜를 맛봐라."


"테치테치테치테치!!"

"이번엔 뭐야... 뭐? 물? 화장실 물이나 마셔, 하등생물 짜증나...
 아, 이거면 될까."

푸슉. 쪼르르르.

"꿀꺽꿀꺽... 아마아마 테치!!!"

"그래, 달겠지. 맛있겠지. 비장의 츄하이(과일주)다. 감사히 마셔."

"더 따르는 테치! 잔 안 비게 신경쓰는 테치! 하여간 눈치없는 노예..."

"다음부턴 이거다. 어차피 네가 술맛을 알 리 없지."

부엌 싱크대 밑에서 꺼낸 매실주용 소주를 가득 부어줬다.


자, 취기가 돌아서 좋은 기분이 되었을 때 마무리다.
신제품! 발매된지 얼마 안 된 전통 곱배기 소고기덮밥. 고저스다.

"테치테치테...츄아!"

맛있는 간장소스 냄새를 맡은 벌레가 떠들기 시작해서 가볍게 딱밤을 먹인다.

"이건 내 밥이야! 너는 아까 오징어 먹었잖아!!"

미도리는 츄아츄아 시끄럽지만 링갈은 번역 불가라고 표시된다.
이 바보 벌레, 너무 취해서 혀가 꼬였잖아. 뭐 무슨 말인지는 대강 안다.

"오케이, 조금 나눠주지... 자, 밥 위에 실곤약 듬뿍! 맛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미도리는 한층 더 시끄러워졌다.

"테츄아테츄아테츄아아아아아!!!"

링갈에는 번역 불가능 표시조차 뜨지 않게 되었다.

"알았다고. 양파도 줄게. 홍생강도 얹어줄게. 이러면 어때?"

미도리는 조용히 먹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홍생강의 붉은 색에 착각을 일으킨 것 같다.
정말이지 덜떨어진 생물이다.


"그럼 다 먹었으면 자라ㅡ. 이제 늦었으니까ㅡ."



말을 걸 것도 없이 미도리는 먹이그릇에 얼굴을 처박은 채 자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목덜미를 잡고 케이지 안의 낡은 수건 위에 내던진다.

"나도 잘까..."

방의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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