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복실장



공원의 후미진 곳, 가건물의 아래에서 실장석의 시체를 발견했다.
독라가 되어 비참한 얼굴로 죽어있는 것을 보면, 월동준비에 실패한 패배자가 분명하리라.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금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 실장석은 배가 갈라져 벌어져 있던 것이다.
흉기는 쉽게 발견되었다. 바로 실장석의 옆에 떨어져 있었으니까. 적녹색의 피로 탁해진 조그만 쇠붙이가 바로 그것이다.

'텟치...'


어디선가 미약한 실장석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흉기로부터 눈을 떼, 시선을 다시 실장석으로 향했고 갈라진 배 속에서 빛나는 적녹 한쌍의 눈을 발견할수 있었다.
자실장이다. 자실장이 시체의 뱃속에 들어있던 것이다.
저 자실장이 독라실장을 죽이고 시체를 차지한걸까? 그렇지는 않을것이다. 자실장의 근력으로 자기 몸만한 흉기를 휘둘러 성체실장의 배를 가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보다는 아마도 이런 사연이 있었겠지.


죽은 성체실장과 자실장은, 친자 사이였을 것이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겨울의 초입인 이 시점에 그들은 모든 것을 잃고 떠돌이가 되었다.
그리고 어찌어찌 이 후미진 곳까지 흘러들어와 자리를 잡았지만, 친실장은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집도, 보존식량도, 방한용품도 없는 독라의 실장석이 겨울을 넘긴다는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다못해 독라가 아니라면 탁아라도 시도하겠지만,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하다. (물론 탁아를 통해 인간에게 키워진다는건 실장석의 착각일 뿐이지만)
평균적인 지능과 가치관을 가진 실장석이라면 이 시점에 자실장을 잡아먹고 행복회로로 도피하는 길을 택했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친실장은 놀라운 모성애와 과감한 결단력을 가지고 있었고, 보통의 실장석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친실장의 선택은 자기를 희생하는 것.
자기의 배를 가르고, 자실장을 집어넣어 바깥의 추위를 막는다. 자실장은 뱃속에서 친실장의 피를 마시고 살을 뜯어먹으며 버틴다.
위석도 넘겨준다. 비록 죽은 실장석의 위석이라도, 얼마간의 생명 에너지는 남아있다. 위급할때 약간씩 쪼개어 먹으면 겨울을 넘기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물론, 자실장은 펄쩍 뛰며 친실장의 이 잔혹한 계획을 뜯어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친실장의 뜻에 따라 눈물의 이별을 하고, 친실장의 시체를 둥지삼아 이렇게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마마....와타치, 늘 감사하는 테치, 반드시 살아남아 따뜻따뜻한 봄을 맞이하는테치!"


나의 추리를 증명이라도 하듯, 죽은 실장석의 뱃속에서 결의를 다지는 자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과연 자실장이 살아남을수 있을까?
겨울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직은 친실장의 시체에 약간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 하지만,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면 냉동고 속의 고기처럼 단단히 얼어버릴 것이다.
얼어붙은 친실장의 피와 살은 자실장이 떼어내어 먹는 것이 불가능하고, 오히려 냉기가 뿜어져나와 자실장의 체온을 빼앗는다.
뱃속에서 탈출하고 싶어도 시체가 얼어버리면 자실장의 근력으로는 틈새를 넓히고 나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누구보다도 숭고한 희생을 한 친실장의 시체가, 자실장을 동사시키는 감옥으로 변하는 것이다.
과연 언제쯤 그 날이 올까? 나는 핸드폰을 켜 이틀 후에 영하 10도의 강추위가 온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빙그레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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