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산책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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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남
    ​싸늘하게 식어버린 고기 파편과 녹색 얼룩. 처참하게 짓밟혀 죽은 어미의 시체 곁에서, 홀로 남겨진 앳된 엄지실장과 구더기실장 한 마리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레... 레에... 우지챠, 울지 마는 레치. 이제부터 와타치가 마마를 대신해서 우지챠를 돌보는 레치..."
    ​보호자를 잃고 가혹한 야생에 내던져졌다는 공포 속에서도, 엄지실장은 바들바들 떠는 구더기실장을 품에 꼭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며 체온을 나누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들의 삶이었지만, 두 연약한 핏덩이들은 그렇게 서로를 유일한 세상으로 삼고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산책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엄지실장은 제법 언니이자 보호자로서 씩씩하게 행동하려 애썼다.
    어디서 주워온 커다란 나뭇잎을 양산 삼아 꽉 쥔 엄지실장은, 모처럼 은신처 밖으로 나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레츄웅~ 우지챠, 어서 따라오는 레치! 오늘은 꼭 달콤한 밥씨를 찾아내서 배불리 먹여주는 레치!"
    ​"레후~ 오네챠 잎사귀 씨 멋진 레후! 우지챠도 열심히 영차영차 가는 레후~"
    ​엄지실장은 구더기실장이 따가운 햇빛에 말라 죽지 않도록 나뭇잎 그늘을 만들어주며 앞장섰다. 흙바닥을 기어가는 구더기실장 역시 언니의 든든한 뒷모습을 보며 행복한 표정으로 뽈뽈 뒤따랐다. 비록 꼬질꼬질하고 위태로운 삶이었지만, 둘이 함께 걷는 이 짧은 산책의 시간만큼은 평화로웠다.
    ​이별
    ​그러나 무자비한 들의 생태계에서 엄지들의 덧없는 평화는 결코 오래갈 수 없었다.
    산책의 끝자락, 먹이를 찾아 배회하던 굶주리고 흉포한 '성체 들실장'과 마주치고 만 것이다.
    ​"데프프, 아주 연하고 맛있는 비상식량이 걸어 다니는 데스."
    "레뺘앗...!"
    ​거대한 성체 들실장의 자비 없는 후려치기 한 번에, 엄지실장은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뺨이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 고통 속에서 멍하니 몸을 일으키던 엄지실장의 시야에 끔찍한 광경이 들어왔다. 동족을 잡아먹는 데 혈안이 된 성체 들실장이, 자신의 소중한 구더기실장을 한 손으로 덥석 낚아채 허공으로 들어 올린 것이다.
    ​"레... 레삐이이이익!! 오, 오네챠아아앗! 살려주는 레후!!"
    ​극도의 공포에 질린 구더기실장은 허공에서 묽은 녹색 똥을 지리며 처절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흙바닥에 주저앉은 엄지실장은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 덜덜 떨며 짧은 팔조차 뻗지 못했다.
    ​"레... 레에... 우지챠..."
    ​자신의 모든 것이자 유일한 가족이었던 동생이 다른 동족의 입속으로 끌려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힘없는 자들의 너무나도 참혹하고 무력한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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