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퇴근길에 편의점을 들르고 나오는데, 전 여친 아키에게 휴대전화가 걸려온다.
 
"--아, 쥰?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아파트에 두고 간 짐 중 필요한 것을 챙겨 그녀의 집에 보내라는 것.
화구, 스케치북, 포즈집,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화집......
촌스럽게 배송료를 어떻게 할지 같은 건 묻지 않는다.
함께 살던 일년 반 동안, 아키는 생활비를 낸 적이 없었다.
 
"지금...... 집에 있어?"
 
내가 묻자, 아키는 "엣?-" 웃으며,
 
"친구집. 걱정해주는 거야? 괜찮아, 건강히 있으니까"
 
아키의 두 번째 바람을 발견한 뒤, 우리는 서로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사실 관계를 설명했을 뿐 결정은 나에게 일임했다.
 
"--그래서, 쥰은 어떻게 하고 싶어?"
 
교활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그랬다.
나는 이별을 선택했고, 아키는 지갑만 들고 방을 나갔다.
그 전날, 나는 항상 주초에 하던 것처럼 아키의 지갑에 만엔을 넣어 두었다.
아키는 무명 일러스트레이터지만 결코 수입이 제로는 아니다.
그러나 벌어들인 몫은 재료나 화집으로 사라지고, 언제든 "지금 돈없어서"가 입버릇이었다.
매주 만엔은 대졸 2년차 직장인인 나에게 큰 금액이다.
그밖에도 두 사람분의 식비와 수도, 난방비 부담도 있었다.
어쨌든 아키가 무일푼으로 나간 건 아니라는 사실에 나는 안도했다.
그런 나는 이별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가능한 빨리 짐을 보낼 것을 약속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마침 보행자 신호가 깜빡이기 시작해서, 나는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넜다.
-- 아파트에 도착할 때까지 "탁아"당한 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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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후?"
 
테이블 위에 펼친 편의점 쇼핑백.
그 중 반찬 팩 위에 오도카니 저실장이 올라타 있었다.
약간 누설한 무른 녹색 변이 팩을 싼 랩을 더럽히고 있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저실장은 왜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나도 모른다.
들실장에게 탁아당하는 빈틈을 어떻게 만들어버린 건가.
..... 뭐, 아키의 전화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지만.
 
"...레후?"
 
드디어 나의 존재를 눈치챈 듯, 저실장은 고개를 들었다.
 
"...레후-♪"
 
생긋 친근하게 미소지어보이자, 데구르르 뒤집고 짧은 꼬리와 손발을 찰싹찰싹 흔든다.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탁아라니 어떻게 하면 좋지?
창밖으로 내던질까? 화장실에 흘려버릴까?
그런데 나중에 친이 들이닥치는 건가? 어떻게 쫓아내지?
곤란한 나는 학창시절부터 친구인 토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난달에 결혼하기 전까지는 친가에서 실장석을 기르고 있었다.
내 주위에서 가장 실장석에 밝을 게 당연한​인간이다.
나도 몇 번인가 토시의 집에 놀러가서 그의 사육실장을 만난 적이 있다.
예의범절이 좋고 똑똑한 녀석이라 감탄했지만, 훈육은 토시가 직접 실시했다고 한다.
그가 친가를 떠났어도 실장석은 시중을 들면서 깍듯하게 행동해, 가족의 귀여움을 받고 있다던가.

"-- 하아? 구더기를 탁아당했다고? 너......"

아하하하, 토시는 전화 너머로 목소리를 높여 웃었다.

"그런 거, 창밖으로 집어던지든지 화장실에 흘려보내라"
"그러다 나중에 친이 몰려오면? 새끼의 냄새를 따라......"
"두세방, 걷어차주면 도망가지"
"싫어. 요전에 자전거로 성체 들실장과 부딪힌 적이 있는데, 그 크기는 느낌이 생생하더라고"
"뭐, 확실히 기분나쁘려나. 코로리나 시비레 스프레이를 뿌리면 뒤처리가 깔끔하지"
"스프레이 자체가 준비 안됐어"
"정말이냐? 도시 생활의 필수품 아닌-가? 들실장 투성이인 도쿄에서"
"물론 지방보다 훨씬 많지만, 탁아당할 정도로 정줄놨던 적은 처음이야"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 대학을 졸업한 나는, 현지 기업에 취직해 그대로 현지에서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연수 기간이 끝나고 배속된 곳은 도쿄 영업소.
뜻하지 않게 도시 생활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나는 하아하고 한숨을 쉬며,

"......정말이지 부탁이니까 지혜를 빌려달라고, 틈을 준 원인부터가 지긋지긋하다니까"
"그렇다면......"
 
쿳쿳쿳 토시는 얄밉게 웃고,
 
"친이 들이닥치기 전이라면 당장 구더기를 데리고 집을 나와 적당한 공원에 버리고 오면 되잖아?"

그러면 친실장은 내 아파트가 아닌 공원으로 향할 법이기 때문이라고 토시가 가르쳐주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해결책이다. 난 토시에게 감사를 표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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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봉투로 할 생각으로 놔둔 빈 편의점 봉투를 꺼내왔다.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반찬 팩 위에서 기분좋게 계속 우는 저실장을 집어올리려고 손을 뻗는다.
 
"프니후-프니후-프니후-♪ 프니후-프니후-프니후-♪"
 
인간의 손가락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저실장이 눈을 빛내며 더욱 격렬하게 찰싹찰싹찰싹찰싹 꼬리를 흔들었다.
프니프니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집은 저실장을 봉투에 집어넣었다.
 
"...레뺫!?"
 
비명이 들렸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이 정도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구더기 한 마리만 넣은 편의점 봉투를 들고 아파트 방을 나왔다.
목적지는 근처 아동공원.
모래밭과 미끄럼틀이 있을 뿐인 작은 곳이라 식수대도 없으니 들실장은 살고 있지 않다.
저실장을 놓아도 친이 찾으러 오기 전에 동족에게 먹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중간에 버스가 오가는 거리를 건너는 횡단보도에 접어들었다.
보행자용 신호는 빨강. 파란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 봉투 안을 들여다본다.
 
"...레에에에 ..."
 
잘 살아 있었다. 스스로 지린 똥투성이가 되어 비참한 꼴로 눈물을 글썽이고 있지만.
에벌레만한 크기인 주제에 한사람 몫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갖추고 있다.
그런 생물을 죽여버리면 내일 기분좋게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데엣!?"
 목소리가 들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길 건너편에 들 같은 성체 실장석이 있었다. 독라 자실장을 한 마리 데리고 있다.
"...데슷! 데스데스데슷!"
 
이쪽으로 뭔가를 하소연하듯 짖는다.
"네가 저실장을 탁아한 친이냐?"
 나는 외쳤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지금 구더기를 돌려줄테니"
"...데슷! 데슷!"

하지만 친실장은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인간의 말이 통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귀를 기울일 마음이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직 빨간불인데 친실장은 차도로 나왔다. 독라 자실장도 당황한 듯이 뒤를 쫓는다.
"...데스데스데스웃!" "...테치이이잇!"
"...... 위험하다니까! 돌아가!"

나는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마침 달려오는 트럭이 경적을 요란하게 울렸다.
"...뎃!?" "...텟...?"
 친자가 뒤돌아본 다음 순간 -- 내 눈앞을 트럭이 가로질러갔다.
그리고 트럭이 지나간 뒤 거리에는 빨간색과 녹색이 뒤섞인 얼룩이 생겼다.
트럭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나도 자동차 면허를 가지고 있으므로 알 수 있다. 급브레이크는 사고의 원인.
달리는 차 앞을 실장석이 가로질러도 브레이크는 밟지 말라고 학원에서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레후?"
 편의점 봉투를 들여다보는 내 얼굴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저실장이 올려다보고 있다.
 
"... 레후, 레후, 레후"
 
뭔가를 호소하기 위해 울고 있다.
지금 와타시의 마마와 오네챠의 목소리가 들린 거 같다. 마마와 오네챠는 어디 있나?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나는 저실장을 넣은 봉투를 든 채 지금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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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실장이 어떻게 구더기를 탁아했는지는 알 수 없다. 보통은 자실장을 탁아할 것이다.
그런데 차에 치일 때 데리고 있던 새끼는 독라 한 마리 뿐이었다.
다른 새끼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 탁아에 실패하고 한마리만 독라로 돌아왔다?
그래서 가족의 마지막 희망으로 막내딸인 구더기를 탁아한 것인가?
물론 그런 들실장 일가의 사정 따위 내 알 바 아니다.
뭐 그런 것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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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구더기를 길러주겠다는 건가?"
 전화 너머로 토시는 웃었다. 내가 정말 어이없나보다.
변명하듯 나는 설명했다.
"눈앞에서 친이 죽어서 기분이 안좋고, 게다가 외톨이가 된 구더기를 쫓아낼 수도 없잖아......?"
"멋대로 뛰어들었지? 대체로 빨간 신호에서 도로를 건너면 위험하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다니 너무 바보스럽네"
"키우기는 해도 사는 장소와 먹이를 제공해줄 뿐이야"
 
점점 변명이 길어지며 나는 말했다.
"자력으로 살 수 있는 정도로 커지면 공원에 놓아줄 거야. 아니, 그 전에 구더기여서 멋대로 죽을지도 모르고......"
"그런 이야기는 집어치워"
 토시는 말했다.
 
"네 성격이 그래. 곧 정이 들고 귀여워하기 시작하겠지만, 들실장은 쓸만한 게 아니라고"
"아니, 귀여워할 생각따위...... 솔직히 저실장은 인면충같아서 기분나쁘다고 생각하고 있고......"
"실장석은 친의 뱃속에서 어느 정도 태교를 받고 태어나. 하지만 들의 태교는 최악이야"
 닌겐은 귀여운 와타시타치에게 메로메로된 노예인 데스우 ~ ♪
라며 토시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하는 분충 실장석 개체의 말투를 흉내내고,
"그런 빌어먹을 친의 가르침을 철썩같이 믿고 태어난거야. 상냥한 얼굴을 하면 기어오른다. 은혜를 원수로 갚을 뿐이야"

"하지만...... 저실장이야"
 나는 반박했다.
"밥과 운치와 프니프니밖에 머리에 없다고 전에 토시도 말했잖아? 거만해질 머리도 없어...... 아마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길러도 돼. 글쎄, 구더기가 바보녀석인 건 네 말대로니까"
 쓴웃음을 짓는 듯 토시가 말한다.
"하나 조언해두지만, 먹이는 배설물 냄새 제거 효과가 있는 놈으로 해라. 구더기는 하루 종일 똥을 누니까"
"아, 그렇게 해둘게......"
 나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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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시에게도 설명했듯, 나는 저실장을 기른다고는해도 귀여워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는 곳과 먹이를 제공할 뿐.
그리고 배설물의 처리도 해주겠지만, 그 외의 애호는 없음. 물론 프니프니도 해주지 않는다.
딱 말해 인면충이잖아? 보면 볼수록 징그럽다.
전에 아키와 간 디즈니랜드에서 샀던 초코크런치 빈캔을 하나 벽장에서 꺼냈다.
그녀는 초코 크런치를 무척 좋아해서 친구가 디즈니랜드에 간다고 할 때마다 선물로 사오라고 졸랐다.
물론 나와 둘이서 갈 때도 샀다. 계산은 내가 했지만.
덕분에 쌓인 깡통은 15개 정도. 머잖아 쓸 데가 있을 거라고 아키는 벽장에 넣고 있었다.
......이것도 화구와 함께 보내줄까? 그건 둘째치고.

뚜껑을 연 캔의 바닥에 적당한 크기로 찢은 신문지를 깐다.
그리고 문닫기 직전인 슈퍼에 뛰어들어가 산 냄새제거 타입 실장푸드를 세 알만 넣어준다.
반가공상태라 저실장에게 주면 수분보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우지쨩이 물 접시에 빠질 일도 없어져 안심이라고 봉투 뒷면 설명에 적혀 있었다.
 
"...레후?"
 저실장을 편의점 봉투에서 꺼내니 내 얼굴을 보고 방긋 웃으며, 찰싹찰싹 꼬리를 흔들었다.
 
"레후-♪ 레후-♪ 레후-♪"
 뭐가 그리 기쁜 걸까? 방금 전에 어미가 죽은 것을 모른다고는 하나.
일부러 가르쳐줄 생각도 없지만. 인간의 말이 통할지도 의심스럽다.
구더기를 깡통에 넣어주었다.
"...레후...?"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는 저실장.
하지만 곧 먹이를 찾자 눈이 빛난다.
 
"레후-레후-♪ 레후-레후-♪"
 기쁜 듯이 울면서 먹이를 향해 꾸물꾸물 기어간다. 그래그래, 잘됐네.
나는 저실장을 넣은 깡통을 화장실의 붙박이 선반에 두기로 했다.
탈취 효과가 있는 먹이를 주더라도 변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애호 목적의 주인이라면 참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화장실이라면 방향제도 놓여 있으니까 다소간은 괜찮지 않을까.
선반에 있다면 징그러운 인면충 모습도 평소에는 보지 않아도 되고.
 
"...레후레후♪ 레후레후♪"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머리 위 선반에서 얼빠진 소리가 들리는 건 참자.
먹이를 탐하기에 여념없는 저실장을 내버려두고 나는 화장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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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사흘간을 그 상태로 저실장을 길렀다.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용변보는 김에 선반에서 캔을 내려 배설물이 묻은 신문지를 갈고 먹이를 준다.
신문지를 가는 동안 저실장은 수세식 변기의 뚜껑 위에 올려놓는다.
"...레후?"

저실장은 두리번 두리번 주위를 둘러보고 꾸물꾸물 적당한 방향으로 기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걸음이 느리기 때문에 변기 뚜껑 가장자리에 도달해 바닥에 추락하기 전에 신문지의 교환은 끝난다.
캔에 돌려보내려고 저실장을 잡아올리면 찰싹찰싹 꼬리를 흔들며 웃는 얼굴로 울어보인다.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알았다 알았어. 하지만 프니프니라니 해줄 수 없어.
나는 말없이 저실장이 든 깡통을 선반에 되돌린다.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구더기는 계속 울고 있지만, 그대로 화장실을 나와 문을 닫는다.
역시 저실장은 바보 그 자체라고 실감하게 된다.
이 주인이 결코 프니프니해주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젠 깨달아야 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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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가 부탁한 짐은 전화받은 그날에 준비해서 편의점에서 택배로 발송했다.
그러나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 및 감사는 없었다.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 다음 주말에, 나는 보낸 것 말고 남은 그녀의 짐을 정리하기로 했다.
초코 크런치 빈 깡통같은 쓰레기는 버리고, 그 이외는 언제든지 집에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해둔다.
아니-- 바로 보내버리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아키에 돌아와 달라고 할 생각도 없다.
어떻게 된 건지, 그녀가 집으로 보내도록 지시한 짐은 화구뿐 옷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평상복이나 속옷은 고스란히 내 방에 남아 있었다.
원래 입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으로, 갖고 있는 옷은 마트나 유니클로에서 구입한 싸구려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사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변변한 돈도 없는 주제에.
옷장 서랍에서 속옷과 양말을 끄집어내고 있는 사이 실장 링갈이 나왔다.
상자에 든 채인 새것으로 아키가 어느 출판사의 신년회에서 빙고에 당첨됐다고 한 것이 떠올랐다.
"실장석따위 기를 생각도 없고, 필요 없네요. 이담에 야후 옥션에 내봐야 하나?"
 
그렇게 말한 것을 아키 자신이 잊고 옷장에 처박은 상태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도 잊고 있었다.
상자에서 설명서를 꺼내 대충 눈으로 훑는다.
배터리는 충전식이고 문자 로그 모드라면 전원을 켠 채로 48시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항상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싱글벙글 웃고, 결코 맛볼 수 없는 프니프니를 조르는 저실장.
밥의 제공 및 배설물의 처리 외에 나는 전혀 상대해주고 있지 않다. 입도 뻥긋 않고 있는데.
항상 언제나 싱글벙글 프니프니. 도대체 머릿속이 어떻게 돼 있는 거야?
닌겐상이 자신을 전혀 상대해주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바보인가?
나는 링갈을 충전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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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에 걸쳐 아키의 짐을 정리하고 편의점에서 택배로 발송했다.
도쿄에 나올 때 사용한 이사용 박스를 일부 접어 남겨놓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보니 링갈 충전이 끝나 있었다.
전원을 켜고 화장실 선반, 저실장을 넣은 캔 옆에 놓는다.
 
"...레후레후 ♪ 레후레후 ♪"
 
캔 안에서 저실장이 혼자 마음대로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홀로 방치되고 있는데, 꽤 즐거운 소리가 아닌가.
밥만 있으면 행복한 건가? 그 속내도 링갈로 알 수 있겠지.
링갈은 다음날 아침 회수하기로 하고 나는 화장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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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다음날 아침, 캔 바닥에 까는 신문지를 교환하고 먹이를 보충하는 김에 링갈을 회수했다.
아침 토스트를 씹으면서 한손으로 링갈을 조작하여 화면에 표시되는 로그를 따라간다.
"......뭐야 이건?"
 나는 무심코 입밖으로 중얼​거렸다.

"배씨 비었다 레후, 밥 먹는 레후"
"맛있는 레후♪ 맛있는 레후♪"
"와- 레후♪ 배씨 빵빵한 레후♪ 우지쨩 행복해진 레후♪"
"배불러지면 운치가 나오는 레후"
"음-레후, 음-레후, 음...... 잔뜩 나온 레후♪"

"운치로 엉덩이가 더러워진 레후♪ 깨끗 깨끗 해주었으면 하는 레후♪"
"오네챠 어딨는 레후? 마마 어딨는 레후? "
"......없는 레후? "
"레에에에...... 운치 묻은 엉덩이는 싫어 싫어 레후......"
"하지만 포기하는 레후, 우지쨩은 착한 아이인 우지쨩인 레후, 제멋대로 말하지 않는 레후"
"식후에는 프니프니가 따라오는 레후"
"프니후-♪ 프니후-♪ 프니프니해주는 레후♪"
"......아무도 없는 레후? "
"언제나 밥을 주는 닌겐상도 없는 레후? "
"레에에에...... 누군가 프니프니해주는 레후......"
"어쩔 수 없는 레후, 제멋대로는 안 되는 레후, 혼자 프니프니 놀이하는 레후"
"프니후-♪ 프니후-♪ 프니프니 기분좋은 레후 ♪"
"......역시 기분좋지 않은 레후, 지친 레후, 우지쨩 자는 레후"

"안녕히 주무세요 레후♪"
"레후 ♪ 레후 ♪ 새근 새근 레후......"
"...... 아침인 레후? 밝은 레후♪ "
"이제 닌겐상이 밥 갖다주는 레후♪"
"맛있는 밥을 준비해주는 상냥한 닌겐상인 레후♪ 마마가 말한 애호파가 틀림없는 레후♪"
"부탁하면 꼭 프니프니도 해줄 것인 레후♪"
"어제는 해주지 않은 것 같은 레후...... 하지만 오늘은 모르는 레후♪"
"착한 아이인 실장석은 닌겐상이 귀여워해주는 레후♪ 마마가 말한 레후♪"
"우지쨩은 프니프니 받을 수 있게 착한 아이답게 부탁하는 레후♪"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하아아"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적당히 좀 이해해라, 너 ......"
 
저실장의 얼빠진 뇌구조에 복장이 터졌다.
매일 부탁을 계속하면 언젠가는 닌겐상이 프니프니해준다.
완고하리만치 그렇게 굳게 믿고 있다.
어디까지 호인인 건가...... 아니 호저인가?
이렇게까지 바보라면 행복할 것이다. 싱글벙글 언제나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먹다 남은 빵을 접시에 놓고 링갈을 들고 화장실에 돌아왔다.
선반에서 깡통을 내려 변기 뚜껑에 두고 저실장을 내려다본다.
저실장도 나를 눈치채자 식사를 중단하고 고개를 들어,
 
"...레후-♪"
 
방긋 웃으며 기쁜 듯이 울었다.
링갈의 로그를 확인하면
 
"닌겐상, 밥 맛있는 레후♪ 감사한 레후♪"
 
나는 "......하아" 다시 크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으며 저실장에게 물었다.
 
"...... 혼자서 프니프니 놀이라던데 그게 뭐니?"
"...레후?"
 순간 멍해진 모습의 저실장은 곧 다시 웃는 얼굴로 천천히 배를 위로 누운 채 굴렀다.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링갈 로그를 살펴보면,

" 프니프니받는다는 생각으로 프니프니하는 레후♪"
 
라고 기록되어 있다.
저실장은 복근 운동을 하는 것 같이 작은 몸을 꿀렁꿀렁 오므렸다.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과연, 프니프니하며 배가 눌리면 몸은 그런 움직임을 할 것이다.
그러나 구더기의 덧없는 체력으로 복근 운동이 오래 갈 리 없다. 곧, 탁 몸을 펴고
 
"지친 레후 ♪ 혼자 프니프니한 레후♪"
 
그렇게 말하며 방긋 웃어보였다.
 
"............"
 
나는 저실장의 몸에 손을 뻗었다.
 
"...레후?"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의 저실장의 배룰 검지손가락으로 만지고 프니프니하듯 가볍게 눌러준다.
 
"...프니후-!?"
 
저실장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하지만 곧 그것을 받아들여 황홀하고 기분좋게 울기 시작했다.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링갈 로그를 보고,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와~ 레후♪ 닌겐상에게 프니프니받은 레후♪ 우지쨩 행복한 레후♪"
 
단 이만큼으로 큰 기쁨을 얻다니, 얼마나 저렴한 생물인가.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
 
뷰루루, 구더기의 하복부 - 총배설구에서 무른 변이 분출했다.
 
"......앗?"
 
깜짝 놀란 나는 손가락을 움츠린다.
 
"...레훗?"
 
구더기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지만 곧 또다시 방긋 웃고,
 
"배씨에 쌓인 운치 상쾌한 레후♪ 닌겐상의 프니프니 효과만점인 레후♪"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네"
 
나는 숨을 멈추고 얼굴을 찡그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소취 타입의 먹이를 주고 있을 터인데, 들시절부터 쌓인 숙변이 나온 것일까. 상당히 고약한 냄새다.
 
"프니프니​기분좋았던 레후♪ 닌겐상 감사한 레후♪"
 
그렇게 말하고 저실장은 천천히 엎드린 자세로 돌아왔다.
아랫배가 똥투성이인 상태이므로 간 신문지가 더러워진다. 상대는 구더기니까 어쩔 수 없지만.
저실장은 내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우지쨩, 닌겐상에게 부탁이 있는 레후♪"
"부탁?...... 무슨?"
 
나는 약간 준비를 하고 되묻는다.
토시의 충고가 기억난다, 들실장은 상냥한 얼굴을 하면 기어오른다고, 오만한 분충이 된다.







그런데, 이 저실장의 '부탁'은 맥이 빠지는 것이었다.

"닌겐상은 언제나 우지쨩에게 맛있는 밥을 주는 레후♪ 상냥한 레후♪"
"지금 프니프니도 해준 레후♪ 마마가 말한 애호파 닌겐상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레후♪"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레후♪ 화내지 말고 들어주시는 레후♪"
"우지쨩을 닌겐상의 사육 우지쨩으로 해주는 레후♪ 우지쨩을 길러주는 레후♪"

 나는 링갈 로그에 늘어선 저실장의 대사를 바라보고 멍하니 입을 벌렷다--
그리고 저실장은, 싱글벙글 미소를 보았다.
...... 풋,하고 내뿜었다.
 
"레후...?"
 
웃는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저실장의 머리에 검지손가락을 뻗어 쓰다듬어준다.
 
"우지쨩은 이미 나의 사육 우지쨩이야"
 
"...레훗?"
 저실장은 황홀한 듯한 미소를 짓고 찰싹 찰싹 찰싹 찰싹 꼬리를 크게 흔들며 기뻐했다.
 
"와~ 레후♪ 우지쨩은 사육 우지쨩인 레후♪ 주인님 앞으로 잘 부탁하는 레후♪"
"아, 부탁해 ......"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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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실장의 위치를 거실 창문 앞으로 바꾸었다.
레이스 커튼을 쳐서 너무 밝을 일은 없다.
 
"밝은 곳으로 이사한 레후♪ 기쁜 레후♪"
 
지금까지의 취급이 너무 나빴을 뿐인데, 저실장이 순수히 기뻐하는 것에 쓴웃음짓게 된다.
이어서 퇴근길에 유리 어항을 사다 초코 크런치 깡통에서 옮겼다.
여전히 바닥에 까는 건 자른 신문지지만 예산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애완동물 화장실용 모래를 까는 것이 보기는 좋지만, 똥을 흘려대는 구더기가 상대라면 매일 모래를 갈아야 한다.
그렇게까지 비용을 들일 순 없다.
식사 대우도 개선했다.
그렇다고해도, 지금까지 먹이는 푸드는 그대로 하고 별도로 간식인 콘페이토를 매일 한알씩 주기로 했다.
그다지 비싸지도 않고 사육실장으로서 허용된 범위의 사치인 것이다.
 
"아마아마한 콘페이토 맛있는 레후♪ 우지쨩 무척 행복한 래후♪ 주인님 정말 감사한 레후♪"
 
핥짝핥짝 열심히 콘페이토를 빨면서, 레후레후 나에게 감사를 말하는 저실장.
정말 저렴한 생물이구나 나는 쓴웃음지을 수밖에 없다.
토시가 이메일로 저실장의 근황을 물었다.
무심코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지금 콘페이토를 취한 듯이 핥고 있다"고 대답했다.
곧 토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너, 콘페이토까지 주고...... 역시 정이 든 건가?"
"정이라고 할까...... 그, 바보처럼 솔직한 녀석이야, 이 구더기는"
 
스스로도 변명같다고 생각하면서 대답하는 나에게, 토시는 기가 막힌 듯이,
 
"바보니까 솔직하다고도 할 수는 있겠지만 쓸데없는 지혜를 짜지 않을 뿐이야"
"싱글벙글하면서 주인님 감사하다고 말한다구, 너무 심한 취급은 할 수 없어 "
"주인님 감사하다......라고, 링갈까지 사버린 거야??"
 
어처구니없어하는 모양인 토시에게 당황해서 나는 순간적으로 변명한다,
 
"전 여친-- 아키가 받아 온 거야 출판사 파티의 경품으로"
"뭐 그건 그렇고, 일단 물어보겠는데 애호 전용 모델 아냐?"
"아냐, 보통이야. 취급 설명서에는 애호 모드도 있다고 써져 있지만 어쩐지 미심쩍어서 설정하지 않았다고"
"그거 참 애쓰네. 애호 모드라는 건 실장석을 너그럽게만 대하게 하고 훈육도 되지 않으니까......"
 
하기사 구더기에게 예의범절은 필요없지만 너무 바보라서라고 하고, 토시는 덧붙여,
"......뭐, 그녀와 헤어진 마음을 채우기 위해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도 괜찮지, 일반적으로는"
"딱히...... 그런 생각은 없었는데"
 
내가 어색한 기분이 들어 말하자, 토시는 웃으며,
 
"저실장 따위로 빈 마음이 채워지는 그녀가 불쌍하지만 뭐, 그런 정도의 존재니까"
"봐준다......"
 전여친 얘기의 농담 정도는 용서된다. 큰 상처였으니까.
무도한 토시는 아하하하 목소리를 높여 웃는다,
 
"그럼 뭐, 사랑하는 우지쨩에게 안부 전해줘♪"
 
비꼬는 투로 말했다.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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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의 옷을 보낸 지 이틀 후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짐이 도착했다는 보고와 감사 인사였다.
이전에 한 번, 아키의 친가를 방문한 적이 있어서 어머니와 안면이 있었다.
 
"-- 일부러 그래줘서 미안해요, 아키는 참, 저런 아이라"
 
어머니의 말투로 보면 우리들이 헤어진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원인이 딸의 두번째 바람에 있는 것까지는 모르는 것 같다.
 
"지금까지 잘 해주고, 저런 아이라도 아껴주고요"
 
아무래도-- 단순한 싸움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아키에게도 말해서, 감사 전화를 시킬게요. 그렇게 하게 해줘요...... 참견일지도 모르지만"
"아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아키 씨와는 가끔 전화 통화도 하고......"
 
헤어져도 친구로서의 관계는 계속하고 있다고, 그녀의 어머니가 생각하게 하기로 했다.
사실 아키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화구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한번 뿐인데.
거듭 인사하는 어머니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충 맞장구를 친다.
경우 통화를 끝내고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인의 부모와 만나지 않는 편이 좋았다고 절실하게 생각했다.
함부로 안면을 트면 연인과 헤어진 후가 괴롭다. 상대가 "좋은 사람"이기도 했을 때에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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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
어항 속 저실장의 모습이 이상했다.
평상시라면 내 모습이 눈에 보이자마자, 찰싹찰싹 꼬리를 흔들며,
 
"레후-♪ 레후-♪ (주인님 안녕한 레후-♪)"
 
힘차게 인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어항 구석에서 웅크린 모습 그대로 고개도 숙인 채로,
 
"...레후..."
 
힘없는 신음 소리를 올릴 뿐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링갈 스위치를 켜고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우지쨩?"
"......우지쨩, 가슴씨가 따끔따끔한 레후,  앞발씨 사이에 있는 게 가슴씨라고 하는 거 맞는 레후...? "
 
나는 더욱 놀랐다. 부상? 질병?
어항에서 저실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눕혀준다.
 
"...프니후...?"
 
축 늘어져 힘이 빠진 저실장. 링갈 표시는
 
"프니프니인 레후? 하지만 가슴씨가 따끔따끔해서 기분 좋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레후...... "
 
프니프니를 요구할 기력마저 잃은 걸까.
하지만 겉보기에 몸에 뭔가 박혀 있다거나 다친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장의 질병인가?
난 토시에게 전화했다.
출근 전이다. 민폐인 건 안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전화니까, 토시는 그것을 거부할 정도로 매정한 녀석도 아닐 것이다.
자신도 실장석을 기른 적이 있으니까.
전화를 받은 토시에게, 지금 저실장의 모습을 전하자 그는 "흠 ......" 깊게 신음했다.
 
"탁아로 기르기 시작한 구더기라. 그 녀석이 태어나서 몇달 동안,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모르겠군......"
"......무슨 말이야?"
 
되묻는 나에게, 토시는 낮춘 목소리로
 
"수명이 다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앗?"
 
나는 언성이 높아졌다.
 
"수명이라니, 하지만 저실장이잖아!?"
"구더기라서 그런 거다, 넌 모양때문에 착각하나 본데, 저실장은 실장석의 아기인 것만은 아냐"
 
토시는 말한다.
 
"고치를 만들어 엄지나 자실장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구더기 모습이다"
"하지만......그건 그렇고"
"원래 저실장은 미숙아......라기보다는 일종의 기형아야. 태아의 모습 그대로 어미 뱃속에서 나온 거다"
"아냐......"
"수명이 짧은 것도 당연해. 체질이 허약하고, 위석도 여려. 가끔 행복회로가 고성능이고 튼튼한 녀석도 있지만"
"그런 ...... 그런 걸 물어보는 게 아니라고!"
 
나는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곧 정신을 차리고, 토시에게 사과했다.
 
"...... 미안, 소리지르다니......"
"아냐"
 
토시는 어조를 바꾸지 않고,
"나도 경험이 있어. 실장석이 아니라 개였지만. 초등학교 때 처음 기른 녀석이 사실 타고난 병약 체질이었어"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시도 애완 동물과의 이별 경험이 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르고 있는 저실장은 아직 살아있다.
토시가 말했다.
 
"네 구더기지만, 수의사에게 데려가는 방법은 있어. 하지만 솔직히 실장석은 미움받고 있고, 구더기는 더욱 외면당한다"
"의사가 실장석에 대해 냉담하단 이야기는 전에 들었어. 구더기와 엄지는 너무 허약하고 성체와 자실장은 아무렇지않게 꾀병을 부린다고"
 
내가 말하자, 토시는 전화 저편에서 쓴웃음을 짓는 것같다.
 
"정말 나쁜 건 주인인데. 들은 타고난 분충도 있지만, 사육실장이 분충이 되는 건 주인 탓이야"
"의사에게 데려가겠어"
 
나는 말했다.
 
"회사는 쉬고, 전화번호부에 있는 근처 수의사에게 닥치는대로 전화해서 구더기를 진료봐주는지 물어볼거야"
"하나 말해두지만...... 기대는 하지 마라"
"아...... 그러고 있어"
"그리고, 또 하나. 너...... 정말 대단한 호인이다"
"나쁜놈"
 
내가 조금 발끈해서 말하자, 토시는 웃으며,
 
"아니네, 적어도 나만은 싫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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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실장을 진찰해주는 수의사는 다섯 번째 집에서 발견했다.
그 전에 전화한 동물병원은 단칼에 거절당한 곳이 한곳.
뒤의 세 집도 환자가 저실장이라고 전했을 때 반응이 너무 나빠서 이쪽에서 사양했다.
초코 크런치 깡통 바닥에 탈지면을 깔아, 저실장을 어항에서 옮긴다.
탈지면은 아키의 친가에 보내려다 까먹은 화장품에서 빌렸다.
 
"우지쨩...... 괜찮아? 지금 의사에게 데려갈게"
"...레후..."
 
구더기는 힘없이 웅크린 채이다.
캔 뚜껑 대신 랩을 씌우고, 몇 군데 공기 구멍을 뚫어준다.
그것을 어깨에 메는 가방에 (옆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신중하게 넣어 운반한다.
동물병원은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저실장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생각해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갔다.
가끔 가방을 열고 안 구더기의 모습을 보지만 늘어진 채 변화는 없다.
악화도 아니라고 스스로 납득시킨다.
동물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끝낸다. 아침 일찍이었기 때문에 즉시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
젊은 수의사는 저실장을 검사대에 눕히고 위석 서쳐를 댔다.
스캔된 위석의 모습이 연동된 PC 모니터에 표시되었다.
하지만 영상은 X선 사진과 비슷해서 초보자는 환자의 위석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위석의 피로파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오늘 내일이 고비일 겁니다"
 
먼저 토시와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나는 수의사의 말에 냉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까지 건강했습니다만......"
 
내가 말하자, 수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실장석이니까요. 그것들은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자각이 둔합니다"
"수명이 다한...... 건가요, 우리 구더기의 경우는?"
"그것은 판단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정신적이나 신체적인 스트레스의 축적으로도 위석 손상이 일어나니까요"
 
그 모두가 주인의 책임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선천적으로 취약한 저실장의 경우는--
수의사는 이렇게 말을 덧붙이지만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스트레스라고 한다면, 저실장이 탁아된 당초에 홀로 방치한 것도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물론 애당초 탁아로 만난 구더기이다. 내가 어떻게 다루었어도 책임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넘어갈 수 없는 게 나란 호인인 것이다.
수의사는 시럽약을 처방해주었지만 그 효과는 저실장의 육체적 고통을 완화하는 것뿐.
회복은 기대하지 말아달라고 수의사가 말했다. 그의 진지한 태도에 나는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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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저실장을 테이블 위에 눕히고 동물병원에서 받은 스포이드를 사용하여 시럽을 먹인다.
 
"...레후...♪"
 
저실장이 오늘 처음으로 미소를 보였다. 희미했지만.
링갈 로그에 눈길을 옮긴다.
 
"아마아마한 레후... 맛있는 레후...♪"

나는 저실장에게 물었다.
 
"우지쨩...... 프니프니​할래?"
 
환자가 요구하는 경우에는 프니프니해줘도 된다고 수의사가 말했다.
이 저실장은 가슴에 위석이 있는 개체이므로 원래라면 프니프니는 피로파괴가 진행 중인 위석에 부담이 된다.
그러나 프니프니를 받는 것으로 행복회로가 자극되고, 정신적 및 신체적 고통은 차감 및 완화한다고 한다.
"모처럼인 레후, 하지만 사양하는 레후, 주인님의 마음만 받겠는 레후......"
 
저실장은 대답하여 희미하게 웃는다.
나는 구더기를 창가 어항 안으로 돌려보냈다. 양지 바른 거기가 저실장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햇님 따뜻한 레후...... 우지쨩 일광욕 좋은 레후...... 밥과 프니프니 다음으로 좋아하는 레후......"
"공원에서 마마와 오네쨩과 함께 일광욕을 하고 있었던거니?"
 
내가 묻자 저실장은 느릿느릿 고개를 저으며,
 
"공원에서는 집씨 밖으로 내보내주지 않은 레후, 공원은 무섭무섭이 가득한 레후......"
"그렇구나......"
 
동족식하는 들실장, 까마귀, 길고양이, 학대파, 악의 없이 실장석을 장난감 취급하는 아이들......
공원에 사는 실장석은 --특히 무력한 자실장과 엄지, 구더기는 일상 생활이 위험 투성이다.
그것을 나는 생각했어야 했다. 부주의한 질문이었다.
 
"주인님의 집씨에서 살 수 있어서 행복한 레후...... 무섭무섭이 없는 레후...... 밥이 매일 있는 레후......"
"......우지쨩"
 내가 말했다.
 
"우지쨩은 내 사육실장이야. 그래서 사육실장다운 이름을 붙여줄게"
"...레후...?"
 
저실장은 느릿 느릿 고개를 들고 방긋 웃으며
"우지쨩은 우지쨩인 레후, 어엿한 주인님의 사육 우지쨩인 레후......"
"그렇지만 우지쨩이라는 말은 우지쨩 모두를 부르는 거잖아? 그거 말고 너만의 이름이다"
"하지만 우지쨩은 우지쨩인 레후...... 주인님의 사육 우지쨩인 레후...... 우지쨩은 주인님에게 길러져서 행복한 레후......"
"......알았어"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가방에 넣어져서 내가 걸을 때마다 흔들리고, 피곤했지? 좀 자고 쉬려무나"
"하이 레후...... 아마아마를 마셨더니 졸린 레후...... 안녕히 주무세요 레후......"
 
저실장은 잠이 들었다. 숨소리가 부드러워 나는 안도한다.
미뤄뒀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세탁이나 청소 등 집안일을 한다.
그 후는 창가에 의자를 끌어와 책을 읽으며 저실장의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저실장은 저녁까지 눈을 떴다가 다시 자고의 반복으로 상태는 좋지도 나쁘지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밤이 되어 저실장에게 수의사가 처방한 시럽을 마시게 한다.
잠들어 있던 저실장이 들어간 어항을 내 침대 옆 바닥으로 이동시켰다.
침대 옆에 어항을 놓을 장소가 바닥밖에 없었다.
전기를 끄고 나도 잠을 청한다. 한밤중에 화장실 가려고 일어날 때 어항을 걷어차지 않도록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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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내 앞에 서있는 여자아이가 말했다.
몸집이 작아서- 라기보다는, 그냥 아이였다. 얼굴도 앳되고 체구도 겨우 십사에서 오세.
그에 비해 부분적인 발육은 꽤 양호했다.
흰 원피스를 두른 몸매는 날씬한데, 정말 일부분만 눈길을 끌 정도로 자라 있다.
내가 아는 그 누구와 닮았지만, 그래도 그럴 리 없었다.
그녀는 검은 머리였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의 머리는 밝은 갈색- 아마색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은 갈색인데 내 앞에 있는 여자는 빨간색과 녹색의 좌우 다른 색 눈동자.
그녀는 움직이는 데 편하다는 이유로 스커트는 좀처럼 입지 않지만, 앞에있는 여자는 원피스 차림.
앞에 있는 여자아이는 본대로 아이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그녀는 속은 어린애일지라도 외모는 나이에 맞다.
나보다 두살 위인 스물여섯, 아니-- 겉보기엔 더 젊은 느낌일까, 오히려 화장기가 없어서.
 
"주인님이 길러준 덕분에 우지쨩 고치를 만들고 자랄 수 있었던 레후"

여자는 말했다.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여자는 내 사육 저실장인가.
 
"주인님 덕분인 레후, 사육 우지쨩이 되어서 우지쨩은 행복했던 레후"
"앞으로도 행복한 사육실장이야......"
 
내가 말하자, 여자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우지쨩은 이제 가야하는 레후, 정말 감사합니다 레후, 하지만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모르는 레후"
 
여자아이는 곧장 나에게 다가왔다.
내려다보던 상대의 얼굴이 어느새 내 눈앞에 있었다.
굽 높은 펌프스를 신었을 때, 내가 알고 있는 그녀처럼.
실제로 여자아이는 펌프스를 신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키는 그녀 - 아키와 같다.
그럴 리는 없는데, 아무튼 그랬다.
여자아이의 좌우 손이 내 좌우 팔꿈치에 걸린다.
부둥켜안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몸을 붙인다-- 아키가 잘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보기좋게 자란 부분-- 슬렌더가 아닌 풍만한, 아키의 것과 흡사한 상반신이 내 가슴에 닿는다.
여자아이의 머리에서 희미하게 풍기는 샴푸 향기도 아키가 사용하던 것과 똑같았다.
 
".....아키"
 
얼굴이 바싹 가까워진 순간 무심코 말하자 여자아이는 몸을 살짝 떼어내고 미소지었다.
 
"그 이름은 우지쨩의 이름이 아닌 레후"
"물론, 나도 너에게 그런 이름을 붙일 생각은 없었어"
 
나는 쓴웃음지으며 말한다.
 
"내가 붙이려 한 것은 ......"
"우지쨩은 우지쨩인 레후"
 
여자는 웃는 얼굴로 단호히 말했다.
 
"그렇지만 이미 정한 이름이 있다면 받아두는 레후"
"아...... 내가 지으려고 한 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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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떴다. 커튼 틈으로 들어오는 밖의 햇살이 밝다.
몸을 일으켜 침대를 내려왔다. 어항 속 저실장은 아직 자고 있는 듯 움직이지 않는다.
주저앉아 어항을 들여다본다. 저실장의 살짝 열린 눈은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떠났구나--
나는 손가락으로 저실장의 얼굴을 쓰다듬어 눈을 감겨주었다.
저실장은 정말 행복했던 것일까. 꿈속에서 여자아이가 말한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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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실장의 시신은 티슈에 싸서 아파트 부지 구석에 묻었다.
나름대로 깊이 묻었으므로 부지에 침입한 들실장이 파낼 일은 없을 것이다.
눈을 뜬 시간이 일렀기 때문에 저실장을 묻은 뒤에도 충분히 출근 시간을 맞췄다.
일을 마치고 귀가하자 아파트의 방 앞에 아키가 무릎을 안고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야?"
 
어색하게 내가 묻자, 아키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짐...... 내 옷이 집에 도착한 걸 보고, 여기에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없어서 슬퍼졌어"
"아키가 그렇게 만든 거잖아?"
"......그렇지만......"
 아키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젠장, 그녀는 늘 그런 식이다. 내가 고르게 한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용건이야?"
"열쇠"
 아키는 일어나서 청바지 주머니에서 아파트 열쇠를 꺼냈다.
 
"돌려주지 않았으니까"
"아......"
 
그녀는 열쇠를 내밀면서 다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빌어먹을.
나는 그것을 받지 않은 채로 물었다.
 
"......또 할말 있어?"
"아니......그냥"
"알았어"
 
나는 열쇠를 받았다.
 
"화장품 보내는 거 잊어버렸어. 가지고 갈래?"
"필요한 건 또 샀어. 하지만 돌려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하는 아키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기다려"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문에 열쇠를 꽂아 돌리려한다.
 
"......나."
 아키가 말했다.

"나, 니지우라씨랑 안 잤어"
"............"
 나는 아키에게 몸을 돌려 다시 고개를 숙이고있는 그녀에게 되묻는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호텔까지 갔다, 사실이야, 왜냐하면 니지우라씨는 차기 편집장으로 내정됐고, 나는 일이 필요했으니까"
"그건 들었어"
"하지만 섹스는 안했어, 여러가지로 무서워져서 도망쳤어, 하지만 호텔은 갔어, 그래서 쥰에게서도 도망간 거야"
"이제 와서......"
 
나는 웃는다. 웃을 수밖에 없다.
 
"이제 와서 그런 걸 말해서 어떡하라고?"
"니지우라씨의 출판사 일은 취소되고, 쥰과 헤어지고, 그러면 나,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그래서 집에 도착한 짐을 보고, 부탁한 화구 말고 옷도 있는 걸 보고, 그래서 정말......"
"정말..... 뭐?"
".....내가 있을 곳이 여기 더 이상 없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
 
아키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실장석으로 말한다면 투명한 눈물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하는 일은 모두 임기응변에, 급히 생각한 거짓말을 태연하게 말한다.
웃기지 마!
이렇게 호통치고 싶다.
하지만-- 그 대신에 나는, 열쇠를 아키에게 내밀었다.
 
"......이거 아키가 가지고 있어도 돼"
 이렇듯 나는 어쩔 수 없는 호인이다.
"들어와"
 
나는 그렇게 말하고, 아키를 위해 방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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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낙원이 만들어질 때까지



조부에게 물려받은 작은 집 한채와 작은 정원,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콘크리트 벽.
그런 내 집의 툇마루 아래, 비를 피하고있는 실장석을 발견했다.
실장석은 비쩍 말라서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는 머리끝부터 쫄딱 젖어있었다.
추위와 공복 때문인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마치 주거지에서 쫓겨난 난민같은 모습이다.


그런 실장석이 내 모습을 인지하더니, 털을 곤두세우고는 소리높여 위협을 시작한다.
그것은 발정기의 고양이와 식용개구리를 섞은것 같은 탁한 소리였다.
나야말로 실장석을 멀리하고싶은 당사자이지만, 그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실장석은 약하다.
내가 실장석을 포식하는 종류의 생물이었다면 입맛을 다시고 있었을 것이다.


딱히 움직일 기미가 없는 나를 보고는 불안해졌는지, 실장석은 재차 삼차 소리를 지른다.
그것으로 울음소리는 멈춘 모양으로, 그 다음으로는 눈빛과 드러낸 이빨과 잦아드는듯한 으르렁거림에 의지할 뿐이다.
아무리 보아도 몸을 지키는 방법으로서는 믿음직하지가 못하다.
하지만 약한 모습을 보고나면 무심코 도와주게 되는것이 인지상정.
결과적으로 실장석의 뻔한 허세는, 그 몸을 지키게 되었다.
혹시 실장석의 위협이 생각한 대로의 효과를 냈다면, 나는 그 생물을 집에서 신속하게 쫓아냈을 것이다.


집 안에서 전자렌지로 데운 우유접시를 가지고나와 주어보았다.
약해진 동물에는 당연히 따뜻한 우유라는게 법칙이다.
우유를 준비하는 동안, 실장석은 그늘에서 묘하게 얌전히 있었다.
아무래도 나에 대한 위협으로 마지막의 힘을 끌어쓴 모양이다.
하지만 경계의 의사를 거둘 생각은 없는 모양으로, 울음소리는 없지만 험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있다.


그런 시선 끝에, 따뜻한 우유가 차있는 접시를 슬쩍 내려놓는다.
달콤한 우유의 냄새는 공복에 즉효겠지.
실장석도 그 사례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완된 입가에서 질질 침을 흘린다.
그래도 접시와 나를 비교하는것처럼 시선을 왕복시키는 것이, 경계하던 중이라 솔직하게 접시의 내용물에 달려들지 못하는 모양이다.
잠시 내버려두자.


책을 팔락팔락 넘기길 30분, 다시 툇마루 아래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빈 접시와 숨소리를 내며 자는 실장석의 모습이 있다.
쓰다가 헤어진 수건을 그 몸에 덮어주자 「데스우」하고 작게 중얼거리더니 가슴께에 끌어당기고, 타올의 덩어리를 안는 것처럼 실장석은 규칙적으로 잠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실장석은 툇마루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하루에 두번, 빈 접시에 먹이를 채워주었다.
식사덕분인지 얼굴과 몸은 단기간에 몰라보게 변했다.
말라서 쭈글쭈글했던 성체의 종이풍선같던 피부가, 희미한 분홍색을 띄면서 몰라보게 팽팽해져 고무공처럼 부풀었다.
의복은 여전히 너덜너덜했지만, 더러움도 지워지고 스스로의 체모와 체액으로 수선이 되어서 왠지 청빈하다고 할만한 모습이 되었다.
쓰다버린 싸리빗자루같던 머리털은, 그 웃기는 손으로 어떤 재주를 부렸는지 수공예품점에 있으면 무심코 손이 가버릴 정도로, 매끈한 털묶음으로 변해있다.


그렇다보니 엉덩이에 깔려있는 수건의 조악함이 눈에 띈다.
수건은 만난 그 날에 준 그대로이고, 돌려받는다거나 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헤진거였지만, 지금 와서는 쓰다 버린 걸레같은 모양이다.
조부가 수작업으로 정원에 만든 연못, 거기에서 의복을 세탁하는 것을 창 너머로 본 적이 있지만, 몸의 청결에도 수건을 쓰는 모양이다.
싸구려 수건은 깔개나 이불, 때수건으로 혹사되어 길게 가질 못할 것이다.
끄트머리부터 올이 풀려서 헤지고있고, 지금이라도 찢어질것 같다.


새로운 수건을 주려고 해도 받아들질 않는다.
식사의 요령으로 툇마루 아래에 놓아둔 채로 떠나보아도,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아무래도 나에게서는 식사 이외의 대접은 받지않을 생각인 모양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오래된 수건이 찢어지기 전에 새로운 수건을 줄 수 있었다.
원점회귀라고 할만한 방법으로, 자고 있는 동안에 수건을 덮어준다는 것이었지만.
자고 있는 동안에 몸에 닿은 것은 실장석에게서 보자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것인 모양으로, 저항없이 받아들었다.
덕분에 세장의 수건이 툇마루 아래에서 새로이 쓰여지게 되었다.
삼교대로 사용되는 수건이라면 세배 이상으로 오래 가겠지.


이윽고 실장석은 도감에 실려있는 그대로, 빠짐없는 견본이라도 해도 손색없는 모습이 되었다.
그런 실장석이 정원을 뛰노는 모습을 툇마루에서 바라본다.
여기에 오고 처음에는 내 모습을 보면 금방 툇마루 아래의 그늘에 도망가버렸지만, 2개월이나 지나서는 먹을것 주는 사람한테 적개심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모양이다.


하늘하늘 정원을 떠도는 하얀 나비를 쫓아서 실장석은 달린다.
나는 2개월이나 돌보아온 생물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도 갖지 못하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한다.
지금까지 머리를 쓰다듬기는 커녕 만진 적 조차 없는 것이다.


놀다가 질린 실장석이 잰 걸음으로 툇마루쪽으로 달려온다.
내 발치에 와서는 입가에 손을 대고는 고개를 기울인다.
요즘들어 자주 눈에 띄는 자세이다.
내버려두니 고개를 숙이고 툇마루 아래의 침상으로 돌아간다.
아무래도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애완동물로서 나에게 어필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실장석을 감상동물 이상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
그것은 수조에서 키우는 물고기같은 것으로, 안아주거나 쓰다듬는 것은 물론, 이불에서 함께 잔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다.


정원에 잡초가 눈에 띄게 되었다.
아무래도 지면을 파서 배설하고 다시 흙으로 덮는 실장석의 생활습관에 의한 부산물인 모양이다.
파헤쳐져 부드러워진 토양과 뿌리부근의 풍부한 양분으로 잡초는 기세좋게 초장을 높일수 있었던것 같다.

목장갑을 끼고 허리를 굽혀 파릇파릇한 풀을 뽑아서 쓰레기봉투에 담고, 쓰레기 내놓는 날에 내놓는다.
헐벗은 비옥한 토양이지만, 내버려두면 잡초만이 무성할것이다.
그래서 마트의 원예코너에서 몇봉지인가의 종자를 적당히 골라서 정원에 뿌리기로 했다.
결국은 잡초로 뒤덮이겠지만, 색이 섞이면 그나마 낫겠지.


일을 끝내고 집에서 쉬고있으니 정원에서 「짹짹」이라든가 「데스데스우」라든가 하면서 활기찬 소리가 난다.
밖을 보니 뿌린 씨앗에 새들이 몰려들고, 그것을 실장석이 쫓아내고 있다.
실장석이라는 것은 보는바 대로 둔중하고, 땅바닥을 뛰는 참새를 따라가는 것 조차 만만치않다.
하물며 날개짓을 하면 순식간에 머리위로 날아가버리는 새의 앞에서라면 말할것도 없다.
그래도 어께에 참새가 쉬어가는 허수아비 보다는 도움이 되겠지.
아무쪼록 뿌린 씨앗에서 한 톨이라도 영글면 좋겠지만, 기대는 하지않도록 하자.


또다시 잡초가 무성해질 무렵, 눈이 아플 정도로 녹색이 된 잡초에 섞여서 확연히 종류가 다른, 부드러운 줄기와 색을 가진 꽃봉오리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씨를 뿌린 성과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듯하다.
잡초의 그늘에 가려서 알아채지 못했지만, 세 봉지의 씨앗의 절반 이하라고 해도 꽤 많은 숫자이다.
과연 무사히 개화할수 있을까.
잡초 그늘에 있어서는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겠지만.
무거운 허리를 들어서 다시 잡초를 뽑는다.


실장석은 타박타박 옆에 다가와서는 내 손을 바라본다.
그렇게 잠시동안, 실장석의 감시 하에서 풀을 뽑는다.
용케도 질리지도 않고 이 단순작업을 바라보는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을 크게뜨고 하늘을 우러르더니 탁 하고 손을 마주친다.
뭔가 알아챈 모양이다.
실장석은 내 옆에 쭈그려 앉아서는 같은 모양으로 풀을 손으로 쥐고 뽑기 시작했다.
뿌리 깊은 풀을 뽑는 것은 어른이라도 꽤 힘든 작업이다.
힘없는 실장석이라면 흉내내보아도 이파리만 찢어질 뿐이다.
그 중에는 날카로운 풀도 있고, 연약한 실장석의 피부는 베인상처가 난다.
실장석은 비명을 올리더니 손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적과 녹의 액체를 보고 상처를 짧은 혀로 페로페로 핥는다.
액체가 없어진 자국에는 희미한 붉은 선만이 남았다.

플라나리아도 두 손 들만한 편리한 몸이네, 이녀석으로 두꺼비기름 연고라도 만들어팔면 한몫 잡을수 있지않을까.
물론 실장석을 아무도 모르는 시대라면 그렇겠지만.
지루한 단순작업 속에서, 칼로 썰린 실장석이 작업자들에 둘러싸여서 연고가 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귓가에서 까부는 실장석의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어느샌가 손을 멈추고 머리속에서 떠올린 광경에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너무 얼굴이 가까이 있어서 흠칫 뒤로 물러선다.
일어선 나에게 실장석에게 자랑스럽게 들어올려서 보여주는 것은, 솜털같은 뿌리가 드러난 연녹색의 새싹이었다.

얼마간의 싹은 남았고, 쑥쑥 자라서 잎을 펼치고 꽃봉오리를 키워서, 개화의 시기가 되었다.
씨앗의 봉투는 버려버렸기에 이 꽃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른다.
정원에 뿌린 씨앗에서 꽃을 피운 것은 세 포기였다.
그 씨앗의 꽃은 뿌렸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정원의 흙에서 비와 햇빛을 받으며 방치되어도 땅에 뿌리를 뻗고 줄기를 키우는 강건한 품종인 모양이다.
강건함의 대가로 화려함은 부족하지만, 꽃은 꽃이다.
다시 자라난 잡초의 융단에 조촐한 색채를 더한다.


그리고 그런 정원의 꽃 덕분에 실장석은 당연하다는 듯이 임신했다.
실장석의 생태에 관한 지식은 이제와서야 얻어들은 것이지만, 꽤나 어이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처음에는 임신했다는 생각도 못하고 영양과다에 의한 내장비만이나 변비에 의한 가스파열의 징후, 기생충의 이상증식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원래부터 임산부처럼 불룩한 배를 하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지.
꽃이 질 무렵, 개구리같은 배를 안은 정원의 임산부는, 연못가에 얕은 구멍을 팠다.
거기에 물을 넣어서 물웅덩이나 진흙탕이라고 할만한 것을 만들었다.
연못가는 돌로 둘러져있기에 도랑을 파서 연못에서 직접 물을 끌어들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실장석은 수면에 팔을 넣고는 노처럼 물을 쳐올려서 얕은 고랑에 뿌린다.
임신중임에도 기묘한 물장난을 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아무래도 이건 실장석의 본능에서 나오는 필연일 것이다.
실장석의 출산에는 연약한 영아를 받아낼 얕은 물이나 부드러운 쿠션이 불가결한 모양이다.
말하자면, 실장석의 출산이 다가왔다는 것이다.


실장석은 세마리의 아이를 낳았다.
두마리는 어미 실장석을 그대로 10분의 1로 축소한듯한 아이 실장석, 말하자면 자실장이었다.
그리고 또 한마리는, 이녀석은 다른 아이보다 한층 작아서였는지, 모체에서 퐁 하고 떨어져서는 물웅덩이에서 튕겨서 연못에 들어가버렸다.
그대로 가라앉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물보다 비중이 가벼워서인지 둥둥 떠있게 되었다.
모친은 그것도 모르고 가랑이 아래에서 테치테치 하며 산성을 올리는 아이들의 점막을 핥아주었다.
그것이 끝나고나서야 수면에 떠서 작은 소리를 올리는 또 한마리의 아이의 존재를 알아챘다.


정원 가득히 울리는 비명, 아이들도 그 체격에 맞추어서 모친의 비명에 합주를 더한다.
실장석은 서둘러서 연못에 뛰어든다.
흘수선은 실장석의 입보다 약간 아래,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눈동자를 내려서 아이를 구하려 물을 헤치며 나아간다.
하지만 실장석 자신이 만드는 파도때문에 자실장은 앞으로 나갈때마다 멀어진다.
연못가에 다다른 자실장을 드디어 잡아챈것은 30분이나 지났을 때였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물웅덩이에서 흙인형처럼 되어서 울어제끼고있다.
아직 젖도 주지 못한 것이다.
실장석은 옷자락을 걷어올리고 가슴을 내어 아이들이 마시게 하면서 건져낸 아이의 점막을 핥기 시작했다.


두마리가 만족하고는 편안한 숨소리를 내며 잠들기 시작했지만 막내의 막은 떼어내지 못했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자실장의 전신을 덮은 점막이 고착한 것으로, 말하자면 저실장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그런 저실장은 스스로의 불운도 모르고 어미의 혀놀림에 간지러운듯이 몸을 뒤틀었다.


실장석이 드디어 출산의 불상사를 인정하고, 그 증거를 때려치운 것은, 해가 넘어가는 때였다.
저실장은 흰눈을 까뒤집고 꼬리를 흠칫흠칫 경직시키면서 뒤집어져서 스스로 움직이려고 하지않았다.
태어나자마자의 물놀이와 장시간에 걸친 간지럽힘에 의한 피로, 아직 젖도 먹지못한 공복에 의해 죽기직전인 모양이다.


이렇게해서 정원에는 한마리의 실장석과 두마리의 자실장,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은 한마리의 저실장이라는 구성의 일가가 살게 되었다.
실장석의 출산극은 꽤나 재미있는 볼거리였지만, 본인으로서는 자식의 탄생을 기뻐할 겨를도 없는 피로곤비한 몸이다.
휘청휘청하는 발걸음으로 진흙투성이인 채로 웅덩이에 남겨진 아이들을 툇마루 아래에 놓인 수건 위로 옮기고, 자신도 툇마루 아래에 깔아둔 침상에 돌아가려고 한다.


그때, 실장석은 툇마루에 앉아서 시종일관 보고있던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 주위의 근육이 당겨지고, 입가가 떨리고있다.
그 표정은 만났던 때의 실장석을 방불케한다.
그 실장석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세 아이의 어미이다.
그러고보니 그 때에는 내 모습을 볼때마다 툇마루 아래로 달려갔던가.
생각해보면 많이 컸구나.
더 이상 클 일은 없겠지.



******



다 큰 실장석에 대한 흥미는 급격하게 옅어졌다.
자실장의 성장은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어미의 그것의 재현에 불과하다.

내 관심은 저실장 한마리에 집중되게 되었다.
기형개체인 저실장은 몸만이 아니고 어미까지 이상해진 모양으로, 다른 두마리의 자실장에 비해서 명백하게 지능이 모자랐다.
두마리가 손으로 먹이를 먹게 되었어도 저실장은 어미의 입으로 씹어서 부순 유동식만 입에 댔다.
두마리가 어미를 따라 정원에 판 구멍에 배설하게 되었는데도 한마리만은 계속 먹자마자 그자리에서 배설을 하고, 자신의 똥에서 구르면서 환성을 올린다.
친자가 사이좋게 정원에서 노는 동안에도 한마리만은 마찬가지로 데굴데굴 구르면서 레후레후 울고있다.
두마리가 어미의 가슴정도의 키가 되었어도, 저실장은 이제야 주먹 정도 크기일 뿐이었다.


여기까지 키운 저실장이지만, 체중의 증가와 선천적인 장해에 의해, 보행에 지장이 생기게 되었다.
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복부가 땅에 쓸려서 찢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으로, 어미가 알아채지 않았더라면 배 안의 것을 정원에 쏟아낼뻔 했다.
몸과 머리만이 아니라, 신경까지도 발육이 정체된 모양이다.
그때부터 저실장은 수건으로 둘러싸서 어미가 짊어지고 생활하게 되었다.


이렇게해서 나는 저실장에 대한 흥미도 잃었다.
변화가 적은 조용한 나날 속에서, 나는 실장석들을 잊어버리곤 했다.
수건을 갈아주는것은 물론, 빈 접시를 채워주는 것 조차도.


오랫만에 유리문을 열어 정원에 가보니 잡초가 무성한 정원이 있었고, 펌프가 고장난 연못은 실장석의 똥 같은 녹조로 물들어있다.
그리고 키가 큰 잡초 속에서 네발로 기면서 움직이고 있는 세마리의 모습.
단백질원이 될 벌레라도 찾고있는 것일까.

어미도 아이도 이젠 체구가 차이가 나질 않아서 구별이 가질 않는다.
마르지는 않았지만 피부는 지저분한 황토색으로 변색되어있다.
의복은 더러운 얼룩이 무수히 묻어, 벌레먹은 자국같다.
그리고 풀사이에서 흔들리는 등짝 어디에도 저실장의 모습은 보이지않았다.


집 담장의 문은 밀면 열리는 것으로, 도망치려고 하면 언제라도 이 정원에서 도망칠수 있을 것이다.
이쪽으로서도 먹을것 주는걸 빼먹고있었으니 불만을 말할 처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여기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은, 길거리나 공원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 이상으로 살기 힘든 장소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밖에서 여기에 도망쳐들어오는 녀석도 있을수 있겠지.
밤이슬을 막아주는 툇마루가 있고, 외적을 막아주는 굳건한 콘크리트 담장도 있다.
거기에 더하여 먹을것도 나와준다면 천국같은 기분이겠지.
먹을 것은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여기는 낙원같다는 생각으로 있는건지도 모른다.


여름방학으로 집으로 돌아갔을 때, 가족회의에서 조부가 남겨준 집을 처분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구획정리로 파격적인 값을 쳐준다는 모양이다.
어째서 현 소유주인 내가 아닌 집에 이야기가 날아갔는지는 석연지 않지만, 분명히 상속세의 출처라든가 하는거겠지.
그 집의 소유주가 진짜 내가 맞는가 하는가도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나로서는 손도 까딱않고 그 값의 절반이나 받게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절반이라고 해도 본적도 없는 큰 돈이다.
부모님 등골을 빨아먹는 방탕한 학생따위에게는 나머지 절반을 가져간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여지도 없다.


정리해서 들고나올 짐의 창고에 불과하게 된 내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1개월이 지나있었다.
빠르면 다다음달에는 철거해서 평지로 만들 장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소 감상에 젖게된다.
집을 바라보면서 현관에서 정원을 지나는 도중, 여기가 실장석들의 주거라는 것을 2주만에 떠올린다.
실장석 애호가인 친구가 실장링갈을 떠맡겨서 그때에 문득 실장석이 정원에 있었는데 하고 머리에 스쳐지나간 것이 2주 전의 일이었다.


정원에는 야성미가 넘치는 세마리의 실장석이 있다.
누더기를 걸치고 머리를 흩뜨린 그 모습에 가벼운 데자뷰를 느낀다.
그것들이 발치에 모여들어서는 손을 들어올리며 데스데스데스데스 외치기 시작한다.
받았던 실장링갈은 만보계 정도의 크기로, 받아들었을 때 그대로 라이터와 맥가이버칼과 함께 건빵주머니에 들어있다.
이런 자리에서 쓰지 않을, 호기심이 결핍한 인간이 과연 있기나 할까.


링갈 자체에는 표시기능도 스피커도 없었다.
그저 검은 플라스틱 상자에 상품명과 마이크같은 구멍, 스위치, 다이오드, 측면에 튀어나온 범용단자가 있었다.
휴대전화의 확장단자에 꽂아넣고 스위치를 넣는다.
그러자 휴대전화는 부착된 링갈을 인식하고 해당 어플을 자동으로 다운로드했다.
겨우 2초.
화면이 변환되면서 실장링갈의 조작메뉴가 나타난다.
메뉴에는 [번역][이력][기능]이라고 써있기에 번역을 골라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화면이 하얗게 되더니 하단에 [통화버튼을 누르면 번역개시!]하고 가이드가 뜬다.
나는 가이드를 따랐다.

『드디어 나타난데스 닝겐!』
『얼마나 기다리게하는데스 바보닝겐!』
『사과를 하는데스! 도게자하는데스!』

하얀 화면에 차례차례 글자가 채워진다.
작은 화면이라 따라가는게 솔직히 힘들다.

『뭘 멍하니 서있는데스, 와타시의 말이 들리지않는데스!?』
『바보같은 닝겐에게는 와타시들의 말이 어려워서 이해되지 못하는지도 모르는데스』
『그러면 실력행사인데스, 몸으로 가르쳐주는데스!』


발을 때렸다. 아프지는 않다.
고양이의 꼬리에 맞은것같은, 있는지 없는지 모를 감촉.
링갈을 통하니 나름대로 알고있을 터였던 실장석이 첫대면처럼 생각된다.
나는 실장석이라는 것이 이렇게 입이 더러울줄은 몰랐던 것이다.

『뎃픗픗프, 보는데스, 울 것 같은데스』
『너무 괴롭히면 운치 흘리면서 도망가버리는데스요』
『그건 곤란한데스, 아직 공물을 받지못한데스』


공물이라고 해도, 주머니에는 실장석이 기뻐할만한 것은 없다. 집안에는 뭔가 있을지도.
꾀죄죄한 먹이접시를 툇마루 아래에서 꺼내서 가지고있던 실장석전용 펫푸드를 담는다.
마트에서 산, 가장 싼 전용사료이다.
펫푸드의 봉투에는 【실장석 이외의 동물에는 절대로 주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주의문이 붙어있다.
녹색 펠릿의 성분 중에서 5할은 실장석의 체취와 배설물의 냄새를 중화하는 탈취제인 모양이다.
실장석 이외의 동물에게는 분명히 독이겠지.

『고귀한 와타시에게 이런 맛없는 것을 내놓다니, 머리가 안돌아가는 종놈인데스』
『콘페이토가 좋은데스, 이건 조금도 달지않은데스』
『이번은 용서해주는데스, 다음에도 이런 맛없는 것을 내놓으면 울때까지 철권제재인데스』


서로 밀치면서 먹이접시의 내용물에 달려드는 세마리를 내버려두고, 나는 정원을 걸었다.
1개월 사이에, 실장석들의 행실은 악화일로를 걸었고, 정원은 무참한 모습으로 변했다.
밖에서 주워온듯한 음식물쓰레기와 고물이 흩어져있고, 거기에 말라버린 똥이 붙어있다.
여름의 더위로 부패가 진행되어 미적지근한 바람이 불면 쉰내가 올라온다.
연못방향은 특히 심해서, 뭐가 있는지 코를 쥐지않고는 걸을수가 없다.


물이 고갈된 연못은 녹색으로 끈적거리는 거름구덩이로 변해있었다.
거기에는 실장석같은 것이 세마리 있다.
무심코 먹이접시에 달려들던 세마리와 비교하게 된다.
거름구덩이의 실장석에는 옷도 머리도 귀도 없었다.
눈은 신선도가 안좋은 생선처럼 흐릿하고, 비위생적인 환경과 발효열 때문인지 얼룩 투성이인 피부는 화상을 입은것처럼 짓물러있다.
반쯤 열린 입에서는 「데ー」하고 억양없는 소리를 흘리고있지만 링갈은 반응이 없었다.


독라의 실장석은 가장자리를 향해서 연동운동을 하고있다.
이 구덩이에서 도망치려는 모양이지만, 거름에서 어깨를 내놓자 몸이 미끄러져서 머리부터 처박힌다.
흘낏 보니 어깨뿌리에 있어야할 팔 같은 것이 없고, 표피가 덮인 심한 상처자국이 남아있을 뿐이다.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되어 거름구덩이의 표면에서 떠오르게 된 허리 아래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은 거대한 구더기 그 자체로, 머리털도 옷도 없으니 저실장조차도 아니었다.


어느새 식사를 끝내고 발치에 모인 실장석들도, 여기에 비하면 충분히 멀쩡해보인다.
세마리는 세마리의 구더기를 내려다보며, 배를 쓸어내리며 데프프 하고 웃는다.

『자비심 깊은 와타시는 분충들에게도 나누어주는데스』
『분충에는 고귀한 와타시의 똥도 아까운데스』
『닝겐, 와타시의 상냥함에 반하지마는데스요!』


가장 앞에 있던 실장석이 팟 하고 나를 향해서 한 손을 올린다.
세마리는 느릿느릿 거름구덩이를 향해서 엉덩이를 까더니 배설구에서 기세좋게 똥을 뿌린다.
브리브리 하면서 얼굴에 똥을 뒤집어쓴 구더기들은 반쯤 열린 입을 닫지도 않고 그저 꿈뻑꿈뻑 하며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실장석의 배설이 끝나자 구더기들은 멍한 얼굴로 연못가로의 등반을 재개했다.

『은혜도 모르는 녀석들인데스, 조금은 감사를 보이는데스』


실장석 한마리가 구더기 한마리에게 돌을 던졌다.
구더기는 이마의 아픔에 머리를 비튼다.
굴욕보다는 아픔쪽에 민감한 모양이다.

『오마에도, 오마에도, 바보같은 얼굴 집어치우고 닝겐 앞에서 와타시의 상냥함과 아름다움을 칭찬하는데스!』


나머지 두마리도 가세해서 돌을 던진다.
비처럼 쏟아지는 돌맹이에 구더기들의 얼굴에 지각 같은 것이 돌아온다.
치욕이라면 몰라도 고통에는 정신을 차릴 정도로 민감한 모양이다.
묵직하게 덮여있던 눈꺼풀이 열리고,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한마리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당장 절규를 올렸다.
놀란 실장석들은 투석을 멈추었다.
비명을 올린 한마리에 호응해서 두마리도 나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내면서 목이 찢어져라 외친다.
여기에서도 아직, 링갈은 무반응이었다.
나는 저실장이 연못에 떨어졌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구더기가 하는 말에 따르면, 세마리의 실장석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여기에 들어온 들실장이고, 세마리의 구더기가 이 정원의 원주민인 모양이다.
희미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던, 황폐해진 정원과 억지부리는 실장석들에 대한 위화감도 납득이 갔다.
원주민인 실장석들은 내가 없는 동안, 지금에 이르는 경위를 나에게 설명했다.
실장석의 끊임없는 울음소리를 배경음으로 문장화되는 그것을 읽는 것은 속독의 재주가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세부사항은 아니라도 대충의 일은 이해할수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들어온 세마리의 들실장에 대해서 실장석 친자는 주인에게 맡겨진 정원을 지키기위해 싸웠다.
그러나 풀뿌리와 이슬과 벌레 따위로 허기를 견디던 몸으로 맞서야 하는 상대는, 바깥세계의 부족한 식량을 싸워 얻어내면서 여기까지 살아온, 백전연마의 야생이었다.
승부는 육식동물 대 초식동물같은 모양이었고,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친자는 옷은 물론 몸에 나온 크고작은 돌기라는 돌기는 죄다 뜯겨나간 후 말라버린 연못바닥에 던져졌다.
그리고 들실장은 그 정원을 거점으로 하여 생활을 시작했고, 친자는 분뇨처리기로 살려둬지고 있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실장석은 가열찬 탄압을 받으면서도 모습이 보이지않는 주인에 대한 충성을 간직했다는 미담이다.
친자가 모두 나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었다는것도 몰랐지만.
어미는 몰라도 그 아이는 지금까지 먹이는 커녕 접촉조차 없었다.
우직한 어미의 생각에 감화된, 미담의 피해자라고 할 것이다.
한 장수가 세운 공에 만명의 뼈가 마른다던 그거다.(一將功城萬骨枯)
이러니까 가족이 광신을 가지고있으면 무섭다는 거겠지.
그러한 미담은 남의 일이라면 몰라도 나한테 일어나서야 감동이고 뭐고 없는 모양이다.
미담이라는건 쓸데없는 것은 생략하고 남에게서 들을때에야 미담인 것처럼.


실장석이 이야기하는 동안, 들실장들은 기죽지도않고 입을 모아서 나오지도 않는 휘파람의 흉내를 내거나 이쪽을 향해 입에 손을 대고 고개를 기울여 아양을 떤다든가, 드러누워 배설구를 후비거나 하고있다.

『뭐, 지나버린 일은 상관없는데스』
『이런 분충에 상관할것 없는데스, 와타시만 봐주는데스』
『뎃스응, 그런것보다 오나니ー데스응』


실장석의 호소에 대한, 들실장의 대답.
판결을 기다리는 것처럼 여섯쌍의 눈이 나를 주시한다.
이사를 결정하기 전이었다면 정원을 더럽힌 장본인인 들실장에 대해 분노를 느꼈겠지만, 여기를 떠날 몸이라 집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좋을대로 하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실장석들에 대해서는 애수와 불운을 애도할 뿐.
들실장에 대한 보복을 부르짖어도, 이런 결말도 있게 마련이지 하고 납득하는 방치이다.
죄가 있다면 나에게도 있다.
벌을 내린다면 그 손으로 내리면 된다.
나는 방관자에 불과하고, 판사의 흉내따위는 낼 생각 없다.
어께를 수그리고 떠날 뿐.


하지만 짐을 정리하러 집에 들어가려고 할때, 실장석은 울어제끼고 들실장은 엉겨붙어서 시끄럽게 되었다.
이미 새 집의 수속도 끝났으니 이사의 준비로 여기에 머무는 것도 며칠뿐이겠지만, 여기에서 실장석때문에 골치아프게 되는것은 사양이다.
떠나는 새는 뒤를 흐트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정원의 오염원을 내버려두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정원도구가 들어있는 작은 창고에서 삽을 꺼내들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사탕을 미끼로 들실장을 유도한다.
거름구덩이의 주변에 도착해서는 사탕을 던진다.
들실장들은 그 궤적을 눈으로 쫓았고, 사탕은 그들을 지나쳐 거름구덩이 안에 떨어졌다.
들실장들이 등을 돌리고 사탕이 가는 곳을 주시하고 있는 동안, 무방비한 목덜미를 삽 끝으로 한방씩 찔렀다.

「데퍗」
「데븃」
「데뵷」


뼈를 자른다는 감촉도 없을 정도로, 녹슨 삽날 끝은 상상 이상으로 예리했다.
들실장들의 머리는 차례로 몸통에서 떨어져 그 시선이 가고있던 쪽으로 굴러 떨어진다.
무슨일인지 이해하지 못한채로, 들실장들의 머리는 철퍽 하고 스스로의 배설물에 싸여서 두리번거리며 눈동자를 움직인다.
그 머리위에 목 없는 몸이 무너져내리고, 머리통을 똥구덩이의 바닥에 매장하는 누름돌의 역할을 수행했다.


구더기 실장석들은 갈채를 올리며 상찬의 눈초리를 보낸다.
기슭을 올라와서 몸을 꿈틀거리며 내 발 아래로 쇄도해온다.
그 얼굴들도 삽으로 때려서 부순다.
실장석은 비명도 올리지못하고, 부서진 육친의 고깃조각을 뒤집어쓰면서 마지막까지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사의 준비는 금방 끝났고, 가구와 짐은 운송업자의 트럭에 실어 보냈다.
남은 것은 몸만 새 집으로 옮기는 것 뿐.
그렇게하면 여기는 두번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센티멘탈해지기도 한다.
넓어진 바닥, 가구에 가려져있던 벽, 낮은 천정, 왠지 묘하게 쓸쓸하다.
텅 빈 방이 쓸쓸한건지, 헤어지는것이 쓸쓸한건지, 도통 판별이 되질 않는다.


—레후, 레후레후

정원에서 실장석의 것 같은 작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둘러보아도 정원에서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정원의 풍경도 황량한 것이다.
연못이 있던 곳은 말라서 굳어버린 실장석의 배설물과 사체로 메워져있다.
실장석이 생전에 남긴 똥의 악취도, 처음에는 강렬했지만 다음날에는 거짓말처럼 사라져있었다.
실장석 자신의 사체도 부패하지않고, 미이라처럼 비쩍 마르더니 너덜너덜한 흙덩이같은것이 되고, 건드려보니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들실장이 들고온 쓰레기를 청소하고나니 실장석이 존재했던 흔적은 놀랄정도로 적었다.


비어버린 방 만이 아니라, 실장석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쓸쓸함의 요인인지도 모른다.
그 연약하고 작은 인간모양을 부수는 황홀을 맛보고 약간 중독된것인지도 모른다.
마약의 환각처럼, 지금도 생각하면 꿈이나 환상 속에서 있었던 일처럼 생각된다.
그 맛을 못 잊어서, 실장석의 피를 보러 공원에 드나드는 일당에 가세하는 것도 시간 문제가 아닐까.
그렇게 된다면 무기는 역시 삽이 좋겠다.
언젠가 군납용품점에서 본, 접이식 삽이 적당하겠지.
휴대성은 물론, 전용의 주머니도 있어서 보기도 좋다.
그것을 한손에 들고, 공원의 덤불로 도망치는 실장석을 좇는다…… 상상만 해도 바보같다.
나같은 심약한 인간은, 어두운 욕망을 방 안에서 밖에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레후, 레후레후

또 다시 실장석의 목소리, 녀석들의 유령이라도 있는건가.
아니면 본격적으로 중독이 되기라도 한건가.
다시 정원을 둘러보니, 연못의 흔적인 파묻은 지면의 일부가 일어나면서 꿈틀꿈틀 움직인다.
가까이가보니, 허방다리가 무너지는 순간처럼 지면에 작은 구멍이 뚫리고 거기에서 실장석이 얼굴을 내민다.

「렛레후ー」

소리를 지르고 기어나온 그것은, 햇살 아래에 온몸을 드러낸다.
손발이 퇴화하여 기는것밖에 할수없는, 반푼이 저실장이다.
재가 쌓인것같은 부드러운 흙바닥 위에서, 기어간 후에는 바퀴자국같은 흔적이 남는다.
여기에서는 부드러운 저실장의 배도 상처입지 않는다.
잠시 빙글빙글 돌던 저실장이 그리는 원이 커지면서, 내 발치에 부딛혔다.
그 장애물을 넘으려고 할때, 그 멍텅구리는 나를 알아챘다.

「레후레후, 레후레후」

울음소리에 실장링갈을 쓴다.

『……닝겐상이 있는레후, 닝겐상은 주인님인레후?』

나는 비슷한거라고 대답한다.

『레후ー, 그렇다면 여기는 낙원인레후, 마마가 말했던레후
주인님과 함께 있으면 거기가 낙원인레후
주인님은 언제나 우지쨩들을 지켜봐주는레후』

나는 저실장이 어디에서 온건지 물어보았다.


『우지쨩은 마마와 오네쨩들과 낙원에 있었던레후.
밥이 없어지고나서 우지쨩은 계속 마마 안에 있었던레후.
처음에는 운치를 먹고 운치를 싸고 했는데, 졸리게 된레후.
일어나보니 배가 꼬르륵한레후, 어두운레후, 마마도 오네쨩도 없는레후.
우지쨩 싫어싫어한레후, 싫어싫어하니까 밝아진레후
그렇게하니 거기가 낙원이었던레후, 그래도 마마도 오네쨩도 없는레후』

저실장은 그렇게 말했다.

저실장의 모습이 보이지않은것은, 모체회귀나 동면 같은것인 모양이다.
육아방기나 동족식으로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캥거루 비슷한 재주를 부린 것이다.
또는 저실장이 잠결에 어미의 배에 침입한 것일 뿐인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들실장의 습격에도 상처없이 살아남았고, 흙덩이가 된 어미의 사체에서 살아서 탈출할수 있었다.
태생이 불행했던 만큼, 살아남는다는 운에는 좋았던듯 하다.

『레후레후ー, 배가 꼬르륵하는레후, 꼬르륵해서 운치도 안나오는레후, 밥이 먹고싶은레후
마마는 어디 간레후?
밥을 먹여주길 바라는레후, 배 빵빵하게 해서 잔뜩 운치하고싶은레후』

나는 다시 물어보았다. 어미가 있는 곳에 가고싶으냐, 아니면 낙원에 있고싶으냐 하고.

『레후ー, 마마는 마마가 없어진다해도 낙원에 있으면 언제나 행복해진다고 말한레후
행복이라는건 주인님과 함께 있는것이라고 말한레후
그래도 우지쨩은 작으니까 잘 모르는레후, 커지게되면 알게된다고 마마가 말했던레후
마마가 한 말을 지켜서 착한아이로 있으면 커지는레후
우지쨩은 착한아이니까 마마가 한 말대로 하는레후
우지쨩은 주인님과 함께 있는레후』


이렇게해서, 나는 새 집에서 저실장과 지내게 되었다.

임대아파트의 6층, 세 방 중에서 하나인 창문이 없고 낮에도 어두운 장소.
저실장의 어미가 말한 낙원의 정의로 비추어보자면, 거기는 분명히 낙원이다.
나는 거기에서 저실장으로부터 실장석이라는 것의 저항할수 없는 매력을 배우고, 그 심연에 빠져들었다.
저실장에게 꽃가루를 주어서 출산해라 늘어나라 하고 재촉했다.
새로운 피의 필요를 인정해서, 공원에서 선정한 건강한 실장석도 여기에 불러들였다.
그들이 낙원에 한발짝 들였을때의 표정은 볼만한 것이었다.
한마리의 실장석이 방랑 끝에서 겨우 찾아낸 낙원, 그 혈족은 후대까지 낙원에서 지내는 것이다.











럭키 아이템


"슬슬 오후의 밥 모으기 하러 나가는 데스. 오마에들, 준비는 된 데스?"

"네ㅡ 테치~."
"이모토쨩 서두르는 테치!"

작게 접은 식량 봉지를 겨드랑이에 낀 자실장들이 골판지 하우스를 들여다보는 친실장에게 씩씩하게 대답한다.

"레훗? 레후~!"

구더기실장도 언니들을 따라 씩씩하게 꼬리를 흔들며 대답한다.

"구더기쨩은 작으니까 밥 찾기는 아직 무리 테치. 집 보기 부탁하는 테치."

차녀가 쓴웃음을 지으며 구더기실장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선물 갖고 올 테니까 얌전하게 코 자고 있는 테치."

"구더기쨩 기다리는 레후..."

가장 예뻐해주는 차녀에게 집을 봐달라고 부탁받은 구더기실장은 조금 아쉬운 듯이 물러났다.

"오네쨩! 다들 기다리고 있는 테치!"

한발 먼저 밖으로 나간 사녀가 차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해님이 지기 전엔 돌아올 테치."

구더기실장에게 가볍게 볼을 비비고 나서 차녀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기다렸지 테치!"

"이제 다 모인 데스. 그럼 문단속 데스."

실장 친자의 집은 인간이나 다른 실장석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숲 속에 감춰져 있었고,
옆으로 누운 골판지를 조금이라도 넓게 사용하기 위해 뚜껑을 바깥쪽으로 내밀어 지붕과 벽 대신으로 삼았다.
친실장은 바닥의 연장 부분에 해당하는 골판지 뚜껑을 꺾어 올려서 문 대신으로 삼고는 뚜껑 앞으로 큰 돌을 굴렸다.

친실장이 처음 골판지 하우스를 만들었을 때는 문이 하우스 안으로 쓰러지는 결점이 있었다.
고민 끝에 쓰레기장에서 주운 압정을 좌우 벽에 하나씩 달아서 도어 스토퍼로 만드는 개량을 떠올린 이후, 문이 쓰러지는 일은 없어졌다.
문은 압정 스토퍼와 바깥에 놓아둔 큰 돌에 끼어있어서 자실장이나 구더기실장의 힘으로는 안에서 열 수 없다.
이로써 안에 있는 구더기실장은 완전히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열린 면의 아래쪽 반이 닫혔을 뿐인데도 골판지 하우스 안이 제법 어두워진다.

"레후~."

열린 면의 위쪽 반을 올려다보며 구더기실장이 쓸쓸하게 울었지만 밖에 있는 언니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데스데스 테치테치 하며 밖에서 들리던 가족의 목소리가 이윽고 멀어져가자 조금 전의 소란이 거짓말 같은 정적에 휩싸였다.

친실장, 자실장 네 마리, 구더기실장 한 마리가 한꺼번에 들어가면 비좁은 골판지 하우스지만 구더기실장 한 마리뿐이면 터무니없이 거대한 공간이다.
너무 조용해서 귓속이 아프다.
오늘은 바람 소리도, 밖에서 날아다니는 날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구더기실장의 위치에서 바깥쪽으로 얼굴을 돌리면, 강한 햇살이 닿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관목의 잎사귀들과 얼마 되지 않는 푸른 하늘이 보인다.

단조, 너무나도 단조로워서 울적한 시간이 흘러간다.

"레후~ 레후~."

구더기실장이 의미도 없이 울어보지만 대답하는 이는 없다.

한기를 느낀 구더기실장은 몸을 부르르 떨며 똥을 조금 흘리고 나서 골판지 안쪽까지 꼬물꼬물 기어갔다.
골판지 안쪽에는 침구로 쓰는 낡은 수건이 꼬깃꼬깃 뭉쳐져 놓여있고, 그 위에 차녀가 선물로 주워온 엄지실장 인형이 얹혀져 있다.

낡은 수건에 올라가서 구더기실장보다 조금 큰 플라스틱제 엄지실장 인형에 몸을 기댄다.
인형은 차가웠지만 좋아하는 차녀가 가까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구더기실장의 표정이 살짝 풀린다.
무언가 즐거운 생각을 하려 했지만 구더기실장의 작은 머리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구더기실장은 뭔가 열심히 생각하려 했지만 그러는 사이 졸음이 와서 잠들어버렸다.


                   △


닷새 전까지만 해도 자실장 네 마리와 구더기실장은 이른 아침과 오후,
두 번 밥을 찾으러 나가는 친실장의 귀가를 매일 골판지 하우스 안에서 함께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물 그릇과 화장실 대용의 스티로폼 쟁반, 침구인 낡은 수건 외에 아무것도 없었던 골판지 하우스에서는,
자실장 네 마리에게 있어서 자매 구더기실장은 최고의 애완동물이자 장난감이기도 했다.
구더기실장도 인기를 누리며 매일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닷새 전 저녁, 자실장들이 어느 정도 커졌다고 판단한 친실장은 "오마에들에게 이것을 주는 데스."하며 자실장 네 마리에게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작은 봉지를 내밀었다.
이제까지 제대로 밖에 나가지 못했던 자실장들은 갑작스러운 선고에 동요했지만,
친실장의 "밥 모으기를 안 하는 자는 밥의 몫이 줄어드는 데스."라는 한마디가 결정타가 되어 네 마리 모두 내일부터 밥 모으기에 따라가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구더기실장은 "구더기쨩도 가는 레후ㅡ!"라고 떠들었지만
친실장은 "바깥은 위험하니까 구더기쨩은 집 보는 데스."라고 말하며 상대하지 않고 문단속을 하고서 자실장들을 데리고 나가버렸다.
골판지 하우스에 남겨진 구더기실장은 소리 높여 울었지만 잠시 후 울다 지쳐 잠들어버렸다.

정오 이전에 돌아온 실장 친자는 눈물바다 속에서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구더기실장을 발견했다.
친실장이 이파리로 바닥을 걸레질하는 동안 차녀는 눈물에 젖은 구더기실장을 안고 달래며,

"바깥은 위험한 테치. 마마의 말대로였던 테치. 자동차에 길고양이, 까마귀, 위험한 것이 잔뜩 있었던 테치.
죽은 동료도 몇 마리 보고 왔던 테치. 구더기쨩은 좀 더 커지고 나서 나가는 테치."라고 말을 건넸다.

말을 걸면서 차녀는 깨닫고 있었다.
자신은 매일 키가 자라고 있는데 구더기실장은 태어났을 때보다 조금 커졌을 뿐이다.
어쩌면 평생 이대로일지도 모른다. 함께 밥을 모으러 나갈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외톨이는 쓸쓸한 레후우."

"음~ 맞다! 선물 가져오겠는 테치."

"정말 레후?"

"정말 테치. 열심히 찾을 거니까 구더기쨩도 열심히 집 보는 테치!"


실장 친자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오후의 밥 모으기에 나섰다.
구더기실장은 울고 싶은 것을 참으며 마마와 언니들을 배웅하고, 오로지 자는 것으로 지루한 시간을 때웠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 무렵, 눈을 뜬 구더기실장이 아직 가족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알고 다시 소리 높여 울 뻔한 바로 그때,
낯익은 데스데스 테치테치 소리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렸다.
밥 모으기에서 돌아온 실장 친자는 꼬리를 떨어져 나가도록 흔들며 기쁨을 표현하는 구더기실장의 환영을 받았다.
가장 먼저 구더기실장에게 달려가는 차녀의 식량 봉지에서는 선물인 엄지실장 인형이 반쯤 삐져나와 있었다.


선물로 엄지실장 인형을 고른 것은 사실은 친실장이었다.
쓰레기장에서 밥 찾기를 끝낸 뒤에도 "구더기쨩한테 선물을 약속한 테치."하며 쓰레기 뒤지기를 멈추지 않는 차녀를 보다 못해서,
타지 않는 쓰레기 속에서 엄지실장 인형을 찾아내어 "오마에가 나르는 데스."하며 차녀의 식량 봉지에 밀어 넣었다.

엄지실장 인형은 한달 전부터 타지 않는 쓰레기에 섞여 종종 나오게 된 물건으로, 높이는 4㎝, 머리와 팔다리, 뒷머리가 움직이는 플라스틱제의 채색된 인형이다.
"자들의 장난감으로 하는 데스."하며 몇 개 가져가는 들실장도 있지만,
대부분의 들실장들은 살아있는 장난감인 구더기실장이나 엄지실장이 이미 가족에 있어서 먹을 수도 없는 엄지실장 인형은 탐내지 않는다.

들실장들은 알 길이 없지만 이 인형은 실장푸드 회사가 내놓은 '실장석 전용 청량음료'에 딸린 판촉용 부록이었다.
'실장석 전용 청량음료'는 판매 초기에는 전혀 팔리지 않는 상품이었지만, 성분을 바꾸고 행운을 부르는 럭키 아이템으로 명명한 엄지실장 인형을 부록으로 넣고
텔레비전 선전을 내보내자 삽시간에 사육실장들이 사육주에게 보채서 박스 단위로 구매하는 히트 상품이 되었다.

사육실장들이 노리는 것은 수백 개에 단 한 개 존재하는 '황금 엄지실장 인형'.
행운을 부르는 럭키 아이템인 엄지실장 인형 중에서도 최상급의 행운을 부른다는 황금 엄지실장 인형은,
텔레비전에서 "당첨된 데스~!!"하며 황금 엄지실장 인형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실장석과, 그것을 부럽게 바라보는 실장석들의 광고가 연일 방송되자
얼마 안 가서 사육실장들의 물욕을 일으켰다.
사행심에 사로잡히기 쉬운 실장석들은 자신이야말로 황금 엄지실장 인형에 당첨될 자격이 있다며 단번에 혈안이 되었다.
사육주들은 싸구려 금도금 인형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육실장의 조르기에 못 이겨 사주고 만다.

황금 엄지실장 인형이 나올 확률은 수백 개에 한 개꼴,
이것이 당첨이라면 자연스럽게 꽝이 될 '녹색 옷에 갈색 머리카락으로 채색된 평범한 엄지실장 인형'이 대량으로 나오기 마련이지만,
사치에 익숙해진 사육실장들은 평범한 엄지실장 인형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키ㅡ! 꽝 인형은 재수가 없는 데스!!"하며 그 자리에서 버린다.
그 결과, 최근에는 들실장도 쓰레기를 뒤질 때 엄지실장 인형을 얻을 기회가 늘었다.

또한 황금 엄지실장 인형을 찾다 보면 '실장석 전용 청량음료'도 대량으로 사육실장의 수중에 남게 되지만,
실장석 취향의 무턱대고 달콤한 맛이기에 대부분의 사육실장들은 청량음료를 버리는 일 없이 벌컥벌컥 마셔서 처리한다.

그렇다. 바로 이렇게 한 번이라도 들이키도록 하는 것이 실장 푸드 회사의 목적이었다.
황금 엄지실장 인형을 노리고 실장석 전용 청량음료를 사준다고 해도 음료수를 마시지도 않고 버린다면 상품으로서는 실패다.
설령 마시더라도 황금 엄지실장 인형이 나오면 더는 음료수를 사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도 상품으로서는 실패다.
부록이 딸려있지 않아도 꾸준히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지 않으면 그동안의 개발 투자가 물거품이 된다.

5개월 전, 실장푸드 회사가 시장에 내놓은 실장석 전용 청량음료의 첫 출하분은 반품으로 산을 쌓았다.
실장석의 건강을 고려하여 질리지 않는 약한 단맛을 가미한 것이 역효과가 나왔다.
사육주는 실장 푸드를 출시하는 회사 제품이라면 실장석의 건강에 좋을 것이라 여기고 실장석에게 주지만,
회사의 연구실에서 키우는 테스트용 실장석과 달리 애호파에게 키워지는 실장석들은 인간용 청량음료에 완전히 길들어 있어서
이제 와서 약한 단맛의 청량음료를 마셔도 맛있다고 느끼지 않고 입에 대기만 해도 거부 반응을 보였다.


대량 반품 파동의 와중에 실장푸드 제조 회사 내에서 열린 반품 대책 회의는 논쟁이 일어났다.

영업 부문 측은,
"이번 사태를 초래한 원인은 상품 개발 방침에 잘못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당사는 실장석용 청량음료를 건강 음료로 개발했지만 청량음료는 실장 푸드와 달리 기호품 성격이 짙어서 실제 소비자인 사육실장들의 기호 측면을 중시해야 했다.
이러한 대량 반품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음 생산분에는 상품 외견과 가미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가미에 대해서는, 실장석이 단것을 선호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청량음료를 더 단맛으로 변경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저 달콤하게 만들기만 해서는 콘페이토나 초콜릿 같은 과자류를 뛰어넘을 수 없다.
사육실장들이 청량음료를 고르게 하려면 다른 한방이 필요하다.

당사 연구실에서 입수한 이 자료에 의하면 실장석은 아주 소량의 알코올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되었다.
심지어 취한 상태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되었다.
술 자체를 실장석 음료로 팔면 애호파의 반발이 생기지만, 청량음료에 알코올을 약간 넣었을 경우는 어떨까.
비록 농도는 진하지 않아도 실장석에게 한 번이라도 대량으로 마시게 한다면 맛을 들인 실장석이 반드시 다른 한 병에 손을 뻗을 것이다."

그렇게 강하게 주장했다.

그에 대해 상품 연구 개발 부문은,
"품질에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반품은 실장석용 청량음료가 시장에 침투할 때의 일시적인 현상이다."라고 상품 개발 초기의 건강 지향 노선을
유지할 것을 주장했지만 반품의 산을 떠안은 유통 관리 부문의 비명을 들은 뒤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투자 비용 회수를 우선하려는 회사 경영진은 청량음료 개발 방침을 영업부문의 주도에 맡기기로 했다.
또한 최초의 한 병을 사게끔 해서 마시게 하기 위해 판촉용 부록을 추가해서 텔레비전 선전을 내보낼 것도 동시에 결정되었다.

회사 연구실의 테스트용 실장석을 이용한 실험 결과도 양호했고, 중국 공장에서 과잉 생산하던 실장석 인형을 싼 값에 대량으로 입수한 일도 있었기에
3개월 뒤 실장푸드 제조 회사는 청량음료에 새로운 상품명과 화려한 라벨을 붙이고 출하를 시작했다.
미심쩍은 합성감미료와 착색료, 향료를 듬뿍 섞은 음료가 되어,
라벨의 '사람용 음료가 아닙니다. 주인분은 마시지 말아주세요.'라는 붉은 글자로 된 주의문 아래에 기재된 원재료의 숫자는 배로 늘어났다.
향료 나열에 섞여 자연스럽게 '과실주'가 적혀 있다.
이는 알코올 성분 표시 의무가 없는 미량의 알코올이 들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병 주둥이에는 속이 보이지 않는 작은 은색 비닐 봉투가 걸려 있고, 안에는 엄지실장 인형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


혼자서 집을 보던 구더기실장이 문득 잠을 깼다.
누가 자신을 부른 기분이 들었지만 잘 모르겠다.
가족이 돌아왔나 싶어서 고개를 들고 돌아보았지만 골판지의 열린 면으로 엿보이는 하늘은 아직 푸르러서 그런 시간이 되지는 않은 것 같다.
가족이 돌아오는 것은 하늘이 붉어졌을 무렵이라는 것쯤은 구더기실장의 머리로도 기억하고 있다.

어쩐지 무척 신경이 쓰였기에 더 잘 보겠다고 고개를 휘휘 돌리지만 머리를 골판지 하우스 안쪽으로 향하고 자고 있었기에 시야에 제약이 있다.
몸의 방향을 바꿔보려고 한 구더기실장은 몸을 두세 번 흔들어 기세를 붙여서 낡은 수건의 경사면을 가볍게 옆으로 굴러서 바닥으로 내려갔다.
구르는 도중 신이 나서 "텟테레ㅡ."하고 소리가 나와버리지만 바닥에 도착해서 옆구르기가 멈출 즈음에는 대개 눈이 빙글빙글 도는 것이 혼자 데굴데굴의 단점이다.

"조금... 기분 안 좋은 레후...."

조금 흐트러진 구더기실장이 중얼거린다.

바스락, 바스락바스락

집 앞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구더기실장이 문이 있는 방향으로 바동바동 몸을 돌리자, 바깥으로 열린 뚜껑이 왼쪽 벽에 닿은 부분이 더욱 벌어질 것처럼 천천히 스르륵 움직이고 있다.

이내 지붕 부분의 뚜껑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바깥으로 벌어져 지붕이 왼쪽으로 풀썩 기울었다.

"레? 레훙?"

구더기실장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왼쪽의 뚜껑은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아직 바깥쪽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구더기실장이 기척을 느끼고 시선을 떨어뜨리자, 문과 골판지 본체에 살짝 생긴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는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레후우?"

위험이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더기실장이 태평하게 운다.
틈새를 통해 안을 들여다보는 눈은 구더기실장을 주시하고 있다.

이윽고 바깥에서 "구더기쨩 테치이!"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안을 들여다보던 눈이 사라지고 "텟치 텟치!"하며 문 앞에 놓인 돌을 치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구더기실장은 역시 가족이 돌아왔나 싶어서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지만 이윽고 "마마 어딨는 레후?"라고 중얼거렸다.
평소 같으면 고임돌을 치우는 친실장의 모습이 문 위로 보였을 텐데 오늘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제법 시간이 흐르고 문이 바깥쪽으로 반쯤 쓰러졌을 때, "텟치 텟치!"하는 목소리가 끊기더니
낯선 자실장 한 마리가 문과 골판지 본체의 틈새로 몸을 비집고 들어와 골판지 안으로 뛰어들었다.

자실장은 일직선으로 구더기실장을 향해 달려오더니 구더기실장을 와락 끌어안았다.

"구더기쨩 구더기쨩 구더기쨩, 귀여운 테치이!!"

"렛뺘ㅡ!!"

처음으로 맡는 가족 이외의 체취. 느닷없는 사태에 놀란 구더기실장은 낯선 자실장의 품속에서 똥을 지리며 몸부림친다.

"테치!? 구더기쨩 미안 테치. 아팠던 테치이?"

자실장이 구더기실장을 천천히 내려주자, 구더기실장은 도움을 청하는 듯이 눈물과 똥을 흘리며 안쪽에 있는 수건과 엄지실장 인형을 향해 꼬물꼬물 움직였다.

당황하는 바람에 낡은 수건의 경사면을 잘 오르지 못한다.
꼬깃꼬깃 뭉쳐져 놓여있는 수건 위에서 버둥거리는 사이에 움푹 들어간 곳에 빠져서 발랑 뒤집어졌더니,
어느새 바로 뒤까지 온 자실장이 구더기실장을 뒤덮을 듯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레뺘! 렛뺘ㅡ!"

눈물을 찔끔거리며 싫어싫어하는 구더기실장을 보고 난처한 표정을 짓던 자실장,
구더기실장이 올라가려던 곳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건을 달려 올라가 엄지실장 인형을 집어들고,

"구더기쨩, 이거 테치? 이거 테치?"

그렇게 말하며 엄지실장 인형을 구더기실장 옆에 놓았다.

구더기실장은 구색만 갖춘 단순한 돌기에 불과한 두 손 두 발로 엄지실장 인형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자실장에게서 얼굴을 돌리고 떨고 있다.

"무섭지 않은 테치. 구더기쨩한테 아무 짓도 안 하는 테치."

자실장은 구더기실장의 옆에 앉아서 말을 건다.
구더기실장을 살짝 쓰다듬으려고 손을 뻗지만 그때마다 낌새를 알아챈 구더기실장이 움찔하고 반응하는 바람에 어쩌면 좋을지 고민하던 자실장,
문득 무언가 떠올리더니 "텟테로체~♪"하고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구더기 실장의 떨림이 멈췄다.
이것은 마마나 오네챠들이 가끔 흥얼거리는 노래의 멜로디. 구더기실장이 아는 유일한 곡.
자실장이 부르는 곡의 가사와 가족이 부르던 곡의 가사는 내용이 여기저기 달랐지만 구더기실장의 기억력으로는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엄지실장 인형에 매달려있던 팔다리에서 점점 힘이 빠지고, 노래에 맞춰 꼬리를 느긋하게 흔드는 구더기실장.

"레훙, 레후웅♪"하며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다.

노래가 끝나는 타이밍을 가늠하여 자실장이 구더기실장의 배를 프니프니 눌러본다.

"레후우."

구더기실장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구더기실장의 작은 머리를 차지하고 있던 '공포'는 완전히 '만족'으로 바뀌어있었다.
엄지실장 인형에서 팔다리를 떼고 드러누운 구더기실장이 싱글벙글하며 자실장을 바라보고 묻는다.

"레ㅡ? 오네쨩 누구 레후?"

이 자실장은 구더기실장의 언니들보다 크다. 굳이 말하면 중실장에 가깝다.
문 앞에 놓아두었던 돌도 이 크기의 자실장이었기에 그나마 움직였던 것이리라.

몸 곳곳에 찰과상이 있고 뒷머리도 많이 빠졌다. 실장복도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있고 몇 군데 찢어지고 피가 밴 자국이 있다.

구더기실장의 물음에 자실장의 얼굴이 흐려졌다.

"오네쨩? 오네쨩은... 오네쨩 테치! 오네쨩이니까 오네쨩 테치!"

"레훙?"

혼란스러워 하는 구더기실장을 끌어안은 자실장은 구더기실장을 어르며 골판지 하우스 안을 휙 둘러보았다.

"레후레후~♪"

자실장의 체온이 전해져서 따뜻해진 것에 기분이 좋아진 구더기실장. 이제 자실장이 누구든 상관없어졌다.

"구더기쨩은 혼자 테치?"

행복감에 휩싸인 구더기실장은 자실장이 갑자기 무슨 질문을 했는지 몰랐지만 일단,

"그런 레후♪ 오네쨩, 프니프니해주는 레후. 비행기해주는 레후."

그렇게 적당히 대답하며 꼬리를 파닥파닥 움직이며 애교를 부리고 있다.

자실장은 조금 생각하더니 구더기실장을 보며 말을 건넸다.

"...오네쨩하고 똑같은 테치. 결정한 테치! 오네쨩은 구더기쨩의 오네쨩이 되는 테치! 여기서 같이 사는 테치."

"레후레후우♪ 오네쨩, 오네쨩 레후."

자실장이 구더기실장 혼자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줄도 모르고, 구더기실장은 놀이 상대가 생겼다며 무턱대고 좋아하고 있다.

뭐하고 놀까? 프니프니는 당연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싶고 데굴데굴 놀이도 하고 싶다....
그렇지, 그것이 좋겠다.

"오네쨩, 저기 레후우."

구더기실장의 얼굴은 낡은 수건의 산 정상을 향하고 있다.

"구더기쨩 졸린 테치?"

자실장의 물음에 구더기실장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저기, 저기 레후우."

구더기실장을 안은 자실장은 구더기실장이 말하는 대로 수건의 산을 올라 정상까지 나아갔다.
수건의 산 너머에는 가루 세제용 계량스푼이나 망가진 경첩 등의 잡동사니 몇 개가 뒹굴고 있었다.

"테~?"

이것이 이곳 가족의 차녀가 가져온 선물들인 것을 모르는 자실장은 수건 정상에서 잡동사니 더미를 놀라서 바라보고 있었지만,
품속의 구더기실장이 꿈틀꿈틀 내려가고 싶어하는 것을 깨닫고는 잡동사니 근처까지 다가가서 구더기실장을 바닥에 내려주었다.

"레후레후우♪"

구더기실장은 잡동사니 중에서도 유독 기이한 모양을 한 물체에 다가가더니 잡동사니에서 튀어나온 레버를 몸으로 건드리기 시작했다.

"오네쨩, 이거 눌러주는 레후우."

"이거 누르는 테치?"

구더기실장이 조르는 대로 레버를 누른 자실장, 레버는 용수철 장치로 되어있어서 힘이 많이 필요하다.
조금 밀렸나 싶었을 때 용수철 때문에 밀려 나오고, 심지어 잡동사니 본체가 바닥을 미끄러져 자실장에게서 멀어져버린다.
간단한 일인 줄 알고 레버를 누른 자실장, 땀까지 흘리며 끙끙대는 동안에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점점 알 수 없어졌다.
곁눈질로 구더기실장을 보니 구더기실장의 눈은 기대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테칫, 테치, 텟치이이이!"

결국 자실장은 벽까지 잡동사니를 밀고 나가서 혼신의 힘을 다해 레버를 눌렀다.

끼리리리링 낮은 소리를 내며 잡동사니의 원반부가 회전하여 파지직 불꽃이 튄다.
불꽃의 빛은 잡동사니 상부를 덮은 클리어 오렌지와 클리어 블루의 플라스틱 커버를 통해서 골판지 하우스 안을 아름답게 꾸몄다.

"텟!!?"

갑작스런 작동에 다리 힘이 풀려 자빠지는 자실장.

잡동사니는 이윽고 작동을 멈췄다. 자실장은 놀란 나머지 자빠진 그대로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지만 구더기 실장이,

"레후우♪ 레후우♪ 예쁜 레후우."하는 함성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오네쨩, 더, 좀 더 레후우!!"

구더기실장이 이 장치에 대해 알고서 움직여달라고 조른 것임을 간신히 깨달은 자실장은 일어서서 쭈뼛쭈뼛 잡동사니에 다가간다.

한쪽 발로 잡동사니를 톡톡 건드려봤지만 조금 전과 같은 불꽃은 나오지 않는다.
어렴풋이 자극적인 냄새가 가득한 바람에 콧속이 간질거려서 자실장은 "테칭!"하고 재채기를 했다.

"오네쨩, 좀 더 레후우!"

뒤에서는 구더기실장이 계속 보채고 있다.

코를 훌쩍거리며 "테~ ...파직파직 예뻤던 테치.... 와타치도 더 보고 싶은 테치...."하고 중얼거리는 자실장.

한 번 더 잡동사니를 내려다본다.
파직파직을 한 번 더 보려면 저 레버를 힘껏 누르면 된다.

"텟츄ㅡ♪ 오네쨩한테 맡겨주는 테치!"


사흘 전 오후, 애호파의 집 마당에서 사육실장이 가지고 놀던, 플라이휠과 부싯돌을 사용한 싸구려 양철 장난감.
사육실장이 간식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간 사이, 자실장들의 응석에 못 이긴 친실장이 마당에 몰래 침입하여 훔쳐온 장난감으로
자실장과 구더기실장은 약 한 시간가량 계속 놀았다.


                   △


"테에에... 피곤한 테치...."

낡은 수건 위에 대자로 누운 자실장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중실장에 가까운 체격이긴 하지만 용수철 장치로 된 장난감으로 노는 것은 자실장에게는 중노동이었다.

골판지 하우스의 열린 면이 보이는 장소까지 이동해서 드러누운 자실장의 옆에 구더기실장이 꼬물꼬물 기어온다.

아직 더 놀고 싶은 건가 싶어서 자실장이 머리를 움직여 구더기실장을 보니,

"오네쨩, 고마운 레후우. 예뻤던 레후우."하고 몸을 비비며 기댄다.

"테~ 테츄웅♪"

만족감에 휩싸인 자실장. 어쩐지 피로감마저 기분 좋다.

자실장은 구더기실장의 배에 한 손을 두르고 가볍게 통통 두드리며 말을 건넨다.

"오네쨩 피곤하니까... 이번에는 이야기로 하는 테치."

"이야기 레후? 이야기해주는 레후우."

흥분한 구더기실장의 꼬리가 파닥파닥 움직여 자실장의 다리에 몇 번이나 닿는다.

"무슨 이야기로 하는 테치?"

"레후ㅡ ...밥 이야기가 좋은 레후우."

자실장은 친실장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에서 밥과 관련 있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마의 말을 잘 듣는 자실장과 구더기실장 자매에게, 신이 상으로 등에 날개를 달아주어서 하늘을 날게 되는 이야기.
자매는 온 세상의 공원이나 쓰레기장을 날아다니며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을 많이 가지고 마마에게 돌아와 가득 칭찬받는 내용이 이어진다.

"...이렇게 해서 구더기쨩과 오네쨩과 마마는 계속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테치."

이야기를 마치고 숨을 고른 자실장이 구더기실장을 보았더니 구더기실장은 완전히 황홀경에 빠져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이따금 "레훗, 레훙♪"하고 울고는 경련하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하늘을 날고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며 한창 미식 여행을 하는 중이리라.

구더기실장의 반응에 만족한 자실장은 구더기실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구더기쨩은 정말로 이야기 좋아하는 테치. 오네쨩의 가족 구더기쨩도 이야기 좋아했던 테치.
많이 있었던 이모토쨩들도 다들 이야기를 좋아했던 테치. 마마는 여러 이야기를 해줬던 테치."

가족에 대해 떠올린 자실장은 딱히 구더기실장에게 들려줄 의도 없이, 골판지 하우스의 열린 면으로 살짝 엿보이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떠오르는 대로 중얼거린다.

"마마는 노래도 잘 불렀던 테치. 매일 이모토쨩들하고 잔뜩 논 다음에는 마마가 가져온 밥을 먹으며 마마의 자장가를 들으면서 다 같이 코 잠든 테치."

"밥, 밥, 맛있는 레후우."

자실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구더기실장이 '밥'이라는 단어에 반응하여 맞장구를 친다.

"마마도 이모토쨩들도 오늘 아침까지 잘 지냈던 테치."

자실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흐려진다.

"그 녀석 테치. 마마가 아침밥을 찾으러 가고 나서 와타치가 이모토쨩들을 돌보고 집을 보고 있을 때 그 녀석이 온 테치."

"이모토쨩들이 집 밖에 뭐가 있는 기척이 난다고, 마마가 돌아온 게 틀림없다고 떠들기 시작한 순간, 집 문을 막대기로 열어젖히고 그 녀석이 들여다본 테치.
마마가 없는 것을 안 그 녀석이 문틈으로 막대기를 찔러넣어서 집 안에서 몇 번이나 휘두른 테치."

"레후우....."

하늘을 나는 공상에 빠져서 자실장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던 구더기실장, 자실장의 모습이 이상한 것을 깨닫고 꼬리 움직임이 멈춘다.

"와타치도 이모토쨩들도 막대기에 몇 번이나 맞아서 다친 테치. 너무 아파서 울었던 테치.
울음 소리를 들은 마마가 달려오도록 큰 소리로 울었는데 소용없었던 테치.
그 녀석이 집 안에 들어와서 본보기로 가장 큰 자인 와타치의 머리털을 잡고 흔들고 짓밟은 테치.
그 녀석이 오마에는 노예로 살려준다고 와타치한테 말하고 나서 집 구석에서 울고 있는 이모토쨩들을 잡고 한 마리씩 먹기 시작한 테치."

자실장은 여동생들이 잡아먹히는 모습을 자세히 말하기 시작했다.

첫번째가 된 여동생이 머리부터 갉아 먹혀 그대로 움직이지 않게 된 일.
통째로 베어먹힌 여동생의 머리털을 '그 녀석'은 입속에서 요령 있게 골라내더니 피범벅이 된 털뭉치를 바닥에 뱉었던 일.
다음 여동생부터는 옷과 머리털을 쥐어뜯겨 물그릇의 물로 쓱싹쓱싹 씻고 나서 먹은 일.
도중에 틈을 타서 도망치려던 여동생도 있었지만 골판지에서 나가기 전에 붙잡혀 막대기에 꿰어진 일.

자실장의 말에 억양은 없다. 눈빛도 완전히 가라앉아 있는 일종의 트랜스 상태에 빠진 채 계속 이야기한다.

가족에 대한 것을 떠올려버린 자실장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구에게랄 것 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것은 자신의 신변에 일어난 비극을 마치 제삼자의 시점에서 담담히 이야기함으로써,
고통이나 슬픔 같은 감각과 현실을 분리하여 감정 폭발로 인한 자아 붕괴를 막으려는 자기방어 본능에 따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실장의 이야기는 아직 계속되었다.

'그 녀석'에게 짓밟힌 채 여동생들이 잡아먹히는 것을 울며 보고 있어야만 했던 일.
'그 녀석'이 여동생들을 다 먹고 마지막으로 남은 구더기실장의 목을 비틀어 따서 내용물을 쭙쭙 빨아먹고 있을 때,
마마가 돌아와서 싸움이 벌어졌던 일.
자신을 짓밟던 '그 녀석'의 다리에서 벗어나 반갑게 폴짝거리며 마마를 응원했던 일.
'그 녀석'이 쥔 막대기가 마마의 얼굴에 박힌 일.
괴로워하는 마마에게 '그 녀석'이 올라타 막대기를 몇 번이나 찔러서 결국 마마가 움직이지 않게 된 일.
목덜미를 물어뜯긴 마마의 목이 뒤로 넘어간 일.

"마마가 진 테치. 와타치는 무서워서 도망친 테치. 그 녀석이 마마의 생명의 돌을 갉아먹는 사이에 도망친 테치."

"마마 없는 테치. 이모토쨩들 없는 테치. 집 돌아갈 수 없는 테치. 몇 번이나 넘어지고 몇 번이나 언덕을 굴러떨어져서 이 집에 오게 된 테치."

누워있는 자실장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렀다.
자실장은 표정도 바꾸지 않고 울음 소리도 내지 않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눈물이 마를 때쯤,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을 전부 털어놓은 자실장은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검고 차가운 것이 사라지는 감각을 느끼고,
눈에는 조금 전 구더기실장과 놀 때의 빛이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트랜스 상태가 풀리고 잠시 후 눈물을 닦은 자실장은 문득 신경이 쓰여서 목을 구부리고 옆에 있는 구더기실장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구더기실장이 반응이 없다.

"구더기쨩? 구더기쨩!"

설마 새로운 가족마저 잃은 것이 아닐까 당혹한 자실장은 구더기실장의 몸을 흔들어본다.

"레ㅡ후~."

구더기실장은 자고 있었다.
정확히는 자실장의 이야기 도중, 자실장과 자매가 막대기로 맞는 대목을 들었을 때 아픔을 상상하고 이미 정신을 잃었다.
구더기실장은 운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만일 자실장의 여동생들이 잡아먹히는 세세한 모습까지 듣고 있었다면 구더기실장의 취약한 감성으로는 기절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구더기쨩 코 자버린 테치. 오네쨩도 조금 자는 테치."

구더기실장을 안는 듯이 한 손을 두른 채로 몸을 옆으로 돌리고, 자실장은 살짝 웃고 나서 눈을 감았다.



                   △


"으음...."

실장 푸드 제조 회사의 상품 연구개발부 부장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서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서류의 내용은 실장석용 청량음료의 불시 검사 성분표.
본래는 상품 품질 관리부문의 업무이고 상품 연구개발부의 업무가 아니었지만 부하가 물어보았던 소문의 진위를 꼭 자기 부서에서 확인하고 싶었기에
품질관리부 부장에게 전화를 하고 출하 트럭을 붙잡아 몇 상자를 내려서 자체 조사를 하고 말았다.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성분표를 가져온 주임이 서류의 한 곳을 가리키며 중얼거린다.
볼펜으로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수치는 청량음료의 함유 알코올양이 사내 자료 수치의 다섯 배나 많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건강 지향을 고집하던 상품 개발 연구부가 청량음료에 알코올을 섞는 건에 동의할 때 끝까지 사수했던 조건은
'알코올 중독 실장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성체실장이 하루에 최대 15개나 청량음료를 마신다고 가정해도 알코올 중독에 빠지지 않는 양을 알아보기 위해 상품 연구개발부는 한달에 걸쳐 실험을 했다.
개체차를 고려해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알코올양을 알아내기 위해 70마리에 가까운 실험용 실장석이 알코올 중독의 희생양이 되었고,
안전권 내에서 함유 알코올양을 정하고 회의로 전 부서의 동의도 얻었건만 그 약속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소문으로는 다른 회사가 동일한 컨셉의 청량음료를 개발 중이라는 미확인 정보에 놀아난 영업부문이,
필승 플랜으로 제조 관련 부서에 알코올 증량을 하게끔 뒷공작을 벌였다고 한다.
게다가 품질관리부의 불시 검사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알코올양 다섯 배의 청량음료가 검사 대상이 되지 않도록 상품 창고 관리에 잔재주를 부리고 있다는 뜻이다.
상품 연구개발부나 품질 관리부가 속아 넘어간 이상, 이는 중대한 사태다.
이 회사는 조직으로서 기능 부전을 일으키고 있다.

"그럼 어디서부터 손을 댈까...."

서류에서 눈을 뗀 그는 안경을 벗고 눈 위로 가볍고 둥글게 눈을 마사지한다.

다섯 배.... 매일 청량음료 여러 개를 주는 가정이면 알코올 중독 실장이 무시할 수 없는 비율로 발생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출시한 지 한 달된 현시점에서 전국의 사육실장 중 몇 마리가 잠재적 알코올 중독 실장이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알코올 섭취량 측정 실험에서 발생한 알코올 중독 실장의 난폭함과 말기 증상의 비참함을 떠올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완용 식품 전문 회사라고 해도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안경을 다시 걸치며 생각한다.
상품 연구개발부로서는 일단 행동을 하기 전에 품질 관리부를 아군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화기에 손을 뻗으려던 그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인 판촉용 엄지실장 인형을 포착했다.
인형은 아양 포즈를 취하고 이쪽을 향해 놓여있다.
그는 문득 인형이 얄미워져서 손가락 끝으로 인형을 탁 쳐서 날렸다.



                   △


"테ㅡ 테츗!"

재채기를 한 자실장의 눈이 살짝 열린다.

"테에ㅡ? 테치?"

아직 머리에 피가 돌지 않았기에 텅 빈 눈으로 상반신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이 어디였는지 떠올리려고 했을 때, 옆에서 구더기실장이 "레후우."하고 숨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그래, 조금 전까지 이 외톨이 구더기쨩과 놀고 있었지. 이제부터 이 집에서 둘이서 살아가기로 했었지.
그런 것들이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골판지 하우스의 열린 면을 통해 밖을 보니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노을이 질 것이다.
"테에ㅡ."하고 하품을 함과 동시에 배가 꼬륵 울린다. 오늘은 식사도 못 해서 완전히 공복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자고 있는 구더기실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구더기쨩, 오네쨩 배고픈 테치이. 오네쨩 지렁이라도 찾아올 건데, 밥은 지렁이도 좋은 테치이?"

그렇게 묻자 구더기실장은 잠이 덜 깬 소리로 "먹고 싶은 레후우."하고 작은 소리로 대꾸했다.

"잡아올 테니까 구더기쨩, 집 보기 부탁하는 테치."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든 자실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녀석'이다. '그 녀석'이 골판지 하우스 앞에 쭈그려 앉아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입안이 쉬익하는 소리를 내며 마른다.

"겨, 겨우 찾아낸 데스. 이런 곳에 숨어있던 데즈즈우. 와타, 와타시한테서 도망치려 하다니, 나, 나쁜 노예 데스."

살짝 뿌옇고 초점이 맞지 않는 것 같은 '그 녀석'의 눈이 상하 좌우로 데굴데굴 부지런히 움직인다.

"테칫! 텟치치테칫치치치!!"

벌벌 떨며 주저앉은 채 뒷걸음질을 시작한 자실장의 다리에 꾸벅꾸벅 조는 구더기실장이 닿았다.

"레훙?"

잠의 세계에서 불려나온 구더기실장이 응석 부리는 소리로 운다.
잠이 덜 깨서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구더기실장을, 자실장은 순간적으로 붙잡아서 낡은 수건 속에 밀어 넣어 숨겼다.

"?! 레...!"

얼굴을 스쳐서 잠에서 깬 구더기실장은 수건에서 빠져나온 꼬리를 파닥파닥 움직이며 무언가 외치고 있었지만,
자실장은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수건을 잡아당겨 위를 더 덮었다.

"뭘 하, 하는 데즈우. 어, 얼른 나오는 데스. 이, 이 엘리자베스님이 명령하고 있는 데즈우!!"

원사육실장인 성체실장이 골판지 문 앞의 고임돌을 차 날리고서 문을 난폭하게 열고 하우스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우스 안에 며칠이나 목욕하지 않은 실장석의 체취와 썩은 고기 냄새가 퍼진다.
한때는 순백으로 빛나며 고급 실장복의 옷자락을 장식하던 레이스 프릴은 진흙과 찢겨 먹힌 동족의 파편을 흡수하여 부풀어 올랐고,
연한 보라색이었던 실장복은 피에 물들어 검은 얼룩투성이의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두건과 앞치마에는 식사하고 남은 찌꺼기가 들러붙어 악취를 풍긴다.

뿌직 뿍 뿌브브브븍!

"테챳! 텟!? 테에에에엥!"

뱃속에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실장은 물 비슷한 탈분을 약간 한 다음, 성대한 소리를 내며 방귀를 뀌었다.

"에, 엘리자베스는 배가 고픈 데즈. 빨리 나오는 데스우!"

조바심이 난 성체실장은 손에 든 막대기, 원 터치로 펴고 접는 실장석용 양산으로 골판지 하우스의 벽을 탕탕 두드리며 위협한다.
이 양산은 길러지던 때부터 마음에 들어하던 물건으로, 원래는 실장 댄스의 소품으로 주인에게서 받은 것.
이 성체실장과 함께 버려졌고 지금은 무기로 애용하고 있다.

"테에! 테에에엥!"

'그 녀석'에게 붙잡히면 먹힌다.

골판지 하우스가 흔들리고 낡은 수건의 산에서 굴러떨어진 자실장은 정신없이 손에 닿는 것을 던졌다.
모래알 같은 직경 수 밀리미터의 작은 돌이나 실밥 덩어리,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낙엽.
너무 가벼워서 10cm도 날아가지 못하고 성체실장까지 닿는 것이 하나도 없다.
자실장이 엄지실장 인형의 다리를 붙잡아 던진다. 적당한 무게와 크기를 가진 인형은 공중을 날아 성체실장의 얼굴에 맞았다.

"데즛!?"

무언가 얼굴에 맞은 것에 놀란 성체실장, 아래를 내려다보니 엄지실장이 굴러다닌다.

"데프프. 이건 오마에의 공물 데즈우?"

눈이 나쁜 성체실장은 엄지실장 인형을 인형이라 생각 못 하고,
자실장이 이성을 잃고 여동생 엄지실장을 던진 것으로 착각하여 인형을 입으로 가져가서 힘차게 턱을 닫았다.

까득

성체실장의 앞니가 플라스틱제 인형에 커다란 이빨 자국을 냈지만 그뿐이었다.
깨물면 쉽게 끊어져야 할 엄지실장이 끊어지지 않고, 기세가 지나친 턱 힘이 잇몸에 무리한 부담을 준 결과, 앞니가 전부 연달아 빠졌다.

" *@#!? ・・・・・!!  $&%?! "

앞니에 닿아있던 신경 몇 개가 뜯긴 충격으로 성체실장은 경직되어 있다가 잠시 후 인형과 함께 앞니와 피를 퉷 뱉어내고는 몸부림치며 괴로워했다.

"데갸아아아!! 아픈 데즈우!!! 닝겐, 닝겐! 빨리 의사한테 데려가는 데즈우우우우!!"

너무나 아픈 나머지 버려진 것도 잊고 입에서 주인에 대한 명령이 튀어나온다.

자실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테에에에에엥!!"

달리면 팬티 속의 압박된 똥이 틈새로 흘러나와 기분 나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잡아먹히면 모든 것이 끝.
다행히 골판지 문은 성체실장이 열어주었다.
'그 녀석'은 수건에 밀어 넣은 구더기쨩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니 도망쳐서 흥분이 가라앉을 즈음에 이곳으로 돌아오면 구더기쨩과 단둘이 계속 함께 지낼 수 있다.

똥의 궤적을 뚝뚝 남기면서 자실장은 성체실장의 코끝을 스치며 밖으로 도망쳐나왔다.

성체실장은 몸부림치면서 엄지실장 인형을 잡고 매섭게 노려본다. 성체실장의 얼굴에 충격이 밀려온다.

"이건 꽝 인형 데즈우우!!"

수풀 속으로 달아나는 자실장의 모습을 시야에 포착한 성체실장은 피범벅이 된 잇몸으로 흐늘흐늘 이를 갈며,

"데규우우! 저 똥애새끼!! 바, 바보 취급하다니 기필코 죽이는 데즈우우!!"하고 내뱉고는 자실장을 뒤쫓아 수풀 속을 헤치며 들어갔다.


                   △


석양을 받아 수풀 속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며 달아나는 자실장을 성체실장이 뒤쫓는다.
자실장이 관목 사이를 빠져나가 몸을 웅크려 가지 밑을 빠져나가는 데 반해,
성체실장은 관목에 진로를 방해받거나 양산이 가지에 걸리거나 해서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다리는 느리지만 몸이 작은 만큼 우거진 수풀 속에서는 자실장이 유리하다.
하지만 자실장도 혼란에 빠져 쓸데없이 달리는 바람에 성체실장에게 몇 번이나 붙잡힐 뻔한다.
성체실장의 머리 위치에서는 관목의 잎들에 가려져 자실장을 알아보기 어려움에도, 날카로운 울음 소리를 내며 달리는 통에 위치를 알려주며 달아나고 있는 꼴이다.

자실장도 성체실장도 이미 옷은 찢어질 대로 찢어진 상태, 조금이라도 영리한 실장석이었다면 절대로 안 했을 자해 행위에 성체실장은 눈에 핏발을 세웠다.
자실장에게 바보 취급받았다고 생각한 성체실장은 자실장을 용서할 수 없었다.
주인에게 버린다고 선고받고 까마득히 먼 이 공원에 내버려지고 나서 일주일, 수중에 남은 것은 실장복과 양산뿐.
선수필승으로 들실장을 뎦쳐서 잡아먹어 온 삶에 대한 집착, 항상 이겨나온 실력과 자신감을,
요깃거리밖에 안 되는 자실장에게 업신여겨진 기분이 들어서 용서할 수 없었다.

달리면서 오른손을 앞으로 내민다.

"오마에 따위한테 비웃음당하고 가만 있을 와타시가 아닌 데즈!"

자실장의 머리털에 닿았지만 관목 옆으로 슥 빠져나가서 놓치고 말았다.
실장복 옷자락이 가지에 걸려서 다시 툭 찢어진다.

"와타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데즈우!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데즈우!!"

양산을 휘두르려 했지만 가지에 걸려서 비틀거린다.

"도망치지 마는 데스 먹이! 오마에 따위는 먹어주는 데즈! 와타시를 비웃은 오마에는 와타시의 먹이가 되는 데즈우!!"

관목 사이를 누비고 다니던 자실장의 앞이 갑자기 트였다. 내리막이다! 그렇게 생각한 자실장은 주저 없이 관목 너머로 뛰어들었다.
오전에 '그 녀석'에게서 달아났을 때도 내리막길을 굴러서 '그 녀석'을 따돌렸다.
이번에도 달아나 주겠어!

앞을 달리던 자실장이 우거진 잎에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자실장을 쫓아 관목으로 뛰어들고, 그리고 빠져나온 성체실장은 붕 뜨는 부유감을 느꼈다.
발 디딜 곳이... 없다.
관목의 너머, 내리막길이 아닌 높이 2미터 정도의 낭떠러지로 뛰쳐나온 성체실장은 질주 자세 그대로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한다.
눈앞에 노을로 물든 공원의 경치가 펼쳐지고, 낭떠러지의 바닥이 점점 육박한다.
머릿속은 새하얗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눈앞의 경치를 받아들이고 있다.
붉게 물든 바닥은 바닥이라기에는 몹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바닥이라고 생각한 곳이 공원 연못의 수면인 것을 깨달은 것은 성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착수하기 직전이었다.



                   △


성체실장은 몸부림치고 있었다.

녹조가 번식한 연못은 성체실장이 일어서면 얼굴이 나올 깊이였음에도 불구, 바닥에 진흙이 쌓여있었기에 다리로 차도 질척질척 미끄러져서,
연못에 빠진 실장석에게 바닥이 없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항상 반쯤 열려있는 입과 코로 사정없이 물이 들어온다.
먼저 떨어진 자실장은 익사하기 전에 착수의 충격으로 죽어버렸는지 팔다리가 떨어지고 수면에 핏자국을 퍼뜨리며 엎어진 채로 둥둥 떠있더니,
이윽고 머리부터 먼저 빨려 들어가듯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괴롭다. 물속에서 팔다리를 버둥거려서 머리만은 어떻게든 수면으로 내밀어 보려 하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코로 물을 빨아들여버린다. 비강과 기도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물 너머로 일그러져 보이는 천상의 경치는 뭉게구름이 떠있는 노을 진 하늘.
연못 건너편 물가에 있는 것 같은 두세 마리의 실장석으로 보이는 그림자가 시야 끝에 들어온다.

저 녀석들은 웃고 있을까.
분하다. 들실장들 따위에게 비웃음 받을 삶이 아니었을 텐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질 터였는데.

고급 실장석으로서 브리더에게 혹독하게 훈육받은 자실장 시절.
애완동물 샵에 납품된 동료들 중에서는 가장 빨리 팔렸다는 자부심.

길러질 초기에는 브리더에게서 배운 대로 주인에게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주인을 기쁘게 할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주인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충실한 실장석'이 아닌 '애완동물인 고급 실장석이 기뻐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는 날까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을 때의 기쁨.
누가 가장 먼저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행운의 황금 엄지실장 인형에 당첨될지를 겨루어, 새끼들과 함께 달콤한 주스를 몇 병이나 비웠던 나날.
그 시절은 즐거웠다.
와타시의 행복이야말로 주인의 행복. 닝겐이 행복해지려면 우선 와타시를 행복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지는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이상해졌다.


새끼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항상 무슨 일에 조바심을 내고 영문 모를 일에 격앙하고 대성통곡.
턱이 지친다면서 고급 실장푸드를 걷어차고 주스만 마신다.
열심히 훈육하려고 애썼지만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조바심이 노이로제로 변하여 울증과 조증을 몇 번이나 되풀이한 끝에 사건은 일어났다.
마시던 주스를 두고 방을 나온 사이, 아이들이 페트병을 넘어뜨려 바닥에 엎지른 주스를 엎드려서 핥고 있어서 잔소리를 했더니,
아이들이 "시끄러운 테치! 부족한 테치. 더 가져오는 테치!"라고 대꾸를 했다.
머리에 피가 솟았고, 그 다음부터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정신이 들고 보니 "다시 하는 데스. 다시 하는 데스."하고 중얼거리며 맞아서 으스러진 새끼들의 살을 정신없이 입으로 나르고 있었다.
어느새 들어온 주인이 바로 뒤에 서 있는 것도 모르고.

왜 그런 하찮은 일에 화를 내고 말았을까.

왜 그런 짓을 하고 말았을까.
그 아이들을 정말로 사랑했는데.

어떻게든 살아가려 했다.
살아나가서 네 마리 새끼의 환생을 낳아 이번에는 함께 행복해질 생각이었다.
다시 낳아주는 것이 그 새끼들에 대한 최대한의 사죄라고 믿었다.

꼬륵

입에서 토해낸 숨 대신에 다시 물이 들어온다.
휘두르던 팔이 몹시나 무겁다.
이제는 경치도 보이지 않고, 수면의 잔물결을 통과한 저녁 하늘의 붉은 띠만 눈에 들어온다.

"...주, 인, 님...."

폐속의 마지막 공기와 함께 오랫동안 입에 담지 않았던 단어를 토해내고는 성체실장은 연못 바닥에 퇴적된 진흙 속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



"구더기쨩, 구더기쨩! 일어나는 테치!"

차녀가 구더기실장을 흔든다.

"레ㅡ...."

구더기실장은 조금 전부터 차녀의 품속에서 숨소리에도, 신음소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느다란 소리를 내고 있다.


밥을 모으고 돌아왔더니 골판지 문이 열려있었다.
골판지 하우스 자체도 조금 패여있었고, 실장석의 이빨이 섞인 핏덩이도 있었다.
친실장은 다른 곳의 실장석이 식량을 훔치러 온 건가, 구더기실장은 잡아먹혔나 싶어서 주위를 경계했지만 수건의 산에 오른 차녀가,

"구더기쨩의 냄새가 나는 테치!"하고 말을 꺼내기에 수건을 들췄더니 안에서 기절한 구더기실장이 굴러나왔다.
구더기실장이 먹히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은 식량을 목적으로 다른 실장석이 온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구더기실장에게 상황을 듣고 싶지만 아직 정신을 잃은 채로 차녀의 팔에 안겨있다.

"주는 데스."

친실장은 차녀에게서 구더기실장을 빼앗아서 꼬리를 잡고 거꾸로 매단 채 입 앞으로 가져갔다.

친실장이 하아아앗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심호흡하고서 후~하고 구더기실장에게 입김을 불어넣는다.
비릿한 입 냄새와 암모니아 냄새가 조금 섞인 미지근한 숨이 구더기실장을 덮친다.

"레뺘아아아아!!!"

거꾸로 매달린 구더기실장이 각성 효과를 가진 암모니아 세례를 받고서, 있으나 마나 한 양손 양발을 한껏 내뻗고 경련하며 눈을 떴다.

"테치ㅡ!"

"마마는 역시 대단한 테치!"

자실장들이 친실장에게 찬사를 퍼붓는 가운데, 차녀만이 구더기실장을 걱정하여 두 손을 머리 위로 뻗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구더기쨩?! 구더기쨔아아아앙!!"



                   △


"...데?..."

해가 저물고 이제 밤이 시작되는 어둑한 황혼 속에서, 친실장은 주저앉아 관자놀이에 손을 대고 침묵을 지킨다.
반쯤 예상은 했지만 구더기실장이 말하는 내용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구더기실장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놀고 있었더니 날개가 자라고, 오네쨩하고 같이 파직파직 빛나는 밥을 먹으러 마마에게 갔다.

상으로 무서운 얼굴을 한 신이 모두를 때리면서 노래를 불러줘서 공원 이곳저곳이 코 잤다....


친의 질문에 영합하여 대답하고 있기에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용이 다르다.
이래서는 이야기를 듣는 의미가 없다.
자실장들이 구더기실장의 이야기에 테치테치하고 헤살을 놓는 것을 곁눈으로 보며 한숨을 쉬는 친실장.
오늘은 큰 수확이 있어서 어두워지기 전에 분류해놓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하우스까지 왔건만, 구더기의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낭비를 했다.
곧이어 어둠이 짙어졌다.

"아무튼 다른 곳의 무서운 아줌마가 왔을지도 모르는 데스. 와타시는 오늘 밤 집 입구를 막고 잘 테니까 오마에들은 집 안에서 수건을 덮고 자는 데스.
알겠는 데스? 그럼 얼른 밥 먹는 데스."

"텟치이ㅡ!"

"텟츄~웅♪"

환성을 지르는 자실장들.

차녀는 "구더기쨩... 거짓말쟁이 아닌 레후."하며 훌쩍이는 구더기실장을 달래고 있다.


큰 수확이란 버려진 사육실장에게서 빼앗은 식량.

오후, 밥을 모으러 가려고 실장 친자가 쓰레기장에 이어서 골목길을 걷고 있을 때,
폐공장의 공터 옆 언덕길에 차가 멈춰 서더니 무거워 보이는 골판지를 양팔로 안은 남자가 나왔다.
상자에서 "데쟈ㅡ앗, 데쟈아아!!"하고 포효가 들리기에 내용물은 실장석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학대파 데스! 숨는 데슷!"

친실장과 자실장들은 전봇대 뒤에 숨어서 상황을 엿본다.

남자는 주위에 보는 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남자의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쇠파이프 울타리 앞으로 나아가서
비탈길의 3미터 아래에 있는 폐공장 안의 분지를 향해 하나, 둘, 셋 구령을 하며 기세를 붙여 골판지를 던졌다.
골판지는 모서리부터 쿵 하고 착지해서 그대로 완만한 비탈을 두세 번 굴러서 바위에 부딪쳐 멈췄다.
골판지 모서리가 부딪칠 때마다 "데걋!!"하고 비명이 나왔지만 바위에 부딪쳐 멈추고 나서는 찍소리도 나지 않는다.
남자는 두 손을 탁탁 털어 먼지를 내고는 후련한 표정으로 차로 돌아가 떠났다.

전봇대 뒤에서 자초지종을 보고 있던 실장석 친자가 우회해서 울타리 틈새를 통해 폐공장 부지 안으로 들어가 조심조심 골판지를 조사했다.
바위에 부딪친 상자 한쪽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져 있고 반짝거리는 실장복이 보였다.
놀랍게도 안에 있는 실장석은 아직 살아있었다. 하지만 신음하기만 할 뿐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뭔가 잘못이라도 저지르고 닝겐에게 버려진 사육실장이겠지만, 퍽 거칠게도 버리는구나 하고 친실장이 생각하고 있을 때,
자실장 하나가 테치ㅡ 테치ㅡ하고 친실장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골판지 안쪽을 가리킨다.
골판지 틈으로 캔디가 보인다. 그것도 봉지째로.
틈새로 손을 쑤셔 넣어 난폭하게 봉지를 꺼내자, 열려있던 봉지에서 캔디가 우수수 떨어졌다.
미친듯이 좋아하는 자실장들.
더 없는가 싶어서 친실장이 눈을 부라리자 실장푸드나 사육실장용 숄더백도 보인다.
이것들이 쿠션이 되어서 원사육실장이 즉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사육실장에게는 일용품에 불과하지만 들실장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준 선물.
굴러들어온 행운에 친실장은 골판지 위로 기어 올라가 뜀박질을 하며 골판지의 벌어진 틈을 넓힌다.
그러고 나서 방해되는 원사육실장을 끌어내고 골판지 안의 물건을 그러모았다.
신음밖에 할 수 없는 중태의 원사육실장은 땅바닥에 뒹구는 채로, 희희낙락하며 수집 작업에 힘쓰는 친실장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서둘러야 한다.
다른 들실장들 눈에 띄기 전에 가져갈 수 있는 것만 가져가고 이 자리를 뜨는 것이 좋다.
고급 실장 푸드, 리본, 컬러풀한 실장복, 장난감과 그림책, 식기 등등이 차례차례 골판지에서 나온다.
그나저나 많이도 쑤셔넣었다. 마치 원사육실장의 소지품을 전부 집어넣은 모양새다.

무아지경으로 캔디에 달라붙어있는 자실장들을 야단치고서 우선 먹을 것, 가벼운 장식품 순으로 들게 한다.
사실은 전부 가져가고 싶지만 자실장은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고 자신도 부피가 큰 것은 잘 들 수 없다.
장난감은 단념하고 옆에 내팽개쳤다.
그림책을 열자 둥근 기호가 많이 쓰여있다. 닝겐이 히라가나라고 부르는 기호.
원사육실장은 제법 학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들에게는 글자가 필요 없으니 그림책도 필요없다.
애완동물 가게의 가격표가 붙은 신상 팬티. 이것은 귀중품, 받아두자.
새것인 커다란 수건도 가져가고 싶지만 골판지 하우스에는 너무 크다....

먹다 만 과자 봉지를 들게 된 차녀는 내던져진 장난감 중에 낯익은 형상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구더기실장에게 선물로 가져간 적도 있는 엄지실장 인형, 그런데 눈앞에 있는 것은 온몸이 금 삐까한 엄지실장 인형.
저것을 가지고 돌아가면 구더기실장이 기뻐할까.
친실장은 수확물을 편의점 봉투에 집어넣기에 여념이 없고, 자매들은 "체력을 붙이는 테치! 짐은 줄이는 테칫!"하고 말하고는 받은 음식을 제멋대로 먹기 시작한다.
차녀는 몰래 장난감에 다가가서 황금 엄지실장 인형을 주워 과자 봉지 속에 밀어 넣었다.

"데~...."

식량은 전부 가져갈 생각이었지만 곤란한 물건이 나왔다. 미개봉한 페트병 음료가 여러 개.
그러고 보니 그 닝겐은 골판지를 무거운 듯이 들고 있었다.
화려한 라벨이 붙은 이 음료는, 쓰레기장에서 병 바닥에 남아있던 물방울을 핥은 일이 있기에 달콤한 음료라는 것은 알고 있어서
꼭 가져가고 싶었지만 몇 개나 가져가기에는 너무 무겁다.
여기서 마시고 가버릴까 생각한 그때, 밥을 모으고 돌아가는 들실장들이 건너편 길에서 느긋하게 걸어오는 모습이 친실장의 눈에 들어왔다.
지금 눈에 띄어 집단으로 몰려오면 전부 빼앗겨 버린다.
방금 얻은 숄더백에 페트병을 세워서 쑤셔넣으니 뚜껑이 닫히지는 않지만 네 개가 들어갔다.
아깝지만 나머지는 버리고 가자.

장난감과 중태의 실장석을 흘끔 본다. 저녁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오마에들, 철수하는 데스!"

"테칫?!"

"테에에에엥, 마마, 가다리는 테치이!"


새끼들에게 명령한 것은 좋지만 친실장은 분지에서 나오는 데 애를 먹었다.

무겁다.

빵빵하게 부푼 편의점 봉지를 멘 것도 모자라 무거운 숄더백을 끌고 있다.
짐을 든 자실장들이 친 옆을 스쳐 지나간다.
바닥의 요철 때문에 숄더백이 몇 번 튀어 오르는 바람에 페트병 하나가 빠져나와 분지 바닥에 굴러다녔지만 친실장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히려 갑자기 걷기 편해진 것에 기뻐하며 떠나버렸다.

페트병은 중태의 원사육실장 근처까지 굴러가서 멈췄다.
원사육실장은 흙먼지로 범벅이 된 페트병을 보고 "데에에."하고 슬프게 운다.
미칠 것 같이 마시고 싶은데 온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매일 몇 개나 들이붓듯이 마시던 음료수가 있는데도 손이 닿지 않는 답답함.
병목에는 안이 보이지 않는 작은 은색 비닐 봉투가 걸려있고, 안에는 엄지실장 인형이 들어있다.
금삐까 인형은 이미 가지고 있다. 어떤 소원이든 이루어진다면 지금 눈앞에 굴러다니는 청량음료를 마시고 싶다.

"데에에 데에에."

이윽고 녹색 옷의 집단이 분지를 에워쌀 때까지, 원사육실장은 슬프게 울어댔다.


                   △


보존 가능한 식량을 골판지 하우스 아래의 구멍에 숨긴 다음, 즐거운 식사가 시작되었을 무렵에는 완전히 밤이 되어있었다.
사육실장의 음식은 역시 다르다. 일단 신 냄새가 나지 않고 미끈거리지도 않는다.
개봉된 식량이나 과자 봉지가 꽤 많았지만 여는 수고가 줄어서 고마울 정도다.
먹다 만 오래가지 않는 식량과 함께 상자에 담겨있던 것으로 보아 그 사육실장은 아마도 음식물 쓰레기마냥 버려진 것이리라.

"디저트♪ 디저트 뎃스웅♪"

자실장들보다 한발 먼저 식사를 끝낸 친실장은 페트병을 손에 든다.
어둠에서도 눈이 적응하면 사물의 형태 정도는 파악된다.
색깔을 즐길 수 없는 것은 유감이지만 내일 아침까지 참을 생각은 없다.
친실장은 페트병을 두 다리에 끼우고 뚜껑 부분을 확인한다.
손으로 뚜껑을 돌리려 했지만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는 개봉된 병과 달리 미개봉 페트병 뚜껑은 역시 단단하다.
손끝으로 미세한 물건을 잡는 작업이 어려운 실장석도 병을 열기 쉽도록 뚜껑 끄트머리가 판 모양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그곳을 적당한 도구로 쥐고 뚜껑을 돌리면 열리게 되어 있기에 친실장은 이빨로 뚜껑을 물고 시도해봤다.

"뎃! 데에에에에!"

힘주다가 이빨이 잘못될 것 같았기에 친실장은 골판지 하우스를 나와 뭔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본다.
양손에 바나나 쪼가리나 작은 빵 조각을 들고 우물우물 먹고 있던 자실장들도 나와서 마른 침을 삼키며 어미의 행동을 지켜본다.
저것이 좋겠다 싶어서 관목 가지에 뚜껑을 끼우고 시험해본다.

"뎃승!"

병을 두 손으로 들고서 기합을 한 번 넣고 힘주어 돌리자 푸슉하고 가벼운 소리를 내며 뚜껑이 열렸다.
환성을 지르는 자실장들 앞에 거친 콧김을 뿜으며 한 손으로 병을 쥐고 밤하늘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는 친실장.
그대로 다른 한쪽 손을 허리에 대고 꿀꺽꿀꺽 마신다.
조금 전 먹은 실장 초콜릿이나 찐빵과는 또 다른 달콤함이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튄다.
고생해서 가져온 보람이 있었다. 네 개 가져왔지만 한 개는 어딘가에 떨어뜨렸고, 짐이 너무 무거워서 다른 하나도 도중에 버리고 왔다.
무리해서라도 가져올 것을 그랬다.

푸하~! 하고 한숨을 돌리니 새끼들이 다리 밑에서 "테치~잉, 테츄ㅡ웅♪"하고 조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 새끼들에게도 나눠주기로 한 것을 떠올린 친실장은,
어둠 속에서 발끝의 감각으로 땅바닥의 움푹 들어간 곳을 찾아서 편의점 봉투를 깔고 절반 정도를 벌컥벌컥 들이붓고는,
"오마에들도 먹는 데스."하며 다시 병에 입을 대었다.

"테치~!"

"테츄테츄♪"

자실장들이 편의점 봉투 위에 엎드려서 정신없이 들이킨다.
어둠 속에서 느릿느릿 퍼지는 수면에 밤하늘이 비치고, 자실장이 목을 움직일 때마다 별이 반짝반짝 빛난다.
이렇게 맛있는 것이었다면 마마가 쓰레기장에서 빈 페트병을 빨고 있었던 것도 이해할 것 같다.

"레후~웅! 레후? 레뺘! 레뺘뺫 뺘!!"

함께 마시던 구더기실장이 몸을 너무 내밀어서 음료수 안에 빠진다.
구더기실장을 끌어올린 차녀가, 코로 음료수가 들어가서 눈물을 찔끔이며 재채기하는 구더기실장을 할짝 핥자 구더기실장이 반쯤 울며 웃는다.

"구더기쨩 달콤한 테치!"

"레~."


한 병 반은 친실장이 마시고, 반병은 자실장들이 마셔서 페트병 두 개는 순식간에 비었다.
식사가 끝난 다음은 잠만 자면 되지만 오늘은 왠지 마음이 붕 떠서 잘 기분이 나지 않는다.

"마마~ 파직파직 보고 싶은 테치!"

자실장들이 떠들기 시작한다.
여느 때 같으면 귀찮아서 마지못해 했겠지만 오늘 밤은 기분이 동한 친실장.
콧노래를 부르며 골판지 하우스로 기어들어가 더듬거리며 양철 장난감을 꺼냈다.

끼리리리링 낮은 소리를 내며 양철 장난감의 원반부가 회전하여 파직파직 불꽃이 튄다. 불꽃의 빛에 비친 주위의 관목 녹음이 흥을 돋운다.
환성을 지르며 불꽃 아래를 휘젓는 자실장. 멍하니 입을 벌리고 빛에 시선을 빼앗긴 자실장.

"레후~! 레후ㅡ웅♪"

구더기실장도 차녀에게 안겨서 불꽃을 즐기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레후~! 레후? 레ㅡ...오네쨩... 오네쨩이 없는 레후우."

품속에서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한 구더기실장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구더기쨩? 왜 그러는 테치? 모두 여기 있는 테치."하고 말을 건네지만 구더기실장은 싫어싫어하며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끼리리리링 끼리리리링 커다란 소리를 두 번 내며 양철 장난감이 불꽃을 토했다.
차녀와 구더기실장은 놀라서 얼굴을 들고 유난히 화려한 불꽃을 바라본다.

"데에ㅡ. 피곤한 데스우. 자, 오늘은 이제 끝인 데스우우."

친실장의 폐막 선언을 들었을 즈음, 차녀와 구더기실장은 조금 전 칭얼거리던 것도 잊어버렸다.


                   △


골판지 하우스 안에서 수건을 덮고 자는 자실장들.
입구를 막고 가로누운 친실장은 벌써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

차녀는 구더기실장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속삭이며 말해준다.

"구더기쨩도 밖에 나가고 싶은 레후우."

"커지면 같이 외출하는 테치."

"빨리 커지고 싶은 레후우."

평소와 같은 대화의 반복.

옆에서 자는 장녀가 눈을 감은 채로 "시끄러운 테치."하고 두 마리에게 짧게 불평한다. 이것도 매일 밤 같은 반복.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전에 정신이 번쩍 든 차녀는 수건에서 빠져나와 물그릇 뒤에 숨겨놓았던 황금 엄지실장 인형을 꺼냈다.
저번에 가져온 보통 색깔의 엄지실장 인형은 오늘 돌아와보니 다른 실장석의 이빨 자국과 피가 묻어있어서 "기분 나쁜 데스."하며 마마가 밖에 내버렸다.
마침 대신할 것을 얻어서 다행이다.

"구더기쨩. 오늘 선물 테치."

차녀는 수건에 기어들며 구더기실장에게 인형을 건넨다. 어둠 속의 희미한 불빛으로도 인형의 금도금이 독특한 질감을 자아낸다.

"오네챠, 고마운 레후우."

졸음을 견딜 수 없었던 구더기실장은 인형을 껴안고 혀 꼬인 말투로 차녀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잠들어 버렸다.
차녀도 눈을 감는다.
어두워서 인형의 온몸이 금 삐까라는 것을 구더기실장이 모르지 않았을까.
내일 아침 구더기실장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는 동안 차녀도 잠에 곯아떨어졌다.



                       ▼



황금 엄지실장 인형은 가짜.
문지르면 벗겨지는 금도금.
'행운을 부르는 럭키 아이템'은 이름뿐.
이름과 달리 관련된 자들 대부분을 불행하게 했다.

 

                       ▼


"데ㅡ...."

"테치ㅡ...."

아침 햇살을 받은 골판지 하우스 안에서 친실장과 자실장들이 입을 떡 벌리고 있다.

어젯밤 구더기실장이 수건 위에서 고치를 만들었다.
구더기실장이 고치를 만든다는 것은 소문으로 들은 적 있지만 자신의 집의 구더기실장도 고치를 만들 수 있었을 줄은 몰랐다.

광택 있는 녹색의 고치는 조금 무겁고 부피가 있어서 친실장이 찌르면 천천히 흔들거린다.
며칠 지나면 여기에서 팔다리가 난 구더기실장이 엄지실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나올 것이다.
고치를 만들 징조가 전혀 없었기에 무엇이 계기가 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가족은 구더기실장의 고치란 이런 것인가 하고 고치를 장난감처럼 찌르고 있지만, 차녀만이 고치가 무겁고 부피가 있는 이유를 알고 있다.
구더기실장은 금 삐까 인형을 안은 채로 고치를 만들었음이 틀림없다.
마마에게 알려줄까 했지만 금 삐까 인형을 보고 싶다고 고치를 부술지도 모르기에 생각을 고쳐먹고 가만히 있었다.


"뎃?"

정신을 차린 친실장이 얼빠진 소리를 낸다.
평소 같았으면 이미 벌써 식량을 모으러 나갔을 시간이다. 어제 가져온 식량은 보존식으로 숨겨둔 몫 말고는 이때다 싶어서 다 먹어버렸다.

어제 마신 페트병이 자꾸 신경 쓰인다. 어쩌면 돌아오는 길에 도랑에 버렸던 한 병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맛있었다. 맛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실장 시절 마마와 여동생들과 함께 놀 때 느꼈던 행복을 떠오르게 했다.
다시 한번 마시고 싶다. 다른 들실장에게 빼앗길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없으면....
공원에 산책하러 오는 사육실장이라면 그 음료수를 갖고 있을까.
주인에게서 벗어나 혼자 어슬렁거리는 멍청한 사육실장이 어디 없을까.

아니다, 사육실장이 있는 집에 잠입하면 그 음료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파직파직 빛나는 장난감을 훔치러 들어갔던 집은 보안이 느슨해 보였다.
어쨌든 다른 들실장들이 그 맛을 알기 전에 가능한 한 독점하고 싶다!

친실장은 어제 폐공장에서 페트병을 여러 개를 포기한 일을 잊어버려서 그 음료에 맛들인 들실장이 인근에서 급증한 것,
똑같은 생각을 하는 들실장이 몇 마리나 있는 것을 아직 모른다.

어제 빼앗은 숄더백을 맨다. 이것이면 오케이. 그 음료수를 가지러 갈 준비가 되었다.


친실장이 다그치는 와중, 밥 모으는 봉지를 들고서 차녀는 "금삐까 인형을 보고 구더기쨩이 놀라는 건 며칠 더 늘어난 테치."하고 생각한다.

평소의 버릇대로 골판지 문이 탁 닫혔다.
오늘은 햇볕이 강하다. 돌아보니 나무 사이로 비친 햇살로 골판지 하우스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골판지 하우스를 향해 "구더기쨩, 집 보기 부탁하는 테치!"하고 외친 차녀는 밥을 모으러 가는 가족의 뒤를 뒤쳐지지 않기 위해 달리면서,

"테~... 이제 구더기쨩이 아닌 테치. 다음에 만날 때는 엄지쨩 테치!"하고 중얼거린다.

자실장은 고치에서 나올 엄지실장을 만날 날이 반드시 올 것임을 의심치 않으며 그날 집을 나섰다.
달리는 자실장의 등 뒤로 새파란 남쪽 하늘에 적란운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초여름을 알리는 눈부시게 빛나는 구름, 이 하늘 아래 힘차게 살아가려는 모든 것에 축복을 내리는 듯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던 이 친자의 운명 따윈 조금도 예감할 수 없는 그런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