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
요새 우리집 사육실장 연두가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감추고 있다.
"다녀왔어."
일부러 문소리를 크게 내며 현관에서부터 귀가 인사를 하자 작은 발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현관 안쪽 문의 불투명 유리 저 편에서 자그마한 녹색 그림자가 후다닥 거실 안쪽으로
향했다.
나는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현관의 안쪽 문을 열었다.
그제서야 연두가 맨발로 총총 뛰어온다.
[다녀오신 데스우]
"뭐하고 있었어?"
[우, 운치를 하고 있었던 데스요]
거짓말이다. 아까 넌 작은방에서 나왔다.
아마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황급히 거실 한구석의 실장용 변기에 운치를 해두긴 했겠지
만.
"어 그래? 혹시 속 안 좋으면 말해라."
[걱정해주셔서 감사한 데스.]
하지만 일단 넘어가준다.
연두의 입가엔 어색한 미소가 걸려있다.
아마 지금의 내 표정도 연두와 몹시 닮아있겠지.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나는 속아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두 너, 약속을 어기고 자를 낳았구나.
그렇지?
-당신이 잠든 사이에-
내가 귀가할 때마다 작은방에서 연두가 뛰어나오기 시작한 건 저번 주 월요일부터였다.
그날도 안쪽 문의 불투명 유리 뒤에서 허둥지둥 뛰어가던 뒷모습을 기억한다.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뭘 하고 있었는지도 묻지 않았다.
이혼하기 전 딸아이가 쓰던 방은 지금은 반쯤 창고가 된지 오래였고 안 쓰는 유아용품이나 장
난감, 아내가 쓰던 잡다한 물건들이 제법 있었으니까 그런 걸 뒤적이고 있었겠지 싶었다.
뭔가 수상한 점을 눈치챈 것은 지난 일요일, 즉 어제였다.
연두는 내가 하루종일 집에 있자 뭔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데에에... 주인님, 오늘은 안 나가시는 데스우?]
"일요일엔 일 안 한다니까. 나도 좀 쉬자."
[그, 그러셨던 데스. 죄송한 데스.]
"왜? 같이 공원 가서 카트 한바퀴 밀어줄까?"
[뎃! 아닌 데스. 괜찮은 데스.]
연두는 거실 바닥에서 자동차 놀이를 하면서 나를 흘끔흘끔 쳐다봤고 소파 위에 앉아 실장용
애니를 보면서도 벽걸이 티비의 유광 테두리에 비치는 나를 불안한 눈으로 훔쳐봤다.
그리고 그 시선은 아주 가끔씩, 닫혀 있는 작은방의 문을 향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둔한 사육주라도 알 수 있다.
작은방에 뭔가 있으며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한다는 걸.
그제서야 요 며칠간 이상했던 점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연두는 우리 집 문지방을 넘던 자실장 시절에 이미 훈육이 완료된 상태였기에 내가 실장채를
쥐게 할만한 짓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대단한 어리광쟁이였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틈만 나면 놀자고 보채는 그 모습이 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
기에 난 어리광에 한해서는 연두를 혼내지 않았다.
독립심이 높아지는 성체실장이 되고 나서부터 같이 놀아달라고 보채는 일은 줄었지만 내가 침
실에 들어가 있으면 따라들어와서 혼자 어설프게 뜨개질 세트를 만지거나 크레용을 쥐고 딸아
이가 쓰던 글씨연습장에 삐뚤빼뚤한 글씨를 따라그렸다.
내가 시야에 없으면 불안했던 것이다.
그런 녀석이 5일 동안 한 번도 내게 놀이를 보채지 않았다.
잘 시간이 되자 실장용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일 없이 거실 한 구석의 목제 실장 하우스
에 들어가서 문을 꼭 닫았다.
내가 슬슬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면 몇 분 후 작은 맨발이 장판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들
렸다.
이걸 5일씩이나 놓치고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밖에 없었다.
연두가 나 몰래 자를 낳았다는 것.
---
앞서 내가 연두를 기르며 실장채를 쥘 일이 거의 없었다고는 했지만, 전혀 없던 건 아니었다.
연두 녀석은 올해 봄에 뒷마당 쪽 베란다로 날려들어온 꽃가루를 눈에 찍어발라 임신한 적이
있었다.
깜빡 잊고 바깥 창문 걸쇠를 잠가두지 않은 탓이었다.
초록색으로 변한 눈을 들키지 않으려고 연두는 하우스 안에 틀어박혀 저장해둔 비상식을 먹으
며 이틀간 나를 피했다.
꽤 철저하게 숨길 생각이었는지 운치는 내가 잠든 사이에 몰래 해결했고 내가 집 안에서 눈을
뜨고 있을 동안은 태교의 노래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속아넘어갈 내가 아니었다.
연두가 임신하고 셋째날 밤, 나는 운치를 하러 나온 연두의 목걸이를 붙잡아 욕실로 향했다.
팬티를 벗긴 뒤, 눈을 가리며 저항하는 연두의 팔을 실장채로 때려 부러뜨리고 양쪽 눈꺼풀을
벌려서 빨간 식용색소를 넣었다.
몸부림치는 연두의 총배설구에서는 운치와 함께 다섯 마리의 엄지실장이 나왔다.
강제출산과 골절의 고통으로 축 늘어진 녀석 앞에서 나는 다섯 마리의 엄지를 집어들어 세면
대에 넣었다.
온수를 약하게 틀어 점막을 떼낸 뒤 연두에게 잘 보이도록 한 마리를 집어들어 내 손 안에 쥐
었다.
[레에! 마마 레치!]
내 손 안에서 연두를 내려다보며 팔을 흔드는 엄지 위로 다른 한 손을 덮어 서서히 감쌌다.
[레츄아앗! 아파요 레츄! 살려주세요 레츄! 마마앗!]
[데에엣! 주인님, 엄지를 살려주시는 데스! 살려주시는 데스!]
연두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부러진 팔을 힘겹게 치켜들어 싹싹 빌었다.
"안 돼. 약속이었잖아."
한 마리 한 마리 으깬 고깃덩이로 변해서 변기에 빠질 때마다 연두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오로로롱! 오로로롱!]
"이번엔 이걸로 넘어가지만 다음 번엔 널 공원에 버릴 거야."
괴로운 마음을 눌러삼키며 마지막 엄지를 으깬 뒤 변기물을 내리자 연두가 가슴을 누르며 엎
어졌다.
위석에 금이 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괴로워했기에 나는 연두에게 실장구급키트에 있던
위석활성제를 주사하고 진통제를 먹여 재운 다음 출근했다.
미움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귀가한 나를 맞이한 건 평소와 다름없는 연두였다.
연두와 나는 서로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했다.
오히려 그 일 이후로 연두의 어리광이 좀 늘어나기까지 했다.
자를 갖지 못하는 허전함을 나와의 유대로 달래려 했던 걸까.
그런데 왜 이제 와서.
---
그리고 오늘.
나는 연두의 저녁밥에 지효성 네무리를 두 알 갈아서 섞어넣었다.
네무리의 약효가 전신에 돌기 시작하자 연두의 눈이 끔뻑끔뻑 감겼다.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에 눈을 비비며 저항하는 연두에게 조용히 웃으며 말을 걸었다.
"연두야."
[흐아아암... 네, 데스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그제서야 내 웃음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챘는지 연두가 감기던 적록색 눈을 번쩍 뜨며 놀
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쓰러지듯 잠들었다.
"일어났을 땐 공원일 거야, 연두야."
연두가 귀를 꼬집어도 반응이 없을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한쪽 귀에 링갈
의 이어폰을 끼고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안 쓰는 침대와 책상 위부터 벽장 안쪽과 방바닥까지 수북하게 쌓인 골판지 상자와 리빙박스.
여기 어딘가에 연두의 자가 숨어있을 터였다.
제일 위쪽의 박스부터 하나하나 내려놓고 점검하기 시작했다.
---
수색 한 시간째.
책상 위에 있던 상자 여섯 개와 침대 위에 있던 상자 여덟 개를 싹싹 뒤진 나는 이마에 흐르
는 땀을 닦으며 딸이 쓰던 침대 위에 적당히 드러누웠다.
아직도 찾을 짐은 썩어나게 많은데 아무 것도 나온 게 없었다.
[프니후-]
...라고 생각한 순간 들려온 희미한 울음소리.
인간의 청력이었으면 못 들었겠지만 실장석의 울음소리만 잡아내 증폭시키는 링갈 덕분에 들
을 수 있었다.
[막내 우지챠, 소리내면 들키는 레치!] [오네챠 목소리가 우지챠보다 큰 레츄!]
다만 소리가 난 방향을 알 수 없었다. 다시 눈에 힘을 주고 방 구석구석을 훑어보자 얇은 커
튼 뒤에서 작은 녹색 그림자가 비쳐보였다.
커튼을 옆으로 걷어내자 그곳엔 몸을 잔뜩 움츠린 엄지 실장 두 마리, 그리고 각각의 품에 안
겨 몸을 공처럼 말고 있는 구더기 실장이 두 마리 있었다.
그럼 그렇지.
자를 임신한 상태면 내게 들키니까 내가 없는 사이에 엄지와 구더기를 강제 출산하고 숨겨둔
거였나. 아마 자기 피를 썼겠지. 실장석의 회복력을 생각하면 베인 상처는 내버려둬도 세 시
간이면 감쪽같이 낫는다.
게다가 몸집이 작으니 숨기기도 용이했을 터.
내가 있을 동안 구더기의 관리는 엄지에게 맡겼을 거다.
점막과 운치는 내가 욕실에 설치해준 실장용 샤워부스에서 떼냈으려나.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가만히 있자 엄지 두 마리가 그제서야 도망치기 위해 침대 밑으로
달렸다.
어딜.
한 손에 엄지 한 마리씩, 덤으로 엄지가 껴안고 있는 구더기까지 네 마리를 순식간에 잡아올
렸다.
[레치이잇!] [레챠아앗!]
내 손가락을 향해 작은 이빨을 세우는 두 마리의 엄지 실장을 책상 위로 굴리자 구더기 두 마
리가 엄지들의 품에서 빠져나가 뒹굴었다.
[이런 프니프니는 싫어 레후!] [눈이 빙글빙글 레후!]
정신을 차린 엄지실장 두 마리가 가랑이에서 운치를 흘리며 책 사이에 숨으려 했지만 두건을
잡아 끌어냈다.
[닝겐상, 죄송한 레치! 금방 나가는 레치! 마마에게 돌아가는 레치!] [이거 놓는 레챠앗! 마마
앗! 마마앗!]
하하, 마마 말이지.
책상 위에 방치된 구겨진 종이컵에 구더기 두 마리를 담아두고 엄지들을 아무렇게나 쥐어 거
실로 나갔다.
"그래, 마마랑 같이 나가면 되겠네."
허리를 굽혀 두 마리를 연두의 옆에 슬쩍 떨어뜨렸다.
[레챠아앗! 이 아줌마는 누구인 레챠앗!] [내보내주는 레치! 나갈 거인 레치!]
"뭐?"
예상과는 달리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는 두 마리를 낚아채서 들어올렸다.
[마마가 밖에서 기다리는 레치! 보내주는 레치!] [운치나 먹는 레챠아앗!]
허공에서 투분하려는 오른손의 엄지실장을 멀찍이 들고 그보다 침착한 편인 왼손에 들린 언니
를 향해 물었다.
"무슨 소리야. 니네 마마 여깄잖아."
[이 아줌마는 마마가 아닌 레치! 와타치타치는 공원에서 온 레치!]
잠시 얼떨떨해있자 뒤늦게 연두의 목걸이를 봤는지 엄지실장이 황급히 말을 바꾼다.
[새, 생각해보니까 마마가 맞는 레치! 그러니까 와타치타치도 사육실장인 레치네? 주인님, 와
타치타치를 내려주시는 레치!]
안됐지만 한 박자 늦었다.
더 들을 것 없이 두 마리를 싱크대 안에 던져넣었다.
[주인님 레치! 왜 이러시는 레치!] [레츄아앗! 체아앗!]
다시 작은방으로 향했다.
종이컵 안에 있던 구더기 두 마리를 책상 위에 쏟은 뒤 바로 프니프니를 했다.
[레후! 닝겐상 프니프니 기분 좋은 레후!] [오네챠들보다 좋은 레후!]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있던 구더기 두 마리가 금세 헤롱거리는 표정으로 운치를 흘렸다.
"그래그래. 혹시 이 방에 어떤 아줌마가 들어온 적 없니?"
[노란 목걸이 한 아줌마가 매일 들어온 레후~] [벽에 들어간 레후~]
벽에 들어갔다는 건 벽장을 말하는 것이렷다.
즉시 프니프니를 그만두고 벽장을 열었다.
벽장 문을 열자마자 리빙 박스 위에 놓인 조잡한 분홍색 털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털뭉치에는
가느다란 두 개의 대바늘이 꽂혀있었다.
"뜨개질...?"
집어들자 털뭉치 밑에 있던 색바랜 종잇조각이 팔랑팔랑 떨어졌다.
종이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생일선물'이라고 써 있었다.
생일.
그러고 보니 내일이 내 생일이었구나.
나도 잊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뜨거워지는 눈가를 꾹꾹 누르며 털뭉치를 조심스럽게 원위치시키고 벽장 문을 닫
았다.
---
조금 전 언니 엄지는 자기들은 공원에서 왔고 마마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나는 뒷마당으로 난 베란다로 향했다.
안쪽 미닫이문을 열고 시선을 좌에서 우로 훑자 바깥 미닫이문이 아주 살짝 열려 있었다.
딱 엄지실장이 통과할만큼.
"탁아를 당했단 말이지..."
맨발인 채로 유리문을 활짝 열어 난간을 타넘었다.
잔디 위에 발을 디디자 방치된 텃밭 쪽에서 무릎까지 오는 작은 그림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조경수를 향해 뛰어갔다.
앞질러가서 배를 걷어차니까 [데푹!]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굴러갔다.
조경수 뒤에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비닐에 덮인 허름한 골판지 상자가 있었다.
상자를 그대로 들어올려서 녹슬어가던 바비큐 그릴 위로 가져가 탈탈 털었다.
부스러진 숯과 잿더미 위로 세 마리의 자실장이 떨어졌다.
뒤늦게 내 쪽으로 달려오는 친실장을 붙잡아 마찬가지로 그릴 안에 넣고 위에 철망을 덮었다.
뒤이어 부엌과 작은방에서 들고 나온 엄지와 구더기도 철망 사이로 밀어넣었다.
억지로 밀어넣자 엄지 두 마리의 양팔이 떨어져나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두 마리 엄지의 상처에 재가 달라붙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창고에서 찾은 액상 착화제를 꺼내서 바비큐 그릴 위로 모조리 부었다.
[닝겐상, 꺼내주시는 데스! 당장 나가는 데스!] [테챠아아앗! 테쟈아아앗! 콜록, 콜록!]
"하하하..."
마른 웃음을 흘리며 가늘게 꼰 신문지에 불을 붙였다.
그냥 발견했으면 아마 약간의 사료랑 들생활에 유용한 몇가지 쓰레기를 들려서 내보냈겠지만
너희들 때문에 죄없는 연두가 내쫓길 뻔했으니 용서할 수 없다.
철망 사이로 불붙은 신문지를 떨어뜨렸다.
[안 되는 데스! 자들만이라도 살려주시는 데스! 부탁인 데스! 제발...]
그 뒷말은 불꽃에 삼켜졌다.
단백질이 타는 악취와 끓어오르는 실장변의 냄새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나는 바비큐 그릴의 뚜껑을 닫아놓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
연두는 여전히 네무리에 취해 침까지 질질 흘려가며 자고 있었다.
딱한 녀석.
하지도 않은 일로 괜한 의심을 사서 버려질 뻔했다.
연두에게 미안한 동시에 연두를 믿어주지 못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담아 자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연두가 잠시 움찔하며 다리를 내
저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이라도 꾸는 걸까.
실장 하우스로 옮기려다 말고 그대로 담요를 덮어준 뒤 거실의 불을 껐다.
내일은 잔뜩 놀아줄게, 연두야.
탁아를 처음 당한 남자와 운 좋은 친실장
불 켜진 원룸.
남자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오후 내내 직장에서 상사에게 잔뜩 깨지다가 여덟시가 넘어서야 겨우 해방됐다.
지친 심신을 달래려 회사 앞 포장마차로 들어가려던 남자는, 술잔을 기울이는 상사의 뒷모습
을 보고 그대로 뒷걸음질쳐서 편의점으로 향해야 했다.
맥주 몇 캔과 함께 간단한 씹을거리를 사서 공원 벤치에서 먹으려 했지만 마른 안주 봉지를
뜯자마자 냄새를 맡고 구름같이 몰려든 들실장들의 아우성에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봉지를 열자 보이는 건 똥범벅이 된 마른 안주 사이에서 테치테치 울음소리를 내는 작
달막한 자실장 두 마리.
구겨진 남자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두 마리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닌겐씨, 보는 테치~ 이모우토챠 정말 귀여운 텟츄~ 가족의 보배인 테치요~]
[치이이~]
언니 자실장이 부끄러워하는 동생 자실장을 팔로 안아 들어올리며 자랑하지만 남자의 귀엔 테
치테치 시끄럽기만 하다.
꽉 쥐어진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이마에는 핏줄이 돋았다.
말로만 듣던 탁아를 하필이면 이런 최악의 타이밍에 당하고 말았다.
편의점에서 나올 때 넣은 걸까.
아니면 공원 벤치에 앉아 잠시 허공에 대고 신세한탄을 하느라 비닐봉지를 옆에 내려놓았을
때 들어간 걸까.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지금 이 두 마리 똥벌레들이 자신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해줄 유일한 낙을 앗아가놓
고도 똥범벅이 된 채 태평하게 테치테치 울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 링갈을 작동시켰다.
"야, 야."
[막내 이모우토챠는 운치도 정말 귀엽게 하는 테치~ 그리고... 텟! 부른 테치?]
[텟치이!]
"니네가 알아서 들어온 거냐, 니네 마마가 넣은 거냐?"
[마마가 와타치타치를 넣어준 테치. 마마도 곧 가니까 메로메로 시켜서 귀엽다귀엽다 많이 받
으라고 한 테치요~]
[마마 츄앗!]
"그래, 마마도 온다고?"
[응 테치! 와타치타치한테 예쁜 흑발 이모우토챠들을 만들어 줄거라고 한 텟츄우~]
[이모우토챠!]
"어, 그래. 거기까지."
남자는 이를 부드득 갈며 편의점 봉투를 방 안쪽 벽에 튀어나온 못에 걸어놓고 현관으로 향했
다.
대롱대롱 흔들리는 봉투 입구에서 언니 자실장이 옆으로 누운 맥주캔을 딛고 머리를 내밀어
멀어져가는 남자의 등을 향해 계속 떠들어댄다.
[닌겐씨, 닌겐씨! 밥 우마우마 아리가또 테치. 그치만 너무 짰던 테츄. 물은 없는 테치카?]
[물 테치!]
"입 닥쳐! 닥치라고 씨발!"
[테챠아아앗!]
[츄아아아앗!]
고함소리에 놀란 두 마리가 비명을 질렀다.
빵콘하면서 맥주캔에서 굴러떨어진 언니 자실장은 잽싸게 여동생을 땅콩 봉지로 밀어넣고 자
신도 꿈틀꿈틀 파고 들었다.
[이모우토챠 큰일난 테치... 닌겐씨가 화난 테치... 와타치타치가 뭔가 잘못한 것 같은 테헤
엥...]
[화난츄아!]
여태 분위기 파악을 못하던 두 마리였지만 이제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벌벌 떨고 있
었다.
물론 남자는 그 광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매섭게 부릅뜬 두 눈은 마치 문 너머에 이미 친실장이 도착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납게 현관을
노려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예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했던 학대파들의 영상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흘러갔
다.
너희들에게 지옥을 보여주마.
남자는 그렇게 다짐했다.
학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같은 끓어오르는 분노만 있다면 어떤 잔인한 짓이라
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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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후.
봉투 속의 자매가 다시 흘끔흘끔 바깥을 내다보기 시작하고, 혼자 중얼중얼 욕설을 내뱉던 남
자가 의자에 앉아 막 담배를 입에 가져다 물었을 때.
-콩콩콩
작은 살덩이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현관을 울렸다.
[와타시의 귀여운 자들 냄새가 나는 데스우~ 문을 여는 데스우~]
[테에, 마마가 온 테치!]
[마마 테츄아!]
친실장의 목소리에 마음이 놓였는지 봉투 속 두 마리가 다시 테치테치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
했다.
"후우..."
남자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꺾어서 바닥에 버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피가 끓어오르고 심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꽉 쥐어짜이는 기분이었다.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남자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심호흡을 한다.
-콩콩콩콩콩콩콩콩콩!
[시치미 떼지 말고 썩 문을 여는 뎃샤아아!]
-벌컥
문이 갑자기 바깥쪽으로 열리자 문에 찰싹 달라붙어 마구 두들겨대던 친실장이 머리를 부딪히
고 꼴사납게 자빠졌다.
[데부웁]
[닌겐씨 테치!]
[큰 테치!]
[닌겐씨 집 넓은 테치!]
넘어진 친실장을 돌아보지도 않고 자실장들이 앞다투어 현관으로 달려들어왔다.
하나같이 누더기같은 실장복에 이것저것 얼룩을 묻히고 있었다.
타일이 깔린 현관과 방바닥 장판 사이의 낮은 단차를 낑낑대며 타넘어 집 안으로 들어오려는
세 마리를 남자가 발로 한 마리씩 밀어 뒤로 굴렸다.
[테삣]
[테븁]
[테엥]
세 마리가 각자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데이...]
방금 전까지 넘어져있던 친실장이 일어나며 몸을 툭툭 털었다.
그럭저럭 먹이를 잘 찾은 개체였는지 키가 남자의 허벅지까지 오고 살집도 제법 좋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찬 바람에 여기저기 터 있었고 옷과 맨살 어디에도 자들과 마찬가지로 꼬질
꼬질한 때와 얼룩이 묻어 있었다.
실장취와 더러운 옷감의 냄새가 남자의 코를 찔렀다.
[마마! 닌겐이 못 살게 구는 테치!]
[그런 테치! 와타치타치 집인데 못 들어가게 하는 테츄!]
[혼내주는 테치!]
[오마에타치 그러면 못 쓰는 데스. 닌겐을 만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 데스]
친실장이 다리에 달라붙어 칭얼대는 세 마리를 향해 근엄하게 말하더니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뎃수~웅]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목을 옆으로 기울이며 애교를 떨었다.
남자의 입에서 다시 부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오마에타치도 어서 애교를 하는 데~스. 마마처럼 귀엽게, 뎃수~웅]
[[[테, 텟츄~웅]]]
[뎃수~웅]
[[[텟츄~웅]]]
제 딴에는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겸해 닌겐을 메로메로 시켜보겠다고 취한 행동이었지만 화가
난 남자의 눈에는 그저 역겨워 보일 뿐이었다.
"지랄하네 씨발."
남자가 욕설을 내뱉으며 한발을 성큼 내딛었다.
[데뎃?]
험한 말에 놀란 친실장이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지만 남자의 손이 더 빨랐다.
친실장의 두건을 거칠게 잡아당겨 방 안쪽으로 던지더니 자실장들도 발로 먼지쓸듯 안쪽으로
밀어내고 현관문을 닫아버렸다.
"야, 내가... 후... 지, 지금 기분이 존나... 후우... 좆같거든?"
고작해야 벌레같은 실장석을 상대로 말하는데도 말이 자꾸 더듬어져 나오고 숨이 찼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에 남자는 가슴을 누르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남자는 엎어진 상태로 정신을 못 차리는 친실장의 귀를 잡고 일으켜세웠다.
"니가 싸지른 똥벌레 새끼들이 내가 먹을 거에 똥을 싸질러놨단 말야."
한없이 좁아지고 일렁이는 시야 속에서 더러운 실장석의 모습만이 보였다.
"넌 오늘 죽었다."
[데에엣!]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낮춘 남자의 주먹이 뒷걸음질치는 친실장의 얼굴을 향해 내리꽂혔
다.
철퍽- 하고 과일을 으깨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해방
감이 퍼졌다.
친실장이 방바닥 위로 쓰러졌지만 남자의 주먹질은 그치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덱! 데겍! 데갸아악!]
"후우..."
몇 번인가 주먹을 내리친 뒤 남자는 손을 털며 일어섰다.
가벼운 현기증 같은 것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뜬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러운 기분
에 휩싸였다.
바닥에 넘어진 친실장의 얼굴은 처참했다.
피와 적록색 눈물로 칠갑이 된 뺨과 눈두덩은 울긋불긋 부어올라 있었고, 그 와중에 이마와
광대뼈는 함몰되어서 얼굴이 마치 찌그러진 감자처럼 변해 있었다. 벌어진 입 사이로는 부러
진 이빨이 피와 함께 흘러나왔고 늘어진 혓바닥은 반쯤 잘려 덜렁거렸다.
움찔움찔 경련하는 두 다리 사이에서 진한 초록색 액체가 흘러나와 방바닥 위로 번져나갔다.
그제서야 피비린내와 실장변의 악취가 코를 찔러왔다.
험한 꼴을 당한 친실장을 자실장들이 테에에엥 테에에엥 울며 몰려들어 감싼다.
세 마리 모두 팬티가 녹색으로 부풀어있었다.
[닌겐씨, 살려주는 테치! 마마를 그만 괴롭히면 좋은 테치!]
[와타치타치가 나가는 테치! 그만하는 테치!]
[테에에엥! 테에에엥!]
[오하헤챠히 이허하 혜쓰... 호하카느 제흐...(오마에타치 위험한 데스... 도망가는 데스...)]
남자가 그 광경을 멍하니 보는 사이, 친실장은 자실장들을 달래며 비틀비틀 일어섰다.
남자가 가만히 내버려두자 친실장은 무릎을 꿇고 도게자를 했다.
[사혀주히느 헤스... 와햐시의 챠드른 사혀쥬히느 테흐...(살려주시는 데스... 와타시의 자들은
살려주시는 데스...)]
[테에에엥! 마마 일어나는 테치! 도망가는 테치!]
[와타치도 도게자 하는 테치! 용서하는 테치!]
[테에에엥! 테에에엥!]
비록 뭉개진 발음이라 링갈로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친실장이 자들의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순간 아찔해졌다.
조금 전의 분노가 사그라들고 차가운 자기혐오가 밀려들었다.
이게 뭔가.
고작해야 몇천원짜리 술과 안주를 망쳤다고 저 조그마한 생물을 죽어라고 두들겨패고 말았다.
그까짓 안주 정도 나눠줘도 좋았을걸.
그냥 말로 타일러 보내도 좋았을걸.
이럴 것까진 없었을텐데.
시선을 가만히 방 안쪽으로 향하자 못에 걸어뒀던 편의점 봉투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 나오려고 발버둥치는 거겠지.
"하아..."
남자가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이미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기분이 엉망이었다.
"야."
[헤엑!]
자신을 흘끔흘끔 올려다보다말고 다시 머리를 땅에 박으며 오들오들 떠는 친실장을 남자가 발
로 툭툭 건드렸다.
"일어나라."
[헤휴우...]
피와 적록색 눈물을 뚝뚝 떨구며 친실장이 몸을 일으켰다.
"니 더러운 새끼들 데리고 당장 꺼져. 알았어? 또 오면 그 땐 진짜 죽인다."
[캉햐항이아 혜흐...(감사합니다 데스...)]
친실장이 반쯤 잘려 덜렁거리는 혀로 자실장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핥아주는 동안 남자는 못에
걸어뒀던 편의점 봉지를 내렸다.
똥범벅이 된 맥주캔만 꺼낸 뒤 봉지를 그대로 친실장에게 건넸다.
"안에 남은 건 니네가 알아서 처리하고 다신 오지 마라."
친실장은 품에 끌어안았던 자실장을 내려놓고 봉지를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마! 마마앗!]
[테에에엥~ 마마 울퉁불퉁 테치... 못생겨진 테츄...]
봉지 안에서 친실장을 올려다 본 두 마리가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남자가 현관문을 열어주자 여섯 마리의 실장석 일가는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헷흐우...]
친실장이 남자를 향해 목을 숙여 인사 비슷한 동작을 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자들을 이끌고 걸어갔다.
초록색 그림자는 건물의 복도를 지나고 출입구를 빠져나가서 저 멀리 길 안쪽으로 아장아장
사라져갔다.
"하, 시발..."
문을 닫고 돌아선 남자가 원룸의 몰골을 보고 욕을 내뱉었다.
"청소는 시키고 보낼걸."
아무래도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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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얼굴이 희미하게 찌그러진 성체 들실장이 남자의 원룸 현관문을 두들겼다.
-콩콩콩
[주인님~ 문을 열어주시는 데스우~ 와타시인 데스우~]
-벌컥
들실장이 밖으로 열리는 문에 얼굴을 맞아 뒤로 넘어졌다.
기가 찬 듯한 남자의 얼굴이 더러운 들실장을 내려다봤다.
"너 뭐야? 미쳤냐? 왜 또 왔어?"
들실장이 부딪힌 이마를 문지르며 일어나 웃는다.
[데프픗, 운치밖에 할줄 모르는 자들은 놓고 온 데스우~ 이젠 고귀한 와타시만 키울 수 있는
데스우~]
친실장은 며칠간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저번에 와타시가 두들겨맞은 건 탁아한 4녀와 5녀가 운
치를 한데다 귀찮게 다른 자들까지 데려가서 그런 데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자들을 골판지
하우스째로 버리고 온 것이었다.
보호해줄 친실장이 없으니 지금쯤이면 다른 들실장들에게 잡아먹혔을 터였다.
"아... 그러셔?"
입가를 일그러뜨린 남자가 거칠게 손을 뻗어 친실장을 원룸 안으로 들이고 현관문이 닫혔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얼굴이 부어오른 독라실장 한 마리가 복도로 굴러나왔다.
"썩 꺼져."
그 한 마디와 함께 금속 여닫이문이 매정하게 쾅 닫혔다.
독라실장은 벌어진 입에서 혀를 내밀고 주저앉은 채, 굳게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
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밖으로 열려있는 원룸촌의 출입문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들어오자
독라가 목을 움츠렸다.
[데히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실장석의 A모양 입에서 바람이 새는 듯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든 걸 잃은 친실장은 주저앉은 모습 그대로 한참을 구슬피 울더니 비틀비틀 복도를 걸어나
가 거리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런 뒷모습을 배웅하듯 어느새 하얀 눈이 내려앉고 있었다.
어느 자실장의 애교
실장석이 애교(아첨)를 떤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부 애호파들은 이걸 두고 오직 인간에게 맞춰 적응해 온, 인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랑
스러운 생물 운운하는 개좆까는(이런, 실례) 소리를 지껄여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장석의 애교 대상은 실로 다양하다.
우연히 마주친 인간이나 말이 통하는 같은 실장석끼리는 물론이고 자신을 덮치려는 까마귀나
고양이 등의 천적부터 시작해서 손이 닿지 않는 나무 열매나 꽃, 먹기엔 너무 맵거나 짠 음
식, 인간의 집에서 살아주려는 자신을 가로막는 유리창, 건너기엔 너무 넓고 깊은 도랑, 자신
들을 두렵게 하는 천둥소리, 가차없이 내리꽂히는 한여름의 태양까지 그 대상은 인간과 동식
물, 무생물과 자연현상을 가리지 않는다.
횡단보도도 아닌 도로가에서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멈춰달라고 한참 애교를 부리더니 잠시 차
가 안 오는 사이에 애교 포즈 그대로 건너편을 향해 뛰어가다가 깔려죽은 놈이나 추운 겨울날
골목길 위에서 단체로 하늘을 향해 뎃수웅~ 텟츄웅~ 거리다가 선 채로 얼어죽은 들실장 일가
를 본 사람도 제법 된다고 한다.
하여간 조금만 관찰해도 알 수 있는 사실도 모르면서 애호한다고 설쳐대는 얼치기 애호파들
대가리 수준을 알만하다 하겠다. 참으로 인간의 탈을 쓴 분충 쉐리들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몸통 어딘가에 위석을 감추고 있지 않을까? 한번 째보고 싶어진다.
이런, 사설이 길었다.
이야기를 되돌리자.
하여간, 그런 다양한 애교 가운데 좀 특별한 케이스를 관찰했기에 여기에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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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나는 인근 공원 안쪽 오솔길 위에 관찰 카메라와 실장용 링갈마이크를 설치했다.
인간이 지나다니며 난 그 길은 실장석에겐 제법 넓었고 위로 높이 솟은 수풀은 하늘에서 까마
귀 같은 포식자가 덮쳐올 때 숨을 곳이 되었기에 통행량이 제법 있었다.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화면을 뭔가 지나갈 때까지 계속 바라보고 있을 수도 없고 배터리 문제
도 있었기에 난 모션 센서가 달린 카메라를 달았다. 움직임이 있을 때만 알림을 보내며 화면
을 띄우고 자동 녹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나중에 녹화된 영상만 확인해도 됐지만 마침 한가한 주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컴퓨터를 켜두고
알림 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띠링- 하며 녹화 신호가 울렸다.
책을 덮은 뒤 화면을 바라보자 오솔길을 굽어보도록 설치된 카메라 아래를 자실장으로 추정되
는 작은 실장석이 아장아장 뛰어가고 있었다. 뛰어간다고는 해도 팔을 흔드는 정도가 격해진
것일 뿐 속도는 걸을 때와 많이 차이가 나지 않았다.
화면에 들어오고나서 열 걸음쯤 갔을까. 실장석이 중간에 돌부리에 걸려 털퍼덕 엎어졌다.
[테체엥]
엎어진 상태에서 옆으로 반바퀴 데굴 구르더니 발목을 부여잡는다. 카메라를 조작해 광학 줌
을 당기자 오른발에 신은 초록색 구두 바로 위, 즉 발목 부근이 보랏빛으로 변한 채 뒤틀려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가랑이 사이의 팬티에서 초록색 얼룩이 번져가는 것도.
[테, 테, 테갸아아아아악!]
스피커에서 새된 비명이 흘러나왔다. 기능키를 눌러 대상 초점화를 실행했다. 이제 저 실장석
이 움직이는 대로 카메라가 쫓아갈 것이다.
[마마~ 마마~ 테에에엥~ 티에에에엥~]
잠시 마마를 찾으며 적록색 눈물을 흘리더니 통증이 좀 가라앉았는지 일어서려고 한다. 하지
만 부상당한 오른발이 쑤시는지 다시 주저앉으며 발목에 뒤틀림을 더한다.
[텟뺘아아아아아아!! 아야아야 테치! 아야아야 테치!]
다시 발목을 붙잡고 뒹굴었다. 비명소리가 잦아들고 링갈마이크는 자실장의 테에-테에-하는
숨소리만을 전달했다. 자실장의 얼굴은 적록색 눈물과 노란 빛이 도는 투명한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가랑이 사이의 초록색 얼룩이 땅에도 묻어나왔다.
[아야아야 테츄... 아야아야가 너무한 테치이...]
중얼거리며 일어서더니 다시 넘어진다. 이번엔 아까처럼 오른발에 많은 체중을 한번에 실은
게 아니었는지 발목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파보였다. 발목 부근이 덜
덜 떨리고 얼굴에는 다시 적록의 눈물이 흘렀다.
[치이... 츄우...]
자실장이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상체를 일으켜 바닥에 앉았다. 다친 오른발은 가랑이쪽으로
당긴 채였다. 앉은 자세 그대로 소매로 눈물과 콧물을 슥슥 닦는다. 뭘 하려는 걸까?
[테, 텟츄웅~]
자실장이 한 손을 턱에 대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 애교? 이 상황에서? 지나가던 인간이나 다른 실장석이라도 발견한 건가 싶어 황급히 광
학 줌을 최대한 뒤로 물렸지만 화면에 비치는 건 없었다.
"뭐야."
중얼거리며 다시 줌 인.
[텟츄웅~ 아야아야하지 않는 테츙~ 와타치에게 메로메로인 테츙~ 아야아야 그만하는 테츙~]
자세히 보니 자실장은 자신의 오른쪽 발목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숙인 채 말을 걸
고 있었다. 맙소사. 저 녀석 지금 자기 다리에 대고 아프지 말라고 애교를 부리고 있는 거야?
[츄우~ 착하다착하다 테츄~ 옳지옳지 테츄웅~]
앉아있는 사이 통증이 가라앉았는지 자실장이 다시 일어섰다. 왼발에 체중을 최대한 실어 깡
총거리며 오른발은 끄트머리만 세워 나아간다. 착지할 때마다 가랑이 사이에서 물기 있는 녹
색 가루가 후드득후드득 떨어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체중 배분에 실패했는지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더니 아까보다도 심하게 쓰
러졌다.
[테켁]
자실장이 다시 탈분하면서 팬티가 불룩해졌다. 자실장은 잠시 그대로 엎어진 채 어깨만 위아
래로 오르내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감도를 최고로 높인 링갈마이크가 씨근덕거리는 자실장의
숨소리를 생생하게 포착했다. 몹시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몸을 굴려 하늘을 향해 눕더니 소리를 지른다.
[테챠아아아아아아-!!]
포식자를 불러들이는 건 아닐까 절로 걱정되는 음량이었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던 자실
장이 일어나 앉더니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을 주웠다.
그리고는
[왜 말을 듣지 않는 테체아!! 오마에 같은 똥다리는 고귀한 와타치의 다리가 아닌 테챠앗!!]
이라고 외치며 자신의 오른쪽 무릎 아래를 내리찍었다.
[테뵤오오오오옥!!]
자실장이 고통에 눈을 뒤집으며 가랑이 사이에서 물같은 운치를 흘렸다. 허리를 뒤로 젖히며
손에 들린 돌을 내던진다. 잠시 발광하더니 다시 다른 돌을 집어들고 악에 받쳐 외쳤다.
[아야아야해도 소용없는 테치! 오마에 같은 똥다리는 솎아내는 테치!]
그러더니 이를 악물고 몇 번이고 내리찍어 기어이 무릎 아래의 다리를 끊어냈다.
[테히이... 꼴 좋은 테치... 그러게 아야아야 말라고 할 때 아야아야 그만뒀어야 하는 테치이...
끝까지 똥다리였던 테치...]
중얼거리며 잘려나간 오른쪽 정강이를 손으로 찰싹찰싹 때린다.
흠... 발목이나 무릎 아래나 아픈 건 엇비슷할 것 같은데 왜 이번엔 멀쩡한 걸까? 분노가 아
픔을 억눌러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손에 묻은 끈적끈적한 체액을 혀로 핥아 닦아내던 자실장의 눈이 살짝 크게 떠졌
다. 저런 눈을 본 적이 있었다. 동족의 고기맛을 본 들실장의 눈이었다.
[텟츄웅~]
행복한 콧소리를 울리더니 곧 잘린 다리를 집어들어 열심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테츄~ 역시 고귀한 와타치의 다리는 맛도 좋은 테츄~]
너 아까는 똥다리니 뭐니 하지 않았냐...
한참을 그렇게 갉아먹는 녀석의 앉은자리 주변으로 어느새 적록색 얼룩이 넓어지고 있었다.
절단면에서 흘러나온 피와 체액이었다.
저대로 몇 분만 더 있으면 실혈사할 것이다. 하지만 자실장에게 그런 지식은 존재하지 않았는
지 다리에 입을 처박고 계속 자신의 살을 뜯어먹기 바빴다. 녀석은 잘린 다리에서 살점이 다
사라진 뒤에도 연신 뼈를 핥짝이고 있었다.
만면에 행복한 미소를 띄운 녀석의 상체가 갑자기 뒤로 기울었다.
[츄앗?]
자실장은 한 손을 땅에 짚어 상체를 바로 세우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대로 땅에 등을 대고
드러눕는다.
[테... 테치이...]
한쪽 팔엔 다리뼈를 껴안은 채, 다른 한 팔과 멀쩡한 다리를 버둥거려 일어나려고 애쓰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화면 속에서 자실장의 눈이 점점 탁해져갔다.
이유는 모르지만 죽음이 엄습해오는 것만은 확실히 느꼈는지, 자실장의 얼굴이 공포에 사로잡
혔다.
[치에에엥~ 체에에엥~]
눈에서는 적록색의 눈물을, 입에서는 울음소리를 흘리며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낭비한다.
그러던 자실장의 울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곧 죽음을 맞이하는 건가 싶어 화면에 얼굴이 가
득차도록 최대한 광학 줌을 당겼다. 죽음의 순간 이 녀석들의 눈이 뿌옇게 변해가는 걸 자세
히 보고 싶었다.
그런데 자실장의 얼굴이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행복회로 가동 중인 걸까.
[텟츄웅~]
비음 섞인 울음소리와 함께 화면 속 자실장의 얼굴이 다시 갸웃했다. 설마...
광학 줌을 살짝 뒤로 빼자 파들파들 떨리는 오른손이 애처롭게 턱에 붙어있었다.
[텟츄웅~ 귀여운 와타치는 죽지 않는 테츙~ 와타치는 메로메로인 테츙~]
정신이 멍해졌다. 화면 속의 자실장은 죽어가는 자기 자신에게까지 죽지 말라며 애교를 부리
고 있었다.
[텟츄웅~ 츄앗, 츄우... 테... 치이...]
그걸 마지막으로 자실장의 경련이 그치고 스피커가 침묵했다.
난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화면을 끄고 커피를 마시러 부엌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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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관찰로부터 실장석이란 자기 자신에게도 죽음의 순간까지 애교를 떠는, 보고 있는 쪽
이 슬퍼질 정도로 멍청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고 얼마 안 가서 학대파로 전향했다.
한여름날의 꿈
주인이 출근하여 집을 비운 금요일 오전.
사육실장 미도리는 작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데에에... 이건... 권총 아닌 데스우?"
자들과 함께 배불리 실장푸드를 먹고 운치를 한 뒤 구더기쨩에게 손수 프니프니까지 완료.
점심 시간이 될 때까지 자들을 재워놓고 그 사이 실장 전문 채널이라도 시청할 요량으로 거실
로 뒤뚱뒤뚱 걸어나온 미도리의 눈에 비친 것은 카펫 위에서 오전의 햇살을 반사하며 빛나는
은백색의 권총이었다.
권총. 주인님이 틀어준 닝겐용 티비 프로그램에서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다.
손잡이 근처의 까딱까딱을 당기면 힘세고 나쁜 닝겐들이 우수수 쓰러져나가는 무서운 물건이
었다.
"이게 왜 여기 있는 데스..."
미도리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은색의 흉기를 향해 다가갔다.
손가락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돌기가 달린 뭉툭한 손을 이리저리 놀려 권총을 들어올렸
다.
"무거운 데스..."
꽉 채운 급수통 정도의 무게일까. 한쪽 팔로 드는 건 힘들었기에 두 팔로 끌어안는다.
총구가 몸통을 향할 때마다 흠칫흠칫 몸을 뒤로 빼며 이리저리 돌리더니 용케 조준에 성공했
다.
"분명 이렇게 하는 것이었던 데스야."
뎃수웅뎃수웅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자세를 잡아본다.
짧은 팔다리에 퉁퉁한 몸매, 거기에 권총을 엉거주춤 끌어안은 채 자세를 취해본들 그닥 폼도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기괴해보일 뿐이었지만 미도리의 상상 속에서만큼은 자신도 티비
에 나오던 강인한 암컷싸움닝겐(여전사)이었다.
양손에 권총을 들고 울퉁불퉁 무섭게 생긴 수컷 닝겐을 제압하던 모습에 자신을 겹쳐보며 미
도리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다.
"그 암컷 닝겐은 결국 수컷 닝겐과 자를 만드는 일을 했던 데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총배설구가 느슨해지는 느낌이었다. 미도리의 팬티가 살짝 축축해졌다.
"데에에... 그럼 와타시도 주인님과..."
미도리의 볼이 절로 붉어진다.
"마마, 뭐하는 테치?"
"데갸악!"
자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차녀의 목소리가 어깨 너머로 들려오자 미도리는 품에 안은 권총을
엉겁결에 꼭 끌어안았다.
당연한 수순으로 손 끝에 걸려있던 방아쇠가 조여졌다.
파앙! 챙그랑!
권총의 격발음과 창유리의 파열음은 거의 동시에 울렸다.
"데에에에엣!" "테챠아아앗!"
미도리와 차녀의 머리 속이 동시에 새하얘졌다.
큰일난 데스! 유리창을 깨고 만 데스! 이를 어쩌면 좋은 데스! 미도리는 끌어안고 있던 권총을
내던졌고
뭔 테치! 방금 뭐가 일어난 테치! 차녀는 큰 소리에 놀란 나머지 탈분해버리고 말았다.
"마마 방금 그건 뭐인 테치! 왜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유리창이 부서진 테치!"
"마마도 모르는 데스우! 그보다 차녀, 왜 안 자고 나온 데스! 놀라서 쏘고 말지 않았냐는 데
스! 이를 어쩌면 좋은 데스! 주인님께 또 이따이이따이를 당하고 마는 데샤앗!!"
야구공만한 뇌를 풀가동시킨 결과 '차녀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면 와타시는 무사할 것인 데
스!' 라는 지극히 실장석스러운 결론을 내린 미도리였지만 차녀는 그런 친실장의 질책은 아랑
곳하지 않고 다른 것만을 보고 있었다.
"차녀! 혼날 땐 마마를 똑바로 보는 데샤앗! 흠씬 두들겨 맞고 싶은 데스? 독라가 되고 싶은
데스?"
"마마, 그건 권총 아닌 테치?"
"뎃"
속사포처럼 데스데스거리던 친실장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움찔한다.
"데에... 그, 그런 데스우! 매우 위험한 물건인 데스! 그런데 차녀는 이걸 어떻게 아는 데스?"
"와타치, 똥닝겐이 보는 티비를 같이 본 테치. 악마같은 닝겐도 이거 한방이면 죽음이었던 테
치."
"똥닝겐이라니 무슨 말버릇인 데샤앗! 주인님에게 그런 말 쓰면 안 되는 데스! 우리를 길러주
시는 고마운 분인 데스!"
"마마는 바보인테치! 매일 특식을 바치지 않는 노예는 똥닝겐으로 충분한 테치!"
"주인님 앞에서 그런 말 하면 이따이이따이를 당하는 데스! 차녀는 깨진 유리창만으로도 얼마
나 이따이이따이를 당할지 모르는 데스!"
이미 미도리의 머리속에선 유리창=차녀가 깬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실장석의 근력을 고려하
면 차녀의 전신 근육을 쥐어짜도 방아쇠를 당기는 건 무리일 터임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행
복회로 가동의 산물이었다.
"왜 와타치가 이따이이따이를 당하는 테치! 똥닝겐 따위 그 권총으로 해치워버리면 되는 테챠
앗!"
"데에엣?!"
차녀의 충격적인 발언에 미도리의 머릿속 실타래가 복잡하게 헝클어졌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깔리고 분을 이기지 못한 차녀가 씩씩거리는 소리만 거실 바닥에 쏟아진
다.
'데에에... 주, 주인님을 해...치우는 데스우?'
그렇다. 이것만 있으면.
적록색 눈을 홀린 듯이 뜬 미도리가 바닥으로 내던졌던 권총을 향해 다시금 몸을 굽혔다.
밀어도 때려도 꿈쩍하지 않던 저 단단한 유리창을 한번에 깨뜨려버린 이 권총만 있으면.
이것만 있으면 데코핀도 실장채도 두렵지 않다.
주인님을 이길 수 있다.
아니, 똥닝겐을 해치울 수 있다.
그 생각이 머리 속에서 번뜩인 순간, 미도리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다.
"데픗, 데픗, 데프프프픗!"
비어져나온 웃음에 입매가 느슨해지고 곧 얼굴 근육 전체가 흉하게 이지러졌다.
"데캬캬캬캬캬캬캬캿!"
닝겐에게 거두어져 사육실장이 되기 전 들생활을 하던 자실장 시절부터, 마마의 분대 안에서
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올라가 실장석이라는 종의 DNA 자체에 깊게 새겨진 분
충성이 눈을 떴다.
"테에... 마마 무서운 테츄..."
돌변한 친실장의 모습에 차녀가 불안에 빠졌지만 미도리의 안중엔 이미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 데스! 와타시는 이제 자유인 데스!'
죽은 친실장의 옆에서 울던 자신을 거두어 엄격히 훈육하고 지금까지 길러준 은혜.
출산 금지라는 규칙을 깨고 충동적으로 총배설구에 꽃을 문질러 자를 임신했을 때 너그러이
출산을 허락해준 은혜.
매일의 끼니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특식. 자신과 자들만을 위한 별실. 외출 시에도 틀어놓는
냉난방. 지금도 자신과 자들의 몸에 둘러져있는 핑크색 고급 사육실장옷.
이 모든 것이 미도리의 머리 속에서 지워져갔다.
"그런 데스. 이걸로 똥닝겐은 와타시 일가의 노예가 되는 데스."
미도리에게 있어 이 은백색 권총은 닝겐의 머리에 들이대고 협박하면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
는 만능의 물건이었다. 이 역시 티비에서 본 적이 있었다.
똥닝겐은 분명 깜짝 놀라서 탈분하고는 알아서 스테이크와 스시를 가져다 바칠 것이다.
"역시 차녀는 와타시를 닮아 영리한 데스. 와타시의 계획을 꿰뚫어본 데스."
미도리는 방금 전까지 보인 얼빠진 모습과 전혀 맞지 않는 말을 태연스레 늘어놓으며 자신의
자를 상대로 한껏 허세를 부렸다.
권총을 한쪽 팔로 끌어안고는, 다른 손으로 차녀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는다.
"테에? 그럼 마마의 특식은 와타치가 먹어도 되는 테츄?"
영문은 잘 모르겠지만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 차녀가 그에 걸맞는 포상을 요구해왔다.
"얼마든지 먹어도 되는 데스. 오늘부터는 매일매일 특식인 데스야."
그렇게 말한 미도리는 권총을 다시 양팔로 고쳐안더니 손끝으로 슬라이드를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었다.
그 날 저녁.
"미도리, 다녀왔다."
"늦은 데스."
미도리는 평소와는 달리 어정쩡한 꼴로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어 미안미안. 일이 많아서. 대신 오늘은 오는 길에 컵케익을 좀 사왔다."
남자는 한손에 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사육실장의 투정을 순순히 받으며 다른 한손으로 컵
케익 봉지를 내밀었다.
"잘 먹고 알아서 치워야 한다?"
"또, 똔닝게흔."
달콤한 컵케익 냄새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발음이 새고 말았다.
"응?"
링갈 어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인지, 남자가 핸드폰을 귓가에 가까이 대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똥닝겐, 이라고 한 데스."
"뭐?"
툭, 하고 컵케익 봉지가 떨어졌다.
남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미도리의 입으로부터 거의 1년 반만에 나온 단어였다.
"두 번 말하지 않으니까 잘 듣는 데스, 똥닝겐."
"너 지금 뭐라고..."
남자의 말을 자르듯 미도리가 바로 옆의 신발장으로 향했다.
신발 사이에 끼워뒀던 은백색 권총을 낑낑대며 양팔로 끌어당겨 품에 안은 뒤 자신에게 총구
를 향하는 그 모습을 남자는 멍하니 지켜볼 따름이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는 오마에가 더 잘 알거라고 생각하는 데스."
"그런 테치! 이따이이따이한 테치!"
뒤에서 지켜보던 세 명의 자실장들 가운데 차녀가 쪼르르 튀어나와 말을 보탰다.
"오마에는 똥닝겐치고는 제법 말이 통한 데스. 그러니 너그러운 와타시가 목숨은 살려주는 데
스. 와타시 일가의 집노예로 삼아주는 데스."
"미도리..."
남자의 눈에는 당혹감과 노여움, 그리고 슬픔이 어려있었다.
"매일매일 특식을 바치는 데스! 그리고 밤에는 마라노예가 되어 와타시의 밤시중을 드는 데스!
데프프픗!"
"테에에엣! 마마는 어른인 테치! 엣찌인 테치!"
차녀가 양손을 모으고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데프프픗, 그럼 복종의 맹세로 와타시의 총배설구에 입을 맞추는 데스. 지금 당장인 데스!"
약간의 운치와 애액 탓에 초록색으로 물든 고간을 앞으로 내밀며 미도리가 선언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남자가 잠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잔머리 굴리지 않는 데스! 두번 말하지 않는 데샤앗!"
이윽고 남자가 후련해진 얼굴로 고개를 들더니 핸드폰의 링갈 어플을 종료시키고 주머니에 넣
었다.
그리고는 미도리를 향해 몸을 숙였다.
수컷의 땀냄새가 진하게 풍겨오자 미도리의 사타구니가 다시 움찔거리며 젖은 팬티에 애액을
더해갔다.
"데, 데에에... 와타시가 입을 맞추라고 하긴 했지만 어지간히 밝히는 노예인 데스우... 데프-"
뿌드득.
남자의 손이 미도리의 앞머리를 쥐어뜯었다.
"-프픗?"
이마를 덮친 낯선 감각이 꽃밭에 있던 미도리의 정신을 현실로 되돌렸다.
얼굴을 붉히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던 미도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데샤아아아아앗!!!"
분노한 미도리가 양손으로 끌어안은 권총을 붕쯔붕쯔 휘둘렀다.
"똥노예에에!! 이게 뭐하는 짓인 데샤아아앗!!"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뒷머리마저 뜯어버린다.
"데갸아아아아악!!! 와타시의 세레브한 머리카락이이잇!! 죽이는!! 죽여버리는 데샤아아앗!!!"
파앙! 파앙! 파앙!
실장석의 근력과 신경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연사속도로 쏟아낸 총알은 빗나가는 일 없이 전탄
남자의 몸에 명중했다.
하지만 남자는 눈썹 한번 까딱하지 않고 핑크색 두건과 실장복, Midori라고 쓰인 노란 명찰을
갈기갈기 찢어나갔다.
"데에에엑?!! 왜 쓰러지지 않는 데스우!! 왜 이따이이따이하지 않는 데스우!!"
공포와 분노에 찬 미도리의 눈에서 적록색 눈물이 줄줄 흘렀다.
채 30초도 안 걸려 미도리를 깔끔하게 독라로 만든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데... 데에에..."
"테챠아앗! 테챠아앗!"
미도리는 방금 전까지 위세좋던 모습은 간데 없이 멍청하게 데에에 거리고 있었고 차녀는 이
미 탈분하여 뒹굴며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아, 맞다."
남자가 다시 상반신을 굽혔다.
그리고는 자신이 지난밤 수리하다가 깜빡 잊고 거실에 놓아두었던 가스충전식 BB탄 권총을
미도리의 품에서 빼앗았다.
"데, 데샤아앗!! 당장 돌려주는 데샤아앗!! 그건 와타시의 보물인 데샤앗! 도둑!! 도둑인 데샤
앗!! 강도인 데샤아앗!! 신고하는 데샤아아앗!!"
정신을 차리고 달려드는 미도리의 배에 아직 구두를 벗지 않은 남자의 발차기가 꽂혔다.
"데뷋!"
미도리는 기묘한 소리와 함께 현관에서 거실까지 초록색 운치 자국을 끌며 굴러갔다.
소파에 부딪혀 정지하더니 입에서는 노란 위액과 함께 반쯤 소화된 실장푸드를, 총배설구에서
는 초록색 운치를 토해낸다.
남자는 줄곧 무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더니 구두도 벗지 않고 거실로 걸어들어갔다.
뚜벅. 뚜벅. 뚜벅("치벳!"). 뚜벅. 뚜벅.
거실 바닥을 타고 전해져 고막을 울리는 발소리에 처음 훈육을 받을 때의, 아니 그 이상의 공
포가 미도리를 엄습했다.
"데... 데이..."
분대가 뒤꼬이는 고통과 적록색 눈물로 일그러져 핑핑 도는 시야 속에서 남자의 무표정은 지
금까지 보아왔던 어떤 화난 표정보다도 무서웠다.
미도리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한쪽 손을 얼굴에 갖다대고는,
"데... 뎃수웅~♡"
본능적으로 아양을 떨어버리고 말았다.
남자는 변함없는 무표정으로 그 꼴을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걷어차일 때 입은 대미지를 회복하지 못한 미도리는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을 수밖에 없
었다.
덜컹덜컹, 하고 서랍을 여닫는 소리.
부스럭부스럭, 하고 무언가를 찾는 소리.
쿵, 하고 무거운 것이 바닥을 치는 소리.
위이이잉- 하고 드릴의 상태를 점검해보는 소리.
카가가각- 하고 무언가 썰려나가는 소리.
실장석의 상상력만으로도 남자가 대충 뭘 준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그런 소리들이 잔혹한
사형 선고가 되어 미도리의 귀로 쏟아졌다.
잠시 후, 남자가 방에서 나왔다.
말끔한 양복과 구두를 후줄근한 훈육용 차림으로 갈아입은 채였고 한손에는 주황색 공구 상자
를 들고 있었다.
"데에에엣!!"
양손을 모아서 싹싹 비는 흉내를 하는 미도리의 목덜미를 남자가 거친 손으로 움켜쥐었다.
독라가 되어 공중에서 사지를 버둥거리며 가랑이 사이에서 녹색 운치를 뚝뚝 흘리는 마마의
모습을 장녀와 삼녀가 테에에엥 테에에엥 울며 따라간다.
하지만 미도리의 눈길과 말은 자신의 뒤를 울면서 따라오는 자실장들이 아닌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주인님데스! 자들이 우는 데스! 달래주시는 데스! 와타시를 내려주시는 데스!"
죽음의 공포 앞에선 자신의 배로 낳아 기른 자들마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한 재료에 지나지 않
았다.
그런 미도리를 무시한 채 남자가 향한 곳, 그리고 그 뒤를 졸졸 따라온 자실장들이 도착한 곳
은 욕실 앞이었다.
욕실.
피가 흐르고 살점이 떨어져 나와도 금방 흘려보낼 수 있는 곳.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독라의 입에서 다시금 사죄의 말이 터져나왔다.
"주인님 데스!! 와타시가 잘못한 데스!! 다시는 그러지 않겠는 데스!!"
"테에에엥~ 마마를 괴롭히지 마는 테치! 놓는 테치!"
"에잇 테치! 이얍 테치! 이거나 먹어라 테치!"
작은 손으로 남자의 바짓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는 장녀와 남자의 발목을 투닥거리던 삼녀의 위
로 남자의 맨발이 떨어져내렸다.
"테벳" "지잇"
두 마리는 순식간에 으깨져 바닥의 얼룩이 되었다.
끼이익-
욕실문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미도리의 사죄와 변명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와타시는 좋은 사육실장인 데스!! 절대 그럴 마음이 없었는 데스!! 그런 데스! 차녀!! 차녀인
데스!! 차녀가 부추긴 데샤!! 차녀에게 협박당한 데샤앗!! 데, 데겍, 데갸아아아아악!!!"
하지만 이미 핸드폰의 링갈을 꺼버린 남자의 귀에는 의미없는 울부짖음에 지나지 않았다.
주인님 가게
목을 파고드는 찬바람에 절로 두건을 고쳐매게 되는 어느 늦가을.
후타바 공원 근처에 작은 가게가 생겼다.
가게라고는 하지만 간판 같은 건 없다.
다만 건물 벽면 위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낮시간마다
<사육실장이 될 수 있는 가게입니다~ 누구나 환영합니다~ 콘페이토~ 스시~ 스테이크~ 푸드~
세레브~ 아와아와~>
라는 전자합성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학대파들이 휩쓸고 간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탓에 어느 하나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지만, 며칠
씩 계속해서 들려오는 달콤한 말에 굴복한 건지 한 마리의 친실장이 자들을 데리고 조심스럽
게 문 앞으로 향했다.
친실장이 뭉뚝한 손을 문 앞으로 가져다대자 미처 노크를 하기도 전에 문이 스르륵 옆으로 미
끄러져 열린다.
"데스우?"
의아해하며 발을 내딛는 친실장을 따라 자실장들도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은 바람만
없을 뿐 온도 자체는 바깥과 다를 것 없이 제법 싸늘했다.
마지막 한 마리가 문을 통과하자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마마, 와타치타치 이제부터 사육실장인 테치?"
"그, 그런 것 같은 데스."
"근데 왜 주인님이 안 보이는 테치?"
"마마도 모르는 데스..."
가게 안은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공간이었다. 천장에는 형광등과 스피커만이 덩그러니 붙어있
고 방금 전 들어온 자동문과 마주보는 벽에 다른 문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주인님 가게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부디 여기서 사육실장의 꿈을 이루고 나가시길 바
랍니다.>
"테챠아앗!"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예고없이 전자합성음이 흘러나오자 겁많은 6녀가 빵콘하고 말았다.
무미건조한 음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설정된 문장을 읊어나갔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원하는 주인님을 고를 수 있습니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 좋은 주인님
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둘 이상의 실장석이 같은 주인님을 고르는 건 가능하지만 한 실장석이
두 명 이상의 주인님을 한 번에 고를 수는 없습니다. 또한, 한번 앞으로 가면 다시 뒤로 돌아
올 수 없습니다.>
실장석을 배려한 건지 느릿느릿한 말투로 설명이 이어졌다.
<그럼, 즐거운 쇼핑 되십시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스피커 특유의 지직거리는 대기음이 끊기고 안쪽 벽에 달려있던 문이 스
르륵 옆으로 열렸다.
"데에..."
조심조심 문가로 향한 실장석 일가의 눈에 방 하나가 보였다. 구조는 지금의 방과 별 다를 바
없었지만 한쪽 벽에는 불꺼진 액정화면이 붙어있고 그 옆에 모서리가 둥근 상자 비슷한 것이
놓여있었다. 건너편 벽에는 또다른 문이 있었다.
"여기서 주인님을 만나는 데스우?"
스피커를 향해 묻지만 대답은 없었다.
"데이..."
친실장이 자실장들과 같이 아장아장 문턱을 넘자 다시 문이 닫히고 이번엔 벽에 붙은 스피커
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첫번째 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데스우?"
<여기서는 우마우마한 밥을 주고 아와아와한 목욕을 시켜주는 주인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스피커가 말을 멈추고 벽에 붙어있던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화면에서는 사육실장이 녹색 실장푸드를 볼이 미어져라 먹고 있는 모습과 세면대에서 몸을 씻
는 모습이 흘러갔다. 주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화면 한구석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
고 있었다.
"테에에! 와타치도 우마우마 원하는 테치! 아와아와 해주는 테치!"
한 자실장이 화면을 향해 달려들었다가 강화유리에 부딪혀 바닥을 뒹굴었다.
"테챠아앗! 누구인 테치! 왜 막는 테치!"
"삼녀, 이건 티비라고 하는 물건인 데스. 저 너머로는 닝겐상이라도 해도 갈 수 없다고 들은
데스."
분에 차서 울부짖는 자실장을 친실장이 조곤조곤 달랬다.
<이 주인님에게 길러지시겠습니까?>
모서리가 둥근 상자에 붙어있던 격자형 뚜껑이 덜컹 열렸다. 상자의 정체는 실장석 운반용 케
이지였다.
"테에에! 들어가는 테치! 길러줘도 좋은 테치!"
"와타치가 먼저인 테치!"
"잡아당기지 마는 테치!"
<아니면 앞으로 가시겠습니까?>
그 말과 함께 벽에 붙어있는 다른쪽 문이 열렸다.
"오마에타치, 잘 생각하는 데스. 이 앞으로 가면 더 좋은 주인님이 있는 데스."
"테치이?"
"다른 주인님은 분명 방금 전보다 더 우마우마한 걸 주고 더 아와아와 해주는 데스."
케이지 입구 앞에서 아웅다웅대던 자실장들이 급선회하더니 이번엔 문을 향해 달렸다. 친실장
도 종종걸음으로 뒤를 따라갔다.
친실장이 마지막으로 들어서자 두번째 방의 문이 닫혔다. 이번에도 벽의 스피커에서 음성이
나왔다.
<두번째 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기에서는 좀 더 우마우마한 밥을 주고 아와아와한 목욕을 시켜주며 핑크색 실장옷을 사주
는 주인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벽에 붙은 화면에서 핑크색 옷을 입은 사육실장이 알록달록한 푸드를 먹는 모습, 욕조 안에
얕게 채워진 물에서 거품목욕을 하는 모습이 지나갔다.
"테에엣!"
<이 주인님에게 길러지시겠습니까?>
케이지 문이 열렸지만 이번엔 아무도 앞으로 향하지 않는다.
<아니면 앞으로 가시겠습니까?>
덜컹, 하고 문이 열렸다.
"데스!"
"테치!"
실장석들이 문을 향해 뛰어갔다. 세번째 방에 들어선 일가의 뒤에서 자동문이 닫혔다.
<세번째 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기에서는 매우 우마우마한 밥을 주고 아와아와한 목욕을 시켜주며 더욱 아름다운 핑크색
실장옷을 사주는데다 매일 놀아주는 주인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영상은 아까보다 조금 길었다. 프릴이 달린 핑크색 옷을 입은 사육실장이 콘페이토가 섞
인 푸드를 집어먹는 모습, 주인과 같은 욕조에서 거품 목욕을 하는 모습, 방에서 주인과 공을
주고받으며 놀고 있는 모습이 지나갔다.
<이 주인님에게 길러지시겠습니까?>
화면이 꺼지고 케이지 뚜껑이 열렸지만 들실장 일가는 다음 문장이 흘러나오기도 전에 네번째
방의 문을 향해 달렸다.
문이 닫히고 다시 전자음이 흘러나왔다.
<네번째 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기에서는 가장 우마우마한 밥을 주고 아와아와한 목욕을 시켜주며 화려한 실장옷을 사주는
데다 매일 놀아주는 건 물론, 밤에는 듬뿍 사랑해주는 주인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실장드레스를 갖춰입은 실장석이 전용 탁자 위에 놓인 스테이크를 집어먹는 모습, 실장석 사
이즈의 도자기 욕조에서 몸을 씻는 모습, 짓소카를 타고 넓은 방 안을 빙글빙글 도는 모습,
불꺼진 침대 위에서 주인과 입을 맞추는 실루엣, 검은 머리카락의 자실장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는 모습이 지나갔다.
"데에에에엣!"
잔뜩 흥분한 친실장이 콧김을 뿜으며 케이지를 지나쳐 다음번 문을 향해 뛰어갔다.
"마마 치사한 테치!"
"같이 가는 테치!"
"마마가 발정난 테챠앗!"
마지막 자까지 헐레벌떡 따라들어오자 문이 저절로 닫혔다. 전력질주한 탓에 모두들 헐떡이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실장석들이 화면 앞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하지만 영상도 음성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왜 티비가 안 나오는 데스우?"
"여긴 어떤 주인님이 있는 테치?"
"다른 문이 없는 테츄우..."
벽에 붙은 스피커를 향해 말을 걸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무룩해진채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깜빡거리더니 이내 불이 들어왔다.
"테에! 나오는 테치!"
흥분한 실장석들이 화면에 가까이 달라붙었다. 어떤 굉장한 우마우마와 아와아와가 있을지 눈
을 빛내면서.
하지만 적록색 눈에 비친 건 기대와는 다른 광경이었다.
화면 안에서 들실장으로 추정되는 지저분한 실장석 일가가 작은 방 안을 어지러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홉 마리 모두 부풀어오른 초록색 팬티를 질질 끌고 있었다.
잠시 후 방의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려던 자실장을
짓밟은 것을 시작으로 방 안의 실장석들을 한 마리씩 잡아죽이기 시작했다.
화면 앞의 실장석 일가는 넋이 나간 모습으로 학살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화면 곳곳에서 실장석들이 빠루와 토치에 파괴당하고 죽어갔다. 무음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화
면 너머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실장의 머리가 터져나가
는 것과 동시에 영상이 일시정지됐다.
그제서야 일가 전원이 빵콘했다.
"테챠아아아앗!!"
"왜 이런 걸 보여주는 테챠아앗!"
"주인님은 어디인 테치! 푸드! 스테이크! 스시! 내놓는 테챠아아앗!"
방금 지나간 학살 영상에 실장석들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모두들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영리한 장녀가 친실장의 옷깃을 꾹꾹 잡아당기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마... 티비에 나온 여기... 지금 와타치타치가 있는 방... 아닌 테치...?"
"뎃"
한순간, 일가 전원이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데에에에에?!!"
"테에에에에?!!"
부륏부뤼륏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의 팬티가 한층 더 부풀어올랐다.
"나가는 테치! 도망가야 하는 테치!"
"문이 열리지 않는 테치! 어쩌면 좋은 테치!"
"테츄웅~ 어서 열리는 테츄웅~ 와타치를 내보내는 테츄웅~"
"뎃! 오마에타치도 어서 애교하는 데스! 뎃스웅! 뎃스웅! 뎃스으우우우우우우우웅!!!"
"테츙!테츙!테츙!테츙!"
실장석들이 미친듯이 손을 턱에 붙였다 떼며 머리를 까딱이지만 몇십번, 몇백번을 반복해도
문은 꿈쩍하지 않는다.
<치지지지- 끼이이이잉->
줄곧 침묵하던 스피커에서 갑자기 전자음이 울렸다.
"테챠아아앗!"
"데샤아아악!"
아첨에 여념이 없던 일가 전원이 날카로운 소음에 귀를 붙잡으며 빵콘했다.
<마지막 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전자음은 여전히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이 방은 실장석의 욕심엔 끝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여기까지 온 분
충들은 모두 지옥으로 가시길.>
그 말을 끝으로 닫혀 있던 자동문이 열리고 손에 빠루를 든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End-
---
<남편을 파는 가게>라는 유머 패러디인 데스...
사육실장 콘테스트
한 남자가 실장석을 데리고 사육실장 콘테스트 예비 심사실로 들어섰다. 실장석은 남자의 바
짓자락을 붙잡은 채 방 안을 산만하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입을 헤 벌리고 콧물을 훌쩍이는
그 얼굴에서는 한 조각의 지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긴 책상 뒤에 나란히 앉은 세 명의 심사위
원이 시선을 교환하며 쓰게 웃었다.
짧은 침묵을 깨고, 심사위원 한 명이 서류를 흘낏 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참가번호 44번 도시악 씨... 혈통서가 없네요?"
"네. 지인한테 분양받았습니다. 이름은 초록이라고 해요."
"아, 네...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요새 실장석들은 뜨개질에 그림 그리기에 요리, 곡예까지
하는 녀석들이 수두룩해서요. 어지간한 재주로는 힘드실 겁니다."
"아, 걱정마세요.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학대는 안 됩니다. 방송에 못 내보내요."
"에이, 그런 거 안 해요, 안 해."
남자가 웃으며 실장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이 녀석, 사람 말을 할 줄 알아요."
"예?"
뒤로 삐딱하게 젖혀져있던 심사위원들의 상체가 일제히 앞으로 기울었다.
"지금 그 실장석이 음성 조합 링갈 없이 자체적으로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겁니까?"
"네, 링갈 없이요. 한국말뿐 아니라 영어도 조금 할 줄 압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남자가 씩 웃고는 자신의 실장석을 향해 물었다.
"자, 초록아. 개개의 숫자 대신에 숫자를 대표하는 일반적인 문자를 사용하여 수의 관계, 성
질, 계산 법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을 뭐라고 하지?"
"대수!"
세 심사위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저기요, 44번..."
끼어드는 심사위원을 무시하고 남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잘했어! 그럼 영어를 해보자. 영어로 '낮'이 뭐지?"
"데이(Day)!"
"그럼 영어로 '저것'은 뭐라고 하지?"
"댓(That)!"
"잠시만요, 도시악 씨."
심사위원이 재차 끼어들었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맞았어, 초록아! 자, 그럼 마지막으로, 한국어 사투리 하나만 해볼까? '아니오, 괜찮습니다.'
를 충청도 사투리로 하면?"
"됐수!"
"그렇지!"
그 문답을 끝으로 남자가 다시 심사위원석을 바라봤다.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보셨죠? 우리 초록이가 이렇게 대단하다니까요?"
심사위원들은 헛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네... 참가번호 44번..."
심사위원 한 명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탈락입니다."
"예? 그게 무슨..."
"나가시는 문은 오른쪽입니다. 45번! 들어오세요!"
심사위원이 남자의 말을 자르고 서류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 단호한 태도에 남자는 말을 꺼
내려다 말고 출구로 향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남자의 뒤를 아장아장 따라가던 실장석이 남자의 바짓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러게 사투리는 빼자고 하지 않았냐는 데스우..."
그 입에서 흘러나온 건 틀림없는 한국어였다.
어느 사육실장의 기나긴 하루
사삭- 사사삭-
도도도도-
[부우웅~ 데스우, 부우웅~ 데스우]
"연두야."
[뎃!? 부르신 데스우?]
남자의 말에 거실에서 장난감 차를 굴리며 놀던 사육실장 연두가 고개를 들었다.
"방금 무슨 소리 안 났니?"
[데에... 난 것 같기도 한 데스우]
"그치? 다용도실 쪽에서 났는데."
[데에... 이번에도 찍찍이씨가 아닐까 싶은 데스... 거실에서도 몇번 본 적이 있는 데스우... 주인사마가 앉은 소파 밑에서도 들락거리던 데스]
"아 그래? 거참... 언제 업체를 한번 불러야겠네."
아파트 살 땐 안 이랬는데... 남자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
"나 간다. 집 잘 보고 있어."
[다녀오시는 데스우]
다음날 아침, 연두는 현관 앞에서 남자를 배웅했다.
남자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잠시 후 집 앞에 주차된 자동차에 시동이 걸린다.
자동차의 엔진음이 저 멀리 사라지는 걸 확인한 뒤에야 연두는 다용도실을 향해 걸어갔다.
레버형 손잡이에 달린 줄을 잡아당기자 달칵- 소리와 함께 다용도실의 미닫이문이 옆으로 열렸다.
이 단독주택에서는 현관을 제외한 모든 문의 손잡이에 이런 식으로 줄이 달려있었다.
연두가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한 주인의 작은 배려였다.
창고로 쓰고 있는 탓에 약간 눅눅하고 퀴퀴한 공기가 떠도는 다용도실 안으로, 연두가 성큼 들어섰다.
[자들은 나오라는 데스우]
[테츄웅~]
선반 가장 아래칸에 놓인 골판지 박스, 그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세 마리 자실장이 기쁨의 울음소리를 내며 뛰어나왔다.
[갑갑했던 테치!]
[배고파 테치! 배고파 테치!]
[나쁜 닝겐은 나간 테치?]
세 개의 입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쫑알대는 바람에 좁은 다용도실이 금세 시끄러워졌다.
[조용히 하는 데스!]
[테칫!]
어미의 불호령에 세 마리 모두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어제는 뭐였던 데스? 어째서 시끄럽게 굴었던 데스? 하마터면 들킬뻔하지 않았냐는 데스!]
[자, 잘못한 테치잉...]
[주인사마는 이번에도 찍찍이씨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으니 다행 데스. 그치만 앞으론 절대 그런 일 없도록 하는 데스!]
[테츄...]
세 마리 모두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푹 떨궜다. 짐짓 화난듯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던 연두의 얼굴이 이윽고 누그러졌다.
[...반성했으면 된 데스. 어서 나가는 데스. 아와아와를 먼저 하고 밥을 먹는 데스. 그리고 삼녀, 주인사마한테 나쁜 닝겐이라고 하면 못 쓰는 데스우]
연두는 새끼들을 한 마리씩 들어올려 얼굴을 핥아주고는 바닥에 내려놓았다.
[텟테로케~ 텟테로케~]
세 마리의 자실장은 언제 울상이었냐는 듯, 앞서거니 뒷서거니 달려서 다용도실을 빠져나가며 기쁨의 노래를 합창한다.
뒤따라가는 연두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자를 가지는 일은 이렇게나 행복한 데스. 그런데 어째서 주인사마는 못 하게 하는 데스우? 현명한 주인사마도 역시 모르는 게 있던 데스.'
약간 불손한 생각마저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그녀의 새끼들은 사랑스러웠다.
다용도실을 빠져나온 연두는 문득 뎃큼뎃큼 목을 가다듬더니 크게 위협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데샤아아앗!]
[테햣!]
날카로운 어미의 외침에 세 마리의 자실장이 펄쩍 뛰었다.
[까, 깜짝 놀란 테치!]
[뭐인 테치!]
새끼들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연두는 가장 가까이 있던 삼녀를 두 손으로 집어들었다.
실장복을 들춰 팬티를 확인하고, 콧구멍을 갖다대어 킁킁 냄새를 맡아본 뒤 다시 아래로 내려놓았다.
이어서 차녀, 그리고 장녀에게도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셋 다 이제는 놀라도 빵콘을 하지 않게 된 데스? 장한 데스. 모두 레이디인 데스우]
[테에엥... 그런 건 물어보면 되지 않냐는 테치...]
[마마가 미안한 데스. 그래도 이 편이 정확한 데스]
투덜거리는 세 마리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연두가 뎃스웅뎃스웅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예의범절도 거의 익혀가는 데스. 자실장을 싫어하는 주인사마라지만 이런 똑부러지고 귀여운 모습을 보면 분명 마음이 바뀔 것 데스.'
행복회로에 약간의 열이 오르는 걸 느끼며, 연두가 화장실의 문고리 끈을 당겼다.
'몇 밤 더 자고 난 뒤엔, 주인사마에게 보여드리는 데스. 샵에서 배운 비장의 춤과 애교도 전수하는 데스. 그 전까진 절대 들키면 안 되는 데스.'
화장실 특유의 습한 공기에는 락스 냄새가 섞여 있었다.
[자들은 가서 운치 먼저 하는 데스우]
[테칫!]
[테츄웅~]
타일 바닥에 발을 디딘 세 마리의 새끼가 잽싸게 화장실 구석의 배수구로 뛰어갔다.
나란히 팬티를 벗어버리고 쪼그려앉아 힘을 주자 진녹색 운치가 뽀지직 소리와 함께 흘러나왔다.
[마마!]
[알고 있는 데스. 기다리라는 데스.]
연두는 화장실 한구석에 설치된 사육실장용 좌변기 옆에서 전용 휴지를 뜯어냈다.
잘게 찢은 휴지에 침을 묻혀 자실장들에게 건네자 모두 익숙한 동작으로 받아들고 엉덩이와 총구를 닦아낸다.
[다 닦은 건 여기에 놓는 데스]
연두가 잘게 찢지 않은 휴지 몇 장을 바닥에 깔았다.
[마마! 다 된 테치!]
장녀가 녹색으로 물든 휴지뭉치를 하얀 휴지 위에 던지고는 팬티를 올리지 않은 채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연두는 그런 장녀를 들어올려 가랑이를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역시 장녀인 데스. 먼저 아와아와 상자에 들어가서 옷을 벗고 있는 데스우]
[텟츄웅~]
장녀가 고개를 까딱이며 애교를 부린 뒤 사육실장용 목욕장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이어서 차녀가 검사를 받고 장녀의 뒤를 따랐다.
[삼녀... 아직 얼룩이 이렇게나 남지 않았냐는 데스]
연두는 삼녀의 고간을 마저 닦아내어 보여주며 엄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삼녀의 얼굴은 곧바로 울상이 되었다.
[치이이... 어째서인 테치... 어차피 아와아와를 하면 총구도 깨끗해지지 않냐는 테치잉...]
[삼녀, 자꾸 말대답하면 사육실장이 될 수 없는 데스!]
가볍게 머리를 콩, 때리자 삼녀의 적록색 눈에 눈물이 핑 돈다.
[테, 테끄윽... 테힉, 테, 테에엥...]
[울면 안 되는 데스. 참는 데스. 아무때나 우는 아이는 들실장인 데스]
[텟...테엑끄... 테흑... 끄읍... 텟... 테헤... 테치잉...]
간신히 울음을 참아낸 삼녀를 연두가 대견하다는 듯 안아주었다.
[이제 가는 데스. 다 함께 기분 좋게 아와아와를 하는 데스]
[테츄...]
연두는 휴지를 실장용 변기에 버리고 목욕장 안으로 들어섰다.
자실장들을 한 마리씩 들어 욕조 안에 넣은 연두가 급수버튼을 꾹 눌렀다.
차오르는 온수가 몸을 적시자 세 마리의 새끼는 곧바로 기분이 고양되어 테치테치 재잘대기 시작했다.
[몸이 녹는 것 같은 테치!]
[평생 나가기 싫은 테치!]
[푸드도 이 안에서 먹으면 안되는 테치?]
[삼녀는 바보같은 소리 하지 않는 데스. 제대로 나가서 먹는 데스]
연두는 그렇게 대꾸하면서 작은 용기에 담긴 과립형 발포입욕제를 물에 풀고 손으로 휘휘 저었다.
쏴아아- 소리를 내며 금세 풍성한 거품이 솟아오른다.
[아와아와 테치! 아와아와 테치!]
[구름인 테치! 하얀 테치!]
[장녀는 구름이 뭔지 아는 데스?]
[저번에 베란다에서 본 테치! 하얗고 아와아와한 테치!]
[그랬던 데스? 마마가 까먹은 데스. 장녀는 머리가 좋은 데스]
[테츄웅~]
네 마리 모두가 들어가기엔 무리였기에, 연두는 샤워기를 틀어 몸을 적신 뒤 입욕제를 제 몸에 문질러 거품을 냈다.
입욕제는 샴푸와 바디워시 기능까지 겸한 올인원 타입이었다.
연두는 새끼들을 욕조에서 꺼낸 뒤 물을 뿌려 전신의 거품을 씻어냈다.
주인이 특별히 핸드 드라이어를 개조해서 만들어준 온풍기 밑에서 물기를 말리고, 목욕장 위에 얹어뒀던 옷을 다시 입는다.
연두는 깨끗해진 새끼들을 욕실 밖의 마루바닥으로 올려주었다.
아직 요구르트병만한 자실장들에게 있어 내려오는 건 쉬워도 올라가기엔 약간 높은 단차였던 탓이다.
[잠시만 그대로 기다리는 데스]
연두는 실장용 샤워기를 목욕장 밖으로 길게 빼고는 하수구를 향해 물을 틀었다.
인간의 샤워기보다는 수압이 약했지만, 하수구의 철망덮개 위에 남아있던 운치를 씻어내기엔 충분했다.
녹색 덩어리가 남지 않은 걸 확인한 뒤에야 연두는 욕실을 나섰다.
[자, 이제 밥을 먹으러 가는 데~스]
[텟츄~웅]
연두는 사육실장 전용의 식기 일체형 식탁 앞으로 새끼들을 데려갔다.
수북히 쌓인 푸드 중 한 알을 집어들어 보이며 연두가 엄숙하게 선언했다.
[오늘부터는 마마가 씹어주지 않는 데스. 직접 먹도록 하는 데스]
[테에? 직접 테치?]
[그런 데스. 이제 이빨도 위아래로 다 났으니 슬슬 씹어먹는 법을 익히는 데스]
연두는 작은 원기둥 모양의 푸드를 실장용 식탁 위에 놓고 손바닥으로 탕탕 두들겼다.
부스러진 푸드 조각을 집어 새끼들에게 하나씩 내민다.
[씹기 힘들면 침으로 녹여가면서 살살 갉아먹는 데스]
[잘 먹겠는 테치]
[테챱테챱... 테에에... 색다른 느낌 테치]
[삼녀, 입에 푸드를 물고 말하면 안 되는 데스. 다 튀지 않냐는 데스?]
[테치잉...]
몇 알인가의 푸드를 조각내어 먹이면서, 연두는 한참을 그렇게 새끼들의 몸가짐을 지적했다.
그래도 그제보단 어제가, 어제보단 오늘이 훨씬 나아져 있었다.
'다들 좋은 자들 데스. 와타시가 샵에서 훈육받던 시절에 비하면 훨씬 제대로 된 데스. 실장복만 와타시처럼 세레브한 것으로 갈아입히면 사육실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데스우.'
연두는 흐뭇해하는 마음을 얼굴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일부러 계속 잔소리를 했다.
부스러기를 흘리지 않았냐는 데스, 입가를 소매로 닦지 마는 데스, 보채지 않는 데스...
사실 부스러기를 흘리거나 음식을 보채는 정도는 연두 자신도 늘상 하는 일이었지만, 새끼들은 좀 더 어엿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치프픗, 오네챠 배가 빵빵 테치]
[차녀챠도 마찬가지 테치]
[테에에... 더 먹고 싶은 테치... 그치만 더 먹으면 배가 아야할테니 참는 테치...]
[츄아아아음... 졸린 테치...]
각자 동그랗게 부푼 배를 두들기며 테치테치 이야기하던 자실장들이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 듯 연두를 돌아보았다.
[마마, 오늘은 뭘 하고 노는 테치?]
[공놀이는 어떤 테치?]
[산책 나가고 싶은 테치]
[산책은 안 되는 데스. 아직은 아닌 데스]
언젠간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괜히 뒷마당에 나갔다가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웃에게 들키면 일가 전원이 골판지 상자에 담겨 내쫓길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참는 데스. 사육실장이 되면 주인사마를 졸라서 넷이 함께 공원에 가거나 마당에서 뛰어놀 수 있는 데스. 오늘은 숨바꼭질로 참는 데스우. 자, 마마가 열을 세는 데스우]
[테에... 맨날 숨바꼭질인 테치...]
[하나 데스우... 둘 데스우...]
불평하면서도 자실장들의 몸은 순순히 숨을 곳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와타치는 여기에 숨는 테치!]
[텟! 치사한 테치... 그럼 와타치도 같이 숨는 테치]
[따돌리면 싫은 테치! 와타치도 껴주는 테치!]
[테? 어디서 아마아마한 냄새가 나는 테치?]
[진짜인 테치!]
[...여섯 데스우...]
벽을 바라보고 서 있던 연두는 뒤에서 들려오는 새끼들의 목소리와 작은 발소리를 들으며 미소지었다.
'이렇게 자들과 노는 행복... 아마 와타시의 마마는 못 느꼈을 것 데스우... 와타시가 자실장이던 시절에도 마마와 노는 행복은 누리지 못한 데스우...'
얼굴도 냄새도 모르는, 아마 지금도 실장샵 어딘가에서 자매들을 낳고 있을 마마를 생각하자 갑자기 슬픈 기분이 되었다.
연두는 고개를 붕붕 저어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냈다.
'괜찮은 데스. 그 대신, 와타시의 자들에게 그만큼 행복을 주면 되는...'
빠캉!
[[[[테지이잇!]]]
둔탁한 굉음과 함께, 세 개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겹쳐졌다.
[무슨 일인 데스!?]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연두가 부리나케 뒤돌아섰다.
[테규우웃...테긋... 테.... 테에에...]
[장녀?]
[테규보... 헤쥬쥬... 찌이이...]
[차녀?]
[찌이이이...]
[삼녀?]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소리, 아니, 울음소리조차 되지 못하는 신음이 띄엄띄엄 흘러나온다.
연두는 불길한 예감이 전신을 타고 오르는 걸 느끼며 울음소리의 근원지인 소파를 향해 뛰었다.
흘러나온 땀이 실장복에 진한 얼룩을 만든다.
[오마에타치! 무슨 일인...데...뎃?]
소파와 벽면 사이에 있는 틈.
그곳에는 경첩이 달린 금속 상자가 저 안쪽 깊은 곳에 놓여 있었다.
경첩에 연결된 뚜껑(으로 추정되는 무언가)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그 틈으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인 데스... 이게 무슨 일인 데스우... 어, 어디간 데스우... 다들...]
[마...마...]
어찌할 바를 모르며 발만 동동 구르던 연두의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삼녀의 목소리였다.
[삼녀, 괜찮은 데스? 대답해보는 데스! 그 안에 있는 데스?]
[츄보복... 테휴우...]
연두는 상자를 향해 손을 뻗어보지만 닿지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던 연두의 머리에 문득 매지컬 테치카 요술봉이 스쳐 지나갔다.
[데이잇... 데그으읏...]
연두는 장난감 바구니에서 꺼내온 요술봉을 손에 쥐고 결연히 몸을 숙였다.
요술봉 끄트머리의 별모양 장식을 상자 모서리에 걸치고는 조심스레 끌어당겼다.
지이익-
새어나온 적록색 액체가 바닥에 길게 끌리며 자국을 남기는 것을, 연두는 필사적으로 모른척하려 했다.
[이게 뭐인 데스우... 대체 무슨 일 데스우... 이건, 이건 꿈인 데스우...]
연두는 떨리는 손으로 상자 겉면에 붙은 철사와 이런저런 부속품을 만지작거렸다.
'자들은... 이 안에... 이 안에 있는 데스? 틀림없는 데스. 분명 살아있을 거 데스... 약간 다치긴 했어도, 분명...'
상자를 이리저리 더듬으며 열 방도를 찾던 뭉뚝한 손이 용수철이 달린 레버를 누른 것은 우연이었다.
삐걱-
경첩에 연결된 상자 뚜껑이 쇳소리를 내며 살짝 들렸다.
아무래도 이 길쭉한 쇠붙이를 누르면 열리는 것 같았다.
[데엣...스우우...]
불길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연두는 레버에 체중을 실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금속 뚜껑이 들려올라갔다.
[데...?]
안쪽은 질척한 적록색 덩어리로 가득했다.
그것이 자기의 새끼들이라는 것을 연두가 인식하기까진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다.
세 마리 자실장은 망치로 두들긴 것처럼 온통 으깨져 있었다.
살점을 찢고 삐죽삐죽 튀어나온 뼈와 선명하게 뚫려있는 구멍들.
뚜껑에는 못을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은 철침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고, 그 끝에서는 적록색 액체가 뚝뚝 방울져 떨어졌다.
레버를 누르던 팔에서 힘이 빠지는 바람에 기껏 들어올렸던 뚜껑, 정확히는 쥐덫의 압살용 상판이 되돌아가며 잔혹한 철퍽 소리를 울린다.
[츄벳]
파킨-
삼녀의 단말마와 함께 위석이 부서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이, 이게 무슨 일 데스우... 무슨, 무슨 일인 데스우... 이건 나쁜 꿈... 꿈인 데스우...?]
고장난 것처럼 그 말만 반복하던 연두의 눈에, 뚜껑 위에 새겨진 그림이 들어왔다.
익살스러운 그림체로 그려진 찍찍이씨였다.
'이건 설마... 쥐덫... 데스우...?'
연두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와타시의 탓이다.
어제 주인의 주의를 다용도실로부터 돌리려고 괜히 소파니 뭐니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그래서 주인이 덫을 놓았을 것이다.
소파 밑을 들락거리는 찍찍이씨를 잡기 위해서.
와타시가 괜한 말을 하는 바람에.
있지도 않은 찍찍이씨를 잡으려고.
한참을 그렇게 넋을 잃은 채 덫만 어루만지고 있던 연두의 눈에 초점이 돌아온 건, 해가 어느 정도 기울고 나서였다.
[데에... 데에에...]
연두는 아직도 힘이 빠져 움직이려 하지 않는 두 다리를 억지로 재촉하며 일어섰다.
[주인사마가 오기 전에... 치워야 하는 데스...]
연두는 떨리는 손으로 상자의 한쪽 모서리를 들어올렸다.
질질 끄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욕실까지 옮길 수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그대로 놔뒀던 탓에 체액이 굳어서 바닥에 자국이 많이 남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털그렁!
약간의 단차가 있는 욕실의 타일 바닥 위로 상자를 먼저 떨구고, 연두는 실장복을 벗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뒤집어보며 피나 오물이 튀지 않은 걸 확인한 뒤, 팬티까지 벗어서 문 앞에 함께 던져놓고 욕실 바닥에 내려섰다.
상자를 하수구 가까이 밀고 간 연두는 레버에 다시 손을 얹었다.
[데엣...스우우...]
레버를 누르자 상자의 뚜껑이 질척한 소리와 함께 들려올라간다.
피가 굳은 탓에 처음 열었을 때보단 더 큰 힘을 필요로 했지만, 어떻게든 열 수 있었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레버를 끝까지 내리자, 달칵 하고 뚜껑이 고정되는 소리가 들렸다.
'된 데스. 이제, 이제 치워야... 하는... 데스...'
연두는 희미하게 악취를 풍기기 시작한 세 마리 소중한 새끼, 정확히는 새끼였던 고깃덩이를 바라보았다.
아까 받은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일까.
연두는 눈앞의 광경을 이번에는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자들은... 모두 죽은 데스...'
하지만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몇시간 전만 해도 바로 이곳에서 테치테치 즐겁게 떠들고 운치를 하고 아와아와를 하던 사랑스러운 자들이, 지금은 씹다 뱉은 실장푸드처럼 걸쭉하게 변해 있었다.
'자들을 떼어내서, 이... 상자... 쥐덫을, 씻고, 말리고... 도로 가져다 놓는... 데스...'
떨리는 손으로 으깨진 살점을 긁어내려던 연두의 손이 멈췄다.
이러다 덫의 방아쇠를 건드리면 자기 손도 으깨져버리고 만다는 걸 간신히 깨달은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연두는 한 손으로 레버를 눌러 덫의 뚜껑이 닫히는 걸 막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으깨진 자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철퍽, 철퍽 소리와 함께 타일 위로 적록색의 더러운 고기들이 쌓여간다.
문득 삼녀의 하반신이 연두의 눈에 들어왔다.
덫에 짓이겨지면서 내장이 터지고 실장복이 적록색으로 물든 와중에도 용케도 팬티만은 깨끗한 하얀색을 지키고 있었다.
[삼녀... 무척 아팠을 텐데... 빵콘을 하지 않은 데스? 장한 데스... 훌륭한... 레이디인...데스... 사육실장이라고 해도... 믿겠는... 데스우... 오로로롱...]
기어이 적록색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울면서도 뭉툭한 손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엉겨붙은 살점과 모발, 뼈와 실장복을 대강 긁어내고, 목욕장 안에서 샤워호스를 가지고 나와 물을 뿌린다.
덫에 엉겨붙어있던 적록색 얼룩이 물줄기에 지워져간다.
입욕제까지 뿌리고 다시 물로 씻어내서 깨끗해진 덫을 온풍기 아래에 갖다놓고, 연두는 스위치를 눌렀다.
청소기 소리를 닮은 굉음과 함께 온풍이 덫을 때리며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저렇게 조금만 내버려두면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자들의 살점뿐.
'마당에 들고 나가서 묻어줘야 하는 데스? 아니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야 하는 데스? 아니면... 아니면...'
아니면...
연두의 손이 하수구를 덮은 철망으로 향했다.
철망에 손가락을 걸고 들어올리자, 자실장 한 마리쯤은 문제없이 삼켜버릴 만한 구멍이 나타났다.
으깨진 자실장 세 마리의 육편 정도는, 아마 무리없이 내려보낼 것이다.
[마마가... 마마가 미안한 데스... 미안한 데스우...]
대충 머리로 짐작되는, 두건과 모발이 엉겨붙은 살점을 들어올려 사죄하고는 연두는 그것들을 하나씩 하수구로 던져넣었다.
[뎃? 이건...?]
집어들던 살점들 사이에서 뭔가 눈에 익은 것이 반짝였지만,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전에 미끄러져 하수구 속으로 사라졌다.
부서진 위석 조각 하나까지 모두 던져넣고 바닥에 묻은 체액까지 입욕제로 거품을 내서 닦아낸 뒤, 연두는 쥐덫을 끌며 욕실을 나섰다.
'피곤한 데스... 그치만... 제자리에 돌려놔야 하는 데스...'
연두는 소파와 벽의 틈새, 그리고 마룻바닥에 묻은 체액까지 대량의 젖은 휴지와 테치카 요술봉을 동원해서 박박 문질러 닦아냈다.
자들이 살아있었던, 그리고 죽어있었던 모든 흔적을 지우고 덫을 제자리에 돌려놨을 땐 이미 해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
이젠 언제 주인이 돌아와도 이상할 게 없다.
[데에... 옷을... 옷을 입어야 하는 데스...]
연두는 지친 몸을 욕실 문 앞으로 끌고 가서 바닥에 던져뒀던 옷을 주워입었다.
전신의 미끈미끈한 땀을 옷감이 흡수하는 기분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졸린... 데스...'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게 꿈이었길 바라며, 연두는 거실 한구석의 실장석 하우스에 비척비척 기어들어가 몸을 눕혔다.
***
상당히 지쳐있었음에도 연두는 깊게 잠들지 못했다.
-삑, 삑, 삑, 삑. 띠로링.
남자가 들어오는 도어락 소리가 나자마자 연두는 용수철이 튕기듯이 거실로 뛰어나와 현관을 향해 달렸다.
[다녀오신 데스우~]
과하게 밝은 모습을 연기하며, 연두가 남자를 향해 총총 뛰어갔다.
애써 소파 쪽으로 돌아가려는 시선을 붙들어매면서.
"혼자 잘 있었어?"
[잘 있었던 데스. 그치만 주인사마가 없어서 쓸쓸했던 데스우]
"어이구 기특한 소리를 다 하네."
특별할 것 없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남자가 거실로 들어섰다.
"아, 맞다. 오늘은 그 뭐냐... 찍찍이씨? 없었니?"
[뎃? 그러고 보니 오늘은 못 본 것 같은 데스...]
연두는 남자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다리에 달라붙어 머리를 부비며 애교를 부리는 척 했다.
"응... 그렇구나."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적당히 소파 위로 던졌다.
"참, 내가 어젯밤에 여기 소파 뒤에다가 찍찍이씨를 잡으려고 덫을 놨거든?"
남자는 겉옷을 벗으면서 소파를 향해 턱짓을 했다.
"깊숙이 넣어놨는데, 연두 네 팔로는 안 닿을 것 같지만 일단 얘기는 해둬야 할 것 같아서. 아침에 나가기 전에 말한다는 게 그만 까먹었지 뭐냐."
[뎃, 알겠는 데스. 얼씬도 하지 않겠는 데스]
연두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다행히 남자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소파 위에 드러눕듯이 앉아 TV를 켰다.
"내일은 주말이니까 아침 일찍 공원이라도 갈까? 테치카 자동차도 타고, 공 던지기도 하고. 어때?"
[뎃, 좋은 데스우. 그럼 와타시는 이만 자는 데스]
"그래, 그래."
[안녕히 주무시는 데스우]
끼익-
연두는 실장석 하우스의 문을 닫고 이불을 몸에 돌돌 말았다.
'...찍찍이씨를 잡으려고 덫을 놓은 데스?'
남자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연두 자신도 도중까지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미끼가 콘페이토였던 데스우...?'
자들의 육편을 하수구에 던져 넣을 때 얼핏 보았던, 하얀 돌기가 달린 작은 부스러기.
그건 분명 콘페이토였다.
연두는 애써 훈육한 자들을 망칠까봐 아직까지 한번도 아마아마한 음식을 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콘페이토는 쥐덫의 미끼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때문에 연두는 덫을 원위치시키기 전에, 쥐덫의 미끼 거치대 위에 그날의 간식인 콘페이토 한 알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던 것이다.
...어쩌면 쥐들도 콘페이토를 좋아할지 모른다.
어쩌면 주인은 별 생각없이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는 달콤한 음식을 미끼로 놓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피곤한 데스. 자는 데스.'
어둡고 축축한 의심이 의식 한켠을 스멀스멀 물들이는 것을 느끼며, 연두는 길었던 하루를 뒤로 한 채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일은 공원에 가는 날이다.
***
연두는 그날 밤, 자들과 함께 공원으로 소풍을 나가는 꿈을 꾸었다.
[텟테로케~ 텟테로케~]
[뎃데로게~ 뎃데로게~]
이것이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연두는 진심으로 그렇게 바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