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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을 위한 한국은 없다



가난한 동네는 분위기부터 남달랐다. 저녁 어스름부터 몰려든 희뿌연 안개엔 이곳 사람들의 질척한 인생사가 묻어나온 듯했고 안개 너머로 스산하게 일렁이는 네온사인의 붉은 빛은 멋모르고 흘러들어온 방문객에게 던지는 경고문 같다.

페인트가 벗겨져 칙칙한 건물들 사이를 갈라놓은 도랑은 사시사철 오, 폐수를 흘려보냈는데, 군데군데 덮개돌이 깨져 언제나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불편과 결핍에 면역이 된 주민들도 이 악취만큼은 견디기 힘든 것인지 도랑 양편 집들은 몇 년째 주인이 없었다.

주인 없는 빈터엔 부서진 수납장, 낡은 의자, 부러진 나무 조각이 수북했다. 누고도 제지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주민들에게 일탈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은 아이들이 남은 막대를 당연하다는 듯이 내던졌다. 다른 한편엔 텅 빈 페트병, 먹고 남은 음식 찌꺼기가 나뒹굴었다.

물질적 결핍이 불러온 정신적 해이. 그저 혀를 찰 일이지만 세상엔 늘 다양한 관점과 입장이 존재하는 법. 어떤 이에겐 통탄할 일이 누군가에겐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선물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게 꼭 사람이란 법은 없다.

빈집 사이 어두컴컴하고 좁은 공간. 퀴퀴한 냄새가 사람의 발길을 차단하는 도랑 위에 웅크린 녹색 소인.

“뎃데로게∼뎃데로게”

작은 개 만한 그것. 실장석이라 불리는 해수.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모를 녀석은 두 눈을 녹색으로 빛내며 부푼 배를 쓰다듬는다.

“뎃데로게∼뎃데로게 자들은 듣는 데스”

음정도 박자도 엉망인 실장석 특유의 분충 태교.

나직했지만 뱃속에 소중한 자들에겐 또렷이 전달되었다.

“보에보에∼뎃데로게 자들은 듣는 데스

세상은 아름다운 데스∼아마마아와 오이시이가

넘쳐나는데스~”

보에보에 뎃데로게∼자들은 듣는데스

와타시와 와타시의 자들은 전부 특별하고 세레브한데스

뎃데로게∼현명한 마마는 준비를 마친데스

튼튼한 집을 구한데스

물도 가득 있는데스

똥센징들은 와타시의 노예인 데스∼공물을 바치는 데스

그러니 빨리 건강히 태어나는데스 뎃데로게∼“

한참을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더니 목이 바짝 말랐다.

들실장은 애써 무거운 몸을 일으켜 도랑 한편 덮개돌이 사라진 곳으로 갔다.

고개를 숙이니 ‘시원한 물‘이 오늘도 힘차게 흘렀다.
어느 개구쟁이가 내던지고 갔는지 모를 페트병에 물을 양껏 담아 들이키고는 개운해진 얼굴로 다시 노래를 불렀다.

”뎃데로게∼“

자들에게 세상의 아름다움과 와타시의 세레브함을 알려주자. 배가 고프면 집에 저장해 놓은 푸드를 먹고 다시 노래를 부르자.

”데프픗! 와타시는 행운아인데스“

집과 그 안에 저장해 둔 양식에 눈길이 향한 들실장은 몰려드는 행복감에 태교도 잊고 행복회로에 빠졌다.

”힘들게 풀을 모을 필요가 없었던 데스. 손 아프게 땅을 파지 않아도 되었던 데스. 비교도 안 되는 튼튼한 집인 데스.“

주머니에 돈이 미끄러져 들어오면 다음 날 술과 함께 흘려보내는 하류 인생 포주 김씨도 녹색 해수의 호사를 알았다면 서랍 부서진 책상 버리길 망설이지 않았을까.

”이런 하우스를 거저 바치는 닌겡은 타고난 노예인데스. 데프픗!“

무서운 야옹씨도, 까치씨도 침입할 수 없는 튼튼한 집에 도취 된 들실장이 태교로 돌아가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


”텟테레∼“

기운찬 탄생음과 함께 물 위로 떨어지는 자들.

도랑 위에서 다리를 벌린 친실장은 기쁨에 몸서리쳤다.

’와타시를 꼭 닮은 자들! 와타시가 얼마나 현명한지 알아봐 줄 자들! 함께 세레브한 삶을 누릴 자들!‘

연녹색 점막에 싸여 웅크려 있던 자들을 하나하나 핥는다. 맛있는 물이 졸졸 흐르는 이상 점막이 굳을 염려는 없다.

승리자의 기분을 만끽하며 여유 있게 점막을 벗겨간다.

”테츄웅∼마마 안녕하신테치! 세상의 보배인 장녀테치.“
”와타치는 차녀인 테치. 마마, 아마아마와 오이시이는 어디있는 테치?“
”와타치는 마마의 말을 하나도 안 빼고 들은테치! 와타치와 마마의 핵주먹 앞에 노예들은 도게자하는 테치! 와타치의 자로 세상을 가득 채우는 테치!“
”마마 당장 약속했던 오이시이를 대령하는 테치! 식품위장은 용납하지 않는 테치!“

모친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하는 말들이 참 되바라졌지만 배부르고 등 따신 실장석만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눈망울을 한 친의 눈엔 귀엽고 발랄할 뿐이었다.

자신의 세레브함을 찬양하고 함께 누릴 자가 생겼다는 자부심에 벅차오르는 심정을 애써 누르곤 자들을 옆에 있는 집으로 인도했다.

구석에 놓인 종이 상자로 다가간 친실장이 뭉툭한 손으로 한참 실갱이를 하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자, 자들은 모두 마마 곁에 모이는 데스“
”테치!!!!“

세상 밖에 나와서 처음 하는 식사. 배 속에 있는 동안 마마가 입이 닳도록 노래하던 아마아마에 기대에 4쌍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오마에들은 가장 처음 마마의 젖을 먹어야 하는 데스. 하지만 마마는 부자인 데스. 그래서 특별히 푸드부터 먹게 해주는 데스. 여기 하나씩 받는 데스“

친실장이 꺼낸 것은 큼지막한 바퀴벌레와 아직 꼬물거리는 파리 유충이었다.

”깜장 벌레와 꼬물이 데스. 깜장 벌레는 고소하고 오독오독 씹히는 풍미가 일품인 데스. 꼬물이는 깨물면 부드러운 육즙이 나오는 데스. 모두 맛있게 먹어 데스.“
”테에∼“

무언가를 강하게 쥐기에 부적합한 뭉툭한 손. 작은 자실장이라면 더하다.
바닥에 던져놓고 네발로 엎드려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보며 냄새를 맡던 장녀가 양껏 입을 벌려 베어 물었다.

”텟츄!“

입맛에 맞는지 장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싹싹 핥아먹는다. 그 모습에 차녀와 삼녀도 합세해 즐거운 식사시간이 시작되었다.

”마마.... 이게 아마아마와 오이시이인 테치? 더 없는 테치?“

점막이 벗겨지자 마자 오이시이부터 찾던 4녀가 의문을 표했다.
친실장은 4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것 말고도 세레브한 푸드가 잔뜩 있는 데스. 오늘은 이걸 먹고 다음에 먹게 해주는 데스.“
”....알겠는 테치. 오늘은 이걸로 만족하는 테치“

고개를 끄덕이며 오네챠들에게 합류하는 4녀의 등뒤를 바라보며 친실장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다행인데스. 와타시 몫의 푸드까지 달라고 할까 걱정했던데스.‘

일가는 읽을 수 없지만 종이상자에는 ’치킨‘이라고 쓰여있었다.

자실장들은 모르는 일이지만 바퀴와 구더기는 닭 뼈에 남은 살코기에 꼬인 놈들이었다.

’스테이크는 너무 기름져서 자들에겐 이른 데스. 와타시가 대신 먹고 자들에게 줄 젖을 만드는 데스.‘
자들에게 젖을 물리면 자들이 먹은 것과 같은 데스!’

정말이지 쏙 빼닮은 친자였다.


*

친실장은 미처 몰랐지만 4개의 군입은 인간의 일탈을 양분 삼아 나태하게 살아온 녀석의 일상에 중대한 변화를 요구했다.

”하아.....성가신 데스....“

하우스 안의 친실장은 나직한 한숨을 토했다.

일가의 보금자리는 굳건하다.

날마다 떨어지는 음식과 개천의 물도 끊기지 않았다.

문제는....

”수건이 없는 데스.“

아무리 세레브한 하우스가 있어도 밤은 춥다.

덮을 게 필요하다.

세레브 실장은 운치를 싸면 총구를 깨끗이 닦아야 한다. 그래야 닌겐 노예를 복종시켜 흑발의 자를 낳을 수 있다.

그뿐인가, 목욕 후에도 수건이 필요하다. 사방에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마르기만 기다리는 건 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 모든 걸 위해 수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헤어진 목욕수건을 홀로 덮고 자던 녀석은 자를 낳기 전까진 수건이 이렇게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 마신 음료수 병을 슬쩍 버리고 가는 사람은 흔하지만 바닥 닦은 걸레, 땀 닦은 수건을 길에 버리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다보니 간밤에도
”자들, 마마가 온 데스요.“
”마마, 오늘도 수건은 없는 테치?“
”와타시타치 밤에 추운 테치, 낮에는 해씨가 따가워 괴로운 테치. 살 수가 없는 테치“
”귀여운 와타시가 죽어 버려도 좋은 테치? 마마의 수건이라도 주는 테치.“

몰려든 자실장들은 마마의 손에 들린 양식은 아랑곳없이 수건의 유무에만 신경을 기울였다.

”삼녀 건방진 데스! 자는 마마의 것을 넘보면 안 되는 데스!“

마마는 노고는 무시한 채 제멋대로 떼쓰는 자들을 밀어내느라 홍역을 치뤘다.
정 안되면 풀잎을 꺾어와 쌓거나 떨어진 나뭇잎을 모으지만 허름한 회색 건물의 숲 어디에도 녹색은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 풀과 나무가 있었어도 무상의 행복에 익숙해진 실장석이 세레브하지 못한 노동을 했을진 의문이지만.

”이대로는 안 되는 데스....견딜수가....“

와아아아!!!

담장 너머에서 들려온 요란한 함성이 친실장의 상념을 깨드렸다.

”닌겐이 점점 더 제 정신이 아닌데스. 도대체 뭐 하는 짓인데스.“

친실장을 괴롭게 하는 건 자들의 칭얼거림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부터 닌겐들이 밤마다 전부 한쪽으로 몰려가 괴성을 질러댔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잠을 자다가도 몇 번씩 놀라 일어나기 일쑤였다.

”단체로 돌아버린 게 분명한.....뎃!“

순간 친의 눈이 초생달 모양으로 변했다.

”데프프... 닌겐들이 미쳐있으면 그 틈에 수건을 가져오면 되는 데스. 미처 그 생각을 못한 데스.“

행복회로가 맹렬히 가동했다.

”전부 한곳에 몰려 있으니 눈치 못 채는 게 당연한 데스. 꽥꽥 소리 지르는 틈에 몽땅 가져오는 데스.“

눈 한번 껌뻑할새 확신을 굳힌 친실장은 자들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무서워서 나가지 못했던 골목 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탁 트인 길로 보무도 당당히 발을 내딛은 순간 가볍고 나풀거리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데, 데샤아아아아아아!“

수건이었다. 친실장의 몸을 가볍게 덮을 만한 수건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이렇게 빨리!! 역시 와타시가 현명했던 데스!!“

뒤뚱거리며 내달려 수건을 집었다. 이 정도 크기면 자들이 모두 덮을 수 있다. 적어도 밤에 칭얼거림을 듣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데, 데......대박 데샤아아!!“

하나가 아니었다. 똑같은 수건이 앞에, 옆에, 구석에 널려있었다.

“기적인 데스! 착한 와타시에게 카미사마가 내려준 기적데스!”

이 정도면 용도별로 나눠 실컷 써도 남는다.

“위에만 아니라 바닥에 깔 이불이 생긴 데스
목욕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닦는 데스
집에 들어올 땐 세레브하게 발을 닦는 데스
용변 후 엉덩이도 닦는 데스”

자들의 투정? 현명하고 유능한 마마를 칭송하느라 바쁘겠지.

윤택한 삶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졌음을 확신하며 저도 모르게 몸이 가벼워져 한참을 방방 뛰었다.

흐르는 땀? 발에 묻은 먼지? 수건으로 닦으면 그만 아닌가. 이렇게.....

“데, 뎃!?”

친실장의 눈에 눈부신 조명 빛에 받고 늘어진 그림자들이 들어왔다.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있던 녀석은 자신을 괴롭히던 소음이 가까워졌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데......닌겐상?”

고개를 들어 돌아본 곳엔 짐작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인영이 몰려와 있었다.

‘거....걱정할 것 하나 없는 데스. 와타시의 매력은 모두를 한방에 매료시키는 데스!’

천천히 양팔을 들어올리고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닌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순간 왼손은 허리에, 오른손은 입가로 가져갔다.

“데∼츙!!”

짧은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거대한 노성이 밀어닥쳤다.

“X∼※&%$@!!!!”

무슨 말인진 알아듣진 못 하지만 사방에서 터져 나온 고함에 담긴 적의는 똑똑히 전달되었다.

뿌득, 뿌지직

공포에 질린 친은 본능에 따라 거하게 빵콘했다.

녹색 운치가 팬티를 찢을 듯 흘러나와 깔고 있는 수건에 떨어졌다.

성난 발길질이 친실장의 배로 날아든 것과 거의 동시였다.

고통을 호소할 시간조차 없었다. 군중의 발길질이 나가떨어진 친실장을 그대로 짓밟아버렸으니까.

*


“태극전사들의 8강 진출로 기뻐하고 계실 국민 여러분께 안 좋은 소식을 들려드리게 되었습니다.

실장석. 과거 우리 민족의 정기를 짓밟았던 일본산 해수가 서울시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배설물로 더럽히는 충격적인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자세한 소식 이XX 기자입니다.”

“실장석. 이완용의 애완동물이자 일제강점기 일제가 한민족과 한반도에 비유하며 민족 정기말살에 사용해 잘 알려진 유해조수입니다. 군사 정권 시기 대대적인 퇴치 운동으로 오랫동안 보기 힘들었던 실장석이 서울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서울시 영등포구 모처.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 전을 감상하고 귀가하던 주민이 제보한 영상입니다.

녹색에 뚱뚱한 실장석이 태극기를 밟고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뒤늦게 주민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실장석은 자신의 배설물로 태극기를 뒤덮습니다.

이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 주민들은 분노를 금치 못합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노인들의 분노는 더합니다.”

김xx(72세)

“옛날 왜정 때 일본놈들이 맨날 그럽디다. 조선사람은 짓소새끼라고. 조선 반도는 새끼들고 아첨하는 짓소 형상이라고. 그것들이....”

“서울시는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주민들의 심경에 통감하며 곧바로 대책을 수립해 남아있을 실장석을 박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KBS 뉴스 이XX입니다.”

*


“사실 이 사건은 당장 크게 이슈가 되진 않았습니다.”

(주)HTB 실장석부서 박웅철 대리는 견학차 찾아온 학생들의 면면히 찬찬히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월드컵은 4강 신화로 계속 이어졌고 다들 아시겠지만 3-4위전이 열릴 무렵 2차 연평해전이라는 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북한과 교전이 벌어진 상황에서 신경 쓰기엔 너무 작은 일이었죠.”

“일본에 항의하진 않았나요?”

집중해서 듣고 있던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물었다.

“양국간 화합의 축제를 진행하고 있는데 일본이 실장석을 보냈다는 증거가 있는 게 아닌 다음에야 어깃장을 놓을 순 없죠.”

“그럼 그대로 묻힌 거에요?”

“그렇진 않아요. 나라에서 신경 쓸 일까진 아니지만 지자체에선 간과할수 없었죠. 이 사건은 막 취임한 이명박 신임 서울 시장이 추진한 실장석 퇴치 프로젝트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낙원의 일가 1~2 (ㅇㅇ(58.238, 58.120))



맹렬한 햇살이 구름 속에 숨어 모처럼 상쾌한 날. 
실장석 일가의 나들이 날이었다. 
커다란 봉투를 들고 앞장선 친실장의 뒤를 장녀가 뒤따랐다. 

“레치~~”

동생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면서도 혹 마마와 떨어질까 두려워 부지런히 따라붙는 격한 걸음에 품에 안긴 엄지가 자그맣게 울었다. 장녀의 뒤를 구더기를 안은 차녀가, 다시 그 뒤를 5자매가 옹기종기 따랐다.

친실장, 자실장 7마리, 엄지와 구더기 각 한 마리. 열 식구가 기차놀이를 하듯 늘어선 나들이 행렬. 일평생 투쟁의 장에서 살아가는 들실장의 삶에선 기대하기 힘든 호사였다. 친실장은 모든 것이 이 낙원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평화로운 데스, 던져지길 잘한 데스.’

태어나 두 번째로 맞이한 가을 씨. 빈속에 풀을 채워 넣다 까끌까끌한 손이 친실장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붕붕씨에 내던져진 친실장은 자도 낳지 못하고 슬픈 일을 당하는 줄 알고 피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까끌까글한 손을 가진 닌겐상은 친실장을 낙원에 던져주었다. 집으로 쓸 박스와 함께.

이 낙원에서 친실장은 추운 날을 견디고, 자를 낳고, 고향 풀숲의 실장들을 몰살시킨 여름 날도 문제없이 보내고 있다. 

“마마, 아직 멀었는 테치?”

“와타시도 다리 아픈 테치!”

“4녀챠, 5녀챠, 조금만 참으란 테치! 6녀, 7녀도 조용히 걷고 있는 테치!”

살짝 볼을 부풀리고 귀엽게 투정하는 볼멘 투정을 늘어놓는 이모토챠들을 장녀가 얼렀다. 친실장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몇 달 되지도 않았것만 어느새 제법 성체 티가 났다.

“이제 얼마 안 남은 데스. 조금만 힘을 내는 데스!”

“알겠는 테치~ 힘내는 테치”

방금의 불평이 거짓말같이 입을 모아 대답하는 자들에게 다시 한번 웃어준 뒤 고개를 돌린 친실장의 눈에 빼곡히 들어찬 잡초들이 보였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

“다 왔는데스”

“”“와와와!!”“”

풀숲 사이 차고 맑은 물이 잔뜩 흐르는 시냇가가 눈에 들어왔다. 
자들, 좀 전 까지 이모토챠들을 단속하던 장녀부터 차녀 품에서 잠자던 우지챠까지 모두가 넋을 잃고 탄성을 터뜨렸다. 

“물이 잔뜩 있는 테치~”

“차가운 테치~ 이제 뜨겁지 않은 테치!” 

“오네챠, 빨리 내려주는 레찌, 아타찌 첨벙첨벙 하고 싶은 레찌!”

“시원한 레후~”

뜨거운 여름에 힘겨워하는 자녀들을 위해 한참 전부터 준비한 소풍이었다. 뜨거운 해씨를 뚫고 도착하는 게 문제였는데 모처럼 해씨가 보이지 않자 망설임 없이 결행했다.
기쁘게도 모두가 좋아해 주었다.

“모두 마마가 보는 곳에서 즐겁게 노는 데스!”

“알겠는테치!”

정말 알고서 대답하는 건지 물놀이에 정신이 팔린 자들의 모습을 감상하며 친실장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서로 물을 뿌리며 놀던 4녀와 5녀의 손놀림이 조금 둔해지고, 얼굴만 내놓은채 엄지의 프니프니를 받던 우지챠가 만족한 미소와 함께 늘어지는 모습을 본 슬슬 떼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품에서 돌을 꺼냈다.

실장석의 작고 뭉툭한 손에 들어갈 정도로 작으면서 단단한 돌맹이는 만능 도구로 일가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었다.

“자, 모두 이곳에 모이는 데스. 이제 밥을 먹는 데스.”

“마마, 밥이 어디 있는 테치? 봉투에는 아마 것도 없는 테치.”

차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부터 가져오는 데스. 정말 우마우마한 데스.”

자들의 기대 가득한 시선을 받으며 시냇물 너머 풀숲으로 들어간 친실장은 신발이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잡초 사이를 뒤졌다. 

이윽고 잡초 중간에 붙어있던 커다란 벌레를 잡아 던졌다. 이곳 잡초들엔 이런 벌레들이 정말 많았다. 껍질이 단단하지만 속살은 정말 부드러웠다.

“징그러운 레찌”

“그게 뭐인 테치?”

기겁하는 엄지를 감싸 안은 장녀가 묻는다. 

“너희들도 잘 아는 음식인 데스. 보고있으란 데스”

친실장은 돌로 벌레의 껍질을 힘껏 내리쳤다. 실장석이라도 도구를 이용하면 이런 작은 벌레 껍데기 정도는 깰 수 있었다. 검고 단단한 껍질이 부서지고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났다.

“아, 우마우마인 테치!”

“어제도 먹었던 테치~” 

그제야 벌레의 정체를 알아차린 자들이 환호한다. 여름 내내 마마가 별미라며 가져다준 우마우마한 음식이 저 벌레의 속살이었음을 알아차린 자들은 선망의 눈빛으로 마마를 바라보았다.

“오마에타치들이 매일 먹었던 우마우마의 정체는 이 벌레인 데스. 잘 기억하고 너희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데스”

테치테치 자들이 일제히 어미의 말에 수긍했다.

“이 낙원에는 이런 것들이 널려있는 데스. 하지만 모르면 찾을 수 없는 데스. 앞으론 소풍 때마다 마마가 가르쳐 주는 데스. 잘 배워야 낙원을 오마에타치의 자로 가득 채울 수 있는 데스.”

아무리 귀여운 자라도 언젠가는 어미 품을 떠나야 한다. 그때를 대비해 지금부터 독립을 위한 지식을 가르치고 싶었다. 

“자, 어서 맛있게 먹는 데스. 마마가 또 잡아오는 데스.”

재차 환호가 터진다. 낙원이 만들어준 이상적인 실장 가족의 모습이었다.


*


마마의 말대로 맛난 벌레는 잔뜩 있었다. 웃고 떠들며 만찬이 한창인 와중 6녀가 조심스레 친실장에게 다가왔다.    

“마마, 와타시 운치 나오는 테치”

“여기서는 안 되는 데스. 저기 풀 아래서 보는 데스.”

상당히 급했는데 물을 첨벙이며 내달린 6녀는 잡풀 속에 녹색 운치를 쏟았다. 그것은 친실장 나름대로 터득한 생존비법이었다.

모든 것이 풍족한 낙원이지만 닌겐이 없지는 않다. 그리고 닌겐은 더러운 걸 아주 싫어했다. 고향 풀숲에서부터 체득한 삶의 지혜. 청결하게, 최소한 눈에 띄지만 않게 하면 대부분의 닌겐은 실장석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더러움이 눈에 보이며 주저 없이 구제된다. 걸어가는 닌겐 옆에서 운치를 싸다 그대로 배가 찢어진 동족의 모습은 부족함이 없는 이곳에 와서도 잊히지 않았다.

친실장은 원칙을 정했다. 뭐든 더럽히지 않는다. 최소한 닌겐의 눈에 더러움이 들어가게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 수풀은 정말 유용했다. 녹색의 잡풀들이 실장석의 녹색 운치를 쉽게 가려주고 뒤처리도 도와주었다.

“끝났으면 풀을 꺾어 깨끗이 닦는 데스. 그래야 착한 자인 데스.”

이 규칙만 지키면 닌겐은 자신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우마우마한 밥도, 안전한 거처도 위협받지 않는다. 낙원은 영원히 자신과 자들의 것이다. 그렇게 확신했다.


*


“아니, 아직 도착 안 했는데. 거의 다 와 가. 들어가는 입구, 아, 어련히 알아서 안 할까, 왜 자꾸 전화에요!”

방역전문 주식회사 HTB 실장부서 대리 박웅철은 치미는 짜증을 억누르며 모친과 통화를 이어갔다. 티 내지 않으려고 해도 한 달 만에 맞이한 황금 같은 주말이 날아간 직장인이 평정을 유지하긴 어려웠다.

“뭐요? 짜증? 아니...그럼 내가 지금 기분 좋게 생겼어요? 예? 7월에 날 뜨거워 지면 낙동강 중류부터 하류까지 녹조 경보 떨어지고, 그럼 들벌레들은 세수하다 새끼 까고, 밥 처.. 밥 먹다 새끼 까고, 물 뜨러 갔다 새끼 까고! 나는 그거 잡으러 두 달 내내 강변 노숙인데! 근데 모처럼 쉬겠다는 아들내미 시골까지 실장석 잡으라고 내려보내 놓고 뭐요? 짜증? 아, 됐어요. 끊어요!”

거칠게 전화를 끊은 웅철은 전화를 내던졌다. 

외할머니 산소 근처 밭에 실장석이 출몰한다는 외삼촌의 연락에 아버지는 모처럼 쉬러온 아들의 등을 떠밀었다.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었지만 한국인으로 태어난 이상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너를 어쩌고 저쩌고, 바쁘다며 명절에도 어쩌고 저쩌고 유교 공격에는 버틸 수가 없는 법이다. 

시골로 내려가는 동안 겨우겨우 짜증을 추스렸으나 마을 입구 도로를 진입하는 순간 눈에 들어온 실장석 일가에 평정을 잃어버렸다. 

외갓집 밭은 마을 깊숙한 야산에 있다. 실장석의 행동 반경을 고려하면 실장석 식 피서에 여념이 없는 저 일가가 범인일 순 없다. 

즉, 이 마을엔 복수의 실장 개체가 존재한다는 소리고, 이는 토요일 안에 일을 끝내고 
일요일만이라도 온전히 누리려던 목표가 한여름의 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시사했다.

웅철은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었다. 장화와 작업복, 장갑, 실장 폐기용 포대, 수거용 집게... 그리고... 그리고....

“없다...”

실장 구제에 가장 흔히 쓰이는 HTB사 표준 장비, 목봉이 보이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 내던지다시피 장비를 챙기다보니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하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한숨이 우러나왔다. 
휴일은 휴일대로 없어지고, 일하는데 필요한 장비는 빠뜨리고, 환상적인 하루다.

“손으로 잡을까?”

안 된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친실장은 어떻게 하지?”

HTB사 실장 부서에는 사원을 위한 업무 메뉴얼이 존재했다. 

제1항. 자실장 열 마리를 놓쳐도 친실장 한 마리를 구제한다.

똑똑한 친실장은 자들에게 대피 지시를 내릴 수 있다. 친실장을 가장 먼저 처리해야 혹여 있을 도주극을 방지하고, 자실장들을 빵콘시켜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제2항. 일가가 모여있을시 친실장을 최우선으로 구제한다.

자는 아무리 죽여도 또 낳으면 그만이다. 학대파 정신병자들은 친실장 살려놓고 자만 죽여서 자원봉사 운운하지만 새끼를 낳고 양육할 수 있는 친실장을 죽여야 개체수 증가를 막을 수 있다. 어미 잃은 자실장의 생존율은 어떤 연구에서도 30%를 넘긴 적이 없다.

이 두 조항은 한 지역에 피해자들 이전에 직원들이 몇 번씩 재방문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접근은....”

지금 이곳엔 성인 남성이 몸을 가릴 엄폐물이 전혀 없다. 눈에 안띄고 접근해서 친실장을 헤치울 방법이 없었다. 

회사 업무라면 개를 풀거나, 드론을 띄우거나 정 모자라면 직접 몰이꾼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좀 전까지의 흥분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갔다. 

도구를 챙겨오지 못한 상태에서 구제 매뉴얼을 준수하며, 친실장부터, 일가 전체를, 쓸어담아야 한다. 

어디서 나무 작대기라도 꺾어야 하나 고심하여 주변을 돌아보는데 저 앞에 단독 주택 한 채가 보였다. 피서객 대상으로 백숙 장사를 겸하는 민박집. 그도 몇 번 들를 적이 있는 곳이었다. 

“벌레 잡는다는데 안 빌려주긴 안겠지.”

시골집에 설마 쓸만한 도구 하나 없을까. 웅철은 바삐 걸음을 옮겼다.


*


실컷 먹고 배가 부른 자실장들은 물에 발목을 담그고 배를 두드리며 노래했다.

테치테치텟챠~~

기운찬 노랫소리가 친실장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모처럼 온 가족을 데리고 힘낸 보람이 있었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마마 곁으로 장녀가 다가왔다.

“마마, 감사한테치. 와타시타치 마마 덕분에 행복한 하루를 보낸 데스.”

장녀의 손을 잡았다.

“장녀, 너는 감사할 줄 아는 착하고 현명한 자인 데스. 꼭 좋은 마마가 되는 데스.”

“알겠는 테치. 와타시 꼭 마마같은 마마가 되는 테치. 마마처럼 자들을 데리고 와서 이곳을 알려주는 테치.”

언제 이리 컸을까. 이제 밥을 구하는 동안 자들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일부터 하나하나 가르치자. 차녀까지 좀 더 크면 차녀에게 맡기고 같이 밥을 구하자. 그래, 그렇게 마마가 되는 법을....

휘이익
서걱

9자매가 모두 자를 낳아 자신을 둘러싸고 노래하는 광경을 생각하며 행복회로를 돌리던 친실장의 귀에 무언가가 날아와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얼굴에서 끈적끈적한 촉감이 전해졌다.

“.....테.....테....”

“뭐...뭐...!!!”

장녀의 배를 찢고 나온 거대한 발톱.
친실장의 얼굴이 장녀의 피와 내장으로 뒤덮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척추와 갈비뼈를 부수고 배까지 뚤고 나온 발톱 사이로 조각난 내장과 운치, 미처 소화되지 못한 음식이 흘러내렸다. 
장녀는 갑자기 들이닥친 극심한 고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장녀!!!!”

다른 자매들이 언니에게 일어난 이변을 눈치채기도 전에 저 위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득달같이 내달렸다.

친실장의 눈이 절망으로 문들었다.

“닌겐이 온 데스. 오마에타치 모두 피하는 데스!!” 

애석하게도 직전까지 행복에 취해있던 자들의 움직임은 기만하지 못했다.

그 사이 닌겐은 이미 일가 앞에 서있었다. 
물 밖에 내던져진 입만 뻐금거리던 장녀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자의 몸을 찢은 발톱이 허공을 가르더니 장녀의 몸을 동강냈다.
가장 신뢰하던 자의 머리가 친실장 앞에 떨어졌다.  
그 발톱은 닌겐의 것이었다. 닌겐에게 저런 발톱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장녀!!”

어미의 절규가 최고조로 달했을 때、닌겐과 친실장의 거리도 사라졌다.

닌겐의 발이 친실장의 턱에 내려 꽂혔다. 턱이 부서지고, 이빨은 부러진 채 핏방울을 흩뿌리며 물에 처박힌 몸뚱이는 움직일 줄 몰랐다. 

“마마!! 정신차리란 테치!”

“도망치는 테치!”

갈갈히 찢긴 언니와 내동댕이쳐진 마마를 목격한 자실장들에게 신속한 대처를 요구하는 건 무리였다.
6녀와 7녀는 빵콘한채 그 자리서 움직이지 못했다. 
4녀와 5녀는 피눈물을 흘리며 마마에게 달려갔다.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한 자는 풀숲으로 내달리는 3녀와 엄지와 구더기를 챙기려 한 차녀 뿐 이었다.

그리고 닌겐은 남은 8자매 중 3녀를 바라보며 똑바로 내달렸다.

“살려달라는 테치... 도망치...”

혼이 빠져라 달렸지만 10cm 남짓한 자실장의 보폭은 뻔했다.
언니를 찢어발긴 발톱이 지체없이 3녀를 덮쳤다.
할퀴고 지나간 자리엔 동강난 3녀의 몸뚱이만 남았다. 

“테샤아아아아아아아”

“엄지짱, 우지챠 빨리 오네챠에게....”

다급히 엄지와 구더기를 챙기려던 차녀의 머리가 부셔졌다. 두개골과 목뼈, 척추가 단 일격에 조각나고 분대가 찢어졌다. 
그래도 위석까지 박살나 바로 죽을 수 있었던 차녀는 행복했다. 동강난 3녀의 반신은 아직도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가차 없는 폭거는 멈출 줄 몰랐다. 
울고 불며 마마를 흔들던 4녀와 5녀의 살점이 물속에 흩어진다. 
그때까지도 덜덜 떨고 있던 6녀와 7녀는 선 채로 핏물이 되었다.
9명이었던 자매는 이제 엄지와 구더기만 남았다.

“왜...왜....이런 짓을 하는 데스...닌겐....대답하란 데스”

간신히 몸을 일으킨 친실장은 고통과 절망에 몸부림치며 남은 자식들의 앞을 막아섰다.

“와타시타치....오마에에게 무슨 짓을 했는 데스? 
어째서 와타시의 자를 죽인 데스! 
착하고 좋은 자들 밖에 없었던 데스!
닌겐에게 아무런 폐도 끼치지 않은 데스!!
왜 가만 있는 우리를 죽이는 데스!”

닌겐은 말이 없었다.  
친실장은 돌아보지 않은 채 단 둘 남은 자들에게 외쳤다.

“엄지짱! 우지챠를 데리고 도망치는 데스. 
여긴 마마가 막는 데스. 
꼭 살아서 자를 낳는 데스!!”

죽더라도 반드시 막아세운다. 
그렇게 결심하며 양팔을 교차시켰다. 
그런데....왜 저쪽에 자신의 팔이 보이는 거지?
눈이 두 개인데 왜 한쪽만 보이는 거지?


*


“살벌하네.... 조선 낫, 조선 낫 하더니.”

웅철은 민박집 주인에게서 빌려온 조선 낫의 터무니없는 위력을 실감하고 가볍게 몸을 떨었다. 

쇠스랑이나 장대가 있으면 빌려달라는 웅철에게 집주인은 조선낫을 내밀었다.
무식한 내구도에 웬만한 중화 식도보다 굵은 날을 가진 전통 나무낫은 실장석의 무른 살점을 너무 쉽게 잘라냈다. 

손에는 두부 자르는 정도의 감촉만 전해졌을 뿐 인데 친실장의 양팔과 몸뚱이를 동시에 양단해 버렸다.

“이래서야 백주 대낮에 흉기 들고 쇼하는 미친놈인데...”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묵직한 조선낫은 먼 거리를 꽤 안정적으로 날아갈 수 있다.
군대에서 작업하다 심심한 장병들이 낫을 집어던지며 놀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몸을 숨기며 접근할 수 없으니 낫을 던져서 친실장만 제압하고 빵콘해 멈춰선 자실장들은 마대에 가볍게 쓸어 담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처음 던져보는 낫은 옆에 있던 자실장에게 날아갔고 결국 미친광이 살인마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했다.
이러서야 학대파와 다를 게 없다.

“그렇다고 논에 들어가게 놔둘 수야 있나.”

10cm 안팍의 녹색 해충이 논에 들어가면 찾기도 어렵고 모가 밟히기라도 하면 논주인에게 욕먹는 사람은 저 해충들이 아니라 
자신이다.

웅철은 수거용 집게로 가장 먼저 죽은 자실장의 시체를 수습했다. 많이 훼손되었지만 크기를 판명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15에서 16cm 가량. 중실장 표준인 20cm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실장석의 번식기는 개나리가 피는 3월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동북아에서 유독 꽃샘추위가 심한 한국은 벚꽃이 개화하는 4월
심하면 5월까지 미루는 개체가 있다.
근데 6월 중순인 지금 이 크기라....

“얼마나 해 먹은 거야.”

친실장 주변을 살펴보니 유기농 재배를 위해 논에 풀어놓은 왕우렁이 껍질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대충 봐도 20개 가까이.
논 주인이 누군지 몰라도 우렁이 대신 제초하느라 고생 좀 할 거 같다.

논쪽에는 피해가 없나 싶어 살펴보니 두렁 가까이 자라던 모 사이에 독한 냄새를 풍기는 배설물이 쌓여 있었다. 
옆에 운치투성이 모 잎을 보니 모를 꺾어 뒤처리도 한 모양이다. 

“이 짓을 이 논에서만 했으면 신고를 안 했을 리가 없고...”

아마 논두렁을 따라 쭉 내려오며 지나는 논을 그때그때 털어먹었을 것이다. 그러면 한 곳에 피해가 집중되진 않는다.

분석을 마친 웅철은 스마트폰을 꺼내 아직도 덜덜 떨며 움직일 줄 모르는 엄지와 구더기를 화면에 담았다. 
논 주인이 자기 소유임을 알 수 있도록 주변까지 신경 쓰며 세심히 촬영했다.

HTB사 실장 부서 업무 매뉴얼 
제3항. 운치굴 밖에 있는 엄지와 구더기는 가급적 촬영하여 의뢰주에게 통보할 것.

운치굴 비상식량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 길러지는 엄지와 구더기가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식량사정이 풍족하다. 
바꿔 말하면 이놈들이 의뢰주님께 정말 많은 피해를 끼쳤습니다.

촬영하여 의뢰주에게 통보하게끔 되어 있었다. 의뢰받아 한 일은 아니지만 혹시 몰라 일단 촬영해 두기로 했다.

한 10여장 찍었을까. 충분하다 싶어진 웅철은 낫을 들어 구더기를 안은 엄지에게로 다가갔다.


고통의 시간이 길지는 않았을 것이다.



식전 댓바람부터 논두렁 뛰어다니며 요란한 시간을 보낸 웅철은 
마을 안쪽 큰외삼촌댁 가는 길을 재촉했다.

10년간 양돈을 해온 큰외삼촌은 근래 포도 농사에 손을 뻗쳤다.

“그만하면 노후자금도 충분한데 하나만 하시지 좀...”

무슨 변덕일까? 늘그막에 양돈하기 전 복숭아 재배하던 가락이 떠오르기라도 했나?

잡생각에 잠겨 운전에 전념하고 있으려나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해 왔다.
양돈 농가 특유의 돼지 분변 냄새.
15년 전 외가에서 무협지에서 아직도 이 냄새가 난다.

그런데 차에서 내려 짐을 꺼내는 그를 맞이한 사람은 외삼촌이 아니었다.

“네가 여기 왜 있냐?”

“큰아빠 어제 새벽에 입원하싰다.”

시내 사는 작은 외삼촌네 장남. 
웅철에겐 이종사촌 동생인 기찬은 만나자마자 비보를 전했다.

“뭐! 어쩌다?”

“내하고 밭에 울타리 치다 삐끗해삤다. 
멘솔레담 바르면 낫는 알고 개겼는데 나 먹고 마음대로 되나. 그게.”

“하이고...거 조심 좀 하시지. 환갑도 넘은 분이.”

“앞뒤 돌아가는 사정은 내가 아니까, 내랑 가면 된다. 점심 전 이제? 밥부터 무라
큰엄마(웅철에겐 큰외숙모)가 형 쉬는데 불러내서 미안하다고 돼지 잡아놓고 갔다.”

갓 잡은 돼지고기 목살로 양껏 포식한 웅철은 드디어 문제의 포도밭을 향했다.
밭은 3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모신 야트막한 산 아래에 있었다.

“감나무도 여전히 많네”

“거, 뭐 청도 교외면 다 그렇지. 뭐.”

웅철 어머니의 고향인 경북 청도의 명물이라 하면 씨없는 감과 복숭아다. 
집집마다 감나무 한그루. 야산에도 감나무, 길가에도 감나무. 
아직 여물지 못한 여름의 과실을 보듬고 있는 풍경이 제법 운치가 있었다.

구릉에 도착한 둘은 일단 외할머니 산소를 찾아 절을 올렸다.
산소 주변엔 시야를 가리는 나무 한 그루 없어 주변이 훤히 내려 보였다.

“저다”

감나무가 늘어선 구릉으로 오르는 입구 부근 평지를 가리킨 기찬은 
이내 그곳으로 웅철을 안내했다. 

“심하네.” 

수확을 앞둔 포도나무 여기저기가 떨어지고 뭉개져 망신창이였다.

“어떻게 기드러 오는지, 드러와가 막대기로 치가 다 따무삐더라.”

“구제는?”

“그 뭐 녹돼지 좋아한다는 사탕 약 잔뜩 뿌맀다.”

“야, 그거 쓰면 안 돼. 불법이야.”

“와? 녹돼지만 뒤지는 거 아이가?”

“고양이는 쥐약 먹으면 안 죽든? 독약이 다 같이 독약이지. 다른 동물까지 죽인다고... 
업자가 정해진 상황에서만.... 아, 뭐 벌써 썼으면 어쩔 수 없고.”

1970년대까지 흔했던 삵이 멸종위기 희소종으로 전락한 건 당시 쥐와 실장석을 
잡기 위해 마구잡이로 뿌린 쥐약 때문이다. 

과거의 부작용을 복기한 환경부는 일부 예외 상황을 제외한 코로리 사용을 금지했다.

물론 이런 시골에까지 그런 규제가 일일이 미치기도 힘들고 
피해 농민들의 원성 때문에 적발하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지만.

“그래서 좀 잡히데?”

“4마리까지는 잡았는데 그담부턴 안 통하더라.”

“포획틀은 써봤나?”

“안에 똥 던져놓고 가드라.”

망할 놈. 지가 무슨 이리왕 로보라도 되나.

“벌써 다 따먹진 않았을 거고. 어디까지 갔냐?”

“어 그게....”

밭을 3분 2 쯤 가른 기찬이 과실이 반쯤 짓뭉개고 떨어진 포도나무 앞에 섰다.

“여까지. 요 뒤에는 아직 다 달리있다.”

주변의 다른 나무들을 둘러 본 웅철은 기찬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종말점을 찾으면 다음엔 간단했다.

“성체 실장이 커봐야 40cm거든. 
숏다리로 아장아장 걷다 보니까, 새끼들이 움직이는 동선이 존나 좁아. 
배때지에 등가죽 들러붙는 상황 아니면 좌우로 넓게 안 움직여. 
웬만하면 앞만 보고 간다 이 말이지.”

기찬이 가르쳐 준 나무에서 울타리까지 일직선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어, 찾았다.”

외삼촌이 다리 부러져 가며 세운 합판 울타리 너머 발자국과 
수풀 눌린 자국이 선명했다. 
그리고

“가끔 이렇게 운치굴 파던 가락으로 땅굴파는 애들이 있어.”

울타리 아래로 친실장 하나가 드나들 만한 굴이 파여 있었다. 

“녹돼지가 무슨....”

실장석 중에도 가끔 약은 놈이 있음을 아는 웅철과 달리 
잔머리 굴리는 실장석이란 발상 자체를 못 해본 기찬은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웅철은 바닥에 엎드려 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다 다시 일어나 울타리 너머를 살피길 반복했다.

“햄 뭐 하는데?”  

“키.”

“키?”

“발 크기랑 몸 둘레로 대충 재 진다. 
좀 크다. 한 40 되겠다.”

게을러터진 본능을 이겨내고 굴 파고 들어올 끈기
거구
코로리를 구분하는 식별능력
벌레치곤 의외의 응용력 

“코로리로 잡은 4마리 뭐 다른 거 없었어?”
목걸이나, 옷색이나, 체형이나?”

“다 똑같던데.” 

“알았다. 일단.... 가서 철사 한 무더기만 사와.”


*
  

“와타시 빨간 아마아마가 먹고 싶은 테치”

“아타치는 녹색 길쭉씨가 더 좋은 레찌”

자실장들은 해맑게 떠들며 농부 아저씨의 1년 피땀을 거덜 내는 모의를 시작했다.
복숭아 밭 득구 아재의 일가실각을 노리는 5녀
물 많고 시원한 오이를 요구하는 7녀 엄지 

평소 세균과 기생충 덩어리라며 실장석에 무관심하던 사람들조차 
학대파로 돌변시킬 발언들이 이어졌다.

“알겠는 데스. 음식은 많으니까 맘껏 이야기하는 데스.”

“5녀짱, 7녀짱, 마음대로 요구하면 마마가 곤란한 테치”

착실한 장녀가 제지하고 나선다.

“마마, 편식은 이모토챠들에게 안 좋은 테치. 
오늘은 노랗고 둥근씨를 먹는 게 좋은 테치.”

장녀가 요구한 것은 구릉 중간 김씨 할머니네 감자.
언제부터 이들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테에에~ 와타시타치는 아마아마가 먹고 싶은 테치”

“안 되는 테치. 여러 가지를 먹어야 마마처럼 멋진 마마가 되는 테치.”

볼멘 소리로 칭얼거리는 동생들을 어르는 장녀의 사려 깊음에
친실장의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현명한 데스. 이 자는 정말 현명하고 착실한 데스.’

엄지 둘에 구더기까지 9자매 중에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자신의 모든 걸 배워가는 장녀에 거는 기대와 애정은 그만큼 컸다. 

“이번엔 모두가 좋아하는 깜장 아마아마를 구해오는 데스. 모두 기대하는 데스”

10년 넘게 실장석이라곤 모르던 마을에서 호사를 누리는 친자가 
공통으로 좋아하는 음식이 달고 수분 많은 깜장 아마아마였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녀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엄지부터 구더기까지 8자매가 달라붙었다.

“정말인 테치? 깜장인 테치”

“사랑하는 레찌, 아타시 행복한 레찌!”

“레후! 깜장 아마아마 좋은 레후~”

“마마, 사랑하는 테치”

사랑스럽고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눈에 담은 친실장은 
마지막을 자들을 쓰다듬어 준 뒤 집을 나섰다.

친실장은 비닐봉투와 비장의 막대기를 손에 쥔 채 구릉을 올랐다.
등산이란 운동은 실장석의 유리 몸뚱이엔 부적합하다.
하지만 여느 들실장 실장보다 10cm 이상 큰 친실장은 힘든 줄 몰랐다.
무엇보다 언덕 위엔 별천지가 있다.

‘이곳에 떨어진 건 행운인데스. 
카미사마가 딜리전스하고 세레브하고 고져스한 와타시에게 준 선물이 틀림없는 데스’

손이 까끌까끌한 카미사마는 그녀를 비롯한 다섯 실장석을 이곳에 내려주었다.

유감스럽게도 4마리 이웃상들은 모두 분충이었다.
해씨가 쨍쨍해 닌겐들 다 나와 있는데 설쳐서 친실장의 밥 구하기까지 방해하더니
급기야 친실장의 밥을 가로채려 했다.

‘참 되먹지 못한 분충들이었던 데스’ 

굶주린 분충들이 자신의 자까지 노리기 전에 손을 써야만 했다.
힘들여 뭘 하진 않았다. 
그냥 저쪽에 콘페이토가 뿌려져 있다고 말해줬을 뿐.

분충들이 뭘 얼마나 모아놓았겠냐만 아쉬운데로 식량과 가재도구를 쓸어 담고
마마를 닮아 똥벌레인 자와 구더기들은 독라로 만들어 운치굴에 던져넣었다.
추운 날 일가가 일용할 양식이 되어줄 터였다.

‘똥벌레 주제에 보람찬 결말인 데스.’ 

자신만만한 웃음을 흘리며 예의 구멍으로 들어갔다. 
심혈을 기울여 다진 땅굴은 친실장의 거구도 문제없이 받아들였다.

시큼한 깜장 아마아마의 맛과 기뻐할 자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케, 케켁!!!! 뭐, 뭐인 데스!!!”

단단한 철사가 친실장의 목을 휘감았다.
낮에 웅철이 만들어 놓고 간 올무였다.
당황하여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올무는 더욱 조여져 목 아래서 피가 베어 나왔다.

‘당한 데스! 못 된 닌겐이 오마에의 비밀을 알아낸 데스!’

팔이나 다리라면 실장석의 말도 안 되는 재생력을 믿고 뜯어버릴 수 있다.
이 친실장처럼 영양 상태가 좋은 개체는 뜯어낸 팔다리를 도로 먹어 체력을 
회복하는 고육지책도 가능하다.

하지만 머리는 아니다.
위석을 절제해 영양액에 절인 실장석도 머리가 없으면 죽는다. 
키와 체격, 진입 방향을 모두 고려해 머리에 걸리게끔 설치된 올무는 
친실장을 완벽한 외통수로 몰았다.

‘닌겐!! 당장 나오는 데샤!! 와타시를 풀어주는 데샤!! 자들이 가디라는 데스!!’

용을 쓰며 주변을 둘러봐도 목만 더 조여올 뿐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해질녁이라 대다수가 노인인 주민들은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덫 주인은 돼지고기에 막걸리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꼼짝없이 밭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전투모기 친구들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는 게 위안일까?


*


날아간 주말을 조금이라도 보상받기 위해 다이어트고 뭐고 포기하고 만찬을 
즐긴 웅철은 펜치와 콜라 3병을 챙겨 너털너털 산을 올랐다.

“그거 들고 가가 뭐 할라고? ”

“잡혔으면 쓸라고.”

밭에 당도한 두 사람의 시선에 커다란 녹색 덩어리가 들어왔다.

“진짜 잡힜네.”

“흉측하네.”

강철 올무와 엉터리 생물의 말도 안 되는 재생력이 빚어낸 합작품이었다.
올무가 연약한 살을 파고든 자리 위로 살이 재생되는 바람에 올무가 목 안에 들어가고.
더하여 모기가 상처 부위의 피를 빨아먹어서 퉁퉁 부어올랐다.
아무리 체격 좋고 잘 먹던 놈이라도 이래서야 답이 없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웅철이 동생을 돌아보았다.

“외삼촌 집 뒤에 창고 열쇠 어딨는지 알지?”

“창고? 열쇠는 서랍 안에 있을 건데 왜? 근데 그 창고 안쓰....”

“가서 내 심부름 좀 해라.”

“만다꼬? 걍 대가리 깨고 내려가면 되는 거 아이가?”

“아니, 풀어줄 건데.”


*


갈증과 허기, 출혈, 지독한 가려움에 지쳐 완전히 쓰러졌던 친실장은 
왁자지껄한 소리에 눈을 떴다. 

‘닌.....겐......’

커다란 닌겐이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다.

“죽을....수 없는....데스....와타시.....”

밤새 쏟아내고도 아직 수분이 남았는지 피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억울하다. 너무 억울하다. 
실장석도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는데
들분충 사이에서 신음하다 카미사마의 도움으로 겨우 행복을 얻어냈는데 
이젠 다 글렀다.

‘미운 데스.,.... 
똥닌겐은 왜..... 이렇게 이기....적인 데스?
크기만.....크지....비겁하고 쪼잔한.....제멋대로....똥벌레인 데스.....

와타시와 자들이.....행복을 위해 들판....에 우마우마..... 좀 가져간다고....
정말.....조금 필요했을......
.....언제부터 여기가 닌겐 것.....된 데스....

와타시....자가 있는 데스....
....와타시타치....가 행복해야....닌겐도....행복한 데스.....’

참고로 포도밭은 고조부 때부터 웅철네 외가 땅이다.

웅철은 친실장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없이 포도 수확용 가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목 주변 살을 단숨에 잘라 들어갔다.

“데.....데....갸아아아아악!!!! 오마에!! 더러운 학대파인 데스!!!”

지친 몽뚱이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밭이 떠나갈 듯한 비명.
그럼에도 웅철은 망설이는 법 없이 목 주위 살을 몽땅 베어냈다.
살속에 들어가있던 철사가 풀렸다.

“케...케....뎃데....뎃데로게.....뎃데......”

작렬하는 지옥의 고통에 위석은 파킨사를 방지용 행복회로를 발동시켰다. 

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친실장의 모습에 비릿하게 미소를 지은 웅철은 
밭에서 쓰는 물통에 가져온 콜라 3병을 떼려 붓고 친실장을 집어넣었다.

일부러, 살며시.

“....뎃데....데.....뎃!”

과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감미와 톡쏘는 향이 입에 닿자 노래가 멎었다. 
목을 후벼파다 다시 천상의 넥타를 가져다 바치니
저도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지 헷갈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실장석은 실장석. 고민도 잠시고 정신없이 퍼마시기 시작했다.

코로리에 반응하지 않는 실장 개체는 이 녀석이 처음이 아니다. 
예전부터 왕왕 발견되곤 했다. 
이에 학자들은 자연선택설에 의거 단 것을 싫어하는 실장 개체가 
생존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하지만 2018년 발표된 환경부 연구조사는 그저 코로리 먹고 죽는 동족을 본
(행복회로가 좀 덜 돌아간)친실장의 훈육 결과였을 뿐이며 그나마도 극히 
일부 자실장에게만 제대로 전수되었음을 증명했다. 

실장석이 단맛에 환장함은 불변.
한낱 바퀴조차 무수한 목숨을 담보삼아 단 것 싫어하는 놈들이 나오던데 
이 벌레들은 어째 바퀴보다 변화가 없다.

친실장은 급기야 콜라로 목욕을 시작했다.
실장석의 말도 안 되는 재생력이 설탕물을 만나자 목의 상처는 
언제 그런 게 있었냐는 듯 삽시간에 사라졌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자극의 폭풍 앞에선 실장석만의 양충, 분충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내 왔다.”

눈앞에 펼쳐진 추태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기찬은 착실하게 시킨 물건들을 챙겨왔다.

 *


“뎃데로게~ 인정하는 데스. 오마에는 좋은 닌겐인 데스. 
사죄를 받는 데스. 와타시도 오마에를 배려하는 데스.”

아마아마하고 아와아와한 목욕에 만족한 친실장은
닌겐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협상에 응하기로 했다.

내일부턴 전에 가져가던 양의 반만 가져가자!

나머지는 건너편에 빨간 아마아마(복숭아)로 보충하면 된다.
자신이 행복해야 하는 만큼 닌겐도 먹고 살아야지 않겠는가!
통 크게 양보하기로 했다.

몸을 푹 담그고, 양껏 들이켰다.
배가 남산처럼 부풀어 올랐다. 
남들보다 육중한 체구의 그녀도 더는 먹을 수 없었다.

배가 대충 찼음을 확인한 웅철은 친실장을 집어올렸다. 

“뭐하는데스? 설마 사육실장 하는 데스?”

닌겐은 말없이 한편에서 길고 가는 줄을 가져왔다. 
뭐라 중얼거리자 그곳에서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케켁!! 난폭....한 데스! 닌겐....커억...
와타시는 자가 있는 데스. 이 낙원에서 행복한 데스. 
오마에의 집에는 갈 수 없는 데스!”

물을 잔뜩 뿌린 닌겐은 이번엔 검고 마른 수건을 가져와 친의 몸을 세심히 닦아 주었다.

“닌겐, 오마에는 거칠어도 친절한 데스. 오마에의 집에는 갈 수 없지만 
감사하는 데스,” 

모든 절차를 마친 웅철은 마지막으로 커다란 그릇을 친실장 눈앞에 내밀었다.

“자, 너희 가족들 밥이야. 가져가서 먹어.”

친실장의 눈이 튀어나올 듯 팽창한다. 그릇을 덮은 투명한 막 아래로 평생 구경도 못 한 진수성찬이 보였다. 
푸짐하게 쌓인 밥에 위를 덮은 고기, 아마아마하고 찐득한 꿀이 잔뜩 뿌려져 있었다. 

“아프게 해서 미안해. 이거면 온 식구가 실컷 먹을 수 있을 거야. 
잘 가렴~”

“닌겐...고마운 데스....평생 기억하는 데스!”

감격의 눈물을 쏟으며 친실장은 맹세했다.
절반이 아니라 3분의 1만 가져가자.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데 아무리 자들이 귀하다지만 어쩌겠는가. 

한편 환희에 몸서리치는 실장석을 뒤로한 웅철은 

“야, 수건 이거 폐기물이야. 버려. 가위도 버리고, 물통도 버리고. 
쓰레기, 쓰레기봉투 어딨어?”

집에 가서 손 씻을 생각뿐 이었다. 손 씻기 전엔 폰도 만지지 말아야지.


*


“참 착한 닌겐이었던 데스.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스.”

친실장은 닌겐이 헌상한 밥을 들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갔다.
마마가 돌아오지 않아 벌벌 떨고 있겠지?

하지만 손에 든 밥을 보면 그런 마음도 사라지리라
이 정도 양이면 온 가족이 내일까지 포식할 수 있다.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놀린 결과 정오 무렵 도착할 수 있었다.

“자들, 마마가 온 데스!!”

“마、마마.....마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지 품안의 우지챠까지 아홉 자매가 일제히 달려왔다.

”마마가 돌아온 테치!“

”마마아! 만나고 싶었던 레찌!“

”보고 싶었던 레후~ 무사했던 레후~“ 

그리고 그런 자들 앞에

”엄청나게 커다란 밥씨인 테치!!“

”아마아마한 냄세가 나는 테치!“

”고기 냄새 나는 레후~“

푸짐하게 쌓인 밥과 고기, 꿀 비빔밥에 자실장들은 
눈이 돌고 회가 동해 온 산이 떠나가라 환호했다.

”마마, 이 밥씨는 어디서 난 데스?“

장녀가 물었다.

”친절한 닌겐이 준 데스. 모두 집에 들어가서 수건을 까는 데스. 
잔뜩 있으니까 다 같이 맛있게 먹는 데스“

”네에-테치!!!!“

웃는 얼굴로 일사분란하게 식사 준비하는 모습에 그간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다들 신이 나서 재잘거렸다.
4녀는 통통 뛰며 춤을 추고, 6녀는 데굴데굴 구른다. 
8녀 엄지는 막내 우지챠를 껴안고 뱅뱅 돌며 환호했다.  

”마마, 괜찮은 테치? 닌겐은 위험하다고 마마가 말한 테치. 
닌겐이 주는 아마아마는 함부로 받지 말라고 마마가 그랬던 테치.“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동생들과 달리 장녀는 어딘가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친실장은 그런 장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역시 이 자는 일가의 희망이다.

”오마에가 뭘 걱정하는지 아는 데스. 걱정마는 데스. 이럴 땐 노예를 쓰면 되는 데스.“

현명한 자에게 살아가는 필요한 새 지식을 전수하기로 결심한 친실장은 하우스 옆 
운치굴에서 독라 자실장 한 마리를 꺼내 마당에 내던지곤 
식사 준비를 마친 자들 앞에 섰다.

”자들은 대답해 보는 데스. 운치 노예는 뭐로 쓰는 데스.“

”자판기 테치!“

”겨울 식량 테치!“

”모두 맞은 데스. 하지만 또 있는 데스. 
닌겐이 준 음식이 수상할 때 먼저 먹여보는 데스. 그러면 슬픈 일을 피할 수 있는 데스.“

친실장은 밥을 덮고 있던 투명한 막을 벗기고 고기 한 덩이를 가져와 
노예의 입에 쑤셔 넣었다.

‘독라가 와타시의 몫을 빼앗은 테치’

‘겨울에 제일 먼저 죽여주는 테치’

감히 노예가 주인의 밥을 손댔다는 사실에 자실장들은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허나 깜깜한 굴속에서 운치만 먹고 살았던 독라는 살벌한 공기는 아랑곳없이 
달콤한 향기에 취해 반항도 잊고 게걸스레 집어먹었다.

그리고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독라의 벌거벗은 몸이 단숨에 푸르딩딩한 녹색으로 뒤덮이고
입술과 혀마저 녹색 물감을 들이킨 듯 진한 녹색으로 물들었다.
맛있게 씹어 삼킨 고기 조각과 운치가 입으로 폭포처럼 터져나와 
맨 앞에 있던 장녀의 얼굴에 튀었다.
종국엔 두 눈이 녹아내리며 몸을 마구 비틀어 댔다. 

아무리 노예라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처참한 모습에 일가는 새파랗게 질렸다.

맨 앞에서 지켜보던 장녀의 빵콘을 신호로  
양옆으로 늘어서 있던 자매들도 차례로 팬티를 불룩하게 만들었다.
막내 우지챠까지 빵콘을 끝마치자 찾아온 것은 무시무시한 혼란.

”마마! 살려주는 레찌!!!“

”테체이이이이! 괴물 테치이!! 죽은 테치!!!!“

”와타시타치도 살해되는 테치!”

거의 광란이었다. 늘 의젓하던 장녀도 공포에 질려 날뛰고 있었다.
친실장이 다급히 나섰다.

“괜찮은 데스! 우리는 안 먹은 데스!! 괜찮은 데스!”

자기도 팬티를 부풀려 놓고 용케 허세를 부리는 친실장.

“우리는 무사한 데스! 똥노예가 대신 먹고 죽은 데스! 안전한 데스!!”

똥싼 팬티채로 자들에 달려가며 재차 목이 터져라 괜찮다고 외쳤다.

“오마에타치는 이걸로 알게 된 데스. 미리 노예에게 먹여보기만 하면 안전한 데스!!
진정하란 데스!!!”

‘똥닌겐. 감히 이따위 술수로 와타시타치를 위협한 데스! 죽여주는 데스!! 다 빼앗는 데스!!’


*


”형, 금마 눈치까고 안 먹으면 어쩔건데?“

”미리 콜라에 절여서 설탕에 미치게 만들었으니까 중간에 버리진 못할걸.
밥에 꿀 부어놓았으니 쓴맛이나 악취도 눈치 못 챌거고.“

”그래도 의심하거나 하면?“

”아, 뭐 기미상궁 쓰는 놈들이 가끔 있긴 하지.“

”기미상궁?“

”콘페이토인지 코로리인지 구분하라고 운치굴 독라한테 한입 줘보는거야.
상관없어. 노예든, 친이든, 자든 걍 누구든 한 입만 먹으면 돼?“

”새끼까지 다 죽이야 된다매? 한 놈 먼저 뒤지면 딴 놈들 안 먹는거 아이가?“

”그건 코로리나 그런거고. 누구든 한입 먹으면 일가전멸 이다. 그라목손은.“


*


친실장이 노예가 죽었을 뿐 이라며 자들을 안심시킨 것과 장녀가 쓰러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커.....커....테.....“

죽은 노예의 토사물이 묻은 얼굴에서 흉측한 돌기가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친실장의 주먹만한 크기로 부풀어 올라 얼굴을 뒤덮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자, 장녀어어어!!!!“

갈색 머리칼이 스르륵 다 빠지면서 
노예와 똑같이 전신이 실장복보다 짙은 녹색으로 물든다.

”커에에엑“

아직 중실장도 되지 못한 작은 몸에 뭐가 그리 많이 들어갔는지 맹렬한 기세로 터져나온 
녹색의 토사물이 옆에 빵콘해 있던 차녀와 6녀를 뒤덮었다.     

”장녀, 장녀!! 어떻게 된 데스! 정신 좀 차려보란 데스!“

친실장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닌겐이 독을 줬지만 노예에게만 먹였는데. 
장녀는 먹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라목손. 닌겐들 사이에서도 악명높은 이 제초제는
중독자의 토사물에 닿아도 중독된다는 사실을 친실장이 알 리가 없었다. 
노예를 쥐고 있던 그녀의 손이 부풀기 시작했다는 것도. 


*


”티스푼으로 다섯 번. 제대로 했지?“

”어, 다섯 번 정확히 셌다.“

”다섯 숟갈이면 사람도 100% 다인데 실장석이야“

사람 피부에 닿아도 2도 화상이 입은 것과 같은 증상을 일으키는
그라목손 원액을 인간 기준 100% 치사량인 다섯 스푼이나 넣었다.
밥에 뿌린 꿀은 그라목손 음용을 막기 위해 첨가한 악취와 쓴맛을 가리는 연막

”그라목손엔 구토유발제가 들었으니 누가 먹어도 토할거고
설사 노예라도 치우려면 토사물이 안 묻을 수 없으니 그놈도 중독될거고, 
그럼 울며불며 달려가다 또 중독되고. 일가 전체 5분이나 버티려나“

”그라목손 창고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전에 부모님이랑 외할머니 산소 갔을 때 아카시아가 많이 자라 있더라고.
그거 없애려고 사놓고 넣어 둔 거야.
할머니 산소 오니까 생각나데.“

”꼭 이렇게 번거롭게 해야했어?“

”4마리 먼저 죽고 혼자 살아남이니 집에 쌓아둔 노예랑 식량 충분할 거고
청도 시골에 주인 없는 감나무도 많으니까.
어미 없이도 생존할 가능성이 너무 높았어. 
코로리 구분할 줄 아는 놈이 만에하나 자식한테 벌써 전수했고, 
그 자식이 살아남으면 내년에 이 지랄 또 해야 된다.“


*


친실장까지 열 식구가 쓰러지는 데는 3분이면 충분했다.
토사물을 뒤집어 쓰자 마자 죽음을 허락받은 우지챠는 행운아였다.

나머지는 지독한 독성에 눈알이 녹아내리고, 피부가 괴사하고
전신이 화상으로 부풀어 오른 흉측한 독라가 변해 녹색 토사물을 끝없이 게워내다 
폐가 파괴되어 숨조차 쉬지 못한 채 물밖에 내던져진 고기처럼 헐떡이다 죽어갔다.

그라목손의 독액은 그러고도 배출되지 않은 채 친자의 체내를 맴돌며 
맹렬한 기세로 모든 장기를 녹색 토사물로 바꿔갔다.
위석조차 의지를 독기에 압도되어 의지를 상실했는지 파킨사를 시켜주지 못했고
행복회로조차 돌릴 수 없었다.

9자녀들의 비참한 최후를 목격하고 나서야 죽을 수 있었던 친실장의 뇌리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것은 닌겐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제발 도망가게 해달라는 애원이었다. 


*


일을 마치고 내려온 기찬은 문득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형, 근데 그 녹돼지들 어디서 굴러들어 온 거야?
여기서 10년 넘게 구경도 못했는데.“

웅철은 질문을 듣지 못한 듯 조용히 한 숨만 내쉬다 역으로 질문했다. 

”저 아래 마을 입구쪽 논 많은데 거기 외삼촌 땅 있냐?“

”응? 어...어어. 농사는 안 짓고 남한테 빌려준 땅 있지.“

”요즘 시골에서 증가하는 신종 범죄야. 강제 탁아라고,
원수진 사람 있으면 엿 먹어 보라고 밤중에 몰래 실장석 가져와서 원한있는 사람 땅에 
던지고 가는 거야. 농사 망하라고.

죽은 실장석들 복장에 특이점이 없었다니 원 사육실장은 아니고. 들실장인데 그럼 확실해.“

”....큰아빠 요새 약주도 안 드시고, 원수진 사람 없는데?“

재차 크게 한 숨을 쉬었다.

”.....이모네 아직 사람 안됐지?“

마침내 기찬도 말문이 막혔다. 

큰외갓집 바로 옆 동네에서 봉숭아 농사 짓는 웅철의 이모, 기찬네 고모네 부부들로 
말할 거 같으면

30넘게 사람 구실 못하던 그들 부부의 아들이 동남아 신부랑 결혼할 때
축의금으로 100만 원을 쾌척한 웅철의 아버지가 부친상(웅철 조부상) 당하니
다 헤진 봉투에 구겨진 만 원짜리 3장 집어넣고 간 훌륭한 인분충이었다.

웅철 아버지는 액수 이전에 사람으로서 기본이 안 된 놈들이라며 
봉투 집어 던졌고 웅철도 이 일 만큼은 아버지와 같은 의견이었다. 

큰외삼촌 내외와는 외할아버지 재산 상속 문제로 대판 싸우더니
외할머니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해외여행 갔다나.

옆동네 살면서도 몇 년간 얼굴 한 번 보러오지 않았다.

”아니....아무리 그래도....오빠한테....“

”큰외삼촌 원수진 사람 없다며. 난 이모밖에 안 떠오르는데 
넌 달리 생각나는 사람 있냐?“

”.....“

”증거가 없으니 신고는 못 해도 한마디 하긴 해야지. 
작은 외삼촌한테 전화해서 큰외삼촌 지원사격 좀 해달라 그래.
나도 우리 엄마한테 말 해 놓을게.“







 

이 시국의 실장석

 

그날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흐린 달빛이 쫓기듯 구름 속에 숨어들어 시린 빛 한 점 들지 않는 스산한 하늘은 뿌연 밤 안개와 합치어 표현하기 힘든 섬뜩함을 자아냈다.

시골 특유의 드문드문 늘어선 가로등의 노랗고 탁한 빛은 음산한 자취를 지워주지 못했다.

노인들도, 가축들도, 마을에 몇 안 되는 왕성한 사내들도 마실을 삼가고 조용히 내일을 기다렸다. 기다리려 했었다.

“케엑, 케에엑!!”

“커억, 커...커억.!!”

밤공기를 가르며 들려오는 괴성.

어떤 것은 덜그럭대는 격한 소리

어떤 것은 가래 낀 꾸르륵 소리

또 어떤 것은 메마르고 쉰 낮은 소리

기침 소리. 하지만 사람은 아니다. 방범용 혹은 식육용으로 길러지는 개들이 소리의 주인이었다.

한 집 건너 기르는 개들이 격한 마찰음으로, 부글거리며 끓는 소리로, 건조하고 나직한 소리로 괴로움을 토해냈다.

“이, 뭐꼬. 할매요. 갑자기 와 저랍니꺼.”

40대로 마을에서 가장 젊은 청년회장 덕수는 잠이 덜 깨 황망한 표정으로 막 마당으로 나온 이웃 순이 할매를 채근했다.

“내가 아나....아이고...갑자기 와이라노. 진도야 괘안나?”

순이 할매는 덕수 쪽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반려견 진도를 붙들고 눈물을 쏟았다.

근자에 밥을 잘 안 먹고 늘어져 있기에 더위 먹었나 싶어 오늘 낮엔 백숙까지 쑤어준 참이다.
그럭저럭 입맛이 돌아온 듯 하여 안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리 괴로워하니 덜컥 겁이나 가슴이 마구 뛰었다.

“진도야...야 야....정신 좀 차리보그라....”

개를 끌어안은 노인은 절절한 심정으로 굳어가는 강아지의 몸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하면 금방이라도 일어나 전처럼 왕성하게 주인을 맞이할 것처럼.

하지만 힘을 잃고 굳어가는 진도의 탁한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틀 후 진도가 할머니 곁을 떠났다.

일주일이 흘렀다. 폐사한 개는 9마리로 늘었다.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전염병의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시기에 찾아든 미증유의 재난으로 조용하던 마을은 공포로 뒤덮였다.

덕수의 연락을 받고 급히 파견된 수의사의 진단도 코로나 가능성을 일거에 부정하고 올바른 진단을 내려주었지만 노인들의 두려움을 덜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 시기에 차 한 대가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


“개가 다 죽어요?”

“그래, 오밤중에 갑자기 기침을 해쌌트만 골골대다 얼마 있다 다 죽어삤다.”

집안 제사 문제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웅철을 맞아준 건 따스한 고향의 온정이 아닌 단단히 잠긴 대문들과 마스크로 꽁꽁 싸맨 덕수였다.

“수의사한테 보여주면 되잖아요. 뭐래요?”

“심장사상충이라고 기생충이라 카던데 할매들이 뭘 아나? 그렇잖아도 맨날 뉴스에서 코로나다 뭐다 때리니까 괜시리 불안해가 마실도 안 가고 이 염천에 마스크는 꼭 챙긴다 아이가.”

한국의 연 1회 심장사상충 검사율은 3%.
개가 가족이라 당당하게 말하는 도시 젊은이들도 그 모양인데 시골, 그것도 읍내 한 번 나가려면 몇 시간에 한 번 들어오는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벽촌이다.

그 생소함과 불안함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수의사 선생이 말해줬겠지만 그거 모기 땜에 걸리는 기생충이고 잠복기간 기니까 다른 개들도 다 검사해야 됩니다.”

이어 대충 사는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은 웅철은 마을이나 둘러 보겠다며 밖으로 나왔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공기는 왜 이리 다를까. 멍한 눈초리로 주변을 살피며 아무렇게나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을을 통과하는 개천위에 놓인 다리에 이르렀을 때 칙칙한 살색 덩어리가 시야에 잡혔다.

“뭐지?”

둥글고 뭉툭해 마치 정육점에 걸린 고깃덩이 같은 그것은 웅철이 직업상 자주 봤던 무언가와 아주 흡사한 형태였다.

“설마....”

전날 내린 비로 미끄러운 바위를 조심조심 내려가 급히 꺾어든 나뭇가지로 그것을 뒤집었다. 물에 잠겨 퉁퉁물고 폭급한 물살에 머리가 짖이겨 떠내려 가버렸지만 트림없었다.
웅철은 덕수의 집으로 내달렸다.

“삼촌... 마을 저 위쪽에 개천 있잖아요. 옛날에 가재 잡던데. 거기 아직 그대로에요?”

“어? 어 그대로지. 근데 하류 쪽에 캠핑장인가 뻑쩍지근한데 생기가 요샌 거 놀러 가는 사람 잘 없는데.”

“저랑 같이 가요. 지금 당장.”

“와 그라는데? 아, 맞다. 니 도시에서 벌레 잡는 일 한다 켔제? 모기 잡나?”

“모기는 아닌데...벌레 잡는 건 맞아요. ”


*

“데챠아...또 잠겨버린 데스”

“마마 괜찮은 테치. 기운내는 테치.”

“장녀 오네챠 말이 맞는 데스. 또 파면 되는 테치. 와타치들도 돕는 테치”

물에 잠긴 운치굴을 바라보며 낙담한 친실장을 장녀와 차녀가 열심히 위로했다.

‘데스우...정말 열심히 팠는데 여름씨는 너무 한 데스. 이번이 다섯 번째인 데스.’

실장석의 운치굴은 단순한 화장실이 아니다.

귀중한 단백질 공급원인 구더기를 양식하고, 독라 노예를 가두는 식량창고이자 생활의 거대한 부분.

그곳이 물에 잠겨 있었다. 어제 내린 비가 원인이었다.

풀과 가지로 덮었지만 매서운 장맛비는 실장석의 얼치기 솜씨로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운치가 녹아 악취를 풍기는 녹색 물 위에 혀를 내밀고 죽은 구더기 서너 마리가 둥둥 떠다녔다.

“마마, 와타시타치 고기 못먹는 테치?”

“와타시타치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테치. 예전 집 홍수 날 때 독라노예가 죽어버린 테치. 이주해서 모은 구더기도 몇 번씩 죽는 테치. ”

저편에서 다가온 3녀와 4녀가 울상을 지었다.

장녀가 눈에 힘을 주었지만 상심한 둘에겐 보이지 않았다.

“테에에엥!! 우마우마한 고기도 못먹고 슬픈 테치!!”

“이게 다 비씨 때문인 테치! 와타치의 핵펀치로 때려 주는 테치!!”

색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3녀와 공연히 하늘에 주먹질을 하는 4녀.

멀리서 보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광경에 망연해 있던 친이 정신을 차렸다.

“오마에타치, 진정하는 데스. 굴은 또 파면 되는 데스. 일단은 이걸 먹고 기운을 차리는 데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던 구더기 시체 4구를 모두 건져냈다. 물에 불어 터진 시체지만 먹을 수 있다. 젖은 포대기를 벗겨내고 비틀어 물을 짜내 자들에게 하나씩 건냈다.

“테에, 냄새나는 테치”

“물맛만 나는 테치. 맛없는 테치.”

“3녀, 4녀. 조용히 먹는 테치. 귀한 식량인 테치!”

“오네챠 말이 맞는 테치. 빨리 먹고 마마를 돕는 테치.”

칭얼거리는 동생들을 어르는 장녀와 차녀. 믿음직한 모습에 친실장의 얼굴도 미소를 되찾았다.

’와타시의 마마도, 마마의 마마도 비씨로 고생했다고 한 데스. 힘내는 데스. 지지 않는 데스.‘

“밥을 다 먹으면 차녀는 와타시를 따라오는 데스. 다시 굴을 파는 데스. 장녀는 삼녀와 사녀를 데리고 풀잎을 모아오는 데스.”

“알겠는 테치!!!”

부루퉁해 있던 3녀와 4녀도 대답은 빼먹지 않았다.

뭉툭한 손에 돌맹이 하나로 굴들을 파내니 어느새 붉은 해가 산 너머에 누울 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마마, 수고하신 테치!”

“오마에도 열심히 한 데스. 이제 가서 밥을 먹는 데스.”

땅거미 진 하늘을 등지고 나무 아래 상자집, 일가의 보금자리에 돌아오니 집 옆에 싱싱한 새 풀잎이 가득 쌓여 있었다.

“마마!! 차녀 오네차량 와타시 열심히 한 테치!”

“사녀 치사한 테치! 마마, 와타시도 투정 안 부리고 딴 테치!”

“삼녀, 사녀 이모우토 모두 열심히 한 테치. 장한 테치.”

각자의 노력을 자랑하며 마마의 칭찬을 바라는 여동생과 그런 동생들이 귀여운 차녀.

“모두들 잘 자라 준 데스. 와타시는 정말로 행복한 실장인데스.”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친은 집 귀퉁이로 가 덮어둔 돌을 들었다.

“”““마마!”“””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자들의 탄성.

“다들 열심히 했으니 상을 주는 데스.”

친실장의 손에는 흙이 덕지덕지 붙었으나 붉은빛을 잃지 않은 산딸기가 들려있었다.

시골 들실장들에게 허용된 몇 안 되는 감미.

3녀와 4녀는 물론 의젓하던 장녀까지 입을 헤 벌린 채 친의 손을 바라본다.

“와서 하나씩 받아가는 데스. 천천히 음미하는 데스.”

떨리는 손으로 하나씩 받아든 딸기를 조심스럽게 핥다가 알갱이 하나하나 천천히 입에 넣고 씹는다.

인간에겐 썩어 버린 역한 물건이지만 실장석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벌어진 언청이 입 사이로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그렇게 맛있는 데스?”

턱받이에 침이 흥건해진 모습조차 귀여운 어미는 딸기에 빠져 고개만 끄덕이는 자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만찬이 끝나면 내일을 준비하며 잠에들 시간이다. 기분 좋은 포만감에 젖은 자실장들이 마마 곁에 찰떡처럼 달라붙는다.

“마마, 니혼이란 곳은 정말 있는 테치?”

오늘따라 어리광이 심해진 차녀의 물음

“그럼 당연한 데스. 마마의 마마의 마마의 마마는 니혼에서 온 데스.

칸코쿠 닌겐들은 와타시타치를 못 잡아 안달이지만 니혼 닌겐들은 와타시타치를 세레브하게 대접하는 데스.

니혼에선 아마아마한 콘페이토와 스시, 스테이크가 매일 나오는 데스.

타는 이글이글씨와 추운 겨울씨도 없고 새 골판지 박스가 넘쳐나는 데스.”

마마의 말을 따라 황홀한 상상에 빠진 자들의 눈이 몽롱해졌다.

“와타시는 콘페이토 맛이 제일 궁금한 테치. 산딸기보다 아마아마한 테치?”

“니혼은 천국이 분명한 테치. 똥 칸코쿠와는 다른 테치.”

“꼭 가보고 싶은 테치. 와타시타치는 왜 칸코쿠에 태어난 테치?”

“니혼 닌겐들이 마마의 마마의 마마의 마마를 칸코쿠로 모셔왔다고 들은 데스. 그때는 칸코쿠도 니혼 이었는데 은혜를 모르는 칸코쿠 닌겐들이 빼앗은 데스.”

“와타시타치가 주는 행복을 모르는 칸코누 닌겐이 불쌍한 테치.”

“차녀 오테챠는 너무 착한 테치! 칸코쿠 닌겐은 못된 분충인 테치. 와티시의 핵펀치로 패주는 테치.”

“4녀. 오마에 심정은 알지만 칸코쿠 닌겐들은 와타시타치만 보면 달려드는 학대파 야만인인 데스. 가까이 가면 안 되는 데스.”

“.....테치....”

얼마나 이야기가 이어졌을까. 자실장들은 모두 꿈나라로 떠났다.

잠시 그 모습을 감상하던 친실장도 수마에 몸을 맡기려 눈을 감는데 불쾌한 소음이 허공을 갈랐다.

윙~위이잉~

’이놈의 똥모기 또 튀어나온 데스.‘

여름이 되고 나선 하루도 뜯기지 않은 날이 없다. 오늘같이 뜻깊은 날은 알아서 사라져 주면 좋으련만. 못되 처먹기가 학대파와 다를 게 없다.

자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난 친실장의 뭉툭한 손이 허공을 가르지만 모기는 둔중한 손놀림으로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히 친실장 옆을 날았다.

마지막까지 긴 하루였다.


*

“일단 가자케가 같이 오긴 왔지만 서도 대체 뭐 볼끼 있다고 온 기고?”

“실장석...녹돼지 있나 보려구요.”

“녹돼지? 그 제작년에 팔만대장경에 똥 던져서 뉴스 나온 일본 해수? 그기 여 산다고?”

“팔만대장경은 아니고 해인사 장경판전이었죠. 정확히 말하면.”

대머리를 열등 개체 취급해 우습게 보는 실장석이 절이나 스님에게 행패 부리는 게 한두 번이 아니나 그 사건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18년의 그 사건 이후 한국 내 실장석의 입지는 최악을 넘어 아예 소멸했다.

“여튼 마을 하천으로 떠내려온 거 보면 상류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지금부터 찾아봐야죠.”

신장 30∼40cm, 느려터진 몸뚱이에 비효율적인 이족보행을 하는 실장석이 넓은 활동반경을 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천으로 떠내려왔다면 물가 근처 어딘가에 살 터..

“어렵진 않아요. 개천 넘쳐서 떠내려 가면 안 되니까 너무 물 가까운데는 안 살거고.

딱딱한 돌밭에선 힘들다고 못살 테니 돌밭도 아닐거고.

땅 부드럽고, 수풀 우거져서 숨기 좋고, 비도 막기 좋은 곳이.... 저쪽에 보이네요.”

웅철은 강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은행나무를 가리켰다.

외따로 떨어져 자란 은행나무는 크진 않았다. 도로변 가로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딱 그 정도 크기.

“삼촌, 장화 챙겨왔죠?”

“어. 꼭 챙기라 카이 챙겨왔지.”

둘은 장화로 갈아신고 벚나무 쪽으로 나가갔다. 웅철이 초등학생 때만해도 여름이면 피서객이 몰려들었지만 하류에 깔끔한 캠핑장이 개장한 이후로는 발길이 끊겼다.

한 손에 장대를 든 웅철이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수풀을 헤치고 걸으면 덕수가 따라붙었다.

나무 앞에 이르러 주변을 돌아보려는 순간 덕수의 발이 쑥 빠졌다.

“이, 이 뭐꼬?”

웅철의 손을 잡고 겨우 넘어지지 않은 덕수가 발밑을 내려다보니 발목 깊이 정도에 축축한 구덩이에 발이 쑥 들어가 있었다.

“이쪽도 보세요. 제법 있죠?”

웅철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니 비슷한 깊이의 구덩이 대여섯 개가 시야에 들어왔다.

“운치굴....그러니까 실장석 똥굴이에요.”

“뭐어? 똥굴?”

“녹돼지들이 땅을 파서 그 안에 똥을 싸고 저실....아니, 구더기한테 사료로 써서 양식해요. 제주도에서 똥돼지 키우던 것처럼요.”

“그기 사상충하고 상관있는기가?”

“녹돼지가 굴을 파는데 얘들이 무슨 기술이 있어 미장하고 지붕 달겠어요. 풀떼기나 덮고 말지.

비만 오면 굴에 물이 차서 똥물 가득한 웅덩이가 생기고 거기에 모기가 알 까서 장구벌레, 모기 유충 서식지가 되는거죠.

그리고 심장 사상충은 모기가 매개체고요. 일본에선 실장석 집단 자생지 주변 개들의 사상충 발병률이 아닌 지역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다는 연구 결과가 꽤 나와요.”

생소한 정보를 취합하느라 잠시 말이 없던 덕수가 입을 열었다.

“개만 위험한 게 아닌 거 같은데?”

“말라리아, 뇌염, 황열병 기타 등등. 사람도 위험하죠. 특히 노약자 많은 시골에선.”

“있어봐라. 굴이 여섯 개니까 글마들이 7마리나 있단 말이가?”

“아니요. 한 마리에요.”

“한 마리?”

“정확히는 성체 한 마리요. 녹돼지 다 자라봐야 30에서 40cm고 손가락이 없어서 손재주가 메주에요.

40cm 짜리가 돌맹이나 나뭇가지만 들고 맨땅에 50cm 짜리 굴 파겠어요?

힘도 들고, 파낸 흙 처리하지도 못하고, 깊게 빠면 자기가 못 나오니까 깊어 봐야 20cm 정도?”

출산용 독라노예의 팔다리를 반드시 절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지를 잘라 달마로 만들어 눕혀 놓지 않으면 노예의 머리가 굴 위로 튀어나와 위장이 전혀 되지 않는다.

“굴은 작은데 이놈들 배출은 또 오지게 해요. 종일 밥 먹고 똥만 싼다고 보면 되요.

거기다 새끼는 많으면 한배에 열 마리씩 까는데 얘들이 또 집에 틀어박혀 먹고 싸기만 하거든요. 굴이 하나면 하루 이틀이면 똥이 위로 넘쳐요. 그래서 굴을 최대한 많이 파는 거죠.”

“그리고 그게 전부 다....”

“모기 산란장이죠. 이놈들은 면역력이 강해서 가려운 데 긁고 말지만 다른 동물들은 피보는 거죠.”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래서 이 굴 판 놈들 어딨냐?”

덕수의 억센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이 똥벌레들을 보는 즉시 요절내고 말겠다는 생생한 의지가 전해졌다.

“여긴 최근에 생활한 흔적이 없어요. 집을 옮겼거나 다 죽은 거 같아요.

”없다고?“

”일단 여기는요. 확실히 하려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개천 싹 훑어봐야죠.“


*


”세레브한 아가씨는 엉덩이도 깨끗해야 하는 데스.“

”마마~ 간지러운 테치이.“

개천가 얕은 물 속에서 일가가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물가에서 주운 페트병에 물을 담아 옷을 벗은 자들의 머리 위에 부어준 친실장은 자들을 하나씩 붙들고 총구부터 세심히 씻겼다.

마마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자 행복 회로가 활동을 개시하며 괄약근에서 힘이 빠졌다.

부룩, 부룩, 부르르룩

꾸르륵 소리오 함께 장녀의 총구에서 녹색 대변이 힘차게 배설됐다. 물에 떨어진 녹색 운치는 짙은 자취를 남기며 천천히 밀려 내려갔다.

”마마, 부끄러운 테치.“

”부끄러울 거 하나도 없는 데스. 오마에의 운치는 전혀 더럽지 않은 데스. 향기가 나는 데스.“

한층 온화한 손길로 수줍게 고개 돌린 장녀의 총구에 남은 운치를 닦아주었다.

”마마, 와타시도!“

”와타시도 씻겨주길 바라는 테치!!“

”모두 아와아와하게 해주니까 착하게 기다리는 데스.“

보채는 자들을 진정시키는 친의 눈길엔 사랑이 가득하다.
오늘은 시간을 들여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씻어 주리라 다짐해본다.
그래, 모처럼이니 실장복도 빨자.

”다 씻었으면 점심을 먹는 데스.“

열심히 세탁한 실장복을 돌로 눌러둔 일가는 투실투실한 알몸뚱이를 드러낸 채 가져온 비닐봉지 앞에 모였다.

한국 실장석의 주 서식지인 캠핑장이나 낚시터에서 이랬다간 반독라로 몰려 일가실각 당하기 십상이나 근방에 일가는 자신들뿐 이다.

일전에 흘러들어온 뜨내기 들실장은 일가의 양식을 제공해주다 빗물에 익사했다.

운치물에 불어 터진 시체를 치우는 일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다른 이웃상들은 일가가 있는 곳에서도 하루 이틀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실장석 걸음 기준이지만.

”오늘 밥은 달팽이 씨와 고둥씨 인데스. 아마아마하게 먹는 데스요.“

”개구리 씨가 없어서 아쉬운 테치.“
”3녀챠, 개구리는 빨라서 잡기 힘든 테치. 투정부리면 안되는 테치.“

”마마, 마마는 닌겐의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는 테치? 노예 오바상이 닌겐의 음식이 맛있다고 떠드는 걸 들은 테치.“

죽기 전까지 매일 아침 뇌가 후벼 파지던 자판기는 그때마다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다. 개중에 닌겐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던 모양이다.

”헛소리인 데스. 칸코쿠 닌겐들은 학대에 미쳐서 밥도 카라이(からい)하고 쓰라이(つらい) 한 것만 먹는 분충이라고 마마의 마마가 말해준 데스.

“테...콘페이토 맛도 모르는 테치?“

”그렇다고 한 데스.“

콘페이토 맛도 모르는 야만인들에게 동정 혹은 경멸의 감정을 품으며 깨뜨린 달팽이 속살을 입에 넣었다.

실장석 특유의 왕성한 식욕이 챙겨온 밥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비웠다. 포만감에 젖은 가족은 실장복이 마르기만 기다리며 빵빵해진 배를 두드렸다.

윙~윙~~~우우웅!!

불현 듯 머리 위에서 들려온 시끌벅적한 소음이 일가의 평온을 깨뜨렸다.

”테~에?“

몸에 비해 머리가 지나치게 무거운 자실장들이 급히 고개를 젖히다 그대로 뒤로 넘어가 땅바닥과 충돌했다.

”테에에에!!“

”지, 진정하는 데스.“

울먹이는 자식들을 달래며 하늘을 올려다본 친의 눈에 든 건 생전 처음 보는 날벌레였다.

4개의 날개가 달린 그것은 까치만큼이나 컸고 모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시끄러웠다.

‘저 날벌레는 뭐, 뭐인 데스.’

당혹스럽지만 그냥 있을 순 없다.

푸드득, 푸드드득.

놀란 자들의 다리 사이로 악취를 흘린다. 머리를 부딪친 충격과 귀를 찢는 소음에 늘 의젓하던 장녀조차 녹색 운치를 그득 쏟았다.

모처럼 정성 들여 씻은 게 다 헛수고다.

”자들은 어서 마마 옆에 모이는 데스!“

자들이 옆에 들러붙는 걸 확인한 친은 뭉툭한 주먹을 허공에다 마구 휘두르며 악다구니를 썼다.

”오마에 벌레 주제에 건방진 데스! 와타시가 핵펀치로 응징해 주는 데스! 당장 덤비라는 데스!!“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지는 중요치 않다. 일단 겁먹은 자들을 진정시켜야 한다.

날벌레는 기분 나쁜 소음을 흘리며 가만히 일가를 내려다보았다.

”건방진 벌레는 헛소리 말고 당장 꺼지지 않으면 매운 맛을 보여주는 데스!!“

붕쯔붕쯔 친실장의 주먹이 몇 번이나 허공을 갈랐을까.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날벌레는 순식간에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제 괜찮은 데스. 나쁜 벌레는 마마가 쫓았으니 자들은 마음을 놓는 데스.“

”테에에엥!! 마마!!“

”무서운, 무서웠던 테치!“

색눈물을 닦으며 안겨드는 장녀와 차녀. 역시 철이 일찍 들었다곤 해도 아직은 친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다.

”테프프, 마마한테 겁먹고 도망간 테치.“

”똥벌레는 별거 아니었던 테치. 마마랑 같이 때려줄 걸 그랬는 테치.“

3녀와 4녀는 귀엽게 허세를 부린다.

”모처럼 씻은 게 엉망이 된 데스. 벌레는 갔으니 한 번 더 씻는 데스.“

그냥 갈까도 생각했지만 모처럼 세레브 해진 실장복을 운치 묻은 총구위에 입는 모습은 보기 싫었다.

”마마, 저기 뭐가 떠내려오는 테치.“

”무슨....!!“

자실장의 시선을 따라간 그곳에 물의 흐름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는 녹색 뭉치가 보였다.

손가락 없이 뭉툭한 손, 짜리몽땅한 체형, 점점히 붉은 색이 스며들었지만 풀빛을 잃지 않은 녹색 옷은.....

”실장석인 데스.....“

”마.....마마, 저 오바상 머리가.....“


*


”아까 하나 했고 이제 여만 하면 끝나는 기가?“

”발견 안 된 개체가 있을 수 있으니 월요일에 구청 연락해서 조사해달라 하셔야죠.“

구제담당 직원은 일괄 휴대하는 휴대용 드론을 불러들인 웅철은 안전화와 무릎 보호대, 두꺼운 가죽 장갑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여름에 그런 거 차고 일하면 안 덥나?“

”사람들이 놀러 가서 쓰레기 버리면 그게 다 실장석 도구가 되고 무기가 되는데 약하면 유리조각이고 심하면 낚시칼 까지 버리고 가거든요.

녹색이라 풀숲에 숨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데 순간적으로 베고 들어오면 우리도 답이 없어요.

쓰레기를 무기로 쓰니까 파상풍 위험도 있고.
20대 남자들은 훈련소에서 파상풍 주사 맞으니까 괜찮은데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애들, 여자들은 재수 없으면 다리 잘라야 됩니다.“

”그럼 장갑은 왜? 손에 땀띠 나겠다.“

”일본 실장석은 공원에 사는데 우린 MB때 정비 사업한다고 완전히 박멸해서 강변, 하천, 낚시터에 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놈들이 낚시꾼들 버리고 간 바늘을 뭉태기로 들고 설쳐요.“

웅철은 장갑을 슬쩍 벗어 손바닥을 보여줬다. 덕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날카로운 물건으로 길게 찢겨나간 자국이 선명했다.

”맨 처음 작업 나갔을 때 생각 없이 수풀에 손 넣었다가 작살났다 아닙니까.“

안면보호구까지 모든 장구를 갖춘 웅철은 마지막으로 피켈을 들었다.

”여럿이 가면 눈치챌 수 있으니까. 여기 계세요.“


*


상류에 살던 이웃 상인지 다른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같은 실장석이 당했다. 학대파의 짓이든, 까치나 다른 짐승의 짓이든 일단은 숨어서 동정을 살펴야 한다.

”모두들 외출은 끝난 데스. 빨리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데스.“

”“”네, 테치“”“

친의 표정과 말투에서 심각함을 감지한 자들은 치근대는 일 없이 실장복을 입었다. 깨끗하게 세탁한 팬티 아래 녹색 운치 자국이 번지는 걸 보니 속이 쓰리지만 도리가 없다.

물은 늘 이곳에 있고 날은 오늘만 있는 게 아니다.

자들의 착의를 살피며 자신도 옷을 걸쳤다. 아니 걸치려고 했다.

”마, 마마!!“

친실장의 등 뒤로 내리쬐던 햇빛이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짐과 동시에 낑낑대며 턱받이를 차던 차녀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친자 다섯 마리. 그대로 있네.“

헤 벌어진 언청이 입에 뒤룩뒤룩 살찐 몸뚱이 다섯 개가 반라로 늘어져 있는 작태가 사뭇 볼만하다.

부르륵, 부륵, 턱.

제일 큰 자실장 하나가 성대하게 빵콘하며 팬티를 부풀리자 옆에선 세 마리도 따라서 빵콘.

”닌겐인 테챠아아!!“

”학대파 칸코쿠 닌겐 테치!!!! 살해당하는 테챠!!“

개천에 피서객이 끊긴 뒤에 태어난 자실장들은 이렇게 가까이서 성인 남성을 볼 일이 없었다.

난생처음 인간을 대면했다는 공포
닌겐의 손에 들린 이름 모를 뾰족이에서 풍기는 불기한 냄새
마마에게 학습한 야만스런 칸코쿠 닌겐 이야기
방금 목격한 목 없는 오바상

모두가 맞물려 자들을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테챠아아아아! 끝난 테치! 이제 마지막 테치!“

”살려달라는 테치!! 죽기 싫은 테츄아아아아아!!!“

어른스럽던 장녀와 차녀조차 통한의 색눈물을 토하고 3녀와 4녀에 이르면 벌써 눈물에 검은색이 베었다.

상황을 파악한 친이 급히 닌겐과 자들 사이를 막아섰다.

”닌겐 꺼지는 데스!! 와타시의 자들의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리면 찢어 죽여 버리는 데스!“

데샤아아악!!

친실장은 얼굴 가득 인상을 쓰며 웅철을 위협했다. 잔뜩 찌푸린 이마의 주름이 깊어졌다.

잠시 말없이 바라보았다.

데스우우우우!!!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붕쯔붕쯔하고 휘두르는 주먹을 무시하며 손잡이가 길게 디자인 된 피켈로 정수리를 겨눈다. 준비가 끝나면 단번에 내리찍는다.

”데갸아아아아아아......“

예리한 피켈이 정수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데갓.... 하뮤라뾰 루뺘모 메빠소“
숙련된 구제업자의 일격은 피가 거의 튀지 않으면서 두개골과 뇌를 박살냈다.

친의 몸이 끈떨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고꾸라진다.
눈에서 빛이 사라지며 입으로는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말만 반복한다. 이제 자상하던 어미는 없다.

”마마!!!“
단말마를 내지르며 친에게 달려오는 차녀의 머리에도 한 방.

”하뮤라뾰 루뺘모 메빠소“

차녀는 마마처럼 맥없이 쓰러지진 않았다.
머리가 깨짐과 동시에 뿌지직하고 폭발적으로 쏟아져 운치는 차녀를 서 있는 두엄더미였다.

”마마, 이모우토챠!!!“

써걱

장녀의 머리가 깨졌다.

”테츄〜웅? 닌겐상 귀여운 와타시를 보는 테치.
와타시의 세레브한 매력에 매료매료 되는 테치
타치를 기르면 닌겐상에도 행복이 가득한....테갹!!“

위석 깊숙이 새겨진 원초적 본능에 굴복해 오른손을 입가에 대고 아첨을 늘어놓던 3녀도

”마마!! 도와달란 테치!! 정신병자 학대파를 치워 달란 테치!! 와타시를 살려주는 테치“”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마마를 찾던 4녀도 자아 잃은 고깃덩이로 변했다.

구제를 마무리한 웅철은 챙겨온 구제전용 봉투에 일가를 담았다.

“이제 또 삽질할 차례가?”

대강 마무리된 걸 보고 달려온 덕수가 물었다.

“예, 얘 내가 판 굴 싹 다 찾아서 메꿔야죠. 쓰레기도 다 치우고.”

구제는 일가실각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가가 많으면 스무개 가까이 파놓는 운치굴을 남김없이 찾아 구더기와 운치를 퍼내 메우고, 
집과 도구로 쓰던 쓰레기까지 말끔히 치워야 비로소 끝나는 지난한 작업이다.

“거 좀 적게 파났으면 좋겠구만.”

“그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