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라 자실장 구슬




오랜만의 고향.
겨울도 거의 끝.
강변을 타고 공원을 죽 걷다 보니 나무 가지에 작은 흰 쥐 같은 둥근 것이 매달려있다.

아, 독라 자실장 구슬인가?
그립네..
요즘 아이들도 새끼 실장들을 가지고 노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지에 다다라 보니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내 고향은 사양산업 투성이의 지방 소도시라 별로 유복하진 않지만 그래도 역시 사람들은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고 실장석들도 인간에게 의지해 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갑갑한 지방 분위기가 싫어서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먼 대도시의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몇년 더 고생을 하다 퇴사하고 지금은 임시로 친가에 기거하고 있다.

그렇게 우울한 가운데, 어릴 적 놀던 공원에서 독라 자실장 구슬을 보니 어릴 때 실장석을 속여먹고 놀던 일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실장석은 너무 좋은 놀이 상대, 혹은 놀림감이라서 나도 어릴 때는 나쁜 친구와 함께 장난삼아 속여먹고 죽이거나 때로는 낚시의 미끼로 쓰고 있었다.
그 가운데도 재미있었던 것은 이 강변 일대 공원에 많이 정착한 들실장 친자를 괴롭히며 노는 일 이었다.

친실장을 강에 쳐 넣는다.
그러면 무게 중심이 높은 친실장의 머리가 물 속에 잠긴다.
물위에서 보면, 연습 부족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처럼 짧은 다리를 허둥대다 점점 가라앉는다.
그 모습이 마치 옛날 일본 영화의 한 장면 같아 모두 함께 웃곤 했다.

친실장이 완전히 잠기면 다음은 새끼 실장들의 차례다.
골판지상자에 가뒀던 새끼 실장들을 잡아내서 독라로 만들고, 강변공원에서 릴리스&헌팅 하는 것이 우리의 단골 놀이 종목이었다.
그때 그 놀이를 더 즐겁게 하려고, 독라들에겐

"우리한테서 달아나서, 아무한테도 안 들키게 나뭇가지에 번데기처럼 매달려서 있으면 곧 탈피하고 머리와 옷도 원래대로 된다"

하고 가르쳐 줬다.

원래 이 지방은 메이지 시대부터 실장 비단의 생산으로 유명했던 만큼 구더기 실장에서 새끼 실장으로 고치를 거쳐서 변태한 개체가 많아, 자실장들에게 "탈피" 나 "변태"는 비교적 친숙한 생리 현상이었다.
그런 새끼 실장들에게 탈피하면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속삭임은, 희망적 관측을 일삼는 성격과 맞물려서, 절망 속에서 한가닥 희망이 되었음이 분명했다.
독라들 중에 사람말을 알아듣는 똑똑한 몇이 테치- 테치-하고 다른 독라에게 탈피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면 모두 일제히 표정이 밝아지며 필사적으로 이리 저리 도망친다.
그리고 우리는 헌팅이란 이름의 살육을 시작했다.

우리 인간들로 부터 달아나기만 하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새끼 실장들의 삶에 대한 집착은 몇배 강해진다.
그 집착이 강할수록, 궁지에 몰린 새끼 실장들은 더 비참하게 울고, 우리들의 어린 가학심을 더 깊이 만족시켰다.
우리들은 해가 질때까지 테챠아-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 치는 독라 새끼 실장들을 쫓아다녔다.
때로는 짓밟고, 때로는 갈아 으깨고, 때로는 집어던지기며 땅바닥에 많은 시체를 만들며 즐겼다.

잡아 벗긴 새끼 실장의 수와 으깬 수가 안맞는 적도 가끔 있었으니까 우리들로부터 달아난 놈들도 있긴 했다.
그런 놈들도 대부분 그 날 중으로 인간보다 몇배나 사냥 능력이 뛰어난 도둑 고양이나 까마귀 밥이 되기 일쑤였다.

다행히 우리의 추격과 천적들의 사냥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던 극소수의 독라 새끼 실장의
장래는 어땠을까?
...물론 탈피하고 원상으로.. 따위의 해피 엔딩은 없다.
달아날 수 있었던 새끼 실장들은 우리들의 거짓말을 곧이 듣고, 눈에 띄지 않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탈피하고 원래대로 돌아갈 자신을 상상하며 며칠씩 그대로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배고픔과 더위, 추위로 불안해 지지만, 최대한 자신에게 좋게 해석하고 현실을 외면하는 편인 새끼 실장들은 현실 도피 속에서 완만한 죽음을 맞는다.
고통스러운 최후를 마치는 동족이 많은 가운데 이렇게 죽게 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행복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가지에 매달련 채 죽은 새끼 실장들은 보통 야생 조류나 곤충의 배를 채우거나 곰팡이나 버섯의 묘판으로 전락한다.

늦가을에서 겨울은 공기가 건조하고,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서, 새끼 실장들의 시체는 야간에 얼어붙었다 낮에 녹는 일을 되풀이하며 수분을 천천히 잃어간다.
그러다, 다카노 두부처럼 천연 프리즈 드라이로 매달렸던 모습 그대로 가지에 굳어 버린다.

몇년에 한번이라도 볼 수 있으면 행운인 이 새끼 실장의 시체를, 우리들은 "독라 자실장 구슬" 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의 참혹한 장난과 새끼 실장석의 삶에 대한 집착, 그리고 우연이 낳은 슬픈 결정체이다.
나는 손을 뻗어 독라 자실장 구슬이 달린 가지를 부러뜨렸다.







몇년 만에 직접 본 독라 자실장 구슬은 편안한 표정 그대로 하얗게 굳어 있었다.
행복한 얼굴로 죽었다.

왜 이놈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돌아올 리 없는 머리와 옷을 꿈꾸며 이렇게 굳어 죽어 갔을까?
그렇게 생각하다 나는 움찔했다.

이 독라 자실장은 지금의 나다.
나의 모습이다.
힘든 일은 외면하고 부모님께 응석 부리는 나 자신의 모습이다.

웃겼다.
너무 웃겼다.
어린 시절에 그렇게 괴롭히던 실장석, 그것도 시체에서 내 과오를 알아채다니.
차가운 겨울 공기를 폐 속까지 한껏 빨아들이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래, 일단 집에 가서 부모님과 여러 이야기를 하자.
새로운 직장을 찾을 준비도 하자.
이런 소도시에서 전보다 수입이 좋은 리는 없겠지만 독라 자실장 구슬이 되는 것 보단 낫겠지.

지금 생각하면 실장석에겐 대단히 잔혹한 일을 했구나.
요새 아이들도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구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밝은 예감을 느끼며 걸었다.

그렇다.
이 독라 자실장 구슬은 흙으로 돌려 보내자.
나는 강 흐름이 느릿한 곳에서
살짝 독라 자실장 구슬을 띄어 주었다.

독라 자실장 구슬은 겨울해를 반짝반짝 난반사하는 차가운 물 위로 미끄러지듯 천천히 흘러갔다.
담엔 더 행복한 무언가로 태어나라고 기원하며 나는 독라 자실장 구슬이 흐르는 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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