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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소리.


생존지능이 어설픈 실장석이라곤 하나 녀석들도 가끔은 훌륭히 도구를 활용한다.

실장석 중에서도 재주가 좋은 녀석들은 자연물을 가공해 인간의 도구와 유사한 물건을 만들기도 한다.

가장 흔한 건 아마도 우산이다.

비가 오면 녀석들은 종종 넓적한 이파리를 구해 줄기를 잘라 우산처럼 쓰고 다닌다.

인간의 생활용품 중에서도 우산의 기본 원리는 간단한 편이다.

비가 오던 날 인간이 무언가 머리를 덮고 다니는 걸 보고

그 모습을 흉내내며 저들도 이파리를 쓰는 것이다.

처음 이파리를 쓴 실장이 다른 개체의 눈에 띄면 우산이 들실장 사회 전체에 퍼지는 건 시간 문제다.

며칠 안 가 실장들은 저마다 굽은 이파리를 들고 공원을 쏘다닌다.


체온 조절은 생존의 기본이다.

비에 체온을 빼앗겨 죽는 짓은 아무리 벌레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파리 우산이 보급되면 그들은 드디어 우천에도 활동이 가능해진다.

여름의 장마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봄·가을의 얕은 비를 피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생존률은 높아진다. 

먹이를 보급 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늘기 때문이다.

생존의 호기를 아는 개체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비교적 인간과 마주칠 일이 적은 우천의 날, 그들은 열심히 젖은 먹이를 찾는다.

운이 좋다면 새로운 꿀단지를 독차지 하리라.


이제 가랑비가 오는 날 달랑 가위 하나를 들고 공원에 들러보자.

따가운 빗소리에 귀가 무딘 실장들은 인간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살금살금 다가가 우산의 끄트머리를 잘라보자.

짧게 똑 끊어진 우산머리가 바닥에 떨어진다.

「데엣-! 데, 뎃-! 데-샤아아앗-!」

놀란 나머지 철푸덕 소리와 함께 녀석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추적추적 젖은 엉덩이가 기분나쁘겠지.

「데에엥-. 데에에에엥-.」

녀석도 기분의 문제로 끝내면 좋으련만.

모처럼 구한 음식물 쓰레기가 쏟아져 흐르는 걸 보고 녀석은 슬피 운다.

그리고 겁을 먹은 녀석은 이도저도 내팽개치고 새끼를 부르짖으며 달려간다.

손잡이만 남은 우산을 꼭 쥐고···.


생존의 철칙을 지키지 못한 대가는 혹독하다.

운이 좋다면 한나절 감기치레로 끝난다.

그러나 운이 나쁘다면 다시는 빗소리를 들을 수 없겠지.

어미를 잃은 새끼는 하루, 이틀 울먹이다 걸려 넘어진 의지를 이어받아 빗길을 나선다.

「테츄···! 테츄-!」 「테치이-. 테칫-.」

찰박찰박 물소리-.

가여운 동생과 하루라도 더 살아남기 위해.

그래서 비오는 날이면 서걱거리는 가위소리가 좀처럼 멎지 않는다.

흠뻑 젖은 자매의 서러운 울음이 빗소리에 녹아든다.








코코 프레젠트.

 
1.

볕이 쨍쨍한 가을 날이다. 나는 땀을 쏟으며 고역을 치르고 있다.

“아이고, 허리야···.”

그러나 마음만은 편안하다.

평소에 앉은뱅이로 살던 가구들이 때는 이때다 싶어 제 무게를 뽐낸다. 거 참 무겁구만···.

허리가 휘겠다고 호소하자 집사람은 엄살 말라고 핀잔을 준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밝다.

오늘은 이삿날이다. 아둥바둥 살아온 우리 가족도 드디어 꿈에 그린 듯한 집에 살 수 있다.

짐을 마루에 내리고 둘러본다. 교외의 마당 딸린 집···. 정말 행운이다.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쉰다. 멀찍이 도로와 논밭이 보인다. 어릴적 보아온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흐뭇하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찾아왔다. 외지로 발령이 나고 한 때는 기러기 아빠가 될 각오를 굳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누구도 흩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내도 나도 방법을 찾아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이 집은 뜻 밖의 수확이었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알게 된 주인은 나와 대학 동문이었고, 그는 마침 천천히 집을 넘기려고 생각 중이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여러가지 조율을 통해 우리는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는 나보다 여섯 살 연상의 선배였는데 넉살 좋은 그는 우리와 마음이 꼭 맞았다.

몇 번의 교류 후, 그는 흔쾌히 우리와 계약했다. 그는 원래 생각하던 시기를 앞당기면서 까지 우리의 일정에 맞춰주었다.

고마움을 표하는 우리에게 그가 부탁한 일은 하나 뿐이었다.

'소중히 가꿔온 마당의 정원을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

아, 가끔 귀국하면 술이나 한 잔- 이라는 말도 함께. 그 말을 남기고 그는 훌쩍 해외로 떠났다.


그럭저럭 짐을 나르고 나는 마당을 둘러 보았다. 그는 마당에 텃밭을 가꾸고 화초를 길렀다.

꽃과 풀들은 가지런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성스레 기른 듯한 식물들이다.

그 모양이 나도 대번 마음에 들었다. 편안한 풍경이다. 함께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한다면 아이들도 좋아하겠지.

정면을 모두 살피고 모퉁이를 도니 한 켠에 키가 작은 수목 서너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무슨 나무일까.

가까이 다가가 보니 희고 작은 봉오리가 달렸다. 이건 차나무인가···? 그런데 갑자기 이파리가 스륵스륵 흔들린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산뜻한 색체가 눈에 띄었다. 빨간 천가지가 꾸벅꾸벅 움직인다.

“다와?”

세상에···. 실홍석이다. 이거 참 드문 일이다. 실홍석은 번식률이 낮아서 보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나는 시선을 낮췄다. 교외라곤 하지만 야생실홍이 재주 좋게 차나무 곁을 찾아온 게 신기했다.

실홍은 다와다와 말을 붙여온다. 언짢거나 두려워 하는 기색은 없지만 갑자기 나타난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은 듯 보였다. 눈을 맞추자 실홍의 파란 눈이 반짝 빛났다.

나는 급히 아들녀석을 불렀다. 실홍이 있다고 말하니 아들 뿐 아니라 딸아이와 아내도 차나무 곁으로 모였다. 딸아이는 실홍이 귀엽다며 방방 뛰었다.

아들은 요리조리 자기 폰을 만지더니 실홍석용의 링갈을 준비해줬다. 실홍은 차분히 우리 가족을 번갈아 살펴보고 있었다.

“좋아, 이제 알아들을 수 있어.”

「안녕하신 다와. 인간씨가 이 정원의 주인이신 다와?」

나는 아들이 보여준 링갈의 번역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태 보아온 링갈의 번역에 정중한 말씨가 쓰여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도 몹시 신기하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실홍에게 우리가 이 집에 이사해 왔음을 알렸다.

「와타시는 얼마 전에 이 정원을 찾아낸 다와. 산에서부터 향기로운 냄새를 따라온 다와.」

그렇군···. 이전에 방문 했을 때 확실히 실홍석 같은건 보이지 않았다. 텃밭을 망치는 실장석이 가끔 있다고 들은거라면 또 모를까.

「예쁜 정원에는 주인 인간씨가 있는 다와. 하지만 이곳에는 없었던 다와. 그래서 와타시가 벌레를 잡고 있던 다와.」

실홍은 눈을 빛내며 이야기한다. 영특한 녀석이다. 식물과 더불어 사는 실홍석의 입장에서 꽃과 풀이 많은 이 집 마당은 지나치기 어려운 장소였을 것이다.

또한 드물게 차나무가 심어진 마당이다. 실홍이 열을 올려가며 관리를 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마침 비어있던 정원. 선배가 집을 비우고 우리가 이사오기까지 정원은 잠시 방치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그런 정원을 지켜온 거다.

「하지만 역시 주인씨가 있었던 다와. 와타시는 다시 돌아가는 다와···.」

실홍은 아쉬운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은 링갈을 읽고 있는 우리를 등지고 차나무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돌아간다는 링갈의 번역을 읽은 딸아이가 때를 썼다. 귀여운 실홍이 집을 찾아왔는데 금세 떠난다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딸아이는 아내에게 실홍을 집에서 살게 하자고 말했다. 아내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으음···. 좋아.

“괜찮지 않을까. 이 실홍석이 우리집이 마음에 든다면 말이야.”

딸아이는 환호했다. '아빠, 최고!' 같은 요즘 들어 듣기 힘들었던 말을 거리낌 없이 한다. 허허, 참.

그렇지만 딱히 딸아이의 기분만으로 결정하고자 한 일은 아니다. 들실홍이 자생 차나무를 가꾸며 살아간다는 말은 들은 적있다.

초식동물에 가까운 들실홍은 얌전히 나무를 지킬 뿐, 온순한 생물이다. 더불어 이 실홍은 이미 텃밭 관리에 익숙한 듯 하다. 

모처럼 넓은 마당을 갖게 되었다. 함께 할 반려동물이 한 마리 쯤 있었도 좋지 않을까?

내 설명을 들은 아내는 좋은 생각이라고 수긍했다. 아들녀석도 좋다고 말했다. 그럼 남은건···.

“다와, 다아왓?”

그대로 마당에서 지내는 게 어떻냐는 내 말에 실홍은 놀란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양갈래 머리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래도 되는 다와? 기쁜 다왓! 인간씨 정말 감사한 다와.」

링갈에는 곧 승락의 메세지가 떴다. 그렇게 실홍은 우리 마당에 머물게 되었다.

후후, 누가 더 어린건지···. 차나무 곁을 사뿐히 걷는 실홍 주위에서 딸아이는 빙글빙글 춤췄다. 


수 일이 지나 우리는 새 집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특히 딸아이는 마당을 곧잘 뛰놀았다.

도시에 살 무렵에는 바깥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아이였지. 환경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좋은 일은 거듭 일어난다고 했던가. 운 좋게 얻은 이 집에 드물게도 실홍이 머문 건 정말 그 말대로다.

딸아이는 실홍에게 코코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코코는 매일 같이 마당을 뛰노는 딸아이와 금세 친해졌다.

차나무나 텃밭의 식물을 돌보다가도 딸아이가 말을 걸면 다와다와 인사했다.

딸아이의 관심이 조금 귀찮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코코도 그게 나름 즐거운 듯 보였다.

오늘도 둘은 함께 마당 정원을 돌본다. 보기 좋다.




2.

가을이 깊어진 어느 날 저녁, 나는 퇴근길에 특별한 선물을 사 들고 귀가 중이었다. 바깥 활동이 잦은 코코가 쌀쌀해지는 바람에 지지 않도록 두터운 숄을 구매했다.

마당에서 일하면서도 스스로 청결을 유지하던 코코에게 새삼 새 옷을 사준다는 게 멋쩍긴 했다.

그렇지만 모처럼 딸아이와 잘 지내주는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날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당했다. 그 일은 귀가길에 있는 변두리 구멍가게 자판기 앞에서 일어났다.

퇴근길에 나는 종종 그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았다. 다른 곳에서 팔지 않는 제품이 그 자판기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오래된 자판기 기종을 바꾸지 않고 쓰는데 아직 음료수는 제대로 보내온다고 말했다.

하여간 그 맛을 볼 수 있는 게 주변에서 그 곳 뿐이라 오가는 길에 자판기의 단골이 된 거다.

문제는 그 점에 있었다. 내가 항상 그 자판기 앞을 머문다는 사실을 늘 지켜보던 녀석들이 있었으니···.

그 날도 나는 자판기 앞에서 평소와 같이 음료를 뽑았다. 나는 한 손에 포장을 뜯지 않은 작은 숄을 자랑스레 흔들며 길을 걸어왔다.

특별히 종이봉투에 담거나 포장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거기까지 하는 건 너무 남사스러웠기에···. 그러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깔끔하게 수놓인 기성품 실석용 숄. 그것을 나풀나풀 흔들고 왔으니 당연히 그 물건에 눈독을 들일 도둑들이 있기 망정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안일하게 물건을 자판기 앞에 내려놓았다. 서류 가방과 함께.

동전이 자판기 투입구에 톡하고 떨어진다. 모든 건 일상의 풍경과 같았다.

그리고 나는 캔을 뜯고, 자판기를 등진 채, 멀리 논밭 너머로 지는 해를 아련히 지켜보는 영화 같은 일을 즐기고 있었다.

어휴···. 하여간 물건이 사라진 걸 알아 챈 건 뜯은 캔을 모두 들이키고 난 뒤였다.

서류가방 위에 있던 비닐 포장된 숄은 그야말로 감쪽 같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으나,

역시 마무리가 허술한 녀석들답다. 신나서 테칫테칫 뒤뚱거리며 수확이 끝난 논밭을 지나는 녹색 벌레가 석양에 비추면 눈에 띄지 않을리가 없지.

도망칠 때 마저 나에게 다가올 때 만큼의 조심성을 발휘하는 건 녀석들에겐 불가능한 모양···.

정장을 입고 흙으로 내려가는 건 조금 싫었지만 어찌 하겠는가, 나는 멀리 보이는 녹색 점을 뒤쫓았다.

“테프프픗. 테칫 테치잇.”

“테챠아아앗! 테챠아악!”

물건을 훔친 건 자실장들이었다. 자매쯤 되어 보이는 자실장 세 마리는 자꾸만 투닥거리며 천천히 논밭을 가로질렀다.

한 녀석이 포장 된 숄을 붙잡아 들면 다른 녀석들은 아웅거리며 빼앗으려 들었다. 훔친건 좋았지만 저마다 숄을 독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웃기는 놈들. 그 물건은 제깟 놈들이 입을 게 아니다. 나는 열이 뻗친 채 녀석들에게 다가갔지만 자실장들은 저들끼리 테칫거릴 뿐 나의 접근을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그대로 조용히 자실장들을 쫓아 반대편 두렁에서 녀석들의 집으로 보이는 골판지 박스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자식들의 소리를 들었는지 골판지 박스에선 성체 한 마리가 기어나왔다.

“데슷 데스우. 뎃···.”

그리고 역시나 친실장으로 보이는 그 녀석은 쫓아오던 나를 알아봤다. 

“데, 뎃, 데샤아아아아앗!”

나는 그 웃기는 몰골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자 아들이 설치해준 링갈을 실장석 용으로 돌렸다.

「오마에타치 미친데슷? 닝겐을 불러 들이면 어쩌자는 데샤앗! 오마에타치는 똥벌레인 데샤아아앗!」

「테에···. 텟, 아닌 테츄! 아닌 테츄 마마! 와타치는 몰랐던 테츄! 테에에엥.」

「테에에엥. 닝겐상이 어째서 여기 있는 테챠. 테에에엥.」

숄을 들고있던 한 녀석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나를 보고 놀라 친실장에게 뛰어들었다.

「뎃, 그건 또 뭐인 데수! 호오, 어디서 이런 세레브한 옷을 구한 데수? 이건···. 오마에는 똑똑한 자인 데숫. 오늘부터 와타시가 입는 데스. 데프프프픗.」 

「그건 와타치가 구한 세레브인 테챠! 똥마마가 훔쳐입는 건 용서 못하는 테챠아앗!」

숄을 빼앗아 들려는 친실장과 기를 쓰고 붙잡는 자실장. 가관이다.

“그래, 그건 안되겠는데 똥벌레. 그 물건은 내 것이거든.”

일가는 나를 돌아본다. 조금 전까지 숄에 마음이 팔렸던 둘도 다시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데, 뎃 니, 닝겐상의 물건이었던 데수까? 미, 미안한 데수. 자들이 어려서 저지른 일인 데수. 목숨만은 살려주는 데쑤.」

자실장들은 도게자를 하려드는 친실장의 그림자로 숨어든다. 친실장은 숄을 품안에 안은 채 엎드리려 하고 있다.

내놓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나는 쪼그려 앉아 손을 뻗어 흔들었다. 피곤하니 어서 내놓으라는 표시였다.

친실장은 멍하니 내 손과 포장된 숄을 번갈아 봤다. 그러더니.

「가, 감사한 데수. 친절한 닝겐상. 와타시타치는 집으로 돌아가보는 데수. 오마에타치 이제 된 데수. 집으로 가는 데쑤.」

녀석은 겁먹은 표정으로 숄을 손에 쥔 채 박스로 향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기가막힌 모습에 얼이 빠져 돌아가는 녀석들을 지켜보았다.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그 상황에서 훔친 물건을 들고 안전히 돌아가겠다고 말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다. 아니야. 이게 정상이다. 내가 그 동안 코코와 대화에 빠져 실석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실장들의 행태를 잠시 잊고 살았을 뿐.

링갈의 번역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녀석들에게 걸맞는 방법은 과연 대화가 아니다.

나는 돌아가는 실장일가를 앞질러 박스에 다가섰다. 녀석들은 또 다시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데에, 닝겐상 무슨일인 데수. 와타시타치는 이제 집에···.」

뻥! 나는 박스를 힘껏 걷어찼다. 뭉툭한 골판지의 감각이 발등에 걸리고 박스는 찢어지며 하늘을 날았다.

「데샤아아아아앗! 똥닌겐! 이게 무슨 짓인 데샤아아아앗!」

친실장은 울부짖으며 날아간 박스로 뛰어갔다. 그 와중에도 숄은 놓지 않았다. 자실장들은 심히 당황한 듯 그 자리에서 굳었다.

아마 제 집을 순식간에 수 미터 날려버리는 인간의 압도적인 완력에 놀라 지려버린듯 하다.

「테에에엥! 사녀챠!」 

한 마리 만큼은 제 동생을 찾으며 친실창을 쫓아 달렸다. 박스 안에 새끼가 더 있는건가.

아무래도 좋다. 나는 물건을 회수하러 왔을 뿐이니. 그치만 그런 어이없는 작태를 보인다면 실력행사를 할 필요가 있기 마련이지.

나는 친실장이 아직도 집착하는 내 물건을 되찾으러 날아간 박스로 다가갔다. 주욱 찢어진 박스에서 봉투며 페트병이며 플라스틱 조각이며 여러가지가 쏟아져 흩어져있었다.

「오로롱 오로롱. 집이 망가진 데수! 오로롱 오로롱.」

“얌전히 물건을 내놨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지. 어서 내 물건을 내놓아라.”

친실장은 제 손에 쥐고 있던 숄을 바라봤다. 이런, 비닐이 개판이 됐다. 안의 물건은 괜찮으려나.

그러나 내가 다가가도 친실장은 물건을 내놓으려는 기미가 없었다. 대신 숄의 자수를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내놓으라는 말이 안들리나? 네 자들을 한 마리씩 밟아 죽여볼까?”

자실장들은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저마다 테챳거리며 친실장을 쏘아 붙였다.

「테에엥 마마 어서 줘버리는 테츄! 와타치 죽고 싶지 않은 테츄! 테에엥」

그럼에도 친실장은 더욱 어이 없는 말을 꺼내는 데···.

「무, 무슨 말인 데수! 닝겐상 아까 와타시에게 세레브를 들고 가보라고 손짓 하지 않은 데숭! 이건 와타시의 세레브인 데수! 약속을 지키는 데쑤!」

나는 주저앉아 울고 있던 친실장의 한 쪽 다리를 살포시 짓눌러버렸다. 다리는 별 느낌 없이 산산히 으깨져 흙 밭의 자국이 되었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앗! 와타시의 발씨가!」

하염없이 다리를 부여잡는 친실장. 나는 그 옆에 놓인 숄을 집어 들었다. 친실장은 고통에 다리 근처를 문지르면서도 시선은 내 손을 향했다.

「데에···.」

입을 벌리고 눈물을 흘리며 멀어져가는 물건을 바라보는 친실장. 제 기억을 날조해가며 이 물건에 집착할 이유가 녀석에게 있는걸까?

아마도 실장석 특유의 허황된 욕망에 불과하겠지.

나는 돌아서서 다시 귀가길에 올랐다. 테에엥, 데에엥 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귀에 거슬려 나는 재빨리 그 곳을 벗어났다.

다행히 포장이 조금 더러워졌을 뿐 숄은 하나도 망가지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코코는 딸아이와 함께 마루에 앉아 작은 컵에 차를 마시고 있었다.

컵은 딸아이가 준비해 준 물건이었다. 코코는 자신에게 컵이 생기자 매우 감격했다.

저녁 무렵의 티타임을 즐기는 코코에게 나는 더러운 포장을 뜯어 치우고 숄을 선물했다. 

내 선물을 받은 코코는 「정말 고마운 다와. 주인 인간씨. 장미같이 예쁜 옷이 다와!」라고 뛰듯 기뻐했다.

딸아이는 코코의 시착을 도왔다. 딸아이도 코코의 몸에 딱맞고 어울린다며 엄지를 치켜들어 나를 칭찬했다. 

마루에 웃음 꽃이 피었다. 훈훈한 저녁이었다.




3.

그 뒤로는 그럭저럭 평안한 날들 뿐이었다. 코코는 집에 완전히 녹아들어 새 가족이 되었다.

나도 아내도 딸아이와 놀아주고 마당도 잘 가꾸는 코코가 마음에 들었고, 딸아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들녀석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 이야기하곤 했지만 오며가며 코코와 익숙하게 대화했다.

실홍석은 정말 영물이다. 나는 어렴풋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생물종과 크게 다투지도 않으며 제 할 일을 하고 적절한 공생 관계를 유지할 줄 안다.

특히 다른 실석류인 실장석과 비교한다면 실홍석은 그야말로 요정에 가까운 생물이었다. 천성적인 우아한 말씨와 행동거지, 단아한 외견.

이런 생물이 자를 그다지 낳지도 않은 채, 산에서 홀로 고독과 평온을 지키며 다도를 즐긴다. 참 그럴듯 하게 만들어진 설화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코코는 지금 여기 있다. 설화가 아닌 현실에서 우리 가족과의 생활을 기쁜듯 누리고 있다. 나는 그 모습에서 왠지모를 뿌듯함과 평안을 느꼈다.  


그런 평화롭던 어느 날이었다. 가을이 거진 다 지나갈 무렵 나는 코코의 숄을 훔치려든 실장 일가를 다시금 마주쳤다.

일가는 다 헤진 옷으로 세찬 바람을 맞고 있었다. 어느 모로 봐도 겨울이 오면 얼어죽을 법한 꼴이었다.

녀석들은 전과 달리 자판기 근처가 아닌 우리집에 가까운 논밭의 모퉁이를 추적추적 걷고 있었다.

나는 마침 이른 귀가 중이었는데 녀석들은 나를 알아봤는지,

「테에에엥 마마 무서운 닝겐상인 테츄 테에에엥」

그러 소리를 남기고 멀찍이 도망가버렸다. 내가 무섭다면 우리집 근처에 둥지를 틀지 않으면 좋을 것을.

집에 들어서니 코코가 어째서인지 문을 지키고 있었다.

“다왓? 다와아.”

사람이 드문 곳이라 딱히 문을 지킬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귀가 인사와 함께 그 이유를 물어봤다.

「다녀오신 다와, 주인 인간씨.」

코코는 손을 모아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는,

「실장석들이 정원을 넘보길래 흠씬 두들겨서 내쫓은 다와.」

코코는 가슴을 내밀며 자랑스레 말했다. 아무래도 실장 일가가 우리집 텃밭을 노린 모양이었다.

코코가 말하기를 며칠 전부터 정원을 향해 묘한 시선이 느껴져서 문 근처를 살폈다고 한다. 그랬더니 실장석 몇 마리가 자꾸 눈에 띄었다고.

녀석들은 계속해서 우리집 문을 살피며 기회를 넘봤다고 한다. 그러다 우리 가족이 모두 외출한 틈을 타 마당에 침입했지만 그곳에는 코코가 있었던 것.

나는 코코를 칭찬했다. 코코는 끄덕이고 차나무를 돌보러 돌아갔다.

저녁 나절에 아들이 돌아왔다. 아들녀석에게 그 일을 얘기하자, 아들은 코코에게 다가가 목에 걸려있던 작은 기계를 가져왔다.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기록 기능이 딸린 휴대용 링갈이라고 한다. 혹시 코코가 낯선 이와 대화할 일이 있을까 싶어 준비해줬다고 아들은 말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녀석도 코코를 아끼는구만···. 아들은 노트북을 가져와 기록을 열어 보여줬다.


「당신들, 정원에 무슨일인 다와?」

「텟, 마마 붉은 녀석이 있는 테츄웅!」「아무도 없는게 아니었던 테치!」

「데, 데 왜 붉은 녀석이 여기 있는 데스···.」

「이곳은 인간씨의 정원인 다와. 이곳을 어지럽히면 용서 할 수 없는 다와. 어서 나가는 다와.」

「마마 배고픈 테츄. 붉은 녀석을 때려눕히는 테츄! 저기 아마아마 보이는 테츄!」

「자들···. 물러서는 데쑤. 저 녀석은 쉽지 않은 데수. 잘못하면 죽는 데샤.」

「···.」

정적. 잠시 뒤 어수선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테에에에에엥! 배고픈 테츄!」「 어째서 우마우마 먹으면 안되는 테츄! 테에에엥 못참겠는 테츄!」

「풀은 이제 싫은 테츄 테에에엥!」 「저렇게 우마우마 많은데 왜 우리는 못먹는 테츄! 테에에엥-」

「다왓?」

「잠깐 차녀쨩 기다리는 데쑤! 가면 안되는 데···. 데샤아아아앗!」「테에에에엥.」

「화단에 손대지 마는 다왓! 작은 주인씨가 정성껏 기른 것인 다왓! 당신, 혼나는 다와아아.」

「테에에에에엥-」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막무가내인 자실장을 코코가 잘 막았는지 화단은 깨끗했다. 저런 말도 안통하는 벌레를 상대한 코코도 참 고생이다.

아들이 말하기를 저 들실장들은 아마도 다시 찾아올 것이란다. 겨울 날 준비를 하는 일가가 풍성한 텃밭을 두고 다른 티끌을 모을 리가 없으니.

만일 녀석들이 다시 찾아와도 코코에게 쫓겨날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그런다는 게 실장석이란 놈들이겠지.

돌아오는 휴일 오후, 나는 코코와 함께 실장석 일가를 소탕하기로 했다.

집 앞을 얼쩡거리는 실장석이 있다는 게 굉장히 불쾌했기에 우리가 직접 나서 녀석들을 멀리 내쫓기로 했다.

딸아이도 코코와 함께 외출하고 싶어했지만 숙제부터 마치라는 엄마에게 붙잡혔다. 대신 왠일인지 아들녀석이 이런저런 장치를 들고 따라 나섰다.

우리는 이전에 내가 일가를 보았던 논밭 모퉁이로 가보았다.

길을 따라 전봇대만 줄줄이 늘어선 그곳에 실장석의 그림자는 없었지만, 주변을 뒤지니 녀석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 되었다.

주변을 십여분 뒤져, 우리는 녀석들의 집으로 보이는 구멍을 발견했다. 얕은 두렁의 끝을 파내고 볕단과 비닐 따위로 지붕을 만들고 입구를 막은 거처였다.

저번에 내가 차버린 골판지 하우스의 환경에 비하면 단연 허술해 보였다. 급조한 집이라서 그런건가.

나와 아들이 살피기에는 굴이 너무 낮고 어두워 코코가 안쪽을 살피기로 했다. 아들은 코코에게 자그마한 손전등을 넘겨줬다.

코코는 양손으로 등을 들고 굴속으로 들어갔다. 굴의 안쪽에서 다와다와하는 말씨가 들리는 게 무언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잠시 뒤 코코는 양갈래 머리로 구더기를 안고있는 엄지 한 마리를 연행해 나왔다. 코코는 바둥거리는 엄지를 들어올려 우리에게 보여줬다.

「이 아이밖에 없는 다와.」

「레뺘아아아아악! 마마! 레에에엥- 어디있는 레츄. 레에에엥-」

엄지 녀석은 허공에서 팔을 허우적거렸다. 들고있던 구더기는 떨어져 머리를 부딛혔는지 작게 레에, 레에- 거리기만 하고 조용했다.

「그런데 주인 인간씨, 안쪽에 이런 물건이 있었던 다와.」

머뭇거리던 코코는 뜻 밖의 물건을 우리에게 넘겼다.

코코의 숄을 살 때 샵에서 본 것과 비슷한 류의 작고 동그란 명찰이었다. 흠집이 많이 난 한 면에는 '미도리'라고 적혀있었다.

그 친실장은 원사육실장인건가. 아들은 아무래도 그런 듯 하다고 말한다. 

하기야 녀석은 묘하게 인간에게 쉽게 타협했다. 처음 둥지에 다가갔을 때, 적어도 겉으로는 제 자식들의 범행이 잘못 되었음을 인정하고 도게자까지 하려고 하였으니 말이다.

그건 인간의 두려움을 잘 알고 있는 실장이기에 그랬던 것일지도.

멍청한 분충에 불과했다면 숄에 눈이 먼 채 나에게 덤벼들어 한 줌 덩어리가 되었을 법도 한데, 녀석은 이상한 꾀를 부리기까지 했다.

꾀가 아니라면 집착이라던가···.

하지만 지금은 일가 소탕이 우선이다. 나는 쾌적한 생활을 원한다.

아들녀석이 발버둥치는 엄지를 심문하기로 한다. 어떻게 할까 궁금해서 가만 지켜봤는데, 아들은 회유책을 쓰려는 모양이었다.

아들은 별사탕 한 알을 엄지의 눈높이에 맞춰 들고 꾀어내기 시작한다.

엄지는 '콘페이토' 라는 말에 울음을 그치고 아장아장 아들의 손가락을 따른다. 그러다 갑자기 아들은 사탕을 감춘다.

「렛! 어디간 레치? 콘페이토 사라진 레치···? 레에-」

「닝겐상 콘페이토 주는 레츄? 와타시 아마아마 먹는 레츄?」

아들은 교섭한다. 마마와 언니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면 콘페이토를 주겠다고.

엄지는 고민한다.

「레···. 마마는 오네챠들이랑 밥을 구하러 간 레치. 저어 쪽에 우마우마 가득하다고 한 레츄···. 닝겐상 콘페이토 주는 레츄.”

엄지는 제가 아는 정보를 토해내고 아들의 손가락을 잡으려 통통 뛴다. 아들은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다 다 죽어가는 구더기 옆으로 사탕을 떨궜다.

「레엥? 우지챠···? 우지챠! 우지챠 정신차리는 레챠아아앗! 레에에에엥.」

우리는 정보를 종합해서 다음 행동을 의논했다. 그럼 어떻게 할까···.

링갈에「닝겐상! 우지챠를 살려주는 레츄! 레에에엥-」하는 메세지가 찍혔지만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엄지는 하염없이 울었다.

녀석이 말한 저쪽이란 대충 우리가 걸어온 방향이었다. 드문드문 민가와 길이 있는 쪽이다. 아니면 구멍가게 주위에서 쓰레기라도 주우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코코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 바지깃을 살짝 집고 흔들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건가?

「주인 인간씨, 아무래도 정원이 걱정된 다와.」

아뿔싸···. 녀석들이 오늘 구한다는 식량은 우리집 텃밭 채소를 말하는 건가···?

큰일이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바깥'에 있을 녀석들을 잡아 소탕하겠다는 생각은 했어도, 엇갈려 우리 집 텃밭으로 향할 수도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않았다.

게다가 하필 오늘은 코코도 밖에 나와있다. 딸아이는 안쪽 방에서 숙제 중, 아내는 뒷마당에서 빨래 중···. 그야말로 빈마당 털이가 아닌가.

“다-왓?”

나는 코코를 안아들고 집을 향해 달렸다.




4.

숨을 몰아 내쉬며 도착한 마당은 역시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녹색 벌레들은 뛰어들어온 나를 보고 흠칫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니, 닝겐상이 어째서 벌써 돌아온 데스. 분명히 붉은 녀석을 버리러 나가는 걸 본 데쓰···.」 

난잡하게 풀을 잡아 뽑던 자실장들도 친실장 주위로 모여든다. 한 녀석은 똥을 지려 나자빠진다. ···. 더럽다.

나는 코코를 마당에 내려줬다. 코코는 화가 난 듯, 위압감을 뿜어내며 실장들에게 다가섰다.

「당신들, 와타시는 분명히 말했던 다와···. 다음에 또 정원을 어지르면 그땐 정말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다와.」

「오, 오마에는 멍청한 데씃! 어째서 닝겐의 음식을 지키는 데쑤? 그 닝겐도 언젠가 오마에를 버릴 게 분명한 데쑤!」

코코는 멈칫한다. 버린다고···?

친실장은 멈춰 선 코코를 보고 기세를 올린다.

「그런 똥닌겐들의 편에 서는 오마에는 똥멍청이인 데쑤! 와타시는···. 와타시는 더 이상 닝겐에게속지 않는 데수! 들에서 자를 가득가득 낳아 행복하게 사는 데쑤!」

「똥멍청이인 테츄!」 「멍청한 테츄!」

자실장들도 가세한다. 작은 녀석들은 덜덜 떨면서도 기세를 올린 어미를 따라 욕지거리를 입에 담는다.

녀석들의 비난에 코코는 발걸음을 때지 못했다. '버린다'는 말에 반응한걸까···.

코코는 살짝 우리를 뒤돌아본다. 본 적 있는 표정이다. 코코를 처음 만났을 때 떠나려던 코코가 차나무를 쓰다듬으며 보여준 표정.


그치만,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고개를 흔들고 코코에게 보란듯 웃어주었다.

표정이 풀린 코코는 다시 돌아서서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하는 다와. '버려'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다-와. 와타시는 주인 인간씨의 정원에 살기를 허락 받은 다와.」

「주인 인간씨가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면 와타시는 떠나는 다와. 그리고 와타시가 떠나고 싶어도 와타시는 떠나는 다-왓.」

「하지만 그러지 않는 다와아. 와타시는 이 정원이 너무 좋은 다-왓.」

친실장은 코코의 반론을 듣고 입을 벌린 채 말을 잃었다. 같은 실석류이지만 제 처지와 코코의 처지, 그리고 둘의 사고는 너무나도 다르다.

그 모습을 본 멍청한 자실장들은 「마마?」「마마 왜 그러는 테츄! 어서 멍청이를 때려 눕히는 테츄웃!」따위의 말을 늘어놓으며 친실장의 속을 긁었다.  


우리는 녀석들의 포위망을 좁혀나갔다. 실장들은 뒷걸음질 치다가 담벼락에 등을 맞대고 서게 되었다. 어떻게 혼을 내줄까···.

주머니를 만지니 차고 딱딱한 물건이 손에 잡혔다. 꺼내보니 아까 둥지에서 주운 작은 명찰이다. 그래 참, 그렇지···. 

코코는 양갈래를 팔랑이며 싸울 준비를 하고있다. 나는 낮게 앉아 코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코코, 잠깐만.”

그리고 친실장 앞으로 명찰을 던져뒀다. 친실장은 익숙한 물건이 내 손에서 나오는 걸 보고 당황한 듯 보였다.

“'미도리'가 네 이름인가 보군. 과연···.”

미도리는 명찰을 주워들고 부들부들 떤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듯, 눈물을 흘리고 입가를 잘근잘근 씹으며 명찰을 어루만졌다.

“인간에게 속지 않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인간이 없으면 살 수 없나보군. 네 녀석이 버려진 이유를 잘 알겠다.”

「데샤아아아앗! 똥닌겐···! 닥치는 데샤아앗···!」

'미도리'는 몸을 숙여 나를 위협한다. 그러고는 온갖 욕지거리를 우리에게 퍼부었다. 양안은 눈물이 줄줄 흐른다.

자실장들은 극한의 분노를 내뱉는 어미가 무서운듯 담벼락에 바싹 붙어 「테에엥」 거리고 울기만 한다.

“그런 주제에 사육실장의 꿈은 버리지 못했는가. 명찰은 버리지도 못하고, 남의 옷에 집착하는 꼴이라니 우습구만.”   

'미도리'는 옷이라는 말에 반응해 코코의 숄을 들여다 본다. 그렇지, 그 옷이다. 네 녀석이 그토록 멍청한 머리로 꾀를 내면서까지 집착한 옷.

코코는 「다-왓?」거리며 숄에 강렬한 시선을 쏘아대는 '미도리'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나는 '그럴 일이 있었어.' 라고 코코에게 말했다.

“하지만 정신 차려라. 네 녀석은 더 이상 '미도리'가 아니야. 한 낱 멍청한 들실장일 뿐이ㅈ···.”

녀석은 갑작스레 움직였다. 내 말을 듣던 친실장은 화를 참지 못하고 코코에게 덤벼들었다.

“다와아아앗? 다-와앗?”

떠밀려 오는 고깃덩이에 코코가 밀쳐졌다. 갑자기 거리를 좁히는 녀석에게 코코도 놀랐는지 트윈테일이 반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데에···에에엥···.」

「테에엥- 마마 일어나는 테츄! 테에엥」 「어서 저 녀석을 때려 눕히는 테츄. 테에엥- 마마!」

코코는 친실장을 가뿐히 때려 눕혔다. 평소의 우아한 몸짓과 다른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마치 인파이팅 스타일 격투선수처럼 펀치 한 방, 한 방에 무게를 실어 친실장을 가격했다. 어설픈 친실장의 태클과는 차원이 달랐다.

친실장을 때려 눕힌 코코는 '훗' 하고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승리를 자랑스러워 했다.

아들녀석은 재밌는 장면이라도 봤다는 듯이 박수를 짝짝 울렸다. 그만해 그거 북녁의 죽은 독재자 같잖냐···.

하여간 그 날의 소동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딸아이는 마당의 소리에 뒤늦게 뛰쳐나왔는데, 흙이 묻은 코코의 옷을 탁탁 털어주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코코는「아무 일도 아닌 다와. 작은 인간씨, 주인 마님이 말씀하신 '숙제'는 다 끝마치신 다와?」하고 다시 우아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딸아이는 그 말에 얼굴을 찡그리며 숙제를 해야겠다고 돌아갔다.

그 사이에 우리는 실장일가를 모조리 체포했다.

아들녀석이 말하기를, 녀석들을 함부로 죽여서 내다 버리면 안되겠지만 옷을 벗기고 머리털을 뽑아 보내면 어디선가 나타난 동족이 녀석들을 처리해 줄거라고.

덤으로 녀석들의 둥지도 철저히 헤집어 놓았다. 혹시 다른 벌레가 자리잡으면 안되니까. 어디로 갔는지 엄지와 구더기 사체는 이미 사라졌다.

얻어맞아 퉁퉁 부은 와중에도 친실장은 계속해서 발버둥 쳤다. 옷을 벗기고, 머리를 뽑을 때 어찌나 고생을 했는지.

그러다 아들녀석은 좋은 방법이 있다며 명찰을 주워왔다. 그리고 녀석의 눈 앞에서 명찰을 뽀각 소리나게 조각냈다.

친실장은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잠잠해졌다.

어미를 찾는 자실장들의 새된 목소리가 조금 시끄럽긴 했지만 작업은 금세 끝나서 우리는 녀석들을 먼 곳에 내다 버렸다.

멍한 표정의 친실장을 끌어안고 우는 자실장들. 우리는 그 독라 일가의 모습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ep.

코코의 도움으로 텃밭의 청소와 복구는 금방 끝났다. 

지금은 딸아이가 코코와 함께 마루에서 쉬고 있다. 나는 둘의 곁에 가서 앉았다.

코코는 작은 찻잔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자신이 돌본 차나무에서 입맛에 맞는 잎을 차로 만든 모양이었다.

조용하다. 가끔 코코가 홍차를 홀짝이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마당은 가지런히 정돈되어있다.

차나무가 사락사락 바람에 흔들린다. 코코는 살며시 웃으며 차나무를 바라봤다.

코코는 말했다. 자신은 나의 허락이 있어서 이 마당에 머문다. 그리고 자신 또한 이곳이 마음에 들어 이 마당에 머문다.

사려깊은 말이다. 어디까지나 자신을 '객'으로 여기고,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코코는 머문다. 우리 모두 코코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고, 아마 코코도 우리를 좋아하기 때문이겠지.

기분 좋은 관계 그리고 평안이다.  

“코코, 그러고보니 정말 잘 싸우더라. 격투 선수인 줄 알았어.”

「그, 그건 아닌 다-왓! 오해인 다와···.」

「주인 인간씨, 참 짓궂은 다-와···.」

우리의 대화에 따라오지 못한 딸아이만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의문을 표했다.

코코는 웃으며 나를 토닥토닥 때렸다.

가벼운 바람이 우리 곁을 스쳤다.

코코와 우리의 일상은 언제까지고 계속된다.






미도리 모놀로그 (포지티브)

 

끼익. 철컥.

“테샤아아아앗! 테챠아아앗!”

문을 열면 늘 정겨운 소리가 반겨온다. 내가 돌아온 줄 알고 갓 짜낸 비명을 목청껏 지르기 시작한다. 

독라의 자실장은 힘차게 뛰쳐나와 내 발치를 두들겼다. 오늘도 역시 기운차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샤워실로 향한다.

“테엣 테챳! 테치테치! 테···.”

샤워실 문 너머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온다. 그러나 그 마저도 잠시 뿐. 물소리가 소리를 지운다.


문을 열자 부옇게 서린 김이 딸려 나온다. 아직 뜨끈한 몸. 목욕을 마치면 늘 목이 마르다. 냉장고에 뭐가 남아있더라?

“테프프프. 테챳, 테칫 테치!”

우유 밖에 없다. 우유가 딱히 싫지는 않다. 우유향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나는 그 점이 오히려 고급지다고 생각한다.

우유 특유의 목넘김은 찬물보다 부드럽다. 시원하다. 오늘 하루도 상큼하게 마무리했다.

그치만 미도리 너는 어떨까? 나는 보란듯 냉장고 문을 닫았다.

“테챠아아아앗!”


내가 냉장고에 다가서면 녀석은 꼭 쫓아온다. 뽈뽈뽈. 하지만 이 냉장고에 녀석이 먹을 음식은 없다.

녀석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그럴 수도 있지. 피곤한 건 제 몸이다.  내가 소파에 파묻혀 TV를 켜도 미도리는 빈정거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엉덩이를 뒤로 내 빼는 게 똥을 싸거나 투분을 하려는 모양이다. 으음. 쉽진 않을텐데···.

하지만 TV가 더 재밌다. 한밤에 보는 쿠킹 쇼는 왜 그렇게 재미있는건지. 야식을 먹고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참아왔는지 모르겠다.

“끄으응. 테에에···. 테츄, 테츄!”

오늘은 닭요리구나. 치킨이 당긴다.



한참이 지나 광고시간. 한 숨 돌리러 베란다로 나선다.

어쩐지 중간부터 조용하더라니 미도리는 베란다에 있었다. 녀석은 베란다 슬리퍼를 깨물고 차고 하고있었다.

“테프프픗. 테챳 테챠아아!”

자실장 한 마리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슬리퍼는 멀쩡하다. 녀석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쏘아보지만 내 바람은 담배뿐이다.

늦은 밤의 풍경은 오늘도 변치 않는다.

TV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까지 미도리는 '똥노예'에게 벌을 주기 위해 별의 별 기이한 행동을 취한다.

그러나 우리집에 녀석이 망가뜨릴 수 있을만한 물건은 없다. 기껏해야 냉장고 안의 음식들 정도일까.

한 뼘에 그치는 몸으로 부릴 수 있는 똥노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

내가 잠자리에 들 즈음이 되어 녀석은 지쳐서 거진 울상을 짓는다.

“테에에에···. 테에에엥.”

녀석은 결국 알람을 세팅하는 나에게 매달려 때를 쓴다. 아니, 저건 억울한 표정이다. 열심히 관심을 갈구해 온 자신을 보라는 듯···.

그러나 나는 대꾸없이 침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망연히 나를 올려다 보는 미도리의 얼굴에 복잡한 주름이 진다.

침실은 조용하다. 문이 어찌나 두꺼운지 닫아두면 홀로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듯 하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는 수면의 스파이스에 그치고 만다.



삐-익···.

아날로그 알람을 쓰는 건 오래된 버릇이다. 무미건조한 소리는 잠결에 듣더라도 감정이 상할 겨를이 없다.

스탠드 곁의 시계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침실 문짝의 무게가 한 팔에 실린다. 다시 세상으로···.

우리집에 오고 나서 미도리는 아침잠이 늘었다. 내가 처음 미도리를 만난 건 이보다 이른 시각이었다.

미도리는 소파 밑의 한 구석에서 웅크려 자고있었다. 나는 미도리를 잡아 흔들어 깨웠다.

“테에···? 테에···. 테샤앗!”

활기찬 반응이다. 그럼 아침을 먹어야겠지. 냉장고에서 특제 콘페이토 한 알을 꺼냈다. 물론 음식은 아니다.

이건 음식은 아니고···. 내 손안에서 미도리는 거세게 발버둥 친다. 늘 이 모양이다. 그치만 아침을 거를 수는 없다.

“텟···! 텟! 쿠아아···.”

입에 손가락을 쑤셔 넣는다. 주둥아리를 고정시키고 '콘페이토'를 밀어넣었다. 자, 넘어가라···.

내려놓은 미도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신음을 흘렸다. 오늘도 다르지 않다. 나를 보며 애원하는 미도리.

“테에에. 테챠! 테에에에엥.”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건 미도리가 나와 약속한 일이니까.

나는 바닥을 서성이던 녀석을 베란다의 수조로 옮겨왔다. 미도리는 계속해서 신음을 토한다.

좋아. 수조 안에는 변기 대용의 페트병을 마련해놨다. 총구를 페트병에 겨누고 미도리의 배를 세게 누르면···.

“테챠아아아아앗···!”

봉인해 둔 총구의 마개가 빠지며 똥이 쏟아진다. 후우. 어차피 할 일인걸. 얌전히 스스로 해결하면 좋으련만.

페트병 꼭대기에 앉은 미도리는 쾌감과 고통이 뒤섞인 미묘한 표정을 짓고있다. 테츄흐헤 거리는 게 링갈을 쓰더라도 번역은 되지 않을 듯 하다.

그러나 내가 새 마개를 들이밀자 녀석은 정신이 드는지 다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뒤집어 얼굴을 페트병에 박아넣는다.

허공을 헤매는 양 다리 사이로 총구가 보인다. 손가락을 브이자로 벌려 다리를 고정시키면 나머지는 간단하다.

“···!”

알 수 없는 울림이 페트병 안을 맴돈다. 마개는 깔끔하게 총구를 틀어막았다. 미도리를 잡아뽑자 잠시 몸서리 치더니 화가 난 듯 팔을 휘젓는다. 붕쯔붕쯔?

나는 미도리를 수조 밖에 내려놓았다. 슬슬 나도 식사와 출근 준비를 해야한다. 챠악, 챠악 소리를 배경삼아 후라이팬을 튕긴다.

흠흠, 계란값이 금값이라지만 아침상에 에그 스크램블을 뺄 수는 없다. 달걀을 휘휘 젓는 동안 조미료를 꺼내둔다.

스크램블에 케챱을 뿌린다. 케챱이 쭉쭉 빠지는 게 미도리의 아침일을 연상시켜 가끔 기분이 상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식빵은 굽지 않는다. 사소한 취향이다. 베이컨도 굽는다.

이렇게 내가 공을 들여 아침밥을 차리고, 테이블에 앉으면 미도리는 씩씩 성을 낸다. 그러고는 역시나 내 발을 후드려 팬다.

그러나 금세 제 풀에 지쳐 쓰러진다. 아침부터 열심이다. 미도리의 진짜 아침밥은 내가 식기를 설거지 통에 놓고 난 뒤에야 주고있다.

내가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시킬 때면 녀석은 은근히 기대하는 듯 하다. 테프픗 하고 비웃으며 투분할 준비를 한다. 물론, 마개가 단단히 막고있어서 곧 울상을 짓는다.

요리는 마지막 낱알 하나마저 내입으로 들어간다. 그야 요리는 사람이 먹는거니까. 내가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이면 미도리는 격한 기분을 드러낸다.

보통은 심하게 당황하거나 화를 내거나 한다. 하지만 녀석의 식사는 바로 이것 뿐. 정수기 옆에 쌓아둔 염가 실장푸드다. 싸게 덤핑 판매하는 걸 구매해뒀다.

페트병 뚜껑에 적정량을 담아서 준다. 처음에 실장푸드를 먹이려 들었을 때, 녀석은 푸드를 집어 던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치만 이제는 노하우가 생겼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요법은 실장석에게도 충분히 먹혔다. 간단하다. 푸드를 집어 던지는 경우 이틀 정도 밥을 굶기기를 여러 번 반복하니 적어도 푸드를 던지지는 않게되었다.

그래도 푸드만이 미도리가 못 된 장난을 칠 수 있는 유일한 물품이기에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곤 있다. 예를 들어···.

간단하게 아침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미도리는 여전히 허겁지겁 푸드를 삼키고 있다. 하지만 이제 땡, 타임오버다. 나는 페트병 뚜껑 째 푸드를 빼앗는다.

반항도 잠시, 미도리는 싱크대 개수대로 버려지는 푸드를 지켜 볼 수 밖에 없다. 미도리의 식사시간은 내가 샤워를 하는 틈 뿐이다.

물론 내 기분에 따라 샤워는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한다. 뭐, 그래도 큰 문제는 없다.

내가 현관을 나서려 하자 미도리도 배웅을 나온다. 뽈뽈뽈 걸어나와 인사를 한다.

“테샤아아앗! 테챠 테샤아아아앗! 텟···.”

문을 걸어 잠글 때까지 미도리의 마중은 계속됐다. 나도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출근 길에 오른다.


미도리와는 두 달 전에 만났다. 수 개월 전, 나는 백수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큰 마음을 먹고 운동과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그 무렵의 마음가짐이 유지되어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고 미도리는 그 시절의 침전물이다.

이른 아침의 조깅은 나의 일과였다. 지금의 출근 시간보다 이른 시점에 나는 늘 집 앞의 공원의 가장자리를 달렸다.

그리고 한껏 달린 뒤, 골인 지점에는 편의점이 있어서 나는 종종 음료수를 사서 마시곤 했다. 그 편의점 입구에 미도리가 있었다.

정확히는 녀석의 일가가 있었다. 도대체 왜 그 이른 시간에 편의점을 서성였는지 아직도 미스테리지만 분명 탁아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 돌연 색다른 마음이 일었다. 긍정의 기운이 충만하던 나는 실장석이라도 길러볼까 하고 전에는 없던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데리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 중 기세 좋게 소리를 지르던 미도리를 골라들고 집으로 향했다.

내 손이 다가갈 때 일가는 한 껏 기대를 부풀렸는지, 내가 미도리만을 낚아채고 돌아가자 거센 소리로 짓걸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안면이 있던 편의점 알바가 시끄럽던 일가를 치워버렸다고 한다. 미안함에 그 친구에게 비싼 커피우유 한 팩을 사준 기억이 난다.

하여간 미도리는 우리집에서 살게 됐다. 처음 우리집에 들게 된 미도리의 처우는 지금과 달랐다.

미도리가 미도리로 불리기 이전에 녀석은 수조에서 살았다. 베란다에 둔 그 수조가 맞다.

실장석을 집에서 기르는 건 처음이었지만 녀석들의 악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조깅 중에 몇 번 마주치기도 했고···.

일부러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던 무렵이었기에 나는 실장석이 똥을 싸거나 물건을 어지럽히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수조를 썼다.

물론 녀석은 곧바로 성질을 부렸다. 처음으로 스마트폰 링갈을 처음 사용해 본 것도 그때였다.

「테챠아아앗! 와타치를 꺼내는 테샤아아앗! 이딴 거 말고 똥노예는 우마우마한 스테이크와 스시를 내놓는 테챠아아앗!」

수조를 팡팡 두들기며 내는 역정은 대체로 그런 내용 뿐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놀라운 뻔뻔함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실장석에게 질리기보단 즐거운 기대를 품었다.

나쁜 행동을 앞으로 개선해 나간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오히려 뻔뻔하게 날뛰는 모습이 가소로워 언제까지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녀석에게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점차 사회의 양지로 나아가는 나와 달리 녀석은 수조 안에서 분에 넘치는 요구만을 늘어놓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 날의 일을 뒤돌아보면 가끔 쓴웃음이 난다. 과거의 나를 미도리에게 투영하며 수조에 가둬두는 건 정말 소심한 정신승리였다는 생각이 들기에···.

그렇지만 그건 이미 지난일이다. 미도리는···. 아, 미도리는 미도리라는 이름과 더불어 저 나름의 자유를 얻었다.

취직이 결정 된 날 나는 링갈로 미도리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기분이 어떠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 테츄? 멍청한 똥노예가 뭘 실실 웃는 테챠아앗! 어서 와타치를 좁은 곳에서 꺼내는 테챠앗!」

「와타치는 이딴 곳에서 살고싶지 않은 테챠앗! 어째서 똥노예인 오마에가 넓은 방을 쓰고 세레브한 와타치가 이딴 곳에만 있어야 하는 테츄? 말도 안되는 테챠아앗!」

말을 마치기 무섭게 녀석은 투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조 벽에 똥이 가로막히는 모습을 보고 열이 뻗히는 지 발악은 더욱 심해졌다.

「테캬아아아악! 오마에 죽여버리는 테챠아아앗! 지금이라면 콘페이토를 내놓는 것으로 용서하는 테챠아앗! 똥노예는 어서 내놓는 테챠앗!」

그러나 그 시절도 지금도 우리집에 콘페이토는 없다. 지금이라면 콘페이토 닮은 게 있긴 하다.

미도리와 대화를 하던 당시 나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오랜 염원이던 취직을 이루고 방방곡곡이 기쁨을 나누던 참이었다.

나는 미도리에게도 자그마한 행복과 충분한 기회를 나눠주기로 했다. 

“너도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거지?”

「이제야 알아듣는 테츄? 테프프프, 정말 멍청한 똥노예인 테치. 우선 여기서 와타치를 꺼내주는 테챠앗.」

“하지만 그냥은 안되겠는 걸.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노력을 해야 해.”

「테에···? 그건 또 무슨 헛소리인 테샤앗!」

“나도 행복해지기 위해 매일 같이 노력해 왔다고, 그렇지만 너는 벌써 들실장에서 사육실장이 되는 행복을 누렸잖아?”

「와타치는 그 전까지 노력한 테챠! 오마에는 와타치를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하는 테치. 어서 와타치를 내보내는 테챠아아앗!」

“싫어.”

「테챠아아아아앗!」

녀석은 표정을 한껏 구기며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솔직히 저기서 대화를 포기하지 않은 나도 대견하다.

그 시점에 나의 호기심은 답답함을 이기고 있었다. 아마도.

쒸익. 쒸익. 미도리가 분을 삭여 한 풀 꺽여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대화를 시도했다.

“거봐. 그렇게 화만 내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

“풋···.”

온 얼굴을 벌름거리며 화를 참는 모습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그것이 미도리의 분을 더 부추겼지만 녀석은 이미 충분히 지쳐있었다.

말을 아끼고 있자니 미도리가 먼저 말을 걸었다.

「도대체 와타치가 어쩌란 말인 테츄.」

“성의를 보이라는 말이지. 그런 다음에 너가 원하는 걸 말해봐.”

미도리는 다시 부들부들 떨었다. 또 한참 뒤에야 미도리가 말을 꺼냈다.

「···똥노예가 와타치를 행복하게 하는 건 당연한 테츄.」

“그건 안돼. 그럼 그 수조 안에서 영원히 갇혀있던가.”

「···.」

“너가 결정을 못하겠다면, 좋아. 이런건 어때? 나는 네가 집안을 어지럽히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너를 자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어.”

「테에?」

“물론 그럴 수 있도록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지만.”

「그거인 테츄! 그렇게 하는 테츄! 똥노예는 어서 와타치를 밖으로 꺼내는 테츄!」

“너 제대로 알아듣기 한거야?”

「와타치를 꺼내면 그렇게 하는 테츄!」

“정말로 그렇게 할거야?”

「테챠아아앗! 몇 번을 말하는 테챠! 똥노예는 대체 얼마나 멍청한 테챠아아앗!」

“정말, 정말로 그렇게 할래?”

「테에캬아아아악 죽고싶은 테챠아아아앗!」

“좋아 그러면 내일부턴 그곳에서 꺼내줄게.”

내가 꺼낸다는 말을 꺼내자 녀석은 저열한 웃음을 흘렸다. 하루 종일 테프프프 거리는 소리가 멎지를 않았다.

푸드를 주려 수조에 다가가도 해냈다, '이겼다' 하는 듯한 초승달 눈을 하고 있었고, 푸드조차 먹지 않았다.

아마도 수조에서 나가면 모든 것은 해결될 거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나를 부려 원하던 스테이크와 스시라도 먹으려고 생각했나.

미도리가 잠들기 전에 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그래. 그리고 너는 이제부터 미도리야.”


이른 저녁에 미도리는 기쁨에 겨워 잠들었다. 미도리가 잠들었을 때 나는 미도리를 방에 풀어놓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더러워지기 쉬운 옷을 벗겼다. 깨지 않을까 싶었지만 녀석은 곤히 잠들어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난리가 나겠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총구를 마개로 처음 틀어막은 것도 그 날이다.

아마 그 쯤이 것이다. 어렴풋이 짜증과 분으로 날뛰는 녀석의 모습에 미미한 감정이 일기 시작한 것은···.

그야말로 볼만 한 꼬락서니였다.

실장석의 주제넘은 행동을 보고 녀석들을 학대한다는 사람들도 있는듯 싶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야 말로 극상의 엔터테인먼트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날로 우리집은 미도리의 무대가 되었다. 나는 최소한의 규칙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미도리에게 부가하지 않았다.

물론 대화도. 미도리가 그 이름으로 불린 건 그 날로 마지막이다. 대화할 일이 없었다. 링갈도 켜지 않았다.

여러 면의 개조를 마치고 나는 새로운 나날을 맞이했다. 

아침, 미도리는 약속대로 수조 밖에서 깨어났다. 녀석은 자신의 몸을 더듬다가 새삼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거추장스러운 머리털도 모조리 잡아 뽑아야 한다. 아무래도 자는 틈에 머리털을 뽑는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정당한 계약이란 양자가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집행되는 게 옳은 것 아니겠는가.

“테챠아아아악! 테챠아아아앗!” 

이제는 익숙한 거센 울음도 당시에는 더욱 싱싱하게 들렸다. 내가 머릿털을 모조리 잡아 뽑자 미도리는 한 동안 패닉에 빠졌다.

“텟···. 텟···. 테에에에엥.”

하지만 진정한 패닉은 한참 뒤에나 찾아왔다. 일을 마치고 커피를 즐기려는 나에게 미도리가 다가왔다.

커피향이 코를 찌르고 미도리는 태도를 달리했다. 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무언가를 소리치기 시작했다.

“테치 테치, 테챠아앗! 테챳!”

하지만 시고 씁쓰름한 향이 혀에 베어있는 동안 나는 테이블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얼마 안가 미도리는 총구를 뒤로 내밀고 투분을 하려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미도리는 난생 처음 느끼는 부자연스러운 감촉에 몸을 베베꼬며 까무러쳤다.

그러다 분노로 거품을 물더니 쓰러져 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티타임을 마치도록 미도리는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잘 알고있다.

그 증거로 아직까지 잘 살아남지 않았는가?

미도리의 기막힌 모놀로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미도리가 나를 반긴다. 눈에 띄게 마른 미도리의 울음은 점차 쇠해간다.

그런 미도리를 위해 오늘은 선물을 마련해봤다. 

“테에···. 테츄?”

말끔한 자실장이 케이지를 빠져나온다. 녀석은 새로운 환경을 둘러보며 가벼운 감상을 내뱉었다.

미도리가 오랜만에 얼빠진 표정을 보여줬다. 새 친구의 등장에 적잖이 놀랐나보다.

새로온 자실장도 독라를 보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먼저 마음을 연 건 기존 입주자 쪽이었다.

“테캬아아아악!”

미도리는 금세 적의를 드러냈다. 새 친구의 말끔한 옷을 시기하는 모양인지 소매를 붙잡고 늘어졌다.

“테에에엥! 테에에엥!”

자실장은 울며 내 품으로 달려든다. 나는 녀석을 안아 테이블 위로 올려줬다. 미도리는 이제 나에게 적의를 쏟으며 씩씩거렸다.

테이블에 올려 둔 자실장은 테츗거리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오랜만에 링갈을 켰다.

「쮸인님 저 독라는 무서운 테츄···. 와타치의 소중한 옷을 빼앗으려고 하는 테츄. 무서운 테츄. 테에엥.」

「내려오는 테챠아! 똥벌레는 내려오는 테챠! 오마에를 독라로 만들어서 운치굴에 쳐넣는 테챠아아앗!」

“저 친구가 무섭니?”

「그런 테츄···. 쮸인님 와타치도 독라가 되는 테츄···?」

“아니, 꼭 그런건 아니야.”

나는 새 녀석에게 미도리와의 약속을 이야기했다. 독라는 미도리의 요구에 따른 합당한 조치라는 점. 꼭 미도리와 같은 요구와 대가를 치룰 필요는 없다는 점 등.

「와타치는 쮸인님이 원하는 대로 하는 테츄. 독라는 되고 싶지 않은 테츄.」

나는 녀석을 향해 끄덕였다. 생각보다 예절 바른 개체인듯 하다. 실장샵을 둘러보다 우연히 얌전해 보이던 이 녀석을 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녀석을 보니 미도리와의 대조가 꽤나 즐거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 외로 미도리의 새 친구는 겁이 많아 보인다.

그건 별로 상관 없다. 어차피 둘을 같은 공간에 둘 수는 없다. 그랬다가 서로 싸워 무슨 난장판을 벌여 놓을지 알 수 없다.

나는 안전부절 못하던 녀석을 새 수조에 넣었다. 미도리는 수조의 아크릴을 꿰뚫어보며 새 친구에게 조소를 날렸다.

「테프프픗. 오마에같은 똥벌레는 거기가 어울리는 테츄. 고귀한 와타치가 가끔 구경오는 테츄.」

「···. 무서운 테츄. 무서운 테츄.」

새 입주자는 이전의 자신처럼 수조에서 살아간다. 미도리는 자신보다 불쌍한 처지에 있는 자실장을 보고 만족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미도리의 조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 일은 저녁에 터졌다.   

불안에 떠는 새 녀석에게 나는 콘페이토를 주어 달랬다. 더불어 변소나 따뜻한 헝겊 같은 걸 수조에 넣어줬다.

자실장은 조만간 만족스러운 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텟테로게, 텟테로게···.」

노래를 계기로 미도리는 수조에 신경을 쏟기 시작했다.

콘페이토를 받아든 새 친구를 보고 녀석은 비웃는가 싶더니, 그것이 진짜 콘테이토라는걸 깨닫고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조의 자실장은 미도리를 등지고 앉아 사탕의 달콤함을 즐길 뿐이었다. 새 녀석이 보이는 성찬의 기쁨이 점점 미도리의 신경을 긁었다.

미도리는 수조를 두들기고 위협하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미도리를 무시하고 수조에 말을 걸었다.

“새집은 마음에 드니?”

「마음에 드는 테츄. 쮸인님 고마운 테츄. 콘페이토 맛난 테츄. 아마아마한 테츄!」

“다행이다. 혹시 싫어하지는 않을까 걱정했거든.”

「그렇지 않은 테츄! 와타찌는 좋은 쮸인님을 만나서 행복한 테츄.」

「똥닌겐! 와타치에게도 콘페이토를 바치는 테챠아아앗!」

참지 못한 미도리가 결국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수조 안의 녀석도 나도 눈길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새 녀석도 분충성 다분한 미도리를 철저히 무시하려고 마음먹은 듯 냉랭한 태도만을 보였다.

그런 둘의 모습에 나는 장난끼가 동했다.

“좋아 그럼 너에게 이름을 붙여줄게.”

「테에? 이름 테츄?」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미도리야. 너를 부를 땐 미도리라고 부를게.”

새 녀석의 얼굴이 환해졌다.

「와타치 기쁜 테츄. 와타치가 미도리인 테츄! 주인님 잘 부탁하는 테츄!」

그 장면을 독라의 미도리는 똑똑히 보았다. 미도리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똥닌겐···! 어째서 저 녀석이 미도리인 테챠아앗! 미도리는 와타치인 테챠!」

「그럴 수는 없는 테츄! 와타치가 미도리일 터인 테츄! 왜 저 녀석이 미도리인 테츄! 똥닌겐···! 아니, 닝겐상! 닝겐상···!」

「닝겐상 미도리의 말을 듣는 테츄···. 와타치 미도리인 테츄···.」

미도리의 절규를 나는 무시했다. 녀석은 패닉에 빠져 수조 곁을 떠나지 못했다. 새 미도리는 행복한 표정으로 천가지를 끌어안았다.



하룻 저녁의 파란은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냈다.

수조 밖의 미도리는 한동안 공손한 말씨로 나를 불렀다. 전에는 한 번 입에 담은 적 없던 미도리라는 이름에도 집착하기 시작했다. 

「닝겐상 미도리도 콘페이토 주는 테츄···. 와타치도 우마우마 먹는 테츄···.」

물론 수조 밖의 미도리가 얻은 건 특제 콘페이토였다. 콘페이토를 받아든 미도리는 모호한 표정으로 사탕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콘페이토를 핥기 시작했다.

「와타치도 주···주인님에게 감사하는 테츄···.」

녀석은 그것이 사탕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도돈파의 감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녀석은 며칠이 지나도록 자신을 기만했다. 유일하게 내가 관심을 가져주는 시간인 아침엔 더욱 신경써서 애교를 부렸다.

「닝겐, 아니 주인님 오늘도 우마우마한 테츄···.」

미도리의 눈물 겨운 연극에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미도리의 변화는 정말 갸륵했다.

그러나 나는 미도리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실장석의 행동을 겉으로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러는 편이 미도리가 또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리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미도리가 스스로 콘페이토를 받아 들게 된 이후로 한동안 나는 그것을 직접 쑤셔 넣을 일이 없게 되었다.

단지 나는 근처에 서서 미도리가 스스로 도돈파를 핥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날은 조금 달랐다.

늘 그랬듯이 콘페이토를 넘겨받은 미도리는 한참을 서있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와타치 돌아가고 싶은 테츄. 와타치도 수조에 넣어주는 테츄. 이제 싫은 테츄···.」

처음으로 들은 녀석의 항복 선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얕은 꾀거나. 그러나 녀석은 수조에서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은 기이 없을 터였다.

나는 미도리의 말을 못들은 채 했다. 무시당한 미도리는 분에 떨며 다시 내게 말했다.

「···도대체 왜, 왜! 와타치를 데려온 테츄! 와타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테츄! 똥, 닌겐···!」

「와타치는 분명 사육실장이 되면 세레브한 옷도 입고, 우마우마한 스테이크와 스시를 매일 먹을 수 있다고 들은 테츄. 근데 어째서 와타치는 행복할 수 없는 테츄!」

「와타치도 저 녀석처럼 행복하고 싶은 테츄. 똥닌겐이라면 그건 간단한 일일 테츄! 와타치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 테츄! 제발 뭐라도 말을 해보는 테츄···.」

미도리는 한참을 항변했다. 세상에 미도리가 말한 행복의 조건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미도리의 처지는 제 자신의 과오에 불과하다. 얕은 불행의 기준을 넘나드는 일도, 넘치는 행복의 기준을 세우는 일도 모두 미도리의 업보다.

나는 간단히 미도리에게 우리의 약속을 상기시켜주었다.

미도리는 그치만, 그치만을 반복하며 억울함을 표했다. 그러나 결국엔 과거의 자신을 저주 할 수밖에 없으리라.  

물론 실장석의 사고는 그만큼 고등하지 않으니 말문이 막힌 미도리의 반응은 뻔한 일이었다.

「똥닌겐···! 죽여버리는 테챠아아앗! 죽여버리는 테챠아아앗! 와타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마에를 죽여버리는 테챠아아앗!」

나는 깊은 증오를 세기는 미도리의 입에 콘페이토를 쑤셔넣었다. 미도리는 피눈물을 흘리며 이전 처럼 고압 도돈파를 억지로 삼켜야만 했다. 


그 뒤로 미도리는 정말 괴상해졌다.

하루는 수조에 머리를 거세게 박았다. 또 다른 날에는 푸드에 입을 대지 않았다. 언젠가는 높은 곳에 올라 한참 방바닥을 응시했다.

녀석은 죽을 작정이었다. 한 때, 수조 곁을 서성이다가 새 미도리에게 '독라 못생긴 테츄.' 소리를 들은 녀석은 이전의 격노를 되찾기도 했지만 잠시 뿐이었다.

그 모습 또한 우스운 일이었다. 미도리는 자살하지 못한다. 그런 생물이기 때문이다.

녀석의 생사여탈권은 제 자신에게 있지 못하다. 실장석은 스스로 죽을 능력이 없다.

실제로 미도리는 죽을만큼 높은 곳에 오르지도 못했으며, 죽을만큼 굶지도 못했다. 겁쟁이처럼 죽는 흉내를 내고 말았을 뿐이다.

꼴사나운 모습을 지켜본 새 미도리는 가끔 나에게 「쮸인님, 독라가 죽을거 같은 테츄.」하고 경과를 알려왔지만 한사코 미도리가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수조를 나오던 날부터 미도리의 위석은 공원 앞 편의점에서 사온 오로나민씨에 잘 절여져 있으니까.

오늘도 미도리의 모놀로그는 계속된다.

녀석이 죽지못해 사는지, 살지못해 죽으려 하는지 깊이 알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