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 (ㅇㅇ(83spf9v2axnx))



산 속의 겨울은 해가 짧다.

오후 3시 밖에 되지 않았건만, 골짜기 너머로 벌써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기온은 영하 4도. 입김을 불면 하얀 연기가 흩어진다.


나는 4륜 오토바이를 타고 텅 빈 사이트를 천천히 순찰했다.

이번 주말부터는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하는 연말 성수기.

100개가 넘는 사이트가 전부 예약된 상태다. 오늘 안으로 수도 동파 방지와 전기 시설 점검을 마쳐야 했다.


캠핑장은 고요했다.

하지만 오토바이 엔진을 끄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이 적막의 밑바닥에서 바스락거리는 소음들이 들려온다.


마른 낙엽을 밟는 소리, 플라스틱을 긁는 소리,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울음소리들.

지난 여름 성수기 동안 손님들이 흘린 음식물 쓰레기에 취해 불어난 녀석들이다.

대부분은 가을철 방역과 첫 추위에 쓸려나갔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은 놈들은 시설물 곳곳에 기생하며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놈들을 굳이 찾아다니며 죽이지는 않는다.

내 업무는 어디까지나 시설 관리이지, 해충 구제가 아니니까.


다만, 이따금 영업에 방해가 되는 사례들이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곤 했다.


---


캠핑장 중앙의 취사장 겸 개수대 건물.

이곳은 캠핑장의 심장부나 다름없다.

겨울철 캠핑장 전체에 공급될 온수를 위한 대형 가스 보일러가 열심히 일을 하는 곳이니까.


건물 뒤편,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만한 으슥한 곳.

벽면 밖으로 툭 튀어나온 보일러 연통 주변, 역시나 녀석들이 있었다.


『따뜻따뜻한 테치이~.』


녀석들은 꽤 머리를 썼다.

벽에서 튀어나온 원통형 연통 끝부분에, 버려진 라면 박스를 씌워 자신들의 하우스로 개조해 놓은 것이다.


마치 연통이 박스 하우스의 난방 파이프처럼, 박스 내부로 연결되도록 만든 구조였다.

덕분에 보일러가 가동될 때 배출되는 따뜻한 배기가스가 박스 안을 훈훈하게 데워주고 있었다.


『텟츙~! 마마, 따뜻한 바람씨가 오는테치! 천국인테츄!』

『장녀는 조용히 하는데스. 닌겐에게 들킨다면 모두 쫓겨나고 마는데스.』


슬쩍 고개를 숙여 상자 안을 엿보니, 성체 친실장 하나와 자실장 두 마리가 박스 안에서 뒹굴고 있었다.

개수대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받아먹고 살았는지, 살도 통통하게 올라있었다.


이 정도면 영리한 기생이다. 굳이 건드려봐야 귀찮기만 할 뿐이다.

나는 구태여 손을 대기보다는 녀석들을 못 본 척 그냥 지나쳤다.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유달리 새벽부터 온도가 급격하게 하락한 날이었다.

영하 11도, 관리실 제어 패널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려 나는 선잠에서 깼다.


[Error 03]


'배기 폐쇄?'

고개를 갸웃하는 동시에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네, 여보세요. 네, 네. 아, 온수가 안 나오신다고요? 죄송합니다, 지금 확인 중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없는 손님, 그들이 아침에 몸을 씻으려다가 느닷없이 찬물 세례를 맞은 것이다.


명백한 영업 사고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욕지기를 뱉었다.


"하, 씨X....."


쇠꼬챙이를 챙겨 들고 취사장 겸 개수대 건물 뒤편으로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혈압이 치솟았다.


녀석들의 골판지 하우스는 여전히 연통 끝에 매달려 있었다.

문제는 그 안쪽이었다.


새벽녘, 보일러가 목표 온도에 달해 잠시 휴동한 사이 따뜻한 바람이 끊기자, 녀석들은 연통 구멍에서 찬바람이 들어온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박스 안쪽에서, 연통 구멍을 진흙과 쓰레기로 콱 틀어막아 버린 게 분명했다.


"방 빼, 새끼들아."


부드럽고 젠틀한 철거 및 이주 작업은 없었다.

챙겨온 쇠꼬챙이를 그대로 들었다.

놈들은 박스 안에서 웅크린 채 잠들어 있을 것이다.


나는 박스 입구, 그러니까 놈들이 드나드는 정문을 향해 꼬챙이를 겨눴다.


푸우욱--!


둔탁한 타격감과 함께, 손끝에 무언가 걸리는 맛이 났다.


『츄아아아아아--!!』

『오네챠?! 뭐, 뭐인테치이?!』

『데, 데뎃?!』


박스 안에서 끔찍한 비명과 함께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꼬챙이를 더 깊숙이 밀어 넣어, 박스 너머 연통 구멍을 막고 있는 진흙 벽까지 거칠게 부수었다.


퉁!


막혀있던 연통이 뚫리자, 갇혀있던 가스와 검은 그을음이 한꺼번에 뿜어져 나왔다.

나는 꼬챙이를 쑥 뽑아냈다.


『테...치이잇...!』


꼬챙이 중간에는 자실장 한 마리가 명치 부근이 꿰뚫린 채 꼬치처럼 매달려 있었다.

녀석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허공에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츄아아...! 마마..! 마마...! 살려주는테치이!!』


아무래도 꼬챙이가 명치 부근을 꿰뚫으면서, 운이 나쁘게도 위석을 긁어버린 듯 했다.

점점 눈동자가 탁해지는 자실장을 바라보며, 나는 괜시리 기분이 나빠져 꼬챙이를 털어 녀석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쯧."


패대기쳐진 자실장은 몇 번 꿈틀거리더니, 마지막으로 몸을 한 번 부르르 떨며 탈분하고는 축 늘어졌다.


『장녀어어어!!!』


그을음을 뒤집어쓴 친실장이 골판지 하우스 밖으로 기어 나왔다.

녀석은 바닥에 죽어있는 자식을 보더니, 적록의 눈물을 흘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상황 파악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녀석은 내 작업화를 두들기고, 깨물고, 위협 자세를 취하며 악을 썼다.


『착한 자였던데스!! 착한 자였던데스!!! 고생해서 만든 하우스였던데스!!』


배상해라, 살려내라.

일가의 겨울을 책임져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녀석은 자기가 막은 그 구멍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는 것도,

자기가 멍청해서 자식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영리한 기생 정도라면 눈 감아 줄 수 있겠지만, 영업을 방해한 분충에게 베풀 자비는 없다.


퍼억!


단단한 작업화 앞코로 녀석의 배를 가볍게 걷어찼다.


『데게뵤옷?!』


단말마와 함께 친실장은 눈밭을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그대로 눈 속에 처박혔다.

남은 자실장 한 마리는 그 광경을 보고 공포에 질리더니...


『테챠아아!! 마마가 날아간테치이!! 일가실각인 테챠아아!!!』


하고 비명을 지르며 무작정 숲 쪽으로 뒤뚱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굳이 쫓아가지 않았다. 영하 10도의 야생에서 녀석이 홀로 생존할 확률은 없다.


그리고 너덜너덜해진 골판지 하우스를 뜯어내 쓰레기봉투에 담고, 그 다음엔 눈 속에 처박혀있던 친실장을 집게로 집어 담았다.

시간이 나는대로 연통과 연통 주변에 스파이크라도 감아둬야겠다.


-----


이런 일도 있었다.

계곡 옆에 위치한 15번 데크였던 걸로 기억한다.


바닥에서 50cm 정도, 꽤 높이 유격되어있는 나무 데크였다.

그곳은 비바람을 피하기에도 좋고 습기도 적어, 녀석들이 가장 선호하는 데크였다.


4륜 오토바이를 세우고 시동을 끄자마자 데크 밑에서 무언가 긁고 끄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데스..! 데스으읏...! 장녀! 더 당기는데스!』

『테히...! 테히...! 무거운테치이...! 마마, 손씨가 아픈 테치이..!』


바닥과 데크 틈새 사이로 플래시를 비춰보았다.


"허."


가관이었다.

손님들이 버리고 간 컵라면 박스, 스티로폼, 찢어진 은박지 조각들을 덕지덕지 이어 붙여 만든 집.


녀석들 딴에는 바람을 막겠다고 지은 요새겠지만, 관리인 입장에서 보자면 데크 밑에 인화성 쓰레기를 쌓아둔 꼴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쓰레기만 모아둔 것이라면, 바쁜 연말 시즌이니 눈 감아주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진짜 문제는 놈들이 건축 자재를 고정하는 방식이었다.


『마마! 이 주황색 끈 씨는 아주 튼튼한테치! 하양하양씨(아마도 스티로폼을 말하는 것 같았다.)가 꿈쩍도 안 하는 테치!』

『데프픗. 역시 차녀인데스. 아주 영특한데스우~.』

『텟츙~! 텟츙!』


녀석들은 건축 자재를 고정하기 위해, 데크 하단을 지나가는 외부용 전원 케이블을 억지로 끌어다가 묶어놓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당겨 묶었는지, 팽팽해진 전선 피복이 데크 기둥 모서리에 쓸려 벗겨지기 직전이었다.


"이건 안 되지." 


나는 오토바이에서 내리며 장갑을 고쳐 끼었다.

전선은 건드리면 안 된다.


피복이 벗겨져 누전이라도 되면 차단기가 내려가 캠핑장 전체가 정전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화재로 이어진다.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위험 요소였다.


나는 데크 밑으로 몸을 숙여 손을 뻗었다.

놈들이 애지중지 지은 요새의 중심부, 전선과 얽혀있는 부분을 움켜쥐었다.


"니들도 방 빼라."


우지끈! 콰직!


망설임 없이 힘을 주어 잡아뜯었다.

녀석들이 침과 어디서 주워온 테이프로 공들여 붙여놓은 쓰레기 벽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데샤아아아!! 와타시의 하우스가!! 와타시의 세레브한 하우스가!!』

『테챠아아아!! 마마!! 무서운 닌겐이 온테치! 마마! 마마!!』


구조물이 반파되어 무너져 내리자, 데크 아래에서 친실장 한 마리와 자실장 네 마리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밖으로 튀어나왔다.

놈들은 갑작스러운 재난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나를 향해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똥닌겐!! 무슨 짓인 데샤아아아앗─!!』


친실장은 내 어깨 쯤에 달려와 나를 투닥투닥 때리고 있었다.

분노로 이성이 날아간 건지, 내가 작업을 끝마칠 때까지 계속 그러고 있었다.


나는 일단 녀석들을 무시하고, 뜯어낸 전선을 다시 제 위치로 돌려놓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다행히 피복은 겉면만 살짝 긁혔을 뿐, 구리선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안도하며 일어서는데, 친실장은 일어서려던 내 눈을 마주치고는 투분을 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용서하지 않는데샤!! 똥노예로 만들어주는데스!! 각오하는데샤아앗!!』

『마마! 똥닌겐을 노예로 만들어버리는테치이!』

『와타치타치를 사육실장으로 만들게 하는테치!』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게다가 투분이라니, 그건 싫었다.

가볍게 팔을 휘둘러 투분을 준비하던 친실장을 후려쳤다.


퍼억!


친실장은 일격에 나가떨어져 눈밭을 굴렀다. 녀석은 배를 감싸 쥐고 부들거리며 일어섰다.


『데... 데갸아...! 용서 못 하는 데스...!』


그리고 계속해서 무어라 소리쳤다. 하지만 관심 없었다.


나는 놈들을 놓아둔 채, 그대로 오토바이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났던 걸로 기억한다.

녀석들은 어떻게 됐을까.


뭐, 날씨가 날씨다.

바람을 피할 집이 한 순간에 사라졌으니, 어디선가 딱딱하게 얼어죽어있겠지.


백미러 속에서, 텅 빈 돌바닥에 서로를 껴안고 웅크린 초록색 덩어리들이 보였다.


---


흡연 구역에는 커다란 드럼통이 하나 놓여있다.

일단은 재떨이를 겸하고 있지만, 진짜 목적은 재와 장작을 버리는 일종의 수거함이었다.


손님들이 캠핑장에서 불멍을 즐기고 남은 재와 덜 탄 장작들을 수거할 곳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마침 흡연 구역에서 나오는 담뱃재를 털 곳도 필요해, 겸사겸사 이곳에 배치해둔 것이다.


그 드럼통을 비우기 위해 도착해보니, 드럼통 주변 눈밭에 회색 재가 어지럽게 흩어져있었다.

바람에 날린 게 아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끄집어낸 흔적이었다.

바닥에는 작은 발자국들이 재 수거함과 화단 구석을 부지런히 오간 자국이 선명했다.


실장석이었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발자국을 따라 화단 뒤쪽, 배수로와 옹벽이 만나는 구석진 틈새.


그곳에 녀석들의 둥지, 아니 골판지 하우스가 있었다.


『데프프! 똥닌겐들은 정말 멍청한데스! 이렇게 따뜻한 '빨간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는데스!』

『치프픗!』

『마마! 따뜻따뜻한 레치!』

『레후~, 우지챠도 따뜻따뜻한 레후~, 프니프니 해주는레후?』


꽤 대가족이었다.

친실장 하나에 자실장 둘, 엄지 하나와 구더기 하나.


다섯 마리의 실장석은 재 수거함에서 아직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은 숯 조각들을 훔쳐다가 둥지 한가운데에 모셔두고 있었다.


보통 짐승이라면 불을 무서워해서 피할 텐데, 지능이 어설프게 높아서일까.

녀석들은 불이 따뜻하다는 것만 알고 위험하다는 건 모르는 모양이었다.


실장석들은 훔쳐 온 숯 조각 서너 개를 둥지 중앙에 쌓아놓고, 마치 숭배하듯 둘러앉아 도란도란 떠들고 있었다.


『이 빨간 보석씨만 있으면 겨울도 무섭지 않은데스. 다른 분충들은 밖에서 얼어죽을 때, 와타시타치는 세레브하게 지내는데스.』


친실장이 자신의 배를 두드리며 거만하게 말했다.


『테츄웅~, 마마는 역시 똑똑한 테치이~!』

『아타치도 나가지 않는레치! 여기서 계속 우지챠와 지내는렛츙!』


자실장과 엄지는 환호했다.

그들의 눈에는 그 숯 조각들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마법의 난로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바람이 틈새로 들이치자, 숯의 열기가 흩어지는 게 느껴졌는지 친실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데..., 바람씨가 와타시타치를 질투하는데스.』


친실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단을 내린 듯 자식들에게 소리쳤다.


『자들은 잘 듣는데스. 지금부터 이 하우스의 모든 구멍을 막는데스! 바람씨가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틀어막는데스!』


그렇다면 이 열기와 빨간 보석은, 영원히 자신들의 것이다.

그 어리석은 말에 자식들은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는테치!』

『아타치도 돕는레치!』


녀석들은 실장석치고는 빠르게 움직였다.

주변에 있는 진흙, 비닐 조각, 낙엽, 심지어 자신들의 배설물까지 동원했다.


판자와 옹벽 사이의 작은 틈새는 물론, 공기가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입구까지 틀어막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멀리 떨어져서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


녀석들은 지금 자신들의 무덤을 짓고 있었다.

타오르는 숯, 산소를 소비하는 네 마리의 유기체, 밀폐된 공간.


결과는 뻔해보였다.


잠시 고민했다. 저 멍청한 녀석들에게 최소한의 자비는 베풀어줘야 할까?

하지만 숯은 시설물이 아니다. 녀석들이 훔쳐간 쓰레기일 뿐.


게다가 놈들이 피해를 준 것도 없었다.

저기서 저러고 있는다 한들, 영업에 방해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자기들끼리 따뜻하게 살겠다며 집 문을 걸어잠그는 행위를, 제지할 명분도 의무도 없지 않은가.

명분 없이 도와줄만큼 내가 실장석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마마! 이제 바람씨가 들어오지 못하는테치!』


하우스 안에서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남은 작은 틈새까지 친실장이 진흙 덩어리로 꾹 눌러 막아버렸다.


"....."


거기까지 보고,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갔다.

둥지 안에서는 '따뜻한데스~' '잠이 솔솔 오는테치이~' '살짝 어지러운 레치이...' 같은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밤새 함박눈이 내렸다. 캠핑장은 하얀 설국으로 변해있었다.


기온은 영하 12도.

나는 눈을 치우기 위해 제설기를 끌고 4번 구역으로 향했다.


그러다 어제 그 숯 도둑놈들의 골판지 하우스를 지나쳤다.

골판지 하우스 주변에는 밤새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하얀 눈 위로 삐져나온 비닐 조각만이 그곳에 무언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작업화 발 끝으로 둥지 입구를 툭툭 건드려보았다.


안에서 '뎃샤!' 하는 비명이나, 바스락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입구를 막고 있던 진흙 덩어리를 걷어내보았다.


안에서는 퀴퀴한 가스 냄새와 함께 싸늘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녀석들은 그대로였다.


숯은 이미 하얗게 타올라 재가 되어 식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친실장과 새끼들이 서로를 감싸안고 누워 있었다.


실장석들의 표정은 평온했다.

고통에 몸부림 친 흔적은 없었다.


동사일까, 질식사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하우스에 있다고 굳게 믿었으리라.


"....멍청한 녀석들."


나는 진흙 덩어리를 다시 덮어주었다.

굳이 지금 꺼낼 필요는 없다.


꽁꽁 얼어붙은 시체는 썩지도 냄새가 나지도 않는다.

봄이 찾아와 땅이 녹을 때쯤, 부드러워진 흙과 함께 퍼서 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무심하게 제설기를 작동시켰다.

기계가 내뿜는 하얀 눈보라가 녀석들의 무덤 위를 다시 한 번 스쳐지나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


일과를 마치고 관리동으로 돌아오면, 항상 해는 저물어 있었다.

산속은 해가 짧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늘에서 또 다시 희끗희끗 날리기 시작한 눈발을 바라보며, 나는 믹스 커피 한 잔을 뽑아들었다.

사무실의 히터를 켜고, 창 밖을 바라본다.


취사장 뒷편에서 쫓겨난 놈들은 아마 야생에서 얼어죽었거나, 아니면 야생 동물의 먹이가 됐을 것이다.

데크 밑에서 집을 잃어버린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터.


숯을 훔친 도둑들은 그나마 조금 편안한 최후를 맞이하긴 했다.


"눈 좀 그만오지." 


참 다양하게도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의 관리 구역 안에서 놈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 치워야 할 낙엽이나 눈과 같은 존재였다.


겨울밤은 긴 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실장석의 삶은 참으로 짧았다.



(끝.)




















1,780원, 부가세 포함. (ㅇㅇ(83spf9v2axnx))


"어서 오세요."


딸랑, 하는 경쾌한 종소리와 함게 나는 습관적인 인사를 건넸다.


백화점 8층, 잡다한 가게가 모여있는 층의 너른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실장샵.

그곳이 현재 나의 직장이었다.


직장이라고는 해도 좋게 포장해봐야 단기 계약직.

편하게 말해 일개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직장은 직장인 법이다.


백화점에 위치한 실장샵이라는 점에서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곳은 꽤나 신경을 쓰는 가게이다.


매장 안에는 항상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비싼 자동 디퓨저 여러 대가 24시간 라벤더 향을 뿜어낸다.

하지만 아무리 비싼 향수로 덮으려 해도, 수백 마리의 짐승이 내뿜는 퀴퀴한 체취와 배설물의 냄새까지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


별 말 없이 자신의 볼 일만 보고 돌아가는 점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업무를 시작했다.


알바생의 업무는 단순했다.

매장을 청소하고, 각종 용품을 정리한다.


그리고 투명한 아크릴 감옥 안에 전시되어있는 '살아있는 생물'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일.


유리로 된 벽면으로 둘러쌓인 가게, 벽면에는 수많은 아크릴 케이스들이 층층이 쌓여있다.

그 중에서도 시선을 끄는 건 매장 한 가운데에 놓인 거대한 아크릴 타워.


아크릴 타워의 꼭대기에는, 유리로 만들어진 고급 수조가 있다.


이 높이라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높은 곳에 위치한 실장석은 가격이 비싸고, 아래층으로 갈수록 가격이 저렴해진다.


분명 인간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규칙일텐데, 어느 샌가 그 규칙은 실장석들 스스로가 지키는 규칙이 되어있었다.


『테챠아아!! 똥닌겐!! 노예!! 우마우마한 식사를 가져오는테치!』

『분충은 저리 꺼지는테치!! 우마우마한 식사는 세레브한 와타치가 먼저인테챠!!』


높이가 무릎보다 아래인 하층부는, 말 그대로 '시장통'이나 다름없었다.

마리 당 만 원 이하, 좁은 아크릴 수조에 수십 마리씩 들어갈 저가형 자실장들이 악을 쓴다.


들실장과 조금 다를 것도 없어보이는 녀석들을 무시하고, 시선을 위로 올린다.

허리춤에 닿는 중층부는 그나마 조금 사정이 낫다.


적당한 훈육을 거치고, 적당한 양충의 소질을 보이며, 적당히 인간을 두려워할 줄 아는 녀석들이 있는 곳.

30만 원대에 달하는 가족 패키지부터, 개별 수조를 받을 자격이 있는 훈육된 자실장들.


조금 좁기는 해보이지만, 안에는 급수대도 있고 덮고 잘 이불도 있으며 먹이도 실장 푸드가 공급된다.

좋은 곳이다.


그리고 고개를 젖혀야 볼 수 있는 최상층.

수조는 아크릴이 아닌 유리로 되어있으며, 커다란 수조 안에는 전용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바닥에는 푹신한 방석이 깔려 있으며, 습도와 온도 또한 시스템이 알아서 제어해준다.

VIP룸, 스카이 캐슬이라 부르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호화로운 전시장.


그곳에 녀석이 있었다.


유리 전시장 우측 하단, 금박이 입혀진 네임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혈통서 보유 / 전문적인 훈육 / 최고급 반려 자실장 / A+ 등급]
[\ 1,080,000]


혈통서니, 전문적 훈육이니, A+ 등급이니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이것만큼은 다르다.

가격, 녀석의 몸에 매겨진 가치는 무려 108만 원이었다.


'여기서 한 달 일하면 겨우 사겠는데.'


나는 녀석을 속으로 '백팔이'라고 불렀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가격이 백팔만 원이라 그랬다.


백팔이는 자신에게 매겨진 값어치가 결코 거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다른 녀석들과는 달랐다.


예를 들어 점심시간, 내가 사료통과 집게를 들고 카운터를 나서는 순간.


『똥닌겐!!!』


하고 발작을 하며, 그 먹이를 내놓으라 소리치는 하층부의 개체들은 물론,


『닌겐상, 와타시의 귀여운 자들이 푸드를 조금 더 원하는데스. 닌겐상, 푸드를 조금 더 주셔야하는데스.』


나름 훈육을 받았답시고 예의를 갖추지만, 그 내용 자체는 분충끼가 다분히 묻어나오는 중층부의 녀석들과도 달랐다.

내가 하층부와 중층부의 요구를 모두 무시하고, 평소 하던대로 급여를 마친 뒤 최상층의 유리 수조에 손을 뻗으면....


『테?』


백팔이는 유리 수조 안에 넣어둔 작은 고무공을 가지고 놀다가도, 살짝 놀라며 실장석용 테이블 앞에 가지런히 앉는 것이다.

그러고서는 비단 방석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상태로, 조용히 기다린다.


잡티 하나 없는 뽀얀 피부, 매일 스스로 빗질해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

주름 하나 없이 단정한 옷매무새.


녀석은 내가 비싼 고급형 실장푸드와, 실장석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콘페이토를 내려놓는 동안에도 덤벼들지 않았다.

보통의 실장석이면 지랄을 하며 밥에 달려들거나, 내 손에 매달려 아첨을 하면 자신을 사육실장으로 모시라고 헛소리를 했을텐데도 말이다.


놀라운 것은 백팔이의 시선이었다.

백팔이는 먹이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눈에는 묘한 자부심, 그리고 자존심이 들어있었다.

지금 나는 그 시절을 회고하며 그렇게 생각한다. 저 자존심, 자부심이야말로 백팔이가 다른 실장석과 달랐던 근본적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고.


달그락. 


급여를 마치고 유리 수조에서 손을 뺐다.

그제야 백팔이가 움직인다. 허리를 곧게 펴며 일어나, 정확히 45도 각도로 나에게 고개를 숙인다.


『감사한테치. 항상 수고가 많으신테치.』


결코 큰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항상 감사 인사를 마치고 나서야, 백팔이는 조심스럽게 고급형 실장푸드를 두 손으로 조심히 잡아든다.


오물오물, 소리도 내지 않고 입가에 부스러기 하나 묻히지 않는 완벽한 식사 예절.

콘페이토 역시 게걸스럽게 핥지 않고, 입에 넣은 뒤 녹을 때까지 천천히 음미한다.


백팔이는 알고 있는걸까?

자신은 '생명'이기에 앞서 '상품'이라고.


그리고 자신이 비싼 상품으로서, 저 아래의 동족들과 다른 대우를 받는 이유는 바로 이 점 때문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철저히 예절을 지키면서, 동시에 그것을 해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걸까?


나는 잠시 백팔이의 식사를 지켜보다가,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얌전한 백팔이에게도 취미는 있었다.


『테, 테, 테히..』


조용하고 얌전하게, 그래도 확실하게.

백팔이는 노란색 고무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참 좋아했다.


같이 놀 상대가 없어 고무공을 혼자 굴리고, 혼자 유리 수조 벽에 던지는 정도였지만...


『테치..., 테츄...』


백팔이는, 그걸로도 충분히 즐거워했다.

그런 백팔이가 공놀이를 그만두게 만드는 일이 일어났었다.


백팔이가 위치한 가장 높은 유리 수조 실장의 맞은 편 아래.

백팔이의 시선으로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중층부의 커다란 아크릴 수조.


그곳의 입주민은, [행복한 실장 가족 / \ 368,000] 이었다.

친실장 하나와 자실장 둘, 그리고 엄지와 구더기 각각 하나로 구성된 실장석 일가.


그들은 겉보기에 꽤 화목해보였다.

아니, 겉보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꽤 화목한 가정에 드는 축이었다.


친실장은 틈이 날 때마다 자실장과 엄지를 차별하지 않고 무릎에 앉힌 채 머리카락을 빗겨주었다.

자식들은 그런 어미에게 몸을 비비며 행복하게 웃었다.


그러나 백팔이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행복한 가정이라기보단, '반드시 다 함께 팔려나가야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긴장감을.


어느 주말 오후, 커플 손님이 이 전시장 앞에 멈춰섰다.


"어머, 자기야, 여기 봐. 가족인가 봐, 옹기종기 모여있어. 귀엽다."


여자의 말에 실장석 일가의 눈동자가 잠시 빛났다.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자매들 사이에서는 소리 없는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모우토챠! 공놀이는 그만하고 이리 와서 춤을 추는테치!』


장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동생을 불렀다.

언젠가 마마의 가르침에 따라 연습한, 장녀와 차녀가 함께 추는 춤.


그것은 화목하고 단란해보이며, 동시에 인간들에게 애교도 부릴 줄 아는 그런 실장석으로 보이겠다는 전략.

가족끼리 이렇게 춤을 추며 웃는 모습으로 애교를 부리면, 메로메로된 인간은 반드시 가족 전부를 함께 데려갈 것이다.


하지만 차녀는 그런 장녀의 생각이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녀는 평소에도 은연 중에, 자신이 이 일가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차녀에게 장녀가 말하는 '전략'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묻어가려는 분충의 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싫은테치. 와타치는 공놀이가 좋은테치.』


단칼에 언니의 제안을 거절한 차녀는, 노란색 고무공을 아크릴 수조 벽에 던지며 놀기 시작했다.


『테?! 이모우토챠! 그래선 닌겐들이 와타치타치를 데려가지 않는테치! 어서 이리오는테치!!』

『싫다고 말한테치. 와타치는 공놀이가 좋은테치.』


차가운 반응에 장녀는 당황했다.

이러는 와중에도 인간들은 곧 우리의 눈 앞에서 떠날 채비를 한다.


저렇게 떠나간 인간은 자신들을 데리러 오지 않는다.

조급함이 장녀의 마음 속을 파고든다.


『이모우토챠!! 빨리 이리로 오는테치!! 가족끼리 화목한 모습을 보여야하는테챠!』

『싫다고 말하지 않은테치이!!』


차녀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가족과 함께, 단란한 모습을 보일 방법이 꼭 춤과 노래 뿐인가.


『공놀이도 다 함께 할 수 있는 테치!! 오네챠는 그런 것도 모르는테치?!』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차녀는 보란듯이 소리쳤다.


『보여주는테치!』


보여주겠다.

단란하고 화목한 모습은, 공놀이로도 연출할 수 있다.


반은 자격지심, 반은 언니를 향한 질시와 분노.

그리고 아주 약간의 우월감.


그러한 감정들을 담아, 차녀는 언니들의 싸움에 겁을 먹고 웅크린 엄지를 향해 공을 던졌다.


『이모우토챠! 받는테치이!!』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 때문에 다소 힘이 들어간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래봐야 자실장의 힘, 탄력은 있지만 결국 자그마한 고무덩어리에 지나지 않은 공.


본래라면 엄지가 맞더라도, 아파서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

그러니까 이건 정말로, 순수한 불행이었다.


『레?!』


엄지는 차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엄지의 녹색 눈동자에, 고무공은 정확하게 꽂혔다.


『레, 레, 렛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이 울려퍼진다.

엄지실장은 터져버린 눈동자를 두 손으로 부여잡은 채, 미친듯이 뒹굴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아픈레치이!! 아픈레치이!! 마마!! 마마아아아!!!』


탈분하는 것도 당연지사.

뒹굴거리다 어기적 기면서 친실장을 찾고, 또 다시 뒹굴거리는 엄지 때문에 수조 안은 순식간에 실장석의 배설물로 뒤덮여간다.


『이게 무슨 짓인 테치!!』


장녀는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라 차녀를 향해 달렸다.

차녀의 옆에 도착한 장녀는 있는 힘껏 팔을 휘둘러, 차녀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평소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은연 중에 자신을 무시하고 깔보는 것을, 장녀는 눈치채고 있던 모양이다.


『놓는 테챠아!! 고귀한 와타치의 머리카락을 건드리지 마는 테챠아!!』


차녀 역시 지지 않았다.

체급은 백중지세, 용호상박.


두 자실장은 서로 엉겨붙고 물어뜯고 두들기며, 추잡한 싸움을 시작했다.

당연히 이 둘도 싸움 중에 성대하게 빵콘하긴 마찬가지였다.


수조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피와 운치를 줄줄 흘리며 발작하는 엄지실장, 엉겨붙어 탈분하는 채로 물어뜯는 자실장 두 마리.


『데, 데, 데...!』


착하고 상냥하지만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친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싸움을 말리자니 고통을 호소하며 발작하는 엄지를 핥아줘야한다.


그렇다고 엄지를 핥고 있자니, 장녀와 차녀를 말리지 않으면 둘 중 하나는 죽을 것 같았다.

물론 무엇을 선택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나았다.


하지만 친실장은,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택해버렸다.

그저, 아크릴 수조의 벽으로 다가가 질색을 한 인간 커플을 향해서....


『데, 데스웅~. 닌겐상, 와타시타치를 사육실장으로 하면 매일이 행복한데스웅~』


하고 아첨을 떨 뿐이었다.

오래지 않아 커플 손님은 나를 불렀고, 소식은 곧 점장에게 들어갔다.


"내려, 걔들도."

"어디로 어떻게요?"

"다 큰 놈은 뒤로 보내고, 애들은 먹이용으로 보내."


점장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행복한 실장 가족 / \ 368,000]라고 적힌 네임택이 붙은 아크릴 수조를 통째로 들어냈다.


친실장은 가게의 뒷편으로 간다.

그곳의 임시 아크릴 수조에 독라 상태로 방치해뒀다, 나중에 업자가 수거해간다.


듣기로는 출산석을 만드는 공장에 팔린다고 한다.

남은 자실장 두 마리는 집게로 집어, 각각 다른 최하층 아크릴 수조로 보낸다.


파충류, 혹은 육식 어류를 위한 먹이용도로 실장석을 구매하는 손님들을 위한 수조였다.

그리고 수조를 세척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은 상처입은 엄지실장과 저실장을 바라본다.


엄지는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고 사육실장으로 삼아달라며 내 손가락에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


나는 조용히 그 둘을 집어들어, 가게 뒷편의 커다란 쓰레기통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 뒤는 나는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사소한 공놀이에서 시작한 파국을 백팔이는 담담하게 지켜보았다.

일가의 실각을 보고 조롱하지도,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지도 않았다.


변한 건 딱히 없었다. 백팔이는 여전히 최고가 자실장이고, 여전히 조신하고 얌전했다.

딱 하나, 이상하게도 백팔이는 그 뒤로 다시는 공놀이를 하지 않았다.







계절이 한 차례 지나갔을 때로 기억한다.

가게의 풍경은 그대로였지만, 백팔이의 위치는 달라져 있었다.


녀석은 조금 자랐다.

아직은 자실장이긴 하지만, 특유의 통통하고 앙증맞은 비율은 아니었다.


점차 팔다리가 조금씩 길어지며, 성체를 향해 착실히 나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얌전하고 조신한 최고급 자실장이었지만, '성장'이라는 감가상각은 피할 수 없었다.


백팔이는 최고층 유리 수조를 비워줘야 했다.

녀석은 이제 벽면 진열대의 한 칸 아래, 아크릴 수조로 내려왔다.


네임택의 숫자와 글씨도, 물론 수정되었다.


[혈통서 보유 / 전문 훈육 / 고급 반려 자실장 / A 등급]
[\ 890,000]


이제는 1,080,000 원이 아니었지만, 내 마음속에서 녀석은 여전히 백팔이였다.

그리고 백팔이가 떠난 유리 수조의 왕좌에는 새로운 주인이 들어왔다.


점장이 손수 입혀준 화려한 핑크색 실장복을 입은, 아주 작고 동글동글한 어린 자실장이었다.


[혈통서 보유 / 전문 훈육 / 최고급 반려 자실장 / A+ 등급]
[\ 1,200,000]


녀석은 소싯적의 백팔이보다 비쌌다.

점장이 직접 선정한 가격이니 이유야 있겠지.


신입은 오자마자 자신의 위치에서 백팔이를 내려다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치프픗.』


나는 그것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최고급 반려 자실장은, 모두 백팔이 같은 건 아니었던걸까?


아니나다를까, 새로운 왕좌의 주인은 가게 안의 실장석들을 마음껏 조롱하고 경멸하기 시작했다.


『치프픗! 와타치는 오마에타치와 다른테치.』

『똥닌겐! 이제 옷은 됐으니 스시를 가져오는테치!』


녀석은 다른 실장석을 조롱하다가 질리면, 유리 수조 벽면에 찰싹 붙어 나를 불렀다.

그 녀석의 조롱에 다른 실장석들은 분노하며, 심하면 아크릴 수조에 투분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백팔이는 달랐다. 백팔이는 조금도 분노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백팔이는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저 위에서 하던대로 올곧은 자세 그대로 일과를 보냈다.


이제는 비단 방석이 아니라 그저 아크릴 수조의 딱딱한 바닥이지만.

이제는 고급형 실장푸드가 아닌 그저그런 녹색의 실장푸드에, 콘페이토도 없지만.


불만 한 번,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여전히 깔끔하게 자기자신을 정돈했다.

하지만 녀석이 무릎 위 치맛자락을 쥐고 있는 뭉툭한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며칠 뒤, 가게 문이 열렸다.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은 중년의 여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전형적인 부잣집 마님.


"찾으시는 아이가 있으신가요?"


나는 친절해보이는 미소를 장착한 채 응대를 시작했다.

척 보아도 화려하고 세레브해보이는 인상에 가게 안의 실장석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건 백팔이도, 그리고 백팔이의 자리를 차지한 새로운 유리 수조의 신입도 마찬가지였다.

백팔이는 다른 실장석처럼 춤과 노래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눈빛이 번뜩이긴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중년 여성 VIP가 자신의 아크릴 수조 앞을 지나칠 때, 정확한 타이밍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얌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나서 반가운테치.』


실장석치고는 놀라울 정도의 예의였다.

반면, 유리 수조의 실장석은 정반대였다.


녀석은 이미 브리더의 훈육을 모두 까맣게 잊어버린 채, 이 가게의 왕좌에 앉았다는 사실에 취해있었다.


『텟츄웅~! 세레브한 닌겐상에게 어울리는 사육실장은 고귀한 와타치 하나 뿐인 테치!』


신입은 유리 수조의 벽에 찰싹 달라붙어, 혀로 벽을 핥으며 아첨을 떨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씰룩 거리는 꼴에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내심 백팔이를 응원했다.

저런 싸구려에 천박한 애교보다는, 백팔이가 피를 깎는 노력으로 달성한 어떤 경지가 더 아름답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어머, 너 끼가 참 많구나?"


사모님께서는 5층 유리 수조의 벽에 달라붙어 엉덩이를 흔드는 자실장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어쩜 이렇게 활발하고 애교가 넘치니? 그래, 공주님이 되고 싶어?"

『치프프픗! 와타치는 이미 공주님인테치! 빨리 와타치를 이 좁고 불결한 곳에서 꺼내주는텟츙!』


VIP가 가게 최고가 물건에 관심을 보이자, 가게 안 쪽에서 점장이 바람처럼 튀어나왔다.


"안목이 탁월하십니다, 사모님. 이 녀석이 들어온 지 이제 하루 좀 지났습니다. 훈육할 때도 아주 훌륭했고, 혈통서도 있습니다."

"그래요? 딱 내 스타일인데."


그 뒤는 순식간이었다.

자그마치 120만원 짜리 물건이다.


입고 있는 옷은 물론, 수많은 사은품(실장석용 장난감과 실장푸드, 콘페이토)과 함께 녀석은 팔려나갔다.

그 녀석은 고급스러운 케이지에 담겨 가게를 떠날때에도, 백팔이를 향해 혀를 내밀며 웃었다.


딸랑.

손님과 그 분충이 나갔다.


나는 곁눈질로 백팔이의 눈치를 살폈다.

백팔이는 풀 죽어 있었다. 고개는 푹 숙여져있었다.


울거나 화를 내진 않았다.

대신, 무릎 위에 올라가있는 두 손이 부서질 듯 떨리고 있었다.


견디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자신의 방식이 맞다는데서 오는 확신을 재료로 버티는 모습이 아니었다.


인정하면 무너지기에, 그렇기에 인정하지 않고 버티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몰래 콘페이토 하나를 꺼내, 백팔이의 밥그릇에 슬쩍 넣어주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걸 먹지 않았다.

다음 날, 밥그릇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콘페이토를 내 손으로 치워줄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백팔이는 텅 비어있는 유리 수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걸로 기억한다.






다시 계절이 바뀌었다.

이제는 겨울이 되어, 백화점을 찾는 손님들은 저마다 롱패딩 혹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백팔이는 이제 자실장이 아니었다.

녀석은 완연한 성체가 되었다.


덩치는 커졌고, 어릴 적의 앙증맞은 외모는 사라졌다.

그렇다고 자를 만들어 일가를 꾸밀 수도 없으니, 녀석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친실장으로서의 가족애도, 자실장으로서의 귀여움도 없는 말 그대로 악성재고였다.

네임택도 없었다.


백팔이는 지금, 마리 당 팔만 구천원 하는 보급형 훈육 자실장 수조 안에 들어있다.

이제는 혼자 살지도 않는다. 이전보다 작아진 아크릴 수조 안에, 무려 두 마리의 동거실장이 있다.


"이제 다 컸네."


점장은 지나치면서 슥, 곁눈질로 백팔이를 바라보곤 말했다.

백팔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네."


나는 무심하게 집게를 들고 다가가, 백팔이를 집어들려다가...


"...아."


이제는 집게로 쉽게 들어올릴 사이즈가 아니라는 생각에 집게를 내려놓았다.

백팔이도 아마 알고 있었나보다.


녀석은 내가 들어올릴때 반항하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데에...』


그저 조용히, 내 팔에 매달려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백팔이의 새로운 집은 최하층이었다.

매장 문을 열고 들어와서 가장 구석에 가면, 최하층에 박혀있는 아크릴 수조.


그곳은 지옥이었다.

팔리지 못해 늙어버린 성체들, 분충끼가 극도로 심해 반품 당해버린 자실장들, 훈육 과정에서 탈락해버린 실패작들이 뒤엉킨 수용소.


바닥에 깔린 신문지는 이미 운치와 짓이겨진 실장석의 옷 조각으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디퓨저의 강력한 라벤더향이 아니었다면, 이 수조 하나만으로 가게 안을 악취로 뒤덮을 수 있었을 것이다.


[\ 1,780]


수조 앞면에는 성의 없이 찢은 A4 용지에 매직으로 쓴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백 팔만원에서 시작한 백팔이는, 여기까지 내려온 것이다.


『데프픗! 새로운 분충이 들어온데스!』

『테에에! 옷이 깨끗한 노예인테치! 내놓는테챠아!』


주변의 분충들이 게걸스레 백팔이에게 다가섰다.

녀석들의 몸에는 운치가 잔뜩 묻어있었고, 머리카락은 떡져 엉망진창이었다.


백팔이는 공포감과 본능적인 혐오감에 뒷걸음질 쳤다.


『데, 데에에...! 다가오지 마는데스!!』


그럼에도 녀석은 비명을 지르거나, 싸우지 않았다.

대신 녀석은 수조의 가장 구석진 모서리로 도망쳤다.


그리고서는 발뒤꿈치를 열심히 들어올렸다.

까치발이었다.


더러운 오물이 자신의 발바닥 전체를 덮는 걸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선 자신이 받은 교육에 어긋난다.


그 신념 하나로, 백팔이는 위태롭게 버티기 시작했다.

양손으로는 치맛자락이 바닥에 끌리지 않을까 필사적으로 치켜올렸다.


『오지마는데스...! 닿지마는데스!』


백팔이는 오물 속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처럼,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밤이 되었다.

다른 실장석들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기 위해 운치밭 위에서 서로 뒤엉켜 잠이 들었다.


하지만 백팔이는 그러지 않았다.

녀석은 앉을 수도 없었다. 앉는 순간 옷이 운치에 오염될테니까.


백팔이는 차가운 아크릴 수조의 벽면에 기댄 채, 까치발을 들고 서서 잠을 청했다.

퉁퉁 부어오른 종아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다음 날 청소 시간, 내가 청소 도구를 들고 다가가자마자 수조 안이 난리가 났다.


『똥닌겐!! 어째서 우마우마한 콘페이토를 가져오지 않은데스!!』

『고귀하고 세레브한 와타치를 빨리 사육실장으로 만들어주는테챠아아!!』


분충들은 아귀다툼을 벌이며 나에게 각자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백팔이와 눈이 맞았다.


"....."


처음이었다.

녀석은, 처음으로 눈빛을 통해 무언가를 강하게 나에게 바라고 있었다.


백팔이가 간접적으로라도 도움을 요청한 건 이게 처음이었다.


"....에휴."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잠시 고민하다가 깨끗한 휴지와 물티슈 몇 장을 뽑아 백팔이가 서있는 아래에 깔아주었다.

최소한 그 위에 앉기라도 하라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


백팔이는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 그 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분충들이 백팔이의 휴지와 티슈를 뺏으려고 달려들 기세였지만, 내가 본보기로 한 놈을 패대기쳐주자 조용해졌다.


백팔이는 처음으로 울었다.

녀석의 두 눈에서 적록의 눈물이 뚝뚝 떨어져, 휴지 위를 적셨다.






며칠 뒤, 겨울인데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기분 나쁜 날이었다.

손님이 뜸한 시간, 가게 문이 거칠게 열렸다.


들어온 남자의 행색은 백화점에 어울려보이지 않았다.

푹 눌러쓴 모자, 무채색의 바람막이, 검은색 방한 마스크.


"어서 오세요."


남자는 나의 인사에 가볍게 고개만 끄덕인 뒤,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멍청한 실장석들이 사방팔방에서 자신을 데려가라며 아우성이었다.


남자는 그 분위기 자체를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다가 그는 곧 마음을 먹은 뒤, 구석에 있는 1,780 원짜리 아크릴 수조로 향했다.


『새로운 똥닌겐이 온테치?』

『데프픗! 이번에야말로 와타시를 사육실장으로 모시려고 온 데스?』


놈들은 서로 밟고 올라서며 남자에게 자신을 데려가라 아우성쳤다.

하지만 백팔이는 달랐다. 녀석은 여전히, 자신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지키는 걸 선택했다.


백팔이는 내가 갈아주고 있는 휴지와 물티슈 위에 다소곳이 서서, 남자를 향해 인사했다.

항상 그래왔듯, 45도의 정확한 각도로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어서 오시는데스. 만나서 반가운데스.』


소란스러운 수조 안에서 홀로 피어난 고고한 꽃.

남자의 시선은 백팔이를 향했다.


그 순간, 나는 불안함에 휩싸였다.

고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면, 그 남자는 학대용 실장석을 구매하러 온 게 분명해보였으니까.


백팔이를 아끼거나, 행복해졌으면 하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백팔이가 지금까지 자신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바친 노력과 인고의 시간이...

저런 것으로 보답받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내 기대가 무색하게도, 남자는 마스크 너머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백팔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남자는 수조 안으로 손을 뻗었다.


백팔이는 드디어 됐다는 듯, 황홀한 표정으로 사내의 손을 맞이하기 위해 두 팔을 벌렸다.

남자의 손이 백팔이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온 순간이었다.


후우욱─!


남자의 손, 소매 안 쪽, 손톱 사이사이.

모든 곳에서 배어 나오는 진한 냄새가 백팔이의 코를 찔렀다.


주인의 따뜻한 살 냄새와 달랐다.

진한 피비린내, 톡 쏘는 냄새.


죽어간 수백 마리의 동족들이 마지막 순간에 내지른 비명의 향기.


실장석은 바보지만, 생존에 있어서는 예민하다.

곧, 같은 냄새를 맡은 수조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학대파가 온데샤─!!』

『도망치는테치!! 도망치는테치!!』


아수라장 속에서, 남자의 손에 잡힌 백팔이의 두 눈이 떨렸다.

백팔이는 남자의 손에서 도망치기 위해, 생에 처음의 반항을 시작했다.


『시, 싫은데스...! 가지 않는데스...!』


그 모습을 본 남자의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똑똑하네, 재밌겠어."


남자는 도망치려는 백팔이를 붙잡아, 수조 밖으로 꺼냈다.


"계산해주세요."


안타깝게도, 그 때 나는 카운터를 보고 있지 않았다.

카운터에 있는 건 점장이었다.



점장은 곁눈질로 그들을 살피더니, 주저없이 계산을 시작했다.



남자의 팔에 붙들린 백팔이는 발작하기 시작했다.


『놓는데스!! 이거 놓으란데스!!』


백팔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분노와, 억울함이 각기 다른 색깔로 흐른다.


『이건 아닌데스!! 이건 아닌데스!! 와타시는 착하게 살았던데스!! 전부 참았던데스!!』


하지만 학대파 남자는 그 녀석의 비명과 발작을 배경음 삼아, 결제를 마쳤다.

저가용 실장석을 담는 포장 박스에, 백팔이는 내던져진다.


『브리더 상의 말을 어긴 적이 없는데스!! 자를 가지고 싶어도 꾹 참았던데스!!』

『콘페이토도 더 많이 먹고 싶었던데스! 스테이크도, 스시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던데스!!』

『닌겐상의 말을 모두 지킨데스!! 아첨하지도, 노래도 부르지 않은데스!!』


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박스의 날개가 접힌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백팔이는, 울부짖었다.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뿐인데스!! 전부 참고 견뎌낸데스!!』

『오늘 아침까지도 머리를 빗은데스!!』

『와타시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


박스의 뚜껑이 덮였다.

남자는 박스를 든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게를 나갔다.


그게 내가 본 백팔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얼마 안 가 알바를 그만두었다.


계절은 다시 돌고 돌아, 늦은 봄 초여름이었다.

나는 시내를 걷다가, 새로 생긴 대형 실장샵 앞을 지나게 되었다.


통유리 벽면 너머로, 꼭 내가 일했던 곳과 닮은 아크릴 타워가 보였다.

그 꼭대기, 유리 수조.


유리 수조인것까지 똑같아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들어 가게 안을 더 들여보았다.

꼭대기의 유리 수조에는, 과거의 백팔이를 연상하게하는 어린 자실장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녀석은 유리창 너머에서 내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보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우수 혈통 / 전문 브리더 훈육 / IC칩 내장 / 최고급 반려 자실장 / A+등급]
[\ 1,380,000]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그건 녀석이 아니라 백팔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유리창 너머로 째깍이는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너는 1,780원이 될 때까지, 그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끝)








늙은 사육실장 (ㅇㅇ(121.142))


우리집에 사는 미도리는 실장석 중에서는 특이하게 스무살을 넘긴 특이한 개체이다.

아버지가 결혼 하기 전부터 키우다 결혼하고 나서 신혼집에서 키워지게 되었으니 사육실장으로써 별탈없이 지냈음을 알 수 있었다.


"데에? 작은 주인사마 오늘은 푸드씨를 3알만 먹었는데도 배부른데스."


미도리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밥을 적게 먹었다. 실장석이 아무리 엉망진창인 생명체여도 나이에 따른 노화가 있는 것을 볼 때면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미도리는 내 인생의 최초의 기억 속에서도 성체였다. 어머니가 말하길 내가 미도리의 팔을 무는 습관 때문에 미도리도 엄마도 고생했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었다.


아무튼 어렸을 적의 나는 미도리와 자주 놀았었다. 미도리와 같이 매지컬 테치카를 보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그랬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친구들이 생기긴 후에도 노는 빈도가 줄어들긴 했으나 여전히 난 미도리의 친구였고 가족이었다.


미도리는 특이하게도 임신중절 수술을 받지 않았다. 그러고도 자를 낳고 싶다느니 콘페이토나 스테이크 같은 소위 분충이라고 불리우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자를 낳고 싶은지 물어본적이 있었다. 친구들의 사육실장이 멋대로 자를 가지고 버려진 이야기를 들었을 적이었다. 


"와타시는 이미 가족이 있는 데스."


간단한 대답이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미도리는 우리나라 사육실장 산업의 초기 때 교육 받은 개체이다. 그렇기에 가끔 미도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나오는 사육실장들의 교육이랑 많이 다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와타시의 어릴적은 농장에서 지낸데스. 마마와 이웃상들이 자를 마음껏 낳다가 관리인씨가 와서 자기 마음대로 판별하는 방식이었던 데스. 와타시는 보통의 펫숍에서 진열된 데스. 그 시절엔 와타시타치 전용 숍이 없었던 데스. 교육은 딱히 없던 데스."


요즘 사육실장에 비해 널널하고 허술한 시스템에서 자랐기 때문에 사육실장 사업 초기는 주인에게 투분하는 개체가 돈 받고 팔리던 시절이라고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장해 나아갔다.


미도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거동이 불편한지 움직임이 둔해졌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가던 난 커지고 성장하고 있었다.


집에서 대충 쉬고 있던 미도리를 오랜만에 산책 시키기로 했다. 나는 실장석 전용 목줄과 배변봉투를 챙기고 공원으로 향했다.


미도리의 걸음이 느린 탓인지 산책은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 몇 걸음 걷고 데히 데히 하면서 숨을 몰아쉬는게 나이가 들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결국 근처 벤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챙겨온 푸드 몇 알을 미도리에게 주었다. 미도리는 데스데스 거리며 잘도 먹었다.


휴식을 취하면서 사육실장과 산책을 하는 다른 사람을 보았다. 핑크색에 매지카 테치카 마법봉에 자 여섯마리에 사육실장에게 질 수 없다는 듯이 잔뜩 꾸며 입은 아줌마 사육주는 그 사육실장에게 에메랄디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고급 푸드를 먹이고 자들에게까지 먹였다.


나는 에메랄디를 본 뒤 미도리를 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초록에 프릴 달린 실장복, 언제 샀는지도 몰라서 다 헤진 매지카 테치카 마법봉, 보통의 푸드. 마법봉은 최근엔 지팡이로 쓰이고 있어 그 용도가 바뀐지 오래였다.


에메랄디는 근처에 있던 나와 미도리를 보곤 자들에게 우리를 가르키며 비웃었다.


"자들 저기 보는데스! 참으로 비루한 모습인 데스. 데프프픗! 와타시타치와 다르게 세레브하지 않은 데스."


"마마! 와타시가 노예로 만들고 오는 테치!"


"장녀, 저건 노예로 만들 가치도 없는 분충데스. 와타시타치와 같은 세레브 개체들이 다가가다간 분충이 전염되는 데스요 데프프픗!"


아무리봐도 사육주가 어마어마한 애오파였나보다. 자들을 무지성으로 싸질러도 그걸 다 분홍옷으로 입히고 키우질 않나 저런 분충 발언도 냅두질 않나 직접적인 시비가 없기에 조용히 있었으나 저 사육실장의 막내로 보이는 개체가 갑자기 다가왔다.


그리곤 갑자기 내 바지에 투분했다.


"이제 아따시의 노예인 레치! 어서 아따시에게 스시와 콘페이토 스테이크를 바치고 전다중우주의 위대한 지배자이자 은하의 수호자, 마마의 든든한 막내, 엄지 실권의 대표자, 세레브 협회 올해의 베스트 세레브 우승자, 사육실장으로 삼고 싶은 자 1등, 귀여운 엄지인 아따시를 향해 복종하는 레치!"


기분이 더러웠으나 요샌 이런거에 일일이 대응했다간 오히려 신고를 당하는 시대였기에 피했다. 꼬라지 보니 얼마 안있어 버려질 놈 같았다.


"뭐하는 레치?! 복종하는 레챠아아아아!"


아무리봐도 별신경 쓸 가치가 없는 놈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매우 조용했다. 미도리는 걷는 것이 힘들었는지 나에게 안기며 가고 싶다고 말했기에 나는 미도리를 가슴에 앉고 집에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미도리"


"작은 주인사마?"


"매일 똑같은 푸드에 일상인데 안지겹니? 콘페이토나 사줄까?"


보통 사육실장은 점점 갈수록 교만해져 스시나 콘페이토 아니면 비싼 푸드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냥 푸드에 질려하는 거지만 실장 특유의 오만함이 그런 행위를 부추긴다.


"와타시의 일상은 매일이 특별한 데스. 다른 오바상이었으면 꿈도 못꿨을 생활을 하고 있는 데스. 큰 주인사마에게 왔을 때부터 와타시는 특별한 데스. 기본 푸드여도 괜찮은 데스. 주인사마가 주시는 푸드는 같은 맛이더라도 주인사마가 주시는 푸드이기에 특별한 데스."


"별게다 특별하구나."


"특별함이란 별게 아닌 것 같은 데스. 주인 사마가 집에 올 때 다른 인사를 하거나 아니면 평소와 다른 날씨가 있거나 주인사마가 와타시의 이름을 평소보다 많이 부르거나 사소한 것이라 해도 와타시가 그것에 특별함을 느끼면 특별한 데스. 고급 푸드씨가 있어도 세레브 옷씨가 있어도 그건 단순한 세레브함일 뿐 특별함이 아닌 데스."


이게 스무 살을 넘게 살아온 실장의 인생관일까 그럼 오늘도 특별한 날일까 생각하면서 어느새 잠든 미도리와 같이 집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 특별한 하루였다.



며칠 뒤 산책을 가보니 얼룩이 지고 해진 박스가 눈에 띄였다. 박스에 남아 있던 이름표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에메랄디'


특별한 하루였다.








영화관의 사육실장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있다..

크리스마스하면 생각나는 명작 영화들이 있다.

주인공인 실장석들이 출현한 명작영화.

[나홀로 지벳-] 

아 훌륭하지, 골판지상자에 홀로남은 엄지실장이 들실장들을 막아내는 명작영화.

[직스 액츄얼리]

각기 사육되는 사육실장들이 주인들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하지만 이런 장르는 내 취향은 아니야..

[미도리포터와 마법사의 위석]

집안에 방치되는 사육실장 미도리포터의 두근두근 마법학교 일대기! 판타지아카데미물? 이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

크리스마스를 대비해서 명작영화들의 TV방영 일정을 체크하던중 실장석이 주인공인 새로운 영화가 극장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래도 살아가는 데스]

요즘 영화업계가 힘들다더니.. 결국 크리스마스 시즌에 실장석이라는 치트키를 다시 사용하고 말았군.

[그래도 살아가는 데스]는 들실장으로 태어난 자실장의 생애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나는 통신사에서 개인정보 유출 피해보상으로 뿌린 포인트로 영화티켓을 한장 결제하고 보러갔다.



'데프프픗'

'주인사마 기저귀 갈아주는 데스웅~'

'데프픗, 저 분충은 아직도 다커서 기저귀를 차고다니는 데스'

'똥닌겐은 왜 팝콘을 안사온 데샤아악-!'


하.. 제대로 망했다. 
실장석 영화는 사육실장들과 주인들이 같이 좌석에 앉아서 볼수 있는거였구나,
평소에 영화를 극장에서 봤어야알지..

여기저기 시끄럽게 떠드는 사육실장들과 그걸 방관하며 휴대폰이나 들여다보고있는 애호파놈들

분충 사육실장놈들과 애호파는 다 손잡고 뒤졌으면 좋겠다. 

그리 생각하며 나는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집으로갈까 고민하고 있었으나

영화가 곧바로 시작하려는지 불이 꺼지길래 나는 영화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어느 들실장의 삼녀로 태어난 자실장이 주인공이며 모친은 먹이를 찾던중 고양이에게 잡아먹혀 죽었고

모친이 없어졌다는걸 눈치챈 다른 들실장들이 골판지하우스를 습격 하였으며

유일하게 살아남은 삼녀가 홀로 공원을 힘겹게 살아가다 결국 성체가 된 뒤

죽은 가족들을 기리며 꽃으로 임신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오로로롱~!! 오로로롱~!!'

'감동적인 이야기인데스웅~!!'

'오로로로롱!!!!! 일가를 실각시킨 똥분충들 용서치않는데스!'

영화가 끝난후, 과몰입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육실장들로 인해 울음바다가 된 관객석



'주인사마.. 와타시도 자를 갖고싶은데스.'

'오늘, 아니 지금 당장 자를 갖는데스. 바로 꽃을 주는데스!'

'총구 씻고올테니 잠깐 기다리는데스'

미친 똥분충 사육실장놈들이 자를 갖고싶다며 폭주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당황한 주인놈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목줄을 잡아 댕기며 얼른 자리를 뜨려고했으나 


스크린 앞 비상구석이 열리고 영화관 직원이 카트를 끌고 들어오며 말했다.

'꽃입니다! 꽃이요! 영화에 나오는 꽃이랑 같은 품종이에요! 한송이에 만원(6.76달러 12월 23일 AM 11:56 기준 제공 :  Morningstar )입니다!'


안그래도 대가리속에 자를 갖고싶다는 생각밖에 없는 사육실장석들이 싱싱한 꽃들을 보자마자 

눈이 돌아가 주인을 뿌리치고 바로 꽃카트에 달려들어 개지랄을 떨며 총구에 꽃을 비비기 시작했다.

수십마리가 꽃카트에 뒤엉켜 벌여지는 행위는 마치 다시는 볼수없으며 다시는 보면 안되는 장관이였다.


'데흐우우우우우웅~!!!!!!!!!!!!!!!!!!!!!'





실장석 영화에 그걸 노린 꽃장사까지.. 영화산업이 많이 위험하구나.

그래도 쿠키영상은 보고가야지.



쿠키영상에 제작진들과 출연진들이 나온다..

어?




~삼녀역 출연자들을 기리며~

[ 삼녀 역 : ]

미도리

미도리코

메리

에메랄드

그리니

미키

마리안느

녹구

치이코

...



뭐야, 연출된 다큐멘터리였어? 
촬영중에 삼녀역들은 얼마나 많이 죽은거야?




엔딩스크롤엔 이 영화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있었으나, 꽃카트에 파묻힌채 괴성을 지르고있는 똥분충 사육실장들에겐

이 진실은 중요하지 않은듯 하였다.








이기적인 코도리코


“테챠아!!”
“엉?”

불금을 맞이하려 퇴근하고 막 들어온 젊은 남자, 창우 앞에 나온 것은 조그마한 자실장이었다. 녀석은 뭐가 그리 당당한지 콧김을 씩씩 뿜으면서 창우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연신 뭐라뭐라 떠들어댄다.

남자는 생각한다. 이 집에 있는 실장석은 성체다. 이름은 코도리코. 들실장 출신이지만 영리하고 눈치가 빨라서 2년이 넘게 키우면서 문제 한 번 일으킨 적이 없다. 고로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이 작은 실장석은 코도리코가 아니다. 그렇다면?

단 1초도 되지 않아 남자의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정리되는 동안, 자실장은 삿대질을 멈추고 초승달처럼 휜 눈으로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바로 브리릿! 하는 소리와 함께 부풀어 오르는 자실장의 하반신. 냄새나는 녹색의 무언가가 자실장의 치마 속에서 흘러나오고 녀석은 웃으며 그 속으로 자신의 뭉툭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그 녹색의 반고체를 창우를 향해 휙 던지는 녀석. 굳이 피할 생각도 없었지만 자실장의 힘으로 날아온 덩어리는 채 10cm도 날지 못하고 퍽 하고 바닥에 떨어져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테퍄퍄퍄퍄!

맞지도 않았건만 저거 보라며 눈 뒤집어지게 웃는 녀석. 그리고 그 뒤로, 녹색의 공같이 생긴 놈들이 하나 둘씩 남자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데프프픗.”

장녀를 보낸 후 성체실장, 코도리코는 나지막 하게 웃음을 흘렸다. 완벽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는 계획이다. 주인 몰래 낳은 새끼들을 정성스레 기른 다음. 자실장들이 사리분별을 하기 시작할 때쯤이면 주인 앞에 내보내는 전략. 

이날을 위해 코도리코는 출산 전부터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계획을 짰다. 

거실에 있는 화분의 꽃 하나를 몰래 꺾어 수분한다. 거울을 보며 두 눈이 초록색이 된 것을 확인한 이후부터는 뎃데로게 뎃데로게 사랑을 듬뿍담아 노래하며 새끼들의 탄생을 기다렸다. 노래는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졌지만 그 전체적인 내용은 비슷했다.

뎃데로게~ 자들은 듣는데스. 마마는 사육실장인 데스~ 세상은 콘페이토와 스시, 그리고 스테이크가 넘쳐나는 천국인 데스~ 천하디 천한 들실장과 달리 오마에들은 사육실장의 자로서 세레브한 삶을 살 것인 데스~

코도리코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새끼들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그 꿈틀댐은 날이 갈수록 더욱 크고 힘찬 느낌이 들었다. 마치 환호하듯, 자신의 앞에 펼쳐진 세레브 라이프를 찬양하듯. 그럴수록 코도리코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분홍색 색소가 들어간 고급 푸드를 아작! 하고 한입 베어 문 코도리코는 그 푸드의 영양이 자식들에게 가길 바라며 노래를 잇는다.

뎃데로게~ 자들은 듣는데스. 어서 나와 마마와 같이 찬란한 영광을 누리는 데스. 온 세상이 오마에들의 것이고 온 우주가 오마에들의 놀이터니 오마에들은 사육실장으로서 만물의 지배자가 될 것인 데스~

노래는 이미 사육실장의 삶을 넘어 인간조차 불가능한 소유의 영역으로 넘어갔지만 일반적인 실장석이 그렇듯 코도리코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체 그러한 말을 거침없이 내 뱉었다. 자들이 태어나면 또 행복이 시작될 것이다. 지금까지도 행복했지만 더 행복해질 것이다. 코도리코는 입에서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데프픗 흘렸다.



이윽고 임신한지 2주가 될 무렵, 미도리는 슬슬 출산이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어디보자, 코도리코는 달력을 보았다. 음, 딱 좋다. 오늘은 화요일. 몰래 키우며 3번 해씨가 뜨고 질 동안 자들을 교육하면 금요일쯤에는 자들을 주인에게 내보내도 좋을 만큼 교육이 끝날 것이다. 느껴지는 태동은 약 4마리 정도. 영양도 잘 섭취했기에 적어도 3마리는, 아니, 어쩌면 4마리 모두 자실장으로 태어날 거 같았다.

능숙하게 물그릇에 물을 채우고 출산자세를 취하는 코도리코.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힘을 주자 그 밑으로 제법 큰, 점막에 싸인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텟테레!”

우렁차다. 원래 실장석들이 태어날 때 안 그래도 큰 소리가 더 커지지만 첫번째 나온 자의 울음소리는 다른 모든 실장석의 울음소리를 모아도 이것보단 작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탄생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마에가 장녀인 데스.”
“테햐!”

데챱데챱 점막을 취하고 활짝 웃는 코도리코의 말에 장녀라 불린 자식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환호한다. 장녀, 자식들 중 맏이이자 무엇이든 1등으로 받을 수 있는 존재. 만물의 위에 있다는 사육실장으로 태어난 것도 기쁜데 그중 첫번째다? 이건 환성을 지르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텟테레!”

코도리코가 장녀를 내려놓는 순간 두번째 새끼가 빛을 향해 뻗어 나왔다. 데챱데챱. 초보실장이라면 당황할만한 상황에서도 코도리코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능숙하게 점막을 취하자 팔다리가 쑥쑥 자라나며 자실장이 나온다. 

“오마에는 차녀데스. 여기 장녀와 함께 있는 데스요.”
“하이 테치.”

그 뒤로 두마리가 더 어미의 뱃속에서 나왔다. 그렇게 총 네마리. 코도리코의 예상이 얼추 맞아떨어졌다.

“자들, 이제부터 사흘간 오마에들은 몰래 숨어살며 마마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데스.”
“왜 와타치타치가 숨어 사는 테치?”

장녀가 묻는다. 

“몰래 숨어있다가 주인사마께 서프라이즈를 선사할 생각이기 때문인 데스.”
“왜 와타치가 닝겐노예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줘야 하는 테치! 그딴 건 와타치 재능의 낭비인 테치!”

차녀가 짖었다. 분충성이 가득하지만 코도리코는 마냥 귀엽다는 듯 웃는다.

“물론인 데스. 하지만 서프라이즈가 성공적일수록 오마에가 누릴 세레브 라이프는 더욱 클 것인 데스.”
“테에, 그러면 와타치가 친히 노예에게 서프라이즈를 제공해 주는 테치!”
“마마, 사흘인 뭐인 테치?”

이번엔 삼녀.

“해씨가 세번 오르고 내릴 시간인 데스. 어렵게 생각하지 마는 데스요. 마마와 세번 자고 일어나면 그때인 데스.”
“마마, 배고픈 테츄! 스테키와 스시는 어디있는 테츄?”

막내. 

코도리코는 예상했단 듯 옷을 끌어올리고 장녀부터 젖을 먹였다. 막 태어난 새끼들은 치아도 약하고 섭식력도 낮다. 어미의 젖은 그런 자실장들에게 넘치는 영양을 공급함과 동시에 그 안에 들어있는 호르몬을 통해 성장을 촉진시킨다. 사흘정도 젖을 먹이면 웬만한 들실장이 서너개월을 먹여 키운 자실장과 같은 체구를 가지게 될 것이다. 

“테에에엥! 마마의 맛나맛나는 와타치 것인 테츄! 와타치가 먹고 커져야 하는 테츄엥!”

어미의 젖을 다 마셔버릴 듯 쭉쭉 빠는 장녀와 차녀를 보고 막내가 질겁하듯 울었다. 매달린 두 자실장은 그런 막내를 흘끗 보고는 테프프프 치프프프 비웃었다. 어찌 이리 귀엽단 말인가. 코도리코는 장녀와 차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로부터 사흘간은 약속했던 것처럼 새끼들에게 숨어사는 법과 기타 필요한 교육을 했다. 3일동안 참을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자실장들은 매시간마다 열화와 같은 분노를 토했다. 소리를 지르고, 투명한 눈물을 흘리며 울고, 지금이라도 노예닝겐의 앞에 나가서 정당한 권리를 찾겠다는 소리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어르고 달래는 코도리코. 약속의 때가 온다. 기다려라. 분충덩어리지만 본능적으로 마마에게 대들었다간 순식간에 육편이 될 수 있음을 아는 자실장들은 툴툴 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숨어 지냈다.



그리고 대망의 데뷔일. 장녀, 차녀, 삼녀는 주인의 앞에서 ‘재롱’을 떨고 있었다. 코도리코의 마음속에 기쁨이 퍼져나갔다. 자실장은 네마리나 있다. 정도는 다를지언정 그들 중 적어도 하나 정도는 주인의 마음에 쏙 들 것이다. 저봐라. 장녀가 벌써부터 극대의 재롱을 부리고 있다. 차녀와 삼녀도 그 대열에 합류하려 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와타시의 세레브 라이프가 오는 데스.”
“마마?”

그런 코도리코를 바라보는 자실장. 막내인 사녀다. 자신의 윗자매 셋이 전부 나갔건만 막내는 아직도 코도리코의 발치에서 우물거리고 있었다.

“아닌데스요 4녀차. 어서 주인사마께 가는 데스.”
“진짜로 이러면 세레브 라이프가 펼쳐지는 테츄카?”
“물론인 데스.”

활짝 웃는다. 코도리코의 웃음에는 아무런 거짓이 없었다. 그에 용기를 얻는 4녀. 바로 주인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사녀 또한 배운대로 행한다. 주인에게 극상의 기쁨을 주는 재롱을 부린다.

“코도리코?”

창우가 웃는 얼굴로 코도리코를 부른다. 이거 느낌이 좋다. 주인은 웃으면서 4마리의 새끼를 집어들고 코도리코를 향해 다가왔다.



그날로부터 이틀간, 방음처리를 잘 해 놨던 덕에 집 안의 소리가 새나갈 일이 없는 남자의 집에서는 그야말로 학대 파티가 벌어졌다. 

먼저 위석을 찾아 활성제가 든 통에 담근다. 이건 학대의 기본이다.

“테챠아!!! 와타시가 왕자님과 키스할 입에 그딴 더러운 거 넣지 마ㅜㅎ메ㅐㅗㅁ오!!!”

그러고는 니퍼를 입에 넣어 치아를 하나하나 뽑고 남은 부분을 소형 토치로 지진다. 핵심은 이를 ‘하나씩’ 뽑는 것이다.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나선지 치아가 아주 튼튼하게 잘 났다.

“머, 머리카락이!!! 테에에에에엥!!!”

그 다음에는 머리카락을 뽑는다. 그것도 한 번에 다 뽑는 게 아니라 몇 올씩 검지 손가락에 감은 뒤 엄지로 쥐어 뽑는다. 노예라 여겼던 닝겐에게 잡혀 자신이 노예가 된다. 심지어 아주 천천히. 머리카락은 야속하게 뽑혀 나가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무력감이 실장석들의 마음을 휘감았다.

“눈씨! 눈씨 돌아와 주는 테치! 와타치의 아이가!”

그 다음 옷을 찢어버린다. 거기에 더해 몇 놈은 눈을 뽑는다. 그것도 한 쪽만. 그러고는 그 중 한 놈만 활성제를 눈에 발라 눈이 다시 생기게 만든다. 그러면 놈은 학대받는 처지도 잊고 다른 자매들을 비웃는다. 

“테프프프프! 오마에들 같은 더러운 것들은 와타시와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없는 테치. 어이 닝겐노예! 이제사 자신의 위치를 안 테치? 어서 와타시에게 발모제와 분홍 드레스를 ㄱ…테챠아!!!!”

물론 그 놈도 다시 눈을 뽑는다. 눈이 생겼다가 다시 눈이 뽑히면 그 절망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별했던 자신이 다시 특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치프프픗 잘난척하더니 꼴 좋은 테치.”

깔아보던 자매들에게 비웃음을 받는 것은 덤.

“마마! 와타치를 구하는 테츄아!! 약속했던 세레브 라이프는 어디있는 테츄!!”

고문이 반복되자 막내가 어미를 찾는다. 그 소리에 다른 자매들도 어미의 존재를 떠올렸다. 

“걱정마라. 너희가 끝나면 그 다음은 코도리코의 차례니까.”

창우가 말했다. 자실장들은 창우의 눈을 보았다. 악마가 저런 것일까? 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마마도 저 손길을 피해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 켠에 만족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일요일 저녁. 이틀간 행한 학대의 끝은 역시나 파킨사였다. 검은 물줄기가 말라붙은 네개의 떡덩어리를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담는다.

“후~”

만족감에 가벼운 한숨을 쉬는 남자. 

“자, 이제 약속한 대로 코도리코 차례지.”
“부르셨는 데스까?”

어느새 남자의 옆에는 코도리코가 와 있었다. 그리고 웃고 있었다. 창우는 그 얼굴을 보고 답으로 함박 웃음을 돌려주었다.

“이번에도 또 잘 즐겼다야 이번에 걔, 장녀였나? 여튼 그놈은 진짜 분충 오브 분충이더라. 아주 좋았어.”

창우가 코도리코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다. 코도리코가 기분 좋은지 뎃승 하고 운다.

무척 똑똑하기에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와 반대로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코도리코는 2달에 한 번씩 자실장을 낳아 주인 앞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주인은 그 ‘서프라이즈’를 받고 신나게 자실장들을 학대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주인의 취미에 걸 맞는 초특급 분충을 만들기 위해 코도리코는 자기가 아는 수단을 총동원하는 것은 물론, 실장폰으로 인터넷의 바다를 뒤지며 정보를 끌어모았다. 코도리코의 지식이 올라갈수록 태어나는 자실장들의 분충도는 점점 높아져 이윽고 하늘을 찔렀다. 

그 분충을 학대함으로써 창우는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고 코도리코는 그 반대급부로 주인의 애정과 충분한 의식주를 보장받는다. 그야말로 윈윈이고 양자가 만족하는 그런 생활이다. 물론 중간에서 죽어나가는 자실장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야 이번에도 수고했다. 오늘은 기분도 좋으니 통삼겹살 사와서 에어프라이어에 구워먹자.”
“좋은 데스요 주인사마.”

창우의 말에 반색하는 코도리코. 그렇다. 세레브 라이프는 펼쳐졌다. 단지 그 주체가 자실장들이 아니라 오롯이 창우와 코도리코에게만 해당한다는 게 문제였을 뿐이지만.

“데프프픗~ 고마운 데스요 아가들.”

그 소리에 어딘가인지 모를 곳에서 테챠! 소리가 들렸지만 둘이 나가고 없는 방에 공허하게 울려퍼질 뿐이었다.








왜 사지멀쩡한 실장육이 더 비싸냐고?


“왜 사지 멀쩡한 실장육이 더 비싸냐고?”

G는 자실장을 굽다말고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새로 생긴 식실장 구이 식당. 나는 오랜만에 식실장 공장에 근무하는 친구 G와 만나 회포를 푸는 중 오랫동안 궁금했던 것 하나를 문득 떠올리고 질문을 던졌다.

“아니 생각하면 좀 웃기잖아.”
“그게 웃길 게 있나?”

“테취아!! 테츄아아아!! 테붹!!” (이거 놓는 테챠!! 이 보배를 건드리면 오마에 찌저주기는 테챠!! 테뷁!!)

나는 불판에 올라간 자실장을 가리켰다. 

“아니 봐봐. 자, 일반 식실장 고기는 다른 고기, 소고기나 돼지 혹은 닭고기처럼 다 부위별로 손질되어 나오지?”
“그렇지.”
“그런데 이런 가게에서는 그냥 한 마리가 통째로 나오잖냐?”

끄덕끄덕. G가 긍정한다.

“테챠아아아악!!! 테샤악!!!!” (와타치사마의 세레브하고 고져스한 몸을 이런 식으로 다룰 수는 없는 테챠아아아!!!!)

시끄러운 놈의 성대를 익혀버릴 심산인지 G는 자실장을 뒤집어 버렸다.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통째로 나오는 놈들은 굳이 손질할 필요도 없고 그냥 세척하고 출하하기만 하면 되는데 일반 실장육을 사서 한 마리 만드는 것보다 비쌀 이유가 있냐는 거지. 생각해보면 마치 저지방 우유가 지방을 빼는 추가공정이 들어갔으니 더 비싸다라는 급의 헛소리 아닌가 싶어서.”

G는 이야기를 듣더니 팔짱을 끼더니 흐음하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이 친구야 고기 탄다. 안 구울 거면 집게는 이리 주고 고민해라.

“테치아아아아악!!! 테챠!!!!(뜨거운 테챠!! 고귀하고 존엄한 레이디인 와타치에게 무슨 짓인 테챠!!!)

내가 집게를 잡아 자실장을 뒤집자 온 몸에 검은 선이 그어진 자실장이 우렁차게 외쳤다. 그걸 보더니 피식 웃은 G가 입을 열었다.

“너 현미밥 먹어본 적 있냐?”
“갑자기 그건 왜?”
“아니 일단 대답해봐.”
“음, 있지. 가끔 현미밥 해 먹어.”
“너 그러면 뭔가 이상한 거 못 느꼈냐?”
“뭐가?”
“현미가 뭐냐? 수확한 쌀에서 껍질을 덜 벗긴 거지? 다 벗기면 우리가 흔히 먹는 백미가 되는 거고.”
“어 그렇지? 도정을 덜한 쌀이지.” 
“그런데 현미가 백미보다 더 비싸지?”
“어?”

“테에에에엥!! 테치 테치 테챠!!!!! (똥닝겐은 그만 떠들고 고귀하고 세레브하신 와타치를 뜨거뜨거에서 구하는 테챠!!!!!)”

G는 씨익 웃더니 내게서 집게를 다시 받아들고는 자실장을 꾸욱 눌렀다.

“테챠아아아!!!!!!!!!”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냐? 백미보다 더 도정을 덜했다는 건 공정이 덜 들어간 건데 왜 백미보다 현미가 비쌀까?”
“어…생각해보니 그렇네?”
“자, 내가 설명해줄게. 첫째로 도정기를 보면 요즘은 거의 다 백미용으로 나와.”

“테츄아악!!!! (마마! 불행하기만 했던 와타시를 구하는 테츄아아아아!!!)

“그러니까, 너나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 생각과는 달리 도정기로 조금만 깎으면 현미, 더 깎으면 백미 뭐 이런 게 아니고 오히려 백미를 깎는데 최적화된 기계가 있는 거야.”
“흠, 그렇구만?”
“그런 상황에서 현미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정미소는 현미만을 깎는 기계를 하나 더 들여놔야 하는 거지.”

“테찌이이이이!!!! 찌이이이이!!!!” (찌이이이이!! 와타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찌이이이이!!!)

몰랐다. 그러고보니 현미가 비싼데도 나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사먹고 있었다. G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아니, 막말로 도정정도에 따라 현미, 백미 도정이 둘 다 가능한 기계가 있다고 쳐도. 일단 현미를 깎으려면 셋팅을 다시 해야한단 말이지? 그리고 그 셋팅이 빨라도 최소 30분 정도는 잡아먹을 거고 말이야.”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거 셋팅하는데 30분은 좀 오바다.”
“솔직히 30분이면 빠른 거야. 평균적으로 한시간은 걸려.”
“아니, 무슨 셋팅이 30분에서 한시간이나 걸려?”
“아닐 거 같지? 셋팅만 하면 다냐? 일단 쌀 투입해서 셋팅한데로 깎이는지 확인하고 그게 아니면 다시 쌀 넣고 그걸 될 때까지 해야해. 그러면 그거 하자고 쌀 낭비하고 시간 쓰지.”
“아…그렇겠네.”
“너도 나처럼 경제학 전공한 대졸 나부랭이니까 알 거 아니냐? 이거 한다고 할 동안 까먹는 시간은 뭐다?”
“그 시간에 백미 도정하는 걸 포기한 기회비용이지.”
“그렇지. 그리고 아무래도 현미는 백미에 비해 수요가 적지? 그러면 생산도 많이 안 할거고 그 찔끔 생산한 현미에 고정비용, 도정비, 그리고 기회비용까지 녹이면?”
“아, 그러니까 양 적은 현미에 백미 생산하는 비용의 곱절이 얹어진다는 말이구만?”
“빙고.”

G는 가볍게 박수를 쳤다. 이런 게 뭐라고 나는 살짝 들떠서 굽고있던 자실장을 나도 모르게 꾸욱 눌렀다.

“테에에에….테지이…테? 테챠아아악!!!!!” (살려주는 테치. 와타치는 닝겐상의 노예인 테치. 살려만 주면 흑발의 자를…테? 테챠악!!!!)

“그리고 이걸 아까 네가 말한 식육용 실장석에 대입해봐.”
“너네 공장도 그러냐? 전용기계가 있고 막 그래?”
“어. 우리 공장은 식실장육 생산의 거의 전 공정이 자동화가 되어 있어. 사람이 손으로 하는 건 실장석을 투입하는 것과 포장된 실장석의 품질을 검증하는 것뿐이지.”

G는 무언가를 투입하는 듯한 손짓을 하며 설명했다.

“실장석을 투입하면 일단 세척모듈이 용액을 분사해서 옷과 머리털을 녹이고 물로 씻어내. 그 다음엔 다음 모듈이 팔다리를 썰고, 다음은 척추를 들어내는 모듈이 몸을 가르고 척추를 들어내지. 이런 구조로 흘러가.”

흐음. 나는 계속하라는 신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걸 사지 멀쩡하게 내놓으려면 팔다리를 써는 모듈, 머리를 써는 모듈, 뼈를 빼내는 모듈 거기에 기타 등등의 모듈을 끄고 거기에 사람이 들어가서 일일이 끄집어 내서 포장기에 넣어야 한다는 거야.”
“아. 자동화된 모듈 중간에 사람이 들어가야 되는 거구나.”
“그렇지. 그리고 그렇게 사지 멀쩡한 놈들 생산한 이후에는 다시 기계 모듈 연결하고 재가동가며, 그거 제대로 된 건지 다시 셋팅 확인해야 하지.”
“하, 거 완전 난리구만.”
“그러고서도 그 사지멀쩡한 놈들 생산량이라도 많은가 하면 그것도 아냐. 사람이 다 손으로 해야하기 때문에 기계 공정 대비 생산성이 한 1/3 나오나? 그러면 그 인건비에 그 시간동안 일반 실장육을 생산했을 시 얻을 수 있는 기회비용까지 더해지면 볼장 다 본거지 뭐.”

“테에에에엥…”

“아니 그런데. 그러면 그런 사지멀쩡한 놈만 뽑을 수 있는 라인을 만들면 되는 거 아냐?”

내 질문에 G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안돼. 라인을 따로 깔 수요가 없는데 그걸 어떻게 해.”
“엥? 수요가 없다고?”
“흔히 우리 같은 학대파라는 양반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지들이 뭐 세상의 절대다수인줄 알아요.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값싸고 맛있는 고기를 먹고 싶어하지 고기를 학대하면서 먹는 취미는 없단 말이지. 안 그러면 학대용 식실장 파는 식당이 이만치 희귀하겠냐고.”

뼈아픈 소리다. 학대파들은 모든 식실장 식당이 실장석을 학대하며 먹는 줄 알지만 그런 식당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당장 나와 G가 앉아있는 이 식당만 해도 이 수도권 남부에 단 2군데 밖에 없는 곳 중 하나다. 

“수요도 적어, 돈도 안 돼, 비용은 갑절이야. 그러니 사지 멀쩡한 놈이 훨씬 비쌀 수 밖에.”
“하, 결국은 수요와 공급의 문제구만.”
“유구한 역사지. 왜 교수님이 경제학은 이걸로 시작해서 이걸로 끝난다고 했는지 알 거 같다.”

“테에에엥…” (와타치를 먹지 마는 테에에엥…)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겋게 익어버린 자실장을 둘로 찢었다.

“테찍!!!”

“누군가는 가위로 써는 게 좋다지만 이렇게 젓가락으로 거열형을 집행하는 게 최고지.”
“죄인 자실장은 역적죄로 거열을 받으라~”
“미친 ㅋㅋㅋㅋ”

고기굽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두 남자의 술잔이 짠 하고 맞부딪힌다. 

밤이 깊어간다.








참피와 말



[와타시가 그만하라고 했는 데스!! 그러면 그만 해야 하는 데스!! 그런데 왜 그만 안 하는 뎃샤!!]

이 더러운 놈은 오랜만에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사 가던 내게 나타나서는 뭐라할 틈도 없이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비닐봉투에 지 똥을 처바른 놈이다. 집에 빨리 가려고 공원길을 가로지르던 게 잘못된 판단이었나 보다. 아니 그런데 이 작은 도심공원에 이런 놈이 어떻게 살고 있지?

그래도 다행히 비닐봉지가 막고 있고 안에 든 것들도 대부분 비닐포장이 된 것들이라 봉지에서 냄새 나는 거 외에는 별 피해가 없었지만 너무 화가나서 발로 밟아 댔는데 뭐라뭐라 지껄이길래 폰을 꺼내서 링갈을 켜보니 저 지랄을 떨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그만하긴 뭘 그만해! 갑자기 튀어나와서 남의 거에 똥 발라놓고 적반하장으로 지랄이네!”
[그게 어떻게 똥닌겐 것인 데샤!!! 그건 와타시 것인 데스! 와타시가 그리 말했으니 와타시 것인 데스!]

뭔 개소리야 이 미친 참피새끼는? 나는 발에 무게를 실어 놈의 다리 두 쪽을 짓밟았다. 곧 뼈가 산산조각나는 소리와 함께 참피놈은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다시 내 봉투를 보고는 자기 거라고 울부짖었다.

“이게 왜 네꺼냐 참피새끼야!”
[와타시가 와타시 거라고 했으면 와타시 거인 데스! 심지어 멍청한 똥닌겐이 그것도 못 알아 들을까봐 친히 고귀한 와타시의 운치까지 발라놓은 데스! 그 정도면 아무리 배운 것 없고 눈치 없어도 알아서 먹을 걸 바치고는 공손히 물러나도 모자랄 판에 이런 폭거를 저지르는 데샤!!!]

와 이 정도쯤 되면 어처구니가 없는 걸 넘어서 웃음이 나온다.

“네가 뭐라도 되냐? 아니, 뭐가 된다고 한들 내가 내돈 주고 사온 물건에 똥칠한다고 네 거가 되는 게 말이 되냐? 왜? 아주 세상 모든 것에 똥칠하고 네 거라고 우기지?”
[세상씨는 와타시에게 봉사해야 하는 데스! 와타시는 아무런 대가 없이 세상씨와 노예들에게 섬김받아야 한단 말인 뎃샤! 그런데 왜 와타시가 말해도 안 해주는 데스!! 이건 직무유기인 데스! 다 신고해버릴 거란 데스!!]

꼴에 신고라는 단어는 또 어디서 듣고 온 건지. 나는 신고해보라고 조롱하면서 참피놈 양 손마저 짓이겨 놓았다.

[데—갸--------!!!]

이제는 비명인지 포효인지 링갈로 번역도 안 되는 피 끓는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어이쿠, 검은 눈물도 흘리고 있네.

“저기, 무슨 일이십니까.”

그러고 있자니 경찰관 한 분이 다가오신다. 걸으면서 오시는 걸 보니 신고를 받거나 해서 오신 건 아니고 우연히 주변을 돌다가 내 모습을 보고, 그리고 이 실장놈 비명을 듣고 오신 모양.

경찰관을 보더니 초승달 눈을 휘며 데프프 웃는 성체. 같잖아서 피식 웃어주고는 경찰관분께 자초지정을 설명 드렸다. 녹색의 분비물이 묻은 명백한 증거까지 있다 보니 경찰관 분은 순간 얼굴을 찌푸리고는 놈을 흘겨보신다.

[어서…저 똥닝겐을 체포하란…]
“어휴, 욕보셨네요. 요즘 저런 놈들이 가끔 나와서 저희도 골치입니다.”
“몇놈 저런 놈이 나오나 보죠?”
“말도 마세요. 갑자기 튀어나와 행인들 방해하고, 그거 까지면 좋은데 똥 바르려 들고 그때마다 파출소에 신고접수가 엄청 들어옵니다. 저희가 뭘 어쩔 수가 없는데 말이죠.”
“고생하시네요.”

내가 비닐봉지에서 음료수 한 캔을 꺼내 드리자 이런 거 받으면 안 된다고 한사코 사양하시는 경찰관분. 그래도 고생하시는데 호의로 드리는 거기도 하고 마침 CCTV도 없는 고마운(?) 상황이라 몇 번 권하니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음료를 받아 드신다.

[데? 데에?]

한편, 자기가 원하는 데로 나는 체포되고 내가 산 주전부리들은 자기 것이 되기는커녕, 나와 경찰관분이 화기애애하게 담소만 나누자 성체놈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이다.

[어째…서인 데스…와타시는 이…세상의 왕…]
“그럼 이 놈은 저기 쓰레기통에만 잘 버리고 가시면 됩니다.”
“넵.”

경찰관분이 가시고 나는 대충 과자 하나를 꺼내 다른 과자 비닐에 대충 옮겨담고, - 그 와중에도 내가 과자봉지를 뜯으니 제놈 주는 줄 알고 데프프 웃은 참피놈이 레전드다 진짜 – 빈 과자비닐을 장갑처럼 써서 성체놈 뒷덜미를 들어올렸다.

[또옹 닝겐…어서 와타시를 집으로 모셔가…]
“어 그래. 어서 네가 있어야 할 집으로 가자. 저 쓰레기통에 있으면 수거하시는 분이 오셔서 수거하실 거야.”
[그게…무슨…망발…]
“그리고 매립지 가서 그때까지 살아있으면 산체로 묻히거나 소각장 가서 불타 죽을 거다.”
[데히…!]

그제서야 자신이 죽음의 원 웨이 티켓을 끊었다는 걸 알아챈 참피놈. 내게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둥거리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은 지렁이가 꿈틀대는 것 만도 못한 움직임을 보일 뿐이다.

[벗어나는 데스…움직이는 데스…똥 닝겐은 와타시에 메로메로 될 것을 명하는…]
“그래그래 여기서 잘 기다리렴. 혹시 아냐? 청소부 아저씨가 네게 메로메로 될지?”

쓰레기통 뚜껑을 닫고, 나는 어디서 울려 퍼지는 지 모를 데에엥 소리를 배경으로 집으로 걸었다.



집에 와서 봉지 내용물을 꺼내 정리하고 있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음을 넘어서 궁금증이 들었다. 도대체 왜 참피놈들은 자기가 말을 하면 다 그대로 이뤄질 거라고, 아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고보니 저번에 누가 마이튜브에 올린 영상에는 수조에 든 자실장이 왜 밥하고 콘페이토를 가져오라 하는데도 아무도 안 듣냐고 호통(?)치는 영상도 있었지.

이놈들은 진짜 자신이 말하면 뭐든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이튿날 학교에 가서 공강시간에 동아리 방에서 뻐팅기다가 오타쿠 동기녀석에게 내가 겪은 이야기를 해줬다. 동기 녀석은 그걸 듣고는 그거 마치 언령 같다고 이야기했다. 언령이 뭐냐고 물으니 그 일본 만화 같은 데서 나오는 개념인데 말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어서 특정한 말을 하면 그 말에 담긴 힘이 발휘된다는 것이었다. 즉, 참피들은 자기 말에 언령 같은 힘이 있다고 믿는 거 아니냐는 것.

그 자리에서는 그게 무슨 되도 않는 소리냐며 웃었다. 동기도 진지하게 한 이야기는 아닌지라 같이 웃었는데, 집에 와서 그 말을 곱씹어보니 왠지 그동안 참피들이 해온 행동을 봐서는 진짜 그 언령인지 뭔지와 연관성이 있어 보였다. 게다가 더 깊이 생각해보니 참피놈들의 고향도 마침 일본이지 않은가?

생각난 게 있으면 바로 해야 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즉시 풀어야 한다는 내 좌우명 답게, 나는 바로 그날 학교 중앙도서관으로 돌진하여 언령과 참피에 대한 책을 닥치는 데로 찾았다.

먼저 조사한 책들은 일본의 ‘언령’에 대한 책들. 뭔가 학술서 같으면 대충 다 모아놓는 대학교 도서관 답게 이런 것에 관련된 책들도, 다소 오래된 것이 많긴 했지만, 얼추 몇 권은 있었다.

책들을 읽고나니 신기한 게, 의외로 말에 힘이 담겨 있다는 생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퍼져 있었다. 존귀하거나 무서운 것은 일부러 그 이름을 피해 부르지 않는 행위는 동아시아에서는 피휘, 유대인 같은 셈족계통에서는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근대이전까지 유럽에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이름을 알면 그것을 물리칠 수 있다는 전설이 여럿 내려왔다고 한다. 이건 그 존재의 ‘진명’을 부르면 그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일본의 주술적 전설과도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또 조금 딴 소리긴 하지만 그렇게 직접적인 이름을 피해서 부르다가 나중가면 아예 그 이름이 실전되는 경우도 생기는데 앞서 말한 셈족계통이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다가 그걸 까먹고 나온 게 야훼고 게르만 / 슬라브어권에서는 곰이 너무나 무서워서 ‘갈색 그것’ 혹은 ‘꿀 먹는 것’ 등으로 부르다가 나중에는 아예 곰의 원래 이름은 잊어버리고 그 별칭이 곰의 명칭이 되었다.

심지어 그런 관념은 지금도 있다. 물론 주술적인 힘이니 그런 걸 믿는 건 아니고 낙인효과라고 해서 여러 명의 사람이나 집단이 한 사람이나 다른 집단에게 ‘너는 ~~한 사람이다.’ 라는 말을 되풀이하면 청자가 어느새 자신을 그 틀에 끼워 맞추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런 것까지 조사하고 나니, 서서히 참피들의 행동양식에 대해 단서조각이 모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 결정적인 것, 그러한 개념을 참피가 어떻게 알게 되었나 하는 것이 남았다.

그래서 대충 언령을 비롯하여 언어가 가진 힘에 대한 믿음에 대해 감을 잡은 나는 그 뒤로는 참피에 대한 책을 뒤졌다.

참피가 기록된 가장 오랜 문헌기록은 기원후 7세기, 일본 야마토 조정의 기록이다. 당시 야마토는 백제멸망 후 일어난 백제부흥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정예병 대부분을 보냈다가 백강전투에서 상실하는 엄청난 손실을 겪었다.

그거 누가 우리로 치면 미국이 외계인에게 침공당해 그걸 구원하려고 전방사단들을 있는 대로 차출해 보냈는데 그게 첫 전투인 샌프란시스코 전투에서 전멸당한 상황이라고 했었나? 하여튼 그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란다.

그래서 야마토 정부는 당장 국가 방위를 위해 아직 북부 정도만 지배하고 있던 큐슈에서 물자며 병사며 마구 징발하기 시작했다. 참피는 바로 그 징발에 관한 문헌에서 등장한다.


‘야마토 조정은 처음 실장석과 접촉하였을 때, 이들을 ‘작은 사람’으로 보았다. 조정에 올라오는 보고서에 이들을 사람(人)이라고 기재한 것이 그 근거라 할 수 있다. 피정복민을 자신의 군사로 징병하던 시대상황으로 볼때, 야마토 조정은 실장석을 병력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곧 큐슈 대제독 아베노 히라부는 이들이 사람이 아니며 이기적이고 사람들이 농사지은 작물을 훔쳐먹는 해수라고 보고를 올림으로써 그러한 시도가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아마노 히로하타, [일본 고대사회의 역사], p.138.-


참피는 큐슈 남부에 서식하고 있었고 야마토는 큐슈 남부까지 점령하면서 처음 접했다. 처음에 야마토 조정은 이 ‘작은 소인’을 사람이라고 생각해 병사로 쓸 수 있는지 흥미를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힘없고 이기적인 참피의 습성상 얼마 안 있어 야먀토는 실장석을 병사는커녕 잡역부로도 못 쓰는데다 농작물을 훔쳐먹는 해수로 삼아 토벌했다.

그러나 참피의 번식력으로 인해 완전 토벌에는 실패했고, 다만 같은 사람은 아니니 고기로는 쓸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야마토 조정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이 번식력이 좋은 해수를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곧 아베노 히라부는 덴노에게 올리는 보고를 통해 이들을 잡아 말리면 오래 보관 가능한 저장식품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 보고에 보이는 ‘오랜 기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3개월 이상의 장기간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가축을 거세하고 도축하는 등의 기술이 대륙으로부터 유입되지 않아 저장성이 높은 고기를 만드는 기술이 극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노 히로히타, Ibrd, p.139.-


그리고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 일본에서는 실장석을 주술적 목적으로도 이용한 것이 보였다.


‘매년 정월에 덴노의 안녕을 빌고자 음양사들은 실장석을 이용하였다. 그 실장석은 화려하게 치장되었으며 좋은 음식을 한껏 배부르게 먹도록 하였다. 이 의식은 하루에서 이틀가량 진행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덴노는 수수한 옷을 입었다. 이는 잡귀나 부정한 것들이 실장석을 덴노로 착각하게 하여 그에 깃들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루에서 이틀동안 그리 대접받은 실장석은 안하무인의 존재가 되었다고 하며, 이는 잡귀들이 실장석의 안에 들어가 나타난 현상이라 보았다. 그리고 그 직후 그렇게 한껏 올려진 실장석을 경내로 옮겨 모든 옷과 털을 제거했다. 이때 실장석이 탈분하지 못하도록 그 총구를 마개 따위로 막았는데, 이는 실장석의 몸에 쌓인 부정(정결하지 못한 것)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다.
이윽고 신관들은 세상의 모든 악과 부정을 다 짊어진듯한 표정을 한 실장석을 산속 넓적한 바위 위에 눕힌 후 사자(死者)의 시신 위에 돌을 놓아 그 혼백이 부정을 끼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처럼 커다란 돌로 움직이지 못하게 봉했다. 그러고는 여기있다! 여기있다! 라고 실장석의 둘레를 돌며 외쳤다. 이것은 마치 여기 돌로 봉인된 존재가 덴노다 라고 외치는 행위였다고 해석된다. 그리하여 그 실장석은 죽어갈 때까지 덴노에게 갈 수 있는 부정을 짊어지고 말라죽게 된다.’
-이치하라 츠네히코, [실장석의 주술적 이용: 헤이안 시대부터 전국시대까지], pp.120-121.-


그 이후로 실장석은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내가 흥미로워한 부분 아마도 전국시대 조정 귀족인 듯한 작자의 눈으로 그 시대를 바라본 기선집에 나오는 대목이었다.


‘덴노가에서부터 일반 공가(귀족가)에 이르기까지, 실장석의 새끼를 기르는 것은 그리 보기 힘든 것이 아니다. 다만 기르는 것은 새끼때로, 실장석이 크면 성질이 사납고 행동이 오만방자해진다고 하여 신에게 공양하는 것이 보통이다.’
‘신사와 절에서는 매년 실장석으로 공양을 지낸다. 다 큰 실장석을 함에 가두고 시간이 지나 그리 죽은 실장석을 태움으로써 부정을 없애는 의식이 주를 이룬다. 불가에서는 원래 살생을 행함을 금기시하나 다 큰 실장석은 깨끗하지 못함이 모인 존재로 보아 이를 태우는 것은 부정을 태우는 것이지 살생이 아니라고 본다.’
-작자미상, 기선집, 케이오 출판사 발간본(1999)을 기준으로 함-


즉, 이미 전국시대쯤 가면 새끼 한정이지만 실장석 사육도 나타나고, 앞서 헤이안 시대에 보았던 주술적 ‘공양’ 또한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게 무슨 의미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주술적’ 이용에 주목했다. 참피들은 인간과 가까이하면서, 또 ‘이용’ 당하면서 서서히 말이 힘을 가진다는 개념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 가설에 쐐기를 박는 자료가 나왔다.


‘…실장석을 이용함에 있어 ‘말’의 힘을 이용했다. 실장석은 새끼를 베면 실장노래를 부름으로써 새끼에게 기초적인 교육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다. 따라서 이 부분을 이용하기 위해 실장어를 잘 하는 사람을 선발, 교육하여 임신한 실장석의 입을 막은 후 이 사람이 실장의 언어로 필요한 사항을 새끼에게 교육하게 되었다.’
-탄조 아키토시, [전국시대 실장석의 활용에 대하여], p.209-



‘실장석들이 가장 잘 받아들인 관념은 말의 신령이 가진 힘이었다. 이윽고 실장석들은 자신들도 이런 힘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츠다 히로오, [초승력에 대한 일본 내 관념의 변화], p.54-


즉, 실장석들은 몇 세기 동안 인간과 같이 지내면서 말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는 관념을 자연스레 받아들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마 말에 힘이 있다는 생각은,

‘말에 힘이 있다.’ → ‘내 말에 힘이 있다.’ → ‘그러므로 와타시는 신적인 존재다.’ → ‘와타시는 만물을 지배하는 자다.’

라는 매우 참피스러운 왜곡과정을 거쳐 위석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이 가설이 맞다면 인간으로부터 받은 지식에서 인과관계고 뭐고 자기에게 불리한 점은 싹 무시하고 달콤함 말만 뽑아서 속삭이는 위석의 영향으로 참피들은 자신들의 말이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고, 말하면 모두 이뤄져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니 간혹가다 녀석들이 다급할 때 주변 무생물에게 아첨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행동을 해달라고 말하는 현상이 이해가 간다.

‘와타시가 자를 낳아야 하니 똥문씨는 어서 열리는 데스웅~’

내가 일전에 야산공원에 갔다가 화장실 앞에서 본 한 만삭의 성체실장석은 열리지 않는 문에 아첨하고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채 새끼들을 길바닥에 철퍽철퍽 싸질렀다. 그때 울고불고 왜 자기가 이렇게 말했는데 안 열리냐는 놈을 보고는 비웃었는데 그건 그 놈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행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한가지 의문이 더 생긴다.

실장석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왜 놈들이 매일 그러고 살지 않는 것일까?

이건 논문이나 책을 더 찾아봐도 되겠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참피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더 빠르겠지. 나는 짐을 챙겨 학교 근처 뒷산 자락으로 발을 옮겼다.



[닝…겐상. 와타시가 뭔가 잘못을 했는 데스까?]

뒷산 학교 주차장 겸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발견한 녀석은 내가 봐도 너무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야, 내가 널 죽인댔냐, 학대를 한댔냐. 주접 그만 떨고 묻는 것에 대답이나 해줘.”
[저, 정말로 안…죽이시는 데스까?]
“어. 아 물론 네가 되도 않는 분충짓하면 이자리에서 때려 죽이겠지만 그것만 아니면 해 안 입힐 거니까 안심해도 된다. 그리고 답변 잘 하면.”

나는 녀석들이 죽고 못 사는 별사탕, 통칭 콘페이토를 꺼내 녀석의 눈 앞에 내밀었다.

“이걸 주지.”

꿀꺽, 자신을 순식간에 죽여버릴 수 있는 존재를 앞에 두고도 욕망이라는 본능은 녀석으로 하여금 군침을 삼키게 만든다.

[답변드리겠는 데스. 만족스러우실지는 모르겠지만 성심성의껏 답변드리겠는 데스.]
“좋아. 먼저, 너도 네 말에 힘이 있다는 사실을 믿나?”
[그거인 데스까? 음, 사실 와타시도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는 데스 닝겐상.]
“오호라. 너도 세상이 다 네 밑이고 다 노예라는 생각이 있겠군?”
[뎃?! 아 그렇다고 막 닝겐상께 운치를 던진다든가 하는 건 아닌데스! 정말인 데스!]
“어, 그건 방금 안 던진 거 보고 알았으니 됐다. 다음질문.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왜 그걸 고래고래 안 떠들고 사는 거야?”
[그러니까, 와타시도 왜 세상이 와타시 마음대로 안 되는가? 와타시가 말 하면 그대로 이뤄져야 한다 같은 생각은 있는 데스. 기실, 와타시뿐만 아니라 다른 이웃상들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인 데스.]

녀석은 음 하고 뭔가를 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있어도 당장은 먹을 걸 구하는 것 부터가 우선인 데스. 그 다음은 이 몸 뉘일 자리도 구해야 하고. 자가 생기면 그 자들을 먹여 살릴 걱정부터 해야하는 데스.]
“그건 그렇지.”
[그런 상황에서 와타시가 말하면 뭐든 되어야 하는 뎃샤 하고 떠들고 다닌 들 그게 이뤄지지도 않는데 떠들면 뭐하겠는 데스까? 오히려 명줄이나 재촉하지.]
“흠, 좋아. 괜찮은 대답이었어.”

나는 약속대로 녀석에게 콘페이토를 내밀었다. 녀석은 쭈삣거리면서도 욕망 가득한 눈으로 콘페이토를 좇았다.

“코로리나 뭐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마라. 못 믿겠으면 좀 있다 집에 가져가서 구더기나 엄지를 먹여보든가.”
[뎃?! 데에, 죄송한 데스. 닝겐상을 의심하는 건 나쁜 거지만…]
“네가 그러는 데는 이유 있는 거 아니까 나쁘게 생각치는 않으마. 여하튼 답변은 고마웠고, 이건 시간 빼앗은 데 대한 보상이다.”

나는 가져온 건빵도 한봉지 얹어주었다. 연신 고개를 숙이고는 오늘의 수확을 가지고 돌아가는 성체참피.



그 이후로도 몇 놈의 인터뷰(?)를 더 따내서 들어봤다. 학교 뒷산 참피놈들 이야기만 들으면 표본이 한정될까 싶어 집 주변 산 공원 놈들도 몇 놈 잡아서 들어봤다. 그 결과, 몇몇 분충들을 제외하면 다들 하는 이야기가 비슷했다.

‘먹고 살기 바쁜데 그딴 도움 안 되는 짓은 왜 하나?’

그랬다. 녀석들도 어렴풋하게는 안다는 거다.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걸. 그러니 내 앞에서 벌벌 떨던 녀석들처럼 평소에는 쥐꼬리만 한 이성으로 그런 엉터리 생각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말, 세상은 내가 말하는 데로 이뤄져야 한다! 라고 내뱉는 놈들은 대개 자신들 나름대로 극한 상황에 몰린 녀석들이었다. 처음 내게 투분하고 지랄하던 그 놈도 피골이 상접했던 게 몇날며칠을 굶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몰릴 데로 몰리면 이성이 실종되면서 분충성과 함께 자신의 말이 신적인 권위를 가진다는 그 되도 않는 개소리가 고개를 쑥 내미는 것이다. 조금 궤는 다를지라도 당장 사람만 해도 그렇잖는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본성이 나온다고. 문제는 그래도 좋은 본성이 나올 수 있는 사람과 달리 실장석은 백퍼센트 분충성만 나온다는 거지만.



나는 이 내용을 대충 정리해서 내가 가는 커뮤니티 참피 게시판에 게재했다. 재미없는 글이라 금방 묻히겠거니 했지만 웬걸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곧 바로 이름난 학대파들이 양충이든 분충이든 모아서 굶기거나 학대하여 극한 상황을 만든 뒤 참피들이 와타시가 명하노니!! 하는 영상을 찍어 올렸다.

심지어 학계의 몇몇 학자들에게서 내가 가진 자료를 써도 되겠는가에 대한 문의도 받았다. 뭐 거창하게 공동저자나 제2,3 저자 정도는 아니지만 -그러기엔 내가 수집한 자료 및 분석 수준도 낮고- Special Thanks에 내 이름을 올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했으니 나로서도 득을 봤다는 느낌이다.

하여튼 업계 네임드들과 무려 학계 거물급 학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셈이니 이게 참 득인지 실인지 모르겠다만서도 평생 이렇게 주목받아본 적이 없으니 나 개인으로서는 참 좋은 경험이었다.

고마워 참피.








한밤중의 일


테치

뭐지? 토요일 저녁, 오랜만에 치킨을 먹고 TV를 보고 있자니 내 귀에 들릴 리 없는 무언가의 소리가 들린다.

“소피아?”
“데스? 무슨 일이신 데스?”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TV를 보던 얼굴을 돌려 나를 쳐다보는 내 사육실장 소피아. 나는 순간 소피아가 낸 소리인가 했지만 이미 키운지 3년이 넘은 성체인 소피아의 어미는 ‘테치’가 아니라 ‘데스’ 로 변한지 오래다.

“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소리 데스? 어떤 소리 데스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소피아. 정말로 모르는 눈치다. 그렇다면 방금 내가 들은 소리는 뭐지? 환각이라도 들었나?

테치

분명히 들었다. 확실하게 테치라고 했다. 요즘 야근과 출장의 연속이라 피곤해서 헛것이라도 들었나 싶었을 때 또다시 작지만 선명한 그 소리가 들렸다.

“뭐야, 방금 자실장이 내는 소리 같은 게 들렸는데?”
“자실…장 데스까?”
“어. 그 왜 테치였나? 너 어릴 때 너도 테치라고 했잖아. 그 소리가 나는 거 같은데?”

내 말에 소피아는 뭔가 떨떠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피곤해서 뭔가를 잘못 들으신 거 아닌 데스? 요즘 계속 그 회사라는 곳에서 늦게 들어오시거나 해씨와 달씨가 몇번 반복해서 오르내리는 동안 집에 못 들어오시지 않은 데스까.”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두번째 듣고 나니 뭔가 있는 거 같아.”
“정말 들으신 데스까? 와타시 걱정되는 데…”

테치테치

순간 침묵. 

TV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와 소피아 둘의 시선이 서로 맞닿았다.

“들었지?”
“들은…데스.”

나는 TV를 껐다. 불안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는 소피아를 뒤로하고 나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두리번 두리번 시선을 옮겼다.

“뭐지? 분명히 들었는데 어디지?”

계속 자실장이 있을 법한 곳을 둘러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자실장은커녕 실장석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은 곳은 베란다지만 그런 곳에 자실장이 있다는 건 말도 안ㄷ….

테치!

있다.

테치치치!

있었다.

테츙?

분명히 실장석이 있으면 안 되는 곳에 실장석이 있었다. 크기를 보아하니 내가 찾는 자실장이 맞는 거 같았다. 녀석은 그 조막만한 손으로 계속 베란다문을 톡톡 치고 있었다. 베란다와 거실을 가르는 창이 워낙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지라 자실장이 그 작은 손으로 통통 치는 소리 정도는 완벽에 가깝게 차단해 버렸던 것이다.

“주, 주인사마…”

덜덜 떠는 소피아. 나는 손으로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소피아의 목에서 목걸이형 링갈을 벗겨냈다. 소피아는 순간 놀란듯 흠칫 하면서 내 손을 잡았지만 이내 손을 내리고 내가 목걸이를 가져가게끔 놔두었다.

“테치이! 테치 테치!”

나는 베란다문을 열고 링갈을 들어 녀석 가까이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링갈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번역되어 나온다.

“주인사마인 테치? 마마에게 말 많이 들었던 테치.”

자실장은 방긋 웃으며 안아달라는 듯 팔을 활짝 펴고 테치테치 떠들었다.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주인사마? 마마? 나는 순간 역한 기운이 올라와 이 맹랑한 자실장을 당장에라도 때려 죽일 뻔했다. 내 옆에서 긴장한듯 내 다리를 꼭 잡고 있는 소피아가 아니었으면 그리 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처리를 할 때가 아니다. 이 놈이 도대체 어떻게 여기 들어올 수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웃는 얼굴로 자실장에게 물었다.

“너, 자실장이구나.
“네 테치. 마마의 귀여운 자인 테치.”
“하하, 귀엽구나.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니?”
“테? 어떻게 들어왔냐는 테치?”

내 질문에 자실장은 뭔가 고민하는 거 같더니 바로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마마가 들여보내준 테치. 마마가 와타시는 여기서 태어났다고 말한 테치.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다. 여기서 태어났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는 분노로 다시 한번 몸을 떨었다. 하지만 무작정 분노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흠, 어라?

뭐지? 나는 순간 무언가 스파크가 튀듯 생각이 났다. 별로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희미해진 기억. 자실장을 보니 그 기억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맞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너무나도 딱 맞다. 

“자실장아, 네 마마는 어디 있니?”
“테? 마마 말인테치?”

자실장은 뭔가 갸우뚱하더니 이내 아 하며 그 뭉툭하기 짝이 없는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데…뎃?!”

자실장의 손 끝에 있는, 지목받은 소피아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 순간 확실해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사람을 기만해도 유분수지. 

나는 손이 벌벌 떨렸다. 분노가 진정되지 않는다. 그동안 얼마나 잘 해줬는데! 어떻게 대했는데 이런 식으로 배신을 한단 말인가?

“데, 데스 데스.”

소피아가 벌벌 떨면서 내 바지를 꼭 쥐었다. 나는 그런 소피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힉!”

놀란듯 숨을 삼키며 뒷걸음질치는 소피아. 그러나 빵콘도 하지 않고 덜덜 떨지 언정 여전히 얌전하게 있는 소피아는 훈련받은 사육실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후…”

나는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처리하자.”





잠시 후, 어느 공원의 뒷편 으슥한 풀밭 한 곳. 나는 벌벌 떠는 독라들을 앞에 두고 노려보고 있었다.

“오로롱 오로롱 잘못한 데스. 다시는 안 그러는 데스. 제발 용서해주시는 데스.”

그 중 큰 독라가 눈물을 흘리면서 내게 빌며 뭐라뭐라 입을 열고 있었다. 내 손에 들린 목걸이형 링갈에서 가증스러운 놈의 소리가 번역되어 나온다.

“야, 네가 외롭다고 새끼 깔 때는 마냥 좋았지? 그런데 그거 아냐?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른 다는 거.”
“평소에 자비로운 모습을 많이 보이신 데스. 그래서 자를 보여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인데스…”
“뭐래냐? 한마디로 남의 사정이나 생각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지 좋을 대로 했다는 거 아냐?”
“오로롱…”

부정을 안 하는 거 보니 진짜 그리 생각했나 보다. 

“야, 내가 그동안 널 어떻게 대했냐? 발로 차길 했냐 아니면 나쁜 짓 한다고 쫓아내길 했냐? 나는 그래도 나름 자비롭게 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이따위로 통수를 치냐?”
“자비로우실 거면 끝까지 자비로우시는 데스…”
“뭐가 어쩌고 어째?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아주 기어오르네?!”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화가 나다가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지가 뭔데 날 자비롭니 뭐니 판단을 하고 자빠졌나? 게다가 뭐? 자비로울 거면 끝까지 자비로우라고? 이게 실장석의 사고구조인가?

놈의 어처구니없는 망발에 분노하고 있자니 역시 지 어미와 똑같이 독라가 된 새끼는 그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저건 마마가 말했던 주인사마가 아니다. 분명 주인사마는 친절하고 자애로운 분이라고 했다. 자신이 나타나면 따뜻한 물로 아와아와를 시켜줄 것이고 그 후에는 스시와 스테이크를 먹여줄 것이라고 했다. 더 이상 마마가 가져오던 그 맛없는 덩어리들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도대체 자기 눈 앞의 저건 무엇인가? 새끼 실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눈은 분명 그리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화가 더 치밀어 오르다 말고 뭔가 탁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

무엇때문인지 모를 깊은 한숨만이 내 입에서 나올 뿐이다. 사람이 분노가 일정 선을 넘어가면 오히려 차분해지고 허탈해진다고 했던가? 내가 지금 딱 그런 꼴이다.

내가 한숨을 쉬고 있으니 화가 누그러졌다고 생각이라도 한 건지 녀석이 다시 지껄이기 시작했다.

“용서해주시는 데스우. 그리고 저 아이를 제발 키워주시는 데스. 그리고 아이는 마마가 필요한 데스. 그러니…”
“닥쳐!”
“데에엥!!!”

이게 뚫린 입이라고 쓰레기 같은 말을 내 뱉는 구만? 이딴 개소리, 아니 개에게 미안하네. 여튼 되도 않을 소리 계속 듣고 있을 필요가 더 있나? 나는 이만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넌 네 스스로 기회며 뭐며 다 걷어찼다. 그래놓고서는 키워주네 어쩌네 그딴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제발 자비로운 분으로 돌아와 주시는 데스... 오로롱...”
“웃기고 앉았네. 난 한 번도 너 같은 놈에게 자비로운 놈이었던 적 없었거든? 진즉에 뭘 하든 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한 내가 병신이지.”
“이러고 어찌 살라는 것인 데스까. 독라가 되면 공원으로 갈 수도 없는 데스…”
“내 알바냐?!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라!”

나는 가볍게 – 어디까지나 ‘가볍게’ – 놈을 걷어찼다. 내게는 가볍다지만 놈에겐 아니었던지 놈은 데갸악! 소리와 함께 날아가더니 땅에 부딪혀 널부러졌다.

그 모습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자실장이 테에엥 울며 자기 어미쪽으로 토테토테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런 놈은 내 손으로 죽이는 것보다도 비참하게 만든 후 살려놓는 게 낫다. 어차피 계절은 겨울, 저대로 놔두면 추위 속에 고통받다 비참하게 죽을 것이다. 인간을 상대로 그 얕은 꾀로 기만을 저질렀으니 저 정도는 해야 내 마음이 후련하기도 하고.

테에엥 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눈도 돌리지 않고 집으로 걸었다.





집에 와 신발을 벗고 집안을 둘러보니 그 난장판이 마치 태고적 일인듯 고요하다. 오직 그 새끼놈이 싸질러 놓은 녹색 분변과 그 냄새만이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조용히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하…. 

허무하다. 나름 호의를 베푼 거 같은데 이런 식으로 돌려받는 것이 인생에 한두번은 아니지만 이런 결말은 매번 경험할 때마다 허탈함에 나도 모르게 한 숨을 쉬게 된다. 문득 손에 쥔 목걸이형 링갈을 쓱 올려본다. 

이 물건도 이제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가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거실에서 무언가가 나와 내게 다가왔다.

“데스데스응?”
“어, 놀랐지 소피아. 이젠 괜찮아.”

나는 거실에서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나온 소피아의 목에 목걸이를 다시 채웠다.

“야 목걸이 잘 썼다. 덕분에 그 놈들이 무슨 짓거리를 꾸몄는가를 아주 생생하게 들었다.”

어떻게 거짓말을 해도 그딴 거짓말을 할 수 있나 모르겠다. 

“다행인 데스 주인사마. 갑자기 자실장이 나타나질 않나, 와타시더러 마마라질 않나 놀라서 말도 안 나온데스.”

우리 소피아는 불임인데 말이다.

최근 사육실장은 불임처리를 해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안구를 하나 적출하고 의안을 끼운다든가 분대에서 새끼를 생성하는 부분만 없앤다든가 해서 불임으로 만든다는데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고 여튼 그런 식으로 불임처리를 하기에 사육실장이 새끼를 낳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그러니 지가 우리 소피아 새끼라고 테치테치 나오는 놈은 뻔할 뻔자로 주변 들실장의 새끼가 몰래 들어와서는 자식 행세를 하는 것이다.

“소피아야, 미안하지만 저 창문 닫자 안되겠다.”

나는 베란다 창문에 작게 난 특수창 – 사육실장이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만든 작은 별도창문 -을 가리켰다. 소피아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와타시도 그게 좋을 거 같은데스 주인사마. 죄송한 데스. 너무 갑갑해서 환기 좀 시키겠다고 열어놓은 창문으로 새끼를 들이밀 줄은 몰랐던 데스.”
“됐어. 네 잘못아냐. 나도 그냥 괜찮겠지 싶어서 열린 거 방치해 놨으니.”
“그런데 집 더 뒤져봐야 하지 않겠는 데스까? 아까 그 자실장 말고 다른 자실장도 들어왔을 지도 모르는 거 아닌데스?”
“괜찮아. 나도 몰랐는데 이 링갈에 위석 서쳐기능도 있더라. 그거 돌려봤는데, 지금 잡히는 게 너 하나야.”

내 말에 소피아는 그제서야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혹여나 숨어있던 놈이 나와서 집안이 난장판이 되거나 하는 일은 없겠는 데스요. 그런데 정말이지 저기로 자기 새끼를 들어 넣다니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는데 진짜 그럴 줄은…”
“하여간 들실장놈들 뻔뻔한 건 알아줘야해.”

나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분노로 씩씩거리며 특수창을 닫았다. 소피아도 한 숨을 푸 하고 내쉬더니 문득 궁금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여기에 탁아를 했다는 데스?”
“내가 다른 사람과 달리 지보고 들실장이라고 쫓아내거나 하지 않고 가끔은 먹을 걸 줬다고 그랬 덴다. 그거 보고는 제놈에게 그 뭐라더라? 메로메로? 된 게 틀림없으니 지 자식놈을 밀어 넣으면 분명히 키워줄거라고 생각했다나봐.”
“데에…”

소피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지금 내 표정도 그리 다르지 않겠지.

“뭐, 지 자식새끼놈 소피아 네 자식이라고 들이 밀고 우리 둘 다 그놈의 매력? 웃기지도 않네. 여튼 그 매력인지 뭔지에 홀려서 키우면 그제서 사실은 내가 저 자실장의 진짜 어미다! 하고 나타날 생각이었겠지 뻔할 뻔자로.”
“아니 무슨 생각을 해도 우지챠도 안 할 그런 단세포적인 생각을 한다는 데스까?”
“몰라. 혹시 알아? 이 추위에 이판사판이니 행복회로를 돌렸을지.”
“데스우…”

소피아도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곧 소피아는 밝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래도 주인사마 표정이 어느 정도 풀리신 것 같아서 다행인 데스. 아까는 너무 무서워서 차마 말조차 걸지 못할 정도였는 데스.”
“내 표정이 그랬어?”
“나름 주인사마와 가까이 지냈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건 처음 본 데스요. 와타시는 이러다가 주인사마께서 그 들실장들을 찢어죽이시는 건 아닌가 걱정한 데스.”
“에이 너도 걱정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런 놈들 걱정해줄 필요 있어?”
“와타시는 그 들실장들이 죽는 건 상관없는 데스. 하지만 주인사마의 손을 더럽히게 되지 않냐는 데스요.”

소피아가 나를 걱정스레 쳐다보는 데 마음이 찡했다. 이러니 더더욱 그 들실장놈이 괘씸했다. 만약 불임수술이 아니었으면 소피아가 누명을 쓰고 잘못하면 처분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그런 건 하나도 신경쓰지 않고 남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지들 이익이나 챙기려드는 놈들이 들실장이다. 나는 가슴 깊이 그 점을 새겼다.

“이제 들실장놈들 보면 최소 때리고 쫓아내진 않아도 철저하게 무시해야 되겠어.”
“그러시는 게 좋을 거 같은 데스.”

나는 물티슈로 대충 놈의 새끼가 싼 분변을 닦아냈다. 제대로 된 물청소는 날이 밝은 후에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소피아가 나를 도와 꼼꼼하게 운치를 닦아냈다.

“어디선가 실장석 울음소리가 들리는 데스.”

소피아의 말. 나도 귀를 기울이자 자그마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녀석들의 울음일지 아니면 또 죽어가는 그저 그런 들실장들의 울음소리일지. 나는 감흥 없이 물티슈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밤이 점점 깊어왔다.








느끼기엔 너무 똑똑하고 알기엔 너무 멍청한 슬픈 지성이여



생명체여, 너 슬프도다. 행복을 느끼기엔 너무도 고등하고, 행복을 알기엔 너무도 하등하구나!
- 쎄쌀로니키의 필로네스.


“데에…”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생태공원. 서울시는 인구압으로 터져나가는 동부 주거지구 시민들의 쉼터를 조성하고, 남양주시는 그 시민들이 쓰는 돈으로 새로운 세수원을 마련한다는 윈윈전략을 들어 만든 이곳은 그 드넓은 규모로 인해 곧 일본에서처럼 사육실장 유기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공원이 되었다.

이 분홍 옷의 성체 또한 그렇게 버려진 많고 많은 사육실장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야.”
“뎃?”

그리고 이 원사육실장에게 말을 거는 중년의 관리원 또한 많고 많은 공원 관리원 중 하나일 뿐이다.

“나원참 하루가 멀다 하고 버려지는 놈이 나오네. 넌 또 무슨 이유로 버려졌냐?”

휴대폰 링갈앱을 통해 자신에게 그렇게 묻는 관리원에게 사육실장, 아니 이제는 원사육실장이 된 성체가 입을 열었다.

“데…뭐가 문제였던 건지 잘 모르겠는 데스…”

일견 멍청한 소리지만 원사육은 왜 자신이 버려졌는지 정말로 알지 못했다. 

“그냥 이유없이 버려진 거야?”
“잘…모르겠는 데스.”
“뭐 똥 같은 거 여기저기 싼 거 아냐? 아니면 밥투정을 했다든가?”
“운치는 화장실 가서 누고 뒷처리도 잘 한 데스. 옷도 깨끗하게 잘 빨아 입었고 푸드는…조금 질린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투정 같은 건 안 한 데스우…”

그럼 왜 버려졌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남자. 왜 버려졌을까? 문득 성체실장은 무언가 하나가 더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어?”
“어제…자를 가지고 싶다고 하긴 한 데스.”
“그거네.”
“데스우…”

원사육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사육실장 교육을 받을때부터 누누히 듣던 소리. 자를 가지지 말라는 소리. 그게 용서받지 못할 행동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돌씨의 유혹은 강렬했다. 어쩌면, 자신만은, 자신의 주인만은 다를 줄 알았다.

“왜 자를 가지겠다고 했냐?”
“돌씨가…돌씨가 자를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 했던 데스.”
“그동안은 행복하지 않았어? 네 행색을 보아한데 학대를 받거나 한 건 아니어 뵈는데.”
“주인사마는 참 좋은 분이었던 데스.”
“그런데 왜 그랬어?”
“더 행복해지고 싶었던 데스.”
“더 행복해?”

사육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인님의 집에 와서 지금껏 먹었던 푸드를 먹어본 데스. 처음엔 교육받던 시절 먹었던 더러운 푸드가 아니라 깨끗하고 맛있는 푸드를 먹어서 참 행복했던 데스.”
“그리고?”
“그 다음엔 분홍색의 사육실장 옷을 받은 데스. 원래 입고 있던 흔한 초록색 옷이 아니라서 행복했던 데스.”
“그 다음은?”
“그 다음에는…몸을 제대로 누일만한 집과 침대를 받은 데스. 항상 잘때마다 내일 일어났을 때 보이는 것이 브리더상과 그 브리더상에게 죽어가는 동기들이 아니어서 행복했던 데스.”

거기까지 말하고, 성체실장은 공허한 눈으로 빈 공간을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운을 땠다.

“그리고…자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 데스.”
“여태껏 행복했는데 어째서?”
“어째서냐는 데스가…당연한 거 아닌 데스까? 자를 가지면 행복한 데스. 그래서 그렇게 말한 데스.”
“그러면 그 이전에는 행복하지 않았어? 너 방금전에 자를 가지기 전에도 행복했다고 했었잖아.”
“그랬던 데스. 그런데…”

성체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어느새부턴인가 행복한 것이 잘 느껴지지 않았던 데스. 자고 일어나서 밥먹고 다시 잠에 드는 그 시간은 분명 행복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너무나 공허했던 데스.”
“한계효용을 느껴버린 건가?”
“데스?”

남자의 중얼거림에 그게 뭐냐고 고개를 드는 원사육실장. 남자는 길게 한 숨을 내 쉬고는 말했다.

“이 세상 모든 즐거움이 다 그렇지만, 행복에도 ‘역치’라는 게 있단다.”
“역치 데스? 그게 뭐인 데스?”
“예를 들어, 네가 처음에 말했듯이 매일 냄새나고 맛없는 푸드만 먹다가 어느날부터 깨끗하고 맛있는 푸드를 먹으면, 처음에는 기분이 좋겠지.”

하지만, 이라고 남자는 맗한다.

“그것도 처음에나 그렇지 그걸 계속 먹다 보면 그게 당연한 것이 되어버려. 그러다 보면 그 맛 좋은 푸드를 먹어도 더 이상 행복하지 않지.”
“그랬던 데스. 처음에는 참 좋았는데, 어느새부터 그게 맛이 없었던 데스.”
“게다가 옷도, 집도, 이름도. 처음 받았을 때는 뛸 듯이 기쁘고 행복했는데 그걸 계속 가지고 살다 보면 너무도 당연한 풍경이 되어 거기서 느끼는 즐거움이 사라져.”
“맞는 데스. 처음 가지는 와타시만의 옷이었던 데스. 하지만 조금 있으니 그저 그런 당연한 것이 된 데스.”
“그게 역치라는 거야. 행복도 계속 느끼다보면 처음 느꼈던 행복만큼 그것을 느끼기는 힘들지. 그렇게 새로운 행복을 느끼는 감정은 계속 줄어들다가 어느 순간에는 0이 돼.”
“닝겐상도 그런 데스?”
“그럼, 우리도 생명체인데 그걸 왜 안 느낄까? 내가 방금 한계효용이라고 말했지? 그게 인간들이 느끼는 그런 것이 실물경제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니 저명한 학자 나으리들이 그걸 보고 붙인 이름이야.”

관리원은 음 하고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지성 있는 동물이라면 당연히 그런 걸 느껴. 궤는 조금 다르지만 옛날에 매슬로우라고 하는 학자 양반이 이런 말을 했지. 인간은 처음에는 안전이 보장되는 것에 행복을 느끼지만, 곧 잘 먹고 자고 싶어하고, 그게 충족되면 주위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며 종국에는 자아실현을 하고 싶어한다고. 즉, 하나의 행복이 충족되면 곧 더한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는 거지.”
“그렇다면, 와타시는 왜 쫓겨난 데스? 와타시는 그저 역치가 다 되어서 그걸 뛰어넘는 행복을 요구한 것밖엔 없는 데스. 그건 당연한 거 아닌 데스?”
“음, 그게 말이야. 당연하되 당연하지 않은 것이거든.”

이건 또 무슨 말장난인가? 성체는 따지듯 물었다.

“오마, 아니 흥분해서 죄송한 데스. 닝겐상은 분명 그 역치를 뛰어넘으려 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했던 데스. 아닌 데스까?”
“맞아.”
“그렇다면, 그게 ‘당연한’ 거라면 그걸 ‘당연히’ 얻어야 하는 거 아닌 데스까?”
“그건 내가 느끼는 ‘당연한’ 거지, 그걸 주변에서 들어줄 의무는 없거든.”
“뎃?”

뜬금없어 뵈는 소리에 잠시 말문이 막히는 원사육실장. 

“잘 들어봐라. 우리는 생물이고 그렇기에 한 번 행복을 느끼고 나면 어느 순간에는 그게 식상해져. 그리고는 더 큰 행복을 찾게 되지. 그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더 큰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해.”
“그 리스크라는 건 무엇인 데스까?”
“글쎄…뭐라고 딱 설명하기는 힘든데, 그 행복을 얻기 위해서 짊어져야 할 ‘불확실성’ 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불확실성 데스?”
“그래. 너 더 큰 행복을 위해 자를 가지고 싶다고 주인에게 말했지?”
“그런 데스.”
“하지만 주인이 그걸 들어줄지 아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렸지. 그걸 허락할지 아닐지. 너는 그걸 확실하게 몰라. 그게 바로 리스크지.”
“하지만 아까도 닝겐상이 말씀하셨다시피 와타시가 더 큰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건 ‘당연하다’라고 하신데스. 그러면 주인사마도 당연히 그걸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 데스?”
“그건 ‘너’에게나 당연한 거지, 그걸 듣는 ‘주인’에게는 당연한 게 아니거든.”
“데에?”

이게 무슨 소리일까? 당연한데 당연한 게 아니라고? 왠지 선문답 같은 질답에 원사육실장은 머리에서 쥐가 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구상 그 어떤 생물도 그걸 다 이루고 사는 생물은 없어.”

그런 원사육과는 다르게, 관리원은 왠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데…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데스. 왜 ‘당연한’ 것을 요구했는데 이런 꼴을 당하는 데스….”
“아까도 말했잖아. 바라는 건 우리지만 들어줄 수 있는 건 주변이니까.”
“주변…데스까?”
“그래. 더 행복한 삶을 위해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건 주변 사람들에게 너희가 누리는 것을 희생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다오 라고 말하는 것이나 매한가지거든.”
“와타시는 주인사마에게 희생하라고 한 적이 없는 데스.”
“정말로? 설마 너 새끼를 낳으면 주인이 더 행복해질거라고, 그래서 주인에게도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한 게 아니고?”
“…”

그리 생각했다. 부정할 수 없다. 관리원은 그럴 줄 알았다며 씩 웃더니 다른 산등성이를 바라보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네 생각일 뿐이야. 그저 너에게 맞춰 형편 좋게 생각한 것이지. 그리고 그걸 주변 사람들이 수용하느냐 마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사정, 그들이 내게 가지는 감정 등에 달려있지. 내가 그 사람들이 아닌바에야 그 사람들이 이걸 수용할 수 있을지 아닌지는 잘 몰라. 그게 바로 아까 말했던 불확실성, 즉 리스크고.”
“와타시가 행복을 느끼는 것이면, 주인사마에게도 행복 아니었는 데스까? 그러니 와타시는 ‘당연히’ 그걸 요구해도 되는 거 아니었는 데스?”
“그게 당연한 거면 나는 왜 가족과 헤어져 이렇게 산등성이 공원에 처박혀 있고 너는 왜 주인에게 버려져 모든 걸 잃었을까…
“…”

다시 한번 침묵.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자를 낳으면 주인은 더 많은 푸드와 옷 그리고 집을 사야했을 거고 그것은 주인에게 커다란 추가부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여태껏 그래왔듯 귀여운 와타시가 낳은 자를 보면 주인도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면 주인의 추가적인 희생도 그것으로 상쇄되지 않을까? 라고 행복회로를 들렸었다.

그리고, 결과는 자신의 신분 앞에 ‘원’자가 붙는 상황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닝겐상 말씀은 와타시에겐 ‘당연한’ 욕구지만, 그걸 들어주냐 마느냐는 주인사마의 결정에 달린 거다라는 데스까?”
“정답. 너 똑똑하구나? 여태껏 다른 놈들은 이 말을 이해하는 놈이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지.”

남자의 말에 원사육실장은 허탈한듯 웃었다. 남자 또한 실없는 웃음을 짓는다.

“어찌보면, 우린 둘 다 우리가, 우리 주변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행복을 요구한 것일지도 모르지. 지금 우리의 처지는 그래서 받는 벌인거고.”

또 다시 침묵. 어디에선가 새들이 휘드르르르 지저귀는 소리가 주변을 감싼다.

“난 말야. 대기업의 차장이었어.”

남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생을 풀어놓았다.

“난 어릴 때 찢어지게 가난했지. 밥도 잘 못 먹을 정도로.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어. 엄청나게 노력했지. 죽도록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해 대기업에 취직해서는 상사에게 아부하고, 부하들을 챙기며, 때로는 없는 마음도 꾸며내어 사람들에게 싹싹하게 대했지.”

사육실장 후보로 태어나 죽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 했고 배고파도 먹지 않아야 했으며 땡깡을 부리고 싶어도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그 결과였을까? 나는 이름만 대면 다들 알 굴지의 대기업에서 차장까지 올랐고 예쁘고 착한 아내와 좋은 아이들까지 얻었지. 이만하면 행복한 인생이다 싶었어.”

그렇게 끝까지 교육을 마치고 출하되어 샵에 전시되었다. 그리고 기한이 지나 폐기되거나 하지 않고 지금의 주인을 만나 사육실장이 바라는 것들을 얻었다. 행복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만족하지 못했어. 더 많이 벌고 싶었고, 언젠가부터 마누라가 더 이상 예쁘게 보이지 않더라고.”

하지만 날이 가고 더 이상 푸드도, 옷도, 집도 세레브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바람을 피웠지. 마누라보다 더 젊고 예쁜 여자와 말이야. 행복했지. 잠시는 말이야.”

그래서 더 큰 행복을 위해 자신은 자를 원한다 말했다.

“그러다 들켰어. 그러자 내 주변은 빠르게 무너져 내리더라. 아내는 펑펑 울었고, 자식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고는 등을 돌렸지. 추문이 돌아서 내 평판은 엉망이 되었고 그 때문에 회사에 더 있지도 못해서 나왔는데 막상 나와보니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그러다 자는 새에 쥐도 새도 모르게 버려졌다.

“뭐, 그래도 아주 죽으란 법은 없는지 친구 연줄로 이렇게 공원 관리인이랍시고 한 자리 잡아서 이렇게 살고 있다. 단칸 월세방이긴 하지만 몸 누일 곳도 하나 구했고.”
“그게…와타시하고 무슨 상관인 데스 닝겐상…”
힘겹게 짜낸 듯한 목소리. 남자는 성체를 한 번 바라보고는 씨익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요즘 집에 돌아가면 말이야. 그때가 떠올라. 집에 가면 마누라가 웃으며 반겨주고 아이들이 뛰어나오며 나를 안아주던 그 때 말이야.”
“…”
“그때는 몰랐어. 그게 행복이었단 것을. 내가 바라는 행복은, 사실 거기 있었는데…그놈의 역치가 무언지 참…”
“데에…”
“옛날에 어떤 수도사가 이런 말을 남겼더라. ‘생물이여, 너 슬프도다. 행복을 느끼기엔 너무 고등하고, 행복을 알기엔 너무 하등하구나.’ 지금 너와 내 꼴에 딱이지 않니?”
“무엇을 말인 데스까…와타시는…”
“모르는 척 하지마라 이녀석아. 너 아까부터 내 말 다 알아듣고 있는 거 알고 있다.”
“…”
성체는 말없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한번 행복한 것을 느끼고 나면 더 위의 행복을 느끼고 싶어할 정도로 고등한 지성을 가졌지만, 진짜 행복이 어디 있는 가는 모르고 헤맬 정도로 하등한 지성을 가진 생물…”
문득 남자는 친실장을 돌아봤다. 친 역시 남자를 돌아보고 있었다. 

“나하고.”
“와타시데스.”
“하하하하.”
“데프프프.”

알고 있었다. 적어도 마음 한 켠에서는. 

찢어진 가난을 겪어 지금의 풍족한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았다. 하지만 더 행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륜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는 쾌락을 추구했다. 그래서, 버려졌다.

교육시절 보았던 들실장의 일상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 알았다. 하지만 더 행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인이 들어줄 수 있는 것 이상의 행복을 추구했다. 그래서, 버려졌다.

둘은 동일했다. 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등한 감각과 하등한 생각을 가진 생물로서. 파랑새를 새장에 두고도 있지도 않은, 그러나 그렇기에 있을 거라고 믿은 파랑새를 또 갈구했다.

한 사람과 한 실장은 한참을 웃었다. 자조일지 고소일지 모르는 그런 웃음.


두 생물 위로 어느덧 아침을 알리는 태양이 기지개를 편다. 밝아져 오는 동쪽 하늘을 보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노래한다.

“뭐, 내 여건상 너를 키우거나 할 여력은 안 되지만, 만약 여기서 잘 살아남으면 가끔 관리사무소로 놀러와라. 접대야 못 해주겠지만 적어도 말이라도 붙이고 남은 먹을 거리가 있으면 챙겨줄 수 있겠지.”
남자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그에 화답하듯 성체 또한 일어났다.

“와타시는 꼭 살아남을 것인 데스. 이번엔 주어진 행복에 감사하며 악착같이 살아보겠는 데스요 닝겐상.”
“그래라.”
“하지만.”

원사육은 씁쓸하게 웃었다.

“왠지 살아남고 자를 낳고 나면 이번에도 또 그 위의 행복을 추구할지도 모르겠는 데스.”
“그러다 또 죽을 고비에 닥쳐도?”
“그럼 그때 가서 또 후회하는 데스.”
“오오. 역시 지성있는 생명체야. 너도, 나도 말이지.”
“데스?”
“사실은, 나도 생겼거든. 생활이 안정되니까, 요 앞 다방 미쓰김이 좀 예쁘게 뵈더라고.”
“또또 파멸을 목전에 두고 계신 거 아닌 데스까?”
“하하하하하!”
“데퍄퍄퍄퍄!”

또다시 한참을 웃고 둘은 손을 흔들며 서로 반대방향으로 나아간다.


지성있는 생물은 슬프다. 주어진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행복을 찾는다.

하지만 그래도 또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이루려 하루를 산다.

어쩌면 삶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왜 삶에서 의미를 찾는가? 삶은 욕망이다.
- 찰리 채플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