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죽은지 오늘로 일주일이 지났다.
물건들을 정리하고 보니 방에는 쓸쓸한 공기만이 남았다.
서울에서 같이 살았던 투룸은 이제 나 혼자 쓰기에는 너무 넓었다.
"이제 남은건 이녀석 밖에 없나"
"테츄? 테츄아~"
"하..."
누나는 동내에서 알아주는 애호파였다.
집에도 '미도리'라고 부르는 사육실장이 있었으며
저녁만 되면 근처 공원에 나가 들실장들에게 직접 구매한 실장푸드들을 나눠주곤 했다.
"얘네들을 보면 나까지 기운이 나는거 같아"
누나는 몸이 좋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남은 날이 많지 않다고 말했지만
누나는 그보다 두 해는 더 살았다.
실장석 덕분이라고 누나는 말했지만 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건 누나가 키우던 사육실장 뿐이었다.
"미도리... 미도리를 잘 부탁해..."
"...."
"알아... 너는 실장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지.. 키우지 않아도 괜찮아.. 적어도 좋은 주인이라도 찾아줘.. 내 마지막 부탁이야..."
그것이 누나의 유언이었다.
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게 되었다.
난 '애호파'도 아니고, '학대파'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혐오파'일까?
난 실장석이 기분나쁜 생물이라고 생각한다.
어쩐지 인간을 어설프게 따라한듯한 생김새,
쓰레기더미를 엉망으로 헤집어 놓고,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먹으며,
만만한 인간에게는 투분을, 그보다 더 만만한 인간에게는 탁아를 시도하는
어디서부터 튀어나왔는지 알 수도 없는 이상한 생물, 나에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누나의 유언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는 나에게 있는게 아니었다.
누나가 사망선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그 사육실장 또한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미도리'라고 불리던 사육실장의 눈은 검정색으로 변해있었고, 혓바닥을 축 늘어뜨리며 추하게 죽어있었다.
"젠장.."
실장석을 만지기도 싫었던 나는, 즉시 보건소에 연락해 시체를 수거해주기를 부탁하였다.
"혹시, 실장석이 입고있던 옷은 따로 드릴까요?"
보건소 직원이 사체를 검은 봉투에 집어넣으며 나에게 물었다.
"네? 그걸 왜 줘요?"
"아... 아닙니다, 그럼 바로 수거해 가겠습니다."
검은 봉투가 사체의 무게 때문에 조금씩 늘어났다.
실장석의 윤곽이 선명하게드러나 기분 나쁜 모양이 되었다.
"자 그럼 저희는 이만... 엇!?"
"...? 왜그러시죠?"
보건소 직원은 봉투를 묶으려다 별안간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테츄아아악!!!!!"
순간 봉투에서 나오는 소리때문에 나는 깜짝놀라 뒷걸음질 쳣다.
보건소 직원은 꺼낸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건 정말 작은 실장석이었다
"테치! 테치!! 테에에에엥"
"이녀석 새끼가 있었군요, 보아하니 낳은지 얼마되지 않은거같아 눈치 못채셧나 봅니다."
작은 실장석은 좁쌀같은 이빨로 보건소 직원의 고무장갑을 연신 물어뜯었다. 장갑은 흠집도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네?"
"이녀석도 수거해갈지를 여쭙는 겁니다"
"아... 네.. 당연히..."
순간 누나의 유언이 떠올랐다.
나에겐 단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누나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다름아닌 자신의 실장석을 부탁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아뇨... 다시 수조안에 넣어주세요"
"지이이이!!! 테츄앗!!"
보건소 직원이 떠나고 난 후로도 이녀석은 나를보며 계속 하악질을 하였다.
"조용히 좀 해라, 나도 미치겠다고..."
일단 먹이라도 줘야하나, 나는 누나가 가지고 있던 고급 실장푸드 하나를 수조에 넣어주었다.
작은 실장석은 자기 몸길이의 반만한 실장푸드를 보더니 하악질을 멈추고 한참 냄새를 맡고는 한 입 깨물었다.
"테치얏!! 테치!테치! 테에에엥"
"뭐... 뭐야!"
먹이를 주고 뒤돌아가는 찰나, 수조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수조앞으로 가보니 작은 실장석의 입은 온통 피범벅이었고, 실장 푸드에게도 피가 묻어있었다.
"너.. 설마 이빨이 약한거냐?"
나는 얼른 실장푸드를 하나 쥐어 제대로 살펴보았다.
약간의 힘을 주니 그대로 압축되어 푸드에 베어있던 기름이 흘러나왔다
"대체 얼마나 약해빠진 생물이야.."
나는 어쩔 수 없이 실장푸드를 으깨서 다시 수조안에 넣어주었다.
작은 실장석은 다시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더니 마치 개처럼 엎으려 먹었다.
입가에 피와 푸드 잔해들을 뭍히고, 초승달처럼 휘어가는 눈을 보니
정말로 역겨웠다.
더는 보고싶지 않아 집 밖으로 나왔다.
나는 이녀석을 기를 수 없다.
거북함을 떠나, 이녀석을 보고있으면 누나가 생각나 버틸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기르던 실장석 때문에 평생 다툰적 없던 우리 남매도 서로 언성을 높혀 싸웠었다.
누나가 그 생물체에게 쏟는 관심, 체력, 그리고 삶의 이유까지, 나에게 '미도리'란 탐탁치 않은 동거인이었다.
그리고 그 '미도리'의 자식... 누나도 입원해 있느라 집을 오래 비워 자식이 있는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제 그 새끼 실장석의 처우는 누나 없이 나혼자 결정해야 한다.
보건소에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분쇄기로 직행할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걸어가던 도중 집 근처에 있던 실장숍이 보였다, 평소같은면 거들떠도 안보던 곳이었지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실장석 크기가 얼마정도예요?"
"아.. 대충 제 검지 손가락 정도 됩니다"
"그 정도 크기라면 자실장 중에서도 어린편이네요"
"네? 자실장? 실장석의 종류가 있는건가요?"
"아, 실장석의 유년기를 자실장이라고 부릅니다. 보아하니 사육실장은 처음이시군요?"
직원의 말에 나는 조금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렇습니다"
"다른곳으로 입양을 보내실려고 하신다면 가능은 하지만,
너무 어려요. 그 정도로 어린 자실장은 거래가 법적으로 금지되어있거든요."
"아.. 그런 법이 있었나요?"
"네, 적어도 10cm는 넘어야 등록이 가능합니다. 그때까지는 키워주셔야해요."
"하..."
막막했다. 실장석은 성장이 빠른 생물이라지만, 녀석이 10cm 정도로 커지려면
아마 3개월은 족히 걸릴것이다.
"정 뭐하시다면 먹이만 주고도 키울 수 있긴한데, 교육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녀석은 입양가치가 없어요"
"그럼 제가 교육도 시켜야 한단 말입니까?"
나는 순간 울컥해서 언성이 높아졌다.
"...입양 보내신다면 그렇죠. 돈이 많은 입양인들은 기본적으로 예의범절이 잘 교육되어있는 개체를 1순위로 보거든요"
"이딴 녀석들에게... 예의범절...? 하...!"
"교육하기 나름입니다. 초보분에게는 이 책을 추천드리죠"
실장숍 직원은 자신의 바로 뒤에 있는 책장에서 책을 하나 꺼내, 계산대에 올려두었다.
[실장석이 처음인 당신에게!! 사육실장의 모든것: 참피백과(Ver.22) 정가: 37,000원]
"....좀 더 싼건 없나요?"
결국 나는 책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가면서 조금 읽어볼까"
첫 문단에는 실장석의 신체구조와 습성 그리고 주의점들이 적혀있었다.
[실장석들은 언제나 주인에게 사랑받고 싶어합니다, 듬뿍 사랑을 줍시다]
머리가 지끈거려 다시 책을 덮었다.
집 문 앞에 도착하자,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하..."
'벌컥'
"으악!! 이게 무슨 냄새야!!"
문을 열자 안에게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아니, 이건 풍겼다는 말보다 내 몸을 때렸다는 표현이 적절할거 같았다.
코를 막고 일단 집 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고 환풍기를 작동시켰다
"젠장, 젠장!"
그리고 나는 수조를 살펴보러 그 앞에서는 찰나,
수조 안에서 무언가가 날아와 내 얼굴에 맞았다.
손으로 닦아보니 다름아닌 운치였다.
온통 운치 범벅이 된 수조 안에서는 자실장이 웃고 있었다
"치프프프..."
얼굴이 터질것 같았고, 머리카락이 솓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앞에 있는 생물체를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우선 집이 먼저였다.
"누나와의 추억이 있는 이 집을 이딴 상태로 둘 수 없어"
나는 일단 비닐장갑을 끼고 자실장을 수조 밖으로 꺼냈다
"테치!!! 지이이이이....!! 테치테치!"
자실장이 내 손을 자신의 작은 손으로 두들겼지만, 거의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는 일단 이녀석을 안쓰는 텀블러에다 넣고, 숨구멍만 남겨놓은체 뚜껑을 닫았다.
"테챠아아!! 테챠아!!!"
"잠시 여기 있어라!"
나는 이녀석이 수조로부터 던진 운치들을 세제로 닦았고, 그 자리에 향균 스프레이를 뿌렸다.
수조는 물로 씻어 안의 내용물을 모조리 비워 바깥에 말려두었다.
방안에 걸려있던 옷들은 모두 냄새가 베어 다시 세탁기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한참 예정에 없던 청소를 하고 나는 의자에 풀썩 쓰러졌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대체..."
텀블러 안이 조용했지만, 조금 흔들어보자 다시 소란스러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테치이이이 테치이이이이!"
나는 한 숨 돌리고, 아까 사온 책을 펼쳤다.
"어디보자.. 여깄다 57페이지 '실장석 목욕시키기'
[p57. 목욕시키기
실장석은 본래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생물입니다.
세면대에 따뜻한 물을 틀어놓고 실장석 전용 바디워시를 손에 묻혀주면 알아서 목욕을 합니다.
간혹 물을 무서워해 목욕을 싫어하는 개체가 있습니다만, 그럴 경우는 직접 손으로 약하게 씻겨주세요]
그 밑으로는 실장석을 씻기는 순서가 나와 있었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생물 좋아하네"
나는 녀석을 텀블러에서 끄집어 내었다.
좁은 텀블러 안에서도 계속해서 운치를 싼 모양인지 옷 안쪽에도 배설물이 가득했다
"테에에엥.. 지이이..."
자실장은 머리를 감싸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아까보다 한풀 기가 꺽인 모양새였다.
나는 책에 적힌대로 세면대에다 따뜻한 물을 틀어놓고 녀석을 내려놓았다.
녀석은 눈물로 퉁퉁부운 눈으로 물줄기를 바라보더니 빠른속도로 옷을 벗고 몸을 씻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의 머리 위에 내가 쓰던 바디워시를 한번 짜주었다.
"테츄우우우, 테프프프"
[처음 목욕을 하는 실장석이라면, 지금이 벗어놓은 옷을 세탁할 찬스입니다!]
책에서 본 글귀가 생각났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은 원래의 연두색에서 운치색으로 변해있었다.
"이걸 빨라고..?"
나는 한숨을 한번 뱉고 녀석의 옷을 싱크대로 가져와 세제로 박박 씻었다.
기분 나쁜 검정색 오물이 옷에서 베어나왔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실장복을 드라이기로 대충말린다음,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야, 이제 나올시간이야"
"테츄앗?! 테치테치!!"
녀석은 나오기 싫다는듯 다시 하악질을 했지만, 온몸이 물을 먹어 쭈굴쭈굴해진 상태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나는 녀석을 걸래로 대충 닦은 뒤에 말린 실장복을 건내주었다. 녀석은 옷을 내게서 빼앗듯 가져가고는 구석으로 달려가서 갈아입었다
"테츄~ 테츄~ 테프픗"
자실장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녀석은 원을 그리며 춤을 추었는데, 새끼라고 해서 역겹지 않은건 아니었다.
"일단 기본적은 훈련부터 해볼까"
가장 먼저 해야할건 역시 '배변' 훈련이었다.
나는 말려둔 수조를 다시 가져와 어미가 쓰던 물건들을 다시 배치했다.
[32p 실장석 배변훈련하기
배변훈련은 사육실장으로 살아가기 위한 첫 걸음입니다!
우선 '화장실'이란 존재와 익숙해지도록 해줍시다. 실장석은 배변 활동을 할때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데
팬티를 벗고 무릎을 굽힌뒤, 뒷머리를 한손씩 쥐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때 주인은 녀석을 화장실로 옮겨주면 됩니다. 성공했다면 간식을 제공합시다]
책을 읽자마자 녀석은 그림에 나와있는 자세와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어어...! 잠깐만...!"
녀석의 볼이 빨갛게 홍조를 띄었고, 나는 녀석을 신속하게 화장실로 옮겼다
'뿌디디디딕!!'
30% 정도는 화장실 밖에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녀석은 뒷처리를 하지도 않은체 팬티를 올렸다
"테츄~ 테츄웅~"
"씨발... 기분이 아주 좋아보이네 그지...?
나는 닦을것을 가지러 뒤돌아 섰는데, 책 밑 페이지에 빨간 박스로 쳐진 문구가 있었다.
[체벌법: 실장석이 배변활동이나 뒷처리에 실패했다면 체벌을 합시다.
배변활동은 개체마다 익히는 속도가 천차만별이지만, 대체적으로 강도가 강한 체벌이 요구됩니다]
"체... 체벌법이라니....?"
나는 혹시 잘못된 책을 샀나 싶어 표지를 다시 보았다.
어디에도 '학대용'이라는 글귀는 없었다.
나는 다시 책 목차로 돌아와 순서를 찾았다
"...찾았다! 체벌법"
[p22: 체벌하기
실장석은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말로써 훈육하는것이 대단히 힘듭니다.
따라서 실장석이 실수나 주인을 곤란하게 하는 상황이 왔을때 적당한 체벌이 요구됩니다.
체벌의 종류는 아래의 목록에 있는 적당한 것을 골라 시행합시다.
1. 딱밤 먹이기(실장석이 세바퀴 이상 뒤로 굴러가는 강도)
2. 물에다가 30초 담그기(찬물이 권장됩니다)
3. 볼펜 등 가볍고 긴 물건으로 때리기(5회에서 10회 정도 시행합니다)
안전한 체벌로 실장석들을 예의바르게 사육합시다!]
"실화냐고 이거..."
아무리 실장석이라고 해도 살아있는 동물이다.
동물에게 이런것을 하는것은 엄연한 학대가 아닌가
나는 체벌 방법을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보았다.
"어느하나 만만한 체벌이 없네"
결국, 나는 내 책생에 있는 모나미 볼펜을 하나 가져와 자실장 앞에 섯다.
"야"
"테츄웅? 테치테치 테프프픗"
자실장은 한손을 자기 볼에다가 대고 아양떨듯이 웃었다. 이게 아첨이라는 것인가
"왜 화장실을 간뒤에 뒷처리를 하지 않았지? 실장석용 티슈가 있잖아"
"테칫? 테치치 테츄앗!!"
자실장은 아첨을 멈추고 도리어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더니, 화장실 옆 실장석용 티슈로 달려갔다
"테츄아아앗!! 테챠테챠!!"
그러고는 티슈를 아무렇게나 뽑아 수조 이곳저곳에 뿌렸고, 발로 짖밟았다
"테치이이!! 테치이이이!!"
"...너 뭐하는거야!?"
"츄롱~"
자실장은 자신의 얼굴을 늘리며 혀를 내밀었다.
이건 따질것 없는 조롱이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모나미 볼펜으로 녀석을 한번 내리쳤다.
"테챠아아아앗!!!"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빵콘했다. 가뜩이나 뒷처리를 안해 더러워진 팬티인데 이번에 한 빵콘으로 팬티는 크게 부풀었다
"왜 내 말을 듣지 않지? 내가 만만해?"
나는 계속해서 볼펜으로 때렸다.
녀석은 수조를 뱅글뱅글 돌며 도망치다가 도망칠곳이 없다는걸 알게되자 구석으로가 머리를 감싸고 웅크렸다
"테에에에엥... 테치칫..."
"내가...! 너 때문에...! 이 고생을...!"
계속되는 훈육, 아니 그건 훈육이었을까
때리다 보니 참아왔던 울분이 터진것일까
아님 이제와서 누나를 잃은 슬픔이 실감난 것일까
아아.. 누나..! 불쌍한 우리 누나...! 겨우 이딴 녀석들을 돌보느라...!
나는 녀석을 계속해서 내려쳣다, 내리치고, 내리치고, 또 내리쳣다.
책에서는 10회라고는 했지만, 나는 녀석을 50회는 더 내려쳣다
체벌을 막기위한 녀석의 팔은 너덜거렸고, 머리와 몸은 피멍으로 가득찼다.
팬티는 이미 너무 울창해져 발조차 땅에 닿지 않았다.
"지이이이... 테...치이이...."
녀석은 신음을 내뱉더니 옆으로 고꾸라져 쓰러졌다.
이때야 나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어? 야 일어나봐!!"
몸통을 볼펜으로 쿡쿡 눌러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 씨발... 어떡하지...?"
순간 나는 다시 책을 펼쳐보았다
"여기있다!"
[p23 체벌이 과했을때
초보 주인분들은 적당한 체벌의 정도를 몰라 사육실장을 기절시키곤 하는데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앞 페이지의 목록에 나와있는 체벌만 했을경우에는
실장석이 죽을 확률은 0%에 수렴합니다. 다만 실장석이 기절했다면 그것은 스트레스가 너무 과도해서
행복회로가 작동하여 일시적으로 가사상태에 빠진것입니다.
집에 있는 에너지드링크나 비타민 음료등을 먹이거나 부어주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것입니다.]
나는 즉시 냉장고로 달려가 문을 열어보았다
안에 에너지 드링크나 비타민 음료 따윈 없었다
"엇..! 이거라면..."
나는 며칠전 반쯤 먹다 남긴 숙취해소제를 꺼내서 뚜껑을 연뒤 자실장 위로 부어주었다
"제발... 제발..."
실장석의 몸에서 멍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안심하여 바닥에 주저앉았다.
책도 같이 떨어져 다른 페이지가 펼쳐졌다
[p10 이름 짓기
실장석은 이름을 받음으로써 사육실장의 삶을 시작합니다.
앞으로 즐거운 생활을 위해 꼭 실장석이 좋아할만한 이름을 지어줍시다]
"이름... 인가..."
내 손에 있는 모나미 볼펜이 느껴졌다.
"모나미... 그래 앞으로 너의 이름은 나미다"
나미은 어느새 작은 상처들이 다 아물어 잠이 든 모양이었다
"테츄우우... 테츄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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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장례식은 조촐하게 진행됐다.
생전 실장석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과의 접점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
장례식을 찾아오는 손님은 적었다.
"츄아아! 테치! 테챠앗!!"
나미가 온지도 벌써 3일이 지났다.
그동안 사육실장에 대한 정보들을 유튜브나 책을 통해서 찾아봤지만
아무래도 '나미'는 똑똑한 편은 아닌거 같았다.
"뒷처리는 깨끗히 하라고 했잖아"
나미는 화장실에 쭈구려 앉아 운치를 싼 후, 휴지로 총구를 한 번 닦고는 팬티를 올렸다.
내가 깨끗히 빨아서 줬던 팬티는 다시 기분 나쁜 녹색으로 물들었다.
"테프프픗"
나미는 아랑곳 하지않고, 손에 묻은 운치를 바닥에 슥슥 닦고는 나를 보며 웃었다.
빡ㅡ!
나는 다시 한번 모나미 볼펜으로 나미를 내려쳤다
"테챠아아아앗!!"
"당장 바닥에 닦은 네 똥을 닦아라"
"테치! 테치!! 테챠!!"
나미는 내 명령을 듣고 화를 주체할 수 없다는듯 바닥을 쿵쿵 밟았다.
"닦아!"
빡ㅡ!
나미는 두번째 일격을 맞고 뒤로 넘어지며 빵콘을 했다.
울창하게 커진 팬티 밖으로 새어나온 운치가 다시 바닥을 더럽혔다.
"정말 말을 듣지 않는구나 너는"
"테...테...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엥"
두 대를 맞고나니 나미는 더이상 기를 쓰지 않고 바닥에 주저않아 울기 시작했다
팬티는 점점 더 울창해졌다.
"하... 돌아올때까지 깨끗히 닦아놔라, 안그럼 밤새도록 체벌이다"
나는 나미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왔다.
내일이면 회사에서 받은 위로휴가도 끝난다
그러면 나미는 내일부터 10시간 가까이를 혼자 지내야 한다.
한 시간 정도를 비워도 그 난리를 피웠던 녀석이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배변 훈련만큼은 완성해야 한다.
내가 현관까지 나올때까지도 나미는 계속 그자리에서 울고 있었다.
문을 닫자, 귀신같이 소리가 멈추었다.
"흠... 이야기를 들어보니 꽤나 분충인 모양이군요"
"분충...이 뭐죠?"
"말을 듣지 않는 실장석이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말이라... 사실 그 녀석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는 말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음? 그렇다면 링갈을 사용해보시는건 어떠세요?"
"링갈? 그건 또 뭐죠?"
"링갈은 실장석의 말을 번역해주는 도구입니다."
"맙소사, 그런게 있었단 말인가요?
"네, 하지만 업자 입장에서도 쉽게 권해드리기 어려운데, 이게 좀 비싸요"
"아... 얼마정도나..."
"번역율 100%의 링갈은 어디보자... 최신 모델이 27만원이네요, 이게 엔트리 라인이예요"
"네??... 좀 싼거는 없나요?"
"번역율이 낮은 링갈은 제일 싼게 지금 4만9천원이네요, 하나 드릴까요? 서비스로 콘페이토 한 봉지 드릴게"
".....네"
"이런 삐삐 같은게 정말 번역기라고...?"
포장을 벗겨 물건을 확인하던 나는 그 허술한 마감새에 헛웃음이 나왔다.
"한번 실험해볼까?"
후타바 공원
누나가 살아있을때 자주 오던 공원이다.
"여긴 실장석이 많았으니까"
공원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은 들실장 무리였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링갈의 전원을 켰다.
어느새 내 주변에는 들실장들이 잔뜩 모여들었다
"평소보다 많은거 같은데..."
"데스데스, 데샤앗!"
"데에에에, 데스웅? 데스우웅?"
"....뭐라는거야?
실장석들은 나에게 무언가 말하려는 듯 보였다.
"아, 링갈"
나는 링갈에 표시된 글자들을 확인하였다
[너, 봤다, 암컷과]
[암컷, 어디?, 왜 없어?]
'...번역이 되긴 하는 모양인데, 상태가 영 안좋네.
누나에게 먹을걸 얻어가던 녀석들인가, 누나를 데리러왔었던 날 기억하고 있나보군'
나미보다 두배이상은 크고 지저분해보이는 자실장이 내 바지를 툭툭 건드렸다
"테챠앗! 테챠아아앗!"
나는 자실장을 발로 툭 밀치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 사람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이제 이세상엔 없어"
실장석 일동은 조용해졌다. 아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긴, 매일와서 자기들을 예뻐해주던 사람이 사라졌는데... 그래도 누나를 기억해주고있긴 하네'
실장석들은 누나와는 달리 나에게 얻을게 없다는걸 알았는지 뒤돌아서 흩어졌다
"데스데스, 데에숭."
"데샷, 데즈우우"
나는 흩어지던 실장석들이 중얼거리는걸 보고 다시 링갈을 확인하였다
[암컷, 뒤졋어, 쓸모없어]
[병신, 밥 없어, 새로운암컷]
"뭐...?"
링갈을 잡고있던 내 손이 떨렸다.
처음엔 내눈을 의심했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조롱들이 링갈에 표시됐다
머리에 피가 쏠리는 느낌이 들더니 갑자기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두운 눈앞에 누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벤치에 앉아 실장석들에게 먹이를 나눠주던 우리 누나
나는 그때 누나의 즐거워하는 얼굴 밖에 보이지 않았어,
그럼 실장석들의 얼굴은 어땠지?
내가 기억하는게 맞잖아
그들은 탐욕스런 얼굴이었다.
어떻게든 더 먹이를 구걸하려고 동족를 짓밟고, 자기 새끼까지 못오게 막아버리는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인간에게 구걸하고, 쓸모없어지면 가차없이 잊어버리고
새로운 구걸거리를 찾아 공원을 떠돌아다니는 추한 존재
아
죽여버리고 싶어
나는 그자리에서 튀어나가듯 일어섯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던 실장석의 머리를 걷어찻다
"데규봇!!!"
실장석의 머리는 그대로 텨져 뇌수가 뿜어져나왔다
"데에?"
나를 떠나던 실장석들은 그 소리에 나를 뒤돌아보았다
처음에는 머리가 사라져 바닥에 누운 시체를,
그 다음은 내 얼굴을 보았다
내 얼굴을 본 실장석들은 소리를 지르며 일제히 도망쳣다
"데샤아아아앗!!!! 데샤아아앗!!!"
짧은 보폭으로 뒤뚱뒤뚱 걸어가는 모양새가 웃겼다
나는 다음 실장석을 걷어찻다
몸통 중앙을 걷어차이고 날아가 나무에 부딪혀 머리가 함몰 되었다.
그 다음 녀석, 조준이 흔들렸지만 바닥에 갈려 곤죽이 되었다.
한 녀석을 밟았다, 옆의 녀석도 밟았다.
느려터지게 도망치는 실장석들은 자기를 먼저 죽여달라고 애원하는것처럼 보였다.
누나는 왜 이런녀석들을 위해 매일같이 공원에 나갔던걸까
얘네들은 누나에게 고마워하지도 않아
이것봐, 다들 더러운 얼룩이 될 뿐이야
그냥...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얘들은.
몇마리를 죽였는지 모른다
애초에 세어보지도 않았다.
신발은 실장석의 살점과 피로 떡이돼있었다.
나를 바라보던 시선들도 한층 적어졌다.
아직 풀숲에 남아 떨고있는 녀석들도 보였지만
나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제일 먼저 죽여야할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나가 애지중지 키우던 사육실장의 새끼
나미를 죽임으로써 나는 누나를 놓아주는것이다.
집으로가는 내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어떻게 죽이지...? 어떻게 죽이지...??'
상상을 하는 내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집에 도착한 나는 현관 앞에 섯다
현관 앞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는 수조로 직행했다.
"이제 네 차례...."
수조 안에는 나미가 눈이 퉁퉁 부은채로 잠들어있었다.
실장석용 전용 침대가 아닌, 자신의 운치를 닦은 티슈 더미 사이었다
너무나 어설프게 닦아 바닥에는 운치자국이 그대로 있었지만
두 줄로 이곳저곳 그어진 자국들은 나미가 서툴게 했던 청소자국들이었다
내가 거친숨을 조금씩 삼키자 나미는 티슈 더미속에서 천천이 일어났다
"텟...!! 테챠아!! 지이이이....!"
나미는 일어나자마자 내 얼굴을 보고는 뒤돌아 엎드려 하악질을 했다.
하지만 그건 첫날의 위협하고자 하는 하악질이 아니라, 그냥 빌고있는것처럼 보였다.
나는 링갈을 확인했다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나는 더러운 티슈들을 꺼내고, 물티슈로 다시 닦은 후에 내 신발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잠들었다.
다음날이 되자 나는 다시 수조안을 보았다.
나미는 일어나있었다.
나는 링갈을 키고 나미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는 그래도 말을 들었네"
[말들어, 아파, 싫어]
"잘했으니까 상을 줄게"
나는 어제 실장숍에서 링갈과 함께 서비스로 받았던 콘페이토를 나미에게 주었다
나미는 냄새를 맞더니 눈이 동그래지며 정신없이 핥아먹었다
[달아, 좋아, 달아, 좋아]
"앞으로도 니가 말을 잘들으면 상을 줄꺼야, 하지만 안들으면 체벌이야, 알겠지?"
나미는 들은건지 못들은건지 계속 콘페이토를 핥았다.
나는 그 후로도 나미에게 이것저것을 알려주었다
빡ㅡ!
"밥은 앉아서 먹으라고 했잖아"
"테치칫!! 치이이이!!"
빡ㅡ!
"흘리면 안돼, 한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을 입으로 넣어라"
"테치테치이!! 테챠!"
빡ㅡ!
"화장실에서 똥을 흘렸잖아! 제대로 앉아야지!"
"츄우아앗!!! 츄아아!!"
물론 나미가 쉽게 내 뜻대로 움직이진 않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실장숍에서 산 책을 보다가 한 챕터를 보게돼었다
[p101 인사시키기
여러분들의 실장석은 이제 잘 훈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귀찮게 하지 않는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이제 인사를 시켜봅시다. 아침마다 실장석이 건네는 예의바른 인사는
당신의 하루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입니다!]
페이지 밑에는 인사하는 실장석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가, 역시 훈련이 잘 된 실장석은 단순히 밥을 깔끔하게 먹고
배변훈련이 되어있을뿐은 아닐것이다.
유튜브에서 본 사육실장은 설거지와 빨래등 간단한 집안일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수조를 바라보았다
나미는 화장실에서 운치를 꺼내 벽에 칠하고 있었다
"휴..."
나는 다시 볼펜을 가지고 수조로 걸어갔다.
순간, 나는 머리에 무언갈 얻어맞은 충격을 받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크윽....! 뭐야...!"
시야가 흐려지고, 몸에 힘이 모조리 빠져나가는것 같았다
"츄아아아앗!!!! 츄아아아아앗!!!"
수조안에서 나를보며 소리치는 나미가 보였다
"조용히 해, 시끄....러...."
나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낮선 천장이었다.
아니, 사실 난 이곳을 알고 있었다.
누나가 입원해있던 병원의 천장
그 입원실의 풍경은 잊을 수 없었으니까
잠깐, 병원?
나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팔에는 링거가 꽂혀있었고, 머리를 만지자 붕대와 함께, 칼로 찌르는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크으윽...."
커텐 밖에 있던 간호사는 내 움직임을 보고 밖으로 나갔다
"토시아키님 일어나셧어요"
"그동안 이런적이 처음이셧나요?"
"네..."
"이상하네요... 많이 아프셧을텐데"
"네...?"
"아직 정밀검사를 더 해봐야 알겠습니다만, 쓰러져있는 동안 진행한 검사에서 뇌종양처럼 보이는 사진이 찍혔습니다"
누나와 같은 병
"하...하하...."
"괜찮으신가요...? 환자분이 마음을 단단히 먹으셔야합니다. 아직 얼마나 진행됐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희망을 놓치면 안됩니다.
이 의사는 우리 누나에게도 똑같이 말했었지, 내 얼굴 따윈 기억도 못하는 주제에
"...검사는 받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퇴원하겠어요"
"환자분 생각이 그러시다면... 검사 날짜는 최대한 빨리 병원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나는 수납을 완료한 뒤 집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던 도중 나는 한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누가 나를 병원에 데려다준 거지? 우리집에는 나밖에 없는....'
"테챠앗!"
순간 나미의 울음소리가 내 머릿속을 관통하며 두통이 밀려왔다
아까와 같은 느낌의 통증이었지만, 이번에는 참을만했다.
'그래... 나미가 있어, 일단 집으로 돌아가야...'
나는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나 왔어"
현관을 들어서자 시끄러워야할 나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평소갔으면 집안이 떠나가라 울어재꼇을 녀석이다
나는 먼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곧장 수조로 향했다.
수조안을 보자 나미가 나를보며 유리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다행이다... 어..?"
"샤아악! 샤앗..! 샤아아아악!"
나미의 목소리는 평소같은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바람빠진 타이어에서나 나올만한 소리였다
자세히 보니 나미의 옷은 입에서 나온 피로 범벅이돼있었다.
"너... 설마..."
그랬다. 나를 병원으로 올 수 있게 만든건 다름아닌 나미였다.
내가 쓰러지는걸 보고 나미는 태어나서 제일 큰 목소리로 울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부르려고했든지, 나를 깨우려했던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리를 들은 지나가던 사람이나 옆집에서 구급차를 불러준것이다.
이미 성대가 파열나 쇳소리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눈물을 흘리며 벽을 두드리는 나미를 보고 나는 같이 울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자자"
나는 콘페이토를 하나 수조에 넣어주고는 침대로 지친 몸을 던졌다.
"테챱, 테챱, 테챱"
콘페이토를 핥는 나미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진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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