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나타났다 1~2 (완)



친실장은 새끼였을 시절 친과 자매를 버리고 도망쳤다. 골판지 박스안에서 공포에 질려 덜덜떨며 인간에게 맞서 싸우러 나간 마마를 기다리며, 어떻게든 이겨서 자신들을 구하러 와줄거라 믿으며 도망을 포기한 자매들은 모조리 불속에서 춤을 추다 까맣게 변해 사라졌다. 

당시 차녀였던 친실장은 마마의 말에 덜덜 떨리는 다리를 주먹으로 내리쳐서 도망을 칠수 있었고 수풀이 우거진 작은 틈 사이로 하얀 옷을 입은 얼굴이 안보이는 인간들의 습격을 똑똑히 봤다. 

평소 무적같았던 마마는 인간의 앞에선 큰 아줌마들이 구더기나 엄지를 일방적으로 잡아 때리고, 사지를 찢은뒤 먹었던것 이상으로 약하고 무력했다. 인간의 발길질 한번에 머리가 쑥쓰러웠는지 몸통씨 안으로 쏙 들어가 머리없이 몸통만 부들거리며 대여섯 발자국을 걷다 쓰러져 다 커서 부끄럽지도 않은지 팬티에 운치를 잔뜩 싼뒤 떼를 쓰는 엄지챠 처럼 바닥에 뒹굴며 마구 팔다리를 흔들며 떼를 썼다. 

마마를 믿고 기다린 8자매들은 골판지 박스안에서 인간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 바닥에 떨어져 팔다리가 부져신채 구더기처럼 바닥을 기어다니다 발이나 긴 막대기로 머리나 몸통이 터지거나 눌려 죽었다. 그럼에도 살아있거나 팔다리만 부러져 있던 자매들은 밥 봉투 안에 갇혀 어디론가 가져갔다. 

차녀였던 친실장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친실장이 알려준대로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조금씩 이동해 공원 중앙에 착한 인간들이 공물을 바치는 곳으로 쫓아갔다. 중앙광장엔 빨간 불들이 타오르면서 울부 짖으면서 똥을 지리며 질질 끌려가는 살아있는 큰 아줌마들이나 죽은 큰 아줌마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아직 어린 자실장들이 아무것도 모른채 죽은것과 산 것들이 밥 봉투안에서 섞여 불 안으로 쏟아졌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엄지나 우지차들은 운치굴로 도망쳤고 인간들은 운치굴을 흙으로 덮어 전부 생매장 당해 전멸당했다. 불 안에서 춤추는 아줌마들과 자실장들. 그리고 살아있던 삼녀, 육녀, 칠녀도 예외없이 불 속에서 춤추다 사라졌다. 인간들이 떠난 자리엔 검은 재만 소복히 쌓여있었다. 

그렇게 자실장이였던 친실장은 인간의 무서움을 알았다. 항거할수 없는 재앙. 막을수도 없고 운이 좋다면 간신히 모든걸 포기해야 목숨만 부지할수 있다. 이것이 대체 무시무시한 겨울같은게 아니고서야 뭐라 설명을 할 것인가. 웃으며 공물을 바치는 착한 인간도 화내면 큰 아줌마들을 바닥에 들러붙은 쫀득한 별미인 납작고기로 만들거늘, 학대파는 이름만 들아도 오금이 저리고 하얀 악마는 그저 정신을 차리면 팬티위에 앉아있었다. 

구제가 끝난 공원은 골판지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기에 자실장은 추가적인 위협없이 살아서 성장할수 있었다. 자실장이 성체가 될 무렵 어디선가 온 이웃들이 하나둘씩 생겼다. 그리고 다시 착한 인간들이 찾아왔고, 그와 동시에 학대파라는 나쁜 인간들도 찾이오기 시작했다. 소규모 구제를 하던 학대파들은 공원 격리 후 집중구제를 하는 하얀악마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적어도 대화는 시도할수 있었기에. 

하얀 악마들은 애교도, 아첨도, 위협 및 협박, 심지어 경고 조차도 무시했다. 그저 보이는 곳 마다 닥치는대로 죽이고 갈아엎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피와 똥이 가득했고 그 마저도 긴 대롱이에서 물을 뿌리자 녹아 없어져 사라졌다. 

그렇게 겨울를 2번이나 넘긴, 유일하게 이 공원의 비사를 알고 있는 능숙한 들실장으로 성장한 차녀는 3번째 임신으로 다시금 새끼를 얻었다. 

때는 춘삼월. 
완연한 봄이였다. 드디어 두번의 실패를 통해 친실장은 아직 태어난지 얼마 안된 새끼들 이라고 해도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걸 깨달았다. 이 친실장의 새끼들에겐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수없었지만 훈육을 통해 새끼들은 그나마 다른 들실장보다 아주 약간 생존에 한발짝 앞서나갈수 있었다. 

“자들은 듣는 데스. 만약 하얀 악마가 오면 어떻데 하라고 한 데스?”

“도망치는 테치!”
“와타치 누구 보다 빨리 도망칠 자신 있는 테치!”
“마마랑 같이 도망치는 테치?”
“마마랑 함께 있는 테치! 그런 테치! 와타치 정답인 테치!”
”테...도망치는 테치. 마마랑 오네챠들이 살려달라고 해도 다 무시하고 도망가야 한다고 한 테치. 그리고 수풀에 잘 숨어야 하는 테치“

친실장은 사녀를 제외한 나머지 4마리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먼 훗날 이 지식은 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어리광만 심한 사녀는 어쩔수 없다. 자신과 함께 미끼가 되리라. 

”그런 데스우. 마마의 마마가 말했던것 처럼 하얀 악마들에게 죽기 싫다면 도망쳐야 한다고 했던 데스. 하지만 마마의 자매들은 무섭다고 골판지 하우스 안에서 가만히 있다가 하얀 악마들에게 잔인하게 마마를 제외하고 다 죽어버린 데스. 엄지나 구더기들도 운치굴에 생매장당해 죽어버린 데스.“

”하얀 악마씨 무서운 테치...보고 싶지 않는 테치“
”걱정마는 테치! 와타치의 주먹 앞에선 하얀 악마따윈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테치!“
”마마가 있으니 와타치타치 안전 테츄~ 그런 걱정 하나도 안하는 테츄“
”테프프프~ 삼녀 오네챠 말대로 마마의 품안에 있으면 다 괜찮은 테치. 안전한 테치! 마마가 있는데 와타치 위험해질 일 없는 테치“
”테...“

친실장은 막내인, 몸이 제일 허약한 오녀만이 자신의 가르침을 따라오는 것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장녀는 별 생각이 없다. 
차녀는 허세가 심하다. 
삼녀는 자신을 너무 믿는다. 
사녀는 그저 어리광만 피우고 분위기도 잘 못 읽는다. 
오녀는...다 좋은데 몸이 약하다. 다른 자들에 비해 체력이나 힘이 반도 안된다. 이래선 도망친다고 해도 가망이 없다. 

”아무튼 명심하는 데스. 하얀 악마는 언제올지 모르는 데스. 마마는 이제 밥을 구하러 가는 데스.....“

친실장은 자실장들에게 말을 하며 골판지 하우스의 문을 열어 나갔다. 친실장이 밥을 구하러 나간 사이 자실장들은 조용히 누워 낡고 헤진, 갈색의 지붕을 보며 눈을 감았다. 들실장이 자실장을 기른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버겁다. 혼자 살면 풍족하게 하루 밥을 구하고 하루 쉬면서 여유롭게 살수 있지만 새끼를 낳게 되면 그 새끼들은 양충이나 분충이냐를 떠나서 자실장이나 자실장 이하의 개체들은 밥과 관련되서는 절제따윈 모른다. 그저 입안에 모조리 쑤셔넣고 똥으로 배설하며 고작 한 시간뒤에 약간의 공복감을 고통으로 받아들여 발광한다.

그렇기에 들실장의 새끼들은 배고픔과 기아에 익숙해져야 했다. 매일 나간다고 해도 그날 밥을 구해올수 있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2~3일을 허탕치고 굶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친실장은 아침에 밥 따위는 주지 않는다. 아침을 주고 점심에 먹으라고 밥을 남겨주면 자신이 떠나자마자 다 먹어치우곤 왜 점심을 주지 않아 자신들을 굶게 만드냐며 역으로 친실장인 자신을 매도 하기에 수 많은 실장일가에선 홧김에 자실장들을 때려 죽이고 먹어치우는 광경은 흔하다. 

자실장들이 하루에 밥을 먹는 것은 오로지 저녁 한끼. 이것도 풍족하지 않는다. 그저 간신히 죽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성장이 가능한, 집안에서 놀거나 떠드는 헛짓거리를 하지 않는 가만히 누워 잠만 자는 자실장만 약간씩이라도 성장 가능할 정도만 준다. 

매일 기아 상태에 빠진 자실장들은 친실장이 나가면 드러누워 잠만 잔다. 적어도 자는 동안에는 공복의 배고픔은 없으니. 간간히 깨어 다같이 물을 마시고 자는 것을 반복하는 동안 친실장이 없는 골판지 하우스 안에는 잡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동족을 잡아먹는 개체들도 무시한다. 자실장들의 안전과 친실장 자신의 권력를 다 잡는 들실장만의 노하우 인셈. 

“마마 언제 오는 테치....”

오녀가 중얼거린다. 작고 약한 울음소리지만 다른 자매들의 귀가 쫑긋 거렸다. 기다리는 시간은 지겹고 지루했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는 행복한 밥먹는 시간이 온다. 그렇게 참는 법을 배우는 자실장들. 다만 너무 과하면 기다리는게 익숙해져 도망쳐야할때 기다리다 일가실각의 원인이 되긴 하지만 이 자실장들은 따로 도망치라는 교육을 받았기에 다른 들실장의 자실장 보다 약간은 나았다. 

“오녀챠 자꾸 말하지 마는 테치...쓸데 없이 힘을 낭비 하니 오녀챠가 약한 테치...잠이나 더 자는 테치...”

장녀의 말에 오녀는 입을 다물었다. 다시금 고요해진 집안. 이미 오녀의 말에 다른 자매들은 잠이 다 깼다. 오지않는 잠에 오녀를 노려보던 자매들은 이런 짓 조차 쓸데없이 낭비라고 생각하며 애써 다시 눈을 감았다. 시간이 흐르고 친실장이 돌아왔다. 

친실장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남았음을. 
자실장등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갈수있음을. 
저마다 각자의 상념을 품고 안도했다. 

들실장들이 밥을 먹는 시간은 보통 9시 전후. 8시쯤 돌아온 친실장은 한시간을 보존식을 고르는데 쓰인다. 최후의 순간에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서 보존식은 필수. 그렇기에 친실장은 등 뒤에서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들으란듯 배를 쭉 내밀고 꼬르륵 거리는 소리를 알려주는 자실장들을 무시했다. 

자실장이냐 보존식이냐. 어느걸 더 중요시 하는것에 따라 일가의 미래가 바뀐다. 자신도 첫 출산후 일가실각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돌아왔기에 그 어떤 들실장보다 뼈져리게 알았다. 

“꼬륵꼬륵 뱃씨 우는 테치~”
“오늘도 밥 맛나게 먹어주는 테치~”
“밥먹고 누는 운치가 제일 좋아 테치~”
“어떤 밥을 먹을까 이 순간이 제일 좋아 테치~”
“밥주는 마마가 제일 좋아 테치~”

자실장들은 노래를 부르며 친실장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애를 썼다. 그나마 친실장이 생각하기에 교육이 제일 빠른 오녀조차 그래봤자 자실장이였다. 애초에 탄생조차 인간의 선별을 걸치고 수십~수백마리를 고문과 학대에 가까운 훈육을 통해 말 그대로 갈아서 선별한 최후의 한마리인 사육실장이 아니고선 들실장의 레벨에선 이 정도면 거의 최상급이였다. 

들평균 몇몇 덜떨어진 놈들은 친실장이 보존식을 고르는 와중에 밥에 눈이 돌아가 시끄럽게 지랄발광을 하다 자신을 탄생시킨 친실장의 분대로 도로 환원되거나 봉지에 뛰어들어 분노한 친실장의 주먹과 발로 봉지안에서 으깨져 밥과 함께 뒤섞여 자매들의 한끼로 전락한다. 아니면 거의 빈사상태까지 친실장에게 쳐 맞아 교보재로 쓰인다거나. 도저히 못써먹을 정도면 팔다리를 먹어 치우곤 거친 흙바닥에 비벼 재생을 막고 독라로 만들어 운치굴에 쳐 넣는다. 

“다 된 데스. 이제 밥을 먹는 데스”

신중히 골라낸 봉투는 반이 비었지만 자실장들은 몰랐다. 반이라도 남는게 이 친실장이 다른 들실장보다 얼마나 우수한지를. 보통 들실장들이 보존식을 빼내면 1/3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모른다. 

자실장들은 귀를 까닥이며 앉아 친실장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아가며 밥을 먹는다. 장녀라고 더 주는거 없고 오녀라고 덜 받는것도 없다. 다른 들실장 일가면 장녀가 눈알을 부라리고 친실장을 향해 침을 튀기며 빵콘한채 괴성을 지르며 불공평 하다고 항의하지만 이 친실장의 자실장들은 그런게 없었다. 

그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그 짓을 했던 장녀가 어떻게 됐는지를. 
그렇게 차녀가 장녀가 되고 삼녀가 차녀가 되고 사녀가 삼녀로, 오녀가 사녀로, 육녀가 오녀가 된 것을 알고있기에. 장녀라는 것도 친실장이 부여한다. 자실장들사이에만 존재하는 계급 마저도 친실장의 허락하기에 존재하기에 언제든지 친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장녀는 막내가 될 수 있다는걸 기억하기에 분배에 대해서 불만조차 가질수가 없었다. 

친실장은 자신이 목숨을 걸고 가져온 밥을 허투루하게 대하는 자실장을 찾기 위해 눈을 매섭게 치켜떴지만 걸리는 녀석들은 없었다. 걸리면 먹던 밥을 몰수하는 자실장들에게 최악의 형벌인 ‘밥빼기’를 당한다. 자실장들 또한 전부 한번씩 당해보기도 하고 그 불합리한 처사에 목소리를 높였다가 친실장에 의해 영영 목소리를 잃어버릴뻔 했다. 

품안에 나눠준 밥을 끌어 모아 엎드려 두 팔로 감싸안아 조금씩 팔을 오므리며 입안으로 밀어넣는다. 친실장은 자신을 향해 자실장들이 엎드려 조아린채 밥을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오늘 하루도 밥를 구하느라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을 느낀다. 모든 정신이 밥에 쏠린채 행여나 자신의 밥을 탐하는 녀석이 있을까 허겁지겁 먹으며 두 팔로 밥을 보호하는 모습. 들생활, 빼앗긴 놈이 잘못이기에 친실장은 자신의 교육을 잘 지키는 자실장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마지막 남은 밥을 털어 먹었다. 

그렇기에 들실장들은 엎드려 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먹기에 주변시야를 전혀 못본다. 입안에 밀어넣고 씹기 바쁘기에 소리도 듣지 못한다. 그렇기에 들실장들이 가장 무방비하게 되는 순간이며 자신들을 보호할 집이 없는 들실장들이 죽는 원인 일 순위가 밥먹다 정신차리니 내 옆에 자신들을 잡아먹는 짐승이 있는 상황. 

식사시간이 끝나고 패트병뚜껑에 따라준 물을 한마리씩 먹고선 다시 누웠다. 친실장의 옆에 몰려 쫑알거리는 소리에 친실장이 가볍게 한마디 했다. 

“오마에들 성장하기 싫은 데스? 마마가 말하지 않는 이상 오마에들도 말하지 마는 데스. 그렇게 주절거리면서 애써 마마가 구해온 영양을 쓸데 없이 낭비할꺼라면 당장 집밖으로 내보내 주는 데스. 마마가 준 것을 소홀히 하는 자는 필요없는 데스. 밖에서 마음대로 살아가는 데스.”

순식간에 적막이 감도는 집안에 만족한 친실장은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 잠을 자는 친실장을 보며 불만이 가득찬 얼굴인 자실장들도 조금이나마 허기가 사라진 배를 느끼며 잠을 청했다. 시간이 지나 허기가 사라지면 잠을 자는 시간동안 고통이기에. 

“데하~암~....오늘도 마마는 가보는 데스. 집 잘지키는 데스. 그리고 만약....아닌 데스“

친실장은 잠기운이 안사라진 자실장들을 보며 피식 웃으며 집 문을 열었다.

-도, 도망치는 데스-! 모두 도망치는 데스으-! 하얀 악마인 데스! 하얀 악마가 나타난 데스우!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동족의 고함에 귀를 귀울이자 몸이 덜컥 굳었다. 친실장의 귓가엔 다른건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저 하얀 악마라는 말이 또렷하게 들려 머리를 때렸다. 

”데, 데에...!! 모두 일어나는 데샤아아-!!!“

친실장의 비명과 같은 고함에 발딱 선 자실장들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불안한 눈으로 친실장을 보았다. 

”하얀 악마가 온 데스! 오마에들 빨리 준비하는 데스! 도망칠 준비를 하는 데스!!“

자다깨 영문도 모른채 얼떨떨한 표정의 자실장들은 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친실장이 그토록 말했던 하얀 악마. 친실장과 자실장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보존식을 다 먹어치우는 데스. 도망도 힘이 있어야 하는 데스. 어차피 보존식은 인간들이 가져가 사라지니 차라리 먹어치우는게 나은 데스“

친실장은 보존식 통을 가져와 집 가운데에 쏟아냈다. 자실장들은 평소라면 눈이 돌아가 대가리를 쳐박고 먹었겠지만 이제는 집 안에서도 희미하게 들리는 비명소리와 그 어느때보다 딱딱하게 굳은 친실장의 표정이 결코 장난이나 연습 상황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먹는 데스! 먹고, 잔뜩 먹어서 힘을 내는 데스! 그래야 사는 데스!“

자실장들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보존식을 먹었다. 친실장이 엄선한 보존식은 그동안 먹었던 밥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리고 이걸 다 먹는 순간 일가가 두번 다시 모일수 없다는걸 알았다. 마지막으로 친실장과 자매들의 얼굴을 기억하던 자실장들은 친실장이 물마저 아낌없이 주는걸 마시며 고개를 끄덕이며 뿔뿔히 흩어졌다. 

“이걸로 된 데스...마마는 다 커서 숨을 곳이 없는 데스. 오마에들을 일부러 잘 먹이지 않던 이유가 다 있었던 데스...마마처럼 잘 숨어서 다시 이 공원에서 자들을 낳아 살아가는 데스.”

친실장은 집안에 숨겨두었던 보검을 꺼내들었다. 같은 동족조차 제대로 찔린다면 단숨에 절명하는 보검. 이길거라곤 생각조차 안들었다. 그저 자신의 자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면 댔다. 친실장은 보검을 든 손을 높이 올리며 공원 중앙 방향을 보며 당당히 외쳤다. 

“와-바-랏 데샤아아-!! 와타시는 여기에 있는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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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실장이 살고 있는 공원에 구제가 실시된지 2년이 흘렀다. 2년사이 공원은 다시금 들실장들이 마구잡이로 개체수가 증가하여 시민들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었다. 

개체수 추정 약 380마리. 성체의 숫자가 저정도였고 자실장 까지 포함하면 대략적으로 850마리가 넘어가는 숫자였다. 공원은 진작에 포화상태였으며 그간 애호파들의 무분별한 실장푸드 살포에 아슬아슬하게 마릿수가 유지되었다. 

친실장은 알게 모르게 예전과 비교하여 먹이를 주로 수급하는 쓰레기장이 과거와 다르게 더럽고 너저분한 것을 천천히 오랜시간동안 바뀌었기에 모르고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와 생활쓰레기 봉투가 다 찢겨 바닥에 쏟아져 악취로 온갖 민원을 야기시킨다는 것을 몰랐다. 

몇몇 들실장들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하지만 이주 및 공원내 2세대, 3세대, 4세대 들실장들은 그런걸 몰랐다. 애초에 2년전 구제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건 이 친실장 한마리. 나머지는 다 이주해서 텅 빈 공원에 정착한 녀석들이기에 사정따윈 몰랐다. 그저 심해지는 경쟁에 자신들이 벌인 일을 수습하기 보단 하나라도 봉지를 더 뜯어 구하기 급급해졌다. 

그렇게 시작된 난장판의 끝은 하약 악마라 칭해지는 서울시 특별구제반이 과거 2년전 그랬듯 다시한번 이 곳을 방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친실장은 어렸을 적 기억이지만 너무나 강렬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살려달라 비는 자매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던 인간들. 그런 자매들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건 친실장. 비록 그 희생으로 자신만 살아남았지만 자매들과 친이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홀로 남겨진채 눈물을 흘리며 수 없이 상상하며 밤을 보냈다. 

텅 빈 공원에서 외로움에 사무쳐 아무리 울어도 찾아오는 이 없고 눈물자국이 가득한채 일어나 간신히 죽지 않을 만큼 밥을 구하며 살았다. 가끔 찾아오는 것은 그저 자신을 먹이삼을려는 날아다니는 새들과 개, 고양이들뿐. 

“하지만......단 한번도 복수를 잊어본적 없던 데스”

친실장은 눈을 빛내며 죽은 자매들과 친실장의 원한을 잊지 않았다. 상상만하며 하얀 악마들에게 어떻게 복수할지 생각할때 첫 자를 가졌다. 그 순간 친실장은 깨달았다. 하얀 악마들에게 복수할 방법을. 

그것은 하얀 악마들에게만 적용되는 복수가 아니였다. 가끔 와서 먹을것을 나눠주고 정작 길러줄 생각은 전혀 없는 인간들(애호파)이나 긴 막대를 가지고 온갖 방법으로 잔혹하게 가지고 놀다 죽이는 인간들(학대파) 모두 복수할 방법 이였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절망에 빠뜨리고 좌절하고 괴로워 하는 것을 즐기던 인간들에게 자매들과 친실장에게 이어받은 생명을 끝까지 이어가는 숭고한 사명과 함께 수 많은 자들을 낳아 행복하게 사는, 인간들이 질투에 미칠 그런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였다.

“지지않는 데스! 적어도 두번다시 와타시타치를 우습게 보지 못하게 한방 먹여주는 데스...”

애초에 이 친실장은 2번의 양육실패에서 복수고 뭐고 다 끝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도망쳐 살았으니 자들도 살아서 다시금 이 공원에 뿌리를 내리리라 여겼다. 죽어도 자신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자들에게 이어지는 생명의 숭고함. 비록 자를 가득낳아 질투에 미치는 인간들을 보지 못했으나 그것은 자신의 역활이 아닌 자들에게 넘어갔다. 이제 자신은 과거 친실장이 그랬던것 처럼 도망친 자를 믿고 인간에게 맞서 싸울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인간에게 있어서 의미없는 몸부림일 지라도 생명을 이어간다는 의지는 끊을수 없으리. 

친실장은 구제에서 살아남는 다는 것이 들실장에게 얼마나 운이 중첩되야 하는지 알수도 알지도 못했다. 만약 구제가 없었다면 이 운을 가지고 모든 실장석들의 꿈이자 최종 목표인 사육실장이 될 정도였다. 그저 친실장 조차 감당할수 없는 천운으로 살아남았음을 모른다. 

“오는 데스..! 어서 들어오는 데스!!”

나무 뒤에 숨어 보검을 품에 안고 힐끔힐끔 전방을 보는 친실장은 자신의 뒷쪽 수풀에 숨어서 지켜보는 한쌍의 눈동자를 몰랐다. 수풀더미에 숨에 엎드린채 자신을 보는 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교육을 가장 잘 받아들인 오녀였다. 

‘마마...’

체력적으로 다른 자매들과 달리 약했던 오녀는 도망치고 나서 곧바로 다른 자매들을 놓쳤다. 친실장이 그렇게 당부하였건만 장녀와 차녀, 삼녀와 사녀는 짝을 이루어 도망쳤다. 아이러니 하게도 무리에 낄 수 없는 체력을 지닌 오녀만이 친실장의 당부처럼 혼자 남아 도망칠수가 있었다. 아니, 도망도 제대로 치지 못한채 잔류하였다. 

그나마 과거 친실장보다 나은 것은 집안에 남은 자실장들이 없다 정도. 


장녀와 차녀는 달렸다. 자매들중 체력이 가장 좋은 이 둘은 도망치는걸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선 비명과 죽어가며 내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이쯤이면 괜찮겠지 하지만 소리에 다리를 멈출수가 없었다. 

“무서운 테치...무서운 테치...!”
“죽는 테챠! 죽기 싫은 테챠아-!”

장녀와 차녀는 친실장이 도망친뒤 숨어야한다는 말 중에서 도망만 기억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향하는 곳은 그저 비명이 안들리는 곳을 향해 방향을 바꾸며 뛰었다. 

장녀와 차녀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안들리는 구제업자들이 집결한 가장 조용한, 공원 중앙 광장으로 조금씩 조금씩 향하고 있었다. 



삼녀와 사녀는 걷다가 뛰는걸 반복했다. 수풀 사이에 숨어 천천히 기어가듯 주변을 경계하다가 수풀이 끊긴 화단의 끝에서 후다닥 달려 반대변 화단으로 넘어갔다. 

“오네챠, 이제 안전한 테치?”
“테? 잘 모르는 테치. 하지만 멀리가면 좋을꺼라 생각되는 테치.”

사녀는 삼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풀사이로 잦은 이동으로 머리카락과 두건, 옷이 찢어진 독라에 가까운 상태였지만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살필 여유도 없을 뿐더러 사방에서 죽어가며 도망치는 동족들도 독라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큼지막한 빵콘을 매단채 어기적 거리며 기어가다 죽는다. 팬티를 버리고 뛰면 그나마 더 멀리 갈수 있지만 팬티조차 버리지 못한 미련이 발목을 잡아 죄다 대가리가 깨져 바닥에 피를 흘려 죽는다. 죽은 동족의 피가 강처럼 흘러 배수구로 빨려들어가는 상황. 

삼녀와 사녀의 전략은 제법 먹혀들어갔다. 독라이기에 주변의 풀색이랑 어울리지 않아 눈에 띄여야 했지만 은폐에 신경을 써서 아직까지 들키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을 경계하는것과 은폐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이동 속도는 최악을 달렸다. 삼녀와 사녀는 골판지 하우스를 기준으로 고작 4m밖에 이동하지 못했다. 


”마마...이기는 테치. 마마가 이기는 모습 와타치가 확실히 보는 테치...“

오녀는 과거 친실장이 그랬던것 처럼 집 근처 수풀 사이에 숨어 친실장을 지켜보았다. 언제든지 찌를 준비를 하며 주변을 살피는 친실장의 모습. 하얀 옷을 입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인간이 드디어 친실장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절로 긴장한 오녀는 침을 삼키며 친실장과 인간의 격돌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녀는 몰랐다. 친실장 바로 뒤에 숨는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과거 친실장이 숨었던 방향은 이쪽이 아니였다. 

구제업자인 그는 나무 뒤에서 옆으로 퍼진 몸을 가릴 생각이 전혀 없는, 귀와 머리카락, 치맛단, 그리고 자신을 엿보기 위해 고개를 나무 밖으로 완전히 내민 성체실장 한마리를 보고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친실장 뒤에 멍청하게 수풀로 우거진 화단 나뭇가지 사이로 전혀 숨을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 쌀 한톨만한 지성의 조각도 없어 보이는 자실장의 누런 얼굴이 보였다. 뭐 실장 구제업이라는 것이 이런 병신들을 잡는거라지만 이럴때면 힘이 빠진다. 

”오는 데스..오는 데스...!!“

친실장은 긴장으로 땀을 주륵주륵 흘리디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인간과 자신, 죽거나 죽이거나 둘중의 하나만 남은 결과. 누가 이기던, 누가 지던 예측할수 없는 싸움을 앞둔 친실장은 긴장으로 심장이 터질것 같았지만 무거운 발소리를 내는 인간이 시야 가득 들어오자 역으로 불안했던 마음과 혼란스러운 정신이 가라앉았다. 호흡을 가다듬던 친실장은 생각했다. 

맑게 변한 정신으로 아무리 계산해봐도 인간을 이기는건 무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처음 생각한대로 한방 먹여주자 라고 결심했다. 

”목숨을 거는 데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되는 데스...누가 봐주지 않아도 되는 데스!! 그저, 인간에게 알려주는 데스. 와타시타치도 할수있다는 데스! 생명을 품은 이 세상에 당당히 두 발로 서서 생을 이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똑똑히 각인 시켜주는 데스! 장녀, 차녀, 삼녀, 사녀, 오녀... 오마에들은 듣지 못하겠지만 마마는 이런 데스. 마마는 지지않고 싸웠던데스! 마마의 마마가 그랬던것 처럼 와타시도 생의 이어짐을 위해 싸우는 데샤-! 인간! 와타시의 보검을 받으는...!?! 데걋!”

오녀는 친실장의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마마에게 외치고 싶었다. 자신이 보고 있다고. 자신이 보고 있음을 알아달라고. 마마는 혼자가 아니라고. 마마의 의지는 와타치가 확실히 이어받았노라고. 

하지만. 
필사의 각오를 한 친실장이 뛰쳐나가는 것을 본 오녀는 눈알가가 찢어질 정도로 눈을 크게 떳다. 그야말로 죽고자 하면 살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것이다 라는 말을 뼈에 새긴채 달려나간 친실장이 얕은 비명과 함께 넘어지는 어이없는 불행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곧이여 자신의 눈을 의심케 하는 것을 보았다. 

넘어진 친실장은 웃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봐도 웃고 있던 것이다. 오녀는 그런 친실장의 웃는 표정이 낮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듯한 모습. 

그랬다. 오녀는 극한의 상황속에서 익숙한 친실장의 표정을 기억해냈다. 그것은 과거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실장을 따라갔던 처음본 바깥세상. 친실장은 몰려드는 큰 아줌마들에게 엄지2마리와 구더기 3마리를 던지고 나서 유유히 자신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하며 보여준 미소였다. 

‘그런 테치! 역시 마마인 테치! 마마는 다 계획이 있었던 테치! 와타치는 마마가 자랑스러운 테치...! 마마는 훌륭했던 테치! 그 어떤 아줌마들보다 마마가 제일 훌륭했던 테치!! 마마는 와타치타치의 자랑인 테치! 와타치 살아남아 마마의 모습을 반드시 자들에게 알려주는 테치!!‘

오녀는 소리없이 울며 친실장의 목숨을 판돈으로 건 일생일대의 최후의 도박을 지켜보았다. 인간이 다가와 넘어져 엎드린채 일어나지 못하는 친실장의 앞에서서 발을 들어 올렸다. 오녀는 그 순간 친실장의 품안에 날카로운 보검이 친실장의 목 바로 밑에 세워지는 것을 볼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려는 몸을 간신히 제어했다. 마마가 만들어준 생을 바친 기회다. 허무하게 날려버릴순 없었다. 

’보는 테치...! 보는 테치이! 똑똑히 기억해서 와타치도 훗날 인간에게 복수하는 테치! 인간에게 복수하는 테치...!!‘

악 다문 입에서 한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친실장은 짧은 순간에 수 없이 고민했다. 지켜보는이 없이 홀로 고독한 싸움이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가치있는 일이며 제법 할만하지 않은가.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자신만 알면 됐지. 친실장은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 처럼 중얼거리며 인간에게 어떻게 한방 먹여줄지 고민했다. 

보검을 들고 뛰쳐나가 찌를까?
안된다. 인간은 자신들보다 수백배 크다. 접근하기 전에 당한다. 

아픈척 위장해서 접근할까?
안된다. 하얀 악마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근처에 다가기만 해도 곧바로 죽일터. 

하지만 친실장은 위장을 한다는 것에 무언가 느꼈다. 자신들을 바보처럼 여기는 인간들이라면 이건 통한다. 어차피 보는 눈도 없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딱 한번 바보같은 연기를 하면 된다.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한 친실장은 용기를 얻었다. 

“해보는 데샤아-!! 목숨을 거는 데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되는 데스...누가 봐주지 않아도 되는 데스!! 그저, 인간에게 알려주는 데스. 와타시타치도 할수있다는 데스! 생명을 품은 이 세상에 당당히 두 발로 서서 생을 이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똑똑히 각인 시켜주는 데스! 장녀, 차녀, 삼녀, 사녀, 오녀... 오마에들은 듣지 못하겠지만 마마는 이런 데스. 마마는 지지않고 싸웠던데스! 마마의 마마가 그랬던것 처럼 와타시도 생의 이어짐을 위해 싸우는 데샤-! 인간! 와타시의 보검을 받으는...!?! 데걋!“

친실장은 마치 나 습격하는거에요를 티를 내며 뛰쳐나가 일부러 화단 끝에 발을 살짝 걸고 넘어지며 굴렀다. 품에 안은 보검의 끝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 옅은 자상을 남겼지만 상관없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이미 자신은 죽고 없다. 계획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이딴 상처는 상처 축에도 안들었다. 정신을 부여잡고 과도한 오버 액션을 취했지만 역시나 인간들은 자신들을 얕잡아 보고 어색함을 눈치 못챘다. 슬며시 나오는 웃음을 참고 신음소리를 내며 정신을 못차린듯 무릎과 손을 바닥에 집고 어서 빨리 밟아 죽이라는듯 보기좋게 만들었다. 

인간앞에 머리를 조아리는건 굴욕적이였지만 자신의 소중한 돌은 배 가장 아래에 있다. 적어도 소중한 돌이 깨지기 전까지 약간은 산다. 고통에 울부짖는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며 죽는것도 나쁘지 않으리. 친실장은 바닥을 보고 있었지만 알수 있었다.

드디어. 
발이. 
자신의 목과 뒷통수를 향해. 
내려오고 있음을. 

친실장은 재빠르게 보검을 일자로 세워 목 끝에 갇다댔다. 인간은 자신의 몸에 가려진 보검을 눈치 채지 못했다. 두건 넘어로 뒷통수에 무언가 살짝 닿는다. 

”데...프프프프프...!!“

친실장은 두 눈에 아른거리는 자들이 보였다. 썩 괜찮은 실생이 아니던가. 인간에게 복수도 하고 자들은 뿔뿔히 흩어져 다시금 이 공원에 뿌리를 내리리. 자신이 만든 생명의 이어짐은 이 사건으로 더욱더 강하게 자라리라. 

-치익, 칙. 치이이익-, 칙. 
아아, 구제본부상황실에서 전파드립니다. 현재 13시 37분. C구역 구제인원 몇 분이 성체 들친실장이 못을 품에 안고 일부러 구제인원 앞에 넘어지는 연기를 하며 밟아 죽일때 못을 세워 발을 공격하는 것에 신발이 뚫렸다고 합니다. 다행이 한 치수 큰 신발을 신어 부상은 없었지만 구제본부에서는 이 사건을 사람을 고의적으로 해할려는 것임을 인지하고 현 시간부로 D공원은 해골 3단계로 격상, 즉시 모든 구제인원들은 구제를 중지하시고 지급한 도로리 용액으로 즉각적인 말살 및 소독작업을 지시합니다. 반복합니다. 현 시간부로 들실장에 의한 인간의 고의적인 상해 상황증거가 포착되었으니 해골 3단계로 격상 도로리 용액으로 말살을 지시합니다. 

친실장은 인간의 어깨에서 난 소리에 머릿속이 텅 비었다. 닿을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내려오던 발이 더이상 내려오지 않는 다는 것을 느낄수가 없었다. 

어째서. 
왜?

”...안되는 데스...! 어째서인 데스! 이건, 이건 선택받은 와타시만이 할수있는 계획인 데스! 와타시만이 가능한 계획인 데스!! 삶을 이어받은, 다른 동족따위가 아닌! 오로지 와타시만 생각해낸 특별한 계획이였던 데스우-!! 어째서인 데스! 인-가아아아안-!! 당장 말해보는 데스! 왜! 왜 그딴 소리가 들려오는 데샤아아아-!!! 말해보는 데스! 오마에들에게 마마와 자매들이 죽었을때 부터 품었던 와타시만의 고귀한 생각인 데샤아-!! 인가아안-! 말해보라는 데스우! 당장 대답하라는 데스!!“

친실장은 믿을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고 그제서야 인간을 마주보며 노려보았다. 증오로 일그러진 얼굴. 두 눈에는 진한 적색과 녹색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세상에 단 하나. 오로지 자신만이 생각해내고 깨달은 생의 의지와 온갖 추잡한 몰꼴(일부로 넘어지기)을 하더라도 인간에게 복수하겠다는 굳은 증오로 만든 완벽한 계획이 다 까발려졌다. 그것도 어디있는지 모를 이상한 분충이 먼저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수 없었다. 오로지 이 세상에서 자신만이 깨달은 고귀한 지식이 실은 실장석이라면 아무나 다 생각하는 흔하디 흔한 아무런 가치없는 것임을 받아들일수 없었다. 

하지만 발을 거둔 인간은 등에 맨 긴 통에 달린 대롱이를 꺼내 들었다. 친실장은 과거 이것을 이용한 인간들이 죽은 동족의 사체를 지워나가는 것을 보았다. 눈 앞에 멈춘 대롱이를 봐도 반응이 없는 친실장. 

-치익

1초도 남짓한 시간의 분사. 친실장의 반응은 뿌리자 마자 바로 나왔다. 

”데갸아아-!! 데끼이잇-!! 데, 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얼굴이 녹는다. 
안구가 녹아내리며 물처럼 흘러 사라졌다. 텅 빈 안구 구멍에선 눈물만 흘러 넘쳤다. 농축 도로리 용액은 단 한방울을 실장석의 정수리에 떨어뜨려도 정수리에서 총구를 뚫고 녹여 바닥에 떨어진다. 화학적 화상으로 재생조차 할수 없다. 그런 용액을 얼굴 전체에 분사당했으니 이 친실장이 멀쩡할리 없다. 

빵콘을 지린채 바닥에 엎드려 파닥거리는 친실장의 품에서 굴러나온 갈색의 녹슨 못. 금속 특유의 쨍소리와 함께 굴러 인간의 신발 코에 부딫쳐 멈췄다. 

”데캬아아아-! 데끼이-,이...이.....!!“

안면이 녹아 뇌가 보이기까지 분사후 1초. 성체 한마리를 5초만에 녹여 버리는 즉효성 농축 도로리. 안면부터 녹아내려 성대마저 녹은 성체실장은 안면구멍에서 뇌가 들어난채 그저 신경이 교란되어 바닥에 쓰러져 간간히 팔다리를 파닥거렸다. 뇌는 이제 막 녹아내리기 시작하여 운치를 부루룩 싸지르며 팬티를 부풀리기 시작했다. 

”테...? 마마...?“

자실장은 믿을수가 없었다. 그 친실장이 누워서 빵콘을 한채 떼를 쓰며 팔다리를 마구 휘젓다니. 뭐라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인간에게서 어떤 소리가 흘러나오자 마마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저 모양이다. 오녀는 친실장이 엄지 처럼 인간의 앞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자 친실장에 대한 믿음이 쩍 하니 갈라졌다. 

“마마...! 어째서 테치이...? 마마는 아이가 아닌 테치! 일어서라 테치! 일어서서 당당히 인간과 마주보는 테치! 그대로 누워있지 말고 일어서는 테치-!!!”

오녀는 친실장의 모습을 더이상 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마마의 단단하고 결연한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추잡하기 그지 없는 모습. 자신들에게 당당히 살아가라고 했던 친은 이제 없다. 그저 인간의 앞에서 추레하게 몸부림 치며 아양떠는 가증스런 성체실장만 있을뿐. 

오녀는 자신이 왜 저런 친실장을 향해 달려가는지 스스로도 이해할수 없었다. 아니, 고작 저런 친실장에게 태어난 자신을 용납할수 없었다. 

“와타치 만이라도...! 와타치 만이라도 와타치타치의 의지를-, 긍지를-,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테치이잇-!!”

오녀는 눈물을 닦으며 달려서 인간의 앞에 섰을때. 
고개를 아무리 올려도 제대로 볼수 없을 만큼 거대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을때. 비로소 느꼈다. 저것은 무리라고. 살고 싶다고. 구해달라고. 다시 도로 도망치고 싶다고. 

삶을 갈망하는 오녀의 생각과 다르게 전신이 공포로 굳어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의 인간의 형상은 공포와 죽음이였다. 오녀는 그저 눈알만 굴리며 똥을 지릴뿐 빵콘을 해도 스트레스는 해소는 커녕 두려움만 겹겹히 쌓여갔다. 오녀가 눈알을 굴리자 비소로 친실장의 모습을 제대로 볼수가 있었다. 정수리와 뒷 껍데기만 남은채 녹아서 뭔지 알수 없는 물처럼 흐르는 친실장의 모습을. 아양떠는게 아니였다. 인간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그냥 죽은 것이다. 오녀는 눈앞에 다가온 죽음에 친실장 처럼 소리라도 지를 용기조차 없었다. 친실장처럼 뭔가 움직이는 것도 할수가 없었다. 그저 숨만쉬며 눈알만 굴릴뿐 그 어떤 무엇도 친실장의 티끌이라도 따라 할수가 없었다. 

수풀에서 뛰쳐나오기전의 다짐은 인간을 앞에서 제대로 본 순간 빠그라져 사라졌다. 왜 나왔을까 미칠듯한 후회가 되지만 행복회로도 감당 못하는 상황에서 실장석의 유일한 도피처로 도망도 칠 수가 없었다. 오녀는 자신의 시야 정면에 내밀어진 둥글게 생긴, 빈 구멍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뭐라도 해야한다. 오녀는 죽음을 직감했다. 

적어도. 
적어도 인간의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뜻을 세운 마마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가 되야한다. 이 무시무시한 자연재해같은 인간의 앞에서 적어도 마마처럼은 불가능 하겠지만 그래도 마마의 자였다는 증거를 보여줄 것이다. 오녀는 당장이라도 도망갈것같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바짝주고 척추를 곧게 폈다. 그럼에도 한눈에 인간을 다 담을수가 없었다. 그저 인간의 얼굴이라도 생각되는 곳을 보며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혼과 생명을 모두 담은 처음이자 마지막.

”테, 텟츙~!“

아첨이였다. 

-치익

0.3초의 분사. 오녀는 아첨을 한 모습 그대로 자신의 친실장과 마찬가지로 얼굴이 녹아 흘러 내렸다. 브릿 거리며 똥을 한 무더기 싸지른채 신경이 녹아 없어진 오녀는 친실장 옆에 쓰러져 친실장과 함께 그대로 녹아 땅에 스며들었다. 

공원내 들실장들은 죽어가면서 믿었다. 
그래도 한마리 혹은 어쩌면 어린 자실장이나 운치굴의 엄지라도 살아서 자신들의 유지를 이어가기를. 하지만 못을 든 시점에서 그 모든건 불가능했다. 실장석이 인간을 공격한다. 이건 지금까지와 다르게 그냥 넘어갈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공원내의 바리게이트가 2중으로 구성되었고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150여명의 추가인원이 도착, 지금까지 쓰던 농축액의 3배가 넘는 초고농축 액으로 무장한채 3중으로 공원을 둘러 쌓은채 도로리 약액으로 높게는 나무위. 낮게는 땅 밑으로 1m이상 스며들게 뿌렸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나무 위에 던져져 있을 녀석부터 땅밑으로 파고든 녀석들까지 모조리 용액으로 녹이기 시작했다. 3중으로 펼쳐진 소독작업은 조명을 킨 채 밤 10시까지 5번에 걸쳐 이어졌다. 그 모든 작업은 무서우리 만치 고요했다. 보이면 뿌려서 녹인다. 성체실장도 1초만에 녹아 흐를 정도. 말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골판지 밑, 운치굴, 낙엽 밑, 눈에 보이는 곳, 안보이는 곳 공원에 존재하는 땅과 수목들 전체가 도로리로 젖지 않은 곳이 1mm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구상 생태계의 정점에 위치해 자신을 공격하는 것들을 역으로 지배하며 과학을 통해 먼 미래에 자연마저 지배할려는 종족이 바로 인간이였다. 그리고 들실장들은 ‘구제’가 아닌 ‘말살’ 혹은 ‘소독’으로 변경되는 차이를 몰랐다. 

구제는 몇 마리 흘리거나 업자들이 눈감아 주지만 이건 다르다. 과거 수십 종의 생물을 멸종시킨 인간. 그것이 실장석들에게 진짜 제대로 겨눠진적이 없기에 그저 인간들을 우습게 여기는 실장석들에게 국소적이지만 이 공원내 펼쳐지기 시작했다. 공원 밖에서 몰래 인간의 품에서 훔쳐보던 사육실장들은 스스로 위석을 깨고 자살하는 개체가 속출하는 소독작업. 

실장석이란 것이 단 한마리도 존재하지 않는 공원에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새들이 지저귀며 실장석이 녹은 영양가득한 수분을 빨아들인 꽃들은 여태껏 보지 못한 화려한 색들로 꽃봉우리를 펼쳤다. 과거 이 공원이 실장석이 없었던 것을 기억하던 사람들이 그 빈 자리를 채웠다. 

앞으로 1년간 이 공원엔 사육실장도 출입할수가 없다. 초고농축 도로리로 인해 바닥에 닿기만 해도 발이 녹으며 공원안의 모든걸 만지기만 해도 손이 녹아버리기에. 이주나 정착은 꿈도 꾸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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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녘 2023


어미가 죽고나서, 상자 안에는 어리고 연약한 자식들만이 외로이 남겨졌다. 식어버린 몸뚱이에 아무리 말을 걸어보아도 돌아올 대답은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엔 시간이 꽤 걸렸다. 마지막까지 어미의 몸뚱이에 매달리며 울어대던 유약한 사녀와 응석꾸러기 십녀를 장녀가 제지한 끝에야 겨우 어미의 옷자락에서 손을 뗐다.

연약한 새끼들의 힘과 의지로는 묻어줄 땅을 파는 일도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조그만 혀로 어미의 차갑고 굳은 피부를 닦아낸 뒤, 골판지 하우스 구석에 방치해둘 뿐이었다. 새끼들은 그게 죽은 어미에 대한 최고의 예우라고 생각한걸까, 그런 처사에 토다는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다른 개체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먹히지 않고 조용히 썩어 문드러져 망각속으로 사라질 수 있는 것은 들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겐 특별한 최후이긴 했다. 십녀는 한사코 어미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마치 죽음이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어미에게 계속 들러붙으며 이리저리 말하고 좋을대로 안기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점차 어미에게서 풍겨나오는 악취에 인상을 찌푸린 십녀는 다시는 어미의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 했다.


자식들을 먹여줄 어미가 사라졌기에, 자식들은 그저 비축해둔 보존식을 먹으며 버틸 수 밖에 없었다, 버틴 끝에 희망이 오리라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본능, 어미의 생전 교육에 따른 행동.

새끼들 중 가장 강인한 장녀는 어미의 일을 떠안았다. 장녀는 자매들을 앉힌 뒤, 먹이통을 뒤적였다. 떫은 맛을 내는 벌레 사체, 수풀 열매조각, 가끔씩 애호파가 뿌리고 가던 실장푸드를 나눈 일부분. 장녀는 차례대로 자매들에게 음식의 조각을 분배했다. 한창 먹어야 성장하는 자실장과 엄지실장에겐 턱없이 모자라는 빈약한 끼니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줄기만 하고 늘 일이 없는 식량을 최대한 아끼려면 그 방법 뿐인 것을...

분배의 차별이 없는것은 아니었다. 먹이의 배분을 맡는 장녀는 스스로 가장 많은 먹이를 가졌고 그 뒤로 차녀, 삼녀, 사녀... 먹이는 아래로 내려갈 수록 적어졌다.

장녀는 우월감이나 사적인 악의를 품고 이러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일이었다. 몸집이 클 수록 많은 영양이 필요했다. 십녀에 들어서 엄지들에겐 그 작은 엄지의 손으로도 완전히 감싸지는 적은 먹이만을 받았고 구더기에겐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자신의 몫이 없다는 걸 안 구더기는 꼬리를 흔들며 무어라 짖어대었다. 점점 차가워지는 시선을 감지한 십일녀가 간신히 프니프니를 약속하며 구더기를 달랬지만 구더기의 몫이 없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십일녀가 의아해하며 레치-레치 물었지만, 장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구더기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렇게 되뇌이는 장녀는 눈이 시큰해졌다.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구더기 따위에 할애할 수 없다, 라고 머리로 생각하면서도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동생인 녀석은 굶긴다는 것을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먹이의 배분이 끝나자, 속으로 각자 이런 상황에서 할법한 불평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불만의 목소리는 용납되지 않았다. 장녀의 엄한 눈초리와 굳게 쥔 주먹 뿐만 아니라... 그냥 무언가 트집 잡을만한 거리를 기다리는 듯한 이 위태로운 분위기 자체가, 불만을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유일하게 엄지 십녀는 대담하게도 먹이의 양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가 뺨을 한대 후려맞았다. 십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불만 제기에 폭력이 가해지자 우렁찬 울음을 터뜨렸지만 차녀가 한대 더 뺨을 후려치자 조용해졌다.

돌이켜보면 항상 철 없고, 생각 없이 구는 녀석이었다. 대책도 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결코 자신이 스스로 먹고, 싸고, 씻는 일도 없었으며 항상 어미의 뒷바라지가 필요했다. 식시 사긴마다 자신의 밥이 모자라다며 칭얼대서 자매들의 밥을 어미로 하여금 빼앗아 자신에게로 돌려지게 했다. 그러면 귀신같이 울음을 뚝 그치고 그릇에 게걸스레 얼굴을 파묻었다. 어미야 녀석이 귀여웠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었겠지만 파멸을 향해 느리지만 확실하게 다가서고 있는 새끼들에겐 이런 관용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차녀는 생각 끝에, 내심 십녀가 역겨운 녀석이라 생각했다.



머릿수만 11에 달하는 새끼들이 원을 둘러 앉아 조용히 식사를 한다. 실장석의 식사란 게걸스럽고 소란스럽고 불결한 것이지만 이 일가의 모습은 더 없이 엄숙하다. 마치 장례식장에서 수저를 드는 조문객같다.  부분의 먹이를 조각내어 조금씩 씹는다, 아주 천천히, 그럼에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어미가 살아있었을때도 그다지 배부르게 먹어본 기억은 없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도 빈곤하다.

가장 먼저 끼니를 마친 엄지 십일녀가 빈약한 찌꺼기가 묻은 손을 핥으며 언니들을 바라보고 있다. 십녀는 사녀에게 달라붙어 어리광을 부리며 여분의 밥을 졸랐다, 사녀는 곤란해하는 눈치이면서도, 자신의 밥을 조금 떼어주었다. 점점 식사를 마친 자매들의 시선을 느끼게 된 웃언니 실장들은, 허겁지겁 먹이를 먹어치웠다. 마치 빠르게 먹어치우지 않으면 빼앗기기라도 할 것처럼. 

구더기 십이녀는 원을 이룬 자매들의 등 뒤로 부지런히 기어다니며 배고프다며 울음소리를 높였다. 허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어미가 죽은 뒤로 막내로서 예쁨 받던 구더기는 무관심, 냉대를 받고 있었다. 평범한 일가에서 베풀 수 있었던 돌봄과 사랑이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했다. 절망하고 있는 자매들에게 구더기는 철저히 무시, 배격의 대상. 아무것도 모르는 구더기로선 모든게 이해되지 않았다. 구더기는 슬펐지만, 그래도 견뎠다. 견뎌야 했다... 모두가... 구더기는 매몰된 운치굴의 흙더미 위로 올라가 흙에 반쯤 스며든 녹색 덩어리를 핥았다.


먹이통에 기대어 힘 없이 자고 있던 장녀는 소란에 깨어났다. 장녀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앞을 보니, 차녀와 오녀가 소리를 질러대며 싸우고 있었다. 장녀는 차녀가 오녀의 얼굴에 주먹을 내지르는 광경에 깜짝 놀라 앞으로 뛰쳐나가 둘의 사이를 밀어내며 고함을 쳤다. 코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오녀는 악을 써대며 차녀의 방향으로 주먹과 발을 내질러댔다.

어느 샌가 골판지 하우스 내에선 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미의 죽음과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먹이통이 암시하는 불길한 미래에 스트레스를 받은 자매들 사이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친실장이 살아있을 때엔 한없이 사소했던 모든 일이, 미숙한 장녀에게 일가의 통제권이 쥐어지자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잠버릇이 고약하다는 이유, 식사할때 쩝쩝거리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 하품이 거슬린다는 이유, 괜히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으며, 언성을 높이고, 아랫동생일 경우엔 폭력도 서슴치 않았다. 차녀가 오녀를 때린 이유는 단지 자고 있던 자신의 발을 툭- 치고 지나갔다는 사소한 이유였다.

장녀는 차녀와 오녀를 간신히 떼어놓고 각자를 다그치지만 그런걸로 분위기가 풀어질 리는 없다. 장녀의 존재에도 집 안은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어미의 무덤이 되어버린 이 상자 안에 점차 쌓여가고 있는 분노와 절망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다투고 서로를 헐뜯으며 무의미하게 체력을 낭비한다. 중재에 힘을 쏟던 장녀조차 점차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자신에게 끝까지 대드는 차녀에게 분개해 뺨을 때렸다.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 여겨졌던 장녀의 폭력이 신호탄이었는지... 실장석의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인 폭력은 이 상자 안에서 공공연해졌다. 장녀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자매에게 손찌검을 했고, 차녀는 트집을 잡힌 자매를 때렸으며, 차녀에게 맞은 녀석들은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았다. 이 패륜의 사슬에 가장 밑에 있는 것은 구더기, 십녀가 구더기가 짖는 소리가 시끄러워 잠에서 깬 육녀에게 관리소홀이라는 명분으로 얻어맞자, 십녀는 자신의 동생이 죽을 듯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두들겨 주었다. 

시끄럽다.

조용히 좀 해라.

너 때문에 내가 맞았다.

너 같은 것은 그냥 구석에 박혀 쥐 죽은 듯이 있으면 좋다.

샌드백이 되어야 하는 구더기는 그저 몸을 둥글게 말며 서럽게 울부짖을 수 밖에 없었다. 퍽... 퍽... 꼬리를 힘껏 발로 밟고, 주먹으로 더이상 포동포동하지 않은 배를 두들긴다. 항상 맞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남을 때려보니, 기분이 썩 좋았다. 엄지의 분노가 점차 해갈되고 그 자리를 쾌감과 기쁨, 통쾌함이 채웠다, 그래서 더 열심히, 열렬히, 난폭하게 구더기를 두들겼다.

엄지의 폭력이 끝날 기미가 없자 장녀는 조용히 십녀의 팔을 잡아끌며 단호히 제지했다. 미치기 일보 직전인 자매들의 상태를 이해한다더라도, 때리다가 죽이기라도 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십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콧방귀를 흥- 내쉬더니 구석에 가서  벽을 보며 누웠다. 장녀는 멍투성이에 찢어진 구더기를 조심스럽게 밀어 녀석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인 매몰된 운치굴 위로 돌려놓았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벌벌 떠는 구더기는  더 이상 시끄럽게 굴지 않았다.


도저히 허기를 해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몇몇 녀석들이 대변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시고 쓴 맛에 속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배는 채울 수 있었다... 자신에게 허락된 유일한 식량마저 빼앗는 언니들의 모습을 본 구더기는 기나긴 침묵을 깨고 마침내 항의했다. 육녀는 거칠게 꼬리를 흔들면서 눈물을 흘리고, 짖어대는 녀석의 모습이 썩 달갑지 않아 발로 녀석을 걷어차 구석으로 날려보냈다. 구더기는 움찔거리고 조금 경련하며 가냘프게 울었다. 십일녀는 구더기에게 다가와 녀석을 안아주며 달랬다. 이 모습을 장녀와 사녀만이 슬프게 바라보았다. 이 구더기는 스스로가 불행하다 생각하겠지만, 특이한 성정을 가진 자매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것으로 행운의 소유자라 할 만 했다...

녀석들이 어미를 먹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녀석들은 어미를 너무 사랑하기도 했고. 과거에는 어미를 따라 무언가 쓸모 있는 것을 주우러 나갔다가, 들실장 녀석들이 독라의 시체를 뜯어먹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일도 있었다. 혐오감도 혐오감대로 들었지만 포식자들이 갑자기 입에 고기를 문채로 칠공분혈하며 절명하는 모습을 보자 녀석들은 압도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 독라는 단순히 실장석 구제용 독이 든 별사탕을 먹고 죽어 그것을 먹은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죽었을 뿐이지만, 그날 일가에게는 동족식=죽음이라는 명확한 개념이 자리잡았다.

그 덕분에 어미의 시신은 지독한 부패를 허락받았고, 구더기에게는 약간의 연명이 허락된 것이다. 먹거나 싸우는 일을 제외하면 상자 안에서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그저 다들 오지 않는 잠을 자려고 누운 채로 자리를 뒤척이거나, 무언가 트집 잡을 거리를 찾아 상자 안을 응시했다.  삭막해진 자매들 간에 대화라 할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배고프다던지, 부패가 시작된 어미의 시체를 바라보며 친실장을 그리워하는 말만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왔을뿐. 마지막까지 이성의 끈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장녀는 자매들을 돌아가면서 보듬어주거나 조용히 어미에게서 배운 노래를 낮게 흥얼거렸다. 그것만으로 스스로의 정신을 붙잡고 모든게 괜찮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상자 안에서 활기를 띄는 경우라고 한다면, 가끔 행복회로가 돌아가 기분이 좀 풀린 엄지들이 구더기를 프니프니 해주는 일이다.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구더기가 오랜만에 주어진 애정과 체온의 행복함, 프니프니의 쾌감으로 교성을 높일때면, 숨죽이고 있던 자매들의 신경을 거슬려 무자비한 응징을 당했다. 차녀와 팔녀, 구녀가 달려들었다. 복부를 가격당하고, 등에 발길질을 당하고, 꼬리를 짓밟히고, 구더기 관리를 똑바로 안하냐는 트집으로 엄지들도 폭행당했다. 사녀의 머리카락을 손질해주던 장녀는 그 모든 광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게 꼴사나웠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구태여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 말릴 수 없었다... 말려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장녀는 다시 시작된 난투에 몸을 떨며 우는 사녀를 조용히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다소 거친 분풀이가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이 홀가분해졌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저녁밥 시간이었다. 장녀는 자신 앞에 선 구녀에게 마른 메뚜기의 조각을 주었다. 구녀가 자리로 돌아가자 십녀는 앞으로 다가섰다. 자신의 몫을 기다리던 십녀는 의아해했다. 장녀는 먹이통 안과 십녀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우울한 표정으로 그냥 먹이통의 뚜껑을 닫아버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장녀의 의중은 명확했다.

'엄지들, 너희들에게 줄 밥은 이제 없다.'

그날 저녁밥 시간은 어미의 죽음 이후 가장 활기찼다. 십녀와 십일녀는 울고, 소리 지르며, 바닥에 엎어져 마구 몸을 흔들었다. 둘은 얼마간 소리를 지르다 장녀에게 달려들어 몸을 붙잡고 횡설수설하며 울어댔지만 장녀는 매몰찼다. 눈을 꼭 감은 채 자신의 몫을 꼭 붙든다.

자신들은 다르다고 생각했을까? 자신들은 구더기와 다르게 팔과 다리도 있으니 쓸모 있으며, 버려질 일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을까? 녀석들의 태도는 마치 믿을 수 없는, 일어날 수 없는 현실에 배신당한듯 분개하고 절망하고 있는 듯 했다. 엄지들은 반응하지 않는 장녀에게 끝까지 달라붙을 심산이었겠지만, 장녀는 참다못해 팔꿈치로 퍽-치며 둘을 밀어내었다, 둘은 비틀거리며 밀려나는 중에, 차녀에게 부딪혔다. 다혈질의 심성인 차녀는 갑작스러운 충돌을 용납할 수 없었다. 차녀는 이를 악물더니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둘의 머리카락을 잡아 바닥에 엎은 뒤 마구 짓밟아댔다.

닥쳐!

닥쳐!

꺼져!

꺼지라고!

여윈 채로 숨만 쉬고 있는 멍투성이 구더기는 그 광경을 그저 무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찔할 정도의 굶주림과 무관심, 냉대와 폭행에 조각날 대로 조각난 상태임에도 아직 구더기는 살아있었다. 무언가 강렬한 의지가 생명줄을 붙잡고 있었다. 탁해진 구더기의 두 눈알은 자신과 같은 신세로 떨어지고 있는 언니들을 담고 있다.

차녀가 씩씩대며 둘을 마지막으로 걷어 찬 후, 엄지들은 겨우 몸을 추스른 뒤 골판지 구석으로 피신했다. 확고하게 버려진 녀석들에게 이제 유일한 공간이라고는 구멍이 숭숭 뚫려  하우스 안에서 가장 모진 바람이 들어오는 그 곳 뿐이다. 악이 가득 찬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를 간다. 십녀는 식사중인 언니 자실장들을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시선에 유일하게 반응하는 것은 장녀와 사녀였다. 사녀는 눈물 흘리고 있었다. 장녀도 눈물 흘리고 있었다... 십일녀도 눈물 흘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식사 시간이 되면 구석에 박힌 엄지들은 먹이통 뚜껑을 여는 장녀에게 기대의 시선을 보냈다. 어쩌면 다시 밥을 받지 않을까... 용서받지 않을까? 장녀는 그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자신의 몫이 없는 식사가 두 번 이어지자 엄지들은 확신하며 구슬피 울었다. 이제 녀석들은 장녀로부터 확실하게 버림받았다는 것을. 가증스럽게도 십녀는 쫒겨난 후에야 매몰차게 대했던 구더기를 다시 안기 시작했다. 위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약하고 자신보다 더 여윈 구더기를 안으며 위안을 얻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더 빨리 죽을 녀석의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경멸스러운 유대감이었다. 오랜만에 십녀에게 안겨본 구더기는 다시 언니가 자신을 사랑해준다고 생각했는지 힘겹게 레후- 울었다. 여위다 못해 말라 비틀어져버린 동생의 무게는 너무나 가벼웠다. 

어느날 아침, 장녀가 자매들의 상태를 살펴보자 구더기는 포대기가 사라져있었다. 아사 직전의 구더기는 자신이 소중히 하던 옷을 스스로 벗어 질겅질겅 씹었다, 반 정도 먹은 후로는, 턱에 들어갈 힘이 없었기에, 핥았다.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하던 꼬질꼬질한 피투성이, 오물투성이 포대기를 삼키며 구더기는 진한 잿빛의 눈물을 흘렸다. 턱받이도 없고 투박했지만 마마로부터 받은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 무엇을 준대도 바꾸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지금 스스로 씹어서 먹고 있다. 

포대기마저 먹어치운 후, 그 포대기를 소화한 끝에 배설한 찌꺼기까지 먹어치운 후로는 알몸으로 힘겹게 바닥을 기어다니며 먼지와 모래를 핥던 구더기는 하루 쯤 지났을까, 기력이 다해 죽었다. 구더기가 몇시간째 미동도 없이 바닥을 얼굴에 쳐박고 있자 십일녀가 이상하게 여겨 살펴보니, 눈에는 아무런 색과 빛이 없었고 오물 투성이 혀는 입밖으로 툭 튀어나와 뻗어있었다. 최초의 죽음. 모두에게 찾아올 사신의 첫번째 방문이었다. 장녀는 비통하게 우는 십일녀에게서 구더기를 조용히 떼어냈다. 장녀에게 안긴 구더기의 얼굴은 굶주림과 절망, 고통에 절어있었다. 한편으로는 희망과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장녀가 조금 더 살펴보자 녀석의 콧구멍에서 조그마한 녹색 실이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고치실이었다. 구더기가 다음 단계로 자라기 위한 유일한 희망. 지독한 영양실조에도 불과하고 마지막으로 짜낸 구더기의 구원의 동앗줄이었다.

그랬구나, 이것 덕분에 견딜 수 있었구나.

장녀는 묵묵히 생각했다. 녀석은 훌륭하게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죽음이 짓누르는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았으며 의지의 힘은 위석의 붕괴를 막았다. 몸이 먼저 스러졌을지 언정 마음은 스러지지 않았다. 훌륭한 엄지가 되었을 것이다, 만약에 무사히 자라 성체가 되었다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갔을 것이다. 일가가 이런 꼴이 아니었다면... 필사적으로 삶을 붙들며 고통받는 모습에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하고 애를 태웠던 장녀는 마음 한 쪽이 찢겨져 나감을 느꼈다. 막내의 싸늘한 얼굴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무언가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힘내는레후 힘내는레후, 힘내서 우지차 실 잔뜩잔뜩 내는레후 손발 긴긴되서 다시 예쁨받는레후 밥 받는레후 오네차들이랑 다시 노는레후'

"다음 생에서는 세레브한 사육실장으로... 테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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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가 구더기의 몸을 깨끗히 핥아주는 동안, 사녀는 오랫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장난감 상자에서 조그만한 주황색 스펀지공을 꺼냈다. 구더기가 제일 좋아하던 장난감이었다. 십녀가 (괘씸하게도)귀찮아 하거나, 자고 있다면 그 공 위로 올라타서 자신의 배를 누르며 프니프니를 하면 그만이었다. 사녀는 고무공 위에 조심스럽게 동생의 시신을 올려놓았다. 서서히 굳어가고 있는 구더기의 몸은 고무공을 잘 붙들었다. 장녀는 구더기가 붙든 고무공을 썩어가는 어미의 몸 옆에 내려놓았다. 마치 장례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무시하던 구더기가 죽자 모두가 울었다. 차녀마저도 구더기의 죽음에 한때의 단란했던 가족의 모습을 회상하며 상념에 잠겼다. 자매들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 고통받으며 죽어간 구더기는 마침내 구원받았다. 비록 녀석의 영혼이  원통함에 구천을 영원히 떠돌지 몰라도, 자매들의 마음 속에서 구더기는 구원받았다.

-

구더기의 죽음에 더더욱 자신들의 처지를 실감한 엄지들은 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허나 엄지가 생각해내는 방도라 해봐야 거기서 거기일뿐이다. 십녀 엄지는 결국 구석에 떨어져 있기를 그만두고 자매들에게 끝없이 아첨하고, 빌붙었다. 귀뚜라미의 다리 한 짝이라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어리광을 부리고, 애교를 떨었다.

아무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십일녀 엄지는 홀연히 사라졌다. 장녀가 가끔씩  환기를 위해 상자 뒷편을 살짝 열어두는 시기를 틈 타, 그 공간을 통해 상자를 나간 것이다. 장녀가 깨닫고 십일녀를 다급히 찾아봤을 때는, 십일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잘 살아가겠지.'

장녀는 그렇게 스스로 위안하며, 십일녀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함께했다면 좋았을걸.'

십녀는 구더기처럼 바보같이 조용히 죽길 원하지 않았다. 자매들이 신경질을 내도 아첨을 멈추지 않았다. 돌아오는 것은 적개심 어린 반응 뿐임에도, 배가 고프다며 마구 들러 붙어댔다. 사녀가 한번은 십녀에게 푸드 조각을 주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장녀가 억지로 손을 붙잡으며 입안으로 음식을 밀어넣으며 제지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 꼴을 두고보지 못한 차녀가 십녀의 얼굴에 주먹을 먹이는 것을 시발점으로, 분노가 폭발한 자매들이 십녀 엄지를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엄지를 둘러싸고 두들기는 자매들에의 머릿 속에는 과거가 상기되어 있었다.

삼녀는 십녀에게 밥을 억지로 양보한 적이 있었다.

오녀는 십녀의 대변 뒷바라지를 했다. '와타치는 그런거 할줄 모르는레치'라는 속 편한 말 한마디를 수긍한 어미가 시켰기 때문이었다.

육녀는 십녀와 놀다가 십녀가 스스로 넘어지는 바람에, 얼굴에 상처를 난 것 때문에 어미에게 혼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잘못은 아무 것도 없었는데. 

팔녀는 십녀의 빨래를 대신 해주어야 했다.

차녀는 그냥 십녀가 꼴 보기가 싫었다. 일가가 이 꼴이 나기 이전에도 이기적인 녀석이었다. 상냥한 마마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버려졌을 녀석이 꼴에 자매로 거두어져서 예쁨 받는것도 싫었는데 차라리 빨리 죽어버리진 못할 망정 왜 이렇게 끈질기게 연명해서 눈에 밟히는 거지?

모두는 십녀가 싫었다. 

주먹질과 발길질에는 과거의 사소한 원한과 복수심들이 묵직하게 담겨 있었다. 일격과 일격에 몸이 터져나가는 십녀는 비명을 지르며 애처롭게 장녀와 사녀를 불렀다. 사려깊은 장녀는 인자했고, 다정한 사녀는 십녀에게 남긴 밥을 몰래 챙겨주곤 했다. 그 둘은 멀찍이 떨어져서 동생이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장녀는 차라리 버리기로 결심한 십녀가 조금이라도 더 자매들의 스트레스를 많이 풀게 해줘서, 서로 싸우는 가슴 아픈 일을 막아줬으면 했다. 사녀는 험악한 자매들의 난동에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항상 그랬던대로 장녀의 품에 안겨 얼굴을 파묻었다.

십녀는 자매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점차 분쇄되었다. 갈비뼈가 부서지고 목을 가격당해 괴로운 기침 이외는 아무것도 낼 수 없게된 후에야 집단구타는 멈췄다. 차녀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엉망이 된 엄지의 머리카락을 쥐고 골판지 구석에 내동댕이쳤다. 십녀 엄지는 다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왔다.


반병신이 된 십녀 엄지는 체온을 나눌 자매가 사라진 후로 처음 밤을 맞았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밤의 추위는 혹독했다. 자매들은 신문지를 펼쳐서 각자 껴안고 자고 있었다. 그럼에도 녀석들은 한기에 떨고 있었는데 십녀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피투성이 십녀는 파열된 몸으로 억지로 웅크리며 추위를 이겨내려 노력 했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십녀는 점점 감각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공포에 질렸다. 손가락이 굳었다. 어깨가 뻣뻣해졌다. 입김을 불어가며 손을 녹이려 해봤지만 헛수고였다. 몸이 점점 얼어가고 있었다. 그 지경이 되서야, 십녀는 도움을 청하려 장녀를 불러보려 했다.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십녀는 하루 전만 해도, 자신은 바보같은 구더기처럼 죽지 않고 살아남겠다고 결심했지만, 이제 녀석은 결국 비슷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십녀는 한때 따뜻했던 과거의 추억을 생각했다.

좋을대로 투정했고, 좋을대로 어리광을 부렸고, 좋을대로 억지를 부렸다.

상냥한 마마는 그러면 자신이 좋을대로 해주었다.

좋을대로 먹었고, 좋을대로 놀았고, 좋을대로 언니들이 자신이 할 일을 대신 해주었다.

'와타치는 이런거 먹기 싫은 레치이이이!'
무작위의 식사 배분에서, 귀뚜라미가 싫어서 떼를 쓰자, 마마는 삼녀 언니가 받은 쿠키 조각을 바꿔주었다.

빨래가 싫었다. 힘들고 귀찮았으니까, 깨끗한 옷은 너무 좋았지만 옷을 깨끗히 하는 일은 별개였다. 떼를 쓰면 마마는 자신의 옷을 팔녀 언니에게 주었다. 그럼 자신은 좋을대로 놀면 좋았다.

마마는 최고였고, 마마가 최고로 좋아하는 것이 확실한 자신도 최고였다.

그것이 정답이었다.

정답이었다.

십녀는 과거의 환상 속에서 깨어나자 다시 자신의 비참한 몰골을 직면했다. 마치 방금전까지 꿈을 꾸었던듯 당황한 십녀는 현실을 직시하고 눈물을 흘렸다. 외롭다, 배고프다, 힘들다, 춥다. 언니들에게서 버림받은 십녀는 하다 못해 다시 한번 사랑했던 어미의 품 속에 안기기를 원하며, 맞은편에 누워있는 친실장을 향해 기어갔다. 어느 정도 기어가다가, 엄지는 전에 없던 끔찍한 악취를 맡고는 기겁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친실장의 몸뚱이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십녀는 단순히 자신의 안위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오랫동안 어미의 변화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사랑하는 마마라고 해봐야 그 뿐, 엄지란 녀석은 그런 녀석이다.

십녀가 바람막이라도 되어줄 수 있을터인 어미의 몸뚱이에 다가가는 것을 주저하는 사이 칼 같은 바람이 자비없이 닥쳐왔다.녀석의 몸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굳어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렛- 하는 나지막한 단말마와 함께 절명했다.

파킨-

장녀가 자고 일어나보니, 원래 자리에서 살짝 떨어진 채로 십녀가 죽어 있었다. 살아남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항상 자기 멋대로였고, 아무런 미래도 보이지 않던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동생이었다. 장녀는 피투성이 십녀를 안아들어 친실장의 배 위에 올려주었다. 십이녀의 죽음과는 다르게, 분위기는 차분했다. 구더기를 냉대하긴 했지만 몸을 어루만져주며 슬퍼한 자매들은 피투성이 십녀의 시신을 마치 독라노예라도 보는마냥 보기에 거북하다는 이유로 눈에도 담으려 하지 않았다. 사녀만이 조용히 십녀의 몸뚱이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장녀는 화목함이란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고 붕괴해버린 일가의 모습에 속으로 한탄했다. 아무리 속을 썩이던 녀석일지라도 자매였는데...

가족이었는데... 


-


며칠이나 좀 지났을까, 항상 중압감에 시달리던 장녀의 어깨는 마침내 가벼워졌다.

먹이가 바닥나, 배분하는 일을 더이상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식사를 기다리며 자리에 앉은 동생들에게 장녀는 아주 홀가분하게, 개운한 듯한 동작으로 뚜껑 연 먹이통을 들어올리며 바닥을 향해 탁-탁 털어보였다. 먹이통에서 나오는 것은 약간의 부스러기 뿐, 아무 것도 없었다. 먹을 것이 다 떨어졌다. 장녀는 자매들이 알면 좋을게 없다고 생각해 먹을것이 얼마나 남았는지 철저히 숨겨왔다. 하지만 그런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장녀의 강렬한 퍼포먼스는 아주 뚜렷한 미래를 보여주었다.

죽음, 종말, 파멸, 몰살.

파랗게 질린채로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고, 울부짖는 여동생들을 바라보며 장녀는 그저 미소지었다. 슬픔, 허탈함, 개운함... 모든 종류의 감정들이 자신의 마음 속에서 뒤섞여 휘몰아치는 것을 느끼고 그저 자리에 주저 앉으며 고개를 떨궜다. 사녀가 울면서 달려와 장녀에게 안겼다.

'이 철부지, 밑으로 동생만 몇 명인데 어쩜 이리 어리숙할까...'

장녀는 얼굴을 무릎에 파묻으며 우는 사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자신이 여기 있으니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라는 듯이. 

...얼마 안 가 마지막 발버둥이라도 쳐 볼 심산인 행동이 시작되었다, 차녀의 선동에 오녀와 육녀, 칠녀, 팔녀가 가세해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가기로 한 것이다. 바깥에 대한 공포감이 이들을 상자 안에 강력하게 묶어놓고 있었지만 먹을 것이 없다는 절망적인 현실이 이들을 바깥으로 내몰게끔 하였다.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낸 차녀조차 계획의 무모함에 절망하고 겁에 질렸다. 바깥에 나가서 먹을 것을 찾으면 좋다, 더 운이 좋으면... 인간을 만나서...

차녀가 열심히 떠들고 동생들이 열심히 듣는 모습을 바라보는 장녀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나마 자매들중에서 현실감각이 있고 가장 어미로부터 가르침 받은게 많은  녀석이여서 그랬을까, 자매들을 향한 그 미소엔 어쩌면 조소라고 할만한 면이 엿보였다. 이미 본인들 스스로 계획의 허술함을 알고 있는것 같고, 그럼에도 굳이 노력하는 이를 비웃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장녀는 침묵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결국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다. 무력하다 해도 무의미하다며 깎아내릴 일이 아니다. 얻어맞고, 때리는 관계였던 자매들이 처음으로 화합을 이루었다. 텟치-텟치 하며 서로 돌발상황을 가정하고 행동요령을 정하는 이들의 모습은 기이할 정도로 조화로웠다.

곧 다섯 자매는 하우스 안에 남기로 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허례허식의 인사를 한 뒤, 하우스 밖으로 떠나갔다. 텟치텟치 하는 구령소리는 점차 멀어져갔다.

그에 맞춰 장녀는 마지막으로 떠난 팔녀를 배웅한 뒤, 다시 골판지 하우스의 문을 단단히 걸어잠갔다.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서부터 점점 비명소리가 들려오더니, 골판지 하우스로 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자매들을 진정시키는 장녀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이런 소리가 날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그 비명의 주인공은 하우스를 나간 자매들이었다. 장녀는 혀를 찼다, 기대도 안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끝났다는 말인가...

얼마 안 가 문 밖에서는 세 마리 정도의 자매들의 헉헉 거림과 처절하게 문을 열어달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이에 반응한 것은 사녀였다, 자매들의 위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 힘없는 몸을 일으켜 다급하게 문을 향해 달려갔다. 사녀는 응석꾸러기임과 동시에 정이 많았다, 십녀에게 자신의 식사도 조금 양보했을 정도로. 그 정은 아직까지도 사녀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었다.

문을 단단히 걸어두고 있던 쇠젓가락을 빼려던 사녀였으나, 이내 장녀에게 제지당했다. 사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장녀를 올려다보자, 장녀는 고개를 저으며 사녀를 문에서 떼어냈다. 이 문을 열어제낀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리라 생각한 장녀의 결단이었다. 죽으면 죽는거지만, 행복했던 우리 일가의 집 안에서 다른 분충들에게 살해당하는 것은 절대 사양이다... 라고 장녀는 생각했다.

녀석들도 각오했던 일이다, 실패하면 죽는 일을 실패했다면, 그저 죽을 뿐이다...

사녀는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장녀의 완력엔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사녀는 장녀에게 끌려가며 눈물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문이 열리지 않자 세 자매들의 외침은 점점 다급해져갔다. 그리고 이윽고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정말 엄청난 기세로 비명을 질러대며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기 시작했다.

왜 열어주지 않는 것이냐, 너희의 소중한 자매가 위기다, 빨리 문을 열어줘라, 우리들을 버릴 셈이냐.

절박한 호소는 이내 모멸적인 저주로 변했다. 자신들을 버리기로 한 골판지 상자 안 자매들의 의중을 눈치 챈 모양이다. 

텟챠아아아-
텟챠아아아-

자신들은 자매들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하러 밖으로 나갔건만, 속 편하게 안에 남아있던 녀석들은... 그냥 우리를 버렸다. 마지막까지 문을 두들기던 차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저 상자 안의 쓰레기들을 저주했다.

곧, 성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비명소리,살점 뜯기는 소리, 기괴하게 꺽꺽대는 자매의 신음이 얼마간 들리더니 무시무시할 정도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한바탕의 살육극에 동생들은 마지막 기둥인 장녀에게 몰려들어 그저 하염없이 울어댔다. 그런 여동생들을 어루 달래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이윽고 진정된 여동생들은 바깥의 자매가 어찌 되었는지 알아채곤 비통한 울음소리를 높였다. 자기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였을까,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혈연의 정 때문이였을까.

아마 후자였을 것이다.


이후로 길지는 않지만 짧지도 않은 시간이 흘렀다.

썩어가는 상자 안에서, 장녀는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사녀의 앞머리를 만져주고 있었다. 사녀는 미동도 없이 누운채로 가끔 기침만 할 뿐이었다. 장녀는 사녀가 좋았다, 겁 많고 어리숙했지만 다정했고 다른 자매들을 아낄 줄 알았다. 그래서 더 많은 먹이를 주었다. 그게 사녀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유였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곁에 두고 싶은 녀석이었다. 다른 자매들의 시신은 장녀가 어미의 곁에 안치했다. 잡아먹힌 자매들은 장녀가 밤중에 몰래 밖으로 나와 녀석들의 잔해를 물병 뚜껑에 모아서 안으로 가져왔다. 시신 더미에선 지독한 냄새가 났고,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족이 함께였다. 

가족이 함께였다는 것에 충분했다.

홀로 생각하던 장녀는 자신을 부르는 사녀의 목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가엾은 여동생은 여윌대로 여위어 이제 죽음만을 앞두고 있었다. 사녀는 예정된 파멸 앞에 겁을 먹고, 가엾게도 떨고 있었다. 장녀는 사녀 옆에 조심스럽게 누우면서 팔베개를 해주었다, 사녀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말라버린 장녀의 품속으로 안겼다. 장녀는 사녀를 쓰다듬어주며, 괜찮아... 괜찮아...  언니가 옆에 있으니까 다 괜찮을거야, 다정하게 위로를 건넸다.

그 말 뿐으로도, 완전히 위안과 구원을 받은 듯 사녀의 표정은 희미하게 밝아졌고, 그대로 아무런 미동도 없게 되었다.

장녀는 조금 넓게 찢어져 있는 벽의 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주황의 햇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마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달님이 곧 올라올때 햇님이 발하는 마지막 색깔의 빛이라고 했다. 


사람의 말로는 황혼 녘.

황혼 녘마저 끝난다면 햇빛은 완벽하게 사라지고 삼라만상 모든 세상은 짙은 어둠에 잠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황혼이라는 단어는 어떤 일이나 인물의 거의 마지막, 끝만을 남겨둔 우울한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끝이다.


이제 잠을 자야 할 시간이었다.


장녀는 얼마 안 가 조용히 잠들었다.


-







용기


이른 아침 두루마리 공원에서는 공원 환경 미화 작업이 한창이다.
환경미화 작업이란 정기적으로 연초에 시행하는 공원 청소로,
주로 포함되는 업무는 공공 화장실 청소, 실장석 운치굴 메우기,
골판지 철거 및 소각 등이다.

이 작업에서는 굳이 실장석을 구제하지 않는데,
연초. 즉, 한겨울에 골판지를 철거당하고 운치굴을 메워진 실장석이
봄까지 살아남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철거당하는걸 보면서도
실장석들은 반항할 엄두도 내지못한다.
철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허리춤에 실장석 대가리(로 보이는 조형물)을 달고 있기 때문에,
동족을 학살하고 머리를 수집해서
주렁주렁 달고다니는 학대파에게 덤빌 실장석은 없기 때문이다.

극도의 분충이거나 실장석을 초월한 용기있는 개체가 아닌 이상.

J는 오늘의 스무번째 골판지를 뒤집었다.

"덱!" "테갹!" "테치!" "렛!" "레후.."

이번 골판지에 살던 실장석 일가는 꽤나 가족간에 애정깊은 일가였는지,
엄지와 구더기조차 운치굴로 보내지 않고 키웠던 모양이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과 사람이 버리고 간 스티로폼 조각등의 보온재가
주변에 어지럽게 떨어진다.

날벼락을 맞은 친실장은 겨울의 칼바람에서 자들을 보호하며
J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물러난다.
경험있고 현명한 친실장은 아는 것이다.
지금 인간에게 대들어봤자 죽음뿐이다.
겨울에 맨몸으로 맞서는 것도 죽을 확률이 높지만,
인간에게 덤비면 확실한 죽음이다.

친실장은 약간이라도 생존 가능성이 높은 쪽을 택했다.
그것도 자들을 포기하지 않고 보호하면서.
애호파가 봤더라면 눈물을 폭풍처럼 쏟았겠지만,
아쉽게도 J는 정해진 돈을 받고 정해진만큼 일하는 무관심파 용역이었다.

"테! 테치! 테테치!"

가장 덩치가 큰 자실장.
아마 장녀일 자실장이 무언가 깨닫고 친실장에게 외친다.

구더기 막내챠가 하나 모자라다.

"데! 데뎃스? 데스!"

친실장은 당황해서 두리번 거린다.
친실장의 눈에 골판지 박스를 뒤집을때 채 떨어지지 않은
구더기 하나가 골판지 안쪽 벽에 있는 것이 보인다.
골판지 틈새에 끼인채로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다.
갑자기 사라진 마마와 자매들을 찾으며. 색눈물을 흘리며.

"레! 레후! 레후우!"

친실장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손쓸 방법이 없었다.
눈물을 삼키며 친실장이 돌아서려는 그때,

"텟치! 테테챠아!" "데! 데후아!"

차녀가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다.
친실장은 뒤늦게 당황해서 말리려했지만,
겨울만 지나면 성체가 되어 독립할 정도로 자란
자실장,
거기다 평소에 재빠르고 행동력이 있는 차녀를 막기엔 너무 늦었다.

J의 발밑까지 뛰어온 차녀는 열심히 J에게 외친다.

"텟치! 테테찌! 테치테치 테치아!"

닝겐상 집을 돌려주시는테치. 겨울인테치.
집이 안된다면 우지챠라도 돌려주는테치.
집에 우지챠가 남아있는테치.

자실장의 한계를 초월한 용기를 짜낸 차녀.
열심히 인간에게 호소한다.
애호파가 봤다면 심장을 움켜쥐고 쓰러질 장면.
하지만 J는 무관심파며, 링갈도 없다.

J는 자실장 하나가 자신의 발밑으로 다가와서 뭐라고 외치는걸 들었다.
평소 TV에서 흔히 나오는 들실장의 생태에 관한 다큐에서
그들의 이기심과 흉포함에 대해 많이 본 J는,
으레 흔한 분충발언이겠거니 하고 허리춤의 제압봉을 빼든다.

끝부분에 강력한 전압을 걸어 순간적으로 전류가 흐르게 하는
대인용, 대실장용 제압봉은 공원 미화 작업을 하는 인부들에게 지급된다.

J는 자실장에게 길쭉한 제압봉을 갖다대고 스위치를 누른다.

"테?"
ㅡ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ㅡ
"테삐챠기이이이이이이익! 테케뵤오오오오오오! 찌기이이이잇!"

마음약한 사람이라면 자실장을 무력화 시킬 정도로만 했겠지만,
J는 고지식한 사람이라 매뉴얼에 적힌대로 5초를 채웠다.
연약한 자실장의 내부까지 고전압 전류가 확실히 태워버리기에 충분하게.

풀썩 하고 차녀가 쓰러진다.
숨만 겨우 붙은 차녀는 흐려져가는 의식속에서 어미를 찾아 손을 뻗는다.
그러나 차녀의 눈에는 자신을 버리고 뒤돌아서는 어미가 보인다.

'기다리는테치.. 버리고 가지 마는테치.. 와타치 살아있는테치 마마...'

친실장이 멀어져서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된지 조금 뒤.
파킨 하는 건조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들실장에게 용기는 사치다.
그런 한 겨울날의 풍경이었다.








어느 자실장의 일기


-아타시는 일가의 장녀인테치.
공원에서 상냥한 마마랑 귀여운 차녀랑 살고있는테치.
삼녀도 같이 살았었지만 지금은 사육실장이 된 테치!
마마는 착한 아이가 되면 사육실장이 될수있다고 했던테치.
삼녀는 착한 아이라 상을 받은게 분명한 테치.


-테에엥... 지나가던 닌겐에게 머리를 채인테치.
정신을 잃었다가 깨보니 집이었던테치.
머리는 너무 아야아야했지만 "죽지 않아 다행인데스우" 라며 마마가 아타시를 껴안아줘서 좋았던 테치.


-머리가 아야아야한건 없어졌는데 그 뒤로 뭔가 이상한테치.
마마랑 차녀쨩 위에 이상한 숫자가 보이는테치.
아타시는 마마한테 숫자를 배워서 읽을수 있는테치!
마마는 19 차녀쨩은 1이라고 되있는테치.


-숫자의 비밀을 알겠는테치!
이건 분명 신님이 착한 일 점수를 매기는게 분명한테치!
오늘 공원의 나쁜 보스랑 부하가 와서 마마를 괴롭힌테치!
그리고 그 둘의 머리 위에 0이라고 적혀있는걸 똑똑히 본 테치!


-테엥... 마마랑 음식을 구하러 갔다가 아타시를 비춰주는 깨진 반짝반짝을 본 테치...
그런데 아타시의 머리위의 숫자는 1이었던테치.
아타시는 계속 착한 아이로 있었는데 신님은 너무한테챠!


-나쁜 보스의 부하들이 마마를 또 괴롭힌테치!
둘이 왔는데 둘다 점수가 0이었던테치!
다행히 마마랑 친한 이웃의 아줌마가 말려줬던테치.
착한 아줌마 점수는 26이었던테치.
0점짜리 나쁜 실장석은 언젠가 신님에게 벌을 받을게 분명한테치!


-자고 일어나보니 차녀가 없어진테치.
마마한테 물어보니 닌겐이 와서 사육실장으로 만들었다고 한 테치!
분명 아타시랑 똑같은 1점이었는데 어째서 차녀쨩만!
아타시는 테엥테엥 울고말았던테치...
마마는 아타시를 안아주면서 장녀쨩은 착한 아이니까 곧 사육실장이 될수있다고 말해준테치.
아타시는 겨우겨우 울음을 꾹 참은테치.
그러자 마마가 착한 아이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 테치!
눈물을 닦고 보니 마마의 점수는 20점이 되있던테치.
분명 차녀쨩을 행복한 사육실장으로 만들어준걸 보고 신님이 점수를 준게 분명한테치.
아타시가 울음을 그치니까 마마가 차녀를 데려간 닌겐이 줬다면서 음식을 가져온테치.
그건 평생에 딱 한번밖에 못 먹어봤던 스테이크였던테치!
아타시도 모르게 마구마구 먹어버린테치.
그런데 마마는 어쩐지 먹지 않았던 테치.
아타시가 같이 먹자고 하니까 마마는 이미 먹어서 배부르다고 한 테치.
분명 아타시를 배불리 먹이려고 양보한게 분명한 테치.
마마는 너무 상냥한 마마테치.


-아타시의 점수가 오른테치!
마마랑 음식을 구하러 갔다가 깨진 반짝반짝을 본 테치!
점수가 2점으로 오른 테치!
아타시도 곧 사육실장이 될게 분명한 테치!


-보스랑 0점짜리 부하들이 옆집 아줌마를 죽인테치...
아타시는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도망가 덜덜 떨고있었던테치...
마지막으로 본 착한 아줌마의 점수는 28이었던 테치...
어째서 신님은 0점짜리 분충들을 계속 봐주시는테치?


-테엣! 대박인테치!
마마가 아타시를 사육실장으로 만들어준다고 한 테치!
마마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내일 아침 일찍 닌겐을 만나러 갈 테니 얼른 자라고 한 테치!
아타시는 착한 아이니까 마마의 말을 잘 듣는테치!
사육실장이 되면 닌겐상에게 부탁해서 마마랑 같이 사는테치!
너무 행복한테치.
내일 눈을 뜨면 아타시도 사육실장인테치!








가보


며칠을 굶었다. 친실장도, 자실장도. 추자였던 엄지와 구더기마저 알뜰하게 아껴먹었음에도 지금은 핏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다. 운치를 먹고 싸고 먹고 싸고 십수번을 반복했더니 더 이상 나오는 운치도 없다.

그러나 아직 먹을 것은 있다.

아직도 자실장인 차녀는 물론이고, 이미 말투가 테스로 바뀐지 좀 된 장녀마저도 언청이 입에서 새어내리는 슬라임 같은 침을 애써 꼴깍 삼켜대며 그것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지금처럼 건조하고 추운 계절 - 겨울씨의 습격으로 인해 물조차 구하기 어렵다. 친실장은 입을 꽉 닫으라고 강조했지만, 역시 기형적인 구조의 입으로 그러라는건 과한 욕심이 아닐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이 일가는 며칠이나 굶었고, 바닥을 드러낸 보존식 창고 밑바닥에서 친실장이 꺼내든 최후의 그것은 두 자식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콘페이토. 그것도 자실장 뚝배기만한 사이즈. 특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크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달콤한 행복의 덩어리를 보고도 장녀와 차녀가 달려들지 않는 것을 보면 친실장이 솎아내기는 확실히 한 듯 하다. 극심한 허기 속, 꾸르륵거리는 분대를 움켜쥐면서도 적녹의 두 눈을 반짝이며 그들은 콘페이토를 동경하듯 바라보고 있다.

비닐로 잘 포장된 콘페이토. 모든 실장석이 껌뻑 죽는다는 핑크핑크한 빛깔 - 정확히 말하자면 벚꽃 색 - 의 콘페이토. 여름의 열기에 살짝 녹아내린 흔적이 있지만, 어차피 원래 모양도 울퉁불퉁해서 여간해서는 티가 안나는 완벽한 콘페이토. 자들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차녀챠... 와타시를 때려보는 테스..."

비록 힘이 없어 조곤조곤 말하지만, 확실히 알아들을 수는 있게 장녀가 말했다. 장녀는 지금 이 상황이 자신의 행복회로가 만들어 낸 환상인지 의심되었다. 어떻게 저런 보물이 뜬금없이 자기네 골판지 하우스에서 나올 수 있냐는 거다. 사실 지난 밤에도 스테이크와 스시를 잔뜩 먹는 꿈을 꾸었다. 물론 실제로 본 적은 없으니 꿈에서도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고 먹었다는 사실만 기억날 뿐. 그렇게 꿈에서 깨어난 장녀는 현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지만, 친실장과 차녀가 물 씨가 나왔다며 양 쪽에서 달라붙어 쪽쪽 빨아먹었다. 그만큼 절박한 것이 이 일가의 상황이었다.

"테븃-!"

차녀가 옛날에 엄지 후드려패던 힘을 겨우 쥐어짜내어 장녀에게 한껏 죽빵을 갈겼다. 장녀의 부탁이기 때문에 한 일이지만, 개인적인 감정이 실려있다고는 말 못한다. 하기야, 장녀가 요 며칠간 계속 자신을 보며 입맛을 다신다면 그 누구라도 차녀와 똑같이 할 것이지만. 덕분에 거하게 얻어맞은 장녀는 자신의 뺨이 얼얼한 것을 깨닫고는 눈 앞의 별사탕이 진짜라는 것을 확신했다.

"마마, 진짜 콘페이토인 테스우?"

친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녀와 차녀는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우마우마다. 우마우마지만 우마우마 중 특히 맛나다는 아마아마이다. 아마아마한 것. 아마아마한 꿈. 아마아마한 행복......일까? 영특한 편인 차녀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한다. 아직 겨울 씨가 세레브한 와타치에게 메로메로되어 물러가주기 전까지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 머리만한 콘페이토라 해도 저걸 먹으면서 그 때까지 버틸 수는 있을까?

"테에에... 마마... 혹시 최후의 만찬인 테치? 막판 스퍼트 테치?"

"바보같은 소리 집어치우는 데스. 이건 함부로 먹어서는 안되는 매우 소중한 것인 데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어쩔 수 없는 데스."

친실장은 크게 한숨을 내쉰다. 콘페이토의 역사만큼이나 묵어있던 그 한숨이다.

"...이 콘페이토는 마마의 마마의 마마의... 아무튼 매우 옛날옛날부터 전해내려온 일가의 소중한 보물 데스요."

친실장이 말해준 콘페이토의 역사는 이러했다. 사육실장이었던 이 일가의 (세대로 따지면) 먼 것 같으면서도 (년 수로 따지면) 의외로 가까운 조상이 멋대로 자를 가져 주인에게 쫓겨날 당시 그래도 정은 들었는지 작별의 선물이라고 받은 특제 콘페이토. 주인이었던 남자는 사육실장이 공원에 적응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들실장이 시비를 걸면 이것을 주라고 했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뇌물 격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다행히 당시의 공원은 풍족했던지 사육실장은 기적적으로 이것을 사용하는 일 없이 공원에 무사히 정착하여 지금까지 대가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 콘페이토를 사육실장은 주인과의 인연을 이어주는 그 특수한 무언가라 여기고는 일절 손대지 않고 소중히 간직했다. 그것의 자들이 독립할 때가 되자 사육실장은 그 중 제일 똑똑한 자 - 일가실각 안 당할 만한 자 - 에게 그것을 물려주었다. 그 자는 또 자신의 자에게 물려주었다. 이것이 이어져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사족 : 콘페이토는 설탕으로 이루어져있기에 시간이 지나도 상하거나 썩지 않는다.) 그러나 콘페이토의 역사는 오늘 친실장에 의해 그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을 보스 상에게 가져가 다른 먹을 것으로 바꿔오는 데스."

이 공원의 현 보스는 단 것이라면 미칠듯이 좋아한다. 가끔 들실장들이 애호파가 뿌리는 콘페이토를 여러개 받아다 보스에게 바치면 다른 먹을 것이나 독라노예 등으로 바꿔주곤 하였는데, 이 한겨울에도 풍족하게 지내는 보스에게 이 커다란 콘페이토를 바치면 봄이 올 때까지 버틸만한 양의 도토리, 실장푸드, 물, 독라달마 자판기를 받고도 남을 것만 같다. 일가 대대로 내려온 가보이긴 했지만... 친실장은 굳게 결심했다.

"와타시에겐 가보도 소중하지만, 장녀챠와 차녀챠 너희들이 제일 소중한 보물인 데스."

"마마..."

두 자매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이제 더는 눈물을 핥아먹을 필요는 없다. 고생하던 나날은 이제 저만치 물러가고, 앞으로 펼쳐질 무한한 행복만이 멀리서 일가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스테이크, 주인님, 분홍 드레스, 마카롱, 흑발의 자, 세상을 가득가득...



"그럼 다녀오는데스."

차녀에겐 골판지 밖은 위험하므로 혼자서 집을 보게 했다. 어차피 지금같은 때에는 밖에 돌아다니는 닌겐도 없고, 동족의 습격에 대비해 골판지에는 일종의 잠금장치도 있다. 보스가 보상으로 준 식량이 많을 때를 대비하여 장녀는 같이 데려가기로 했다. 배낭을 메듯 비닐봉지를 양 어깨에 걸치고, 그 안에 소중한 가보를 넣었다. 차녀가 골판지 안 낙엽속에 파고들어간 것을 확인한 친실장은 장녀와 같이 찬바람에 오들오들 떨며 보스의 골판지로 향했다.

"데... 데에에... 저게 뭐인데스..."

아무래도 보스를 찾아갈 생각을 한 것이 친실장 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미 보스의 대형 골판지 앞은 아껴둔 콘페이토, 초콜릿, 약간 남은 음료수 페트병을 들고 식량과 바꾸러 온 들실장들로 참산참해를 이루었다. 녹색의 물결이 우글거렸으나, 보스의 경호원들의 통제 하에 묘하게 질서가 지켜지고 있었다. 친실장과 장녀는 재빨리 줄의 맨 뒤에 섰으나, 곧이어 다른 들실장들도 몰려들어 일가의 뒤로 쭉 늘어섰다.

이러면 곤란해진다. 앞에 있는 실장들도 이렇게나 많은데, 보스가 아무리 식량을 어마어마하게 쌓아놨다고 한들 친실장의 차례가 오기 전 그것들이 다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아니, 그보다도 보스 또한 자기 먹을건 남겨놔야 하니 그보다 한참 전에 거래가 중단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걱정하는 친실장 앞에 한 차례 소동이 일어났다. 두건이 없는 한 들실장이 골판지 입구에서 끌려나와 내던져졌다.

"이러는게 어디있는 뎃샤아아아아아!!! 콘페이토 하나에 고작 실장푸드 두 알이라니 이게 무슨 창렬인 뎃샤아아아아아!!!!!!"

경호실장도 이에 지지 않고 맞받아친다.

"창렬은 오마에인 데스! 콘페이토 하나를 자판기 하나로 바꿔달라니 코로리라도 한사발 들이킨 데스? 평소 같았으면 오마에를 자판기로 만들었겠지만 지금 몰려든 실장이 많아서 이정도로 봐주니 썩 꺼지는 데스!"

물론 저 분충의 잘못도 있지만, 보스 쪽의 조건도 여름에 비해 시세가 너무 변했다. 친실장은 긴장했다. 하지만 지금 가지고 온 콘페이토는 보통 콘페이토의 수십 배는 될 크기이다. 보통 콘페이토가 실장푸드 2개라면 이 정도 크기의 콘페이토는 꽤 풍족한 양이 될 것이었다. 친실장과 장녀는 다시 희망을 가졌다. 저 폭리에 오히려 앞에 있던 들실장들 다수가 투덜대며 줄에서 나와 발걸음을 돌렸다. 게다가 친실장의 차례가 올 때까지 보스가 모아둔 식량도 충분히 남으리라. 장녀는 어느새 행복회로를 가동하여 보스가 스테이크로 바꿔주는게 아닐까 하며 침을 흘렸다.

어느덧 차례가 되어 보스의 골판지 안으로 영광스런 첫 발걸음을 내딛는 친자. 보스의 거처는 일반적인 종이 골판지가 아니라 이삿짐 센터에서 흔히 쓰는 커다란 파란색 플라스틱 박스를 여러개 이어붙인 형태였다. 궁전같은 내부 한가운데에 분홍 수건을 왕좌처럼 깔고 앉은 보스실장은 손짓 하나만으로 친자를 멈춰세웠다. 친실장은 비닐봉투를 내려놓고 자랑스럽게 그 가보를 꺼내보였다.

"!!!!!!!!"

보스도, 경호실장도, 독라노예마저도 모두 거대한 콘페이토의 위력에 압도되어 휘둥그레진 두 눈을 껌뻑일 뿐이었다. 특히 보스는 이미 콘페이토에 메로메로되어 체통도 잊고 달려나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비닐에 싸인 콘페이토를 만져보았다.

"이거 실화인 데스우?"

"데프프프, 세레브한 와타시의 일가 대대로 전해지는 가보인 데스."

얼씨구, 자랑이다. 월동준비 제대로 못해서 가보까지 팔러 나온걸 친실장은 자신감있게 말한다. 그러나 보스는 일가 대대로 전해내려온 보물이라는 사실에 오히려 더욱 신비스러움을 느낀다. 색깔도 크기도 매혹적이기만 한데,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이것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사실에 보스는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걸 자신에게 바치다니, 푸드 한 무더기에 물병 하나, 독라노예 둘을 하사해도 모자람이 없겠지만, 다 주긴 아까우니까 독라노예는 하나만 줘야겠다고 보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단내가 풀풀 풍기는 데스우. 가짜는 아닌 것 같은 데스."

비닐을 벗겨 이 콘페이토가 진짜인지 확인하는 것. 아까 전에도 어디서 주웠는지 콘페이토랑 비슷하게 생긴 하얀 돌을 주워와 사기를 치려 했던 분충을 달마로 만들었었다. 그 분충은 자기도 몰랐다고 억울하다고 울부짖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자의 사정이다. 보스의 언청이 입에도 역시나 침이 흘러내렸다. 한 번만 핥아보자. 이런 귀중한 보물은 겨울 내내 아껴먹을 생각이지만 한 번 핥는다고 양이 크게 줄어들 건 아닌만큼 보스는 혀를 최대한 길게 빼내었다. 그리고는 콘페이토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쓱 훑었다.

"!!!!!!!!!!!!!!!!"

극상의 아마아마. 실장석 3대 쾌락 중 하나인 달콤함 - 나머지는 각각 프니프니와 총구 사이로 물체(운치, 마라, 자 등)가 통과하는 것 - 이 선홍빛 혀 표면의 미뢰를 지나 신경을 타고 보스의 온 몸으로 구석구석 퍼진다. 이 정도면 하늘로 승천해도 눈치 못 챌 정도이다. 그리고 독 성분 또한 식도를 지나 분태를 통해 보스의 온 몸으로 구석구석 퍼진다. 이 정도면 진짜 하늘로 승천할 독성이다. 보스는 쓰러졌다. 피를 토하며 장렬히 쓰러졌다. 극상의 아마아마로도 커버 못 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파킨 소리가 플라스틱 박스 하우스 내에 청명히 울려퍼진다.

"데에에에에에엣!!!!!!"

친실장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소중하게 여긴 가보가 코로리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친실장도, 친실장의 마마도, 친실장의 마마의 마마도... 지금껏 그 추악한 진실을 모른 채 그것을 실장생의 희망의 지표삼아 열심히 살아왔었다. 선조가 한때 사육실장이었다는 증표. 언젠가 그 혈통인 와타시들도 다시 사육실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 그것이 보스를 죽였다. 그렇다. 이제 마라되었다.

경호실장들이 보스가 죽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친실장을 쳐다보았다. 보스의 집 안에서 파킨소리가 들리자 구경거리라도 있나 몰려든 다른 들실장들의 주목을 한 번에 받은 친실장은 이제 큰일이 날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경호실장이 보스가 죽었다고 소리쳤고, 갑자기 들실장들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졸지에 보스 암살범이 된 친실장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고 했다. 박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미 입구는 실장들 틈에 끼어 터지고 밟혀서 찌부가 된 시체들이 즐비했다.

피냄새 운치냄새 풀풀 나는 참상 속에서도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며, 장녀의 손을 붙잡은 친실장은 더 안쪽으로 뛰었다. 경호실장들이 그들을 쫓아왔고, 위기상황에 초실장적으로 향상된 시력이 플라스틱 박스를 이어붙인 벽 아래쪽에 존재하는 약간의 틈을 포착했다. 친실장이나 장녀가 쉽게 통과할 크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친실장은 유일한 희망을 향해 장녀를 이끌었다. 그 약간의 틈 사이로 겨울일지언정 밝은 햇빛이 스며드는 광경은 마치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다.

"장녀! 벌리는데스!"

그 틈은 양쪽의 플라스틱 박스 모서리가 각각 안으로 휘어있기에 생성된 틈. 친실장과 장녀가 하나씩 붙잡고 당기면 당연히 틈은 좀 더 커질 것이다. 소재가 플라스틱인지라 한계는 있지만 말이다. 두 실장이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당기자, 마치 기적처럼 성체실장도 통과할 사이즈로 구멍이 늘어났다. 친실장이 잽싸게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고, 장녀가 그 뒤를 따르려고 했다.

그러나 일이 생각한 대로만 풀리면 그것이 과연 실장생일까? 친실장이 무사히 밖으로 나왔으나, 장녀는 친실장을 따라나오다 도로 줄어든 구멍에 꽉 끼어버려 역시 실장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것을 알차게 증명하고 만다. 방법이 없다. 구멍을 다시 벌리려면 안쪽에서 모서리를 잡아당겨야 하지, 바깥에서 어떻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닌겐이 개입하여 박스채로 뽑아버리면 모를까. 아, 물론 그럴만한 인간이 여기에 있다면 친실장은 진즉에 죽은 목숨이지만 말이다.

"마마! 살려주는 테스!"

친실장이 장녀를 당겨봐도 가망이 없다. 안그래도 며칠을 굶었다. 더 이상 이런 추운 곳에서 에너지 낭비를 하면 집에 못 돌아갈지도 모른다. 굳게 결심한 친실장은 뒤로 물러났다.

"이러다간 우리 둘 다 죽는데스."

"하, 하지만 아까 와타시를 소중하다고 하지 않은 테스!!!"

눈물나는 장녀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친실장은 뒤로 돌아서더니...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마에보다는 역시 와타시가 소중한 데스우!!! 자는 또 낳으면 되는데스!!!!"

버려진 장녀는 배신감에 피눈물을 흘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데시벨이 너무 커서 링갈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테스테스 거리는 소리. 어차피 번역 안해봐도 뻔한게, 친실장을 저주하는 내용일 것이었다. 설마 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표정에 탁해지는 두 눈으로 마마에게 꼭 살아남으라고 행운을 빌어줄 리가 없지 않은가. 상관없었다. 친실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친실장은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 들실장이 보스의 집 안으로 달려든 이유. 안쪽으로 도망가는 친자를 경호실장이 쫓아온 이유. 사실 양 쪽 모두 보스에 대한 보복으로 친실장에게 린치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보스가 죽었으니 이제 보스 집 내부 식량창고에 쌓여있는 식량은 모두 먼저 집어가는 놈이 임자라는 규칙이 생겨난 것 뿐이었다. 물론 만약 친실장이나 장녀가 눈치가 빨라서 이 사실을 알아내 자기들도 식량을 챙기러 더 안쪽으로 달려갔다 하더라도 수많은 들실장들이 높은 밀도로 붐비는 그곳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턱없이 적었겠지만, 만일 더 눈치가 빨라서 구석에서 조용히 몸을 피했다가 입구로 빠져나갔다면야 둘 다 살 수 있었을 텐데. 이미 죽은 동족들 시체라도 조금이나마 챙겨갈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미 늦었다. 친실장은 가보를 잃었다. 장녀도 잃었다.

그러나 아직 차녀는 있다.



"마마, 다녀온 테치?"

얌전하게 집을 보던 차녀가 친실장을 맞았다. 친실장은 한참을 뛰어온 터라 무척 지쳐있었다.

"장녀 오네챠는 어디있는 테치?"

며칠을 굶었다. 친실장은. 추자였던 엄지와 구더기마저 알뜰하게 아껴먹었음에도 지금은 핏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다. 운치를 먹고 싸고 먹고 싸고 십수번을 반복했더니 더 이상 나오는 운치도 없다.



그러나 아직 먹을 것은 있다.



친실장은 언청이 입에서 새어내리는 슬라임 같은 침을 애써 꼴깍 삼켜대며 그것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지금처럼 건조하고 추운 계절 - 겨울씨의 습격으로 인해 물조차 구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분보충은 이제 충분히 할 것이었다.

차녀. 뚝배기가 한때 가보였던 대형 코로리만한 사이즈. 중실장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크다고 말할 수 있는 그 행복의 덩어리를 보고 친실장은 달려든다. 극심한 허기 속, 꾸르륵거리는 분대를 움켜쥐면서도 적녹의 두 눈을 반짝이며 그것은 차녀를 바라보고 있다.

두건으로 잘 포장된 머리통. 뜯어내면 모든 실장석이 껌뻑 죽는다는 우마우마한 육즙의 고기. 여름의 열기에 살짝 화상이 입은 흔적이 있지만, 어차피 뱃속으로 들어가면 다 똑같은 완벽한 고기. 그것을 맛보는 친실장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사육실장 독립준비 공원


[주인사마 와타시는 자를 가지고 싶은데스.]

일요일 아침 철웅이 단잠에서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데 사육실장인 초록이가 다가와서 자를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흠....... 초록이도 이제 독립해서 집밖에서 살고 싶은가 보구나."

[데헥! 그게 무슨 소리인데스. 와타시는 사육실장인 데스.]

철웅의 말에 충격받았는지 초록이는 입에서 침을 튕기며 자기가 사육실장이라고 어필했다.

"무슨소리야? 초록아. 네가 자를 가지면 친실장이 되어서 가장이 되는거잖아. 가장이 되면 당연히 독립되어야지. 계속 여기에 눌러살면서 나한테 기생해 살겠다는 거야? 태어날 자들한테 부끄럽지도 않아??? 아니면 나한테 자들의 교육과 솎아내기까지 전부 위탁하겠다는 거야?"

[그... 그건 아닌데스.]

"그렇다면 독립해야 겠네"

철웅의 말이 먹혔는지 초록이는 이러지러ㅣ 눈을 굴리다가 말했다.

[그런 데스. 독립하는데스. 그런데 독립하면 베란다에서 살게 되는 데스?]

"독립하면 당연히 집밖 공원에서 살아야지. 가장이 되었으니 먹을것과 마실것을 전부 스스로 구해야 하고 나한테 의지하면 안된다. 네가 독립하면 나는 새로운 자실장을 사서 키울거니까."

[그.... 그건 들실장인데스. 그리고 주인사마의 사육실장은 와타뿐인데스. 다른 실장석을 키우면 안되는데스.]

"하....... 자를 가지는 것은독립한다는 거고 독립하는 것은 나의 비호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니 당연히 들실장이 되는거지. 그리고 니가 독립해서 비는 자리를 다른 자로 채우는 것은 당연하잖아."

초록이는 철웅의 설명에 충격받았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된 상태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초록이는 자를 포기하는데스. 귀찮게 해서 죄송한데스.]





실장석을 기르는 사육주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사육실장이 임신하더니 말을 안들어요. 분충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건 당연한거다.

사람으로 치환해서 생각해보면 당신이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가 자신만의 가게(자를 가짐)를 가져서 독립(친실장이 됨)했는데 전에 일하던 가게 주인이 "내가 선배니까 지도해줄게"라고 사사건건 간섭한다면 당연히 반발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실장석이 자를 가지는 것은 독립을 뜻하고 독립했기에 실장석은 자신을 주인과 동등한 상대로 보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간섭을 거부하기 때문에 사육주 입장에서는 갑자기 분충화된 것으로 보일수밖에....

엄격한 훈육으로 동등한 상대가 아니라고 인식시켜도 보스실장 정도로 보기 때문에 [오마에게 시키는 일은 하는데스. 그대신 와타시의 나와바리(집과 자들)에게는 간섭하지 마는 데스]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사육주 입장에서는 "이녀석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전부 나한테 의존하면서 간섭은 거부한다고?"라고 억울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사육실장은 태어나자마자 필요한것을 사람에게 얻어왔기 때문에 [주인사마가 와타시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은 당연한데스]라고 생각한다.

뭐...... 이건 실장석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애완동물이나 어린아이도 마찬가지니 실장석을 탓하지는 말자........

하여튼 출산욕구와 마찬가지로 <자를 가지기 위한 독립>은 실장석의 본능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하면 실장석이 자를 가지는 걸 억누를 수 있다.

기존의 "자를 가지면 안된다"에 비해 "자를 가지면 독립해야 하니 들실장이 되어서 살아야 한다"는 실장석의 본능이 시키는 것을 적용하기 때문에 머리나쁜 개체도 쉽게 <자를 가진다 = 독립한다 = 들실장이 된다.>의 상관관계를 이해해 자를 가지는 행위의 댓가를 확실하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자를 가지는 것은 실장석의 본능중 최우선 사항이다보니 이렇게 억눌러도 머지않아 [들이 되더라도 자를 가지고 싶은데스]라고 결심하는게 이럴때 사용하는게 <사육실장 독립준비 공원>이다.





"초록아 잘지내렴. 그리고 초록이를 잘부탁드립니다."

철웅은 [들실장이 되더라도 자를 가지고 싶은 데스.]라고 말하는 초록이를 사육실장 독립준비 공원에 데려와 공원관리인에게 맏겼다.

"저희만 믿어 주십시요."




공원관리인은 초록이를 공원안쪽으로 들고가서 한 골판지 상자 앞에 내려놨다.

"이게 네가 살 집이다."

[데......... 너무 허름한데스. 와타시는 테치카 성이 아니면 잘 수 없는데스.]

초록이가 허름한 골판지상자에 놀라며 불평을 토해내자 관리인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소리를 질렀다.

"웃기지마! 너는 들실장이다. 들실장은 들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집을 짓는게 당연하지. 불만있으면 알아서 토굴파서 살아라"

[죄송한데스. 와타시가 잘못한데스. 그걸 가져가면 와타시는 살데가 없는데스. 제발 가져가지 말라는 데스.]

관리인이 화를 내면서 허름한 골판지상자를 들고가려하자 초록이는 색눈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관리인의 다리를 잡고 애원했다.

"좋아. 이번만은 봐주마. 하지만 다음은 없다."

초록이가 필사적으로 애원하자 관리인은 화가 누그러졌는지 골판지 상자를 다시 내려놓았다.





[데........ 지저분한데스. 아무것도 없는데스.]

관리인이 가버린뒤 초록이는 골판지 상자안으로 들어가면서 [겉만 초라한 것인데스. 주인사마가 와타시를 위해 남겨놓은 세레브한 가구가 있는데스.]라며 행복회로를 돌리며 안을 살펴봤지만....... 운치자국이 있는 지저분하고 텅빈 골판지 상자였다.





1주일후

초록이는 그럭저럭 공원에 적응 했다.

집에 있을때처럼 늦잠자면 먹이터의 먹이가 치워지기 때문에 일찍일어났다.

집에 있을때처럼 안아서 옮겨주는 주인사마가 없기 때문에 500M떨어진 먹이터까지 스스로의 다리로 왕복하며 먹이를 가져왔다.

집에 있을때처럼 [맛없는데스]라고 투정부려봐야 달래주는 주인사마가 없기 때문에 맛업는 하급 실장푸드를 꾸역꾸억 먹었다.

초록이 이후에 들어온 다른 사육실장이 적응하지 못하고 발광하다가 관리인에게 잔혹하게 처형당하는 것을 보며 규율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렇게 적응했기에 출산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초록이는 출산용으로 공원에 춘비된 개울가에 누워 배에 힘을 넣었다.

[텟데레~~ 마마 와타시가 태어난 테치]

[테데레~~ 마마 점막을 제거해달라는 테치]

[텟데레~~ 세상의 주인인 와타시가 태어난 테치]

[텟데레~~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테치]

맛없는 하급 실장푸드지만 충분한 양이 공급되었기에 영양이 고르게 분배된 자들은 전부 자실장으로 태어났다.

[데~~ 드디어 와타시도 마마가 되는 데스. 앞으로도 많은 자를 낳아 세상을 와타시의 자로 채우는 데스.]

자가 태어나 점막이 마르기 전 가장 중요한 시간인데 처음 출산하는 초록이는 자로 가득찬 미래를 생각하며 행복회로를 돌리자 자실장들은 초조해서 초록이를 재촉했다.

[마마! 어서 와타시타치의 점막을 제거해 달라는 테치!]

[똥마마 뭐하는 테챠!!!!!!]

[오마에! 와타시의 점막을 제거하라는 테챠!!!!!!!!!!]

[와타시가 구더기가 되면 우주의 손해인 테챠!!! 어서빨리 와타시의 점막을 없애라는 테챠!!!]

하지만.......

[데프픗~~ 와타시의 세레브한 자들을 보면 주인사마도 "초록아 내가 잘못했다"면서 도게자하고 와타시와 자들을 데려갈 것인데스.]

초록이는 여전히 행복회로를 돌리는 중.........

[뭔일인지 모르겠지만 와타시 화나는 레후~]

[프니프니가 필요한 레후]

[와타시는 세레브한 꿈을 꾼거 같은 레후]

[레훼에에엥~ 이유는 모르지만 슬픈레후]

초록이가 정신차렸을때에는 저실장 4마리가 개울가에 기어다니고 있었다.

[왜이렇게 된 데스. 구더기로는 주인사마를 메로메로시킬 수 없는 데스. 이상태로라면 다시 사육실장이 되지 못하는데스.]






1주일후

[프니프니를 요구하는 레후~]

[마마의 프니프니는 시원찮은 레후~~]

[프니! 프니! 프니! 프니잉~]

[왜 프니프니 안해주는 레후?]

[왜 프니프니를 하루중일 요구하는 데샤!!! 와타시도 쉬고 싶은데샤!!!]

초록이는 저실장 4마리를 기르느라 육아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뭐......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게 힘든일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보살핌만 받던 (전)사육실장이 처음으로 남을 보살피는데다가 손이 많이가는 저실장 4마리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던 초록이의 눈에 관리인이 보이자 초록이는 충동적으로 골판지 상자를 뛰쳐나가 관리인에게 달려갔다.

[마마 프니프니하다 어디가는 레후?]

[육아방기인 레후? 고소하는 레후! 콩밥먹이는 레후!]

[똥마마는 프니프니도 못하는 병신인 레후]

[프! 니! 프! 니! 프! 니! 프! 니!]



그렇게 달려간 초록이는 관리인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말했다.

[와타시가 잘못생각한데스. 자를 가져봐야 전혀 행복하지 않는데스. 두번다시는 자를 가지지 않을테니 주인사마에게 연락해주는 데스.]

초록이가 말하는 것을 들은 관리인은 초록이에게 말했다.

"네 주인에게 연락해줄 수는 있어. 하지만 조건이있다."

[무었인데스?]

"불임 수술받는거다."

[데헥........... 그..... 그건.......]

"지금은 자를 키우기가 짜증나서 [자는 필요없는데스]라고 말하지만 주인하고 편하게 살면 다시 [자를 낳고 싶은데스]하면서 주인에게 폐를 끼칠거잖아."

[와... 와타시는 그런생각하지 않는데스.]

"웃기네. 불임수술받기 싫어하는 것만봐도 미래가 뻔히 보이는데? 불임수술 안받으면 주인에게 연락안한다. 그리고 이공원에는 1달만 있을 수 있으니 2주후면 너는 진짜 공원에가서 동족식하며 운치퍼먹는 들실장들과 살아야 하는 걸 기억해둬라."

초록이는 육아에 지쳐 [자는 필요없는데스]라고 말했지만 진심으로 자를 포기한게 아니었기에 <불임수술>받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받지 않으면 다시 사육실장이 될 수 없는데다가 2주후에는 지금처럼 교양있고 예의바른 (전)사육실장들과 지내는게 아니라 야만적이고 잔혹한 들실장들과 살아야 한다는 것에 좌절하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불임수술을 받는데스.]

"잘 생각했다."





사육실장들은 자를 기르는 어려움을 모르기에 [자를 기르기 위해서는 뭐든지 희생할 수 있는데스]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사육실장 독립준비 공원에서 주인의 도움없이 자를 기르게 하면서 <자를 기르는 어려움>을 몸으로 느끼게 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불임수술을 받게해 예전에는 100% 처분되는 임신한 사육실장의 30%가 다시 주인과 살수 있게 되기에 애호파들이 애용하고 있다.








물론 30%가 주인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70%는 폐기된다는 뜻이다.

"사육실장 독립준비 공원인데요. 맏기셨던 사육실장이 불임수술받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네요."

"어?? 새로 하나 샀는데요? 이제 필요없으니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흠... 이녀석 학대파에게 넘겨도 되나요?"

"상관없어요."

초록이는 회의모드로 방안에 울려퍼지는 전화통화에 정신이 멍해졌다.

자기가 자를 포기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는데 주인이 자기를 거부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귀엽고 세레브한 자신을 버린다는 말에 [데프픗~]하며 헛웃음이 나왔다.

학대파에게 넘겨도 상관없다는 말에 분노했다.

[무슨소리인 데샤!! 와타시같이 귀엽고 세레브한 사육실장을 버리다니 눈이 달려있는데샤!!!]

"무슨 소리야? 자실장일때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넌 역겹게 생겼어. 키우던 녀석이다보니 책임감을 가지고 키우고 있었던 것뿐인걸 몰랐구나~~ 그럼 학대파에게 가서 학대용 사육실장이 되어 잘살렴~~"


[웃기지 말라는 데샤!!!!!!!!!!!!!!!!!!!!!!!!!!!!!!!!!!!!!!!!!!!!!!!!!!!]






<사육실장 독립준비 공원>은 맏겨지는 사육실장을 속이기 위한 이름이고 진짜이름은 <사육실장 재활용 공원>이다.

폐기되는 사육실장중 갱생의 여지가 있는 사육실장에게 다시 기회를 주기 위한 공원이기에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녀석들은 전부 폐기된다.

[마마!!!]

[와타시의 자에게 손대지 말라는 데샤!!!!!!!!!]

그렇기에 공원생활에 잘적응한 녀석들일 수록 죽을 수밖에 없는게 <사육실장 독립준비 공원>의 역설이다.








와타시가 낳는 자는 한마리인 데스


떡잎시 두루마리 공원, 봄이되어 임신한 들실장들이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다.

[데프픗 와타시의 배안에는 자 8이 자라고 있는 데스. 우승은 와타시의 것인데스.]

불룩투어나온 배를 자랑하는 들실장이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다른 들실장들이 비웄었다.

[웃기는 데스. 와타시의 배안에는 12마리의 자가 있는데스. 8마리로 깝치지 말라는 데스.]

[12마리라니 겨우 그정도로 자랑하는데스? 와타시는 14마리가 배안에 있는데스.]

여기 모인 들실장들은 지난주에 애호파들이 푸드를 뿌리며

"가장 세레브한 자를 임신한 들실장을 찾고 있다. 다음주에 여기 모인 들실장중 가장 세레브한 자를 임신한 들실장을 선발해서 세레브한 실장복과 콘페이토를 주겠다."

라고 말한 약속때문에 모인 임신 들실장들인 것이다.

이렇게 서로가 [와타시의 배안에 자가 더 많은데스. 그러니 와타시의 자가 더세레브한데스.]등의 말을 하며 다투고 있는데 분홍빛 사육실장복을 입은 임신한 사육실장이 그쪽으로 걸어와 [데프픗]하며 비웃었었다.

[사육분충은 뭐가 잘났다고 웃는 데샷!]

꼴보기 싫은 사육분충이 자기들을 비웃자 열받은 임신 들실장들이 화를 냈지만 임신한 사육실장은 웃기만 할뿐이었다.

[오마에들 뱃속의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로 다투는 데스? 와타시의 앞에서 그딴걸로 다투다니 우스운 데스]

[그러는 오마에는 뱃속의 자가 얼마나 많기에 그토록 자신만만하는 데샷!!!!]

임신한 사육실장의 비웃음에 들실장들이 분기탱천해서 둘러쌋지만 임신한 사육실장은 여유있는 모습으로 말했다.

[와타시의 뱃속에는 자가 1마리만 있는데스.]

[데프픗! 겨우 한마리만 임신한 데스?]

[분대에 문제가 있는 불쌍한 병신인 데스]

[데프프!!]

주변을 둘러싼 임신 들실장들이 비웃어 댔지만 임신한 사육실장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하지만 와타시의 자는 사육실장인 데스. 데프픗]

임신한 사육실장은 말을 마친후 뒤를 돌아 자신의 주인에게 걸어갔다.

[데샤!!!! 인정할 수 없는 데샤! 와타시의 자는 사육실장이 될것인 데샤!!!]

[맞는데샤!!]

임신 들실장들이 질투에차 내뱉는 노성을 등지고 여유있게 자신의 주인에게 걸어온 임신한 사육실장은 실장석 우리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사마 공원산책은 끝난데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데스.]

"무슨소리야? 임신하지 말라고 했는데 멋데로 임신한 너를 보건소에 맏기기 전에 마지막 정으로 공원산책 시켜준건데? 이제 보건소 가서 살처분받아야지."

[그... 그게 무슨 소리인 데샤!!!! 와타시와 와타시의 자는 사육실장인 데스 키움받을 권리가 있느데스]

"웃기지마라 병x아."



PS. 공원안 임신 들실장을 모았던 애호파의 정체는 "간단한 속임수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멍청한 분충"을 솎아내는 시청 공무원들이었기 때문에 임신 들실장들은 모두 구제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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옜날에 읽은 이솝우화에서 돼지같은 동물들이 "나는 새끼를 이렇게 많이 낳는디"고 자랑하는데 사자가 와서 "나는 새끼를 1마리만 낳지만 그 새끼는 사자다"고 말하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쓴데스.








골판지 상자


무관심파가 들실장에 대해 착각하는 것중하나가 "들실장은 골판지 상자안에서 산다"일 것이다.

뭐... 틀린것은 아니다. 큰공원을 살펴보면 골판지 상자로 만들어진 실장석 집이 곳곳에 보이니까.

하지만 공원에 사는 모든 실장석의 수와 골판지 상자 집의 수를 비교해보면 골판지 상자에서 사는 실장석은 생각보다 적다는 것을 알게된다.


잠깐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게 키가 30~40CM정도인 실장석이 높이가 자기 키보다 높고 넓이는 몇배나 되는 골판지 상자를 가져와서 접어 집을 만드는 것은 난이도가 엄청나다.

이렇게 골판지 상자를 가져오는 것도 힘들고 집을 짓는것도 힘둔데. 유지보수도 엄청 어렵다.

골판지 상자는 골판지, 즉. 종이로 되어있기 때문에 비에 엄청나게 취약하다.

그래서 비닐등으로 골판지 상자를 덮어야 하는데 그렇게 큰 비닐은 도시에서는 버리지는 경우가 없고 버려져있다해도 가져오는게 힘들다.

차선의 방법으로 비닐봉투를 여럿 겹친다음 돌로 눌러 방수를 해야 하는데 편의점 봉투가 재산의 하나로 계산되는 실장석 사회에서 찢어지거나 구멍이 나있다해도 집밖에 노출된 비닐봉투를 훔쳐가는게 당연하다.


정리해보면 제대로 만들어진 골판지 상자 집을 가지고 있는 친실장은

1. 골판지 상자로 집을 지을 노동력과 손기술을 가지고 있다.

2. 방수재를 도난당하지 않을정도의 힘과 실장석 사회안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상위 5%의 세레브 들실장이라는 뜻이다.


물론, 돈없는 사람이 명품대신 짝퉁을 들고다니는 것처럼 실장석들도 세레브한 생활의 상징인 골판지 상자 집을 허접하게나마 가질려는 녀석들이 있고 그런 녀석들이 만드는게 공원입구쪽에 몰려있는 골판지 상자집락이다.

공원안까지 안전한 곳까지 가져올 체력과 힘이 없다보니 "공원 안"으로만 가져와서 사람눈에 잘보이는 곳이 집을 짓는다.

방수대책을 할능력이 없다보니 방수없이 살아 비만오면 무너지는 골판지 상자로 만족한다.

조금만 머리를 굴려봐도 자기목숨을 줄이는 바보같은 행위란 것을 알게될텐데 실장석 특유의 허영심때문에 [와타시는 세레브한 골판지 상자에서 사는 데스.]라는 생각으로 목숨을 줄이고 있다.


(이것까지 합쳐도 골판지 상자 집을 가지고 있는 실장석의 수는 60%가 안된다.)





"뭐, 그런 멍청한 녀석들이다보니 이렇게 가지고 놀 수 있는거겠지만."

[데챠!!!!!]

[데데데 뎃샤!!!]

[테에에엥!!!]

[데프픗]

[데데데스]


겨울은 현명한 실장석들에게 가장 위험한 계졀로 봄 여름 가을은 잎이나 수풀로 골판지 상자가 가려지지만 겨울이 되어서 잎이 떨어지고 풀이 시들면 숨겨놨던 골판지 상자가 눈에 띄어 습격당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챱챱챱챱]

[데...... 데에엥 데에엥]

[데프픗! 데데 데샤!]

[데데뎃!]

[뎃승]


내가 하고 있는 것은 공원입구에 골판지 상자 집을 지은 (월동준비를 실패한) 멍청한 녀석들을 콘페이토로 모은다음 "너희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을때 따뜻하고 배부르게 겨울을 보내고 있는 녀석이 있다. 그녀석은 너희들이 가져야할 것을 훔쳐간 녀석이다."라고 선동한다음 겨울이 되어 위장이 풀린 골판지 상자 집으로 데려온 것뿐이다.

그결과는 지금보고 있는 대로다.

[데.......... 뎃스(어째서 이렇게 된데스.)]

[테챠아!!!!!(오바상 와타시는 먹는게 아닌데스.)]

[데프픗!(똥분충의 자지만 맛있는 데스.)]

[데샤!!!!!(이집은 와타시의 것인 데스. 다들 꺼지란 데샤!)]

[데에엑! 데데샤! (웃기지 말란데스. 이건 와타시의 집인 데스.)]

[데데뎃샤샤샤! (와타시가 가지지 못한다면 전부 파괴해 주겠다는 데스.)]


월동준비를 끝낸 일가는 들실장들의 습격에 전부 일가실각 당했고 남은 골판지 상자를 두고 들실장들 끼리 싸우는 중.

이럴 경우 십중 팔구는 골판지 산자와 월동용 보온재가 갈갈히 찢겨져서 아무도 못쓰게 되지.


"그럼 공원 청소를 시작해볼까."

나는 골판지 상자를 두고 싸움을 벌이는 들실장들을 두고 공원입구로 돌아와 골판지 상자를 접어 쓰레기통에 담기 시작했다.

후드득

[테........]

[테샤!]

[레후에엥]

월동준비에 실패한 녀석들이다보니 배고픔에 지쳐 자를 잡아먹었는지 골판지 상자안에서 나오는 것은 얼아만되는 쓰레기 뿐이고 자실장이나 반건조상태로 살아있는 구더기 육포같은게 나오는 것은 3집에 하나정도.

여름이라면 자실장들이 튀어나와 시끄럽게 굴면서 투분해서 짜증나게 만들었겠지만 지금은 그런게 없어서 공원입구앞 골판지 상자 정리가 10분만에 끝났다.

"그럼 잘살아보렴 들실장들아"

이제야 돌아왔는지 집으로 걸어가는 내 뒤에서 들실장들이 우는 소리를 들렸다.

[데샤!!!!!!!!!!!!!!!!]

[데에에엥!]

[데데데 데스]

[데프데프데데스]

남을 즐겁게 유린하던 녀석들이 자신도 유린되는 입장인걸 알고 지르는 이 비명은 정말 최고다. 진짜 이거때문에 학대를 끊을 수 없다니깐.

나는 뒤돌아서서 나의 즐거움을 위해 오늘 수고 해준 녀석들에게 마지막 충고를 해주고 집으로 걸어갔다.

"오늘 처럼 월동준비를 마친녀석들을 습격하면 목숨을 몇일연장할 수 있을거야. 힘내렴!"








길실장의 생애 - 짓소 캐쳐 외전


[오로롱 오로롱]

겨울이 깊어가는 떡잎시의 골목길에 있는 대형쓰레기 더미틈에서 성체실장이 손으로 입을 막은채 피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고
있다.

[장녀가 죽은데스. 한번도 배불리 먹여보지 못한 장녀가 굶어죽은데스. 이번에도 자를 독립시키지 못한데스.]

친실장을 더 슬프게 만드는 것은 슬픔의 울음조차도 닝겐에게 들키지 않기위해 억눌러야 한다는 사실었이다.




친실장은 구정물속에서 태어났다.
마실물조차 부족한 길에서 유일하게 고여있는 물인 바닥에 고여있는 구정물에서 자를 낳은 친실장의 마마는
태어난 6마리의 자 중 친실장만 남기고 모두 잡아먹었다.

길실장은 소리를 내서는 안된다.
 - 골목벽 너머에 닝겐이 있기 때문에 소리높여 이야기 하면 닝겐이 죽이러 온다.

길실장은 운치를 아무대서나 누면 안된다.
 - 아무곳에서 운치를 눠서 운치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면 벽너머의 닝겐이 죽이러 온다.

길실장은 눈에 띄면 안된다.
 - 실장석이 보이면 닝겐이 죽이러 온다.

공원보다 더 엄격하고 일가실각의 덫이 항상 등에 도사리고 있는 환경에서 마마가 제대로 훈육하며 기를 수
있는 자는 단 한마리 뿐...

그렇기에 태어나자마자 마마에게 인사를 한 예의바른 차녀 & 삼녀도, 귀여웠던 엄지도 전부 솎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선택된 친실장이었지만 삶은 괴로웠다.

현명한 친실장의 마마는 쓰레기 수집소에서 먹을것을 가져올때도 항상 주위를 살피고 뒷정리를 철저히해
동네 주민들의 방관을 얻을 수 있어 먹을것에 부족함은 없었지만 닝겐에게 들키지 않게 항상 목소리를
죽여 이야기해야 했고 노래는 꿈도 못꾸는 생활이었다.
기쁨의 노래도 태교의 노래도 마마와의 대화도 닝겐에게 들릴까 소리죽여해야한다고 마마에게 훈육받는
환경은 친실장에게 엄청난 심적 고통을 주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당시가 친실장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주변 쓰레기 수집소가 발씨잡이에게 봉쇄되자 봉쇄되지 않은 이 쓰레기 수집소로 몰려온 길실장들이 쓰레기
수집소를 더럽히기 시작하자 친실장의 마마는 괴로웠지만 평화롭던 생황의 종말이 온 것을 알아차리고
안전한 곳으로 이사준비를 했다.

하지만.....

분충의 습격이 더 빨랐다.

분충에게 못으로 마구찔리는 마마의 비명이 골목에 울려퍼지던 날, 중실장이던 친실장은 마마의 비명을 뒤로한채
도망쳤다.

마마를 버려서라도 친실장은 살고 싶었다.
마음껏 노래를 불러보지도 못했는데 죽을 수는 없었다.
자를 낳는 기쁨을 누려보지도 못한채로 죽을 수는 없었다.
어딘가에 있을 세레브한 삶을 남겨두고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삶을 위해 마마를 버리고 도망친 이후 친실장의 삶은 비참했다.

집도없이 골목틈에서 자다가 냐옹씨에게 습격당해 죽을뻔한적도 있었다.

배고픔에 정신없이 먹을것 냄새나는 곳으로 걸어가다 발씨잡이에게 잡혀 자기다리를 뜯어내고 도망친 적도
있었다.

첫 출산때 엄지를 솎아낸다고 먹었다가 간만에 맛보는 고기맛에 정신이 나가버려 정신차려보니 자를 전부
잡아먹은 상태였다.

정성들여 꾸며놓은 집이 닝겐에게 들켜 그동안 모아놓은 비상식, 페트병, 수건들이 버려질때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오늘 장녀가 굶어죽었다.

6번째 출산만에 처음으로 중실장으로 키워내 [내년에는 독립시킬 수 있겠는 데스]란 예측이 보이던 장녀가
굶어죽었다.
골목 구석 대형쓰레기 더미사이에 만들어진 방한도 잘안되는 허술한 집에서 먹을 것도 제대로 못구해오는
친실장을 위로해주던 장녀가 굶어죽었다.
먹을 것을 구해올 친실장이 죽으면 장녀도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녀가 굶주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친실장은
자신의 체력을 유지하는데 집중했고 그결과 장녀가 굶어죽었다.

[오로롱 오로롱]

길실장의 월동은 들실장보다 더 어려운 편이다.
시멘트가 발린 골목길은 발효열로 온도유지를 도와주고 비상시에는 먹을 수도 있는 운치를 모을 운치굴을 만들 수 없게
만들었다.
구더기용 출산 노예를 기를 운치굴이 없기에 노예를 기를 수도 없었다.
추자를 말려 건조식품으로 만드는 것도 들실장처럼 운치나 잡초를 먹여 살찌울 수 없기 때문에 갓 태어난 추자로 만들어서
살집도 별로 없는 육포만 만들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점은 닝겐집에서 나오는 열기때문에 추위가 덜하다는 점.

하지만 한겨울 찬바람을 허술한 실장복으로 버텨가며 먹을 것을 모아와야 하는 친실장에게는 별로 체감되지 않는
장점이었다.

이처럼 보존식을 모으기가 힘든환경이다보니 한파로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되면 한파가
빨리끝나기를 기도하며 집안에서 굶어죽어갈 수밖에 없는게 길실장이다.

[오로롱 오로롱 장녀 미안한 데스]

친실장은 피눈물을 흘리며 장녀의 시체를 씹어먹었다.




떡잎시에 짓소캐쳐가 설치된지 5년, 떡잎시에있는 성체실장의 수는 가장많았던 시절의 2%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실장석은 험난한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은 실장석이다보니 쉽게 박멸되지 않지만 자실장이
성체실장이 되는 비율이 공원의 1/100정도로 낮기때문에 공원시절 태어난 성체실장이 노화로 사망하는
2~3년후에는 더 줄어들어 1%만 남을 것으로 예측된다.










공원에 사는 들실장들은 오줌냄새나는 변기물에서 태어나 비참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원에서 쫒겨나 길실장이된 그녀들은 하수나 바닥에 고여있는 구정물에서 태어나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짓소캐쳐


오전 6시, 떡잎시 두루마리공원


대한민국의 어느공원처럼 실장석에게 점령당한 두루마리 공원구석 골판지상자에서 친실장이 먹이를 구하러 집을 나섰다.

[최근 몇일동안 와타치타치의 땅인 공원에서 똥닌겐들이 우당탕탕하느라 먹을것을 구하지 못한데스. 오늘도 자를 굶길수는 없는데스]

공원 밖 쓰레기장으로 걸어간지 30분 공원밖 인도에 거의도착한 친실장은 그동안 보지못하던 구조물이 설치되어있는것을 알았다.

[똥닝겐들이 우당탕탕하던 것은 이걸 설치하기 위한 것이었던 데스? 똥닝겐을 쓸데없는 짓을하는 병신인데스]

경사로를 다올라간 친실장이 한발내딧는 순간


[데갸아악]

발이 바닥으로 푹빠져버리자 친실장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져 버렸다. 일어나 볼려했지만

[똥바닥이 와타시의 고귀한 발씨를 잡고있는데스. 와타시의 고귀한 발씨가 탐스러운 것은 알고있지만 이러면 안되는데스. 바닥씨는
어서 놔주시는데스]

친실장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바닥에게 아첨해봤지만 친실장의 다리를 물고있는 판은 풀리지 않았다.

친실장을 잡고있는 것은 짓소캐쳐.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일본에서 개발된 실장석 전용덧으로 실장석의 발크기가 3CM정도라는 것을 노려 사람은 발크기가 커서
걸리지 않지만 틈사이로 발이 들어가는 실장석은 확실하게 잡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일본에서 개발되어 일부 공원이나 편의점에 설치되고 있는 것을 실장석에게 골치썩이던 떡잎시에서 도입해 두루마리 공원에
시범설치한 것이다. 두루마리 공원을 빙둘로 설치된 짓소캐쳐때문에 공원밖 쓰레기장으로 갈려면 반드시 짓소캐쳐를 건너야
한다.











짓소캐쳐와 씨름한지 30분, 다른 실장석이 경사로위로 올라왔다.

[데프픗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병신인데스. 이런 병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신기한데스. 어제 독라달마 노예를
구하지 않았으면 오마에를 독라달마로 만들었을텐데 오마에는 운이 좋은데스. 와타시의 자비로움과 세레브함을 칭송하라는
데갹!!!!!]

친실장을 비웃던 다른 실장석도 바닥에 다리가 껴서 옴짝달싹 못 하게 되었다.

[데프픗 병신은 와타시가 아니라 오마에인데스]


2시간후

[고귀한 와타시가 명하니 바닥씨는 와타시의 발씨를 놓으란데스]
[왜 안빠지는 데샤!!!]
[데에에엥 와타시는 먹여야 할 자가 있데스. 여기서 끝날 실장생이 아닌데스]

모두 합쳐 11마리의 실장석이 잡혀있다.

"우와... 엄청많이 잡혔네"

짓소캐쳐에 잡힌 실장석을 수거하러온 떡잎시 환경안전과의 9급 공무원 이철웅은 실장캐쳐에 잡인 실장석을 실장수거봉투에
집어넣었다.

실장석 꺼내는 것은 간단해서 평평한 철판을 짓소캐쳐에 찔러넣고 90도 회전시키면 풀린다.
(물론 실장석이 도망가지 않게 미리 머리를 뽀개놔야 한다.)
실장석을 깨낸다음 철판을 다시 90도 회전시키면 원상복구.

[와타시는 여기서 죽을 운명이 아닌데스]
[똥닝겐은 와타시에게 메로메로되는 데수웅~~]
[똥닝겐에게 명하니 와타시를 풀어주라는 데스]

실장석이 데스데스거리며 뭐라 외쳤지만 린갈을 가지고 있지않은 철웅에게는 그냥 잡소리! 무시하고 전부 머리를 뽀갠다음
실장수거봉투에 집어넣었다.




다음날

[데프픗 분충은 머리가 나빠서 잡힌데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와타시는 이딴 싸구려 덧에 걸리지않는데스]

한 친실장이 짓소캐쳐 위를 포복으로 건너갔다.

경쟁자가 없는 쓰레기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드으음뿍 봉투에 담은 친실장은 다시 포복으로 짓소캐쳐를 지난다음 자들이
기다리는 골판지상자로 걸어갔다.

하지만!

[데프픗 여기 반독라가 있는데스. 잡아서 출산노예로 삼는데스]
[이건 와타시의 노예인데스. 딴놈들은 건들이지 말라는 데스]
[이걸 잡으면 자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데스]

친실장은 구름처럼 몰려온 들실장에 당황하다가 반독라라는 말에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데갸아아악!!! 와타시의 세레브한 실장복이!]

철망위를 기어가면 튼튼한 티셔츠도 올이빠지거나 찢어지는데 내구성이 약하기로 유명한 실장복으로 기어가다보니
실장복의 앞이 완전히 찢겨저나가서 턱받이는 흔적도 없고 두툼한 뱃살이 그대로 들어나 있었다.

[먼저 잡는 실장이 임자인데스!]

비명도 잠시 반독라 친실장은 다른 들실장들에게 휩싸였다.



다음날

[데프픗 실장은 도구를 쓸줄 알아야 하는 데스.]

한친실장이 손에 편의점 봉투와 골판지 조각을 가지고 짓소캐쳐앞에 섰다.

[다른 분충들은 모르지만 와타시는 아는데스. 골판지 조각을 얹어놓으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데스]

골판지 조각을 깃소캐쳐위를 얹어놓은다음 골판지조각을 밟고 건너간 친실장은 [데프픗] 웃으며 골판지 조각을
회수해서 쓰레기장으로 걸어갔다.

경쟁자가 없는 쓰레기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잔뜩 봉투에 넣어온 친실장은 같은 방법으로 공원으로 돌아온후 집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오마에 좋은건 나눠야 한다고 배우지 못한데스?]
[이 세계에서 제일 고귀한 와타시에게 비밀로 한것은 죽을 죄인데스]
[순순히 골판지 조각을 내놓으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데스]

친실장이 짓소캐쳐위를 건너간 것을 본 다른 실장석들이 골판지 조각을 빼았으러 온것이었다.

골판지 상자안에 있으면 웬만한 일이 없는이상 성체실장도 침입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실장석의 힘으로는
골판지상자를 찟어 조각을 만들 수 없었다.
설사 찢을 수 있다해도 생활에 필수적인 집을 부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일.
만들 수 없다면 가진녀석에게서 빼았는 것은 실장석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내놓는 데샷!!]

그날 골판지조각은 무협지에 나오는 장보도 처럼 시간단위로 주인을 바꿔가며 주인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1주일후

[닝겐노예가 온데스!!]
[똥 노예가 왜이리 늦게 온데스! 콘페이토 1조톤을 내놓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는데스]
[똥닝겐으 와타시에게 메로메로되는 테치]

실장석때문에 공원에 오지 않던 사람들이 공원에 찾아오자 굶주리던 실장석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닝겐 노예를 부리며 호화로운 집에서 스테이크와 스시를 먹으며 세레브한 사육실장을 꿈꾸던 들실장들에게 온것은
빠루와 코로리 스프레이였다.

[와타시타치가 속은데스 하얀악마인데스!!!!!!!!]

짓소캐쳐의 성능을 확인한 떡잎시는 두루마리공원을 빨리 정상화하기위해 구제업체를 투입했고 공원은
정상화되었다.



1달후

[여기가 새로운 낙원인데스]

이웃공원에서 이주해온 실장석 일가가 두루마리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친실장과 자실장 한마리로 이루어진 일가는
이웃한 도토리공원이 실장석으로 포화되어 악화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동족이 적어서 천국인 공원으로 가는데스]
하며 이주해온 것이다. 이주하는 동안 엄지 2마리와 자실장 3마리를 잃었지만 낙원에 왔으니 다시 낳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짓소캐쳐위로 발을 내딧었다.

[데갹!!!!]






두루마리 공원에 시험 도입된 짓소캐쳐는 확실한 효과를 보여줬는데 짓소캐쳐가 걸러내지 못하는 자실장이나 엄지,
버려진 사육실장때문에 실장석 100%박멸은 하지 못했지만 평균적으로 90%가량 줄이는 결과가 나왔기때문에
떡잎시뿐만 아니라 다른 시도 도입했고 공원을 더럽히는 분충들에게 굶주림 지옥이 떨어졌다.








자연 선별 (화형집행)


해가 진다.
오늘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태워죽일 기세로 타오르던 태양은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지평선 넘어로 사라지고,
밤이 되었다.

목이 말랐다.
창문 너머로 비추는 만월의 달빛을 감상하며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연거푸 들이켰다.
낮부터 8시간을 내리 틀던 에어컨을 끄고 문을 열었다. 밖의 공기는 신선했지만 아직도 뜨겁다.

폭염이 지상을 구워버리기 시작한 지 한 달.
이대로라면 올해는 굳이 구제같은 걸 할 필요도 없으리라.


낮에 사정없이 내리쬐었던 햇빛과 반대로, 밤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정해진 산책로를 따라 후레쉬를 여기저기 비추면 그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앞뒤로 사지를 길게 뻗은 채,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비쩍 마른 고양이의 시체.
나무토막처럼 바람에 나뒹구는, 반쯤 먹힌 비둘기의 시체.
거의 말라버린 개천바닥에서 천천히 썩어가는 이름모를 물고기의 시체.
하지만 그중에서도 8할이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희생자는 역시 실장석이다.



[베에... 에... 에에......]

개천가에 후레쉬를 비추자 약하게 갈라진 목소리로 울부짖는 듯한 성체실장.
본래의 통통한 몸은 이미 삼분의 일 정도로 줄어들어 있다.
그런데도 분대가 위치한 복부만은 터질듯 부풀어 있는 것을 보니 심한 변비에 시달린 모양이다.
아마 극도의 수분부족이 원인일 것이다.
A자형 입 밖으로 볼품없이 늘어진 혀는 검게 변색되어 있다. 혀조차도 움직일 수 없는건가...?
두 눈에서 난 피눈물 자국은 이미 말라붙었고,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지 눈만 깜빡거린다.
몇번을 더 깜빡거리자 붉은색 쪽 안구가 데구르르 굴러떨어진다.


[베브우... 비에... 에브에...]

링갈에는 이미 해독할 수 없다는 메시지만이 뜨고 있다.
혀가 제 기능을 못하니 말하는게 부정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설령 어린애라고 할지라도 실장석이 절실히 구조를 요청하고 있음을 눈치채리라.
나는 실장석의 몇 미터 앞까지 접근해서,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계속한다.
서서히 썩은 냄새가 코끝으로 침투한다. 윙윙거리는 벌레들이 거슬린다.
비위가 약한 나로서는 더이상 접근하기 싫었다.


[베뱌아...! 베브우...!]

혼신의 힘을 쥐어짜 뭐라뭐라 외치는 듯 하나 여전히 링갈은 먹통이다.
거의 10분 간 한쪽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실장석은 끝내 베벳! 하는 단말마와 함께 움직임을 멈췄다.
총배설구를 조이던 근육이 풀렸는지 운치가 새어나오는 것을 본 나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오늘도 역시 훌륭한 구경거리를 제공해준 고 들실장의 명복을 액션빔.


몇 개의 다리 밑으로 쭉 이어진 산책로를 계속 걷는다.
세번째인가 네번째 다리 밑을 막 지났을 때 실장석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몹시 가늘고 약한 것을 보니 자실장, 그것도 생명이 거의 다해가는 놈 같다.



[찌이이.... 찌이... 이이...]

이미 쓰러져 죽은 성체의 배 밑에 자실장의 하반신이 깔려 있다.
더위로부터 자실장을 감싸다가 그대로 기력이 다해 죽은 것 같다.
좀 더 가까이 가서 후레쉬를 비춰본 나는 헛구역질이 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깔린 채로 친의 시체를 뜯어먹은 자실장의 얼굴은 말라붙은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찌잇...! 찌이익...!!]

내가 접근한 것을 알아챘는지,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자실장.
바로 링갈어플을 비활성화시켰다. 어차피 분충일게 뻔하니 들을 가치조차 없다.
심한 악취 때문에 마스크를 꺼내 쓴 나는 자실장에게 접근했다.
접근할수록 자실장의 울음소리는 조금씩 커졌다. 내가 도와주리라고 생각하나 보다.
나는 가방에서 30cm정도 되는 휴대용 고무망치를 꺼냈다.


[찌이... 찟! 찌익!? 찌벳]

두세번 내려치자 단말마와 함께 대가리가 말 그대로 달갈껍질처럼 잘게 부스러졌다.
이놈도 심각한 수분부족이었는지 뇌수도 피도 물엿처럼 찐득하게 흘러내렸다.
더러워진 고무망치에 알코올 스프레이를 뿌려 휴지로 잘 닦아서 다시 가방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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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다리 밑까지 가서 돌아오는 것이 정상코스지만 더위 때문인지 너무나 지친다.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 다리에서 나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가방에서 500ml 페트병을 꺼내 물을 반 정도 마셨다.
몸은 땀투성이였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몸을 풀어줘야 잘 때 편하다.


두 번째 다리와 첫 번째 다리 사이의 산책로에는 앉기 편한 벤치가 여럿 있다.
휴식을 취하기 그곳에 앉아 있으려니, 옆의 벤치 밑에서 뭔가 다가온다.
후레쉬를 비춘 곳에는 실장석 친자가 있다.
볼은 홀쭉하고 사지는 빼빼 말랐는데, 배만 불룩 나와 몹시 징그럽다.
내 앞 1미터 근처까지 와서 그대로 주저앉아, 베즈베즈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나는 비활성화 된 링갈을 다시 켰다.



[닝겐사마... 이 자들을 제발 길러주시는데스.... 부탁드리는데즈...]

뭔가 했더니 역시 탁아였나.
하긴 이런 극한상황에서는 오히려 탁아를 하는게 정답이긴 하다.
자실장 두 마리는 어미 뒤에 숨어 눈만 내놓은 채 나를 보고 있다.
흐음 어디보자... 옷차림은 그럭저럭 깨끗하다. 외관상으로는 합격인가.
테스트롤 좀 해보실까. 일단 겁을 준다.


"나 학대파야. 그것도 너희 동족 수천을 죽인 하얀 악마야. 그러니 죽고싶지 않으면 빨리 도망쳐라"

깜짝 놀랐는지, 데뎃 하는 얼빠진 소리와 함께 자실장들을 양 팔로 감싸는 친실장.
자실장들도 금방 울상이 되어 친실장의 뒤로 숨어버린다.
하지만 도망치는 기색은 없고, 다시 말을 걸어온다.


[...그래도 좋은데스. 어차피 이대로라면 죽을 뿐인데스우...]
"내가 데려가도 죽는건 마찬가지인데?"
[가끔 학대파도 좋은 닝겐사마로 바뀔때가 있는데스]
[드문일이지만 이 아이들이라면 가능성이 있는데스... 그쪽에 거는데스우]



꽤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다. 백점 만점에 80점 정도는 줄 수 있는 답안이다.

"너, 원사육실장인가?"
[마마가 길러진 적이 있는... 데스. 지금은 죽고 없지만 많은것을 가르쳐 준 데즈우...]


무언가 서러운지 두 눈에서 피눈물이 찔끔 떨어진다.
이 놈들도 수분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페트병의 뚜껑을 열어 친실장 앞에 놓는다. 어차피 버릴것이니 아까울 것도 없다.



"일단 마셔라."
[가, 감사한데스우~]




친실장은 자 둘과 물을 나누어 마신다.
갈증이 좀 해소됐는지, 친실장은 입에 물을 머금고 자들을 여러번 핥았다.





"왜 그런 짓을 하지? 마시기에도 모자란 물 아닌가?"
[자들의 몸이 뜨겁뜨겁게 되면 금방 죽어버리는데스... 이렇게라도 해야 살릴 수 있는데스]






이녀석은 보통내기가 아닌걸. 열사병의 증상과 대처법에 대해 몸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긴 그러니 들실장이 거의 전멸에 이른 지금까지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왜 굳이 나한테 탁아하려고 하지? 기다렸다가 애호파에게 탁아하는게 좋지않나?"
[데에에... 요즘에는 닝겐사마 보기가 너무 힘든데스 기다리기만 하면 일가실각인데스]
[애호파는 드문데스 그리고 와타시들의 눈으로는 애호파와 학대파 구분이 어려운데스]








확실히 실장석 입장에서는 인간들의 속내를 구분하기 어렵겠지.
기르다가도 질렸다며 갑자기 처분하는가 하면, 학대하다가도 싫증내고 풀어준다.
달콤한 말로 꾀어 높이 올렸다가도, 끔찍하게 고문해서 지옥 밑바닥에 쳐박는다.
인간은 변덕스러운 생물이며, 동시에 거짓말의 달인이다.
자 그럼... 파이널 테스트를 해 보실까.









"나한테 자들을 넘기면 너는 어쩔셈이지? 나중에 쫒아와 길러달라고 할건가?"
[데푸푸...]










뜻밖에도 실실 웃는 친실장.
들실장 특유의 천박함은 숨길 수 없지만, 그 눈은 전혀 웃고있지 않다.











[이미 와타시는 틀린데스. 소중소중한 돌이 가끔 아파오는데스]
[그리고 탁아한 뒤 그 집에 찾아가는 것은 멍청한 짓인 데스 그런짓을 했다간 일가실각데스]
[그런짓을 했다가 편하게 죽지도 못하는 멍청이들은 질릴만큼 본데스]












행복회로조차도 작동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친 것일까?
아니면 의외로 행복회로에 취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조악한 테스트지만 그래도 통과했으니, 마지막 선물이라도 줄까.













"자, 이거라도 받아"
[별사탕? 설마... 코로리인데스?]
"응 맞워요~ 하지만 고통은 덜하지. 편하게 죽을 수 있다"














내가 건넨 것은 흔히 코로리M(Mercyful), 혹은 코로엠, 로엠 등으로 알려진 상품이다.
코로리에 약간의 마취성분을 더한 물건으로, 단가는 일반 코로리의 2배 정도.
극심한 고통과 출혈을 동반하는 코로리와는 달리, 이걸 먹은 실장석은 자는 듯이 죽는다.
안락사 시설이 없는 보호소에서 실장석들을 죽일 때 쓴다.
학대파들에게는 그닥 인기가 없는 물건이라, 어디서나 쉽게 재고를 구할 수 있다.















[데... 일단은 받아가는 데스]
"아니, 지금 바로 먹어라"
[뒈엣...!]
















역시나 동요의 기색을 보이는 친실장.

[왜, 지금인데스?]
"니가 내 집까지 쫓아올수도 있잖아"
[그런짓 안하는 데즈우...]
"절대, 라고 말할 수 있나? 니가 쫓아와서 민폐를 끼치면 나로서는 큰 손해야"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저 두마리는 끔찍한 꼴을 겪겠지"
[데에에...]


오옷...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는걸. 상황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당장의 갈증도 덜었다. 자들은 인간이 맡아준다.
모든 것이 해결됐지만, 댓가는 자신의 목숨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



놈의 두 눈은 쉴새없이 움직인다
코로리. 첫째 자실장. 둘째. 인간. 높게 점프한 맛있는 벌레. 벤치의 다리. 그리고 다시 코로리.
그리고 나는 조그마한 눈 안쪽에 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을 본다.
체념. 집착. 갈구. 고통. 슬픔. 분노. 욕망. 증오.
죽음의 냄새를 맡았는지, 태풍의 눈으로부터 검은 반점이 튀어나와 안구 전체는 검게 침착된다.




[...자들과의 이별을 할 수 있게 잠시 기다려 주시는데스]
"그러지"





첫째 자실장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조금씩 안구 밖으로 새어나온다.
이놈은 친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둘째는 첫째에 비해 아직 꽤 작고 미숙해서 상황판단이 잘 안되는 것 같다.
같이 태어난 피붙이들이 전부 죽어서 저 둘만 남은 것이리라.






[오마에들은 잘 듣는데스. 이제... 더이상 마마하고는 만날 수 없는데스]
[테에엥... 마마...]






[마마아...]

자실장 둘은 말할 힘도, 울 힘조차도 없는 것 같다.
그저 다리가 풀려 친에게 안긴 채 말을 듣고만 있다.
친실장은 그런 둘을 양 팔로 껴안아 소중히 볼을 비빈다.


[여태까지 가르친 것을 다 기억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힘내는데스]
[닝겐사마는 상냥한 분은 아닌데스... 그러니 절대 닝겐사마를 거스르면 안되는데스]
[와타시의 몫까지 꼭 행복해지는데즈우... 사랑스러운 와타시의 자들...]
[배부르게 먹여주지 못해 미안한데스, 무능한 마마라 미안한데스우... 데쿳... 데쿳...]



내쪽을 두어 번 힐끔거리긴 했지만, 내가 째려보자 더 이상은 하지 않는다.
아직은 아슬아슬하게 합격이다.




"빨리 먹어라.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알겠는데스]
"그리고 거기 두 마리는 이리로 와"





희망의 끈을 확실하게 잘라버린 나는 가지고 온 투명한 플라스틱 통의 잠금쇠를 열었다.
그리고 자실장 두마리를 안에 집어넣어, 벤치 위에 가져다 놓는다.
낳아준 어미의 죽음을 관람하기 위한 특등석이다.






[데에엣... 데에... 꿀꺽]
"물도 다 마셔. 확실하게 가라"







몇 분 정도 더 머뭇거리던 친실장은 마침내 약을 삼키고, 물을 마셨다.
물로 인해 완전히 녹은 코로리M은 훨씬 빨리 흡수된다.
친실장의 동공은 급격히 빛을 잃어가며 수축된다. 약효는 잘 듣는 모양이군.
사각 플라스틱 통 안의 자실장들이 벽을 콩콩 치면서 뭐라뭐라 칭얼거리지만 잘 안들린다.
자... 이제 슬슬 너의 진짜 모습을 보여줘.








[게에... 죽고싶지 않은데즈우]
[한번도 배부르게 먹어본 적 없는데즈]
[하루도 편하게 자본적 없는데스우]
[왜 똑똑한 와타시를... 아무도 기르지 않는데스...?]









반쯤 정신이 나간 친실장에게, 나는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그거야, 기를 가치가 없기 때문이지"
[와타시는 똑똑한데스우... 마마도 이모토챠들도 항상 칭찬해 준 데스우]
"네가 아무리 잘나봤자 실장석이야"


별거 아닌 내 독설에 뭔가 경악했는지, 눈을 크게 뜨는 친실장.

[와타시가 실장석이기 때문에...?]
"그래. 실장석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가장 큰 실수다. 똑똑하건 잘났건 뭐건 아무짝에도 쓸모없지"
[그런... 말도안되는 데스우! 그럴리가...]


거의 통증이 없을텐데도, 두 눈에서 흘리는 피눈물이 점차 검어진다.
앞으로 그대로 꼬꾸라지더니, 왈칵 피를 토하고는 더이상은 움직이지 않게 됐다.
인간 입장에서는 당연한 진리도 실장석에게는 잘 통용되지 않는데, 이놈은 드물게 뭔가 깨달은 모양이다.
보통은 데아아~ 저 똥벌레들을 대신해 나를 키워주는데수~ 라고 난동을 부리다 꼴사납게 죽기 마련이건만,
이놈은 좋은 의미로 내 기대를 몇번이나 배신해줬다.



누군가 옆에서 모든것을 봤다면 나보고 피도 눈물도 없는 지독한 학대파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과 나의 기준은 다르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결코 학대가 아니다.
친실장은 어차피 해가 뜨면 수분 부족으로 고통속에 미쳐서 죽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죽였다.
이 공개처형 '쇼'는 자실장의 교육도 겸한다. 너희도 저렇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실장석과 부대끼며 살아온 지 벌써 20년. 진정 실장석을 위한 행동이 무엇인지, 싫어도 알게 되어버린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친실장의 시체는 수거봉투에 담아 묶어서 수거함에 버렸다.
이놈만큼은 내가 죽인 것이니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되겠지.
그리고 자실장들은 네무리를 뿌려 재운다. 너무 오래 울면 쇼크사할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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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이어지는 찜통같은 날씨.
그저 숨만 붙어 살아가기에 급급한 나날.
그나마 유일한 오락거리는, 더위에 희생된 실장석들을 관찰하는 것 뿐이다.
오늘처럼 뜻밖의 수확이 생길수도 있으니 일석이조다.


나날이 규모가 줄어만 가는 실장석 업계의 현실과는 달리, 사람들의 눈은 높아져만 간다.
브리더의 가혹한 훈육에 의해 '교육받은' 사육실장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례에 의해, 이르건 늦건 반드시 분충화 되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몇몇 선구자들은 '교육받은' 사육실장이 아닌, 스스로(自) 그러한(然) 개체,
태어날때부터 사육실장의 적성을 가진 개체를 찾아다녔다.



당연히 그 과정은 10년이 넘는 긴 시간과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천문학적 단위의 실장석들이 희생되고 아주 소수의 개체들만이 선택됐다.
사육실장의 본가인 로젠사(社)는 더이상 실장석의 교육방식에 투자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택받은 실장석의 유전자를 조합하고, 복제하여 시험관 안에서 생산한다.



사육실장의 패러다임은 <교육>에서 <선별>로 완전히 넘어갔다.
가혹한 자연환경은 훌륭한 선별방식이기도 하다.
인간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인간으로부터 떨어져 사는, 지능이 높은 실장석들이 있다.
물론 지능이 높다고 해서 꼭 사육실장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일반적인 들실장에 비해 훨씬 높다.

평소에 이것들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교묘하게 숨어있기도 하고, 잡힐 것 같으면 위석을 깨서 자살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극한상황에 이르면 스스로 인간을 의지해온다.
자신의 힘으로는 더이상 아무것도 못하고 개죽음당할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같은 2류의 브리더 입장에서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이 두마리는 얼마에 팔릴까? 나는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집으로 향한다.



<사족>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